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유물
    2026-02-10
    검색기록 지우기
  • 종로
    2026-02-10
    검색기록 지우기
  • 유심
    2026-02-10
    검색기록 지우기
  • 업소
    2026-02-10
    검색기록 지우기
  • 야말
    2026-02-1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526
  • 만해 ‘님의 침묵’ 초판본 첫 공개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선생의 유일한 시집이자 대표작 ‘님의 침묵’ 초판본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경기도 광주의 만해기념관(관장 전보삼)은 30일 일제 강점기인 1926년 5월20일 발간된 초판본(회동서관·168쪽)과 34년 7월30일 간행된 재판본(한성도서㈜)을 비롯,지금까지 발간된 ‘님의 침묵’ 130여개 판본을 모두 공개했다. 특히 이번에 공개된 초판본은 맞춤법통일안(1934년)이 없던 시대에 만해 특유의 조어와 방언 등이 섞인 시어를 말의 장단과 고저에 따라 띄어쓰기한 것이 주목받고 있다.초판본과 재판본은 출판 직후 일제에 의해 금서로 묶여 세상에 제대로 배포되지 못한 희귀본이다. 전 관장은 초판본을 지난 79년 수소문 끝에 개인 소장가로부터 당시 출판 경매사상 최고가로 매입해 보관하다 이번 ‘님의 침묵 판본 특별기획전’을 통해 처음 일반에 선보였다.기획전은 오는 29일까지 열린다. 전시 판본 가운데는 유일하게 만해 사진에 담긴 한성도서판(50년 4월),판본마다 다른 시어를 초판을 근거로 정리해 발간한 민족사 정본판(1980년 12월) 등이 눈길을 끈다. 전 관장은 “민족사 정본판을 낼 당시 신군부가 붉은 표지 때문에 검열에서 출판 불가 판정을 내려 발행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며 당시 일화를 소개했다. 이밖에 ‘님’을 단순하게 ‘Love’ 또는 ‘Lover’로 번역했던 다른 외국어판과 달리 5쪽 분량의 ‘님’에 대한 주석이 달린 프랑스판(Le Silence De Nim,96년)도 관심을 모은다.백담사에서 ‘님의 침묵’의 산실 오세암에 이르는 30리 풍광을 담은 야송 이원자 화백의 무강오세암도(无疆五歲庵圖)와 20편의 시·그림을 엮은 시화(詩畵)도 흥미롭다.고교 시절부터 만해에 심취한 전 관장은 68년 무렵부터 수집에 나서 만해 관련자료 및 유물 600여점을 소장하고 있으며,98년 만해기념관을 설립했다. 전 관장은 “님의 침묵은 석굴암 대불에 견줄 수 있는 위대함을 지닌 책”이라며 “이번 기획전은 만해 정신의 근본원리를 탐색하기 위한 또 하나의 실험”이라고 말했다. 광주 윤상돈기자 yoonsang@
  • 車문 잠근 채 방화… 실직가장 일가5명 동반자살/생명 앗아간 잘못된 가족관

    생활고를 비관한 가족 동반자살이 늘고 있다.자살 수법도 독극물,투신자살,차량방화 등 점점 엽기적으로 바뀌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족 동반자살은 가족에 대한 지나친 애착이 가져오는 명백한 범죄행위라면서 자녀를 소유물로 여기는 부모들의 왜곡된 가족관이 개선돼야 하고 허술한 사회안전망도 하루 빨리 완비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일가족 5명 동반자살 26일 오전 6시쯤 전북 전주시 덕진구 고랑동 삼화마을 앞 둑길에서 전북 29고39XX호 쏘나타 승용차(소유주 우모·36·전주시 동산동)에서 불이 나 일가족 5명이 숨졌다.사망자는 우씨와 아내 손모(35)씨,두 딸 대윤(9·초교 2년)과 수민(7)양,아들 봉주(4)군 등이다.사망 당시 우씨는 운전석에,아내는 운전석 뒷좌석에 있었으며 아이들은 조수석과 뒷좌석에 각각 타고 있었다. 경찰 조사결과 우씨는 H사료 직원이었으나 지난해 12월 부도가 나 놀고 있었고 부인은 B학습지 교사로 맞벌이를 해왔다. 보증금 2400만원의 24평형 임대아파트에 살았던 우씨는 지난해 아버지(65·충남 논산시)가 집을 저당잡히고 2000만원을 대출해준 돈을 받아 생활해 왔지만 99년과 2001년 가입한 S생명 보험료(월 22만원)를 지난 1월부터 내지 못하는 등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목격자 정모(54·전주시 진북동)씨는 “경적소리가 나 보니 승용차에 불이 나고 있었고 운전자는 머리를 핸들 위에 얹고 있었다.”고 말했다. 신고자 이모(42·전주시 서신동)씨는 “불을 보고 승용차 문을 열려 했으나 안쪽에서 잠금 장치를 해 열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감식 결과 부인과 자녀의 시체가 심하게 훼손됐지만 외상이 발견되지 않았고 반항하거나 움직인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우씨가 부인과 자녀들을 살해한 뒤 자신도 목숨을 끊기 위해 승용차 문을 잠그고 차 안에 불을 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동반자살 실태 지난 16일 경남 밀양시의 한 여관방에선 사업실패로 수십억원의 부도를 낸 송모(49)씨와 일가족 5명이 농약을 마시고 숨진 채로 발견됐다.앞서 11일에는 경기도 군포시에서 이모(39)씨가 아내와 아들 2명을 승용차에 태운 채 저수지로 돌진,아들들만 낚시꾼들에 의해 구조됐다. 경찰청에 따르면,지난해 총 자살자는 1만 3055명으로 1년 전의 1만 2277명에 비해 6.3% 증가했다.올해에도 7월 말 현재 600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자살원인별로는 지난해와 2001년 전체의 14%이던 생계이유 자살비율이 올들어 17%로 증가했다. ●전문가 분석 한양대병원 정신과 안동현(安東賢) 교수는 “가족 동반자살은 부모의 잘못된 가족일체감에 있다.”면서 “부모가 ‘자식은 내 생명의 일부분’이라고 생각,마음대로 생사여탈권을 휘두르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주 임송학·황장석기자 shlim@
  • i 센터

    ●한국민속촌 추수철을 맞아 28일부터 10월12일까지 가을걷이와 관련된 세시풍속을 체험할 수 있는 ‘가을걷이 민속체험 한마당’을 개최한다. 생소해진 농기구를 이용해 벼베기에서부터 탈곡을 거쳐 쌀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031)286-2111. ●롯데월드 22일부터 공원 전체를 국화로 장식하는 국화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10월31일까지.단지내 및 주변을 중심으로 다륜대작,입국,해애작, 일간작 등 서로 다른 색깔을 뽐내는 국화 100만송이가 만발해 있다.어드벤처에선 국화꽃을 이용해 다양한 예술작품을 표현한 ‘국화 아트 페스티벌’이 다음달 19일까지 펼쳐진다.(02)411-2000. ●서울랜드 안전 체험학습을 테마로 한 ‘어린이 소방 대축제’를 30일부터 10월12일까지 개최한다.응급상황을 직접 체험해보는 ‘도전 119 체험코너’‘화재의 아픔과 소방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사진유물·장비 전시’‘119 소방활동 및 재난 관련 영화 상영’‘소방게임’ 등의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이중 체험코너에선 에어매트 탈출,11m높이에서 레펠을 이용한 탈출 등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02)507-5019. ●투어익스프레스 전국의 호텔 및 펜션,콘도 등 객실 예약을 검색에서부터 결제까지 실시간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실시간 예약·결제 시스템:숙박 CRS’를 운영한다.인터넷 사이트 ‘www.tourexpress.com’에 들어가면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02)555-5158.
  • 조선왕조 ‘마지막 왕손’ 전주에 정착/전주시 ‘테마 한옥촌’ 운영자로 뽑힌 이석

    “어머님의 품에 안긴 것처럼 포근함을 느낍니다.삶의 터를 마련해주신 전주시민들께 감사드립니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손 이석(본명 李瑛吉·62·황실보존국민연합회 총재)씨가 이씨 조선의 발상지인 전주에 삶의 뿌리를 내리게 됐다. 전주시는 최근 교동 한옥마을에 조성된 ‘테마 한옥촌’의 민박시설 두채의 운영자를 심사한 결과 이 가운데 한 채의 운영자로 이씨를 후원하기 위해 구성된 황손후원회가 선정됐다고 24일 밝혔다. 이로써 지난 6월부터 추진됐던 조선조 마지막 왕손의 전주 정착이 결실을 보게 됐다.운영자는 앞으로 2년간 임대형식으로 이 민박시설을 운영하게 된다.이 가옥은 대지 70평에 건평이 34평으로,본채와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본채는 이씨의 숙소와 조선 왕조들이 사용한 유물들을 전시하는 ‘황실 유물전시관’으로 이용되고,사랑채는 한옥체험 민박시설로 활용하게 될 예정이다. 시는 이를 위해 이 한옥을 개·보수한 후 내년 3월 이씨를 입주시킬 계획이다.이씨는 이곳에서 전주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조선역사 알기’,‘황실 다례 및 예법 익히기’,‘전주,황실음식 체험’,‘전주 술맛 익히기’ 등 전주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 설명하는 문화유산 해설사 역할을 하게 된다.전주시 관계자는 “이씨 왕가의 발상지인 전주 한옥마을에 조선왕조의 혈통을 잇는 황손이 정착하면 전주의 역사성과 상징성이 부각되고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67년 ‘비둘기 집’을 불러 왕족가수로 널리 알려진 이씨는 고종의 둘째 아들 의친왕(義親王)의 열한번째 아들로, 그동안 서울 등지에 살면서 조선말기 왕가에 얽힌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는 작업을 해 왔다. 중3때인 55년 의친왕이 타계하면서 생활이 곤궁해져 61년 미8군 밤무대에 서면서 가요계에 발을 디뎠다.기복이 많은 가요계 생활동안 8차례나 자살을 시도했고,79년 미국으로 이주했다가 89년 귀국했다. 이씨는 “전주에서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불면증도 없어지고 마음이 무척 편해졌다.”며 “태종의 영정을 모신 경기전에 들어서면 지금도 조선왕조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 이제야 긴 방황에 종지부를찍게 됐다.”고 활짝 웃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
  • 오늘의 결혼문화 (상)혼수·예단의 갈등

