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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와 차 한잔] 프랑스 소재 에세이 나란히 펴낸 이중수·강문정 시인 부부

    [저자와 차 한잔] 프랑스 소재 에세이 나란히 펴낸 이중수·강문정 시인 부부

    프랑스 파리에서 20년째 살고 있는 시인 부부가 나란히 책을 냈다. 남편 이중수(48)씨는 ‘그녀가 사랑한 파리’를, 아내 강문정(49)씨는 ‘그가 사랑한 베르사유’라는 제목이다. 샘터사 기획으로 나왔다. 남편의 책은 파리의 랜드마크 22곳에 담긴 이야기를 서정적인 수채화와 함께 소개한 여행 산문집이다. 아내의 책은 프랑스문화의 진수라고 하는 베르사유궁전을 중심으로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의 삶과 사랑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낸 문화에세이다. ●파리에서 20년째 생활… 함께 머리 맞대고 기획 책 출간을 위해 일시 귀국했던 부부를 지난달 19일 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중앙대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하면서 처음 만나 1995년 결혼했다는 이-강 부부. 살짝 들뜬 사춘기 소년 같은 남편, 문학소녀 같은 아내. 왠지 아직 아이가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혹시나 하며 물었다. 역시. 아내가 차분하게 말했다. “결혼할 때 아이는 낳지 말기로 약속했습니다. 대신 어려운 사람들을 돕자. 그리고 좋은 책을 많이 낳고 살자고 했습니다. 이번 책은 우리 부부가 낳은 자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부부가 기획 출판으로 함께 책을 내기는 처음이다. 남편 이씨는 비교문학을 전공한 시인이자 번역가로 많는 시집과 산문집,번역서를 펴냈다. 프랑스문학을 전공한 아내 강씨는 2002년 동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데뷔해 첫 시집으로 ‘양철가슴’을 펴낸 바 있다. 책의 내용이나 성격은 다르지만 부부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기획을 하고 아이디어를 주고 받으며 쓴 자식 같은 책이니만큼 네 책, 내 책이 없었다. ●랜드마크 22곳·베르사유궁 역사 인물 이야기 이씨는 아내의 책 ‘그가 사랑한 베르사유’에 대해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처럼 베르사유궁전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 역사를 서사로 풀어내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언했다.”면서 “초반은 문화에세이지만 3분의2가 역사소설”이라고 설명했다. 강씨는 3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쓴 이 책에서 프랑스 왕조변천사에서부터 위대한 프랑스의 문화와 예술이 살아있는 베르사유 궁전을 거쳐간 역사 속 인물들의 삶과 사랑에 대해 얘기한다. 프랑스가 예술의 나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문화예술 분야에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루이 14세, 사치와 허영에 들뜬 여인으로 치부되며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마리 앙투아네트, 슬픈 운명의 주인공 루이 16세, 마리 앙투아네트를 흠모했던 페르젠백작 등.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쉽고 생생하게 풀어내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베르사유 궁전을 장식하고 있는 그림과 조각, 유물들을 곁들여 다채롭고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인물들이 건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강씨는 “단순하게 역사적 인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 과거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녀가 사랑한 파리’는 남편이 아내에게 보내는 연서나 다름없다. 남편이 아내와의 추억이 깃든 장소들을 골라 그 역사와 배경을 문학적 감각으로 풀어냈다. 바스티유 광장과 생마르탱 운하 등. 조용히 미소 짓고 있던 부인 강씨는 “지금까지 나왔던 수많은 파리 관련 도서와는 전혀 다른 감성과 매력을 선사할 것”이라고 남편의 책을 평했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더니. 함혜리 문화에디터 lotus@seoul.co.kr
  • 부산시 “이승만 기념관 건립 않겠다”

    부산시 “이승만 기념관 건립 않겠다”

    부산시가 서구 부민동에 있는 ‘임시수도 기념관’을 이승만 기념관으로 조성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가 철회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2일 부산시에 따르면 임시수도기념관은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 등으로 사용됐고, 현재 이 전 대통령의 유물과 임시수도 관련 자료 등을 전시하고 있다. 시는 임시수도 기념관의 활성화를 위해 97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2013년까지 인근 옛 부산고검장 관사 자리에다 전시교육관 등을 조성하기로 했다. 전시교육관이 들어서면 임시수도 기념관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논란이 일자 이 계획을 철회한 것이다. 앞서 몇 차례 ‘이승만 기념관’으로 명칭을 변경하자는 주장이 제기됐으나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달 허남식 부산시장이 임시수도 기념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명칭이 적당한지 알아보라.”는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빚어졌다. 부산시 관계자는 “임시수도 기념관 명칭을 이승만 기념관으로 변경하는 문제를 부산시 차원에서 공식 검토한 적이 없다.”면서 “이승만 기념관으로 바꾸자는 의견도 일부 있지만, 여론 등을 고려해 다시는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임시수도 기념관은 1926년 지어져 경남도지사 관사로 활용되다 한국전쟁 때 부산이 임시수도로 정해지며 2년 6개월가량 대통령 관저로 사용됐다. 이 건물은 이후 경남도지사 관사로 다시 돌아갔으나 경남도청이 창원시로 이전되면서 1984년 임시수도 기념관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현재 부산시 기념물 제53호로 지정돼 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씨줄날줄] 물방울 다이아/박홍기 논설위원

    영국 군대가 1866년 네덜란드계 보어인이 지배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빼앗아 식민지를 삼았을 때다. 영국인들은 원주민 아이들이 예쁜 돌멩이를 가지고 노는 것을 봤다. 그리고 아이들의 어머니에게 돌멩이를 팔라고 했다. 어머니는 ‘흔한 돌’이라며 그냥 줬다. 영국인들의 손에 들어간 예쁜 돌멩이는 런던 귀부인들에게 엄청난 값으로 팔렸다. 흔한 돌은 다름 아닌 ‘신비의 돌’ 다이아몬드였다. 다이아몬드는 예로부터 순결·평화·신뢰·영원한 사랑을 상징하는 금강석이었다. 이름 역시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됐을 만큼 역사가 깊다. ‘정복할 수 없는, 두려움이 없는, 대체할 수 없는’이라는 의미를 가진 아다마스(Adamas)가 그 기원이다. 열이나 불에도 녹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천연 광물질 가운데 가장 강하고 비싸다. 보석 중의 으뜸이다. ‘신이 흘린 눈물방울’로 불리며 승리와 성공, 부와 행복의 상징으로 왕관의 중심에 자리잡았다. 특권층의 향유물이 됐다. 다이아몬드 원석은 말 그대로 돌이다. 아름다움을 최대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커팅(cutting·연마)이 필수다. 깎는 비율에 따라 빛과 어우러지는 광채가 달라지는 까닭에서다. 이른바 ‘물방울 다이아몬드’도 커팅 방식의 이름이다. 서양 배 모양인 탓에 ‘페어 셰이프드’(pear shaped)라고도 일컫는다. 다만 물방울 모양을 갖추려면 원석 크기가 일정 정도 이상 되어야 하기 때문에 값비싼 다이아몬드의 대표 격이다. 가격은 등급,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억대를 웃돈다. 물방울 다이아가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것은 1980년대 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인척인 ‘큰손’ 장영자, ‘대도’(大盜) 조세형과 무관하지 않다. 장씨는 “한국엔 단 하나밖에 없다.”는 3캐럿짜리 물방울 다이아를 도난당했다가 찾았다. 1캐럿은 0.2g이다. 조씨는 경찰에 검거됐을 때 5캐럿짜리 물방울 다이아를 지니고 있었다. 5캐럿 다이아의 원소유주는 서슬퍼런 5공 시절 끝내 밝혀지지 않은 채 묻혔다. 한참 잊혔던 물방울 다이아가 화제다. 전 감사원 고위간부가 부산저축은행 측으로부터 청탁 명목으로 물방울 다이아를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부터다. 물방울 다이아가 연루된 사건은 늘 개운치 않았다. 권력층의 부정과 비리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물방울 다이아의 저주다. 언제쯤 물방울 다이아가 부패의 대명사가 아닌 신뢰·사랑이라는 본래의 광채를 되찾을 수 있을까. 안타깝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인사]

