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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

    분홍 보자기(윤보원 글·그림, 창비 펴냄) 정겹고 개성 있는 그림을 그려온 화가의 첫 번째 창작그림책. 실제 딸아이가 네다섯 살 무렵 할머니가 가져오신 보자기를 갖고 노는 모습을 기억해 뒀다 그림책으로 담아냈다. 아이의 머릿속에 펼쳐지는 다양한 상상의 세계가 생기 있고 유머러스하게 그려진다. 어린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장면을 단순하게 구성해 반복하는 게 특징. 40쪽. 1만 1000원. 언니가 없으면 좋겠어(이은재 지음, 심윤정 그림, 살림어린이 펴냄) 현재 주어진 상황 속에서 행복한 가족이 되는 비법을 담은 단편 동화 모음집이다. ‘언니가 없으면 좋겠어’ ‘백조가 된 오리 꽥꽥’ ‘행복해져랏, 얍!’ 등 세 편이 실렸다. 자폐증에 걸린 언니,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이상한 목소리의 새엄마 등 작품 속 아이들은 저마다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갖고 있다. 228쪽. 1만 1000원.
  • POOP TV, 참신한 한글날 캠페인으로 ‘플레이리그’ 1위

    POOP TV, 참신한 한글날 캠페인으로 ‘플레이리그’ 1위

    오는 9일 한글날을 맞아 ‘POOP TV’에서 내놓은 영상이 화제다. POOP TV 대표 캐릭터 ‘덩이’의 인터뷰로 이루어진 이 영상은, 게시 후 한 시간 만에 네이버 메인에 등장하는 저력을 보였다. 현재는 육천 개가 넘는 영상들을 제치고 전체 조회수 1위에 올라 있다. 한글 자음은 ‘ㄱ’부터 ‘ㅎ’까지 모두 14자. ‘이를 모두 욀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라는 호기심이 기획의 시초가 되었다. 인터뷰 결과 한글의 위대함은 모두가 인정하는 반면, 관심도는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 안타까움을 샀다. POOP TV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이렇게 모를 줄 예상 못했다. 그런데 나조차도 막상 읊으려니 헷갈리더라. 이번 기회로 한글을 잘 알고 사용하는 것이 곧 한글사랑이라는 메시지가 모두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캠페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POOP TV는 곧이어 한글날 기념 캠페인 2탄을 게시했다. 이 역시 한글을 아끼고 사랑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으면서, 독특한 발상이 돋보이는 영상이다. 2탄 ‘어떻게 보이시나요’에 사용된 광고 기법은 ‘아나사이 클리칼(Anacy clical)’로, 바로 읽으나 거꾸로 읽으나 메시지가 통하는 방식을 말한다. ‘POOP TV’의 다른 관계자는 “2006년 깐느 광고제 은사자상 수상작(머피 로페즈의 대선 광고)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주제를 살리되 지루하지 않은 영상을 만들고 싶어 이와 같은 방식을 시도해보았다.”고 전했다. 예고편 ‘변비본부’로도 인기몰이 중인 ‘POOP TV’ 의 컨텐츠들은 공식 블로그(http://blog.naver.com/pooptv)에서 확인할 수 있다. 평소 속담을 한 꺼풀 비튼 고급 유머와 ‘똥 누면서 보는 TV’라는 슬로건으로 인기를 끌어왔던 ’POOP TV’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부산 연제구 어울림 축제 오늘부터 3일간 열린다

    부산 연제구는 6일부터 8일까지 3일간의 일정으로 주민자치 대축제인 ‘2015 연제 주민자치 어울림 페스티벌’을 연다고 5일 밝혔다. 구청 구민홀과 광장, 시청 대강당 등에서 열리는 이번 페스티벌은 12개 주민자치회 등 2000여명이 참여해 참여, 배움, 소통과 나눔의 네 가지 테마로 발표회 및 체험, 전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첫째 날은 동 주민자치회 문화강좌와 유관기관의 작품전시회가 8일까지 구청 민원홀에서 열리고 12개 동 주민자치회와 연산도서관, 노인복지관이 참여하는 캘리그래피, POP손글씨, 정리수납 등 300여점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둘째 날에는 구민홀에서 ‘행복과 건강을 부르는 유머리더십’ 특강이 있고 구청 광장에서는 ‘주민자치·동아리 프로그램 체험마당’을 열어 토털아트공예, 캘리 멋글 체험, 리본헤어핀·비즈 팔찌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 마지막 날인 8일에는 하이라이트인 주민자치 프로그램 발표회가 오후 2시 부산시청 1층 대강당에서 펼쳐진다. 이위준 구청장은 “깊어가는 가을을 맞아 알차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새 영화] ‘인턴’

    [새 영화] ‘인턴’

    젊은 최고경영자(CEO)와 한 직장에서 일하는 시니어 인턴. 노인 인구가 계속 늘어나는 현대 사회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변화다. ‘인턴’은 이런 소재를 흥미롭고 따뜻하게 풀어 낸 영화다.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를 생각했다면 오산. 일하는 여성들의 고민과 이를 풀어 갈 삶의 통찰력이 담겨 있다. 온라인 패션몰 ‘어바웃 더 핏’의 CEO인 줄스(앤 해서웨이)는 불과 1년 반 만에 전업 주부에서 직원 220명의 성공 신화를 이룬 주인공이다. 패기 있는 30대답게 사무실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야근을 도맡을 정도로 자유로우면서도 책임감이 강한 그 앞에 어느 날 시니어 인턴 프로그램을 통해 채용된 벤(로버트 드니로)이 등장한다. 회사 중역까지 지냈지만 은퇴와 사별 이후 생긴 삶의 구멍을 메울 것은 일밖에 없다고 생각한 벤. 면접 때 손자뻘 되는 직원이 “10년 뒤 당신은 어떻게 돼 있을 것 같은가”라는 황당한 질문을 해도 당황한 기색 없이 잘 넘긴다. 벤은 까다롭기로 유명한 줄스의 비서를 맡게 되고 줄스 역시 벤이 처음에는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마다 슬기롭게 극복할 방법을 알려주는 그를 신뢰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열정은 많지만 경험이 부족한 줄스가 연륜과 여유가 있는 벤에게 삶의 지혜를 배우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70대 노인이라면 막내딸뻘 되는 줄스의 일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을 만도 하지만 벤에게선 그런 꼰대 같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일에만 몰두하느라 점점 결혼 생활과의 균형을 잃어 가면서 혼란에 휩싸인 줄스. 어느새 그녀의 멘토가 된 벤은 회사 생활은 물론 인생 전체의 고민까지 들어 준다. 어느 날 줄스가 완벽주의자로서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성격 탓에 홀로 될 자신의 모습을 걱정하며 눈물을 흘리자 벤이 “그럼 나와 내 부인의 묘지 옆에 묻히라”고 위로하는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영화는 두 사람의 우정을 통해 부모 세대와의 화해를 이야기한다. 각박한 직장 생활에서 포용력 있고 삶의 지혜를 나눠 주는 ‘진짜 어른’을 찾고 있는 요즘 젊은이들의 판타지를 충족시킨다.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등을 통해 연애와 결혼, 이혼 등 삶의 유쾌하고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잘 담아낸 낸시 마이어스 감독은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고서도 충분히 설득력 있게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사랑하고 일하라. 일하고 사랑하라. 그게 삶의 전부다”라는 프로이트의 명언을 인용해 일이 인간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줄스와 벤을 통해 에둘러 설명한다. 무엇보다 어깨의 힘을 뺀 채 유머 감각 있고 소통에 유연한 ‘키다리 아저씨’ 연기를 소화한 로버트 드니로의 연기가 일품이다. 앤 해서웨이 역시 일과 가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직장 여성을 공감대 있게 표현한다. 물론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는 너무 이상적인 나머지 현실성이 떨어지게 보일 수도 있지만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따뜻한 힐링을 안겨 준다. 24일 개봉. 12세 관람가.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연예 포스토리 14] ‘식모’만 시켜 그만두려했던 그녀, 톱스타 되다

