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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녹색공간] 나무를 심은 사람/조연환 산림청장

    우수·경칩을 지나 얼었던 땅이 풀리면 나무를 심는 계절이 시작된다. 나무는 식목일에만 심는 것이 아니다. 구덩이를 팔 수 있다면 일찍 심는 것이 좋다. 어디를 둘러봐도 나무 한 그루 없는 붉은 산이었던 학창 시절, 봄이 되면 해마다 산으로 가서 나무를 심고 소나무 잎을 갉아 먹는 송충이를 일일이 잡아내고는 목청껏 노래부르면서 산을 내려오던 기억이 새롭다.‘산에 산에 산에다 나무를 심자/산에 산에 산에다 옷을 입히자/메아리가 살게 시리 나무를 심자.’ 세계식량농업기구(FAO)에서는 우리나라를 일제 36년간의 산림자원 수탈과 한국전쟁 등으로 완전히 황폐화된 땅에 나무를 심고 가꾸어 국토의 64%를 푸르게 만든 산림녹화 성공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이제는 어디를 둘러보아도 민둥산은 보이지 않는다. 나무가 너무 우거져서 산에 들어가기도 힘들다고 불평할 정도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산림청에서 여론조사기관을 통해 알아본 결과 40∼50대 이상은 나무를 심어 산이 푸르게 됐다고 응답하는 반면 30대 이하 젊은 층은 산에 나무가 저절로 생겨나서 저절로 자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이런저런 과외에 시달리고 점수 한 점 더 얻기에 급급해 산에 나무를 심어 본 일이 없는 젊은이들로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무를 심어 보지 않은 사람들이 어찌 그 많은 산에 그 많은 나무를 심고 가꾸는 수고를 알 수 있겠는가. 나무를 심는 계절이 오니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 생각난다. 이 책의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는 아무것도 살지 않는 황무지에다 매일 100알의 도토리를 심었다.10개 중 2개 정도가 싹이 나고 그나마도 들짐승에게 뜯어 먹히지만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도토리를 심었다.55세인 부피에는 “만일 30년 후에도 하느님이 내 생명을 허락하신다면 계속해서 나무를 심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89세까지 나무를 심다가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그동안 나무들이 자라서 황무지는 울창한 숲이 되고 들에는 꽃이 피고 계곡엔 물이 흘렀다. 떠났던 사람들도 돌아와 그곳은 전쟁을 모르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마을이 됐다. 황무지를 낙원으로 만드는 일은 바로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일로부터 시작됐다. 부피에처럼 한 평생 나무를 심고 가꾼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도 많이 있다. 대표적인 분이 임종국씨다. 그는 1956년부터 전라남도 장성의 축령산 자락에 삼나무와 편백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나무나 심고 있다고 사람들은 비웃었지만 그는 20여년간 150만평의 산에 나무를 심고 가꾸었다. 더 이상 투자할 여력이 없자 자식같이 키우던 나무들을 남에게 넘기고 72세로 타계하기까지 오직 나무만을 바라보며 사셨다. 지금도 전남 장성의 축령산 자락에는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그분의 뜻을 기리는 듯 하늘을 향해 올곧게 잘 자라고 있다. 산림청에서는 임씨를 ‘숲의 명예전당’에 모셔 그 뜻을 기리고 그가 조림한 산을 매입해 국유림으로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인정받는 산림녹화 성공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헌신적으로 나무를 심고 가꾸어 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식목일이 공휴일에서 제외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더 이상 나무를 심을 필요가 없어서 식목일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나무는 심지 않고 놀러 가는 날이 됐기 때문에 식목일을 공휴일에서 제외하자는 것이다. 그동안 나무를 심고 가꾸어 온 사람들로서는 허탈감과 함께 서운함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식목일이 공휴일에서 제외되더라도 기념일로는 남게 되어 이제는 노는 날이 아니라 명실상부하게 식목일은 나무 심는 날로 지켜질 것이다. 한 그루 나무를 심는 것은 생명을 심는 것이며 미래를 심는 것이다. 한 사람이 평생 사용하는 나무의 양은 잣나무 500그루 분량이나 된다. 태어나면 누구나 500그루의 나무는 심어야 비로소 제 몫을 다 하는 것이다. 오늘 지구가 멸망한다 할지라도 한 그루 나무를 심겠다는 선인(先人)의 말이 실감나는 계절이 됐다. 올 봄에는 한 그루 나무를 심자. 이 땅의 엘제아르 부피에가 돼 보자. 그리고 나무를 심고 가꾸는 분들의 수고와 고마움을 생각해 보자. 조연환 산림청장
  • 儒林(307)-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儒林(307)-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계단을 올라 주차장의 공터에 이르자 숨이 가빠졌다. 자판기에서 인스턴트 커피라도 한 잔 뽑아들고 벤치에 앉아 숨을 달래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동전이 없었다. 지갑을 뒤져 무심코 1000원짜리 한 장을 꺼내려다 말고 나는 문득 1000원짜리 겉면에 그려져 있는 낯익은 인물의 초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붉은 빛이 감도는 1000원짜리 화폐 오른쪽에는 갓을 쓰고 수염을 기른 노인의 영정이 새겨져 있었다. 화폐의 단위를 나타내는 1000원 위쪽에 아주 작은 글씨로 다음과 같이 인쇄되어 있었다. ‘퇴계 이황(1501-1570)’ 가장 흔한 지폐 중의 하나인 1000원짜리 돈은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이 함부로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막상 화폐 위에 새겨진 이퇴계의 초상을 새삼스럽게 발견하자 나는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나는 화폐를 뒤집어보았다. 역시 붉은 물감으로 채색된 화폐의 뒤쪽은 정갈한 한옥집의 군락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 밑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명기되어 있었다. ‘도산서원’ 이퇴계가 나이 60세에 비로소 완성하였던 도산서원. 이퇴계는 죽을 때까지 10여년간 이 도산서원에서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학문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무심코 자판기 속에 1000원짜리 지폐를 밀어넣으려다 잠시 멈칫거렸다. 이처럼 퇴계의 초상과 서원의 모습이 새겨진 지폐를 항상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이퇴계를 직시한 적이 있었던가. 뉴턴은 떨어지는 사과 한 알에서 만유인력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나는 누구나의 지갑 속에 들어 있는 가장 흔한 화폐에서 과연 이퇴계의 진면(眞面)을 본 적이 있었던가. 나는 이퇴계의 초상이 새겨진 1000원짜리 지폐를 투입구 속에 밀어넣었다. 자판기는 순식간에 화폐를 집어삼켰다. 자판기의 붉은 불이 반짝이며 켜졌다. 밀크 커피의 버튼을 누르자 찰칵, 하고 컵 하나가 떨어지더니 커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는 종이컵을 빼들고 거스름돈을 반환하는 키를 비틀었다. 그러자 짤그랑대는 경쾌한 소리를 내면서 동전이 굴러떨어졌다. 숫자가 맞나 확인해 본 후 주머니 속에 동전을 흘려 보내고 나는 천천히 빈 의자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였다. ―커피를 마시는 일에 나는 너무 바쁘구나. 나는 맵고, 쓰고, 달콤하고 강렬한 통속적인 커피를 마시면서 혼자서 씁쓸하게 웃었다. ―거스름돈을 확인하느라 나는 정신을 다른 곳에 팔고 있구나. 이퇴계가 누구인가를 직시하기 전에 커피를 마시고, 거스름돈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구나. 이퇴계의 초상보다 돈에 집착하는 나야말로 기계로구나. 동전을 집어넣으면 한 잔의 커피가 흘러나오는 로봇이로구나. 자판기로구나. 로보캅이로구나. 영혼이 없는 깡통이로구나. 밀짚의 심장을 가진 허수아비로구나. ―이퇴계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혼잣말로 소리내어 중얼거렸다.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는 어떤 생애를 보냈으며 그의 사상은 무엇을 말하고 있음인가. 조광조에서 출발하여 공자를 거쳐 마침내 이퇴계에 이른 유림의 계주는 이렇게 해서 또다시 스타트라인에 서게 되었다.
  • 국방부 ‘직도 사격장’ 불법 사용

