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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베이징·칭화大 연쇄폭발사고

    |베이징 오일만특파원| 중국 명문대학 2곳에서 25일 테러로 보이는 연쇄 폭발사건이 발생,모두 9명이 다쳤다고 중국 공안 및 대학 관계자들이 밝혔다. 베이징 시내 북서쪽에 위치한 베이징(北京)대와 칭화(淸華)대 캠퍼스 내 카페테리아에서 90분 간격으로 발생한 이번 폭발사건에는 사제 폭탄이 쓰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범행동기 등은 불투명한 상태다.폭발은 이날 오전 11시50분쯤 칭화대내 교수식당에서 처음 발생한 데 이어 90분이 지난 오후 1시20분쯤 베이징대 구내식당에서 일어났다. 이날 폭발로 칭화대에서 6명이 다리에 각각 부상을 입었으며 베이징대에서는 3명이 경상을 입고 식당 일부와 유리창이 파손됐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전했다. oilman@
  • 승합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건설교통부는 25일부터 개정된 자동차안전기준에 관한 규칙이 시행됨에 따라 이날부터 승합차에 소화기 설치의무가 강화되고,밴형 화물자동차의 경우 종전에는 옆 벽면에 유리창을 설치할 수 없었으나 앞으로는 유리창 설치가 허용된다고 24일 밝혔다. 개정된 시행규칙에 따르면 승차정원 15명 이하의 승합차는 능력단위 2(장작 1㎥ 두 더미에 불을 붙인 뒤 끌 수 있는 능력) 이상 소화기를 한개 이상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승차정원 16∼35명인 승합차는 능력단위 2 이상인 소화기 2개 이상,승차정원 36명 이상인 승합차는 능력단위 3이상인 소화기 1개 이상과 능력단위 2 이상인 소화기 1개 이상을 각각 설치해야 한다. 이밖에 사업용 자동차에 설치돼 있는 최고속도 제한장치의 경우 운전자 등이 임의로 조작할 수 없도록 봉인을 의무화하고 최고속도 제한장치에 대한 시험기준도 신설했다. 김문기자 km@
  • 대구지하철 참사/긴박했던 당시 상황

    비극의 서막은 한 50대 남자의 방화에서 시작됐다. 지하철은 순식간에 암흑천지가 됐고,화염과 유독성 가스에 승객들은 하나둘 쓰러져 갔다.칠흑 같은 어둠에서 탈출구를 찾던 승객들의 고함과 울음소리도 점차 잦아들었다. 뒤늦게 현장에 투입된 구조대원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시신들의 모습에서 95년 상인동 지하철 가스폭발 사고를 떠올렸다. 18일 오전 9시50분쯤 대구지하철 1호선 1079호 6량짜리 전동차(기관차 최정환)가 반월당역을 출발,도심인 중앙로역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오전 9시29분쯤 대곡역을 떠난 전동차는 9시52분을 조금 지나 중앙로역 플랫폼으로 들어섰다. 순간 매캐한 냄새와 함께 5호차에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범인 김대한(56)이 검은 가방에서 꺼낸 플라스틱 통에 라이터로 불을 붙이자 불길은 순식간에 5호차 천장으로 번졌다.불은 유독가스를 일으키며 객차 6량 전체로 삽시간에 옮겨 붙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승객 석모(35·여)씨는 “전동차가 멈춰 문이 열린 상태에서 김씨가 불을 붙이려 해 승객들이말렸으나 듣지 않았다.”고 몸서리를 쳤다. 설상가상으로 불길은 오전 9시55분쯤 대구역을 떠나 9시56분45초쯤 화재 차량의 반대편에서 중앙로역으로 진입하던 6량짜리 1080호 전동차로 번졌다.지하철 케이블에 불이 붙고 전기가 끊기는 바람에 1080호 전동차는 중앙로역을 통과하지 못한 채 대형 인명 참사를 냈다. 1080호 전동차가 화재 사실을 미리 통보받았다면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던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1080호 전동차가 중앙로역에 진입하는 순간 열기를 느낀 승객들은 일제히 술렁거렸다.전동차가 멈추고 출입문이 열렸으나 연기가 몰려 들어가자 기관사는 곧 문을 닫았다.승객들은 “10분 정도가 지난 뒤 ‘대피하라.’