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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히 백인전용 열차에 타?” 유죄 받았던 흑인 남성…126년 만에 사면

    “감히 백인전용 열차에 타?” 유죄 받았던 흑인 남성…126년 만에 사면

    흑인 차별이 심했던 1890년대에 백인 전용 열차를 탔다가 유최판결을 받았던 흑인 남성이 126년 만에 사면됐다. 지난 5일 AP 통신, BBC 등에 따르면, 구두 수선공이었던 호머 플레시라는 흑인 남성은 1892년 뉴올리언스에서 백인전용 열차에 올라탔다. 당시 유색인종 칸으로 옮겨 타라는 철도 안내원의 요구를 거부한 플레시는 ‘인종 격리 차량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플레시는 이 법이 흑백 차별을 금지한 수정헌법 14조에 반하는 위헌이라고 주장하면서 지방판사 퍼거슨(Ferguson)과 대립했다. 결국 플레시는 1896년 미국 대법원이 대중교통이나 호텔, 학교에서의 흑백 분리를 용인하는 ‘플레시 대 퍼거슨 판결’을 내리면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126년 전의 ‘플레시 대 퍼거슨 판결’은 9명의 판사 중 1명이 불참했고, 7명이 흑백 분리에 찬성해 ‘7 대 1’ 판결로도 불린다.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냈던 존 마샬 할란 판사는 “이 판결은 1857년 이 법정에서 내려졌던 ‘드레드 스콧 사건’에 대한 판결만큼이나 패악적이라는 사실이 훗날 밝혀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1987년 당시 법원은 노예 해방을 주장하는 흑인 드레드 스콧에 대해 “노예 또는 노예의 후손인 흑인은 결코 미국 시민이 될 수 없고, 단지 소유물에 불과하다”고 판결한 바 있다.오랜 시간이 지난 지난해 말, 미국 루이지애나주 사면위원회가 플레시의 사면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존 벨 에드워드 주지사는 5일 플레시 사면을 결정했다. 이날 기념식은 플레시가 체포된 장소 인근에서 진행됐다. 유일하게 플레시의 편이었던 할란 판사의 후손인 첼리스트 케이트 딜링햄은 미국 흑인들의 국가로 통하는 ‘리프트 에브리 보이스 앤 싱’(Lift Every Voice and Sing)을 연주했다. 에드워드 주지사는 “플레시의 유죄 판결은 절대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면서 “부도덕하고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플레시에 대한 잘못된 판결이 결코 훼손할 수 없었던 ‘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 일조할 수 있어 너무 기쁘다”고 전했다. 플레시의 후손인 케이트 플레시는 “우리의 조상과 앞으로 태어날 자손들에게 정말 영광인 날이다”라고 감격했다.
  • 오래된 도시 한켠, 고래잡이 시절 추억을 걷다

    오래된 도시 한켠, 고래잡이 시절 추억을 걷다

    냉동창고가 문화 공간으로 변신장생포문화창고서 ‘오션뷰’ 감상고래박물관·고래문화마을 인접 ‘울산큰애기 이야기길’ 3개 구간사람이 사라진 ‘똑딱길’에서 시작‘추억길’ ‘읍성길’까지 2시간 코스 태화강 따라 자박자박 걷는 재미저녁엔 십리대숲 은하수길 ‘반짝’어느 도시나 옛 도심은 있다. 울산도 마찬가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거대 도시가 됐지만, 도시 한켠엔 뜻밖에 오래된 풍경들이 남아 있다. 문화와 예술의 새옷을 걸쳐 입은 채로다. 도시를 ‘광산’에 비유한다면 이런 공간들은 주민의 정서를 붙잡아 주는 ‘카나리아’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지난해 코로나19 탓에 해돋이와 해넘이 여행을 취소한 이라면 더욱 제격이다. ‘고래의 고향’ 장생포항에서 서정적인 해넘이를, 명선도에서 장엄한 해돋이를 만나면 되니 말이다.‘장생포문화창고’부터 찾는다. 버려지다시피 했던 옛 냉동창고가 문화와 예술이 넘실대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문화창고 누리집은 스스로를 ‘엄혹한 세상의 카나리아로 살고 싶은 예술가들과, 그들이 만들어 낸 것들을 기꺼이 향유하기를 원하는 시민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광부들의 안전을 지켜 줬다는 ‘광산의 카나리아’에 비유한 표현일 텐데, 살벌한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이 따스한 정서를 잃지 않도록 든든한 받침목 노릇을 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장생포문화창고는 6층이다. 전망대를 겸한 ‘루프 톱’까지 포함하면 7층까지 활용되고 있다. 이름에서 보듯 문화창고가 들어선 곳은 장생포항이다. 예부터 고래잡이 전진기지로 명성이 ‘떠르르’했던 곳이다. 문화창고는 포경업을 비롯한 각종 어업이 활황일 때 고래 등의 생선을 보관하던 냉동창고였다. 주변을 압도하는 건물의 높이에서 당시 이 일대 어업 규모가 얼마나 대단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이후 고래잡이가 금지되고 어업이 쇠퇴하면서 쓸모를 잃은 건물을 지난해 6월 문화 시설로 새단장해 개관했다.실질적인 전시공간은 2층부터다. 5층의 문화예술인 공유사무실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은 모두 전시, 공연장이다. 6층 북카페에선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며 쉴 수 있다. 이 건물의 최대 미덕은 모든 층이 ‘전망 맛집’이라는 거다. 항구 쪽 외벽은 모두 통창이다. 장생포항에 정박한 수많은 배들과 울산 공단이 만들어 내는 특유의 오션뷰가 창문 너머로 펼쳐진다. 특히 울산공단의 저물녘 풍경은 ‘백만불’짜리라 할 만하다. 화려하면서 음울한, 어딘가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주는 저물녘 풍경이 압권이다.●곱고 상냥한 중구여성 ‘울산큰애기’ 주변에 볼만한 곳이 많다. 고래박물관은 국내 포경 관련 자료와 유물들을 수집해 전시하는 공간이다. 맞은편의 고래생태체험관에선 다양한 바다생물과 만날 수 있다. 건물 초입에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영화 ‘인디애나 존스’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미국의 동물학자이자 탐험가다. 1914년 당시 ‘악마 고래’라 불리던 귀신고래를 ‘한국계 귀신고래’(Korean Gray Whale)라고 처음 이름 붙였다고 한다.고래문화마을은 포경산업이 절정에 달했던 1960, 70년대의 장생포 풍경을 실물 그대로 복원한 곳이다. 이 마을 뒷산에 고래조각공원이 있다. 혹등고래, 귀신고래 등의 실물 조형물을 전시하고 있다. 울산대교를 배경 삼아 ‘인증샷’ 찍기 딱 좋다. 울산 시내에선 중구 성남동과 옥교동 일대에 원도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울산은 1970, 80년대 한국의 ‘산업 수도’였다. 당대의 흔적 위에 트렌디한 요즘 문화가 덧씌워져 있다.이 일대를 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울산큰애기 이야기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울산큰애기’는 중구를 상징하는 캐릭터다. 유난히 피부가 곱고 상냥한 성품의 중구 여성을 일컫는다. 가수 김상희가 1969년 발표한 노래 ‘울산 큰애기’가 모티브가 됐다. 울산큰애기 이야기길은 3개 구간으로 나뉜다. 성남동 문화의거리~중앙동 주민센터 2.5㎞ 구간이 ‘울산큰애기길’, 똑딱길~청춘고복수길~시계탑 1.6㎞ 구간이 ‘추억길’, 울산읍성 일대 800m 구간이 ‘읍성길’이다. 전 구간을 다 돌아본다고 해도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편의상 이름으로 구분했을 뿐, 길은 어디로든 통한다. 외지인들은 관광안내소 역할을 하는 ‘울산큰애기하우스’를 기점으로 삼는 게 좋을 듯하다. 여기서 작은 길을 건너면 ‘똑딱길’이 시작된다. ‘똑딱길’은 시계소리를 차음해 지은 이름이다. 격동의 산업화 과정에서 성공과 좌절을 맞본 이들이 과거를 돌아보고 서로를 토닥토닥 위로하자는 의미를 담았다.●성남동엔 그시절 낭만 꽃피운 다방 ‘똑딱길’은 입구가 좁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현지 문화관광해설사에 따르면 실제 1990년대 이후 이 골목에서 사람 그림자가 사라졌다고 한다. 더럽고 어두워서 간 큰 사람도 선뜻 들어가질 않았다는 것이다. 울산 사람들은 이 길에 ‘시간의 골목’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경제개발의 그늘에서 길러 낸 자식들이 먼바다를 돌아 회귀할 날을 기다린다는 바람을 담은 표현이다.화분, 벽화 등으로 장식된 ‘똑딱길’이 끝나면 곧바로 ‘청춘고복수길’이 이어진다. 가요 ‘타향살이’로 사랑받은 울산 출신 가수 고복수(1911~72)를 테마로 조성한 길이다. 150m 거리에 다양한 포토존과 볼거리를 조성했다. 예전엔 성남동 일대에 다방이 많았다고 한다. 문화 시설이 전무했던 그 시절, 다방은 전시장이자 문학과 낭만이 꽃 피던 공간이었다. 당시 이 거리를 활보하던 모던 걸, 모던 보이들의 아침 인사가 ‘모닝커피 했습니까?’였다나. 커피 잔을 내밀며 ‘모닝커피 했습니까?’라며 묻는 남성의 조형물이 이 거리에 세워진 이유다. 바로 옆의 시계탑은 울산 원도심의 랜드마크다. 일제강점기 성남역사 자리에 조성됐다. 매시 정각에 모형기차가 시계탑 돔 위를 도는 퍼포먼스를 펼친다.이웃한 복산동엔 서덕출공원이 있다. 아동문학가 서덕출을 기리는 근린공원이다. 울산에서 가장 많은 야외 조각작품을 전시한 곳이라는 홍보 문구와 달리, 작품의 수가 많지 않아 아쉽다. 사방이 아파트 공사장이어서 오가기도 쉽지 않다.도심을 어슬렁대다 시원한 풍경이 보고 싶어지면 태화강으로 나가면 된다. ‘젊음의 거리’에서 성남나들문을 나서면 대한민국 제2호 국가정원인 태화강이다. 강변을 따라 자박자박 걷는 재미가 각별하다. 홍수를 막기 위해 주민들이 10리에 걸쳐 조성했다는 십리대숲이 핵심 볼거리다. 저녁엔 대숲 안에 ‘은하수길’이 펼쳐진다. 십리대숲 내 600m 구간에 조명을 달아 별들이 반짝이는 은하수처럼 꾸몄다. 해거름엔 겨울 철새인 까마귀들이 현란한 군무를 선보인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이번 여정에선 만날 수 없었다.
  • 직접 잠수해 ‘바닷속 문화재’ 찾아내…수중발굴 경험 연구인력 전국 9명뿐

