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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림
    2026-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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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儒林 속 한자이야기](19)

    유림 89에 庶弟가 나오는데 庶는 ‘많다,여럿,서자’등의 뜻으로 쓰인다.庶처럼 (집 엄)이 들어간 한자는 대체로 (부엌 포),府(곳집 부),廳(관청 청)처럼 뜻은 과 관련되며,음은 나머지 부분이 된다.첩(妾첩)의 자식을 서자라 하는데,단군신화(檀君神話)에서처럼 고대(古代)에는 제후(諸侯)의 세자(世子)를 적자(適子),기타의 아들을 서자라 하였다. 옛날에 환인(桓因:하느님)의 서자(庶子) 환웅(桓雄)이 인간세상에 뜻을 두었는데, 환인이 천부인(天符印:신의 권한을 상징하는 부적과 도장)을 주고 인간세상을 다스리게 하였다.이에 환웅이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太白山:지금의 묘향산) 꼭대기의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내려왔으니 이곳을 신시(神市)라 했다.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수명,질병,형벌,선악 등과 인간의 삼백 예순 가지나 되는 일을 주관하여 인간 세계를 다스려 교화시켰다.이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늘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이에 환웅이 신령스러운 쑥 한 심지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이것을 먹으며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사람이 될 것이라 했다.곰은 이를 잘 지켜 21일만에 여자가 되었으나,호랑이는 참지 못하고 뛰쳐나와 사람이 되지 못했다.여자가 된 곰은 늘 신단수 아래에서 임신하기를 기원했다.이에 환웅이 사람으로 변하여 그와 결혼해 아들을 낳았으니 단군 왕검이다.단군은 기원전 2333년에 아사달(阿斯達:평양)에 수도를 정해 단군조선(檀國朝鮮)을 건국,약 20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兄(맏 형)의 반대말인 弟는 ‘끈으로 어떤 물건을 묶어놓은 모양’을 본뜬 것인데,끈을 차례차례 고르게 감았다고 해서 ‘차례’를 의미하였고 여기서 ‘아우’의 뜻도 생겨났다고 한다. 庶弟는 서모(庶母:아버지의 첩)가 낳은 아우,즉 이복(異腹:배 다른) 동생을 말한다.분명한 것은 父나 母가 달라도 동기간(同氣間:형제)이다.형제를 동근(同根)·천륜(天倫)·안항(雁行)으로 표현하는데, 안항(雁기러기 안,行갈 행 또는 항렬 항)은 기러기가 ∨자 대형으로 줄지어 날아가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흔히 형과 동생은 비슷한 경우가 많아 형,아우를 구분하기 어렵다.여기에 비유되어 두 사물이나 일의 낫고 못함을 분간하기 어려운 경우를 난형난제(難兄難弟)라 한다.형제간에 중요한 것은 역시 우애(友愛)일 것이다.형제간 우애에 대해서는 전래(傳來)설화나 실화가 많은데 다음은 그 하나이다. 고려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것으로 고려 공민왕 때 일이었다.형제가 길을 가다가 우연히 황금 두 덩어리를 얻어서 양천강(陽川江:경기도 김포시 공암진 근처)에 이르러 함께 배를 타고 가다가 아우가 갑자기 금 덩어리를 강물에 버렸다.평소 형을 사랑했으나 금 덩어리를 나누고 보니 형이 미워 보여,이 물건은 상서롭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형도 동생의 마음을 이해하고 금 덩어리를 강물에 던졌는데,이후 이 강을 투금뢰(投金瀨)라 부르게 되었다.재산 문제로 형제간 다툼 내지 살인이 일어나는 사회에 귀감(龜鑑)이 아닐 수 없다. 박교선˝
  • [儒林 속 한자이야기](18)

    유림 76에 무소불위(無所不爲)가 나온다.無는 원래 기구를 가지고 춤추는 무녀(巫女)의 모습을 본 뜬 글자인데,‘없다’라는 뜻으로도 쓰이게 되었다.이에 ‘춤추다’라는 본 뜻을 살리기 위해 無자에 ‘춤추는 두 발을 본뜬 천(舛)’을 넣은 舞(춤출 무)자가 만들어졌다.無자가 들어간 한자는 憮(어루만질 무), (밟을 무) 등과 같이 대부분 음은 ‘무’이며 뜻은 나머지 부분이 된다.所는 ‘∼하는 바,것,곳’을 뜻하는데,所자 다음에는 대체로 소위(所謂),소행(所行)처럼 동사가 놓인다. 不는 나무나 풀의 뿌리를 본뜬 것 또는 아래로 늘어진 한 송이 꽃부리를 본뜬 것이라는 두 설(說)이 있다.흔히 마시는 주량(酒量)이 많은 경우를 주류불사(酒類不辭)라고 잘못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두주불사(斗酒不辭)라 해야 한다.왜냐하면 이는 다음 일화에서 유래된 관용어(慣用語)이기 때문이다.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은 공조 관계였는데,항우는 유방이 자기보다 먼저 진(秦)의 서울 함양을 함락시킨 것에 대해 화가 났다.이에 유방이 항우의 진영을 찾아가 해명하는데,그때 항우의 참모 범증(范增)이 유방을 죽이려 하였다.위급한 상황을 안 유방의 심복 번쾌가 방패와 칼을 들고는 그 자리로 뛰어 들어갔다.항우가 잠시 놀랐으나 유방의 참모임을 알고는 번쾌에게 술을 주도록 하니,번쾌는 한말의 술을 단숨에 마셨고,안주로 돼지 생고기를 방패 위에다 놓고 썰어 먹었다.이 모습에 감탄한 항우가 한잔 더 권하자 번쾌가 ‘죽음도 사양하지 않는 제가 어찌 말술(斗酒)을 사양하겠습니까(不辭),다만 유방이 먼저 입성하여 장군(항우)을 기다리려고 했던 것인데,그런 유방을 해치려 함은 장군답지 않은 처사입니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爲는 ‘∼을 하다,∼이 되다,∼을 위하다,∼이라 여기다’라는 뜻으로 쓰인다.진시황제(秦始皇帝)의 신하인 환관(宦官) 조고(趙高)는 진시황이 죽을때 태자(太子)인 부소(扶蘇)를 황제로 계승시키도록 유언하였으나,승상(丞相) 이사(李斯)와 함께 그 유언을 속여 자신들이 다루기 쉬운 진시황 둘째 아들인 어린 호해(胡亥)를 황제로 세웠다. 그 후 조고는 이사 등을 죽이고 모든 것을 좌지우지(左之右之)했는데,어느 날 王에게 사슴(鹿)을 바치며 “이것은 말(馬)입니다(指鹿爲馬 지록위마)”라고 했다. 그러자 王이 웃으며 “사슴(鹿)을 말(馬)이라 합니까”라며 좌우를 둘러보자,신하들 중에 ‘말입니다’라고 말한 자가 있는가 하면 ‘사슴입니다’라고 말한 자가 있었다.이때 조고는 사슴이라고 말한 자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훗날 죄를 씌워 모두 죽였다.그래서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행사하는 것을 ‘指鹿爲馬’라 하는데,훗날 그 뜻이 확대되어 모순된 것을 끝까지 우겨 남을 속인다는 뜻으로 쓰기도 한다. 이상으로 볼 때 무소불위(無所不爲)는‘어떠한 일도 하지 못함이 없다.즉 못하는 일이 없다’는 뜻으로 무소불능(無所不能)과 함께 흔히 절대적 권력을 쥔 사람과 연결시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박교선 ˝
  • 儒林(84)-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그 글씨는 낯익은 갖바치의 친필이었다.그렇다면 갖바치는 자신이 직접 만든 한 짝은 검고 한 짝은 흰,짝짝이의 태사혜와 그 신발을 주제로 한 참언(讖言)을 통해 조광조의 운명을 점지해준 것일까.때문에 갖바치는 능주에 도착할 때까지는 절대로 걸망 속을 뒤져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던 것이 아닐까.그러면 도대체 갖바치가 남긴 참언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묵묵히 갖바치가 남긴 문장을 읽은 조광조는 이를 들어 양팽손에게 내어주며 말하였다. “양공,이것이 내 운명이오.천지신명이 점지해준 내 월단평이오.” 양팽손은 조광조가 내민 종이 위에 쓰여진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천층 물결 속에 몸이 뒤집혀 나오고 천년 세월도 검은 신을 희게 하지는 못하는구나.” 천천히 문장을 읽고 나서 양팽손은 조광조를 쳐다보며 말하였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양공이 모르면 내가 어찌 알겠소이까.” 빙그레 웃으며 조광조가 말하였다. 양팽손이 정색을 한 얼굴로 말하였다. “하오나 ‘천층 물결 속에 몸이 뒤집혀 나온다’는 말은 매계(梅溪)에게 내렸던 그 유명한 점술의 내용이 아닙니까.” “그것은 나도 알고 있소이다.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이까.” 조광조의 말은 사실이었다.갖바치가 점지한 참언의 두 문장 중 앞의 것은 일찍이 매계 조위(曹偉)에게 내렸던 참언 중의 한 문장이었다.이 문장은 특히 사림파의 유림들 간에 널리 유행되었던 참언이었던 것이다.그 참언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연산군은 선왕이었던 성종의 실록을 편찬하기 위해서 사국을 열었는데,이때 당시 사관이었던 김일손(金日孫)이 사초(史草)에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실은 데서 사화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조의제문은 김종직이 세조3년(1457) 10월 밀양에서 경산으로 가다가 답계(踏溪)에서 하루를 숙박했는데,그날 밤 신인이 칠장복(七章服)을 입고 나타나 전한 말을 듣고 슬퍼하여 지은 글이었다. 김종직은 이 제문에서 항우에게 죽은 초나라의 회왕(懷王),즉 의제(義帝)를 조상하는 글을 지었는데,이는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단종을 의제에 비유하여 세조의 정권찬탈을 은근히 비난한 글이었던 것이다. 운문체로 지어진 유명한 조의제문은 꿈에서 깨어난 김종직이 다음과 같이 한탄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꿈에서 놀라 깨어 생각해보니 회왕은 남방 초나라 사람이고,나는 동이의 사람이다.땅이 서로 만 리나 떨어져 있고,시대가 또 천여 년이나 떨어져 있는데,내 꿈에 나타나는 것은 또 무슨 징조일까.역사를 상고해 봐도 시체를 강물에 던졌다는 말은 없는데,혹시 항우가 사람을 시켜 몰래 시해하여 시체를 물 속에 던진 것인지 이 또한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김종직은 제문을 짓고 다음과 같이 넋을 위로하였던 것이다. “…이 천지가 다하도록 그 원한 다할까/넋은 지금도 구천을 맴도는데 내 마음 금석을 꿰뚫음이여/임금께서 갑자기 꿈속에 나타나셨네. 주자의 사필을 본받아/설레는 마음으로 겸손히 사례며 술잔을 들어 강신제를 드리나니/영혼이시여 흠향하시옵소서.” 김일손이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넣어 ‘성종실록’을 편찬하였을 때 책임자는 이극돈으로 훈구파의 한 사람이었다.그렇지 않아도 사초 속에 자신의 비행이 기록되어 있어 이에 앙심을 품고 있던 이극돈이 김종직의 제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사림파를 숙청할 목적으로 옥사를 일으켰던 것이다.˝
  • 儒林(84)-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儒林(84)-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그 글씨는 낯익은 갖바치의 친필이었다.그렇다면 갖바치는 자신이 직접 만든 한 짝은 검고 한 짝은 흰,짝짝이의 태사혜와 그 신발을 주제로 한 참언(讖言)을 통해 조광조의 운명을 점지해준 것일까.때문에 갖바치는 능주에 도착할 때까지는 절대로 걸망 속을 뒤져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던 것이 아닐까.그러면 도대체 갖바치가 남긴 참언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묵묵히 갖바치가 남긴 문장을 읽은 조광조는 이를 들어 양팽손에게 내어주며 말하였다. “양공,이것이 내 운명이오.천지신명이 점지해준 내 월단평이오.” 양팽손은 조광조가 내민 종이 위에 쓰여진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천층 물결 속에 몸이 뒤집혀 나오고 천년 세월도 검은 신을 희게 하지는 못하는구나.” 천천히 문장을 읽고 나서 양팽손은 조광조를 쳐다보며 말하였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양공이 모르면 내가 어찌 알겠소이까.” 빙그레 웃으며 조광조가 말하였다. 양팽손이 정색을 한 얼굴로 말하였다. “하오나 ‘천층 물결 속에 몸이 뒤집혀 나온다’는 말은 매계(梅溪)에게 내렸던 그 유명한 점술의 내용이 아닙니까.” “그것은 나도 알고 있소이다.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이까.” 조광조의 말은 사실이었다.갖바치가 점지한 참언의 두 문장 중 앞의 것은 일찍이 매계 조위(曹偉)에게 내렸던 참언 중의 한 문장이었다.이 문장은 특히 사림파의 유림들 간에 널리 유행되었던 참언이었던 것이다.그 참언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연산군은 선왕이었던 성종의 실록을 편찬하기 위해서 사국을 열었는데,이때 당시 사관이었던 김일손(金日孫)이 사초(史草)에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실은 데서 사화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조의제문은 김종직이 세조3년(1457) 10월 밀양에서 경산으로 가다가 답계(踏溪)에서 하루를 숙박했는데,그날 밤 신인이 칠장복(七章服)을 입고 나타나 전한 말을 듣고 슬퍼하여 지은 글이었다. 김종직은 이 제문에서 항우에게 죽은 초나라의 회왕(懷王),즉 의제(義帝)를 조상하는 글을 지었는데,이는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단종을 의제에 비유하여 세조의 정권찬탈을 은근히 비난한 글이었던 것이다. 운문체로 지어진 유명한 조의제문은 꿈에서 깨어난 김종직이 다음과 같이 한탄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꿈에서 놀라 깨어 생각해보니 회왕은 남방 초나라 사람이고,나는 동이의 사람이다.땅이 서로 만 리나 떨어져 있고,시대가 또 천여 년이나 떨어져 있는데,내 꿈에 나타나는 것은 또 무슨 징조일까.역사를 상고해 봐도 시체를 강물에 던졌다는 말은 없는데,혹시 항우가 사람을 시켜 몰래 시해하여 시체를 물 속에 던진 것인지 이 또한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김종직은 제문을 짓고 다음과 같이 넋을 위로하였던 것이다. “…이 천지가 다하도록 그 원한 다할까/넋은 지금도 구천을 맴도는데 내 마음 금석을 꿰뚫음이여/임금께서 갑자기 꿈속에 나타나셨네. 주자의 사필을 본받아/설레는 마음으로 겸손히 사례며 술잔을 들어 강신제를 드리나니/영혼이시여 흠향하시옵소서.” 김일손이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넣어 ‘성종실록’을 편찬하였을 때 책임자는 이극돈으로 훈구파의 한 사람이었다.그렇지 않아도 사초 속에 자신의 비행이 기록되어 있어 이에 앙심을 품고 있던 이극돈이 김종직의 제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사림파를 숙청할 목적으로 옥사를 일으켰던 것이다.
  • [儒林 속 한자이야기](17)

