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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나들이 ‘난파선 보물’… 관람객들 “한국 좋아하게 됐다”

    일본 나들이 ‘난파선 보물’… 관람객들 “한국 좋아하게 됐다”

    “스고이네!”(굉장하네!), “가와이.”(귀엽다) 삼삼오오 모여 전시품들을 살피던 관람객들의 탄성이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왔다. 몇몇 중년 여성들은 13세기 고려시대 제작된 ‘청자상감유연수금문매병’에 새겨진 문양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이 문양은 연못 사이에 핀 연꽃 사이로 노니는 오리떼다. 고려청자로서는 세계에 유일무이한 형태의 동자(童子)·동녀(童女) 모양의 수적(水適) 앞에서 수첩에 무엇인가를 부지런히 적고 있는 젊은 학생. 12세기 전반기 청자로 만든 사자 모양을 한 향로 뚜껑의 독특한 형태에 관람객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러저리 살폈다.  평일이던 지난 20일 두 달 남짓한 전시의 끝물인데도 관람객들의 발길은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MOC·이하 미술관)으로 몰렸다. 오사카 시청사, 중앙공회당 등을 곂에 둔 오사카의 상징거리 에노시마에 위치한 이 미술관에서는 ‘새로 발견한 고려청자’ 전시회가 열렸던 것이다. 신안선 등 1976년 이후 40년 가까이 한반도 주변의 침몰선에서 건져 올린 해저 유물 가운데 고려청자 210점을 미술관이 소장한 고려청자 40점과 함께 전시하고 있었다. 미술관은 한국해양문화재연구소, 한국국제교류재단 등과 함께 한·일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연 국제교류 특별전을 열고 있었다. 난파선에서 건져 올린 12~13세기 보물이란 점도 호기심과 반향을 일으켰다. 해저 유물을 발굴·인양하는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 상영한 영상관에서는 70~80대 노인들도 어린애처럼 신기해하며 봤다. “1976년 신안선 해저 유물 인양 작업을 필두로 1970년대 46점, 1980년대 122점 등 한국은 동아시아 수중고고학의 최대 거점이 됐다”고 이 미술관의 정은진 학예원은 귀띔했다. 일본 국공립 미술관의 유일한 한국인 큐레이터인 정 학예원은 “한국 수중고고학 성과물들이 일본에서 전시되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오사카에 산다는 타나카 신이치 가족은 충남 태안군 마도 해저에서 발견돼 보물 1783호와 1784호로 지정된 청자문매병 2점을 가리키면서 “청자의 아름다운 자태도 일품이지만, 죽간이 함께 나와 언제, 누구에게 간 것인지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이들은 함께 발견된 죽간에서 “고려시대 무인 협의기구인 중방의 도장교(都將校)란 직책의 관리인 오문부의 집으로 문매병 안에 꿀과 호마유(胡麻油)를 넣어 보낸다”는 내용을 입에 올리며 즐거워했다. 이 미술관이 소장한 고려청자의 최상급 진품들도 함께 공개돼 새삼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국내에 있으면 국보로 지정받았을 것”이란 평가를 받는 청자로 만든 항아리인 ‘청자음각연화문삼이호’, 동녀 모양의 청자 수적 등 일본의 중요 미술품으로 지정된 것들도 포함돼 있었다. 지난 9월 5일부터 열린 전시회를 다녀간 이들의 반응은 소셜미디어(SNS)나 편지 등으로 반향을 만들었다. 관람객들은 “한국을 다시 보게 됐다” “한국을 좋아하게 됐다”는 반응을 전했다. “12~13세기 고려에서 이런 작품을 만들고, 일상 생활에 썼다니  생각지도 못했다. 정말 놀랍다”며 탄성의 느낌을 전하는 관람객도 있었다. 경기 침체로 “일본의 도자기 애호 열기가 전과는 다르다”는 상황 속에서도 2만명에 달하는 관람객들이 다녀갔고, 한국 전통미의 매력이 입소문을 타고 확산되고 있다. 도자기는 인류가 최초로 발명한, 화학반응을 동반한 실용적 조형작품이어서 수준 높은 한국 도자문화에 일본이 놀란 것이다. 오사카 여행 도중 들렀다는 대만인 류하오는 “세계적 명성의 (대만) 고궁박물관에도 비슷한 유형을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청자들을 발견해 놀라웠다”고 말했다. 카도가와 요시로 오사카박물관협회 이사장은 “고려청자 등 한국 공예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일반에 다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면서 “개막공연 등 부대 행사를 통해 한국 전통문화를 더 깊이 이해시키고 한·일 교류의 오랜 역사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최현수 국제교류재단 도쿄사무소장은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들을 한국에서 온 해양발굴 문화재들과 함께 전시할 수 있는 기회였다”면서 “우리 전통문화의 보다 적극적인 소개와 노출을 통해 일본인들에게 한국문화의 관심을 다시 일깨우고, 주춤해 있는 한류를 다양한 형태로 되살리고 확대시키는 방안으로 활용하려 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오사카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2박 3일 광저우~홍콩 크루즈 여행