    국방부 ‘직도 사격장’ 불법 사용

    미 공군사격장 이전 예정지로 거론되고 있는 전북 군산시 옥도면 직도를 국방부가 관계부처의 허가없이 수십년간 사격장으로 사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국방부가 관리하는 소피도는 직도에서 서쪽으로 300m쯤 떨어진 곳에 있어 공군과 해군이 사격장 장소를 오인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17일 산림청 정읍국유림관리사무소에 따르면 국방부가 지난 71년부터 산림청이 관리하는 직도를 공군과 해군 사격장으로 활용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면적이 3만 1736평인 옥도면 말도리 산 145번지 직도는 섬 전체가 임야로 산림청이 관리기관으로 돼 있다. 등기부 등본상에는 1986년 10월13일 행정구역 명칭 변경으로 산림청이 관리청으로 지정됐다. 바로 옆 소피도는 말도리 산 144번지(4469평)로 1982년 4월 국방부가 관리청인 것으로 등재됐다. 하지만 국방부는 직도를 사격장으로 사용하면서 산림청으로부터 무상사용 허가를 받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산림청 정읍국유림관리사무소는 “직도는 지도에 나와있지 않은 섬이지만 국방부에 사용허가를 내준 적이 없다.”고 확인했다. 정읍국유림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직도는 현지 주민들이 사용하는 이름이고, 지도에는 표기도 돼 있지 않아 산림청 관할지역이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확인했다.”면서 “금주중에 실태조사를 벌여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북도의회는 지난 15일 ‘군산 직도 주한 미공군 사격장 추진반대 결의안’을 채택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儒林(305)-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儒林(305)-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끊임없이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선착장은 시끌시끌하였다. 마침 일주를 끝내고 유람선 한 대가 선착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귀를 찢는 듯한 유행가 소리에 나는 도망치듯 그곳을 떠나 계단 위로 올라갔다. 계단 옆 경사를 따라서 산수유가 만개하여 있었다. 노란꽃잎이 세찬 바람에 색종이처럼 팔락거리고 있었다. ―이퇴계. 나는 계단을 오르면서 생각하였다. ―이퇴계야말로 유림의 완성자인 것이다. 공자의 묘에 ‘위대한 완성자, 최고의 성인, 문화를 전파하는 왕’이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면 이퇴계는 공자가 창시한 유교를 철학적·사상적으로 완성한 동양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인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354∼430). 예수의 사후 350여년 뒤에 태어난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과 하느님의 존재, 그리고 인간의 삶을 두르고 있는 죄의 문제를 깊이 통찰함으로써 기독교사상 가장 뛰어난 스승이자 교부였다. 마찬가지로 이퇴계는 공자의 사후 2000년 뒤에 태어났지만 원시유학에 머물러 있던 유교에 이기설에 의한 형이상학의 체계를 더함으로써 성리학(性理學)을 완성하였던 유교사상 가장 뛰어난 스승이자 군자였던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중세의 새로운 기독교 문화를 탄생시킨 선구자로서 ‘주여, 당신께서는 나를 당신에게로 향하도록 만드셨나이다. 내 영혼은 당신 품에서 휴식을 취할 때까지 결코 평안하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유명한 구절로 시작되는 ‘고백록(告白錄)’을 저술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하느님)은 우리 영혼에 내재하는 진리의 근원이므로 신을 찾고자 한다면 굳이 외계로 눈을 돌릴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영혼 속으로 내면의 눈을 떠야 한다. 윤리에서는 모든 인간행위의 원동력이 사랑이며, 인간은 결코 사랑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는 존재’라는 그의 철학적 세계는 특히 신과 영혼에 대해 깊이 파고들었다. 따라서 한때 방탕하고 타락한 생활을 보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을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을 갖기까지의 참회활동을 고백하고 있는데, 작품 전편에는 죄스러운 과거의 삶에 대한 회개보다는 하느님에 대한 감사의 정이 더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퇴계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 비견되는 ‘자성록(自省錄)’을 저술하였다. 이 책은 이름 그대로 자기 성찰과 자기 반성을 엮은 편저이며, 자성록이란 책명에 맞춰 새로 지은 저서는 아닌 것이다. 퇴계는 일생동안 백여 명의 사람과 천여 통의 편지를 나누었다. 그 편지를 나눈 사람들의 대부분은 문인, 제자, 벗, 친족 등인데, 이들과 나눈 편지도 주로 50세 이후 퇴거기(退去期)에 나눈 편지가 대부분인 것이다. ‘자성록’의 서문에서 퇴계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서문(序文) 옛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은 실천이 따르지 못함을 부끄러워해서였다. 지금 친구들과 학문을 강구하느라 서신을 서로 나누면서 한 말은 부득이한 것이지만 이미 그 부끄러움을 스스로 이기지 못하였다.…”
  • [국회·법원 재산공개] 한나라 김양수의원 집 203채?