    유림 68에 금과옥조(金科玉條)가 나온다.金(쇠·돈 금,성씨 김)은 쇠붙이를 만드는 ‘거푸집’과 ‘두 쇳덩이(글자 속의 두 점)’를 그린 모양,또는 今(이제 금)이라는 음과 땅 속의 두 금덩이를 본뜬 부분이 합해져 구성되었다는 두 가지 설(說)이 있다.金자가 들어간 한자는 錦(비단 금) 등 일부 한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針(바늘 침),鈍(무딜 둔),銅(구리 동),銘(새길 명)처럼 金자에 뜻이 있고 나머지 부분은 음이 된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행위라는 의미의 천금매소(千金買笑)라는 말이 있다. 서주(西周)의 마지막 王 유(幽)는 포(褒)나라의 포사라는 여인을 매우 사랑하였으나,그녀는 전혀 웃지를 않았다.그래서 왕은 그녀를 웃기는 사람에게 천금(千金)을 주겠다고 하였다.그러자 위석부(魏石父)가 거짓으로 봉화(烽火)를 올리게 하니,군사들이 허둥지둥하다가 거짓임을 알고는 분개하였다.이 모습에 포사가 웃었고,왕은 포사의 웃는 얼굴을 보고싶을 때마다 거짓 봉화를 올리게 하다 보니,실제로 적이 쳐들어왔을 때는 군사들이 모이지 않아 결국 나라가 망했다고 한다. 科(조목·과정 과)는 익은 禾(벼 화)와 곡식의 양을 헤아리는 斗(말 두)를 본뜬 글자로,‘곡식의 분량을 말로 되다’가 본뜻인데,이후 ‘조목별로 나누다,등급 짓다’ 등의 뜻도 갖게 됐다. 玉(구슬 옥)은 구멍 뚫린 여러 개의 옥을 실로 꿰어 놓은 모양을 본뜬 것이다.玉자가 들어간 한자는 대체로 珠(구슬 주),球(둥근 물체 구),瑛(옥빛 영)처럼 뜻은 옥과 관련돼 나오며,음은 玉자를 제외한 부분이 된다.흔히 玉을 말할 때 옥석(玉石) 또는 옥돌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이는 玉과 石이 정반대의 뜻으로 쓰임을 오인한 것이다.초(楚)나라의 변화(卞和)라는 사람이 형산(荊山)에서 큰 박옥(璞玉)을 주워서 여왕(慮王)에게 바쳤더니,왕이 미치광이라고 욕하며 변화의 왼쪽 발꿈치를 잘랐다.얼마 후 무왕(武王)이 왕위에 오르자 다시 그 박옥(璞玉)을 바쳤으나,그 역시 욕하며 변화(卞和)의 오른쪽 발꿈치를 잘랐다.그 후 문왕(文王)이 등극하자 변화(卞和)는 형산(荊山)에 올라가 삼일 밤낮을 통곡하였다.문왕이 신하로 하여금 그 이유를 알아보니 발꿈치를 잘려서가 아니라 玉을 돌로 알고 충신(忠臣)을 미치광이로 여기는 게 슬펐다는 것이다.王이 전문가에게 의뢰해 보니 과연 좋은 옥이었다.한비자(韓非子)의 한 일화로 玉石은 ‘옥과 돌,진짜와 가짜,좋은 것과 나쁜 것,인재와 보통사람 등’을 말한다. 이것과 저것을 구분 못하는 어리석고 못난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숙맥’이 있다.그러나 정확한 표현은‘숙맥불변(菽麥不辨)’이다.춘추시대 진(晉)나라의 도공(悼公)에게 형이 있었는데 우둔하여 아무 일도 맡길 수 없었다.그러다 보니 형은 관직 없이 지냈는데,사람들은 그를 菽(콩 숙)과 麥(보리 맥)도 구별 못하는 ‘숙맥불변(菽麥不辨)’이라 했다.여기서 숙맥불변(菽麥不辨)이 나왔는데,콩과 보리를 강조하다보니 不辨은 생략하고 ‘숙맥’을 ‘쑥맥’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條(곁가지 조)는 바람에 유유하게(攸 태연한 모양 유) 나부끼는 나뭇가지(木)를 뜻한다.이상으로 볼 때 금과옥조(金科玉條)는 금 같은 조목(법)과 옥 같은 가지,즉 매우 귀중한 법칙이나 규정을 말한다.그래서 보통 문장이나 대화에서 ‘∼을 금과옥조로 여긴다,또는 ∼은 금과옥조이다.’라고 표현한다. 박교선 ˝
  • [儒林 속 한자이야기](16)

