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유물
    2026-01-27
    검색기록 지우기
  • 도사
    2026-01-27
    검색기록 지우기
  • 제물
    2026-01-27
    검색기록 지우기
  • 무산
    2026-01-27
    검색기록 지우기
  • 봉사
    2026-01-2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512
  •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부른 박인수 전 교수 85세 일기로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부른 박인수 전 교수 85세 일기로

    1980~90년대 국민가요로 통하던 ‘향수’(鄕愁)를 가수 이동원(2021년 작고)과 함께 불렀던 성악가 테너 박인수 전 서울대 교수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한 사실이 2일 알려졌다. 향년 85. 1938년 3남 2녀의 장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유년 시절부터 신문 배달 등을 하며 고학해 1959년 서울대 음대에 입학했다. 4학년 때인 1962년 성악가로 데뷔한 뒤 1967년 국립오페라단이 무대에 올린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 주역으로 발탁됐다. 1970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아드 음악원과 맨해튼 음악원 등지에서 수학했다. 당시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줄리아드 음악원 오디션에도 합격해 화제가 됐으며, 그 뒤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라보엠’, ‘토스카’, ‘리골레토’ 등 다수의 오페라 주역으로 활약했다. 1983년 서울대 성악과 교수로 부임한 뒤에는 클래식 음악이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소신에 따라 대중적인 행보에 나서 ‘향수’를 발표했고 이 노래가 큰 인기를 끌면서 ‘국민 테너’로 불렸다. 시인 정지용이 쓴 동명의 시에 작곡가 김희갑이 곡을 붙인 ‘향수’()는 1989년 음반이 발매된 후 현재까지 130만장 이상 팔린 스테디셀러다. 클래식과 가요의 장벽이 높았던 때라 성악가가 대중가요를 불렀다는 이유로 박인수는 당시 클래식계에서 따돌림을 당하며 마음고생을 했다. 고인은 생전에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클래식은 대중음악과 다르다는 고정관념에 위배되는 일을 했기 때문에 파문의 중심에 섰던 것”이라며 “‘향수’를 부른 뒤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많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졌고, 사람들의 인생을 다양하게 이해하게 됐다”고 돌아봤다. 그는 국내외 독창회 2000회 이상, 오페라에는 300회 이상 주역으로 무대에 섰고, 2003년 서울대에서 퇴임한 뒤에는 백석대 석좌교수와 음악대학원장을 맡았다. 2011년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안희복 한세대 음대 명예교수, 아들 플루티스트 박상준 씨가 있다. 장례 예배는 LA에서 3일 오후 6시 진행된다.
  • 가마터는 놀이터, 스승은 아버지… 자기는 내 운명

    가마터는 놀이터, 스승은 아버지… 자기는 내 운명

    “이야, 진짜 잘 만들었네.” 아들이 만든 백자 달항아리를 본 김영식(54)씨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번졌다. 자신을 따라 9대째 도예 가문의 명맥을 잇는 김동연(24)씨가 “역대 최고 기록을 썼다”고 자랑한 달항아리를 실제 보니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실패 없이 한 번에 높이 48㎝, 지름 46㎝ 크기로 만든 달항아리의 곡선에는 대를 이어 내려온 가문의 장인 정신이 흐르고 있었다. 최근 경북 문경 ‘조선요’에서 만난 이들은 ‘문경 망댕이 사기요’를 지켜 온 김씨 가문의 종손들이다. ‘문경 망댕이 사기요’는 1863년 지은 우리나라 전통 칸가마(내부가 여러 개로 나뉜 봉우리 모양의 가마)로 원형이 잘 보존돼 조선시대 후기 요업사 연구에 있어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는다. 문화재 위원들은 하나같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할 가치가 분명하다”고 의견을 모았고 지난 1월 ‘문경 관음리 망댕이 가마 및 부속시설’이라는 새 명칭과 함께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 예고가 된 상태다.1999년 10월을 끝으로 ‘문경 망댕이 사기요’에서 도자기를 만들진 않지만 ‘조선요’의 작업장은 선조 대의 시설 형태를 그대로 가져왔다. 경북 무형문화재 사기장인 김영식씨는 “가마를 계속 쓰려면 잦은 보수가 필요하고 그러면 옛날 원형이 사라져서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경북에 문화재 지정을 신청했다”고 떠올렸다. 문화재 지정을 위해 등기를 떼 보니 토지 소유주 문제가 걸려 있어 7년간의 노력 끝에 2006년 10월 경북 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보고 배우고 자라 온 게 몇 대를 거듭하면서 자연스럽게 도예 가문이 이어졌다. 김영식씨는 “어릴 때는 가마터가 놀이터였고, 아버지가 하는 것을 보고 배우면서 무의식적으로 습득이 됐다. 남들보다 빨리 숙련한 데는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고 했고, 김동연씨도 “아버지가 도예가니까 항상 보고 자란 게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김영식씨는 아들을 조소과에 진학시키기로 하고 서울의 학원에 보냈는데 김동연씨는 조소과가 아닌 도예학과에 합격하며 ‘피는 속일 수 없다’는 걸 보여 줬다.김영식씨는 ‘문경 망댕이 사기요’가 국가지정문화재가 되면 기념관을 지을 예정이다. 선조들의 유물을 모아 전시하고 전통 방식으로 도자기 공예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게 목표다. 그는 “장손으로서 사리사욕을 버리고 사라져 가는 전통 도자 문화를 후대에 제대로 알리고 싶다”고 소망했다. 쉽지 않은 길인 것을 알면서도 도자기를 향한 두 부자의 예술혼은 꺾이지 않았다. 김영식씨는 “도자기는 완성은 없다. 나이 들어 죽을 때까지 항상 완성을 위해 쫓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연씨도 “아버지 작품이 나날이 좋아지는 걸 보면서 배워야겠다고 생각한다”며 “아버지의 달항아리가 고가에 팔리는 걸 보면 기쁘긴 하지만 어깨도 더 무거워진다. 선대 사기장들의 마음처럼 정말 순수하게 문화를 지켜 나가는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해 많이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 사명대사 승병 일으킨 ‘고성 건봉사지’ 사적 지정

    사명대사 승병 일으킨 ‘고성 건봉사지’ 사적 지정

    극락에 오르기 위해 1만일 동안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며 기도하는 모임을 ‘만일염불회’라 한다. 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만일염불회의 발상지인 ‘고성 건봉사지’가 28일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으로 승격됐다. 강원 고성군에 있는 건봉사는 문헌 기록상 6세기쯤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일염불회의 발상지이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불교 신앙의 중심 도량이다. 조선시대에는 왕실 원당(願堂)의 기능을 수행했다.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승병을 일으킨 곳으로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이다. 내부에는 ‘고성 건봉사 능파교’,‘건봉사 불이문’ 등 다수의 문화유산이 현존하고 있다. ‘고성 건봉사지’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이르러 영역별로 확장되는 모습을 보인다. 일반적인 조선시대 사찰이 예불공간 중심의 구성인 것과 달리 예불공간과 승방이 균일하게 구성된 양식을 보여줬던 고려시대 다원식(건물지가 구역별로 구분되는 형내) 구조의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화재청은 “각종 역사 기록과 고고학적 발굴성과, 사역 전체에 분포하고 있는 석조유물 등을 종합할 때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큰 사지로 평가된다. 앞으로도 강원도, 고성군과 협력해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 박영석 대장 시신이라도 찾자고 산악인 5명, 3월 안나푸르나로

    박영석 대장 시신이라도 찾자고 산악인 5명, 3월 안나푸르나로

    박영석 대장이 네팔 안나푸르나 품에 안긴 지 12년이 훌쩍 흘렀다. 2005년 세계 최초로 8000m급 14좌와 7대륙 최고봉, 세계 3극점을 모두 발 아래 두는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했고, 2009년에는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일명 ‘코리안루트’를 개척했던 박 대장은 2011년 10월 안나푸르나에 또 다른 코리안루트를 개척하고자 했다. 길이가 3500m에 이르고, 해발 고도 5200m 지점의 베이스캠프에서 정상까지 눈이 쌓이지 않을 정도로 가파른 암벽이 2000m나 이어지는 난코스 개척에 나섰다. 박 대장은 그 해 10월 17일 오후 4시(현지시간) 전진 캠프를 떠나 루트 개척에 나섰고, 이튿날 해발 6300m 지점까지 오르다가 “낙석 과 가스가 많다”며 등정을 중단했다. 그 뒤 “두 번 하강이 남았다”는 교신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다. 대한산악연맹은 셰르파와 한국 구조전문대원들을 투입해 열흘간 집중적으로 수색했으나 끝내 박영석 대장을 찾지 못했다. 한국인 첫 번째, 세계 여덟 번째로 8000m 14좌 완등을 달성한 그의 시신조차 찾아 고국에 데려오지 못한 시간이 이토록 오래 됐다는 것은 국내 산악인들에게는 한없이 죄스럽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산악인 다섯이 네팔 안나푸르나를 향해 떠난다. 박영석산악문화진흥회는 24일 “일정이 조금 변경될 수 있지만, 3월 1일 한국을 떠나 약 보름 동안 안나푸르나를 수색한다”고 전했다. 진흥회는 ‘2023 박영석 대장 수색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이번 등반을 준비했다. 마칼루 원정 대장이었던 정용목 서울대 명예교수가 수색대장을 맡았고, 각각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북극 원정 경험이 있는 산악인 강성규, 이치상, 김헌상, 진재창이 대원으로 뭉쳤다. 이치상 대원은 생전의 박 대장과 숱한 고비를 함께 넘긴 산악인이기도 하다. 상게 셰르파의 죽음과 관련해 그와 박 대장의 일화가 지난해 말 여성 산악인 오은선의 회고록 ‘오은선의 한 걸음’에 수록돼 논란이 되고 있기도 하다. 대원들은 박영석 대장이 마지막으로 교신했던 지역 등을 수색하고, 박영석 대장 추모비를 보수한다. 박영석 대장에 관한 유물과 자료도 수집한다. 원정을 마친 뒤 돌아와 관련 전시회도 열 예정이다. 박영석산악문화진흥회는 “박영석 대장이 실종된 지 약 11년 4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박 대장을 기억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고 이번 수색의 의미를 부각했다.
  • 느긋하게, 신비한 역사 속으로…특별하게, 찬란한 문화 품으로[권다현의 童行(동행)]

