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유목
    2026-06-10
    검색기록 지우기
  • 소통
    2026-06-10
    검색기록 지우기
  • 항모
    2026-06-10
    검색기록 지우기
  • 루머
    2026-06-10
    검색기록 지우기
  • 이재민
    2026-06-1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74
  • [교황 서거] 교황 어록 “전쟁은 인류의 패배”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 또한 행복하시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상태가 악화되기 전 자신을 알현한 폴란드 신부와 수녀들에게 남긴 작별 메모의 내용이다. 서민적이고 겸손하면서도 용기있는 지도자로 평가받았던 교황의 면면은 그의 발언을 통해 나타나곤 했다. ●“전쟁은 항상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인류의 패배다.” 2003년 1월13일 이라크 개전 직전에 외교관들에게 이같이 말하며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했다. 이후 바티칸과 미국은 불편한 관계가 됐다. ●“두려워 마라. 그리스도에게로 문들을 활짝 열어라.” 1978년 10월16일 교황선출 뒤 첫 대중연설서. ●“기독교도와 무슬림은 과거에 서로를 비난하며 전쟁 지경까지 갔었다. 이같은 습관을 고치라고 하느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다고 나는 믿는다.” 1985년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종교간 대화를 강조했다. ●“마하트마 간디는 기독교도가 아니었지만 나는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1986년 인도 방문 중. ●“여러분은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이다. 어떤 의미에서 여러분은 우리의 형이다.” 1986년 로마 시나고그를 방문한 자리에서 유대교도들에게 한 말. ●“나는 83세의 젊은이” 2003년 5월 마드리드에서 젊은이들과 만난 자리에서 교황은 “젊은 교황을 원한다고요. 사실 나도 젊은 교황이라고 생각하는데.”라고 농담을 던졌다. ●“오늘날까지 유대인 대학살 사건은 반유대주의가 인류에 큰 죄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1994년 출간한 저서 ‘희망의 문지방을 넘어’에서 ●“교황은 바티칸 안에 갇혀 있어선 안 된다. 초원의 유목민들로부터 수도원 수사, 수녀들까지 만나고 싶다. 또 모든 가정을 방문하고 싶다.” 취임 초기 기자들에게. ●“모든 종교가 지구촌에 정의, 평화, 용서 그리고 생명을 가져 올 수 있도록 하느님의 이름으로 기원한다.” 미국의 9·11테러 이후 2002년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열린 종교지도자 회의 연설.
  • 소버린, SK주식보유 목적 변경 수익창출 →경영참가

    SK㈜와 경영권 다툼을 빚어왔던 소버린자산운용이 SK㈜ 주식의 보유목적을 ‘수익창출’에서 ‘경영참가’로 변경했다. 소버린은 또 ㈜LG와 LG전자에 대해서도 경영참여를 위해 주식을 대량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개정 증권거래법에 따라 5% 이상 주식 대량보유자의 보유목적을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2일까지 다시 보고받은 결과 외국인 71명, 내국인 1454명 등 총 1525명이 보유목적을 ‘경영참가’로 공시했다. 재보고자의 투자대상 기업은 유가증권시장 688개사, 코스닥시장 897개사 등 모두 1585개사로 집계됐다. 소버린은 SK㈜(지분율 14.85%) 외에 ㈜LG(7.0%)와 LG전자(7.2%)에 대해서도 주식 보유목적을 수익창출에서 경영참가로 재보고했다. 미국 투자자문사인 바우포스트는 현대약품(12.59%), 경동제약(10.94%), 삼일제약(12.88%), 일성신약(8.75%), 삼천리(5.79%), 한국폴리올(8.90%), 삼아약품(9.32%), 환인제약(11.11%) 등 8개 제약사에 대한 주식 보유목적을 ‘경영참가’로 변경 보고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칭기즈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잭 웨더포드 지음

    “등 위에 올라탄 사람의 의사와 관계없이 가고 싶은 대로 질주하는 말의 눈에 나타난 표정을 생각해 보라.” ‘테무진’이라는 이름을 묻는 저자 잭 웨더포드의 질문에 대한 한 몽골 학생의 대답이다. 테무진은 너무도 유명한 칭기즈 칸의 본명. 아마도 칭기즈 칸의 생애를 이처럼 잘 보여주는 설명은 찾기 힘들 듯 하다. 꼼꼼한 답사와 고증을 거친 ‘칭기즈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정영목 옮김, 사계절 펴냄)가 번역돼 나왔다. 제목(원제 ‘칭기즈 칸과 근대세계 형성’)에서 드러나듯 이 책은 서구의 시각에서 칭기즈 칸과 그 후손의 역사를 살펴본 책이다. 그러나 저자의 접근법은 ‘야만과 공포’를 강조하는 서구의 기존 접근법과 다르다. 이를테면 ‘내재적 접근법’에 가깝다. 번개 같은 기병으로 약탈과 방화만 일삼았던 잔혹한 몽골군이라는 표면적 인상 대신 어떻게 효율적으로 군대를 조직하고 사회를 유지했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저자가 보기에 몽골군의 잔인함은 필요 이상으로 과장됐다. 몽골군은 다만 굴복시킨 적 가운데 쓸모있는 사람과 쓸모없는 사람을 구분, 쓸모없는 사람을 죽였을 뿐이다. 쓸모없는 사람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권력, 돈, 지식을 가진 사람들, 바꿔 말해 지도층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은 반란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사람도 이들이다. 지금 우리에게 남은 기록에는 이들의 호들갑과 공포, 동시에 자신들의 무능함과 나약함을 가리기 위한 변명과 책임회피가 가득할 뿐이다. 또 결정적으로 몽골은 쇠망했고 지금은 서구가 세계의 중심이다. 중국도, 유럽도, 인도도, 이슬람도, 그 어느 누구도 몽골을 좋게 말할 리 없다. 오죽했으면 영화 ‘반지의 제왕’의 우르크하이가 몽골군을 상징한다는 해석까지 나왔을까. 저자는 잔혹함보다는 칭기즈 칸이 부린 ‘통합의 마술’에 주목한다. 무기는 비밀리에 전해오던 몽골왕실의 기록 ‘몽골비사’와 수년간 직접 몽골을 둘러본 ‘현장답사’의 경험이다. 칭기즈 칸은 떠돌이 유목민에게 가장 중요한 혈연관계를 사회적 관계로까지 확장시킨다. 물론 이 관계가 혈연관계와 똑같을 수 없다. 여기에는 100% 계약의 개념이 개입한다. 칭기즈 칸은 대내적으로는 각종 차별을 철폐하고 거의 균등한 분배체계를 갖춘다. 대외적으로도 주변국들과 이런 관계를 철저히 지킨다. 항복하면 안전을 보장하지만 저항하면 처절하게 짓밟는다. 이 와중에도 지배층과 군인은 죽이되 나머지 피정복민은 양자 입적과 혼인 등의 방식으로 몽골에 동화시킨다. 자기네 왕에게 억압당하던 피정복민들에게 몽골이 제공하는 것은 평등한 분배체계의 혜택과 정치적 안정이었다. 이는 칭기즈 칸이 대법령을 제정하는 것으로 이어진다.‘침략과 야만’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칭기즈 칸 본인도 법에 따른다는, 일종의 법치주의 선언도 한다. 그 내용은 더 충격적이다. 출신에 따른 차별 금지, 완전한 종교의 자유 보장, 필수 공익사업자에 대한 면세 조치 등이 포함되어 있다. 칭기즈 칸의 폭발적인 힘은 분배체계의 개선을 통한 단합에서 나온 셈이다. 이런 서술을 쭉 읽다 보면 칭기즈 칸의 통치기술은 놀랍게도 로마제국의 그것과 비슷하다. 혈연관계의 확장이나 피정복민 융화정책, 교통과 통신의 중요성에 대한 깊은 이해 등. 여기에다 대제국 건설에 앞서 몽골의 지배권을 두고 20여년 동안 대립한 자무카와 칭기즈 칸의 얘기는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의 관계와 신기할 정도로 똑같다. 물론 이런 거창한 얘기만 담긴 것은 아니다. 저자의 전공이 부족민연구라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몽골인에게 말총과 남자의 허리띠는 어떤 의미인지, 결투를 할 때 씨름하는 것과 칼을 꺼내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등에 대한 각종 설명이 양념처럼 곳곳에 배어 있다.1만 3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호모 노마드-유목하는 인간/자크 아탈리 지음

    유목적인 생활양태를 뜻하는 ‘노마드’ 혹은 ‘노마디즘’이라는 단어가 유행이다. 유행 속에서 노마디즘은 IT기술과 교통의 발달 등으로 이제 정착해서 살아가는 삶은 끝났다는 뜻으로 쓰인다. 소위 ‘팔리는’ 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자크 아탈리의 ‘호모 노마드-유목하는 인간’(이효숙 옮김, 웅진닷컴 펴냄)이 번역돼서 나왔다. 이 책은 culture(문명)와 cultivation(경작)의 어원설명에서 보듯 인류사를 ‘정착’으로 설명하던 기존틀을 파괴한다. 대신 ‘야만’과 ‘무지’의 상징이었던 ‘방랑’과 ‘유랑’을 복권시킨다. 아탈리는 ‘정착 문명’의 역사는 기껏해야 5000년에 불과하고 그 5000년마저도 노마디즘의 시대였다고 설득력있게 주장한다. 이런 맥락에서 말, 열차, 자동차 등 운송수단의 발달 등과 관련된 문제를 차근차근 밟아나간다. 그런데 아탈리 책은 역발상을 시도하는 다른 책들과 달리 별로 신선하지 않다. 역사책에서 읽던 사회변동 관련 논의를 그대로 옮겨다 놓고는 노마디즘이라는 꼬리표만 열심히 붙였다는 느낌이다. 이러다보니 무차별적으로 노마디즘을 가져다 쓰는 게 은근히 불편할 정도다. 예를 들자면 시베리아 아시아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것도,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약탈하면서 이들을 학살한 것도 ‘같은’ 노마디즘이다. 현재의 소득불균형과 계층간 위화감의 문제 역시 ‘하이퍼’노마드와 ‘인프라’노마드의 분화로 설명된다. 이러다보니 최근 세계정세를 논하면서 최후의 정착민국가 ‘미국’과 ‘시장’,‘민주주의’,‘종교(이슬람)’라는 3개의 노마드 제국간 다툼으로 묘사하는 결론 대목은 문명충돌론을 보듯 다소 생뚱맞기까지하다. 차이라면 문명충돌론이 서구 백인의 두려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데 비해 아탈리는 산업화라는 노마디즘에 이어 세계화라는 노마디즘을 잘 이끌면 여전히 주도국가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정도다. 알제리 출신에 미테랑 정부 아래 주요 요직을 맡아 왔고 유럽부흥개발은행에까지 관여했다는 아탈리의 이력을 보면, 노마디즘을 외치면서 정작 유럽과 프랑스의 현실에 ‘정착’하고 있는 사람은 아탈리 자신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노마디즘 개념을 만든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 연구에 천착하고 있는 철학자 이정우같은 사람은 아탈리를 “들뢰즈와 가타리의 노마디즘을 속화(俗化)해 써먹고 있다.”고 표현했는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아탈리보다 차라리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의 ‘제국’을 읽어보라고 권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단적으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은 아탈리의 맥락에서는 ‘정착민의 저항’에 불과하지만 하트와 네그리의 맥락에서 ‘새로운 저항의 가능성’이다. 그럼에도 아탈리는 이제까지 잘 팔렸고, 또 앞으로도 잘 팔릴 사람 가운데 하나다.‘가진 자’의 입장에서는 ‘노마디즘’을 말할 때 들뢰즈·가타리 혹은 하트·네그리보다 아탈리를 찾는 게 더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2만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공익법인 수익사업땐 이달 법인세 신고해야