    국회의원 가운데 지난해 재산증식률 1위는 모두 71억원의 재산을 늘린 한나라당 김양수(43·경남 양산) 의원이 차지했다. 초선인 김 의원은 특히 본인 명의로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203채나 소유한 것으로 신고했다. 부산·경남지역의 유력 건설업체로 알려진 유림건설 사주인 김 의원은 3년 전 본인 명의로 부산시 서면에 ‘노르웨이 아침’이라는 이름의 27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을 공급했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 침체로 준공허가를 받은 지난해 11월까지 아파트·오피스텔 203가구와 상가 등이 분양 미달 사태를 맞았고, 이에 따라 자신의 명의로 등기를 해 재산이 크게 불어나게 됐다는 설명이다. 김 의원측은 “사업부지는 김 의원이 경매로 불하받은 땅으로 법인 소유가 아닌 개인 소유였기 때문에 개인사업자 명의로 분양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해당 건물의 신고가액도 국세청 기준시가가 나오지 않아 기준시가보다 높은 분양가로 신고했다.”고 말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노블레스 오블리주 모범”

    “경북 안동지역은 독립운동의 출발지이며, 특히 안동사회의 독립운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실천에 옮긴 전형적인 모범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이만열 위원장은 28일 안동시민회관에서 열린 제86주년 3·1절 및 안동독립운동기념관 건립추진기념 학술세미나에서 안동지역의 독립운동을 이같이 평가했다. 이 위원장은 기조 발제를 통해 “독립운동은 의병운동을 포함해 1894년부터 1945년까지 거의 반세기 동안 전개됐으며, 그 첫머리를 장식한 것이 1894년 갑오의병”이라며 “갑오의병이 일어난 곳이 바로 안동이므로 이 지역이 한국독립운동의 출발지이자 발상지”라고 피력했다. 그는 “안동은 전국 시·군(평균 30명) 중 가장 많은 260여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하고, 순국 자결인사도 60여명 가운데 10명이 안동인”이라며 “안동인은 해방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전개해 한국독립운동사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의병항쟁 이후 많은 유림들이 은둔생활을 했지만 안동 유림들은 자기반성과 자각을 통해 새롭게 거듭나는 길을 선택했다.”며 “이러한 ‘혁신 유림’은 국내외에서 진보적이고 통일지향적인 활동을 전개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주제발표에 나선 서강대 최기영 교수는 “안동의 독립운동은 강한 선비정신에 뿌리를 둔 지역의 문화적 배경과 무관치 않다.”고 강조했고, 국가보훈처 김용달 연구관은 “안동독립운동은 주체와 양상, 이념 등 모든 면에서 한국독립운동의 축소판이자 변화·발전 양상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고구려연구재단 장세윤 연구원은 “안동출신 인사들의 해외 집단망명과 독립운동 기지 개척은 한국독립운동사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다.”면서 “안동지역 독립운동사는 한국근대사뿐만 아니라 세계 피압박 약소민족 독립운동의 모범이 될 만하다.”고 평가했다. 한편 안동지역에서는 학술세미나를 포함해 독립운동을 소재로 한 기념음악회, 독립운동기념관 건립추진상황 보고회 등 다채로운 3·1절 기념행사가 열렸다. 안동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고시플러스] 산림정비 근로자 2000명 모집

    ●산림청(www.foa.go.kr) ‘숲다운 숲 정비사업’에 투입될 근로자 2000명을 이달부터 모집한다. 만 18세 이상 60세 이하의 미취업자 또는 일용근로자는 누구나 지원할 수 있지만, 산림관련 자격증이나 교육을 이수한 경력자를 우선 채용한다. 특히 전체 선발인원의 20%를 18세 이상 29세 이하 청년 미취업자로 선발해 행정요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선발자들은 고속도로변 산림 등 공공 성격이 강한 산림의 정비 등을 맡게 되며, 행정요원은 현장의 작업장 관리를 담당하게 된다. 임금은 일일 3만∼3만 5000원이며, 교통비 등 부대경비 5000원이 추가 지급된다. 주 5일 근무로 유급월차 및 4대 보험도 가입된다. 본인 희망시 숲가꾸기 전문가 기술·기능교육도 받을 수 있다. 채용시기는 25개 산림청 국유림관리소와 117개 시·군 기관별로 다르기 때문에 별도 확인이 필요하다.
  • [유림 속 한자이야기] (59)

    犯房(범방) 儒林 279에는 ‘犯房(범할 범/방 방)’이 나오는데, 이 말은 ‘남녀가 성적(性的)으로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다.犯자는 ‘침범하다’는 뜻으로 說文解字(설문해자)에서는 ‘ (병부 절)’을 音符(음부:발음요소)로 설명하고 있으나 오늘날 音價(음가)만 놓고 본다면 納得(납득)하기 어렵다. 재미있는 것은 (절),尸(시),匕(화),人(인),大(대)가 모두 사람을 象形(상형)한 글자라는 점이다. 은 ‘꿇어앉은 사람’,尸는 ‘쪼그리고 앉은 사람’,匕(이때는 ‘화’로 발음하며, 숟가락을 나타내는 匕와는 별개의 글자임)는 ‘거꾸로 선 사람’,人은 ‘서있는 사람의 옆모습’,大는 ‘팔을 벌리고 선 사람’을 본뜬 것이다. 用例(용례)에는 ‘犯法(범법:법에 어긋나는 짓을 함)’‘主犯(주범:형법에서, 자기의 의사에 따라 범죄를 실제로 저지른 사람)’ 등이 있다. ‘房’자는 집채(正室)에 딸린 ‘작은 방’을 뜻한다. 참고로 ‘戶’는 한쪽만 열리는 문짝의 상형이며,‘門’은 통나무 세 개와 두 짝의 문으로 구성된 大門(대문)의 상형이다.用例로는 ‘暖房(난방:건물의 안이나 방안을 따뜻하게 함)’‘獨守空房(독수공방:혼자서 지내는 것)’ 등이 있다. 禮記(예기)에는 ‘어버이의 허물을 덮어 숨기는 일은 있을지언정 面前(면전)에서 허물을 지적하여 直諫(직간)하는 일(犯顔)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부모와 자식 사이는 愛親(애친)이 소중하므로 아무리 어버이의 허물이 크다 하나 面前에서 犯顔하는 것은 禮(예)가 아니다. 論語(논어)에는 孔子(공자)와 葉公(섭공)이 正直(정직)에 대하여 토론한 이야기가 나온다.‘우리 고을에 대쪽같이 곧은 사람이 있어 아비가 양을 훔치자 자식이 그 사실을 관청에 고발하였다.’는 섭공의 말에 대하여 공자는 ‘우리 마을의 정직한 사람은 다르오. 아비는 자식의 허물을 덮어 주고, 자식은 아비의 잘못을 숨기지만 정직은 그 속에 있는 법’이라고 하였다. 아비의 죄를 暴露(폭로)하는 行爲(행위)는 정직한 일이기는 하지만 稱讚(칭찬)할 일은 못 되는 일이다. 아비는 자식의 죄를 숨겨 주고 자식은 아비의 죄를 숨기려는 것이 인간의 情理(정리)이다. 인간의 정이야말로 자기의 진정을 속이지 않는 마음이다. 중국 南宋(남송)의 大思想家(대사상가) 朱熹(주희)는 사람들이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흔히 犯하는 後悔(후회)를 열 가지로 整理(정리)하여 提示(제시)하였다.“부모에게 不孝(불효)하면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하고(不孝父母死後悔), 종족 간에 화목하지 않으면 멀어지고 나서 후회하며(不親宗族疎後悔), 젊어서 열심히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후회하고(少不勤學老後悔), 편안할 때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르치고 나서 후회하며(安不思難敗後悔), 봄에 씨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후회하고(春不耕種秋後悔), 담장을 고치지 않으면 도적을 맞고 후회하며(不治垣墻盜後悔),女色(여색)을 삼가지 않으면 병든 뒤에 후회하고(色不謹愼病後悔),醉中(취중)에 망발을 하면 깨고 나서 후회하며(醉中妄言醒後悔), 손님을 잘 접대치 않으면 보내고 나서 후회하고(不接賓客去後悔), 잘살 때 儉約(검약)하지 않으면 가난해진 뒤 후회한다(富不節用貧後悔).”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코드로 읽는책] 지금, 여기의 유학/김성기·최영진등 지음

