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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유류의 ‘속눈썹’ 기능 본딴 신기술 등장할까?

    포유류의 ‘속눈썹’ 기능 본딴 신기술 등장할까?

    고양이나 해달 등 몸이 털로 뒤덮인 동물들 중 상당수는 ‘그루밍’을 한다. 그루밍은 고양이 등 동물이 본능에 따라 자신의 몸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혀로 몸을 핥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스스로 그루밍하는 동물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몸이 털로 뒤덮여 있다는 것인데, 최근 해외 연구진은 그루밍하는 동물들의 몸에 있는 털의 개수와 표면적을 밝히고, 외부의 오염물질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 조지아공과대학교 연구진은 27종의 포유류와 곤충을 자세히 분석한 결과, 나비는 무려 100억 개의 미세한 털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꿀벌은 다람쥐와 비슷하게 300만 개의 털을 가졌다. 인간의 머리카락이 약 10만 개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숫자다. 알려진 대로 글루밍은 이처럼 수많은 털에 붙은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방법 중 하나다. 초파리는 머리에 붙은 질긴 털을 이용하는데, 이때 지구의 중력 가속도의 500배에 달하는 엄청난 속도로 먼지를 떨쳐낸다. 매미는 날개에 달린 뾰족한 형태의 신체구조를 이용해 공중에서 박테리아를 퇴치한다. 연구진은 이처럼 ‘자력’(自力)을 이용해 몸에 붙은 먼지나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방법이 아닌,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그루밍 효과를 내는 동물들의 습관에 주목했다. 예컨대 인간을 포함한 일부 포유류는 속눈썹이 그루밍 역할을 해준다. 매우 짧은 길이의 속눈썹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부유물이나 먼지가 눈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최소한의 보호를 담당한다. 연구진은 포유류 22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이 모두 속눈썹의 ‘혜택’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전문가들은 고양이처럼 직접 힘들여 그루밍을 하지 않아도, 작은 규모의 신체구조 만으로 청결을 유지하고 유해물질을 막아내는 동물의 구조를 새로운 기술에 접목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연구를 이끈 데이비드 후 교수는 “속눈썹과 같은 생물학적 시스템에 대해 자세히 이해한다면, 먼지와 오염물질에 민감한 기기들이 낮은 에너지로도 고장과 오작동을 방지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특히 드론 또는 화성 탐사에 사용되는 로봇의 센서 등은 공기 중에서 떨어진 물질들이 쌓여 오작동이나 고장을 일으킬 수 있는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그루밍하는 모피 동물에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12월 5일, 우주 체험의 기회 열린다! ‘NASA 휴먼어드벤처展’

    12월 5일, 우주 체험의 기회 열린다! ‘NASA 휴먼어드벤처展’

    지난 10월 28일, 미국 항공우주국 NASA가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우주유영을 하는 우주인 두 명의 모습을 생중계했다. 이는 제189회, 제190회에 해당하는 ISS 우주유영으로 ISS 제45차 임무의 지휘관 ‘스콧 켈리’와 NASA의 비행 엔지니어 ‘첼 린드그렌’이 정비 작업에 참여하는 현장이 중계됐다. 11월 6일에는 ISS 외부에 설치된 냉각시스템을 원상태로 돌려 놓는 작업을 실시한다고 밝혀 관련 인사뿐만 아니라 우주유영에 호기심을 지닌 전세계 대중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흥행을 이룬 영화 ‘마션(The Martion)’에서도 주인공인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가 화성에서 우주 유영하는 장면이 등장해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산소도 없고 중력도 없는 우주에서 우주유영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답은 첨단 우주복에 있다. 먼저 우주유영이란 우주비행사가 우주선 밖에서 활동하는 행위를 지칭한다. 우주유영을 위해서는 생명 보존을 위한 첨단 우주복이 필요한데 이 우주복이 유영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복에는 통신을 위한 통신장비 연결소켓, 호흡을 위한 산소정화시스템 연결소켓, 방사능 측정기 주머니, 소변 배수장치, 운석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한 열처리 속옷 등 복잡하지만 편리한 다양한 기능이 구비돼 있다. 일반인은 사진 또는 설명으로는 우주복에 대한 이해를 심도 있게 하기 어렵다. 실제 우주유영에 사용된 우주복을 눈으로 보고 싶다면 다가올 12월 5일 시작되는 ‘NASA 휴먼어드벤처展(나사 휴먼어드벤처전)’을 주목하자. ‘NASA 휴먼어드벤처展’은 우주비행과 탐험의 모든 것을 담은 전시로 전시되는 수백 점의 물품이 실제 우주 비행에 사용되었던 유물로 구성돼 있다. 이는 자라나는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우주에 관한 무한한 호기심을 가진 성인들에게도 궁금증을 해소하고 우주의 신비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2011년에 시작된 본 전시는 스페인, 일본, 스웨덴 등 6개국에서 전시를 성황리에 진행했으며 7번째 화려한 막을 한국에서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NASA 휴먼어드벤처展 관계자는 “로켓, 달착륙선, 우주복 등 실제 유물이 12,000㎡ 규모의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어 남다른 몰입감을 제공한다. 전시뿐만 아니라 포토존, 중력체험기, 초빙강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직간접적인 우주 체험의 기회를 함께 누릴 수 있으니 많은 관심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NASA 휴먼어드벤처展은 12월 5일부터 2월 11일까지 두 달여간 일산 KINTEX(킨텍스) 제2전시장 8홀에서 개최된다. 참관객들의 성원에 힘입어 11월 15일까지 연장해 진행하는 얼리버드 티켓 이벤트에 참여하면 각 티켓을 최대 20% 할인 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얼리버드 티켓 및 NASA 휴먼어드벤처展에 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www.ahumanadventure.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8·25 합의’ 이후 남북 민간 교류 활기

    ‘8·25 합의’ 이후 남북 민간 교류 활기

    남과 북의 ‘8·25 합의’ 이후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 사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어 주목된다. 남측에서 민간 교류를 위해 방북하는 인원이 급증했고, 그동안 북측이 꺼리며 거부하던 남측 민간단체의 대북 인도적 지원도 크게 늘었다. 9일 통일부가 발간하는 ‘월간남북교류동향’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9월까지 개성공단 출입경 인원을 제외한 남측 방북 인원은 418명으로, 월평균 46명이었다. 하지만 지난달부터 ▲개성 만월대 출토 유물 전시회(개성) ▲남북 노동자 축구대회(평양)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회의(금강산) 등 남북 공동 행사가 잇달아 개최되면서 방북 인원이 880여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이는 지난달 이산가족 상봉 행사 참여자를 제외한 수치로, 올 들어 9월까지 월평균 방북 인원의 20배에 달한다. 남북 민간 교류가 활발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와 비교하면 많은 게 아니지만 2010년 5·24 대북조치 이후 월간 방북 인원 규모로 보면 눈에 띄는 증가세다. 현재 다양한 분야에서 남북 교류·협력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방북 인원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남측 7대 종단 협의체인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는 9~10일 북측 조선종교인협회와 금강산에서 ‘남북종교인평화대회’를 열기 위해 7대 종단의 수장을 포함한 140여명의 종단 관계자가 동해선 육로를 통해 금강산에 방문했다. 남측 민간단체의 대북 인도적 지원도 활기를 띠고 있다. 북한은 국제기구의 인도적 지원은 받으면서도 남측 민간단체의 지원은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 북한은 그러나 지난 9월부터 남측 민간단체가 단독으로 진행하는 대북 인도적 지원을 받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5·24 조치 이후 4년간 2억원에 불과했던 남측 민간단체의 대북 지원액은 올 들어선 지금까지 11억원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북한은 8·25 합의 사항 중 하나인 당국회담 개최를 위한 우리 측의 예비접촉 제안을 3차례나 거부해 현재까지는 ‘통민봉관’(通民封官)하는 모습이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씨줄날줄] 획기적 발굴과 안타까운 이면/서동철 논설위원

    지난주 경기 안성시 도기동에서 장수왕 시대 고구려의 남진(南進) 경로를 밝힐 수 있는 삼국시대 목책성(木柵城)이 발굴 조사에서 확인되어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이 고구려 산성이 알려 준 것은 묻혀 있던 삼국시대 역사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나라 매장 문화재 보호 정책이 무엇이 부족하고 어떻게 보완되어야 하는지 보여 준 것도 못지않은 성과였다. 목책성이란 적의 침입을 막을 수 있도록 나무 기둥을 촘촘하게 박아 만든 방어 시설이다. 도기동 산성은 백제가 쌓은 뒤 고구려가 점령해 방어 시설로 활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북쪽으로 안성천이 스치듯 흘러나가는 도기동 산성에 오르면 서남쪽으로는 평택과 천안 일대까지 안성평야가 끝없이 펼쳐진다. 동북으로는 병풍처럼 가로막은 차령산맥이 멀리 지나는 가운데 안성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군사 지식이 없어도 요충으로 느껴진다. 남한 지역에서 확인된 고구려 군사 유적은 50개 남짓하다. 삼국시대 한반도 남북을 잇는 대표적 교통로였던 임진강 및 한탄강 주변과 양주, 한강 북안 아차산 일대와 금강 유역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금강 유역의 고구려 유적은 진천 대모산성과 세종 남성골산성, 대전 월평동산성이 있다. 고구려 장수왕이 475년 백제 수도 한성을 공략한 뒤 남쪽으로 여세를 몰아 지금의 충청권 일대를 한동안 점령하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고구려는 당시 신라의 영토이던 충주를 점령해 이른바 중원 고구려비를 남기기도 했다. 도기동 목책성은 이번 발굴조사에서 군데군데 끊긴 4개 구간에 걸쳐 130m 정도가 드러났다. 산줄기 지형으로 추정하면 전체 산성은 상당한 규모일 것으로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문화재청도 역사적 가치는 물론 사료로만 전하던 삼국시대 책(柵)의 구조를 명확하게 확인시켜 준다는 점에서 추가 조사에 이은 사적 지정이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발굴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점이 적지 않다. 그동안 일대의 소규모 발굴 조사에서는 중요한 유적이나 유물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 결과 산성 뒤편은 이미 개발이 이루어졌다. 목책성이 드러난 산성의 앞부분도 이미 보기 흉할 만큼 파괴됐다. 문화재청이 추진하고 있는 전 국토 정밀 문화재 지표조사가 진작에 이루어졌다면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유적이나 유물이 발굴된 것은 경사스럽지만 그 가치가 크면 클수록 해당 토지의 개발 당사자가 더 많은 피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도 모순이다. 도기동 목책성 자리에 대형 창고를 지으려 했던 땅 주인도 마찬가지다. 개발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수십억원의 은행 이자를 어떻게 감당할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는 결과적으로 자신의 손발을 묶은 발굴 비용도 부담해야 했다. 내 땅에서 문화재가 나오는 것이 재앙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정부 차원의 제도적 보완이 절실하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컬러’로 최초 복원된 투탕카멘 묘 발굴 직후 사진

