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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1일 TV 하이라이트]

    ●신년기획 역동! 대한민국(KBS1 오전 10시) 전세계의 신년맞이 현장과 남극 세종기지 등 우리나라 과학전초기지, 축제가 열리는 서울, 여수, 부산을 하나로 잇는 대규모 신년축제의 막이 오른다. 위기와 역경을 극복하고 경제대국으로 성장가두를 달리고 있는 대한민국. 새해를 맞아 전세계를 향해 달리는 대한민국의 역동적인 산업현장을 소개한다.   ●세계명작드라마 와신상담(EBS 오후 8시50분) 월나라는 갑작스런 홍수로 수확량이 줄자 식량난에 허덕이게 된다. 석매는 오나라에서 식량을 빌려오자고 제안한다. 구천의 명을 받은 범려는 식량을 빌리러 오나라로 향한다. 오자서는 부차에게 식량을 내주어서는 안 된다는 간언을 올리고, 이번 재난을 틈타 구천을 잡아들이라 청한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한꺼번에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고대 로마의 거대한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이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했다. 검투사의 대결부터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한 공연까지 새롭게 재현됐다. 공연에 사용된 가면과 청동 조각상, 모자이크 등 이탈리아 전국의 박물관과 바티칸 박물관에서 가져온 70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이산(MBC 오후 9시55분) 화완은 “중전은 이제 산 송장이나 마찬가지”라며 자신의 뜻을 펼칠 생각을 정후겸에게 말한다. 그게 뭐냐고 정후겸이 묻자 화완은 “너라고 용상에 오르지 못할 일이 없지 않냐?”고 대답한다. 한편 절망하던 산은 옛 동무 대수와 송연을 만나 술에 만취해 궐로 들어온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혜빈은 송연을 불러들이는데….   ●미워도 좋아(SBS 오전 8시30분) 태양마트 이곳저곳에는 새해를 알리는 문구들로 장식돼 있고, 동희는 새해 첫출근하는 윤진에게 인사를 하지만 무시당한다. 업무를 점검하던 윤진이 직원에게 동희의 찬방을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했다가 소문난 찬방 매장을 코너로 몰기가 힘들다는 대답을 듣자, 구석으로 못 옮기면 아예 빼버리라고 명령한다.   ●클래식 오디세이(KBS2 밤 12시45분) 왜 초기 CD의 연주시간은 보통 74분일까?기술적인 한계 때문일까? 아니다. 놀랍게도 한 지휘자의 개인적인 결정 때문이었다는데….CD의 연주시간까지도 결정했던 막강한 권력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2008년 탄생 100주년을 맞은 21세기 클래식계의 제왕 카라얀의 음악세계를 돌이켜본다.
  • [기고] 아차산에서 고구려 해맞이를/정송학 서울 광진구청장

    너른 벌판 위를 달리던 한줄기 바람이 갑작스레 숨을 몰아쉬어야 하는 곳. 백두대간의 광주산맥 끝을 이루고 남쪽을 향해 우뚝 솟아 아차(峨嵯)라고 불리는 곳.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품은 채 유유히 흐르는 한강과 함께 고구려인의 기상과 숨결이 가득한 그 곳이 아차산이다.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가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250여년 동안 각축을 벌이다 고구려가 160년간 점령했던 전략적 요충지다. 고구려의 군사보루인 홍련봉을 비롯해 17개의 보루 유적(사적 455호)이 있고, 아차산성(사적 234호), 아차산 봉수대지(서울시 기념물 15호), 신라 의상대사가 문무왕 12년에 창건한 영화사와 천연 암굴 등 유적이 많다. 현재는 평일 5000여명, 휴일 1만여명의 등산객들에게 휴식과 활력의 쉼터로 사랑받고 있다. 서울 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에 내려 오솔길을 따라 약 15분만 오르면 만날 수 있는 아차산에서는 해마다 새해 첫 태양을 바라보며 한해의 소망을 기원하는 해맞이 축제가 열린다. 해맞이를 위해 등산로를 오르다 만난 약수터에서 샘물 한 모금을 마시면 묵었던 고단함이 씻겨지고 정갈한 마음이 든다. 무자년 첫날 오전 7시47분이면 해맞이 광장에서 첫 태양을 볼 수 있다. 아리수를 붉게 물들이며 장엄하게 태양이 떠오르면 한해의 소망을 빌고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우렁찬 환호성이 1500년 전 동북아의 패권을 장악한 고구려의 함성이 되어 울려 퍼진다. 대북타고와 2008개의 풍선이 두둥실 떠올라 해맞이 인파의 꿈과 희망을 싣고 날아오른다. 아차산 정상에서 사방 아래를 둘러보면 길게 누운 용처럼 한강이 흐른다. 경기도 남양주 일대와 서울 강남·송파의 너른 벌판, 남한산이 막힘없이 한눈에 들어오는 탁 트인 곳이다. 팔각정에서 아차산성길로 접어들면 1500년 전 삼국의 흥망성쇠 역사를 간직한 아차산성을 볼 수 있다. 아차산 입구 맞은편에는 홍련봉 1·2보루가 있다.2004년 고려대 매장문화연구소가 발굴한 홍련봉은 남한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고구려의 연화문와당, 토기, 철기 등 문화재가 출토된 곳이다. 아차산에는 17개 보루 가운데 9개의 보루가 광진구에 있다. 이 한반도 남단 최대의 고구려 유적지인 아차산에 고구려 역사공원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아차산 기슭에 그동안 발굴된 유물과 새로 출토될 유물을 체계적으로 전시할 역사박물관을 건립하는 사업이다. 북한, 중국에서 출토된 유물과 유적의 재현 및 온달장군, 평강공주 고분, 강서대묘 고분과 평양성도 재현할 계획이다. 아차산 고구려 역사공원은 단순한 지역사회 문화시설이 아니다.‘미래를 꿈꾸는 국민 모두의 것’이기에 박물관 건립 촉구 범시민서명운동에 1만여명의 시민이 동참했다.10만명의 의지를 모으는 것이 목표다. 이와 함께 역사박물관 건립을 위한 민간기구인 사단법인 ‘아차산고구려역사공원조성추진회’를 발족해 민간 차원의 박물관 지원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역사공원은 송파구에 건립 중인 ‘한성백제박물관’과 강동구의 ‘선사유적지’를 연계한 트라이앵글의 ‘역사·문화·관광벨트’를 구축,1200만명 외국인관광객 시대를 여는 서울 브랜드 마케팅의 충분한 관광자원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2008년 쥐띠 해의 첫날, 해돋이를 보러 교통대란을 겪으며 굳이 먼 지방까지 갈 필요 없다. 새해 첫 새벽에 지하철을 타고 가족, 이웃과 함께 손 맞잡고 출발하자.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선조인 고구려인이 올랐던 길을 따라 아차산에 올라보자. 서울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첫 일출의 감동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보자. 희망찬 새해 첫날 아차산에서 모든 이들의 건강과 행복, 화합과 번영을 기원한다. 정송학 서울 광진구청장
  • 창녕고분의 금귀고리 주인은 ‘젊은 여성’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경남 창녕군 창녕읍 송현동 가야 고분에서 발굴한 금귀고리 차림의 인골(서울신문 12월21일자 17면 보도)은 키 135㎝의 젊은 여성으로 밝혀졌다. 창녕 송현동 15호분은 도굴이 이루어져 유물 대부분은 사라졌지만, 주인공의 시신이나 관을 놓는 시상(屍床)과 순장자 4구의 시신 및 토기를 비롯한 관련 부장품이 남아있었다. 특히 석실 남쪽 벽에 가까운 곳에 놓였던 주인공은 머리를 남쪽, 다리는 북쪽에 둔 데 비하여 반대편에 있던 순장자의 시신은 한결같이 머리를 동쪽에 두고 있었다. 순장자의 시신은 도굴 과정에서 훼손되어 두개골과 발뼈만 남긴 채 몸통 부분은 남아있지 않았는데, 금귀고리는 석실 북쪽에 가장 가까이 있던 인골의 왼쪽 귀에서 발견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기획과 서민석 박사는 15세 이후가 되면 닫히는 성장판이 닫혀 있었고, 치아상태와 골반뼈를 바탕으로 이 인골은 20∼30대 여성의 것이라고 26일 설명했다. 이 인골의 키는 135㎝로 머리나 발의 피부 등을 고려해도 137㎝가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됐다. 한반도에 살던 고대인들의 키가 현재보다는 작았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적지 않지만, 그래도 성인여성으로는 작은 편이다. 가야문화재연구소는 “이번 발굴로 가야 시대 순장 풍습의 일단이 밝혀졌지만 방식의 전모를 파악하려면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세계 분쟁들 공정히 해결되길”