    직접 잠수해 ‘바닷속 문화재’ 찾아내…수중발굴 경험 연구인력 전국 9명뿐

    낚시꾼들이 팽팽하게 걸린 손맛에서 희열을 느끼듯 양순석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뿌연 물속에서 손끝에 전해지는 유물을 찾는 손맛을 찾아 바다를 뒤진다. 그렇게 바닷속에서 잠자고 있던 조선 중기 개인용 화기였던 소소승자총통(小小勝字銃筒)과 고려청자를 비롯한 유물 수만 점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3일 인사혁신처 도움을 받아 20년째 수중문화재 발굴 한 길을 걷는 공무원을 만났다.-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국내에서 유일한 수중문화재 발굴 기관이다. 전남 목포시는 사실 연구소를 두기에 최적지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부산, 전남 여수에서 개경이나 한양으로 갈 때는 모두 목포 앞바다를 지났다. 중국을 오가는 무역선도 목포 주변을 많이 지났다. 1975년 전남 신안군에서 이른바 ‘신안선’을 발견한 게 우리나라 수중발굴의 첫 사례였다. 당시는 문화재관리국 시절이라 문화재는 모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고 선체와 목재 보존을 위해 만든 목포보존처리장이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뿌리가 됐다. 신안선 보존 처리가 1990년대 완료되면서 해양유물전시관으로 정식으로 새 출발한 게 1994년이었다. 전시관 소속 학예연구실로 있다가 기관 및 연구 기능을 확대하면서 2009년에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수중발굴과도 그때 생겼다.” -수중문화재발굴은 언제부터 하고 있나. “목포대 환경공학과에서 보존과학을 전공했다. 석사를 마치고 우연한 계기로 1994년 국립해양유물전시관 학예연구실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그 뒤에 잠수도 배우고 물리탐사장비를 맡았다. 수중발굴에 참여한 건 2002년부터였다. 고고학이나 역사학 관련 공부는 일하면서 독학으로 했다고 할 수 있다. 발굴부터 보고서 작성까지 모든 단계가 우리 업무에 속한다.”-바닷속에서 유물을 찾아내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수중문화재 발굴은 장비부터 시작해 성격 자체가 육상과는 완전히 다르다. 수중에선 해양물리탐사장비를 사용해 해저지형을 본다거나 해저지층을 단면으로 자르면서 탐사를 한다. 그다음에 수중문화재를 육안으로 확인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장비가 있더라도 문화재인지 아닌지 확인하려면 잠수해서 육안으로 확인해야 한다. 연구소 직원들은 모두 잠수사 자격증이 있다.” -유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기분이 남다를 것 같다. “2007~2008년 충남 태안에서 도자기 운반선 발굴할 때는 주꾸미가 건져 올린 도자기가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5월에 갔는데 도자기가 많이 흩어져 있었다. 긴급발굴해야 한다고 보고를 했다. 바로 발굴허가를 받아 한 달가량 발굴을 했다. 말 그대로 물 반 고기 반이었다. 고려청자 2만 5000점에 묻혀 있던 선박까지 발굴했다. 제주 신창리 앞바다에선 13세기 남송 도자기 운반선 유물을 조사했는데 도자기 2000여점을 찾아냈다. 특히 납으로 봉한 함 안에 들어 있는 나무 인장, 그리고 인장에 묻은 인주까지 확인할 수 있었던 건 특히 보람 있었다.” -언젠가 거북선 유물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진도 울돌목에서 남쪽으로 4~5㎞ 떨어진 곳에 있는 벽파진에서 발굴작업을 하고 있는데 현재 목표에 비해 20%도 채 하지 못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유물이 골고루 나오고 있다. 아직까진 판옥선이나 거북선 유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찾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유물은 어떤 것인가. “지금도 2012년에 소소승자총통 3점을 최초로 발견했을 때 느꼈던 희열을 잊을 수 없다. 바닷속에선 앞이 거의 안 보이는데 제토를 하다가 손에 막대 같은 게 잡혔다. 쇠 종류인 것 같다는 느낌만 있었다. 물 위로 갖고 올라와서 보니 총통 종류였다. 총통에는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4년 전인 1588년에 전라좌수영에서 제작했다는 명문도 나왔다.” -출장이 엄청나게 많을 것 같다. “발굴뿐 아니라 신고가 들어오는 현장을 조사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1년에 200일 넘게 출장을 한 적도 있다. 과거엔 출장비는 적고 일은 해야 하니까 아예 현지파견근무 형식으로 근무하곤 했다. 출장수요에 출장예산을 맞추는 게 아니라 출장비 예산에 출장수요를 맞추는 식이었다. 지금은 출장비 예산이 늘어서 다행이다. 나는 행정업무도 해야 하니까 출장은 줄었지만 그래도 1년에 두세 달은 출장이라고 보면 된다. 다른 직원들은 지난해에도 발굴현장에서 150일가량 출장을 했다.” -앞으로 과제가 있다면. “태안 해역과 울돌목 등은 발굴해야 할 수중문화재가 얼마나 많이 갯벌에 묻혀 있을지 짐작조차 안 된다. 현재까지 발굴한 난파선이 14척인데 거북선이나 판옥선이 나올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할 일이 엄청나게 많은데 일할 사람이 부족한 게 아쉽다. 연구인력 충원과 교육프로그램 확보가 특히 시급하다. 우리나라에 수중발굴 경험과 능력 있는 연구인력이 나를 포함해서 연구사 6명, 전문임기직 3명으로 전국에 9명밖에 없다. 그나마 수중문화재 발굴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가르칠 교육 프로그램이 전무하다 보니 직원들이 새로 들어오면 선배들이 하나씩 알려 주는 식이다. 10명도 안 되는 인력으로 1년에 9건가량 신고 들어오는 걸 조사하고 정기적인 발굴도 하고 있다.”-그런 와중에 연구보고서에 논문까지 쓰려면 부담이 클 듯한데. “책임운영기관이다 보니 학예연구관들은 의무적으로 2년에 한 편은 논문을 써야 한다. 현장에서 작업하다 보면 연구논문 쓸 시간이 부족하다. 잠수 자체도 힘든데 유물 발굴해서 분류하고 정리하는 것까지 하면 자정을 넘기기 일쑤다. 유물 발굴과 정리, 보고서 작성으로 1년이 다 간다. 민간 잠수사 하루 인건비가 최소 30만원은 되는데 우리는 위험수당으로 한 달에 5만원 받는 게 고작이다. 우스갯소리로 공무원 퇴직하고 민간잠수사로 아르바이트하는 게 급여가 몇 배는 더 될 것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보람과 자부심으로 일하긴 하지만 솔직히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 
  • 생존욕구 큰 X세대가 뛴다… “은퇴 후 30년 버티려 내 삶에 재투자”