    유림 66에 음락(淫樂)이 나오는데,淫은 주로 ‘음탕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水)자가 들어간 한자는 汗(땀 한),沐(머리감을 목),注(물댈 주),油(기름 유)와 같이 뜻은 물과 관련하여 형성되며,음은 水를 제외한 부분이 된다. 樂은 나무에 몇 개의 줄을 매어놓은 악기,또는 악기대(木)에 걸어 놓은 크고 작은 북이라는 설(說)이 있는데,그 뜻과 음은 세가지로 활용된다. 첫째로 음악(音樂),관악기(管樂器)에서처럼 ‘풍류 악’으로 쓰인다.악기 중에는 줄을 이용한 현악기(絃樂器)도 있는데,옛날에는 琴(거문고 금)과 瑟(비파 슬)이 대표적이었다.이 두 악기는 연주할 때 좋은 화음을 이루기에 부부(夫婦)에 비유돼 부부사이가 좋은 경우를 ‘금슬이 좋다,또는 금슬상화(琴瑟相和)’라 하며,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를 금슬부조(琴瑟不調)라 한다. 둘째는 낙관적(樂觀的),낙천적(樂天的),동고동락(同苦同樂)처럼 ‘즐거울 락’으로 쓰인다.장자(莊子)는 지락편(至樂篇)에서 지락무락(至樂無樂),즉 최고의 즐거움은 즐거움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즐거움이라 했다. 장자는 아내가 죽었을 때도 물동이를 치며 노래까지 불렀는데,친구인 혜자가 책망하자 아내는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갔으니 자연의 이치를 안다면 슬퍼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이와 관련한 일화는 장자(莊子)의 ‘고분이가(鼓盆而歌)’에 나온다.장자가 여름날 산길을 가는데 소복입은 젊은 여인이 무덤에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남편이 죽기 전 자기가 죽으면 무덤에 풀이나 마르거든 개가(改嫁)하라고 유언했는데,그렇게 되려면 올여름도 그냥 보내야 하기에 풀을 빨리 말리기 위한 것이라 했다.이 이야기를 들은 장자의 아내는 분개하며 자신은 절대 개가하지 않겠다고 했다.이에 장자가 처의 지조를 시험하려고 도술을 부려 죽은 척하였다.아내는 장자가 정말 죽은 줄 알고 장자를 입관하여 대청에 안치했다.며칠 후 이웃나라 왕자라는 사람이 조문왔는데,장자의 처는 한눈에 그에게 반했다.저녁이 되자 자고 가라는 장자 처의 요청에 왕자는 못이기는 척 허락했다.저녁에 부인이 술상을 들고 방에 들어서자 왕자가 청혼을 했다.흥분한 장자의 처는 자기 방으로 돌아온 후 곧바로 상복을 벗고 다홍치마에 화장을 하고는 밤이 깊어지자 슬며시 왕자의 방에 들어갔다.그런데 왕자가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며 자기는 난치병을 앓고 있는데,죽은 지 백일 이내의 시체 골수를 먹어야 살 수 있다고 말했다.그러자 장자의 처는 장자 골통을 깨려고 도끼로 관 뚜껑을 뜯었다.죽은 줄 알았던 장자가 벌떡 일어나며 “당신은 내가 살아날 것을 어찌 알았소? 또 무슨 일로 다홍치마에 분을 발랐소?”라며 능청을 떨었다.놀란 장자의 처가 미친 듯 건넌방으로 가보니 왕자는 없었다.이에 장자 처는 부끄러워 물동이를 뒤집어쓰고 마당가 우물에 빠져 죽었다.그래서 장자가 그 물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는데 여기서 상처(喪妻)를 뜻하는 고분지통(叩盆之痛),또는 고분지탄(叩盆之嘆)이 나왔다. 셋째는 논어에 공자(孔子)가 말한 ‘지자요수 인자요산(智者樂水 仁者樂山,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에서와 같이 ‘좋아할 요’로 쓰인다. 樂자가 이상과 같이 쓰이고 있음을 볼 때 淫樂은 ‘음탕함과 즐거움 또는 음탕하게 즐김’이고,淫樂(음악)은 ‘음탕한 음악’으로 해석되는데,한자어는 다소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박교선 ˝
  • 산불진화 나섰다 중상입어 남부산림청 서무 곽경란씨

    산불 진화에 나섰던 산림청 여성 공무원이 중상을 당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산림청 남부지방산림관리청 공무원인 곽경란(30·여·임업 8급)씨는 지난 18일 새벽 0시 30분쯤 경북 봉화군 석포면 오미산(1071m) 산불 진화작업 중 굴러내려온 바위에 몸이 부딪혀 골반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17일 오후 5시쯤 현장에 투입된 곽씨는 만 7시간 동안 불을 끄며 정상 부근까지 올라갔다 사고를 당한 것.그러나 험준한 산악지형과 중상으로 이동이 불가능해 화재진압이 완료되고 119구급대가 출동한 오전 6시가 돼서야 후송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지난 2월 23일 8급으로 승진해 서울국유림관리소에서 남부청으로 발령받아 서무업무를 맡고 있다 17일 발생한 산불이 확산되자 안동에서 2시간여 동안 승용차를 타고 현장에 합류했다.곽씨는 “산불비상기간 중에는 휴일없이 대기하다 투입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고 투입에 남녀구분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
  • [儒林 속 한자이야기](15)

    유림 57에 ‘짐승의 가죽으로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말인 피색장(皮色匠)이 나온다. 피(皮)는 피골상접(皮骨相接:살가죽과 뼈가 서로 붙을 정도로 몹시 마름),피리양추(皮裏陽秋:사람마다 피부 속,즉 마음에는 속셈과 분별력이 있음)처럼 ‘가죽 또는 겉’이라는 뜻으로 쓰인다.수치심을 모르는 뻔뻔한 얼굴을 철면피(鐵面皮)라 하는데 유래는 다음과 같다. 옛날 왕광원(王光遠)이라는 사람이 학문과 재능에 뛰어나 진사(進士)까지 되었다.출세욕이 강한 그는 관리나 권세가의 시(詩)를 보면 그 사람 앞에서 ‘저로서는 도저히 이런 시를 쓸 수 없거니와 이태백(李太白)도 못 쓸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등 아첨을 다하였다.한번은 술취한 관리가 광원이 어쩌나 보려고 채찍으로 광원의 등을 때렸는데 광원은 빙긋이 웃으며 ‘각하(閣下)의 매는 시원합니다.’라며 아부의 말만 계속하였다.옆에 있던 친구가 나무라자 광원은 ‘여보게,그 사람에게 잘 보여둬야 할 것 아닌가.’라며 태연하였다.그때 사람들은 광원을 가리켜 ‘얼굴 두께가 열겹 철갑(鐵甲) 같다.’고 하였는데,여기서 철면피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상대방이 좋아하도록 말을 교묘하게 잘하며 비위를 맞추고 얼굴색(色·빛깔 색)을 좋게 하는 것을 교언영색(巧言令色)이라 한다.공자(孔子)는 이들을 미워하여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자 중에는 어진 사람(仁者)이 거의 없다.’고 했다. 또한 아무런 이유없이 얼굴 빛을 좋게하며 아부하는 것을 무고호아(無故好阿)라 한다.옛날에 갈가마귀 한 마리가 고깃덩이를 물고 나뭇가지에 앉아 있었다.그 아래를 지나던 여우가 ‘목소리가 매우 고와 노래를 아주 잘 한다던데,노래 한 곡 불러 준다면 나에게는 큰 영광일 텐데,한 번 불러 줄래?’라고 하였다.여우의 말을 사실로 착각한 갈가마귀가 노래를 부르려고 입을 열자 입에 있던 고깃덩이는 땅에 떨어졌다.이에 여우는 ‘이 어리석은 갈가마귀야,네 목소리가 뭐 아름답냐. 앞으로는 이유없이 너에게 아부하기를 좋아하는 자가 있거든 조심해.’라고 하며 고깃덩이를 물고 사라졌다. 공자의 말이나 이 일화에서 보듯 교언영색하는 사람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오늘날은 직업에 귀천(貴賤)이 없지만 옛날에는 피색장(皮色匠)과 같이 물건 만드는 장인(匠人) 또는 장색(匠色)은 천한 신분이었다.중요한 것은 장자(莊子)의 일화처럼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닐까. 옛날 위(魏)나라에 포정(·푸줏간 포,丁·백정 정)이라는 명요리사가 혜왕(惠王) 앞에서 소를 잡는데,순식간에 완벽하게 뼈와 고기를 분리하였다.그 모습에 혜왕이 감탄하자,포정은 자기가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소를 보면 소의 외형만 보였으며,3년쯤 지나자 뼈와 근육이 보였으나,19년이 된 지금은 소를 정신(혼)으로 대하여 눈 감고도 소의 몸에 생긴 틈바구니를 자연의 섭리에 따라 칼질하기에 칼날이 뼈와 부딪히지 않고도 가죽 및 고기를 모두 도려낼 수 있었기에 19년 동안 칼을 한번도 갈지 않았다고 했다.포정의 말이 끝나자 혜왕은 ‘나는 포정의 말을 듣고 양생(養生:참되게 사는 것)의 도(道)를 터득했다.’고 감탄했다.포정의 예술적인 칼솜씨는 인생을 무리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이래서 신묘(神妙)한 기술이나,달인(達人)의 경지를 말할 때 포정해우(丁解牛)에 비유하기도 한다. 박교선 교육부 연구사˝
  • [儒林 속 한자이야기](14)