    [연예 포스토리 14] ‘식모’만 시켜 그만두려했던 그녀, 톱스타 되다

    ‘추석’하면 떠오르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고향’과 ‘어머니’인데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포스토리’에서 살펴볼 인물은 추석과도 같은 배우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토록 떠나고 싶어 했던 고향이지만, 지금은 고향의 후배들을 위해 강단에 서기로 결심한 그녀, 한국 ‘어머니’의 대명사. 고두심의 고향과 어머니에 얽힌 사연들을 살펴봅니다. ●고두심, 한 때 연기 포기할까 생각도 1951년 제주 이도동에서 태어난 고두심은 제주여고를 졸업한 뒤 1972년 MBC 공채 5기 탤런트로 합격해 연예계에 입문합니다. 데뷔 초기에는 가정부, 심부름꾼, 다방종업원 등 티 안 나는 배역을 전전했다고 하는데요. 심지어 모처럼 큰 역을 맡았을 때는 입술이 떨어지지 않아 녹화장에서 울어버리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고두심은 ‘연기를 포기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다고 하네요. ●절망의 늪에서 그녀를 꺼내준 ‘고향’ ‘연기자를 포기해야겠구나’ 생각하던 고두심이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온 것은 1976년입니다. 그녀는 제주 기생 김만덕의 일생을 그린 드라마 ‘정화’의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됩니다. 김만덕은 큰 가뭄에 허덕이고 있는 마을 주민들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몽땅 나눠준 제주의 대표적 의녀인데요. 제주 출신인 고두심은 이 작품에서 ‘강인하고 참을성 있는 제주 여인’ 김만덕 역을 잘 소화했습니다. 당시 드라마 관계자들은 “모처럼 제대로 된 연기자 하나를 건졌다”고 찬사를 보냈다고 하네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고향의 의미 고두심은 ‘고향’ 덕분에 연기자로서 성공할 수 있었지만, 한때는 그토록 그곳을 떠나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고두심은 3남 4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기 때문에 집안에서 기대를 많이 받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이런 고두심은 중학교 때부터 배운 장구를 두드리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곤 했다고 합니다. 조용하고 내성적이었지만 끼가 많았던 이 소녀는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어릴 때부터 품어왔는데요. 그녀는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에 간 오빠 밥을 해줘야겠다”며 무작정 상경했습니다. 훗날 고두심은 이렇게 말했죠. “젊어서는 벗어나지 못해 안달이었는데 이제는 고향 생각만 하면 가슴 저 밑바닥부터 저려와요. 고향은 숱한 좌절과 방황에 흔들릴 때마다 언제나 묵묵히 두 팔 벌려 안아주던 내 어머니 같은 곳이지요.” ●“감독들 눈이 삐었다. 어떤 얼굴이 미스 얼굴이냐” 고두심하면 생각나는 역할이 ‘어머니’입니다. 지금은 많은 후배 배우들이 존경하는 배우지만, 그녀도 과거에는 이 역할을 싫어했다고 합니다. 과거 고두심은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린아이가 있는 엄마 역할로 데뷔했다. 대한민국 감독들은 다 눈이 삐었다. 그때 내가 감독들에게 ‘내 얼굴이 엄마 얼굴인가? 어떤 얼굴이 미스 얼굴이냐’라고 했다.” 그런데 뒤에 덧붙인 말이 더 유머러스합니다. “실은 그때도 심하게 예쁘진 않았다. 무리 속에 있으면 고를 수는 없는 얼굴이었다. 솔직히.” ●고두심 얼굴, 알고 보니 조선 시대 왕비형? 고두심의 얼굴이 서구적으로 화려한 얼굴은 아닐지라도, 동양적이고 기품 있는 얼굴인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1996년 KBS1 ‘역사추리’에서는 조선시대 왕비의 간택 과정과 일상생활 등을 다룬 ‘왕비를 알면 조선이 보인다’ 편을 방송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이 프로그램 제작진은 갸름한 얼굴, 가는 눈썹, 아담한 코, 얇은 입술, 작은 눈을 가진 고두심의 얼굴이 조선시대 왕비형에 가장 가깝다고 설명했습니다. ●고두심, 육영수와 외모 비슷해 캐스팅 기품 있는 외모를 가진 정치인, 사회기관단체인을 꼽으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육영수 여사를 떠올리실 겁니다. 실제로 고두심은 1995년 SBS ‘코리아게이트’에서 육영수 여사 역을 소화한 적이 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역은 탤런트 독고영재가 맡았는데요. 이 드라마의 연출을 맡은 고석만 PD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독고영재가 외모로는 박정희와 많이 닮지 않았으나 카리스마 있는 이미지를 풍겨 안성맞춤이라고 판단했다. 고두심은 라디오 다큐멘터리 ‘격동 30년’에서 3년 6개월 동안 육영수 역을 맡아 인물탐구가 철저하고 외모도 비슷해 캐스팅했다.” ●“엄마 역할이 힘들면 내 딸로 살아라” 고두심은 지난 3일 열린 KBS ‘부탁해요, 엄마’ 기자간담회에서 본인의 엄마와 관련된 사연을 밝혀 현장을 눈물바다로 만든 적이 있습니다. “엄마를 생각하면 소가 연상이 돼 마음이 아프다. 나이가 든 뒤에 엄마한테 가서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엄마 손을 잡고 바닷가에 가서 ‘엄마가 너무 좋다’ 했다. 내가 부모가 되어 보니 엄마의 역할이 정말 힘들더라. 그랬더니 엄마가 ‘엄마 역할이 힘들면 내 딸로 살아라’라고 했다.” 고두심은 지금도 이 말을 되새기며 연기를 한다고 합니다. ●제주에서 영화연극인을 꿈꾸는 청년들의 ‘대모’로 새 출발 최근 고두심은 내년에 신설되는 제주국제대학교 영화연극학과 석좌교수로 임용됐습니다. 이곳에서 그녀는 연기자가 갖춰야 할 자질과 소양, 덕목 등을 가르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해당 학과는 제주도 내에서 사상 처음으로 생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많은 고향 후배들의 ‘대모’가 될 그녀의 모습을 기대해봅니다. 이미경 기자 btfseoul@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이념 아닌 사람을 섬기라” 쿠바에 직언한 교황, 美도 놀래키나

    [글로벌 인사이트] “이념 아닌 사람을 섬기라” 쿠바에 직언한 교황, 美도 놀래키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 후 처음으로 최강대국 미국과 유엔을 방문한다. 쿠바를 방문 중인 교황은 22일부터 27일까지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 유엔 총회 연설, 뉴욕 ‘그라운드 제로’ 방문 등을 한다. 교황으로선 29번째 미국 방문이지만 일정만 보면 정치인처럼 보인다. 이번 방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의 단골 주제인 기후변화, 사회 불평등, 교회 개혁 문제 등에 대해 강도 높은 메시지를 내놓을 것으로 기대된다. 쿠바의 마지막 날 교황은 앞서 20일(현지시간) 쿠바 혁명의 주역인 피델 카스트로(89) 전 국가평의회 의장과 40분간 만나 환담했다고 교황청 대변인이 밝혔다. 카스트로 전 의장은 와이셔츠 위에 체육복을 걸친 상태로 교황을 맞았다. 교황은 70년 전 카스트로 전 의장이 다닌 가톨릭 예수회 고교의 교사인 아르만도 로렌테 신부의 책과 관련 CD 등을 전달했다. 카스트로 전 의장은 답례로 브라질의 대표적 해방신학자인 프레이 베투 신부와 자신의 대화를 담은 책 ‘피델과 종교’를 증정했다. 교황으로선 세 번째 쿠바 방문이다. 교황은 이날 오전 수도 아바나의 중심부인 아바나 혁명광장에서 미사를 집전하며 인간 존중의 메시지를 전했다. 교황은 “이념이 아니라 섬기는 마음으로 서로 아끼라”면서 “섬김은 결코 이데올로기가 아니니 이념이 아닌 사람을 섬기라”고 강조했다. 교황이 이데올로기보다 이념을 강조한 것은 쿠바가 사회주의 국가인 점을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이날 저녁 미사에서는 원고 대신 즉흥 연설로 “신은 교회가 가난해지기를 바란다”며 성직자들이 돈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빈자와 약자를 돕는 데 노력할 것을 주문했다. 美 파격 의전 22일 쿠바 일정을 마친 교황은 미국 워싱턴 근교의 앤드루스공군기지에 도착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 부부, 조 바이든 부통령으로부터 영접받는다. 다음날 교황은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1만 4000여명의 손님과 함께 오바마 대통령이 주최하는 환영식에 참석한다. 환영식 전에는 백악관 집무실에서 오바마 대통령과의 양자 회담이 계획돼 있다. 순방 셋째 날인 24일에는 교황으로서는 최초로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을 한다. 뉴욕으로 이동한 교황은 25일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고 9·11테러가 발생한 ‘그라운드 제로’에서 다(多)종교 예배를 집전한다. 순방 마지막 날인 27일에는 필라델피아에서 1만 5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이번 순방의 마지막 미사를 집전한다. 가톨릭 신자인 바이든 부통령은 27일 교황 환송식을 여는 등 교황이 참석하는 대부분의 행사에 동행할 예정이다. 79세의 교황은 미국에서 열여덟 번의 크고 작은 연설을 하는 강행군을 한다. 쿠바에서 한 여덟 번의 연설과 합하면 이번 순방에서 한 연설은 모두 스물여섯 번에 이르지만 영어 연설은 네 번뿐이다. 기후 회담 오바마 대통령이 교황에게 최고의 영전을 베푸는 이유는 그가 12억 가톨릭 신자의 수장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바마 정부가 임기 후반 핵심 정책으로 추진하려는 기후변화 방지, 사회 불평등 해소, 사법 개혁 등에 대한 교황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다. 미국 퀴니피액대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9월 미국 내 교황의 지지도는 66%로, 오바마 대통령은 물론이고 유력 대권 주자인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보다 높다. 교황과 오바마 대통령 간 양자 회담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주제는 기후변화다. 최근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한 ‘청정전력계획’을 발표한 오바마 대통령은 오는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를 앞두고 교황의 지원을 고대하고 있다. 교황도 지난 6월 기후변화 문제에 강력 대처할 것을 주문하는 회칙을 발표하는 등 오바마 대통령과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교황의 미국 방문 목적은 미국 내 가톨릭 인구의 중요성과 두 세계 정상의 가치관 공유를 인정하는 것”이라면서 “기후변화와 같은 문제에 대해 정책적 대화가 오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교황은 또 사회 불평등 등에 대해서도 메시지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바티칸 관계자는 AFP와의 인터뷰에서 유엔 총회 연설에서 교황이 지속적으로 제기했던 문제인 “세계 금융시장의 독재성”, “일회용 소비문화의 유해성”을 비롯해 인신매매, 실업, 전쟁, 소수 종교 및 인종의 박해 등을 다룰 것이라고 밝혔다. 교회 개혁 등의 종교 문제도 빠지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15년간 미국 가톨릭계는 교회 성범죄 스캔들과 이를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 그리고 교리의 보수화 등으로 인해 신자의 급감을 겪어 왔다. 퓨리서치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4년까지 300만명의 신자가 교회를 떠났으며 같은 기간 전체 인구 대비 가톨릭 신자 비율은 23.9%에서 20.8%로 감소했다. 미국 가톨릭 관계자들은 개혁적인 교황의 순방으로 쇠퇴하던 미국 가톨릭이 회복하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도했다. 교황은 순방 전에 두 가지 중대한 개혁 즉, 신부가 낙태한 여성을 사면할 수 있도록 허가하고 결혼 무효화 절차를 간소화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시카고의 세인트메리성당 부제인 케이트 보하릭은 “교회로부터 추방당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이번 조치를 환영하며 교회로 돌아올 것”이라면서 “그들은 원래 가톨릭 신자였으나 이혼 또는 낙태했다는 이유만으로 교회로부터 지옥을 선고받았다고 느꼈던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인류 향한 메시지 그러나 교황의 메시지를 접할 미국민은 점점 비우호적으로 변하고 있다. 지난 7월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교황 지지도는 59%로 지난해 2월의 76%에 비해 17% 포인트 하락했다. 특히 보수층의 지지도는 지난해에 비해 27% 포인트 급락한 45%를 기록했다. FT는 지난 7월 교황이 남아메리카 국가들을 순방할 때 “규제받지 않는 자유시장은 악마의 배설물이며 교묘한 독재정권”이라고 말하며 반자본주의적 태도를 보인 것이 미국 보수층이 돌아서게 된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지난 6월 교황이 기후변화에 관한 회칙을 발표하며 “자연을 약탈하는 거대 기업”들을 비난한 것도 환경규제에 반대하는 미국 공화당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다. 가톨릭 신자이자 공화당 대선 경선에 나선 젭 부시 후보는 “종교를 정치적 논쟁거리로 삼아선 안 된다”고 했으며 릭 샌토럼 후보 또한 “과학은 과학자들에게 맡기고 교회는 신학과 도덕에 집중해야 한다”며 교황과 각을 세웠다. 미국 가톨릭 내 보수파도 교황의 교회 개혁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하고 있다. 결혼 무효화 간소화 조치가 발표된 뒤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미국의 보수파 성직자인 레이먼드 버크 추기경은 “교회 내에서 결혼제도를 무자비하게 공격한 것에 통탄한다”면서 교황의 개혁 조치에 대해 “감정에 치우친 것”이라고 반발했다. 보수파는 또 교황이 이란 핵협상을 지지하고 미국과 쿠바 간 관계 정상화를 물밑에서 도왔다는 점에서 공산주의자이자 반미주의자라는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교황의 메시지를 보수, 진보의 이분법적 프레임으로 분석하기는 어렵다는 목소리도 있다. 교황에 대한 평전을 쓴 폴 발레리는 AP와의 인터뷰에서 “교황이 진보적 경향을 갖고 있을 수 있지만 보수적 경향 또한 있다”면서 “다만 교황은 교리 문제보다는 빈곤 문제에 더 집중하고 싶어 할 뿐”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의 닉 미로프 칼럼니스트는 “교황은 진보주의자도 보수주의자도 아닌, 다양한 소수 계층을 교회로 끌어들여 가톨릭의 저변을 넓히고자 하는 복음주의자”라고 평가했다. 교황이 이번 미국 순방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하든 특정 교인이 아닌 전 인류를 향한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AP는 분석했다. AP는 교황이 유머감각을 갖고 있으며 청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교황은 가톨릭 교리를 알지 못 하는 비교인에게도 자신의 메시지를 알기 쉽게 전달한다고 덧붙였다. 뉴욕 대교구의 티머시 돌런 추기경은 “교황은 단순함, 겸손, 진실함만으로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면서 “교황의 연설에는 대본도, 홍보도, 마케팅도 없다. 오직 교황 그분만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동아시아 여성미술 페미니즘을 논하다