    생존욕구 큰 X세대가 뛴다… “은퇴 후 30년 버티려 내 삶에 재투자”

    치킨집, 편의점, 커피숍 창업으로 이어졌던 중년의 은퇴 공식이 바뀌고 있다. 기존 기성세대와 전혀 다른 새로운 중년인 X세대가 40~50대로 진입하면서다. X세대는 인류 역사상 어떤 세대보다 젊고, 덜 권위적이며, 소비력이 좋은 노년층이 될 예정이다. 어릴 때부터 ‘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자랐고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특성도 발견된다. 이들이 경제적 불안과 공포 속에서도 인생의 후반을 ‘은퇴’가 아닌 또 다른 ‘시작’으로 보는 이유다. “평생을 오피스워커로 살아왔으니 남은 후반부는 다른 칼라(collar)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구독자 3만 4700여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50대 몸짱 TV’의 운영자 오세욱(52)씨는 최근 직장을 그만두고 40~50대 맞춤 운동법을 소개하는 전업 유튜버가 됐다. 아내는 그의 도전을 내켜 하지 않았지만 안정적인 ‘수익’ 대신 결국 그의 ‘꿈’을 지지하기로 했다. 서울대 공대를 나와 삼성전자 연구원, 미래전략실을 거쳐 도이치은행, 다이와증권 애널리스트, 외식업체 재무 담당 임원을 지낸 오씨는 인생 후반을 운동을 통해 느꼈던 삶의 활력과 만족감을 타인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오씨는 20~30대를 위한 운동법은 많지만 정작 중장년층을 위한 콘텐츠가 적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그는 2년 전부터 스마트폰 카메라로 중년층을 위한 운동 팁들을 찍어 올리기 시작했다. 기세를 몰아 지난해는 중장년층을 겨냥한 운동법을 책으로 출간했다. 최근에는 트레이너 자격증도 땄다. 오씨는 “예전이었으면 할아버지 소리를 들을 나이인 50이 돼도 아직 살날이 살아온 만큼 남아 있다”면서 “건강만 있으면 (X세대는) 지금도 청년이고 지금부터 새로운 인생”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오씨처럼 모든 X세대가 자신만만한 노후를 계획하고 있는 건 아니다. 이경민 마인드루트리더십랩 대표는 “40대는 자녀 양육 시기가 길어지면서 70세까지는 현업에서 일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는 세대지만 조직에서는 큰 기대를 받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조직이든 조직 밖이든 오랫동안 생존해야 한다는 욕구가 굉장히 크다”고 설명했다. 천편일률적인 기성세대의 은퇴법과 모습은 달라도 생존에 대한 욕구 자체는 그 어느 세대보다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이들의 생존 욕구는 소비로도 나타난다. 신한카드빅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온라인 교육 플랫폼 ‘클래스101’ 등 5개 업종에서 20대 여성 비중은 2년간 16.1% 감소했지만 40대 여성은 7.9% 늘었다. 도서 소비도 활발하다. 교보문고 집계에 따르면 2010년 20%를 차지했던 40대 독자 비중은 X세대가 40대에 대부분 진입한 2019년 34%까지 올랐다. 특히 신기술을 배우려는 40대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지난해 산업계를 강타한 ‘메타버스’ 관련 도서 연령대별 구매 비중은 X세대가 43.3%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윗세대야 30년 열심히 일해서 10년 노후 준비면 됐겠지만 지금은 은퇴 후에도 30년을 더 살아야 하잖아요. 살아남으려면 ‘존버’(최대한 버틴다는 뜻의 은어)하면서 공부해야죠.” 유통업계 대기업에서 팀장급으로 일하는 임주완(43·가명)씨는 퇴직 후 강단에 서는 것이 꿈이다. 임씨는 내년부터 모아 둔 적금을 깨서 박사 과정을 시작한다. 임씨는 향후 남은 5년을 “내 인생 마지막 베팅의 시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50대 초중반이 대표로 내려오고 80년대생 임원이 치고 올라오고 있다”면서 “임원을 할 수 있으리란 기대도 크게 없고 이대로 회사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사실 모르겠다. (직장에서는) 길어 봐야 최대 5년이지 않을까 싶다”고 털어놨다. 임씨는 2년 전부터 좋아하던 골프 라운딩 횟수도 줄이고 주말마다 마케팅 특강을 나가면서 강의 경력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그는 “대학 때 IMF를 겪어서 그런지 특히 경제적으로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늘 존재하는 것 같다”면서 “석사 학위를 따면서 그랜저 한 대 값(약 3500만원)이 깨졌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박사 과정 역시)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X세대는 젊은이보다 중년과 노인이 주류인 세상에서 노인이 되는 첫 세대다. 책 ‘영포티, X세대가 돌아온다’의 저자 이선미씨는“미래는 더이상 젊은이의 전유물이 아닌 주류가 될 중노년 세대와 젊은이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됐다”면서 “거대한 인구수를 자랑하는 X세대가 활력 있는 새로운 인생 2막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 [열린세상] 외로움이란 질병/박산호 번역가

    [열린세상] 외로움이란 질병/박산호 번역가

    어쩌다 보니 개와 고양이를 같이 키우게 됐다. 원래부터 이럴 계획은 아니었는데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재작년 겨울 초입에 온몸이 광기 어린 에너지로 넘치는 깜장 시바 강아지 한 마리를 새 식구로 맞이했다. 오랫동안 같이 살아온 고양이 송이에게 괜찮겠냐고 물어보진 않았다. 당연히 안 괜찮다고, 싫다고 할 게 뻔했기 때문에. 그렇게 아슬아슬한 동거가 시작됐다. 성격이 까칠한 송이는 예상대로 느닷없이 자신의 보금자리에 쳐들어온 강아지 해피를 마땅치 않아 했다. 하나 처음에는 어른으로서 관용을 베풀어 내 주먹보다 작은 해피가 울타리 속에서 쌔근쌔근 잠을 자고 있을 때 소리 없이 다가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냄새를 맡아 보곤 슬쩍 뒤로 물러나는 정도로만 접촉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해피가 울타리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 짧은 평화도 막을 내렸다. 새로 온 집의 모든 곳, 모든 것에 촉촉한 검정 코를 갖다 대고 냄새 맡고, 핥고, 씹고, 물어뜯어야 직성이 풀리는 강아지 해피와 지난 8년간 우아하게 자신의 왕국을 호령한 갈색 고양이 송이의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어느 날 송이가 발톱을 세운 채 날리는 펀치에 맞아 귀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해피를 보고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송이는 하루아침에 안방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런 결정을 송이는 당연히 끔찍하게 여겼다. 이해한다. 어느 날 들어온 시커먼 털 뭉치 한 마리 때문에 자신의 세계가 방 한 칸으로 쪼그라들었으니. 그러나 송이에게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건 외로움이었다. 송이는 식구들이 거실에서 혹은 주방에서 다 같이 있을 때면 별안간 처절한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처음에는 어디 아픈가, 아니면 다쳤나 싶어서 놀라 뛰어갔는데. 그때마다 송이는 울음을 그치고 할짝할짝 사료를 먹거나, 내 옆에 다가와 종아리에 작은 얼굴을 대고 부비부비하거나, 흰색과 갈색이 섞인 길고 아름다운 꼬리로 내 종아리를 휘감았다. 그때 알았다. 송이가 외롭다는 걸. 송이의 그런 마음을 짐작했을 때 미안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외로움이란 감정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노리나 허츠가 쓴 ‘고립의 시대’에는 코로나 때문에 방문객들이 올 수 없는 도쿄의 스미다 아쿠아리움에서 뱀장어들이 사육사를 보고도 모래 속으로 파고드는 이상 행동을 보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봉쇄 기간이 길어지면서 뱀장어들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사육사들은 시민들에게 아쿠아리움으로 화상 전화를 걸어 뱀장어들에게 손을 흔들고 인사를 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게 효과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뱀장어들도 외로움을 탄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증명된 셈이다.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에게 외로움은 온몸에 서서히 퍼지는 독과 같다는 점은 분명하다. 고양이도 외롭고, 뱀장어도 외롭다. 식구들이 송이를 달래 주려고 안방에 들어가 있으면 강아지 해피는 두 발로 서서 안방 울타리 문을 앞발로 탁탁 치며 성질을 낸다. 나도 그 안에 같이 있고 싶다고. 나만 소외되고 싶지 않고, 좋아하는 이들과 같이 눈을 맞추고 놀고 싶은 마음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무서운 기세로 퍼지는 오미크론 바이러스 때문에 그러한 최소한의 만남조차 허락되지 않고 있다. 외로워하는 송이 옆에 가만히 있어 주고, 안방으로 들어오겠다는 해피를 쓰다듬어 주고, 모래 속으로 고개를 파묻는 뱀장어들에게 화상 전화를 걸어 주는 것처럼 외로워하는 사람들에게 혼자가 아니라고 전할 방법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 신통방통 호랑이… 귀신막는 보디가드, 귀여움 뿜뿜 친구

