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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진 사고 싶으세요? 인도네시아 대학생 셀피 NFT로 팔아 12억원

    이 사진 사고 싶으세요? 인도네시아 대학생 셀피 NFT로 팔아 12억원

    외모 갖고 이러쿵저러쿵하는 일은 절대 해선 안되는 일이다. 그런데 이 인도네시아 대학생의 사진들이 대체불가능토큰(NFT)으로 판매돼 100만 달러(약 12억원) 이상 팔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 자신부터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고 미국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22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세마랑의 한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는 구스타프 알 고잘리(22)가 화제의 주인공. 5년 동안 매일 학교의 컴퓨터 카메라 앞에 앉아 촬영한 셀피 사진들인데 표정이 조금 남다르긴 하다. 처음에는 졸업하기까지 자신의 모습을 타임 랩스 동영상으로 만들기 위해 사진들을 찍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은 사진이 933장인데 온라인 중개 플랫폼 오픈시(OpenSea)에 ‘고잘리 에브리데이’란 제목을 붙여 매물로 내놓았다. 그는 지난 10일(이하 현지시간) 트위터에 글을 올려 “내 사진들을 NFT 롤(lol)에 올려놓았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20일 재학 중인 대학에서 취재진에게 “한 명이라도 내 얼굴을 수집하겠다고 나서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누구라도 셀피 사진들을 사겠다고 나설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것들을 단돈 3달러에 내놓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24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고잘리의 사진들은 한 유명 셰프가 몇 장을 사들인 뒤 소셜미디어 계정에 이를 홍보해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 뒤 500명 넘게 그의 셀피 사진들을 구입했다. 몇몇 팔로워는 그의 이미지를 박은 티셔츠를 제작했고, 다른 이들은 그에 대한 노래를 만들었다. 21일까지 384장의 사진이 팔려 100만 달러 이상이 됐다. 그는 11일 트위터에 글을 올려 “오늘까지 230장 이상 팔렸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내 #NFT 사진들을 사고 싶어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하지만 5년의 노력에 값을 지불하는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고 했다. 다만 그는 자신의 사진들을 멋대로 편집하는 등 “남용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여러분 모두가 내 사진들을 잘 돌봐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트윗을 올렸다. 지난주 고잘리는 아직도 돈벼락을 맞았다는 얘기를 부모에게 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솔직히 말해 부모에게 말씀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부모들은 그 돈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해 할 것 같다.” 그는 그 돈을 투자할 계획이며 언젠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갖고 싶다고 했다.
  • [씨줄날줄] 큰스님이 사라진 시대/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큰스님이 사라진 시대/박록삼 논설위원

    “오사마 빈라덴과 대면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먼저 할 일은 듣는 것입니다. 그가 왜 그렇게 잔인한 방법으로 행동했는지, 폭력을 일으키게 된 그의 모든 고통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2001년 미국 뉴욕의 9·11 테러 이후 희생자와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10일 동안 단식 수행을 진행했던 베트남 출신 틱낫한 스님의 얘기다. 분쟁과 전쟁을 거부하면서 폭력의 가해자건 피해자건 어느 누구와도 거리를 두지 않은 채 상호 이해와 소통을 위해 ‘행동하는 자비’를 설파하고 실천한 비폭력 저항운동의 철학자이자 종교 지도자다운 가르침이다. 작고 깡마른 체구에 맑고 깊은 눈을 가진 틱낫한(1926~2022) 스님이 지난 21일(현지시간) 열반에 들었다. 법랍 79세. 미국의 침략 전쟁 때 미국을 반대하며 비폭력 저항 투쟁을 했고, 베트남 군사독재 정권의 부당함에 맞섰다. 하지만 그가 정작 바랐던 것은 베트남의 승리 또는 독재 정권의 몰락이 아니었다. 모든 이들이 손에서 무기를 놓는 것, 그래서 침략자도 피해자도 각각의 고통을 종식시키는 것이었다. ‘세계 4대 생불(生佛)’로 추앙받기도 했고, 달라이 라마와 함께 서방세계를 중심으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적 스승으로 꼽혔던 틱낫한 스님은 평생에 걸쳐 평화와 소통, 화해를 통한 공존의 가치를 실천한 큰스님이었다. 큰스님은 그렇게 떠났다. 물질문명에 대한 숭상은 높고, 해답 없는 미움과 갈등은 곳곳에서 삐죽거린다. 국내를 봐도 마찬가지다. 성철(1912~1993) 스님, 숭산(1927~2004) 스님, 법정(1932~2010) 스님 등 수행자이자 종교적 경계를 뛰어넘어 대중의 일상으로 파고들어 화해와 평화의 가치를 역설했던 이들이 떠난 지 오래다. 물론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은 채 산문 안 암자에서 수행하거나 대중의 삶 속으로 뛰어들어 직접 소통하며 참여수행하는 스님들도 있을 테지만 말이다. 모든 것이 극단으로 치닫는 세상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시대까지 지나왔건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부문에서 네 편 내 편으로 나뉘는 대립은 오히려 더욱 극심해졌다. 우리네 삶이 더욱 각박해지는 배경이기도 하다. 나라 안팎으로 큰스님들이 떠난 빈 자리가 휑하다.
  • 관찰, 실험, 상상…마법 같은 혁신적 회화 만드는 ‘21세기 피카소’

    관찰, 실험, 상상…마법 같은 혁신적 회화 만드는 ‘21세기 피카소’

    미술 작품은 세 번 태어난다는 말이 있다. 작가의 스튜디오에서, 유통되는 미술시장에서, 그리고 컬렉터와 미술관에서. 세 번째는 아주 행운일 경우이다. 그림 한 장도, 조각 하나도 나름의 역사가 있지만 널리 알려진 내용은 제한적이고 어렵다. 요즘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맞아 미술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생기고 있다. 어떤 작품이 왜 유명하고 중요하며 그리 비싼지 물을 곳은 많지 않다. 작품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197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호크니는 당시 잘나가던 디자이너 친구 오시 클라크 부부를 앉혀 놓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오전 10시. 그들의 초상화를 그리기로 한 호크니는 보통 작가들이 하듯 모델을 앉혀 놓고 드로잉을 하는 대신 그들을 찍기 시작했다. 특히 폴라로이드 카메라에 매료돼 있던 호크니는 다음날도 또 그다음날도,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의 광채와 같은 시간에 방문한다. 수백장의 사진을 모았고, 그 사진들을 연결해 페인팅을 위한 대형 사진 콜라주 작업을 만들었다. 어릴 때부터 엄청난 사진광이었던 그는 새로운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그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찰’이다. 작가는 대상에 어떤 특정한 시점을 가지고 그리는 회화에, 수백장의 카메라 셔터를 이용해 많은 시점으로 그 대상을 뒤엎는다. 결과로 흔하지 않은 실물 크기와 거의 같은 대형회화인 ‘클라크 부부와 퍼시’ 작품은 그렇게 완성됐다. 작품은 놀랄 정도의 디테일이 살아 있고, 클라크 부부의 눈빛과 마치 호크니를 향해 바라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정도의 소통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 페인팅을 더 잘 ‘들여다보면’ (호크니는 매우 자주, ‘잘 보라’는 말을 했다. 우리가 얼마나 작품을 스치며 보는지), 호크니는 페인팅을 사진처럼 재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멀티로 연동된 수십개 사진기의 눈으로 뷰포인트가 만들어지는 시점을 넣으려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그림에 드리워진 디자이너 부부의 그림자 구도와 형태는 그가 사진을 찍었던 오전 10시 햇살의 현장적 시간을 작품 안에 넣는 시도를 했다.데이비드 호크니, 아마도 21세기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화가를 말하라 한다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를 칭할 것 같다. 이 시대의 피카소라고나 할까. 물론 어떻게 예술가들을 칭하며 작품의 단순한 우열을 따질 수 있겠냐만은, 2018년 크리스티 가을 경매에서 9030만 달러(경매 프리미엄 포함, 약 1300억원)에 낙찰된 작품으로, 17세기부터 미술시장이 만들어진 이래 살아 있는 작가 중 가장 고가의 가격을 기록한 작가이다. ●‘본다는 것’ 근본적 질문 파고들어 영국 왕립미술학교를 졸업한 인정받는 유망한 작가였지만, 동성애자이고 게이라는 것이 불법인 영국에서, 과감히 성 정체성을 주제로 한 작품들로 세간을 들썩였던 그는 1964년 미국 LA로 이주했다. 이후 물을 만난 듯 1970년대 LA와 할리우드에서 30대부터 유명 가도를 달렸다. 때로는 ‘유명한’ 작가가 ‘중요한’ 작가는 아닐 수 있지만, 호크니는 기본적이고 전통적인 ‘회화’ 라는 장르를 전면적으로 새롭게 구성하는 시도를 하면서, 2000년의 미술사에서 21세기를 미리 장식하는 아주 중요한 작가가 됐다. 사실 한번도 페인팅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의 작품의 놀라운 색채감, 특히 직접 눈으로 보면 놀랄 만한 몇 겹의 색채가 만들어 내는 색의 마법에 놀랄 것이다. 캔버스를 바라보는 사람의 눈이 만드는 뷰포인트가 아닌, 다양한 시각이 만들어 내는 캔버스 전면적 시각은 보통 우리가 눈으로 보는 일정한 시각 이상의 것들을 발견하게 한다. 이미 100여년 있었던 사진이라는 기술을 회화에 적용하는 실험을 통해 ‘본다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혁신적’ 회화를 만들었다. 이런 ‘사진과 회화’에 대한 관찰과 실험은 1998년 그의 ‘더 큰 그랜드캐니언’ 작업(1998~2000)을 통해서 보여졌다. 이제는 아예 120㎝】50㎝로 이루어진 60개 캔버스를 이어 붙인 폭 7.4m의 작품을 가능케 했다. 이 작품에는 그랜드캐니언의 다양한 장소와 다양한 시간대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예전에 모네가 런던을 방문해 빅벤을 바라보는 같은 장소에서 다른 시간대 템스강을 그리며 연구했던 수많은 회화들을 마치 한 폭의 그림에 연결한 셈이다. 한편으론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영화 ‘덩케르크’를 만들면서, 한 시간, 하루, 일주일, 한 달 등 일련의 옴니버스적 영상을 다양한 구성으로 섞어서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 결과는 그 큰 광활함을 당할 수 없는 새로운 한 폭의 멋진 상상 대형화이다. 이 지점이 바로 작가가 연금술사가 되는 순간이다. 어찌 보면 마치 수십개의 작은 스크린으로 만들어진 백남준 선생님의 초기 미디어 회화 작품과도 같이 느껴진다.호크니의 회화에 대한 실험은 지치지 않고 계속되었다. 미국 대륙에 매료된 이러한 대형 풍경화들을 그리던 그는 2012년 고향인 영국 요크셔를 찾았다. 현재 ‘더 큰 그림’이라 알려진 작품이다. 이 작품은 또 매우 다른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작가는 매일 캔버스가 채워지지 않은 프레임을 가지고 들판으로 나간다. 그 프레임을 가지고 자연의 공간에 가져다 대면서 드로잉을 그리기 시작한다. 나무로 만들어 들고 있는 프레임은 즉시 미장센을 만들어 내고, 그 프레임을 통해 보는 수십 가지의 미장센은 아주 평범한 영국 요크셔의 풍경을 놀라운 상상 풍경화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가 말하는 ‘회화’는 생각만큼 오래되지 않았다. 중세 시대 섬세한 프레스코 벽화나 제단화, 고딕양식의 최고 작가나 건축가 이름을 들은 적이 있나. ‘비례, 균형, 조화’의 미학을 추구하는 르네상스 인본주의가 시작되면서 작가나 건축가의 이름이 드디어 나왔다. 작가들의 이름이 브랜드가 되고, 그들의 스타일이 보여지기 시작한 것은 500여년밖에 되지 않는다. 르네상스 회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림의 소실점으로 바라보는 뷰포인트를 다루는 원근법과 그러한 방법을 찾아가며 실험한 카메라오브스쿠라(camera obscura. 어두운 방. 그림을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해 만든 상자로 사진기를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이다. ●일기처럼 그리는 ‘아이패드 페인팅 ’ 늘 현실의 다양한 재현과 연관된 회화의 역사는 19세기 사진의 출현으로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더이상 작가들의 역할이 그들 작품 대상을 잘 ‘재현’하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을 탐구하고 연구할 사명이 생겼다. 그렇기에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회화사는 최고로 흥미 있고 세기의 천재들이 모두 나올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인상파도 어찌 보면 짤주머니 물감을 가지고 스튜디오 밖으로 나가서 풍성한 햇살을 머금는 자연의 진짜 모습을 그리는 작가들의 열전이었다. 회화에 작가의 심리적, 상징적 맥락을 넣는 고흐나 고갱 같은 작가들도 나왔다. 20세기 초 추상작가들의 출현도 이러한 맥락에 서 있다. 호크니는 그러한 특별한 회화열전을 만들었던 20세기와 디지털 시대로 넘어가는 기로점에 있는 21세기를 살아내면서 혁신적 회화를 만들었다.그의 실험은 쉬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쉽게 할 수 있어 좋다며 10년 전부터 아이패드 페인팅을 시작했다. 그는 매일매일 일기와도 같게 오늘을 그리고 있다. 아마도 미래에 이 시간을 뒤돌아본다면 지금의 호크니를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할지. 여전히 작품 가격 1300억원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시장의 논리는 한 작가나 한 작품의 중요성과 언제나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렇게 초급속으로 디지털화를 가속하는 하루가 만들어지는 오늘이 있기에 호크니는 지금 이상의 평가를 받을지도 모른다. 혁신이 일상의 작은 것에서 시작해 세상을 바꾸듯 미술 안에서도 큰 꿈틀거림이 시작되었다. 숨 프로젝트 대표
  • 안동별궁의 풍경, 풍문여고의 추억…시공간 엮은 소통의 박물관

