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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교통공사, 베트남 호치민메트로 5호선 1단계 용역 수주

    부산교통공사가 철도 강국이 독식해 온 FEED(Front End Engineering Design) 용역사업 수주에 성공했다. 부산교통공사는‘베트남 호치민메트로 5호선 1단계 건설사업’ FEED 용역의 수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 28일 밝혔다. 공사는 국내외 엔지니어링사와 공동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이번 입찰에 참여했으며 총 사업비는 140억 원에 달한다. 호치민메트로 5호선 1단계 구간은 인구 900만 호치민 시의 상업 지구이자 최대 번화가인 바이히엔 교차로에서 사이공 교량까지의 총연장 8.9km(정거장 9개소)이다. 공사가 참여하게 될 사업은 해당 구간에 대한 FEED 용역으로, 이는 건설 단계에서 기본설계와 실시설계 중간 단계에서 시행되는 설계를 일컫는다. 실제 건설을 위한 상세 설계에 들어가기 전 발주처의 요구 사항 및 건설방향·매뉴얼 등을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자문 설계하는 단계로 노하우와 기술력이 집약된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통한다. 공사의 이번 FEED 용역 수주는 국내 철도 건설 분야에서는 처음이어서 의미가 더욱 크다. FEED는 그동안 선진국으로 대변되는 철도 강국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특히 우리나라는 기본설계에서 실시설계로 바로 진행되는 건설 특성상 이 분야에 대한 경험과 경쟁력이 전혀 없다시피 했다. 이런 가운데 공사가 경쟁사로 참여한 스페인·일본 등의 철도 강국을 제치고 국내 최초로 FEED 용역을 낙찰받았다. 한편, 공사는 베트남 하노이 3호선 건설사업의 기술지원 용역 사업과 방글라데시 다카메트로 1·2호선 타당성 조사 및 기본설계 용역에 대한 입찰 참여 후보군 선정 과정을 앞두고 있다. 또 베트남 하노이 8호선 예비 타당성 조사 사업에 대한 입찰을 준비하는 등 해외 철도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고 있다. 부산교통공사 박종흠 사장은 “선진국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FEED 용역에 대한 이번 성과는 공사를 넘어 우리나라 건설 사업에도 큰 획을 그은 것”이라며 “향후 고부가 가치가 큰 해외사업에 적극 나설 계획”이라 고 말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베트남 호치민 메트로 5호선 1단계 설계 및 컨설팅용역 수주..부산교통공사

    부산교통공사가 철도 강국이 독식해 온 FEED(Front End Engineering Design) 용역사업 수주에 성공했다. 부산교통공사는‘베트남 호치민메트로 5호선 1단계 건설사업’ FEED 용역의 수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 28일 밝혔다. 공사는 국내외 엔지니어링사와 공동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이번 입찰에 참여했으며 총 사업비는 140억 원에 달한다. 호치민메트로 5호선 1단계 구간은 인구 900만 호치민 시의 상업 지구이자 최대 번화가인 바이히엔 교차로에서 사이공 교량까지의 총연장 8.9km(정거장 9개소)이다. 공사가 참여하게 될 사업은 해당 구간에 대한 FEED 용역으로, 이는 건설 단계에서 기본설계와 실시설계 중간 단계에서 시행되는 설계를 일컫는다. 실제 건설을 위한 상세 설계에 들어가기 전 발주처의 요구 사항 및 건설방향·매뉴얼 등을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자문 설계하는 단계로 노하우와 기술력이 집약된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통한다. 공사의 이번 FEED 용역 수주는 국내 철도 건설 분야에서는 처음이어서 의미가 더욱 크다. FEED는 그동안 선진국으로 대변되는 철도 강국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특히 우리나라는 기본설계에서 실시설계로 바로 진행되는 건설 특성상 이 분야에 대한 경험과 경쟁력이 전혀 없다시피 했다. 이런 가운데 공사가 경쟁사로 참여한 스페인·일본 등의 철도 강국을 제치고 국내 최초로 FEED 용역을 낙찰받았다. 한편, 공사는 베트남 하노이 3호선 건설사업의 기술지원 용역 사업과 방글라데시 다카메트로 1·2호선 타당성 조사 및 기본설계 용역에 대한 입찰 참여 후보군 선정 과정을 앞두고 있다. 또 베트남 하노이 8호선 예비 타당성 조사 사업에 대한 입찰을 준비하는 등 해외 철도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고 있다. 부산교통공사 박종흠 사장은 “선진국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FEED 용역에 대한 이번 성과는 공사를 넘어 우리나라 건설 사업에도 큰 획을 그은 것”이라며 “향후 고부가 가치가 큰 해외사업에 적극 나설 계획”이라 고 말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검은돈 오가는 밀실 관사…임기 끝나도 버티고 풍수 따져 입신

    검은돈 오가는 밀실 관사…임기 끝나도 버티고 풍수 따져 입신

    관사는 실상 단체장에게 핵심 업무 공간이 아니다. 공·사적 개념을 아우르는 관사에 대해 단체장이 공적 공간으로서의 순기능만 강조할 경우, 민심과 내내 평행선을 달리게 될 수밖에 없다. 몇몇 관사에서는 떳떳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예로부터 벼슬아치의 상징이었던 관사를 통해 허세를 뽐내려는 마음이 아주 없지도 않다. 이런저런 이유로 주민과 유리된 ‘밀실’ 같은 관사에 대한 유혹을 떨치지 못하면 그칠 줄 모르는 비난에 직면하는 시대를 맞은 지 오래다.지난 26일 관사 거부를 선언한 양승조 충남도지사 당선자는 측근들에게 “취임 전 주업무도 아닌 관사 문제로 논란을 만들고 싶지 않다. 내가 쓰지 않으면 논란도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관사의 정무 기능을 높이 사 입주 여부를 고민했다. 맹창호 충남지사직 인수위 대변인은 27일 ‘취임 준비로 바쁜데 무슨 관사 얘기냐. 대단한 것도 아니고…’라는 양 당선자의 말을 전했다. 양 당선자는 관사 논란으로 (실제 사용한) 전임 안희정 지사와 이른바 ‘엮이는’ 것도 싫어했다는 후문이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당 대표이던 지난 1월 12일 경남도당 신년인사회에서 경남지사 시절 자신이 건립한 도지사 관사를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자신이 지어 놓은 관사 터가 좋다는 것이다. 홍 전 대표는 “내 고향에 와서 4년 4개월 도지사를 지내며 도지사 관사도 새로 잘 지어 놨는데 거기에서 몇 달 못 살았다. 조그맣게 지어 놨지만 참 아기자기하게 잘 지었다. 터도 아주 좋다”고 자랑했다. 도지사 관사는 경남지방경찰청장 관사를 헐고 새로 지었다. 홍 전 대표는 “2등밖에 못해 떨어졌지만 대통령 후보도 한번 해 봤고, 당 대표도 재수하고 있다”면서 “그래서 그 터가 좋다. 절대로 안 뺏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 관사에 살았던 내가 당 대표를 맡아 지방선거를 지휘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선거에 참패했고 대표직에서도 물러났다.관사를 놓고 추태도 있었다. 2010년 6월 지방선거 당시 배상도 경북 칠곡군수는 졌는데도 새 당선자의 취임을 코앞에 두고서야 관사를 떠났다. 그는 “집을 구하기 어려우니 관사를 쓰게 해 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군이 규정을 들어 그 요구를 뿌리쳤을 땐 신임 군수가 취임하기 전까지 집을 수리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늦었다. 결국 칠곡에 살지 않던 장세호 새 군수는 친척에 얹혀 살며 취임 후 보름을 넘겨 입주했다. 성백영 경북 상주시장은 선거에 진 전임 이정백 시장이 상주에 당장 집을 구해 옮기기 어렵다며 기존 관사에 계속 살겠다고 요구해 아파트를 새로 얻어야 했다. 시는 관사 임대계약을 해지하고 이 전 시장의 돈으로 빌려 계속 살도록 조치했다. 이 전 시장은 관사에서 사용하던 시 소유 가구, 집기, 가전제품 등도 시에 임대료를 내고 썼다. 신규 아파트 관사에 집기 등을 신품으로 구입하는 돈을 놓고 시민들은 예산 낭비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1999년에는 관사 절도사건으로 떠들썩했다. 고관 저택 전문털이로 이름을 날리던 김강룡이 서울 양천구 목동 전북지사 관사의 김치냉장고에 있던 미화 12만 달러와 현금 5800만원을 훔쳤다고 진술했는데 당시 유종근 지사가 “도난당한 게 없다”고 부인해 진실 공방을 일으켰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로 온 국민이 달러를 사려고 금 모으기를 하던 시절 도지사라는 인물이 거액의 달러를 보관한 혐의로 정국을 흔들 뻔했다. 결국 유 지사가 달러를 잃은 게 아니라 현금 3500만원과 약간의 귀금속이라고 시인하며 가라앉았다. 그러나 유 지사는 업체에서 뇌물을 받은 게 밝혀져 감옥 신세를 졌다.전북 임실의 옛 군수 관사는 민선 3기(2002~2006년) 때 6급 공무원 서너명이 찾아와 군수와 군수 부인에게 사무관 승진을 부탁하며 뇌물을 건네 입길에 올랐다. 이런 이유로 심민 현 군수는 초선 때부터 “봉사를 사명으로 할 지위에 자치단체 재물을 거저 이용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며 관사를 내쳤다. 그는 올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대다수 단체와 전문가들은 비난 일색이다. 최진아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시민자치국장은 “자기 사는 곳에서 당선되는데 관사가 필요한가”라고 되묻고 “일부는 단독주택 관사를 개방해 생색을 내고 세금으로 아파트 관사를 얻는데 이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박재율 부산 분권시민연대 상임대표는 “지방청와대로 불린 부산시장 관사는 군사정권의 유물로 시민들에게 돌려 줘야 옳다”고 밝혔다. 이상선 충남참여자치연대 공동대표는 “관사는 더이상 국민 정서에 맞지 않으니 소모적 논쟁을 끝내야 한다”고 제안했다. 생각이 다른 민선 기관장도 눈에 띈다.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도내 25개 교육지원청이 있는데 교육장들과 밥 먹으며 회의할 장소를 구하기 어렵다”며 “다양한 사람과 소통하는 공간으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엄태석 서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외부 고급식당에서 만찬을 하는 것보다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단체장이 자기 아파트에 살면 퇴근 후 긴급 상황 발생 때 간부들을 불러 회의라도 할 수 있겠나. 시민들에게 주목돼 비리를 차단하는 효과도 있다. 무조건 적폐로 모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맞섰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수원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홍성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단독] ‘민선 23년’ 아직도 관사에 사십니까