    신통방통 호랑이… 귀신막는 보디가드, 귀여움 뿜뿜 친구

    국립고궁박물관 ‘인검’ 상설 전시청화랑 ‘호랑이의 세상 밖 외출’展2022년 임인년을 맞아 미술·문화재계에서는 호랑이의 강인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전시를 다수 선보인다. 악귀를 쫓으려고 제작한 조선시대 민화와 옛 유물부터 현대 작가들이 재해석한 호랑이 그림까지 다양한 작품이 관객을 기다린다. 국립고궁박물관은 1월의 큐레이터 추천 왕실 유물로 호랑이 기운이 깃든 칼인 ‘인검’(寅劒)을 선정하고, 상설전시장에서 공개한다고 3일 밝혔다. 인검은 십이지 중 세 번째 동물인 호랑이를 뜻하는 ‘인’ 자가 들어가는 때에 제작한 의례용 칼이다. 양기를 뜻하는 동시에 의(義)를 상징해 나쁜 기운을 막고, 한편으로는 임금과 신하의 도리를 나타낸다. 또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오래된 철을 사용하고, 특별히 선정된 장인만 제작할 수 있는 등 엄격하게 관리됐다. 인검은 인년, 인월, 인일, 인시, 네 시기에 맞춰 제작한 ‘사인검’과 세 시기를 맞춘 ‘삼인검’으로 나뉜다. 박물관이 소장한 인검 22점 중 전시실에 나온 사인검은 한쪽에 한자와 산스크리트어 주문이 새겨졌고, 반대쪽에는 북두칠성과 별자리 28개가 표시돼 있다. 하늘의 힘을 빌려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박물관은 유튜브 계정을 통해 인검 관련 영상을 공개하고, 소장품에 있는 호랑이에 착안한 그림 달력 이미지 파일도 홈페이지에서 선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오는 5월 1일까지 상설전시관 2층 서화실에서 호랑이 그림 18점을 공개한다. 호랑이와 용을 함께 화폭에 담은 ‘용호도’, 호랑이와 까치를 묘사한 ‘호작도’ 등이다. 19세기 용호도를 보면 호랑이의 성난 얼굴에서 긴장감이 느껴지고, 구름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용은 신비감을 전한다. 솔숲 사이를 지나는 호랑이 11마리를 그린 ‘월하송림호족도’, 붉은 옷을 입은 산신과 눈이 빨간 호랑이를 나란히 배치한 ‘산신도’도 감상할 수 있다.현대적인 감성으로 호랑이의 다양한 모습을 이끌어 낸 전시도 눈길을 끈다. 서울 청담동 청화랑은 ‘호랑이의 세상 밖 외출’전을 열고 안윤모 작가의 그림을 오는 10일까지 소개한다. ‘부엉이 작가’로 유명한 작가답게 “여유와 편안함을 담아 그렸다”는 호랑이들은 무서움보다는 귀여운 모습을 가득 뽐낸다. 그림 속 호랑이는 까치와 소나무 아래에서 함께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신다. 보름달이 있는 들판에서 세레나데를 연주하며, 두 마리 호랑이가 나뭇가지에 앉아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서울 대치동 슈페리어갤러리 제1전시관에서 열리는 ‘호!호랑!호랑이!’전에서 손우정, 정해진 작가는 한층 색다른 그림을 선보인다. 손 작가의 작품 속 호랑이는 어린 시절 이별한 반려묘를 상징한다. 강인한 모습으로 환생한 호랑이는 꿈을 현실로 연결해 주는 매개로 기능하며 동화적 이미지를 보여 준다. 정 작가는 호랑이 자체보다 최근 디자인 분야에서 큰 인기를 끄는 ‘애니멀 스킨’에 주목하고, 이를 대표하는 호피 무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오는 12일까지.
  • 강제 결혼 금지한 탈레반…가난한 부모는 ‘생후 20일 된 딸’ 팔아넘겼다

    강제 결혼 금지한 탈레반…가난한 부모는 ‘생후 20일 된 딸’ 팔아넘겼다

    아프가니스탄의 경제난이 심각해지면서 부모가 어린 딸을 돈 받고 결혼시키는 ‘매매혼’이 성행하고 있다. 1일 톨로뉴스와 AP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중순 탈레반이 재집권한 뒤 아프간의 경제난이 심각해지면서 매매혼이 급증했다.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는 지난해 11월 성명에서 “지참금을 받고 생후 20일 된 여아까지 매매혼 대상으로 삼았다는 보고를 받았다”면서 “극도로 끔찍한 경제난이 아프간 소녀들을 아주 어린 나이에 결혼하도록 내몰고 있다”고 우려했다. 아프간의 여아 강제 결혼에 대한 국제아동단체와 인권단체 등의 비판이 잇따르자 탈레반 최고 지도자 아쿤드자다는 지난달 3일 “여성은 소유물이 아니다”라며 매매혼 등 강제 결혼 금지령을 내렸다. 하지만, 당장 돈이 없어 굶어 죽을 상황에 처한 부모가 딸을 팔아넘기는 사례들은 끊이지 않고 있다.아프간 여성 아지즈 굴은 AP통신과 인터뷰에서 “남편이 내게 알리지 않고 열 살 된 딸 칸디를 돈을 받고 결혼시키기로 했다”며 “딸을 구하지 못하면 차라리 죽겠다는 결심으로 덤볐다”고 밝혔다. 굴 본인도 15살에 남편에게 시집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남편은 “모두 굶을 상황이라 나머지를 구하기 위해 한 명을 희생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다행히 굴은 오빠와 마을 원로들의 도움을 받아, 남편이 받은 10만 아프가니(약 115만원)를 돌려주는 조건으로 딸의 결혼을 무효로 만들었다. 하지만 비난이 두려운 남편이 집을 나갔고, 굴은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어디선가 돈을 구해야하는 상황에 처했다. 굴은 “정말 절망스럽다. 내가 갚을 돈을 구하지 못하고, 딸을 보내야 한다면 생각도 하기 싫다”면서 “첫째 아이는 열두 살이고, 여섯 번째 막내는 이제 생후 2개월이라서 이 아이들은 또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호소했다.지난해 12월에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55세 남성에게 팔려간 9살 아프가니스탄 소녀가 미국 비영리단체에 의해 구조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한 부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9살 된 딸 파르와나 말릭을 55세 남성에게 팔았다. 당시 CNN은 “남성이 말릭을 데려가려하자, 아이는 발을 흙에 파묻고 끌려가지 않으려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말릭의 아버지는 이 모습을 문 앞에서 지켜보고 있었다”고 보도해 전 세계에서 비난과 안타까움이 쏟아졌다. 이후 미국 비영리단체인 ‘투 영 투 웨드’(Too Young to Wed)는 말릭의 아버지를 찾아가 설득했고, 결국 아버지는 딸을 다시 가족의 품으로 데리고 왔다. 하지만 말릭을 팔면서 받았던 돈은 빚이 되었기 때문에 이를 갚아야 하는 부담은 여전하다. ‘투 영 투 웨드’ 측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말릭의 구출은 그저 일시적인 해결책일 뿐”이라면서 “우리는 소녀들이 조혼으로 팔려가는 일을 막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도 “이런 상황은 재앙과 다름없다”며 “빈곤이 증가하면서 많은 어린 소녀가 어쩔 수 없이 결혼을 선택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했다.
  • 도서관의 ‘기억戰’ … 지킨다 vs 태운다