    안동별궁의 풍경, 풍문여고의 추억…시공간 엮은 소통의 박물관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시간이 멈춘 듯하지만 도시의 모습은 계절이 바뀌듯이 끝없이 변화하고 있다. 서울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게 거리 풍경이 바뀐 곳을 꼽자면 안국역 부근이 될 것이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을 나와 윤보선길로 접어들면 답답했던 속이 확 트이는 것 같다. 속을 알 수 없게 만들었던 높은 담장은 사라지고 대신 널따란 마당이 딸려 있는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어서 들어오라고 반갑게 손짓하는 이곳은 지난해 문을 연 서울공예박물관이다. 높은 담에 가로막혔던 골목이 숨을 쉬고, 탁 트인 도시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서울공예박물관 터는 원래 안국동별궁(安國洞別宮·안동별궁)이 있던 자리다. 명당으로 유명했던 안동별궁은 궁 동쪽의 종친부와 더불어 조선 시대 왕실 사람들의 안가였다. 왕실 소유의 별궁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 광산으로 큰돈을 번 최창학에게 헐값에 팔렸으나 1937년 휘문의숙 설립자 민영휘의 아내 안유풍이 30만환에 부지 4000여평과 부속건물을 사들여 경성휘문소학교를 세웠다. 7년 뒤인 1944년 증손자 민덕기가 폐교된 여학교 학생들이 교육받을 수 있도록 증조모의 이름 ‘풍’자와 휘문의 ‘문’자를 따 풍문여고로 개편했다. 1945년 1학년 2학급을 모집해 4월 10일 입학식을 거행하며 개교한 풍문여고는 2017년까지 그 자리에 있다가 강남구 자곡로로 이전했다. 서울시가 이 부지를 매입해 한국 최초의 공예박물관을 짓기로 했다. 현상설계에서 당선한 행림종합건축사사무소 송하엽(중앙대 교수)·천장환(경희대 교수)팀이 2016년 말부터 꼬박 1년을 들여 설계했고 2018년 5월 공사를 시작해 지난해 마무리됐다.●‘ㄱ자’ 터·기하학적 창호 느낌 살려 안내동을 사이에 두고 ‘ㄱ’자로 배치된 전시1동(본관)과 전시3동(직물관), 그 뒤로 야트막한 동산 위에 든든하게 서 있는 400년 된 은행나무를 에워싼 듯 관리동과 전시2동(상설전시실·공예 아카이브실), 교육동이 들어서 있다. 6개의 건물동이 어깨를 같이한 서울공예박물관의 구성과 외관은 예전 풍문여고의 모습을 상당 부분 간직하고 있다.서울공예박물관을 디자인한 천 교수는 “학교를 박물관으로 바꾸면서 오래된 건축물을 남기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남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살릴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살려서 풍문여고 졸업생들이 이 장소를 다시 찾았을 때 너무 낯설지 않고, 새로 보는 사람들은 너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은 느낌을 갖도록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유서 깊은 왕궁 터에 지어진 학교를 박물관으로 탈바꿈하는 작업은 간단치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학교 건물이 처음 들어선 1940년대부터 1960년대, 80년대, 그리고 2003년까지 증축 과정에서 시기별로 공법이 달랐다. 일제 시대 땅 위에 그대로 지어진 본관 건물의 경우 1층은 벽돌, 2층은 슬래브, 3층은 목조로 증축된 탓에 단열도 전혀 없고, 구조나 보강재가 취약해 박물관 하중에 턱없이 부족했다.천 교수는 “오래된 건축물은 구조를 보강하는 경우건 새로운 프로그램에 맞게 내부 공간을 바꾸는 경우건 대부분 그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면서 “기존의 기억과 함께 새로운 기억을 만들 수 있도록 기존 5개 건물을 다루는 데 있어서 각각 다른 구축 방식을 최대한 존중하며 새로움을 더했다”고 설명했다. 본관은 헐고 박물관 용도에 맞게 새로 설계해 전시1동을 지었다. 하지만 외관은 크게 바뀌지 않은 듯 하다. “본관 전면부는 인사동에서 안국동으로 넘어올 때 가장 눈에 띄는 풍문여고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기존 입면이 가지고 있는 기하학적 질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반복된 창호의 크기와 배치 간격은 예전 학교 건물과 같은 비율을 적용하고 기존의 페인트 색깔과 비슷한 석재(룩소르 베이지)로 마감해 옛 모습을 간직하도록 했습니다.”서울공예박물관이 기증받은 허동화·박영숙 컬렉션을 상설전시하고 직물보존 연구실이 있는 전시3동은 1960년대 중반 건축가 김정수의 설계로 지어진 과학관을 리모델링했다. 천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프리캐스트 공법으로 지어진 첫 건물이고, 반복된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패널이 만드는 질서와 생동감이 좋아서 외관을 거의 그대로 살렸고 내부는 용도에 맞게 많이 바꿨다”고 말했다. 천 교수가 특별히 신경 쓴 것은 공간의 소통이었다. 전시3동은 3층에서 안내동을 거쳐 전시1동으로, 전시 1동 상설전시실 2층에서 전시 2동과 교육동 3층 어린이 박물관으로 연결 통로를 만들었다. 연결 통로에 서면 유리로 된 안내동을 넘어 윤보선길, 뒤로 돌면 시원한 운동장과 감고당길이 다 보인다. 전시1동 측면과 후면은 기존의 벽돌과 함께 새로운 벽돌을 섞어서 쌓은 것이 특이하다. 천 교수는 “근대화에 의해 단절된 시간과 공간을 서울공예박물관이 다시 이어 주는 역할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옛것과 새것의 만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전시1동 뒤로 돌아가면 보이는 전시2동은 콘크리트 프레임 사이에 전벽돌을 새로운 방식으로 쌓아서 입면을 구성했다. 2·3층에 어린이 박물관을, 4층에 교육실을 둔 교육동은 가장 나중에 지어진 정보관을 리모델링했다. 천 교수는 “알루미늄 패널이 보기 거슬렸지만 둥근 형태의 존재감이 강해서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다”면서 “기존 정보관의 형태에 3가지 색깔, 3가지 형태의 테라코타 루버로 외관을 입혀서 역동적이면서도 따뜻한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교육동 옥상, 인왕산 절경 한눈에 교육동은 옥상공간이 압권이다. 옥상 전망대에서는 둥근 건물의 모양대로 둘러 가며 서울의 전경을 볼 수 있다. 서울에서 인왕산이 가장 멋있게 보이는 곳이다. 서측으로는 이건희기증관(가칭)이 들어서게 되는 송현동 부지가 보인다. 이건희 컬렉션의 백미가 인왕제색도인데 실제 풍경과 겸재의 작품을 한 곳에서 볼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천 교수는 “송현동 부지에 들어서는 이건희기증관과 서울공예박물관의 보행 공간이 연결되면 서울의 대표적인 공공 공간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책가방을 든 풍문여고 학생이 걸었던 동선을 따라 다시 걸어 본다. 남쪽 인사동에서 오는 길은 담장이 없어져 길과 마당이 만나니 한결 좋다. 돌담길과 별궁 터는 높이 1.5m의 단차가 있어서 계단을 올라야 한다. 인사동 길로부터 시작하는 보행길의 흐름은 운동장을 지나 길게 늘어선 본관 건물(전시1동)에서 멈춘다. 본관 앞의 커다란 광장은 길이자 박물관의 다양한 활동이 펼쳐지는 마당이 된다. 마당에는 안동별궁의 석등 기단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정독도서관에서 내려오는 길의 돌담을 끼고 돌아 들어오면 은밀한 후정의 공간을 만난다. 4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자리를 지켜 온 은행나무 동산은 완만하게 계단식으로 만들었다. 학교 교실에서 수없이 바라봤을 은행나무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으니 왠지 마음이 놓인다.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은행나무입니다. 전시1동, 전시2동, 교육동에 커다란 창을 낸 것도 어디서든 은행나무가 보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전시 관람 중간중간 은행나무를 바라보면서 이 땅에 새겨진 역사와 흔적을 다시 생각해보도록요.” ●출퇴근길·나들이길…일상의 가치 공유 천 교수는 “공예박물관은 어떤 의도된 하나의 새로운 구축 질서라기보다는 땅에 축적된 역사의 시간을 엮음으로써 도시의 시간 연결체가 되었으면 한다”면서 “언제나 열려 있는 박물관 앞 마당을 통해 출퇴근길로 오가거나 주말에 가족과 함께 잠시 거닐며 많은 사람들이 공예의 가치를 공유하는 기회를 갖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서울공예박물관은 공예작가와 함께 다채롭고 창의적인 공예작품을 제작해 박물관 내외부 공간에 설치해 놓고 있다. 안내동 로비에는 이헌정 작가의 도자 작품 ‘섬’이, 천장에는 김헌철 작가의 유리공예 작품 ‘시간의 흐름’이 설치돼 있다. 기획전시 및 상설전시가 열리는 전시 1동의 긴 로비에는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최병훈 작가의 ‘태초의 잔상’, 한창균 작가의 대나무 작품 ‘리메인즈 앤드 하이브’를 감상할 수 있다. 교육동은 로비에 박원민 작가의 ‘희미한 연작’, 옥상에 김익영의 도자 작품 ‘오각의 합주’를 놓았다. 마당에는 이강효의 도자 작품 ‘휴식, 사유, 소통의 분청의자 세트’를 놓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은행나무 주변에는 이재순 작가의 ‘화합’이 놓여 있다. 함혜리 칼럼니스트
  • 타인의 마음 챙기던 스승, 세계인 마음속에 잠들다