    2박 3일 광저우~홍콩 크루즈 여행

    #널 만나기 전 거리는 130㎞ 우리는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나면 이상한 버릇이 생긴다.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기 전에 만들어진 왕자웨이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1994)에서 ‘경찰 223’은 5월 1일 유통기한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모은다. 사랑이 돌아올 때까지. ‘그는, 그녀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기억이 통조림에 들었다면 유통기한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만약 사랑에 유통기한을 적어야 한다면 만년 후로 적고 싶다’는 다소 낯간지럽고 오글거리는 대사와 함께. 왜 하필 어깨 위에 한 줄기 햇빛이 내려앉기도 전에 일찍 길을 나설 때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오전 9시 50분에 탄 색동 비행기는 3시간 30분을 훌쩍 넘겨 반팔을 입어도 좋은 11월의 중국 선전(深?)공항에 몸을 내려놓았다. 중국 국내선 공항 중에 가장 큰, 이 무슨 우주선 모양의 공항 건물을 빠져 나오자 가이드가 주저리주저리 경제특구 선전을 장황하게 설명하는데 기억에 남는 것이라곤 덩샤오핑의 개방정책에 따라 가장 먼저 중국에서 경제특구로 지정됐고 30년도 안 돼 인구가 1000만명으로 늘었다는 사설과 함께 버스기사들이 1분이 멀다 하고 경적을 빽빽 울린다는 생뚱맞는 얘기였다. 승용차가 끼어들기를 하다가 사고가 나도 버스 책임이 70%라서 보험료가 무서워 그 놈의 설잠을 깨우는 경적을 울린다는 것이다.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20여분간 기사는 참 열심히도 경적을 울려 댔다. 여행은 항상 약간의 긴장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이번 여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욱이 누구나 한번쯤 ‘심쿵’하는 크루즈 여행이 아닌가. 그리고 항로가 하필 전 세계적으로 핫이슈인 분쟁 해역 남중국해를 끼고 있다. 절묘한 타이밍. 설렘이 불안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게다가 의사 소통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는지 투어버스는 우릴 기다리며 정박해 있는 크루즈가 있는 항구로 가는 대신 제3의 갑문을 헤맸다. 배가 출발하기 1시간 전까지 우린 광저우 난사항의 어디쯤에서 뱅뱅 맴돌았고, 기름때 묻은 채 노을보다 더 붉게 귀가하는 오토바이족들을 만날 때에서야 크루즈를 간신히 만났다. 어쩔 것인가. 이런 돌발 상황을 맛보는 것도 여행의 일부분인 것을. 그 붕 뜬 시간 때문에 오히려 여행이 좀 더 너그러워졌다. 크루즈 여행은 황혼에 접어든 노부부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물론 그 황혼처럼 크루즈에선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일상도 멈춘다. 정치마저도 멈춘다. 그 속에선 분쟁도 멈추고 평화만 있을 뿐이다. 중국 공안의 다소 까다로운 검색 시간마저 안전을 더욱 약속하는 듯도 했다. 스타크루즈 버고호는 마치 타이타닉을 연상시킬 만큼 거대했다. 7만 6800t급으로 13층 높이였다. 승객은 1870명을 태울 수 있고 승무원 수는 900명이다. 총 객실 수는 935개. 움직이는 호텔이라 생각하면 틀리지 않다. 광저우에서 홍콩까지 130㎞를 아주 천천히 항해했다. 이 배의 선장보다 더 끗발 있는 부사장 마이클 고가 말하듯 배에선 여행을 방해하는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널 만난 후 거리는 0.13m 움직이는 호텔 버고호는 호텔 객실이 부럽지 않다. 삼시 세끼 내내 입이 호강한다. 거위발부터 랍스터, 살살 녹는 스테이크까지 나오는 코스 요리는 수준급이다. 저녁엔 세계의 음식이 즐비한 가운데 바비큐 파티가 기다린다. 그것도 홍콩의 야경을 풍경 삼아서. 어디 그뿐인가. 8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 리도극장에선 세계적인 공연이 펼쳐진다. 이날은 ‘언더 더 시’, 인어공주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좀 더 가족적인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일본, 인도 등 아시아 요리 전문 레스토랑이 있는 7, 8층에서, 커플끼리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12층 선상 카페에서 콘서트를 즐기며 맥주 한잔하면 더할 나위 없다. 물론 거기엔 수영장, 어린이 풀장, 스파, 골프연습장까지 갖추고 있어 뻐근한 근육을 풀 수도 있다. 돈 많은 중국인들은 카지노에서 시간을 보내며 밤을 지새우고, 조금은 ‘부비부비’하고 싶은 젊은 커플들은, 혹은 어떤 설레는 만남을 기다리는 솔로는 댄스파티에서 광란의 춤을 추며 날을 새워도 흉 보지 않는다. 이곳에선 언어도 피부도 하나가 된다. 한배를 탔다는 동질감 때문일 것이다. 스타크루즈는 원래 홍콩에서 베트남 하롱베이, 다낭, 마카오를 끼고 주로 돌았다. 소문엔 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중국인들이 세계여행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짜여 있다고도 했다. 그만큼 중국풍을 배제했다는 얘기다. 고마운 것은 울렁증 심한데도 멀미가 없다. 망망대해에서 배는 멈춘 듯 움직였다. 단 한 번의 출렁임도 없이. 홍콩 빅토리아 항구에 정박한 배가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일행은 배가 쉬는 동안 홍콩에서 가장 높은 건물, 국제무역센터(ICC) 스카이 100, 그 꼭대기에서 아찔한 풍경에 반했다. 세계에서 7번째 높은 빌딩. 빅토리아 항구뿐 아니라 홍콩 전경이 한눈에 내다보인다. 현기증이 날 만큼 아찔한 풍경. 운 좋게도 이날은 빌딩 사이로 무지개가 피어 오르는 보기 드문 광경까지 목격했다. 특별한 선물이었다. 비가 왔던가. 그 무지개는 문득 작년 9월 말부터 12월까지 있었던 우산혁명을 떠올리게 했다. 행정장관 직선제 선출을 하면서 친중 성향의 후보만 추천하는 바람에 반발한 학생들이 거리로 나섰다. 버고호는 내년 1월 3일부터 난사에서 이곳 홍콩을 2박 3일 일정으로 항해한다. 어쩌면 이 버고호가 새로 취항하는 노선을 통해 홍콩과 중국을 좀 더 하나로 묶어 줄 것 같다. 두 도시를 연결하는 버고호. 중경삼림의 시그널처럼 ‘언젠가는 둘을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도록 할 지 모른다.’ 130㎞가 0.13m만큼 가까워진 느낌이다. 2박3일의 마지막 밤은 크루즈 여행의 백미를 선사했다. 홍콩 야경…. 빅토리아 항구를 빠져나올 때 홍콩의 밤은 정말 낮보다 아름다웠다. 타이타닉의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대사가 야경의 자막처럼 오버랩됐다. 이 배에 승선한 건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었다. 너,를 만났으니까. 버고호여 안녕. 글 사진 광저우·홍콩 강동삼 기자 kangtong@seoul.co.kr ■여행수첩 >>스타크루즈 버고호 일정은 크게 두 가지다. 매주 금요일 난사항을 출발해 홍콩에 기항하는 2박 일정과 일요일 출발해 베트남 하롱베이, 다낭을 경유하는 5박 일정이다. 선내 전압은 220V. 한국인 승무원도 상주한다. (02)733-9033. >>국제상업센터(ICC)에 있는 홍콩 최고층 빌딩인 ‘스카이 100’ 전망대는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해발 약 393m의 전망대로 홍콩섬, 주룽반도, 신계지구가 360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1분이면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홍콩에서 가장 빠른 더블데크 엘리베이터가 있다. 홍콩지하철(MTR) 주룽역에 있으며 홍콩국제공항에서 공항철도로 약 20분 거리에 있다. 입장료는 어른 168홍콩달러(약 2만 5000원), 어린이(11세 미만)와 65세 이상 노인은 118달러(약 1만 7500원).
  • ‘명량’ 역사 한눈에

    ‘명량’ 역사 한눈에

    조류가 강한 험로임에도 옛날부터 수많은 선박들이 왕래했던 해상 지름길 ‘명량’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다음달 1일부터 내년 2월 14일까지 전남 목포시 용해동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전시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특별전 ‘명량’(鳴梁)이다. 이번 특별전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실시한 진도 명량대첩로 수중문화재 발굴조사 성과를 소개하기 위해 기획됐다. 명량해협 발굴조사 결과 명량대첩 당시의 흔적뿐만 아니라 삼국시대 토기부터 고려, 조선, 근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재들이 쏟아져 나왔다. 충무공 이순신이 1597년(선조 30) 명량대첩에서 사용했던 무기류 ‘소소승자총통’과 ‘석환’(돌포탄)을 비롯해 고려 절정기의 최고급 청자향로 등을 발견한 건 큰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전시는 4부로 구성됐다. 명량대첩로 발굴 조사에서 나온 주요 유물 250여점과 명량의 역사를 조명하는 유물과 자료 300여점이 전시된다. 1부 ‘기적의 바다, 명량’에선 진도 명량과 여천 해저에서 나온 ‘소소승자총통’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주요 화포인 ‘중완구’(보물 제858호), 1591년 선조가 충무공 이순신에게 내린 전라좌수사 임명장 ‘사부유서’(보물 제1564-6호), 1597년 선조가 파직된 충무공에게 다시 내린 삼도수군통제사 임명장 ‘기복수직교서’(보물 제1564-3호) 등을 볼 수 있다. 2부 ‘험로의 역사, 명량해협’에선 명량의 해양지리적 환경과 해난사고 흔적들을 소개한다. 3부 ‘성난 파도 속에서 피어난 꽃, 도자기’에선 명량에서 발견된 ‘청자 기린 모양 향로’ 등 최고급 청자부터 소박한 생활도자기 등을 만날 수 있다. 4부 ‘또 하나의 기억, 고려 삼별초’는 13세기 삼별초가 진도 명량 해역에 고려왕궁 ‘용장성’을 건설하고 몽골 침략에 항거했던 격동의 역사를 조명한다. 소재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장은 “내년부터 수중 문화재 발굴 조사를 다시 시작해 명량해협에 잠든 옛 침몰선과 문화재들이 빛을 볼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6600년 전 최고(最古) ‘24캐럿 골드’ 액세서리 발견