    충남은 논란 끝 “도민 환원” 광역 17곳 중 10곳서 운영중 “公私 구분해 예산 집행해야” 7월 1일 민선 7기 출범을 앞두고 지방자치단체장 공관인 ‘관사’(官舍) 논란이 뜨겁다. 1995년 민선단체장 시대가 막을 올린 뒤 끊임없이 터진 해묵은 시비가 20년 뒤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논란이 터질 때마다 권위주의 시대의 상징, 호화 관사, 세금 낭비 등 집중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이런 이유로 관사가 줄고, 그 터에 일부 자치단체가 부활을 시도하거나 존치를 꾀해 논란을 더욱 가열시키고 있다. 26일 광주광역시에 따르면 이용섭 시장 당선자의 관사로 사용하기 위해 서구 매월동 모 아파트(34평형)를 3억 2000만원에 전세 계약했다. 50년 만에 폐지했던 광주시장 관사를 4년 만에 되살렸다. 시 관계자는 “인수위원회 요청으로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개혁’과 ‘혁신’을 외쳐 온 당선자가 민선 6기 때 반세기 만에 없앤 관사를 ‘부활’시킨 데 대해 곱잖은 시선을 보낸다. 참여자치21 관계자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전국의 상당수 자치단체가 기존 관사를 매각하거나 없애는 추세인데 도리어 없앴던 관사를 새로 구입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지방자치와 분권시대에 역행하고 있다”고 중단을 요구했다. 전임 윤장현 시장은 “관사는 권위주의 시대의 유물”이라며 기존 아파트 관사를 매각하고 자택에서 출퇴근해 왔다. 충남지사 관사의 경우에도 이날 양승조 도지사 당선자가 “관사를 사용하지 않고 도민에게 환원해 어린이집이나 공공 센터 등으로 활용하기로 확정했다”고 밝히기 전까지 논란을 빚었다. 양 당선자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관사는 공적인 공간으로 정무·외교적 기능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주장한 뒤 “도민과 언론인 등의 뜻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용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서울신문이 이날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를 점검한 결과 서울, 부산, 강원, 전북, 전남, 경남, 충남 등 7곳이 관리자를 따로 둔 단독주택을 단체장 관사로 쓰고 있다. 대구, 충북, 경북에선 아파트를 빌렸다. 나머지 7곳은 관사를 폐지해 매각하거나 용도를 바꿨다. 226개 기초자치단체 중엔 15곳이 관사를 뒀다. 지자체 25곳이 단체장 관사를 만든 셈이다. 2010년엔 54곳, 2015년엔 27곳이었다. 원구환 한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광역시와 달리 농어촌이 중심인 광역도는 관사가 필요할 수 있지만 효율성을 꼼꼼히 따져 결정해야 한다. 특히 단체장이 관사를 쓸 때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명확히 구분해 예산을 써야 한다. 자택에 사는 단체장은 자기 돈을 들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홍성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와우! 과학] 로마 독재자 카이사르의 진짜 얼굴 3D로 복원해보니…

    [와우! 과학] 로마 독재자 카이사르의 진짜 얼굴 3D로 복원해보니…

    “그는 절대 황제가 된 적이 없지만, 그의 이름은 영원히 황제를 뜻하게 됐다” 이는 우리에게 줄리어스 시저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 정치인이자 장군인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B.C.100-B.C.44)를 두고 하는 말이다. 로마제국 최고 지배자였던 아우구스투스부터 네로까지 카이사르의 성을 세습하면서 카이사르는 황제 중에서도 실권을 장악하고 마음껏 휘두르는 전제군주나 독재자에게 붙여졌다. 황제를 뜻하는 독일의 카이저와 러시아의 차르 역시 카이사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듯 세계사에 큰 영향을 준 독재자 카이사르는 생전 어떤 모습이었을까. 네덜란드 고고학자들이 카이사르가 살아있을 때 만들어진 두상을 3D 기술로 스캔해 복원한 얼굴 모형을 공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22일(현지시간) 네덜란드 국립고대유물박물관이 발표한 카이사르의 복원된 얼굴은 우리가 생각한 것만큼 강인한 영웅의 모습은 아니다. 이번 얼굴 모형은 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카이사르의 두상과 투스쿨룸 흉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튜린 박물관이 소장한 두상 등의 3D 스캔 데이터를 이용해 만든 것이다. 카이사르의 얼굴 복원을 주도한 네덜란드 고고학자 톰 뷔텐도르프는 네덜란드 일간 HLN과의 인터뷰에서 “카이사르의 머리에는 꽤 큰 혹이 있다. 이런 혹은 태어날 때 생길 수 있다고 한다”면서 “당시에는 현실적인 작품이 유행이었다”고 설명했다. 복원 작업은 얼굴 복원 전문가인 고고학자 겸 자연인류학자 마자 드홀로지가 주도했다. 드홀로지는 대부분 복원 작업에서 카이사르가 살아있을 때 만들어진 투스쿨룸 흉상의 3D 스캔 데이터를 사용했다. 왜냐하면 네덜란드 박물관이 소장한 두상은 코와 턱 모양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손상돼 있기 때문이다. 한편 카이사르의 복원된 얼굴 모형은 오는 8월 말까지 네덜란드 국립고대유물박물관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사진=네덜란드 국립고대유물박물관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보석부터 거울까지…2000년 전 ‘잠자는 미녀’ 미라 발견

    보석부터 거울까지…2000년 전 ‘잠자는 미녀’ 미라 발견

    2000년 전 고귀한 신분의 ‘잠자는 미녀’ 미라가 발견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사협회 연구진이 예니세이 강(江) 인근에서 발견한 이 미라는 2000년 전 여성의 것으로, 고급스러운 실크 치마를 입은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장례식 때 쓰인 것으로 보이는 잣과 품질이 좋은 원석 장신구, 중국 스타일의 거울 등이 함께 발견됐다. 연구진은 이 여성이 묻힌 돌무덤의 환경적 특성 때문에 해당 여성의 시신이 자연적으로 미라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여성 미라와 함께 발견된 부장품에는 ‘메이크업 상자’로 불릴만한 유물이 발견됐는데, 여기에는 원석으로 된 벨트 장신구와 거울 등 여성이 외모를 치장하는데 쓰일만한 물품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연구진은 돌무덤에 묻힌 여성이 사망당시 나이가 어렸으며, 실크 치마 등을 입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신분이 매우 높았던 것으로 추정했다. 또 ‘메이크업 상자’는 무덤 주인인 여성의 사후세계를 위해 함께 매장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연구를 이끈 현지 고고학자 마리나 킬루노브스카야 박사는 “미라의 하반신 부분의 보존도가 특히 양호하다. 이것은 일반적인 미라로 보기 어려우며 돌무덤에 갇힌 후 자연환경에 의해 자연적으로 미라가 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 여성 미라와 부장품을 통해 당시의 귀족 풍습과 문화를 추측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구글 통해 한국 문화유산 3만점 감상한다