    교황은 베네딕토 16세는 25일 성탄절을 맞아 가난과 불의, 전쟁으로부터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평화와 위안을 기원하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교황은 이날 정오 전례대로 성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서 수만명의 가톨릭 신도들이 운집한 가운데 메시지를 발표하고 “다르푸르와 소말리아, 콩고, 이라크, 이스라엘, 아프가니스탄 등 세계 곳곳의 분쟁들이 공정하게 해결되길 호소한다.”며 세계 평화를 강조했다. 교황은 이어 수많은 인류의 비극이 환경 문제에서 비롯된다며 지구온난화 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교황의 성탄절 메시지는 57개국에 생중계됐다. 앞서 교황은 24일 성베드로 성당에서 집전한 성탄 전야 자정 미사에서도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다.AP,AFP 등 외신에 따르면 교황은 이날 미사에서 “인간은 자신의 소유물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찾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이웃과 가난한 자, 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겨 두지 않는다.”고 일침을 가했다. 교황은 “우리는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시간을 갖고 있는가, 신을 위한 시간을 갖고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진 뒤 “인류는 신이 다가오기를 기다리지만 정작 그 순간이 오면 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17세기 승정원사초 161책 첫 공개

    조선시대 실록 편찬의 기초 자료로 활용된 ‘승정원사초’(承政院史草) 161책이 최초로 일반에 공개된다. 서울역사박물관(관장 김우림)은 광주이씨 문익공(文翼公) 이원정(李元禎)의 종가에서 기증한 유물을 전시하는 ‘광주이씨 옛 종가를 찾아서’ 특별전을 28일부터 내년 2월 24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고 25일 밝혔다. 이번 전시회에는 승정원사초를 비롯해 이원정의 유품인 임금 교서와 교지 등 조선후기 남인(南人)을 대표하는 가문이었던 광주이씨 종가의 기증유물 100여점이 함께 전시된다. 승정원사초는 승정원일기나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하는 데 원고격인 사초(史草)류로, 이원정의 아들 이담명(李聃命)이 승정원과 춘추관에 재직하던 1672∼1675년에 손수 기록한 것이다. 한편 서울역사박물관은 이번 특별전에 맞춰 27∼28일 이틀간 광주이씨 대종회, 한국역사문화연구원 등과 공동으로 `조선시대 광주이씨 인물의 삶과 학문’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도 개최할 예정이다.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완벽 복원된 ‘명나라 황제 의복’ 中서 공개

    최근 중국에서 완벽하게 복원된 명나라시대 황제복이 공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23일 베이징에서 공개된 두 벌의 황제복은 1958년 9월 ‘명십삼릉’(명나라 역대 13 제왕의 능)에서 출토된 것으로 이는 13대 황제인 ‘만력제’(萬曆帝)의 옷이다. 출토 당시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으나 난징(南京)의 비단연구소(云锦研究所)가 16년간의 복원을 통해 화려한 제 모습을 찾았다. 이날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황제가 입던 ‘예복’. 비단연구소 장홍바오 주임은 “황제의 예복은 붉은 색을 위주로 하되 황색과 백색 등 여러 색깔이 혼합되어 있으며 도안이 매우 화려하다.”며 “예복 한 벌에 ‘卍’(만)자 도안이 279개, ‘壽’(수)자가 256개, 둥근 용의 무늬가 12개나 그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료에 근거해 옷의 문양이나 소재를 연구하는데 13년, 제작하는데 3년의 시간이 걸렸다.”며 “그간 복원에 참여한 사람은 무려 1920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 황제복은 다른 어떤 유물보다 완벽하게 복원되었다.”며 “디자인 연구 뿐 아니라 역사적 고증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딥 임팩트’ 예측 우리 기술로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소행성을 발견해 대비하거나, 태양풍으로 인한 통신마비를 예측하는 일은 이제 미국을 비롯한 일부 선진국의 전유물이 아니다. 한국천문연구원은 태양풍에 의한 인공위성 피폭과 통신두절, 소행성 지구 충돌 등 우주재난에 대비하고 독자적인 우주정보 확보를 통해 우주정보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우주감시체계(Space-Watch)’를 구축하고 있다고 20일 밝혔다. 우주감시체계는 태양의 활동과 지구 주변 공간의 변화를 감시하는 ‘우주환경 감시’와 소행성과 혜성 등의 지구충돌 가능성을 예측하고 한반도 상공의 인공위성을 감시하는 ‘우주물체 감시’로 나뉜다. 천문연은 올해 스위스공대와 공동으로 태양전파 관측기를 구축해 10월부터 24시간 태양전파폭발 감시망에 가입했으며 지구 자기권의 변화를 관측하는 지구 자기장 측정기도 보현산천문대에 설치했다.또 2002년과 2005년 연세대와 공동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서덜랜드의 남아공 국립천문대와 호주 사이딩스프링 천문대에 각각 무인관측소를 설치해 남반구 하늘의 소행성을 감시하는 등 우주물체 감시활동도 벌이고 있다.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해 빚어지는 대재앙은 영화 ‘딥 임팩트’로 잘 알려져 있지만 과학자들은 이같은 일이 실제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천문연맹(IAU) 산하 소행성 센터는 지구 최접근 거리 750만㎞ 이내, 크기 150m 이상인 것을 지구위협소행성(PHA)으로 분류해 관리하는데 지금까지 등록된 것만 900여개에 이른다.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한민족생활사관 21일 재개관

    국립민속박물관이 4개월동안에 걸친 관람 환경 및 전시유물 교체 작업을 마치고 제1상설전시실인 한민족생활사관을 21일 재개관한다.새로운 한민족생활사관은 ▲자연 속에서 인간 속으로 ▲영역의 확장 ▲문화의 향유 ▲대중의 등장과 성장 등 4개의 대주제로 꾸며졌다. 특히 그동안 조선시대에 그쳤던 전시 대상 시기를 근·현대까지 확장하여 문화의 전승과 변화를 통하여 역동적인 삶을 구현하고 있는 한국인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21일 오후 2시에는 관람객을 대상으로 설명회도 갖는다.
  • 당신의 페르소나/ 최인호