    사회·경제적 위기론이 불거질 때마다 유학은 뭇매를 맞기 일쑤다.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혈연, 지연에 의한 유착의 뿌리라느니, 성차별적 폐단의 주범으로서 타파되어야 한다느니, 자본주의적 경쟁원리에 맞지 않는 구시대적 유물이라느니 등등. 조선 왕조 500년간 사회질서 유지의 근간이자 구성원들의 정신과 일상을 지배했던 유학의 위상은 이제 ‘호주제 철폐 반대’ 피켓을 든 갓 쓴 유림만큼이나 초라하다. 유학은 진정 폐기처분돼야 할까? 막스 베버의 주장처럼 유교적 관습은 동양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기만 한 것일까?‘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며 이미 반쯤 죽은 유학을 확인사살할 정도로 유학은 반사회적, 반진보적인 것인가? ‘지금, 여기의 유학’(김성기·최영진 등 지음, 성균관대출판부 펴냄)은 이처럼 팽배해 있는 유학에 대한 일방적 불신을 넘어 보다 객관적 시선으로 유교의 긍정과 부정의 이중성을 모색한 책이다. 경제위기의 주범이면서 경제발전의 동인이고, 비민주적 봉건윤리인 동시에 민권·정의 등 현대 민주주의와 양립 가능한 정치학이며, 여성을 억압하는 질곡인 동시에 양성 동반자적 윤리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해 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폐기처분을 넘어 유학의 태생적 본질을 이해하고,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한다면, 오히려 한계를 노출하고 있는 서구자본주의를 보완할 이론적 단초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이는 이 책을 쓴,11명의 동양사상 연구자들이 이 시대에 ‘아직도 유학을 탐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로 비판받는 유교에서 이들은 공자·맹자의 민본사상을 끄집어내고, 민본사상과 도덕성이 없는 군주를 추방하거나 베어도 무방하다는 맹자를 통해 시민의식과 민주주의의 본질을 본다. 나아가 무한질주중인 자본주의가 천민자본주의로 내려앉지 않도록 경계하는 도덕성을 추출해낸다. 이들은 또 현대신학에서 초월적 존재가 퇴색되고 있는 시대를 맞아 유교에서 대안적 종교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유일신으로서의 초월적 존재 대신 자아수양을 통한 초월적 삶을 가꾸며 종교적 성찰을 달성한다는 것이다. 이는 과학과 기독교란 두 기둥을 버팀목 삼아 발전해온 서구문명이 20세기 이후 과학의 일방독주속에 비틀거리는 현실 진단에서 온 것이다. 이들은 또 여성 비하 사상으로만 일축되어온 유교사상 내에서 한가닥 페미니즘적 요소를 보고자 하며, 동아시아 예술 속에 담긴 유가사상, 서양의 근대지식인들이 이해한 유교의 모습도 꼼꼼히 뜯어본다. 무엇보다 주목하는 것은 지배·흡수논리로 비판받는 신자유주의의 병리현상 치유를 위해 꼭 필요한 공존의 논리를 유학이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에 기초한 공자의 인(仁)사상, 개체적 존재론에 바탕을 두어 항상 갈등의 여지를 품고 있는 서양철학과 달리 인간 관계론에 중심을 둔 동양적 패러다임이 그것이다. 유학은 기술발달이나 정보화의 속도를 증폭시킬 수는 없지만, 기술개발과 정보와의 물결에서 표류할 수 있는 개인과 그러한 개인들이 만들어낸 사회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지침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내다보고 있다.1만 4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환경·생명] ‘백두대간 보호’ 출발부터 흔들흔들