    느긋하게, 신비한 역사 속으로…특별하게, 찬란한 문화 품으로[권다현의 童行(동행)]

    태국어로 천천히, 느릿하게, 편하게라는 뜻의 ‘사바이 사바이’. 이 낯선 단어가 멀리 태국 치앙마이로 나를 이끌었다. 혼자 두 아이를 데리고 외국으로 장기여행을 떠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어쩐지 결심은 금세 이뤄졌다. 여행자들은 물론 엄마들 사이에서도 겨울방학을 이용한 한 달 살기 성지로 유명한 치앙마이 아니던가. 따스한 날씨와 저렴한 물가, 다국적 여행자들을 위한 편의시설, 특유의 친절함과 여유로운 태도까지 망설일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문화를 만나고 경험하는 게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 다시금 알려 주고 싶었다. ●란나왕국 두 번째 수도 ‘새로운 도시’ 치앙마이의 ‘치앙’은 도시, ‘마이’는 새롭다는 의미다. 즉 새로운 도시, 역사적으로는 란나왕국의 두 번째 수도를 뜻한다. 첫 번째 수도는 치앙라이였다. 란나왕국은 13세기 이 지역에 들어섰던 나라로 ‘란나’는 100만개 논을 상징한다. 그만큼 비옥한 토지를 배경으로 풍요로운 문화를 꽃피웠다. 한때 미얀마의 속국으로 전락하기도 했던 란나왕국은 1775년 태국의 도움으로 독립한다. 이후 태국에 조공을 바치며 독립국의 위치를 겨우 유지했던 란나왕국은 1939년 왕조의 마지막 왕자가 사망하면서 태국으로 편입됐다. 같은 태국임에도 수도 방콕과는 또 다른 독창적인 문화를 간직한 것이 치앙마이의 매력이다. ●아이들 호기심 충족 ‘란나민속박물관’ 아이들에게 이런 도시의 역사를 알려 주기 좋은 장소가 올드시티 내에 자리한 란나민속박물관이다. 이름 그대로 란나 사람들의 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으로, 그들이 어떤 형태의 집에 살고 어떤 음식을 먹고 또 어떤 옷을 입었는지 유물보다는 모형과 마네킹을 활용해 실감 나는 전시가 이뤄진다. 때문에 별다른 설명 없이도 아이들이 눈으로 란나왕국의 민속을 이해할 수 있다. 박물관 입구에서 첫째에게 태국어로 된 안내문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하면 한국어로 번역해 주는 애플리케이션 사용법을 알려 줬더니, 궁금한 것은 스스로 찾아보기도 했다. 나중엔 호기심 많은 둘째에게 직접 설명해 주는 자신감까지 보였다.●시선 강탈 높이 6m ‘불두’ 만약 숙소가 님만해민 지역이라면 치앙마이국립박물관을 방문해 보는 것도 좋다. 과거 주 법원 건물을 활용한 란나민속박물관과 달리 이곳은 란나 양식의 전통건축법으로 지어졌다. 태국 북부를 대표하는 국립박물관답게 선사시대부터 이 지역의 자연과 생태, 역사, 문화 등 보다 광범위한 주제를 다룬다. 란나왕조의 전성기와 미얀마 점령기, 독립과 재건 그리고 근대 란나왕조의 경제와 문화, 교육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기록과 유물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란나왕국의 기념비적인 유물로 꼽히는 프라샌스와에 불상머리(Head of Phra Saenswae)가 박물관 입구에 자리해 눈길을 사로잡는다. 수세기 동안 사원에 버려져 있다 발견된 불상머리는 크기가 1.82m로, 유실된 몸까지 합하면 전체 높이가 6m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14~15세기에 제작됐을 것으로 짐작되는 이 불상은 란나왕국 유물 중 가장 큰 규모로 꼽힌다. 원래는 방콕국립박물관에 전시됐던 것을 1973년 치앙마이국립박물관이 개관하면서 옮겨 왔다. 란나민속박물관과 치앙마이국립박물관을 둘러보면 공통적으로 란나 사람들에게 불교가 굉장히 중요한 의미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한 종교를 넘어 생활과 문화, 예술에 이르기까지 막강한 영향을 끼쳤다. 이는 태국인 모두에게 해당한다. 현재 태국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국민의 93% 이상이 불교도다. 남자라면 일생에 한 번 승려로 출가해 수행하는 것이 관행으로 여겨지고, 이를 따르지 않은 사람은 콘딥(Khondip) 즉 무르익지 않은 사람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그래서 태국을 대표하는 관광지 대부분은 사원이다.●1411년에 지은 ‘60m 넘는 탑’ 장관 치앙마이 곳곳에는 무려 300여개 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태국어로 사원을 왓(Wat)이라고 하는데, 올드시티의 경우 골목마다 왓 표지판이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사원들이 밀집해 있다. 우리나라 사찰과는 전혀 다른 화려한 외관에 흥미로워하던 아이들도 닷새쯤 지나니 “또 사원이에요?” 지루한 모양이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라면 특색 있는 사원 서너 개를 골라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일단 올드시티를 대표하는 사원이라면 왓 프라싱과 왓 체디루앙, 왓 치앙만을 꼽을 수 있다. 들어서는 순간 이국적인 건축물과 금빛 탑이 압도적인 화려함을 뽐내는 왓 프라싱은 태국 3대 프라싱을 모신 사원이다. 프라싱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는 순간의 모습을 사자와 같은 당당함으로 표현한 불상을 가리킨다.왓 체디루앙은 60m가 넘는 체디(탑)가 관광객들을 끌어모은다. 1411년 완공 당시 90m에 달했다는 체디는 대지진과 전쟁을 겪으며 상반부가 무너졌던 것을 유네스코의 도움을 받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왓 치앙만은 란나왕국을 건립한 멩라이왕이 치앙마이에 처음으로 지은 사원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15마리의 코끼리가 떠받친 모양의 황금빛 체디와 13세기 말 화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도시를 지키는 불상으로 여겨지는 10m 높이의 크리스털 불상이 인상적이다. ●동굴사원에서 천천히 사색 즐기기 아이들이 꼽은 독특한 사원은 왓 록몰리와 왓 우몽, 왓 스리수판이었다. 왓 록몰리는 14세기 란나왕국의 왕족들을 위해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커다란 체디 아래에는 왕족의 묘실을 안치했다. 미얀마의 침공으로 폐허가 됐던 것을 20세기 들어서 복원했는데, 특히 돌을 활용한 세련된 양식과 아름다운 벽화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왓 우몽은 멩라이왕이 자신에게 여러 도움을 줬던 승려의 명상을 위해 도이수텝 산기슭에 동굴(우몽)을 파서 완성한 사원이다. 700년이 넘은 고색창연한 동굴사원과 란나양식의 체디, 고요한 호수를 끼고 걷는 산책로까지 아이들과 함께 찬찬히 사색을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왓 스리수판은 실버템플로 불린다. 14세기 은 세공사들이 모여 살던 마을에 지어진 사원으로, 태국의 은 세공기술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예술작품과도 같다.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섬세한 은빛사원에 아이들도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마이암현대미술관 찾아 예술 감성 충전 예술가 마을 반캉왓… 공방·아트숍 눈길 코끼리와 공존 위한 케어 프로그램 감동 눈과 입 즐거운 플리마켓 찾는 재미 쏠쏠 치앙마이에 남은 란나왕국의 가장 큰 영향력은 예술이 아닐까 싶다. 치앙마이는 태국 내에서 예술의 도시로 꼽힌다. 치앙마이대학교에서 다양한 개성의 예술가들을 배출할 뿐 아니라, 란나왕국에서 이어진 색다른 문화와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에 매료된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이 치앙마이로 몰려들고 있다. 실제로 시골 전통가옥에서 하룻밤 머물게 됐는데, 알고 보니 호스트가 한국에서 온 화가였다. 그녀에 따르면 치앙마이는 예술가들을 존중하고 이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정책을 펴고 있다. 덕분에 현재 태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예술가 중 치앙마이 출신이 많다고 한다. 그녀 역시 예술가에게 호의적인 치앙마이에 반해 수시로 찾아와 머물던 중 태국인 건축가 남편을 만나 정착을 결심하게 됐단다. 남편이 자신의 할머니를 위해 지었다는 집은 구석구석 그녀의 작품들로 채워져 특별한 감성을 더했다. 이 집 그네에 앉아 감자밭 위로 떨어지는 황금빛 오후 햇살을 마냥 바라보던 순간, 우리는 사바이 사바이란 단어의 힘을 고스란히 느꼈다.●미술관·대학교 아트센터서 예술 산책 치앙마이에서 예술가의 감성을 느끼기 좋은 공간이라면 마이암현대미술관과 치앙마이대학교 아트센터, 그리고 반캉왓(Baan Kang Wat)이 대표적이다. 마이암현대미술관은 라마 5세의 왕후 차오 촘 이암의 이름을 딴 것인데, 그녀의 조카 에릭 버나그가 가문에서 30년간 모은 소장품을 공유한 것이 미술관의 시작이 됐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치앙마이 출신 예술가로 잘 알려진 나빈 라와차이쿨의 작품을 만날 수 있어 더욱 반가웠다. 그는 안양예술공원 내에 전시된 작품 ‘로맨스정자’의 작가이기도 하다. 태국 전통 양식의 정자와 천장에 그려진 가상의 러브스토리가 흥미로운 이 작품은 태국 인플루언서의 방문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마침 서울역을 배경으로 제작된 영상작품도 전시 중이어서 치앙마이 한복판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끼기도 했다. 은빛 외관이 인상적인 미술관 내에는 기념품숍과 카페도 자리하고 있어 여유롭게 둘러보기 좋다. 치앙마이대학교 아트센터는 학생들의 전시는 물론 다양한 아트페어가 수시로 마련된다. 기성작가뿐 아니라 젊고 감각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 꽤 재미있게 둘러봤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통유리 너머 초록빛 정원을 함께 감상할 수 있어 더욱 매력적인 공간이다. 반캉왓은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공동체 마을이다. 가운데 원형극장을 두고 20여개의 아기자기한 공방과 아트숍들이 모여 앉았다. 액세서리에 관심이 많은 첫째는 여기서 마음에 쏙 드는 은반지를 하나 골랐다. 자신의 작품을 알아봐 준 아이에게 젊은 작가는 애정 가득한 칭찬을 한참 쏟아냈다. 요즘도 아이는 반지에 관심을 보이는 친구를 만날 때마다 으쓱대며 반캉왓을 추천한다.●같이 걷고 씻고… 코끼리와 우정 쌓는 캠프 아이들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으로 꼽은 것은 코끼리 케어 프로그램이다. 한때 태국은 코끼리쇼와 트레킹으로 유명했다. 물론 지금도 이를 찾는 관광객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동물학대와 코끼리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하나둘 사라지는 추세다. 하지만 이미 인간에게 길들여지고 사유화된 코끼리들을 무조건 자연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을 터. 치앙마이에서는 인간과 코끼리의 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관광프로그램인 코끼리 케어를 곳곳에서 운영 중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코끼리에게 먹이를 주고 함께 정글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산책 후에는 목욕을 함께 하며 진흙마사지를 곁들인다. 여기에 참여한 관광객들이 지불한 비용은 코끼리 구조와 치료에 사용된다. 아이들에게 조금 더 특별한 경험을 선물하고 싶어 치앙마이 외곽에 코끼리캠프를 겸한 숙소를 예약했다. 그동안 동물원에 갇힌 코끼리를 멀리서만 바라봤던 아이들은 바로 곁에서 같이 걷고 직접 먹이를 주며 교감하는 과정에서 큰 감동을 느꼈다. 함께 목욕을 할 땐 코끼리가 내뿜는 물세례에 까르르 웃음이 터졌다. 아이들이 강바닥 진흙을 퍼서 등을 문질러 줬더니 코끼리는 기분이 좋은 듯 연신 물을 뿜어댔고, 눈부신 햇살 덕에 예쁜 무지개가 꿈처럼 비쳤다 사라졌다. 여기선 아침에 코끼리 모닝콜 서비스도 운영한다. 정해진 시간에 코끼리가 숙소 테라스로 찾아오면 투숙객이 먹이를 줄 수 있다. 포대를 가득 채웠던 바나나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걸 보며 아이들은 코끼리에게 먹보란 별명을 지어 줬다. 실제로 코끼리는 하루 100~200㎏의 먹이를 해치운다고 한다.●벼룩시장·대규모 야시장… 즐길거리 풍성 치앙마이의 또 하나 즐길거리는 플리마켓이다. 마을에서 열리는 소소한 벼룩시장부터 대로를 통째로 활용하는 대규모 야시장까지 일주일 내내 이들만 찾아다니기에도 바쁠 정도다. 그중에서도 토요일 아침 7시부터 열리는 나나정글(Nana Jungle)은 울창한 숲과 갓 구운 크루아상, 다양한 유기농 음식들이 어우러져 특별한 매력을 느끼기 좋다. 로컬 아티스트들의 작품도 구경하고 신선한 음식들을 한자리에서 맛보고 싶다면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열리는 참차마켓(Cham Cha Market)과 징자이마켓(Jing Jai Market)을 추천한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야자수농장을 배경으로 열리는 코코넛마켓(Ba Pao Flea Market)이 아기자기하고 재밌다. 여행작가
  • 이건희 소장품, 올해 대구·청주 순회전