    동아시아 여성미술 페미니즘을 논하다

    유교적 영향 아래 가부장적인 전통이라는 유사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동아시아 국가의 다양한 여성미술이 한자리에 모였다. ‘동아시아 페미니즘: 판타시아’라는 제목으로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한창인 이번 전시에선 한국, 중국, 일본,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 등 7개국 작가 14명의 작품 50여점이 소개된다. 이들은 퍼포먼스, 비디오, 멀티미디어, 사진, 페인팅, 조각 등 다양한 매체와 장르를 넘나들며 각자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을 펼쳐 놓는다. 중견작가 강애란은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주제로 한 신작을 선보였다. 피해 할머니의 증언과 다큐멘터리 영상, 사운드 등을 한곳에 모은 영상설치작품이다. 강애란은 “나이가 들면서 다시 여성성에 관심을 갖게 됐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이 공감각적으로 이해될 수 있도록 작품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함경아는 북한에서 만들어진 자수작품 ‘모나리자’와 나란히 탈북자들의 모습을 고속카메라로 담은 인터뷰영상을 배치한 ‘입체적 모나리자’를 발표했다. 정금형은 여성에게 금기시돼 온 주체적 섹슈얼리티를 주제로 한 퍼포먼스와 설치로 구성한 ‘피트니스 가이드’와 애니메이션 영상작업 ‘문방구’를 선보인다. 비정형적 실로 엮은 현장 설치작업으로 잘 알려진 일본 작가 치하루 시오타는 이번에는 검은색 실로 백색의 드레스를 거미줄처럼 감싼 작품 ‘에프터 더 드림’ 을 보여준다. 10명이 동원돼 100시간을 들여 완성된 작품으로, 작가는 여성의 부재와 억압을 이야기하고 있다. 중국 작가인 시우젼은 재활용 의상이나 버려진 천, 비행기 바퀴 등을 활용한 작품을 통해 글로벌리즘과 세계적 획일화 현상, 도시발전과 개인적 상실감, 그에 따른 현대사회의 명암을 비판적으로 짚어본다. 참여작가 중 유일한 남성인 싱가포르 출신 밍웡은 여장을 한 채 아름다움의 의미를 물은 사진과 영상으로 관람객을 만난다. 2011년 홍콩아트페어에서 퍼포먼스로 선보였던 ‘홍콩다이어리’는 작가 자신이 홍콩에서 여장을 한 채 유머러스한 태도로 정형화된 미의 개념에 도전한 작품이다. ‘비지디바’와 ‘이스탄불 다이어리’는 터키의 트랜스젠더 가수의 삶을 기록한 것이다. 제목의 ‘판타시아’는 ‘판타지’(fantasy)와 ‘아시아’(Asia)의 합성어다. 페미니즘을 화두로 삼은 이유에 대해 서울시립미술관은 “1970년대가 여성주권을 높이자는 운동이었다면 현재는 가부장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내포하는 젠더 문제 등으로 옮겨지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페미니즘 시각에서 동아시아 여성미술의 현재와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고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이번 전시 참여작가 중 7명은 연말 중국 광둥미술관에서 열리는 제1회 아시아 비엔날레에 참여할 예정이다. 전시는 11월 8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사설] 여야 싸움질 4색 당파와 뭐가 다르나

    새정치민주연합의 친노와 비노 간 끝없는 권력투쟁도 국민으로서는 한심한 지경인데 여당인 새누리당마저도 또다시 친박과 비박 사이의 알력을 재연하고 있다. 두 당 내부에서 친노, 비노, 친박, 비박으로 패를 나누어 국민은 안중에 없이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으니 공당(公黨)이라 부르기 무색할 정도다. 붕당(朋黨)을 지어 동인, 서인, 북인, 남인으로 나뉘고 이어 대북과 소북, 노론과 소론, 시파와 벽파 등으로 갈라서 사생결단하던 조선시대의 ‘4색 당파’와 다를 게 없다. 서로 상대방의 씨를 말려 가며 당파 싸움에 골몰했던 조선은 결국 붕당들의 싸움 탓에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해 도태된 것 아닌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여야의 집안싸움은 내용이나 시기 모두 온당치 않다. 정기국회, 특히 국정감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데 미래의 밥그릇을 놓고 벌이는 권력투쟁은 국민의 정치 염증만 더욱 가중시킬 뿐이다. 새정치연합은 당 혁신은커녕 친노와 비노의 사생결단 싸움만 보여 주고 있다. 친노 측은 비노를 상대로 “싫으면 떠나라” 하고, 비노 측은 친노에게 “나를 밟고 가라” 한다. 왜 야당의 지지도가 떨어지는지 모르는가. 오죽하면 내부에서조차 “피비린내 나는 당쟁”을 경고하고 나섰을까. 건전하게 단합된 야당의 실종은 정치의 발전을 저해한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제 막 임기 반환점을 돌았을 뿐인데 ‘친박 독자 대선 후보론’을 꺼내 들어 친박과 비박 투쟁의 불을 댕겼다. 친박계이자 청와대 정무특보인 윤상현 의원이 총대를 메고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의원이 바람을 불어넣으며 김무성 대표 등 비박계를 몰아치는 양상이다. 노동개혁 입법 등 태산 같은 할 일을 앞에 둔 여당의 모습이 아니다. 우리의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국민의 표심이 권력의 향배를 결정짓는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여야 내부의 권력투쟁은 그런 막강한 권한을 가진 국민을 우습게 여기지 않는 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표를 줄 국민은 정작 무심한데 자기들끼리 김칫국만 마시는 꼴이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정치인을 코털에 비유하는 유머가 회자하고 있다. 뽑을 때 잘 뽑아야 하고, 잘못 뽑으면 후유증이 오래간다는 것이다. 단순한 우스갯소리로 넘길 수 없는 우리 정치의 슬픈 자화상이다. 남은 정기국회 회기 동안만이라도 내부 권력투쟁을 멈추고 진정으로 민생을 위한 정치에 나서 주길 여야 정치권 모두에 촉구한다.
  • 이그노벨상 국내 수상자 3명은