    미혼 남녀 한 쌍이 가정을 꾸리는데 필요한 결혼비용이 평균 9000만원이라 한다.이 엄청난 액수에 대해 “평균일 뿐,그 이상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9000만원 중 약 6000만원은 주택자금이고,혼수에 무려 결혼비용의 20% 정도를 사용하고 있다.주택자금은 물론 혼수까지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지하는 미혼 남녀는 결혼준비 중 적잖은 갈등을 겪는데,갈등은 ‘예물과 예단’에서 시작된다.사랑해서 결혼한다지만,결혼날짜가 잡히면 ‘갈등’이 사랑의 기쁨을 환치한다.그래서 결혼준비중 헤어지는 커플도 드물지 않다.‘돈으로 사랑을 완성한다.’는 오늘의 결혼문화를 2회에 걸쳐 살펴본다. #1.14일,강남의 최고급 한복가게 딸의 혼수를 장만하기 위해 나왔다는 김선혜(56·서울 광진구 구의동)씨는 “막상 딸을 결혼시키려니 사돈댁에 하나라도 더 해드리고 싶다.딸이 잘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다.”고 말했다.김 씨는 “뭣 때문에 내가 이렇게 비싼 것을 해가느냐?”고 화를 내는 딸 정선우(28)씨를 “결혼생활 해본 엄마말을 들으라.”고 설득한 끝에 무려 1000만원을 지출했다.‘요즘엔 시아버지 한복은 잘 안하는 편이 아니냐?’고 물으니 “그래도 드리면 좋아하실 거다.”고 김씨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2.19일,남산의 H호텔 한 웨딩드레스 디자이너의 살롱 쇼가 한창 열리고 있었다.결혼시즌을 앞두고 VIP 고객들을 대상으로 열리는 만큼 여느 외국의 살롱쇼처럼 객석의 면면들이 화려했다. 마침 기존의 웨딩드레스에선 좀체 볼 수 없는 모피를 곁들인 웨딩드레스가 선을 보이자 나란히 앉은 어머니와 딸들의 눈빛이 반짝였다.눈에 띄는 손님은 20대 청년들,나란히 앉아 서로 귓속말을 주고받고 있었다.쇼가 끝난 후,한 청년에게 물으니 “12월 결혼을 앞두고 내 신부가 입으면 좋을 드레스를 고르러 왔다.”고 말했다. 이날 모인 사람들에게서는 ‘한번 뿐인’ 결혼에 비용을 아낄 필요가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같아 보였다. ●‘돈’으로 사랑을 완성한다? 한 예비신부는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는 말을 “사랑이 아니라 돈이 있어야 결혼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속물이 곧어른”이라는 말로 들린다고 했다. 결혼이 낭만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란 각성은 엉뚱하게도 ‘돈이 행복을 보장한다.’는 왜곡된 결혼관으로 연결되는 추세다.결혼을 앞둔 여성,딸을 둔 50∼60대 여성들은 한결같이 ‘이런 잘못된 결혼문화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그러나 문제에 대한 인식과 달리 이들에게는 ‘통념’을 깰 용기가 부족하단다.“남들이 하는만큼은 해야죠.능력있다면 더 하는 것이고…” 10월에 결혼을 앞둔 직장인 박미란(28)씨는 고민이 많다.“이렇게 어려운 일인줄 몰랐어요.마치 제가 돈으로 팔고사는 상품같아요.아니면 무슨 결함이 있어서 이를 감추려고 돈을 들이는 것도 같고.우리는 예단비를 1000만원이나 보냈는데 시댁에서는 딱 200만원만 보내니 저희 어머니는 섭섭해 하시고,주위에서도 모두들 ‘그런 법은 없다.’고들 난리에요.” 그러나 박 씨는 자신이 유별난 케이스는 아니라고 말했다.혼수준비를 하면서 대부분 갈등을 겪고,파혼 위기까지 가기도 하고,또 결혼 이후에도 적잖은 앙금이 남는 것을 봤단다. 시댁의 과다한 혼수요구를 다 맞출 수 없어서 고민끝에 결국 파혼했다는 정여진(29)씨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아직도 아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고,아들이 신부집에서 많이 받으면 자기 집안의 자산이 늘어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에요.무식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겉으론 교양있는 대부분의 중산층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이들 젊은 여성들을 괴롭히는 것은 늘 문제가 된 호화혼수 뿐 아니라 최근 ‘결혼시장’에서 상식화된 ‘예단비’때문이다. 대개 결혼에 앞서 신부는 시댁어른들에게 혼수를 장만해 보내게 마련이다.은수저와 고급 반상기,침구세트는 기본이라는데 최근 여기에 예단비가 포함됐다.액수는 보통 500만원에서 1000만원선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부 부유층은 1억원도 넘게 쓴다는 말도 오간다. 옛날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께 신부가 직접 지은 옷을 한벌씩 보내며 ‘인사’하던 풍습이 산업화 과정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도록 현금화한 것은 당연한 일.그러나 오늘날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여자쪽에서 돈을 보내면 그 반정도를 돌려주는 ‘이상한’ 신풍속이다. 예단비 액수 책정도 만만찮은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사람들마다 생각이 달라 이 과정에 대부분 갈등을 겪는다는 것이다.정작 정신은 사라지고,물질만 남아 갈등의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더욱이 이런 갈등은 결코 의사나 판·검사 사위를 맞기 위한 졸부들에게서나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결혼이 있는 곳은 어디든 혼수와 예단비라 불리는 ‘돈’으로 인한 갈등이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예단비는 ‘필요악’인가 결혼이야기를 꺼내면 ‘700만원을 보냈는데 단 300만원밖에 못 받았다.’,‘1000만원을 보냈는데 단 한푼도 받지 못했다.’,‘2500만원 중 불과 500만원만 돌아 왔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7000만원의 예단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도대체 어디에 쓰라는 거냐?”고 물었다는 시어머니 이야기도 있고,“맏동서가 워낙 잘해서 니가 웬만큼 하지 않으면 시집와서 힘들 것이다.’고 말한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에피소드도 있다.게다가 “차라리 정확하게 이야기해 주시는 시어머니가 고마웠다.”고 이야기하는 여성들도 있다. 돈만 있으면,예단비만 많이 보내면 행복이 확실하게 보장될까. 이정기(59·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씨는 아들 부부가 모두 의사로 연애결혼을 했다.그런데 결혼후 한참이나 마음이 찜찜했다.“부모들끼리 만나서 받지도 말고,주지도 말자고 약속했어요.우리는 똑같은 의사니까.그래놓고선 사돈이 1000만원을 넣어서 보낸 겁니다.그런데 돈이란게 참 이상한 것이더군요.아마 핸드백 선물을 받았다면 달랐겠지만 현금봉투를 받고 보니 영 기분이 언짢아요.그러려면 제대로 격식차려서 할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들고….돈이 많고 적고가 아니라 돈을 주고 받는다는 것 자체가 감정을 상하게하는데 왜들 그런 일을 하는 지 모르겠어요.” 금전이 오가는 결혼,주는 쪽도 받는 쪽도 기분이 찜찜한 것은 마찬가지라고들 말한다.“다들 그렇게 한다.”는 ‘상식’을 뛰어넘어 결정하니 행복한 결혼이 됐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작년 2월에 결혼한 이호선(31)씨는 ‘왔다갔다 하는’번거로운 예단비를 없앴는데 주변으로부터 “시집살이 꽤나 할거다.”라는 걱정을 들어야만 했다.“저희 시부모님께서는 아예 돈을 보내지말 것을 다짐하셨어요.그래서 선물로 성의를 표했는데,정작 다른 사람들이 ‘두고봐라.후회할 일이 있을 것이다.’고 겁을 줬어요.그래서 돈을 보내야 할 것은 아닌가 흔들리기도 했지만,지금 생각해도 안보낸 것은 잘한 일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버선 한짝이라도 정성이면 된다.”고 아름다운 말로 결혼준비를 시작한다.그러나 정작 ‘버선 한짝’에는 섭섭해하는 이중성에 시달린다. 이는 혼수와 예단 등 조건이 사람을 앞서는 중매결혼이 아닌 연애결혼에서도 똑같이 작용한다. 김진숙(54)씨는 “연애결혼해도 갈등은 마찬가지”라고 각박해져가는 세태에 혀를 내둘렀다.“10여년 전만 해도 ‘연애하면 괜한 허례허식을 안 찾는다.’고들 말했는데 이젠 그것도 아닌 것 같다.남자들이 변했다.부모욕심이라고만 말할 수만도 없다.혼자 벌어서는 집장만이 쉽지 않은 현실도 문제지만 청년들이 독립적이지 않고,처가가 좀 있는 집안이길 원하는가 하면 처가에 바라는 것도 노골적이다.”며 딸애 결혼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예전의 인기는 누리지 못한다지만 아직도 ‘사’자 붙은 신랑감들 사이에는 누군가가 받은 특별한 대접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것이 사실이다.김영진(31)씨는 약혼자에게 예단비를 2000만원 하겠다고 말했다가 “겨우 2000만원 밖에 안해?”라는 대꾸에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신랑감은 대학 친구인데,그가 공인회계사가 됐다고 내게 뭔가를 바라지는 않을줄 알았다.주위에서 많이 받는 것을 봐서 그렇게 말했을 뿐이라지만 기분은 묘하다.”고 말했다. ●정신적 혼수가 더 중요해 그나마 불행중 다행은 혼수나 예단비와 행복이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혼수가 화려할수록,예단비가 많을수록 생색내고 싶고,적게 보낼 수밖에 없을 때에는 괜히 주눅들게 마련이지만 사랑하는 남녀에게까지 시장논리가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혼수와 예단비가 무려 2억원이나 됐지만 결혼 3개월 만에 파경을 맞았다는 김수지(가명·33)씨는 “무리해서라도 행복을 ‘사려고’ 한 내가 바보였다는 생각이 든다.그러나 결혼할 때에는 남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 흔들렸다.더 많이 보낼수록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혼수의 속성을 결혼전에만 알았더라도 현명하게 대처했을 것이고,그 결혼의 늪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고 때늦은 후회를 했다. 듀오의 커플매니저 송민정씨는 “결혼을 앞둔 사람들이 대부분 나보다 학력도 외모도 경제력도 나은 사람들을 원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같다.”라고 말하며 “조건을 지나치게 따지는 사람일수록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고 조언했다. 혼례절차를 가르치는 신세계문화센터 강사 권명득씨는 “물질이 절대로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오히려 예단비가 많을수록 갈등도 많고,혼인의 실패도 많을 수밖에 없다.그래서 60%는 정신적인 혼수를 하고,40%정도를 물질로 인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가르친다.”며 이 시대의 결혼풍속이 달라지도록 다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남주 기자 hhj@
  • 4대강 수질개선사업 겉돈다