    ■행정안전부 ◇부이사관 승진 △조직기획과장 최현덕△정보문화과장 강재만△교부세과장 변성완△정부통합전산센터 운영총괄과장 장영환△대통령실 파견 김용찬△세종특별자치시출범준비단 파견 이재풍 ■통계청 ◇취임 △차장 제정본 ■문화재청 ◇과장급 전보 △행정관리담당관 김계식△규제법무감사팀장 김승한△발굴제도과장 윤순호△고도보존팀장 심영섭△천연기념물과장 김원기△궁능문화재과장 최이태△근대문화재과장 김동영△국외문화재팀장 이길배△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장 최맹식△미술문화재연구실장 정계옥△건축문화재연구실장 배병선△국립고궁박물관 전시홍보과장 이귀영△유물과학과장 김연수△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전시홍보과장 윤광진△세종대왕유적관리소장 최병선 ■부산시 △수영구 부구청장 강재만△시의회사무처 총무담당관 이재학△〃 전문위원 최한원 ■한국건강관리협회 ◇본부장급 승진 △광주·전남지부 본부장 이균익
  • 담철곤 오리온회장 영장 청구

    오리온 그룹 비자금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부장 이중희)는 100억원대 비자금 조성을 지시한 담철곤(56) 회장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25일 밝혔다. 구속 전 피의자심문은 26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검찰에 따르면 담 회장은 부인 이화경(55) 사장과 함께 ‘금고지기’ 조경민(53·구속기소) 전략담당 사장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조씨는 고급 빌라 ‘마크힐스’ 건축 과정에서 비자금 40억 6000만원을 조성하고, 위장계열사 임원 급여 명목으로 돈을 빼돌린 혐의로 지난달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이 돈이 담 회장에게 흘러갔으며, 담 회장이 비자금 조성·관리에 대해 정기적으로 보고를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조씨를 기소하면서 비자금 수수처로 담 회장의 부인 이 사장을 지목하고, 담 회장이 계열사 자금으로 고급 외제차를 빌려 쓴 사실을 적시해 담 회장에 대한 수사를 예고한 바 있다. 이어 담 회장은 지난 23일 검찰에 소환돼 19시간이 넘는 ‘마라톤 조사’를 받았으나 비자금 조성 혐의는 대부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안팎에서는 담 회장 지시를 받은 조씨와 비자금 세탁처 역할을 한 홍송원(58) 서미갤러리 대표가 구속된 상황이라, 담 회장 역시 형평성에 따라 구속될 것이라 관측이 나왔다. 이에 담 회장 측은 계열사 돈 38억여원과 외제차 리스 대금 등을 변제하며 맞섰다. 횡령액이 크더라도 이를 변제하면 불구속되는 전례를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윤갑근 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수사팀에서 보고받은 바 없다.”며 특별한 의미가 없음을 시사했다. 일단 횡령했다가 발각되면 변제 후 불구속 수사를 받는 기업 총수들의 약은 수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셈이다. 이 때문에 형평성 논란도 제기됐다. 지난 16일 130억원대의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한형석(62) 마니커 회장은 횡령액을 변제했다는 이유로 불구속 기소됐는데, 비슷한 사안이 불과 열흘 만에 구속과 불구속으로 나눠졌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외에 담 회장이 회사 돈으로 구입한 고가 그림 10여점을 자택에 걸어둔 것도 횡령에 속한다고 보고 있다. 담 회장 측은 단지 보관만 했을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검찰은 회사 소유물을 자택에 두고 혼자 본 것은 횡령 성격이 짙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또 대부분 그림들이 홍 대표에게서 나온 것이라 비자금 조성과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검찰은 홍 대표를 범죄수익은닉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고 이날 밝혔다. 홍 대표는 조 사장에게서 비자금 40억 6000만원을 건네받고, 허위 회계 등을 통해 돈 세탁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한편 검찰은 비자금 조성과 관련, 이 사장도 조만간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이 사장은 동양그룹 창업주 고 이양구 회장의 둘째 딸이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광주읍성 650년만에 돌아온다

    고려말 왜구 침입에 대비해 축조된 광주읍성이 650여년 만에 복원된다. 광주시는 24일 “옛 전남도청 주변 등 도심 일대에 위치한 광주읍성을 복원해 문화중심도시 사업과 연계한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북 전주·남원,전남 나주와 함께 전라도 4대 성곽으로 꼽히고 있는 광주읍성은 출토 유물 등을 근거로 볼 때 고려 우왕 4년인 1378년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은 가로와 세로 40~60㎝ 규모의 돌과 흙을 이용해 쌓았다. 높이 2.73m, 둘레 2.5㎞ 규모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읍성터에 성문 4개와 우물 100곳, 관아, 향청, 객사, 향교 등 행정기관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성곽은 일제에 의해 헐리고 도로가 생겼다. 시는 이에 따라 국비 50억원을 들여 동구 장동 현 전남여고 인근 서원문(동문)을 올해 광주디자인비엔날레와 연계해 추진 중인 ‘어번프로젝트’(Urban Project)의 하나로 우선 복원할 방침이다. 시는 사업비 622억원을 단계적으로 투입해 최소한 4대문과 일부 성벽을 복원한다는 구상이다. 시 관계자는 “도심재생과 관광 활성화 방안으로 이번 성곽 복원사업을 추진키로 했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화성서 신석기 움집터 26기 발견

    경기 화성에서 대규모 신석기시대 마을 유적이 발견됐다. 신석기시대 주거 형태와 마을 규모를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 중부고고학연구소는 24일 “경기 화성시 마도면 석교리 일대를 발굴조사한 결과 신석기시대 움집터 26기 등을 확인했다.”면서 “주거지 개별유구와 출토유물의 철저한 분석을 통한 취락의 동시기성 문제와 성격 등에 접근함으로써 중서부 지역 신석기시대 취락의 면모를 밝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발 20~30m 구릉에서 발견된 유적지 바닥 형태는 원형과 사각형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주거 형태는조금 다르긴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북쪽 11기, 남쪽 15기를 조성한 것으로 확인돼 신석기시대 마을 형태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이와 함께 탄화 상태의 도토리와 갈돌, 갈판 등을 발굴해 신석기시대부터 도토리묵을 먹었다는 결론을 이끌어 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관록 꽃중년, 파릇 꽃청년 ‘꽃남전쟁’

    관록 꽃중년, 파릇 꽃청년 ‘꽃남전쟁’