    이건희 소장품, 올해 대구·청주 순회전

    지난해 큰 인기를 끌었던 이건희 소장품 전시가 올해 대구와 청주를 찾아간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건희 기증품을 국립대구박물관(4~7월), 국립청주박물관(7~10월)에서 선보일 예정이라고 22일 전했다. 지난해 국립광주박물관에 이은 지방 순회 전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25년 하반기에는 미국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 2026년 상반기에는 미국 시카고박물관, 2026년 하반기에는 영국박물관에서도 순회전이 예정됐다”고 밝혔다.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기증한 9797건 2만 1693점의 유물 관련 업무는 국립중앙박물관의 핵심 사업 중 하나다. 지난해 기증 1주년을 맞아 열린 국립중앙박물관 ‘어느 수집가의 초대’ 특별전은 4개월간 22만 9892명이 찾았을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이와 함께 올해는 고구려 역사와 문화 콘텐츠를 강화하고,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을 포함해 국내외 문화를 소개하는 특별전도 선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문화취약계층의 박물관 접근성 확대를 위한 지원 방안, ‘2032 월지 프로젝트’ 등 새로운 콘텐츠 발굴을 위한 연구도 추진할 예정이다.
  • [자치광장] 현상 유지를 넘어선 지역 개발/이성헌 서울 서대문구청장

    [자치광장] 현상 유지를 넘어선 지역 개발/이성헌 서울 서대문구청장

    ‘나타나 보이는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보존하거나 변함없이 계속하여 지탱함’이란 사전적 의미를 담은 ‘현상 유지’. 살다 보면 ‘현상 유지’만 잘해도 만족할 때가 있으니, 이 단어 자체만으로는 좋다거나 혹은 나쁘다거나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단어가 행정에, 또한 지역 개발에 적용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남들이 앞서갈 때 나의 현상 유지는 곧 퇴보를 의미한다. 공직자들에게 ‘하던 대로 열심히 하는 것’ 이상의 덕목이 필요한 이유다. 지역 곳곳을 다니다 보면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있다. 영천시장이나 아현역 인근처럼 인접 자치구와의 경계 지역에 섰을 때 더욱 그렇다. 불과 몇백 미터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옆 동네가 발전할 동안 우리 구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민선 8기를 준비하며 주거 환경 개선과 지역 개발을 위한 주민 염원을 확인했고, 새해를 열며 신속 개발을 통한 지역 성장과 낙후된 기반 시설 및 도시 환경 정비를 다짐했다. 지역 개발은 도시 구조 변화를 넘어 생활 SOC 확충 등 주민 삶의 질 향상과 맞닿아 있다. 이 가운데에서도 통일로와 연희로가 교차하는 지하철 3호선 홍제역 일대는 서대문에서도 가장 중심 상권이 될 수 있는 곳이다. 앞으로 강북횡단선이 지날 예정이고 내부순환로도 이용할 수 있는 교통 요지다. 인근 유진상가와 인왕시장 복합 개발로 50층 이상의 초고층 건물을 조성해 강남 코엑스와 같은 서울 서북부의 랜드마크를 만들 계획이다. 경의선 철도 지하화도 지역 개발을 위한 좋은 소재다. 국토교통부, 서울시와 협의하며 민자 유치를 통해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면 이른 시일 내에 성과를 낼 수 있다. 이를 통해 생기는 경의선 상부에는 공원과 다양한 복합 공간 조성이 가능하다. 일례로 연세대 앞 유휴 공간에는 체육 시설, 공원, 대형 공연장, 산학 연구 단지 등을 배치해 관내 9개 대학과 인근 서강대, 홍익대를 연계하는 ‘신(新)대학로’를 만들 계획이다. 아울러 8년 만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북아현 과선교를 오는 27일 착공하고, 관내 동서남북 4개 축 38곳에서 진행 중인 재개발·재건축 사업과 개미마을 주거재생 혁신 지구 사업 등에도 박차를 가한다. 더욱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서울시 도시 개발 분야에서 다양한 성과를 내 온 기술직 부구청장과 국장 등 전문 인력을 보강하는 등 개발 분야 인적 네트워크를 강화했다. 신통 기획(민간 재개발), 공공 재개발, 재건축 등을 추진함에 있어 주민 혼란과 갈등을 예방하고 신속성과 투명성을 높일 수 있도록 ‘정비사업 아카데미’ 과정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복지가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듯 지역 개발을 통한 도시의 브랜드 가치 제고 역시 이념이나 진영 논리에 갇힐 일이 아니다. 대규모 지역 개발 의제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렵기에 4년마다의 주민 평가만 생각한다면 그리 매력적인 일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는 나무를 심어야 결실을 볼 수 있음은 자명하다.
  • 한국전통문화전당, 생활한복 근무복 ‘일본풍 논란’… 도입 잠정보류