    한 달 전쯤일까. 어느 날 나는 케이블 TV에서 방영되는 오프라 윈프리 쇼를 보고 있었다. 오프라 윈프리는 십수 년간 시청률 1위를 고수하고 있는 토크쇼의 여왕. ‘인생의 성공 여부는 온전히 개인에게 달려 있다’는 오프라이즘을 낳은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내가 오프라 윈프리를 좋아하는 것은 그녀가 가진 진정성 때문이다. 그녀의 질문이나 대답에는 꾸밈이나 가식이 없다. 상대방이 누구든 혼신의 힘을 다해 듣는 자세라든가, 인간의 심성을 파고드는 예리한 통찰력은 찬탄을 느끼게 하기보다는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시간 있을 때마다 그녀의 쇼를 즐겨 보는 편인데, 그날은 요즘 한창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그레이 아나토미>의 주인공인 흑인배우가 초대 손님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레이 아나토미>는 시애틀의 한 병원에서 일어나는 다양하고 복잡한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는 연속극이다. 나는 한 번도 그 시리즈를 본 적이 없으므로 주인공을 맡고 있는 그 흑인배우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보통 실력 있는 의사 역할은 백인들의 전유물이었는데,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흑인배우가 의사 역할을 맡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사회현상은 미국에서도 보기 드문 것으로, 아마 그런 연유로 오프라 윈프리 쇼에 초대되었던 모양이다. 이때 그 흑인배우는 오프라에게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자신은 이제껏 악역을 도맡아 했다는 것이었다. 마약 밀매업자, 총 맞아 죽거나 고층빌딩에서 떨어져 죽는 범죄인이나 남을 협박하고 폭행하는 폭력배 등 대부분 비참하게 최후를 마감하는 악역전문배우였는데, 이제부터 다시는 악역을 맡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것이었다. 오프라가 이유를 묻자 그 배우는 이렇게 대답한다.“내 영혼이 병드는 것을 느꼈으니까요. 악역을 하면 할수록 제 마음에 악의 기운이 스며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오프라는 이렇게 대답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맞아요. 악역을 하면 자신도 모르게 악의 기운이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하지요. 그래서 나는 언젠가 앤서니 홉킨스에게 더 이상 악역을 맡지 말라고 충고까지 했었어요.” 오프라가 말한 앤서니 홉킨스, 그는 1991년 제작된 <양들의 침묵>이란 영화로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은 미국 최고의 연기파 배우이다. <양들의 침묵>은 환자를 살해한 다음 그 살을 뜯어먹는 엽기적인 정신과 의사의 얘기를 다룬 컬트영화로 광기어린 홉킨스의 무시무시한 연기는 그를 할리우드 사상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도록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이 영화에 출연한 이후 한동안 악몽에 시달리면서 정체성의 혼란으로 큰 고통을 겪었던 것이다. 물론 뛰어난 배우가 되려면 단역이든 악역이든 엑스트라이든 주인공이든 어떤 역할이라도 자신의 몸과 영혼을 송두리째 집중해야 할 것이다. ‘페르소나’란 말은 고대 그리스의 배우들이 연극을 할 때 쓰던 가면을 일컫는 말로 영화에서는 한 감독이 영화에 고정 출연하며 의중을 잘 표현하는 단짝 배우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심리학에서는 자아와 외부세계가 관계를 맺는 사회적 얼굴을 의미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배우가 악역을 할 때에는 악마의 페르소나를 쓰는 것이며, 배우가 의사 역할을 할 때에는 의사의 가면을 쓰는 것이다. 비단 배우가 아니더라도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자아와는 다른 별개의 페르소나를 갖고 있다. 근엄한 성직자의 페르소나를 쓴 악인이 있는가 하면, 교사의 페르소나를 쓴 성추행범들도 있다. 이러한 다면적 인성이야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공통된 모순이겠지만 오프라 윈프리의 말은 그렇다 하더라도 굳이 악의 탈, 악의 가면을 쓸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오프라 윈프리처럼 파란만장하고, 어둡고, 불행한 과거를 보낸 여인은 없다. 그녀는 미시시피의 작은 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났으며, 9세 때 사촌에게 강간당하였다. 그 후 줄곧 몇 명의 친척들과 주변인들에게 계속 성학대와 성폭행을 당했으며, 14세의 나이에 아이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그 아이는 태어난 지 2주일 만에 죽어버린다.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친할머니에게까지 매일 얻어맞으며 성장한 그녀는 그 고통을 잊기 위해서 마약중독자가 되었으며, 이후 감옥에 드나들기 시작한다. 한때는 107킬로그램이 넘는 초대형 뚱보이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프라는 <오즈의 마법사>란 영화에 나오는 착한 마녀가 도로시에게 하는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해 크게 깨닫는다. “그것은 늘 거기에 있었단다. 너는 그 힘을 항상 네 안에 가지고 있었어.” 그 순간 오프라는 자신의 내부에 있는 잠재된 가능성과 희망을 발견한다. 2년 동안 달리기를 통해 68킬로그램으로 줄인 그녀는 보그지 패션모델이 되었으며, 흑인 최초로 앵커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오프라가 발견한 것은 어두운 과거와 상처받은 고통 속에서도 희망이라는 페르소나였던 것이다. 성폭행과 사생아, 흑인, 성희롱, 아이의 죽음, 끊임없이 감옥을 드나드는 전과, 마약중독, 100킬로그램이 넘는 악역을 하면서도 오프라는 끝내 그 악역의 가면, 즉 악마의 페르소나를 벗어던지고 ‘희망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는 진보하는 인생의 가면’을 선택함으로써 기적과 부활의 신화를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생의 승리자가 되려면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과거에 머물러서 그 과거가 지금 당신을 지배하도록 놔둔다면 절대로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흑인 남자배우에게 충고하는 오프라의 말을 들으며 나는 문득 20여 년 전 어느 날 밤 나를 찾아왔던 안성기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무렵 안성기는 깊은 고뇌에 가득 차 있었다. 내게 배우를 계속 할 것인가, 그만둘 것인가를 의논하러 왔는데, 그 심각한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아내가 자신의 정사신을 싫어한다. <깊고 푸른 밤>이후 그러한 요구가 더 강해지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다. 주연배우는 작품이나 감독이 요구하면 어쩔 수 없이 베드신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인데 그것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다. 아내뿐 아니라 자신도 그런 연기에 혐오감을 느낀다. 키스신이야 모르지만 그 이상의 정사신은 도저히 못 할 것 같다. 그러니 어쩌면 좋겠는가. 평소 호형호제하며 깊은 우정을 나누고 있는 안성기가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 무렵 나는 영화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으므로 젊은 감독들이 정사신을 엄격하게 거부하고 있는 안성기에 대해서 불평을 하고 있었던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제작자들이나 감독들은 영화예술을 위해서는 배우는 마땅히 옷을 벗고 작품성을 위해서는 과감한 정사신일지라도 감수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린 여배우들도 젖가슴을 드러내놓고 전라의 촬영도 마지 않는데, 하물며 당대 최고의 배우가 어떻게 베드신을 거부할 수 있겠느냐고 집단 성토까지 하고 있었던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때 서슴지 않고 이렇게 대답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즉 베드신을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영화의 예술에 성性이라는 주제가 중요한 테마임을 나는 물론 잘 알고 있지만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성적 영상이 아니더라도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성적 아름다움이라든가, 성적 욕망을 그려낼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재능 없는 감독들은 흥행적인 요소로 예술성을 빙자하여 성을 노리개로 팔고 있으니,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과감하게 이를 거절하라고 충고하였으며 그 이후 안성기는 과감하게 성의 페르소나를 벗어던졌다. 얼핏 보면 배우로서는 큰 모험을 선택한 위험한 순간일지는 몰라도 성의 페르소나를 벗어던짐으로써 안성기는 오히려 국민배우로서의 페르소나를 획득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앞에는 수천수백의 가면이 있다. 어차피 다중인격의 자아를 가진 인간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마땅히 오프라 윈프리처럼 희망의 가면과 안성기처럼 도덕의 가면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겁한 일이 아니라 용기 있는 일이다. 우리가 악역의 가면을 선택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그 악의 독소에 중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인호 작가는 1975년부터 지금까지 30여 년째 샘터에 <가족>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왕성한 집필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최근 산문집 <꽃밭>을 펴냈습니다. 2007년 12월
  • [책꽂이]