    구글 통해 한국 문화유산 3만점 감상한다

    한국의 문화유산 3만여점을 구글을 통해 감상할 수 있게 됐다.구글의 온라인 예술작품 전시 플랫폼인 ‘구글 아트 앤드 컬처’는 21일 한국의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온라인 전시 프로젝트 ‘코리안 헤리티지’를 웹페이지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선보였다. 왕실 유물 2500여점과 민속 유물 2만 8000여점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3만점 이상의 유물을 비롯해 창덕궁과 수원 화성, 경주의 신라 유적지, 서울의 5대 고궁, 종묘 등 주요 유적지 18곳을 온라인을 통해 감상할 수 있게 됐다. 특히 구글은 ‘영조 어진’(보물 제932호)과 ‘일월반도도’(보물 제1442호) 등 조선 왕실 장식화·기록화 및 지도 등 130여점을 10억 픽셀이 넘는 초고해상도 이미지로 촬영해 세밀한 부분까지 육안으로 볼 수 있게 했다. 또 경복궁, 창덕궁 등 조선의 궁궐을 비롯해 각종 전통 공예품도 360도 영상을 통해 실감나게 감상할 수 있다. 아밋 수드 구글 아트 앤드 컬처 총괄 디렉터는 이날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문화에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체력 키우는 여자, 운동 장려 에세이, 다이어트 말고요

    체력 키우는 여자, 운동 장려 에세이, 다이어트 말고요

    튼튼한 몸에 튼튼한 마음이 깃든다. 어릴 때부터 줄곧 들어온 이야기다. 운동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우리의 의지는 어쩐지 매번 쉽게 꺾이고 만다. 잦은 야근과 스트레스, 육아와 집안일에 시달리다 보면 그저 쉬고 싶기 마련. 매트, 운동장 혹은 맨땅에서 몸을 움직이며 자신의 삶을 다시 꽃피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른다.책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북라이프)와 ‘마녀체력’(남해의봄날)은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일하는 직장인들이 눈여겨볼 만한 ‘운동 장려 에세이’다.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는 ‘한 호흡 한 호흡 내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일상 회복 에세이’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가 요가를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되찾은 기록이다. 저자 이아림(31)씨는 퇴사를 앞둔 20대 끝자락에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경험을 했다. 공황장애였다. 첫 직장에서 사직을 권고받고 수렁에 빠졌던 저자의 삶에 숨을 불어넣은 건 요가였다. 숨 쉬는 법부터 차근차근 배우기 시작한 저자는 “겨우 매트 크기만큼의 세계”에서 “최소한의 것만 받아들이고 사고”하는 삶의 기술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마녀체력’을 쓴 이영미(51)씨도 마흔에 시작한 운동 덕분에 새로운 삶을 마주했다. “타고나길 저질 체력이었다”는 이씨는 유전으로 물려받은 고혈압 탓에 30대부터 약을 먹기 시작했다. 책상에 앉는 시간이 긴 직업인 데다 스트레스를 풀 데가 없던 터라 몸은 더욱 약해졌다. 체력을 키우겠다는 생각에 집 근처 수영장을 들락거리고 공터를 한 바퀴씩 걸으며 꾸준히 몸을 움직인 이씨는 철인 3종 경기에 15차례나 출전한 ‘철녀’로 거듭났다. “내가 다져온 체력은, 남은 인생은 물론 죽음까지도 완전히 달라지게 할 것”이라는 저자의 생생한 운동 조언이 책 곳곳에 담겨 있다. 남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진 축구에 빠진 여성들의 ‘좌충우돌 생애 첫 축구 도전기’도 눈에 띈다. 에세이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민음사)는 열렬한 축구팬이었던 김혼비(37)씨가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아마추어 여자 축구단에 입단하면서 벌어진 일을 그렸다. 기본기 하나 익히는 데 몇 달을 보내고, 정강이를 수시로 걷어차이면서도 저자는 팀원들끼리 호흡을 맞춰 골대를 향해 골을 몰고 가는 재미에 푹 빠진다. 축구를 시작했을 뿐인데 “일상의 시간표가 달라졌고 사는 옷과 신발이 달라졌고 몸의 자세가 달라졌고 마음의 자세가 달라졌다”는 저자처럼 어쩌면 체력이 우리의 인생을 구원할지도 모를 일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왕과의 산책… 경남 함안 ‘아라가야’ 고분군