    한국전통문화전당, 생활한복 근무복 ‘일본풍 논란’… 도입 잠정보류

    전주 한국전통문화전당이 한복 문화 진흥을 위해 직원 근무복으로 디자인한 개량 한복이 ‘일본풍 논란’에 휩싸이자 공개 이틀만에 생활한복 도입을 잠정 보류하기로 했다. 한국전통문화전당은 한복 문화의 가치와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한복 활성화를 위해 매주 금요일 직원들에게 ‘한복 근무복’을 시범 도입하기로 했다가 보류했다고 19일 밝혔다. 앞서 17일 한국전통문화전당은 한복 활성화를 위해 한복 근무복을 시범 도입한다며 개량 한복의 디자인을 공개한 바 있다. 생활 개량 한복으로 만든 한복 근무복은 태극기의 검은색 ‘괘’와 바탕이 되는 흰색을 모티브로 삼아 제작됐다. 흰색의 옷깃에는 전당의 로고를 패턴형태로 새겨 넣었고 가슴에는 전통 국화매듭에 전당의 영문이니셜 KTCC(Korea Tredictional Culture Center)를 단 브로치로 장식, 전통과 현대의 융·복합적 요소를 가미했다. 그러나 전체 색감이나 옷깃이 일본 기모노의 하네리(半衿)와 유사하고 ‘일본 주방장’을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근무복을 만든 디자이너는 “유물 자료에 근거해 완성한 명백한 한복이고 조선시대 칼깃(칼 끝처럼 끝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의 깃)을 기본으로 삼아 제작된 것”이라며 “너비가 좁은 동정이 일본식이라는 지적도 옳지 않다. 동정은 조선시대 전기에는 넓었다가 후기로 가면서 좁아진다. 전당 근무복의 동정은 목이 답답하지 않도록 낮게 제작된 깃에 따라 좁아진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일본풍 논란과 관련 한국전통문화전당 관계자는 “생활한복 시범 도입을 일단 잠정 보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프랑스국립도서관 직지 반세기 만에 수장고 밖으로…4월 일반에 공개

    프랑스국립도서관 직지 반세기 만에 수장고 밖으로…4월 일반에 공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이하 ‘직지’)가 반세기 만에 수장고를 나와 빛을 본다. 16일 프랑스 국립도서관 누리집에 따르면 도서관은 올해 4월 12일(현지시간)부터 7월 16일까지 열리는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을 예고하면서 “인쇄술의 발전 역사와 성공의 열쇠를 추적할 것”이라며 ‘금속활자로 인쇄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작품인 직지(한국, 1377년)’라고 소개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는 ‘직지’가 일반에 공개되는 건 약 50년 만이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의 ‘직지 글로벌’ 누리집에 따르면 ‘직지’는 1900년 프랑스에서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 한국관에서 처음 일반에 공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지’의 가치가 널리 알려진 것은 1972년 열린 ‘세계 도서의 해’ 기념 전시에서였다. 당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근무하던 고 박병선(1923∼2011) 박사는 ‘직지’가 1455년에 나온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는 것을 증명해 전 세계에 알렸다. 그러나 1973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열린 ‘동양의 보물’ 전시 이후 최근까지 ‘직지’ 실물이 일반에 공개된 적이 없다. 반세기 만에 유물을 공개하는 만큼 ‘직지’는 전시에서 비중 있게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여러 박물관이 ‘직지’를 임대해 전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매번 불발됐다. 수장고에 오랜 기간 있었던 터라 ‘직지’의 현 상태가 어떤지, 어떻게 전시될지도 관심사다. 이번 전시에서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프랑스 국립도서관 측과 ‘직지’ 전시를 위해 협력할 예정이다. 재단은 최근 프랑스 국립도서관과 ‘파트너십’(partnership) 관련 면담을 마쳤으며 구체적인 내용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재단은 앞서 공모 사업을 통해 한문으로 된 ‘직지’의 프랑스어 번역을 지원한 바 있다. 사업을 담당한 대한불교조계종은 지난해 번역본 발간을 기념해 현지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직지’의 정확한 명칭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과 청주고인쇄박물관 등에 따르면 ‘직지’는 충북 청주 흥덕사에서 고려 우왕 3년(1377년)에 금속활자로 간행됐다. 상·하 두 권으로 구성된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하권만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직지’는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 이후 초대 공사 등을 지낸 프랑스인 콜랭 드플랑시(1853∼1922)가 1880년대 말에서 1890년대 초 국내에서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뒤 골동품 수집가 앙리 베베르(1854∼1943)를 거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된 것으로 파악된다. 우리 인쇄술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 “요즘 中 화장실 보다 낫네”…中 궁궐터서 2400년 전 수세식 변기 발견

    “요즘 中 화장실 보다 낫네”…中 궁궐터서 2400년 전 수세식 변기 발견

    서양 화장실의 기원은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수메르 문화의 중심지였던 유프라테스강 하류에서 기원전 23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수세식 변기가 발견된 것이 인류 역사상 첫 수세식 변기라는 게 정설처럼 알려진 상황이다. 또, 로마 시대에는 현재 공중 화장실과 가장 유사한 형태인 칸막이나 문이 없는 긴 의자형 변기에 여러 명이 앉아 변을 보는 방식의 공중변소도 있었을 정도로 화장실 문화가 조기에 발달했다. 하지만 인분을 주로 농업용 거름으로 활용해왔던 아시아에서는 수세식 대신 수거식 위주의 화장실 문화가 발달해왔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그러나 이를 보기 좋게 뒤집는 유적이 중국에서 발견돼 화제다. 최근 중국 산시성 시안시 동북부 옌량구에 위치한 위에양성(栎阳城) 궁궐터에서 귀족들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고급 수세식 변기가 발견된 것. 위에양성은 진나라 말기와 한나라 초기 유방이 도읍으로 삼은 유적지로 지난 2013년 4월 대형 궁궐터가 차례로 발견돼 지금까지 ‘진한궁성’으로 불리며 이 구역에 일대를 중심으로 발굴팀이 대거 투입돼 발굴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바로 이곳에서 최근 약 2400년 전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수세식 변기가 발견돼 관심이 쏠렸다. 이번에 발견된 유물은 고대 중국 역대 궁궐터에서 된 유일한 변기류의 유물이자 고고학적으로도 최초의 중국식 수세식 변기라는 것이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의 설명이다. 이 유물은 중국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가 전적으로 담당해 발굴을 진행 중이다. 수세식 변기는 궁궐 3호 건물터 서쪽에서 확인됐으며, 이 일대가 주로 귀족과 왕족들의 화장실로 사용됐을 것이라고 현지 매체들은 짐작했다. 발견된 유물은 변기 받침대와 하수구로 연결되는 원형의 통 등 두 부분으로 구성됐다. 받침대 위는 용변을 볼 때 실제로 사용하는 부분이었으며, 하단은 오물을 밖으로 연결하는 배출구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됐다. 다만 유물 중 일부는 훼손돼 변기 상부 구조의 정확한 형태는 짐작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그런데 이 소식을 접한 중국 누리꾼들이 의외의 반응을 보여 눈길을 모았다. 한 누리꾼은 “2000년 전이든 2만년 전의 것이든 그때 당시 얼마나 깨끗하고 발전된 화장실이 있었는지가 무슨 소용이냐”면서 “현재 중국의 화장실 문화는 최악인 것으로 악명 높다. 살아 있는 현대의 중국인을 위한 화장실 개혁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악명 높은 중국의 낙후된 화장실 실태를 꼬집은 것이다. 또 다른 누리꾼 역시 “고대인들의 지혜라고 호들갑 떨 것이 없다”면서 “현재 중국의 현대인들은 그보다 못한 수준의 지능을 가진 것도 아닌데, 왜 그보다 더 낡은 화장실 시설과 문화를 가졌는지 의아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 박하선, 과거사진 셀프 공개 ‘달라진 눈’

    박하선, 과거사진 셀프 공개 ‘달라진 눈’

    배우 박하선이 과거 사진을 대방출하며 ‘모태미녀’를 인증했다. 박하선은 13일 자신의 SNS에 “오랜만에 친정 가서 정리했더니 추억이 새록새록. 유물들이. 뒤로 갈수록 잘생겨짐”이라는 글과 함께 여러 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박하선이 공개한 게시물에는 동국대학교 졸업앨범 사진을 포함해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 심지어는 유치원 졸업사진과 그보다도 훨씬 어린 시절 갓난아기 때의 사진도 담겨있다. 유치원 때는 쌍꺼풀이 없지만 성장하면서 쌍꺼풀이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다. 특히 박하선은 남다른 아기 시절에도 또렷한 이목구비를 자랑해 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박하선의 사진 공개에 남편인 배우 류수영은 “앗!”이라며 하트를 담은 이모티콘을 선보였고, 배우 홍지민도 “모태미녀구만. 예뻐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한편 박하선은 2005년 드라마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로 데뷔해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산후조리원’, ‘검은태양’ 등에 출연했다.
  • 英, 유족에 소통담당관 두고 경찰은 정확한 정보 공개… 진실 알린다[글로벌 인사이트]

    英, 유족에 소통담당관 두고 경찰은 정확한 정보 공개… 진실 알린다[글로벌 인사이트]