    ‘컬러’로 최초 복원된 투탕카멘 묘 발굴 직후 사진

    이집트 제18왕조 제12대 왕이자 ‘소년왕’으로도 유명한 고대 이집트의 투탕카멘의 무덤이 발굴됐을 당시 찍은 사진의 컬러가 최초로 복원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개된 사진들은 1922년 영국의 고고학자인 하워드 카터가 왕들의 계곡에서 투탕카멘 왕의 무덤을 발견한 직후 당시 발굴에 동행했던 사진작가 해리 버튼이 기록한 것으로, 당시 기술의 한계로 인해 모두 흑백사진으로 보관돼 있었다. 때문에 투탕카멘 무덤에서 발견된 ‘황금가면’ 등의 금빛 유물이 발굴 당시 실제로 어떤 빛을 내고 있었는지, 또는 발굴현장의 색채는 어땠는지 등은 대체로 역사학자들의 글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다. 3000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본 유물들의 생생한 당시 모습은 투탕카멘 무덤 발굴 93주년을 기념해 최초로 컬러 복원이 시도됐다. 황금가면 뿐만 아니라 무덤에서 함께 발견된 사산된 아기의 미라, 투탕카멘의 황금관을 바라보고 있는 하워드 카터와 그 주변의 모습, 수 천 년전 왕과 함께 묻힌 다양한 예술품, 자칼의 머리가 달린 죽음의 신 아누비스 등이 기존의 흑백 이미지에서 컬러 이미지로 다시 태어난 것. 이번 복원 작업은 디지털 프로그램을 이용했으며, 유물이 3000년 이후 후손의 ‘손을 타기’ 전,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컬러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고고학계에서도 매우 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투탕카멘 무덤이 발굴된 지 93년이 지난 올해, 최근 전문가들은 무덤 벽 안쪽에 숨겨진 방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추측을 내놓았다. 이집트 유물부와 해외 고고학자들이 모인 연구팀은 투탕카멘의 무덤 안에서 온도차이가 나는 벽을 확인했으며, 이 공간은 네페르티티의 무덤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 상황이다. 실제로 투탕카멘의 무덤은 하나의 방이 아닌 여러 개의 방이 이어진 복잡한 형태이며, 무덤 벽에 그려진 그림이 투탕카멘이 아닌 네페르티티를 형상화 한 것이라는 점도 위의 추측에 무게를 더해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대 이집트 왕족은 투탕카멘이 19살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사망해 무덤을 만들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투탕카멘이 사망하기 10년 전에 세상을 떠난 네페르티티 왕비의 묘에 투탕카멘의 묘를 이은 형태라고 추정하고 있다. 네페르티티는 투탕카멘의 아버지인 이집트 제18왕조 제11대왕인 아크나톤의 첫 번째 부인이며, 고대 이집트를 대표하는 미녀로도 유명하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불국사 석가탑 원형 복원… 되살아난 ‘신라의 미’

    불국사 석가탑 원형 복원… 되살아난 ‘신라의 미’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국보 제21호)이 다음달 3년 4개월간의 전면 해체·보수 작업을 마무리짓고 일반에 공개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4일 불국사 석가탑 보수 현장에서 보수 추진 경과 설명회를 열고 3층 옥개석(屋蓋石·지붕처럼 덮은 돌)을 설치했다. 연구소는 이달 안에 상륜부까지 조립을 완료하고 12월 중 가설덧집을 철거한 뒤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석가탑은 742년(경덕왕 원년) 불국사 창건 때 조성됐다. 백제 석공 아사달과 아사녀의 슬픈 사랑의 전설이 담겨 있는 석가탑은 간결하면서 비례와 균형이 완벽해 통일신라 조형예술의 백미로 꼽힌다. 2010년 12월 정기 안전점검에서 상층 기단 갑석이 깨져 있는 게 발견됐다. 길이 1320㎜, 폭 5㎜ 정도의 균열로, 기단 내부의 적심(積心·20여t에 이르는 탑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채운 흙더미)이 비바람 등으로 유실된 게 원인이었다. 곧장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보수정비사업단이 꾸려졌고 2012년 9월 전면 해체 보수 작업에 들어갔다. 해체한 석가탑은 가설덧집에 보관하면서 지의류·균류, 철산화물, 염류 등 탑 표면 오염물 세척 작업을 했다. 화학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대나무 스틱으로 긁어내거나 스팀을 분사해 씻어냈다. 부식된 철제 은장은 열팽창과 열전도율이 낮고 내부식성과 연성이 뛰어난 티타늄 은장으로 대체했다. 갈라지거나 떨어져 나간 부분은 티타늄 핀 3~5개를 박아 고정시켜 붙이거나 에폭시수지로 틈새를 메웠다. 김덕문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장은 “이번 해체 수리의 특징은 원형 보존과 역사적 진정성 확보, 과학 기술에 근거한 구조 보강과 보존 처리, 자료 제작과 기술 보급”이라면서 “과거와 현재 기술을 융합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석가탑은 1966년 도굴 미수 사건에 따른 후속 조치로 부분 해체·보수 작업이 이뤄졌다. 해체 당시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비롯해 사리장엄구(사리함과 사리병을 비롯해 사리를 봉안하는 일체의 장치), 사리를 담은 금동제외합과 은제내합, 중수문서 등 유물 45건 88점이 수습됐다. 석가탑은 고려 현종 15년(1024) 해체 수리, 정종 2년(1036)과 4년(1038) 지진 피해 보수, 조선 선조 20년(1596) 우레로 탑 꼭대기의 뾰족한 부분인 상륜부 파손(이때 파손된 상륜부는 1972년 복원)에 따른 보수 등 여러 차례 보수를 한 적이 있지만 석탑 기단까지 전부 들어냈다 다시 세우는 전면 해체는 창건 이래 처음이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박문각 종로고시학원과 함께하는 실전강좌] 국어

    [박문각 종로고시학원과 함께하는 실전강좌] 국어

    서울신문은 많은 수험생이 응시하는 7·9급 공무원시험에 대비해 국어·한국사·영어 등 필수과목에 대한 실전강좌를 마련했다. 박문각 종로고시학원 강사들의 도움을 받아 과목별 주요 문제와 해설을 싣는다. 국어 과목은 문법 지식과 어문 규정의 올바른 사용 등이 가장 높은 비중으로 출제된다. 특히 최근 추가된 표준어와 2015년 1월부터 시행한 문장부호 등은 꼭 점검해야 한다. 고유어, 한자어, 한자성어, 속담, 관용어 등의 어휘력은 2008년 이후 공개된 기출문제와 어문 규정에 예시된 단어들을 꼼꼼히 정리해야 한다. 한자 문제는 비중이 현저히 줄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독해는 비문학과 문학이 7대3 정도로 출제되며 실용문의 비중이 월등히 높다. (문제)국어 어문 규정에 모두 맞는 것으로만 짝지어진 것은. ①전통은 인습과 구별될 뿐더러 단순한 유물과도 구별된다. ②묵호 Mukho, 극락전 Geungnakjeon ③그이가 말을 아주 잘하대. ④거시기, 사글셋방, 위력성당, 두째 (해설)①인습과 구별될뿐더러(구별되+ㄹ뿐더러 : ㄹ뿐더라는 어말어미로 항상 붙여 써야 한다) ③그이가 말을 아주 잘하데(‘-데’는 화자가 직접 경험한 사실을 나중에 보고하듯이 말할 때 쓰이는 말로 ‘-더라’와 같은 의미를 전달한다. ‘-대’는 직접 경험한 사실이 아니라 남이 말한 내용을 간접적으로 전달할 때 쓰인다) ④위력성당→‘울력성당’, 두째→‘둘째’ 가 올바른 표현이다. (정답)② (문제)“나는 길에서 큰 돈을 주웠다.”에 대한 분석으로 틀린 것은. ①안긴 문장이 포함되어 있다. ②11음절로 되어 있다. ③8개의 단어로 되어 있다. ④12개의 형태소로 되어 있다. (해설)품사, 어절, 단어, 음절, 형태소 등 문장의 분석 단위를 구별해 내는 문제다. 어절은 문장을 구성하는 도막도막의 마디로 띄어쓰기 단위와 일치한다. 단어는 자립할 수 있는 말이나 자립 형태소에 붙으면 쉽게 분리되는 말(조사)을 뜻한다. 형태소는 뜻을 가진 가장 작은 말의 단위를 의미한다. 이때의 뜻이란 문법적 기능도 포함한다. ‘나는 길에서 큰 돈을 주웠다’는 ‘나는 돈을 주웠다’에 ‘돈이 크다’가 안긴 겹문장이다. 단어를 분석해 보면 나/는/ 길/에서/ 큰/ 돈/을 주웠다/로 모두 8개의 단어로 이루어졌다. 형태소를 분석해 보면 나/는/ 길/에서 크/ㄴ/ 돈/을 줍/었/다/로 모두 11개의 형태로소 이루어졌다. 품사를 살펴보면 ‘나, 길, 돈’은 체언 ‘큰, 주웠다’는 용언 ‘는, 에서, 을’은 관계언으로 분석할 수 있다. (정답)④ (문제)다음 문장부호의 쓰임이 바르지 않은 것은. ①그것[한글]은 이처럼 정보화 시대에 알맞은 과학적인 문자이다. ②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로, 까지} 갔어요. ③책의 서문, 곧 머리말에는 책을 지은 목적이 드러나 있다. ④최치원(857~?)은 통일 신라 말기에 이름을 떨쳤던 학자이자 문장가이다. ②학교{에, 로, 까지} : 열거된 항목 중 어느 하나가 자유롭게 선택될 수 있음을 보일 때 중괄호를 쓴다. ①원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이나 논평 등을 덧붙일 때 대괄호를 쓴다. ③한 문장 안에서 앞말을 ‘곧’, ‘다시 말해’ 등과 같은 어구로 다시 설명할 때 앞말 다음에 쉼표를 쓴다. ④물음표는 모르거나 불확실한 내용임을 나타낼 때 쓴다. (정답)② 김철민 박문각 종로고시학원 강사
  • [서동철 칼럼] 중국도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데