    6600년 전 최고(最古) ‘24캐럿 골드’ 액세서리 발견

    세계 최초의 ‘블링블링’ 액세서리? 유럽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골드 액세서리가 발견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22일 보도했다. 고대 그리스 문명보다 약 1500년 앞서는 선사시대 도시인 불가리아의 북동부 프로바디아 지역은 2012년 성벽에 둘러싸인 요새 형태로 발굴된 바 있다. 이후 꾸준히 유물 발굴 작업이 이뤄졌는데, 최근 공개된 유물은 무게 2g의 작은 장신구다. 무려 6600년 전 선사시대 조상이 착용한 것으로 짐작되는 이 작은 장신구는 24캐럿의 금으로 만들어졌으며,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디자인이 매우 디테일 해 가치를 더한다. 고고학자들은 이 유물이 발견된 지역인 프로바디아를 통해 금으로 제품을 만들기 시작한 시기와 그 방식 등의 ‘비법’을 알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물을 연구중인 불가리아 국립고고학협회의 바실 니코로브 교수는 “이번 금 유물의 발견이 매우 고무적인 이유는 이 유물들의 ‘나이’가 요새 형태의 유적지의 역사에 비해 200~300년 앞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라면서 “24캐럿 금으로 만든 이 유물은 팬던트로 사용됐으며,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성과 여성 모두가 착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적지가 선사시대 당시 금과 구리를 가공하는 중심 지역이었다. 실제 1972년에도 프로바디아에서 동쪽으로 37㎞ 떨어진 지역에서도 금으로 만든 장신구 수 점이 발견된 바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불가리아의 남쪽 전체 지역이 고대 인류가 살았던 거주 지역인 동시에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선사시대의 마을이며, 이 지역에서 발견된 금 장신구 역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씨줄날줄] 유불 화해를 위하여/서동철 논설위원

    서울 도봉산 기슭에서 지금 유림(儒林)과 불문(佛門) 사이 갈등이 움터 가고 있다. 도봉구가 도봉서원 복원을 추진하면서 벌인 발굴 조사에서 불교 의례용구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국가지정 문화재로도 손색이 없는 금강령과 금강저를 비롯한 유물은 77점에 이른다. 도봉서원은 조선 중종시대 도학정치를 주창하다 사사된 정암 조광조를 추모하고자 선조 6년(1573) 창건됐다. 하지만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명맥이 끊겼고 1972년 일부가 복원됐다. 이후 창건 당시 유구를 찾는 조사에서 불구(佛具)가 출토된 것이다. 도봉서원은 영국사라는 절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유물이 나온 곳은 큰법당으로 추정되는 중심 건물터다. 출토 당시 유물은 대형 청동솥에 담겨 있었다고 한다. 불교계는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유림이 영국사를 훼손하고 도봉서원을 세운 증거라고 해석하고 있다. 불교계는 도봉서원의 복원을 반대하고 나섰다. 조계종은 지난 8월 도봉구에 사찰의 존재를 무시하고 서원을 복원하는 계획은 재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서원이 번듯하게 제 모습을 찾는 날을 기다리던 유림은 유림대로 날벼락을 맞은 꼴이다. 이러다간 어떤 갈등으로 비화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양쪽 모두 냉정함을 되찾아야 한다. 영국사의 폐사가 실제로 숭유억불 때문인지부터 따져 봐야 한다. 금속공예 전문가들이 금강령과 금강저를 비롯해 향로, 향완, 발우 등 영국사 유물의 연대를 12세기 이전 고려시대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서원에서 불교 유물이 쏟아져 나온 것은 처음이 아니다.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이 그렇다. 소수서원은 통일신라 사찰인 숙수사가 있던 자리에 중종 38년(1543) 세워졌다. 서원 입구에는 지금도 당당한 모습의 당간지주가 보인다. 숙수사에 쓴 석재는 서원 기초로 재활용됐다. 그런데 1953년 소수서원 곁에 학교를 짓다가 당간지주 북쪽에서 커다란 항아리에 담긴 25점의 소형 불상이 한꺼번에 나왔다. 학계는 불상이 고려 고종 41년(1254) 몽골의 침입 당시 묻힌 것으로 추정했다. 절이 불타고 스님도 모두 죽거나 잡혀가 불상을 수습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영국사 폐사도 숙수사와 같은 시기, 같은 원인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숭유억불 정책이 폐사 이유라면 귀중한 공양구는 훗날이라도 다시 파냈을 것이다. 그런 만큼 불교계와 유림이 공동으로 영국사의 폐사 원인을 규명해 보면 어떨까 한다. 외적의 침입으로 절터가 수백 년 동안이나 폐허로 남아 있어 근본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서원 건축에 엄청난 적대감을 느낄 일은 아닐 것이다. 유림도 이곳에 고려시대 중요한 사찰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서로 이해하면서 영국사와 도봉서원의 명예를 함께 높일 방법은 없는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뉴스 분석] 北의 반기문 카드는 벼랑끝 ‘매력 공세’

    [뉴스 분석] 北의 반기문 카드는 벼랑끝 ‘매력 공세’

    “Charm Offensive (매력 공세).” 정부 고위당국자는 18일 최근 북한의 대외전략을 이렇게 평가했다. 시도 때도 없는 대남 비난과 미사일 발사 등 무력시위를 일상화하던 북한이 보다 유연한 자세를 가지고 주변국의 마음을 얻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도 이런 북한의 태도 변화에 주목하며 지난 8·25 접촉 이후 중단된 당국 간 대화가 재개될 것이란 기대감을 계속 갖고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의 최근 대외전략을 볼 때 ‘매력 공세’는 한국을 포함해 미국, 중국에 대한 유화적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신화통신은 이날 북한 조선중앙통신 관계자를 인용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이 오는 23일 이뤄진다고 보도했다. 비록 유엔 대변인이 다음주 반 총장의 방북 일정은 없다고 밝혔지만, 반 총장에 대한 북한의 구애를 어느 정도 확인한 셈이다. 북한은 지난 17일에도 불법 입북한 우리 국민 이모씨를 송환하는 등 이전보다 유화적인 대남 조치들을 시행하고 있다. 8·25 남북 고위급 합의 이후 ▲남북 이산가족 상봉(금강산) ▲개성 만월대 출토 유물 전시회(개성) ▲남북 노동자 축구대회(평양) 등 그동안 경색됐던 민간 협력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북한의 이런 전향적 자세의 이면에는 미국과 중국 등 한반도 주변 주요국들에 자신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짙다. 북한은 지난 10월 노동당 창당 70돌을 맞아 4차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천명했지만 중국의 강력한 만류와 기술적 문제로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북한의 노동당 창당 행사에 국가 서열 5위인 류윈산(劉雲山)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을 파견하는 등 2013년 3차 핵실험 이후 경색됐던 북·중 관계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 북한 입장에서는 대외정책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중국의 심기를 거스르면서까지 무리해서 핵실험을 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김정은 정권이 최근 권력 안정화로 들어서면서 당면 과제인 중국과의 관계를 복원을 통해 대외적 고립도 풀고 자국의 민생 안정이나 경제를 재건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중국 역시 시진핑(習近平) 체제가 들어선 직후 대북 정책의 중요도를 비핵화→지역안정→대화 순으로 정했으나, 최근 비핵화와 지역안정의 순서가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수는 “시진핑 정권 출범 이후 북한의 3차 핵실험이 이뤄지자 시진핑의 대북정책은 ‘비핵화’가 핵심이었으나 최근 ‘지역안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과거처럼 북·중 혈맹으로 돌아가지는 않겠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결국 북·중, 남북 관계 모두 다 우호적으로 가져가야 할 상황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에 대한 북한의 구애는 더 뜨겁다. 북한은 리수용 외무상이 지난달 1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7일에는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17일에는 외무성 성명을 통해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의 요구에 묵묵부답이고 앞으로도 입장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유엔 수장인 ‘반기문 카드’를 통해 미국의 역할을 대체하려는 의도로 접근한다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다만 북한의 ‘매력 공세’가 핵 포기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고자 한다는 점에서 전술적 ‘숨 고르기’로 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예천 삼강리서 구석기 유물 출토… 4만~8만년 전 석기 160여점 발굴