    타인의 마음 챙기던 스승, 세계인 마음속에 잠들다

    세계적 불교 지도자이자 평화운동가, 명상가, 밀리언셀러 작가인 틱낫한 스님이 지난 21일(현지시간) 열반했다. 95세. AP 및 현지 언론들은 22일 틱낫한 스님이 베트남 중부 도시 후에의 뚜 히에우 사원에서 별세했다고 전했다. 그가 프랑스에 세운 불교 명상공동체 플럼빌리지 사원도 스님이 이날 밤 12시 입적했다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베트남 출신인 틱낫한 스님은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와 함께 ‘세계 4대 생불’, ‘영적 스승’으로 꼽힌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스님의 족적과 어록, 가르침은 사람들의 실천 속에서 언제나 살아 숨 쉴 것이다. 깊은 애도를 전한다”고 추모했다. 달라이 라마는 고인의 트위터를 통해 “나의 친구이자 영적 형제”라고 지칭하며 “마음챙김 명상과 자비로움이 내면 안정에 도움을 주고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타인들과 공유해 진실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고 추모했다. 1926년생으로 16세에 출가한 그는 1961년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컬럼비아대에서 비교 종교학을 수학하고 강의했다. 참여불교와 명상을 통한 내적 수련 등을 강조하며 세계인을 감명시켰다. 1963년 귀국해 베트남 반전 운동에 참여하다가 남베트남 정부에 추방당한 뒤 주로 프랑스에 거주하며 참여불교 및 ‘마음챙김’ 운동으로 전 세계 반전·평화운동에 영향을 끼쳤다.1966년 미국 인권운동가인 마틴 루서 킹 목사와 만났을 당시 비폭력·평화를 외친 스님에게 감명받은 킹 목사가 이듬해 그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한 일화는 유명하다. 베트남 정권의 탄압으로 귀국 길이 막힌 스님은 1973년 프랑스로 장기 망명해 ‘보트피플’로 불린 자국 난민들의 구제활동을 펼치고, 1982년 플럼빌리지를 세우는 등 마음의 평화를 위한 명상 수행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2014년 뇌출혈로 쓰러져 말을 하지 못하게 되자 요양을 해 오다 2018년 영구 귀국했다. ‘화’(Anger),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 ‘걷기 명상’ 등 100여종이 넘는 책을 낸 밀리언셀러 작가이기도 한 스님은 간결한 시적 언어로 부처의 가르침을 설파했다. ‘지금, 이 순간’의 인생에 집중하라고 강조했던 그는 ‘현재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고, 타인의 모습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조언했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그 길이다’, ‘살아 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 등 수많은 어록도 남겼다. 장례는 사원에서 1주일간 조용히 치러진다.
  • 이종왕 전 삼성전자 고문 별세

    이종왕 전 삼성전자 고문 별세

    대검 수사기획관, 삼성그룹 법무실장 등을 지낸 이종왕 전 삼성전자 법률고문이 지난 22일 오후 4시 9분쯤 별세했다. 73세. 1949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복고, 서울대 법대를 나온 뒤 1975년 1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정상명 전 검찰총장 등과 함께 사법연수원 7기 동기생 모임인 ‘8인회’ 멤버로 유명했다. 2009년 노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이기도 했다. 그는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으로 일하던 1999년 말 ‘옷 로비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박주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지휘부가 받아들이지 않자 사직했다. 김&장으로 옮긴 뒤 2003년 대선 비자금 수사에서 SK, 현대, LG그룹 등의 변호를 맡았다. 2004년 삼성 상임 법률고문 겸 법무실장으로 영입됐으나 2007년 법무팀장이 삼성의 비자금 사건을 폭로하면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2010년 삼성 법률고문으로 복귀했다가 2015년 말 물러났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7호실, 발인은 25일 오전 6시 30분, 장지는 분당효추모공원이다. (02)3410-3151.
  • “대북기조 법제화 통해 유지를… 남북경색 풀려면 北에 선의 보여야”

    “대북기조 법제화 통해 유지를… 남북경색 풀려면 北에 선의 보여야”