    공익법인도 제조업을 하거나 부동산 처분 수입 또는 이자·배당 소득이 있다면 이달말 법인세 신고 때 반드시 신고해야 한다. 국세청은 14일 공익법인 가운데 제조·도매업 등 수익발생 사업을 영위하거나 이자·배당소득, 주식·신주인수권·출자지분 양도 수입, 고정자산(부동산 등) 처분 수입, 채권 매매익이 있는 경우에는 법인세 신고대상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이같은 수익사업 때문에 내달말 법인세 신고를 해야 하는 공익법인은 모두 1만 6400곳에 달한다. 국세청 관계자는 또 수익사업과 고유목적 사업을 합한 자산총액이 30억원 이상인 공익법인의 경우 2년마다 출연재산 운용 및 공익사업 운영 내역에 대해 변호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등 외부전문가로부터 세무확인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공익법인이 세무확인을 받지 않을 경우 수입금액과 출연재산가액을 합한 금액의 0.07%를 미이행 가산세로 내야 한다. 주병철기자 bcjoo@seoul.co.kr
  • [박은영의 DVD 레서피]케밥물고 ‘클린’하게 길떠날까

    [박은영의 DVD 레서피]케밥물고 ‘클린’하게 길떠날까

    케밥은 유목민들의 음식이다. 광활한 중앙아시아를 유랑하던 고대 터키인들은 빠른 시간 내에 간편하게 요리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필요했다. 쇠고기, 양고기, 닭고기 등을 바비큐 한 뒤 빵에 싸서 먹는 케밥은 말하자면, 웰빙 햄버거이자 터키식 페스트 푸드다. 목자들을 위한 도시락이고 오랜 여행을 위한 요리이기도 했다. 맛은 어떨까. 숯불 화덕 옆에서 회전시키며 구운 고기는 기름기가 빠져나가 담백하며, 얇은 밀가루 빵과 신선한 야채가 함께 씹히는 질감은 기막히다. ‘델마와 루이스’의 주인공들에게도 케밥이 제격이다. 자유롭고 싶은 열망으로 질주하는 그들을 위한 만찬으로는 와인과 촛불이 있는 프랑스 요리보다 유목민들의 여행식이 어울린다. ‘델마와 루이스’의 후예들인 ‘코니 앤드 칼라’,‘클린’의 주인공들 역시 자기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여행을 한다. 살인자들에게 쫓기다 드래그 퀸 클럽에서 꿈을 펼치게 된 두 여자와, 마약에 찌들어 살다가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게 된 한 여자의 여정이다. 음악을 주된 소재로 사용하고 있는 두 영화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시카고’를 연출한 마이클 램벡과 ‘나의 그리스식 웨딩’의 각본과 주연을 맡은 니아 발다로스가 함께한 ‘코니 앤드 칼라’는 어두운 소재임에도 시종일관 경쾌하다. 그러나 ‘클린’은 애잔한 록 음악만큼이나 장만옥의 고단한 여정이 전개된다. ●클린 마약에 찌들고 남편을 죽였다는 혐의에 시달리고 있으며, 어린 아들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는 여자의 모습은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유목민을 연상시킨다. 장만옥에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답게 인생 막바지에 몰린 여자의 심경이 발군의 연기력으로 표현되었다. 시종일관 흐르는 나른한 음악들과 핸드 헬드 카메라로 잡아낸 영상은 매우 강렬하다. 그러나 DVD의 표현력에는 다소 아쉬움이 있다. 그나마 부가영상에서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닉 놀테, 장만옥의 긴 인터뷰를 지켜볼 수 있는 것은 작은 행운이다. ●코니 앤드 칼라 화려한 출연진과 볼거리에도 불구하고 국내 극장에선 개봉되지 않았다. 비디오로도 출시되지 않았으니, 이 영화를 볼 길은 DVD뿐이다. 매번 똑같은 로맨틱 코미디의 가벼움에 질렸다면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한 일종의 ‘쇼 타임’이기 때문이다. 드래그 퀸인 척하고 무대에 오르는 대책 없는 두 여자가 걸출하게 부르는 ‘카바레’ ‘그리스’ ‘캐츠’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NG와 삭제 장면, 제작과정과 음성해설 등의 부가영상도 본편만큼이나 재미있으니 놓치지 마시길!
  • [재계 인사이드] 소버린의 ‘법망 비켜가기’

    SK㈜의 주식 매입과정에서 ‘허술한’ 국내 관련 법규를 교묘히 피해갔던 소버린자산운용이 이번 LG그룹주 투자에서도 관련법을 적절히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버린자산운용은 지난 18일 LG의 지주회사인 ㈜LG와 LG전자 주식을 대거 매입하면서 보유목적을 회사의 지배권 취득 또는 지배권에 대한 영향력 행사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경영진 교체나 정관 변경은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덧붙였다. 지배권과 관련있는 주식보유인데도 경영권과 관련해서는 지분행사를 않겠다고 밝힌데 대해 소버린은 “보유목적은 ‘투자’에 가깝지만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을 목적으로 LG측 이사회에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경영진과도 대화를 하는 등 간접적인 방법으로 경영에 참여할 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소버린 법률자문인 김영준 변호사는 “보유목적을 ‘단순투자’로 공시하면 지분매입에 대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경영진과 접촉도 못하는 등 돈만 내고 입을 닫아야 한다.”면서 “이는 지난해 12월31일 국회에서 통과된 개정 증권거래법에 의거한 것이다.”고 말했다. 소버린이 국내법을 얼마나 꼼꼼하게 챙겼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소버린의 해박한 국내법 지식은 SK글로벌 사태로 SK내 지배구조에 균열이 공개되자 그 틈을 이용한 것과 달리 지배구조가 가장 안정된 LG를 타깃으로 삼은데서도 잘 나타난다. 동원증권 김세중 애널리스트는 “‘SK사태’ 이후 증권거래법 개정을 통해 냉각기간제 도입, 공개매수 기간 중 신주발행,5% 이상 주주 가운데 경영참여 목적이 있으면 재공시 등 외국인의 경영권 위협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한 방어수단들이 대폭 강화됐다.”면서 “소버린은 이러한 국내 환경 변화를 염두에 두고 저평가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지배구조 측면에서 SK와 전혀 다른 LG 주식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소버린의 ‘법망 비켜가기’는 SK의 주식매입과정에서 이미 확인됐다. 소버린은 지난해 4월4일 SK㈜ 지분 10.50%를 확보했지만 4월9일에야 공시를 했다. 외국인투자촉진법의 ‘10% 이상 주식 취득시 사전신고 의무’ 규정을 어긴 것이다. 산업자원부는 지난해 이같은 혐의에 대해 소버린을 고발했지만 검찰은 국내법을 잘 알지 못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 등을 들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소버린이 전기통신사업법상 SK㈜를 통해 SK텔레콤을 지배할 수 있는 한도(15%)에 정확히 맞춰 14.99%의 지분을 매입한 ‘용의주도함’에 비춰보면 국내법을 잘 몰랐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보유목적을 투자와 경영참여 둘다 해석가능한 ‘수익창출’로 내세워 공시위반 논란을 피해간 것도 절묘한 방법이었다. 재계 관계자는 “국내법을 꿰뚫고 있는데다 한국언론의 ‘속성’까지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소버린이 복잡다기하면서도 미비한 지주회사 관련 법규 등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家 ①-CJ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家 ①-CJ그룹