    패기의 20대냐, 관록의 40대냐. 안방극장의 남자 배우 격돌이 흥미진진하다. 관록으로 무장한 40대 ‘꽃중년’들이 주말극은 물론 미니시리즈 주연까지 꿰차자, 패기를 앞세운 20대 ‘꽃남’ 스타들이 반기를 들고 나선 것. 마흔 안팎 남배우들의 존재감을 확연히 드러내준 삼총사는 차승원(41), 김승우(42), 김석훈(39)이다. 이들은 20대 청춘 스타들의 전유물이었던 밤 10시대 미니시리즈의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 드라마의 주연으로 활동하고 있다. 30대 후반이나 40대에 접어들면 멜로보다는 성격파 배우로 전향하거나 조연급 연기자로 한발짝 물러나는 과거 사례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대목이다. # 30대 후반~40대 꽃남의 로맨스 MBC 수·목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 출연 중인 차승원은 이기적이고 깐깐한 톱스타 독고진 역을 맡아 특유의 코미디와 진지한 멜로를 오가는 연기력으로 호평받고 있다. 특히 그가 입에 달고 다니는 대사 “나, 독고진이야.”는 이미 유행어 반열에 올랐다. 드라마 ‘아테나’와 영화 ‘포화속으로’ 등을 통해 카리스마 있는 연기로 변신을 꾀했던 그는 데뷔 초기 자신의 장기였던 코미디를 다시 살려 입체감 있는 캐릭터를 그리고 있다. 김승우는 오는 30일 첫방송하는 MBC 새 월·화 드라마 ‘미스 리플리’에서 능력 있는 호텔 총지배인 장명훈 역을 맡아 정통 멜로 주연에 도전한다. 김승우는 “내가 데뷔할 때만 해도 30살이 넘으면 주인공을 못한다고 했었다.”면서 “나이에 걸맞은 역할을 통해 깊이감 있는 연기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주말에는 김석훈이 여심을 꽉 잡고 있다. MBC 주말연속극 ‘반짝반짝 빛나는’에서 ‘송편’(송승준 편집장) 역으로 나오는 그는 까칠하지만 우직한 매력이 있는 캐릭터를 잘 살려내며 왕년의 인기를 회복하고 있다. 극 중 정원(김현주)과의 로맨스가 급진전되면서 시청률도 20%를 돌파했다. # 솜털 막 가신 20대 초반의 꽃남 이에 대항하는 20대 스타들도 만만치 않다. 그 선두에는 청춘스타 이민호(24)가 있다. 25일 첫방송되는 SBS 새 수·목 드라마 ‘시티헌터’를 통해 1년여 만에 안방극장에 돌아온다. 그는 청와대 국가지도통신망팀 요원이라는 신분을 숨기고 도시의 ‘해결사’ 역할을 하는 이윤성 역을 맡아 전작 ‘꽃보다 남자’, ‘개인의 취향’ 등과는 다른 거친 매력으로 승부한다. ‘한국형 액션 히어로’를 연기하게 된 그는 “액션과 멜로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사람의 본질적인 측면을 다양하게 표현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미스 리플리’의 박유천(25)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을 통해 연기자로 성공적으로 데뷔한 그는 이번 작품에서 배려 깊고 섬세한 성격과 능력을 갖춘 리조트 후계자 유타카 역을 맡아 또 한번의 바람몰이에 도전한다. 같은 드라마에서 대선배인 김승우와 매력 대결을 펼치게 된 그는 “김승우 선배님이 워낙 강한 느낌을 갖고 있어서 부담을 느끼지만, 상반되는 캐릭터인 유타카의 느낌을 잘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회가 거듭될수록 눈물과 웃음이 교차하는 인물의 내면을 잘 표현할 테니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아이돌 그룹 씨앤블루의 리더 정용화(22)는 다음 달 방송되는 MBC 새 수·목 드라마 ‘넌 내게 반했어’의 주연을 맡는다. ‘풀하우스’, ‘그들이 사는 세상’ 등을 연출한 표민수 피디의 신작으로 예술대학 학생들의 꿈과 사랑을 담는다. 정용화는 ‘꽃미남’ 밴드 보컬로 여학생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실용음악과 학생 이신 역을 연기한다. # 군복무 스타들 대신해 40대 약진 방송가는 이 같은 남배우들의 격돌에 크게 반색하는 분위기다. 우선 시청층 다변화를 기대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스 리플리’ 연출을 맡은 최이섭 MBC 피디는 “소재 확대 차원에서도 20대의 삶뿐만 아니라 그 이후 나이대의 삶도 드라마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멜로야말로 배우의 연기력이 중요한 장르이기 때문에 40대 연기자들이 깊이 있는 연기 관록을 선보인다면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시청자들의 공감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40대의 약진에는 ‘20대 기근 현상’ 요인이 자리한다는 분석도 있다. 20대 남자 배우들이 잇따라 군대에 입대해 안방극장은 물론 충무로에도 젊은 남자 배우 기근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티헌터’의 김영섭 SBS 책임 프로듀서(CP)는 “미니시리즈는 기본적으로 젊은 장르이기 때문에 20대 배우의 젊고 신선한 이미지를 필요로 하지만, 배우 기근 현상과 함께 신인 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그들의 희소가치는 높아졌다.”면서 “그동안 수요에 비해 공급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40대 배우들이 공백을 메운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20대 스타들의 폭발 효과와 영향력은 훨씬 강력하다.”고 말했다. 아직 군대에 가지 않았거나 갓 제대한 20대 스타들의 희소가치는 당분간 더 높아질 것이라는 진단이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세계문화유산 ‘사유물’ 전락 비난 봇물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이 부속 궁원에 이어 황실 별장이었던 허베이(河北)성 청더(承德)의 피서산장 경내에 부자들을 위한 호화 프라이빗클럽을 건설해 운영하려던 계획이 폭로돼 물의를 빚고 있다. 문화유산이 특정인들을 위한 사유물로 전락했다는 비난이 고조되고 있다. 19일 허베이성 일간 옌자오두스바오(燕趙都市報)에 따르면 피서산장은 ‘황가회관’(皇家會館)이라는 호화판 별장을 건설 중이며 다음 달 중순 개장을 앞두고 있다. 피서산장은 세계 최대의 황실 별장으로 경관이 빼어나 경내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18세기 후반 조선 문인 연암 박지원이 방문해 ‘열하일기’를 남긴 유적지이기도 하다. 신문에 따르면 ‘황가회관’은 지난해 5월 공사가 시작돼 다음 달 개장을 앞두고 VIP 회원을 모집 중이다. 황가회관은 20만 위안(약 3340만원) 상당의 회원권을 100명에게 한정 판매하면서 이들에게 스위트룸, 황실 연회, 프랑스 요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었다. 특별 회원들은 가입비 이외에 매년 10만 위안을 추가로 내야 한다. 대지 3만 8000㎡, 건축 면적 7300㎡의 황가회관에는 고급 식당과 카페, 헬스장, 온천, 영화·음악 감상실 등을 갖추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청더시 문물국과 청더시 건설투자집단 합작으로 건설 중이며 운영은 황가회관공사라는 회사에서 맡을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가 커지자 청더시는 “계약 위반이며 회원 모집을 즉각 중지시키겠다.”고 밝혔다. 피서산장 측도 “프라이빗클럽 운영 허가를 내준 적이 없다.”면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담당 업체가 (회원 모집) 광고를 낸 것 같다.”고 해명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규장각 소장품 소유권 놓고 충돌

    서울대와 문화재청이 규장각 소장 문화재의 소유권을 놓고 충돌하고 있다. 서울대는 법인화 이후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된 ‘비지정 문화재’의 소유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문화재청은 서울대 법인화법에 명시된 대로 국가 소유가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19일 서울대 등에 따르면 현재 서울대 규장각이 소유하고 있는 자료는 ▲국보 7종 ▲보물 8종 ▲고도서 18만여책 ▲고문서 5만여장 ▲책판 1만 8000장 등 모두 27만여점에 이른다. 여기에 서울대 박물관에도 4종의 보물과 함께 수만점의 문화재가 소장돼 있다. 이 가운데 국보와 보물 등 ‘지정 문화재’의 경우 서울대 법인화 과정에서 정부가 돌려받게 된다. 하지만 비지정 문화재를 두고 서울대와 문화재청이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비지정 문화재는 시·도 조례에 따라 지정되지 않은 문화재 가운데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를 말한다. 서울대는 지정된 문화재 이외에 다른 문화재는 국가가 돌려받을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송기호 서울대 박물관장은 “학내 법인화 공청회에서 문화재 소유권을 서울대가 가져와야 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면서 “연구와 교육을 위해서라도 국가 소유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반면 문화재청은 비지정 문화재라도 민족문화 자산인 만큼 소유권은 당연히 국가에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서울대 법인화법을 만들 당시 문화재에 대해서는 (서울대에) 양도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분명히 했다.”면서 “서울대 규장각 등에 소장된 문화재는 대부분 국고로 확보·관리하고 있으며, 국가 소유라도 다시 규장각 등에 위탁관리할 텐데 왜 서울대가 소유권에 집착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서울대와 문화재청의 입장이 맞서는 것은 법 해석의 차이 때문이다. 서울대 법인화법 22조에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문화재를 제외한 국유재산 중 대학 운용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무상 양도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를 두고 서울대는 “문화재라는 범위가 너무 포괄적”이라고 판단하는 반면 문화재청은 “문화재 범위를 협소하게 해석한 것”이라고 맞서고 있는 것이다. 두 기관의 대립이 관심을 끄는 것은 해당 문화재의 역사적 가치가 작지 않은 데다 규장각에 소장된 비지정 문화재에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 유산인 ‘조선왕실의궤’와 비변사 및 의정부 등록 등 중요 기록물이 포함돼 있어서다. 또 서울대 박물관에도 근역서휘(서예집)와 고구려 토기 등 중요한 문화재가 많다. 학계에서는 이들 유물이 문화재로 등록되지는 않았지만 학술적·문화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한다. 유홍준 명지대 교수는 “철도청이 코레일로 바뀔 때 옛 서울역사가 국가로 귀속됐다.”면서 “(서울대가) 주장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 국가 소유의 문화재는 당연히 국가로 와야 한다.”고 말했다. 한 법률 전문가는 “일단 문화재보호법의 문화재 정의를 따르는 것이 맞지만 사안이 특수한 만큼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멕시코에서 ‘마야 유적지’ 무더기 발견