    상수원보호를 위해 추진돼온 4대강 수질개선사업의 절반 이상이 포기됐으며,설치된 시설마저도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1일 국회 환경노동위 박인상(민주당) 의원에게 감사원과 환경부가 제출한 국정감자료에서 밝혀졌다. 환경부는 당초 수질개선사업에 1028억원을 투자할 계획이었으나 실제로는 31.7%에 불과한 325억원만 예산에 반영되고 확보된 예산마저 61.3%만 집행됐을 뿐이다. 또 15개 종류 210건의 상수원 수질개선대책 사업이 계획됐으나 15.2%인 32건만 추진되고 있을 뿐 나머지 84.8%인 178건은 손도 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한강수계에는 8곳에 수초를 이용해 수질정화사업을 추진할 계획이었고 영산강에도 5곳에 설치할 예정이었다.그러나 단 한 군데도 추진되지 않았다. 또 금강에는 40군데에 자연형 오수정화지역 설치를,낙동강수계에는 15곳에 하천 밑바닥 오염수거시설 등을 설치할 계획이었다.특히 녹조 등 상수원의 오염 조류 전문 제거선을 배치하기로 하고 외국회사와 계약까지 마쳤지만 추진 자체가 흐지부지됐다. 그나마 현재 운영되고 있는 하천자연정화시설과 물의 정화를 위해 설치한 습지·수초재배섬 등 4개 사업 30곳의 운영실태도 60%가 넘는 18곳이 설계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5년간 투입된 325억원도 지엽적인 것에 국한됐을 뿐 상수원 수질개선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실제로 대청호와 낙동강에 설치한 가압부상시설(강제로 밑바닥의 부유물질을 띄워 제거하는 시설)은 60%의 제거율이 각각 27.8%와 39.2%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편 국방부가 국회 국방위에 제출한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팔당상수원 특별대책지역 내에 모두 71개 부대가 위치해 있고 이들 부대에서 하루 5916t의 오수를 배출하고 있어 상수원을 오염시키는 것으로 드러났다.상수원지역에 위치한 군부대들은 오수를 무단 방류하고 있지만 단속의 손길도 제대로 미치지 않고 적발되더라도 개선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에서 팔당상수원 수질보전을 위해 지난 99년 특별법을 제정,특별대책지역 내 오염물질 배출시설 신규입지를 엄격히 제한했는데도 국방부는 이후 육군 모부대 기동중대 비롯해 13개 부대,27동의 시설물을 신규로 설치했고 총 저장능력 8만ℓ의 저유탱크 4기를 신설한 것으로 밝혀졌다. 유진상기자 jsr@
  • 도자기 빚고 온천욕까지/이천·여주 ‘문화나들이‘

    가을은 문화예술의 계절.9,10월엔 지방 구석구석까지 다채로운 문화예술행사로 들썩인다.도예에 관심이 있다면 이천·여주 일대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수백개의 도예업체가 몰려 있는 이곳엔 요즘 도예 체험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로 북적인다.이천과 여주엔 도예 체험뿐만 아니라 설봉산,이천온천,신륵사,세종대왕릉 등 볼거리도 많아 가족 나들이 코스로 좋다.이천·여주·광주 세 도시에선 9월부터 10월 말까지 제2회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도 열리고 있다. ●이천 도예촌 60년대 초 하나 둘씩 생기기 시작하더니 일본인들의 한국 여행 자유화 이후 도자기 수요가 급증하면서 이천시 사음동 및 신둔면 수남리 일대에 자연스럽게 도자마을이 형성됐다.현재 300여 업체가 모여 있다. 특히 3번 국도 주변으로 도자업체들의 전시판매장 및 박물관 등이 늘어서 있어 작품 감상과 함께 구입도 할 수 있다.그러나 전통 장작 가마를 사용하는 전통 기법으로 도자기를 생산하는 업체는 10여군데 정도.이는 대부분의 업체가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쉬운 가스 가마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기왕 전통 도예의 맛을 느끼기 위해선 흙가마를 갖춘 업체를 찾아보자. 신둔면 수남리에서 도예업체 ‘도예농’을 운영하는 남창익씨는 “가스 가마의 경우 가마에 넣는 도자기의 70% 이상을 성공적으로 구울 수 있지만 전통 흙가마는 20%도 건지기 어렵다.”고 말한다.하지만 그는 “흙가마 속의 도자기들은 부위마다 닿는 장작불의 세기가 다르다 보니 거친 듯한 가운데서 자연미·인간미를 낸다.”고 설명했다. ‘도예농‘(031-637-6555)과 신둔면 남정리의 ‘예원도요’(031-634-2244)는 전통기법을 고집하는 대표적 업체들. 두 업체 모두 대형 흙가마를 갖추어 놓고 도자기 생산과 함께 다양한 코스의 도예 교실도 운영한다.도자기 페인팅에서부터 손으로 빚기,물레성형,장작 가마 안내 등을 체험할 수 있다.물레성형의 경우 직접 컵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상세히 지도해 준다.수강료는 코스별로 1만∼2만 5000원.미리 예약해야 한다. 이밖에 이천시청 도예담당(031-644-2280∼3)이나 이천민속도자기조합(031-633-6381)에 문의하면 상세한내용과 함께 도예 교실을 운영하는 업체를 소개해준다. ●설봉산·이천온천 설봉산은 이천시 서쪽에 있으면서 시가지를 감싸안듯 둘러싸고 있다.해발 394m로 험준하지는 않으나 주봉 부근의 혼합림과 기암괴석이 볼 만하다.산중엔 신라 문무왕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고찰 영월암과 삼국시대 성지가 있다.영월암 경내엔 10여m 높이의 암벽 표면에 새겨진 마애여래입상을 비롯해 석조광배 및 팔각연화대좌,3층 석탑 등의 유물이 남아 있다. 안흥동 일대에 있는 온천은 이천·여주 나들이의 단골 코스다.150여년 전 농사를 짓던 한 농부가 사철 솟아나는 더운 샘물을 이상히 여기고 세수를 하였더니 눈병이 깨끗이 나았다고 한다.1959년 경기도에서 개발에 착수한 이후로 다양한 온천 시설이 들어섰다.호텔 미란다의 스파플러스(031-633-2001),설봉호텔(031-633-6301)의 온천탕 등이 유명하다. ●신륵사·세종대왕릉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전통 사찰로,국내에선 보기 드물게 강변에 자리잡고 있다.보물과 유형문화재 등도 볼 만하지만 나옹선사의 당호를 딴 정자 ‘강월헌’(江月軒)에서 굽어보는 남한강 경관이 절경이다.특히 신륵사 아래 나루터에서 띄우는 황포돛배는 꼭 한번 타보자. 과거 남한강을 오르내리며 사람과 곡식 등을 실어 나르던 옛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이천시가 9월부터 운영하고 있다.펄럭이는 황포 돛을 달고 유유히 강월헌 아래를 지나가는 모습만 보아도 마음이 한결 푸근해진다.10월까지는 시범운영 기간이라서 탑승료도 없다.문의 여주군청 문화관광과(031-880-1866).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에 위치한 세종대왕릉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꼽히는 만큼 능 주변도 깔끔하고 정갈하게 정리돼 있다.정문을 지나 능까지 이르는 길 옆의 소나무숲은 특히 산책과 휴식을 즐기기에 그만. 정문 안쪽의 세종전엔 대왕의 업적과 관련된 유물과 자료들이 전시돼 있고,정문 좌측엔 해시계,자격루,측우기,혼천의 등 세종대왕때 개발된 각종 과학 기구를 복원해 놓아 아이들 체험학습 코스로도 좋다.(031)-885-3123. 이천·여주 글·사진 임창용기자 sdargon@
  • [인터넷 스코프] 지식참여 전성시대