    왕과의 산책… 경남 함안 ‘아라가야’ 고분군

    ‘아라가야’라는 이름 앞에 목소리가 작아지고 어깨가 움츠러듭니다.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인데도 우리는 아라가야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교과서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나라, 1500년 전 경남 함안을 중심으로 창원, 진주, 의령 땅의 일부를 차지했던 나라, 철기 기술이 발달해 ‘철의 왕국’이라 불렸던 나라, 간결한 선의 토기에 불꽃무늬 구멍을 낸 나라…. 함안에는 아라가야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아라가야의 왕들이 잠든 말이산 고분군이 있기 때문이지요. 아득한 옛날에는 고개를 들어 눈도 마주칠 수 없었을 왕의 곁을 걷는 일이, 2018년에는 너무나 쉽습니다. 낮은 언덕을 설렁설렁 올라 산책로를 따라가기만 하면 길을 안내하듯 고분이 줄줄이 나타나거든요. 연둣빛 고분 곁을 걸으며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것이 더 많은 왕국, 아라가야를 만나러 갑니다.아라가야의 숨결 품은 함안박물관 가야는 기원을 전후한 삼한 시대부터 신라에 멸망하는 6세기 중반까지 500여년 동안 낙동강 남쪽과 서쪽 일대에 있던 나라들이었다. 나라‘들’이라고 한 건 가야가 금관가야, 대가야, 소가야, 아라가야 등 여러 개의 나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토기와 철기를 만드는 기술이 뛰어났던 아라가야는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었고, 다른 가야국이 ‘형님의 나라’라고 칭할 만큼 가야를 대표하는 나라였다. 아라가야가 터를 잡은 곳은 지금의 함안이었다. 북쪽에 낙동강과 남강이, 남쪽에 진동만이 있으니 내륙과 바다로 진출하기 유리했다. 아라가야의 고도, 함안에서 1500년의 세월을 거슬러 낯설기만 한 옛 나라에 발을 들여놓는다.말이산 고분군에서 옛 가야의 왕과 귀족을 ‘알현’하기 전에 먼저 아라가야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예의다. 이를 위해 함안박물관으로 향한다. 박물관 구경 뒤에는 뒷길을 통해 말이산 고분군으로 바로 오를 수 있으니 동선도 효율적이다. 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함안의 역사뿐 아니라 아라가야의 다채로운 유물을 전시한다. 1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아담한 규모다. 2층 전시실은 다섯 구역으로 나뉜다. 함안의 역사를 시대별로 정리한 제1전시실, 함안의 시기별 무덤 형태를 모형으로 보여 주는 제2전시실, 아라가야 멸망 후 함안의 역사와 문화재를 살펴볼 수 있는 제4, 5전시실 등도 볼만하지만 발길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제3전시실이다. 불꽃무늬 토기, 수레바퀴 모양 토기, 새 모양 장식 미늘쇠, 말 갑옷 등 말이산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을 한데 모아 놓았다. 불꽃무늬 토기는 아라가야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라가야 사람들은 불꽃무늬를 좋아했다. 토기 다리에도 동그라미와 세모를 합쳐 불꽃을 형상화한 무늬를 뚫어 장식했다. 토기는 영남 지역은 물론 고대 일본의 중심지였던 긴키지역에서도 출토돼 당시 아라가야가 왜와 교류했음을 보여 준다. 밝은 회백색 토기는 무심히 빚은 양 담백하다. 대번 눈을 사로잡는 화려함은 적지만 계속 보아도 질리지 않는 은은한 멋이 있다. 말을 탄 무사 조형물에서 눈여겨봐야 할 건 무사보다 말이다. 말 갑옷은 아라가야가 철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났음을 보여 준다. 1992년 우리나라 최초로 완전한 형태로 출토된 말 갑옷은 총 900장 이상의 작은 철판을 가죽끈으로 연결해 만들었단다. 아라가야의 용맹한 무사들은 말에게 물고기 비늘처럼 번쩍거리는 갑옷을 입히고 전쟁터로 달려나갔으리라.말이산 고분군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박물관 건물 뒤로 이어진 길을 따라가면 말이산 고분군(사적 제515호)이다. 해발 68m밖에 되지 않는 낮은 언덕은 뒷동산을 산책하는 것처럼 경사가 완만하다. 말이산(末伊山)은 ‘머리산’의 소리음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우두머리의 산’ 즉 ‘왕의 무덤이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뜻이 참 잘 들어맞는다. 함안군이 번호를 붙여 관리 중인 고분은 37기지만 발굴되지 않은 고분까지 더하면 1000기 이상의 고분이 있다. 토기, 철기, 장신구 등 고분군에서 쏟아져 나온 유물만 해도 9500여점에 이른다(2016년 기준). 그야말로 아라가야의 역사가 담긴 타임캡슐이다. 고분군은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으며, 김해·고령의 가야 고분군과 함께 2020년 최종 등재를 목표로 하고 있다.아라가야의 고분은 시대에 따라 형태가 다양하다. 그중 덧널무덤과 구덩식돌덧널무덤에서 많은 양의 유물이 출토됐다. 덧널무덤은 구덩이 안에 나무로 만든 덧널을 넣은 무덤을, 구덩식돌덧널무덤은 구덩이를 파고 돌로 네 벽을 쌓은 뒤 시신과 껴묻거리를 묻고 널따란 뚜껑 돌을 덮은 무덤을 말한다. 37기의 고분을 전부 둘러보기는 힘들다. 1호분부터 13호분까지는 산책로가 이어지지만 14호분부터는 길이 나 있지 않아 험하다. 대형 고분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은 주능선과 서쪽으로 이어지는 가지능선 정상에 몰려 있는데, 산책로를 따라가면 고분 대부분을 둘러볼 수 있다. 유난히 위엄이 넘치는 고분은 규모가 가장 큰 4호분이다. 2, 3호분 사이의 샛길로 올라가면 높이가 아파트 3층과 맞먹는 초대형 고분을 내려다볼 수 있다. 4호분 맞은편에는 파란 천막으로 덮인 고분이 있다. 지난 5월 둥근고리큰칼과 덩이쇠 등의 유물이 출토된 5-1호분이다. 아라가야의 역사는 여전히 새로 쓰이는 중이다. 쉬어가기에 으뜸인 고분은 9, 10호분이다. 산책로에 서면 고분 너머로 함안 읍내가 어우러진 풍경이 한눈에 담긴다. 왕들의 무덤과 우뚝 선 고층 빌딩이 조우하니, 이때 고분의 둥근 선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선처럼 보인다. 9호분 옆의 팔을 늘어뜨린 소나무는 초여름의 훗훗한 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이 된다. 나무 옆 벤치는 한숨 돌리며 쉬어가기에 더할 나위 없다. 아라가야의 역사를 차치하고라도 말이산 고분군은 근사한 산책로다. 산 위에 두둥실 솟은 연둣빛 고분들이 풍경에 깊이를 더한다. 고분의 둥그스름한 곡선과 산책로의 직선이 중첩되니 걷는 길도 심심하지 않다. 느리게 걷고 고요히 둘러보기, 고분군 산책의 미덕은 여기에 있다. 아라가야 왕들이 영면에 들어 있다는 걸 알기라도 하는 걸까. 산책로는 소란스럽지 않다. 초여름 바람이 고분에 무성한 수풀을 스치더니 여행자의 머리를 훑고 지난다. 바람 한 자락에 1500년 전 가야국의 왕과 연결된 느낌, 사뭇 오묘하다. 고분군에는 그늘이 적어 여름에는 양산이나 모자를 챙기는 것이 좋다.얼큰한 함안 한우국밥 드셔보세요 열심히 걸었으니 빈속을 채울 시간이다. 북촌리에 있는 한우국밥촌은 말이산 고분군에서 차로 10분 거리다. 사실 ‘국밥촌’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함읍우체국 맞은편에는 달랑 세 곳의 국밥집이 여행객을 맞는다. 세 곳뿐이라고 만만히 보아선 안 된다. 국밥집을 말할 때 함안 오일장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역사가 깊기 때문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함안 오일장은 큰 시장이었다. 함안 사람들과 봇짐을 멘 장사꾼들이 장에서 물건을 사고판 뒤 약속이라도 한 듯 모여든 곳이 장터 국밥집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오일장은 자취를 감췄지만 국밥집에서 옛 장터의 정겨움을 추억하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국밥촌에서 가장 오래된 곳은 대구식당이다. 2대에 걸쳐 50년째 운영하며 함안 국밥의 명맥을 이어 간다. 함안 국밥은 얼큰한 소고기국밥이다. 한우사골, 양지, 사태 등을 넣고 3~4시간 동안 육수를 뽀얗게 우린다. 여기에 두툼한 소고기 사태, 뭉텅뭉텅 썬 선지, 콩나물, 무 등을 넣고 푸욱 끓여낸다. 얼핏 보면 육개장과 비슷하지만 맛은 훨씬 담백하다. 빨간 국물은 조선간장으로 간을 해 구수하다. ■ 여행수첩(지역번호 055) →가는 길:중부내륙고속도로 칠원분기점에서 ‘진주, 함안’ 방면으로 우회전한 후 남해고속도로를 따라간다. 함안톨게이트를 통과해 함안 나들목 삼거리에서 함안 방면으로 우회전한 뒤 함안대로를 따라가면 함안박물관이다. →맛집:한우국밥촌에는 대구식당(583-4026) 한성식당(584-3503) 시장한우국밥(583-5858)이 있다. 자매식당(582-4593)은 오곡 돌솥밥, 모둠생선구이, 다양한 밑반찬을 한 상에 푸짐하게 차려낸다. 황포냉면(582-2097)은 잘게 자른 육전에 계란 지단과 오이를 고명으로 올린 진주식 냉면을 판다. →잘 곳:함안버스터미널 근처에 숙박업소가 몰려 있다. 애플모텔(585-1515)은 함안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가깝다. 함안군청 맞은편의 더문모텔(583-3838)은 공중위생서비스평가 최우수등급을 받았으며, JM모텔(583-5898) 역시 아늑하고 깨끗한 시설을 갖췄다. 글 이수린(유니에스 여행작가) 사진 김상곤(라운드테이블)
  • 일제 185t 콘크리트 제거에만 3년…최장기 보수 ‘새 역사’

    일제 185t 콘크리트 제거에만 3년…최장기 보수 ‘새 역사’

    230억 투입, 숭례문 이어 두번째 옛 부재 81% 다시 써 원형 보존 정치적 ‘최악의 복원’ 동탑과 동거20년 만에 국민 곁으로 돌아온 익산 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호)은 단일 문화재로는 최장 기간 체계적인 수리가 진행된 사례로 꼽힌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투입된 사업비만 230억원이다. 숭례문 복원(250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1998년 구조 안전진단 결과 콘크리트가 노후되고,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다는 판단에 따라 해체·수리가 결정됐다. 2001년에 시작한 석탑 해체 작업에만 10년이 걸렸다. 특히 일제가 석탑을 보수할 때 쓴 콘크리트를 떼어 내는 데 3년이 걸렸다. 정을 이용해 일일이 콘크리트를 긁어냈고, 미세하게 남은 콘크리트는 치과에서 사용하는 기계로 걷어 냈다. 해체 당시 나온 콘크리트만 185t에 달한다. 높이 14.5m의 6층 탑으로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석탑은 원래 25m 높이로 추정된다. 18세기 기행문 ‘와유록’에는 미륵사지 석탑이 7층까지 남아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두고 학계에서 탑을 몇 층으로 복원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었다. 김현용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사는 “해체 조사 결과 7층 위로 부재(탑 재료)가 남지 않은 데다 문헌에서도 해당 재료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면서 “탑에 새로운 재료를 올리면 옛 부재가 하중을 견디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무리하게 복원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2013~14년 보수공사 및 보존 처리를 한 이후 실제적인 탑 조립은 2015~17년에 진행했다. 연구소는 석탑의 원형과 역사성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원래의 부재를 최대한 재사용했다. 옛 부재 중 81%를 다시 썼고, 원래 부재와 가장 유사한 황등석(익산에서 나는 화강암) 등을 새 부재로 충당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수리 작업에 대해 석탑 문화재 복원의 모범 사례라고 자평했다. 국제 기준에 따라 원재료와 기법을 최대한 보존하고 부족한 부분은 현대 기술로 보강했기 때문이다. 한편 최악의 복원 사례로 꼽히는 동탑과 마주하게 된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일고 있다. 동탑 복원은 1990년대 초 전문가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정치적 목적에 따라 결정됐다. 2004년 유홍준 당시 문화재청장이 “20세기 한국 문화재 복원의 최악의 사례”라며 강도 높게 비판한 것으로 전해진다. 복원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이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2009년 미륵사지석탑의 해체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1층 내부 심주석 상단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기도 했다. 얇은 금판에 글자를 음각한 금제사리봉영기 덕에 미륵사 창건 배경과 발원자, 사리 봉영 시기(639년) 등이 밝혀졌다. 당시 발견된 사리장엄구 유물 1만여점 중에서 복제한 사리호, 금제사리봉영기, 유리구슬 등은 원래 있었던 장소인 심주석 상단에 넣었다. 연구소는 다음달 말 주변 정비를 시작한다. 준공식은 내년 3월에 열린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일제가 쪼개고 허문 덕수궁 제 모습 찾는다