    ●처칠을 읽는 40가지 방법(그레첸 루빈 지음, 윤동구 옮김, 고즈윈 펴냄) 자칭 ‘처칠 광’인 저자가 영국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지도자 처칠의 전기 수백권을 읽고 40가지 주제를 추려내 다시 썼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었지만 실패한 정치인으로, 전쟁광으로도 기억되는 ‘인간 처칠’을 돌아봤다. 명연설가이자 재담꾼이었으나 술꾼에 울보이기도 했던 처칠의 복잡한 면모를 보여준다.1만 2800원.●기빙(Giving)(빌 클린턴 지음, 김태훈 옮김, 물푸레 펴냄) 2004년 자서전 ‘마이 라이프’를 냈던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에 낸 두번째 책.2001년 백악관을 떠나며 클린턴 재단을 설립하고 2005년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를 조직해 지구촌 사회봉사에 나선 그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개인과 비영리 단체들의 현장사례를 소개한다.1만 2000원.●에리히 프롬, 마르크스를 말하다(에리히 프롬 지음, 최재봉 옮김, 에코의서재 펴냄) 마르크스는 과연 오만하고 독선적인 인간이었으며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유물론자, 인간을 획일주의로 몰고 간 비현실적 사회주의자였을까.20세기를 대표하는 인본주의 철학자 에리히 프롬의 마르크스 비평서. 지은이가 본 마르크스는 인간의 정신적 해방을 꿈꾼 정신주의자, 개인주의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 노력한 휴머니스트였다.1만 2000원.●바이블 키워드(J 스티븐 랭 지음, 남경태 옮김, 들녘 펴냄) 성서가 그리스 문명과 함께 오늘의 서양세계를 낳은 근간이란 주장을 펴는 교양서. 구약·신약성서에 언급된 인명, 지명, 사건 등을 500여개의 소주제로 분류하고 해설을 곁들였다. 예컨대 ‘노아’란 소주제어 아래 창세기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소개되고,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원작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설명하는 식이다.2만 5000원.●음모론(데이비드 사우스웰 지음, 이종인 옮김, 이마고 펴냄) 지난 2004년 출간된 책에 사진자료 100장과 새로 대두된 음모론들을 추가한 개정판.9·11 사태, 알카에다, 이라크전, 힐러리 클린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인간복제 등을 둘러싼 음모론을 넣었다. 저자는 음모론의 95%는 쓰레기이지만 나머지 5%가 당신을 한밤중에도 깨어있게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2만원.●힐러리 로댐 클린턴(힐러리 로댐 클린턴 지음, 김석희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2003년에 출간된 힐러리 클린턴 자서전의 한글 개정판으로, 두 권이던 것을 한 권으로 묶었다. 책 출간 후의 독자들 반응에 대해 힐러리가 쓴 글이 서문 뒤에 붙었다.“상원의원으로서 나는 현재와 미래의 모든 미국 어린이들에게 똑같은 선택과 기회와 꿈을 보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썼다.1만 8000원.●조선인 60만 노예가 되다(주돈식 지음, 학고재 펴냄) ‘청나라에 잡혀간 조선 백성의 수난사’란 부제에서 엿볼 수 있듯 병자호란 이후의 조선인 피랍사를 다룬 역사 다큐.60만명이 넘는 조선인이 참혹하게 포로로 끌려간 상황, 효종이 10년 동안 북벌의 꿈을 갈고닦는 과정을 사실(史實) 그대로 복원했다. 가공인물 두 사람을 중심으로 역사적 상황을 재연하는 방식이 돋보인다.1만 3000원.●사해사본의 진실(마이클 베이전트 등 지음, 김문호 옮김, 예담 펴냄) 현존하는 구약성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되는 사해사본. 사해사본 발굴 이면의 감춰진 진실을 추적했다.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으며 예수의 혈통이 비밀리에 이어져 왔다는 주장을 편 ‘성혈과 성배’의 저자들이 다시 공동집필했다.1947년 사해 연안 쿰란 지역에서 발견된 사해문서가 수십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공개되지 않은 사실에서부터 의문을 제기한다.1만 5000원.
  • [사회공헌] 르노삼성자동차-프랑스 문화예술 국내 소개 돋보여

    [사회공헌] 르노삼성자동차-프랑스 문화예술 국내 소개 돋보여

    르노삼성자동차의 사회공헌 활동은 미술·음악 등 문화예술 분야에 집중돼 있다. 클래식과 대중음악 등 장르와 연령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문화예술을 즐기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활동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를 통해 한국사회에 르노의 기업 이미지를 빠르게 정착시킨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이는 2000년 9월 출범 이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통해 시민기업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자.’는 사회공헌 모토를 바탕으로 ‘문화예술=르노삼성’의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 온 결과라고 회사측은 설명한다. 르노그룹이 속한 프랑스의 문화예술을 국내에 소개하기 위한 활동이 두드러진다. 그동안 ‘밀레전’,‘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나폴레옹 유물전’,‘앙리 브레송 사진전’,‘파리나무 십자가 콘서트’,‘파트리샤 카스 콘서트’ 등을 후원해 왔다. 또 한국의 전통 명절인 정월 대보름의 고유한 의미를 되새기고 시민들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대보름 맞이 소망기원 행사’를 기획해 2005년부터 서울 인사동 남인사마당에서 열어 왔다. 2004년부터는 ‘르노삼성차와 함께 하는 한국가요제’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 10월31일 4회 행사를 열었다. 한국의 정신과 혼을 담은 고유문화를 기성 세대뿐 아니라 젊은 세대도 함께 즐기고 확산시켜 우리 문화를 활성화하자는 취지다. 시민들에게 다채로운 문화활동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무료 야외공연인 ‘국립극장 토요 문화광장’도 5회째 후원하고 있다. 어린이 교통안전 캠페인도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전국 주요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차량 및 엔진, 변속기 등을 무상으로 기증해 교재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등 지속적인 산·학 협동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마그나카르타’ 18일 경매

    근대 헌법의 토대가 된 마그나카르타(대헌장) 원본 가운데 하나가 오는 18일 미국 뉴욕에서 경매에 부쳐진다. 경매에 부쳐질 마그나카르타는 텍사스의 억만장자 로스 페로가 1984년 150만달러에 구입한 뒤 재단에 기증한 것이다.1297년엔 영국의 여러 입법을 단행하는 등 국가 기틀을 다졌던 에드워드 1세가 승인한 헌장으로, 현존하는 마그나카르타 가운데 유일한 민간 소유물이자 미국 내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예상가는 최고 3000만 달러(약 27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마그나카르타 원본들 중 일부가 800년만에 처음으로 일반인에게 공개된다.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10만원권 임정요인·무궁화 5만원권 묵포도도

    10만원권 임정요인·무궁화 5만원권 묵포도도

    2009년 상반기 발행될 10만원권 화폐의 보조 도안에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사진과 무궁화, 대동여지도 등이,5만원권에는 신사임당 작품으로 전해지는 ‘묵포도도’와 조선 중기 어몽룡 작품인 ‘월매도’가 각각 잠정 결정됐다. 한국은행은 7일부터 12일까지 보조소재에 대한 국민 검증을 한은 홈페이지(www.bok.ok.kr)에서 접수한다. 한은 홈페이지 국민의견 접수 창구에는 이미 일부 네티즌들이 대동여지도에 대한 반대 의사를 강력하게 개진하고 있다. 한은은 10만원권의 경우 초상인물로 정해진 백범 김구가 독립애국지사로서 상징성을 지닌 점을 감안해 화폐 앞면에는 ‘독립애국’을 주제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의 사진과 함께 무궁화 그림을 담기로 했다. 사진은 1945년 11월3일 중국 충칭(重慶)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에서 찍은 임정 요인들의 환국 기념사진이다. 조소앙·이시영 초대 부통령, 김규식 임정 부주석, 김구, 홍진, 유동열, 해공 신익희 선생 등이 사진 속에 있다. 10만원권의 뒷면에는 평화·통일·번영이란 주제에 맞춰 조선시대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보물 제850호)와 울산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를 보조 소재로 선정했다. 한은 관계자는 “반구대 암각화는 선사시대 유물로 우리 민족의 기개를 상징하고 있다.”면서 “암각화에 등장하는 고래나 호랑이 등의 동물이 지폐에 도안으로 활용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5만원권의 경우 도안 인물인 신사임당이 여성, 문화예술인인 점을 감안해 앞면에는 신사임당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묵포도도’가, 뒷면에는 조선 중기의 화가인 어몽룡의 ‘월매도’가 실린다. 한은은 “신사임당이 생존했던 시기에 매화 그림이 크게 유행했으며 당대 매화그림 가운데 가장 빼어난 작품을 보조소재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적잖은 네티즌들은 ‘대동여지도’가 일본 강점기에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고 지도에 독도가 포함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반대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은은 “대동여지도 원본에 독도가 포함되지 않은 점을 우리도 알고 있다.”면서 “충분히 국민들의 의견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Local] 유성룡 400주기 특별전 열어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은 10일부터 내년 3월2일까지 서애 유성룡 선생 서세(逝世) 400주기 특별전을 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연다고 7일 밝혔다. 이번 전시회는 서애의 종택인 안동 하회마을 충효당 소장 유물을 중심으로 서애의 학덕과 충절을 되새기는 행사로, 그동안 국립중앙박물관(5월29일∼7월8일)과 국립진주박물관(9월11일∼10월28일) 등을 거치며 치러진 순회전시회의 마지막 일정이다. 전시회에서는 징비록(懲毖錄·국보 제132호), 영의정교지(領議政敎旨·보물 제460호) 등 서애의 종택과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자료에서 선별된 50점의 유물이 일반에 선을 보인다. 관람 시간은 동절기(11월∼내년 2월)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절기(3월∼10월)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며 매주 월요일은 쉰다.안동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발터 벤야민 선집