    [환경·생명] ‘백두대간 보호’ 출발부터 흔들흔들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중심축인 백두대간마저 훼손되면 안 된다(산림청).”“그렇다고 지역주민의 재산권 행사에 제약이 가해지면 되나요(주민).” 올 1월1일부터 발효된 백두대간보호법에 따른 보호구역 지정 범위를 둘러싸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지역주민간 신경전이 한창이다. 더이상의 훼손을 막고, 법 테두리안에서 개발을 유도하기 위해 법을 만들었지만 관점이 서로 다른 탓에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보호지역 면적이 당초 계획보다 크게 줄어드는 등 법 제정 취지가 무색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몸살 앓는 백두대간 백두대간은 대륙으로부터 야생 동식물이 들어오는 이동통로이자 우리나라 산림자원의 비축기지 구실을 한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식물(4071종)의 33%에 이르는 1326종이 분포하고 이중 108종은 한국 고유 특산식물이다. 수달, 산양, 삵, 담비 등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종들도 대부분 이곳에 서식한다. 해발 1000m 이상 높은 산들이 많은 데다 동쪽은 해양성 기후, 서쪽은 내륙성 기후를 이루는 독특한 지대여서 ▲비무장지대 ▲도서·연안지역과 함께 한반도의 3대 생태 축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백두대간의 대표적인 훼손 사례는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정선군 임계면에 걸쳐 있는 자병산이다. 백두대간 마루금을 지나가는 자병산은 1978년 석회석 광산을 개발하면서 229㏊에 달하는 산림이 송두리째 사라진 상태다. 환경단체에 따르면 현재 계획된 65㏊ 규모의 추가 개발사업이 마무리되면 자병산은 원래 지형보다 200m 내려앉은 모습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녹색연합 이유진 간사는 “자병산은 개발로 인한 국토 파괴의 대표적 현장”이라면서 “정상은 사라져 버렸고 지난 20년간 생태복원은 커녕 산림녹화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병산의 석회석 광산은 한 사례일 뿐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현재 백두대간 산줄기를 따라 12개의 광산이 개발 중인가 하면 도로(72개)와 철도(5개), 댐(6개) 그리고 각종 위락단지와 목장, 군사시설 등이 늘어서 있다. 백두대간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른 야생동·식물의 서식처 단절과 파괴 등 생태계 훼손의 심각성도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광복 이후 압축적 경제성장의 개발논리와 이로 인한 난개발 앞에 국토의 등줄기인 백두대간도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이다. ●보호지역 26만㏊ 잠정 결정 이같은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바로 백두대간보호법인데, 정부 당국은 올 상반기까지 산림청 고시로 개발행위를 제한하는 보호지역 범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미 보호지역 내에 생활권을 형성하거나 재산권을 가진 주민 및 각종 개발을 계획하고 있는 지자체 등의 반발로 예정대로 실행될지는 불투명하다. 현재 산림청은 32개 시·군 자치단체가 제출한 의견 등을 반영해 보호지역 면적을 26만 5838㏊로 잠정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림청은 “마지노선인 25만㏊는 유지한 것”이라고 자위하고 있지만, 지난해 5월 작성한 기초도면(53만 5918㏊)의 49.6%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개발행위가 금지되는 핵심구역은 당초 24만 2477㏊에서 17만 1161㏊로, 제한적 개발이 이뤄지는 완충구역은 29만 3441㏊에서 9만 4677㏊로 크게 축소됐다. 특히 강릉시의 경우 33개 쟁점구역중 22개 구역이 핵심·완충구역에서 제외됐고 재산권 침해 논란이 심했던 왕산면 일대는 완충구역에서 대거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박삼례(인제군의회 의장) 강원도 시·군의회협의회장은 “백두대간 보호의 필요성은 공감하나 그로 인해 생활이 침해되고 생활터전을 잃어버리는 결과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면서 “주민 동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만큼 (현재는 추이를)관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정안 내용대로 확정될지조차도 불투명한 대목이기도 하다. 산림청은 재산권 보호 등을 위해 보호지역내 30%에 이르는 8만여㏊의 사유림에 대해서는 산주 요구시 매수할 방침이지만, 주민·지자체 반발에 대한 미숙한 대응과 협상력 부재가 결과적으로 법 제정 취지를 약화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환경단체 관계자는 “보호지역 축소는 주민들의 이해부족에도 기인하지만 주민 참여를 유도하는 당국의 노력 부족의 결과”라고 말했다. 유기준 상지대 교수는 “백두대간 보호의 기본은 자연환경적 가치에 있으나 삶의 터전으로서 형성된 사회·인문적 가치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면서 “환경자원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국보(國寶)관리라는 공감대 형성이 선행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백두대간이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이 땅의 ‘등뼈’를 이루는 산줄기를 일컫는다. 총길이 1 400㎞(남한은 강원도 고성 향로봉∼지리산 천왕봉까지 684㎞)로 동쪽과 서쪽 물길이 서로 섞이지 않는 산줄기(山徑)의 중심축이다. 이익의 성호사설(1760년)에서 처음 사용됐으나 그 자취는 10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 풍수지리의 비조로 불리는 신라말 도선(827∼898) 스님의 비결서인 옥룡기(玉龍記)에 “우리나라의 지맥은 백두산에서 일어나 지리산에서 그치는데…”라고 기록, 백두대간의 존재가 처음으로 언급돼 있다. 이후 여암 신경준의 산경표(山經表)에서 1대간(大幹),1정간(正幹),13정맥(正脈)으로 체계화됐다.
  • 용인에 50만평 자연휴양림

    급속한 택지개발로 공원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용인시에 50여만평 규모의 자연휴양림이 조성된다. 용인시는 지난 2003년 수립된 모현면 초부리 산 21-1 일대 49만 1000평에 230여억원을 들여 추진하기로 한 자연휴양림 조성계획이 공유림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어왔으나, 최근 산림청과 합의해 사업이 본격 추진되고 있다고 11일 밝혔다. 공유림은 자치단체 소유의 산림으로, 규정상 적어도 15만평 이상이 돼야 자연휴양림 조성이 가능하다. 시는 지난해 7월 산림청에 자연휴양림 지정을 신청, 오는 2008년까지 자연휴양림 조성사업을 마무리짓기로 했다. 하지만 지정지역에 국유림 35만 8000평이 포함되는 바람에 공유림이 11만 2000평에 불과해 산림청이 휴양림 지정에 난색을 표했다. 이에 따라 경기도와 용인시가 최근 국유림 교환을 조건으로 휴양림 지정을 요청하자 산림청이 긍정적으로 사업내용을 재검토, 연내 휴양림 지정방침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시는 앞으로 환경청과 협의해 자연휴양림으로 지정, 사유지 매입 등 절차를 거쳐 늦어도 내년 초에는 휴양림 조성공사에 들어간다. 이르면 2007년까지 조성될 자연휴양림에는 숲속의 집(펜션), 야영장, 유실수 단지, 등산로, 산악레포츠장 등 각종 시설들이 들어설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자연휴양림이 완공되면 인근 에버랜드와 연계한 관광벨트가 형성돼, 지역주민들에게 새로운 소득원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용인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민법개정안 처리 탄력받을 듯

    헌법재판소가 3일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호주제를 둘러싼 논쟁이 사실상 막을 내렸다. 위헌심판이 제청된 지 3년 10개월 만이다. 이번 결정으로 국회에 계류중인 호주제 폐지 법안의 처리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남녀평등 > 전통 헌재는 경로효친·가족화합 등 전통사상이 호주제의 명백한 남녀차별성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호주제의 뿌리가 성 역할에 관한 고정관념, 남성우월주의, 부계혈통주의라는 판단이다. 대표적 사례로 호주승계 순위, 혼인 때의 남녀 신분관계, 자녀의 신분관계를 꼽았다.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어머니와 누나를 제치고 아들이, 또한 할머니, 어머니를 제치고 유아인 손자가 호주의 지위를 차지하는 것은 남성우월적 서열제도라고 지적했다. 또 결혼하면 남성은 자신의 집안(家)을 지키거나 새로운 집안을 형성하지만, 여성은 남편의 집안으로 편입, 평생 가족원으로 살아간다. 이는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돼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는 헌법 36조 1항의 위반이라는 것이다. ●특히 재혼가정에 고통 자녀가 아버지의 호적에 반드시 들어가도록 규정한 조항도 남녀차별이기는 마찬가지다.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가 자녀를 키우더라도 여전히 자녀는 아버지 집안에 남는다. 또 어머니가 재혼하더라도 새아버지와는 영원히 한 가족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차별 때문에 재혼가정은 비정상 가족으로 취급돼 고통을 겪는다고 헌재는 지적했다. 헌재는 호주제는 헌법이념인 인간의 존엄도 훼손한다고 밝혔다. 호주제를 일방적으로 강요, 개인을 가족내 인격체로 존중하기보다는 집안의 유지와 계승을 위한 도구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소수 의견은 합헌 소수의견은 합헌 쪽에 무게를 뒀다. 권성 재판관은 호주제 관련 모든 조항이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가족법의 전통적 성격을 고려하지 않고 도식적 평등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여성이나 자녀가 남성의 집안(家)에 들어가는 것도 실질적 차별이 아니라면서 평등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김영일 재판관은 자녀가 아버지 집안에 속하는 것은 헌법 위반은 아니더라도 예외 설정이 너무 좁게 규정돼 현실에 맞지 않다며 781조 1항만 위헌이고 나머지 호주제는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김효종 재판관은 전통문화인 호주제 개념 자체를 위헌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남녀차별적 요소를 없앤다면 호주제를 이어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헌재가 1997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동성동본 금혼조항이 유림측 반대로 여전히 개정되지 않은 상황이라 호주제 폐지를 담은 민법 개정안이 언제 국회에서 통과될지 주목된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호주제 위헌여부 3일 결정