    도서관의 ‘기억戰’ … 지킨다 vs 태운다

    분서갱유(焚書坑儒). 중국 진나라 시황 때 정치 비평을 금하고 사상을 통제하기 위해 서적을 불태우고 학자들을 생매장했던 사건을 일컫는다.그런데 이 같은 비극적인 사건은 불과 30년 전인 1992년 보스니아 내전에서도 일어났다. 그해 8월 25일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가·대학 도서관에 포탄이 쏟아졌다. 세르비아 민병대는 도서관의 불을 끄고 책을 구하려는 이들의 노력을 철저하게 차단했다. 세르비아군은 보스니아 전역에 걸쳐 도서관과 기록관 수십 곳을 파괴했고, 200만권의 인쇄본이 사라졌다. 그들은 왜 전쟁과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이 시설들을 공격하고 불태웠을까. 세계 최고의 도서관 중 하나로 꼽히는 영국 옥스퍼드대 보들리 도서관의 관장으로 재직 중인 리처드 오벤든은 저서 ‘책을 불태우다’에서 “도서관은 한 사회 지식의 집적체라는 상징성 때문에 숱하게 공격당했다”고 말한다. 이어 “도서관과 기록물을 파괴한다는 것은 특정 문화 말소를 통해 사회적, 정치적 정체성을 훼손하기 때문에 문화적 폭력에 가깝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는 고대 알렉산드리아부터 현대의 디지털 아카이브까지 지식 보존과 파괴의 역사를 들여다보며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책과 도서관이 갖는 의미를 살펴본다. 도서관의 역사는 기원전 7세기경 존재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슈르바니팔의 도서관에서 시작됐다. 이후 지식을 수집하고 조직화하는 도서관과 기록관의 사명은 역사를 통해 이어졌다.중세시대에 들어서 도서관에 대한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됐다. 저자가 일하고 있는 보들리 도서관이 대표적인 사례다. 종교혁명 시기에 수많은 수도원 도서관과 대학 도서관이 신교도들의 공격으로 파괴되고 책과 함께 불태워졌는데, 당시 옥스포드대 도서관도 장서 96.4%가 사라진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폐허를 딛고 토머스 보들리(1545~1613)는 사재를 털어 도서관 재건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오늘날 도서관 체계의 초석을 마련했다. 근대 이후의 도서관 공격 사례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한 사회·국가가 다른 사회·국가를 공격하면서 지식·문화의 집적체인 도서관을 파괴한 사건들이다. 예를 들어 1814년 영국은 미국을 침공하면서 미국 의회도서관을 불태웠고,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벨기에의 루뱅대 도서관을 두 번이나 공격했다. 두 번째는 저작자가 직접 혹은 지인을 통해 자신의 저작물을 없애려 한 사건들이다. 시인 바이런의 사망 이후 바이런의 아내와 친구는 고인의 명예를 지킨다는 명분하에 회고록 원고를 불 속에 내던졌고, 시인 필립 라킨의 일기도 사후에 그의 당부를 충실히 수행한 지인의 손에 의해 사라졌다. 반면 카프카는 자기 친구에게 자신의 작품들을 불태워 달라고 부탁했지만, 친구가 유언과 반대로 작품을 정리해 발표하면서 사후에 큰 명성을 얻었다. 세 번째는 다른 사회의 도서관 등에 보관돼 있던 기록물을 빼돌리는 행위다. 제국주의 시기에는 식민지에 소장된 숱한 유물과 작품들을 약탈당했는데, 이 기록 문서들은 열강의 기록물로 간주되곤 했다. 이들 기록물은 식민지배의 만행을 숨기기 위해 파기되기도 했고, 억압적 정부에 맞서 다른 나라로 ‘피신’되기도 했다. 저자는 수많은 기록과 자료가 디지털 및 온라인상에서 생성되는 디지털 사회에서 ‘사회의 기억’을 담당하는 책과 도서관이 존립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말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우리의 기억을 올리고 있지만, 거대 사기업의 소유이자 사업 수단인 SNS 플랫폼들이 돈벌이가 되지 않는 공공의 목적을 위해 자발적으로 데이터 보존 작업을 함께하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는 것이다. 저자는 후대에 올바른 지식을 알리고 학자들이 연구하기 위해서라도 디지털·온라인 데이터의 보존과 관리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도서관과 기록관이 필요한 이유는 교육 지원, 지식과 사상의 다양성, 개방 사회의 원칙, 진실과 거짓의 판단, 문화적·역사적 정체성 확보 등에 있다고 밝힌다. 저자는 지식의 확산을 한 양초가 다른 양초에서 불을 얻어 어둠을 밝히는 일에 비유한 미국 3대 대통령이자 교육자·철학자였던 토머스 제퍼슨의 유명한 편지를 소개하면서 미래 세대를 위해 인류가 축적해 온 지식을 보존하는 것의 가치와 중요성을 전한다.
  • 악귀 쫓는 호랑이 민화로 집권층 풍자하기도

    악귀 쫓는 호랑이 민화로 집권층 풍자하기도

    한반도에서 오랫동안 서식한 호랑이는 유물과 작품 속에서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청동기시대 울산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서는 고래, 사슴, 멧돼지 등과 함께 호랑이가 새겨졌다. 사냥물을 안전하게, 많이 확보하길 바라는 주술 신앙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이후 5세기 고구려의 무용총 수렵도, 사신도 중 백호도를 비롯해 각종 민화와 그림, 장식품, 석상 등에서 호랑이는 빈번히 나타난다.조선 후기 서민층에서 유행한 민화에서도 호랑이는 주된 주제 중 하나였다. 악귀를 쫓고 경사로운 일을 맞이하는 ‘벽사진경’(邪進慶)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선조들은 까치 호랑이 그림(작호도), 호랑이와 용 그림(용호문배도) 등을 생활 공간에 걸어 복을 빌었다. 가장 한국적인 그림으로 알려진 까치 호랑이는 김홍도가 원·명나라에서 비롯한 호랑이 그림을 재해석하며 유행한 것이다.특히 여기엔 당시 시대 상황을 풍자하는 의미도 들어 있다. 원래 악귀를 쫓는 역할이었던 호랑이가 점차 양반이나 권력을 가진 관리로 상징되고, 까치는 서민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쓰이며 까치 호랑이 그림은 신분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했다.선조들은 왕릉이나 묘를 수호하고 나쁜 기운이 미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돌로 호랑이를 조각한 호석(虎石)을 세우기도 했다. 주로 무덤의 밖을 향하거나 순찰하는 형태로 배치하는데, 발에 꼬리가 감긴 채 잔뜩 힘이 들어가 수호신으로서 긴장을 늦추지 않은 모습이 특징이다. 백호가 그려진 깃발은 사직과 종묘의 제사 등에서 왕과 왕태자, 왕비가 행차할 때 사용됐다.
  • 조선시대 대표 공용 해시계 ‘앙부일구’ 보물 된다

    조선시대 대표 공용 해시계 ‘앙부일구’ 보물 된다

    조선시대 대표 공용 해시계였던 ‘앙부일구’(仰釜日晷) 3점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이 된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미국 경매에서 구매해 들여온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을 비롯해 국립경주박물관, 성신여대박물관에 있는 앙부일구를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앙부일구’는 솥을 뒤집어 놓은 듯한 모양의 당시 천문사상이 담긴 과학문화재로 ‘앙부일영’(仰釜日影)으로도 불린다. 세종 16년(1434) 장영실, 이천, 이순지 등이 왕명에 따라 제작해 종로에 있던 다리인 혜정교와 종묘 앞에 설치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모든 시설에 시각보다 큰 것이 없는데, 밤에는 경루(更漏)가 있으나 낮에는 알기 어렵다. 구리로 부어서 그릇을 만들었으니 모양이 가마솥과 같다. 길 옆에 둔 것은 보는 사람이 모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백성들이 일할 때를 알게 될 것이다”라는 직제학 김돈의 설명이 있다.조선시대 전기 앙부일구는 현존하지 않는다고 전하며,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된 유물 3점도 18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기존에 보물로 지정된 국립고궁박물관의 다른 앙부일구 2점은 17∼1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앙부일구 3점의 겉면에 새겨진 글씨 ‘북극고 37도 39분 15초’(北極高 三十七度 三十九分 一十五秒)의 위도 값이 1713년 이후 사용됐다는 사실이 문헌 ‘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에 남아 있다. 오목한 몸체를 다리 네 개가 받치고 있으며, 다리에는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용이 표현됐다. 안쪽에는 북극으로 향한 그림자침인 영침(影針)이 달렸다. 15분 간격의 시각선과 계절과 절기를 알려주는 눈금도 있다. 세 유물은 재질이 금속이며, 형태와 제작 기법이 유사하다. 문화재청은 예고 기간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보물 지정 여부를 확정한다.
  • 美남부연합군 동상 자리 타임캡슐 열어보니

    美남부연합군 동상 자리 타임캡슐 열어보니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모뉴먼트 거리에 있던 로버트 E 리 남부연합군 장군의 동상이 철거된 자리에서 1887년에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타임캡슐이 지난 27일(현지시간) 발견됐다. ①버지니아대 유물 전문가가 무게 28㎏짜리 구리 상자 타임캡슐을 28일 개봉해 내부에 있는 책을 꺼내고 있다. ②타임캡슐 속 유물 중 하나인 팸플릿에 ‘이민자의 친구’라는 제목이 써 있다. ③또 다른 유물인 리본에는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를 옹호한 리 장군을 닮은 사람이 그려져 있다. 리치먼드 AP 연합뉴스
  • 英 강바닥서 나온 200년 전 아프리카 주술 인형…정령 깃든 ‘응키시 응콘디’