    ‘흉내 낼 수도 없고, 흉내 내서도 안 되는 업적’에 시상하는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 노벨상을 패러디한 이그노벨상은 1991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발행하는 유머 과학잡지 ‘있을 법하지 않은 연구 연감’(Annals of Improbable Research)이 과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만든 상이다. 이그노벨상이란 이름은 ‘불명예스러운’이란 뜻의 단어인 ‘이그노블’(Ignoble)과 ‘노벨’(Nobel)을 합성해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주최 측에서는 “노벨상을 만든 알프레드 노벨의 먼 친척으로 소다수를 발명한 이그나시우스 노벨(가상의 인물)의 유산으로 상을 만들어 그를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실재하지 않는 인물의 유산이기 때문에 이그노벨상에는 상금이 없다. 매년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기 직전인 9월 2~3주 목요일에 하버드대 샌더스 극장에서 시상식을 갖는데,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이 참석해 수상작 심사와 시상을 맡고 있다. 시상 부문은 유동적이나 노벨상의 여섯 분야인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문학, 평화, 경제학 분야에 생물학, 심리학, 우주 등 필요에 따라 4개 부문을 추가해 10개 분야에 대해 시상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벨상 수상자는 2000년 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일하지만, 이그노벨상 수상자는 세 명이나 있다. 가장 먼저 1999년 FnC코오롱의 권혁호씨가 ‘향기 나는 정장’을 개발, 환경보호상을 받았다. 향기 나는 정장은 향이 들어 있는 미립자 형태의 캡슐을 옷감 사이사이에 넣어 움직일 때마다 캡슐이 터지면서 향기가 나도록 한 것이다. 주최 측은 “향기 치료 기법인 ‘아로마 테라피’를 신사복에 응용해 땀 냄새나 불쾌한 체취를 막아 환경 개선에 이바지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2000년에는 통일교 문선명 교주가 대규모 합동결혼을 성사시킨 공로로 경제학상을 받았다. 주최 측은 문 교주가 1960년 36쌍을 시작으로 1968년 430쌍, 1975년 1800쌍, 1982년 6000쌍, 1992년 3만쌍, 1995년 36만쌍, 1997년 3600만쌍을 결혼시킴으로써 결혼식의 효율성을 높이고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 산업 수준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하며 수상자로 선정했다. 1992년 휴거론을 주장하며 지구 종말을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다미선교회 이장림 목사가 도러시 마틴, 팻 로버트슨, 엘리자베스 클레어 프로핏, 해럴드 캠핑(이상 미국), 클레도니아 므웨린데(우간다) 등 5명의 종말론자들과 함께 1954년부터 50년 동안 인류 마지막 날을 매번 틀리게 예측했다는 이유로 2011년 이그노벨 수학부문상을 받기도 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50개의 키워드로 읽는 자동차 이야기(김우성 지음, 미래의창 펴냄) 자동차의 어제, 오늘, 미래를 50개의 키워드로 차근차근 풀어냈다. 350년에 걸친 유구한 자동차의 역사를 재미있게 엮어 미래 조망까지 가능케 한다. 자동차의 시작부터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 벤츠를 거쳐 친환경 정책과 함께 자동차의 대전환 시대를 맞은 현재, 그리고 곧 출시될 구글의 무인자동차까지 다루고 있다. 자동차의 역사·디자인·문화·기술적인 측면을 모두 아우른 것이 특징이다. 고급 브랜드에 가려진 자동차의 이면과 유명 브랜드 자동차에 얽힌 뒷이야기도 흥미롭다. 저자는 10대를 자동차에 빠져 보낸 신문기자 출신. 자동차 전문기자로 활약한 뒤 지금은 폭스바겐코리아 홍보부장으로 있는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동차의 역사와 미래를 아는 것은 단순히 기계에 대한 지식을 넘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것이다.” 자동차 지식이 없는 초보자가 읽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게 흠이라면 흠이다. 384쪽. 1만 6000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유홍준 지음, 창비 펴냄) 잠시 일본으로 눈을 돌렸던 저자가 강원 영월에서 경기 양평 두물머리까지 잇는 그윽한 물길을 다룬 ‘남한강편’은 그간 소개하지 않았던 충청북도와 경기도 지역이 포함된 남한강 일원을 담았다. 남한강은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한강의 본류로 수많은 이야기와 문화유산을 품고 있다. 남한강 상류이자 동강, 서강이 만나는 영월에서 시작해 요선정과 법흥사를 거쳐 단종의 비애가 깃든 청령포와 장릉으로 향한다. 남한강 답사의 중심이자 단양팔경이 있는 단양, 제천 등지로 옮긴 뒤 충북 충주, 강원 원주, 경기 여주에 흩어진 절터를 둘러보며 마무리한다. 이번 책에선 누워서 노닌다는 ‘와유’(臥遊)의 답사법을 쓴 것이 특징이다. 정색하고 강의하듯 설명하는 비평이 아니라 유머를 섞어 편안히 말하는 방식의 답사기다. 유물 해설은 물론 역사, 문학, 민속과 자연유산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옛 그림과 사진을 풍부하게 실어 답사의 깊이를 더한다. 448쪽. 1만 8000원. 빈곤을 착취하다(휴 싱클레어 지음, 이수경·이지연 옮김, 민음사 펴냄) 소액금융은 지난 20년간 세계 빈곤 해결의 특효약으로 인식돼 왔다.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자금을 끌어와 빈곤층이 소규모 사업을 할 때 낮은 금리의 소액 대출을 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책은 그 소액금융의 맹점과 실체를 파헤친다. 저자는 전 세계의 소액금융업계에 10년 이상 몸담았던 인물. 소액금융계에 부주의와 부패, 착취에 가까운 수단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조목조목 까발린다. “소액금융 기관에서 일하며 내부에서 소액금융을 변화시켜 보려 애썼으나 무위로 돌아갔다”고 털어놓는다. 대형 은행들의 개입과 함께 점차 이윤 극대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소액금융이 자체 임무를 망각한 채 빈곤층에 피해를 주면서까지 상업적 목표만 추구하는 ‘미션 이탈 리스크’가 만연해 있다고 꼬집는다. 그래서 소액금융에 투입된 엄청난 자본이 제대로 쓰인다면 빈곤 퇴치에 훨씬 큰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440쪽. 1만 9000원. 음식 좌파 음식 우파(하야미즈 겐로 지음, 이수형 옮김, 오월의봄 펴냄) 매일 먹는 음식을 선택하는 것은 개개인의 생각이 강하게 반영된 행위다. “라멘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 음식을 통해 국민 통합을 도모하는 일본인의 전통적 관념이 잘 드러난 말이다. 하지만 일본 프리랜서 작가인 저자는 일본에서는 빈부 격차 등의 이유로 음식 소비도 양극화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를테면 고소득의 승자 그룹이 야채 중심의 저칼로리 식품을 선호하는 데 반해 소득이 낮은 패자 그룹은 저가의 고칼로리 음식을 택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평소 별로 민주주의 의식이 없다가도 먹는 문제가 터지면 금세 잠재돼 있던 민주주의 의식을 드러낸다고 한다. 음식을 통해 현대 일본인의 정치 성향을 도식화해 보여준 저자는 “어느 쪽의 음식을 소비할지는 어쩌면 투표보다 더 정치적인 행위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옮긴이는 책과 관련해 “우파든 좌파든 각 진영의 장점을 서로 가져다 활용하자”는 실용적인 제안을 담고 있다고 썼다. 228쪽. 1만 3000원.
  • 이그노벨상 국내 수상자 3명은

    ‘흉내 낼 수도 없고, 흉내 내서도 안 되는 업적’에 시상하는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 노벨상을 패러디한 이그노벨상은 1991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발행하는 유머 과학잡지 ‘있을 법하지 않은 연구 연감’(Annals of Improbable Research)이 과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만든 상이다. 이그노벨상이란 이름은 ‘불명예스러운’이란 뜻의 단어인 ‘이그노블’(Ignoble)과 ‘노벨’(Nobel)을 합성해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주최 측에서는 “노벨상을 만든 알프레드 노벨의 먼 친척으로 소다수를 발명한 이그나시우스 노벨(가상의 인물)의 유산으로 상을 만들어 그를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실재하지 않는 인물의 유산이기 때문에 이그노벨상에는 상금이 없다. 매년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기 직전인 9월 2~3주 목요일에 하버드대 샌더스 극장에서 시상식을 갖는데,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이 참석해 수상작 심사와 시상을 맡고 있다. 시상 부문은 유동적이나 노벨상의 여섯 분야인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문학, 평화, 경제학 분야에 생물학, 심리학, 우주 등 필요에 따라 4개 부문을 추가해 10개 분야에 대해 시상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벨상 수상자는 2000년 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일하지만, 이그노벨상 수상자는 세 명이나 있다. 가장 먼저 1999년 FnC코오롱의 권혁호씨가 ‘향기 나는 정장’을 개발, 환경보호상을 받았다. 향기 나는 정장은 향이 들어 있는 미립자 형태의 캡슐을 옷감 사이사이에 넣어 움직일 때마다 캡슐이 터지면서 향기가 나도록 한 것이다. 주최 측은 “향기 치료 기법인 ‘아로마 테라피’를 신사복에 응용해 땀 냄새나 불쾌한 체취를 막아 환경 개선에 이바지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2000년에는 통일교 문선명 교주가 대규모 합동결혼을 성사시킨 공로로 경제학상을 받았다. 주최 측은 문 교주가 1960년 36쌍을 시작으로 1968년 430쌍, 1975년 1800쌍, 1982년 6000쌍, 1992년 3만쌍, 1995년 36만쌍, 1997년 3600만쌍을 결혼시킴으로써 결혼식의 효율성을 높이고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 산업 수준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하며 수상자로 선정했다. 1992년 휴거론을 주장하며 지구 종말을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다미선교회 이장림 목사가 5명의 종말론자들과 함께 1954년부터 50년 동안 인류 마지막 날을 매번 틀리게 예측했다는 이유로 2011년 이그노벨 수학상을 받기도 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정병석 경제산책] 노동개혁과 성과보상