며 다급한 안내방송이 들려 왔고 문이 열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지하철역에는 유독가스가 서서히 번지고 있었고,그나마 일부 출입문은 열리지 않았다.1080호 승객 김운경(20·여)씨는 “반대쪽 전동차에 불이 붙은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지만,내가 탄 차량에 옮겨 붙을 줄은 몰랐다.”고 돌아봤다. 두 전동차 객차 12량이 불길에 휩싸이고 전기까지 끊기면서 지하철역 구내는 한순간에 지옥으로 변했다.밀폐된 전동차에 갇힌 승객들은 손톱이 부러질 정도로 전동차 문을 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전동차내 좌석 시트와 천장이 타면서 시커먼 연기와 유독가스가 뿜어져 나왔고,불길한 최후를 감지한 승객들의 울부짖는 소리로 전동차는 아비규환에 빠졌다.출근길 날벼락을 맞은 한 승객은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 갇힌 유태인을 떠올렸다.”고 부들부들 떨었다. 특별취재반 ◆화재현장 르포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18일 오후 5시30분쯤 화재로 수백여명의 사상자를 낸 대구 중앙역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쾨쾨한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아직도 조금씩 피어오르는 누런 연기 속을 지나 지하 1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자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암흑세상이 펼쳐졌다.구조대원들이 들고 있는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간신히 지하 2층 역사쪽으로 들어섰다. 바닥엔 긴박했던 당시의 순간을 증명하듯 승객들이 버리고 간 벗겨진 신발과 옷가지,가방 등이 널부러져 있어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천장에는 녹아내린 철근이 눈높이까지 삐져나와 있었고 바닥은 콘크리트 돌덩이들과 소방차가 뿜어낸 물이 발목까지 차올라 걷기조차 힘들었다.역사내 벽은 불길로 인한 검은 그을음으로 온통 도배돼 처참한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승강장에 들어서자 화재 당시의 엄청난 열기로 인해 유리창이 모두 깨지고 차체도 군데군데 녹아내려 앙상한 철골만 남은 6량짜리 상·하행선 전동차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전동차에 전기를 공급하는 천장 부근 전선은 엿가락처럼 늘어져 있었다.구조대원들은 마스크를 썼음에도 연신 기침을 해대며 힘겹게 사고 수숩을 하고 있었다. 전동차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최초 발화가 시작된 하행선 전동차 다섯번째 칸을 빼고는 모두 문이 닫힌 상태였다.깨진 창문 너머로 전동차 안을 들여다보니 불에 타 숯덩이로 변한 시신 수십여구가 눈에 들어왔다.최초로 발화가 시작된 하행선 열차 쪽보다는 옆의 상행선 열차 안에 시신이 몰려 있어 피해가 심한 듯했다.시신들은 형체를 분간할 수 없도록 훼손되거나 온전한 형태를 갖추지 않은 참혹한 모습들이었다. 엄청난 공포를 이겨내려고 서로 부둥켜 안은 채 굳어버린 모습도 많이 눈에 띄었다.시신들은 대부분 전동차 출입문 쪽에 몰려 있었다.한 시신은 손가락이 닫혀 있는 문틈에 끼인 채 굳어 있어 당시 몰려드는 불길과 유독가스를 피해 필사적으로 문을 열고 탈출하려 했음을 짐작케 했다. 참혹한 현장을 뒤로 하고 역을 빠져나오자 입구 앞은 어느새 이날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해 몰려든 수백명 유족들의 오열로 울음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딸 민심은(26)씨를 찾는다는 정숙자(54·여·대구시 수성동)씨는 “미용자격증을 따기 위해 사고 전동차를 타고 학원으로 가던 딸이 울먹이며 ‘엄마 지하철 안에 연기가 가득해 숨막혀 죽겠다.”는 전화를 해왔다.”면서 “이 말을 한 뒤 몇초 뒤 전화가 끊겼다.”며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윤순택(47)씨는 연신 아내 이경숙(44)씨의 휴대전화에 전화를 하며 오열하고 있었다.윤씨는 “지하에 묻혀 있는 아내의 휴대전화에 전화가 걸린다.”면서 “혹시 전화벨소리를 듣고 구조대원들이 아내 시신을 찾을 수 있지 않겠냐.”며 울먹였다. 대구 이영표기자 tomcat@
  • 지구촌 ‘안티 밸런타인데이’ 확산