    지난해 한중 양국은 코로나19 재확산 상황에서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추진하는 등 분위기 개선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남북 관계는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추진에도 해묵은 갈등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미중 역시 무역전쟁과 감염병 책임론, 홍콩, 신장, 대만 문제 등을 두고 전방위로 대립했다. 중국 내 대표적 남북 문제 전문가인 한셴둥(韓獻棟·54) 정법대 한반도연구센터 교수는 23일 “한국은 진보나 보수 중 누가 집권해도 대북 기조가 바뀌지 않도록 법률로 제도화해야 한다”며 “(억울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경색된 국면을 깨려면 북한에 좀더 선의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를 통해 한반도 문제 전반에 대한 중국 내부의 목소리를 들었다. -올해는 한중 수교 30주년이다. 2017년 한반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후 얼어붙은 양국 관계가 풀릴까. “두 나라 언론에서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한중은 지금도 ‘만족에 가까운 관계’를 구가하고 있다. 사드 사태 이후에도 양국 간 교역액이 계속 늘어 지난해에는 3600억 달러(약 429조원)를 넘었다. 한국은 미국, 일본에 이어 중국의 세 번째 무역 파트너로 자리잡았다. 감염병 방역 여파로 시 주석의 방한이 무산됐지만 양제츠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장관)이 한국을 찾아 고위급 교류를 이어 갔다. 큰 틀에서 볼 때 두 나라의 관계는 좋아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韓 콘텐츠 인기… 청년들 TV 잘 안 봐 -중국 내 비공식 제재로 ‘한류’ 열풍이 많이 식었다. 한국 연예인이 출연하는 영화나 드라마, 노래를 듣기 힘들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열풍에서 알 수 있듯) 한류 콘텐츠는 여전히 중국인에게 인기다. 단지 TV에 나오지 않을 뿐이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한류를 좋아하는 젊은 세대가 TV를 보지 않는다. 이들이 더우인(틱톡) 등에서 동영상을 즐기다 보니 방송국에서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방영할 유인이 줄었다. 중국 당국이 문화 주권을 지키려고 외국 작품 방영 편수를 제한한 것도 영향을 줬다. 그런데 이는 한국만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 미국과 일본, 호주 등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앞으로 한중 문화 교류는 방송 콘텐츠나 연예물 등 대중문화에 국한하지 말고 올림픽 등 체육이나 예술, 청소년 교육 등 개념을 광범위하게 넓히고 다양화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북중 교역 재개… 일방적 北에 퍼주기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계속되지만 중국은 제재는커녕 물자 교류를 재개하며 한층 밀착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지난해 5월 한미 미사일 지침이 해제돼 남북 간 군비경쟁이 촉발된 상황에서 미국이 지속적으로 제재를 가해 이에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열린 조선노동당 회의 결정을 보면 북한은 앞으로도 미사일을 계속 발사할 것이다. 미국은 이를 근거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새 제재를 가할 것이고 한미동맹 및 대북 억제 태세 강화에도 나설 것이다. 한반도가 긴장 국면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북중 관계도 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북중 교역이 일부 재개됐지만 중국으로 들어오는 북한 화물 기차는 안이 텅 비어 있다. 무역이라는 건 서로 뭔가를 주고받는 것인데, 지금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받아 가기만 하는 특수 상태다. 북중 무역이 정말 다시 시작된 것인지, 지속가능한지 등은 좀더 지켜봐야 알 수 있다.” ●남북, 신뢰 쌓기 훨씬 쉬워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북한의 고위 관리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점이 있다. 남한에 대한 감정이 생각만큼 적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두 나라가 같은 민족이기 때문일 것이다. 북미가 신뢰를 쌓는 것보다 남북이 신뢰를 쌓기가 훨씬 쉽다. 이를 감안해 두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첫째, 남북 관계 관련 정책을 법률로 고정시켜야 한다. 북한은 최고지도자가 수십 년을 통치해 옳든 그르든 대남 정책에 변화가 적다. 반면 남한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 기조가 춤을 춘다. 진보나 보수 가운데 누가 집권해도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합의가 필요하다. 둘째, 남한 정부가 일부 분야에서라도 미국의 입김에서 독립적으로 정책을 가져가야 한다. 예를 들어 개별 관광객의 북한 여행은 유엔 제재 대상이 아니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를 허용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 입장에서 남한이 미국에 사사건건 끌려다니는 인상을 주면 어떻게 믿고 협력할 수 있겠는가.” ●한반도 평화 위해서 남한이 양보해야 -그러나 북한은 민간인 박왕자씨 살해(2008)와 천안함 피격(2010), 연평도 포격(2010), 비무장지대(DMZ) 지뢰 도발(2015), 남북연락사무소 폭파(2020) 등 수시로 도발을 감행하는데. “그래도 (국력이 크게 앞서는) 남한이 좀더 양보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한국에선 통일부와 국방부의 대북 정책이 다르다. 한쪽에선 북한과의 교류 협력을 말하지만 다른 쪽에선 미국과의 연합 군사훈련을 멈추지 않는다. (재래식 전력에서 열세인) 북한에게 이런 불일치는 엄청난 위협으로 인식된다. (남한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지만) 현 상황을 풀려면 북한에 좀더 선의를 보이는 수밖에 없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더 치밀하게 중국을 괴롭힌다는 평가가 나오는데.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려는 근본 이유는 중국이 자신들의 패권에 도전할 것으로 믿어서다. 미국은 앵글로색슨족이 대서양을 건너가 세운 나라다. 영토 확장을 위해 수백 년간 끝없이 전쟁을 치르며 ‘경쟁 상대를 이겨야 내가 살 수 있다’는 국가관을 체득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생각이 없다. 세계사에 기록된 정화(1371~1433)의 대원정을 보라. 다른 나라를 압도하는 물자와 병력을 이끌고 세계를 누볐지만 단 한 번도 식민지를 만든 적이 없다. 바이든 행정부가 압박 수위를 높이는 와중에도 중국은 미국과 기후변화 위기 대응에 협력했고 워싱턴에서 파견한 고위 관리들과 현안을 논의했다. 두 나라 모두 극단까지 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양국이 트럼프 행정부 이전처럼 친밀해질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래를 비관할 필요도 없다.” ●美, 양안 갈등 부추기지 말고 물러서야 -신장위구르자치구 인권 탄압과 홍콩 민주주의 후퇴 등으로 중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졌다. “중국인에게 홍콩·마카오, 신장 논란은 국가 내부 문제다. 홍콩에서는 (2019년 대규모 시위 이후) ‘홍콩인이 다스리는 홍콩’에서 ‘애국자가 다스리는 홍콩’으로 통치 기조가 바뀌었다. 이는 중국과의 융합을 앞당기고 사회 안정을 촉진하려는 의도다. 신장 문제의 본질은 ‘인권’이 아니라 ‘반테러’다. 실례로 2014년 윈난성 쿤밍에선 동투르키스탄(위구르인들이 추구하는 독립국) 테러리스트들이 마구잡이로 흉기를 휘둘러 31명이 숨지고 141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4~5년 전까지도 신장 내부에서 독립분자들의 무차별 테러가 시도됐다. 개인의 인권이 중요하지만 무고한 이들의 희생을 막는 것이 더 급하다. 서구세계가 테러에 대한 언급 없이 인권 침해만 비난하는 것은 ‘전체의 진실’을 보지 않으려는 것이다.”-대만을 둘러싼 전쟁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양안(중국과 대만) 갈등의 근본 원인과 충돌을 피할 방법은. “양측이 수십년 간 지켜 온 ‘하나의 중국’(중국 전체를 대표하는 정부는 하나뿐이라는 원칙)과 ‘92공식’(‘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해석은 각자 알아서 하기로 한 1992년 합의)을 대만 집권당인 민주진보당과 차이잉원 총통(대통령)이 깼다. 지금이라도 민진당은 이전 정부처럼 92공식을 수용하고 (더이상 독립 추구를 말하지 않는) ‘현상유지’에 나서야 한다. 미국이 뒤에서 대만을 부추겨 양안 갈등을 키우는 것도 멈춰야 한다. (2편에 계속) 한셴둥 교수는…중국 인민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경남대 북한대학원(현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법학 및 정치학 분야 최고 명문으로 불리는 정법대에서 한반도연구센터 주임 겸 국제정치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냉전 이후 동북아 안보 체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중국 내 대표적 지한파이자 ‘북한통’으로 인정받는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에는 남북한을 수시로 오가며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으로 유명하다. 저서로는 ‘한국의 보수주의:특징과 영향’(2012), ‘조선반도 전략적 딜레마’(2017), ‘평화를 중심으로: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2018) 등이 있다.
  • ‘굴뚝도시’ 울산… 고래·미디어아트 어우러진 생태관광 도시 변신