    멕시코에서 ‘마야 유적지’ 무더기 발견

    멕시코에서 마야 유적지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발굴된 유물은 B.C 400년에서 A.C 200년 사이의 것으로 추정된다. 멕시코 남동부 유타칸 주의 북부지역에서 마야 유적지 7곳을 발견했다고 멕시코 국립역사인류학연구소가 18일(현지시간) 밝혔다. 유물, 무덤이 대거 발견된 곳은 주도 메리다로부터 약 5km 떨어진 시트파치라는 농촌마을 주변으로 유적지 면적은 7곳을 합쳐 약 1000헥타르에 이른다. 특히 유적지 가운데 옥스물이라고 불리는 곳에선 질그릇 등과 함께 무덤 75개가 줄줄이 발견돼 고고학계를 설레게 하고 있다. 한편 유타칸 북부지역에서 마야문명의 확실한 흔적이 발견됨에 따라 마야역사는 부분적인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이에 대해 멕시코 국립역사인류학연구소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마야문명이 200-600년부터 유타칸 북부에 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해 왔지만 이번 발견으로 기원전 400년부터 마야문명이 이곳서 생활했다는 게 증명됐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이용원칼럼] 그래도 5·16은 쿠데타다

    [이용원칼럼] 그래도 5·16은 쿠데타다

    5·16 50주년을 맞아 재평가가 한창이다. 5·16을 옹호하는 이들의 논리는 대략 이렇다. 군대를 동원해 정권을 장악한 방식으로 보면 쿠데타이지만 근대화를 이루어 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는 혁명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5·16에 대한 평가는 곧 ‘박정희 평가’다. 박정희 집권 18년의 그늘이 워낙 넓고 깊기에, 박정희가 5·16을 주도한 인물이라는 의미보다는 5·16이 도리어 박정희를 탄생시킨 ‘사건’으로 인식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정희의 삶을 되짚는 일이 5·16의 역사성을 판단하는 데 훨씬 유효하다. 1961년 5·16을 일으킨 박정희 세력은 그 명분으로 당시 제2공화국의 장면 정부가 무능하고 부패했기 때문이라고 내세웠다. 그러나 군사정권이 몇 달 뒤 발표한 ‘장(張)정권 비리’는 김모 내무부장관이 냉장고-사실은 아이스박스-한 대를 뇌물로 받았다는 것뿐이었다. 발표거리가 고작 냉장고 한 대였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장면 정부가 얼마나 깨끗했는지를 보여준다(이용원 저 ‘제2공화국과 장면’-범우사 1999년 간-에서 인용). ‘무능’은 ‘부패’와 달리 수치로 나타나지 않기에 시대상의 변화로 가늠할 수밖에 없다. 장면 정부는 4·19혁명의 결과로 태어났다. 따라서 초기에는 ‘데모로 날이 새고 데모로 날이 질’ 만큼 혼란상이 극심했다. 하지만 갈수록 줄어들어 ‘1961년 3월 즈음에는 사회가 안정돼 갔다.’(조광 고려대 교수)는 식의 증언이 적지 않다. 오히려 ‘사회가 다소 혼란했지만 데모를 존중해 경찰이 절대로 강권을 동원하지 않았다.’는 장면 측 인사의 표현이 ‘무능’의 실체에 가까웠을 터이다. 이젠 ‘박정희 신화’에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경제성장의 업적을 따져보자. 경제성장은 박정희 정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장면 정부는 1960년 9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을 발표했고 이듬해 4월에는 미국이 이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박정희 세력이 집권하면서 한 일은 이미 완성된 ‘개발 계획서’의 표지를 바꾸고 성장 목표를 연 6.1%에서 7.1%로 높인 것뿐이었다. 박정희를 지지하는 이들은 경제성장을 이루는 데 강력한 지도력-독재의 다른 표현-은 필수라고 역설한다. 박정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경제성장의 기적은 불가능했으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장면 정부가 경제개발을 시작하고, 역시 선거로 뽑힌 후속 정부가 개발사업을 이어받는다고 해서 성장을 이루지 못했으리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백보 양보해서 강력한 지도력을 일정 부분 인정한다 해도 우리는 ‘민주화와 동반하지 않은 경제성장’의 후유증인 사회 양극화, 노동 가치의 상실, 부정부패, 도덕적 타락 등을 지금도 몸서리치게 앓고 있다.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박정희의 과(過)는 두드러진다. 1963년 군정(軍政)을 끝내면서 그는 원대복귀를 약속하지만 이를 어기고 대통령에 출마해 2회 연속 당선한다. 이어 1969년에는 ‘3선 개헌’을 해 세 번째로 권좌에 앉더니 결국 1972년 ‘유신헌법’을 만들어 종신 집권 체제를 갖춘다. 그 과정을 보면 박정희는 지구상에 명멸한 그 많은 독재자의 하나에 불과하다. 박정희의 끝없는 집권욕은 숱한 희생자를 만들어냈다. 그 정점은, 사후 7개월 만에 벌어진 광주민주항쟁이다. 대한민국 국군이 국민에게 총질을 해댄 그 참극은 박정희의 후계자 전두환이 벌인 일이다. 하지만 그 뿌리는 박정희와 5·16에 있음을 역사는 부인하지 않을 터이다. 아울러 1960년 국민이 민주주의를 직접 쟁취한 4·19혁명이 미완(未完)으로 끝나 27년 만에야 6월항쟁으로 되살아난 까닭도 박정희 세력이 역사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려놓았기 때문이다. 광주민주항쟁 31돌을 맞은 아침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박정희와 5·16을 두고 왈가왈부한다.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또 남녘 땅 이름 없는 산하 한 자락에 묻힌 영령들에게 오로지 부끄러울 따름이다. ywyi@seoul.co.kr
  • 잘나가는 종교 다큐… 비결은 ‘휴먼스토리’

    잘나가는 종교 다큐… 비결은 ‘휴먼스토리’