    최근 영국 경찰은 1989년 4월 15일 발생한 ‘힐즈버러 참사’ 유족에게 34년 만에 공식 사과하면서 53쪽 분량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힐즈버러 참사 가족 보고서에 대한 영국 경찰의 응답’이라는 제하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2017년 제임스 존스 전 리버풀 대주교가 작성한 ‘힐즈버러 가족 보고서’가 경찰에 내린 권고를 적극 수용하겠다는 것이다. 영국경찰청장협의회(NPCC)와 영국경찰대학(College of Policing)이 지난달 30일 공동 발간한 보고서는 단순히 대형 참사 재발을 막겠다는 선언에 그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경찰이 해야 할 구체적인 실천 계획을 담았다. 여기에는 지난해 10월 29일 경찰의 밀집 인파 관리 실패로 159명이 목숨을 잃고, 경찰이 사고 위험을 경고한 내부 정보보고서를 몰래 삭제하는 등 은폐·조작 혐의까지 드러난 ‘이태원 참사’를 겪은 우리나라가 참고할 내용이 적지 않다.“경찰은 공공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매일 일합니다. 그런데 우리(영국 경찰)는 1989년 힐즈버러 참사에서 그러지 못했습니다.” (마틴 휴이트 NPCC 회장) 이 보고서는 ‘경찰은 언제나 공공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고, 유가족의 심정을 공감하고, 이들을 진실된 태도로 배려한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참사 피해자의 ‘신원권’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신원권이란 억울한 죽음을 당한 희생자를 대신해 유족이 법적으로 ‘진실을 알 권리’, ‘정의를 실현할 권리’, ‘배상을 요구할 권리’, ‘재발 방지를 요구할 권리’를 가지는 것을 말한다. 유엔총회에서 2005년 12월 결의한 ‘피해자 권리 기본 원칙’에는 ‘진실·정의·배상·재발방지권’이 명시돼 있다. 보고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은 ‘경찰이 대형 참사 유족에게 솔직할 의무’를 다하기 위해 ‘소통담당관’(FLO)을 의무적으로 배치하는 내용이다. 소통담당관은 경찰대학 등 전문기관에서 국가가 공인한 교육 과정을 수료해야 한다. ‘소통담당관’은 유족과 신뢰와 공감을 형성하는 데 집중한다. 경찰·유족과 쌍방향으로 정보 교류를 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이들은 유족에게는 경찰 수사와 관련한 정확한 정보를 알리고, 경찰에게는 유족이 가지고 있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출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한다. 또 담당자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정부의 유가족 지원 제도를 연계해 주고, 시신 검안 등 형사 사법 절차를 자세히 설명하고, 경찰 참고인 조사에 의무 동행해 심리적 부담을 덜어 준다. 영국 경찰은 앞서 2017년 5월 22일 23명의 목숨을 앗아 간 ‘맨체스터 아레나 폭탄 테러’와 2021년 ‘그렌펠타워 화재 사건’ 당시에도 소통담당관을 유가족에게 배치해 효과적인 소통을 했다.힐즈버러 참사 직후 유족은 가족 신원을 확인한 날 경찰에게 고인의 음주 여부에 대해 집중적인 추궁을 받았다. 그 의도는 축구장 압사 사건의 책임을 희생자에게 돌리기 위해서였다. 경찰의 잘못을 은폐하기 위한 방어적인 소통 방식은 불신을 키우면서 수사를 방해하는 걸림돌도 됐다. 이와 관련, ‘경찰 수뇌부가 잘못했을 때 방어할 수 없는 실수를 방어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경찰의 잘못을 방어하려는 태도, 조직 비난을 금기시하는 수직적인 문화를 배척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힐즈버러 유족은 사망자 신원 확인 과정에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심했다. 경찰이 신원 확인을 완벽히 마친 다음 유족을 부르지 않고, 사망 당시의 상흔이 그대로 촬영된 사진을 직접 보고 찾도록 했기 때문이다. 당시 시신 검안을 담당한 검시관은 ‘검시관의 소유’라면서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하려는 유족이 시신조차 만지지 못하게 했다. 지난 30년간 영국 경찰은 사망자 신원 확인 절차(DVI)에 관한 매뉴얼을 확립하고, 전문 교육 과정을 거친 사람만 검시관 일을 하도록 규정을 도입했다. 또 참사 희생자 시신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검시관의 소유물’, ‘(경찰에게) 귀속된’과 같은 표현를 사용하는 것도 금지했다.아울러 유족이 조사에 적절하게 참여할 권리를 보장하기로 했다. 경찰이 수사 과정에 대해 유족이 적절하게 이해하고, 질문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과정을 보장해 유족의 목소리를 충분히 청취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경찰의 법적 대응은 경찰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 아닌 진실된 사실을 드러내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또 30만건의 기밀 문건이 공개되며 진실 규명을 앞당긴 힐즈버러의 교훈을 되새기기 위해 모든 정보, 문건, 서류 등은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최대한 공개하기로 했다. 경찰의 모든 기록을 보존할 의무도 만들었다. ‘진실성’과 ‘설명 의무’는 유가족뿐만 아니라 언론에 대응하는 대원칙이 됐다. 경찰은 ‘술에 취한 훌리건들이 표도 없이 경기장에 난입해 사고가 났다’는 등의 허위 정보를 언론에 흘려 힐즈버러 생존자와 유가족의 명예를 훼손했다. 보고서는 “힐즈버러 참사 직후 경찰의 잘못된 언론 대응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까지 고통받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남은 경찰 오점은 참사 직후 정확하고 진실되게 언론에 알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고 솔직한 고백을 담았다. 영국 경찰은 신규 채용, 승진, 인사 평가에도 새 윤리규정 준수 여부를 평가 기준으로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 1원짜리 병이 국보가 되기까지… 국보·보물에 숨은 사연

    1원짜리 병이 국보가 되기까지… 국보·보물에 숨은 사연

    1920년대 경기 팔당 인근에 살던 한 할머니가 나물을 캐다가 흰색 병을 발견했다. 참기름을 팔아 생계를 잇던 할머니는 참기름 담기에 안성맞춤인 병이 마음에 들었고, 필요할 때마다 그곳에서 병들을 주워다 참기름병으로 사용한다. 할머니는 야산에서 주운 병에 참기름을 담아 중간상인에 1원씩 받고 팔았다. 그런데 할머니가 병을 발견한 장소는 바로 조선시대 왕실용 자기를 생산했던 사옹원 분원 가마터였다. 어느 날 참기름 병 하나가 일본인 골동품상 무라노의 부인과 만나게 된다. 무라노가 단돈 1원에 구매한 이 병은 조선백자를 수집하던 스미이 다쓰오에게 600원에 팔리고, 스미이가 1932년 일본에 돌아가기 전 경매에 출품해 3000원에 팔린다.여기에서 멈췄으면 이 백자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경매에서 낙찰받은 모리 고이치가 죽자 유족들이 다시 경매에 내놨고, 치열한 경쟁 끝에 당시 기와집 15채에 해당하는 1만 4580원에 간송 전형필이 가져가게 된다. 1997년 국보 지정된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에 숨은 사연이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은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을 비롯해 국보·보물로 지정된 문화유산 13건을 조사한 내용 등을 정리한 ‘유물과 마주하다 - 내가 만난 국보·보물’을 13일 발간했다. 미술문화재연구실 연구자들이 국보 ‘동궐도’,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 등에 얽힌 뒷이야기를 생생하고 흥미롭게 전한다. 김연수 국립문화재연구원장은 “우리 문화유산을 알고 지키는 일은 미래 세대에게 우리 문화를 발전시킬 원동력을 제공할 것”이라며 “독자들이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더욱 폭넓게 이해하고 소중하게 아끼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 한반도 남쪽만 1900개… ‘성곽의 나라’가 지켜낸 삶과 만나다

    한반도 남쪽만 1900개… ‘성곽의 나라’가 지켜낸 삶과 만나다

    전북 25개 성곽 발굴 유물 380점항공영상 보면 실제 성에 오른 듯백제·신라·가야 치열한 다툼 조명 좁은 땅에서 여러 나라가 다툰 한반도에는 예로부터 많은 성곽이 있었다. 조선시대 관리인 양성지(1415~1482)의 문집 ‘눌재집’에는 그가 “우리 동방은 성곽의 나라”라고 했다는 기록이 나올 정도다. 옛사람들이 외부의 침입을 막고 자연재해로부터 삶을 지키기 위해 쌓은 성곽이 한반도 남쪽에만 1900여개에 달한다. 전북 익산 국립익산박물관에서 5월 28일까지 진행하는 ‘전북의 고대 성곽’은 전북 지역을 중심으로 고대 성곽의 특징과 역사적 의미를 조명하는 특별전이다. 전북 지역 25개의 성곽에서 발굴된 유물 등 290건 380점의 전시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고대에는 성곽을 중심으로 전쟁을 했기 때문에 성곽은 국가를 방어하는 중요한 군사시설이었다. 전북 지역에서는 200기 정도의 성곽이 확인됐는데 대부분이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 국력의 주요 기반이던 전북 서부 지역의 드넓은 평야를 두고 백제와 가야, 신라가 치열하게 싸워 성곽이 많다.전시의 1부 ‘시간의 울타리를 넘다’에서는 성곽의 성격과 기능 등을 살펴보고 성곽을 울타리 삼아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살핀다. 성곽은 기본적으로 군사시설이긴 했지만 생활 공간으로서의 역할도 컸다. 내부에서 발견된 건물터나 창고, 우물, 각종 식기와 요리 도구, 머리빗 등은 옛사람들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부안 백산성의 집터에서 발견된 콩과 밀, 남원 아막성에서 발견된 소와 돼지 등의 동물뼈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게 먹었을 사람들을 상상하게 된다.2부 ‘역사와 문화를 쌓다’에서는 전북 지역 고대 성곽을 산맥과 물줄기 기준으로 6개 권역으로 나눈 뒤 각각의 특징과 그간의 연구 성과를 살핀다. 이번 특별전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항공 영상을 통해 관람객들은 실제 성에 올라간 기분을 느낄 수 있다. 3부 ‘역사의 흔적을 간직하다’에서는 전북 지역의 성곽이 가진 역사적 의미를 살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익산 왕궁리 유적’과 그 주변의 성곽을 살펴보면 국가 사찰인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을 지키고자 효율적인 방어체계를 갖추려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5세기 후반 신라가 무주 지역까지 진출한 것이나 6세기 전반 가야와 백제의 치열한 갈등이 있었음을 추정하는 최근의 연구 결과도 엿볼 수 있다. 전시를 준비한 이진우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는 60년 정도 이어 온 성곽 연구 성과를 조명하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사람들이 성곽에 대해 관심이 많이 없는데 성곽의 중요성을 알리고 앞으로 종합적인 연구와 조사의 시발점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 ‘反트럼프’ 리애나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에 트럼프 “별것 아닌 가수를”