    CJ그룹에는 삼성그룹의 모태인 제일제당의 오랜 ‘역사와 전통’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1953년 설탕회사로 출범, 제일모직·삼성전자·삼성생명 등 현재 삼성그룹의 기업적 ‘젖줄’이 된 곳이 바로 CJ(옛 제일제당)다. 또 삼성의 인재를 길러낸 ‘인재사관 학교’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90년대 중반까지 CJ하면 떠오르는 것은 설탕·밀가루 등을 만드는 식품회사 정도였다. 그 이후 점차 생명공학, 홈쇼핑, 엔터테인먼트 등 신세대 사업으로 외연을 확장하면서 식품회사의 틀과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졌다.1995년 그룹 분리 당시 1조 5000억원이었던 그룹 매출은 지난해 8조원, 영업이익은 97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자산 기준 재계 서열 23위의 기업으로 도약했다. 끊임없이 모험과 변신을 꿈꾸는 벤처기업처럼 역동적으로 사업을 발굴, 추진해 온 덕분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삼성가(家)의 장손이 우뚝 서있다. ●부친 ‘공백’ 메우는 직계 장손 CJ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손인 이재현(46) 회장이 이끌고 있다. 그의 부친은 고 이 회장의 장남인 이맹희(76) 전 제일비료 회장. 부친이 할아버지 눈밖에 나는 바람에 이 회장은 일찌감치 부친을 대신,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며 삼성과 제일제당에서 경영 수업을 쌓았다. 한솔그룹(창업주의 장녀 이인희 고문), 신세계(4녀 이명희 회장), 새한미디어(차남 고 이창희 회장)에 이어 가장 늦게 삼성에서 떨어져 나왔다.1993년 시작된 CJ의 계열 분리 작업은 지난 97년 법적으로 완전히 정리됐다. 이 회장이 36세때의 일이다. 그룹을 혼자 경영하기에는 나이나 경험이 모두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CJ는 자연히 이 회장과 외삼촌인 손경식(66) 회장이 함께 경영하는 ‘쌍두마차’ 체제로 유지됐다. 손 회장은 대외업무, 이 회장은 내부경영 등으로 역할 분담을 했다는 것이 CJ측의 공식적 설명이지만 이들의 역할을 뚜렷하게 구분짓기 어려웠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만큼 이 회장의 비중이 컸다는 얘기가 된다. 이 회장의 ‘등극’은 삼성가의 3세 경영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3남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등 사촌들과 함께 삼성가의 3세 경영시대를 여는 주역으로 떠올랐다. 서울 남대문로 본관 사옥에 있는 그의 할아버지 흉상은 그가 삼성가의 직계 장손임을 상징해 주고 있다. ●평범한 혼인, 드러나지 않은 내조 고 이 회장의 장남 맹희씨는 부인 손복남(71)씨와의 사이에서 2남1녀를 뒀다. 자녀 모두 평범한 집안과 혼인해 이렇다 할 화려한 혼맥이 눈에 띄지 않는다. 맹희씨가 코흘리개인 네살 때 이미 “아이들이 자라면 혼인을 시키자.”는 양가 어른의 언약이 인연이 돼 손씨와 결혼했다. 이화여대 교육학과 출신인 손씨는 부친이 경기도 지사와 농림부 양정국장을 지낸 손영기씨다. 손복남씨가 부친을 모시고 병원에 가는 것을 먼 발치에서 지켜보고 난 뒤 맹희씨는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손씨는 삼성가의 맏며느리로서 겉으로는 화려해도 남편이 풍상을 겪자 말 못할 마음의 고통을 삭이며 살아왔다. 서울 장충동 집에서 시부모를 모시며 3남매를 키웠다.CJ가(家)의 명실상부한 ‘안주인’ 역할을 묵묵히 해오고 있는 것이다. 경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으나 제일제당의 최대주주로 있다가 주식 증여를 통해 경영권을 장남 재현씨에게 넘겼다. 재현씨는 어릴 때 할아버지로부터 각별한 사랑과 함께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체격 등 외모, 사고나 행동방식까지 조부와 비슷해 ‘리틀 이병철’이라고도 불린다. 결혼 후 “나가서 신혼살림을 하라.”는 부모님의 얘기에도 “할머니를 모시고 살겠다.”며 고집을 피워 2001년 1월 할머니 박두을씨가 별세할 때까지 서울 장충동 집에서 모셨다. 지금도 모친 손여사와 함께 장충동 집에서 산다. 경복고, 고려대 법대 출신인 재현씨는 “누구 덕을 본다는 이야기를 듣기 싫다.”며 1983년 씨티은행에 취직,‘탈 삼성행’을 시도했다. 하지만 조부인 고 이병철 회장이 “재현이에게 왜 남의 집살이를 시키냐.”는 불호령을 내려 결국 85년 삼성의 주력 계열사였던 제일제당 경리부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88년 경리부 차장,89년 기획관리부장으로 승진했다.92년부터 1년 정도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이사대우로 일하기도 했다.93년 제일제당 이사로 친정에 복귀해 97년 부사장,99년 부회장을 거쳐 2002년 회장에 올랐다. 부산 출신으로 이화여대 미대 장식미술학과를 졸업한 부인 김희재(46)씨와는 대학시절 미팅을 통해 결혼, 딸 경후(21)씨와 아들 선호(16)군을 뒀다. 두 자녀는 현재 해외 유학 중이다. 90년대 중반 이 회장은 회식을 끝내고 밤늦게 직원들을 집으로 데려와 2차 술자리를 갖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도 부인 희재씨는 한번도 짜증을 내지 않고 뒷바라지해 직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또 이 회장과 함께 노인무료급식소 등에서 김장을 하고 노인들의 가정에 도배도 하는 등 사회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이 회장의 장모인 김만조씨는 ‘김치박사’로 유명하다.CJ의 김치개발에도 참여했다. 영국과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씨는 연세대, 서울여대 등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홈쇼핑·영화등 사업다각화… 재계 23위 ‘껑충’ 이 회장의 누나 미경(48)씨는 부친이 유학 중이던 미국에서 동생 재현씨와 함께 태어났다. 어릴 때 ‘미키’라고 불린 것을 계기로 지금도 ‘미키 리’라는 이름으로 해외 활동을 한다. 중학교때 대통령배 영어 웅변대회에서 1등을 하기도 했다. 영어외에 불어, 중국어에도 능통하다. 경기여고, 서울대 가정학과, 미국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연구로 석사학위를,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1995년 제일제당 멀티미디어 사업부 이사 시절 스필버그 등이 설립한 세계 최대의 영상소프트회사인 ‘드림웍스’와 제일제당의 합작을 성공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당시 이건희 회장과 이재현 회장은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스필버그와 협상을 벌일 만큼 드림웍스 설립에 남다른 애착을 보였으나 결국 그는 삼촌 대신 동생 재현씨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말 CJ엔터테인먼트 사업의 글로벌 부문을 맡아 사업의 본격적인 해외진출을 진두지휘하게 됐다. ■ ‘비운의 황태자’ 이맹희씨-삼성 경영서 물러난 뒤 유랑생활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이자 이재현 회장의 부친인 맹희(76)씨는 요즘 몽골에 머물고 있다. 과거 유목민의 후예들이 사는 그 곳이 그에게는 오히려 편안함을 준다고 했다. ‘비운의 황태자’‘양녕대군’은 맹희씨에게 따라 다니는 수식어다. 그는 삼성을 이끌 ‘운명’을 타고 났지만 오히려 바람처럼 떠도는 처지가 그의 ‘운명’이 된 ‘풍운아’다. 동생 이건희 회장으로 후계구도가 정해진 후 그는 형제들은 물론 자신의 가족들과도 떨어져 세속을 등진 채 살아왔다. 그의 ‘유랑생활’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부친이 기업을 일구는 것을 보며 컸다.1938년 삼성의 설립으로 기록되는 삼성상회 간판 아래 부친이 대구에서 국수공장을 운영할 당시 공장 귀퉁이 방안에서 부친이 새우잠을 자며 일하는 것을 보며 자라난 삼성 성장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경북고 32회 출신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 고 김윤환 의원, 정호용 전 의원 등 TK출신 정치인들과는 친구사이다. 그는 일본, 미국 유학을 거쳐 안국화재 업무부장을 시작으로 중앙일보, 삼성전자 부사장 등 직함이 무려 17개에 이를 정도로 강도 높은 경영 수업을 받았다. 이 때만 해도 그의 호칭은 삼성의 ‘젊은 부총수’였고, 아무도 그가 삼성의 경영 대권 주자로 낙점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세계 최대의 비료공장을 만들려 했던 선친이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1966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자 그는 실질적으로 그룹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선친의 눈밖에 나면서 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야 했다. 그때가 1971년이었다. 그는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에서 “자신이 삼성에서 일한 기간은 7년이고, 물러난 것은 기업이 혼란에 빠져서가 아니라 몇마디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다.”라며 부친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부친이 동생 이건희 회장으로의 대권이양 선언시를 회고할 때는 “아버지와의 사이에 상당한 틈새가 있었지만 언젠가는 나에게 삼성의 대권이 주어질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며 당시의 ‘충격’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bori@seoul.co.kr ■ 차세대 사업의 양날개 ‘左-미경, 右-재환’ 차남 재환(44)씨는 배재고, 타이완대 정치학과 출신으로 현재 경영기획실 중국담당 상무로 베이징에서 근무하고 있다. 한때 제일제당 일본지사 부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재환씨는 일본과 중국쪽 사업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7·8·9대 국회의원을 지낸 민기식 전 의원의 딸 재원(38)씨와 결혼, 딸 소혜(15)양과 아들 호준(7)군을 뒀다. 재원씨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오너보다 CEO로 평가받겠다.” CJ맨들이 보는 이 회장은 ‘꿈과 비전·열정이 큰 사람’으로 요약된다. 회사의 실적을 보고 받으면 “최소한 얼마는 돼야 하는데, 회사가 좀 더 커야 한다.”며 항상 아쉬움을 토로한다. 사원들과의 대화를 ‘정말’ 즐긴다. 좀처럼 격식을 따지지 않는다. 책상에 걸터 앉아 얘기를 하고, 직원들과 남산에 올라 자유토론도 한다. 회사의 경영 방침과 경영 철학을 직접 설파, 공감대를 넓혀나가는 식이다. CJ 관계자는 그런 그의 행보를 두고 “오너라기보다는 유능한 최고경영자(CEO)로 평가받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최태원 SK 회장이 사석에서 “이 회장은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서 “10년 뒤 살아 남을 사람(오너)은 이 회장밖에 없다.”고 말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만큼 오너 2,3세들 중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안착한 경영인이란 방증이다. 재벌가의 후손들이면 보통 가는 해외유학 코스도 밟지 않은 ‘토종파’인데도 그의 기업 문화론은 어느 기업보다 앞서간다. 오래된 보수적인 회사로 짧은 시간에 젊고 활기찬 기업으로 변모시킨 것은 바로 ‘이재현 식’ 기업 문화에서 비롯됐다. 국내 최초로 복장 자율화,‘∼님’으로 호칭 통일, 플렉서블 타임제(자율 출퇴근시간), 층마다 비치된 간이 도서관 등은 다 그의 작품이다. CJ의 역사가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삼성과의 결별을 앞둔 94년 10월 삼성측이 제일제당에 이학수 당시 삼성화재 부사장(현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을 파견, 삼촌 이건희 회장과 조카 이 회장의 신경전은 제일제당이 삼성본관에서 95년 4월 현재의 사옥으로 이사오기까지 6개월간 계속됐다. 제일제당이 보유한 부동산, 삼성생명주식 평가방법을 놓고 양측은 치열한 공방을 벌인 끝에야 제일제당은 ‘독립’을 선언할 수 있었다. 삼성그룹에서 분리될 당시의 제일제당은 삼성의 전자 및 중공업 위주의 우선 투자전략에서 밀려 성장한계를 보인 상황이었다. 식품회사라는 고정된 이미지도 그룹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러나 1995년 독자경영을 시작한 이후 이 회장 주도로 식품 등 기존의 사업을 다지면서 미디어·영상·물류·유선방송·홈쇼핑 사업 등 다각화된 사업으로 포트폴리오를 짰다. 식품·정보통신·화장품, 음료사업 등 매년 수십억에서 수천억원의 적자를 내는 비주력 사업은 과감히 매각했다. 이 가운데 인터넷사업인 드림라인은 이 회장이 주도한 사업 중의 하나였으나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미련’을 갖지 않고 구조조정을 무난하게 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의 식품, 식품서비스, 바이오,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신유통 등 4개 분야를 CJ의 핵심 사업으로 확정했다.“설탕이나 파는 식의 마인드로 살아 남을 수 없다.”면서 이 회장은 당시 직원들의 신발끈을 조였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내실있는 임원 김주형(58) ㈜CJ 대표이사 사장은 1972년 제일제당에 들어온 이후 최고 경영자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적인 인물. 곡물구매 전문가로 자기 색깔을 내지 않으며 두루 회사를 아우르는 ‘덕장’형이다. 각양 각색의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칫 불협화음이 나올 수 있는 갈등 사안들을 절묘하게 중재·조정하는 ‘조율사’로서 탁월한 역할을 해낸다는 평이다. 특유의 친화력과 유연성 덕분이다. 그는 아랫사람에게도 존대하며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해 권위의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포근한 느낌을 준다. CJ개발 문성기(56)사장은 1974년 제일제당에 입사, 신사업 본부장 등을 거쳐 99년부터 CJ개발 대표를 맡았다. 우리나라 골프장 최초로 미국 LPGA 대회를 유치해 2002년 부터 3년 연속 성공적으로 개최,CJ의 골프장 ‘클럽 나인브릿지’를 세계 100대 회원제 골프장으로 만드는 것은 물론 CJ그룹을 해외에 알린 주역이다. 조용하면서도 강한 리더십이 강점이다. 이태호(57) CJ푸드시스템 대표(부사장)는 1973년 삼성그룹으로 입사, 사료본부장 등을 거쳐 2003년 말부터 CJ푸드시스템을 맡았다. 사료본부장 시절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으로 일찌감치 사업을 확장한 주역이다. 부하직원들로부터 냉철한 판단력과 따뜻한 마음을 가진 리더로 평가받는다. 의사결정이 빠르고 사업의 비전 제시력이 강하다는 평이다. 소탈한 성격으로 격식에 얽매이지 않아 평이 좋다. 박동호(49) CJ엔터테인먼트 대표(부사장)는 ‘비즈니스맨의 모범’으로 불린다. 국내 최초로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 극장체인인 CGV를 도입, 업계 1위로 성장시켜 사업역량을 인정 받으면서 한국 영화판을 좌지우지하는 ‘충무로 파워맨’으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지난해 게임업체인 플래너스를 전격 인수하는 수완도 발휘했다.‘튀는’ 사람들과 일하는 분야에서 내부를 꼼꼼하게 추스르고 챙기는 관리자의 역할에 꼭 맞는 인물이다. 김진수(54) CJ홈쇼핑 대표(부사장)는 제일제당 마케팅 실장 등을 거쳐 다국적기업 한국 존슨의 사장으로 잠시 외도했다가 친정으로 복귀한 케이스. 마케팅실장때 대상(옛 미원)과의 조미료 전쟁에서 ‘다시다’로 역전을 이뤘고, 식품본부장 시절에는 ‘햇반’ 등 신상품을 시장에 안착시켰다. 중국 홈쇼핑시장에 진출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해외통이자 마케팅 전문가로 평가 받는 그는 분단위로 스케줄을 관리할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박대용(53) CJ GLS 대표(부사장)는 업계에서 손꼽히는 물류 전문가다.1977년 제일제당에 입사,89년 물류개선팀장으로 발탁된 이후 16년간 물류관련 업무에만 종사해 왔다. 지난 99년 택배사업에 진출,3년만에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하며 CJ GLS를 택배업게 ‘빅 4’에 합류시켰다. 권위보다는 따뜻한 가슴으로 부하직원들을 대하는 ‘온화한 리더십’의 소유자다. 정진구(60) CJ푸드빌 대표(부사장)는 패밀리 레스토랑인 스카이락·빕스·한쿡과 베이커리 뚜레쥬르 등 외식사업을 총괄한다. 아이스크림전문점 배스킨 라빈스, 커피전문점 스타벅스 등이 그의 손을 거쳐 최고 브랜드로 성장했다. 국내 외식 업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다. 직관력과 현장 감각이 뛰어나 한국에 진출하려는 외국기업들의 영입대상 1순위로 알려져 있다.2003년 말 CJ그룹에 부사장으로 영입됐다. 김홍창(51) CJ투자증권 대표(부사장)는 1981년 당시 제일제당에 입사, 제일투자증권 상무, 제일선물 대표 등을 거친 대표적인 관리·금융통. 제일선물 대표 당시 업계 8∼9위에 불과했던 회사를 1년여 만에 업계 2위로 끌어올려 놓기도 했다. 이재현 회장의 입사 초기 수년간 경리·관리 부서에서 함께 근무하기도 했다. 직원들과 스스럼 없이 이메일을 주고받는 등 격의없는 성격이며 조직 밀착 경영에 강하다는 평이다. 지난 1월 정기인사에서 전격 발탁된 CJ미디어 강석희 대표(상무)는 자타가 인정하는 제약마케팅의 귀재다. 마케팅에서 보여준 실력이 미디어라는 복합다기한 사업분야에서 어떻게 적용될지 관심사다. bori@seoul.co.kr ■ 손경식 회장은 누구 손경식(66) 회장은 이재현 회장의 외삼촌이면서 CJ그룹을 이끄는 또 다른 한 축이다. 이 회장에게 할아버지 고 이병철 회장이 정신적 지주라면 외삼촌 손 회장은 ‘경영 스승’인 셈이다. 이 회장이 회사 중대 사안을 놓고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는 상대다. 경기고 2학년때 검정고시로 서울대 법대에 입학할 정도여서 ‘천재’라는 얘기를 들었다. 손 회장은 누나이자 이재현 회장의 모친인 손복남 고문이 삼성가로 시집가면서 삼성과 인연을 맺었다. 1968년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공부를 하려던 그를 고 이병철 회장이 비서실로 불러들였던 것. 아무리 가까운 혈연이라도 능력이 없으면 발탁하지 않는 삼성가에서 그는 77년 38세의 나이에 안국화재(현 삼성화재)사장으로 발탁돼 삼성을 이끌 리더로 자리잡았다. 안국화재는 자신의 부친인 손영기 전 경기도지사가 사장을 맡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1993년 6월 제일제당이 삼성그룹에서 계열 분리되면서 조카 이 회장의 ‘후견인’ 역할이 요구됐다. 당시 경영 수업을 받던 재현씨를 어떻게든지 잘 보호해 제일제당의 ‘주인’으로 ‘옹립’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 것. 그는 주저하지 않고 삼성전자에서 일하던 조카 재현씨와 함께 제일제당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후 삼성과의 분리과정에서 갈등을 겪는 등 제일제당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구원 투수’로 활약했다. 96년 5월 “삼성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제일제당 그룹으로 새롭게 출발한다.”며 삼성그룹과의 결별을 공식 선언한 것도 그였다. 거대 그룹의 우산 아래서 떨어져 나온 제일제당이 큰 위기를 겪지 않고 오늘의 CJ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손 회장의 역할이 컸다는 것이 안팎의 평가다. 화려한 학맥으로 그는 정·관·재계의 인맥 네트워크가 강하다. 재작년에는 경기고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부인 김교숙(59)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bor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홍보맨 10년경험 소설로 써봤죠”