    [서동철 칼럼] 중국도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데

    지난주 경주에서는 안압지 발굴 40주년을 맞아 발굴 주역이 한자리에 모인 뜻깊은 자리가 마련됐다. 지금은 ‘동궁(東宮)과 월지(月池)’라고 불리는 안압지는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됐지만 본격적인 조사는 하지 못하고 있었다. 1974년 연못에 쌓인 흙을 걷어 내는 과정에서 통일신라시대 유물이 쏟아져 나오자 이듬해부터 2년 2개월 동안 발굴이 이루어졌다. 이날 모임은 문화재연구소장으로 안압지 발굴을 총지휘했던 김정기 박사가 좌장을 맡기로 계획됐었다. 하지만 김 박사가 지난 8월 별세하는 바람에 좌담회는 추모 모임을 겸하는 자리가 됐다. 안압지 조사 당시는 문화재연구소에도 체계적인 발굴에 익숙한 사람은 김 박사가 거의 유일했다고 한다. 그러니 안압지 발굴 이후 40년은 우리나라 발굴이 발전한 역사를 응축한 시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세상의 눈길은 자연스럽게 김동현 당시 안압지조사단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의 발굴 당시 회고에 모였다. 발굴 현장 근로자들이 수습한 유물을 골동품상에 빼돌리는 일도 없지 않았던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었으니 한국판 ‘인디아나 존스’급 에피소드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40주년을 돌아보는 참석자들은 이제부터가 더 걱정스러운 듯했다. 발굴 조사로 동궁과 월지의 실체를 규명하고 통일신라시대 생활상을 상당 부분 복원한 이들이다. 사회를 맡은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윤근일 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 고경희 전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고수길 기호문화재연구원 이사장 등 조사단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당시로서는 최선을 다해 발굴했다”고 자부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40년 전에는 아무리 성공적인 발굴이었다고 해도 발굴 정보가 축적되고 발굴 기술도 발전한 오늘날 기준으로는 부족함이 없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상식이라고 했다. 월성을 비롯한 신라 왕경을 발굴 조사하고 있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좌담회를 마련한 것도 단순한 과거의 회고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의 조사 방향에 대한 고민을 나누어 보자는 취지였을 것이다. 참석자들은 월성의 조속한 발굴과 왕궁 복원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의식한 듯 “발굴도 결국은 유적 파괴”라면서 “절대 서둘러서는 안 될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발굴 조사의 목적은 잊힌 역사를 복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물을 찾아내거나 옛 구조물을 복원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땅속에서 금붙이를 찾아내는 것이 발굴의 목적이라면 시간을 끌 이유는 전혀 없다. 하지만 역사 복원에는 보통 사람에게는 별것 아닌 것으로 보이는 사소한 정보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 다시 거론하기도 미안하지만 1971년 무령왕릉 발굴이 좋은 사례다. 조유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발굴은 곧 파괴인 만큼 고고학자인 나는 유적 파괴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다”고 말한다. 특히 하루 만에 졸속으로 끝낸 무령왕릉 발굴 조사는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업보라고 토로하고 있다. 아예 발굴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졸병’으로 참여했다는 그의 회한이 이럴진대 발굴 책임자의 고통은 훨씬 심각했을 것이다. 원로 고고학자가 아니더라도 발굴이 곧 파괴라는 것은 상식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홈페이지에도 ‘발굴은 유적의 현상을 파괴하는 일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발굴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못 박고 있다. ‘학술 목적상 중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발굴을 하는 경우에도 최소한의 부분을 발굴하여 기본 자료를 얻도록 해야 한다’는 대목도 보인다. 발굴이 목적의 하나인 기관이 오히려 발굴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금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는 과거의 모습을 복원하기 위한 발굴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서두를수록 자기 고장과 해당 유적 역사의 재구성은 멀어질 뿐이다. 중국이 시안의 진시황릉을 두고 전면 발굴은 아직 때가 아니라며 후손들에게 과제를 넘겨주고 있는 것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땅속에 그냥 놔두는 것보다 안전한 유적 보존 방법은 없다. 꼭 필요한 발굴 조사도 미래에 넘기면 훨씬 더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 해외여행 | 다시 피가 돈다-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해외여행 | 다시 피가 돈다-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러시아’라는 세 글자가 내 속에서 퍼 올리는 건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음습하고 도덕적인 문학적 상념, 아침이면 의례처럼 볼륨을 높이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축축한 자조에 딱 들어맞는 ‘안나 게르만’의 로망스, 시적인 위로를 주는 ‘샤갈’의 그림들, 어감마저 차가운 ‘소련’이라는 이름, 저항의 로커 ‘빅토르 최’ 그리고 뜻도 모른 채 외던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과 무자비한 해체의 역사…. 그 거대한 땅덩이의 체취를 맡고서야 알았다. 러시아의 실체는 도표화된 관념보다 몽롱하고, 드물게 아름답다는 것을. 편협한 인식을 뒤로한 채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심장 뛰는 일인지를.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 아시아도 유럽도 아닌, 러시아 “‘스파시바спаси?бо’라고 해요!”블라디보스토크 도착 사인이 떴을 때, ‘고맙습니다’가 러시아어로 무엇이냐고 묻는 타이완 승객에게 스튜어디스가 말했다. 그녀는 친절하게 ‘시’에 강세를 줘야 한다는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그 순간부터 ‘스파시바’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를 거쳐 이르쿠츠크를 지나 바이칼에 이르기까지 내가 아는 유일한 러시아어가 되었다. 지도 위에서만큼 러시아연방이 기세등등해 보일 때도 없다. 호주보다 두 배 이상 큰,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진 이 나라에서 프리모르스키 지방을 찾을 때는 손가락 방향을 오른쪽으로 한참 이동시켜야 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연해주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프리모르스키 지방의 중심도시다. 분명 이국인데, 거리에는 늘씬한 금발의 미녀들이 넘치는데, 왠지 낯설지가 않다. 그건 아마 DNA에 박힌 기억 때문일 게다.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시대를 지나고 1900년대 초 민족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곳도 여기니까.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에서 짐작하듯 작은 변방도시에 불과했던 블라디보스토크에 러시아가 부여한 의미는 노골적이다. 겨울에도 연안이 심하게 얼지 않는, 부동항 블라디보스토크는 1년 내내 항만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어 전략적 항구도시와 군항으로는 적격이었다. 극동함대 사령부 등 해군기지가 주둔하고,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원조물자가 옮겨지는 거점이기도 했으며, 극동 지역 외교와 상업의 중심지로도 활약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함정 10여 대를 격침시켰다는 잠수함 C-56(‘C’는 러시아어로 ‘에스’라고 읽는다. ‘중형급’이라는 표시)은 찬란했던 전장을 회고하는 구소련의 늙은 해군처럼 해양공원 앞 뭍에서 긴 휴식에 들어 있었다. 길이 77m의 이 강철 영웅에겐 엔진을 돌리던 승조원들의 함성은 사라지고 그들이 남긴 훈장과 어뢰, 기관총을 자랑하는 게 유일한 일과가 되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6.5m 좁은 폭, 그 안의 희박한 공기 탓인지 머리가 띵해져 잠수함에서 나왔다. 옆으로 용사들의 넋을 위로하는 ‘영원의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 붉은 카네이션을 놓고 머리를 조아리는데 마침 뒤편 기도소에서 종이 울린다. 1941년과 1945년을 오르내리던 그 소리는 전쟁이 가당키나 하냐는 듯 평화로웠다. 1891년,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였던 니콜라이2세의 황태자 시절, 그의 방문을 기념해 세웠다는 개선문은 불과 몇 걸음 뒤다. 왜소한 풍채를 화려하게 치장한 그 건축물은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천성을 숨기고 자신만만한 ‘척’했다는 황제의 운명과 닮아 보였다. 혁명 후 파괴된 것을 고증을 거쳐 복원했다 해도 원형을 되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나 보다. 제정러시아의 문장이던 쌍두 독수리는 개선문 꼭대기에서 볼 수 없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세련되고 번화한 스베트란스카야 거리Svetlanskaya Street. 횡단보도의 초록 불은 바뀌는 순간 이미 9를 세고 있다. 으름장 놓는 선생님 같은 신호등을 째려보며 잰 발길을 놀려야 하는 일이 잦았다. 100년도 넘는 바로크양식의 건물들이 자리한 가로수 길을 걷고 있자니 막연히 ‘여긴, 유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거만하리만치 딱딱한 표정의 러시아인들을 보고 그 생각은 접기로 한다. 유라시아주의를 바탕으로 강대국을 재건한다는 국가의 외교정책에 이바지하듯, 아시아도 유럽도 아닌 이곳은 오로지 극동 러시아라는 자존감을 유지하고 있다. 스베트란스카야로부터 두 블록 떨어져 자리한 중앙광장은 소비에트 정권 수립을 위해 싸운 병사들을 기리는 동상만이 생생할 뿐, 혁명전사광장이라는 옛 이름은 의미 없어 보였다. 금요일이면 주말시장이 열리고 신년축제와 기념일 퍼레이드 등 이벤트의 무대가 된 지 오래다. 과거에도 지금도 이곳에서 집회는 계속되지만 혁명에서 놀이로 그 주제는 완전히 바뀌었다. 전설만 남은 영웅들의 흔적 블라디보스토크 둘째 날, 신한촌부터 찾았다. 신한촌은 일본에 의해 침탈된 국권회복을 위해 국내외 지식인들이 모여 결의를 다졌던 장소다. 고종이 파견한 헤이그 특사 중 한 명인 이상설, 상하이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였던 이동휘, 전설의 의병장이었던 홍범도를 비롯해 신채호, 안중근, 안창호 등 수많은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 아파트촌 어귀에 도착했을 때, 그곳이 신한촌 터라는 것을 눈치 챌 길은 보호 철책에 둘러싸인 ‘연해주 신한촌 기념탑’이 전부였다. 한인들이 살길을 찾아 연해주 땅을 처음 밟은 것이 1863년. 블라디보스토크가 극동 해군기지로 부상하면서 그들은 군항에서 작업인부로 일했다. 처음 자리 잡은 곳은 시내 중심부였다. 하지만 콜레라가 발생하자 시당국은 1893년 서쪽 아무르만 해안가로 한인들을 이주시키고 그곳을 ‘까레이스카야슬라보드카한인촌’, 우리말로는 개척리開拓里로 불렀다. 이후 1911년, 또 한 번의 위생 문제로 북쪽 2km 떨어진 라게르 산비탈로 이주한 한인들은 ‘노바야까레이스카야슬라보드카신한촌’를 형성했고, 이전의 거주지는 구한촌이라 불리게 되었다. 1914년, 신한촌은 3,000명이 거주하며 점차 자리를 잡아 갔지만 1937년, 스탈린이 극동에 살던 한인 17만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키면서 신한촌의 한인들 역시 카자흐스탄 등지로 이송되고 그 자리는 유럽과 러시아 노동자들의 차지가 되었다. 길이가 다른 커다란 세 개의 석조물. 가운데는 한국, 왼쪽은 북한, 오른쪽은 고려인을 포함한 해외 한민족을 상징한다는 기념탑 앞에서 조국의 미래를 밤새워 고민했을 독립 영웅들의 절절함을 가늠해 보기란 쉽지 않았다. ‘민족의 최고 가치는 자주와 독립…’이라는 기념탑의 글귀는 길 잃은 아이처럼 애처롭고 속상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블라디보스토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독수리 둥지’라는 뜻의 오리노예 그네즈도 산 정상은 214m에 불과하지만 도시에서 가장 높다. 계단을 올라서니 러시아의 키릴문자를 만든 아우 키릴로스와 형 메소디오스 형제의 동상이 십자가를 들고 블라디보스토크를 굽어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가니 바다 위에는 2012년 APEC 정상회담에 맞춰 완공한 루스키섬까지 이어진 금각만 대교가 장쾌했다. 서울 남산에서처럼 연인들이 자물쇠를 걸며 사랑을 맹세하는 건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혼 촬영이 한창인 신랑신부가 난간 틈을 비집고 자물쇠를 채우는 동안 신부보다 예쁜 들러리는 뭇 남자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아무르만 해변공원까지는 걸었다. 노천카페에 앉아 블라디보스토크의 명물인 메드베드카곰새우를 주문했다. 비릿하고 고소한 맛이 찬 맥주와 묘하게 어울렸다. 체 게바라가 그려진 티셔츠에 네덜란드 맥주를 마시는 청년들, 일본산 오토바이를 타고서 CF의 한 장면처럼 등장한 처녀들, 낚시를 즐기는 부부…. 히죽대며 그들의 모습을 훔치는 사이 새우껍데기만 자꾸 쌓여 갔다. ●하바롭스크Khabarovsk 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의 하룻밤 하바롭스크까지 가는 열차 출발 시간은 저녁 9시. 서둘러 짐을 챙기고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으로 향한다. 지는 해에 순종하며 기차역이 차분히 물들고 있었다. 1907년부터 5년에 걸쳐 지어졌다는 기차역은 제정 러시아의 건축양식으로 제법 낭만적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출발지이자 종착지다. 이곳에서 모스크바까지의 거리는 9,288km. 플랫폼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철로를 달렸다는 증기기관차도 보였다. 출발은 저녁 9시인데 플랫폼의 시계는 오후 2시를 가리킨다. 철도역의 모든 시간표는 모스크바가 기준이라는 것을 깜빡했다. 난민처럼 바닥에다 가방을 열어 젖히고 주섬주섬 필요한 물건만 미리 챙겼다. 출발시간이 다가오자 승무원은 여권과 승차권을 확인하고 탑승을 종용했다. 9번 칸, 객실번호 6호 23번. 4인 1실, 양쪽으로 2층 침대가 놓인 객실 ‘쿠페’는 좁았지만 불편함은 없었다. 