    [정병석 경제산책] 노동개혁과 성과보상

    임금과 고용에서 성과에 따른 개인 간의 차이를 인정하느냐의 여부가 노동개혁 논의에서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고 성과가 계속 나쁜 근로자는 퇴출할 해고 기준을 마련하자는 문제다. 그러나 개인별 성과급 격차를 거부하는 노조에서는 기왕에 개인별로 지급된 성과급도 회수해 조합원들 간에 똑같이 나누는 것이 더 형평의 원리에 맞는다고 주장한다. 평준화 의식이 만연해 다 같이 못살면 불만이 적지만 누구는 잘살고 누구는 못사는 것은 수용하지 못한다는 사고가 지배하고 있다. 조선의 건국자들이 정부 시스템을 설계할 때 토대로 했던 ‘주례’라는 경전은 성과에 따른 보상, 신상필벌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주례는 주나라의 관직과 직무, 직급, 예법 등을 규정한 책인데 오랫동안 중국과 조선의 정부 조직과 운영의 바탕이 된 중요한 책이다. 국무총리 격인 ‘총재’는 한 해를 마치면 모든 관서에 지시해 수행한 사업에 대한 성과 결산서를 보고받고 그 서류들을 면밀히 검토해 잘한 자는 계속 그 직책을 맡게 하고 부족한 자는 내보내라고 규정하고 있다. 3년마다 모든 관리의 치적을 총결산해 견책할 것은 견책하고 포상할 것은 포상한다. 정부회계 결산에서는 비용 출납을 결산해 재물을 낭비하고 물품 사용에 대해 거짓 서류를 만든 자는 견책하거나 처벌한다. 반면에 재물을 풍족하게 늘린 자와 물품을 절약한 자는 포상한다. 신상필벌 원칙과 함께 관리의 보수도 성과에 따라 가감하고 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의 국립의료원 같은 관서에 근무하는 의사에 대한 성과 기준도 매우 세밀해 의사가 치료한 환자 10사람 중 10사람이 치료됐으면 최고의 보수, 10사람 중 1회 실수가 있으면 두 번째 등급의 보수, 10사람 중 4번 실수가 있으면 가장 낮은 보수를 지급하라는 식이다. 조선에서는 초기에 이런 원리가 통용되다가 당쟁이 심화되면서 이와 같은 합리적 보상과 신상필벌 원칙은 무너지고 정파와 정실이 성과를 압도하는 문화가 지배하게 된 것 같다. 그 결과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을 거두고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공정한 인센티브 제도가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누군가의 부의 증가는 존경이나 축하의 대상이 아니고 시기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폐쇄적이고 인센티브가 없는 사회, 자신의 노력을 통한 신분상승의 기회가 없는 사회에서는 정해진 파이의 분배에 집착하기 때문에 공평한지가 가장 중요한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고, 이를 둘러싸고 상호 반목하고 갈등을 빚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러시아 유머에 농부 이반이 이웃 농부 보리스를 시기하는데 그것은 보리스가 이반에게 없는 염소를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요정이 나타나 이반에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자 이반은 요정에게 보리스의 염소를 죽게 해 달라고 한다. 하향 평준화된 사회주의 체제를 오래 겪으며 형성된 가난한 평등사회에 대한 풍자적 비판이라고 하겠다. 최근 친노조 성향의 프랑스 좌파 집권 여당인 사회당이 고용 유연성을 확대하는 노동법 전면 개정에 나섰다는 보도가 있었다. 프랑스 총리는 사회당 전당대회에서 “기업주와 근로자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어 그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기업에 더 많은 고용의 유연성을 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총리 발언의 핵심은 노동법을 간소화해 기업주와 근로자의 자율결정권을 확대하고, 근로계약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프랑스 노동법을 고치겠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도 높은 청년실업률과 늘어나는 비정규직 문제가 정규직을 위주로 한 경직된 노동법에서 기인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사회를 더 역동적으로 활성화하고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개개인이 더 열심히 일하게 하고 잘한 사람이 더 많은 보상을 받고 대우받을 수 있는 법 제도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평준화 선호와 남의 장점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를 바꾸도록 노사정 협의에서 이런 원칙이 합의되기를 기대한다.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골드바흐의 추측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골드바흐의 추측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 위 명제는 얼핏 보면 단순하고 명확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270여년 동안 많은 수학자들을 도전하게 하고 절망에 빠뜨린 수학계의 풀리지 않는 난제, 이름하여 ‘골드바흐의 추측’이다. 1742년 독일 출신의 수학자 크리스티안 골드바흐는 당시 최고의 수학자였던 레온하르트 오일러에게 ‘2보다 큰 모든 정수는 세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내용이 적힌 편지를 보낸다. 당시 골드바흐는 1을 소수로 간주했기 때문에 3=1+1+1, 4=1+1+2, 5=1+1+3, 6=1+2+3, 7=2+2+3과 같이 2보다 큰 모든 정수를 세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편지를 받은 오일러는 이 내용을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와 ‘5보다 큰 모든 홀수는 세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의 두 가지로 나눠 정리했는데 이 중 전자를 가리켜 ‘골드바흐의 추측’이라고 한다. 오일러는 골드바흐의 추측이 옳다고 생각했으나 안타깝게도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컴퓨터가 발달하면서 실제 이 명제에서 어긋나는 짝수를 현재까지는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커다란 수를 대입해 가며 확인한다고 해도 이는 수학적 증명은 될 수 없다. 하나라도 예외가 나타나면 이 명제는 거짓이 되고 마는데, 무한한 수를 두고 언제까지나 대입만 하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가 미친 단 하나의 문제, 골드바흐의 추측’은 이러한 골드바흐의 추측을 소재로 한 소설로서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한 천재 수학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지은이는 그리스 태생의 수학 천재 소설가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62)다. 작품 속 화자인 ‘나’는 집안의 골칫거리라 여겨지는 페트로스 삼촌이 사실은 뛰어난 수학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삼촌이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는 데 매달려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과 인생을 탕진해 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오히려 삼촌이 자랑스럽게 느껴지고 자신도 수학자가 돼야겠다는 꿈을 갖게 된다. 여기까지 보면 이 작품은 삼촌의 뒤를 이은 ‘나’의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기 위한 도전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이 작품의 주인공은 페트로스 삼촌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나’는 수학에 별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수학자의 꿈을 접게 되는데, 대신 삼촌이 어떠한 인생을 살아왔기에 세상에서 잊히고 실패한 인생의 대변자처럼 돼 버렸는지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일찍이 수학적 천재성을 인정받은, 아테네 출신의 페트로스는 24세에 독일 뮌헨대의 정교수가 된다. 그에게는 사랑하던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가 자신을 떠나 다른 사람과 결혼한 것 때문에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갖게 된다. 결국 그는 그녀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너에게 끌린 건 네가 소문난 천재이기 때문이야’라고 했던 말을 떠올리며 지금까지 그 누구도 풀지 못했던 수학 문제를 풀어 자신의 천재성을 입증해 보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선택한 것이 바로 골드바흐의 추측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 대신 이 문제에 집착하면서 본의 아니게 은둔자가 되어 혼자만의 연구실에 틀어박히게 되고 결국 친구도 가족도 수학자로서 촉망받던 장밋빛 미래도 다 잃게 된다. 수학자와 수학 문제를 다룬 소설답게 이 작품 속에는 수학사를 수놓은 천재 수학자들이 대거 등장한다. 물론 페트로스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그 또한 모델이 된 인물이 있다. 바로 그리스 출신의 수학자, 흐리스토스 파파키리아코풀로스. 이름이 너무 길어 파파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그는 골드바흐의 추측과 더불어 수학계의 난제라고 꼽혔던 ‘푸앵카레 추측’을 풀기 위해 수도승이란 별명까지 얻으며 연구에 매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젊은 날에는 부모의 반대로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졌던 경험이 있고 미국에 온 뒤 빨리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하고 고국으로 돌아가 자기에게 어울리는 여성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사람, 그가 바로 페트로스의 모델이다. 그 밖에도 정수론의 대가라 불리는 영국의 G H 하디와 J E 리틀우드, 그리고 32세의 젊은 나이에 숨졌으나 ‘분할 이론’으로 초끈 이론의 기반을 마련한 인도의 천재 수학자 라마누잔이 페트로스의 절친한 동료 수학자로서 지면을 장식한다. 또한 ‘참명제라고 항상 증명 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는 불완전성 원리의 괴델과 ‘어떠한 명제가 선험적으로 증명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는 증명해 보기까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을 밝혀낸 앨런 튜링까지, 이 작품은 페트로스가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는 데 매달렸다가 결국 이를 포기하기까지의 과정 속에 적절하게 실존 수학자들을 등장시켜 작품의 허구성을 빛바래게 만드는 효과를 낳고 있기도 하다. 이 작품의 매력은 수학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도 수학적 흥미를 불러일으키며 순수 수학에 대한 감탄과 호의를 이끌어 낸다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작품 여기저기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수학자들의 모습과 그들이 추구하는 수학의 세계는 분명 순수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페트로스의 삶은 그 자체로 인생의 여러 단면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실연당한 여인에게 보란 듯이 내세우고 싶은 성공에 대한 열망, 절친한 동료였지만 라이벌이기도 했던 라마누잔의 죽음에 남모르게 느꼈던 안도감, 생각처럼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를 움켜쥐고 있는 데 대한 초조함과 불안감, 잠깐 동안이었지만 문제를 해결했다고 확신한 데서 오는 성취감과 희열감 등 우리가 희로애락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면면을 치밀한 구성과 유머러스한 문체로 그려 내고 있다는 데 이 작품의 또 다른 진가가 숨어 있다. 작품 속에서 페트로스는 누가 뭐라든 자신의 인생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나는 실패한 게 아니야.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지’라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어쩌다 보니 운 나쁘게도 참이란 것을 증명할 수 없는 문제에 매달리게 된 것뿐이다. 어쩌면 생각하기에 따라 그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일 수도 있다. 자신의 모든 재능과 열정 그리고 젊음을 한 가지 목표만을 향해 바칠 수 있는 삶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는 것이 삶의 목표였던 페트로스처럼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꿈을 가지고 산다. 증명하기 전까지는 그것이 증명 가능한 명제인지 불가능한 명제인지 알 수 없다는 튜링의 확인처럼 그 꿈을 이루는 것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일단 최선을 다해 그 꿈을 향해 밀고 나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도전은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는가.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 절망할 권리가 있다. 권경주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 웃으며 사랑에 빠지다…유머가 연애에 중요한 이유