    일제가 쪼개고 허문 덕수궁 제 모습 찾는다

    일제가 제멋대로 훼손한 덕수궁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다.문화재청은 19일 서울 중구 덕수궁에서 열린 ‘덕수궁 광명문 제자리 찾기’ 기공식을 시작으로 덕수궁 복원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밝혔다. 1897년부터 13년간 대한제국의 궁궐로 사용된 덕수궁은 당시 중명전과 옛 경기여고가 있던 자리까지 넓은 궁역을 차지했다. 1919년 고종이 승하하면서 궁역이 여러 이유로 잘려 나가고 궁궐 전각들이 헐리는 등 제 모습을 잃었다. 1920년대에는 현재의 덕수궁과 미국대사관 사이에 담장 길이 만들어지면서 덕수궁이 둘로 쪼개졌고, 선원전은 헐려 창덕궁으로 옮겨졌다. 돈덕전 역시 덕수궁 공원화 사업으로 헐려 나가고, 함녕전 정문인 광명문도 구석 자리로 강제 이전됐다. 문화재청은 덕수궁 복원 사업 첫 단계로 고종의 침전인 함녕전 남쪽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긴 광명문을 올해 말까지 제자리로 이전할 계획이다. 광명문에 보존된 유물인 창경궁 자격루(국보 제229호)와 신기전은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로, 흥천사명동종(보물 제1460호)은 경복궁 궐내각사지의 임시 처리장으로 옮겨진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데스크 시각] 네 번의 협상, 네 번의 실패/안동환 국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네 번의 협상, 네 번의 실패/안동환 국제부 차장

    1985년 11월 19일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제네바 서쪽 호숫가의 19세기 저택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첫 정상회담을 했다. 당시 레이건이 74세, 그해 소련 최고 권력자가 된 고르바초프는 54세였다.회담 사흘 전 도착한 레이건은 고르바초프와의 첫 만남을 앞두고 피곤해했다. 그는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체르넨코 같은 늙고 보수적인 소련 지도자들의 ‘복화술’ 같은 대화에 넌더리를 냈다. 그럼에도 레이건은 고르바초프의 몸짓과 말투를 흉내 내는 소련 전문가 잭 매틀록 주체코 미 대사와 정상회담 리허설까지 마쳤다. 두 사람은 첫날 회담부터 핵무기 경쟁을 놓고 격돌했다. 고르바초프는 핵군축을 원하면 미국의 전략방위구상(SDI)인 ‘스타워스 계획’부터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이튿날 회담에서는 흥분한 고르바초프가 “소련인을 순박한 민족 취급 말라”고 소리쳤다. 그날 밤 레이건은 “그는 정말 호전적이었고 젠장, 나도 단단히 버텼다”고 일기에 썼다. 마지막 날인 11월 21일 미·소 정상은 ‘핵전쟁 반대’라는 원론적인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제네바에서 단 하나의 핵탄두도 제거되지 않았다. 미국 언론들은 ‘실패한 협상’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레이건과 고르바초프가 처음 만난 제네바 회담은 후대에 냉전 종식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그들은 1년 뒤 1986년 10월 11일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다시 핵무기 감축 담판을 벌였다. 두 정상은 이틀간의 회담에서 ‘양국 핵무기 전량 폐기’라는 상상하기 어려운 역사적 합의 직전까지 갔지만 결렬됐다. 조지 슐츠 당시 미 국무장관은 회고록을 통해 “백악관·국무부·국방부 관리들도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대통령의 꿈(고르바초프도 동의한 꿈)은 완벽한 망상”이라는 비판을 쏟아냈다고 전했다. 4년 뒤 1991년 조지 H W 부시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에 서명하고, 마침내 ‘냉전 종식’을 선언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백악관 출입 기자였던 데이비드 호프먼이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를 인터뷰하고, 방대한 비밀문서들을 토대로 쓴 800쪽 분량의 책 ‘데드 핸드’(Dead Hand)가 복원한 ‘팩트’들이다. 데드 핸드는 소련이 구축한 ‘자동 핵보복 시스템’ 명칭이다. 호프먼은 그들의 협상은 실패했지만 처음으로 산더미 같은 문제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면서 합의의 단초가 됐다고 평했다.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1985년 겨울부터 1988년 봄까지 네 번 만났고 그 어떤 조약에도 서명하지 못했지만 냉전을 끝냈다. 두 사람은 훗날 “성급하지 않았고 속내를 털어놓으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던 만남”이었다고 회고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12일 세기의 회담을 통해 서로를 향한 한 발을 막 내디뎠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웃으며 돌아선 두 사람의 발걸음은 무거울 것이다. “우리한테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었고, 그릇된 편견과 관행이 때로 우리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이겨 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는 김 위원장의 인식은 정확하다. 한반도 냉전의 유물인 비핵화 협상은 이제 시작됐다. 한·미 연합훈련 중단은 남·북·미 간 극도의 상호 불신을 극복하려는 적극적 신뢰 구축 노력이다. ‘공포의 균형’은 전쟁을 억누를 뿐이지만 ‘이익의 균형’은 평화를 만들어 낸다. 하물며 미·소 정상은 서로의 ‘데드 핸드’로 악수했지만 역사적 전환점을 이끌어 냈다. ipsofacto@seoul.co.kr
  • 성남 옛 문중 유물 삽니다

    경기 성남시는 지역에 대대로 살아온 문중의 옛 자료 등을 기록, 보존하기 위해 관련 유물을 수집한다고 18일 밝혔다. 이를 위해 다음달 13일까지 개인·문중 소장 유물을 팔려는 사람에게 매도 신청서를 받는다. 기증 또는 기탁 유물 신청서는 상시 접수한다. 접수처는 판교박물관이다. 수집할 유물은 옛 성남 지역(광주부 포함)의 역사, 문화, 인물의 모습을 보여 주는 고문서, 지도, 생활용품, 민속품, 근현대 생활자료 등이다. 성남 지역에 자리잡은 문중과 관련된 자료가 중점 수집 대상이다. 매도나 기증 신청한 유물은 예비평가회의 서류심사를 거쳐 분야별 전문가 3명 이상으로 구성된 판교박물관의 유물감정평가회의에서 수집 여부와 가격을 결정한다. 시는 2014년부터 지역의 역사와 관련한 유물을 구매 또는 기증·기탁받아 최근까지 496건, 1078점을 수집했다. 이 중에는 조선시대 문신 한효순이 망건을 고정할 때 쓰던 옥관자, 이우의 묘소에서 출토된 지석 등이 포함돼 있다. 성남 지역에서 오래 산 청주 한씨 장헌공파, 덕수 이씨 효정공파가 소장했던 유물이다. 이들 유물은 현재 판교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성남시 옛 유물 매도·기증 신청받아

    경기 성남시는 지역 세거 문중의 옛 자료 등을 역사로 기록 보존하기 위해 유물을 수집한다고 18일 밝혔다. 이를 위해 오는 7월 13일까지 개인·문중 소장 유물을 팔려는 사람에게 매도 신청서를 받는다. 기증 또는 기탁 유물에 관한 신청서는 상시 접수한다. 접수처는 분당구 판교로 191 판교박물관이다. 수집할 유물은 옛 성남지역(광주부 포함)의 역사, 문화, 인물의 모습을 보여주는 고문서, 지도, 생활용품, 민속품, 근현대 생활자료 등이다. 성남지역 세거 문중과 관련된 자료는 중점 수집 대상이다. 매도나 기증 신청한 유물은 예비평가회의 서류심사를 거쳐 분야별 전문가 3명 이상으로 구성된 판교박물관의 유물감정평가회의에서 수집 여부와 가격을 결정한다. 성남시는 2014년부터 지역의 역사와 관련한 유물을 구매, 기증·기탁받아 최근까지 496건, 1078점을 수집했다. 이 중에는 조선시대 문신 한효순이 망건을 고정할 때 쓰던 옥관자, 이우의 묘소에서 출토된 지석 등이 포함돼 있다. 성남지역 세거 문중인 청주 한씨 장헌공파, 덕수 이씨 효정공파가 소장하고 있던 유물로, 후학들의 올바른 역사관 정립에 이바지하려고 각각 기탁, 기증했다. 이들 수집 유물은 현재 판교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유세미의 인생수업] 달달한 스트레스