    양경욱 현대백화점 홍보실 차장이 10년 동안 홍보맨으로 일하며 쌓아온 경험과 자료를 토대로 소설을 펴내 화제가 되고 있다. 양 차장은 1995년부터 지난해까지 백화점 홍보맨으로 겪은 좌충우돌 경험, 실수, 보람, 성장과정 등을 바탕으로 만든 소설 ‘홍보 스캔들’(청조사)을 6일 출간했다. 이 책은 가상의 캐릭터인 ‘양지리’란 인물이 주인공.‘푸른백화점’ 홍보맨으로 일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60여개 에피소드로 구성했다. 란제리 패션쇼 홍보에 얽힌 황당한 실수담,100만원권 상품권 발행이 무산된 뒷이야기,3000만원짜리 ‘황제 차’ 홍보하기 등 사례를 소재로 담고 있다. 양 차장은 “사실과 가공을 적당히 섞어 홍보의 세계를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려고 했다.”면서 “아이디어 발굴, 홍보와 마케팅의 관계, 인적 네트워크의 중요성 등 홍보에 필요한 실전 이론도 함께 소개했다.”고 말했다. 책 말미에는 ▲유목민처럼 이동하라 ▲거미줄 치기를 쉬지 말라 ▲전사(戰士)가 되어라 등 유능한 홍보맨이 되기 위한 13계명도 제시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홍보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는 상황에서 홍보의 이해와 실전에 참고하기 좋은 가이드북으로 활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발해제국사/서병국 지음

    발해사만큼이나 국가적 정체성에 대한 주변국가들의 시각이 엇갈리는 것도 드물다. 우리는 고구려를 계승한 제국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중국은 당나라 변방 소수민족인 말갈족이 세운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한다. 러시아는 발해를 말갈족이 세운 국가이긴 하나 당나라와는 무관한 독립국가로 보고 있으며, 일본 학계에선 발해가 독립국가이긴 하나 지배층은 고구려 유민이며 피지배층은 말갈이라는 이중구조설이 주류를 이룬다. 특히 중국은 이른바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이란 이론적 지침 아래 1970년대부터 발해가 당나라에 속한 지방정권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어 본격적인 정지작업을 해왔으며, 지금도 ‘동북공정’을 통해 이를 굳히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발해제국사’(서병국 지음, 서해문집 펴냄)는 부제 ‘발해가 고구려의 계승국인 34가지 이유’가 말해주듯 발해와 고구려와의 연관성을 다양한 각도에서 면밀히 살펴봄으로써 발해사가 우리 역사임을 밝히고자 한다. 최종 결론은 발해국이 고구려계와 말갈계의 공조로 세워졌으나, 그 발전을 주도한 것은 고구려계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이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발해국 주민이 대부분 고구려계라는 주장이다. 지배층은 고구려인, 피지배층은 말갈인이라는 기존의 통념과 달리 주민의 대부분, 즉 총인구의 70∼80%가 고구려 유민이었다는 점이다. 책에 따르면 말갈 사람들은 사냥터를 찾아 옮겨 다니는 수렵·유목민었던 반면, 고구려인은 대부분 정착해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낙후한 문화를 가진 말갈계는 결국 고구려의 문화에 흡수·동화됨으로써 계속 남지 못하고 고구려계의 옷으로 갈아입었다는 점이 조목조목 제시된다. 고구려계 사람들이 발해국을 주도하게 되면서 말갈의 풍속 또한 고구려 풍속에 완전히 압도되거나 동화되었으며, 발해의 문화는 ‘해동성국’이란 별칭을 얻었듯이 높은 문화수준을 자랑했다. 또 발해의 공예예술이 고구려의 것과 동일한 점, 발해국 문화에서 예술성·서정성·서사성 등이 강하게 묘사되고 있는 점도 고구려를 그대로 계승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이밖에 농업기술이나 매 사냥, 스포츠인 격구 등 농업기술과 수렵, 여가문화까지도 고구려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도 제시된다. 이로 인해 발해국은 초기에 고구려와 말갈계 양면성을 띠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고구려계의 단일성으로 바뀌었다고 지은이는 설명한다. 신라와 고려도 이같은 점을 인정해 발해국을 고구려 계승국가로 보았으며, 발해국 멸망 이후 발해국 사람들이 지도급 인물의 인솔하에 다수가 고려에 망명·이주한 것도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해준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은이는 머리말에서 지난 1990년 중국 옌볜대학에서 조선족 학자들 또한 발해국이 고구려 유민들을 중심으로 세운 나라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당국의 압력으로 이를 말이나 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귀띔을 받았다고 전한다. 결국 중국의 ‘화이사관’(華夷史觀)에 따라 발해국이 동북아시아의 오랜 이적(夷狄)을 대표하는 말갈족이 세운 국가로 둔갑됐다는 것이다.1만 49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1일 TV 하이라이트]

    ●현장르포 제3지대(KBS1 밤 12시) 창업을 통해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땀을 흘리는 고등학생들. 바로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의 ‘스쿨모터스’, 부산 영상고등학교의 ‘아이영상’, 선린인터넷고등학교의 ‘이누스’와 ‘벤처드림’팀을 이끄는 학생들이다. 고교생이 사장, 부사장이 되어 기업경영에 나서는 모습을 살핀다. ●세잎 클로버(SBS 오후 9시55분) 성우에게 흠씬 얻어맞은 창렬은 웃기만 할 뿐 말을 안한다. 성우는 창렬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 차려준 것을 끝으로 인연을 끊기로 한다. 마침내 세형과 연희의 약혼식이 치러지고, 세형은 약혼식 사이에 진아의 모습을 떠올린다. 연희는 세형의 표정을 보면서 불안감을 느끼고….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유목민들은 낙타 경주를 통해 대대로 물려받은 전투 기술을 보존하고, 부족의 정체성도 바로 세워간다. 수세기 동안 낙타는 사막의 유일한 장거리 교통수단이다. 이란 남동부의 유목민들, 오랜 침략과 전쟁으로 점철된 힘겨운 세월을 잊게 해준 전통 낙타경주를 소개한다. ●문화센터(EBS 오전 11시) 아이들과 대화할 때나 동화책을 읽어줄 때 작은 인형들을 이용해 보면 아이들이 더욱 흥미를 갖고 말에 집중력을 보이게 된다. 부직포나 색종이 등을 이용하여 만들 수 있는 작은 손가락인형 만들기에 도전해 보자. 또 도화지 한 장으로 그림자 인형을 만들어 재밌는 놀이를 즐긴다. ●TV특종 놀라운 세상(MBC 오후 7시20분) 태어날 때부터 옷입기를 싫어해 벗고 다녔다는 성하. 하지만 학교에 다녀야 해 이제는 도리없이 옷을 입어야만 한다. 그래서 선택한 복장은 반바지에 반팔 티셔츠. 문제는 1년 365일 이런 복장으로 다닌다는 것이다. 한겨울에도 반팔 차림인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극장-천사, 배우가 되다(KBS2 오후 8시55분) 영화에서 다운증후군을 가진 재명 역을 맡게 된 민휘. 조감독이 나서 민휘의 긴장감을 푼 뒤 촬영이 진행된다. 박흥식 감독의 큐 사인에 맞춰 민휘는 연기를 한다. 감독과 스태프들의 칭찬 속에 민휘는 무사히 첫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기차를 탄다.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 정감록에 미국이 나온다?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 정감록에 미국이 나온다?