    언젠가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부탁을 한 적이 있다. “아빠,고구려 항아리 사진 좀 찾아줘요.” “뭐? 고구려 항아리?” 내 기억 속에 들어 있는 항아리라고는 국어책 어딘가에 나오는 장독대가 전부이다. “고구려에 무슨 항아리가 있냐? 빗살무늬토기나 고려청자 얘기하는 것 아니야? 고구려 유물은 벽화 서너 개만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 되잖아.” 대답하면서 약간 떨떠름하긴 했지만 학력고사 세대인 아빠로서는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그렇지만,아빠 말을 믿지 못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을 검색한 지 불과 3분만에 돌아오는 아이의 의기양양한 선언.“에게게.여기 봐.고구려 항아리 디따 많네 뭐.아빠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래.” 계몽사에서 출간했던 ‘컬러학습대백과 전8권’을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이 책은 큼지막한 컬러사진을 곁들여 태양계와 지구상의 온갖 동물,식물을 설명했던 어린이 백과사전이다.이렇다 할 오락거리가 없었던 때라 당시의 아이들은 이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이 지식만으로 쉽게 무불통지(無不通知)의경지에 올랐다. 그러나 인터넷이 등장하면서부터 오늘의 아이들은 부모의 능력과 종이 백과사전으로는 도저히 쫓아올 수 없는 폭과 스피드로 지식을 넓혀가고 있다. 더군다나 요즘은 인터넷 지식검색이 화제다.인터넷 포털업체인 네이버가 작년 가을 ‘지식iN’을 오픈한 뒤 만 1년도 되지 않아서 700만건의 문답과 170여만건의 지식DB(데이터베이스)를 쌓았다고 한다. 엠파스의 지식거래소 역시 이에 못지않다 하니 이 정도 DB라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항목의 10배가 넘는 지식을 한 사이트에서 구축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가히 지식으로 지구를 덮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지 않는가. 최근에는 쇼핑을 비롯해서 회계지식,게임지식 등 분야별 지식센터까지 속속 개설되고 있다.인터파크나 CJ몰의 쇼핑지식검색 사이트에 접속해서 “○○만원의 예산으로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한다면 언제 어디서 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요?”라는 질문을 입력해 보자.수십 명의 쇼핑도사가 나타나서 조건식에 부합하는 해결책을 ‘바로’ 제시할 것이다.가격비교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1시간 이상 손품을 팔았던 초기 인터넷 쇼핑은 이제는 한낱 옛 추억거리로만 남게 되었다. 지식과 논리에 기초한 정치평론도 인터넷과 함께 활짝 꽃피었다.지난 세기까지 어젠다 설정과 정치평론은 제도권 언론의 영원한 독점영역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대선을 전후해서는 참여형 정치평론이 각종 인터넷 정치사이트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다.이 사이트들은 정치평론의 백과사전이다.언론의 정치부 기자보다 해박하고 열정과 파이팅을 겸비한 아마추어 정치평론가들이 이 시간에도 수만 건의 의견과 지식을 언론사이트 게시판과 오마이뉴스,서프라이즈,조갑제닷컴에 올리고 있다. 이 얼마나 엄청난 변화인가. 지난 세기까지 지식은 소수의 지식 권력자가 일방통행식으로 전달해 주던 보물 꾸러미였다면 오늘날의 지식은 네트워크 곳곳에 편재(ubiquitous)되어 누구나 손쉽게 끄집어 내고 채워주는 무한자원의 성격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인간관계의 단절,게시판의 욕지거리 등에서 보여지듯이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모순도 낳고 있다.그러나정보화 사회,이제 꿈이 아닌 현실인 것이다.남은 과제는 오직 잘 적응하는 것뿐이다. 김 동 업 인터파크 사업지원본부장
  • [씨줄날줄] 북한 군사 퍼레이드

    장엄한 군사 퍼레이드는 냉전시대의 독특한 군사문화였다.군사력 과시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그러나 냉전시대의 군사 퍼레이드는 단순히 힘의 과시에만 머물지 않았다.자유세계와 공산주의 진영의 치열한 체제 경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군사 퍼레이드는 공산주의 진영에서 더욱 중요시됐다.모스크바의 붉은 광장,베이징의 톈안먼 광장,평양의 김일성 광장 등에서는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펼쳐졌다.공산주의 독재자들은 군사 퍼레이드를 통해 권력을 강화했다.광장은 공산주의 권력을 강화하는 무대였다.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서는 볼셰비키 혁명 기념일(11월7일)에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펼쳐졌다.당시 소련은 퍼레이드를 통해 막강한 군사력을 과시했다.자유세계에는 섬뜩한 공포였다.베이징의 톈안먼 광장에서도 장엄한 군사 퍼레이드가 열렸다.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는 중단됐다.옛 소련과 중국의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는 냉전시대의 군사적 유물로 역사의 뒷장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북한은 다르다.북한은 정권 수립 기념일인 오늘(9일) 평양의 김일성 광장에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펼친다.북한은 1992년 4월25일 인민군 창건 60주년 기념일에도 거대한 군사 퍼레이드를 했다.북한은 11년만에 다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펼친다.북한은 군사 퍼레이드와 군중 시위를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를 더욱 강화하고 핵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 한다고 북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북한의 군사 퍼레이드와 군중 시위는 특히 섬뜩하다.열병하는 군인들의 기계와 같은 움직임,날카로운 눈초리,온 광장을 뒤덮은 붉은 색,광적으로 열광하는 군중들의 함성….광적인 군중 시위와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는 21세기 현대사회의 모습과는 동떨어져 있다.이러한 군중 시위가 오늘 반복된다면 북한은 여전히 과거의 낡은 틀 속에 갇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북한이 그 틀을 깨지 않으면 평양의 시계는 계속 거꾸로 갈 것이다.북한은 광적인 열정을 군사력 강화가 아니라 경제에 투자해야 한다.북한 지도자들은 군중 시위대들의 열광적인 함성이 아니라 굶주린 주민들의 신음 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창순 논설위원
  • 순박하고 친근한 ‘나한상’ 한자리에/춘천박물관 9일부터 첫 나한展

    나한(羅漢)은 아라한(阿羅漢·Arhat)을 줄인 말이라고 한다.부처의 제자로 수행끝에 깨달음을 얻은 존재이다.중생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점에서는 보살과 다르지 않지만,신의 모습보다 인간의 모습에 훨씬 가깝다. 통일신라 말기부터 우리나라에 알려지기 시작한 나한은 고려와 조선에 걸쳐 중요한 불교 신앙의 하나로 자리잡았다.그림이나 조각으로 만들어진 나한은 나한전 혹은 응진전이라는 독립된 전각에 모셔져 예배의 대상이 됐다. 그럼에도 나한은 그동안 다른 불화나 불상에 비하여 주목받지 못했다.국립춘천박물관이 9일부터 여는 ‘구도의 깨달음의 성자,나한’특별전이 나한을 미술사적으로 다룬 최초의 종합적인 전시회라는 사실이 놀라울 지경이다. 춘천박물관 기획전시실은 마지막 손질을 하느라 어수선했다.그러나 깨달음의 경지를 보여주면서도 순박하고 친근한 150여점의 나한 그림과 조각은 망치소리며 드릴의 기계음이 신경쓰이지 않을 만큼 하나하나가 흥미로웠다. 나한이 주목받는 것은 2001년 영월 창녕사터에서 16세기 ‘오백나한상’이 나온 것이 계기가 됐다.높이 30㎝ 정도에 화강암으로 만든 나한상은 동글납작한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일품이다.춘천박물관은 지난해 개관하면서 이 나한상을 위하여 급작스럽게 전시실을 개조하기도 했다.이번에는 당시 수습한 290점 가운데 37점이 나왔다.이 앞에 서면 발걸음을 쉽게 다른 곳으로 옮기기 어렵다. 특별전은 나한 신앙의 역사로 시작한다.김제에서 출토된 백제시대 승려상과 석굴암의 십대제자상은 아직 나한 신앙이 체계화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그러나 ‘최사위 묘지명’(1075년)에 이르면 ‘나한전’을 언급하기 시작하고,이후 청자나한상이 만들어지는 등 본격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 지은원(知恩院)에서 빌려온 고려시대 오백나한도는 안견의 ‘몽유도원도’(일본 천리대 소장)에 비견할 수 있는 특별전의 하이라이트.석가삼존좌상을 중심으로 가늘고 탄력있게 묘사한 오백나한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고려시대 산수화 기법을 추정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기도 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오백나한도는 우리 문화재가 불행한 역사를 거치며 어떻게 제자리를 떠났는지를 보여준다.중앙박물관의 진보장존자 말고는 일본 도쿄국립박물관·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 등에 흩어져 있는 것을 사진으로 볼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로 넘어가면 우리 나한 신앙의 진면목이 드러난다.선암사 목조건칠나한상을 비롯한 일련의 ‘사람의 모습’을 한 나한상에서는 조선시대 민중불교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콧물을 흘리면서 졸고 있는 석조나한좌상(동아대박물관 소장)은 나한이 갖고 있는 인간적 면모의 극치일 것이다.그런가 하면 분홍빛 테두리가 있는 부드러운 겉옷을 살포시 머리에 둘러감은 조선 후기 목조나한좌상은 성모마리아로 착각할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 같다. 특별전은 주목받지 못했던 나한을 한국인의 심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상징적 존재이자,미술사를 풍요롭게 하는 뛰어난 예술품으로 새롭게 부각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자체 소장 유물이 거의 없는 지역박물관의 어려운 여건에서도 국립박물관의 역할에 걸맞은 전시회가 이루어진 것이 반갑다.(033)260-1524. 춘천 서동철기자 dcsuh@
  • [젊은이 광장] 세대 공감

    TV 인기 프로그램 ‘개그 콘서트’의 한 장면.노란 우비를 입은 연기자들이 뒤뚱거리며 ‘우와∼’를 연발한다.그들은 관객에게 퀴즈를 내는 형식으로 말장난을 하다가 결국 관객을 놀리면서 웃음을 자아낸다.함께 TV를 보고 있던 아버지께서 말씀하신다.“너희는 저런 게 재밌니?” 깔깔거리고 웃던 나는 머쓱해진다.젊은 세대에게 사랑받는 프로그램이지만 기성세대는 통 재미를 느낄 수 없다.어디서 웃어야 할지 난감하다.웃음은 ‘공감’을 바탕으로 할 때 유발된다.부모와 자녀가 함께 웃지 못하는 것은 공감대가 매우 협소하기 때문이다. ‘개그 콘서트’의 각 코너에서 차용하고 있는 촌스러우며,엽기적이고 황당한 웃음의 코드는 인터넷에서 시작되고 발전된 것이기에 인터넷 문화에 익숙지 않은 사람은 쉽게 웃음에 이르기 어렵다.인터넷이 세대간 경험의 공유결합을 약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어느 시대나 세대간의 문화적 차이는 존재했다.그러나 최근에는 인터넷 때문에 이 차이가 더 극대화되고 있다.한국인터넷 정보센터의 6월 정보화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령별 인터넷 이용률은 10,20대가 90%인 반면 30,40대는 각각 60%,40%에 그친다.50대는 9%밖에 되지 않는다.부모 세대는 인터넷을 통해 형성된 문화에서 자연히 소외된다.인터넷에서는 매일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인터넷 가상 공간은 신세대만의 새로운 행동양식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인기 드라마 ‘다모’를 너무 좋아하여 식음을 전폐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다모폐인’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이들은 시청자 의견란에 80만에 육박하는 글을 남길 만큼 의사표현에 적극적이다.다양한 패러디 작품을 만들어 스스로 드라마를 즐기기도 한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유행하던 ‘플래시 몹’도 서울에 상륙했다.이것은 이메일과 휴대전화를 이용해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엉뚱한 행동을 하고 헤어지는 번개모임이다.이같은 네티즌의 행동은 기성세대에게 낯설기만 하다. 인터넷의 득과 실에 대한 사회적 담론은 아직 완성되지 못했다.따라서 네티즌의 행동을 기발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적극적인 의사표현으로 치켜세우거나 사소한 것에 대한 지나친 몰입으로 평가절하하기는 아직 이르다. 중요한 것은 인터넷 문화를 빠르게 흡수한 디지털세대는 이미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작했고,이 과정에서 세대간 단절이 빚어졌다는 것이다.인터넷이라는 뉴 테크놀로지가 세대간의 의사소통을 단절시키는 주범이 된 셈이다. 인터넷 없이 살 수 없는 디지털 세대와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아날로그 세대.그들은 한 시대 한 공간에서 살고 있지만 그들의 경험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며,이것이 오프라인 공간에서 충돌할 때 서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세대간 문화적 코드를 공유하기 위해 더욱 많은 기성세대가 온라인에 접속하기를 바란다.기성세대에게만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 너무 이기적인 발상일까? 그렇지 않다.기성세대가 인터넷이라는 낯선 바다에 용감하게 뛰어들 때 인터넷은 더 이상 신세대의 전유물이 아닌 이 시대의 ‘소통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개그 콘서트’를 보고 모두가 웃을 필요는 없다.그러나 왜 웃는지,왜 웃지 못하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은 서로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홍 지 윤 이대 웹진 Dew 편집위원 언론정보학과 4년
  • 전시 리뷰 / ‘영혼의 여정’ 특별전