    英 강바닥서 나온 200년 전 아프리카 주술 인형…정령 깃든 ‘응키시 응콘디’

    영국 템스강 바닥에서 200년전 아프리카 조각상이 나왔다. 28일(현지시간) 데일리메일은 런던 그리니치 템스강 개펄에서 19세기 아프리카 주술 조각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개펄에서 유물을 찾는 전문 ‘머드라커’(Mudlarker) 니콜라 화이트(48)는 지난 7월 템스강 남쪽에서 괴상한 나무 조각 하나를 주웠다. 정체 모를 짐승 형상의 조각 뒤에 못이 여러 개 박혀 있는 것이 어쩐지 으스스했다. 화이트는 “뭔가 제물 같아 보였다”고 밝혔다 조각을 가져다 전문가 조언을 구한 그는 조각이 아프리카 콩고강 유역 부족이 만든 희귀 ‘응키시 응콘디’(Nkisi Nkondi)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응키시 응콘디는 19세기 무렵 현재의 콩고민주공화국 일대에서 토착종교 주술인들이 만든 우상이다. ‘응키시’는 초자연적인 힘 또는 영혼을, ‘응콘디’는 사냥꾼을 의미한다. 액운을 막는 ‘영혼 사냥꾼’, ‘액받이 인형’으로 만들어졌다. 현지 아프리카예술전문사 윌 홉스는 “응키시 응콘디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중재자로 여겨졌다. 해결사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조각 뒤에 박힌 못에 대해서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무 소재 조각에 망치로 못을 두들겨 박았다. 그럼 영혼 사냥꾼이 문제 해결을 도와줄 거라고 믿었다”고 밝혔다.세인스버리 비주얼 아트센터 큐레이터 떼오 바이스는 “주술 인형은 ‘응강가’(Nganga)로 알려진 점술가들이 만들었다. 응강가는 당시 사회에서 심판자 역할을 했다”라고 부연했다. 주술사가 일종의 부적으로 만든 것이 바로 응키시 응콘디라고 전했다. 그는 “아프리카 사람들은 응키시 응콘디의 힘이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고 믿었다. 누군가를 보호하거나, 반대로 누군가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주술 인형은 강력한 사회적, 경제적 기능을 했다”고 덧붙였다.응키시 응콘디 가치는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억 원에 달한다. 아프리카 문화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은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가 소장했던 조각은 과거 1700억 원에 팔린 바 있다. 아프리카 주술 인형이 왜 영국 강바닥에서 발견됐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과거 유럽 식민지배 영향으로 영국 수집가가 반입했을 거란 추측과, 액운을 떨치고자 누군가가 일부러 버렸을 거란 추측 등이 있다. 이에 대해 떼오 바이스 큐레이터는 “어떤 경로로 영국에 흘러들었는지 알 수 없으나, 국내 박물관 또는 콩고민주공화국 수도 킨샤사 국립박물관에 직접 반환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기증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기행] 어느 이집트학자의 행운/이집트 고고학자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기행] 어느 이집트학자의 행운/이집트 고고학자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로 유명한 사카라의 북부에는 세라피움이라는 이름의 유적이 있다. 이곳은 아피스신의 화신으로 여겨지던 성스러운 황소들의 집단 무덤이다. 이 황소들은 인근 멤피스에 있었던 프타 대신전에서 신으로 숭배됐는데, 이 신성한 소들에 대한 숭배는 오늘날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처럼 한 마리의 소를 특정해 살아 있는 신으로 숭배하다가 그 소가 죽으면 다른 소를 선택해 다시 신으로 섬기는 방식으로 1000년 이상 이어졌다. 이곳에서 발견된 다량의 비문에는 소들이 사망한 시기가 왕의 재위 연도와 함께 쓰여 있기 때문에 이집트 역사의 편년 체계를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사용됐다. 세라피움의 발견 과정에는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학자가 한 명 등장한다. 바로 프랑스의 이집트학자 오귀스트 마리에트다. 마리에트는 1821년 프랑스의 불로뉴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주 불로뉴박물관을 찾았다. 이집트 미라에 매료됐고 그것이 이집트학을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놀랍게도 독학으로 고대 이집트어와 콥트어를 공부했다. 고대 이집트어는 1822년에 샹폴리옹에 의해 해독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가 청소년이 됐을 무렵에는 이 고대어를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은 됐을 것이다. 그렇게 성인이 된 마리에트는 많은 양의 이집트 유물을 소장하고 있던 루브르박물관에서 일하게 됐다.1850년 박물관은 콥트어 파피루스 수집이라는 임무를 부여해 마리에트를 이집트로 출장을 보냈다. 콥트 장로회가 필사본을 건네주기를 기다리며 카이로에서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던 마리에트는 석회암으로 만든 스핑크스가 카이로의 골동품 시장에서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도굴품이 분명한 이 유물들의 출처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는데, 곧 스핑크스들이 사카라에 있는 고대 멤피스의 공동묘지에서 출토됐다는 정보를 파악하고 홀연히 카이로를 떠나 사카라로 향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마리에트는 사카라에 도착해서도 특별하게 어떤 작업에 착수할 수는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정처 없이 사카라 전역을 돌아다니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그는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 바로 북서쪽에서 땅 위로 튀어나와 있던 특이한 모양의 물체를 발견하게 됐다. 마리에트는 곧 그것이 암시장에서 보았던 스핑크스와 같은 것임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순간 소싯적에 열심히 읽었던 기원전 1세기의 지리학자 스트라본이 사카라 지역을 묘사했던 글귀를 떠올렸다. “세라피움은 모래벌판에 자리잡아 바람이 높은 모래언덕을 쌓아 올린다. 그 모래언덕 밑에서 우리는 스핑크스를 보았다. 모래에 반쯤 묻혀 있는 것도 있고, 머리까지 완전히 묻혀 버린 것도 있었다.” 마리에트는 직감적으로 이곳이 아피스의 현현(顯現)으로 여겨지며 신성한 황소를 매장하던 세라피움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즉각 인근 마을에서 수십 명의 인부를 고용해 이 지역에서 발굴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마리에트는 루브르박물관이 파피루스 구입을 위해 지급했던 비용을 자의적으로 써 버렸는데, 일종의 공금횡령이었지만, 이 발굴이 워낙 놀라운 학문적 성과였던 까닭에 다행스럽게도 박물관 측에서는 마리에트의 자의적 행동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세라피움 발굴은 마리에트에게 이집트학자로서 최고의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그는 명성을 얻는 것만으로 학자 인생을 마무리하지는 않았다. 마리에트는 당대의 서양 학자들과는 달리 이집트의 유물들이 이집트에서 보존돼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고, 그 주장에 걸맞게 1858년에는 카이로 교외에 박물관을 하나 설립했다. 이 박물관이 바로 1902년에는 카이로 중심가인 타흐리르광장으로 옮겨 온 이집트의 국립중앙박물관 격인 이집트박물관이다. 마리에트는 세상을 떠난 뒤에도 이 박물관과 영원히 함께하게 됐다. 박물관의 안뜰에 묻힌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곳에서는 마리에트의 무덤을 만날 수 있다.
  • 북한산 인수봉 고려 유적 발견…석축·기와·도자기 파편 쏟아져

    북한산 인수봉 고려 유적 발견…석축·기와·도자기 파편 쏟아져

    국립공원공단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는 북한산 인수봉 근처에서 지표조사를 통해 고려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 흔적을 확인하고 다양한 유물을 찾아냈다고 26일 밝혔다. 백두문화재연구원이 지난해 석불입상이 발견된 인수봉 인근 50만㎡ 면적을 조사한 결과 백운대피소(옛 백운산장) 근처와 인수봉 동쪽 암벽 아래쪽에서 오래된 건물 흔적인 상단 길이 6m·높이 2m, 하단 길이 9m·높이 1.5m의 석축(石築·사진)이 발견됐다. 또 대피소 주변에서는 연꽃무늬가 있는 원형 주좌(柱座·기둥 받침)와 건물 받침돌, 탑과 불상 등의 기단석으로 짐작되는 석재, 잘 다듬은 장대석, 기와·도자기 조각이 나왔다. 인수봉 동쪽 하단부 골짜기에서도 길이 5m·높이 3.6m의 또 다른 석축이 발견됐다. 조사단은 “인수봉 근처에 고려시대 불교 관련 시설이 여러 곳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조선시대에는 빈번한 자연 재해와 북한산성 축조에 따라 폐사됐다가 근대 이후 종교 활동이 재개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려 도읍지인 개성과 가깝고 교통이 편리한 북한산 서쪽과 남쪽뿐 아니라 북쪽과 동쪽에도 사찰 흔적이 드러났다”면서 “북한산 전체가 고려시대 불교 성지이자 수행처였던 듯하다”고 주장했다.  
  • “문화재 돌봄 가장 잘하고 있는 광역시도는 전남도”