    유림 54에 강상(綱常)이 나오는데,綱(벼리 강)은 (실 사)와 岡(산등성이 강)이 합해 이루어졌다.자가 들어간 한자는 紀(법 기),紅(붉을 홍),紋(무늬 문),純(순수할 순),紛(어지러울 분)과 같이 그 뜻은 거의가 실()과 관련되어 있으며,그 나머지 부분이 음이 된다.따라서 綱자의 음은 ‘강(岡)’인데,岡자가 들어간 한자는 剛(굳셀 강),鋼(강철 강)처럼 거의 ‘강’이라 발음된다. 그리고 常(항상 상)은 尙(숭상할 상)과 巾(수건 건)이 합해진 자인데,尙자가 들어간 한자는 嘗(일찍 상),賞(상줄 상) 등과 같이 ‘상’으로 발음된다.常의 본뜻은 ‘치마’였으나,차츰 ‘항상’이란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지자 尙자에 衣(옷 의)자를 붙여 별도로 裳(치마 상)자를 만들어 쓰게 되었다. 綱常은 유교문화에서 사람이 늘 지키고 행하여야 할 덕목인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이다.삼강(三綱)이란 (1)임금은 신하의 벼리가 되고(군위신강,君爲臣綱),(2)남편은 아내의 벼리가 되며(부위부강,夫爲婦綱),(3)아버지는 아들(자식)의 벼리가 된다(부위자강,父爲子綱)는 세가지 기본 강령이다.오상(五常)은 사람이 지켜야 할 다섯가지 도리,즉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또는 오륜(五倫)을 말한다. 五倫이란 (1)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義)가 있어야 하며(군신유의,君臣有義),(2)아버지와 아들(자식) 사이에는 친함이 있어야 하며(부자유친,父子有親),(3)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분별이 있어야 하며(부부유별,夫婦有別),(4)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어야 하며(장유유서,長幼有序),(5)친구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붕우유신,朋友有信)는 다섯가지 기본 실천윤리이다.과거 유교(儒敎)를 숭상하던 사회에서는 삼강오행이 사회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였으므로 삼강오상(三綱五常)에 어긋난 행위를 한 사람을 綱常罪人이라 하였다. 그러나 다음 일화 속의 인물에 대한 해석이 사람에 따라 다르듯이,삼강오행에 대한 견해가 시대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노(魯)나라에 살았던 미생(尾生)이라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한번 약속한 것은 철저히 지켰다.그러던 어느 날 그는 사랑하는 여자와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는 그 시간에 다리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나 그 여자는 나타나지 않고 갑자기 장대비만 쏟아지기 시작하였다.시간이 갈수록 물이 불어 가슴까지 차 올랐다.하지만 미생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다리 기둥을 부둥켜안고 그녀가 오기만을 기다리다가 물에 떠내려가 죽고 말았다. 이 일화는 장자(莊子)의 도척편(盜篇)에 나오는데,전국시대의 유명한 유세가(遊說家) 소진은 연(燕)나라 왕에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때 이 일화 속의 미생을 신의(信義)의 본보기로 삼았다.그러나 장자(莊子)는 미생(尾生)을 쓸데없는 명목(名目)에 목숨을 걸고 소중한 생명을 천하게 버리는 사나이라 말하면서 유가(儒家)에 대해서도 진실로 삶의 길을 모르는 무리들이라고 비판하였다.이래서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는 말은 ‘신의(信義)를 굳게 지키는 것’,또는 ‘어리석고 지나치게 정직함’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중요한 것은 공자(孔子)가 ‘지나침은 못 미치는 것과 같다(과유불급,過猶不及)’라고 말했듯이 중용(中庸)을 지키는 것이 아닐까 한다.˝
  • [儒林 속 한자이야기](13)

    유림 50에 이원(利源)이 나온다. 利(이로울 리)는 벼의 모양을 본뜬 禾(벼 화)와 농기구인 가래를 본뜬 부분( )이 합해진 글자이다.그 뜻은‘벼농사를 짓다’에서 나온 ‘이롭다 또는 이익’과 가래의 앞이 뾰족하기에‘날카롭다’이다. 시대가 흐르면서 이익을 얻기 위한 방법이 다양해졌다.동양(東洋)에서 세금징수의 발단이 되었다는 농단(壟斷)이 그 중의 하나이다.농단은 다음의 일화에서 유래된 말인데,맹자라는 책 원문에는 용단(龍斷)으로 되어 있으나,그 뜻이 ‘깎아 자른 듯한 언덕’이기에‘농(壟)’으로 읽는다. 몇 년간 제(齊)나라 정치 고문이었던 맹자가 자신의 뜻이 별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제나라를 떠나려 함에 제나라 선왕(宣王)이 거액의 봉록(俸祿)을 제안하며 만류했다.그러나 맹자는 ‘한 천한 사람이 시장이 한눈에 보이는 깎아지른 듯한 높은 언덕(농단)에 자리잡고 시장 전체를 내려다보며 귀한 물건들이 있는 곳으로 왔다갔다 하며 귀한 물건들을 모두 바꾸어 옴으로써 시장의 모든 이익을 독차지하게 되었습니다.이에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였으며,관리도 이 사람으로부터 세금을 징수하게 되었습니다.이것이 상인에게서 세금을 받게 된 시초였습니다.’라고 하며 자신만이 혼자 받는 거액의 봉록을 농단에 비유하며 거절하였다.여기서 유래된 말이 ‘혼자서 이익을 독차지하거나 폭리를 취한다’는 ‘농단’이다. 이익과 관련한 일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말이 漁夫之利이다.중국 전국시대에 연(燕)나라 주변에 조(趙),제(齊),진(秦)나라 등이 있었는데 조(趙)나라가 기근(飢饉)으로 어려움을 겪던 연(燕)나라를 치고자 하였다.이에 연나라 소왕(昭王)이 소대(蘇代)라는 책략가로 하여금 조나라의 침공을 막도록 요청하였다.그래서 소대가 조나라 혜문왕을 만나 “신이 조나라에 오는 도중 역수(易水)를 건널 때였습니다.조개가 물가에서 입을 벌리고 햇볕을 쬐고 있었는데,황새가 조개의 속을 빼 먹으려고 찍으니 조개가 놀라 입을 꽉 다물었습니다.이에 더이상 먹지도,부리를 빼지도 못하게 된 황새는 조개에게 ‘오늘도 내일도 비가 안 오면 곧 너는 죽을 것이다.’라고 협박했고,조개는 ‘내가 오늘도 내일도 놓아주지 않으면 너야말로 죽을 뿐이다.’라고 대꾸했습니다.둘이 이렇게 싸우고 있을 때 어부가 둘 다 잡아갔습니다.”라는 일화를 예로 들었다.즉,조나라와 연나라가 싸우다 보면 두 나라는 결국 강한 秦나라에 먹히게 된다는 뜻이었다.여기서 나온 말이 어부지리(漁夫之利),즉 ‘두 편이 다투고 있을 때 제3자에게 이익을 빼앗긴다 또는 두 편이 다투고 있을 때 제3자가 이익을 얻는다.’는 말이다.이를 방휼지세(蚌鷸之勢)라고도 한다. 원(源)은 샘물의 근원이라는 뜻이다.이는 原(근본 원)자가 처음에는 샘물이 나오는 곳을 뜻하였으나 차츰 (넓은들판 원)자와 음이 같기에 ‘넓고 평탄한 들판’등을 뜻하게 되었다.이에 원(原)자와 구별하여 ‘근원’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기 위해 (水)자를 붙였던 것이다. 利源은 ‘이익의 근원’이라는 뜻인데,주체가 누구든 오로지 利源만을 추구하는 일은 신중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맹자가 ‘무항산자무항심(無恒産者無恒心),즉 일정한 직업이 없는 사람에게는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할 착한 마음이 없어지게 되어 방랑이나 부정 또는 탈선 등을 하게 된다.’라고 말했듯이,누구나 건전한 소득수단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박교선 교육부 연구사˝
  • [儒林 속 한자이야기](12)