    [유세미의 인생수업] 달달한 스트레스

    ‘늦은 밤 지칠 대로 지쳐서 집에 들어가면 긴장도 풀리고 피곤하니 당연히 머리도 안 돌아가는 거 아니겠어. 어쩜 그거 하나 실수했다고 사흘을 밥을 안 주냐. 눈도 맞추지 않고, 뚱해서 말도 안 하면 어쩌자는 거야. 대체….’ 무두씨는 오늘도 쓰린 속에 찬물만 들이켜고 출근길에 나섰다. 아내는 묵언수행 중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삼겹살에 소주 회식으로 거나해져 집에 들어섰는데 그녀가 오밤중에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다. 냉장고를 털었는지 냉면 대접에다 온갖 반찬에 고추장을 썩썩 비벼 먹는 모습이 왠지 서글퍼서 기껏 한다는 말이 “푸드 파이터냐, 천천히 좀 먹어”. 뭐 딱히 나쁜 의도가 있었던 것도, 타박을 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생각 없이 한마디하자마자 아내는 ‘말 다했냐’로 시작해 ‘자존심도 없는 줄 아냐’ 울고 불고 난리를 친 끝에 입을 닫아 버렸다. 정 해야 될 말은 문자로 했다. 그것도 꼭 끝에 비비 꼬듯 ‘당신의 푸드 파이터’라고 붙여서. 아내와의 신경전이라 그런가 회사에서도 종일 피곤하다. 상반기 결산 보고 준비가 암담하다. 워낙 매출이 저조한 데다 하반기 역시 슬럼프를 벗어날 동력이 마땅치 않다. 다들 윗사람 눈치 보기 바쁘고 실적에 대한 변명에 급급하다. 집이고 회사고 난타전이다. 급기야 회의 시간에 무두씨가 폭발했다. 평소 뺀질이라는 별명의 김 팀장이 교묘하게 무두씨 팀에 지난번 사고 책임을 떠넘긴 탓이다. 고성이 오가고, 넥타이를 풀어 가며 거품을 물던 팀장들은 씩씩거리며 다시 안 볼 사람들처럼 막말을 해 댔다. 회의를 끝내고도 온갖 동물을 등장시키며 비난을 그치지 않는다. 이럴 때면 회사용 이름이 따로 있어야 할 지경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이름은 정체성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묘미가 있다. ‘서 있는 곰’, ‘쳐다보는 말’ 정도는 평범한 편이다. 덩치 크고 사나운 암소를 힘으로 주저앉혔다고 그 인디언 청년의 이름은 ‘앉은 소’. 붉은 담요를 어깨에 메고 평원을 달려가는 젊은이의 이름이라는 ‘붉은 구름’은 사뭇 시적이다. ‘마을의 현자’처럼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도 해 주고, ‘상처 입은 가슴’ 같은 이름은 왠지 큰 고난이 있었을 듯하다. 이렇듯 의미심장한 이름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무두씨처럼 평생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원래 이름보다 인디언식 이름을 붙여 주고 싶은 사람들이 회사에는 참 많다. ‘저만 잘난 넘’부터 시작해 ‘아무리 해도 못 알아듣는 자’, ‘인간 되기는 틀린 그대’로 쭉 가다 ‘제가 안 그랬어요’까지 한도 끝도 없다. 그렇게 쉽지 않은 직장 생활을 하며 이제 올해도 절반이 지나간다. 아직 뾰족이 해 놓은 것도 없고 하반기 보낼 일이 암담하다. 일이고 사람이고 스트레스는 사방에 차고 넘친다. 그러나 어김없이 푹푹 찌는 날과 서늘한 가을이 시간을 딱 맞추고, 힘든 일과 좋은 일도 번갈아 가며 올 것이다. 그래서 무두씨는 웅크린 가슴을 한 번 쭉 펴 본다. 웬만큼 거슬리는 일은 대충 용서하며 괜찮다고 다독이리라 마음먹는다. 그들이 있어 회사가 있고 내가 있는 셈이다. 그렇게 위로하면 복닥대는 그들 모두가 내겐 어차피 피할 수 없는 달달한 스트레스라 여겨진다. 와이프도 마찬가지. 푸드 파이터보다는 달달한 스트레스라고 바꿔 주면 좀 나으려나. 오늘은 진짜 미안하다고 말하고 아내의 묵언수행을 끝내야겠다. 달달한 스트레스. 왠지 입에 착 감기며 아내가 떠오르는 좋은 이름인데, 일단 말이라도 한번 해 봐?
  • [열린세상] 고대의 전차와 현대의 핵무기/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열린세상] 고대의 전차와 현대의 핵무기/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고고학은 석기, 청동기, 철기 등 사람이 사용하는 도구의 재질로 인류의 역사를 나눈다. 구석기시대 주먹도끼와 석창에서 고조선의 비파형동검, 고구려의 중갑병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은 사실 서로를 죽이고 위협하는 무기였다. 인류의 찬란한 역사를 설명하는 기술의 발달이 결국 사람을 죽이는 무기의 역사라는 역설에도 우리는 당연시 여기며 살고 있다.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의 본능을 삶과 사랑에 대한 욕구인 ‘에로스’와 파괴와 죽음에 대한 욕구인 ‘타나토스’로 나눴다. 인간의 무기는 자기 파괴의 타나토스적 본능이 극도로 발현된 것이다. 파괴본능을 대표하는 무기가 발달하는 만큼 인류는 생존을 위하여 힘을 모으고 필사적으로 멸망을 막아 내면서 살아왔다. 20세기 중반 이후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큰 무기는 핵무기이다. 2차 대전 말기부터 도입된 핵무기는 지난 70여년간 세계의 패권을 차지하려는 강대국들은 물론 그들에 대항하는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개발하였다. 단추 하나만 누르면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는 극단의 무기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각 나라는 자신의 지배를 확고하게 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인류의 역사에서 핵무기와 비슷한 무기가 있었으니, 지금부터 4000년 전 시베리아에서 처음 발명된 전차였다. 초원에서 빠르게 달리는 전차의 속도와 살상력을 당해 낼 전사나 무기는 없었고 곧바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중국, 인도 등의 4대 문명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그리고 전차는 단순한 무기를 벗어나서 지도자나 신의 절대적인 권력과 지혜를 상징하게 되었다. 구약성경 에스겔서에서 천사는 전차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며, 인도 리그베다에서는 하늘에서 불벼락을 쏘며 적을 죽이는 전차가 등장한다. 심지어 북부여와 고구려의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해모수도 오룡거라는 전차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온다. 그런데, 정작 전차가 실제 전쟁에서 활용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조금만 지형이 험하거나 진창을 만나면 무용지물이 되었고 전차를 관리하고 보수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2500년 전을 기점으로 전차는 전장에서 사라졌다. 대신에 전차 하면 떠오르는 영화인 벤허나 글래디에이터처럼 원형경기장의 오락거리로 남았다. 유라시아 초원을 제패한 스키타이계 문화의 유목전사들은 무거운 전차를 버리고 가벼운 활과 화살로 무장한 기마부대로 재편했다.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빠르게 변화하였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지금 세계는 한마음으로 핵무기의 종언을 고대하고 있다. 핵무기를 쓰는 순간 전 세계는 불가역적 파국을 맞이한다. 핵무기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무기이다. 곧 열리는 싱가포르의 역사적인 북ㆍ미 회담에서 주요 의제로 북한의 비핵화가 논의된다. 핵을 포기하고 경제적인 번영을 택한 카자흐스탄처럼 북한 역시 핵 대신에 경제 개발을 택하려고 한다. 게다가 최근 디지털 사회가 도래하면서 국경이 무의미해지고 네트워크로 연결되기 때문에 핵무기 경쟁으로 얻는 이익보다는 경제적인 고립이 주는 불이익이 더 커지고 있다. 물론 북한의 비핵화와 관계없이 여전히 핵무기를 주축으로 하는 강대국들의 군비 경쟁은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 북ㆍ미 회담이 추진되는 동안 러시아는 새로운 대륙간 탄도미사일인 ‘사르마트’와 초음속 핵미사일 ‘킨잘’의 개발을 공식화했다. 북한마저 핵무기 대신에 체제안전과 경제를 택하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핵무기 개발을 지속하는 이유는 서방이나 미국보다 한참 떨어지는 국력으로 그들과 맞서는 주축은 핵무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인류의 문명에서 영원한 것은 없듯이, 인간이 만든 무기도 결국 그 한계가 있다. 만약 북한의 비핵화가 성공한다면 한반도는 핵무기가 끌어온 인류 문명의 가장 어두운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주인공이 될 것이다. 인류 문명의 발자취를 보면 언제나 변화에 앞장서는 자들은 역사를 인도했고 과거를 고집하는 집단은 도태되어 역사에서 사라졌다. 이번 회담으로 한반도가 새롭게 시작되는 인류 역사의 중심에 서는 계기가 되고, 남북 관계의 완화가 수천 년의 문명사에서 잊히지 않을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라이프 온 마스’ ‘무법변호사’ 웰메이드 복고 수사극 통했다!

    ‘라이프 온 마스’ ‘무법변호사’ 웰메이드 복고 수사극 통했다!