    2월14일 밸런타인 데이를 맞아 전세계에 사랑이 충만한 가운데 중동과 남아시아에서는 ‘안티 밸런타인 데이’ 구호 아래 곳곳에서 폭력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인도 뉴델리에서는 밸런타인 데이를 하루 앞둔 13일 강경파 힌두교 운동가들이 밸런타인 카드와 선물을 파는 상점들을 공격,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상당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이들 시브세나당 운동원 10여명은 밸런타인 데이 기념품을 파는 가게를 습격,‘안티 밸런타인 데이’를 외치며 유리창과 전등,물품 등을 완전히 파괴했다. 파키스탄에서는 종교단체가 14일 기념 행사를 반대하며 항의를 표시했고 이란에서는 경찰들이 나서 테헤란 시내 상점들을 강제로 문닫게 했다.또한 이란 당국자들은 하트 모양의 밸런타인 데이 장식물들을 진열장에서 치우도록 지시했다. 이들 나라의 종교단체들은 밸런타인 데이가 힌두교와 이슬람교를 모욕하는 퇴폐적인 서구 기념일이라며 비난을 퍼붓고 있다.또 밸런타인 데이를 성적욕구를 채우는 수치스러운 날이라고 폄하했다.이렇듯 밸런타인 데이로 인한 폭력사태가 우려되자 인도에서는 전국에 경찰병력을 배치,완전경비태세에 나섰다. 반면 밸런타인 데이를 전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태국에서는 이날을 맞아 쇼핑을 하고 외식을 하는 사람들로 거리 곳곳이 흥겨운 분위기다. 특히 최근 몇년간 밸런타인 데이 결혼식이 인기를 끌고 있어 약 1500쌍의 커플이 이날 혼인신고를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강혜승기자 1fineday@
  • 한국판 ‘묻지마 총격’부산 도심서 새벽 달리는 車2대에

    “불특정다수 향한 조준사격” 새벽 도심을 달리던 차량 2대가 잇따라 총격을 받은 ‘묻지마 저격사건’이 부산에서 발생,충격을 주고 있다. 11일 오전 4시 45분쯤 부산진구 당감동 백양터널 당감동 방면 출구 100m 지점에서 유모(51·식당업·부산 강서구 공항동)씨가 운전하던 카니발 승합차에 총탄이 날아들어 차량 뒷좌석 유리창을 뚫고 지나갔다.이어 뒤따라 오던 강모(35·부산 중구 영주동)씨의 카니발 승합차에도 같은 지점에서 역시 총알이 날아와 앞좌석 유리창을 관통했다. 이들 차량의 양쪽 유리창에는 5㎝ 안팎의 총탄 구멍이 생겼으나 유씨와 강씨,그리고 차량에 탄 일행들은 다행히 총알이 비켜나가는 바람에 인명피해는 없었다.유씨와 강씨는 ‘꽝’하는 소리를 듣고서는 50여m쯤 지나 차를 멈춘 뒤 총알이 유리창을 관통한 것을 확인,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현장에 형사들을 급파해 인근지역에 대한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총탄이 지나간 맞은편 옹벽에서 총탄 흔적을 발견했을 뿐 별다른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은 고속으로 달리는 차량의 유리창을 정확히 뚫은 것으로 미뤄 총기 오발사건이 아니라 정신이상자나 사회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조준사격을 가한 것으로 보고,부산시내 일원의 총기상과 총기 소지자들을 상대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단발용 엽총에 의한 조준사격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이 부분에 대해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며 “탄환은 멧돼지 사냥용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레바논 英슈퍼선 폭발사고

    |베이루트 연합|11일 오전 3시(현지시간)쯤 레바논 북부 항구도시 트리폴리의 영국 슈퍼마켓 체인 ‘스피니스’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고 레바논 경찰이 밝혔다.이날 폭발사고로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슈퍼마켓 유리창이 깨지고 일부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경찰은 이번 폭발사고가 400g의 고성능 폭약이 함유된 폭탄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슈퍼마켓 내에서 또 다른 폭발물 두개를 발견,해체했다.