    예천 삼강리서 구석기 유물 출토… 4만~8만년 전 석기 160여점 발굴

    예천 삼강리 유적에서 전·중기 구석기 시대의 다양한 문화층을 보여 주는 석기가 대량 출토됐다.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지난 6월부터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일대를 발굴 조사 중인 동국문화재연구원은 삼강리 유적에서 8만년 이전의 전기 구석기 시대와 8만년에서 4만년까지 중기 구석기 시대의 문화를 보여 주는 몸돌, 격지, 찍개, 여러면석기, 망치돌 등 석기 160여점을 발굴했다고 18일 밝혔다. 삼강리 유적은 낙동강을 가르는 내성천 인근의 하안단구(하천의 흐름을 따라 생긴 계단 모양의 지형)에 자리하고 있다. 유적은 4~4.5m 퇴적층으로 이뤄져 있고, 퇴적층은 5개의 유물층(일명 1~5문화층)으로 구성돼 있다. 1~3문화층에선 주로 강돌로 만든 석기가, 하층에 속하는 4~5문화층에선 안산암 등 화산암으로 만든 석기가 나왔다. 연구원 측은 “안산암 같은 화산암으로 만든 석기는 주로 전기와 중기 구석기 시대에 많이 발굴되고 있으며, 이런 석기 재료와 문화층의 차이로 볼 때 삼강리 유적은 전기 구석기 시대까지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이어 “1~2문화층에서 출토된 석기 중에는 긴 직사각형 석재를 얇은 너비의 조각으로 떼어 내는 방법을 사용해 구석기인들의 역동적인 석기 제작법을 보여 주는 유물도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조사 지역 인근에는 상주 신상리 유적, 안동 마애리 유적 등 구석기 시대 유적이 있지만 출토된 유물 수량이 적고 유물구성상을 복원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반면, 삼강리 유적은 경북 지역에서 확인된 유적 중 다양한 문화층과 유물 구성을 보여 주고 있어 의미가 크다고 연구원 측은 설명했다. 발굴 조사 경과보고는 19일 오후 2시 발굴 현장에서 열린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중국의 비뚤어진 역사관/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중국의 비뚤어진 역사관/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11월 9일은 중국에 ‘매우 뜻깊은 날’이다. 2000년 사마천의 역사기원을 단숨에 1229년이나 앞당긴 ‘하상주연표’를 공식 확정한 날이다. 고고학 등 전문가 170여명이 5년간 천착해 만든 이 연표는 사마천이 엄두도 못 낸 하(夏·기원전 2070~1600년)·상(商·기원전 1600~1046년)·서주(西周·기원전 1046~771년)의 세 왕조 연표를 확정해 신화를 역사로 복원해 냈다. 지금까지 중국사 연대기의 가장 이른 시기는 서주 말의 기원전 841년. 이전의 일은 신화이다. 연표 확정이 핵심인 ‘하상주 단대공정’(斷代工程)이 전설 속의 하·상·주 왕조를 역사로 끌어들인 것이다. 역사시대가 기원전 207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요·순임금도 역사 속 인물로 변신했다. 하지만 15주년을 맞은 올해까지 관련 유물·유적이 대량 출토됐다는 소식이 없는 데다 중국 내에서도 진위 논란이 식지 않는 걸 보면 사실(史實)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문제는 중국의 ‘단대공정’이 단순히 ‘뿌리 찾기 작업’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이웃 나라의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해 버린 까닭이다. 중국의 ‘역사굴기’는 ‘단대공정’과 ‘동북(東北)공정’, 중화문명의 기원을 무려 1만년까지 끌어올리겠다는 ‘탐원(探源)공정’ 등 3대 프로젝트로 진행된다. 이들 공정은 ‘과장과 왜곡’이라는 뒤틀린 모습으로 나타난다. 역사기원을 앞당긴 일은 전자,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는 동북공정은 후자에 속한다. 중국은 단대공정에서 ‘고구려 민족은 기원전 1600~1300년에 은상(殷商)씨족에서 분리됐다’고 강변한다. 고구려가 상나라에서 갈라졌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랴오허(遼河) 유역에서 한국 고대사를 대변하는 기원전 8000~1500년의 빗살무늬토기·비파형동검 등 유물·유적이 대거 발굴됐다. 고조선의 랴오허문명이 중국사의 출발점인 황허(黃河)문명(기원전 4000~2000년)보다 앞섰다는 얘기다. 때문에 중국은 3대 역사 공정을 통해 한국 고대사의 뿌리인 랴오허문명을 중국사에 편입해 고조선과 고구려사, 발해사 등 한민족 문명의 기원을 깡그리 부정해 버린 것이다. 어느 나라든 역사를 미화하는 경향이 있게 마련이지만 이같이 맹목적이지는 않다. 중국의 비뚤어진 역사인식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공자의 춘추필법’, ‘동호(董狐)의 직필’, ‘병필직서’(秉筆直書·직언을 꺼리지 않음) 고사에서 보듯 목숨을 내놓고 팩트(사실) 이상을 추구했다. 그러나 1900년 서양 제국주의에 베이징이 함락당하자 청나라 광서제가 시안(西安)으로 도망간 것을 ‘서쪽으로 사냥갔다’, 신화를 근거로 이어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등 근현대 들어 이 같은 경향이 본격화됐다. 사마천은 기원전 3076~2029년을 다룬 ‘오제본기’(五帝本紀) 후기에서 이렇게 적었다. “학자들이 오제(五帝)에 대해 많이 얘기하지만 아득히 먼 일이다. 상서(尙書)도 요임금 이후만 기록하고 있고, 백가(百家)들이 황제(黃帝)를 많이 얘기하지만 문장이 우아하지도 온당하지도 않아 학자들은 말하기를 꺼린다.” 조상의 역사라 기록은 하지만 믿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2100여년이 지난 오늘도 사마천을 ‘최고의 역사가’로 추앙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khkim@seoul.co.kr
  • 예천 삼강리 유적서 구석기 유물 무더기

    예천 삼강리 유적서 구석기 유물 무더기

     예천 삼강리 유적에서 전·중기 구석기 시대의 다양한 문화층을 보여 주는 석기가 대량 출토됐다.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지난 6월부터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일대를 발굴 조사 중인 동국문화재연구원은 삼강리 유적에서 8만년 이전의 전기 구석기 시대와 8만년에서 4만년까지 중기 구석기 시대의 문화를 보여 주는 몸돌, 격지, 찍개, 여러면석기, 망치돌 등 석기 160여점을 발굴했다고 18일 밝혔다.  삼강리 유적은 낙동강을 가르는 내성천 인근의 하안단구(하천의 흐름을 따라 생긴 계단 모양의 지형)에 자리하고 있다. 유적은 4~4.5m 퇴적층으로 이뤄져 있고, 퇴적층은 5개의 유물층(일명 1~5문화층)으로 구성돼 있다. 1~3문화층에선 주로 강돌로 만든 석기가, 하층에 속하는 4~5문화층에선 안산암 등 화산암으로 만든 석기가 나왔다. 연구원 측은 “안산암 같은 화산암으로 만든 석기는 주로 전기와 중기 구석기 시대에 많이 발굴되고 있으며, 이런 석기 재료와 문화층의 차이로 볼 때 삼강리 유적은 전기 구석기 시대까지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이어 “1~2문화층에서 출토된 석기 중에는 긴 직사각형 석재를 얇은 너비의 조각으로 떼어 내는 방법을 사용해 구석기인들의 역동적인 석기 제작법을 보여 주는 유물도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조사 지역 인근에는 상주 신상리 유적, 안동 마애리 유적 등 구석기 시대 유적이 있지만 출토된 유물 수량이 적고 유물구성상을 복원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반면, 삼강리 유적은 경북 지역에서 확인된 유적 중 다양한 문화층과 유물 구성을 보여 주고 있어 의미가 크다고 연구원 측은 설명했다. 발굴 조사 경과보고는 19일 오후 2시 발굴 현장에서 열린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공사장서 발견…1700년 전 비잔틴 제국 ‘모자이크’ 유물 공개