    OCN ‘라이프 온 마스’ 첫 방송 후 반응이 심상치 않다. ‘장르물 명가’다운 웰메이드 복고 수사극의 포문을 열며 시청자들을 뜨겁게 달궜다. 참신한 소재와 완성도 높은 작품을 꾸준히 선보이며 ‘장르물의 명가’로 자리매김한 OCN이 야심차게 내놓은 신작 ‘라이프 온 마스’는 첫 방송부터 명불허전이었다. 눈 뗄 수 없는 몰입감과 88년도 감성까지 완벽하게 재현한 디테일 다른 ‘복고 수사극’으로 드라마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흥미로운 소재에 작품성까지 중무장해 시청자들의 기대에 제대로 응답한 것. tvN ‘무법 변호사’가 호평 속에 방송되고 있는 가운데 ‘라이프 온 마스’까지 가세해 토일드라마에 쌍끌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탄탄한 완성도의 장르물을 연달아 선보이며 드라마 역사에 획을 그어온 tvN과 OCN은 차별화된 소재의 파격적인 시도를 끊임없이 이어왔다. OCN ‘보이스’, ‘나쁜 녀석들’, ‘터널’, ‘구해줘’를 비롯해 장르물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tvN ‘시그널’과 ‘비밀의 숲’ 등 흥행력과 작품성 모두 인정받은 웰메이드 장르물을 탄생시켰다. 이들의 유의미한 시도는 마니아들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넘어 매 작품 장르물의 장을 넓혀왔다. 쏟아지는 드라마 홍수 속 tvN과 OCN 장르물에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다. 9일 첫 방송한 ‘라이프 온 마스’는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1988년, 기억을 찾으려는 2018년 형사가 1988년 형사와 만나 벌이는 신나는 복고 수사극이다. 영국 최고의 수사물을 OCN에서 리메이크하는 것만으로도 화제를 모은 ‘라이프 온 마스’는 기대작다운 진가를 발휘하며 이목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여기에 이정효 감독이 원작의 탄탄한 설정 위에 88년의 시대적 분위를 완벽하게 녹여내며 완성도를 높였고, 유쾌하고 화끈한 복고수사에 쫄깃한 미스터리까지 가미해 차별화된 재미를 선사했다. 무엇보다 정경호, 박성웅, 고아성, 오대환, 노종현 등 독보적인 연기 세계를 선보이는 내공 만렙 배우들의 완벽한 복고수사 팀플레이가 눈 뗄 수 없는 60분을 만들어 냈다. 시청률 역시 산뜻한 출발을 알렸다. 1회는 케이블, 위성, IPTV 통합된 유료플랫폼 가구 시청률이 2.1%, 최고 2.6%를, 타깃 시청층인 남녀 2549 시청률 역시 2.1%를 기록했다.(닐슨코리아 제공/유료플랫폼 전국 기준) 또 방송 전후 각종 SNS와 주요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오르내리는 등 화제의 중심에 서며 기대를 끌어올렸다. ‘무법 변호사’ 역시 파격적 소재의 법정물로 ‘시간순삭’ 드라마로 사랑받고 있다. 법 대신 주먹을 쓰던 무법(無法) 변호사가 자신의 인생을 걸고 절대 권력에 맞서 싸우며 진정한 무법(武法) 변호사로 성장해가는 거악소탕 법정 활극 ‘무법 변호사’는 박진감 넘치는 액션과 두 남녀의 복수가 자아내는 통쾌한 카타르시스가 이제껏 본 적 없는 참신한 재미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시청률 역시 고공행진 중이다. 9회는 케이블, 위성, IPTV를 통합한 유료플랫폼 전국 평균 5.6%, 최고 6.5%를 기록, 케이블-종편 포함한 동 시간대 1위를 차지하며 주말 최강자의 위용을 과시했다. (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전국 기준) 하반기 라인업도 웰메이드 장르물이 쏟아진다. 범죄 현장의 골든타임을 사수하는 112 신고센터 대원들의 치열한 기록을 그린 소리 추격 스릴러 OCN ‘보이스2’가 더 강력해진 모습으로 돌아와 ‘라이프 온 마스’ 후속으로 방송된다. 오는 9월에는 OCN 수목 오리지널 블록의 포문을 여는 ‘손 the guest’가 장르물의 퀄리티를 한 단계 높인 연출세계를 펼쳐온 김홍선 감독과 함께 출격을 준비하고 있다. ‘손 the guest’는 한국 사회 곳곳에서 기이한 힘에 의해 벌어지는 범죄에 맞서는 영매와 사제, 형사의 이야기를 그린다. 인간의 일그러진 마음속 어둠에 깃든 악령을 쫓는 한국형 리얼 엑소시즘 드라마로 ‘엑소시즘’과 ‘샤머니즘’을 결합한 새로운 장르물. 벌써부터 기대작으로 손꼽히는 장르물이 시청자를 설레게 한다. 한편 첫 회부터 차원이 다른 웰메이드 수사물의 매력으로 안방을 사로잡은 OCN‘라이프 온 마스’ 2회는 이날(10일) 오후 10시 20분, tvN ‘무법 변호사’ 10회는 오후 9시에 각각 방송된다. 사진=OCN, tvN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경남 창원에서 가야시대 최대규모 고분군 확인, 국보급 토기 등 유물 2500여점도 출토

    경남 창원에서 가야시대 최대규모 고분군 확인, 국보급 토기 등 유물 2500여점도 출토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지역에서 가야시대 최대 고분군(1000여기)이 확인됐다. 특히 고분군에서 선박을 형상화한 배 모양의 국보급 토기를 비롯해 2500여점에 이르는 각종 가야유물도 출토됐다.경남도는 8일 마산합포구 현동 국도건설공사 현장 가야시대 유적지 발굴조사에서 덧널무덤(木槨墓)을 중심으로 한 가야시대(3~5세기) 최대규모 고분군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또 가야고분에서 고대 항해용 선박을 형상화 한 배 모양 토기(舟形土器)가 2500여점의 유물과 함께 출토돼 대외교류를 기반으로 성장한 가야의 해양문화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동 가야시대 유적·유물은 (재)삼한문화재연구원이 부산지방국토관리청 의뢰를 받아 거제~창원을 연결하는 국도건설현장에서 지난해 6월 부터 문화재 발굴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확인됐다. 발굴조사는 오는 11월까지 진행된다. 삼한문화재연구원은 현동 발굴조사 현장에서 가야시대 고분을 비롯해 청동기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각종 유구(옛 사람들이 남긴 삶의 흔적인 무덤, 집자리 등의 시설) 1000여기가 확인·조사됐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640여기는 나무로 곽을 짠 덧널무덤 구조이며 무덤안에서 아라가야 계통의 통모양 굽다리 접시와 불꽃무늬토기 등 다양한 토기와 망치, 덩이쇠(鐵鋌), 둥근고리큰칼, 비늘갑옷, 투구 등 가야유물 2500여점이 출토됐다. 고분군 중에서 최고 지배층 무덤으로 판단되는 387호 덧널무덤(길이 5.6m, 너비 2m)에서 굽다리접시와 그릇받침, 철장과 함께 배 모양 토기가 출토됐다. 배 모양 토기는 가야시대 항해용 돛단배(帆船)를 형상화 한 모양으로 길이 29.2cm, 높이 18.3cm 크기다. 선체 아랫부분에 굽다리(臺脚)를 붙여 세울 수 있도록 만들어진 배 모양 토기는 세부 기능들이 정교하게 표현돼 있고 날렵한 조형미를 갖춰 가야시대 해양 선박의 웅장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된다.삼한문화재연구원은 배 모양 토기가 가야고분에서 발견된 것은 처음으로 고대 가야인들이 철을 매개로 중국, 낙랑, 왜와 활발히 교역한 항해용 선박의 실제 모습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아 보물급 유물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삼한문화재연구원은 현동 국도건설공사 현장에서 이번에 발견된 유적은 1989년과 2009년 국도공사 때 발견된 유적과 동일한 성격으로, 당시 발굴된 고분까지 합치면 고분군 규모가 840여기 이상으로 국내 최대 규모 가야고분군이라고 밝혔다.삼한문화재연구원측은 현동 고분군은 규모와 출토유물로 볼 때 남해안을 근거지로 대외 교류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했던 아라가야의 지방 세력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경남도는 “현동 가야고분은 지금까지 조사결과 가야사 규명에 학술적, 자료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 유적으로, 현장조사와 자료분석, 정리 등이 순조롭게 진행되려면 충분한 기간과 예산이 필요하며 앞으로 발굴조사에서도 중요한 유물이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삼한문화재연구원은 이날 오후 3시 발굴조사현장에서 발굴조사 성과 등을 알리는 설명회를 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생각나눔] 안 꾸밀 권리 ‘탈코르셋’… 성평등 운동 기폭제 될까