    종교 영화는 극장가에서 그리 대접받지 못한다. ‘미션’(1986),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 등 예외가 있긴 하지만, 흥행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물며 종교 다큐멘터리는 스크린에 걸기조차 어려운, 말 그대로 찬밥 신세였다. 그러다 보니 교회나 성당에서 교인끼리 공동 관람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랬던 종교 다큐가 최근 들어 상업적인 경쟁력을 지닌 장르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2년 새 10만명 안팎을 동원한 작품만 해도 독일 다큐멘터리 ‘위대한 침묵’ 등 4편이나 된다. 이쯤 되면 다큐멘터리로는 ‘초대박’ 수준이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는 ‘바보야’와 고 법정 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법정스님의 의자’가 5월 극장가에 나란히 걸린 것도 이 같은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김수환 추기경·법정스님 5월 극장가 나란히 휴먼 다큐멘터리의 성격이 강한 ‘법정스님의 의자’는 지난 12일 CGV의 다양성영화전용관인 무비꼴라쥬 9개관에서 개봉했다. 19일부터는 전국의 예술영화 전용관 등 8개관이 더 늘어난다. 지난달 21일 개봉한 ‘바보야’는 17일 현재 1만 5758명을 불러모으는 등 순항 중이다. 영화계는 이렇듯 소리 없이 약진하는 종교 다큐의 힘을 우선 ‘휴먼 스토리’에서 찾는다. ‘법정스님의 의자’ 마케팅을 맡은 키노아이DMC 박주원 대리는 “(작품이) 특정 종교색을 띠기보다는 보편적인 수행자의 삶을 그린 휴먼 다큐멘터리에 가까워서 폭넓은 공감을 얻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종교 다큐는 물론, 독립영화를 통틀어 ‘워낭소리’(2009) 이후 최고 히트작이라는 ‘울지마, 톤즈’도 고 이태석 신부의 헌신적인 아프리카 봉사 인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해 9월 초 개봉해 8개월 넘게 상영되면서 누적관객수 44만명을 돌파했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한 관객과 극장의 인식이 달라진 것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는 295만명을 동원한 ‘워낭소리’가 한몫했다. 마니아의 전유물 정도로 여겨지던 다큐멘터리에 대해 이제 돈 내고 봐도 아깝지 않은 장르라는 인식 전환이 이뤄진 것. 극장이나 배급사들 또한 장기 상영을 통해 다큐멘터리도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다는 학습효과를 얻었다. 마침 ‘워낭소리’ 이후 잇따른 종교 다큐멘터리의 작품성도 뒷받침됐다. 2009년 4월 개봉한 신현원 감독의 ‘소명’은 단 한 곳에서 상영됐는데도 9만 7314명을 모으면서 종교 다큐 흥행의 첫 단추를 끼웠다. 그해 12월에 나온 2시간 48분짜리 ‘위대한 침묵’도 10만명 가까이(9만 5334명) 동원했다. 지난해 1월에는 김종철 감독의 ‘회복’이 16만 663명을 모았다. ●‘워낭소리’가 준 다큐영화 호감도 한 몫 물론 종교 커뮤니티의 티켓 파워도 빼놓을 수 없다. 특정 종교 모임에서 상영관 한 회차를 아예 통째로 대관하기도 한다.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SNS)의 평판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20대와 달리, ‘구전’에 의존하는 중장년층이 주소비층인 탓에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상규 CGV 홍보팀장은 “‘소명’ 이후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잇따르면서 종교 다큐가 하나의 장르처럼 자리잡는 추세”라면서 “(아무래도 마니아층을 기반으로 하는) 다른 독립영화에 비해 일반 관객을 흡수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커 장기 상영이 가능한 것도 흥행에 플러스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시즌2는 도처에 묻혀있는 고수들 이야기”

    “시즌2는 도처에 묻혀있는 고수들 이야기”

    “시즌2만 하고 말려고. ‘프리즌 브레이크’(미국 인기 드라마)도 시즌2까지가 딱 좋았어. 시즌3부터는 엉망이야. (또 다른 미드인) ‘24’도 시즌2가 최고였어. 노무현 전 대통령한테도 ‘24’ 시즌2 보라고 했었지. 흑인 대통령 이야기니까 통하는 면도 있잖아.” 11일 서울 광화문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유홍준(62) 전 문화재청장은 여전히 현란했다. 1993년 출간돼 260만부나 팔리면서 답사 열풍을 일으켰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전면 재개정판(1~5권)과 시즌2 출시를 기념해서다. 5권 1세트가 시즌1이라면 6권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는 시즌2의 출발이다. 시즌1이 답사현장을 다뤘다면, 그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 얘기가 시즌2다. 제목 그대로 도처에 묻혀 있는 숱한 고수들의 이야기다. 책상물림들이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예컨대 봄나물만 100여종을 분류하는 부여의 식당 아주머니, 경복궁 근정전 박석(薄石·얇고 넙적한 돌)이 가장 아름다운 때를 지목해내는 경복궁지기 같은 사람들의 얘기다. 시즌2가 몇권으로 끝날 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제주와 다도해를 다닌다는 말로 봐서는 갯내음을 진하게 낼 것 같다. →재개정판은 얼마나 고쳤나. -세세하게는 지명이나 가는 길 등을 바로잡았다. 또 1권은 1991년부터 썼기 때문에 당시 정치 세태가 들어가 있다. 그때는 풍자의 맛으로 볼 만했는데, 요즘 친구들은 그런 내용 이해 못한다. 그래서 빼기도 하고 바꾸기도 하고 그랬다. →6권에도 (정치적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경복궁 근정전 얘기가 등장하던데(책에는 “잘 노는 것도 열심히 일하는 것”이라는 정도전의 해설이 붙어 있다. 맹목적인 부지런함을 경계하는 얘기다.). -우리 독자들 수준이 높다. 가령 코스모스가 (멕시코에서 들어왔지만 토착화돼) 우리 꽃이라는 얘기를 어디서 했는데, 그게 외국인 노동자 얘기인 줄 다 알더라. 예전엔 할 말도 못하는 시절이었으니 그런 부분을 꼭 써야 직성이 풀렸는데, 이제는 한마디만 써놓아도 다들 알아듣는다. →아직도 더 답사할 곳이 많나. -제주와 충북(얘기)을 못 쓴 게 마음에 걸린다. →전직 문화재청장이란 타이틀이 답사에 지장을 주진 않나. -왜 없겠나. 미리 연락하면 한다고, 안 하면 안 한다고 말이 나온다. 허허. 예전엔 답사한 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문화재청은 뭐하는 거야.”라고 쉽게 말했는데, 이젠 그러지 못한다. 딱 꼬집어 쓰면 다른 사람들은 좋아하겠지만 당사자는 이지메당한 기분일 거다. →청장 시절 경험이 (책에) 반영되나. -예전엔 비판만 했지만, 이젠 뭘 어떻게 고쳐야 하나 그런 생각을 먼저 한다. 농반진반 ‘나의 공무원생활 답사기’를 쓰겠다는 말도 자주 한다. 솔직히 내가 청장할 때 얼마나 말들이 많았나. 내가 잘못한 것보다는 당시 (노무현) 정권이 미웠으니까 그랬던 것 아니냐. 나로서는 억울한 부분이니 차차 짚어나갈 생각이다. →혹시 청장 다시 할 생각은. -하하하. 다시 하면 잘할 것 같긴 하다. 그런데 그럴 시간 있으면 답사기나 더 충실하게 쓸련다. 공부하는 놈이 베스트셀러로 돈만 번다는, 한국사회에서 치명적인 비평이 나올 것 같아서 논문 먼저 썼다. 앞으로 정년퇴임(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까지 3년 남았으니 그 전에 답사기 싹 마무리하고 부여에 내려가 살 생각이다. →아무래도 책의 가장 큰 기여는 우리 문화유산을 정중하게 대하도록 했다는 데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너무 많다. 가령 목조 유물은 활용이 보존이다. 청장 시절, 국제회의에 고궁 쓰게 해 줬다고 언론에서 엄청 비판했다. 그런데 목조는 써야 보존된다. 전국 종갓집들이 왜 무너졌나. 안 쓰니까 무너진 거다. 한옥체험 이런 장소로 활용했으면 싶은데 종갓집들은 우리가 여관이냐고 반발한다.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나와 통일] (13) 조계종 혜경스님