  • 고양,화염병 피습 파출소 전소

    10일 오전 3시30분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2동 행신2파출소에 마스크를 쓴 남자 5명이 화염병 5개를 던지고 달아났다. 이로 인해 책상·컴퓨터 등 집기가 불에 타는 등 22평 크기의 파출소 내부가 전소하고 유리창이 깨졌으며 근무 중이던 김수은(27) 순경이 얼굴과 손 등에 화상을 입었다. 경찰은 “남색 그레이스 승합차에서 마스크를 한 남자 5명이 내려 화염병 5개를 파출소 현관 문에 던지고 달아나는 것을 보았다.”는 모 신문배달원의 진술에 따라 범인들이 타고 달아난 뒷번호 4368인 남색 그레이스 승합차를 긴급수배했다. 경찰은 전날 오후 고양시 덕양구 토당동 S연립 재건축 부지에서 임대주택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다 강제해산된 전국철거민연합회 관계자들이 해산과정에서 화염병을 던진 사실을 중시,이들의 관련 여부를 수사 중이다. 고양 한만교기자 mghann@
  • [男男女女]면도와 화장

    “화장은 집에서 하고 나오면 안되나요? 립스틱 정도 바르는 거야 애교라고 치자고요.무릎에 화장대를 차려놓고 스킨·로션부터 시작해서 분바르고,눈썹 그리고,눈썹 올리고,볼화장하고….남자들이 지하철에서 얼굴에 비누거품 칠하고 면도한다고 생각해 봐,보기 좋겠어요?” 50대 남자가 잔뜩 찌푸리고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여자들을 성토한다.가끔 지하철 유리창을 거울 삼아 립스틱을 칠한 일이 있어 찔끔했다.그렇게 보기가 싫을까 갸우뚱했더니,그 남자는 “남자도 사무실에서 전기 면도기로 수염 문지르는 후배는 꼴도 보기 싫다.”고 일갈한다.그러니까 밖에서 타인에게 보여도 되는 행동과,감춰야 할 행동 사이에 엄연한 구별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늘 화장을 곱게 하고 나오는 한 여성은,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여자들을 보면 “어쩜 저렇게 뻔뻔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아름다워 보이려고 화장을 한다지만,대중 앞에서 변신하는 여자는 전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화장발’로 시시각각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옆에서부끄러운 마음이 들더라고 말했다. 미국에 사는 여동생을 보러 갔을 때다.음식점에서 식사를 마친 뒤 한국에서 하듯,손거울을 꺼내 치아에 끼인 음식물이 없는지 살펴보고 립스틱을 꺼내 바르려고 했다.이때 동생이 난처한 표정으로 옆구리를 꾹 찔렀다.“여기서는 아무도 그렇게 안한다.”는 것이다.식당은 남들과 함께 있는 공공장소이고,화장은 화장실에서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국내에서는 화장실을,우환을 덜어낸다는 ‘해우소’나 ‘뒷간’또는 직설적으로 ‘변소’라고 불렀다.하지만 서양에서 ‘화장실’이란 볼 일도 보고,귀부인이 머리를 손질하거나 드레스를 고쳐입는 문화공간이었다.의자까지 놓아두고 오랫동안 수다를 떨어도 되는 곳이니,당연히 화장도 화장실에서만 고쳤다. 요즘은 백화점이나 지하철의 잘 설계된 화장실에는 손씻는 세면대와 화장 고치는 공간이 따로 마련될 만큼 바뀌고 있다.서구화하는 사회 분위기에 맞춰 화장실 문화도 서양식을 도입했다고 볼 수 있겠으나 문화란 형식만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내용이 따라와 줘야 하는 법이다. 출근길에 화장하는 여자들의 속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5분만 더 자고 싶은 심정에 떠밀린 미혼여성도 있을 터이고,남편 출근길과 자녀 등교길을 챙기느라 정작 본인은 맨얼굴로 뛰어나왔을 수도 있다. 그래도 화장을 버스·지하철 같은 공공장소에서 하는 일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과문한지 모르겠으나 아침마다 지하철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면도한다는 남자는 아직 보질 못했다.여자들도 이제 스스로 품위와 체면을 지켜야 한다.굳이 시간이 없다면 화장을 안할 수도 있고,회사에 도착한 직후 화장실에서 ‘1분 스피드 화장’을 할 수도 있다. 아는 사람의 눈만을 신경쓸 것이 아니라,낯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떤 여자로 보일까를 생각하는 염치가 필요하다. 문소영기자 symun@
  • 대한매일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경악의 얼굴-기형도론/이성혁