    ‘굴뚝도시’ 울산… 고래·미디어아트 어우러진 생태관광 도시 변신

    산업도시 울산이 자연과 산업, 문화가 어우러진 국내 대표 생태관광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울산은 2019년 7월 태화강 국가정원 지정으로 생태관광의 기반을 다진 데 이어 전시컨벤션센터와 시립미술관을 잇달아 개관하면서 문화·관광 인프라도 확충했다. 2025년에는 북구 산하동 강동해변에 1000실 규모의 고급 휴양 시설인 강동리조트도 문을 연다. 또 국내 대표 생태관광 도시 조성을 목표로 울산권 관광개발 계획이 올해부터 2026년까지 진행된다. 이렇게 되면 관광객 1000만명 시대도 성큼 다가올 것으로 전망된다.울산시는 최근 ‘제7차 울산권 관광개발 계획’(2020~2026년)을 확정하고, 앞으로 5년간 22개 사업에 2조 888억원을 투입한다고 23일 밝혔다. 사업비는 울산형 생태관광 기반 확충, 스마트관광 기반 구축, 체류형 관광거점 개발, 울산만의 관광 매력 발굴, 경쟁력 있는 울산권 관광생태계 조성 등에 쓰인다. 주요 사업은 ▲태화강 국가정원 수상스포츠 체험센터 조성 ▲달천철장 불꽃정원 조성 ▲장생포 고래문화특구 활성화 ▲반구대암각화 역사관광자원화 ▲대왕암공원 해상케이블카 개발 ▲강동해안공원 조성 ▲고래여행 스마트 선박 운영 등이다. 또 체류형 관광거점인 강동관광단지를 조성하고, 태화강 국가정원 사계절 축제 등을 개최해 생태관광 도시 이미지를 높일 예정이다. 지난 6일 문을 연 시립미술관은 개관 2주 만에 방문객이 2만명을 넘었다. 전체 관람객의 25%가 다른 지역에서 찾아온 것으로 조사돼 관광객 유치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립미술관은 총사업비 677억원을 들여 중구 옛 도심에 지하 3층·지상 2층 규모로 건립됐다. 국내 공공미술관 최초로 ‘실감 미디어아트 전용관’(XR랩)과 전시실 3개를 갖췄다. 후발주자인 울산 시립미술관은 미디어아트 중심의 미래형 미술관을 표방한 기획·전시로 관심을 끌고 있다. 또 시립미술관은 지역 정체성을 바탕으로 자연과 기술, 산업과 예술의 조화를 지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대한민국 산업수도에서 생태·문화·관광 도시로 거듭난 울산만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기술과 자연이 공존·융합을 이루는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울산 마이스산업(MICE·기업회의, 포상관광, 컨벤션, 전시)을 이끌 전시컨벤션센터도 본궤도에 올랐다. 지난해 4월 개관한 울산전시컨벤션센터(유에코·UECO)는 기둥을 없앤 구조로 건립돼 산업 전시와 기업 행사뿐 아니라 다양한 이벤트도 가능하다. 컨벤션홀은 국제회의와 대형 연회도 가능하다. 이런 장점 때문에 개관 첫해 가동률이 35%를 기록했다. 첫해 가동률은 대구 엑스코(27%), 부산 벡스코(26%),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20%)보다 높다. 유에코는 산업도시 울산의 장점을 살려 산업과 관련한 전시·포럼을 대거 유치하고 있다. 국제수소에너지 전시회·포럼을 비롯한 안전산업 위크, 에코 스마트항만 대제전 등이 대표적이다. 오는 11월에는 제20차 세계한상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산업·문화 행사 유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2025년 하반기 북구 강동해변에 1000실 규모의 롯데 리조트가 문을 열면 울산도 부산과 경주처럼 체류형 관광이 본격화된다. 롯데건설은 지난 18일 북구 산하동 리조트 부지에서 기공식을 가졌다. 강동리조트는 10만 9000㎡ 부지에 지하 5층~지상 43층, 11개 동 규모로 지어진다. 숙박시설 700실, 휴양 콘도미니엄 278실, 2만여㎡ 규모의 가든 스파형 워터파크, 320석 규모의 연회장, 스쿠버다이빙이 가능한 실내 잠수 시설, 글램핑장 등이 들어선다. 또 조선도시 동구에는 고급 숙박시설과 휴양시설을 갖춘 해양 중심 체류형 관광지가 조성된다. 동구 관광산업의 핵심은 대왕암공원이다. 대규모 해송 군락과 기암괴석 등으로 유명한 대왕암공원에는 지난해 해상 출렁다리가 설치돼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길이 300여m의 출렁다리는 개통 5개월 만에 방문객이 100만명을 넘어섰다. 빠르면 연내 해상 케이블카, 집라인, 스카이워크도 착공한다. 전국 유일의 도심 속 국가정원인 태화강 국가정원도 국내외에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대한민국 정원산업박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올해는 세계 최고의 정원디자이너 ‘피트 아우돌프’의 자연주의 정원이 아시아 최초로 조성된다.
  • 대통령을 ‘소’에 비유했다가… 터키 기자 한밤중 체포

    대통령을 ‘소’에 비유했다가… 터키 기자 한밤중 체포

    터키의 한 유명 언론인이 방송 중 속담을 인용했다가 대통령 모욕 혐의로 구금됐다. 22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터키 경찰은 전날 오전 2시쯤 방송기자 세데프 카바스의 집에 들이닥쳐 그를 연행했다. 카바스가 방송에 출연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해 언급하고 이를 트위터에 올린 지 불과 몇 시간 만의 일이었다. 카바스는 야권 성향의 방송 ‘텔레1’에 출연해 ‘소가 궁전에 온다고 소가 왕이 되진 않는다. 궁전이 헛간이 될 뿐’이라는 속담을 언급했다. 이 속담은 터키 및 중동 지역에 거주하는 체르케스인 사이에서 내려오는 격언이다. 카바스는 방송 이후 자신의 트위터에도 같은 내용을 적었다.사법당국은 카바스에게 모욕죄를 적용했고, 법원은 수감 명령을 내렸다. 터키에서 대통령 모욕죄는 징역 1~4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파흐레틴 알툰 터키 대통령실 공보국장은 트위터에 “증오를 퍼뜨리는 것 외의 목표가 없는 TV 채널에서 소위 언론인이 우리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모욕했다”고 주장했다. 터키 언론단체들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공격”이라며 카바스의 구금에 반발하고 있다. 텔레1의 편집장도 “속담 때문에 새벽 2시에 감금된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언론인과 언론계를  위협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2014년 에르도안 대통령 취임 후 지금까지 7년간 터키에서 모욕 혐의로 기소돼 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수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 송지아 가품 논란 무색할 만큼 이미 커진 ‘짝퉁 시장’ [명품톡+]

    송지아 가품 논란 무색할 만큼 이미 커진 ‘짝퉁 시장’ [명품톡+]

    ‘넷플릭스 스타’ 등극한 송지아만 문제일까짝퉁·레플리카·st…검색 결과 수두룩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솔로지옥’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송지아(유튜브 활동명 프리지아)가 연일 입길에 오르내린다. 그가 입은 일부 제품이 가품으로 밝혀지면서부터다. 송지아는 방송에서 명품 브랜드의 로고가 확연히 드러나 보이는 제품을 입어 눈길을 끌었다. 방송 종료가 된 후 이들 중 일부가 가품으로 드러나며 연일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 ‘스타덤’에 따라온 ‘레플리카’ 도덕성 논란 송지아는 지난 17일쯤부터 논란에 휘말렸다. 온라인 명품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짝퉁 리스트 모음 정리’가 공유되면서부터다. 샤넬 목도리·카디건·크롭 티셔츠·클래식 가방, 베르사체 수영복, 펜디와 디올의 톱 등 그 대상도 다양하다. 파인 주얼리 브랜드 반클리프 아펠의 목걸이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다만 실제 송지아가 소개한 모든 제품이 가품인지는 확인된 바 없다. 송지아는 이에 대해 18일 인스타그램에 자필 사과문을 올렸다. 그는 “솔로지옥에서 입은 일부 옷에 대한 가품 논란을 사실”이라면서 “저작권에 대한 무지로 인해 발생한 상황에 사과한다”고 말했다. 사과와 무관하게 솔로지옥의 유명세만큼 논란은 여전하다. 송지아가 입은 가품의 급이 너무 낮다는 일부 지적이 일어난 것이다. 화면 너머 육안으로 포착 가능할 정도의 디자인 결함을 알아채지 못했을 거라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일부 유튜버 등은 스타일리스트의 말을 인용해 “몰랐을 리가 없을 만한 조악한 물건”이라는 주장을 전하기도 했다.● 가품·레플리카·st…명칭 다양할 정도로 이미 커진 시장 실제 23일 현재 온라인 포털 사이트에 가품 관련 홈페이지를 검색하면 쉽게 명품 브랜드를 따라 만든 제품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유명 쇼핑몰에서는 해외 구매 항목으로 명품 브랜드 제품을 터무니 없는 가격에 구매 가능하다. 이들은 아무 제재 없이 버젓이 온라인에 존재한다. 유명 동영상 플랫폼에선 가품 브랜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지역과 시장의 위치를 정확히 지정해 공유한다. 또 체험기를 올리며 구매법을 소개한다. 포털 사이트 블로그를 통해 정교한 가품을 구매할 수 있는 방법까지도 적극 나눈다. 이들은 검색만 하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게시글로 아무런 제재 없이 유통되고 있다. 나아가 비밀번호만 있으면 레플리카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쇼핑몰도 버젓이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가품, 레플리카, st 등의 키워드를 넣으면 누구나 볼 수 있다. ‘레플리카’는 원작에 대한 모작을 일컫는 말로 명품 브랜드 가품을 가리키는 말로 통용된다. ‘st’는 style의 약어다. 또 명품 브랜드 이름을 입력 후 가방, 티셔츠 등을 검색하면 저렴한 가격에 구매 가능한 사이트가 나열된다. 레플리카 사이트가 누구나 볼 수 있게 노출돼 있으니 모르고 구매할 가능성도 존재하는 것이다. 이같은 현실을 두고 송지아를 비판하던 일부 명품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입는 건 자유지만 소개는 다른 문제”라고 지적한다. 송지아에게 ‘괘씸죄’가 적용된 부분이 있으나 구매가 문제가 아닌 방송 출연시 착용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연 입는 건 자유일까.● 구매도 잘못…시장 혼란 구찌가의 파벌 싸움 이야기는 유명하다. 창립자의 손자 파올로 구찌는 알력싸움에 밀려 자신만의 브랜드를 론칭한다. 이름은 ‘파올로 구찌’였다. 자신도 구찌가의 일원이니 문제없다는 주장이었다. 이 브랜드 제품은 저렴한 가격에 마트, 매대 등에 팔렸다. 이는 구찌 브랜드의 희소성을 훼손한 사례로 아직까지도 입길에 오르내린다. 파올로 구찌의 브랜드는 그가 죽고 파산했다. 이는 명품 브랜드의 희소성을 극히 침해한 지적재산권 침해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상품성 떨어진 제품이 돼 명품만의 차별성이 완벽히 사라진 것이다. 명품 브랜드가 가품 논란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내 사정은 어떨까. 2020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세청으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했던 ‘복제 고가품 적발 현황’을 보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고가 브랜드 복제품 4963건이 발각됐다. 적발된 가품 제품이 진품이었다면 1조 5580억원어치에 달하는 물량이다. 가장 자주 적발된 복제품 브랜드는 루이비통이다. 당시 적발 결과로서는 진품 가격 기준으로 루이비통(1935억원), 롤렉스(1843억원), 샤넬(902억원), 구찌(513억원) 순이었다. 양 의원은 “몇년간 당국에 적발된 가품 고가품 규모가 수조원에 달하는 것은 국가 이미지를 떨어뜨리고 시장 유통 질서를 저해할 수 있는 엄중한 사안”이라면서 “엄중히 대응하고 단속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초면에 욕설은 기본…흉기로 협박” 유명 셰프의 실체