    독일 문예이론가 발터 벤야민(1892∼1940)의 글쓰기는 특정 장르의 경계에 안주하지 않는다. 문학, 철학, 정치학, 미학, 신학, 영화를 가로지르고 형이상학과 형이하학, 신학과 유물론을 넘나든다. 프랑크푸르트학파에서 사상적 자양분을 섭취했고, 저명한 유대신비주의학자 게르솜 숄렘을 통해 신학적 깊이를 더했으며, 죄르지 루카치의 마르크스주의와도 소통한다. 장르를 종횡으로 꿰고 뒤섞는 그의 글쓰기는 난해하기로 악명이 높다. 분과별 학문체계에 익숙한 ‘범인(凡人)’들에게 벤야민의 통합적 글쓰기는 손쉬운 독해를 허락하지 않는다. 벤야민 번역에 오역이 많았던 데는 그의 난공불락 텍스트에도 원인이 있다. 독일에서 벤야민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국내 전공자들의 선집 번역작업이 반가운 것도 이런 까닭이다. 국내의 첫 벤야민 선집 출간이란 점도 의미 있지만, 벤야민 전공자들이 10년간 독해모임을 통해 생산한 결과물이란 점도 평가할 만하다. 총 10권 가운데 1차로 ‘일방통행로/사유이미지’(김영옥·윤미애·최성만 옮김, 길 펴냄),‘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사진의 작은 역사 외’(최성만 옮김),‘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베를린 연대기’(윤미애 옮김) 등 3권이 먼저 출간됐다. ‘일방통행로’는 벤야민의 미완성 대작 ‘파사젠베르크’(일명 ‘아케이드프로젝트’)의 시초로 평가된다. 아케이드, 신유행품점, 패션, 권태, 광고, 수집, 산책자, 도박 등 단편적인 개념들에서 자본주의에 관한 독창적인 사유를 끌어낸 ‘파사젠베르크’처럼,‘일방통행로’ 또한 주유소, 아침식당, 지하실 등의 이미지를 통해 현재성을 포착한다.‘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벤야민의 글 중 가장 잘 알려진 텍스트로 ‘아우라’라는 독창적인 개념을 탄생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영화와 사진 등 시각예술에 누구보다 먼저 주목했다는 점에서 혁명적인 동시에, 현 시대의 유효한 인식틀로 활발하게 재조명되는 글이다.1판,2판,3판 등 세 개의 판본 중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벤야민 스스로 ‘정본’이라고 말한 2판을 완역했다. 각권 1만 50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스타킹을 사랑하는 남자’ 디자이너 김성훈

    치마를 즐겨 입는 여성이라면 색색깔의 스타킹에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지사. 대한민국 여성들이 늘씬한 각선미의 멋쟁이가 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 하겠다는 한 남자가 있다. 국내 최초 남성 스타킹 디자이너 김성훈(29)씨. 그의 작업실을 찾아 특별한 ‘스타킹 사랑’ 이야기를 들어봤다. 남자로서 어떻게 스타킹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갖게 됐는지? 스타킹 디자인을 하기 전에 그래픽 디자인 쪽에 몸 담았었다. 비록 남자지만 예쁘고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고 색채에 굉장히 민감해 자연스럽게 패션 쪽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패션 쪽에서 적은 돈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까 스타킹이었고 그러면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 이 일을 한지는 얼마나 됐나? 내 브랜드를 가지고 정식으로 작업한 지 3년정도 됐다. 그러나 판매와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한 것은 그보다 더 오래됐다. 스타킹 디자인을 하다 보면 오해를 받거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다. 정말 많았다. 처음에는 남자가 여성의 전유물인 스타킹 판매를 한다는 것에 대해 ‘센세이션’까지는 아니어도 충격을 받은 손님들이 더러 있었다. 간혹 독특한 성향의 남자한테 스타킹을 직접 신고 만나줄 수 없겠냐는 메일도 받았었다. 오로지 패션의 관점에서 스타킹에 관심이 있었던 것인데 이상한 뉘앙스를 담은 메일이 와서 충격적이었다.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주위 반응은 어땠나? 디자인회사를 다니다가 우연히 스타킹 관련업체에 일한 적이 있었다. 잘 다니던 직장을 내팽개치고 스타킹 디자인을 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다. 지금은 가장 많이 밀어주시는 분이 부모님이기도 하다. 또 친구나 지인 몇 분은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셨다. 직접 디자인한 것 중에 좋은 반응을 얻은 스타킹은 무엇인가? 간혹 수집용으로 화려한 색채의 스타킹을 만들기도 하지만 평상시 너무 화려하거나 튀는 스타킹을 만들지 않도록 하고 있다. 히트작이 있다면 물감을 흩뿌리는 ‘액션 페인팅’기법을 적용한 스타킹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작업실이 아파트에 있는 15~18㎡(5,6평) 크기의 방에 꾸며졌는데 이 곳에서 보통 어떤 일들을 하는지? 이곳에서 모든 게 생산된다고 보면 된다. 물론 원단은 다른 곳에서 가져오지만 염색부터 디자인까지 내 손을 거친다. 스타킹 제품 촬영과 컴퓨터 작업도 여기에서 이뤄진다. ‘1인 제작 시스템’인 셈이다. 물이 필요한 염색 같은 경우에는 화장실을 적절히 이용한다. 김성훈씨의 스타킹을 찾는 고객들은 (스타킹의) 어떤 점을 마음에 들어 하나? 대부분의 스타킹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일률적인 상품들이다 보니 같은 ‘꽃무늬’ 스타킹을 신은 사람들끼리 마주치는 경우가 많다. 그 때 그 사람들은 왠지 모를 민망함을 느끼고…. 그래서 하나밖에 없을 것 같은 스타킹을 사러 오는 고객들도 많고 전문 디자이너가 직접 만들었다는 점을 선호하는 고객들도 많은 편이다. 홍대 벼룩시장에서도 직접 디자인한 스타킹을 팔았었다고 들었다. 어떨 때 가장 보람을 느끼는지? 아무래도 직접 디자인한 스타킹이 많이 팔렸을 때인 것 같다. 그리고 물건을 사간 분이 기억하고 또 찾아오셨을 때도 너무 감사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타킹 디자인을 위해 특별히 노력하는 부분이 있다면? 스타킹 외적인 부분에도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다. 내 스타킹을 다른 나라에도 선뵐 수 있게 영어공부도 많이 하고 패션 잡지를 즐겨보며 스타일 공부도 많이 한다. 혼자서 하는 작업이다 보니 스타킹뿐만이 아니라 경제와 여성들의 심리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또 개인적으로 많은 느낌이 오는 사진이나 그림들은 책상 위에 붙이고 절대 떼지 않는다. 일종의 영감이랄까. 색상과 이미지에 민감한 편이라 내 나름대로 마음에 와 닿는 것들을 항상 보고 작업한다. 직접 제작한 스타킹을 착용해 보기도 하나? 물론 다리 모형이 있어 완성된 스타킹을 씌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모형은 스타킹의 질감을 알 수 없다. 스타킹 원단의 장단점과 특징을 알아야 할 때는 내 다리를 이용하기도 한다. 작업실에 있는 하이힐의 용도는? 스타킹의 색깔과 구두가 잘 어울리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또 정식 모델은 아니지만 아는 사람의 양해를 구해 이 구두와 스타킹을 직접 신어보도록 부탁한다. 자신의 다리가 짧고 굵다고 생각하는 여성분들은 어떤 스타킹을 신으면 좋을까? 우리나라 여성들은 그렇게 다리가 굵지 않은 편인데…. 정 굵다고 생각하는 손님들에게는 오히려 바지를 입지 말고 치마를 입으라고 권한다. 치마를 입을 때 너무 원색적인 스타킹을 피하고 팽창되는 성질을 가진 하얀색 스타킹은 절대로 신어서는 안 된다. 또 가로무늬보다는 세로무늬의 디자인이 좋을 것이다. 여자친구는 있나? 있다. 이 나이에 있어야 되지 않을까.(웃음) 내 여자친구도 자신의 다리가 굵다고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여성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처음엔 직접 디자인한 스타킹을 신어달라고 했을 때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장 많이 도와주는 나만의 모델이다. 앞으로의 꿈과 계획은? 내가 작업한 스타킹이 더 좋아질 수 있게 또 더 알려질 수 있게 노력하겠다. 개인적인 발전을 위해서 또 대한민국 여성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발로 뛰는 디자이너가 되겠다. 글 /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영상 / 김상인 VJ bowwow@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9) 떠돌이 고아 출신 역관 (曆官) 김영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9) 떠돌이 고아 출신 역관 (曆官) 김영