    1945년 8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왔다. 그러나 미처 봄날을 음미할 새도 없이, 제2차 세계대전의 승자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에 진출해 38선을 그었다. 그 때 어느 유명한 신종교 지도자가 신도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선포했다.“미소의 두 힘이 서로 상대하여 버티나 태양이 중천에 오르면 밝은 세계가 되리라.” 태양은 누굴까? 중천에 오른다 함은? 전후 맥락 없이 튀어나온 이 선언에 신도들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메시지만은 분명했다. 미국과 소련이 이 땅에서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것은 잠깐이고, 곧 민족의 구세주가 등장하여 외세를 물리치게 된다는 것! 누가 구세주일까? 김구, 여운형, 조만식, 이승만, 박헌영…. 아니면 김일성? 세상 사람들은 거물 정치가들을 놓고 누가 믿을 만한 민족지도자인지를 점쳤다. 극좌파, 중도파, 극우파의 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라 각자 선택의 폭은 넓었으나 민심의 합일점은 없었다. 지난한 시기였다. 그 때 정감록의 신봉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국난을 뚫고 나갈 진인은 어디 있는가. 계룡산에서 도를 닦았다는 진인, 지리산에서 뛰쳐나온 진인, 주역에 능통한 진인, 부처, 예수, 공자의 영이 내린 진인이 속속 등장했다. 그러나 고대해 마지않던 진인은 나오지 않았다. 해방정국은 갈수록 꼬이더니 남북분단은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정감록’에 보이는 6·25전쟁 제2차대전 이후 전세계는 미소를 정점으로 한 냉전질서에 편입되었다. 양측의 긴장이 팽팽해지더니 1950년 마침내 6·25전쟁이 터졌다. 한국이 안고 있던 내부 문제가 곪아 터진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 미소 양측의 대리전쟁이라는 설도 있다. 원인이야 어떻든 전쟁이 장기화될 때 괴로운 건 민중이다. 그들은 난리가 언제 끝날지, 살아갈 방도는 무언지 필사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정감록 신봉자들은 가족을 이끌고 병화불입지지(兵火不入之地, 난리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땅)를 찾아 숨는 사람도 생겼다. 정감록 예언에 따라 충북 단양군 영춘면 삼풍리로 숨었던 사람들에게 직접 들은 이야긴데, 전쟁 내내 인민군은 커녕 국군도 본 적이 없었단다. 그들은 정감록의 영험을 믿는 듯했지만 그곳은 어느 편 군대도 진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지독한 오지였다. 꼼꼼히 정감록을 살피던 민중의 눈엔 요거다 싶은 예언 몇 구절이 눈에 띄었다.‘호랑이와 토끼해를 당하여 남북이 서로 솥의 발 같이 대치하리라.’ 우연히도 전쟁이 터진 1950년은 호랑이해인 경인년이었다. ‘금강산 서쪽과 오대산 북쪽은 12년간 도둑의 소굴이 된다.’는 구절도 있어 강원도 북부에 있는 금강산과 오대산을 경계로 남북이 무력 대치한다는 예언으로 볼 수 있었다. 다만 12란 숫자는 논란거리가 되었다. 남북의 대치기간이 글자 그대로 12년인가, 또는 갑자, 을축 이런 식으로 12지를 10간과 조합한 1갑자 60년인가? 총성이 멎은 지 벌써 52년째, 글자 그대로의 12년은 이미 지났고 60년 한 갑자가 되려면 8년이 남았다. 6·25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을 상징한다는 대목도 회자(膾炙)되었다.‘인천과 부평 사이 밤중에 배 1000척이 정박한다.’고 했다. 수도권에 ‘시체 더미’가 쌓인다고도 했다. 맥아더 장군이 수많은 전함을 거느리고 인천에 상륙했고 서울을 탈환했으므로 사람들은 그럴 듯하게 여겼다. 그러나 이 구절은 19세기 후반부터 민중을 떨게 했던 전쟁공포증의 흔적 또는 청일전쟁이 남긴 집단적 기억이 재현된 것이라고 나는 판단한다(연재 제1회 참고). ‘정감록’의 또 다른 구절도 민중의 눈길을 끌었다.‘두 서쪽 땅 곧 황해도와 평안도는 3년간 천 리 안에 사람과 불 때는 연기가 없을 것이요, 또한 동쪽 골짜기, 즉 강원도는 심히 꺼릴 땅이라.’ 사람들은 이 구절을 전쟁이 3년 동안 지속된 까닭으로 봤고, 뺏고 뺏기는 육박전이 벌어진 장소가 강원도였다는 예언으로 해석했다. 중공군의 개입,1·4후퇴도 예언되어 있었다.‘백두산 북쪽에서 오랑캐의 말이 긴 울음소리를 내면 평안도와 황해도 하늘에 원한 맺힌 피가 넘칠 것이다.’ 오랑캐라,1950년 한겨울 급작스레 대거 투입된 중공군으로 해석됐다. 중공군은 물밀듯 남하를 계속, 평안도 황해도를 삽시간에 휩쓸었다. 인해전술이란 말은 정감록에 안 보였지만 그 신봉자들에겐 1·4후퇴를 할 수밖에 없던 사정이 이해될 듯 했다. ●미국대통령을 ‘정도령’으로 착각? 그런데 ‘정감록’ 예언에 대한 기발한 풀이는 따로 있었다. 전쟁 당시 미국의 원수(元首) 트루먼! 트루(true)는 참 진(眞), 먼(man)은 사람 인(人)! ‘정감록’에 예언된 진인(眞人)은 다름 아닌 트루먼이라는 해석이다. 트루먼은 6·25전쟁이 일어나자 의회의 자문도 받지 않고 미군의 파병을 결정했다. 트루먼이 아니었으면 공산군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일어났다. 일제 식민지 후반, 특히 1937년 7월 중일전쟁 이후 민중의 살림살이는 참 고단했다.1945년의 해방도 반쪽짜리였고 민중의 형편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전쟁까지 터지자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바로 그런 시점에서 미국은 각종 구호물자를 한반도에 대량으로 투입하였다. 수만의 병력과 현대식 무기를 동원하여 전쟁도 수행했다. 사람들은 새삼 미국의 위력을 실감했다. 어떤 이들은 이처럼 구차히 살 바에야 차라리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기를 바랐다. 국회로 보내주기만 하면 미국에 가 달러를 더 많이 동냥해 오겠다며 표를 구걸하는 정치인들도 있었다. 그런 판국이라 미국 대통령을 진인, 정 도령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심지어 1953년 미국 대통령이 아이젠하워로 바뀌자 그가 진짜 정 도령이란 주장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말을 주고받은 민중도 많았다.“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라. 그리고 일본은 일어난다!” 미국-믿다, 소련-속다, 일본-일어나다. 다소 장난스러워 보이는 말투지만 미소는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란 인식이 확산된 결과 생긴 민중의 구호였다. 비록 패전국이긴 해도 일본을 조심해야 한다는 다짐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오래 전부터 민중은 일본뿐만 아니라, 서양 강대국들을 경원시했다.1894년 동학농민군이 내건 4대 구호 중에 ‘축멸양왜(逐滅洋倭, 서양놈들과 왜놈을 내쫓는다)’란 구절이 있어 그런 분위기를 잘 설명해준다. 그러다가 일제 말기 조상 전래의 성, 말까지 빼앗기자 민중은 주변국가인 중국과 소련에 다소 기대를 걸었다.‘조지로 목친다.’ 이 말이 민간에 퍼졌다. 조지란 남성의 성기를 뜻하는 남부지방 사투리다. 그것으로 어떻게 목을 자를까? 조(조선), 지(지나, 중국), 로(로서아, 소련)가 힘을 합해 목(목인, 히로히토 일본 천황)을 벤다는 예언이었다. 민중의 소망을 담았지만 꽤나 섬뜩한 내용이다. 누구나 한 번만 들어도 절대 잊을 수 없게, 그러나 아무도 그 뜻을 눈치 챌 수 없게 은어에 담았다. ●‘황해도서 난리 발생’ ‘삼국분기설’ 들먹 ‘정감록’으로 6·25전쟁의 참혹함과 미국의 개입을 읽었다니 얼핏 이해가 잘 안될 수 있다. 예언서에 보이는 오랑캐는 만주족 같은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을 경고하는 것으로 풀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고려 때는 북쪽으로부터 거란족, 여진족, 몽고족의 침입이 잇따르고 홍건적의 난도 있었다. 조선 초에는 여진족의 침입이 만만치 않았다. 인조 때는 청나라를 건국한 만주족이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을 일으켰다. 서북지역은 이민족의 침입로가 되다시피 했고, 그 지역 민중은 외침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기도 했다. 외침의 기억은 민중들에게 잊지 못할 일이 되었고, 이것이 ‘정감록’에 ‘백두산 북쪽에서 오랑캐의 말이 긴 울음소리를 내고’ 라는 식으로 정착된 것이다. 오랑캐의 말울음 소리는 현대에 와서 중공군의 남하로 이해되었다. 이런 변화는 ‘정감록’을 처음 전파시킨 조선시대 술사(術士)들로서는 전혀 예측 못할 일이었다. ‘정감록’에는 외침과 무관하게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에서 발생할 난리가 예고되어 있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서북지방에 대한 차별이 무척 심해서 그 지역 사람들의 불만이 컸다. 순조 연간에는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 여러 고을을 휩쓸었고, 그 와중에 많은 인명이 살상됐다. 사실 서북지방은 18세기 이후 과거시험에서 많은 합격자를 배출했다. 그럼에도 푸대접을 받았다. 내가 조사한 바로는 ‘정감록’이 가장 먼저 등장한 곳도 서북지방이었다. 대다수 서북지방 사람들은 조선왕조의 종말을 마다할 일이 없었고 그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런 사실들을 생각할 때, 북쪽에서 반란이 재발해 남북에 두 나라가 대치한다는 남북분국설이 정감록에 기록된 것은 당연한 일로 생각된다. 기왕 분국설에 대한 말이 나온 김에 몇 마디 보태보겠다.‘정감록’에는 삼국 분기설도 나온다. 나라가 세 동강 난다는 예언인데, 이런 말은 특히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까지 유행했다. 우리 역사에 삼국시대도 있었고 후삼국시대도 있었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고려 때도 이의민은 신라를 부흥시킨다는 구실로 경주일대를 소란케 했다. 이런 역사적 기억이 있어서겠지만, 민중은 나라가 혼란에 빠질 때면 3국 분기설을 들먹였다. 그런데 3이란 숫자는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코드다. 미륵이 하생할 장소도 산이나 물이 셋으로 나뉘는 곳이었고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길지(吉地) 중에도 3도봉 같은 곳이 포함된다. 지금까지 알아 본 역사적 배경은 아랑곳없이 현대의 정감록 신봉자들은 ‘정감록’에 보이는 서북지역의 혼란상을 국토분단,6·25전쟁의 참상, 또는 1·4후퇴를 예언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민중의 예언 해석에는 시대적 맥락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할아버지 세대가 그 구절을 뭐라 해석했든, 나는 내 시대의 문제를 푸는 새 해석을 좇겠다는 식이다. 이런 태도에서 예언 문화엔 층위랄까 나이테가 보태졌다. 현대의 민중이 미 대통령 트루먼을 ‘정감록’에 언급된 진인으로 본 것은 어떤가. 진인이란 새 왕조를 열 국왕으로 해석하는 것이 보통이었고, 정씨 성을 가진 이가 나타나 계룡산 아래 도읍을 정한다고 보는 것이 사실상 정설이다. 우리 역사에서 진인의 도래설이 처음 나타난 것은 17세기였다. 그 때부터 오랫동안 해도진인설(海島眞人說, 섬에서 진인이 나온다는 예언)이 인기를 끌었다. 역모를 꿈꾼 사람들은 늘 진인의 출현을 주장했을 정도다. 어쨌거나 진인은 기존질서에 대항해 싸울 영웅이었다. 그런 진인이 1950년대에는 세계 최강대국을 이끄는 지도자, 기존질서의 사령관인 트루먼으로 둔갑했다. 합리적·체계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한 현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정감록’ 신봉자들의 해석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논리적으론 말이 안 된다. 그럼에도, 시의에 맞기만 하면 민중은 꽤 엉뚱한 해석에도 환호한다. 수백 년 동안 ‘정감록’이 생명을 이어온 까닭은 그것이 시대상황에 맞게 새로 해석될 여지가 많아서다. ●예언서는 민중의 마음을 보여주는 거울 해방 이후 미국의 중요성은 국가 차원에서든 개인의 일상생활에서든 날로 커졌다. 민중은 ‘정감록’에서 미국에 관한 구절을 찾느라 열심이었다. 도대체 미국이란 나라가 이 세상에 있는 줄도 모르던 아득한 시절에 만들어진 ‘정감록’에서 미국에 관한 기록을 찾는다? 여간 우스운 일이 아니지만 필요는 때로 발명이나 발견을 낳는다. ‘정감록’에서 꺼낸 트루먼 진인설과 인천상륙작전설은 억지스러운 발견이었다.1970년대 이후 민중은 미국에 대한 그 이상의 예언을 요구했던지 새 예언서가 등장했다.‘격암유록’,‘율곡비기’,‘송하비결’ 등이 새로 나온 예언서다. 그 중 어떤 것은 특정 종교단체가 배후 조종하여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심지어 기독교 계통의 신종교 단체도 예언서를 빌려 지도자에게 절대권위를 부여한 흔적이 있다. 새 예언서에는 한·미관계가 자주 나온다. 어느 책에는 9·11사태(2001년 9월11일 발생한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사건)도 언급되어 있다. 더욱 경악할 내용도 있다. 미국은 2004년 북한을 폭격하기 시작해,2005년까지 공격을 계속한다. 그리고 2004년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는 재선에 실패하고 이슬람교도의 저격으로 사망한다는 등등의 예언이 보인다. 그러나 아직까지 미국은 북한을 폭격하지 않고 있으며, 부시는 보란 듯 재선에 성공해서 백악관에 건재하다.2004년의 예언은 완전히 빗나갔다. 내 관심사는 한국 민중이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빗나간 예언에도 투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최근 친미와 반미를 둘러싼 논쟁이 한국 사회의 중요 이슈로 등장했는데 민중의 다수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지배질서에 반감을 품고 있다. 민중은 부시의 대북 강경노선을 못마땅하게 여겼기에, 부시의 낙선과 암살을 예언한 것이다. 민중은 부시를 미워하면서도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서 부시의 북한 폭격설까지 예언으로 등장한 것이다.50년 전엔 현직 미 대통령을 진인이라 일컫던 것을 생각하면 금석지감(今昔之感)이 있다. 민중이 직접 예언서를 저술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민중은 예언의 내용을 결정한다. 노스트라다무스든 ‘정감록’이든 사정은 똑같다. 민중의 심리를 정확히 반영한 예언서는 민중의 사랑을 받고 그 생명도 길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예언서는 곧장 버림을 받는다. 민중은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정감록’을 해석해왔다. 시대가 바뀌면 그 해석은 늘 달라졌다. 한 시대의 해석은 다른 시대가 되면 효력을 상실한다. 그러나 내가 정감록을 바라보는 관점은 통시대적이다. 미셸 푸코가 말한 지식의 계보학에 가까운 입장이다. 푸코의 말처럼 시공간이 바뀌면 지식과 기억은 변화된다. 요컨대 변화된 사물의 의미를 계보로 정리하는 것이 지식 계보학이다. 나의 정감록 산책도 그렇다. 정감록에 담긴 의미의 변천을 역사적으로 정리하는 것, 이것은 한국 역사와 문화의 나이테를 읽는 새 방법일 것이다. 백승종(푸른역사연구소장)
  • [기고] 행정특별시가 대안이다/이성구 홍익대교수·명예논설위원·신행정수도 포럼 준비위원장