    1.기형도 시의 가상성 그의 죽음에서 벗어나 작품속 죽음 의미찾아 이 비평문은, 그러니까 기형도의 텍스트와 텍스트를 이어보고 만져보면서 이 가상적 구성물인 텍스트에 드러나 있는 것을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욕망에 따라 재구성(‘시인'의 세계관이나 무의식을 재구성하는 것이 아닌-)하여 다시 텍스트를 짜내려는 시도이다. 그래서 우선 기형도 시의 ‘가상성'을 부각시키려 한다. 이는 기형도 자신도 원하는 것일 게다. 그의 친구인 원재길은, 별로 주목된 바 없는 글이라 생각되는 10여 년 전의 글에서, “창작자와 시적 자아를 동일시하는 심리주의 비평의 어떤 그릇된 접근 방식은 시인 자신으로부터 이미 거부당하고 있다.”(대화적 울음과 극적 울음)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위에서 거론한 비평가들이 조야한 심리주의 비평에 빠졌다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시와 기형도의 의식의 동형관계에서 벗어나 시를 문학적 텍스트로서 다루어야 한다는 점을 원재길은 이미 지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더 나아가 기형도의 여러 시편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등장 인물과 간단한 사건과 시간에 순연하는 구성이 있는 극적인 구조를 취한다.”라고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기형도 시가 하나의 독특한 가상적인 구성물임을 말하는 것과 다름 없다. 하지만 그는 이에 대해 깊게 논의를 더 진전시키지 않았고, 그의 지적이 논자들에게도 그다지 주목받지 않았다. 대개의 평문들에선 기형도 시의 등장 인물들-낯선 ‘그'로 자주 등장하는-은 대상화된 ‘나'로 취급되어 기형도의 자아를 반영하는 인물이 되어 버리곤 한다. 즉 기형도 시가 ‘극적 구조', 하나의 가상적 구성물임을 주목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1)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그 춥고 큰 방에서 書記는 혼자 울고 있었다!/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 부분 2)김은 중얼거린다, 누군가 나를 망가뜨렸으면 좋겠네, 그는 중얼거린다/나는 어디론가 나가게 될 것이다, 이 도시 어디서든/나는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황할 것이다/그가 김을 바라본다. 김이 그를 바라본다/한번 꽂히면 김도, 어떤 생각도, 그도 이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한다/김은, 그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나는 블라인드를 튼튼히 내렸었다/또다시 어리석은 시간이 온다. 김은 갑자기 눈을 뜬다, 갑자기/그가 울음을 터뜨린다, 갑자기 모든 것이 엉망이다, 예정된 모든 무너짐은 얼마나 질서 정연한가/김은 얼굴이 이그러진다 - 부분 1)에 등장하는 서기나 ‘김'을 대상화된 기형도 자신으로 파악하는 것은 한편으론 옳고 한편으론 그르다. 옳다는 점은 플로베르가 “마담 보바리는 나”라고 발언한 것과 같은 의미에서, 모든 허구적 인물들은 작가의 분신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시 같은 서정적 장르에서는 그 분신의 농도가 더 짙으리라. 하지만 그 등장 인물이 시인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파악은 그르다. 시에서도 소설과 마찬가지로, 그 등장 인물은 시 텍스트의 공간 내에서 자기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서정시의 ‘나'는 시인의 자아에서 벗어나게 된 텍스트 속의 ‘나'이다.시인의 자아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명을 받은 ‘나'를 구축하는 것, 그것이 서정시인일 것이다. 위의 시에서 서기는 시인의 대리일 뿐 아니라 카프카적 의미에서의 서기, 관료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무의미한 일에 탕진하고 있는 우리네 삶의 형식의 상징으로서의 서기이다. 유리창은 그 서기를 바라보고 있는 ‘나'와 서기를 갈라놓는다. 이 유리창 때문에 ‘나'는 울고 있는 서기에게 가서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줄 수 없다. 하지만 유리창 덕분으로 ‘혼자 울고' 있는 서기를 발견할 수 있다. 유리창은 타자와 소통할 수 없게 하는 칸막이면서도 또한 ‘혼자' 각각 서로를 바라보며 소통할 수 있게 한다. ‘나'와 ‘그'를 동일시하여 각자 홀로 있는 ‘나'와 ‘그'의 어긋나 있는 대위 구조를 보지 않는다면 이 시가 뿜어내고 있는 의미를 붙잡기 힘들다. 