    ‘反트럼프’ 리애나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에 트럼프 “별것 아닌 가수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을 비판해 온 팝스타 리애나가 미국프로풋볼(NFL) 결승전 슈퍼볼의 하프타임 공연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을 듣고 “별것 아닌 가수”라고 반응했다. 10일(현지시간) 미국 매체 인사이더 등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날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루스 소셜’에 글을 올려 리애나를 비난했다. 그는 “리애나는 자신의 스타일리스트가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면서 “모든 것이 나쁘고 재능이 없다”고 쏘아붙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치의를 지낸 로니 잭슨 텍사스주 하원의원은 리애나의 슈퍼볼 공연을 취소해야 한다고 주최 측에 촉구했다. 그는 이어 리애나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욕하는 설치작품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던 일을상기시키면서 리애나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리애나는 공개적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판해 왔으며, 자신의 노래가 트럼프 유세 무대에서 사용되는 일도 반대했다. 특히 리애나의 이번 공연이 주목되는 것은 그가 최근 몇 년 신곡을 발표하지 않고 영화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 주제가인 ‘리프트 미 업’을 발표했을 뿐이며 일체의 공연이나 무대에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1월 그래미상 시상식이 마지막 무대였기 때문에 이번 공연은 5년 만의 복귀 무대가 된다. 지난 2016년 1월 발매된 솔로 앨범 ‘안티’가 그의 마지막 앨범이었다. ‘엄브렐라’, ‘러브 더 웨이 유 라이’, ‘돈 스톱 더 뮤직’ 등으로 널리 알려진 리애나는 화장품과 란제리 브랜드 사업에 집중해 14억 달러의 순자산을 모은 것으로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집계했다. 슈퍼볼 하프타임 쇼는 당대의 스타들에게만 허락된 ‘꿈의 무대’다. 2쿼터 종료 이후 펼쳐지는 초대형 이벤트인 하프타임 쇼는 1991년 슈퍼볼에서 당시 최고의 인기그룹 뉴키즈 온 더 블록이 나오면서 슈퍼스타들의 전유물이 됐다. 마이클 잭슨, 폴 매카트니, 롤링 스톤즈, 프린스, U2, 레이디 가가, 더 위켄드 등이 이 무대에서 공연을 펼쳤다. 제57회 슈퍼볼인 올해 대회는 12일 애리조나주 글렌데일 스테이트팜 스타디움에서 필라델피아 이글스와 캔자스시티 치프스의 대결로 치러진다. 패트릭 머홈스(28, 캔자스시티)와 제일런 허츠(25, 필라델피아)의 흑인 쿼터백 대결로도 관심을 모은다.
  • 영조가 6대조 할머니께 올린 왕실 공예품은?…서울공예박물관 첫 연구도서 발간

    영조가 6대조 할머니께 올린 왕실 공예품은?…서울공예박물관 첫 연구도서 발간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공예박물관이 대표 소장품을 주제로 쉽게 연구해 풀어낸 ‘경혜인빈 상시호 죽책’을 발간했다고 10일 밝혔다. 경혜인빈 상시호 죽책(敬惠仁嬪上諡號竹冊)은 조선 제21대 왕 영조가 1755년(영조 31년)에 선조의 후궁이자 자신의 직계 6대조 할머니 인빈 김씨의 생전 업적을 기리고자 ‘경혜(敬惠)’라는 시호를 올리면서 제작한 왕실 ‘의례 공예품’으로 대나무에 글씨를 새긴 책이다. 당대 장인의 정교한 솜씨를 확인할 수 있는 유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21년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서울공예박물관은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조선 왕실 어보와 어책’에 추가 등재를 추진할 수 있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이므로 소장품탐구 시리즈의 첫 번째 주제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책에는 유물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 왕실 의례에 사용된 공예품의 역할과 이를 만든 제작자, 재료·도구 등 당대의 공예 기술에 얽힌 이야기가 담겼다. ▲1장에서는 죽책과 같이 서책의 형태로 만든 왕실 의례 공예품인 어책(御冊)의 유래와 현황을, ▲2장에서는 영조가 1755년(영조 31) 인빈 김씨에게 시호를 올린 배경과 그 과정을 그렸다. ▲3장에서는 죽책과 그 구성품인 격유보·책갑의 현재 모습을 의궤 기록과 비교해 역사적 가치의 재조명했고 ▲4장에서는 최고의 기량을 지닌 장인들이 전국에서 수급한 좋은 품질의 재료로 죽책을 제작하기 위해 노력한 과정과 그 공예사적 의미를 풀어냈다. 이번 서울공예박물관의 소장품 탐구 시리즈 제1권 ‘경혜인빈 상시호 죽책’은 공예사의 연구 대상으로 인식해 재료 수급과 제작 공정, 장인 등 당시 공예 기술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새로운 시각에서 재해석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김수정 서울공예박물관장은 “이 책에 담긴 조선 후기 왕실 공예품을 둘러싼 사회상과 유물에 함축된 이야기를 보며 좀 더 풍부하게 공예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서울공예박물관의 소장품탐구 시리즈는 앞으로도 계속 발간될 예정이며 많은 시민들의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 [씨줄날줄] 팬덤 특위/황수정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팬덤 특위/황수정 수석논설위원

    ‘대깨문’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대통령(문재인) 지지가 아무리 뜨거워도 어떻게 비속어(대가리)를 대통령 이름 앞에 붙일 생각을 할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층은 스스로 ‘빠’를 붙여 불렀다. 그들은 정치를 주무르는 극성 팬덤은 아니었다. ‘노빠’를 자칭할 때는 진보주의의 우월감도 은연중 스며 있었다. 지금 돌아보니 그렇다. 극렬 보수지지층 ‘태극기 틀딱’도 팬덤이라면 팬덤이었다. ‘대깨문’, ‘문파’ 혹은 ‘문빠’의 위력에 몇 년 새 잊혀진 유물로 밀렸지만. 2018년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문 전 대통령의 생일 축하 대형 광고가 걸렸을 때. 낯뜨겁긴 해도 팬덤이 정치판으로 옮겨 온 현상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렇게 봉인이 풀리던 문빠 팬덤은 지난 정권 내내 정치의 공적 비판 기능을 완전히 무력화시켰다.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 주는 양념”이라는 ‘문재인식 팬덤 정의’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극성 지지층의 패악에 가까운 팬덤 정치가 불과 3, 4년 만에 이렇게 불치 수준이 되지는 않았을 수 있다. ‘대깨문’이 롤모델이 아니었다면 정체조차 모호한 ‘개딸’들이 지금 제1야당의 상투를 잡고 흔들지도 않을 테고. 한국 정치 팬덤 소사(小史)의 주인공은 빼고 보탤 것 없이 문 전 대통령이다. 잊혀지고 싶다던 그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책을 “한국 사회의 법과 정의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고 소개했다. ‘법과 정의’를 어겨 2년 징역형을 최근 선고받은 조 전 장관이다. 묻지마 팬덤에 반쪽 국민만 보고 반쪽 국정을 했던 습관대로다. 정치학자 박상훈은 “문제는 ‘문빠’가 아니라 ‘문빠를 필요로 하는 정치’”라고 한 적 있다. 습관도 깊어지면 병이 된다.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가 ‘팬덤과 민주주의특별위원회’를 가동한다. 극단적 팬덤 정치가 여론을 왜곡하는 현실을 더 방치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다. 가짜뉴스와 결합한 팬덤 정치는 확증편향의 갈등을 끊임없이 부추긴다. 팬덤 정치의 소재 공급원이 된 유튜브에도 언론중재법을 적용할 수 있을지 여러 방안을 고민할 모양이다. 우리 정치 팬덤은 세계 정치학자들의 연구 모델이 될 만하다는 소리가 들린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윤빠’가 없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하나.
  • 더 걷고 싶다, 겨울 입은 상당산성