서서히 열차가 움직이고, 시간이 지나야 시원해질 것이라는 차장의 말처럼 에어컨은 30분이 지나서야 제 기능을 발휘했다. 하바롭스크 도착은 내일 아침 8시. 무궁화호보다 더 느린 기차를 타고 밤새 11시간을 달려야 한다. 하얀 자작나무숲, 영화 <닥터 지바고>에 나올 법한 눈보라, 잠들지 않는 백야. 시베리아횡단열차에 엄청난 로망을 품은 사람들은 흔히 이런 것들을 상상한다. 러시아에 오기 전, 몽골을 거쳐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탔다는 친구는 말했다. “러시아 애들은 책만 읽고 얘기도 가족들끼리 소곤소곤. 같이 보드카 마시자던 러시아 아저씨 아니었으면 심심해서 아마 미쳐 버렸을 걸!” 모스크바까지 꼬박 달리는 이들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열차에서의 하룻밤만으로 그 기분은 짐작하고도 남았다. 낮도 아닌 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래야 반사되는 객실 내부가 전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산 가이드북을 뒤적이다 음악을 듣고, 러시아 사람들은 무엇을 하나 복도를 기웃대다가, 키릴문자가 새겨진 맥주를 마시고 남은 소시지 3개를 승무원에게 내미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은 없었다. 다행히 수다 떨 일행들이 있어 시간은 잘 갔다. 잠자리는 생각보다 아늑했다. 꺾이는 철로마다 침대가 심하게 덜컹대긴 했다. 하지만 낮에 흘린 땀이나 미처 못 지운 바지의 소스 자국, 떡진 머리도 문제될 게 없는데 그게 무슨 대수라고. 잠결에 2층 침대로부터 커튼콜처럼 내려왔다 올라가는 이불에 깜짝깜짝 놀라거나, 변기가 막힌 줄도 모르고 30분을 화장실 문 앞에서 참던 일만 빼면. 창문 너머 흘러가는 자작나무 사이로 스미는 햇빛을 보고 잠에 빠졌는데, 곧 정차한다는 소리에 허둥지둥 이불을 박차고 객실 문을 열어젖힌다. 열차가 멈춘 곳. 하바롭스크였다. 조금 더 머물고 싶던 도시 하바롭스크는 1991년 블라디보스토크가 개방되기 전까지 극동지역의 중심지였다. 이제는 그 영광을 물려줬지만 하바롭스크는 마치 권세를 내려놓은 자가 여유를 즐기듯 유유자적했다. 이 도시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레닌광장 북쪽에 자리한 청동 레닌상이다. 레닌이 사망한 이듬해인 1925년에 세워졌다는데 러시아 대부분의 지역에서 레닌의 동상이 철거된 데 반해 블라디보스토크와 이곳에서는 아직 건재하다. 레닌이 굽어보고 있는 광장은 하바롭스크의 행정 중심지다. 동쪽으로 하바롭스크주 정부청사가 보였다. 아침을 맞은 광장에는 벤치에서 조용히 휴식을 즐기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비둘기가 사람보다 많았다. 레닌광장 아래로 아무르스키 거리를 쭉 따라가면 길은 아무르 강변의 콤소몰 광장까지 잇닿는다. 콤소몰은 구소련 시절 공산주의 청년 정치조직의 이름이다. 광장에는 혁명 전사들의 모습이 조각된 오벨리스크가 굳건하고, 꼭대기에 소비에트를 상징하는 별이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광장 위 우스벤스키 성당이다. 성모승천성당으로 불리는 그곳은 소비에트 시절 파괴된 후 2001년 다시 동화 같은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아무르강이 눈앞인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걸음을 재촉했다. 총 길이만 2,800여 킬로미터. 몽골에서 발원해 하바롭스크를 거쳐 오호츠크해로 흐르는 아무르강은 중국에서는 흑룡강이라 부르는 그 강이다. 전망대 앞에는 강에 이름을 제공한 시베리아 초대 총독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의 동상이 있는데, 여행지에서 만난 아무르라는 이름들은 죄다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향토박물관은 잠시 비를 피하기에는 맞춤이었다. 연해주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박물관으로 본래 이름은 ‘그라제코프 주립 자연사박물관’. 이 역시 설립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122년의 전통이 축적된 내부에는 시베리아 메머드, 아무르 호랑이, 원주민인 나나이족과 우데게이족의 생활모습 등 하바롭스크주의 역사와 자연, 민속 등 자료 15만 점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구관에는 소비에트 시절과 관련한 물품들만 전시되어 있는데, 포스터부터 장신구까지 세월의 때가 묻은 낯설고 이색적인 소소함이 눈길을 끌었다. 강을 따라 북쪽에 다다르니 또 다른 아름다운 러시아정교회 성당이 자리했다. 프레오브라젠스키 성당은 황금색 돔과 새하얀 성당이 질서정연했고 내부는 황홀했다. 천장에 그려진 그리스도와 네 명의 사도, 정면 6층 제단의 성모와 성인들의 모습을 새긴 이콘(성상화)은 다른 세상의 것인 듯 신비롭고 이질적이었다. 이콘에 향했던 눈길은 머리를 가리고 촛불을 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서 한참을 머물렀다. 진지하고 경건했다. 그 경배의 몸짓 뒤에서 할 것이라고는 숨소리를 죽이는 것 외에는 없었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 Trans Siberian Railroad시베리아횡단철도는 모스크바에서 시작해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하는, 총길이 9,288km의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다. 1891년에 착공해 1916년에 완공됐다. 90여 개의 도시를 거치는 동안 시간대만 7번이 바뀌고, 지나는 역만 60여 개다. 급행열차를 타면 일주일이 걸린다. 열차의 출발과 도착시간은 모스크바가 기준이다. 열차의 객실 등급은 1등석인 2인 1실의 ‘룩스Lyux’, 2등석 4인 1실의 ‘쿠페Kupe’, 3등석 6인실의 ‘플라츠카르타Pratskartny’와 지정 번호가 없는 8인 좌석의 ‘옵스치Obschy’로 나뉜다. 룩스와 쿠페는 객실이 분리되어 있지만 3등석은 객실 구분 없이 개방되어 있다. 콘센트가 있는 것은 1등석 객실뿐이다. 2등석은 객실 내부 말고 복도에 네 개, 화장실 밖과 안에 각 한 개씩 있다. 멀티 탭을 가져가면 도움이 된다. 열차 칸마다 뜨거운 물이 비치되어 라면이나 커피를 먹을 수 있다. 열차 한 칸당 두 명의 승무원이 교대근무하며 객실을 살피고 간단한 먹을거리도 판매한다. 술과 담배는 규정상 금지되어 있지만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흡연자들은 보통 역에 정차할 때마다 내려 담배를 피우고 재빨리 오른다. 러시아 철도청 www.rzd.ru 러시아정교회 러시아정교회는 988년 블라디미르 대공에 의해 비잔티움의 동방정교를 받아들여 민족신앙과 결합한 종교다. 러시아정교회 건축양식의 가장 큰 특징은 독특한 양파 모양의 돔 ‘루꼬비짜’다. 눈이 많이 오는 러시아에서 눈이 쌓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 외에도 기도가 하늘에 닿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흰색과 황금색은 러시아정교회 초기의 가장 기본이 되는 색채로 흰색은 평화와 순결, 황금색은 신성을 상징한다. 예배는 사제는 있지만 설교는 하지 않고, 의자 없이 서서 참여한다. 또 악기의 반주 없이 오로지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성가를 부른다. 러시아정교회가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된 것은 고르바초프에 의해 1990년 소련 최고회의에서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법을 의결한 후부터다. ●이르쿠츠크Irkutsk 아! 바이칼 비행기가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 무렵이었다. 이르쿠츠크는 바이칼 호수를 가기 위한 관문. 둘러 볼 겨를 없이 아침이면 또 길을 떠나야 한다. 설렘과 염려를 교차시키느라 잠은 쉬 들지 못했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호의 들머리까지는 버스로 3시간 반. 부리야트족 자치구인 우스찌아르다를 스치는 동안에는 가을을 준비하는 스텝짧은 풀로 뒤덮인 초원이 길게 이어졌다. 어렴풋이 호수가 시야에 들어올 무렵 버스가 멈춘 곳은 사휴르따 선착장이다. 목적지인 알혼섬을 가기 위해 철부선에 올랐다. 배는 물살을 가른 지 30분도 되지 않아 사람들과 자동차를 섬에 부려놓았고, 세상사 다 겪은 아이처럼 옹골찬 ‘우아직러시아 군용차량을 개조한 4륜 승합차’이 벌써 마중 나와 있었다. 운전기사 안톤은 숙소가 있는 후지르 마을까지 한 시간을 달려야 한다며 돌투성이 길을 망설임 없이 내달렸다. 요란한 진동 모터 위에 앉은 듯 엉덩이는 시종 덜덜거렸다. 바이칼 호수가 품은 22개의 섬 중 알혼은 가장 크고,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섬이다. 거제도의 두 배쯤 되는데, 다섯 개 마을의 주민 1,500명 가운데 대부분은 후지르 마을에 모여 산다. ‘알혼’은 부리야트 원주민어로 ‘태양이 비추는 땅’이라는 뜻이다. 연 강수량이 200mm에 불과해 스텝과 사막 그리고 화강암과 침엽수림이 전부다. 그 황량함을 심장처럼 품은 바이칼호수를 향해 원주민들은 ‘바이칼은 서 있는 불. 아직도 그 불은 식지 않고 있다’며 경외심과 두려움을 표현해 왔다. 숙소에 짐을 내리고 부르한Burkhan 바위가 보이는 언덕으로 갔다.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13개의 세르게 신목. 조상신들이 모이는 곳을 지나니 검푸른 호수 앞으로 정좌한 두 개의 지엄한 바위가 보였다. 샤머니즘의 성지로 알려진 바로 그 자리다. 주위에는 히말라야에서 방금 내려온 성자 같은 복장을 한 외국인들이 손을 맞잡고 명상에 잠겨 있었고, 가부좌를 튼 채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는 이도 보였다. 무엇이 그들을 이곳으로 이끈 건지 모르겠지만 초자연적 존재와의 교류도, 북방 몽골인종의 시원이 서린 곳이라는 학설도, 부리야트인의 피를 이어받은 칭기즈칸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도,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진 바이칼 호 자체보다 신성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우아직은 섬의 가장 북쪽 하보이곶으로 달렸다. 날카로운 송곳니 모양을 한 절벽. 그곳에서 보는 바이칼은 호수가 아니라 바다, 그것도 대양이었다. 경계도 모른 채 펼쳐진 호수는 텅 빈 채 근원에 닿을 듯 아스라해서, 차라리 공허했다. 그날 밤, 호숫가에 앉아 마신, 수심 200m의 바이칼호 물로 만들었다는 보드카는 파도소리와 함께 목젖을 뜨겁게 타고 흘렀다. 떠나기 전 호수를 꼭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새벽 5시 혼자 숙소를 나섰다. 인기척 없는 마을을 두리번대며 방향을 가늠하고는 그 언덕에 다시 올랐다. 부르한 바위 앞, 잠이 덜 깬 호수는 몸을 뒤척였고 바람은 초연했다. 그리고…. 영원한 작별인 양 호수에 건넨 말은 이것뿐이었다. “스파시바… 바이칼.” ▶travel info AIRLINE대한항공에서 블라디보스토크와 이르쿠츠크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노선의 출발편은 매일 인천에서 오전 10시10분에 출발해 오후 1시50분에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고, 귀국편은 오후 2시50분에 출발해 오전 7시10분에 인천에 도착한다. 이르쿠츠크 노선은 12월25일부터 1월15일까지 동계노선을 주 2회(월·금요일)씩 총 6회 운항할 예정이다. 출발편은 저녁 8시50분 인천에서 출발, 밤 12시5분에 이르쿠츠크에 도착하고, 귀국편은 새벽 2시30분 출발, 오전 7시10분 인천에 도착한다. 인천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2시간 10분, 이르쿠츠크까지는 3시간 40분이 소요된다. SHOPPING알까기 인형 ‘마트료시카’19세기 말에 탄생한 나무로 만든 러시아 인형으로 엄마를 뜻하는 러시아어 ‘마티’에서 유래했다. 일본 전통인형인 ‘다루마’에서 영감을 얻어 1891년 러시아 민속공예화가 세르게이 말루틴이 처음 디자인했다고 전해진다. 둥근 몸통 안에는 작은 인형들이 겹겹이 들어 있는데, 일본정부에 선물하려고 만든 1세트 72개가 들어있는 대형 마트료시카는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시대에 따라 외형도 변해서 만화영화의 캐릭터나 대중음악가, 스포츠 스타나 정치인의 얼굴을 담은 마트료시카도 볼 수 있다. 가격은 싼 것은 대개 400~700루블 정도이지만 디자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FOOD국민음식 ‘보르쉬’와 ‘샤슬릭’ 러시아의 음식은 슬라브 전통에 서유럽과 몽골,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지역의 영향을 받아 대개 짜고 달고 신, 자극적이고 복합적인 맛이다. 대표적인 슬라브 전통음식인 ‘보르쉬’는 감자, 당근, 양배추에 비트와 토마토로 색을 낸 스프다. 샤슬릭은 러시아어로 ‘꼬치구이’라는 뜻이다. 이름보다는 맛 ‘오물‘오물은 바이칼호에서만 서식하는 토착 물고기다. 생긴 것은 우리의 청어와 닮았다. 회나 탕, 튀김, 샐러드 등 다양하게 먹는 방법이 있는데 자작나무에 훈제한 오물이 가장 인기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항구 마을 리스트비얀카에는 오물을 파는 가게들이 잔뜩 있다. 가시가 적고 비리지 않아 담백하다. 39°도 41°도 아닌 40° ‘러시안 보드카’러시아를 대표하는 술, 보드카Vodka는 러시아어 ‘물voda’에서 유래되었다. 감자나 옥수수, 보리 등을 원료로 한 증류수로 무색, 무취, 무미다. 러시아 속담에 ‘4,000km는 길도 아니고 영하 40도는 추위도 아니며 40도가 아니면 술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19세기 후반, 원소주기율표를 만든 러시아의 화학자 멘델레예프가 가장 입맛에 잘 맞고 숙취를 일으키는 불순물이 제일 잘 걸러지는 최상의 알코올 도수가 40%라는 것을 발견했다. 보드카의 나라 러시아에서도 밤 11시부터 오전 8시까지 공공장소에서의 음주를 금지하고 있으며, 밤 10시부터 오전 10시까지는 도수 15% 이상의 주류 판매도 금하고 있다. MUSEUM연해주의 모든 것 ‘아르세니예프 향토박물관’1890년 개관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박물관이다. 1906년 구시베리아 상업은행 건물로 옮겨졌는데, 아르세니예프는 연해지방을 서방에 알린 탐험가의 이름이다. 3층 건물 안에 연해주의 자연과 지리, 민속학, 고고학 사료들과 동식물 표본집, 화폐 등 약 20만 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주제가 딱히 구분되지는 않았지만 한국관에서는 지역에서 발굴된 발해의 유물을 볼 수 있다.20 Svetlanskaya Str. Vladivostok +7 4232 414 082 100루블평일 09:00~18:00, 토·일요일 09:00~17:30 HOTEL바이칼호 바로 옆 ‘바이칼로프 오스트록’알혼섬의 후지르 마을 입구에 있는 나무로 된 시베리아 전통가옥 형태의 숙소다. 2013년 문을 열었는데 114개의 객실에 250명을 수용할 정도로 알혼섬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깔끔하다. 특히 바이칼 호수 바로 앞에 위치해서 객실과 레스토랑에서 호수가 보이고 새벽에도 밤에도 산책을 할 수 있는데다, 부르한 바위까지도 도보로 20분 거리다. 7, 8월 성수기 스탠다드 트윈룸의 경우, 아침식사 포함 1박에 4,500루블(약 8만원), 화장실과 샤워실은 객실 3개가 있는 한 층에서 공동으로 사용한다. 욕실용품은 비치되어 있지 않다. 호숫가에서 바비큐를 할 수 있도록 그릴과 장작, 숯 등 일체의 도구도 대여해 준다. 666137, Russia, Irkutsk Region, Olkhonskyi District, Village Khuzir, Street Pribreznaya, 3+7 3952 404 202 www.baikalovostrog.ru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취재협조 대한항공 www.koreanair.com 참좋은여행 www.verygoodtour.com
  • 이순신장군 승전보고서 ‘장계별책’ 되찾았다