원재길의 ‘극적 구조'를 넓게 본다면 이 장면 역시 그 구조에 포함시킬 수 있으리라. 침묵의 극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까. 1)의 서기의 울음을 조명하여 해명해주는 텍스트로 볼 수 있는 2) 역시, 독백의 극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그'와 ‘김'은 동일 인물의 분신들이다. 1)에서 시적 화자가 ‘나'라는 인물로 등장하는 것과 달리, 이 인물들을 바라보고 있는 시적 화자가 담론 배후에 있고 시 표면에 등장한 ‘나'가 독백하는 형식으로 ‘김'의 중얼거림이 나타나 있다. 홀로 있는 ‘김' 옆에서 ‘김'을 ‘바라보는' ‘그'는 사물화된 김의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김이라 할 수 있는데, 성으로만 표시되어 개성을 잃어버렸음을 표시하는 ‘김'보다 더 몰개성적인 무엇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건물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김'이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그와 김, 그리고 흐물흐물한 대명사가 되어 버린 ‘나', 또 이를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 극적으로 어울리게 된다. 그런데 1)에서 서기의 울음을 볼 수 있는 순간은 바로 홀로 있음의 순간, 침묵의 순간이었다. 침묵이 깨지면, 이 순간은 깨지고 말 것이다. 세계를 토막내는 언어의 세계가 침묵할 때 순수한 존재 자체가 떠오르지 않겠는가. ‘두 시', 삶이 무의미에 무너져 내리고 있는 순간을 깨달을 때의 침묵의 시간, 그 직후터뜨리는 울음의 순간에 배치되는 사물과 인간을 이 시들은 포착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극적 구성은 플롯을 시에 도입하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바로 이 순간에 배치된 장면을 응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그런데, 이 일상을 갑자기 전복시키는 시간이 정지된 순간은 기형도 시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작동된다. 그는 (어느 푸른 저녁)의 시작 메모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끔씩 어떤 ‘순간들'을 만난다. 그 ‘순간들'은 아주 낯선 것들이고 그 ‘낯섬'은 아주 익숙한 것 들이다. 그것들은 대개 어떤 흐름의 불연속선들이 접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어느 방향으로 튕겨나갈지 모르는, 불안과 가능성의 세계가 그때 뛰어들어온다. 그 ‘순간들'은 위험하고 동시 에 위대하다. 위험하기 때문에 감각들의 심판을 받으며 위대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거의 필연적이며 이러한 불행한 쾌락 들이 끊임없이 시를 괴롭힌다. 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형식이 기형도의 가상적 구성물-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떤 순간을 포착하여 보여준다. 그 순간은 시간이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어떤 흐름의 불연속선들이 접하는 지점'이다. 그래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말한다는 것은 어떤 연속선상을 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텅 빈 그 순간, 침묵의 순간을 말하기 위해선 우회로를 빙빙 돌아 그 순간을 간접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즉 가상적 공간, 더 나아가 환상적 공간을 구성하여 그 순간을 암시할 수밖에 없다.(어느 푸른 저녁)에서는 그 순간을 “어느새 처음 보는 푸른 저녁”이라고 말한다. 이 저녁엔 ‘검고 마른 나무들' 아래에서 사람들은 “가벼운 구름같이/서로를 통과해”가는 순간이 온다. 이 환상적인 순간은 어떤 예감을 통해 감지하게 된다고 시적 화자는 말한다. 나는 그것을 예감이라고 부른다. 모든 움직임은 홀연히 정지/하고, 거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보이지 않는 거대한 숨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듯/그런 때를 조심해야 한다. 