    공사장서 발견…1700년 전 비잔틴 제국 ‘모자이크’ 유물 공개

    1700년 전 중세 비잔틴 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는 모자이크 작품이 공개돼 고고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16일자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발견된 이 모자이크는 가로와 세로가 각각 11m, 13m에 이르며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해 더욱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 모자이크는 지난 해 이스라엘 중심부 도시인 로드(Lod)의 한 공사현장에서 우연히 발견된 것으로, 1700년 전 동(東)로마제국(비잔틴제국) 시기에 매우 부유했던 중세 시민의 집 마당 바닥에 깔려 카펫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동물이나 물고기, 새 등의 동물들의 사냥 모습이 매우 정교하게 묘사돼 있으며, 이스라엘 문화재 관리국(Israel Antiquities Authority)의 한 관계자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자이크 중 하나”라고 극찬했다. 이어 “모자이크에 표현된 이미지를 봤을 때 이를 제작한 사람의 매우 높은 예술적 능력을 엿볼 수 있다”면서 “1990년대에 같은 구역에서 모자이크가 발견된 바 있다. 당시 모자이크는 집 거실 바닥에 깔려 있었으며, 이번 것은 마당에 깔려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모자이크는 비잔틴 시대에 들어와 성당 등을 장엄하게 꾸미기 위한 목적으로 발달했다. 당시 대저택에서는 건물 바닥의 모든 부분을 모자이크로 장식하기도 했으며, 대체로 채색된 돌이나 유리를 재료로 이용했다. 한편 해당 모자이크는 이탈리아와 미국, 프랑스 등지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씨줄날줄] 아파트 집단대출/주병철 논설위원

    2007년 미국의 금융위기가 거대 투자은행들의 탐욕에서 비롯된 건 잘 알려져 있다. 은행들이 주택을 담보로 편안하게 이자를 받아먹는 대부업 장사(전당포 영업)로 배를 불리더니 욕심을 더 내 대출 한도를 늘리고 신용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도 돈을 빌려주다 쪽박을 찬 것이다. 금융위기의 후폭풍으로 집값 폭락, 투자은행 파산, 깡통주택 속출 등의 난제를 해결하느라 미 정부는 시장에 3조 6000억 달러의 돈을 퍼부었다. 이후 이 돈을 거둬들이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사정이 만만찮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미국이 당시 시장 논리에 따라 주택 가격 하락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충격 요법을 썼더라면 주택 가격이 결국 반등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미래 수요자들한테도 도움이 되지 않았겠느냐고 말한다. 쓰라린 경험의 후회쯤으로 여겨진다. 금융위기의 쓰나미가 한반도로 불어닥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아파트는 돈벌이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5억원짜리 아파트를 분양받는 데 5000만원만 있으면 가능했다. 분양 아파트 가격의 10%만 계약금으로 내고 나면 금융권의 집단대출로 중도금을 대신 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잔금을 치를 때쯤이면 애초 분양 가격은 크게 올라 미등기 전매로 큰 차익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아파트 투기꾼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고 상당수 개인들도 가세했다. 하지만 이런 부동산 거품은 금융위기 여파로 폭삭 가라앉았다. 미국보다 대가가 더 혹독했다. 금융권의 최대 피해자는 상호저축은행이었다. 상호저축은행들은 2000년대 들어 본업인 서민 대출에서 벗어나 시중은행이 독점해 온 건설사 대출 사업인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묻지마 투자’로 한탕 챙기려 한 것이다. 하지만 금융위기로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면서 부실로 이어졌다. 정부가 27조원가량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최근 들어 아파트 집단대출 문제가 걱정이라고 한다. 분양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시중 5대 은행이 아파트 집단대출을 대폭 늘린 데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 7월부터 4개월 동안 무려 4조 4000억원가량 늘어났다. 특히 10월 말 기준으로 이들 은행의 주택담보대출(322조 346억원)에서 아파트 집단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8.5%(91조 7665억원)로 불어났다는 것이다. 가계부채 1130조원 가운데 1·2금융권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 규모가 절반을 넘어섰다. 이런 마당에 신규 아파트를 분양할 때 시공사 보증으로 계약자에게 개별 심사 없이 중도금과 잔금 등을 분양가의 60~70% 수준까지 빌려주는 집단대출의 경우 부동산 경기 위축이나 미분양 사태에 봉착하면 출구가 없다. 가계부채, 기업부채에 집단대출까지 겹치면 나라는 빚더미에 짓눌려 숨도 못 쉴 것이다. 단호하고 신속한 대책이 절실한 이유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그들만의 공공 일자리

    그들만의 공공 일자리

    공공 일자리의 대표격인 공공근로 정책이 도입 17년 만에 ‘소수’의 전유물로 전락해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다. 공공근로는 1998년 외환위기로 경기가 침체하자 저소득층에 공공 분야의 일자리를 한시적으로 제공해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고자 마련됐다. 이 기능은 2005년 중앙정부에서 지자체로 이관됐고,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 때 효용 가치가 높아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일부에서 생활비 보조 정책처럼 활용돼 모럴해저드 논란도 일고 있다. ●‘2년에 3번’ 규정… 실업급여 받고 버티다 2년 후 다시 근무 고용정보원의 고용이슈 9월호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시의 공공근로 참여자는 8332명인데 이 중 4회 이상 참여하는 이들이 41.3%인 3442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1회(24.6%), 2회(18.7%), 3회(15.4%)에 비해 월등히 많다. 공공근로는 40대 이하(33.7%)가 3명 중 1명꼴이다. 30대 이하(21%) 청년층도 5명 중 1명꼴이다. 자치구들은 공공근로를 평생 직업처럼 활용하는 공공근로자들이 증가하는 점을 문제로 제기한다. 원래 공공근로는 5개월 일자리를 연속 2번, 2년간 3번만 하도록 규정돼 있다. 적지 않은 이가 1년에 5개월씩 2번 연이어 일하고 3개월의 실업급여(월 96만원)를 받고서 2개월을 실업자로 있다가 재차 공공 근로자로 채용된다. 실업급여 기간까지 무직자로 5개월을 지냈기 때문에 정당한 채용이다. 이번엔 5개월 일하고 3개월간 실업급여를 받는다. 문제는 ‘2년에 3번’이란 규정이 평생에 1회가 아니라 2년을 주기로 계속 ‘기회’가 발생한다는 데 있다. 자치구의 일자리 담당자는 “이 과정을 2년마다 되풀이하니 취업이 절박하겠냐”고 지적한 뒤 “실업급여를 주지 말거나 평생 할 수 있는 공공근로 횟수를 제한해야 한다”고 중앙정부에 촉구했다. 소수가 공공근로를 번갈아가며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있다. 10명을 모집하면 30명이 지원하는데 이 중 15명은 소득 기준(2015년 서울시 재산 1억 3500만원 이하) 이상으로 지원자격이 안 되고 나머지 15명 중에 근로 능력이 없는 사람을 빼면 10명 남짓이라는 거다. 지원자가 많지 않을 뿐 아니라 고용주인 자치구로서는 유경험자가 여러 면에서 편리하다. 한 동주민센터 관계자는 “공공근로에서 탈락하면 자해 소동까지 벌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지원자 적고 자치구는 유경험자가 더 편해… 탈락자 자해 소동도 이런 현상은 전국적으로 비슷하다. 지난해 3만 5033명 중 4회 이상이 1만 2132명으로 34.6%였다. 4회 이상 참여자는 서울이 41.3%로 가장 높고 대구(40.5%), 경북(38.4%), 경기(37.7%), 충남(35.9%) 순이다. 정재현 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은 “실질적으로 다양한 일자리 경험을 제공하는 사업으로 재설계해야 한다”면서 “또 공공근로사업, 직업훈련, 고용서비스의 연계를 종합패키지로 구성해 참여자들의 구직 의욕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자생적 테러리스트·서방 공격 본격화… IS테러의 진화