     경찰청은 올해 문화유산 사범 척결에 집중한 결과 지난달까지 32건의 사건을 해결해 91명을 검거하고 이 중 6명을 구속했다고 4일 밝혔다.  경찰은 또 수사 과정에서 충남 아산 이순신 종가에서 도난당한 ‘장계별책’(이순신 장군이 선조와 광해군에게 올린 전쟁 상황보고서를 모아 1662년 필사한 책)을 회수하고,국가지정문화재인 경북 경산 ‘임당동 1호 고분’에서 도굴된 금귀걸이 2쌍과 다리미를 되찾는 등 도난·유실 문화재 1673점을 회수했다. 이들 문화재는 시·도 지정 문화재 2점, 문화재 자료 7점, 등록 문화재 3점, 비지정 문화재 1661점 등이었다. 문화유산 사범 91명의 유형을 보면 문화재 도굴 사범이 37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부실공사 유발행위 24명, 모조품 유통 21명, 공무원 비리 9명 등의 순이었다.  경찰은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259호 ‘두릉구택’과 경북도 기념물 제62호 ‘임고서원’ 등 고택에서 도난당한 서동파집과 서호별곡 등 보물급 서적 4점과 지정 및 비지정문화재 359점을 장물아비를 통해 구입해 인터넷 경매사이트를 통해 팔아넘겨 6억원의 이득을 취한 5명을 대전 광역수사대가 검거한 것을 주요 사례로 들었다. 또 광주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문화재 기술자 17명의 자격증을 불법 대여받아 ‘전라병영성 복원공사’ 등 23건의 공사를 수주한 문화재 보수업체 2곳의 대표와 자격증 대여한 기술자 17명 등 19명을 검거했다.  경기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양평·여주·가평 지구 유물산포지 36곳에서 땅파기 금지나 표본·입회 조사 이행 등 문화재 보존대책을 통보받았음에도 이와 달리 공사를 진행한 서울지방국토관리청 공무원 등 8명을 검거했다. 경찰 관계자는 “그동안 문화재전문 수사관 44명을 선발하고 각 지방청에 문화유산 수사자문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수사 전문성 확보에 노력해왔다”며 “앞으로 문화재 도난·도굴, 해외 밀반출 등의 수사에 더욱 역량을 집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특별기고] 개성 만월대에서 바라본 남북 관계/나경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특별기고] 개성 만월대에서 바라본 남북 관계/나경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개성시 동현동. 우리 남편의 본적지이다. 한 달 전, 정치인의 방북은 절대 안 된다며 개성공단 시찰을 불허했던 북한이 개성 만월대 발굴조사 현장 방문을 허가하면서 급하게 오른 방북 길, 문득 나도 이산가족의 며느리구나 하는 생각 때문인지 지난 2일의 방북은 나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남편 본적지… 개성 거리의 시장화 가장 가깝고도 먼 곳. ‘평양 208㎞, 개성 21㎞’라고 쓰여진 도로표지판이 무색할 만큼, 우리는 사전에 발급받은 방북증을 손에 들고 해외를 드나들 때보다 더 엄격한 북측 통행검사소의 검문을 통과하고 나서야 개성으로 향할 수 있었다. 생태통로 조성으로 이제는 동물들도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한 이 길을…. 그렇게 도착한 개성은 생각했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거리에 늘어선 남새(채소)상점, 양복점, 이발소와 목욕탕 등 여러 상점과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바삐 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비록 구석구석 살펴볼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 시장화가 진행된 듯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북한의 시장화가 북한 개방을 촉진할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징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 끝에 다다른 곳, 바로 개성 만월대였다. 개성 만월대는 고려 태조 왕건이 세웠던 왕궁 터로,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해 남북이 공동으로 발굴조사 사업을 진행하는 곳이다. 올해 남북협력기금 22억원을 포함하여 이제까지 약 37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되었지만, 정치적 부침이 있었던 남북관계의 특성상 발굴 중단이 반복되면서 사업 진척률이 35.5%에 불과한 실정이다. 다행히 현재 제7차 공동발굴조사가 역대 최장 기간인 6개월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특히 올해에는 광복 70주년을 계기로 최초의 남북 공동 전시를 추진한 덕분에 서울에서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개성에서는 고려박물관 경내에서 각각 발굴 유물 전시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지난 10월 서울 전시회의 개막전에 참석했던 나로서는 실제 유물을 볼 수 있는 이번 개성 전시가 더욱 기대될 수밖에 없었다. ●남북협력기금 22억·전시 수준은… 아,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서울과 개성의 전시 수준은 마치 21세기와 20세기를 오가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큰 차이를 보였다. 각종 3D(3차원) 프로그램 등으로 마치 개성 만월대 현장을 보는 것 같았던 서울 전시와 달리, 개성 전시관은 천막으로 만든 임시 전시장에 출토 유물을 나열해놓은 느낌이었다. 습도나 햇빛을 전혀 조절할 수 없는 곳에 유물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다. 전시장에 이어 방문한 만월대 발굴 현장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유물이 훼손되기 전에 조속히 발굴 작업을 마무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붕괴 위험으로 발굴 현장을 비닐로 덮어놓고 있는 등, 전시 및 발굴 작업 전반에 걸친 다방면의 지원이 절실해 보였다. 한 번 발굴작업이 시작되면 두 달, 세 달씩 현장에 머무르며 힘들게 발굴작업을 이어간다는 박성진 단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발굴사업의 성과를 내준 발굴단원들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북 유산 발굴, 남북 신뢰 사업으로 신뢰는 작은 것부터 쌓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과 북이 공동의 기억을 갖고 있는 역사를 기반으로 한 문화유산 발굴사업이야말로, 상호 간에 신뢰를 쌓아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의 문화유산 발굴 사업이 남북 공동이 아닌 중국, 일본 등 해외 단체들과 공동으로 이루어져 왔다니 통탄할 일이다. 이번 만월대 공동발굴 사업의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 한편, 이를 계기로 제2, 제3의 공동발굴 사업이 이어질 수 있도록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고구려 고분 발굴이나 비무장지대(DMZ) 내 궁예 도성 발굴 등을 우선 논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독일문학의 거장이라 불리는 귄터 그라스는 ‘동서독이 이데올로기와 경제적 차이는 있었어도 문화적 분단이 이뤄진 것은 없었다’고 했다. ‘문화통로’를 통한 남과 북의 교류 다각화, 다층화를 위해서라도 문화유산 발굴 및 연구 분야에서의 교류 협력 강화를 적극 추진해야 할 때이다.
  • 국내여행 | 한 템포 느리게 봉화