    헌법재판소는 3일 오후 2시 대심판정에서 호주제를 규정한 민법 781조 1항과 778조의 위헌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린다. 여성계와 유림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호주제 폐지를 포함한 법무부의 민법 개정안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어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헌재는 크게 합헌, 위헌, 한정위헌,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합헌 결정은 암묵적으로 ‘호주제 폐지가 위헌’이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반면 호주제가 헌법상 남녀평등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는 결정이 내려지면 민법 개정안 처리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儒林(272)-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儒林(272)-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내가 단양을 가겠다고 생각했을 때 문득 중앙선 열차를 떠올린 것은 그런 추억 때문이었다. 물론 전과는 달리 단양으로 가는 고속도로가 새로 건설되어 있다. 예전에는 한반도의 척추뼈를 종단하는 노선이었으므로 가도가도 산맥이었고 그리고 가파른 계곡이었다. 대학시절 단양의 명물인 수석을 캐러 스승과 함께 여행갈 때에도 중앙선을 이용하곤 했었는데, 그때도 출발지는 차라리 죽는 게 나았던 청량리였고 여전히 열차는 숨가쁘게 준령을 넘는 역마(驛馬)였다. 그런데 최근에 춘천과 대구를 잇는 고속도로가 신설되어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원주인터체인지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면 단양으로 직코스로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쉬어간다고 해도 2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내가 굳이 열차를 타고 4시간이나 걸려 단양으로 가기를 고집했던 것은 이러한 옛 추억 때문이었을까. 예전의 완행열차와는 달리 열차는 정각 6시50분에 출발하였다. 출발할 때부터 발 디딜 틈이 없이 사람으로 가득 차 지옥열차라고 불렸던 열차는 그러나 현대식 의자로 단장되어 있었고 시설도 깨끗하였지만 항상 경주용 말처럼 빠른 속도, 빠른 생각, 빠른 경쟁에만 길들여져 있는 내겐 중앙선 열차는 예나 지금이나 역마였으며 그리고 짤랑 노새였다. 다행히 열차는 듬성듬성 좌석들이 비어 있을 만큼 한산하였다. 나는 햇볕이 잘 드는 차창가에 앉아서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였다. 커피를 마시면서 내가 승용차로는 2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는 단양까지 그 두 배에 가까운 4시간이나 걸리는 열차를 탄 것은 단순히 느림의 미학을 통해 오랜만에 망중한(忙中閑)의 여정을 즐겨보자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지난 1년간 나는 조광조라는 인물을 통해 공자의 생애를 추적해 왔었다. 그것은 마치 조광조라는 두레박을 통해 유림의 깊은 우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느낌이었다. 조광조(趙光祖:1482∼1519). 지금으로부터 5백여 년 전인 조선 중기에 활동한 정치가. 사림파의 영수로서 유교를 정치와 교화의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왕도(王道) 정치를 폈던 개혁정치가. 이 왕도정치에 따라 왕이나 관직에 있는 사람이 몸소 유교의 이념을 실천궁행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조광조의 지치주의(至治主義)였던 것이다. 그러나 조광조의 급격한 개혁정신은 보수파인 훈구세력의 반발을 받아 하루아침에 전라도 능주에 유배되고 그곳에서 사사됨으로써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이었다. 1년여 전 초겨울,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조광조가 사약을 받고 죽었던 적중거가를 찾아간 것으로 시작된 조광조의 추적을 통해 그의 개혁정신이 바로 공자의 유가사상에서 비롯되었음을 나는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광조는 임금 중종이 ‘내 항상 마음을 경계하고 싶으니 홍문관에서는 이에 합당한 글을 지어 올리도록 하라.’는 어명을 내리자 스스로 ‘마음을 경계하는 글’인 ‘계심잠(戒心箴)’을 지어 올렸는데, 그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옛 성인이 가르쳐주고 또 그 가르쳐준 것을 그대로 행하는 것이 성인의 심법(心法)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조광조가 말하였던 옛 성인은 바로 공자를 가리키는 것. 조광조는 ‘고려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조선시대의 낡은 풍습과 사상을 성인 공자의 유교식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개혁정치’를 펼치다가 실패했던 위대한 선각자였던 것이다.
  • 儒林(270)-제2부 周遊列國 제6장 孔子穿珠