    웃으며 사랑에 빠지다…유머가 연애에 중요한 이유

    남성은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작업 멘트를 날리는 것보다 상대방을 편히 웃게 할 수 있는 유머 능력을 키우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남성의 유머가 여성에게 낭만적인 매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연구를 이끈 미국 캔자스대 제프리 홀 커뮤니케이션학과 부교수는 낯선 사람끼리 만났을 때 남성은 웃기려고 하고 여자는 웃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두 사람이 데이트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이때 만일 두 남녀가 동시에 웃는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이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한다. 이번 연구결과는 홀 교수가 하고 있는 유머와 지성의 연관성에 관한 연구 가운데 하나다. 심리학계에서는 수십 년간 여성이 왜 남성의 유머를 좋아하는지를 두고 논의를 거듭해 왔다. 종종 여성은 파트너의 가장 가치 있는 특성으로 유머를 꼽는데 이는 배우자의 지능을 추정하는 좋은 기준이기 때문이라고 일부 전문가는 말한다. 하지만 홀 교수는 여성이 남성의 유머를 좋아하는 것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홀 교수는 “유머가 지성을 나타낸다는 발상이 유머 자체의 신뢰성을 높이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만일 당신이 잘 웃길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이는 앞으로 당신의 관계가 좋아질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홀 교수는 다음 3차례 연구를 통해 유머가 지성과의 관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첫 번째 연구에서는 참가자 35명에게 낯선 사람 100명의 사진이 포함된 페이스북 프로필을 보여주고 상대방의 성격을 예상해달라고 했다. 홀 교수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참가자들이 유머러스하게 보이는 사람들을 지적이기보다는 외향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유머러스하게 보이는 사람들은 실제로 남녀에 상 없이 페이스북 페이지에 유머가 남긴 내용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 연구에서는 이성을 사귀고 있거나 사귄 적이 있는 학생 약 300명을 대상으로 유머에 관한 설문 조사를 했다. 그 결과, 유머는 영리함과는 관련성이 보이지 않았지만 외향성과는 관련성이 있었다. 이 연구에서도 남녀 차이는 특별히 관찰되지 않았다. 세 번째 연구에서는 서로 모르는 남녀 학생 51쌍을 대상으로 남녀의 유머가 각각 이성에게 어떤 낭만적인 매력으로 작용하는지 조사했다. 이들은 서로 10분간 대화한 뒤 설문에 응답했다. 그 결과, 남성이 더 웃기는 얘기를 하고 여성이 그의 농담에 웃는 경향이 높을수록 서로 호감을 보이는 정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성향은 남녀가 반대일 경우에는 맞지 않았다. 또한 이 연구에서는 두 사람이 함께 웃는 성향이 높을수록 서로에게 흥미를 갖고 있을 가능성도 큰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유머가 지성과 관련성이 있다는 것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홀 교수는 사랑하는 사람 즉 연인을 찾는 데 유머가 중요한 이유로 다음 4가지를 꼽고 있다. 1. 유머는 사교적이고 쾌활한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나타낸다. 2. 남성은 여성이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유머를 사용한다. 3. 남성이 농담하고 여성이 웃는 것은 (본능이라고 할 수 있는) 구애 행동의 시나리오이다. 4. 유머는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다. 웃음을 공유하는 것은 더 오래가는 관계를 만든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 ‘진화심리학저널’(Journal Evolutionary Psychology) 최신호(8월 18일자)에 게재됐다. 사진=ⓒ포토리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씨줄날줄] ‘국회의원답게’ 살기/황수정 논설위원

    국어사전에는 나오지 않는데 이심전심으로 세를 불리는 시중의 말이 있다. ‘국회의원스럽다’가 그 하나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이면의 뜻을 잘 안다. 유머집에서 클래식 반열에 오른 오래된 우스개도 있다. 국회의사당을 점령해 인질극을 벌이는 테러 집단. 협상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자 마지막 초강수 카드를 던진다. “지금부터 한 시간에 인질 한 명씩 밖으로 풀어놓겠다”고. 물론 인질은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다. 현실보다 리얼리티가 더 강한 유머는 유머의 본래 기능을 잃는다. 정치 혐오의 정도가 갈수록 심해져 가슴 체증을 유발하는 이런 유머가 부담스럽다. 더는 웃을 수 없는 와중에 등장한 최신 유머가 있다. ‘국회의원답게 살기’다. 그제 국회의원들이 7대 종단의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에 참여했다. 여야 의원들이 “국회의원답게 살겠습니다”라는 결의문을 함께 낭독했다. 어지간하면 박수를 받아야 정상이다. 그런데 벌써 그 장면이 시중의 유머로 추가되는 분위기다. 이런 비정상의 상황은 배경이 간단하다. 말 따로 행동 따로인 ‘의원 특권’이 한쪽에서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코미디 탓이다. 19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는 시작부터 헛발질이다. 특수활동비를 둘러싸고 여야가 빤히 속 보이는 기싸움을 하고 있다. 갑질 특권을 서로 눈치껏 봐주는 꼴불견 행태도 국민 인내심을 시험하는 단계다. 자녀 취업 청탁 의혹으로 온 나라를 들쑤셔 놓고 어물쩍 구렁이 담 넘어가는 배짱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다. 새정치연합은 로스쿨 출신의 딸을 특혜 취직시킨 윤후덕 의원을 징계 시효가 소멸했다며 그냥 넘어간다. 그래 놓고 문재인 대표는 “국회의원답게 살기의 기본은 선공후사(先公後私)”라는 말을 한다. 국민은 눈도, 귀도, 이치를 따질 머리도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새누리당도 도긴개긴, 한 푼 나을 게 없다. 로스쿨 출신 아들의 정부법무공단 특혜 채용 의혹을 산 김태원 의원에 대해 자체 진상조사하겠다더니 보름 넘게 꿩 구워 먹은 소식이다. 대국민 섹스 스캔들의 주인공 심학봉 의원도 징계될 기미가 안 보인다. 제 식구 감싸기가 이쯤이니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고서도 상임위원장을 내놓지 않고 버티는 박기춘 의원을 이해할 만하다.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중인 국민영화 ‘베테랑’에 나오는 대사. 재벌 3세의 갑질을 응징하는 서도철 형사(황정민 분)가 자신에 차서 말한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얼굴, 체면이란 뜻의 일본어)가 없어?” 국회 버전이라면 이쯤 될까. “우리가 권력이 있지, 가오가 있어?” 국정감사가 10일부터 시작된다. 제 몸에 오물을 잔뜩 뒤집어쓴 국회가 ‘겨’ 묻었다며 피감기관에 호통을 칠 것이다. 이치에 맞지 않는 풍경은 상상만 해도 속을 울렁거리게 한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아이는 아직?” 묻지마세요…사진으로 답한 부부 화제

    “아이는 아직?” 묻지마세요…사진으로 답한 부부 화제

    결혼을 하고 배우자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 양가 부모나 친척 혹은 친구들로부터 자녀 계획에 관한 질문을 받기 일쑤다. 한두 번이야 무심하게 넘길 수 있지만 “아이는 아직이니?”와 같은 질문에 상처받는 이들도 적잖아 있을 것이다. 특히 온 가족과 친척이 모이는 명절날이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아이를 낳을 건지 언제쯤 가질 지에 관한 이야기가 화두가 되고 만다. 맷 케이와 애비 리 부부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듯하다. 두 사람을 아이를 갖는 대신 반려견을 입양하기로 했다. 이들은 새로운 가족으로 맞이한 ‘험프리’라는 이름의 갈색 푸들을 데리고 차를 타고 먼 길을 돌아오는 도중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대부분 부부가 아이가 태어난 것을 기념해 다양한 사진을 찍는 것처럼 이들 부부는 아이 대신 험프리와 함께 사진을 찍어 가족이나 친척에게 보여줘 유머러스하게 자녀 계획에 관한 질문을 받지 않을 생각을 떠올린 것이다. 이후 부부는 친한 친구이자 전문 사진작가인 엘리샤 미네튼에게 촬영을 의뢰했다. 공개된 사진은 작가가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인 페이스북에 지난 19일 공개한 것들로 현재까지 각 사진에 달린 ‘좋아요!’ 추천 수를 더하면 4만 5000번에 달한다. 작가는 “촬영은 매우 원활하게 진행됐으며 험프리는 간식을 받으며 촬영을 즐겼다”고 밝혔다. 한편 SNS를 통해 화제가 된 이들 사진은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소개될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사진=엘리샤 미네튼/페이스북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문화마당] 진지함의 역설/김재원 KBS 아나운서