    전국 광역시·도에서 문화재를 가장 잘 돌보고 있는 지역은 전남도로 확인됐다. 26일 전남도에 따르면 문화재청의 2021년 문화재 돌봄사업 평가에서 돌봄사업 위탁기관인 (사)문화재예방관리센터가 광역시·도 중 7연속 최우수단체로 선정됐다. 문화재청과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평가단은 사업 운영의 적정성, 추진지침 준수, 돌봄활동 수행평가도 등 지표를 기준으로 심사해 ‘탁월’, ‘매우우수’, ‘우수’, ‘보통’으로 평가했다. 전남도 문화재 돌봄사업은 모든 지표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가장 높은 ‘탁월’ 등급을 받았다. 문화재 돌봄사업은 2009년 전남도가 문화재청에 사업을 제안해 2013년부터 전국으로 확대 실시한 사업이다. 문화재 관찰을 위한 모니터링, 문화재 주변 관람환경 개선을 위한 일상관리, 가벼운 파손 발생 시 신속 복구하는 경미수리를 통한 예방 보존관리시스템 구축 등을 통해 문화재 원형 훼손을 사전에 방지한다. 특히 사후 발생할 보수·복원에 따른 예산 절감 등 효과가 있다. 그동안 전남도는 문화유산의 체계적 관리와 원형 보존을 위해 ‘문화재 돌봄사업 운용 매뉴얼’을 제작해 돌봄사업 운용 방법을 표준화했다. 또 전국 최초로 ‘문화재 수리이력제’를 실시, 문화재 관리 현황 기록 누적을 통해 관리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 돌봄 사업 육성·발전에 기여했다. 이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전남도 문화재 돌봄사업은 2014년부터 평가 대상 제외년도인 2020년을 제외하고 올해까지 8년 동안 7차례 최우수단체로 선정돼 문화재 관리 선진지역이란 이미지를 구축했다. 도는 12월 현재 문화재 873개소를 관리하고 있다. 모니터링 6262건, 일상관리 1만 8729건, 경미수리 2041건의 활동을 펼쳤다. 내년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문화재와 관리 필요성이 있는 대상지를 신규 발굴해 문화재 관리에 사각지대가 없도록 문화유산 관리 대상지를 확대할 방침이다. 유영광 도 문화자원과장은 “전남에는 유서 깊고 보존가치가 높은 유물이 많아 문화유산에 대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며 “지속적인 돌봄사업 확대를 통해 문화재 보존 및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 남아공 “만델라 수감됐던 감방 열쇠 경매 중단해달라”

    남아공 “만델라 수감됐던 감방 열쇠 경매 중단해달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가 지난 2013년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18년 동안 수감돼 있던 로벤섬 교도소의 감방 열쇠를 경매하는 일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생전에 27년을 교도소에서 지냈는데 그 중 18년을 로벤섬 교도소에서 지냈다. 케이프타운과 테이블마운틴이 빤히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다. 로벤이란 이름은 한때 이 섬에 많았던 물개를 뜻하는 네덜란드 단어에서 따붙여졌다. 18년이란 세월을 건넌 감방은 너무 초라하고 비좁다. 침대 하나 없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자연스럽게 크리스토 브랜드란 이름의 간수와 아주 친하게 지내게 됐다. 그런데 그가 다음달 28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건시 중개소에서 만델라가 수감됐던 감방 열쇠를 경매하겠다고 밝히고 나선 것이다. 건시 측은 경매 수익금으로 만델라가 매장된 묘지 주변에 추모 정원과 박물관을 세우는 데 쓸 계획이라고 밝히긴 했는데 남아공 정부로선 소중한 만델라 유품을 멋대로 처분하는 것은 안된다고 밝힌 것이다. 나티 음테스와 남아공 문화부 장관은 이번 경매를 앞두고 정부와 상의도 하지 않았다며 “그 열쇠는 남아공 국민들의 것이다. 어느 누구의 개인 소유물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고 영국 BBC가 성탄 전야에 전했다. 다음달 경매에는 다른 품목들도 나오는데 그 중에서도 만델라가 직접 그린 루벤섬 등대 그림과 그가 즐겨 탔던 헬스용 자전거, 사용했던 테니스 라켓 등이 눈길을 끈다고 방송은 전했다. 만델라는 남아공이 엄격한 흑백 분리(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서 발을 빼기 시작하던 1990년에 석방돼 1994년 다인종이 자유롭게 처음 참여한 대통령선거 결과 이 나라의 첫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단임을 실천하고 1999년 물러났다.
  • 30달러에 산 낡은 스케치…‘수천만 달러’ 가치의 르네상스 명화였다

    30달러에 산 낡은 스케치…‘수천만 달러’ 가치의 르네상스 명화였다

    한 미국 남성이 30달러(약 3만 6천원)에 구매한 낡은 스케치가 르네상스 시대 명화로 인정받았다. 지난 2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익명의 남성은 지난 2016년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의 한 이스테이트 세일(사망자의 소유물 처분 판매)에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그려진 작은 그림 한 점을 30달러에 구매했다. 남성은 이 그림을 집에 보관해놓고 이따금 지인들에게 보여주었는데, 희귀서적 전문 서점을 운영하던 친구 브레이너드 필립슨은 이 그림을 눈여겨봤다. 해당 작품 하단 중앙에 적힌 ‘A.D’라는 표식이 16세기 독일 최고의 미술가로 알려진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의 이니셜이라고 추정한 것이다. 지난 2019년 선물을 사러 필립슨의 가게에 들렀다가 이 그림의 존재를 알게 된 보스턴의 미술품 중개상 클리퍼드 쇼러는 소유주 집에 달려가 그림을 직접 본 뒤 “걸작이거나 아니면 내가 지금까지 본 최고의 위작일 것”이라고 전했다. 쇼러는 소유주에게 10만 달러(약 1억 2천만원)의 선금을 지불하고 그림을 입수한 뒤 뒤러의 진품여부 확인에 들어갔다. 진품이라면 나중에 그림을 팔아 수익금을 나눠 갖는다는 계약이지만, 만약 뒤러의 작품이 아니라면 선금을 모두 날리는 도박에 가까운 승부수였다. 쇼러의 의뢰로 작품을 감정한 대영박물관 자문위원 제인 매카우슬랜드는 처음에 가짜라고 판단했다가 뒤러의 그림에서만 보이는 세 갈래 투명무늬를 확인한 뒤 진품 가능성에 손을 들어줬다. 뒤러 전문가인 오스트리아 빈 알베르티나박물관의 수석 큐레이터 크리스토프 메츠거를 비롯해 쇼러가 만난 여러 전문가 중 한 명만 빼고 모두 뒤러의 진품이 맞다고 판단했다. 메츠거는 이 그림이 1503년에 그렸을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뒤러는 이 작품처럼 성모 마리아가 풀이 우거진 벤치에 앉아있는 비슷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전문가들은 30달러짜리 이 그림이 수천만 달러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보고 있다. 추정가가 5천만 달러(약 594억원)라는 보도도 나왔다. 그러나 빈대학 예술역사연구소의 선임연구원 프리츠 코레니는 이 그림이 뒤러가 아닌 그의 제자 한스 발둥의 작품이라고 판단했다. 이 경우 뒤러의 작품이라고 전제해서 추산한 가격의 4분의 1 정도만 받을 수 있다. 현재 런던의 한 갤러리에 보관된 이 그림은 내년 1월 뉴욕의 갤러리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 5700년 전 영국 무덤 주인들의 5대에 걸친 가계도 완성