    프랑스 파리 테러로 최소 132명을 숨지게 한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테러 용의자 다수가 프랑스, 벨기에 등 유럽 국적자로 드러났다. 14년 전 미국 뉴욕에서 벌어진 9·11 테러 용의자 다수가 친미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이었지만 그래도 그 안에 미국 국적자는 없었던 점과 대비된다. 테러 대상이 된 국가의 학교를 다녔던 극단주의자, 즉 ‘토종 테러리스트’가 출현한 것은 기존의 테러 대응 방식이 시효를 다했음을 보여준다. 각국이 공항 검색을 강화하고 테러 공습에 참여하지만 ‘테러 공포’가 사그라들지 않는 상황이 됐다. 극단주의자들이 일으키는 ‘유목형 테러’ 앞에서 경계 대상이 ‘이방인’이었다면 같은 학교와 슈퍼마켓을 공유하던 청년이 돌변해 일으키는 ‘정주형 테러’ 앞에선 ‘이웃’ 모두가 경계 대상이 되는 신뢰의 위기가 닥쳤다. 더욱이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 국면에서 ‘제국 대 악의 축’이란 전선이 뚜렷했다면 이제는 ‘제국 내부 모순’이 테러 자양분을 제공하게 됐다. 11·13 파리 테러 용의자인 오마르 이스마일 모스테파이(29)가 프랑스 학교에서 교육받은 알제리계로 2013~14년 시리아에서 테러 훈련을 받은 점에 비춰 보면 모스테파이의 극단주의가 알제리계에 대한 사회·경제적 차별에서 배태됐는지, 시리아 내전 이후 정치 지형 속에서 이식받은 것인지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이다. 외부 영향에 취약한 10~20대가 자생적 테러리스트가 될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다. 파리 테러는 IS가 본격적으로 서방 테러에 나섰다는 증좌다. 뉴욕타임스(NYT)는 “IS가 시리아와 이라크 거점 지역에서의 전투보다 세계 곳곳에서의 테러에 전력을 집중하는 쪽으로 방침을 바꿨다”고 15일 분석, 보도했다. 지난달 31일 이집트 시나이 반도 상공에서의 러시아 여객기 폭발 테러, 지난 12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의 자살 폭탄 테러에 이어 파리 테러를 잇따라 벌이며 IS가 서방에 선전포고를 했다는 얘기다. 3번의 테러로 인한 사망자 수는 최소 399명으로, IS가 2주 만에 시리아에 가 본 적도 없는 시민들에게 공포감을 증폭시켰다. 불과 2주일 만에 서방에 ‘테러 공포’를 확실히 심었듯이 IS는 이미 중동 지역에서 알카에다와 다른 전략, 다른 역량을 선보인 바 있다. 2004년쯤 알카에다의 이라크 지부였던 IS는 이라크 후세인 정권에서 군과 정보기관에 속해 있다 이라크전쟁 뒤 미군에 의해 축출당한 군부 세력을 영입한 2010년 이후부터 세를 크게 키웠다. 테러단체로 지목됐던 알카에다와 다르게 IS는 정통 이슬람 국가를 자처했다. 내전 중인 시리아로 진출해 락까를 점령한 IS는 다시 이라크로 눈을 돌려 제2도시인 모술을 점령했다. IS는 집단 학살, 인질 살해, 성노예화, 고대 유물 파괴 등을 자행했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자신들을 정통 무슬림 국가로 홍보했다. 미국 정보당국 등은 IS를 추종하는 트위터 계정이 5만여개, 계정별 팔로어가 평균 1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부터 유럽과 미국 등지에선 IS 추종자임을 밝힌 ‘외로운 늑대’에 의한 테러 시도가 여러 차례 적발됐다. 서방 정보기관은 외로운 늑대가 양산되는 현상을 청소년들의 일탈 행위쯤으로 치부했지만 실상 IS는 지난해부터 외로운 늑대를 전략적으로 양성했다. 반테러 분석가 할린 감비르에 따르면 ▲이라크·시리아 전선 구축 ▲중동 지역 테러 집단과의 연계 ▲서방 외로운 늑대 양성이 IS의 3대 전략에 포함됐다. IS 본거지인 시리아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다시 주목받게 됐다. 사실상 실패한 국가로서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민주화를 주창했던 이들에게 폭격을 가해 반군으로 만들었고, IS에 대항하지 못하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퇴위시키자는 미국 등 서방과 그를 그대로 권좌에 두고 재무장시키자는 러시아가 맞서고 있다.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IS 궤멸을 위한 지상군 투입을 꺼리는 가운데 서방 정보기관의 오래된 예언이 맞아떨어진 대목도 있다. 중동 지역 정세가 안정되지 않는 한 알카에다와 같은 테러단체가 궤멸돼도 또 다른 테러 세력이 등장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은 9·11 테러 이후 14년 만의 11·13 테러로 증명됐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이 안을 채워 주세요

    이 안을 채워 주세요

    강북구는 국채보상운동 통문, 김구 선생 혈투사, 대한독립운동과 임시정부 투쟁사 등 근현대사 유물을 수집한다고 16일 밝혔다. 구는 지난 1월 44억여원의 예산을 투입해 북한산 자락 수유동에 근현대사기념관(조감도)을 착공했으며 내년 3월 완공 예정이다. 근현대사기념관을 운영할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는 98점의 전시유물을 정해 본격 수집에 나섰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동학운동 당시 북접의 최시형이 발행한 첩지(문서), 관동창의대장 차첩(의병대장의 문서), 국채보상운동 통문(문서), 김구 주석 최근 언론집, 김구 선생 혈투사, 여운형 선생 투쟁사, 대한독립운동과 임시정부 투쟁사, 순국선열혈투사 등 98점을 전시유물로 정했다. 구한말부터 정부 수립 전후와 4·19혁명까지의 근현대사 관련 유물을 갖고 있는 개인이나 문화재 매매업자, 법인은 강북구 문화체육과(02-901-6204)로 연락하면 판매할 수도 있다. 도굴품, 도난품 및 문화재 관련 사범은 판매가 불가능하다. 사발통문, 오방색군기, 손병희 초상화, 을사조약문, 정미7조약문, 병합조약문, 순종의 칙유, 데라우치 유고, 헤이그특사 위임장, 만국평화회의보, 대동단결선언문, 무오독립선언서, 2·8독립선언서 등 전시에 필요하지만 구입이 불가능한 유물은 독립기념관 등 9개 기관으로부터 복제해서 갖추게 된다. 박겸수 구청장은 “역사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시점에서 근현대사기념관은 시민과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 주고 애국심을 키우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근현대사기념관은 북한산둘레길 수유탐방지원센터 뒤편 4·19길에 연면적 951㎡,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로 세워진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고려 사찰’ 용상사 대웅전 전소