    [문화마당] 진지함의 역설/김재원 KBS 아나운서

    나는 무척 진지한 사람이다. 방송진행자로서 가장 부러운 능력은 남을 웃기는 재주이다. 개그맨들이 얼굴이나 동작 혹은 말 한마디로 사람들을 웃기는 것을 보면 웃음과 동시에 부러움이 스며든다. 내가 ‘개그 콘서트’를 즐겨 보는 이유다. 하지만 요즘 유심히 보게 되는 ‘진지록’은 그 부러움에 혼란을 가져왔다. 왕정 시대, 진지한 나라를 만들고자 웃기는 사람을 처벌하려는 왕 앞에서 안 웃기는 사람을 찾아 칭찬하겠다는 설정이다. 이행시나 노랫말 개사를 통해 안 웃기는 사람을 찾는 그들의 시도 이면에는 재미없는 이행시를 통해 웃기려는 의도가 있다. 그 기묘한 설정에 썰렁한 유머를 비웃었던 사람들마저 묘하게 빠져들게 된다. 진지함의 척도는 참으로 묘해서 어느 수준을 넘기면 객석에서 웃음이 새어 나오기 때문에 수위조절이 쉽지 않다. 이렇게 진지함으로라도 웃기려는 개그맨들의 아이디어는 그들이 그동안 시청자의 높아진 웃음 기준을 맞추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 깨닫게 한다. 동두천에는 ‘숲 속 창의력 학교’가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기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게임 중독이나 따돌림, 인터넷 중독 같은 사회 부작용으로 학교생활에 스며들지 못하는 아이들이 숲 속에 모여서 세상과의 거리감을 유지한 채 자신을 치유하는 학교다. 밤새 게임 하고 낮에 학교에서 자던 아이들은 숲 속에 모여 일단 게임을 할 기회를 빼앗긴다. 산을 오르고 개울을 건너고 밭을 갈고 대자연과 호흡하다 보면 그들은 저절로 공부를 하고 싶어 한단다. 공부를 안 시킴으로써 공부를 하고 싶게 만드는 방학(放學)의 역설이다. 수년 전, ‘마음 말하기 연습’이라는 소통 관련 책을 낸 후 매체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청소년 시기의 아들아이와 어떻게 소통하느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소통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즉, 침묵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그 시기 아이들은 부모와의 소통이 불편하도록 유전자가 설정됐다. 억지로 입을 열려는 시도는 오히려 그들의 마음 틈새마저 막아 버릴지 모른다. 그저 그 시기를 그들의 방법으로 넘기도록 지지해 주고 지켜봐 주고 기다려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하지만 적어도 부모의 마음은 늘 열려 있다는 것은 알려 줘야 한다. 늦게 돌아온 아이에게 한두 마디 질문을 던지고 아이의 반응을 살피자. 아이의 답이 한두 마디로 끝나면 소통할 마음이 없는 것이다. 서너 단어가 이어지면 그래도 마음이 열려 있는 것이다. 즉 소통의 역설, 침묵으로 마음을 나누는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다. ‘무엇인가 창문을 두드린다./ 놀라서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본다./ 빗방울 하나가 서 있다가 쪼르르 떨어진다./ 우리는 언제나 두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이 창이든 어둠이든,/ 또는 별이든.’ 강은교 시인의 ‘빗방울 하나가’라는 시이다. 맞다. 사람들은 언제나 두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은 무엇을 두드리고 싶은가? 실례를 무릅쓰고 시를 조금 바꿔 봤다. ‘무엇인가 내 마음을 두드린다./ 놀라서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본다./ 아이가 서 있다가 눈물 한 방울을 쪼르르 흘린다./ 아이는 언제나 두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이 자기 마음이든 부모의 마음이든 또는 세상의 문이든.’ 아이들은 부모의 마음을 늘 두드린다. 웃음으로 문을 열 수 없어서 진지함으로, 말로 문을 열 수 없어서 침묵으로 문을 열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우리가 아이들의 마음을 두드리자. 이 더운 여름 재수하느라 힘든 나의 아들에게 작은 응원을 보낸다. 아들, 사랑한다.
  • [영화 多樂房] ‘미라클 벨리에’

    [영화 多樂房] ‘미라클 벨리에’

    프랑스 파리 근교의 시골 마을에 사는 ‘폴라’는 청각 장애 부모를 둔 건청인 자녀(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로서 성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또래들과 달리 농장 일부터 치즈 사업까지 부모님을 거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폴라는 유쾌하고 따뜻한 부모님과 남동생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음악 교사인 ‘파비앙’이 파리 음악 학교 오디션을 제안하자 그녀는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족들과 음악에 대한 열정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뜻하지 않게 딸과의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폴라의 부모님도 마음이 복잡하다. 십대 청소년이 가족으로부터 심리적, 물리적으로 독립하게 되는 영화는 많이 만들어져 왔지만 ‘코다’의 사춘기를 묘사한 영화는 흔치 않다. ‘미라클 벨리에’는 어릴 때부터 가족의 대변인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지고 성장하게 되는 코다의 특수성을 잘 보여주면서도 그 무게감에 함몰되지 않고 자녀의 독립이라는 보편적 상황으로 확대시켜 공감대를 형성한다. 모든 가정에서 통과의례처럼 겪게 되는 부모와 자녀의 이별이 벨리에 가족에게는 생각보다 빨리, 갑자기 찾아왔다는 점 그리고 이들의 남다른 유착 관계가 그 이별을 조금 더 어렵고 아프게 만든다는 점 등이 다를 뿐이다. 네 식구의 아침 식사 장면으로부터 시작하는 이 영화에서 관객들의 마음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것은 폴라의 부모님이다. 엄마는 수화로 종일 수다를 떨 만큼 쾌활하고, 유머 감각과 뚝심을 겸비한 아빠는 청각 장애를 그저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일 만큼 지혜롭다. 그는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것처럼 자신도 시장이 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당당하게 시장 선거에 입후보하고, 아내는 그런 남편의 도전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준다. 미녀와 야수를 연상케 하는 외모의 벨리에 부부는 이제껏 영화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장애인 캐릭터들로서 영화 전반에 걸쳐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며 분위기를 이끌어 간다. 폴라는 초경, 첫사랑, 몰랐던 재능의 발견 등 동시에 많은 일들을 경험하며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수화로 부모님과 타인의 대화를 도왔던 폴라가 자신의 선택과 감정을 전달하고 의견을 조율해 가는 과정은 진정한 소통의 어려움에 대해 상기시킨다. 폴라의 성장과 독립도 다른 십대들과 마찬가지로 부모님과 자신의 차이를 드러내고 설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은 흥미롭다. 전체적인 내러티브는 음악영화의 공식에 무리 없이 편입되지만 ‘미라클 벨리에’는 흥미롭게도 음악을 특별히 두드러지지 않게 만듦으로써 스스로를 차별화시킨다. 영화에 삽입된 ‘미셸 사르두’의 노래들은 최대한 담백하게 편곡됐는데, 덕분에 폴라의 상황과 심정을 드러낸 가사가 명료하게 와 닿는다. 절정부에서는 심지어 벨리에 부부의 청각에 이입해 아예 음악을 소거해 버리는 대담한 시도도 등장한다. 아름다운 음악을 듣지 못하는 기분, 그 답답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이보다 강하게 느끼도록 만들 수 있을까. 웃음과 눈물이 기분 좋게 교차되는 작품이다. 27일 개봉. 12세 관람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 [서울대 지망생의 책장-읽어라, 청춘]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서울대 지망생의 책장-읽어라, 청춘]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한 젊은이가 질문을 한다. “교황님, 저는 어떻게 사랑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교황의 대답은 이랬다. “그 누구도 사랑하는 법을 모르죠. 우리 각자는 매일 배워 나가는 겁니다.” 이 책은 “사랑이 기술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프롬의 대답은 이렇다. “당연히 그렇다.”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에서 프롬은 ‘사랑은 정서적 감정이나 느낌이 아니라 의지와 노력의 산물인 기술이다’라고 정의한 후 사랑의 이론과 함께 실천방안을 제시한다. ‘기술’(Art)이라고 해서 사랑에 대한 일종의 기술(Skill) 안내서 정도로 생각하고 이 책을 읽었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다. 프롬은 사랑의 문제를 인간 실존의 문제로 보고 사회학, 인간학, 정신분석학의 입장에서 분석해 나가기 때문이다. 1장에서는 ‘사랑에 대한 오해’를 언급하며 사랑이 기술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한다. 예를 들어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사랑에 빠졌다. 여자는 몸매를 가꾸고 명랑한 태도로 스스로를 사랑스럽게 만들기 위해 애를 쓴다. 남자는 돈을 벌고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나 어느 날 둘은 헤어지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사랑받기에 부족했나?” 또 다른 한 여자와 한 남자는 첫눈에 반했다. 둘은 매일 열정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하지만 점점 싫증을 느끼게 되면서 이별을 선택한다. “사랑이 변했다”면서. 이 두 사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프롬은 사랑에 대한 오해의 결과라고 말한다.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의 문제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가 아닌 ‘사랑받는 대상’에 몰두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사랑은 ‘능력’의 문제이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다른 오해는 사랑은 ‘저절로 빠져들 수 있는 것’이지 ‘노력하거나 배울 것’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로에게 미쳐 있는 것은 사랑의 열정이라기보다 그들이 서로 만나기 전에 외로웠던 정도를 입증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프롬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배우고 싶다면 음악이나 그림 또는 의학이나 공학 기술을 배우려고 할 때 거치는 것과 동일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라고 말한다. 사랑은 누구나 쉽게 탐닉할 수 있는 감상이나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라 가장 능동적으로 자신의 인격 전체를 발달시켜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 구체적인 활동이기 때문이다. 2장은 ‘사랑의 이론’으로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사랑은 인간 실존론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며 형제애, 모성애, 성애, 자기애, 신에 대한 사랑으로 나누어 각 사랑의 속성을 설명한다.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주는 것은 반드시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은 자신의 기쁨, 관심, 이해, 유머, 슬픔, 그가 갖고 있는 것 중 가장 소중한 것, 다시 말하면 자기 속에 살아 있는 것을 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통적인 요소는 보호, 책임, 존경, 지식이다. 보호는 우리가 사랑하고 있는 것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다. 어떤 이가 꽃을 사랑한다면서 물 주기를 잊는다면 그가 꽃을 사랑한다고 믿을 수 없을 것이다. 책임은 다른 존재의 요구에 대한 나의 반응이다. 상대의 요구에 응답할 수 있고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책임에 존경이 없다면 쉽게 지배와 소유로 타락할 것이다. 존경은 착취가 없으며 오직 자유를 바탕으로 존재한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가 있는 그대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관심이다. 또한 지식은 핵심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관심을 초월하여 그의 입장에서 타인을 볼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3장에서는 문화가 그 사람의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고 전제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시장 원리가 사랑의 행태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고 있다. 네가 준 만큼 나도 준다는 자본주의의 윤리적 격률은 사랑도 비켜가지 못한다. 대부분의 현대인에게 사랑은 감정이나 조건, 매력의 거래가 되었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 틀 안에서 사랑의 실천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는 인간이 극복하고자 하는 분리와 고독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해답은 사랑으로 가능한 것이다. 이때 중요한 조건은 자아도취를 극복하는 것이다. 자아도취의 반대는 객관성으로, 사람들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이고 대상을 자신의 욕망과 공포에 의해 형성된 상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그것은 이성을 사용한다는 말로 어린아이가 갖는 전지전능에 대한 몽상에서 벗어났을 때 갖게 되는 겸허함이다. 실용이라는 관점에서 사랑은 겸손, 객관성, 이성의 발달을 요구한다. 4장에서는 사랑의 실천을 위해 네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사랑에 대한 ‘훈련’이 필요하다. 사랑은 주는 것을 아는 능력이며 특정한 대상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대상을 통해 이기심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닫힌 사랑에서 열린 사랑으로, 미숙한 사랑에서 성숙한 사랑으로, 환상의 사랑에서 현실의 사랑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랑의 기술을 부단히 갈고닦아야 하며 그 훈련은 전 생애에 걸쳐야 한다. 두 번째로 ‘정신집중’이 필요하다. 이것은 곧 ‘혼자 있는 것’을 의미한다. 혼자 있는 것은 자신에게 민감해지고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고 현재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정신을 집중한다는 것은 타인에게 귀 기울일 수 있음을 말한다. 세 번째는 ‘인내’가 필요하다. 어떤 기술을 익히든 급히 결과를 바란다면 결코 그 기술을 익힐 수 없을 것이다. 프롬은 현대인에게 어려운 게 ‘인내’라며 그 이유를 현대 사회의 산업체계가 끊임없이 신속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경제적 가치가 곧 인간의 가치가 되는 논리가 우리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인내는 자신에 대해 정신 집중을 하여 민감해져야 기를 수 있는 능력이다. 마지막으로는 기술 습득에 대한 ‘최고의 관심’이 필요하다. 운전이나 요리 등의 다른 기술들처럼 사랑에 대한 관심은 물론이고 사랑이라는 가치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될 때 기술 습득이 가능하다. 좋아하지 않으면 훈련은 물론이고 집중이나 인내도 불가능할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런 보증 없이 자신을 맡기고 우리의 사랑이 사랑받는 사람에게서 사랑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희망 속에 자신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의 원칙과 사랑의 원칙은 양립할 수 없어 보이기도 한다. 프롬도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와 사랑의 본질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데 동의한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일이 테레사 수녀 같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냉소와 도덕적 허무일 뿐이라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더불어 사랑의 실천을 위해 개인과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함을 강조한다. 인터넷으로만 연결된 채 각자 사랑을 한다는 이들, 헤어짐이 두려워 사랑을 포기하는 이들, 상처에 대한 보험이 없기에 파편화된 관계만을 유지하려는 이들에게 프롬의 조언은 삶의 실재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프롬이 말하는 사랑은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배움이고 노동이며 실천이 따르는 능동적인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삶에 대한 통찰과 애정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신운선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 [서울광장] ‘맥도리아 청춘’과 로스쿨 엘리베이터/황수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맥도리아 청춘’과 로스쿨 엘리베이터/황수정 논설위원