    서해안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찾아가기 쉬워진 절 중 하나가 서산 개심사(開心寺)다.상왕산 기슭의 개심사는 전형적인 조선 후기의 산지중정(山地中庭)형 절이다.마당을 중심으로 전각이 사방을 둘러싼 크지 않은 사찰이다. 안양루를 지나 중정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대웅보전이 있고,좌우에 요사채인 심검당과 무량수각이 자리잡았다.조금 떨어진 곳에 명부전이 있다. 불국사로 대표되는 통일신라시대 절은 물론,발굴이 한창인 여주 고달사 같은 고려시대 절 하고도 구조가 다르다.전각이 아주 단출해진 것은 조선시대의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에 따라 불교가 퇴락했기 때문이 아닐까. 2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영혼의 여정-조선시대 불교회화와의 만남’ 특별전은 이런 추측이 사실이 아님을 확인시켜준다.사후 세계를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는 유교의 빈 자리를 조선 불교가 파고들면서 현실의 고통을 내세에서 보상받는 명부전 신앙으로 발전시켰고,신앙 체계에 맞게 공간을 확립시킨 결과가 바로 개심사와 같은 구조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기획 전시실은 대범한 공간 구성이 먼저 눈길을 끈다.가로 242.2㎝,세로 364㎝에 이르는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등 큼직큼직한 유물 40여점으로만 꾸몄다. 전시실은 불화(佛畵)를 통하여 전형적인 조선 후기의 사찰 하나를 표현하려 한 듯하다.실제 절에서는 불화들이 여러 전각에 흩어져 있고,컴컴한 법당 안에서 흐릿한 촛불만으로는 제대로 볼 수 없지만,여기에선 체계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저승사자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명부전(冥府殿)에 들어선 셈이다.지금은 없어진 북한산 태고사에 걸려 있었다는 시왕도(十王圖)는 생전의 죄과를 심판받는 모습이 생생하다.염라대왕 앞에서 자신의 죄과를 비춰보아야 하는 업경대(業鏡臺)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그러나 고통이 가득한 명부전에도 충만한 생명의 기운이 담긴 천진난만한 동자상이 있고,자비를 베풀어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이 계신다. 극락으로의 여정을 가시화한 것이 감로탱(甘露幀)이다.고통받는 영혼을 지옥에서 건져올리는 천상세계의 모습이다.현실세계의 어려움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극락정토에서 설법하는 아미타불,중생을 질병의 고통에서 헤어나게 하는 약사불,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의 모습은 영혼이 궁극적으로 닿아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상징한다. 조선 후기답게 몇몇 그림에서 서양식 명암법의 영향을 느낄 수 있지만 간혹 눈에 띄는 생명력을 잃어버린 표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여래도(四如來圖)를 비롯한 보물 3점도 나왔다.사여래도는 1997년 뉴욕의 소더비 경매에서 71만 7500달러(당시 환율로 6억 3000만원)에 낙찰받아 화제가 됐던 유물이다.특별전은 10월5일까지 계속된다. 서동철 기자 dcsuh@
  • “고려때 꽃피웠던 寫經 원형복원이 꿈”/24년 사경작업 외길 김경호씨

    평생을 단 한 가지 목표에 매달려 사는 것은 쉽지 않다.그것이 남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라면 더욱 힘겨울 수밖에 없다.그러나 그렇게 일궈낸 삶은 훨씬 더 값지다.사경(寫經)연구가 김경호(41)씨는 일찍부터 불모의 영역인 사경에 눈을 떠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있는 인물이다.그냥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지금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새 장르의 문화재를 복원해 의미와 가치를 알리고 전파해야 하는 필생의 사업이 됐다. “사경은 고려 청자보다도 더욱 가치있는 문화재인데도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그 원형 복원 노력과 연구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라는 김씨는 “사경이야말로 우리 문화의 독보적인 우수성을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흔치 않은 문화재”라고 거듭 강조한다. 김씨는 중학교 때부터 불교 경전을 한자 한자 그대로 옮겨 쓰는 사경을 시작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고교시절 출가해 1년간 행자생활을 했으나 부모의 만류로 귀가해 어렵사리 고교를 졸업했다.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사경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입학했지만,기본 자료조차 없는 실정을 개탄해 사라진 문화재의 원형 복원에 고군분투해 왔다.고교 시절부터 치면 24년간 외길을 걸어온 셈이다. 고려사 충렬왕·충선왕·충숙왕조 기사에 따르면 당시 중국 원 조정에서 많게는 한 번에 100명씩 고려에 관리를 파견해 사경을 제작해 갔다고 한다.사경 기술은 중국에서 전래됐지만 전성기인 고려시대의 사경은 서예,회화,금은공예 등 모든 면에서 중국보다 월등한 종합예술로 꽃피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과거 그토록 번성했지만 국내엔 옛 사경을 추적할 만한 기초 자료조차 남아 있지 않습니다.그에 비해 일본에선 오래 전부터 사경연구가 활발히 전개돼 왔지요.” 그동안 국내 박물관을 샅샅이 뒤졌으나 신통한 자료는 찾아볼 수 없었고 일본측 자료에 많이 의존했다고 한다.그런 점에서 현재 호암미술관이 소장한 통일신라기 사경인 국보196호 ‘대방광(大放廣)불화엄경’은 주목할 만한 유물이라고 강조한다.‘대방광불화엄경’은 연대가 분명한 사경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먹으로 쓴 것이면서도 표지 그림과 경 내용을 설명하는 변상도를 금은으로 그려 당시 금은 공예가 얼마나 발달했는가를 잘 보여준다.무엇보다 통일신라기인 일본 천평(天平)시대에 전국적으로 흥했던 일본 사경의 모태가 됐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다. 일본은 우리로부터 사경을 받아 꽃피웠지만 오히려 그것을 건네준 한국에선 그 의미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 형편.내로라하는 일본 사경 연구가들의 정통 사경이라는 것에서조차 원전에서 벗어난 오·탈자와,원 형식과는 다른 모순을 적지 않게 발견한다는 김씨.그의 자부심은 그냥 말만 앞세운 게 아니다.국내는 물론 중국 일본 가리지 않고 사경과 그 기록이 있는 곳이면 빼놓지 않고 발품을 팔아 슬라이드로 정리해놓은 것만 해도 3만여점.지난해 10월엔 자신이 직접 작업한 사경을 중심으로 사경의 모든 형태와 해설을 붙인 교본격인 사경집을 내기도 했다. 6차례의 개인전을 포함해 20여회의 전시를 열면서 이제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에서도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지난 6월에는 한인미주이민 100주년을 기념해LA로터스갤러리에 초대받기도 했다.내년 봄 미국 현지 교인들이 뉴욕 전시를 추진 중이며 일본측에서도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김씨는 단순한 흉내내기가 아니라 우수한 우리의 사경을 원형 그대로 살려내 발전시키는 것에 가장 힘을 기울인다.표지와 발제,경전,변상도로 구성된 양식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다.실제로 그의 사경 작업은 여간 힘든 게 아니다.경전 선택과 원본의 오·탈자를 확인하는 대교 작업부터 작업의 전체 틀과 맞물릴 변상도 구상,닥종이와 금가루에 아교물을 입히고 푸는 데 이어 선을 긋는 계선과 경문쓰기,변상도 그림과 표지,금을 입힌 글자의 광내기인 연마작업…. 요즘엔 한국사경연구회(02-733-8334) 회원들이 자신의 뜻에 동참하고 있는 게 큰 힘이 되고 있다.사경연구회는 동양미술사학과 출신들과 사경에 뜻을 가진 학자,승려들과 함께 지난해 결성했다.서울 연희동에서 서예학원을 운영하는 부인의 수입이 사경작업의 모든 재원이다. 연세대 사회교육원에서 일반인 대상의 강의를 맡고 있고 동아문화센터에도 출강하고 있지만,이는 사경을 알리는 절실한 수단에 불과하다.동국대 대학원에서 사경에 관한 석사 학위 논문을 마무리해야 하지만 그보다는 서예지 등에 사경을 알리기 위한 기사 연재에 매달리느라 쉽지 않다. 사경 작업을 할 때는 며칠 밤낮을 지새우기 일쑤.사경에 몰두하다 보면 1∼2시간 정도만 의자에 앉아 눈을 붙여도 거뜬하지만 작업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몸이 아프다는 김씨.그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나에게 맡겨졌다.천직으로 안다.”며 주섬주섬 사경 도구를 챙겼다. 김성호기자 kimus@
  • 광주 분원백자관 오늘 열어