    관상감은 천문과 지리를 비롯해 달력, 날씨, 시간 등을 맡아보는 관청인데, 영의정이 최고 책임자인 영사(領事)를 겸임할 정도로 중요한 관청이었지만 실제 업무는 중인들이 담당했다. 세조 때에는 관원 65명에 생도 45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영조 때에는 관원 150여명에 생도 60명으로 늘어났다. 경복궁 안과 북부 광화방에 관아가 있었는데, 청사와 함께 관천대(觀天臺)를 비롯한 관측시설이 있었다. 간의(簡儀)를 올려놓고 하늘을 관측하던 관천대는 첨성대(瞻星臺)라고도 불렸는데, 지금도 서울 계동 현대건설 앞에 남아 있는 관천대는 사적 제222호로 지정되었다. 경복궁이 불타버린 조선후기에는 창경궁에 다시 관천대를 만들어 보물 제851호로 지정되었다. ●이상한 별이 나타나면 관측해 기록하다 관상감의 관측제도는 ‘서운관지(書雲觀志)’ 권2 ‘측후(測候)’에 규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밤마다 5명이 숙직하며 관측해 기록했다. 지금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성변등록(星變謄錄)’에도 날마다 5명 관측자의 서명이 남아 있다. 성변(星變)은 별자리에 변화가 생겼다는 뜻. 혜성(彗星)이나 객성(客星)이 나타나면 천문학 관원들이 협의해 영사(領事)에게 알리고 관측을 시작했다. 혜성이 나타날 때부터 사라질 때까지의 움직임과 그 위치를 하루하루 관측하고 기록한 보고서를 성변측후단자(星變測候單子)라고 했으며 이 보고서들을 책으로 묶은 것이 등록(謄錄)이다. 이 보고서는 왕에게 보고되어 국정에 반영되었으므로, 관측자의 이름만 빼고 ‘승정원일기’에 거의 전문을 실었다. 현재 제대로 남아 있는 자료는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성변등록’뿐이다.1723년 9월21일 밤 1경에 여숙(女宿)에 나타난 혜성을 54명이 27일 동안 관측하였고,1759년 3월5일 밤 5경에 위숙(危宿)에 나타난 혜성을 35명이 25일 동안 관측하였으며,1759년 12월23일 밤 1경에 헌원(軒轅)자리에 나타난 객성을 21명이 11일 동안 관측하였다. 중인 출신의 천문학교수만으로는 부족해서 문관들도 많이 참여하였다. 이 가운데 1759년에 출현한 헬리 혜성에 대한 관측 기록은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사료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서울특별시에서 2007년 3월22일자로 ‘성변등록’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2호로 지정하였다. ●중인 역관(曆官)들의 계산에 의해 만들어진 역서 관상감은 천문학·지리학·명과학(命課學)의 3학으로 구성되었다. 이 가운데 천문학이 본학으로 가장 중요시되었다. 정성희 선생은 ‘조선후기 역서의 간행과 반포’라는 논문에서 “천문이나 역법에 대한 중요성이 높은 만큼, 그리고 전문성이 강조되었던 직책이던 관계로 관상감 관원의 실무(失務)에 대한 엄격한 처벌”이 따랐다고 하였다.“전통시대 천문학은 농사 절기에 대한 예보 기능 외에도 천인합일적(天人合一的) 성격도 아울러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일식이나 월식, 오위(五緯 또는 5행성) 등 천문현상에 대한 정확한 예측과 예보가 중요했다.” “1710년에 관상감 관원이 월식 예보를 잘하지 못해 이를 감추려고 천변(天變)이라고 말했다가, 다시 월식으로 정정한 일이 있었다. 이 사실이 발각되자 숙종은 월식을 천변으로 보고한 자와 추산(推算)을 담당한 관원을 처벌하도록 했다.” 역서(曆書)도 관상감에서 만들었는데, 일반 백성들은 천문학보다 역서를 통해 관상감의 존재를 실감했다. 조선초기에 4000여건에 지나지 않던 역서(曆書)가 조선후기에는 1만5000축이 넘게 간행 보급되었다. 일부 계층이 사용하던 역서가 보다 생활 깊숙이 대중적으로 사용되었음을 뜻한다. 물론 관상감 관원들이 종이를 사서 개인적으로 인쇄하여 판매하는 숫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원칙적으로 역서를 위조하거나 제멋대로 인쇄한 자는 사형에 처했는데, 실제로 정조 1년(1777)에 책력을 사조(私造)한 죄로 이동이(李同伊)가 사형을 언도받았다. 역서 간행을 주도한 관원은 성력(星曆)을 계산한 삼역관(三曆官)인데, 삼역관 선발시험에 1등하는 사람을 부연관(赴燕官)으로 임명해, 수시로 북경에 가서 천문기계나 천문서적을 구입하는 특전을 주었다. 관상감 중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천문학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삼역관을 거쳐야 했다. 다른 관상감 기술직은 음양과에 합격하지 않아도 능력이 있으면 선발했는데, 삼역관만은 음양과 출신만 선발할 정도로 전문성이 강조되었다. 정조가 천재 과학자 김영을 삼역관으로 승진시키려 하자, 우의정 윤시동과 여러 역관들이 반대한 이유도 그가 음양과에 합격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사도세자 현륭원을 옮기기 위해 김영이 발탁되다 김영(金泳·1749∼1817)은 농사꾼 출신인데, 어려서 고아가 되어 이리저리 떠돌다 서울에 올라왔다. 중인 신분도 못되는 데다, 말도 어눌하고 용모까지 꾀죄죄했다. 산술(算術)에 타고난 재주가 있어 스승도 없이 혼자 공부했다. 너무 골돌하다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다. 처음에는 산가지를 늘어놓고 계산하다가 ‘기하원본(幾何原本)’을 구해 읽고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 그의 제자 홍길주(洪吉周·1786∼1841)는 스승의 전기를 쓰면서 “혼자 ‘기하원본(幾何原本)’이라는 책 한 권을 가져다 읽은 뒤 그 이치를 모두 터득하여 산수에 있어서는 더 이상 익힐 것이 없게 되었다.”고 했다. 당대에 가장 이름 높았던 산학자 서호수가 관상감 제거(提擧·3품)로 있었는데, 김영의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 몇 가지를 물어본 뒤에 자신의 실력보다 나음을 알았다. 그는 관상감의 책임자였던 영의정 홍낙성에게 김영을 추천해 관원으로 채용하였다. 김영은 그러한 인연으로 뒷날 홍길주의 집에도 드나들게 되었다. 홍길주는 김영이 관상감에 임용된 것은 “정조가 인재 등용하기를 좋아해, 남다른 재주로 이름난 자가 있으면 비록 지극히 미천한 자라도 남김없이 등용하던 시대 분위기 덕분”이라고 했다. 1789년에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현륭원을 수원 화산으로 이장하는데 길일을 잡고 시각을 정하는 데에 문제가 생겼다. 중성(中星)의 위치를 측정한 지 50년이 지나 별자리의 위치가 1도 가까이 어긋나 있었고, 해시계와 물시계의 시간도 실제와 차이가 났다. 관상감사 김익이 8월31일 정조에게 아뢰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했다.“근본적으로 중성의 위치를 추산하여 그 궤도와 도수를 정해야 하는데, 만약 관측기구가 없으면 측정할 근거가 없습니다. 먼저 지평의(地平儀)와 상한의(象限儀) 및 새로운 해시계를 만들어 제대로 측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관상감의 감생 가운데는 제대로 추산할 수 있는 자가 매우 드무니, 역법(曆法)에 정통하다고 알려진 김영을 본감에 소속시켜 이 일에 참여하도록 한다면 실효가 있을 것입니다.” ●음양과를 거치지 않았다고 관상감 관원들이 반대하다 세종대왕이 1434년에 만든 해시계 앙부일구(仰釜日晷)는 이름 그대로 솥 모양을 오목하게 파내고 영침(影針)을 세워 그림자가 변화하는 정도를 살펴 시각을 측정했다. 그런데 김영이 새로 만든 보물 제840호 지평일구(地平日晷)는 이름 그대로 해그림자를 받는 면을 평면으로 고쳐 만들었다. 중국의 지평일구(보물 제839호)가 수입되자, 그 원리를 이용하여 만든 것이다. 그래프 용지에 1㎝ 간격으로 동심원과 10도 간격의 방사선을 그어놓고, 그 중심에 막대를 세워 시간에 따른 그림자의 변화를 보는 형태인데, 반구형 모습의 해시계 앙부일구를 전개하여 평면에 옮겨놓은 것과 똑같다. 김영이 처음 만들어내자 그 이후에도 여러 개가 제작되었는데, 재료는 보통 대리석이나 오석(烏石)을 썼으며, 놋쇠로 휴대용도 만들었다. 정조가 김영을 특채하려고 하자 관상감 관원들이 심하게 반대했는데, 홍길주가 그 사연을 기록했다.“관상감은 천문학과를 두어 사람을 뽑기 때문에 천문학과를 통해 조정에 들어온 자가 아니면 역법(曆法)을 제정하는 역관(曆官)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 임금께서 특명을 내려 김영에게 역법을 제정하게 하시면서 ‘김영같이 남다른 재주를 지닌 자가 아니면 이런 예에 해당될 수 없다.’고 말씀하시니, 김영이 크게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당시 관상감 사람들이 모두 김영을 질시했으며,‘이는 우리 관직의 규율을 무너뜨리는 일이다.’라고 따졌다. 그러나 임금의 명이 있었으므로 끝내 그 누구도 크게 떠들지는 못했다.” ●정조 승하하자 벼슬에서 쫓겨나 굶어 죽다 중인들은 혼인은 물론, 교육과 관직도 몇몇 집안이 주고받았는데, 중인 출신도 아닌 김영이 중인의 전유물인 역관이 되었으므로 반대가 심했다. 서호수가 죽고 정조도 승하하자, 김영은 다른 관직으로 좌천되었다가 벼슬에서 쫓겨났다. 1807년과 1811년에 혜성이 나타나자 조정에서 관상감에 명해 혜성의 운행 도수를 계산해 올리라고 했는데, 아무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김영을 다시 불러들였다. 계산이 끝나자 그는 다시 쫓겨났는데, 그의 전기를 쓴 서유본은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면전에 욕하고, 주먹으로 때리기까지 했다.”고 기록했다. 그가 남의 집 어린아이에게 글을 가르치다 굶어 죽자, 관상감 생도가 그의 원고 상자를 훔쳐갔다. 미처 간행되지 못한 몇 권의 책은 다 없어지고,‘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나 ‘칠정보법(七政步法)’ 같은 책 끝머리에 그의 이름이 붙어 있을 뿐이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자격루 복원한 남문현 건국대 교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자격루 복원한 남문현 건국대 교수