    유림 49에 혼미(昏迷)가 나온다. 昏(날저물 혼,어두울 혼)은 해가 저문 저녁을 뜻하는데,昏자가 들어간 한자는 (혼미할 혼), (눈어두울 혼), (흐릴 혼) 등과 같이 거의가‘혼(昏)’이라 읽고 나머지 부분이 주로 뜻을 결정한다. 婚(혼인할 혼)자도 마찬가지인데 昏이 들어 간 이유는 옛날에는 혼례를 해가 진 후(昏) 신부집에서 했기 때문이다.고구려 때에는 신랑이 저녁에 신부집 밖에서 예를 갖추어 신부의 방에 들어갈 수 있도록 간청하면 장인·장모될 사람은 못이기는 척하며 방으로 들어가도록 허락하는 형식이었다.그래서‘장가(杖家)든다.’는 말이 나왔다. ‘장가와 시집’이라는 말은 입장에 따라 남자 쪽에서는‘장가(杖家)간다.’또는 ‘시집(媤 시집 시+家 집 가)온다.’로,여자 쪽에서는 시부모가 될 사람이 있는 집으로 가는 것이기에 ‘시집간다.’,또는 고구려 때처럼 신랑 될 사람이 일단 자기(여자)집으로 왔기에 ‘장가온다.’로 표현할 수 있다. 부모를 섬기는 도리의 하나로 혼정신성(昏定晨省)이 있다.이는 저녁(昏)이 되면 부모(父母)님의 잠자리를 보아드리며(定),새벽(晨)이 되면 부모님께서 안녕히 주무셨는지 여쭙고 안색을 살피는(省) 것이다.이와 같은 뜻의 말로는 겨울에는 따뜻하게(溫),여름에는 시원하게(淸) 해드리고,밤에는 이부자리를 펴드리며(定),아침에는 안녕히 주무셨는지 살핀다(省)는 뜻의 ‘온청정성(溫淸定省)’과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한다는 뜻의 ‘동온하청(冬溫夏淸)’이 있다. 昏은 迷(미혹할 미)와 결합되어 ‘사리에 어둡고 마음이 흐리멍덩하거나 마음이 어지러워 희미하다.’로 쓰인다. 迷는 (쉬엄쉬엄갈 착)자와 米(쌀 미)가 합해진 글자다. 이 들어간 한자는 遠(멀 원),近(가까울 근),返(돌아올 반),逢(만날 봉)과 같이 대부분 자가 그 한자의 뜻을 나타내고 나머지 부분은 음이 된다. 과거 가난할 때는 쌀(米)이 없어 거친 음식을 먹고 생활한 경우가 많았다.그래서 이에 비유하여 생긴 말도 많은데,다음은 그 중의 하나이다.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에게 과부가 된 누나 호양공주(湖陽公主)가 있었다.그런데 광무제는 그의 누이가 유부남(有婦男)인 대사공(大司空) 송홍(宋弘)에게 마음이 있음을 알고는 고민에 빠졌다.그러다가 하루는 미리 옆방에 호양공주를 있게 하고는 송홍을 불러 ‘富(부자 부)해져서는 벗을 바꾸고,貴(귀할 귀)해져서는 아내를 바꾼다고들 하는데 당신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오.’라며 송홍의 속마음을 떠 보았다.그랬더니 송홍은 광무제가 그의 누이를 염두에 두고 한 말임을 알고는 ‘가난할 때 사귄 친구는 잊지 말고(빈천지교불가망 貧賤之交不可忘),가난할 때 술지게미나 쌀겨 같은 거친 음식을 먹어가며 고생을 같이 한 아내는 집에서 내쫓지 아니한다(조강지처불하당 糟糠之妻不下堂).’라고 말해 자신의 뜻을 분명히 했다.이로부터 糟糠之妻가 쓰이게 된 것이다. 사람의 삶을 아침 이슬에 비유하여 조로인생(朝露人生)이라 한다.인생이란 해가 뜨면 곧바로 사라지는 아침 이슬처럼 덧없이 짧다는 뜻이다.인간은 이토록 짧은 세월을 사는데 동고동락(同苦同樂 괴로움과 즐거움을 같이 함)한 사람을 배반하면서 과연 무엇을 얼마나 성취할 것이며,그것으로 인해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 [儒林 속 한자이야기](11)

    유림 42에 국사(國師)가 나온다.국(國)자는 어느 특정 지역(口)에서 사람들이 긴 창(戈)을 갖고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보루(一)를 쌓은 성(城)을 뜻하였는데,차츰 많은 성(城)으로 이루어진 나라를 뜻하게 되었다. 나라를 새로 세우는 것을 개국(開國)이라 하는데,우리나라 개국시기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단군신화에 따라 고조선(古朝鮮)의 건국인 기원전2333년을 기준으로 한다. 사(師)자는 정찰에 유리한 높은 곳을 뜻하는 부분(왼쪽)과 군부대를 표시하는 깃발을 본뜬 부분(오른쪽)이 합해진 글자로 본뜻은 ‘군사 또는 군대’이다.사(師)자가 이런 의미로 쓰이는 경우는‘육군○○師團’,또는 ‘제갈량이 유비의 뜻을 받들어 중국 북방(위나라)을 수복하기 위해 군대(師)를 출동(出)시키며 왕(王·유비의 아들 유선)에게 국가를 위한 자신의 진정한 마음을 올린 글(表: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글의 한 문체)인 출사표(出師表) 등이 있다. 사(師)자의 뜻은 차츰 의사(醫師),교사(敎師),은사(恩師) 등과 같이 ‘우두머리 또는 스승’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의사(醫師)는 주(周)나라 때 의료 관련 업무를 맡은 부서의 ‘우두머리’였는데,후에는 의료를 업(業)으로 하는 사람을 뜻하게 되었다. 공자가 ‘삼인행(三人行)이면 필유아사언(必有我師焉)’이라 했는데,여기서의 사(師)는 ‘스승’을 뜻한다.공자의 말은‘세 사람이 같이 가면 그 중에는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는 뜻으로 나보다 나은 사람과 못한 사람,즉 양쪽으로부터 배울 점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누구에게 배운 경우’를 ‘누구에게 사사(事師)받았다.’라고 잘못 쓰는 경우가 있는데,‘나는 ○○선생님을 사사(師事)하였다.’라고 써야 한다.사사(師事)는 ‘스승으로 섬기다.’이며,사사(事師)는 ‘스승을 섬기다.’의 뜻이기 때문이다. 국사(國師)란 임금의 스승 또는 국가나 임금의 사표(師表)가 되는 고승(高僧)에게 임금이 내리던 호칭이다. 국사(國師)는 왕사(王師) 위의 최고의 승직(僧職)으로 중국에서는 550년에 법상(法常)이,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광종(光宗)때 혜거(惠居)가 최초였다.우리나라는 혜거 사망 후 탄문(坦文)이 제2대 국사로 추대되었으며,이 제도는 조선초까지 지속됐다. 대사(大師)란 국가에서 덕이 높은 스님에게 내리는 존칭이다.고려시대 과거제 가운데 승과(僧科)를 실시하면서 법계의 하나로 처음 두어 조선초기까지 그대로 사용했으나 불교탄압 이후 승려를 부르는 통상적 명칭이 되었다.우리에게 익숙한 이판사판(理判事判)이라는 말도 승려 호칭과 관련이 있다.조선 중기 억불(抑佛:불교를 억누름)정책 이후에 불교의 맥을 이어 나가기 위한 승려들의 노력이 이어졌다.이들은 주로 경전 공부나 교리 연구를 하던 이판승(理判僧)과,여러 잡일이나 절의 사무와 산림(山林,産林)을 맡아 함으로써 사찰이 없어지는 것을 막은 사판승(事判僧)이었다.오늘날 ‘살림살이 또는 살림을 잘한다.’ 등에서의 ‘살림’이라는 말은 산림(山林,産林)이라는 단어의 음이 변한 것으로 사판승의 역할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조선중기 억불 정책으로 승려의 신분은 매우 추락한 상황이었기에,이판승(理判僧) 또는 사판승(事判僧)이 되는 것은 낮은 신분,또는 계층이 되는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였다.그래서 이후 이판사판은 의미가 변하여 ‘막다른 궁지 또는 끝장’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박교선 교육부 연구사 ˝
  • 前 헌재재판관들이 말하는 평의

    “서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입니다.”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이영모(68) 변호사가 들려주는 ‘평의’에 대한 경험담이다.이 변호사는 1994년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을 거쳐 1997년부터 2001년까지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역임했다.이 변호사는 지난해 6월,전직 헌재 재판관들과 함께 서울 신촌에 법무법인 ‘신촌’을 열었다.헌재 16년 역사 가운데 12년간 헌재 재판관을 연임해 ‘재판관’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김문희(67) 변호사와 지난 97년까지 9년 동안 재판관이었던 황도연(70) 변호사 등이 손을 잡았다. 이들 원로 재판관은 18일 첫 평의에 대해 “선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법적 의견을 교환하는 것도 아니라 주심재판관 소속 연구관들이 수집한 외국사례들과 절차 일정에 대한 보고와 이야기가 오고갈 것”이라고 내다봤다.이 변호사는 “특별히 논의할 것도 없고 일정과 절차에 다른 의견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면서 “때문에 법복도 갖추지 않고 가볍게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평의는 재판관들이 각각 주심을 맡은 사건의 보고서와 자료를 들고 들어오면 시작된다.재판관들은 무작위로 배당받았던 보고서를 소속 연구관들에게 검토하도록 해 마련한 자료를 이 자리에서 다른 재판관들에게 나눠준다.이를 “평의에 돌린다.”고 말한다. 평의에서는 많으면 수십 건의 사건을 논의하는 경우도 있다.이때도 특별한 순서가 있는 것은 아니고 소장의 주재나 서열순,아니면 그날 상황에 따라 정해진다.평의 때 사건에 대해 결론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언급은 해야 한다.그러다보니 밤늦게까지 하고도 부족해 이튿날에 다시 모이기도 한다.재판관들끼리 의견이 달라도 굳이 합의하지 않는다.소수나 다수나 의견을 붙여 그대로 나간다. 한 사건에 대한 평의가 끝나면 소장이 재판관들의 의견을 묻는데 통상적으로 맨 마지막 서열의 재판관 의견부터 듣는 것이 특징이다.독일의 재판소법과 이를 따른 일본의 법을 기본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평의 때에는 점심을 꼭 구내식당에서 한다.”면서 “오후 4시쯤 되면 비서가 차를 보충해준다.”고 귀띔했다. 이들은 탄핵가결안 평의에 대해 “목소리를 크게 낸다고 질 게 이기고 이길 게 지지는 않는다.”면서 “예전 동성동본 선고 때도 유림들이 헌재에 와서 시위했지만 어차피 소신대로 한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노 대통령 출석여부와 관련,“일단 헌재측에서 소환장을 보내지 않으면 변론이 열릴 수 없다.”면서 “다음은 응하고 응하지 않고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구혜영 박경호기자 koohy@˝
  • [儒林 속 한자이야기](10)