    “묻혔던 조선백자의 역사가 깨어난다.”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가 조선백자 500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건립한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 ‘분원백자관’이 2일 문을 연다. 옛 분원초등학교 부지에 건립된 백자관은 1층 전시실과 2층 세미나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시실에서는 조선백자 및 분원의 발자취,분원의 과거와 미래,조선백자의 역사 등을 볼 수 있다. 또 전시실에는 ‘백자제작 시연코너’와 분원 출토 도편을 바닥에 전시하는 ‘도편전시’,유물의 매장상태를 보여주는 ‘토층전사’,도자기의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가마형태의 ‘디오라마’(특정한 대상을 전시하기 위해 제작되는 입체모형) 등이 설치됐다. 분원백자관의 관람시간은 오전 10시∼오후 5시30분(동절기 오후 4시30분)이며 1월1일과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관람료는 무료다.(031)766-8465.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
  • 67년전 서울 담은 지도 발견/‘대경성 정도’ 햇빛… 복원작업

    서울시는 일제시대 당시 청계천을 비롯한 서울의 모습을 표기한 ‘대경성 정도(大京城 精圖)’를 발견,복원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31일 밝혔다. 시 지적서고에서 발견된 ‘대경성 정도’는 일제시대인 1936년 8월15일 경성부(현 서울시)가 발간,당시 화폐로 15원에 시중에 판매한 지도다.당시 서울시내 전체의 도로와 철도·하천·농경지 등 토지이용 상황과 학교·공장·경찰서 등 주요 건물들을 6000분의 1 축적으로 모두 32장에 담고 있다. 이에 따라 시는 ‘대경성 정도’를 복원,원본은 시가 보관하고 복사본은 역사자료로서 충북 제천 지적박물관에 제공하는 한편 청계천 주변을 별도 도면으로 제작,청계천 전시관을 통해 일반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지적박물관이나 국립지리원 등에 확인한 결과,현재까지 이 지도를 소장하고 있는 곳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으나 유물적 가치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7) 김우창 -격변기, 지성의 의미와 역할

    “유럽에서 도시공사를 하는데 아주 중요한 것이 역사적인 건물을 그대로 유지하는 거예요.우리나라에서는 그걸 역사적인 유물을 소중하게 보존하려는 것으로 봅니다.엄밀히 보면 그게 아니죠.사람은 자기 사는 환경을 똑같이 유지하고 싶은 거예요.본능적으로.왜 고향이 좋겠어요? 같은 사람,같은 환경,이런 거죠.안정된 삶을 유지하고 싶은 것.좋은 건 고칠 필요가 없어요.그러니 무엇이 나쁘고 무엇이 좋은가를 이야기해야 합니다.보수니 하는데 나는 그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통 모르겠습니다.막 뜯어고치는 걸 좋아해야 하는 건 아니죠.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개혁파도 막 뜯어고치기만 하면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보수파도 나쁜 거 다 그대로 두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참 이해하기 어려워요.사람이 깊이 필요로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이야기해야죠.” 선생께서 인터뷰를 평창동 무슨 호텔 커피숍에서 하자시기에 평창동도 그렇고 호텔도 그렇고 모두 상류층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말인지라 약간 의외라는 생각으로 호텔을 물어 찾아갔다. 그랬더니 호텔이생각했던 것보다 작고 한적하다.어떻게 보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어쩐지 호텔 이름이 생소하더라,했다.아침이라 그런지 손님은 선생과 인터뷰를 하겠다는 나와 녹취를 맡아준 작가 김신우,사진을 맡아준 작가 김상영씨뿐이다. 약속시간인 오전 10시를 약간 넘기면서 김우창 선생이 호텔 로비로 들어오시는데 잠시 산책 나온 듯한 간편한 차림이다.나는 선생께 세상을 보는 눈과 지성의 가치를 묻고 싶었던 참이다.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금방 쉽게 여쭈어볼 수만은 없다.나는 근일의 화제로,정몽헌 현대 아산 회장이 자살했던 사건을 들어 선생의 견해를 물었다.선생은 정몽헌 회장의 죽음에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그와 같은 사회의 지도층이 죽음을 선택할 만큼 우리 사회가 어지럽고 고통스러운 상태임을 강조했다. ●확고한 정책의 두 의미 “오늘의 난맥상은 어디에 원인이 있는 건지요?” “변화란 건 괴로운 거지요.한국사회는 지난 150년 동안 줄곧 변화를 겪어왔습니다.최근에도 급격한 변화에 따른 고통을 맛보고 있는 셈입니다.그런데 변화에서 오는고통과 혼란이 심할수록 정부의 정책이 중요합니다.시민들이,노동자들이 갈팡질팡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정부 정책이 확고하지 못합니다. 확고하다는 건 두 가지로 얘기할 수 있습니다.하나는 소신대로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소신이 국민의 단합을 가져오는 쪽으로 집중된 소신이어야 한다는 거지요.이상한 고집과 소신으로 일관하면 갈등과 혼란은 더 심해집니다.현 정부가 보여주는 것은 정책상의 결핍이라고 생각해요.정부가 보여주지 못한 게 확실한 입장이죠.길을 가기 전에는 이 길이 있고 저 길이 있다,이렇게 이야기하지만 길을 가기 시작한 다음에는 나는 이 길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면 그 길로 가야죠.그걸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중도에 탈락할 거고,또 민주주의 제도가 좋은 건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 새 사람이 나올 수 있다는 거죠.그런데 길을 가기 시작한 사람이 이 길도 있고 저 길도 있다는 식으로 갈피를 못 잡으면 반대하는 사람도 정신이 없고 따라가는 사람도 정신이 없는 거죠.” 선생이 바라보는 정부는 꽤나 혼란스럽고 정신없는 곳이다.이 대목에서 선생은 보다 주제를 넓혀야겠다고 생각하신 듯하다. ●너는 죽어라 나는 안 죽겠다… “우리나라에서는 문제를 한쪽으로 치우쳐 보는 경향이 많은 것 같아요.특히 삶을 ‘집단적 사생활’로 생각하는 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집단이라는 건 늘 개인을 통한 집단이 되어야 합니다.개인도 집단을 통해서 정의되어야 하고.서로 상호작용이 이루어져야 합니다.민족을 위해서 개인이 죽으라고 해도 안 되고 개인만 살고 민족은 죽어도 좋다고 해도 안 됩니다.‘집단적 사생활’을 중요시하면서 그것이 사실은 위선자들의 구실이 될 때가 많습니다.‘우리 집단을 위해서 너 죽어라’할 때는 ‘너는 죽어라,나는 안 죽겠다’하는 의도가 다분하거든요.요즘 신문이나 잡지를 보면 보수,개혁이 많지 않습니까? 나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생전 모르겠습니다.무엇에 관해서 보수적이고 무엇에 관해서 개혁이라고 해야 하는지는 없고 그냥 보수다,개혁이다 하는 거지요.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그냥 보수,개혁 같은 큰 카테고리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요.구체적인 이슈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구체성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자기와 다르면 무조건 보수다,진보다,이렇게 이야기하는 풍토는 사라져야 합니다.” 나는 이쯤에서 화제를 옮겨본다. “선생님을 만나 뵙기 위해서 1992년 ‘솔’ 출판사에서 내신 선집,‘심미적 이성의 탐구’를 일독했습니다.거기에는 ‘궁핍한 시대의 시인’이 다시 게재되어 있었습니다.루시앙 골드만의 ‘비극적 세계관’이라는 것을 소개하신 대목이 인상 깊었습니다.자아의 진실과 세계의 허위 속에서 고뇌하는 인간이 현실에 굽히고 들어가는 것 말고 생각할 수 있는 태도가 세 가지가 있다,첫째는 거짓된 지성을 버리고 세상 너머의 초월적 진실 속에 은폐하는 것이고 둘째는 세상을 뜯어고치기 위해 현실 속에서 행동하는 것이다.셋째는 현실과 진실이 건너뛸 수 없는 심연에 의해서 단절된 것으로밖에 볼 수 없을 때,그때 제3의 비극적인 태도가 나타나는데,그것은 진실의 관점에서는 세상을 완전히 거부하되,그러나 세상의 관점에서는 현실의 것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세계의 진실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세상밖에 서 있을 자리가 없음을 인정하는 자의 길이 바로 ‘비극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의 길이다…,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만.” ●‘궁핍한 시대의 시인’은… “30년 전에 만해 한용운 선생의 시를 읽으며 쓴 글인데 당시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죠.유신이 선포되고 군사정권이 강화되는 상태였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사태에 관심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어요.그런데 나이가 들고 시대가 바뀌면서 생각하면 모든 게 참 쓸모없다는 생각이 듭니다.또 마르크스주의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마르크스는 100년 내지 150년 동안에 일어난 일을 보고 글을 썼습니다.그런데 사람이 지구 위에 사는 게 수십년이거든요.문명이라는 게 시작된 것도 1만년인데 너무 짧게 봤다는 생각이 듭니다.길게 봤을 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참 적다는 생각이 들어요.마르크스는 혁명적인 변화를 통해서 사회를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짤막한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나온 생각인 것 같습니다.이 세상이라는 건 우리가 간단히 생각하고 넘어갈 수 없는,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차원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사람의 판단으로 알 수 없는 것이 많다는 것이죠.그러나 진실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지금도 옳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에 김지하 시인의 시집 ‘중심의 괴로움’에 해설을 붙이신 것을 보았습니다.그 글을 통해서 김지하 시인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 것도 좋았습니다만 더 중요한 것은 김지하라는 하나의 현상을 지켜보는 선생님의 냉철한 태도였습니다.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지성은 어떠한 기능을 할 수 있는 걸까요? 지성이란 일종의 현실과의 거리 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렇지요.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힘,다 냉정하게 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또 한 사회에서 냉정하게 볼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모든 사람이 생활에 너무 각박하게 매달리는 게 좋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예를 들어,살인이 일어났을 때 가족이 그걸 직접 해결하려고 살인범을 잡고 복수를 하고 정의를 가려내려고 하는 것은 상당히 원시적인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죠.가족의 입장에서는 이해해줘야 하는 일이지만,그러나 그걸 직접적으로 당사자나 가족이 해결하는 게 아니라 법을 통해서 해결하는 게 문명사회죠.그러니까 어떤 거리를 갖는 객관성,사회성이 필요한 것이죠. 문명의 방법은 자기가 부닥친 문제를 거리를 갖고 생각하는 겁니다.사회 관습이 문명화되면 그 사회에 소속된 사람들도 그렇게 됩니다.자기 아이를 죽인 사람을 용서하기도 하는 일이 가능한 거죠.사회에 그런 습관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습관이 안 길러진 사회일수록,강퍅한 사회일수록 그게 잘 안 됩니다.그러나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모든 것을 당사자의 관점에서만 보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회의를 가진 사람이 필요합니다.당사자의 입장을 이해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당사자가 제안한 것,당사자가 설명하는 상황,이것이 최종적인 현실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되죠.바로 지성이라는 것은 거리를 가지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을 말하는 거죠.참고 견디는 힘을 기르는 것이죠.일반 사람들도 문제를 초연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심성을 가져야 하고 그 사회의 어떤 부분,지도자층에 있는 사람들도 그것이 필요합니다.그렇게 해서 그런 태도가 하나의 제도가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최근의 주목할 만한 사회적 경향 가운데 하나는 이성이나 이지보다는 감각,육체,욕망의 차원을 중시하고 그것에 따라서 행동하거나 판단하려는 태도인 듯합니다.” ●아직 이성의 가치 신봉 “여러 문화적 풍조상 그걸 나무랄 수만은 없죠.세상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가장 직접적으로 제공해주는 감각적인 세계를 무시하고 모든 걸 논리적인 관점에서 판단해버리면 생활이 무미건조해지고 재미가 없어집니다.그러나 동시에 복잡한 사회일수록 사람이 사회 속에 산다는 현실을 알아야 합니다.나하고 다른 사람 사이에 여러 경계선이 필요하다는 거지요.그런데 그 경계선이라는 게 감각으로는 안 섭니다.합리적·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이란 전체를 파악하는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그 전체 속에 구획을 만들어놓을 줄 아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자유라는 것은 내 맘대로 살되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제한된 자유여야 합니다.내 맘대로 사는 것은 감각적인 자유죠.젊은 사람들이 감각적인 것만 좋아한다면 그 감각적 삶도 불가능하게 되는 혼란만 낳게 될 겁니다.칸트가 한 이야기가 있어요.사람이 서로 같은 걸 좋아하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그러나 사회라는 게 그렇지가 않지요.일례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오스트리아의 황제가 있습니다.나는 참 이 땅을 좋아하고 이 산을 좋아한다고 말합니다.그러니까 프랑스 황제가 우리 친구가 좋아하는 것을 나도 참 좋아한다고 합니다.이렇게 되면 결국 어떻게 되겠습니까? 감각적인 것은 좋은 면이 있습니다.서로 통한다는 것은 좋은 거지요.그러나 감각은 이성이 제공해주는 구별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면이 있습니다.그런 점에서 나는 아직도 이성의 가치를 신봉하는 사람이겠지요.” 선생의 말씀은 평범한 것 같은데도 세상을 오래 살면서 냉철하고도 차분한 생각을 가다듬어온 이력이 묻어난다. 인터뷰를 마치고 선생께서 밖으로 나가시기에 배웅을 해드리려고 호텔 현관 쪽으로 따라 나섰다.자동차를 운전해 왔다면서 열쇠를 꺼내 바로 앞 주차장으로 가셨는데 어느 자동차인가 했더니 낯익기는 하지만 단종된 지가 벌써 오래인 차종이다. 차가 워낙 오래되어 그런지 엔진 소리도 낡아빠진 차답게 괴괴,요란스럽다.그런 차를 몰고 선생은 훌쩍 호텔을 떠나버렸다.나는 사진을 찍어주러 함께 온 김상영 씨에게 물었다.저게 뭔 차죠? 뭐긴,엑셀이지.그렇군요.선생의 소탈함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문학평론가·국민대교수 방교수가 본 펴온가 김우창 전쟁 후의 어려운 시기에 바다를 건너 미국으로 간 1930년대생 가운데 문학 비평을 하는 사람이 둘 있다.하나는 1937년생 김우창이요,다른 하나는 1938년생 백낙청이다. 대개 바다를 건너는 사람들이 그곳 장점에 취해 이곳을 폄하하기 일쑤인데 이 두 사람에게는그것이 없다.이곳이라는 ‘제3세계’ 현실로 돌아와 시대와 함께 사색과 고난의 길을 걸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들이다. 김우창,1937년 전라남도 함평 출생.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와,서울대 정치학과를 다니다 영문과로 옮겨 학교를 졸업하고는 멀리 미국의 코넬대와 하버드대에 유학했다.서울대학교 교수를 거쳐 고려대학교에 재직했으며 얼마 전에 정년을 맞았다. ‘궁핍한 시대의 시인’(1974),‘지상의 척도’(1981),‘시인의 보석’(1992) 등으로 이어진 김우창 비평은 군사정권 아래서 살아가는 지성인의 사색과 고뇌의 깊이,야만적인 세계를 견디는 지성의 힘을 보여주었다. 최근들어 펴낸 비평집 ‘정치와 삶의 세계’(2000)는 그의 사상이 현실적인 세계 속에서 보다 구체화되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 관광공사 추천 9월에 가볼만한 5곳/높아진 하늘 아래 들꽃 하늘하늘 가을향기 흠뻑 느껴볼까