    더 걷고 싶다, 겨울 입은 상당산성

    눈이 내린 날 찾고 싶은 곳들이 있다. 충북 청주의 상당산성은 그중 하나다. 흰 눈은 흐릿한 성벽을 도드라져 보이게 하고 후줄근한 주변 풍경을 과감히 생략해 준다. 그 덕에 산성은 옹골찬 본디 모습을 여실히 드러낸다.충북엔 은근히 산성이 많다. 방어해야 할 요충지가 많아서다. 고구려 평강 공주와 온달 장군의 고사가 전하는 단양 온달산성, 삼국시대 이래 단 한 차례도 함락되지 않았다는 무패의 산성 보은 삼년산성, 충주의 장미산성 등 지역마다 하나씩은 꼭 있다. 2010년엔 중부권의 산성들을 묶어 유네스코 문화유산 잠재목록에 올리기까지 했는데 이후로는 감감무소식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느리지만 좋은 소식이 되어 돌아오려는 걸까. 지역 사람들의 느릿한 성정처럼 말이다. ●백제 때 처음 축조… 조선시대에 개축 상당산성이 축조된 건 백제 때다. 당시 토성으로 건설된 뒤 조선시대 숱한 전란을 겪으며 개보수를 거듭하다가 숙종과 영조 때 대대적인 개축 공사를 거쳐 현재와 같은 석성의 모습을 하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석성 가운데 원형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은 산성으로 꼽힌다. 상당이란 명칭은 백제 때 청주 일대를 부르던 ‘상당현’이란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산성은 상당산(492m) 8부 능선에 4.2㎞에 걸쳐 빙 둘러 있다. 오목한 분지를 품고 산허리를 따라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적잖은 산행을 해야 만날 수 있는 여느 산성과 달리 상당산성은 입구까지 도로가 놓여 쉽게 찾을 수 있다. 상당산성의 정문은 남쪽을 지키는 공남문이다. 무사석(武砂石)을 활용해 홍예문(무지개다리) 형태로 쌓았다. 옹성처럼 문 바깥에 성문을 보호하는 시설을 두는 대신 안쪽에 옹벽을 쌓아 성문을 드나들 때 장애물 역할을 하도록 했다. 남문 인근에는 치성을 세 군데나 뒀다. 치성은 성벽에서 돌출시킨 요철 형태의 시설을 일컫는다. ‘꿩 치’(雉) 자를 쓰는데, 제 몸을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는 꿩의 습성에서 뜻을 빌려 온 것이다. 보통 전방과 좌우 방향에서 접근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조성한다. 산의 형태를 활용해 쌓은 포곡식 산성에선 치성을 두는 경우가 드물다. 한데 상당산성 남문 쪽은 산의 굴곡이 거의 없어 방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를 보강하기 위해 다수의 치성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성곽을 따라 둘레길이 마련돼 있다. 주차장이 있는 남문에서 출발해 남암문, 서장대, 미호문(서문), 진동문(동문)을 거쳐 원점 회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2시간 정도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성 안쪽엔 4만 6000㎡ 규모 자연마당 남문 위에 올라서면 낭성면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장 전망이 빼어난 곳은 남암문을 지나 미호문을 향해 걷는 구간이다. 청주 시내와 멀리 미호천 일대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성 안쪽으로는 성안마을과 자연마당 등이 있다. 성안마을은 성내 방죽을 끼고 형성된 마을이다. 청주시에서 벌인 한옥 보전 등의 정책 덕에 비교적 옛 모습을 잃지 않은 편이다. 자연마당은 4만 6000㎡(약 1만 4000평)에 달하는 생태공원이다. ‘다랑논’이라 불리는 휴경지와 생태 습지 등을 활용해 조성했다. 볏과 식물과 사초과 식물, 야생화, 연꽃 등의 군락지로 나뉘어 있다. 논배미 같은 소로를 따라 자박자박 돌아볼 수 있다. 청주 외곽 수비를 담당한 게 상당산성이라면 도시 중심부를 방어한 건 청주읍성이었다. 상당산성에 이어 청주읍성 안쪽을 돌아보는 건 그래서 당연하다. 산성과 읍성은 직선거리로 약 6㎞ 정도 거리다. 고대의 청주는 군사 도시였다. 양반 고을, 교육 도시 정도로 알고 있는 이들에겐 뚱딴지같은 소리로 들릴 수 있겠다. 삼국시대부터 청주는 각국이 경계를 이루며 으르렁대던 각축장이었다. 조선시대인 1651년엔 충남에 있던 충청도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옮겨 왔다. 병마절도사는 해당 지역의 육군 총사령관이다. 이는 청주읍성이 충청병영성의 역할을 겸했다는 의미다. 19세기 말 고종 때엔 삼남 최대 군사기지인 진남영이 설치되기도 했다. 일본과의 전투에서 자존심 구기는 전적을 안기기도 했다. 임진왜란 당시 조헌 등 의병이 가장 먼저 수복(1592)한 읍성이 왜군의 최정예 부대가 지키던 청주성이었고, 19세기엔 일제의 정규군이 청주와 충남 공주 등을 무대로 활동했던 ‘호중동학군’에게 걸핏하면 얻어터졌다. ●일제 ‘눈엣가시’ 청주읍성 허물어 이후 일제는 청주 일대의 유적을 없애는 작업을 벌였다. 청주읍성을 형편없이 허물어 배수로 공사 등에 썼고, 무심천의 돌다리 남석교는 아예 땅 밑으로 묻어 버렸다. 망선루 등 당대의 건축물도 이때 모두 헐렸다. 당시 일제의 만행에 피해를 입지 않은 곳이 없지만 유독 청주가 호되게 당한 건 지난날에 대한 ‘뒤끝 작렬’ 때문이라고 청주 사람들은 이해하고 있다. 청주읍성은 한때 높이 4m, 길이 약 1.8㎞에 달했다고 한다. 현재 남은 건 35m의 복원 구간이 전부다. 규모가 너무 작아 ‘애걔’ 하며 코웃음 치기 십상일 텐데 청주읍성은 규모보다 조성 과정을 들여다봐야 한다. 청주읍성은 근래 제작한 것이 분명한 벽돌과 시간의 더께가 쌓여 거무튀튀해진 벽돌들이 피아노 건반처럼 어색하게 어울려 있다. 옛 벽돌들은 청주시가 2013년 성돌 모으기 운동을 벌일 당시 시민들이 십시일반 기증한 것들이다. 건물 신축 과정에서 발굴된 성돌 2개를 시작으로 모두 800여개 성돌이 모였다. 이 가운데 650개 성돌이 복원 공사에 쓰였다고 한다. 청주읍성이 복원된 곳은 중앙공원 서쪽 출입구 쪽이다. 읍성 기초석의 흔적이 확인됐던 장소다. 중앙공원은 청주 도보 여행의 중심지인 만큼 함께 돌아보길 권한다. 중앙공원 안에도 수령이 1000년을 헤아린다는 은행나무 ‘압각수’, 병마절도사영문, 망선루 등의 볼거리가 있다. 쫄쫄호떡 등 MZ세대가 즐겨 찾는 맛집도 이 일대에 즐비하다. 청주의 중심가를 일컫는 이름은 ‘성안길’이다. 그러니까 청주읍성의 안쪽에 있는 길이란 뜻이겠다. 옛 이름은 ‘본정통’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잔재로, 나라 안 어느 도시에나 있었던 ‘혼마치’와 같은 말이다. 1994년부터 ‘본정통’이란 낡은 이름을 버리고 ‘성안길’로 고쳐 쓰기 시작했다. 성안길은 좁게 보면 도심의 번화가를 일컫지만 사실상 청주 중심부를 관통하는 길이라 해도 무방하다. 남쪽의 육거리시장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 있는 북쪽 내덕동 일대까지 두루 꿰고 있어서다. 보고, 먹고, 놀 공간들이 이 길을 따라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자박자박… 청주읍성길 돌아보니 학천탕부터 간다. 최근 청주시에서 ‘미래유산’으로 지정한 건물이다. 요즘엔 ‘목간’이라는 이름의 카페로 바뀌었다. 목간은 목욕탕을 뜻하는 사투리다. 이름처럼 옛 목욕탕 시설을 그대로 카페 집기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 건축계 전설 김수근의 ‘학천탕’ 청주엔 한국 건축계의 전설 김수근의 작품이 두 개다. 국립청주박물관과 학천탕이다. 두 곳 모두 김수근이 말년에 설계했다. 청주 사람들의 성품을 생각하면 김수근에게 작품을 받은 것 자체가 ‘신통한’ 일이다. 폐 끼치기 싫어하고, 제 자랑 하기 꺼리고, 아쉬운 소리 절대 못 하는 청주 사람들이 어떻게 김수근을 찾아가 작품을 달라고 했을지 상상하기 쉽지 않다. ‘학천’이란 이름엔 한 로맨티시스트의 일화가 깃들었다. 다른 지역에선 특이한 사연이 깃든 곳마다 아내에게 선물한 정원입네, 뭐네 요란하게 자랑하던데, 이 도시 사람들은 당최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러니 대신 전해 줄밖에. 학천탕은 1988년 완공됐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빼어난 건축미 덕에 청주의 랜드마크로 통했다고 한다. 무려 8층에 달하는 학천탕을 지은 이는 박학래(1923~2010)다. 14세 때 목욕탕 종업원에서 출발해 결국 그 목욕탕의 주인이 됐다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학천탕은 당시 청주에서 목욕업계의 대부로 불렸던 그가 아내 채천식에게 선물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건물 이름도 부부의 이름의 가운데 글자를 뽑아 지었다. 좀처럼 개인 건물 설계를 맡지 않던 김수근이었지만 이런 사연을 듣고 설계를 허락했다고 한다. 건물 전체를 목욕탕으로 쓰던 학천탕은 시류 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몇 해 전 ‘목간’이란 카페로 변신했다. 그래도 남탕만은 남겨 뒀는데 그마저 코로나19 사태로 문을 닫았다.●물 없는 탕에서 그대와 ‘커피 한잔’ 맞이 공간 구실을 하는 카페 1층에는 옛 목욕탕 타일을 다듬어 깔았다. 탈의실 옷장, 때 수건, 번호표 등은 인테리어로 썼다. 2층은 메인 욕조와 사우나, 샤워기 등을 그대로 두고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했다. 물 없는 목욕탕에서 커피 한잔 홀짝대는 느낌이 독특하다. 한데 카페 구역은 과거에 여탕이었을까, 남탕이었을까. 이건 궁금증의 영역으로 남겨 둔다. 불고기 음식점으로 쓰는 3~4층도 마찬가지다. 궁금하다면 훗날 카페 주인에게 넌지시 물어보시길. 육거리 시장은 필수 방문 코스다. 이름 그대로 여섯 개의 길이 모이는 곳에 형성된 시장이다. 호사가들은 국내 5대 시장 중 하나로 꼽기도 하는데, 규모가 어느 지역의 전통시장에 견줘도 뒤지지 않을 만큼 크다. 평상시 유동 인구도 많은 편이어서 초대형 쇼핑센터에 치이기 일쑤인 여느 전통시장보다 한결 북적댄다. 육거리 시장 아래엔 남석교(南石橋)가 묻혀 있다. 남석교는 ‘우리나라 최대 돌다리’라는 평가를 받는 문화재다. 조성 시기는 신라, 고려 때 등으로 엇갈리는데, 2005년 청주대 조사 결과 신라 때 처음 축조됐을 것으로 추정된다.●육거리시장 북적… 그 밑 잠든 남석교 남석교가 ‘문화재’인 건 분명한데, ‘대접’은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실체가 묻혀 있어서다. 시청 관계자는 구체적인 유물 분석 작업을 벌일 수 없어 문화재 지정도 어려운 형편이라고 하소연했다. 현재 남석교는 그저 ‘돌로 만든 옛날 다리’에 불과하다. 다리가 건너온 천년의 시간 역시 함께 잠든 상태다. 청주대 학술조사 당시에 원형이 거의 보존된 상태인 걸 확인했다고 한다. 숱한 전란을 겪으며 수많은 문화재를 잃은 우리로선 기적처럼 남은 유물인 셈이다. 한데 남석교가 묻힌 위치가 공교롭게도 육거리 시장 한복판이다. 발굴, 복원 등의 주장들이 간혹 제기되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남석교가 묻힌 위치의 천장에 이를 알리는 조형물이 매달려 있다. 남석교가 모습을 드러내는 날, 청주의 관광 지도 역시 다시 그려지지 않을까.관광객이 실제 볼 수 있는 남석교 관련 유물은 법수(法首)가 전부다. 법수는 교량 등의 초입에 세운 장식물을 뜻한다. 전남 구례 운조루에서 보관 중인 ‘청주읍성도’에 이 모습이 분명하게 그려져 있다.●국립현대미술관·연초제조창도 손짓 남석교 법수는 독특하게 ‘토종견’을 모델로 세웠다. 그래서 이름도 ‘석조견상’이다. 청주대와 충북대 박물관에서 각각 보관하고 있는데 청주대에 남은 석조견상 2기가 꽤 온전한 편이다. 1000년의 세월을 건너온 고대의 작품을 보자면 남석교를 직접 ‘알현’하지 못한 아쉬움이 시나브로 녹는다. 청주대 인근에 ‘핫플레이스’ 국립현대미술관, 연초제조창, 수암골 벽화 마을 등이 몰려 있으니 묶어 돌아보길 권한다. 시내 구경 뒤엔 대청호를 찾아야 한다. 늘 맑은 바람이 불어오는 곳. 문의문화재단지, 청남대, 청주의 아름다운 건축물 10선 중 하나인 카페 에클로그 등이 이 구간에 있다. 옥천군 관내 물비늘 전망대, 부소담악 등에선 빙하기를 닮은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물 흐름이 적어 겨울이면 너른 호수가 온통 빙판으로 변한다.
  • 고종이 러 황제에 선물 ‘조선공예미술품’ 첫 공개