    [나와 통일] (13) 조계종 혜경스님

    지난 4일 조계종은 북한의 조선불교도 연맹과 금강산 신계사에서 어린이 구충제 10만정 등 지원물품을 전달하고 공동 참배를 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남북의 불교도가 한자리에 모인 것은 3년 만이다. 10여명의 방북단을 이끌고 신계사를 다녀온 혜경 스님은 “불교문화에서 남북이 공통분모를 찾아야 한다.”면서 “이번 방북이 남북관계 변화에 작은 씨앗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신계사 방문이 얼마 만인가. -지난해 가을에 다녀오고 7개월 만이었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기 전에는 스님들이 금강산 온정리에 상주하고 있었다. 5·24 조치 이후에는 아예 북에서도 신계사에 아무도 보내지 않는 모양이다. →신계사는 조계종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 같다. -신계사는 신라시대(519년)에 지어진 북한의 국보 문화유물이다. 6·25전쟁 때 건물이 모두 불타 없어진 것을 2004년 조계종과 현대아산, 조선불교도연맹이 공동으로 대웅전을 복원했다. 완전 복원된 것은 2007년으로 한창 공동관리 방안을 논의하고 있을 때 금강산 관광이 중단돼서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부처님 오신 날에 남북이 공동법회를 연 것은 3년 만이다. -원래는 공동법회를 하고 싶어했는데 통일부에서 승인이 안 났다. 스님들이 예불하고 은공하는 것은 일상인데 이걸 왜 못하게 하는지…. 그래서 그냥 ‘남북불자들의 신계사 공동참배’라고 했다. →최근에서야 인도적 지원이 재개됐는데. -통일이 만약 우리의 지상과제라면 통일을 왜 하려고 하는지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같은 민족이고 형제이지 않은가. 일본에는 지진 피해가 났을 때 정치적 사안과 인도적 지원은 별개라고 해서 지원하지 않았나. 왜 북한에는 이 논리를 적용하지 않는가. 무슨 일이 생기면 내 식구부터 챙기는 게 인지상정인데 영 앞뒤가 안 맞는 것 같다. →남북관계에서 불교계의 역할은 무엇인가. -전통문화 측면에서 남과 북이 공통분모를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에도 보물급 사찰이 있고 문화재가 많이 남아 있다. 불교문화를 중심으로 문화의 동질성부터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방북을 하고 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나. -부처님 말씀 중에 “모든 존재가 나와 한몸이라 생각하고 자신을 돌보듯 돌보는 게 잘사는 것”이라는 내용이 있다. 신계사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5시간 동안 이걸 생각하니 참 정치하는 사람들이 많이 원망스러웠다. →정부나 정치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올해 총무원 집행부의 공식 슬로건이 소통이다. 우리 현실은 남남갈등이 심각하다. 정치인은 더 소통이 안 되고 있다. 불교의 목표가 부처님이 필요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듯, 정치의 목표는 정치인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념이 다르더라도 나를 비롯한 이웃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 이번 방북이 계기가 돼서 정부에서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남북관계 변화에 작은 씨앗이 됐으면 한다. →통일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통일은 반드시 돼야 한다. 이번에 갔을 때 솔잎혹파리인지 재선충인지 몰라도 신계사 주변 소나무들이 병들어가고 있었다. 그 소나무는 우리 할아버지와 친구다. 두 세대만 올라가면 남북이 어디 있고, 정치적 이념이 어디 있나. 하루빨리 그렇게 (하나가)돼야 한다. →남북 관계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계절로는 봄이 왔는데, 아직 우리 가슴엔 봄이 먼 것 같다. 계절의 봄은 환경이 만들지만 가슴의 봄은 우리의 생각과 노력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불교도들이 가슴에 진달래, 개나리를 피울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길섶에서] 연등(燃燈) /최광숙 논설위원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면 어머니는 무척 바쁘셨다. 절에서 연등 꽃잎을 만드시느라 늘 두 손은 분홍빛으로 물이 들곤 했다. 그렇게 불자들만의 전유물 같던 연등 만들기가 점차 일반인들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다. 지난 일요일 조계사를 찾았더니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다. 조계사 앞도 차 없는 거리가 되면서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펼쳐졌다. 가장 인기 있는 행사가 연등 만들기다. 외국인들도 연꽃잎에 풀을 발라가며 연등을 만들었다. 한국 문화 체험에 푹 빠져 즐거운 모습들이다. 부처님 오신 날 연등을 올리는 유래는 ‘빈자일등’(貧者一燈)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부처님께 드리는 정성을 치자면 부자의 등 만 개보다 가난한 여인의 간절한 마음을 담은 등 하나가 오랫동안 꺼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자신을 태워 불을 밝히는 연등. 어둠만 밝히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음(無明)까지도 밝히는 것이 바로 불가의 등 밝히기다. 불자가 아니더라도 마음속 연등을 달아 어리석음을 깨고, 지혜의 눈을 뜨길….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트래비 스토리> 시안(西安)…황제의 죽음을 함께했던 사람들