    “초면에 욕설은 기본…흉기로 협박” 유명 셰프의 실체

    유명 셰프 정창욱씨가 해외에서 술자리에 동석한 이들을 폭행하고 흉기로 위협했다는 혐의로 피소돼 경찰이 수사 중인 가운데, 고소인이 당시 상황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유튜버 신영호씨는 22일 ‘호드벤쳐’ 채널을 통해 지난해 하와이에서 정창욱씨와 함께 있으면서 겪은 상황들을 공개했다. 신영호씨는 6개월에 걸친 사업 준비 끝에 하와이로 출국했고, 평소 팬이었던 정창욱씨를 태그했다. 정창욱씨는 “사업을 도와주겠다”며 연락을 하고, 두 사람은 협업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작 신영호씨가 하와이에 도착하자 태도가 돌변했다. 정창욱씨는 자신의 유튜브 편집자에게 폭언과 욕설을 했고, 협업을 하기로 한 신씨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신씨는 “렌트한 자동차의 트렁크가 잘 열리지 않자 바로 욕설이 날라왔다. 욕을 워낙 많이 하는 사람이니까 ‘XXXX’ 정도는 하고 좋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창욱씨로부터 피해를 입은 편집자는 댓글을 통해 “1년 간의 짧은 기간동안 이 요리사와 함께 생활하면서 겪은 폭언과 욕설, 두 번의 칼을 사용한 협박과 그리고 이런 모습들을 편집하기 위해서 수십번씩 영상을 돌려보면서 어느 순간 망가진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며 “현재 정신과에 다니며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특수폭행·특수협박 혐의로 피소 신영호씨는 “멱살을 잡고 오른손으로 가슴팍을 때렸다. 부엌으로 가서 식칼을 들고 왔다”고 주장하며 당시 정 씨가 흉기로 벽과 식탁을 파손한 흔적을 공개했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정창욱씨를 특수폭행과 특수협박 등의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정창욱씨는 조사에서 일부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 측은 “그때 셰프님이 술 드시고 흉기 들었지 않았나. 되게 잘해주셨는데 (폭행 당시에는) 무서워서”라고 묻자 정씨가 “이해해”라고 답하는 녹취록도 공개했다. 정창욱씨는 지난해 음주운전으로 벌금 15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고 면허가 취소된 상태다. 정씨는 지난해 5월 9일 새벽 서울 중구의 한 도로에서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됐다. 당시 그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67%로 면허취소 기준(0.08%)를 넘은 상태였다. 2009년에도 음주운전이 적발된 이력이 있었다. 재일교포 4세인 정씨는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미쉐린가이드가 ‘빕 구르망’으로 선정한 서울 중구 소재 식당 금산제면소와 구독자 13만여명의 요리 유튜브 채널 ‘정창욱의 오늘의 요리’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유튜브 채널에는 “구독 취소한다”, “영상 제작진이 왜 그만뒀는지 이제 알게 됐다” 등의 댓글이 달리고 있다.
  • [나우뉴스] “몸 가려라” 노출 과하다고 여객기 탑승 거부당한 세계 최고 미인

    [나우뉴스] “몸 가려라” 노출 과하다고 여객기 탑승 거부당한 세계 최고 미인

    미국에서 여객기 복장 단속을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됐다. 15일(현지시간) CNN은 2012년 ‘미스 USA’, ‘미스 유니버스’ 우승자인 올리비아 컬포(29)가 노출 복장 때문에 비행기 탑승을 거부당했다고 보도했다. 컬포는 13일 멕시코로 가는 아메리칸항공 여객기를 타려다 탑승 게이트에서 붙잡혔다. 항공사 직원은 그의 복장이 부적절하다며 “몸을 가려라”라고 요구했다. 컬포의 언니는 “탑승 준비 중 직원이 불러서 갔더니 ‘블라우스를 입으라’고 하더라. 동생이 몸을 가리지 않으면 여객기에 탈 수 없다더라”라고 설명했다. 이날 컬포는 가슴이 드러나는 스포츠브라, 몸에 달라붙는 바이커쇼츠 위에 카디건을 걸쳤다.결국 컬포는 남자친구 옷을 빌려 입은 뒤에야 여객기에 오를 수 있었다. 컬포의 언니는 항공사 복장 단속에 일관성이 없었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언니는 “항공사 직원은 비슷한 복장의 다른 승객은 제지하지 않았다. 동생만 몸을 가려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복장 단속을 통과한 다른 승객 옷차림을 공유했다. 실제로 여객기 탑승을 거부당한 컬포는 반바지를 입었고 다른 승객은 긴바지를 입었다는 것 외에 둘의 복장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컬포 자매는 “항공사가 말하는 부적절한 복장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 모르겠다. 어디가 부적절해 보이느냐”고 네티즌의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아메리칸항공 운송약관에는 “승객은 적절한 복장을 갖춰야 한다. 맨발 또는 부적절한 옷차림은 허용되지 않는다”라는 규정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 터키 유명 보디빌더 데니즈 사이피나르(26)의 탑승을 거부하면서도 아메리칸항공은 같은 규정을 내세웠다. 당시 사이피나르는 속옷을 입지 않은 채 얇은 어깨끈이 달린 상의와 짧은 바지를 입었다가 제지를 당했다. 항공사 직원은 “가족 단위 탑승객의 여행을 방해할 수 있다”며 그의 탑승을 거부했다. 사이피나르는 직원들이 자신의 옷차림을 “알몸”이라고 불렀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아메리칸항공은 “불쾌감을 유발하는 옷차림으로는 여객기에 탈 수 없다”는 입장을 반복해 전했다. 아메리칸항공 외에 사우스웨스트, 델타, 제트블루항공 등도 비슷한 복장 규정을 두고 있다. CNN은 이들 항공사가 외설적, 노골적, 불쾌감이나 짜증을 유발하는 기내 옷차림을 금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스포츠웨어와 일상복의 경계를 허문 가벼운 스포츠웨어 ‘애슬레져’(애슬레틱과 레저의 합성어) 확산으로 기내 복장을 둘러싼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고 전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나우뉴스] 차세대 리더 中 천만장자, 쓰레기통 뒤지는 노숙자로 전락

    [나우뉴스] 차세대 리더 中 천만장자, 쓰레기통 뒤지는 노숙자로 전락

    과거 천만장자로 불리며 홍콩에 3개의 기업체를 운영했던 남성이 헝클어진 머리와 얇은 티셔츠 한 장으로 긴 겨울을 견디는 노숙자로 전락한 사연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중국 매체 펑파이는 최근 광둥성 선전시 도심 일대를 배회하며 폐지 수거로 생활비를 마련해오고 있는 70대 남성을 소개, 그가 불과 몇 년 전까지 중국을 이끌 차세대 경제계 리더로 불렸던 장위엔천이라는 인물이라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일정한 주거지가 없던 장 씨가 선전시 도심을 떠돌던 중 이 지역 공익단체 관계자들의 눈에 띄면서 구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익단체 회원들은 지난 20일 도심 공원 한 켠 벤치에서 얼음장 같은 날씨를 견디고 있던 장 씨를 구조, 그의 신원을 조사한 결과 과거 천만장자로 이름을 알리며 현지 다수의 매체에 얼굴을 공개했던 유명 기업가였던 사실을 확인했다. 구조된 장 씨는 올해 75세의 산둥성 옌타이 출신의 기업가로, 불과 지난 2017년까지 총 3개의 기업체 창업주로 현지 언론에 보도되는 등 차세대 경제인으로 주목받았던 인물이다. 산둥성 옌타이에서 창업한 의류 회사가 성공을 거둔 그는 이후 홍콩과 선전에서 차례로 식품제조회사를 설립해 회장으로 취임했다. 당시 그가 설립한 회사에 소속된 직원 수가 수백여 명에 달할 정도로 매년 큰 폭의 성장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이 같은 성공은 현지 언론이 주목할 정도로 가파른 성장세를 거듭했다. 실제로 지난 2014년 현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공개됐던 장 씨의 성공 가도는 선전시성룡발식품공업유한공사와 선전시성룡달식품유한공사, 연변용달식품유한공사 등 총 3곳의 기업이 매년 큰 폭의 성장세를 기록하며 외부에 공개됐다. 하지만 매년 그 규모를 확장했던 그의 사업은 지난 2017년 은행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면서 결국 파산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장 씨는 자신이 소유했던 3개의 사업체 중 두 곳에 대해 파산 신청한 뒤 줄곧 일정한 거주지 없는 노숙자 신세가 됐다. 그의 하루 일과는 매일 새벽 날이 밝으면 인근 상점 주인들이 전날 밤 길거리로 내놓은 쓰레기 더미 사이에 있는 폐지를 선별해 수거하고, 오후에는 공원 벤치에서 줄곧 잠을 청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특히 그는 지난 2020년부터 선전시 일대를 유랑하며 노숙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장 씨의 이런 안타까운 사연을 확인한 공익단체 회원들은 그의 전 부인과 두 자녀에게 연락을 취해 그의 처지를 알렸다. 하지만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그에게 도움을 주고 싶지 않다”는 가족들의 차가운 답변이었다. 사실상 장 씨가 사업으로 가장 큰 성공 가도를 달렸던 지난 1990년대 무렵부터 그가 자신의 가족들과 연락을 끊은 채 생활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장 씨의 전 부인으로 알려진 70대 여성은 “그는 고향인 산둥성을 떠난 직후 홍콩으로 이주했고, 이 시기부터 고향에 남겨진 가족들과는 인연을 끊었다”면서 “지난해 선전시 공안국의 연락을 받고 장 씨가 이 일대를 전전하는 노숙자로 전락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젊었을 때의 그는 남편이자 가장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그를 집으로 데려오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또, 장 씨의 두 자녀 중 한 명은 명문대 출신의 회사원이지만 그 역시 장 씨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을 전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공익단체 측은 “장 씨가 본인의 고향인 산둥성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계획을 하고 있다”면서 “만약 그의 전 부인과 자녀들이 또다시 그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표한다면 그땐 장 씨를 산둥성 소재의 양로원에 입주하도록 주선할 계획”이라고 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김연아 뜨면 매출 2배”…디올의 이유있는 변신 [명품톡+]