    고종이 러 황제에 선물 ‘조선공예미술품’ 첫 공개

    아관파천(1896년 2월 11일~1897년 2월 20일) 시기 고종이 러시아 니콜라이 2세 황제 대관식(1896년 5월 26일)에 전달한 외교 선물이 127년 만에 공개된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9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박물관 내 무기고박물관에서 열리는 ‘한국과 무기고, 마지막 황제 대관식 선물의 역사’ 특별전 개막식에서 ‘흑칠나전이층농’, 장승업의 ‘고사인물도’ 2점, ‘백동향로’ 2점이 공개된다고 8일 전했다.유물들은 당시 러시아공사관(아관)에 머물던 고종이 대관식에 민영환을 전권공사로 파견해 전달한 선물 17점 중 일부다. 민영환과 함께 대관식에 참석했던 윤치호의 일기를 통해 목록 일부가 언급되긴 했으나 실물이 공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외교 선물인 만큼 당대 최고의 상품이 선정됐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복원 예산을 지원한 ‘흑칠나전이층농’의 자문을 맡은 김삼대자 전 문화재위원은 “전형적인 ‘통영농’의 형태로 최상품의 나전을 주문한 것 같다”면서 “먼 경치를 표현한 구성도 기가 막힌다. 이렇게 좋게 만든 것은 처음 봤다”고 평했다. 특히 ‘흑칠나전이층농’은 나전칠기 장인 전성규에 의해 1920년 이후 유행했다고 알려진 세밀한 끊음질(자개를 칼끝으로 끊어 채우는 방법)이 이전에도 발전했음을 보여 주는 사료로서의 가치도 높다.조선 후기 화가 장승업의 그림 또한 외교 선물로는 최고였다. 이번에 공개된 ‘노자출관도’(老子出關圖)는 중국 노장 철학의 창시자인 노자가 주(周)나라가 쇠퇴한 것을 보고 은거했다는 고사를 담았다. ‘취태백도’(醉太白圖)는 ‘이태백’으로 잘 알려진 시인 이백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크기만 174㎝가 넘는 데다 장승업이 자신의 서명 앞에 ‘조선’이라고 쓴 것은 처음 확인되는 사례다. ‘백동향로’는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을 의미한다. 황제의 치세를 표상하는 대관식의 취지를 잘 표현했다고 평가된다.이번 보존사업은 중국이나 일본 전문가들의 손으로 복원돼 원형의 느낌이 묘하게 훼손됐던 다른 사례들과 달리 재단에서 예산을 지원하고 현지인들이 제대로 복원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보존 처리를 자문한 이용희 전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장은 “조금 걱정했는데 러시아에서 복원이 굉장히 적절하게 이뤄졌다. 원칙을 잘 지킨 것 같다”고 말했다. 재단 관계자는 “이번 사례를 통해 문화재를 같이 공유하고 교류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전했다.
  • [씨줄날줄] 구룡마을/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구룡마을/박현갑 논설위원

    판자촌은 산업화의 유물이다. 일자리를 찾아 농촌에서 도시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형성된 빈민촌이다. 판자는 조악한 목재 가공품으로 단열재가 아니다 보니 여름에는 더위에, 겨울에는 추위에 취약하다. 쉽게 부식돼 화재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판자촌이 산비탈에 들어서면서 ‘달동네’라는 용어도 나왔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는 당국이 대대적인 무허가 건물 정비에 나섰고 도심에 있던 판자촌은 시 외곽으로 밀려났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도 마찬가지다. 서울에 남아 있는 가장 규모가 큰 무허가 판자촌으로 부지 규모만 26만 4500㎡(약 8만평)에 이른다. 설연휴 직전인 지난달 20일 불이 나 개발 방식을 두고 주목받은 곳이다. 최근 서울시가 이곳을 아파트촌으로 바꿀 모양이다. 2011년부터 주거환경 정비에 나섰지만 부지 활용 방안과 보상 방식 등을 두고 토지주 등과의 갈등으로 지지부진했던 개발사업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에서 조만간 공고를 내고 토지보상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용적률을 높여 주택 공급 규모를 당초 계획한 2800여 가구에서 3600여 가구로 늘리고 건물의 최고 높이도 35층으로 올리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앞서 시는 2020년 6월에 임대 1107가구, 분양 1731가구 등 2838가구와 도로, 학교 등 기반시설을 짓는 사업계획을 고시한 바 있다. 최종 사업계획은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된다. 개발되면 주거단지로서 가치가 치솟을 전망이다. 앞으로는 양재대로가 있고 대모산과 구룡산을 좌우로 끼고 있어 주거지로는 최적이다. 난제가 적지 않다. 토지 보상 문제로 토지주와의 실랑이가 예상된다. 토지주들은 맞은편 개포동 아파트 단지 수준의 땅값을 기준으로 보상해 달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SH공사는 감정평가에 따른 공시가격 기준으로 보상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교통체증과 조망권을 둘러싼 민원도 예상된다. 지금은 마지막 남은 강남 개발지로 부동산 투기꾼과 브로커들이 눈독을 들이는 곳이다. 자연녹지보전지역이기도 하다. 시에서 개발을 주도하되 자연환경 보전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