    유림 39에 하마(下馬)가 나온다.下는 ‘아래,아래로,내리다’등으로 해석되는데,말(馬)의 모양을 본뜬 馬자와 합해 ‘말에서 내리다.’의 뜻이 된다.이는 한자(漢字)가 앞뒤 글자에 따라 명사,동사,형용사,부사 등으로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준 예이다. 낙마(落馬)는 ‘말에서 떨어지다.’의 뜻으로 下馬와 혼동해서는 안된다.말(馬)은 사람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동물인 만큼 관련된 어휘나 일화가 많다. 가마 또는 말(馬)은 대체로 상류층의 교통수단이었는데,도로의 일정 장소에는 ‘모두 말에서 내리시오(大小人員皆下馬).’라고 적힌 하마비(下馬碑)가 있었다.이곳에서 주인,기사,말들은 쉬거나 볼일을 보았다.이때 가마꾼이나 마부들은 자기들끼리 잡담을 나누었는데,그들의 주인이 대부분 고급관리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기에 주로 주인들의 출세나 진급 또는 면직 등에 대한 평(評)이 많았다.그래서 요즘 개각이나 요직의 개편이 있을 때마다 떠도는 하마평(下馬評)이란 말이 나왔다.이는 세간(世間)의 화제,잡담,험담으로 해석되는 ‘가십’과는 구분된다. 출마(出馬)는 원래 ‘말을 몰고 나오다,또는 말을 나라에 바치다.’가 주요 뜻이다.그런데 임지(任地)로 가는 관리나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 등은 말을 타고 나갔다.그래서 선거때 많이 거론되는 ‘출마(出馬)’가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말을 타고 가던 주인이 길을 잃었을 때 말(馬)이 알아서 길을 찾아 갔다는 일화도 있다.춘추 전국시대 제나라의 환공이 습붕,관중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고죽(孤竹)이라는 작은 나라를 토벌한 후 돌아올 때 길을 잃었다.관중은 늙은 말이 길을 찾을 것이라며 가장 늙은 말을 풀어놓았다.말은 사방(四方)을 둘러본 뒤 한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는데 군사들이 말을 따라가다 보니 무사히 돌아오게 됐다.이래서 ‘노마(老馬)의 지혜(智)’라는 말이 나왔는데,이는 ‘많은 일을 잘 알고 있더라도 그 지혜가 늙은 말(馬)만도 못한 경우가 있으니,아무리 변변치 못한 사람이나 동물도 나름대로의 재능이나 특징은 있다.’는 뜻이다. 말이 자기 집을 스스로 찾아 온 일화는 한비자(韓非子)의 인간훈(人間訓)에도 있다.옛날 중국 북방 오랑캐들과 인접한 요충지 근처에 점을 잘 보는 노인이 살고 있었다.그런데 어느 날 노인의 말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났다.이웃 주민들이 노인을 위로하자 노인은 ‘이 일이 오히려 복(福복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라며 서운해하지 않았다.몇 달 후 달아났던 말이 오랑캐의 준수한 말을 짝으로 맺어 돌아옴에 이웃 주민들이 축하하자 노인은 ‘이 일이 오히려 화(禍재앙 화)가 될지 누가 알겠소.’라며 기뻐하지 않았다.그 후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고 즐기다 낙마(落馬),다리가 부러졌다.주민들이 노인을 위로하니,노인은 ‘이 일이 오히려 복(福복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라며 태연해했다.얼마 후 오랑캐가 침입하자 젊은이들이 징발되어,전쟁에서 대부분이 죽었다.그러나 노인의 아들은 다리 때문에 징병에서 제외되어 살아 남았다. 인간만사새옹지마(人間萬事塞翁之馬) 또는 새옹지마(塞翁之馬)나 북옹마(北翁馬)로 불리는 이 일화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행(幸)과 불행(不幸),길(吉)과 흉(凶)이 늘 교체할 수 있으니 좋은 일이 생겼다고 너무 기뻐할 것도,불행한 일이 생겼다고 너무 서운해 할 것도 없음을 뜻한다. 박교선 교육부 연구사˝
  • 儒林(48)-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조광조가 쓴 답안의 서두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제가 전하께서 내신 문제 가운데서 ‘공자께서 내가 등용이 된다면 단 몇 개월이라도 가하지만 적어도 3년이면 정치를 통하여 목적을 이룰 수 있다.’하는 데서부터 ‘쉽게 논할 수는 없다.’는 곳까지를 삼가 엎드려 읽어보았습니다. 무릇 한 사람에서 천만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 수가 많지 않다고 할 수 없으며,한 가지 일에서 천만가지 일에 이르기까지 그 일이 실로 복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그러나 ‘마음(心)’이라는 것과 ‘도(道)’라는 것은 그 가운데서도 하나가 아닌 것이 없는 법입니다.그러므로 천만의 사람과 천만의 일들이 비록 서로 다르고 복잡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관통하는)도와 마음이 하나인 것은 하늘의 근본 이치란 원래 하나이기 때문인 것입니다.천하를 함께한다는 가르침으로써 나와 하나가 될 수 있는 사람을 이끌고 천하를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나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마음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감화시키면 천하의 마음도 내 마음의 올바름에 감화되어 감히 바르게 되지 않을 수 없으며,이를 나의 도리로 인도하면 천하의 사람들이 이 가르침의 크고 넓음에 감화되어 선한 데로 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그러므로 나의 도리와 마음이 성실한가,못 한가에 따라 나라가 잘 다스려질지 아닐지가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공자의 도는 천지의 도이며,공자의 마음은 천지의 마음입니다.그러므로 천지의 도와 만물의 마음은 모두 공자의 도를 따라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으며,천지의 마음과 음양(陰陽)의 감응(感應)도 역시 이 공자의 마음으로 말미암아 조화되지 않음이 없는 것입니다.” 공자의 사상이야말로 ‘천지의 도’임을 역설함으로써 답안을 시작한 조광조의 긴 문장을 모두 전재할 수는 없으나 조광조의 정치관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만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법도를 정하고 기강을 세우려면 대신을 공경하고 그에게 정치를 위임해야만 합니다.그래서 반드시 대신을 임명하고 그에게 정치실무를 위임해야만 정치의 근본이 서는 것입니다.비유하자면 임금은 하늘과 같고 신하들은 사계절과 같습니다. 하늘이 스스로 행한다 하나 사계절의 운영이 없다면 만물이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임금이 스스로 정치를 다 떠맡는다 하더라도 대신들의 보좌가 없다면 어떠한 교화도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아니 교화가 이루어지지 못할 뿐이 아닙니다.하늘이 스스로 행하고 임금이 스스로 정치를 다 맡는 것은 하늘이 되고 임금이 되는 도리에 크게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대신을 그 자리에 임명하셨으면서도 그들에게 단지 문구나 따지는 사소한 일만 맡기고 소인배들의 말만 믿고 대신들을 믿지 않으신다면 위로는 임금이 신하를 부리는 도리를 구할 수 없으며,아래로는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도리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그러면 군신의 도리는 사라질 것입니다.그러므로 옛날에 성군들과 현명한 재상들은 반드시 정성스러운 뜻을 다하여 서로를 믿고 또 서로가 해야 할 바를 다했기 때문에 군신이 함께 노력하여 광명정대한 큰 공업을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엎드려 비옵건대 전하께오서도 진실로 대신들을 공경하시고 그들에게 정치 실무를 위임하시어 기강과 법도를 세우시고 정하시어 훗날 나라를 다스리는 커다란 근본이 되어 큰 법도가 행하여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십시오.” 그러고 나서 조광조는 자신의 정치사상인 치지주의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그것은 군왕 스스로 정치적 모럴에 충실한 도덕성 재확립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유림으로서의 주장이었다. “제대로 배운 것이 없어 거칠고 무식한 제가 어찌 안다고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까.공자께서는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도를 밝히는 것(明道)’에 지나지 않으며 ‘학문하는 것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혼자 있을 때라도 늘 삼가는 것(謹獨)’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그러므로 마지막으로 이 ‘명도’와 ‘근독’ 두 가지를 가지고 전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조광조는 마침내 군왕이 갖춰야 할 군자로서의 두 가지 덕목인 ‘명도’와 ‘근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부연하기 시작한다.˝
  • 儒林(48)-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儒林(48)-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조광조가 쓴 답안의 서두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제가 전하께서 내신 문제 가운데서 ‘공자께서 내가 등용이 된다면 단 몇 개월이라도 가하지만 적어도 3년이면 정치를 통하여 목적을 이룰 수 있다.’하는 데서부터 ‘쉽게 논할 수는 없다.’는 곳까지를 삼가 엎드려 읽어보았습니다. 무릇 한 사람에서 천만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 수가 많지 않다고 할 수 없으며,한 가지 일에서 천만가지 일에 이르기까지 그 일이 실로 복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그러나 ‘마음(心)’이라는 것과 ‘도(道)’라는 것은 그 가운데서도 하나가 아닌 것이 없는 법입니다.그러므로 천만의 사람과 천만의 일들이 비록 서로 다르고 복잡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관통하는)도와 마음이 하나인 것은 하늘의 근본 이치란 원래 하나이기 때문인 것입니다.천하를 함께한다는 가르침으로써 나와 하나가 될 수 있는 사람을 이끌고 천하를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나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마음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감화시키면 천하의 마음도 내 마음의 올바름에 감화되어 감히 바르게 되지 않을 수 없으며,이를 나의 도리로 인도하면 천하의 사람들이 이 가르침의 크고 넓음에 감화되어 선한 데로 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그러므로 나의 도리와 마음이 성실한가,못 한가에 따라 나라가 잘 다스려질지 아닐지가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공자의 도는 천지의 도이며,공자의 마음은 천지의 마음입니다.그러므로 천지의 도와 만물의 마음은 모두 공자의 도를 따라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으며,천지의 마음과 음양(陰陽)의 감응(感應)도 역시 이 공자의 마음으로 말미암아 조화되지 않음이 없는 것입니다.” 공자의 사상이야말로 ‘천지의 도’임을 역설함으로써 답안을 시작한 조광조의 긴 문장을 모두 전재할 수는 없으나 조광조의 정치관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만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법도를 정하고 기강을 세우려면 대신을 공경하고 그에게 정치를 위임해야만 합니다.그래서 반드시 대신을 임명하고 그에게 정치실무를 위임해야만 정치의 근본이 서는 것입니다.비유하자면 임금은 하늘과 같고 신하들은 사계절과 같습니다. 하늘이 스스로 행한다 하나 사계절의 운영이 없다면 만물이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임금이 스스로 정치를 다 떠맡는다 하더라도 대신들의 보좌가 없다면 어떠한 교화도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아니 교화가 이루어지지 못할 뿐이 아닙니다.하늘이 스스로 행하고 임금이 스스로 정치를 다 맡는 것은 하늘이 되고 임금이 되는 도리에 크게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대신을 그 자리에 임명하셨으면서도 그들에게 단지 문구나 따지는 사소한 일만 맡기고 소인배들의 말만 믿고 대신들을 믿지 않으신다면 위로는 임금이 신하를 부리는 도리를 구할 수 없으며,아래로는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도리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그러면 군신의 도리는 사라질 것입니다.그러므로 옛날에 성군들과 현명한 재상들은 반드시 정성스러운 뜻을 다하여 서로를 믿고 또 서로가 해야 할 바를 다했기 때문에 군신이 함께 노력하여 광명정대한 큰 공업을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엎드려 비옵건대 전하께오서도 진실로 대신들을 공경하시고 그들에게 정치 실무를 위임하시어 기강과 법도를 세우시고 정하시어 훗날 나라를 다스리는 커다란 근본이 되어 큰 법도가 행하여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십시오.” 그러고 나서 조광조는 자신의 정치사상인 치지주의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그것은 군왕 스스로 정치적 모럴에 충실한 도덕성 재확립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유림으로서의 주장이었다. “제대로 배운 것이 없어 거칠고 무식한 제가 어찌 안다고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까.공자께서는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도를 밝히는 것(明道)’에 지나지 않으며 ‘학문하는 것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혼자 있을 때라도 늘 삼가는 것(謹獨)’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그러므로 마지막으로 이 ‘명도’와 ‘근독’ 두 가지를 가지고 전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조광조는 마침내 군왕이 갖춰야 할 군자로서의 두 가지 덕목인 ‘명도’와 ‘근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부연하기 시작한다.
  • [儒林 속 한자이야기](9)