    흥미있는 가정을 불쑥 해본다. 만약 동양의 천재 장영실과 서양의 천재 에디슨이 만났다면?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아마도 우린 현재보다 100년 후의 세계 문명 속에 살고 있지 않을까. 어쨌든 장영실은 시대의 벽에 막힌 불운의 과학자였고, 에디슨은 시대를 초월한 발명가였기 때문에 둘의 만남은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에디슨과 달리 장영실은 오랜 세월이 지난 근래에 이르러서야 위대한 과학자로 새삼 평가받고 있다. 서양에서도 마찬가지. 세계적인 학자 영국의 도널드 힐 박사는 지난 1990년 ‘국제중국과학사학회’에서 “13세기를 대표하는 시계 기술자가 아랍의 알재재리라면 장영실은 15세기를 대표한다.”고 평가한 바 있다. 그러면서 “복잡한 기계를 설계·제작해 의도했던 대로 기능을 발휘하게 했던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또 ‘세종실록’ 보루각기에 보면 “모든 기계(機械)는 감추어져 보이지 않고…”라는 구절과 함께 “영실은 성질이 정교하여 항상 궐내의 공장(工匠) 일을 주관했다.”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장영실은 왕실 최고 장인(匠人)이었다. 이런 장영실이 최근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가 만든 위대한 발명품 물시계 ‘자격루’가 서울 한복판에서 돌기 시작한 것. 꼭 573년의 세월이 흘러 지난 11월28일부터 고궁박물관에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이는 한국 기술발달사, 나아가서는 세계 시계 제작역사에서 차지하는 자리매김을 당당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고궁박물관 재개관 첫날, 작동시간이 미리 시작되는 바람에 약간의 착오가 있었지만 정밀도만큼은 탄복을 자아내게 했다. 관심이 집중된 이날, 오전 11시에 울리기로 된 오시(午時·오전 11시∼오후 1시) 시보는 이보다 앞선 오전 10시45분에 울렸다. 이어 미시(未時·오후 1∼3시)는 낮 12시35분, 신시(申時·오후 3∼5시)는 오후 2시34분, 유시(酉時·오후 5∼7시)는 4시34분쯤에 알렸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 작동이 제대로 안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첫시보가 15분 빨리 시작됐을 뿐 예정된 두 시간 간격에는 오히려 1∼2분 차이에 불과해 당시 자격루가 얼마만큼 정확했는지를 증명했다. 당시에는 현재처럼 시간을 검증하는 시스템조차도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이튿날에는 오전 9시,11시, 그리고 오후 1시,3시,5시 등 매 두 시간마다 불과 1∼3분 차이로 예정대로 시보를 알려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곳을 찾은 외국인들도 한국의 15세기 과학기술 수준에 매우 놀라워했다. 건국대 남문현(65·전기공학) 교수.23년 동안 자격루 원형복원에 헌신적으로 노력한 끝에 573년 전의 발명품을 우리곁에 끌어들인 주인공이다.‘세종실록’에 나와 있는 2000자짜리 문서를 근거로 자격루의 작동원리를 고스란히 밝혀냈다. 게다가 전공분야인 전기공학을 뛰어넘어 천문학, 과학사, 기술사까지 공부하면서 이룬 성과여서 더욱 값지게 여겨진다. 고궁박물관 재개관과 때를 맞춰 남 교수를 만났다. 그는 첫날 작동과 관련, “원래 물시계는 24시간 이상 돌아가야 정상으로 된다.15시간 동안 그대로 놔두었다가 박물관 개방에 맞춰 급히 물을 채우느라 당초 시보 예정보다 약간 빨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하루 이틀 지난 지금은 아주 정상적으로 잘 돌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모 신문에서 ‘타격루’ 운운한 것은 조선시대 과학기술을 폄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아무튼 이번 자격루 복원으로 지하에 있는 세종대왕이 매우 기뻐하겠다고 하자 “세종은 비록 신분이 낮았지만 재능있는 장영실 같은 인물을 귀히 여겼기 때문에 해시계, 물시계, 별시계 등을 발명해 세계 기술사의 한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지 않았느냐.”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어 자격루는 자동 물시계이고 우리나라 최초의 디지털 기계라고 강조했다. “조선 초기에는 시간제도가 이원화돼 있어요. 지구가 한 바퀴를 돌면 24시간이잖아요. 그걸 12로 나누다 보니 12간지가 됐지요. 결국 물시계는 물의 흐름을 지구의 자전속도에 맞춘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생활시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즉 농업시간이죠. 해뜨면 성 밖으로 나와 일하고 해지면 성안으로 들어가는 생활말입니다. 여기에 쓰이는 시간이 경점(更點·1경 오후 7시,5경 오전 3시)입니다. 이때에는 북과 징으로 시간을 알렸지요. 이 역할을 한 것이 자격루입니다.” 예를 들어 성문 닫을 시간(1경3점)에는 북 한번과 징을 세번, 그리고 ‘새날이 밝았으니 문을 열어라.’ 해서(5경3점) 북 다섯번, 징 세번을 울렸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활동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중요한 신호였다. 세종실록(세종16년 7월1일자) 보루각기(報漏閣記)에 보면 자격루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시간을 측정하는 물시계와 종·북·징소리로 알리는 시보장치, 이를 접속하는 방목이라는 디지털신호장치 등으로 구성돼 있음을 기록했다. 또 시보장치 상단에는 시·경·점을 알리는 시보인형(로봇)이 각각 종·북·징을 들고 있으며 때마다 인형들의 팔뚝과 연결된 제어기구가 작동되면서 종·북·징을 울리도록 돼 있다. 이러한 장치는 동력공급, 논리·연산장치들에 의해 자동으로 이뤄진다는 것이 남 교수의 설명이다. 아울러 자격루의 탄생으로 조선 고유의 치안 유지제도인 인정(人定)·파루(罷漏)가 비로소 시행될 수 있었으니 한마디로 디지털 기술의 개가였다고 강조했다. “어려움이야 많았지요. 임진왜란 때 설계도가 타버렸고, 또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들이 중종 때 다시 만든 그림을 태워버렸어요. 남아 있는 건 보루각기하고 국보 229호 유물인 물항아리 3개와 수수호(受水壺)인데 그걸 바탕으로 복원했지요. 또 자료에 보면 ‘(작은 구슬은)탄알만 하다’‘(큰 구슬은)달걀만 하다’고 했는데 토종닭 달걀을 수집하며 크기를 가늠하느라 애를 먹었지요. 고궁 박물관 서준 연구원의 도움도 컸습니다.” 남 교수가 자격루에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1984년, 미국 버클리대 교수의 권유 때문이었다. 자동제어장치 전공자라면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제어장치에 관심 가질 만하지 않으냐는 질문을 받고서였다. 이후 덕수궁에 있는 자격루(중종때 개량)를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나마 1911년 일본인 학자들이 창경궁에 있던 것을 덕수궁으로 옮기면서 물통 등의 배열이 엉망이 됐음을 알게 됐다. 이것을 맞추는 데만 15년. 세월을 거꾸로 더듬어 올라가면서 옛날 방식의 기계 논리를 체득했다. 결국 지난 1997년이 돼서야 문화재청과 함께 본격적인 복원 설계 작업이 시작됐고 전통 단청장, 유기장, 옻칠장 등 무형문화재급 장인과 기계공학자 등 모두 32명이 참여하면서 결실을 보게 됐다. 그는 “물시계가 정확히 작동하려면 물 관리가 필수다. 조선시대에도 자격루 옆에 난방장치를 뒀을 정도로 항온 항습에 주의했다.”면서 “여러 기록을 검토해 보면 당시 우물의 온도는 섭씨 7도, 그리고 실내 온도는 섭씨 20도 정도가 적당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2월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노학자에게 무슨 정년이 있겠느냐면서 “이번에 원형복원된 보루각 자격루 외에 장영실이 또 만든 흠경각 자격루를 복원해야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2년 경기 남양주 출생. ▲61년 국립교통고등학교 졸업. ▲70년 연세대 전기공학 학사. ▲75년 동대학 대학원 공학박사. ▲76∼현재 건국대 전기공학과 교수. ▲80∼81년 미 UC 버클리 전기컴퓨터과학과 초빙교수. ▲93∼2003년 한국기술사연구소장. ▲00∼01년 건국대박물관장. ▲03∼07년 문화재위원회 위원. ▲97∼05년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정회원 겸 이사. ▲04∼현재 사단법인 자격루연구회 이사장. ▲07년 현재 한국기술사료정립위원회 위원.
  • 치아 완벽보존된 신석기 유골 中서 발견