    국내여행 | 한 템포 느리게 봉화

    푸름을 간직한 봉화. 분주함도 재촉할 필요도 없다. 기차가 아니면 갈 수 없는 자연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몽룡의 생가, 계서당 조선시대 최고의 로맨스이자 4대 국문 소설로 꼽히는 <춘향전>의 주인공인 이몽룡. 실존인물은 계서溪西 성이성成以性, 1595~1664년이다. 초기 <춘향전>에는 성도령, 성몽룡으로 쓰이다가 나중에 이몽룡으로 고쳐졌다고 전해진다. 아버지 성안의를 따라 남원에서 공부했고 이후 과거에 급제해 암행어사로 출두, 남원으로 돌아와 술 한잔 기울이며 나누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춘향전> 집필 당시에는 양반의 실명을 바로 거론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아 대신 춘향의 이름에 ‘성’씨를 붙여 줬다는 후문이다. 성이성의 일기에는 눈 오던 밤 광한루에 앉아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밤늦도록 잠들지 못했다’는 구절이 있다고 한다. 성이성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하는 계서당으로 가는 길에는 사과와 옥수수 밭이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마을 전체가 고요하고 녹음이 짙어 어디를 둘러봐도 눈이 편안하다. 소나무 숲 아래 자리한, 지은 지 400년 넘은 계서당은 큰 벼슬에 비해 소박하고 정겹다. 아래쪽 마당 끝에 대문간채를 두고 북쪽 높은 곳에 사랑채와 안채가 하나로 연결된 조선시대 경북 북부지방 ‘ㅁ’자형 전통가옥의 옛 모습도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13대손이 고택을 관리한다. 권벌 선생의 흔적, 석천정사와 닭실마을 석천계곡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한눈 가득 들어오는 석천정사石泉亭舍. 무릉도원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기분이다.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시원한 바람을 벗 삼아 책을 읽으면 좋을 것만 같다. 안동 권씨의 대표 인물인 충재 권벌 선생의 장남 권동보가 1535년에 지었다는 이 정자는 청암정靑巖亭, 삼계서원三溪書院과 함께 그 경치가 아름다워 사적 및 명승지로 주목을 받고 있다. 정사의 왼쪽 끝자락을 돌면 그 건너편으로 닭실마을이 보인다. 한국의 풍류가들이 손꼽는 곳으로 조선 중기의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경주의 양동마을, 안동의 앞내마을 및 하회마을과 더불어 물가에 사람이 살 만한 조선 4대 길지 중 하나라고 극찬했다. 닭실마을은 풍수학에서 말하는 금계포란(닭이 알을 품고 있는)형의 명당이다. 충재 권벌 선생의 종택이 이곳에 자리 잡고, 제사를 모시면서 기존에 살고 있던 파평 윤씨와 함께 마을을 형성했다. 원래 500여 년 동안 달실마을로 불렸으나 근래 표준어 사용의 적용을 받아(‘달’은 경북 북부지역 닭의 사투리) 현재는 닭실로 쓰이고 있다. 고택의 담장과 푸른 들판이 펼쳐진 마을은 곳곳이 평화롭고 여유로웠다. 깨끗하게 정돈된 길은 인위적이지 않아 더 포근했다. 닭실마을을 떠나며 뒤돌아본 마을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기차도 타고 트레킹도 하고 공기 좋고 물 맑은 봉화에서는 느리게 걸어야 한다. 3구간으로 총 70km에 이르는 낙동정맥트레일 봉화구간 중 2구간을 거닐었다. 낙동강 최상류에서 시작하는 1구간, 외씨버선길과 만나는 3구간보다는 다소 거리가 짧은 2구간은 열차 여행도 함께 할 수 있어 더 매력적이다. 열차가 아니면 갈 수 없는 곳을 누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하다. 분천역에서 승부역까지는 백두대간 협곡열차 V-train(V는 ‘valley협곡’의 약자)을 이용한다.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표현이 딱 어울릴 만한 분천역의 풍경이 열차를 기다리는 시간마저 즐겁게 만든다. 분천역은 계획적으로 변모했다. 지난해 겨울, 스위스의 체르마트역과 자매결연을 맺고 산타마을로 조성했는데 관광객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원래 한시적으로 운영될 예정이었던 산타마을은 철거되지 않고 지금까지도 봉화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분천역을 출발한 협곡열차는 백두대간 오지구간을 시속 30km로 천천히 달린다. 유리창 너머로는 시원하게 펼쳐진 숲과 협곡이 청정자연을 가감 없이 뽐내기 바쁘다. 승부역에서 내리면 이제부터 트레킹이 시작된다. 배바위고개 마지막 280여 계단의 다소 가파른 여정이 기다리지만 마침내 정상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어느새 가쁜 숨은 희열이 된다. 낙동정맥트레일 구봉산에서 부산 다대포의 몰운대에 이르는 ‘낙동정맥’과 ‘트레일Trail’이 더해져 만들어진 이름이다. 트레일은 트레킹 길 중 산줄기나 산자락을 따라 길게 조성하여 시작점과 종점이 연결되지 않는 길을 의미한다. ▶travel info train백두대간 협곡열차 V-train | 외관은 대한민국 백두대간을 누비는 백호를 표현했다. 1호차 전망실(56석), 2호차 전망·미니카페실(46석), 3호차 전망실(56석)로 구성되며, 열차 전체가 유리창으로 돼 있다. 야광스티커로 꾸민 천장은 26개의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 빛을 낸다. 1호차 맨 뒤는 유리창으로 시원하게 개방돼 지나오는 기찻길을 감상할 수 있다. 운행 내내 주변의 지형지물을 설명해 준다.분천→양원→승부→철암 하루 3차례(왕복) 운행(매주 월요일 운행 없음) 분천-철암 편도 8,400원(약 1시간 10분 소요) www.vtrain.co.kr Museum충재박물관 | 충재 권벌 선생과 후손들이 남긴 1만여 점의 다양한 고서와 유물을 전시 및 보관하고 있다. 2007년, 문중 사람들이 만든 개인 박물관으로 권벌 선생의 후손이 관리한다. 박물관 바로 옆에는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에 드는 아름다운 정자 ‘청암정’이 있다.동절기 5~10월 10:00~17:00, 하절기 11~4월 10:00~16:00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1리 934 054 674 0963 www.darsil.kr Activity봉화 목재 문화 체험장 | 선조들의 목재문화부터 목재의 쓰임새, 생산과정 및 종류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야외에는 산림욕장과 자생식물단지, 목재 놀이시설, 잔디광장 등 다양한 휴식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특히 체험장에서는 간단하게 목재를 활용한 생활 공예품을 만들 수 있다.동절기 09:00~17:00, 하절기 09:00~18:00(폐장 1시간 전까지 입장), 1월1일, 설날·추석연휴, 매주 월요일, 공휴일 다음날 휴무 무료(체험료는 제품별 별도)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구절로 151 054 674 3363 Information Center낙동정맥트레일 봉화구간 숲길 안내센터 | 분천역 근처에 자리 잡고 있으며 다양한 종류의 팸플릿을 비치해 두고 있다. 트레킹 여행자에게 숙소와 샤워실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제공한다. 안내소 주변에 있는 주차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낙동정맥트레일 봉화 제2구간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곳에 주차 후 분천역에서 열차를 타고 승부역에서 내려 트레킹, 다시 분천역으로 돌아오면 된다.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935-81 054 672 4956 에디터 손고은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유리 취재협조 경상북도 관광공사 www.gtc.co.kr, 봉화군청 www.bonghwa.go.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특별기고] 개성 만월대에서 바라본 남북 관계/나경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특별기고] 개성 만월대에서 바라본 남북 관계/나경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개성시 동현동. 우리 남편의 본적지이다. 한 달 전, 정치인의 방북은 절대 안 된다며 개성공단 시찰을 불허했던 북한이 개성 만월대 발굴조사 현장 방문을 허가하면서 급하게 오른 방북 길, 문득 나도 이산가족의 며느리구나 하는 생각 때문인지 지난 2일의 방북은 나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남편 본적지… 개성 거리의 시장화 가장 가깝고도 먼 곳. ‘평양 208km, 개성 21km’라고 쓰여진 도로표지판이 무색할 만큼, 우리는 사전에 발급받은 방북증을 손에 들고 해외를 드나들 때보다 더 엄격한 북측 통행검사소의 검문을 통과하고 나서야 개성으로 향할 수 있었다. 생태통로 조성으로 이제는 동물들도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한 이 길을…그렇게 도착한 개성은 생각했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거리에 늘어선 남새(채소)상점, 양복점, 이발소와 목욕탕 등 여러 상점과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바삐 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비록 구석구석 살펴볼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 시장화가 진행된 듯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북한의 시장화가 북한 개방을 촉진할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징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 끝에 다다른 곳, 바로 개성 만월대였다. 개성 만월대는 고려 태조 왕건이 세웠던 왕궁 터로,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해 남북이 공동으로 발굴조사 사업을 진행하는 곳이다. 올해 남북협력기금 22억원을 포함하여 이제까지 약 37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되었지만, 정치적 부침이 있었던 남북관계의 특성상 발굴 중단이 반복되면서 사업 진척률이 35.5%에 불과한 실정이다. 다행히 현재 제7차 공동발굴조사가 역대 최장 기간인 6개월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특히 올해에는 광복 70주년을 계기로 최초의 남북 공동 전시를 추진한 덕분에 서울에서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개성에서는 고려박물관 경내에서 각각 발굴 유물 전시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지난 10월 서울 전시회의 개막전에 참석했던 나로서는 실제 유물을 볼 수 있는 이번 개성 전시가 더욱 기대될 수밖에 없었다. ●남북협력기금 22억·전시 수준은… 아,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서울과 개성의 전시 수준은 마치 21세기와 20세기를 오가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큰 차이를 보였다. 각종 3D(3차원) 프로그램 등으로 마치 개성 만월대 현장을 보는 것 같았던 서울 전시와 달리, 개성 전시관은 천막으로 만든 임시 전시장에 출토 유물을 나열해놓은 느낌이었다. 습도나 햇빛을 전혀 조절할 수 없는 곳에 유물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다. 전시장에 이어 방문한 만월대 발굴 현장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유물이 훼손되기 전에 조속히 발굴 작업을 마무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붕괴 위험으로 발굴 현장을 비닐로 덮어놓고 있는 등, 전시 및 발굴 작업 전반에 걸친 다방면의 지원이 절실해 보였다. 한 번 발굴작업이 시작되면 두 달, 세 달씩 현장에 머무르며 힘들게 발굴작업을 이어간다는 박성진 단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발굴사업의 성과를 내준 발굴단원들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북 유산 발굴, 남북 신뢰 사업으로 신뢰는 작은 것부터 쌓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과 북이 공동의 기억을 갖고 있는 역사를 기반으로 한 문화유산 발굴사업이야말로, 상호 간에 신뢰를 쌓아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의 문화유산 발굴 사업이 남북 공동이 아닌 중국, 일본 등 해외 단체들과 공동으로 이루어져 왔다니 통탄할 일이다. 이번 만월대 공동발굴 사업의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 한편, 이를 계기로 제2, 제3의 공동발굴 사업이 이어질 수 있도록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고구려 고분 발굴이나 비무장지대(DMZ) 내 궁예 도성 발굴 등을 우선 논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독일문학의 거장이라 불리는 권터 그라스는 ‘동서독이 이데올로기와 경제적 차이는 있었어도 문화적 분단이 이뤄진 것은 없었다’고 했다. ‘문화통로’를 통한 남과 북의 교류 다각화, 다층화를 위해서라도 문화유산 발굴 및 연구 분야에서의 교류 협력 강화를 적극 추진해야 할 때이다. 나경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 사람 얼굴 모양 추정 구석기시대 돌조각 발견