    [생각나눔] 안 꾸밀 권리 ‘탈코르셋’… 성평등 운동 기폭제 될까

    최근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유튜브 등에서 20~30대 여성을 중심으로 ‘탈코르셋 인증’이 유행하고 있다. 긴 머리를 짧게 자르거나 화장품을 버리는 사진을 올리는 식이다. 여성에 대한 고정화된 사회적 시선에서 탈피하겠다는 시도다. 성평등 운동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탈코르셋 운동이란 보정 속옷을 뜻하는 코르셋을 벗어버린다는 의미로, 화장·브래지어 착용 등 여성에게 당연시되던 외모 관리를 줄이는 실천을 뜻한다.최근 화장품을 부순 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 김혜원(21)씨는 7일 “탈코르셋을 인증하니 어떤 사회적 족쇄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고 나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됐다”면서 “내 삶과 시간을 더 즐기게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전했다. 대학생 조소현(21)씨는 “하루에 화장하는 시간을 20분으로 계산하면 1년이면 4일이 넘는 시간”이라면서 “꾸밀 권리뿐만 아니라 꾸미지 않을 권리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닉네임 ‘한국여자’로 활동하는 유튜버 차지원(24)씨의 ‘한국여자의 하루 탈코르셋’ 영상은 24만뷰를 초과했다. 이 영상에서 차씨는 1시간 이상 걸리던 꾸밈 시간을 절반으로 줄인 하루 일과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 준다. 차씨는 “다른 사람의 시선, 남성적 시선에서만 벗어나도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많이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화장법을 알려 주는 영상을 올리던 뷰티 유튜버 ‘우뇌’도 “더이상 메이크업 영상을 올리지 않겠다”며 ‘탈코르셋’을 선언했다. 탈코르셋을 결심하게 되는 순간도 다양하다. 대학생 조씨는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여기저기서 “화장을 하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원치 않는 화장 강요에 분노를 느낀 조씨는 일을 그만두고 말았다. 대학생 고예리(20)씨는 교회에서 만난 여중생들이 자신의 화장에 대해 ‘품평회’를 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탈코르셋 운동을 시작했다. 화장이 여성만의 전유물로 인식되며 어린 여중생들에게까지 대물림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탈코르셋 운동은 남성 중심적 사회 속 차별을 거부하는 여성들의 저항으로 인식된다.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는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의 취지와도 맥이 닿아 있다. 김은실 이화여대 교수는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시장 권력에 대한 젊은이들의 저항이자 남녀 주체의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이라면서 “여자다워야 한다는 억압에 대해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욕구의 표현으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우려의 시선도 만만찮다.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기에는 현실의 벽이 여전히 높다는 지적이 적지 않은 것이다. 안현진 여성환경연대 활동가는 “탈코르셋 운동을 하는 데 있어서 여전히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면서 “직제·복장 규정 등 노동 환경에 대한 문제 제기와 관련 제도의 변화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화장 거부와 짧은 머리 등 단순한 ‘여성의 남성화’만이 탈코르셋의 본질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김종갑 건국대 몸문화연구소장은 “한 가지 여성적 특징만을 놓고 ‘여성적’이라 말하는 것은 과거지향적인 발상”이라면서 “개인 표현의 자유를 가부장제의 한 방향으로 해석하거나 생각의 선택지를 좁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일본식 가옥 점령 막은 북촌 한옥… ‘서울의 징표’ 되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일본식 가옥 점령 막은 북촌 한옥… ‘서울의 징표’ 되다

    서울신문이 서울특별시,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4회 서울사방 북촌 편이 6월의 첫 주말인 지난 2일 북촌 일대에서 진행됐다. 북촌의 기와집 처마 아래로 흐르는 초여름 바람이 시원한 하루였다. 이날 오전 9시 30분쯤 예약자들이 몰려오면서 집결 장소인 안국역 2번 출구 앞이 갑자기 북적였다. 신문 기사를 보고 예약 없이 무작정 나오거나, 친구 따라 온 몇 명도 무사히 투어에 합류했다. 다만 준비한 오디오 가이드 시스템이 동나 진행 요원들이 양보해야 했다. 정순희 해설사는 일행을 ‘북촌 신세계’로 이끌었다.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는 백악산 아랫동네다. 저잣거리인 종로 운종가의 배후도시이기도 하다. 이성계가 고려의 수도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할 때 왕족과 공신, 고위관료들에게 나눠준 알짜배기 땅이다. 왕조의 심장부 북촌은 개화의 발상지다. 근대의 활시위를 당겼다. 1884년 갑신정변 이후 가장 뜨거운 변혁의 물결이 휩쓴 역사의 무대였다. 개화의 사랑방 역할을 한 박규수의 집이 지금의 재동 헌법재판소 자리에 있었다. 이곳에서 박규수, 유대치, 오경석으로부터 개화 세례를 받은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 홍영식, 서광범, 서재필의 집도 반경 200m 안에 모여 있었다. 북촌의 사대부들로부터 발화한 근대 개화사상은 기득권 세력이 추진한 위로부터의 개혁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실패했다. 북촌의 붉은 기운은 1919년 3·1운동으로 되살아났다. 계동 중앙고보(중앙고등학교) 숙직실에서 김성수·송진우·최남선·최린 등에 의해 싹텄다. 경운동 보성사(조계사 앞)에서 인쇄된 독립선언서 2만장이 이종일의 집(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전국에 배포됐다. 천도교 대표 손병희의 가회동 집과 불교계 대표 한용운의 계동 집도 지척이었다. 계동 보현빌딩(현대 사옥 맞은편) 자리는 해방 이후 여운형을 중심으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본부가 꾸려진 곳이다. 계동에 살면서 12번의 테러를 당한 여운형은 명륜동으로 거처를 옮겼으나 결국 혜화동 로터리에서 암살당했다. 백송이 있는 헌법재판소는 박규수와 홍영식의 집터이고, 압류당한 홍영식 집터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제중원)이 들어섰다. 1993년 헌재가 들어서기 전까지 한성고등여학교,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경기고등여학교, 경기여고, 창덕여고가 맥을 이었다. 근대 교육과 근대 의료의 모태였다.북촌 한옥은 ‘오래된 도시’ 서울의 징표이자 존재 가치다. 북촌의 영과 욕이라는 우리 근현대사의 씨줄과 날줄이 남긴 산물이다. 기농 정세권(1888~1965)이라는 선각자가 남긴 한옥은 현대 서울에서 가장 돋보이는 문화유산이자 미래유산이다. 한옥을 조선시대의 유물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각종 문화재로 지정된 20여채를 제외한 모든 한옥은 1920~40년대 지어진 도시형 개량 한옥이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양반가 한옥은 1870년에 지어진 안국동 윤보선가다. 가회동 백인제 가옥도 1913년 준공됐다. 현존하는 서울의 기와집 1만 8000채 중 6000채 이상은 기농이 남긴 선물이다.북촌 한옥은 조선총독부를 위시한 일제 통치기구와 수탈기구, 일본식 가옥의 북촌 진입을 차단한 민간 차원의 방어선이었다. 가회동·삼청동·재동·계동·안국동·사간동·소격동·수송동·견지동·관철동·관훈동·익선동·봉익동·권농동·통의동·체부동·사직동·신문로·명륜동·창신동·이화동·신설동·왕십리·행당동·휘경동·충정로에 남아 있는 한옥 대부분이 기농의 작품이다. 몰락한 왕족과 벌열(閥閱)들의 고대광실을 사들여 필지를 잘게 쪼갠 뒤 중산층용 개량 한옥을 지어 공급했다. 요즘 각광받는 익선동 166번지도 종친 이해승의 누동궁 한 채를 68채의 한옥으로 재개발한 것이다. 국내 최초의 부동산 디벨로퍼인 기농은 “일본인들이 종로에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되뇌었다. 그의 한옥 개발과 북촌 선점이 없었더라면 아마 지금 서울은 적산가옥으로 뒤덮였을 것이다. 기와집이 없는 서울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경남 고성 출신인 기농은 북촌 한옥을 남긴 데 그치지 않고 신간회를 후원하고, 조선물산장려운동을 실질적으로 이끌었으며, 조선어학회에 회관과 토지를 기증해 조선어사전 편찬을 도왔다. 춘원 이광수는 “조선물산장려를 몸소 실행할뿐더러…조선식 가옥의 개량을 위해 항상 연구하여 이익보다도 이 점에 더 힘을 쓰는 희한한 사람…나는 정씨의 인격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평가했다. 만해 한용운도 “정세권씨가 백난 중에서 회관을 완성하고자 고군분투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라고 조선물산장려회 기관지에 치하하는 글을 보냈다.한옥은 남았지만 그는 잊혀졌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재산을 강탈당하고, 세 번이나 옥고를 치른 그에게 주어진 것은 달랑 건국훈장 애족장 하나뿐이었다. 서울을 서울답게 만들고, 서울의 미래를 남긴 선각자 정세권을 기리는 날은 없다. 정세권 문화상도 없고, 정세권 동상도 없다. 한편 이날 투어가 끝난 뒤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참가자들은 정세권이라는 인물을 내세운 참신한 기획이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진행과 코스, 해설 내용에도 대만족을 표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이원석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종로(종묘에서 사직까지) ●일시 : 6월 9일(토) 오전 10시~12시 ●집결장소 : 종로3가역 11번 출구 종묘광장공원 앞 ●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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