    앨빈 토플러는 21세기는 정보의 속도가 권력의 원천이라고 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위기의 지구도시에서 ‘생존을 위한 협동본능만이 미래의 희망’이라고 했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이념이 아닌 삶의 질이다. 이렇게 볼 때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정보를 균점하고 수도권과 지방의 공동생존을 위해 입법 사법 행정의 3권 중 행정을 선비도시인 연기·공주에 이전하는 것은 타당한 대안이다. 지금까지 수도권 과밀이 행정수도의 이전의 필요성으로 주장되었으나 핵심은 아니다. 핵심은 모든 권력, 정보가 수도권에 집중되었다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온갖 부정과 부패, 비리가 수도권에 집중되었고 도덕적 해이의 온상이 되었다. 사필귀정이다. 조선조 이래로 서울은 중앙집권적 관인지배체제의 본산이었고, 모든 물류와 정보와 행정인사가 서울에서 이루어졌다. 광복후 우수 대학이 서울에 집중되었고, 정부주도형 경제정책이 지속되었으며,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 결과 수도권으로 인구는 집중되고 지방은 황폐화되었다. 모든 국민에게 대한민국=서울공화국으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소련이 왜 망했고, 거대한 천년제국 로마는 왜 순간적으로 망했는가? 비대 권력이 모스크바, 수도 로마에 집중되었고 권력의 전횡과 부정, 부패의 온상이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소련에서는 모스크바를 제외하고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변방지역은 회색빛 절망지역으로 전락하여 기초 수급대상지역으로 변했으며 소연방 공산주의의 해체만이 대안이었다. 로마의 패망은 겉으로는 외침 때문이라지만 실제는 부패와 사회적 갈등이 이유였다. 지배층들은 외적이 쳐들어오는데도 제위 계승전쟁을 벌이고 내부갈등과 부패 때문에 지킬 힘도 없고 지킬 필요도 없는 나라가 됐던 것이다. 통일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도 행정특별시 건설은 필요하다. 머지않아 필연적으로 통일이 실현된다. 그때 수도를 서울, 평양이 아닌 제3의 곳에 두어야 한다. 통일정부는 권력의 독점이 아닌 분점이 이루어지고 부정과 부패의 산실이 아닌 청렴한 선비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셋째로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위해서도 행정특별시가 대안이다. 행정특별시의 건설은 지역경제를 살리는 출발점이 된다. 어느 시골 군에서는 젊은층이 모두 빠져나가 1년 내내 신생아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수도권만 비대해지면 지방은 모두 기초수급대상자로 전락해가고 만다. 그럴 경우, 공동체의식은 사라지고 우리 민족 고유의 ‘우리의식’(we-feeling)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우리의식’의 소멸은 한민족 해체를 의미한다. 이제야말로 수도권 중심의 관인지배적 중앙집권주의는 극복되어야 하며 민주적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이곳이 내 조국이요, 내 나라라고 하는 국민정체성을 회복시키기 위해 국회, 사법부, 청와대를 제외한 모든 기초행정단위는 행정특별시로 귀결시켜야 한다. 넷째, 행정특별시는 중증비만환자로 전락한 수도권을 살리는 길이다. 수도권 비대화로 서울은 교통지옥, 환경오염의 대표도시로 전락했다. 최근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터진 재난은 무엇을 경고하는가? 자연환경의 파괴, 오존층 파괴는 인류문명이 삽시간에 종식될 수도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서울을 살리는 길은 수도권 과밀해소, 친환경적 도시로 거듭나는 일이다. 우선 행정기능만이라도 작은 도시 공주·연기에 보내어 소돔과 고모라의 재앙에서 벗어나게 하자.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일은 이기주의적 부동산 망령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강토는 한민족 모두의 것이며 우리 후손들이 매달려 살아야 할 유일한 유목물품인 것이다. 삶의 질의 향상을 위해서는 행정특별시만이 현재의 대안이다. 이성구 홍익대교수·명예논설위원·신행정수도 포럼 준비위원장
  • 새 산문집 펴낸 김지하 시인

    새 산문집 펴낸 김지하 시인

    김지하(63) 시인이 산문집 ‘생명과 평화의 길’(문학과지성사 펴냄)을 냈다. 지난 2년여 동안의 강의와 여러 매체에 발표해온 글들을 묶은 이 책은 21세기 세계 속 한반도 역할에 대한 전망과 붉은악마 세대에 보내는 메시지로 채워졌다. 4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만난 김씨는 “세계질서를 다듬는 데 있어 동아시아적 담론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라면서 “인간 내면의 황폐, 전쟁과 테러, 신자유주의 세계화 과정에서 생긴 문제 등을 고민해보는 글들”이라고 책을 소개했다. 오랫동안 생명운동을 주창해온 그가 정의한 오늘날은 ‘대혼돈(Big Chaos)의 시대’.“끝없는 절망과 문명에 대한 회의가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전제한 그는 동아시아, 특히 한국의 ‘붉은악마 세대’를 주목했다. “새로운 문화의 길, 새로운 문화코드는 새 세대 즉 700만 붉은악마 세대만이 성취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신화와 과학, 고대와 미래, 디지털과 아날로그, 정착과 이동, 중력과 초월 등 쌍방향 통행이 가능한 세대는 지금의 10·20대,30대 초반 네트워크 세대뿐이라고 나는 봐요. 이들에게서 새 시대의 생명과 평화의 희망을 바라볼 수 있는 겁니다.” 붉은악마 세대에 대한 고찰은 산문집의 뼈대를 이룬다. ‘치열한 민족의식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세계인으로서의 보편의식과 아시아인으로서의 분권적 융합의지를 보여주었다.(…)수많은 군중의 의상이 붉은색 셔츠 일색이어서 통일성과 융합(퓨전)을 드러냈으나 동시에 그 패션은 수천만가지로 각양각색이어서 철저한 개성과 개체성(아이덴티티)을 과시하였다.’(‘붉은악마의 세가지 테마에 관하여’ 중에서) “바람직한 세계질서를 위해서는 기존의 ‘연합’이나 ‘커뮤니티’ 형태가 아닌 ‘탈중심적 네트워크’가 구축돼야 하는 것”이라고 밝힌 그는 “붉은악마 세대가 뭉치고 소통하는 형식이 다름아닌 ‘탈중심적 네트워크’란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책 곳곳에서 미래사회를 예견하기도 했다.“19세기 한반도를 휩쓸었던 동학과 정역(正易) 등 후천개벽사상이 새로운 생명학의 도인(導因)으로 부활할 것”이라면서 “중국의 주역(周易)과 한국의 정역이 서양과학과 결합해 머지않아 새로운 우주과학으로 차원변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것이 이른바 혼돈질서(카오스모스,Chaosmos)의 새 과학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12월 시집 ‘유목과 은둔’을 펴내기도 했던 그는 “이번 산문집을 끝으로 담론글은 마무리짓겠다.”면서 “동화책도 내고, 그림전시회도 갖는 등 쉬워서 정이 가는 글쓰기를 하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아시아 여성의 恨 담긴 자장가

    EBS FM(104.5㎒)은 2003년 방송위원회 프로그램 기획 부문 수상작인 2부작 특집 라디오 다큐멘터리 ‘삶과 꿈의 소리, 자장가’(연출 오정호)를 31일과 새해 1월1일 오후 1시에 방송한다. 연출을 맡은 오정호 PD가 직접 글을 쓰고 가수 김창완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오정호 PD는 “지금껏 대부분의 자장가 다큐는 고작해야 사라져가는 한국 전통 자장가의 현주소 확인이나 외국 자장가 소개가 전부였다.”면서 “이를 벗어나 아시아에서 자장가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의미를 짚어보려고 시도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삶과‘ 제작진은 이를 위해 6개월에 걸쳐 몽골, 베트남, 일본 등 아시아 3개국을 현지 취재했다. 동물을 위한 몽골의 자장가, 전쟁과 식민지시대라는 질곡의 역사를 보여주는 베트남 자장가, 부잣집에 보모로 팔려간 10대 소녀들의 한을 담은 일본 자장가 등을 되짚어 보며 ‘아시아에서의 자장가는 가족과 공동체의 기억’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1부 ‘자장가의 고향, 베트남의 숨결을 듣다’(31일 오후 1시)에서는 가부장제로 인해 억압받은 여성들의 한이 반영된 베트남 전통 자장가를 살펴본다.2부 ‘영원한 어머니의 노래-몽골, 일본의 자장가’(1일 오후 1시)에서는 몽골 유목민의 동물을 위한 자장가와 일본 소녀들의 한을 담은 일본 전통 자장가의 연원 등을 알아본다. 채수범기자 lokavid@seoul.co.kr
  • [5일 TV 하이라이트]

    ●청소년 원탁토론(EBS 오후 8시10분) 학생 10명 중 9명은 받고 있다는 사교육의 허와 실은 무엇이며 사교육 체제가 가질 수밖에 없는 문제점은 과연 어떤 것인지 알아본다. 학생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우리나라 사교육의 허와 실을 짚어보고, 학생들이 원하는 교육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부모님 전상서(KBS2 오후 7시55분) 창수는 고집을 부려 성실을 데려다 준다며 같이 내려왔는데 마침 안교감과 마주쳐 집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유없이 우는 준이에게 일어나라며 소리 지르던 와중, 준이의 몸부림에 밥상이 허물어지자 성질을 이기지 못하는 창수. 그 모습을 본 안교감은 창수의 따귀를 때린다. ●결정!맛 대 맛(SBS 오전 10시50분) 풍성한 채소와 담백한 닭고기가 어우러져 불판 위에서 맛의 조화를 선보이는 춘천 닭갈비. 곱게 다진 갈비살에 맛있는 양념이 밴 정성의 맛 떡갈비. 닭갈비와 떡갈비의 진정한 맛대결을 선보인다. 조형기, 컬투, 박찬민, 안선영, 윤기원, 진재영, 현영, 은이 출연한다. ●인사이드 월드(YTN 오후 1시25분) 가뭄은 에티오피아 사람들에겐 삶의 일부다. 인구가 밀집된 고지대를 벗어나 이동하는 것이 생존의 관건이다. 어떤 때는 덥고 메마른 저지대가 오히려 생산력이 좋을 수도 있다. 에티오피아 저지대에서 목축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유목민의 생활을 살펴본다. ●실험쇼 진짜?진짜!(MBC 오전 9시55분) ‘호동이의 실험실’에서는 모성애의 놀라운 힘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살펴본다. 올해 초 영국에서는 모성애가 유발되는 엄마의 뇌반응과 사랑에 빠진 여성의 뇌반응이 일치하는 놀라운 결과가 밝혀졌다. 과연, 아이와 사랑에 빠진 엄마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불멸의 이순신(KBS1 오후 9시30분) 여진족에게 평화협상을 제의하는 이순신. 곱단의 안전한 귀환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하지만 북병사 이일은 포로송환 문제에 소극적이다. 여진족 내부에서도 포로교환에 대한 회의론이 대두되고 있던 터에 종성부사 원균이 민간 백성과 밀거래를 하던 여진족을 참수하는 일이 발생한다. ●특선다큐〈미지의 세계〉(iTV 오후 8시20분) 학자들은 인류가 어류에서부터 기원됐을 거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지느러미로 헤엄치던 어류에게 어떻게 그리고 왜 다리가 생기게 됐는지는 진화의 측면에서 오랜 세월동안 수수께기로 남아 있었다. 인간이 다리를 갖게 된 배경을 데본기의 어류에서부터 알아본다.
  • [生生 인터뷰] 새시집 ‘유목과 은둔’ 펴낸 김지하 시인