    “김연아 뜨면 매출 2배”…디올의 이유있는 변신 [명품톡+]

    수지·지수…디올의 다음 선택은공격적 ‘스타 마케팅’ 이어가는 디올‘피겨 여왕’ 김연아가 지난 22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화장품 사진 1장을 게재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디올에게 받은 협찬 파운데이션 쿠션 제품과 자신의 얼굴을 담은 것이다. 해당 제품엔 ‘YUNA’라는 이니셜이 새겨졌다. ● ‘파급효과’ 노린 ‘똑똑한’ 선물 디올은 유명 ‘앰버서더’(브랜드 홍보 파트너)에게 자사 제품을 제공하며 그들의 이름을 ‘SUZY’, ‘DALGOM’ 등으로 새긴다. 맞춤 제작 가방을 선물한 것이다. 디올은 이를 통한 입소문 효과를 노린다. 앰버서더의 인스타그램 파급력을 이용하는 것이다. 실제 일반 소비자 역시 디올 제품을 구매하며 자신의 이니셜을 추가 금액 지불 후 새길 수 있다. 스타를 따라하되 자신의 이름을 새겨 차별화할 수 있도록 ‘나만의 것’을 강조하는 마케팅 전략이다. 이는 MZ세대의 차별화 열망을 노린 것이다. ● MZ 파급력 높은 스타만 골라김연아 외에도 가수 겸 배우 수지와 걸그룹 블랙핑크의 지수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니셜을 새긴 제품을 공개했었다. ‘SUZY’는 가수 겸 배우 수지의 이니셜, ‘DALGOM’은 지수 반려견 이름이다. 수지는 2017년 디올 ‘하우스 프렌즈’로 발탁됐다. 하우스 프렌즈는 본사 브랜드 홍보를 대표하는 스타 앰버서더를 일컫는 말이다. 디올은 ‘글로벌 앰버서더’ 개념을 비교적 최근에 도입했는데, 이 때 블랙핑크 지수가 발탁돼 화제였다. 지수는 2020년 ‘디올 패션 뮤즈’로 활동하다 지난해 3월 ‘패션·뷰티 글로벌 앰버서더’가 됐다.같은해 12월엔 엑소 세훈도 ‘디올 맨 앰버서더’가 됐다. 그 역시 지난 2020년부터 관련 활동을 이어오다가 앰버서더 명칭을 받았다. 디올은 방탄소년단도 놓치지 않았다. 현재는 모기업 LVMH의 모델이지만, 2019년 당시 디올은 브랜드로서는 최초로 디자인 의상을 방탄소년단 월드투어 무대 의상으로 제공했었다. ● 김연아와 디올의 오랜 인연 비결은디올은 김연아의 파급력도 놓치지 않았다. 지난해 8월 김연아를 앰버서더로 선정했다. 엑소 세훈의 사례처럼, 김연아 역시 앰버서더 선정 이전부터 디올의 브랜드 화보를 촬영하는 등 활동을 해왔다. 디올이 김연아의 파급력을 느꼈던 인연은 지난 2013년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김연아가 디올 어딕트 립글로우를 사용하는 사진은 ‘김연아 립밤’이란 이름으로 ‘국민 립밤’ 칭찬까지 들었다. 당시 김연아는 2013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 버드와이저 가든스 기자회견장에서 연기 순서 추첨을 기다리며 립글로우를 발랐다. 국제빙상경기연맹 피겨 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둔 참이었다. 해당 립글로우는 투명한 제형이나 바르면 분홍색이 돼 자연스러운 혈색을 돌게 하는 게 제품 특징으로 본래 베스트셀러에 속했다. 다만 협찬이 아니라 스스로 구매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입소문을 더 탔다. 튀지 않는 발색과 김연아 선수의 조합은 립글로우 매출을 2~3배 올렸다. 당시 디올은 김연아가 립글로우를 바르기 전 하루 1000개 팔리던 매출이 이후 3000개 이상 뛰었다고 홍보했다.
  • 여성 다친 LA 4중 충돌사고… 가해 차량엔 ‘터미네이터’

    여성 다친 LA 4중 충돌사고… 가해 차량엔 ‘터미네이터’

    미국 LA 교차로에서 4중 추돌사고가 나 여성 한 명이 머리를 다친 가운데, 가해 차량엔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로 유명한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2일(현지시간) CBS, ABC, 폭스뉴스 등 보도를 종합하면 전날 오후 4시 35분 LA 브렌트우드 지역의 한 교차로에서 슈워제네거가 몰던 스포츠유틸리티차(SUV)와 하이브리드 승용차가 부딪치는 등 4중 충돌 사고가 발생했다. 슈워제네거는 다치지 않았고, 이 사고로 여성 한 명이 머리에 부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슈워제네거는 현장에 머무르면서 부상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등 사고 수습에 협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슈워제네거 측은 “슈워제네거는 무사하다. 그가 유일하게 걱정하는 것은 다친 여성의 상태”라고 말했다. LA 경찰은 “알코올이나 약물이 이번 충돌 사고의 원인으로 의심되지 않는다”며 음주 사고 등의 가능성을 배제했다.오스트리아 출신의 슈워제네거는 보디빌더로 명성을 쌓은 뒤 영화 ‘터미네이터’, ‘토털리콜’ 등 다수 영화의 주연을 맡아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정치인으로 변신, 2003년 공화당 후보로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돼 2011년까지 주지사로 활약했다. 한편 슈왈제네거는 지난해 12월 말 마리아 슈라이버(66)와 이혼절차를 마무리했다. 슈왈제네거가 가정부 밀드레드 바에나와의 사이에서 아들 요셉을 낳았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둘은 파경을 맞았다. 2013년부터 27세 연하의 물리치료사 헤더 밀리건과 사귀고 있다.
  • 차세대 리더 中 천만장자, 쓰레기통 뒤지는 노숙자로 전락

    차세대 리더 中 천만장자, 쓰레기통 뒤지는 노숙자로 전락

    과거 천만장자로 불리며 홍콩에 3개의 기업체를 운영했던 남성이 헝클어진 머리와 얇은 티셔츠 한 장으로 긴 겨울을 견디는 노숙자로 전락한 사연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중국 매체 펑파이는 최근 광둥성 선전시 도심 일대를 배회하며 폐지 수거로 생활비를 마련해오고 있는 70대 남성을 소개, 그가 불과 몇 년 전까지 중국을 이끌 차세대 경제계 리더로 불렸던 장위엔천이라는 인물이라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일정한 주거지가 없던 장 씨가 선전시 도심을 떠돌던 중 이 지역 공익단체 관계자들의 눈에 띄면서 구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익단체 회원들은 지난 20일 도심 공원 한 켠 벤치에서 얼음장 같은 날씨를 견디고 있던 장 씨를 구조, 그의 신원을 조사한 결과 과거 천만장자로 이름을 알리며 현지 다수의 매체에 얼굴을 공개했던 유명 기업가였던 사실을 확인했다. 구조된 장 씨는 올해 75세의 산둥성 옌타이 출신의 기업가로, 불과 지난 2017년까지 총 3개의 기업체 창업주로 현지 언론에 보도되는 등 차세대 경제인으로 주목받았던 인물이다. 산둥성 옌타이에서 창업한 의류 회사가 성공을 거둔 그는 이후 홍콩과 선전에서 차례로 식품제조회사를 설립해 회장으로 취임했다. 당시 그가 설립한 회사에 소속된 직원 수가 수백여 명에 달할 정도로 매년 큰 폭의 성장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이 같은 성공은 현지 언론이 주목할 정도로 가파른 성장세를 거듭했다. 실제로 지난 2014년 현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공개됐던 장 씨의 성공 가도는 선전시성룡발식품공업유한공사와 선전시성룡달식품유한공사, 연변용달식품유한공사 등 총 3곳의 기업이 매년 큰 폭의 성장세를 기록하며 외부에 공개됐다. 하지만 매년 그 규모를 확장했던 그의 사업은 지난 2017년 은행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면서 결국 파산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장 씨는 자신이 소유했던 3개의 사업체 중 두 곳에 대해 파산 신청한 뒤 줄곧 일정한 거주지 없는 노숙자 신세가 됐다. 그의 하루 일과는 매일 새벽 날이 밝으면 인근 상점 주인들이 전날 밤 길거리로 내놓은 쓰레기 더미 사이에 있는 폐지를 선별해 수거하고, 오후에는 공원 벤치에서 줄곧 잠을 청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특히 그는 지난 2020년부터 선전시 일대를 유랑하며 노숙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장 씨의 이런 안타까운 사연을 확인한 공익단체 회원들은 그의 전 부인과 두 자녀에게 연락을 취해 그의 처지를 알렸다. 하지만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그에게 도움을 주고 싶지 않다”는 가족들의 차가운 답변이었다. 사실상 장 씨가 사업으로 가장 큰 성공 가도를 달렸던 지난 1990년대 무렵부터 그가 자신의 가족들과 연락을 끊은 채 생활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장 씨의 전 부인으로 알려진 70대 여성은 “그는 고향인 산둥성을 떠난 직후 홍콩으로 이주했고, 이 시기부터 고향에 남겨진 가족들과는 인연을 끊었다”면서 “지난해 선전시 공안국의 연락을 받고 장 씨가 이 일대를 전전하는 노숙자로 전락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젊었을 때의 그는 남편이자 가장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그를 집으로 데려오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또, 장 씨의 두 자녀 중 한 명은 명문대 출신의 회사원이지만 그 역시 장 씨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을 전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공익단체 측은 “장 씨가 본인의 고향인 산둥성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계획을 하고 있다”면서 “만약 그의 전 부인과 자녀들이 또다시 그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표한다면 그땐 장 씨를 산둥성 소재의 양로원에 입주하도록 주선할 계획”이라고 했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예명에 어울리지 않게 채식 사랑한 록스타 ‘미트 로프’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예명에 어울리지 않게 채식 사랑한 록스타 ‘미트 로프’