    유림에는 갑자사화(甲子士禍)의 갑자,기묘사화(己卯士禍)의 기묘,자시(子時),인시(寅時) 등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를 배합한 시간 단위의 낱말들이 나온다.십간(十干)은 갑(甲)을(乙)병(丙)정(丁)무(戊)기(己)경(庚)신(申)임(任)계(癸)로 날짜를,십이지(十二支)는 자(子)축(丑)인(寅)묘(卯)진(辰)사(巳)오(午)미(未)신(申)유(酉)술(戌)해(亥)로 달수(月)를 세기 위해 만들었다.십간과 십이지는 각각 차례대로 배합되어 육십갑자(六十甲子),즉 육갑(六甲)이 만들어진다.일부에서 복이나 건강을 결정한다고 믿는 사주팔자(四柱八字)도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다. 사주(四柱)란 사람을 집의 네(四) 기둥(柱기둥 주)에 비유한 출생 年·月·日·時를 말한 것이요,팔자(八字)란 사주의 간지로 되는 여덟 글자이다.옛날에는 날짜나 시간을 계산하려면 육갑을 짚는데 익숙해야 했으나 서툰 경우가 적지않아 이를 비꼬아 ‘육갑 떤다’라는 비속어가 나왔다. 시간은 자시(子時)를 시작으로 십이지 한 글자당 2시간씩이다.즉 자시(子時)는 밤11시∼새벽1시,축시(丑時)는 새벽1∼3시,인시(寅時)는 새벽3∼5시…해시(亥時)는 오후9∼11시이다.십이지의 동물 배열 순서에 대해서는 여러 설(說)이 있으나,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다음 내용일 것이다. 먼 옛날 하느님(하늘님)이 동물들을 모아놓고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 세배하러 오도록 말하며 1등부터 12등까지는 상을 주겠다고 했다.그랬더니 느림보인 소는 고민끝에 하루 전날 밤에 출발했다.그런데 눈치 빠른 쥐는 소 등에 올라타고는,초하룻날 동이 틀 무렵 소가 하느님 궁전 앞에 도착하여,문이 열리자마자 소 등에서 뛰어내려 소보다 한발짝 먼저 들어가 1등이 되었다.다른 동물들은 초하룻날 새벽에 일제히 출발했다.호랑이는 단숨에 도착했으나 이미 쥐와 소가 와있었기에 3등을 했고,꾀많은 토끼는 도중에 잠시 잠을 자 4등을 했다.그 뒤를 용,뱀,말,양,원숭이,닭,개,돼지 순서로 도착했다.이리하여 십이지는 쥐 소 범 토끼 등의 순으로 정해졌다고 한다.달리기를 잘하는 고양이가 빠진 이유는 쥐가 고양이에게 날짜를 틀리게 가르쳐 주어 고양이는 아예 출발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때부터 고양이는 쥐를 원수로 여기게 되었다고 한다. ‘유림’에는 추고(推考)가 나온다.推는 ‘옮길 추,밀 퇴’이며,考는 ‘상고,즉 생각할 고’로 추고(推考)는 “미루어 생각함,또는 피의자의 허물을 심문해 알아내는 것”이라는 의미이다.그런데 추고(推考)는 자칫 퇴고(推敲)와 음·뜻을 혼동할 수 있다. 퇴고(推敲)란 시(詩)나 산문(散文)을 지을 때 글자(字)나 구(句)를 여러번 생각해 고치는 일로,다음의 일화에서 유래되었다.당나라 시인 가도(賈島)가 과거시험을 보러 나귀를 타고 가던 중 “새는 연못가 나무 위로 잠자러 들어가고,스님은 달빛 아래에서 문을 민다(僧推月下門)”라는 구(句)가 들어간 시 한 수를 지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스님이 ‘문을 밀다(推)’라고 해야 할지,아니면 ‘스님이 문을 두들긴다(敲)’라고 해야 할지 결정을 못한 채 깊이 생각하며 가던 중 당시 유명한 문인(文人) 한유(韓愈)를 만나게 되었다.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지만 한유에게 어떤 글자를 써야할지 자문을 구하니,한유가 ‘밀다(推)’보다는 ‘두드리다(敲)’가 좋겠다고 하였다.그래서 오늘날 ‘퇴고를 부탁합니다.’등의 표현을 쓰게 된 것이다. 박교선 교육부 연구사˝
  • [儒林 속 한자이야기](8)