    [生生 인터뷰] 새시집 ‘유목과 은둔’ 펴낸 김지하 시인

    9번째 시집을 낸 김지하(63) 시인을 지난 30일 아침 일산에서 만났다. 신도시의 회색빛 늦가을이 희멀겋게 내려다뵈는 오피스텔 11층. 그곳에서 이태째 거처해온 시인은 많이 쇠잔해져 있었다. 생로병사의 성벽 앞에 순하게 무릎을 접는 시인 김지하를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새 시집 ‘유목과 은둔’(창비 펴냄)에서 시인의 키는 낮아졌다. 시대를 발언하는 사상가, 운동가이기보다는 생활인으로 돌아와 목청을 낮게 다듬었다. 그 자신 “가장 허름하고 가장 허튼 글모음”이라고 당찮은 겸사로 메어친다. 그러나 잦아진 사변적 발언들에 사뭇 달라진 시인의 지향을 감지하게 되는 건 사실이다. 틀림없이 그는 어느 때보다 삶에 밀착했다. ●현기증·고혈압… 육체적으로 지쳐 “육체적으로 아주 지쳐 있어요. 현기증에 좌골신경통, 혈압까지. 육체가 지치는 데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거든. 논리적 담론 형태의 글쓰기를 쉴 때가 온 거라.” 94편의 시를 묶은 시집에서 그는 평범한 생의 순리에 자주 귀를 내맡겼다. 첫 시 ‘몸’(시인이 가장 아끼는 시)으로 “예전엔/잘 몰랐지//몸이 무너지면서/몸을 알았지”로 운을 떼더니 “늙어가는 길/외로움과 회한이/가장 큰 병이라는데//사람이 그리우나/만나기는 싫다”(‘오늘’)며 게으른 회한을 쏟아내기도 한다. 지친 몸과 죽음에 대한 사유도 부쩍 깊어졌다.“고담준론도 질퍽하게/아아/무엇이 아쉬우랴만//문득 깨닫는다//죽음의 날이 사뭇 가깝다는 것”(‘김지하 현주소’)이라고 물끄러미 오늘 발아래를 내려다보는가 하면,“자유당 말기의/내 정신풍경을 한마디로 뭐라 할까//매독환자/아니면/아편쟁이(…)이제는 아무것도/아무것도 없고//외로움밖에 없고//후회할 일밖에 없으니//참/개똥같은 인생”(‘김지하 옛주소’)이라고 쓸쓸히 탄식한다. “조동일(계명대 석좌교수)씨가 얼마 전 지용문학상 시상식에서 만났더니 그럽디다. 미학적으로 정련된 시, 엄격히 리듬을 따진 시만 쓰지 말고 이젠 좀 쉽고 허름한 시를 써보라고. 그렇게 열편 스무편 막 쓰다 보면 거기에 사금파리가 들어 있는 거라면서…” 지난 시절 민중문학운동을 함께 했던 지우의 권유에 시인은 진지하게 귀를 열었다.“동화를 쓸 요량입니다. 붉은악마 세대의 감수성에 맞추되 신화적 상상력을 움직이는 그런 동화 말이지.” 동화의 환상성과 소설의 리얼리즘을 모아 집필에 들어간 동화는 내년 여름 이후 발표할 계획이다. ●4년쯤 뒤 생명운동에서 은퇴 “내후년쯤부터 차츰 후배들한테 지금 일(‘생명과 평화의 길’ 이사장을 맡고 있다)을 넘겨주면서 늙은 그루터기 역할을 할 생각”이라는 그는 “4년쯤 뒤엔 생명운동에서 은퇴할까 한다.”고 했다.“앉아만 있어 달라고들 하니 죽은 제갈량이지 뭐.(웃음)” 시인은 “앞으로의 내 시는 문명을 비판하는 잠언쪽으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 형식적으로 쉽고 짧은 시를 쓰겠다는 부연설명도 했다. 이번 시집 속에도 시의 뜻을 곧추 세우는 고백글이 들어있다.“50여년을 내내/시를 써온 이 뒷날에야/느지막이 시의 뜻을 세운다//다시 태어나리라//한 작가로,/꼭 자유자연만이 아닌/활동하는 무(無),/흰 그늘로//(…)//다시 진화하리라”(‘재진화(再進化)’) “육신이 지쳤다.”는 말을 인터뷰 도중 여러번 했다. 그러나 영혼의 나이만은 더 먹지 않으려는 시인의 정신은 청청히 살아 있다.“나는 언제나/반역의 사람/(…)/살아있다면/친구여/바람을 거슬러라”(‘바람이 가는 방향’)라고 반역의 정신을 드러낸 시인은 “나이를 먹어도 비판정신만은 늙지 않는 미국의 삐딱이 사상가 노엄 촘스키가 부럽다.”고 고백했다. 그는 내년 초 산문집 ‘생명과 평화의 길’(문학과지성사)과 미학이론을 다듬은 ‘흰 그늘의 미학’(실천문학사)을 또 내놓는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좋은도시 만들기](3)’담장’ 쌓은 임대·일반아파트

    [좋은도시 만들기](3)’담장’ 쌓은 임대·일반아파트

    “한 단지에 살지만 아이들의 등하굣길조차 서로 달라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성격이 비뚤어질까 걱정됩니다.” 2000여가구가 모여 사는 성북구 길음동 임대주택 동부아파트의 주민 정이선(43·여·가명)씨는 요즘 매일같이 단지내 이웃 주민들과 감정싸움을 벌이고 있다. 인근의 미아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아들의 등하굣길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다. ●5분거리 학교를 20분 돌아서 다녀 동쪽으로 난 임대 아파트 정문만 통해서 다닐 수 있지 서쪽을 향하고 있는 일반분양 아파트의 정문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 임대아파트와 일반아파트사이에는 철망 형태의 담이 설치돼 주민의 이동이 불가능하다. 이로 인해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초등생 80여명이 단지를 빙돌아 학교에 가는 불편을 겪고 있다.5분거리를 20여분정도 더 돌아다니는 것이다. 정씨는 아이들의 등하굣길 불편을 덜어주고 싶어 실랑이를 벌이지만 혹시 아이들에게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갈등으로 비쳐져 더 큰 마음의 상처를 안겨주지 않을까 마음이 아프다. 이 곳 아파트내 300가구의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아이들의 이런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해 벌써 2개월 넘게 한 단지내 일반아파트 주민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쪽문설치를 요구하는 집회도 해보고 서명작업도 펼쳐봤지만 좀처럼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사유지’ 핑계 쪽문설치도 반대 주민 대표로 나선 이정원(50·여)씨는 “위험하다, 사유지라서 안 된다는 등 갖가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거부당하고 있다.”며 “이는 임대아파트 주민들을 같은 단지의 이웃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개하고 있다. 이씨의 말처럼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민 대부분은 이런 억울함과 불편을 삭이며 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관악 드림타운, 두산아파트 등지에서도 여전히 임대와 일반아파트 주민들을 분리시키는 담장과 주차장 등으로 주민간에 갈등을 빚고 있다. 용산구 도원동의 삼성 래미안아파트도 일반아파트와 임대아파트를 높은 담장과 서로 다른 출입구로 단절시켜 놓아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임대=저소득층’ 편견 만연 우리나라에서는 ‘임대아파트=저소득층거주아파트’라거나 임대아파트 지역내의 학교는 문제가 있다는 식의 잘못된 편견까지 작용하고 있다. 임대와 일반아파트 주민간에는 재산상의 격차만큼이나 높은 장애물이 놓여 있는 것이다. 최근 서울시의회는 임대아파트를 별도로 배치하지 않도록 하는 ‘서울시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중개정조례안’을 의원발의로 상정, 통과시키는 등 임대와 일반 아파트주민간의 갈등을 없애는 노력을 다각도로 펼치고 있다. 조례안을 발의한 정호동(한나라당·노원1)의원은 “같은 단지내 어린이들도 임대와 일반아파트를 구분해 따로 어울리는 게 현실”이라며 “개선책 찾기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도시연구소는 임대·일반아파트 주민간 갈등의 원인은 ‘집값 하락’을 이유로 가난한 사람들과 같이 섞여 살기 싫어하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남원석 연구원은 “선진 외국의 경우 임대주택 주민들의 역량 개발을 위해 직업교육 및 공동체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히고 “이웃이라는 공동체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문화행사나 봉사활동 등을 적극 지원해주는 행정적 뒷받침과 사회적 분위기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더불어 살기’ 은평뉴타운 첫 시도 다양한 계층이 모여사는 ‘소셜 믹스(Social Mix·더불어 살기)’가 국내에서도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찬반론도 팽팽하다. ●같은 棟에 임대·분양가구 동시 배치 서울 은평뉴타운이 주목받는 이유중의 하나는 국내에선 처음으로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섞어 짓기 때문이다. 은평 1구역의 아파트는 18∼60평형으로 다양하게 구성됐다. 분양아파트(2750가구)와 임대아파트(1471가구) 비율이 6대 4 정도이다. 특히 같은 동에 분양 및 임대가구가 동시에 들어서는 아파트도 상당수 배치됐다. 서울시 이건기 뉴타운사업반장은 “기존 재개발아파트도 임대아파트를 일정부분 포함하고 있지만, 단지가 다르고 상호교류가 단절된 상태여서 사실상 별도의 아파트로 간주해야 할 것”이라면서 “진정한 의미의 소셜 믹스는 은평뉴타운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건설교통부는 국민임대단지안에 일반아파트와 임대아파트를 섞어 짓도록 할 방침이다. 내년 4월부터는 재건축단지내 임대아파트 건설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또 지난 11월 경기도 시흥능곡지구 실시계획을 승인하면서 첫 블록은 일반, 그 다음 블록은 임대아파트를 짓도록 했다. 찬성론자들은 여러 계층이 조화와 통합을 이룰 방법론적 대안을 ‘소셜 믹스’에서 찾고 있다. 서울시립대 건축도시조경학부 박철수 교수는 “현재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주민들은 라이프스타일과 성장단계에 따라 유목민처럼 이사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면서 “소셜 믹스가 이뤄지면 정주성을 확보할 수 있고, 정주성이 지속되면 자발적인 커뮤니티가 형성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커뮤니티 형성” “시장원리” 찬반양론 그러나 소셜 믹스는 부동산가격 하락 등을 우려하는 기득권층과 상대적 박탈감이 커질 것이라는 소외계층의 현실적 주장에 막혀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다. 건설업체 관계자는 “오히려 떨어져 사는 게 나아 보인다.”면서 “건축과정에서 소셜 믹스를 꺼리는 시장원리를 무시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장영희 박사는 “임대료를 임대주택의 종류가 아닌 입주자의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화하면 다양한 규모와 형태의 가족이 함께 거주할 수 있다.”면서 “여기에 ‘쿼터제’를 도입해 특정 소득계층이 몰리는 현상을 보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만 인위적인 소셜 믹스는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평택대 도시계획학과 윤혜정 교수는 “신도시를 개발할 때는 소셜 믹스를 시도할 수 있지만, 재개발이나 재건축 과정에서는 기존의 커뮤니티가 유지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서울 시범·시민·시영아파트 현황 시범·시민아파트에는 현재 전형적으로 저소득층이 살고 있다. 이들 주민은 국·공유지를 빌려 자신들의 아파트를 지은 대신 대부료를 내야 하나 지금까지 30여년간 한푼도 납부하지 않았다. 공공용지 사용 대부료는 연간 공시지가의 5%이다. 또 공공용지를 무단으로 점유했을 경우 대부료의 20%를 얹은 변상금을 물어야 한다. 지방재정법은 채무의 소멸시효를 5년으로 규정, 서울시 등은 적어도 이 기간 동안의 대부료를 청구할 수 있지만 청구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계약서에 관련규정을 담지 않아 (대부료를 납부하지 않아도 되도록) 관행적으로 굳어진 것 같다.”고 털어놨다.‘잘못 꿰어진 첫 단추’를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바로잡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시민아파트는 지난 1969년 국·공유지에 난립한 무허가건물을 정비하기 위해 서울시가 건물의 골조만 지어 분양한 아파트로 모두 32개 지구에 434개동 1만 7353가구가 지어졌다. 이후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하자 서울시가 건물을 매입해 현재 대부분 철거가 이뤄졌고, 주민들에게는 택지개발지구내 아파트 우선입주권이 주어졌다. 완공 1년만인 1970년 4월 붕괴돼 대형 인명피해를 낳은 마포구 창전동 와우아파트도 시민아파트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서울시는 시범아파트를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범아파트는 시민아파트와 달리 일반아파트와 동일한 방식으로 분양이 이뤄져 안전관리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주민들에게 있지만 문제는 부실이 크게 진행되는 데도 서울시가 주민에게 책임을 미루는 데 있다. 안전점검에서 지자체가 개입할 의무가 있는 D등급이하가 나오지 않았다고 위안만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시영아파트는 건물뿐 아니라 토지까지 주민에 팔아 완전 민영방식으로 분양된 아파트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이사람] 조선옥새 맥잇는 전각장 민홍규씨