    최근 중국 광시(廣西)성에서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한 신석기 시대의 유물과 유골이 발견돼 고고학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 유골과 유물들이 약 6000년 전인 중기 신석기시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출토된 206구의 유골 중 한 남성의 유골은 이가 완벽히 보존되어 있어 학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고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태아의 유골이 발견되기도 했다. 한 발굴학자는 “이곳에는 신석기 시대의 주거지 형태였던 움집이 매우 잘 보존되어 있었다.”고 밝힌 뒤 “움집 안에서 동물의 뼈로 만든 식탁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전했다. 이어 “요리에 쓰이던 돌과 동물의 피부를 벗길 때 쓰이던 도구 등도 함께 발견되었다.”며 “이처럼 고대인이 생활습관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고분은 역사적으로 흔치 않다.”고 덧붙였다. 또 “조개로 만들어진 목걸이도 함께 발견되었다.”며 “이는 고대 원시인들도 ‘미’를 매우 중시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닻 올린 아차산 고구려역사공원

    닻 올린 아차산 고구려역사공원

    광진구 아차산에 고구려박물관 등 ‘고구려역사공원’을 만드는 사업이 본격화됐다. ‘아차산 고구려역사공원 조성 추진위원회(가칭)’는 29일 구의동 광진문화원에서 발기인 창립총회를 열고 본격적으로 출범했다. 추진위는 아차산 일대 11만 2585㎡ 부지에 고구려역사공원을 만드는 서울시와 광진구의 사업을 지원하면서 국민적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는 역할을 맡는다. 앞으로 고구려의 유물·유적을 정비하고, 관련된 연구·문화·교육·재정 사업에 앞장 서기로 했다. 고구려역사공원에는 박물관(3만 7444㎡), 유적지, 테마공원 등이 조성된다. 총 사업비 828억원이 들지만, 서울시가 단계적으로 예산 지원을 통해 사업을 거들기로 했다. 이성전 광진문화원장 등 발기인 15명은 이날 창립총회에서 노진환 서울신문사 사장을 비상임고문으로 추대하고 이 원장 등 4명을 공동대표로 선출했다.9장, 부칙 5조로 구성된 정관을 채택한 뒤 사업 및 재정 계획에 대해 논의했다. 신형식 상명대 석좌교수는 창립 취지문에서 “고구려는 우리 역사상 가장 웅대한 나라였다.”면서 “온 국민의 성원과 참여로 흩어져 있는 고구려 유물·유적을 한데 모아 고구려의 혼을 아차산에서 부활시키자.”고 선언했다. 정송학 광진구청장은 격려사를 통해 “민족사 정립과 국가 정체성 확립 차원에서 광진구나 서울시가 아닌 국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날 발기인에는 이 원장과 신 석좌교수 외에 최정필 세종대학원 원장, 이장열 서울시문화재위원회 위원, 신길웅 홍일건축 대표, 박동규 동아자동차운전학원 대표 등이 참여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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