    유림〈27〉 에 似而非(사이비)라는 말이 나오는데,‘비슷하지만 바로 그것은 아니다’라는 뜻이다.이 말은 만장(萬章)이 그의 스승 맹자(孟子)에게 공자(孔子)가 향원(鄕愿:덕이 있는 사람처럼 칭송 받으나 실제의 행실은 그렇지 못한 자)을 德(덕)의 도적이라고 말한 이유를 묻는데 대해 맹자가 설명하면서 인용한 공자 말씀,즉 ‘나는 같은 것 같지만 같지 아니한 것(似而非)을 미워한다.(예를 들면)새싹과 비슷한 풀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실제 새싹과 구분하는데 혼란을 주기 때문이며,재주와 지혜를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의(義)를 혼란스럽게 함이 두려워서이며,말은 많으나 실속이 없음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믿음(信)을 혼란스럽게 함이 두려워서이며,정(鄭)나라의 음악을 미워함은 그것이 아악(雅樂)과 비슷하므로 옳은 음악을 혼란하게 하기 때문이며,향원(鄕原)을 미워함은 그가 진정한 덕(德)과 혼란하게 할 수 있음을 두려워해서이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而자는 주로 두 문장을 연결하는‘그리고,그러나’의 뜻 또는 문장의 끝에서 而已(이이:∼일 뿐이다)라는 의미로 활용된다. 논어에 보면 공자는 만년(晩年)에 ‘나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十有五而志于學),30세에 뜻을 세웠으며(三十而立),40세가 되어서는 무엇에도 의혹됨이 없었으며(四十而不惑),50세가 되어서는 하늘이 나에게 무엇을 명하는지 알았으며(五十而知天命),60세가 되어서는 무슨 말을 들어도 모두 소화시킬 수 있었으며(六十而耳順),70세가 되어서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무엇이든 하여도 법도에 벗어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慾不踰矩,종심소욕불유구).’라고 말했는데,모두 而자로 연결되어 있다.오늘날 15세를 志學(지학),30세를 而立(이립),40세를 不惑(불혹),50세를 知天命(지천명),60세를 耳順(이순),70세를 從心(종심)이라고 하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非자는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하는 시시비비(是是非非) 등과 같이 ‘옳지 않다’라는 뜻으로 활용된다.또한 ‘아니다’라는 뜻으로도 사용되는데 예를 들면 ‘꿈은 아니었는데,마치 꿈과 같았다’라는 말인 비몽사몽(非夢似夢)이 있다.꿈과 관련한 유명한 일화로 장자(장주)의 제물론편(齊物論篇)에 나오는 蝴蝶夢(蝴나비 호,蝶나비 접,夢꿈 몽)을 들 수 있다.‘언젠가 나(장자)는 꿈을 꾸었는데,한 마리의 나비가 되어 훨훨 날갯짓하며 날다 보니 너무도 즐거워 내가 나비라는 것도 잊고 있었다.그러다 꿈에서 깨었는데 나비가 아니라 장자인 내가 아니었는가?그러나 도대체 훨훨 날던 나비의 꿈에 지금 이 현실세계의 내가 있었던 것인지,아니면 내 꿈에 나비가 날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네….’ 언뜻 보기에 호접몽(나비 꿈)은 非夢似夢 상황의 사람이 말한 것 같으나,사실은 장자가 꿈과 나비를 통해 사물과 자기와의 구별을 하지 않은 것,또는 물아일체(物我一體) 경지(境地)를 비유한 것으로 장자의 주요 사상을 재미있게 표현한 부분이다.장자는 옳은 것(是)도 그른 것(非)도 없으며,착함(善)도 악함(惡)도 없는 등 세상 모든 것에 차별이 없다는 초월(超越)사상을 지니고 있다.시비(是非)를 분명히 가리려 하고,작은 것에 연연해 하며,여유로움이 적거나,마음이 피곤한 이 시대의 사람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방대한 스케일의 장자 사상을 한번쯤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올해의 여성운동상’ 수상 최재천 교수

    “여성운동을 위해 시위 한번 해본 적 없으면서 ‘여성운동상’을 수상한 것이 영광이면서도 주저하게 됩니다.그러나 이 상을 계기로 더욱 더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목청을 돋우는 일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서울대 최재천(50) 생명과학부 교수는 세계여성주간을 맞아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하는 ‘올해의 여성운동상’ 수상자로 결정된 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기쁨을 표현했다. 지난해부터 최 교수는 호주제 폐지를 바라는 여성들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로 부각됐다.호주제 폐지를 둘러싼 논란을 ‘드센 여성계’와 ‘전통을 지키려는 유림’의 갈등으로 본 사람들에게 그의 “부계혈통주의는 생물학의 진실을 역행하는 모순”이란 통렬한 비판은 명쾌했다. 그의 주장은 생물학적으로 혈통은 모계로 연결될 뿐이라는 것에 기초한다.즉,세포 내에는 핵 이외에 세포가 사용하는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미토콘드리아라는 소기관이 있는데,핵이 융합하는 과정에서는 당연히 암수의 유전자가 공평하게 절반씩 결합하지만 핵을 제외한 세포질은 암컷이 홀로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토콘드리아의 DNA는 온전히 암컷으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호주제 폐지 위헌재판을 진행 중인 헌법재판소는 최 교수에게 ‘부계혈통주의의 과학적 근거 유무 및 호주제 존폐에 대한 전문의견’을 묻기도 했다. 또 그는 혹독한 사이버테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그를 비난하는 남성들은 ‘남자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것은 세상의 진리’이며,‘여성이 남성을 보좌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단호하게 말했다.“과학자로서 저는 진리를 말하지 않습니다.과학자에게 영원한 진리는 없으며,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수도 있으니까요.하지만 동물행동학자로서,사회생물학자로서 자연의 섭리를 연구해온 것이 틀렸다고는 말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가부장적인 집안 출신이지만,학문과 부인이 자신을 이렇게 변화시켰다는 최 교수는 “사실 호주제 폐지는 여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자를 위해 주장한 것이다.”고 엉뚱한 말을 했다.“여성시대가 되면 편해지는 것은 사실 남성이다.요즘 진정 부계혈통의 혜택을 보고 있는 남성이 있느냐? 말로만 허울좋은 가장이지 실제로 막강한 가부장적인 권한을 휘두르는 남성이 많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별로 이득도 없는 이 제도가 여성에게는 치명적인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지요.” 허남주기자 hhj@˝
  • [儒林속 한자이야기] (7)

    유림에 유언비어(流言蜚語)가 나온다.流(흐를 류)는 두 세줄기의 물(水)과 거꾸로 놓인 아이(子)로 구성되었으며,‘흐르다’라는 뜻은 요사(夭死:일찍 죽음)한 어린 아이를 물에 흘려 버리던 고대(古代) 황하강 유역의 풍습에서 나왔다. 蜚(떡풍뎅이 비)語는 ‘떡풍뎅이와 같이 날아다니는 말’이라는 주장과 ‘蜚는 飛(날 비)자를 빌려 쓴 것’이라는 주장이 있으나,공통점은 ‘날아다니는 말’이라는 뜻이다.따라서 유언비어는 ‘흐르고 날아다니는 근거없는 소문’인데,유언비어(流言飛語)로 잘못 쓸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날아다니는 작은 곤충류(蚊 모기 문,蜂 벌 봉),기어다니는 지렁이와 뱀 종류(蚓 지렁이 인, 살무사 훼),갑각류(蛤 조개 합,蝦 새우 하,蟹 게 해) 등에는 대부분 자가 들어가는데,이 경우 앞의 한자들과 같이 자를 제외한 부분이 그 한자의 음이 된다. 말(소문)이란 무족지언 비우천리(無足之言 飛于千里:발없는 말이 천리를 날아간다),또는 언비천리(言飛千里:말이 천리를 날아간다)라고 하듯이 빠르게 전파된다.그 영향은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나오는 일화처럼 온 사회와 나라를 흔드는 경우도 있다. 송(宋)나라에 정(丁)씨 집안이 있었는데,집에 우물이 없어 하인(下人)들이 먼 곳까지 가서 물을 길어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그래서 집 근처에 우물을 파서 하인들을 편하게 해 주었는데,그 우물을 파는 과정에서 시체 한 구가 나왔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었고,이것을 왕(王)도 듣게 되었다.그래서 왕명으로 진상조사를 하였는데 결국 헛소문으로 밝혀졌다. 오늘날과 같이 전달 매체가 발달한 경우에는 더욱 그러한데 ‘삼인성시호(三人成市虎),즉 시장에 호랑이가 없음이 분명한데도 세사람이 호랑이를 보았다고 하면 결국 사람들은 호랑이가 있다고 믿게 된다.’는 말처럼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기도 한다. 논어(論語)에 도청도설(道聽塗說,道 길 도,聽 들을 청,塗 길 도,說 말씀 설)이라는 말이 나온다.이는 ‘길거리에서 들은 좋은 말(道聽)을 마음에 간직하여 자기 수양의 양식으로 삼지 않고 길거리에서 바로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塗說) 것은 스스로 덕을 버리는 것과 같다.그러니 좋은 말은 마음에 간직하고 자기 것으로 해야 덕을 쌓을 수 있다.’라고 한 공자의 말에서 유래되었는데,‘길거리에 떠돌아 다니는 뜬 소문’을 의미하기도 한다. 소문에 대해서는 마이동풍(馬耳東風)격으로 무감각하게 대할 필요가 있다.마이동풍이란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이백(李白)이 왕십이(王十二)라는 친구가 불우한 심정을 호소한 시에 대해 ‘지금 세상은 투계(鬪鷄:당나라 시대에 왕후 귀족들이 즐겼다는 닭싸움)에 뛰어난 자가 천자(天子)의 사랑을 받고,오랑캐의 침입을 막아 공을 세운 자가 대우를 받는데,그대나 나와 같은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흉내 낼 수도 없으니,북쪽 창가에 기대어 앉아 시(詩)나 짓네.그러나 그 작품이 아무리 걸작이라도 지금 세상에서는 한 잔의 물 값도 되지 않네.그뿐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은 이를 듣고 모두 머리를 흔드니 동풍(東風)이 말의 귀(馬耳)를 스치는 것과 같네.’라고 답한 시에서 유래되었다. 이로써 마이동풍은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흘려 보내는 것 또는 아무리 가르쳐 줘도 알아 듣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아무리 가르쳐 줘도 알아 듣지 못하는 경우를 우리 속담에서는 우이독경(牛耳讀經),즉 ‘소귀에 경 읽기’라고 한다. 박교선 교육부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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