    9월은 가을의 문턱이자 결실을 준비하는 달.초록색 들판은 서서히 황금빛 옷으로 갈아 입고,가을 들꽃이 하나씩 얼굴을 내민다.유독 빠르게 다가온 한가위는 일찌감치 가을 분위기를 돋우고,지방에선 앞다투어 축제를 준비하느라 바쁘다. 이번 달엔 계절의 변화를 피부로 느낄 만한 테마를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한국관광공사가 선별한 9월의 가볼만한 곳 5선을 소개한다. ●수확의 땅 김제 김제에서 가을은 지평선 너머로 온다.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 김제.오곡이 무르익는 9월을 맞아 풍성한 수확의 묘미를 느껴볼 수 있는 곡창지대 김제를 찾아보자. 김제엔 망해사를 비롯하여,식도락가들이 몰려드는 심포항,고찰 금산사,도작문화를 꽃피웠던 벽골제 등이 있어 초가을 나들이로 제격이다. 신라 문무왕때 세웠으나 땅이 무너져 바다에 잠긴 것을 조선 선조때 새로 지었다는 망해사는 나무와 갯벌 바다와 어우러져 자연미짙게 풍기는 사찰.사찰 뒤 망해대에 오르면 심포항과 멀리 군산이 보이고,해질녘 석양도 장관이다.심포항엔 생선회와 자연산 조개를 즐기려는식도락가들이 많이 찾아든다. 백제 비류왕때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벽골제엔 수리민속유물전시관,단야루 및 단야각 등이 조성돼 있어 옛 선조들의 도작 문화를 엿볼 수 있다.10월 2∼5일엔 메뚜기 잡기 및 허수아비 만들기 등 다양한 농촌체험 프로그램과 전통 문화행사를 묶은 지평선축제가 펼쳐지므로,좀더 다양한 즐길거리를 원한다면 이 때 김제를 찾는게 좋다.김제시청 문화관광과(063-540-3221). ●전통문화의 보고,경북 안동 한국을 대표하는 민속마을로 자리잡은 하회마을과 조선조 선비들이 학문을 닦던 서원,수백년 연륜의 종택들이 찾아볼 만하다.특히 부용대에서 바라보는 하회마을 전경,영화 ‘취화선’의 촬영지인 병산서원,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극락전이 있고,영화 ‘동승’을 찍은 봉정사 등은 초가을의 운치를 맛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또 9월 26일부터 10월 5일까지 낙동강변의 주공연장을 중심으로 안동시 일원에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 펼쳐지므로 이때 안동을 찾으면 문화예술의 향기에 취할 수 있다.안동시청 문화관광과(054-8511-6393). ●봉평 문학기행 강원도 평창군 봉평은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이 태어난 곳.9월 초 효석문화마을 일대에 가면 소설의 구절처럼 소금을 뿌린 듯 흐드러지게 메밀꽃이 피어 있다. 알알이 익어가는 옥수수밭과 콩밭,시원하게 흘러내리는 흥정천 계곡물과 전나무,소나무 우거진 계곡 등에서 소설속 주인공들의 흔적을 느껴볼 수 있다.또 곳곳에 100여종의 허브가 농장을 가득 메운 ‘허브나라 농원’,봉평을 배경으로 한 회화작품과 조각품을 전시한 ‘평창무이예술관’,‘덕거연극인촌’에 들르면 가을 향기와 함께 예술에 나타난 봉평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평창군청 문화관광과(033-330-2752). ●진천 장터기행 충북 진천은 아직도 수십년전의 넉넉한 시골장터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진천읍내의 백곡천 고수부지 및 여기에 맞닿은 공터에 5일장이 서면 인근 주민들과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몰려 장터 이곳 저곳을 누빈다. 장터국밥에 막걸리 한 잔이라도 걸치고,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장터의 물건 구경을 하다보면 두서너시간은 훌쩍 지나가게 마련이다.신발가게에선 손바닥 반 만한 흰 고무신이 앙증맞아 발을 멈추게 되고,팔려나가길 기다리는 강아지와 고양이,병아리 등이 귀엽고 불쌍해서 쓰다듬다 보면 한 쪽에선 약장수가 ‘신퉁방퉁 만병통치약’을 선전하느라 열을 올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자연석 다리인 ‘농다리’와 42.7m 높이의 ‘통일대탑’이 있는 사찰 보탑사도 가볼 만 하다.진천군청 문화체육과(043-539-3725). ●용인 야생화 탐방 높아진 하늘 아래 하늘거리는 야생화를 보고 싶으면 경기도 용인시 동남쪽 끝에 자리잡은 한택식물원을 찾아보자.30만여평의 식물원엔 자생식물과 외래종에서부터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식물까지 6000여종의 식물이 살고 있다. 희귀식물로는 꽃 모양의 주머니 같다고 하여 이름이 붙은 ‘복주머니’ 또는 ‘개불알꽃’,다년초인 삿갓나물,근천남성,한라산에 자생하는 한라개승마,진한 자주색을 띤 털부처꽃 등이 볼 만하다.자생 붓꽃과 꽃창포를 전시한 아이리스원,식물원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돌·꽃·식물이 어우러진 암석원도 식물원이 자랑하는 코스다. 한택식물원 말고도 용인에선 어릴적 장승이나 벅수 얼굴을 보고 놀라 도망치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세종옛돌박물관,거대한 불두와 와불이 유명한 와우정사도 들러볼 만 하다.용인시청 문화관광과(031-329-2067) 임창용기자 sdargon@
  • 편집자에게 / “청소년 문신확산 방지에 모두 관심을”