    사람 얼굴 모양 추정 구석기시대 돌조각 발견

    3만 5000년 전 후기 구석기시대 유물에서 사람 얼굴 모양을 새긴 것으로 보이는 돌조각이 발견됐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은 충북 단양군 적성면 하진리 남한강가에 있는 수양개 6지구에서 지난해 발굴한 유물을 확인하던 중 ‘얼굴 모양 돌조각’을 찾아냈다고 2일 밝혔다. 성인의 엄지손톱 크기인 이 돌조각은 가로 2.29㎝, 세로 1.57㎝, 무게 1.66g이며, 앞서 발견된 ‘눈금 새긴 돌’과 함께 발굴 유례가 없어 후기 구석기 연구에 도움을 줄 희귀 유물로 평가된다. 3일 충북대에서 열리는 제20회 수양개 국제학술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발표할 예정인 이경우 연구원은 “구석기 사람들이 얼굴 형태를 표현하기 위해 선을 그은 것으로 본다. 현미경으로 유물을 살피면 입 부분의 가운데를 살짝 아래쪽으로 그려 인중을 나타냈고, 돌의 전반적인 형태가 이마와 턱을 연상시킨다”면서 “얼굴 모양을 새긴 돌조각은 동시대 유물 중 매우 희귀하다는 점에서 매우 높은 예술성과 자의식이 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토론자로 나서는 배기동 한양대 교수는 “인공적으로 조각하듯이 판 것은 틀림없다”면서 “큰 돌의 귀퉁이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파편이라 전체 모습을 본다면 얼굴 조각 여부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얼굴로 보이지만 아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시대에 따라 혹은 개인에 따라 인식의 차이가 있을 수 있어서 한쪽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수양개 유적은 충북대 박물관이 1980년 충주댐 수몰지역을 조사하면서 발견했으며 국내 최대 규모의 구석기시대 유적으로 평가받는다. 지난해는 얼굴 모양 돌조각이 나온 문화층과 동일한 지층에서 ‘눈금 새김 돌’이 발굴된 바 있다. 이 돌은 길이 20.6㎝의 규질사암 자갈돌에 0.4㎝ 간격으로 눈금 22개를 새긴 것으로, 수나 단위 등을 기호화한 측량 도구로 추정된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만월대 제2발굴 예산 지원하자”

    “만월대 제2발굴 예산 지원하자”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2일 고려 왕궁터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북한 개성 만월대를 방문했다. 외통위의 방북은 2013년 10월 개성공단 방문 이후 2년여 만으로, 개성공단 이외의 북한 지역을 국회 상임위 차원에서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다. 외통위원과 통일부 관계자 58명의 방북단은 이날 북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궁궐터와 만월대 출토 유물 전시회를 직접 점검·관람했다. 외통위원들은 이 자리에서 남북 공동 문화유산 보전 사업의 확대·강화와 경제·사회 등 다방면의 교류 확대를 위한 국회 차원의 대책을 논의했다. 나경원 외통위원장은 “한번도 정치인과 함께 가겠다고 했을 때 승인하지 않았는데 (이번 방북은) 큰 변화”라며 “발굴과 전시 분야에서 협력을 시작하면 (남북이) 상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외통위원들과 제2, 제3의 발굴을 해보자, 예산을 적극 지원하자는 이야기를 나눴다”고도 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사설] 외통위원 방북, 남북 교류 촉매제 돼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어제 개성을 방문했다. 이들은 고려 왕궁터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만월대 발굴 현장을 둘러보고 남북이 공동 발굴한 ‘출토유물 전시회’도 관람했다. 외통위원들의 방북은 재작년 10월 개성공단 방문 이후 2년여 만으로, 남북 대화가 소강 국면인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사뭇 뜻깊다. 우리는 이번 방북이 남북 간 인적·물적 교류를 가로막는 바리케이드를 들어 올리는 지렛대가 되길 기대한다. 만월대 궁궐터는 2007년부터 남북이 공동으로 발굴 조사를 진행했다. 남북 간 이념적 갈등의 소지가 적은 문화유산 분야에서의 협력 프로젝트이긴 했다. 하지만 그간 남북 간 긴장을 고조시키는 숱한 위기를 겪고도 남북이 이처럼 협력의 끈을 이어온 점은 평가할 만하다. 이제 외통위원들의 방문으로 더 전방위적 협력으로 심화될 모멘텀을 찾게 된다면 그 의미는 더 커질 것이다. 나경원 위원장을 비롯한 외통위원 22명 전원과 수행원들을 포함해 이처럼 큰 규모의 의원 방북은 1991년 국회 대표단 방북 때를 빼면 흔치 않은 일이다. 까닭에 북한 당국이 이번 방북을 허용했다는 것 자체가 그동안 꽁꽁 닫아걸었던 문을 열려는 긍정적 신호로도 해석된다. 물론 당장 북한이 핵·경제 병진 노선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의 대도로 나올 것으로 속단하긴 이르다. 어제 한·미 국방장관이 안보협의회(SCM) 회의에서 “어떤 형태의 북한 침략이나 도발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합의한 건 뭘 말하나. 즉 한민구, 애슈턴 카터 두 장관이 유사시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파괴하는 ‘4D 작전계획’ 수립을 천명한 것은 북한이 자칫 한민족의 공멸을 부를지도 모를 핵 개발 등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전제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 역량을 키우는 것만이 전부일 순 없다. 김정은 정권이 무력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변화하도록 출구를 열어 주는 것 또한 긴요한 일이다. 이번 외통위원들의 방북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남북은 북측의 목함지뢰 도발로 촉발된 위기 상황을 ‘8·25 합의’로 봉합했다. 그러나 당시 합의사항 중에서 확실히 이행된 것은 9월 적십자 회담과 10월 제20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 정도다. 우리가 외통위원단의 이번 방북이 전방위적 남북 교류·협력의 물꼬를 틀 당국 간 회담을 성사시킬 징검다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다.
  • 값싼데 세다… 1만원짜리 허브마약, 국제특송 ‘직구’도