    트래비 스토리> 시안(西安)…황제의 죽음을 함께했던 사람들

    시안(西安) 방문을 앞두고 체크한 일기예보는 여정 내내 흐리거나 비가 올 것이라고 알려줬다. 여행객에게 ‘날씨 흐림’은 반갑지 않은 동반자임에 분명하다. 북서부에 황토고원이 위치하고 황하가 아니었다면 건조한 이곳에 하필이면 여행 시기에 맞춰 비라니, 이번 여행 운은 나쁘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시안에 도착하고, 워낙 건조한 지역이서 손님이 비를 몰고 오면 더 귀하고 반갑게 맞이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금세 우쭐한 기분이 됐다. 또 평소 같으면 아무리 진귀한 보물이 전시돼 있어도 화창한 날씨 탓에 괜히 손해 보는 기분이 들곤 했던 박물관 방문도 흔쾌히 즐기게 됐다. 글·사진 이지혜 기자 취재협조 중국국가여유국서울사무소 02-773-0393, 산시성인민정부, 시안시인민정부, 2011시안세계국제원예박람회 www.expo2011.cn, 대한항공 www.koreanair.com ◈ 여유(旅遊)는 여행과 관광을 뜻하는 중국어다. 중국어로는 ‘뤼요우’라고 발음한다. 중국국가여유국은 중국 중앙 정부에서 직접 운영하는 여행 관련 업무 조직이며, 서울사무소를 운영 중에 있으므로 이곳에 여행 관련 정보를 문의할 수 있다. 대한항공은 인천-시안 항로를 주 4회(월·수·금·토요일) 운항하고 있다. 병마용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진시황을 지키는 병마용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기병이고, 한경제의 왕릉인 한양릉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궁정악사와 무희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왜 이것에 대해 언급하는지 벌써 알아차렸을 것이다. 진시황은 무력을 통해 전국시대를 통일했으며, 강한 군대를 기반으로 한 통치체계를 확립했다. 특히 다른 국가와 달리 우위를 가진 기량이 다름 아닌 기병이었다. 한양릉의 주인인 경제는 한나라의 네 번째 황제로 국가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특유의 문화예술이 발달하던 시기의 황제다. 이때의 힘을 바탕으로 한무제는 실크로드를 개척하고 전성기를 누리고 됐다. 힘의 역사를 수호하는 병마용 “시엔양 가세요?” “아니요, 시안 가는데요.” 병마용 유적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 하기에 앞서, 시안 출장길에 공항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언급하고자 한다. 탑승카운터 직원이 위와 같이 물었을 때 동북지역 리야오닝(요녕)성의 성도인 선양(瀋陽, Shenyang)을 묻는 줄 알았다. 인천공항이나 김포공항을 이용해도 서울 간다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임을 감안하면, 그 직원은 시엔양이 시안의 국제공항임을 몰랐을 가능성이 높았을 듯하다. ‘시안’은 산시(陝西, 섬서)성의 성도이자 중국 서부 지역의 중심 도시이다 한자 발음인 ‘서안(西安)’이라는 지명을 들으면 그나마 역사 시간에 배운 ‘서안사변(1936년 동북군 총사령관 장학량이 당시 국민당 총통이었던 장개석을 화청지에서 납치하고 감금했던 쿠데타)’이 떠오르는 이곳, 중국식 발음으로 ‘시안’이다. 과거 진나라, 한나라, 당나라 등의 수도로 나라가 오래도록 평안하길 바라는 의미를 담아 ‘장안(長安)’이라고 불렸으나 지금은 수도를 비롯한 국가 경제·문화 중심이 동부의 베이징 등으로 옮겨온 것과 더불어 서쪽이 편안하라는 의미에서 ‘시안(西安)’이 됐다. 시안은 여전히 서부의 중심 도시 가운데 하나지만, 중부의 충칭(重慶)이나 남부의 광저우(廣州) 등과 같은 고층 빌딩은 찾아볼 수 없다. 흔히 ‘시안은 어디를 파도 유적이 나온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를 함부로 개발할 수 없고, 옛 건물들은 중소지방도시의 소박한 모습인 채로 수년이 흘러도 홀로 제자리다.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보이는 그곳에는 넓디넓은 관중평야가 2,000년 전과 같은 모습으로 펼쳐져 있다. 왕조가 바뀌고 전쟁이 계속되면서 아방궁이나 대명궁과 같은 황제의 권력이 있기에 가능했던 화려한 건축물들은 사라졌지만, 친숙한 중국여행의 이모티콘인 병마용과 무용(무희 등을 형상화한 인형) 등을 만날 수 있는 유적지들이 과거와의 연결고리가 되어 준다. 눈에 보이는 엄청난 규모와 예스런 자태 등은 두 눈을 즐겁게도 하지만, 각각의 유물과 그것이 발견된 유적은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깨닫게 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시엔양(咸陽)’은 시안의 동북부에 위치하며 시엔양국제공항은 시안 시내에서 약 1시간 거리다. 인천은 특수한 경우지만, 이와 같이 멀리 떨어진 곳에 공항을 건설한 이유는 시안 인근에 유적지가 워낙 많아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시안과 시엔양국제공항 사이의 고속도로를 건설하다 발견한 유적지가 한양릉이다. 또한 시엔양은 진시황제가 다스린 진나라의 황궁이 위치한 곳이다. 시엔양은 관중평야에서도 위하의 하류 지역으로 여산을 끼고 있는 풍수지리가 좋은 땅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방궁은 시엔양 지역에 위치한 궁들 가운데 정무를 보는 정전(正殿)의 전전(前殿 )이다. 진나라의 시조는 본래 황하 하류 동해에 거주하던 동이족의 한 분파였는데, 후에 간쑤(甘肅)성의 동부로 이주해 유목민족 생활을 한다. 한족과 외모가 다르며 신체적으로 훨씬 체격조건이 우월한 편이었다. 역사서 <사기>에는 진시황릉의 지하궁전이 묘사돼 있다. 지상의 궁전을 본떠 만들었으며, 대량의 수은을 사용해 황하와 양자강을 조성하고 매일 진시황의 관이 중국 전역을 주유할 수 있도록 설비했다. 병마용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1974년에 린퉁(臨潼)의 농민들이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병마용갱의 위치를 근거해, 인근 여산 토질에 수은 함량이 많은 점 등과 연계해 진시황릉의 위치를 파악하게 됐다. 오랫동안 밀폐된 공간에 있던 지하궁전 내의 수은이 공기와 접촉할 경우 대량의 독가스가 발생하기에 발굴을 미루고 있으나, 과학적인 조사에 따르면 그 내부의 모습이나 규모가 사기에 묘사된 것과 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병마용갱은 진시황릉과 1.5km 거리에 위치하며, 약 7,000여 개의 사람과 말의 토우가 매장돼 있다. 실제와 같은 크기로 제작됐으며, 같은 모습이 없고 핏줄이나 근육 모양, 표정 등까지도 세밀하고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병마용은 모두 동쪽을 향해 있는데, 이는 궁전과 성의 문 위치 등도 동일하다. 이에 대해 동방을 숭상하는 종교를 가졌다거나, 동쪽 나라를 평정하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등의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다. ◈ 한양릉 병마용만 봐도 사람들은 진시황을 떠올린다. 서양의 드라큘라와 미이라만큼 동양의 대표하는 아이콘이기도 하다. 반면에 한양릉에서 출품된 도용(도자기 형태로 제작된 인형)의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50~60cm의 자그마한 크기에 팔도 없이 앙상한 모습에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금성과 경복궁을 크기만으로 비교할 수 없듯이, 한양릉의 도용 역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안을 찾는 이들에게 병마용뿐 아니라 한양릉도 꼭 방문해 볼 것을 추천한다. 중국의 문화를 꽃피운 한나라 과거의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그것이 현재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한나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나라를 먼저 알아야 하고, 동시에 한나라와 패권을 다툰 초나라를 알 필요가 있다. 진나라는 아방궁을 비롯해 수도 시엔양에 호화로운 성을 지었을 뿐 아니라, 지상의 궁전과 유사한 규모의 지하궁전도 건설했다. 동시에 북방민족을 막기 위한 만리장성도 축조했다. 진시황릉이 건설되기 시작한 것은 진시황이 즉위한 직후부터이며, 37년 동안 72만명의 인력이 동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대규모 공사는 황실의 위엄과 통치력을 확보하는 데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 진시황 사후에 진나라는 곧바로 멸망했다. 진나라의 멸망 후 천하를 얻기 위해 겨룬 이들은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이다. 항우는 초반에 우세를 띠었는데, 진나라의 궁전은 물론이고, 병마용갱 등 유산을 모두 불태웠다. 병마용갱은 화재로 인해 내부를 지탱하던 기둥이 소실되면서 함몰됐고, 병마용 역시 심하게 훼손됐다. 다만 도굴의 화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덕분이다. 지금도 병마용갱 박물관에 가면 병마용을 복원하는 작업이 한 쪽에서 계속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병마용은 균열된 자국이 보인다. 일부는 복원하지 못한 것도 있다. 후학자들이 유방이 승리한 이유를 분석하는 데 있어, 평민 출신의 유방이 백성의 고초를 알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주목한다. 때문에 한나라 왕조 역시 되도록 백성들의 고충을 덜어 주는 데 항상 주의를 기울였다. 한양릉에서 발견된 부장품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실제 크기의 3분의 1 또는 4분의 1 크기로 제작돼 있다. 이는 실물 크기로 제작할 경우 백성의 고충이 너무 크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한 황후의 능과 합장하고 있으며, 다른 왕조와 비교해 소박함이 느껴진다. 또 하나 눈에 띄는 특징은 무희나 악사 등 문예와 관련된 도용이 많다는 점이다. 병마용도 일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황궁에서 필요로 하는 요소에 예인이 많이 포함돼 있다. 특히 한나라 시대의 무용은 궁정 의전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전문 악부가 민간 무용을 비롯해 고대의 의전 무용 등을 광범위하게 수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서역과 서남 소수민족의 무용 또한 포함돼 있었고, 감정과 예술을 결합시키는 데 대해 관심이 높았다. 사람 도용 외에 동물 도용도 다양하다. 흥미로운 것으로 개보다 작은 크기의 돼지가 있다. 이 돼지는 쓰촨(四川) 지역 등의 토종 품종으로 육질이 훨씬 쫄깃쫄깃하고 맛있다고 한다. 이렇듯 한양릉에서는 궁의 의장군대뿐 아니라 생활용구 등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부장품이 다수 발굴됐다. ◈ 2011시안세계원예박람회는? 211시안세계원예박람회 (International Horticultural Exposition 2011 Xi’an, China)가 4월28일부터 10월22일까지 178일 동안 시안시 찬바 생태구에서 진행된다. 박람회 주제는 ‘천인장안(天人長安), 창의자연(創意自然)-도시와 자연의 화합 공생’이다. 장안은 시안의 옛 명칭인 동시에 ‘국가번영과 평안의 상징’이다. 마스코트는 시안의 시화인 석류를 형상화한 ‘장안화’다. 중국은 1999년에 쿤밍, 2006년 선양에서 세계원예박람회를 개최한 바 있다. 418만 평방미터의 부지에 장안탑, 창의관, 자연관, 광운문 등 주요 건축물과 5곳의 테마경관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관은 정자와 연못으로 이뤄진 우리 정원을 조성했다. 정자의 이름은 순천정이다. 조선관은 한옥의 양식과 사뭇 다른 모습의 조선가옥을 선보이고 있다. 언뜻 한옥처럼 보이지만 용마루 끝과 처마 끝에 장식하는 십장생 동물의 형상인 ‘어처구니’가 없는 점이 눈에 띈다. 조선관 내부에는 김정일화를 전시할 예정이다. 입장료 일반표 100위안(한화 1만8,000원), 지정일표 150위안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한국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한국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136년만에 ‘고향’가는 마오리족 ‘머리 미라’ 공개