    儒林(270)-제2부 周遊列國 제6장 孔子穿珠

    제2부 周遊列國 제6장 孔子穿珠 장님인 자하의 눈에도 잘 보이는 황금의 실. 그것이 어째서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일까. 자하의 말은 여러 가지 뜻을 함축하고 있음이었다.13년 동안 펼친 공자의 주유열국은 아홉 굽이의 구멍에 맨손으로 실을 꿰려는 어리석은 행위와 일치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펼칠 수 있는 군주를 찾아서 때로는 ‘상인을 기다리는 옥’처럼,‘나무를 선택하는 새’처럼 끊임없이 순회했으나 공자는 마침내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현실 정치에는 접목시킬 수 없는 불가능한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따라서 공자가 자하에게 말하였던 ‘새로운 실로 아홉 굽이의 구멍을 꿰려 한다.’라는 말의 뜻은 고향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교육과 경전 편찬에 여생을 바치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기에는 이러한 공자의 결심을 나타내 보이는 장면이 다음과 같이 나오고 있다. “…고향에서 또한 공자는 벼슬 구하는 일을 포기했다. 공자의 시대에는 이미 주실(周室)은 쇠미해져 있었고, 예악은 황폐해졌으며, 시서(詩書)는 흩어져 없어졌다. 그래서 공자는 이를 안타깝게 여겨 하, 은, 주 3대의 예를 주석하고, 고서 전기 등을 정리했으며, 위로는 요임금의 당, 순임금의 우시대로부터 진의 목공에 이르기까지 순서에 따라 정리 편찬하였다.” 따라서 공자는 인류의 교과서가 될 경서의 편저에 온 힘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의 교과서는 육경이라고 불리는 시, 서, 역(易), 예, 악, 춘추의 6가지가 중심을 이룬다. 이 육경이 유가의 경전으로 후세 중국뿐 아니라 동양문화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공자가 남긴 육경과 중국 최초의 시가집인 시경, 서경, 예기, 악경, 역경, 춘추, 논어, 효경 등 9가지의 경전을 정리 편찬하였던 것은 마치 아홉 굽이의 구멍에 새로운 실을 꿰어 넣으려는 공자의 의지를 암시하고 있음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일반 사람들이 공자가 갖고 다니던 진귀한 구슬에 꿰어져 있는 황금의 실을 보지 못하였으나 맹인이었던 자하가 ‘장님인 제 눈에도 잘 보이는데요.’하고 감탄하였던 것은 스승의 학문적 업적을 찬탄하는 존경과 칭송의 말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비록 육안은 멀어 장님이 되었으나 오히려 심안이 밝아진 자하의 눈에는 스승 공자가 꿴 황금의 실이 또렷이 보였을 것이다. 공자의 묘에 새겨진 비문처럼 ‘위대한 학문의 완성자’로서의 공자,‘최고 성인’으로서의 공자,‘문화를 전파하는 왕’으로서의 공자가 진선미의 삼색으로 엮은 찬란한 실이 분명히 보였을 것이다. 물론 2500년이 지나간 지금 공자의 진귀한 구슬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구슬은 전해지지 않더라도 공자가 남긴 진신사리(眞身舍利)의 구슬들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영원한 삶의 귀감과 생활의 지혜로서 전해 오고 있는 것이다. 공자가 남긴 진신사리, 그것이 바로 2500년 동안 동양인들의 마음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는 유가사상이며 그런 의미에서 동양의 정신문화를 일컬어 유림(儒林), 즉 유교의 숲이라고 부르는 것은 공자가 심은 묘목 하나가 울창한 정신의 숲을 이뤘기 때문일 것이다. 공자천주. 문자 그대로 ‘공자가 구슬을 꿰다.’라는 고사성어는 공자가 과연 우리들 가슴의 빈 구멍을 무엇으로 메우고 무엇으로 꿰려고 하였는지를 그의 생애와 학문을 통해 여실히 보여 주고 있음인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공자를 두고 ‘만세사표(萬世師表)’라고 일컫는 것은 바로 이런 위대함 때문일 것이다.
  • [행정플러스] 산림청, 첫 여성서기관 나와

    산림청은 20일 이미라(35) 국제협력계장을 서기관으로 승진 임명, 개청 이후 첫 여성 서기관을 배출했다. 이 서기관은 서울대 가정관리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41회)를 거쳐 98년 4월 산림청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법무업무를 거쳐 2001년부터는 국제협력담당관실에서 산림분야 국제협력 및 대외통상업무와 교토의정서 준비작업 등을 맡아왔다. 여성 공무원에게 ‘승진의 벽’이 높기로 유명한 산림청은 최근 첫 여성 국유림관리소장(5급)을 발령한 데 이어 이 서기관을 발탁, 이러한 오명(?)을 벗게 됐다.
  • “산간마을을 주말여행지로”

    “산간마을을 주말여행지로”

    경기도내 산간 오지에 있는 172개 낙후 마을이 휴양·문화시설을 갖춘 주말 여행지로 개발된다. 도는 17일 주 5일제 시행에 맞춰 수도권에 위치한 산간 마을을 웰빙시대에 부응하는 산촌으로 조성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 사업에는 마을당 14억 6400만원이 투자되며, 개발 기간은 10여년이다. 도는 올해 남양주시 수동면 내방리 마을, 가평군 설악면 엄소리 마을 등 2개마을을 지원한다.2006년까지 28억원을 들여 생활환경개선, 생산기반조성, 산림문화회관 건설, 진입로 포장, 상·하수도 설치 등 사업을 벌인다. 또 양평군 중원리 마을 등 5개 마을에 대해서는 마을당 6400여만원을 들여 올해 설계에 들어간다. 이들 마을은 지난해 ㏊당 인구밀도가 1.44명 이하이거나 경작률이 26% 이하인 산간 오지마을이다. 도는 이밖에 올해 양평군 용문산에 120㏊ 규모의 휴양림을, 내년에는 오산 도립수목원 33㏊와 가평군 칼봉산에 263㏊의 자연휴양림을 개장한다. 또 올해 여주 황학산 수목원 27.3㏊에 대해 설계를 완료, 내년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특히 오는 2007년까지 전국 최대규모의 잣나무 임지를 보유하고 있는 가평 행현리 도유림에 1679㏊ 규모의 체험시설, 숲 관찰코스, 야외체험시설, 야생초 화원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도 관계자는 “이번 사업이 완료되면 도시민들이 5일은 도시에서, 주말 2일은 농촌에서 지내는 ‘5도(都)2촌(村)의 라이프 스타일’이 정착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운영중인 산촌마을과 자연휴양림·수목원은 별표와 같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54)