    학원가 근처에 살고 있어 주변의 밤 풍경을 자주 본다. 밤 10시 언저리면 학원에서 쏟아져 나온 학생들로 일대가 한낮처럼 북적인다. 그중에서도 가장 붐비는 곳은 패스트푸드점. 출출해진 학생들이 삼삼오오 몰려 야식을 찾는다. 또래의 아이를 두고 있어서인지 패스트푸드점의 아르바이트 청소년들을 유심히 보게 된다. 주문을 받고, 패티를 굽고, 감자를 튀기고, 포장을 하고. 능숙한 손놀림도 있고 딱 봐도 초보티가 나는 친구도 있다. 늦은 밤 학원 공부를 하고 나온 또래에게 (어떤 이유에서건)공부 대신 알바를 선택한 또래들이 서비스를 해 주고 있다. 턱걸이 최저임금, 시급 5580원. 이 대목에서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여당의 거물 정치인이 일자리를 걱정하는 청년들에게 위로라고 했다는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란 말은 더더구나 하고 싶지 않다. 교육의 기회균등 차원에서 따지면 한밤의 알바 청년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우스개가 있다. “어서 오세요, 맥도리아입니다!” 패스트푸드점을 전전하는 알바생이 지금 일하는 곳이 맥도날드인지 롯데리아인지 헷갈려 둘을 섞어 외쳤다. 유머일 수 없는 유머다. 시간을 쪼개 알바로 학비를 벌어도 결국 빚쟁이로 전락하는 청년들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취업 스펙을 하나라도 더 쌓겠다고 허드레 알바를 견디는 청춘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잘 안다. 여야 국회의원들의 아들 딸이 아버지 후광으로 누렸다는 취업 특혜에 국민적 분노가 걷잡을 수 없는 까닭이다. 아버지의 권세로 좋은 자리에 취업했다는 아들 딸은 모두 로스쿨 출신이다. 로스쿨이 현대판 음서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그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있었다. 이번 문제들은 우연히 겹쳐 터진 일이 아니라고 본다. 입학, 변호사 시험, 채용 과정까지 모두 깜깜이로 이뤄지는 로스쿨 제도의 한계가 동시다발로 드러났을 뿐이다. 깜깜이 장치의 뇌관이 터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는 것이다. 그 주장들이 어느 때보다 지금 설득력이 커졌다. 몇년 전 출입처의 차관급 공직자는 문학을 전공한 아들이 유명 대학의 로스쿨에 진학했노라며 자부심이 그득했다. 순수문학 전공자가, 3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로스쿨 제도가 요구하는 다양한 스펙까지 쌓아가며, 그 방대한 법리를 터득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도 수수께끼다. 3년을 매달려도 민법 한 과목조차 제대로 섭렵하기 벅차다는 법조계 안팎의 회의론은 여전히 높다. 성적과 등수를 일절 공개하지 않은 변호사 시험은 어떤가. 기초 과목인 민법 시험을 직접 채점한 중견 법조인에게서 “100점 만점으로 치면 10점이 안 되는 답안이 수두룩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 해 합격률은 90%에 육박했다. 법무부는 대체 실력 아닌 무엇을 따져 법조인을 뽑아 양성하는지, 근원적 불신을 떨칠 수 없다. 등수가 노출될 걱정이 없으니 실력자 아버지는 얼마든 자식을 위해 ‘기획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다. 특혜 취업은 물론이고 판검사 임용에까지 입김을 미치지 못할 게 없다. 사법시험 제도에서는 시험 합격 점수와 등수, 사법연수원 졸업 성적과 등수가 환히 공개돼 꼬리표처럼 붙어다닌다. 그런 상황에서는 짬짜미 취업, 깜깜이 임용은 원천적으로 힘들다. 감사원마저 특혜 채용 잡음을 빚고 있다. 원내 변호사를 전직 국회의원과 간부의 로스쿨 출신 자식들로 계속 채우자 청년 변호사들이 국민감사를 청구했다. 감사원은 자기검열을 해야 하는 처지다. 이런 코미디를 지켜보면서 그 고위 공직자의 아들은 지금쯤 어디서 일하고 있을지 왜 궁금해질까. “실력 앞에 부모 있다.” “취업하는 것보다 금수저 물고 환생하는 게 더 빠르다.” 인터넷 공간을 달구는 청년들의 분노와 자조는 안쓰럽다. 금배지 음서제 논란에 서울지방변호사회가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 자녀의 취업 현황을 공개하도록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입법청원하겠다고 한다. 낯부끄럽고 졸렬한, 궁여지책이다. 자율로 이뤄질 수 없는 정의는 타율로 강제될 수밖에 없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성난 청년들은 기다렸다는 듯 답하고 있다. “억울하면 금수저 내려놓고 환생하라”고. s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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