    -“문신도 의료행위”기사(대한매일 8월23일자 10면)를 읽고 문신시술은 최근 들어 현역입영을 기피할 의도로 하는 일부 특정사안 외에 일종의 패션 스타일로 번지는 실정이다.한 통계에 의하면(서울소년분류심사원·1999∼2001년)소년보호 사건으로 법원의 심리를 기다리는 위탁자 중 문신이 있는 자는 남자가 34∼43%,여자가 25∼33%이다.남자는 16세이상일 때,여자는 13세이상일 때 새긴 자가 많았다.문신을 한 동기는 호기심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 중에는 조직의 단결력을 과시하고 상대방에게 공포감을 주고자,가출기간에 선배 강요에 못이겨,남자가 여자에게 자신의 소유물임을 인식시키고자 하는 사례도 있다.내가 만나본 이들 대다수는 후회하지만 적지 않은 비용과 번거로움 등으로 제거 시술을 망설였다. 다행스럽게도 전국 소년원에서는 레이저 시술실을 설치,자체 의료진이 소년원 학생들과 보호관찰 청소년은 물론 시술비용이 부담되는 일반청소년 및 저소득층 등에게 무료로 제거 시술을 해주고 있으며,뜻있는 지역 의료기관도 동참하고 있다. 문신을 하면 두고두고 아픈 상처로 남아 우리 이웃으로 선뜻 돌아오는 데 걸림돌이 된다.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문신 있는 청소년은 제 성향과는 다르게,열등감을 감추려고 지나치게 방어적이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결국 직·간접으로 비행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문신 확산방지에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 /노청한 서울남부보호관찰지소장
  • “사법개혁” 열띤 변호사대회/ “대법관 인사제도 혁신을”

    대한변호사협회는 25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변호사 6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4회 ‘법의 지배를 위한 변호사대회’를 열고 사법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날 대회에는 당초 최종영 대법원장과 대법관제청자문위를 탈퇴해 사법파문의 단초를 연 강금실 법무부장관,박재승 변협 회장이 모두 한 자리에 앉게 될 것으로 관심을 모았으나 강 장관은 화물운송거부 대책을 논의하느라 불참했다.행사주최측인 박 변협 회장은 오전 9시30분쯤 대회장에 도착한 최 대법원장을 귀빈실로 영접,한동안 나란히 소파에 앉았으나 서로 시선을 피하는 듯 어색한 모습을 보였다.최 대법원장은 축사한 뒤 박 변협회장이 기조연설을 시작하기 직전 자리를 떠났다. 박 변협회장은 ‘사법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사법부의 관료주의의 벽을 허물기 위해선 대법관상을 확립하고,재조·재야·기수 등에 구애받지 말고 대법관을 선발하는 인사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박 회장이 대법관 제청 파문과 관련,후보제청 자문위원회를 사퇴한 배경을 소상히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그는 “바람직한 대법관 상에 대한 근본적 논의없이 대법원장이 추천한 인물에 대해 자문을 구하는 운영방식의 폐쇄성 때문에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운영방식의 부당함을 지적하고자 회의엔 참여했지만,법원행정처장이 대법관 제청권은 대법원장의 고유권한이란 주장만 되풀이해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대법원의 사법개혁안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나타냈다.자문위에서 ‘한 발도 물러설 수 없다.’던 대법원이 며칠 만에 ‘사법개혁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돌아선 것이 의아하다는 것이다.그는 “사법개혁이 국민의 뜻에 합당하게 추진되도록 협조,감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최 대법원장은 축사에서 “국민의 사법개혁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대법원의 기능과 역할,법조인 선발 및 양성제도,법관 인사제도,국민의 사법참여 등 개혁 작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 법무장관은 정상명 차관이 대독한 축사를 통해 “법률의 적용과정에 국민을 두루참여시켜 법률을 법률가의 전유물이 아닌 국민 모두의 것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정은주기자 ejung@
  • 와당은 ‘시대의 문화’ 깃든 예술품/ 세계최고 ‘와전 컬렉션’ 꿈꾸는 유창종 변호사

    우리 조상들은 처마 끝에 예술품을 장식하고 살았다.그러나 후손들은 그것을 잘 알지 못했고,알려고도 하지 않았다.그런 무지몽매를 일깨운 사람이 유창종(58) 변호사다. ●기와등 1800여점 중앙박물관 기증 그는 지난해 12월 서울지검장 시절,국립중앙박물관에 25년 넘게 모아온 1873점의 와(瓦·기와) 전(塼·벽돌)을 기증했다.고구려·백제·신라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와전 1100여점,기원전 4세기 전후 전국시대에서 진(秦)·한(漢)을 거쳐 명(明)·청(淸)나라까지 중국 와전 700여점,일본 와전 60여점,태국과 베트남의 와전 10여점이었다. 박물관 직원들은 문화재에 값을 매길 수는 없지만 억지로라도 매긴다면 최소한 2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평가했다. 중앙박물관은 귀한 뜻을 기려 그중 600여점을 선별,지난해 12월24일부터 올 2월16일까지 ‘유창종 기증 기와·전돌’ 전을 열었다.전실을 찾은 사람들은 와전 중에서도 지붕 처마 끝 수키와와 암키와에 달려 있는 와당(瓦當),우리말로 막새의 아름다움을 새삼 깨달았다. 홍익대 미대 교수들조차와당의 문양을 보고 “이렇게 아름다운 줄은 몰랐다.충격을 받았다.”고 했다.입소문이 돌면서 관람객들이 몰려 자원봉사자들은 신이 났고,공무원 신분이어서 주말에만 전실을 찾은 유 변호사는 사인 공세를 받았다. ‘와당 선생’,‘유 도사’ 등의 별명을 갖고 있는 유 변호사를 지난 주말 서울 중구 순화동 법무법인 세종에서 만났다.그는 변호사로 아주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그러나 기와 이야기를 건네자,이제 한국미술사와 고고학을 공부하려면 입문 과정으로 반드시 와당을 공부해야 한다고 열변을 쏟았다. “와당의 아름다움과 미술사적 의미를 모르는 학자들이 많습니다.와당은 그 시대·지역의 건축 및 불교 문화,문화의 이동경로,예술적 특성과 미의식 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예품입니다.당시 종교,철학,사상,권력체제까지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이를테면 발해의 와당은 모두 공통된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데,이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체제가 유지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아울러 발해 와당은 중국이 아니라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어요.발해는 우리 땅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지요.” ●1978년 충주 근무때부터 수집 나서 기와를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1978년 충주지청 검사 시절.당시 충주 중원탑평리칠층석탑 부근에서 와당 파편 몇 점을 수습한 것이 계기였다.대학 때부터 미술사와 문화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후 본격적으로 와당 수집에 나선다.지금은 값이 폭등했지만,당시만 해도 값이 헐한 데다 수량도 적지 않아 공무원 월급으로도 수집이 어렵지 않았다. 79년엔 그의 문화재 답사 모임이 중원고구려비를 발견하는 개가를 올렸고,그가 초대 회장을 맡았던 ‘예성동호회’는 84년에 대한매일의 전신인 서울신문이 제정한 제4회 ‘향토문화상’을 수상했다. 1987년 일본인 의사 이우치(井內)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와당 1082점을 기증하자 와당 수집에 더 몰두했다.그는 이우치 와전실을 둘러볼 때마다 부끄러움과 감사하는 마음,소박한 애국심 등 미묘한 감정이 교차했다고 한다.이런 감정은 나중에 기증 결심으로 이어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와당 파편을 수집한 다음해인 79년 완전한 6엽 연화문 와당을 구했을 때와,2002년 12월 국내엔 유물이 전무한 발해의 와당을 구입했을 때다.2005년에 개관하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자신이 기증한 와당들을 중심으로 발해 전시실을 연다는 계획이다. 기증을 결심한 뒤에는 시대별 또는 지역적으로 귀중한 것이지만 값이 비싸 구하지 못했던 와전들이 마음에 걸렸다.그래서 부인 금기숙(52·홍익대 섬유아트부 교수)씨와 의논해 적금을 해약하고 주식까지 처분해 빠진 와전을 보완했다. 그의 행복관은 어떤 것일까.“인생을 깊이 있고 풍성하게 느끼는 것입니다.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을 해야 하고,더 많이 깨우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능력을 개발해야 합니다.법률가들은 자만심과 논리에만 빠져 우물안 개구리처럼 옹색하기 쉽지요.논리적이면서도 예술가처럼 감성적이어야 인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고가의 와전 사느라 적금도 해약 그는 86년부터 단소를 불기 시작해 상당한 경지에 올라 있다.대검 중앙수사부장 시절,직원들은 아침마다 그의 사무실에서 흘러나오는 영산회상곡 등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단소를 불면 잡념이 사라져 평상심을 되찾을 수 있고 저절로 단전호흡이 돼 건강해진다. 그는 서울지검장으로 재직하던 중 중수부장 시절에 ‘이용호 게이트’를 부실하게 수사했다는 이유로 좌천된 뒤 지난 4월에 31년의 공직생활을 마쳤지만 후배들에게 존경을 받는 몇 안되는 선배다.그는 당시 바르고 당당하게 수사했으며 그것은 후배 검사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그러면서 후배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검찰권은 국민을 위해 있는 것이지요.검찰권 행사의 금도를 넘어서면 안됩니다.휘두를 수 있을 만큼 휘둘러 모든 것을 까발린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검찰권 존재의 의의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는 요즘도 골프를 치지 않는 대신 주말마다 절터를 답사하고 인사동 등 고미술가를 순례한다.한 주만 거르면 가게 주인들이 “지난주에는 왜 나오지 않으셨느냐.”고 물을 정도다.기증 후에 모은 와·전만 200점에 가깝다.계속해서 와전을 모으는 것은 용산 중앙박물관에 들어설 ‘유창종 와·전실’을 세계 최고의와전 컬렉션으로 꾸미기 위한 것이다.딸 영지(28),아들 영상(26)씨도 아버지의 뜻을 이어 대를 이어 와전을 수집해 기증하겠다고 약속했다. 황진선기자 jshwang@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