    儒林(유림) 206회에는 ‘割鷄牛刀(벨 할/닭 계/소 우/칼 도)’가 나온다. 이 말의 出典(출전)은 論語(논어) 陽貨(양화)편의 ‘割鷄焉用牛刀(할계언용우도)’이다. 이 말은 ‘작은 일에 어울리지 않게 큰 대책을 쓰는 어리석음’을 뜻한다. 後漢(후한)의 사상가 王充(왕충)의 저서인 論衡(논형)에는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을 수는 있으나, 닭 잡는 칼로 소를 잡기는 어렵다.’(牛刀可以割鷄,鷄刀難以屠牛:우도가이할계, 계도난이도우)라는 유사한 文句(문구)가 보인다. ‘割’은 ‘가르다’‘자르다’는 뜻으로 用例(용례)에는 ‘割股啖腹(벨 할/넓적다리 고/먹을 담/배 복:눈앞의 이익만을 꾀하다가 신세를 망침)’‘割愛(할애:소중한 시간, 돈, 공간 따위를 아깝게 여기지 아니하고 선뜻 내어 줌)’‘割引(할인:일정한 값에서 얼마를 뺌)’ 등이 있다. ‘鷄’는 원래 ‘닭’을 나타내기 위한 글자로 ‘鷄口牛後(계구우후:큰 단체의 꼴찌보다는 작은 단체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 오히려 나음)’‘鷄鳴狗盜(계명구도:비굴하게 남을 속이는 하찮은 재주)’‘群鷄一鶴(군계일학:많은 사람 가운데서 뛰어난 인물)’ 등에 쓰인다. ‘牛’는 ‘소’를 뜻하기 위해 뿔을 포함한 소의 머리 모양만을 본뜬 글자이다. 소의 뿔은 모두 위쪽을 향한다는 데에서 着眼(착안)한 것이 異彩(이채)롭다. 用例로는 ‘牛耳讀經(우이독경:아무리 가르치고 일러 주어도 알아듣지 못함을 이르는 말)’‘蝸牛(와우:달팽이)’‘馬行處牛亦去(마행처우역거:남이 하면 나도 할 수 있다는 말)’‘九牛一毛(구우일모:매우 많은 것 가운데 극히 적은 수를 이름)’ 등을 들 수 있다. ‘刀’는 한 쪽만 날이 선 ‘칼’의 상형이다. 칼의 각종 용도에 따른 의미를 나타내는 글자들의 의미요소로 널리 쓰였다.用例에는 ‘刀山劍水(도산검수:몹시 험준한 지경의 비유)’‘刀折矢盡(도절시진:기진맥진하여 더 이상 싸울 기력이 없음)’‘刀尺(도척:사람의 進退(진퇴),任免(임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등이 있다. ‘割鷄牛刀’는 공자가 제자인 子游(자유)가 책임자로 있는 武城(무성) 지방을 방문하였을 때 음악이 演奏(연주)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남긴 말로 전한다. 당시 자유는 而立(이립)에도 이르지 못한 젊은 청년이었다. 출세가도를 걷고 있는 젊은 제자가 대견하면서도 젊은 血氣(혈기)가 걱정스럽기도 하였다. 그러나 공자의 우려와 달리 武城 지방에서는 자신의 평소 가르침인 禮樂(예악)의 정치가 펼쳐지고 있었다. 공자는 이런 제자를 향해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것이 아닌가?’라는 조금은 의외의 말을 던진다. 하지만 자유는 스승인 공자의 이전 가르침을 들어 禮樂의 當爲性(당위성)을 披瀝(피력)한다. 전통적인 해석에 의하면 論語의 이 대목은 단순한 弄談(농담)이 아니다. 한 나라를 다스릴 만한 인재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작은 고을에서 묵묵히 자신의 責務(책무)를 성실히 遂行(수행)하는 제자를 향한 讚辭(찬사)인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이와 달리 작은 일을 처리하는 데 큰 인물의 손을 빌릴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쓰인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儒林(265)-제2부 周遊列國 제6장 孔子穿珠

    儒林(265)-제2부 周遊列國 제6장 孔子穿珠

    제2부 周遊列國 제6장 孔子穿珠 자장편에 나오는 자하의 어록은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자하가 말했다. ‘소인은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꾸며댄다.’” “자하가 말했다. ‘군자는 신뢰를 얻은 뒤에 백성을 부릴 수가 있다. 신뢰가 없으면 자기들을 학대한다고 여긴다. 또한 신뢰를 얻은 뒤에 임금에게 간해야 한다. 신뢰가 없으면 자기를 비방한다고 여긴다.(君子 信而後 勞其民 未信則以爲己也 信而後 諫 未信則以謗己也)’ ” “자하가 말했다. ‘큰 덕은 한계를 넘어서는 안 되지만 작은 덕은 약간의 한계를 넘겨도 괜찮다.” “자하가 말했다. ‘어진 이를 어진 이로 대하되 낯빛을 좋게 하며, 부모를 섬기되 능히 그 힘을 다하며, 임금을 섬기되 능히 그 몸을 다하며, 친구를 사귀되 말함에 신의가 있으면 누가 아직 학문하지 않았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필히 그가 학문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일찍이 공자로부터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라는 말을 들음으로써 ‘독실하게 이를 삼갔으나 규모가 협소하였으므로 미치지 못하는 단점’을 가졌다는 평가를 가졌던 자하였지만 자하는 이처럼 결국 스승 공자의 사상을 후세에까지 전파시킨 1등 공신이었던 것이다. 사기의 ‘중니제자열전’에 의하면 자하는 말년에 아들을 잃고 지나치게 애통해한 나머지 너무 울어 눈이 멀었다고 한다. 눈이 먼 자하. 비록 눈이 멀어 육안(肉眼)은 장님이 되었으나 그로 인해 심안(心眼)은 더욱 밝아졌기 때문일까, 사람들이 찾아와 자하에게 ‘당신의 스승 공자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라고 물으면 앞을 못 보는 자하는 기쁜 얼굴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 “군자는 세 가지 변함이 있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엄숙하고, 가까이서 보면 온화하고, 말을 들어 보면 정확합니다.(君子 有三變 望之儼然 則之也溫 聽其言也) 내가 아는 스승께서는 이처럼 세 가지의 변함을 모두 갖고 계시던 분이셨습니다.” 만약 맹인 자하가 없었더라면 공자의 사상은 맥이 끊겼을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사기는 ‘유림전(儒林傳)’에서 공자가 죽은 뒤의 시대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공자가 죽은 뒤에 70여명의 제자들은 각각 제후의 나라로 흩어져 큰 자는 사부(師傅)나 경상(卿相)이 되었고, 작은 자는 사대부(士大夫)를 가르치거나 나머지 사람들은 숨어서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자로는 위나라에, 자장은 진나라에, 담대(澹臺)와 자우(子羽)는 초나라에, 자하는 서하에 살면서 벼슬을 했고, 자공은 제나라에서 인생을 마쳤던 것이다. 그리고 전자방(田子方), 단간목(段干木), 오기(吳起), 금골희(禽滑釐)의 무리들이 모두 자하 같은 이에게 공부를 하여 임금의 스승이 되었었다. 이때 오직 위나라의 문후만이 학문을 좋아했었고, 이 뒤로 쇠퇴하여 마침내 진나라 시황(始皇)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전국 시대에는 온천하가 서로 다투었던 시대이니 이로 인해 유술(儒術)은 이미 사라져 버린 셈이었다. 그러나 제(齊), 노(魯) 지방에서만은 유학자(儒學者)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제(齊)나라 위왕(威王)과 선왕(宣王) 시대(기원전 357~기원전 299)에 맹자(孟子)와 순경(荀卿)의 무리가 모두 공자의 학문을 계승하여 윤색(潤色)함으로써 학문으로 그 시대에 드러났었다.”
  • 고액예치자 살해 은행원 영장

    경북 경주경찰서는 9일 고액을 예치한 고객을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한 모 은행 차장 김모(40·경주시 안강읍)씨에 대해 강도살인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씨는 지난해 11월15일 오전 1시쯤 경북 경주시 황성동 유림숲 앞 도로에서 자신의 고객인 유모(47·여)씨를 목졸라 살해하고 시체를 모포로 덮어뒀다가 같은달 24일 계곡 낭떠러지에 던져 유기한 혐의다. 경찰조사 결과 김씨는 2002년 8월부터 3억 5000여만원을 은행에 예치한 유씨에게 자금관리를 해주겠다고 접근, 임의로 돈을 유용하다 발각된 뒤 유씨로부터 “은행에 얘기하겠다.”는 압박을 받자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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