    ‘고려 사찰’ 용상사 대웅전 전소

    왕이 머무른 곳이라는 이름을 가진 용상사 대웅전이 화마에 휩싸여 전소됐다. 15일 오전 6시 50분쯤 경기 파주시 월롱면 용상사에서 불이 나 1시간 30분 만에 진화됐다. 파주소방서에 따르면 용상사 2층 법당 천장에서 불이 붙자 사찰 안에 있던 박모 스님이 119에 신고한 뒤 소화기로 자체 진화를 시도했다. 7시쯤 소방관들이 도착해 대웅전 불을 잡으면서 다른 건물과 산에 번지지 않도록 작업을 진행해 8시 26분쯤 완전히 진화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이 화재로 2억원 정도의 재산 피해를 본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정확한 피해 규모와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한편 대웅전이 모두 타버려 안에 있던 석불좌상도 크게 훼손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 현종(1010∼1031) 때 창건된 용상사가 1445년(조선 세종 27)에 중건되면서 이 석불도 함께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초기 불상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유물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80호로 지정돼 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컬러’로 최초 복원된 투탕카멘 묘 발굴 직후 사진 공개

    ‘컬러’로 최초 복원된 투탕카멘 묘 발굴 직후 사진 공개

    이집트 제18왕조 제12대 왕이자 ‘소년왕’으로도 유명한 고대 이집트의 투탕카멘의 무덤이 발굴됐을 당시 찍은 사진의 컬러가 최초로 복원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개된 사진들은 1922년 영국의 고고학자인 하워드 카터가 왕들의 계곡에서 투탕카멘 왕의 무덤을 발견한 직후 당시 발굴에 동행했던 사진작가 해리 버튼이 기록한 것으로, 당시 기술의 한계로 인해 모두 흑백사진으로 보관돼 있었다. 때문에 투탕카멘 무덤에서 발견된 ‘황금가면’ 등의 금빛 유물이 발굴 당시 실제로 어떤 빛을 내고 있었는지, 또는 발굴현장의 색채는 어땠는지 등은 대체로 역사학자들의 글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다. 3000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본 유물들의 생생한 당시 모습은 투탕카멘 무덤 발굴 93주년을 기념해 최초로 컬러 복원이 시도됐다. 황금가면 뿐만 아니라 무덤에서 함께 발견된 사산된 아기의 미라, 투탕카멘의 황금관을 바라보고 있는 하워드 카터와 그 주변의 모습, 수 천 년전 왕과 함께 묻힌 다양한 예술품, 자칼의 머리가 달린 죽음의 신 아누비스 등이 기존의 흑백 이미지에서 컬러 이미지로 다시 태어난 것. 이번 복원 작업은 디지털 프로그램을 이용했으며, 유물이 3000년 이후 후손의 ‘손을 타기’ 전,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컬러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고고학계에서도 매우 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투탕카멘 무덤이 발굴된 지 93년이 지난 올해, 최근 전문가들은 무덤 벽 안쪽에 숨겨진 방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추측을 내놓았다. 이집트 유물부와 해외 고고학자들이 모인 연구팀은 투탕카멘의 무덤 안에서 온도차이가 나는 벽을 확인했으며, 이 공간은 네페르티티의 무덤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 상황이다. 실제로 투탕카멘의 무덤은 하나의 방이 아닌 여러 개의 방이 이어진 복잡한 형태이며, 무덤 벽에 그려진 그림이 투탕카멘이 아닌 네페르티티를 형상화 한 것이라는 점도 위의 추측에 무게를 더해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대 이집트 왕족은 투탕카멘이 19살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사망해 무덤을 만들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투탕카멘이 사망하기 10년 전에 세상을 떠난 네페르티티 왕비의 묘에 투탕카멘의 묘를 이은 형태라고 추정하고 있다. 네페르티티는 투탕카멘의 아버지인 이집트 제18왕조 제11대왕인 아크나톤의 첫 번째 부인이며, 고대 이집트를 대표하는 미녀로도 유명하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은평역사한옥박물관, 문화재 직접 관리한다

    은평역사한옥박물관, 문화재 직접 관리한다

    은평구가 최근 문화재청의 박물관 현지 실사를 거친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이 국가귀속문화재 보관·관리 위임기관으로 최종 결정됐다고 11일 밝혔다. 서울시내 구립박물관으로서는 최초 사례다. 은평구에는 삼국시대 청담사터나 고려 삼천사지, 조선 국사당인 금성당 등이 있어 매우 가치 있는 문화재들이 출토됐지만 모두 국가기관이 관리하고 있다. 매장문화재는 국가에 귀속돼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서울역사박물관 등에서만 보관하기 때문이다.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은 지난해 10월 개관 이후 은평구 지역에서 나온 매장문화재와 국가지정문화재 등의 유물을 확보하기 위해 문화재청과 지속적인 협의를 벌여 이 같은 성과를 거뒀다. 문화재청은 전국 30여개 지역 박물관을 대상으로 실사를 진행하고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 대해서는 ‘매우 탁월’하다는 평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은 문화재 전문가인 관장을 비롯해 학예사 3명을 확보하고 박물관 자원봉사자 40명을 통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등 운영상 전문성을 꾀했다. 30여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지역 주민에게 폭넓은 문화 경험을 제공하고 다양한 특별전을 벌여 호평받았다. 보안시스템 강화, 교육실과 수장고 가까이에 있는 실외기의 소음 개선, 국가귀속문화재의 안전한 관리를 위한 보존과학담당 학예사 충원 등은 보완해야 할 점이다.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장은 “은평구에는 봉분, 사찰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 많아 발굴된 유물들도 다수인데 정작 우리 박물관에서 이를 보존하고 전시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면서 “이번 지정을 계기로 박물관이 지역 매장문화재를 직접 관리하면서 우리 구의 문화 자긍심을 높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은 이번 보관·관리기관 위임 지정을 기념해 오는 24~29일 박물관 무료 관람을 진행한다. 현재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는 민화, 탱화, 옛 생활용품 등 670여점의 유물과 민속품이 전시돼 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침팬지, 장애가진 새끼있으면 무리가 함께 돌본다”

    “침팬지, 장애가진 새끼있으면 무리가 함께 돌본다”

    사회적 약자를 함께 돌보는 행동은 인간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동물들 중에도 유사한 습성을 지닌 사례는 없지 않다. 최근 일본 과학자들이 야생 침팬지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사회적 돌봄’ 현상을 발견했다고 발표해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9일(현지시간), 교토대학교 야생동물연구센터 연구팀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서식하는 침팬지 무리에 대한 2년 동안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지난 2011년 탄자니아 마할레 국립공원에서 ‘심각한 장애’가 있는 새끼 침팬지가 포함된 침팬지 무리를 발견, 2013년 새끼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됐을 시점까지 이들의 행동을 관찰·분석했다. 연구팀은 새끼가 안타깝게도 결국 사망했다고 추정하고 철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관찰했던 새끼 침팬지는 인간의 다운 증후군과 유사한 장애를 가지고 있었으며 팔다리를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약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연구팀은 “장애를 가진 새끼를 특별히 돌보려는 어미의 노력과 자매들의 ‘새끼보호행동’(allomothering) 덕분에 이 침팬지는 야생에서 23개월 동안 생존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새끼보호행동’이란 동물들이 친자식이 아닌 어린 개체를 돌보는 습성을 의미한다. 실제 이 장애 침팬지는 일반 새끼들과 달리 팔다리 힘이 부족해 젖을 먹는 동안 어른의 몸에 매달려 있지 못했는데 이 때 어미는 물론 암컷 형제들도 나서서 새끼의 몸을 받쳐주는 등 도움을 제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무리의 다른 침팬지들도 장애 침팬지를 두려워하거나 혐오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새끼보호행동을 나타냈다. 다만 장애 침팬지의 ‘친모’는 이러한 동료 침팬지들의 도움을 허락하지 않고 새끼를 직접 돌보는 것을 선호했다고 연구팀은 전했다. 미치오 나카무라 쿄토대학교 야생동물연구센터 조교수는 야생 침팬지들의 ‘사회적 돌봄’ 행동을 최초로 관찰한 이번 연구가 인류의 사회복지 발달과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사회적 돌봄의 능력은 인류의 선조에게도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그러나 그 능력이 현생인류로 진화하고 나서 생겨난 것인지 아니면 그 전부터 존재했는지 여부를 두고 논의가 있어 왔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논문은 영장류(Primates) 저널 최신호에 발표됐다. 사진=ⓒ포토리아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포유류의 ‘속눈썹’ 기능 본딴 신기술 등장할까?