    5700년 전 영국 무덤 주인들의 5대에 걸친 가계도 완성

    영국 연구진이 5700년 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에서 나온 뼈들에서 유전자를 추출해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된 가계도를 그려냈다. 잉글랜드 중서부 글로셔스터주에는 신석기 시대 유물이 즐비하다. 80㎞ 길이의 석회암 구릉지대인 코츠월즈에 있던 해즐턴 노스 케이른 무덤에 누워 있던 주인들의 뼈에서 추출한 DNA를 분석해 5대에 걸친 이들의 가계도를 그려냈다. 무덤의 주인들은 한 남성과 관계한 4명의 여성이 낳은 후손들이 계속 식구를 늘린 대가족이었다. 첫 세대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는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무덤은 알파벳 L자 모양으로 묘실을 만들어 맞닿게 한 것이 특이했다. 한 쪽은 북쪽을, 다른 쪽은 남쪽을 바라보게 앉혔다. 하버드 의대 데이비드 라이히 교수가 논문의 공동 저자 중 한 명인데 그는 “두 여성과 그들 자녀들이 남쪽 묘실에 모셔졌는데 그들의 아이들이 5대에 걸쳐 뻗어나갔다”면서 북쪽에는 다른 두 여성과 그들의 자녀들이 모셔졌는데 그들 중 일부는 남쪽 방으로 옮겨졌다고 설명했다. 아마도 북쪽 통로가 붕괴돼 그곳에 더 이상 묻힐 수 없어 그런 것 아닌가 짐작된다고 했다. 논문의 제1 저자로 고고학 분야를 주도한 크리스 파울러 뉴캐슬 대학 교수는 “신석기 시대의 다른 무덤들의 건축 레이아웃을 보면 얼마나 혈연 관계가 이들 무덤에 작동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무덤이 조성된 시기는 아나톨리아(지금 터키)와 에게해에서 농사를 짓던 조상들이 영국에로 이주해오던 시기라 더욱 각별한 중요성을 지닌다. 이곳에서는 영국보다 몇천년 앞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이런 식의 연구를 확장하면 철기 시대 사람들의 가계 변화도 연구해 그들의 문화에 대해 더욱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키운다. 당시에 벌써 양자를 들이는 일이 있었다는 추정도 해볼 수 있다. 친아버지 소생이 아닌 남성이 어머니와 함께 묻힌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두 여성이 어릴 적 숨져 묻히기도 했는데 반면 성인이 된 딸 시신이 전혀 없는 점은 의아한 대목이다. 함께 아이를 가진 남성 유해와 함께 묻혀 있을까 싶어 살폈으나 없었다. 그 옆의 무덤을 봐도 역시 성년이 된 딸의 유해를 찾을 수 없었다. 당시에도 화장 관행이 있었기 때문에 연구진은 화장했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거론했다. 일부다처제가 넓게 퍼져 있었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지금도 이 관습이 남아 있는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남성들은 가까운 친척들이었다. 연구진의 논문은 네이처 저널의 동료 심사를 받는 중이라고 영국 BBC가 23일(현지시간) 전했다.
  • “한예종 떠나면 지역 경제 파탄” vs “유치할 부지에 텃밭… 땅 아까워”

    “한예종 떠나면 지역 경제 파탄” vs “유치할 부지에 텃밭… 땅 아까워”

    “한예종이 없는 석관동 지역 경제는 파탄 납니다.”(성북구 주민) “한예종 유치 예정 부지에서 텃밭을 했는데, 땅이 항상 아까웠어요.”(송파구 주민) 한예종을 보낼 수 없다는 성북구 주민과 학교를 유치하겠다는 송파구 주민들의 의견이 팽팽하다.성북구 한예종지키기추진위원회는 마트, 식당, 화원 등 자영업을 하는 주민 50여명으로 구성됐다. 2017년 도종환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한예종 이전 반대 편지를 보내 ‘정해진 것이 없다’는 원론적 수준의 답을 받은 바 있다. 주민위원회 가운데 젊은 축에 속하는 강현범(46)씨는 “대학 이전의 경제적 효과는 철도 개통과 비슷하다고 한다”면서 “석관동에서 식당이나 원룸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다 죽는 것이고 지역경제는 파탄이 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예종 송파구 유치를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성북구에는 한예종을 대체하는 공약을 별도로 하지 않아 걱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정치인들도 하기 힘든 일에 주민들이 나서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지만 가만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16년째 송파에 사는 전진(40)씨는 “올해 쇼팽 콩쿠르 한국인 출전자를 송파 맘카페에서 유튜브로 실시간 응원할 정도로 문화가 발달한 곳이 송파구”라고 밝혔다. 예술을 하려면 유학을 다녀와야 한다는 선입견을 깬 학교가 한예종인 만큼 교통 요충지인 데다 문화 인프라를 갖춘 송파구에 한예종이 들어선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당초 50명이던 송파구의 한예종 유치추진위원회 참여 주민도 100명이 넘어 2배나 늘었다.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이들이다. 한예종이 성북구에서 송파구로 이전하면 학생들의 주거비용이 오를 것이란 걱정에 대해서도 “방이동에 청년주택을 짓고 있으며 기존 모텔도 오피스텔로 많이 바뀌었다”면서 “모든 것이 갖춰진 지역에 있을 때 한예종의 자부심은 더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예종 유치 예정 부지는 개발 시 백제 유물이 나올 가능성이 큰 지역이다. 유물이 출토되면 올림픽공원에 있는 한성백제박물관으로 이전해 보존하게 된다. 약 6만㎡의 생태경관보전지역인 방이습지는 학교 예정 부지를 비켜나 있다. 전씨는 “한예종 유치 예정 부지가 전답, 화훼영농, 적치장, 텃밭 등으로 활용되고 있어 사실상 그린벨트의 기능을 상실했다”면서 서울시의 그린벨트 해제 조치를 바랐다.
  • 與 “세상 물정 알라”vs野 “미래 앱 이해 못해”...尹 ‘일자리앱’ 발언 공방

    與 “세상 물정 알라”vs野 “미래 앱 이해 못해”...尹 ‘일자리앱’ 발언 공방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앱을 통해 구인·구직 정보를 얻을 때가 올 것 같다”는 발언과 관련해 여야가 공방을 벌였다. 여당은 “세상 물정 좀 알라”며 공세를 펼쳤고, 야당은 실시간 개인화 일자리 매칭이 가능한 기술 구현을 언급한 의도라고 해명했다.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보단은 해당 발언이 나온 지 하루 만인 23일 오후 ‘알려드립니다’를 통해 “윤 후보는 이러한 기능을 모두 제공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인공지능 앱을 말씀드리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도 이른바 ‘구직앱’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앱이라고 다 같은 앱인 것도 아니다”고 설명했다. 공보단은 이어 “현재 구동되는 앱에는 아직 일자리 데이터가 통합되어 있거나 구인·구직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동기화되고 있지 않다”며 “실업 급여를 신청한 사람의 구직 희망 직종이 분석되어 자동으로 일자리가 매칭되는 것이 어제 윤 후보가 말씀드린 앱 로드맵이다”고 했다. 공보단은 “여권 인사들은 현재 가동되는 앱을 이해할 뿐, 윤 후보의 ‘미래 앱’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며 여권의 비판을 반박했다. 이어 “10년 전에도 가상공간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가상공간인 메타버스와는 차원이 달랐다”며 “구직앱은 빅데이터와 이를 처리할 기술력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제 기능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단순한 자료를 모아놓은 수준의 앱으로는 AI 방식으로 일자리 매칭은 어렵다”고 설명했다.공보단은 “‘교차로’(구인구직 등 생활정보지)식 사고는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여당 측 인사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한다”며 “윤 후보의 미래 앱은 일자리 데이터가 통합되어 있고 데이터가 실시간 동기화되는, 실업 급여를 신청한 사람의 구직 희망 직종이 분석되어 자동으로 일자리가 매칭되는 앱이며, 소망이 현실화되는 기회의 사다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후보는 22일 전주 전북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조금 더 발전하면 학생들 휴대폰으로 앱을 깔면 어느 기업이 지금 어떤 종류의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실시간 정보로 얻을 수 있을 때가, 아마 여기 1·2학년 학생들이 있다면 졸업하기 전에 생길 거 같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자리 매칭 앱들의 서비스 현황을 모르고 발언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자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같은 날 페이스북에 “(윤 후보가) 오늘 스마트폰으로 일자리 정보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게 몇 년 안에 생긴다고도 했다”면서 “워크넷, 잡코리아, 사람인, 커리어, 스카우트, 인디드, 잡플래닛, 알리오, 피플앤잡, 월드잡, 나라일터... 정말 모르나? 진짜 이다지도 무지하며 무례해도 되는 건가?”라고 적어 힐난했다. 하헌기 민주당 청년대변인이자 선대위 부대변인도 페이스북 글을 통해 “윤석열 후보는 오늘 전북대 강연에 무려 45분이나 늦게 도착하고 나서는 이렇게 말했다”면서 “아마 본인 빼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웃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미 수많은 청년들이 채용 앱을 통해서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기업들도 실시간으로 앱을 통해 사람을 구하고 있고”라며 “그것도 한 해, 두 해 된 게 아니다. 아직도 윤석열 후보는 ‘교차로’로 채용공고를 보던 시대에 사시나? 전문지식을 쌓으라는 게 아니라 세상 물정을 좀 알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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