    고기와 채소를 뭉쳐 만든 요리 ‘미트 로프’란 예명과 어울리지 않게 채식주의자였던 미국의 가수 겸 배우 마이클 리 어데이(개명 전 마빈 리 어데이)가 74세로 세상을 등졌다. 21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BBC에 따르면 리 어데이 측은 전날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글을 통해 “미트 로프가 오늘 밤 아내 레베카와 두 딸 펄, 아만다와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작고했다는 소식을 전하게 돼 마음이 찢어진다”고 알렸다. 100㎏이 넘는 거구인 그는 미국의 유명 작곡가 짐 스타인먼과 손잡고 1977년 발매한 앨범 ‘배트 아웃 오브 헬(Bat Out of Hell)’이 5000만장 팔렸고 미국에서만 1400만장 상당의 판매고를 올렸다. 그는 그 뒤로 한동안 히트곡을 내지 못하다 1993년 스타인먼과 다시 뭉쳐 ‘배트 아웃 오브 헬 2: 백 인투 헬’을 발표해 다시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앨범은 세계적으로 1500만장 이상 팔렸고, 수록곡 ‘아이드 두 애니씽 포 러브’가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1위를 기록했다. 1994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솔로 록 보컬 상을 받기도 했다. 미트 로프는 그 뒤 몇 차례 더 앨범을 발표하고 세계 투어 공연을 다니면서 총 1억장이 넘는 앨범을 판매했다. 1975년 영화 ‘록키 호러 픽처 쇼’와 1992년 ‘웨인스 월드’, 1999년 ‘웨인스 월드’에 출연하면서 배우로도 활동했다. 하지만 2011년 공연 중 무대에서 쓰러지는 등 오랫동안 건강상 문제가 있었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태어난 고인은 태어났을 때 정육점의 고기처럼 붉어 보인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미트란 별명을 붙여줬고, 나중에 고교 풋볼 코치가 로프란 애칭을 덧붙여줬다. 생전 고인과 1981년 발매한 ‘데드 린저 포 러브’로 호흡을 맞춘 팝스타 셰어는 “아주 많이 재미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생전 BBC 인터뷰를 통해 “난 오페라를 공부하면 돈을 많이 벌 것이라는 제안도 받았지만 내 길이 아니다 싶었다. 나도 무척 반항적이고 너무 미쳐 있었다”고 돌아봤다. 1989년 고인과 함께 앨범을 녹음했던 보니 타일러는 “목소리와 무대 매너로도 실제 캐릭터보다 훨씬 큰 아우라를 펼쳤으며 각별한 탤런트와 품성을 겸비한 드문 인물이었다”고 안타까워했다. 뮤지컬 제작자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천국의 자물쇠가 록과 함께 울릴 것이다. RIP 미트로프”라고 애도했다. 그룹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도 인스타그램에 “미트는 영원히 젊다”고 애도했다. 애덤 램버트, 방송인 스티븐 프라이, 가수 로레인 크로스비, 방송인 피어스 모건 등이 추모에 함께 했다. 그는 비만 때문인지 많은 질병과 숱한 부상에 시달렸다. 1978년 캐나다 오타와 무대에서 뜀박질하다 다리를 부러뜨려 휠체어에 앉은 채로 공연해야 했다. 2011년 피츠버그 무대에서도 쓰러졌으며 5년 뒤 캐나다 공연 중에도 무대에서 떨어졌다. 2019년 텍사스주 컨벤션 도중 인터뷰를 하다 낙상해 쇄골을 부러뜨렸다. 평생의 친구 스타인먼이 지난해 세상을 떠나자 미트 로프는 글을 올려 “곧 여기 와, 내 친구 지미”라고 추모했다.
  • “흉기 들고 폭행” 정창욱 셰프, 음주운전 이어 폭행·협박 피소

    “흉기 들고 폭행” 정창욱 셰프, 음주운전 이어 폭행·협박 피소

    유명 셰프 정창욱씨가 해외에서 술자리에 동석한 이들을 폭행하고 흉기로 위협했다는 혐의로 피소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21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종로경찰서는 정씨를 특수폭행과 특수협박 등의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정씨는 지난해 8월 개인방송 촬영을 위해 미국 하와이를 방문했을 당시 촬영을 도운 A씨와 A씨의 동료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들은 정씨가 폭행 과정에서 주방에서 흉기를 들고 오기도 했다며 경찰에 고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KBS 보도에 따르면 A씨는 정씨가 A씨의 멱살을 잡고 오른손으로 가슴 부위를 4~5회 때렸으며, 흉기를 들고 오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폭행 다음날 피해자 측이 “그때 셰프님이 술 드시고 흉기 들었지 않았나. 되게 잘해주셨는데 (폭행 당시에는) 무서워서”라고 묻자 정씨가 “이해해”라고 답하는 녹취록도 공개됐다. A씨는 얼굴과 실명을 밝히고 방송 보도에 직접 출연해 피해 사실을 주장했다. A씨는 당시 정씨가 흉기로 벽과 식탁을 파손한 흔적도 제시했다.A씨는 아직도 당시 흉기를 자신의 몸에 갖다 댄 상황이 생생하다며 현재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고소장을 접수한 경찰은 정씨를 피의자로 입건하고, 정씨를 직접 불러 조사했다. 정씨는 조사에서 일부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씨는 지난해 음주운전으로 벌금 15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고 면허가 취소된 상태다. 정씨는 지난해 5월 9일 새벽 서울 중구의 한 도로에서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됐다. 당시 그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67%로 면허취소 기준(0.08%)를 넘은 상태였다. 그는 2009년에도 음주운전이 적발된 이력이 있었다. 재일교포 4세인 정씨는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미쉐린가이드가 ‘빕 구르망’으로 선정한 서울 중구 소재 식당 금산제면소 셰프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현재 구독자 13만여명의 요리 유튜브 채널 ‘정창욱의 오늘의 요리’를 운영하고 있다. 이날 정씨의 폭행 피소 사실이 보도된 뒤 유튜브 채널에는 “구독 취소한다”, “영상 제작진이 왜 그만뒀는지 이제 알게 됐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경찰은 사건 관계인 진술과 증거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조만간 처분을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 [여기는 중국] 푸세식 화장실서 치킨 조리… ‘맛 좋은’ 中 배달 음식의 비밀

    [여기는 중국] 푸세식 화장실서 치킨 조리… ‘맛 좋은’ 中 배달 음식의 비밀

    중국의 유명 배달업체가 푸세식 화장실 변기 옆에 생닭을 두고 치킨을 조리한 사실이 발각됐다. 중국 쓰촨성 메이산 시장감독관리국은 지난 19일 이 지역 유명 배달 음식점의 위생 상태를 점검하던 중 업체 직원이 화장실 변기 옆에 생닭을 둔 채 치킨을 조리해 판매한 혐의를 확인했다고 21일 밝혔다. 이들이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문제의 배달 전문 요식업체는 이 지역에서 가장 판매 순위가 높은 치킨 전문 업체로 코로나19 사태 후 배달 전문 업체로 운영해 왔던 곳으로 알려졌다. 이 업체는 주방 시설이 비공개된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라는 점을 악용해 상식 이하의 위생 불량 상태로 운영해왔다는 지적이다. 업체 주방 시설을 현장 지도한 관할 시장관리감독국 측은 이 식당의 주방 후드에 오래된 기름이 붙어 있는 탓에 기름때가 음식에 떨어져 나오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 가게 식품 중 상당수가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으로 일부 식재료는 폐기 처분 상태였지만 그대로 조리돼 판매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치킨 가공 시 녹이 슨 가위로 생닭을 조리했으며, 냉동 닭을 해동할 시 푸세식 화장실 변기 옆에 방치해 다수의 바이러스에 감염될 우려가 매우 높았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이 업체를 찾아 현장 지도를 했던 관할 시장감독국 측은 문제의 배달전문업체에 영업 정지 명령을 내린 상태다. 또, 해당 업체가 입점했던 온라인 배달 전문 플랫폼 측은 문제의 대리 점주와의 계약을 해지, 업체 측은 위생 문제를 해결 후 영업을 재개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중국 배달 음식점의 위생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4월 광둥성에 거주하는 오 씨는 배달 음식을 주문해 맛을 보던 중 피로 추정되는 액체가 묻은 반창고를 발견했다. 당시 오 씨는 격분해 해당 이물질을 촬영해 가게로 찾아가 항의했으나, 업체 측은 “직원이 파를 다듬던 중 손을 다쳐 반창고를 붙였는데, 닭 손질 중 들어간 것”이라면서 “음식값을 환불해주겠다”고 응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2019년에는 광둥성의 한 회사원이 동료들과이 식사를 위해 배달음식을 주문했다가 무려 40마리의 바퀴벌레를 발견한 경악스러운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당시 음식을 주문했던 고객은 식사 도중 한 동료가 바퀴벌레를 발견했고, 뒤이어 다른 동료들의 음식까지 모두 확인한 결과 총 40여 마리의 벌레가 발견됐다고 항의했다. 당시 음식물 속에서 발견된 다량의 바퀴벌레 사진이 온라인 SNS에 공유되면서 문제의 요식업체가 약 15일간의 강제 휴업 조치에 처해지며 사건은 무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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