    값싼데 세다… 1만원짜리 허브마약, 국제특송 ‘직구’도

    ‘은밀함’의 대명사였던 마약이 우리 사회에 전례 없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인구 10만명당 마약사범 20명 이하를 기준으로 하는 ‘마약청정국’ 지위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지난여름 개봉해 13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베테랑’이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사위의 마약투약 사건 등에서 보듯 마약은 일부 부유층이나 유흥업소 종사자, 조직폭력배 등 특수 계층의 전유물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누구나 손쉽게 마약에 접근할 수 있는 데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마약까지 나오면서 청소년들이 쉽게 ‘마수’(痲手)에 사로잡히고 있다. 회사원이나 가정주부 등 일반인들 역시 마약사범으로 종종 적발되는 추세다. 2일 검찰에 따르면 올 1~9월 적발된 마약사범 8930명 중 10대는 전체의 1.1%인 102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적발 인원인 49명 대비 두 배 이상 늘었다. 지난 2월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가 허브마약 판매상 및 투약자 103명을 입건할 때 중·고등학생 8명도 함께 적발됐다. 청소년들이 마약에 손을 댈 수 있는 건 최근 저렴한 마약이 등장한 탓이 크다. 마약류의 대표 격인 필로폰(메스암페타민) 1회 투약분(0.03g)의 가격은 10만원 정도다. 합성대마의 일종인 신종 ‘허브마약’의 1회분 가격은 1만~2만원에 불과하다. 허브마약은 일반 대마보다 가격은 싸지만 중독성은 더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4월엔 서울동부지검이 해외 마약거래 사이트에서 대마 50회분을 디지털 화폐인 ‘비트코인’으로 결제해 국제우편으로 밀수입한 고교생을 입건했다. 이 학생은 검찰에 “대마가 학업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들었다”고 진술했다. ●마약사범 중 주부 63%·회사원 27% 증가 마약사범의 직업도 다양해졌다. 올 1~9월 적발된 사람 가운데 가정주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62.9%(70→114명)가 증가했다. 회사원도 27.3%(495→630명) 늘어 전체 증가율 23.5%(7228→8920명)를 웃돌았다. 지난해 8월 수원지검 성남지청이 인터넷 해외 직구로 환각제의 일종인 ‘러시’ 등 신종 마약을 사들인 혐의로 구속 기소한 마약사범 4명은 모두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이들은 포털사이트 검색만으로 마약을 구매했다. 200여 차례에 걸쳐 ‘물뽕’(액체 형태의 최음제)과 필로폰 등을 매매하다 지난 4월 인천지검 부천지청에 기소된 이모(49)씨는 현직 공무원이었다. 이씨가 마약상을 접한 통로는 인터넷 커뮤니티였다. 마약사범이 다양해진 또 다른 원인은 국제특송을 통한 마약 밀반입이 쉬워졌다는 것이다. 국제특송을 통한 마약 밀수 적발사례는 2009년 100건에서 지난해 268건으로 2.7배가 됐다. 올 1~9월만도 208건에 달한다. 문제는 실제 거래 규모는 적발건수를 크게 웃돌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모든 우편물을 세관 직원들이 조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지역의 한 검사는 “필로폰 등은 크기가 매우 작아 다양한 포장이 가능하고 냄새도 나지 않아 적발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아직 마약으로 분류되지 않았거나 국내 남용 사례가 없는 신종 마약의 거래가 급증하는 것도 당국의 골칫거리다. 허브마약이나 러시, 세계적인 마약밀매조직 쿤사가 필로폰과 카페인 등을 혼합해 개발한 ‘야바’ 등이 대표적이다. 검찰에 따르면 2011년 595g에 불과했던 신종마약 적발 규모는 지난해 1만 3162g으로 22배가 됐다. ●“법원, 신종 마약 유해성·의존성 적극 인정해야” 정부는 2011년부터 임시마약류 지정 제도를 시행해 신종 마약 거래자들을 처벌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최근 제동이 걸렸다. 지난 5월 서울고법은 러시를 밀수입한 호주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러시를 오·남용 우려가 심한 신체·정신적 의존성을 일으키는 물질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법원이 신종 마약의 유해성과 의존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해야 마약청정국 지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신문은 오는 17일 서울 상암월드컵공원 평화광장에서 마약의 위험성을 널리 알리고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2015 마약퇴치 기원 걷기대회’를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관세청,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후원으로 개최한다. 특별취재팀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값싼데 세다…1만원짜리 허브마약, 국제특송 ‘직구’도

    값싼데 세다…1만원짜리 허브마약, 국제특송 ‘직구’도

    ‘은밀함’의 대명사였던 마약이 우리 사회에 전례 없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인구 10만명당 마약사범 20명 이하를 기준으로 하는 ‘마약청정국’ 지위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지난여름 개봉해 13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베테랑’이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사위의 마약투약 사건 등에서 보듯 마약은 일부 부유층이나 유흥업소 종사자, 조직폭력배 등 특수 계층의 전유물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누구나 손쉽게 마약에 접근할 수 있는 데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마약까지 나오면서 청소년들이 쉽게 ‘마수’(痲手)에 사로잡히고 있다. 회사원이나 가정주부 등 일반인들 역시 마약사범으로 종종 적발되는 추세다. 2일 검찰에 따르면 올 1~9월 적발된 마약사범 8930명 중 10대는 전체의 1.1%인 102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적발 인원인 49명 대비 두 배 이상 늘었다. 지난 2월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가 허브마약 판매상 및 투약자 103명을 입건할 때 중·고등학생 8명도 함께 적발됐다. 청소년들이 마약에 손을 댈 수 있는 건 최근 저렴한 마약이 등장한 탓이 크다. 마약류의 대표 격인 필로폰(메스암페타민) 1회 투약분(0.03g)의 가격은 10만원 정도다. 합성대마의 일종인 신종 ‘허브마약’의 1회분 가격은 1만~2만원에 불과하다. 허브마약은 일반 대마보다 가격은 싸지만 중독성은 더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4월엔 서울동부지검이 해외 마약거래 사이트에서 대마 50회분을 디지털 화폐인 ‘비트코인’으로 결제해 국제우편으로 밀수입한 고교생을 입건했다. 이 학생은 검찰에 “대마가 학업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들었다”고 진술했다. ●마약사범 중 주부 63%·회사원 27% 증가 마약사범의 직업도 다양해졌다. 올 1~9월 적발된 사람 가운데 가정주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62.9%(70→114명)가 증가했다. 회사원도 27.3%(495→630명) 늘어 전체 증가율 23.5%(7228→8920명)를 웃돌았다. 지난해 8월 수원지검 성남지청이 인터넷 해외 직구로 환각제의 일종인 ‘러시’ 등 신종 마약을 사들인 혐의로 구속 기소한 마약사범 4명은 모두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이들은 포털사이트 검색만으로 마약을 구매했다. 200여 차례에 걸쳐 ‘물뽕’(액체 형태의 최음제)과 필로폰 등을 매매하다 지난 4월 인천지검 부천지청에 기소된 이모(49)씨는 현직 공무원이었다. 이씨가 마약상을 접한 통로는 인터넷 커뮤니티였다. 마약사범의 직업이 다양해진 또 다른 원인은 국제특송을 통한 마약 밀반입이 쉬워졌다는 것이다. 국제특송을 통한 마약 밀수 적발사례는 2009년 100건에서 지난해 268건으로 2.7배가 됐다. 올 1~9월만도 208건에 달한다. 문제는 실제 거래 규모는 적발건수를 크게 웃돌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모든 우편물을 세관 직원들이 조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지역의 한 검사는 “필로폰 등은 크기가 매우 작아 다양한 포장이 가능하고 냄새도 나지 않아 적발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아직 마약으로 분류되지 않았거나 국내 남용 사례가 없는 신종 마약의 거래가 급증하는 것도 당국의 골칫거리다. 허브마약이나 러시, 세계적인 마약밀매조직 쿤사가 필로폰과 카페인 등을 혼합해 개발한 ‘야바’ 등이 대표적이다. 검찰에 따르면 2011년 595g에 불과했던 신종마약 적발 규모는 지난해 1만 3162g으로 22배가 됐다. ●“법원, 신종 마약 유해성·의존성 적극 인정해야” 정부는 2011년부터 임시마약류 지정 제도를 시행해 신종 마약 거래자들을 처벌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최근 제동이 걸렸다. 지난 5월 서울고법은 러시를 밀수입한 호주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러시를 오·남용 우려가 심한 신체·정신적 의존성을 일으키는 물질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법원이 신종 마약의 유해성과 의존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해야 마약청정국 지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신문은 오는 17일 서울 상암월드컵공원 평화광장에서 마약의 위험성을 널리 알리고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2015 마약퇴치 기원 걷기대회’를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관세청,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후원으로 개최한다. 특별취재팀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석촌호수·위례성·올림픽공원 도심에서 만나는 가을의 절정

    석촌호수·위례성·올림픽공원 도심에서 만나는 가을의 절정

    깊어가는 가을,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하지만, 시간과 주머니 사정으로 망설이고 있다면 송파구에서 추천한 가을길로 떠나보자. 올림픽공원에서 석촌호수를 잇는 서울의 로맨틱 거리로 말이다. 송파구는 2일 석촌호수길과 위례성길, 올림픽공원 등 3곳을 가을거리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먼저 석촌호수는 송파나루터가 있던 자리에 한강매립사업으로 만들어진 둘레 2.5㎞의 호수공원이다.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담뿍 눈에 담을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한데, 가을이면 호수 주변을 에워싼 왕벚나무들이 봄꽃보다 화려한 오색을 뿜어내 가족과 친구, 연인들이 즐겨 찾는 서울 도심의 명소 중 하나다. 또 석촌호수 동쪽 카페거리에는 계절에 상관없이 호수경관을 즐길 수 있는 테라스형 카페가 즐비해 한적한 가을 풍경을 만끽하기엔 안성맞춤이다. 두 번째가 노란 은행길이 수북한 위례성길이다. 몽촌토성역 올림픽공원 입구에서 장미정원 쪽으로 1.4㎞ 이어진 위례성길에는 노란 양탄자가 깔렸다. 양편으로 늘어선 은행나무에 떨어진 낙엽들이다. 노란 은행나무잎을 사뿐히 밟으며 걷다 보면 200여점의 세계적인 조각 작품들과 조경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조각공원과 소마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또 소마미술관 가까이에 자리한 한성백제박물관은 해양강국이었던 백제의 의지를 담아 배모양을 하고 있다. 자연친화적인 건물 모습과 어우러지는 확 트인 야외 휴식공간이 함께 자리하는데, 500여년간 백제의 수도였던 송파 곳곳의 유적지에서 출토된 유물을 감상할 수 있다. 마지막 가을 명소는 아시안게임과(1986년) 서울올림픽(1988년)을 위해 만들어진 480만㎡(축구장의 600여배)의 드넓은 공원과 올림픽기념 조형물, 야외 조각작품들 그리고 평화의 광장은 2인용 자전거를 빌려 공원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기에 그만인 연인들의 데이트 명소다. 올림픽공원을 뒤로하고 곰말다리를 건너면 그 유명한 ‘나 홀로 나무’가 나온다. 박춘희 송파구청장은 “꼭 멀리 가지 않아도 송파구에는 가을 낭만을 즐길 수 있는 멋진 곳이 많다”면서 “남녀노소 모든 시민들이 편안하고 즐거운 가을 나들이를 할 수 있도록 각종 편의시설 등을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외통위원들 새달2일 訪北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위원장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가 다음달 2일 고려 왕궁터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개성 만월대를 방문하기 위해 방북한다. 19대 국회 들어 외통위원들의 북한 방문은 두 번째다. 국회 관계자는 30일 “북한이 지난 29일 입북을 허가했고, 통일부도 방북 승인을 알려 왔다”면서 “외통위원, 통일부 관계자 등 방북단이 2일 버스편으로 현장을 방문해 궁궐터, 유물을 관람하고 발굴작업 진척도를 점검한 뒤 당일 귀경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만월대 궁궐터는 2007년부터 남북이 공동으로 발굴조사를 진행해 왔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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