    [이사람] 조선옥새 맥잇는 전각장 민홍규씨

    경기도 이천 시내를 벗어나 설성면 장천4리, 속칭 독정 마을에 이르면 가래나무가 인상적인 시골집이 하나 있다. 전통 옥새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옥새전각장 세불(世佛) 민홍규(51)씨의 집이다. 오죽(烏竹)과 어우러진 능진수원(能盡水源·생명이 다할 때까지 행한다)이라는 당호가, 집 주인이 하고 있는 일이 예사롭지 않은 것임을 일러준다. 토불(土佛) 황식에서 시불(示佛) 황소산, 석불(石佛) 정기호로 이어지는 전통 옥새의 제작기법을 계승해 오고 있는 유일한 인물인 그를 이천 집에서 만났다. ●열여섯살때 ‘석불’ 정기호 만나 인연 “서울생활을 접고 이곳에 내려온 지 10년이 됐습니다.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이곳은 용터라고 할 수 있어요. 땅의 기가 세, 아무나 살기 힘든 터라고 하지만 창작활동을 하기엔 더없이 좋은 장소이지요.” 민씨는 자신의 작업이 방해 받을까봐 동네 면사무소에서 만들어준 ‘옥새 보러가는 길’이란 집 안내 팻말도 없애 버렸다고 한다. 옥새는 왕이 사용하는 도장으로, 중국 진시황제가 옥에 새긴 도장을 쓰면서 ‘옥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옥새는 도화원 화공이나 교서관·서자관 관원 중에서 예술성과 장인정신을 인정받는 사람 한 명에게만 그 기술이 전수됐다. 위조를 막기 위해서다. 옥새의 전통을 외롭게 이어가고 있는 민씨로서는 그만큼 책임감이 클 수밖에 없다. 열 여섯 살에 석불 정기호를 만나 옥새와 인연을 맺은 민씨가 조선왕조 옥새 복원작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15년 전부터.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최초의 국새를 만든 전각예술의 대가 석불이 1989년 세상을 떠나자 옥새의 명맥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그는 밤잠을 잘 수 없었다. 이후 조선왕조실록, 경국대전,‘어보의궤’, 규장각 문서인 ‘보인부신총수’등 옛 문헌을 뒤지며 옥새 제작의 흔적을 찾아내는 데 더욱 몰두했다. ●옥새문화계승 우리나라밖에 없어 잘 알려진 대로 일본은 1905년 을사조약을 체결한 후 고종황제의 옥새를 찬탈하는 데 열을 올렸다. 옥새는 곧 왕권이자 국권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제는 고종이 쓰던 73개에 이르는 옥새를 모두 빼돌렸다. 그중 절반가량은 현재 복원돼 있는 상태. 민씨는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은 해인 지난 98년 일제 때 소멸된 옥새 5과를 경기도 박물관에 복원 기증한 것을 비롯,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옥새를 만들어 기증했다.“돈이나 명예에는 욕심이 없습니다. 우리의 문화를 지킨다는 자부심만이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지요. 주위에서 나의 옥새 작업을 격려해 주는 분들이 쌀이며 가전제품이며 여러가지 정성어린 도움을 주고 있어요.” “전통방식의 옥새문화를 계승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습니다. 중국은 문화혁명 이후 옥새의 맥이 끊어졌고, 일본도 국보급 전각가인 고바야시 도완이 지적했듯이 전통 옥새의 주조기술이 전수되지 않아 재현이 불가능한 상태예요. 국가를 상징하는 옥새는 소중하게 보존 계승돼야 합니다.” 민씨는 먼저 옥새와 옥새전각장이라는 이름의 내력부터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조선 고종 13년(1876)에 제작된 ‘보인소의궤’를 보면 국가를 상징하는 인장을 보인(寶印), 그것을 만드는 장인을 보장(寶匠)이라 적고 있습니다. 그런데 1897년 대한제국으로 국호가 바뀐 뒤 고종이 임금의 도장이 보인, 어보(御寶)등 옥새보다 낮은 격으로 불려왔음을 알고 칙령을 내려 옥새라고 품계를 올려 부르게 된 것이지요. 이때부터 그것을 만드는 장인의 명칭도 보인을 새기는 보장에서 옥새를 ‘전각하는’ 옥새전각장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궁중문화 꽃이자 종합예술 옥새는 궁중문화의 꽃이자 명실상부한 종합예술이다.“옥새는 서예와 조각, 회화, 전각, 연금술, 도자기술, 주조기술 등 적어도 7개 분야를 모르고선 접근할 수 없다.”는 게 민씨의 말. 그런 점에서 민씨는 가히 ‘르네상스 맨’이라 할 만하다.1990년 현대서예협회를 만들어 글씨체 현대화운동을 주도한 민씨는 추상회화와 서예가 접목된 작품들을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서예 작품에 나부를 그려 넣어 ‘문제작가’ 소리를 듣기도 했다. 스무살 무렵부터 시작한 목가산(木假山) 작업은 그의 예술가적 독창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두툼한 황유목(黃油木) 판에 부조 형식으로 새겨진 산수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예술이다. 민씨는 최근엔 모필 대신 죽필(竹筆)를 즐겨 쓰고, 칡뿌리 끝을 두드려 만든 갈필(葛筆)작업까지 시도하고 있다.‘자연과 호흡하는 예술’을 실현한다는 의미에서다. 또 예서와 행서, 초서, 전서, 해서 등 5체를 섞어 쓴 ‘녹서(綠書)’라는 새로운 서체의 병풍을 완성했는가 하면, 옥새가 묘사된 ‘예궐반차도(詣闕班次圖)’도 그리고 있다.“그러나 중요한 건 다시 옥새입니다. 창작의 고통과 희열은 옥새에 온전히 바쳐질 때 비로소 제값을 다할 수 있지요.” 민씨는 진흙 거푸집을 사용한 전통주조법을 계승하고 있다. 진흙용주(鎔鑄) 기법으로도 불리는 이것은 고대 주조기술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가 만드는 옥새는 인뉴(印 )에서 더욱 빛난다. 뉴( )는 도장 위에 새겨진 조각을 가리키는 말로, 고대에는 이것으로 관인(官印)의 등급을 표시하기도 했다. 민씨는 최근 삼족오(三足烏) 형상의 손잡이가 달린,4㎏이 넘는 옥새를 4년여 만에 완성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삼족오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해 속에 산다는 세발 달린 까마귀.“고구려 벽화에는 삼족오가 용이나 봉황보다도 그 위에 그려져 있어요. 격이 더 높다는 얘기이지요. 한 몸뚱이에 발이 세 개라 함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라는 동양사상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지요. 삼족오는 태양의 상징입니다.” ●무형문화재 지정안돼 안타까워 어느새 옥새와 동의어가 된 세불 민홍규. 그에게는 요즘도 일본으로부터 귀화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일본은 문화가 아니라 사람을 수입하려 합니다.” 그의 쓸쓸한 한마디에서는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지금이야말로 살벌한 문화전쟁의 시대가 아닌가. 그런데도 옥새는 아직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하고 있어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민씨는 “문화상등국의 우선순위는 궁중문화의 보존과 대책에 놓여져야 한다.”는 유홍준 문화재 청장의 한 강연 내용을 들려주며 옥새문화는 결코 천민문화가 아님을 누누이 강조했다.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소돌이(小乭伊·옥새 제작용 망치)를 마치 자식인 양 대견스레 들여다보는 그에게서 장인의 체취를 느끼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는 요즘도 하루 두세 시간씩 자며 마당의 대왕가마를 지키고 또 옥새 관련 책들을 읽는다. 그 조그만 결실이 곧 ‘조선 옥새의 비밀-영새부(榮璽 )’(도서출판 인디북)라는 책으로 나올 예정이다. 영새부!옥새여 영원하라.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성스러운 암소신화/드위젠드라 N 자 지음

    성스러운 암소신화/드위젠드라 N 자 지음

    요즘 정치권에서는 ‘정체성’이란 단어가 유행이다. 그런데 선험적으로 주어진 정체성이란 게 있을까. 혹은 누가 일률적으로 정할 수 있을까. 그런 식으로 정체성을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 아닐까. 이런 의문을 가진 사람이라면 인도 델리대학 역사학과 교수 드위젠드라 N 자(Jha)의 ‘성스러운 암소신화’(이광수 옮김, 푸른역사 펴냄)는 꽤 흥미로운 책이 될 듯하다. ●참고문헌 목록 100쪽 넘어 ‘인도 민족주의의 역사만들기’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이 책은 ‘인도답다.’의 간판격인 암소숭배가 착각에 지나지 않음을 논증하고 있다. 논증은 일일이 증거를 들이대는 우직한 방식이다.180여쪽 분량의 본문을 떠받치기 위해 고고학적·역사학적 각주해설과 참고문헌 목록은 100쪽이 넘게 이어진다. 자 교수는 인도문화 형성기인 베다시대(BC 1500∼BC 600년) 초기를 다룬 문헌 ‘리그베다’에서 200∼300 마리 정도의 소를 한꺼번에 죽여 제사지냈다는 광범위한 자료를 찾아낸다. 물론 베다시대 말기부터 살생금지를 주장하는 일부 문헌이 나타난다. 이 때쯤 등장하는 불교와 자이나교는 살생금지를 중요한 덕목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암소가 신성해서가 아니라 유목생활이 농경생활로 바뀌면서 소, 특히 새끼를 낳는 암소를 무더기로 죽이는 것이 비경제적이었기 때문이다. 현대 인도에서도 암소는 유유자적 노니는 게 아니라 밭을 갈고 수레를 끈다. 인도의 연간 쇠고기 생산량은 놀랍게도 114만t에 이른다. 자 교수는 “암소 여신도, 암소를 모신 사원도 존재한 적이 없다. 뭐라고 말하든지 (암소숭배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당연한 결론에 이른다. 남은 의문은 ‘누가 왜?’이다. 대답은 인도의 식민지배 경험, 이슬람교 국가인 파키스탄과의 카슈미르 분쟁,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자라난 광적인 힌두민족주의다. 사실 역사해석이 현재와 밀접한 연관이 있고 필요에 따라 변형되기도 한다는 게 아주 새로운 시각은 아니다.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홈스봄이 ‘만들어진 전통’이란 책을 엮어낸 1983년 이래 서구에서는 근대국가라는 개념 자체가 상징조작으로 이뤄졌다는 연구서가 쏟아져 나왔다. ●인도선 출판 거부당해 그럼에도 이 책이 예사롭지 않은 까닭은 자 교수가 책을 쓰기 전후의 상황 때문이다. 자 교수는 옛 조상들이 쇠고기를 먹었다는 사실을 논증한 학자에게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딱지가 붙는 상황에 분개해 이 책을 썼다. 그러나 인도 내 출판은 거부당했고 힌두민족주의자들은 온갖 소송과 협박으로 자 교수를 압박했다. 정체성을 일방적으로 규정한 뒤 상대를 마르크스주의자로 몰아가는 게 낯선 풍경만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에게 다소 낯선 인도역사를 다루고 있어 술술 읽히지 않는 게 흠.1만 5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