    프랑스 박물관에 있던 마오리족(뉴질랜드 토착 원주민)의 머리 미라가 136년 만에 ‘고향’인 뉴질랜드로 돌아갔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9일자 보도에 따르면 루앙 박물관 측은 훼손된 미라의 존엄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과 뉴질랜드 측의 문화제 환수 요구에 따라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이 미라는 뉴질랜드가 서구 열강국가와 각종 물품과 무기를 교환하는 과정에서 유출됐으며, 훗날 한 수집가에 의해 프랑스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1875년 머리 미라를 프랑스에 넘긴 수집가는 페르시안 출신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전달 경로와 신상정보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후 이 머리 미라는 박물관 깊숙이 잠들어 있다가 2006년 루앙 박물관 관장이 이를 발견하면서 130여 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머리에 마오리족 특유의 각종 타투(문신)이 그려진 이것은 마오리족 문화의 특수성을 고스란히 내포하고 있으며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다고 현지 언론은 설명했다. 이번에 뉴질랜드가 환수하는 마오리족 머리 미라는 총 15구. 하지만 아직 프랑스에는 마오리족과 관련한 유물 상당수가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들이 환수되는 시점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나오지 않았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제주 커피 테마파크 개장

    제주월드컵경기장에 커피 박물관과 체험장 등을 갖춘 커피 테마파크가 문을 연다. 제주워터월드는 제주월드컵경기장 부대시설 1600여㎡에 커피 박물관과 체험장, 스파 등을 갖춘 커피 테마파크를 시설, 어린이날인 5일 개장한다고 4일 밝혔다. 박물관은 1000㎡ 규모로, 18세기부터 전해지는 희귀한 커피 유물 300여점을 전시하며, 관람객이 직접 원두를 볶고 갈아 커피를 만들어 맛을 보는 체험장도 있다. 이 테마파크는 또 국내에서 드물게 열매가 가득 달린 10년생 커피나무 1000여 그루를 관람할 수 있는 커피 농장과 커피를 풀어놓은 욕조에서 피로를 푸는 스파 시설도 있다. 개관 기념으로 5일부터 15일까지 커피박물관과 커피농장을 무료로 개방한다. 김종운 대표는 “커피테마파크는 커피의 모든 것을 한 자리에 모아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며 “앞으로 커피 축제 등을 열어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5대 국새 만든 전각 전문가’ 초정 권창륜 인터뷰… 大字 첫 전시

    ‘5대 국새 만든 전각 전문가’ 초정 권창륜 인터뷰… 大字 첫 전시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는 꼭 유물 옆에 볼펜을 두고 사진을 찍는다. 볼펜 크기로 유물 크기를 가늠해보란 뜻에서다. 오는 22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는 ‘권창륜·안승일의 산의 영(靈) & 기(氣)’ 전시가 그렇다. 2층까지 트인 전시 공간마저도 ‘좁아’ 바닥에 길게 늘어뜨려야 하는, 길이 5~7m에 이르는 서예 대작들이 즐비하다. 백두산, 한라산, 지리산 등 전국 명산을 찾아 산의 기운을 글씨로 표현한 작품들이다. 키 160㎝의 초정 권창륜(68)을 글씨 옆에 세웠다. 글씨 크기를 입증하는 일종의 ‘인증샷’이다. 전시는 20년간 산 사진만 찍어온 안승일 작가의 작품과 함께한다. 생각만으로는 사진이 훨씬 더 힘 있을 것 같다. 더욱이 초정은 5대 대한민국 국새를 만든 전각 전문가다. 전각은 도장에 새기는 작은 글씨. 그런데 전시장을 둘러보면 글씨가 사진을 눌러 버린다. 크기도 그렇고 힘찬 기운도 그렇고, 갑골자인 글씨 자체가 아예 그림인지라 더더욱 그렇다. 안 그래도 사진이 눌릴 것 같아 사진을 한껏 확대했다는데도 말이다. 첫 전시 현장에서 초정과 얘기를 나눴다. →작업 도구, 작업 방식이 궁금하다. -붓 두께가 직경 25㎝ 정도 된다. 이 정도 붓은 말갈기나 꼬리털로 만든다. 더 커지면 인조털을 써야 해서 그 정도로만 쓴다. 길이는 안 재봐서 모르겠는데 제일 큰 것은 사람 키만 한 것도 있다. 무게는 5㎏쯤? 물론 먹을 묻히지 않았을 때다. 이 붓을 두 손으로 잡고 쓴다. 산에 올라갈 때는 보통 10여 명 정도로 팀을 짠다. 붓 들고 먹물 들고 종이 들고…. 이것저것 챙기다 보면 공사가 커진다. →체력적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그게 제일 신기하다. 나 봐라. 키도 작고 덩치도 왜소하다. 젊은 것들 따라 올라가려면 힘들다. 올라가면서도 붓 쥘 힘이 남아 있으려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써진다. 붓글씨의 공력은 단판 승부에서 나온다. 덧칠이나 가필을 할 수 없다. 한번에 휙 써야 하는데, 그게 되더라. 되레 평지에서는 이런 글씨가 안 써진다. 스스로도 매우 신기하다. →어쩌다 산에 올라가서 글씨 쓸 생각을 하게 됐나. -글씨를 쓰다 보니 이런저런 공부를 하게 됐는데 역시 글씨는 자연에서 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산천 수목의 형세와 기운을 고스란히 따온 것이 글씨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자꾸만 예쁘게 가다듬게 됐다. 탁상공론이요, 화장하는 신세가 되어 버린 거다. 그러지 말고 근본으로 되돌아가자고 생각했다. 명산대천을 선으로 조형해 낸 것이 글씨의 출발이다. 그러니 글씨를 보면 무슨 글자인지는 몰라도 뭔가 딱 기운이 느껴져야 한다. 갑골자를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붓 크기, 붓 쥐는 법, 먹 가는 법 이런 것은 그냥 방법일 뿐이다. →실패한 적은 없나. -왜 없겠나. 북한산에 가서는 못 썼다. 알다시피 그쪽은 산 위에 올라가면 종이 펼칠 곳이 마땅찮다. 철골 전망대가 있긴 한데 그건 좁아서…. 내 작품이 좀 커야지, 허허. 가장 어려운 건 습도 조절이다. 고산지대라 날씨가 급변하기 때문에 빨리 말려야 한다. 백두산에서는 글씨를 말리기 위해 손전등을 이용한 적도 있다. 종이로 찍어 내면 글씨가 약해져 궁리 끝에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문구는 어떻게 떠올리나. -생각나는 대로 쓴다. 처음에는 미리 글자를 생각해 두기도 했는데, 실제 써지는 글씨는 현장에서 느낀 그대로더라. 그다음부터는 마음 편하게 그냥 간다. 말이 되든 안 되든 즉석에서 떠오른 글자를 쓴다. →20년간 해 온 작업이다. 첫 전시라는 게 믿기지 않는데. -언젠가 보여 줘야지, 하는 생각에 꼭꼭 감춰 놨던 작업이다. 작품은 120점 정도 있다. →이 정도 대자(大字)라면 광화문 현판도 소화할 수 있을 듯한데. -지금의 현판 글씨가 아름답지 못하다는 건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이왕이면 좋은 글씨를 얹었으면 싶어 (글씨 쓰는 사람으로서) 아쉽다. 한자나 한글 모두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결정에 대해 내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닌 것 같고….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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