    포유류의 ‘속눈썹’ 기능 본딴 신기술 등장할까?

    고양이나 해달 등 몸이 털로 뒤덮인 동물들 중 상당수는 ‘그루밍’을 한다. 그루밍은 고양이 등 동물이 본능에 따라 자신의 몸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혀로 몸을 핥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스스로 그루밍하는 동물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몸이 털로 뒤덮여 있다는 것인데, 최근 해외 연구진은 그루밍하는 동물들의 몸에 있는 털의 개수와 표면적을 밝히고, 외부의 오염물질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 조지아공과대학교 연구진은 27종의 포유류와 곤충을 자세히 분석한 결과, 나비는 무려 100억 개의 미세한 털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꿀벌은 다람쥐와 비슷하게 300만 개의 털을 가졌다. 인간의 머리카락이 약 10만 개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숫자다. 알려진 대로 글루밍은 이처럼 수많은 털에 붙은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방법 중 하나다. 초파리는 머리에 붙은 질긴 털을 이용하는데, 이때 지구의 중력 가속도의 500배에 달하는 엄청난 속도로 먼지를 떨쳐낸다. 매미는 날개에 달린 뾰족한 형태의 신체구조를 이용해 공중에서 박테리아를 퇴치한다. 연구진은 이처럼 ‘자력’(自力)을 이용해 몸에 붙은 먼지나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방법이 아닌,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그루밍 효과를 내는 동물들의 습관에 주목했다. 예컨대 인간을 포함한 일부 포유류는 속눈썹이 그루밍 역할을 해준다. 매우 짧은 길이의 속눈썹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부유물이나 먼지가 눈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최소한의 보호를 담당한다. 연구진은 포유류 22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이 모두 속눈썹의 ‘혜택’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전문가들은 고양이처럼 직접 힘들여 그루밍을 하지 않아도, 작은 규모의 신체구조 만으로 청결을 유지하고 유해물질을 막아내는 동물의 구조를 새로운 기술에 접목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연구를 이끈 데이비드 후 교수는 “속눈썹과 같은 생물학적 시스템에 대해 자세히 이해한다면, 먼지와 오염물질에 민감한 기기들이 낮은 에너지로도 고장과 오작동을 방지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특히 드론 또는 화성 탐사에 사용되는 로봇의 센서 등은 공기 중에서 떨어진 물질들이 쌓여 오작동이나 고장을 일으킬 수 있는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그루밍하는 모피 동물에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단독] 조선후기 때 돈 주고 관직 샀던 물증 ‘임치표’ 세상 밖으로

    [단독] 조선후기 때 돈 주고 관직 샀던 물증 ‘임치표’ 세상 밖으로

    조선 후기 성행했던 매관매직을 입증하는 물증(일명 ‘임치표’)이 최초로 나왔다. 국립민속박물관은 등록 소장품 6만 8033건을 정리해 홈페이지에 수록하는 과정에서 수장고에 묻혀 있던 임치표를 발견해 10일 공개했다. 매관매직에 관한 기록은 매천 황현(1855~1910)의 저서 ‘매천야록’을 비롯해 여러 문헌에서 전해지고 있지만 이를 입증할 자료가 나온 것은 처음이다. 임치표는 내지와 겉봉으로 이뤄져 있다. 내지에는 ‘국동 안태환, 엽전 4250냥 4전 임치, 참봉차함 출보후 물시표’(麴洞 安泰煥, 葉錢肆仟貳百伍拾兩肆錢任置, 參奉借啣 出報後 勿施票)라는 28자가 적혀 있고 세 군데에 안태환인(安泰煥印)이 찍혀 있다. 이는 국동(지금의 무교동)에 거주하는 안태환이 엽전 4250냥 4전을 맡아 두고 발행한 표를 의미한다. 이 표에서 매관매직의 결정적 증거는 마지막에 기록돼 있는 ‘참봉차함 출보후 물시표’란 10자에 나와 있다. ‘참봉(參奉)이라는 차함(借啣)이 나거든 이 표를 시행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문현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차함’은 실제 근무하지 않고 벼슬 이름만 갖던 것을 말한다. 누군가 참봉 직에는 부임하지 않고 참봉 교지를 받는 조건으로 안태환에게 거금을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관은 “안태환은 승정원일기에 1890년 왕실 재산을 관리하던 수진궁(壽進宮)의 살림을 맡았던 사람으로 기록돼 있어 1890년 무렵 이 표가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며 “고종실록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을 때인 1894년 10월 13일 육의전의 가게 한 곳이 납부한 돈(세금)이 2000냥 내외였다고 기록돼 있는 것을 보면 안태환이 받은 돈의 규모를 유추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경목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참봉은 실제 근무지로 나가는 경우도 있고 종이로 벼슬만 받는 경우도 있다”며 “이 표는 일종의 영수증이자 보관증으로, 어떤 조건이 충족되면 이 영수증은 없는 걸로 치겠다는 것이다. 실제 참봉 직에 임명되면 미리 지불한 돈을 돌려받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내지를 접어 넣었던 봉투 겉에는 안태환표(安泰煥票)라고 적혀 있다. 박물관은 임치표를 1994년 경기도 수원의 한 유물 매매상인에게 13만 3000원에 구입했다. 이 연구관은 “매천야록 등 비사나 야사에 돈을 주고 관직을 샀다는 기록은 많이 나와 있지만 그 기록을 입증할 자료는 그동안 없었다”며 “음성적으로 돈을 주고받으며 관직을 매매했다는 건 당사자들에겐 감추고 싶은 치부여서 증거를 남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전 교수는 “임치표가 그 당시에 작성된 건지 후대에 만든 건지는 따져 봐야 하지만 이 표가 돈을 주고 참봉 직을 샀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료는 맞다”며 “매관매직은 은밀하게 이뤄졌기 때문에 역사서에 언급은 돼 있지만 구체적인 증거는 없었다”고 말했다. 김인걸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도 “조선 후기 중앙이나 지방이나 매관매직이 문제였는데, 당시 매관매직과 관련해 기록으로는 본 적 있지만 물증을 본 기억은 없다”고 전했다.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19세기 말 매관매직이 성행하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원자 탄생 이후 궁중의 기양(祈禳·재앙은 물러가고 복이 오라고 비는 일)은 절도가 없어 그 행사가 팔도 명산까지 미치고, 고종도 마음대로 유연(游宴)을 즐겨 상을 줄 경비가 모자랐다. 양전(兩殿·대전과 중궁전으로 임금과 왕비를 일컫던 말)이 하루에 천금을 소모하여 내수사에 있는 물량으로는 지탱할 수 없으므로 호조와 선혜청의 공금을 공공연히 가져다 썼으나 재정을 관장하는 사람이 감히 거절을 할 수 없어, 1년도 안 돼 대원군이 10년 동안 쌓아둔 저축미가 다 동이 났다. 이로부터 매관매과(賣官賣科)의 폐단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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