진공 속에서 진자는/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검은 외투를 입은 그 사람들은 다시 저 아래로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씩 흔들리는/것은 무방하지 않은가/나는 그것을 본다/모랫더미 위에 몇몇 사내가/앉아 있다, 한 사내가 조심스럽게 얼굴을 쓰다듬어본다/공기는 푸른 유리병, 그러나/어둠이 내리면 곧 투명해질 것이다, 대기는/그 속에 둥글고 빈 통로를 얼마나 무수히 감추고 있는가!/누군가 천천히 속삭인다, 여보게/우리의 생활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세상은 얼마나 많은 법칙을 숨기고 있는가/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느낌은 구체적으로/언제나 뒤늦게 온다, 아무리 빠른 예감이라도/이미 늦은 것이다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모든 움직임이 홀연히 정지”한 상태, 이 상태는 환상 속에서 구성될 수밖에 없다. 실제 상황의 묘사로는 이 상태를 그려낼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상태는 볼 수 없는, 예감으로서만 감지할 수 있는 상태이면서, 예감했다고 알아차린 순간 없어지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빠른 예감이라도/이미 늦은 것이다”라고 시는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이 순간은 그러니까 현실 묘사가 아니라 환상 속에서 구성될 수 있는 것이다. 이 환상은 의미의 블랙 홀과 같은 상태다. “보이지 않은 숨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의미는 사라지고 언어도 사라진다. 시인은 또 “이 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순간은 역시 순간일 뿐이다. ‘검은 외투'-죽음의 외투-를 입은 사람들은 여전히,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순간을 애써 외면한다. 그리고 그들의 딱딱하고 무미한 삶을 이어간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본다”고 시인은 말한다.(여기서도 시적 화자는 보는 사람이며, 증언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블랙 홀과 같은 어떤 순간을 느낀 순간, 나에게 ‘그'가 다가온다. ‘그'는 ‘나'의 분신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동시에 메피스토펠레스적인 악마라고 볼 수도 있다. 그 악마는 말을 걸어온다. 그럼으로써 지금까지의 인생의 의미를 모두 무화시킨다. “우리의 생활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세상은 얼마나 많은 법칙들을 숨기고 있는가”라고 그 악마는 속삭인다.다시 말해 모든 것이 무의미의 검은 구멍으로 사라지는 그 순간을 예감할 때 그 악마는 등장한다. 그리고 세상의 법칙, 아마도 죽음으로 가는 삶의 법칙을 가만히 상기시킨다. 기형도 자신이 말한 ‘가능성'과 ‘불안'은 그 ‘순간'이 이 악마적인 것의 출현을 가져오기 때문일 것이다. 이 악마적인 것이 죽음을 지시한다는 점에서 ‘위험'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시를 탄생시킨다는 점에서, 그리하여 새로운 삶,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주며 ‘위대'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무의 지경에 다다른 이때 투명하고 푸른 공기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감추어진 ‘둥글고 빈 통로'가 열린다. 그래서 악마적인 ‘그'가 말한 숨겨져 있는 ‘법칙'은 다만 죽음의 법칙만이 아니라 환상 속의 다른 통로를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기형도 시의 환상은 양면적이다. 일상적 삶의 흐름 속에서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채택되는 그의 환상은 우리의 삶을 무화시키는 블랙 홀의 역할을 하면서도 동시에 다시 신비롭게감추어진 희망을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 시는 시의 탄생과 그 탄생이 가져오는 양면성에 대한 알레고리일지도 모른다. 2.기형도 시의 이중성 파우스트가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고 외치는 순간, 메피스토펠레스는 그를 지옥으로 데려간다. 이때 아름다움의 순간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 아름다움은 일상의 권태로운 세계를 무화시킨다. 인간은 권태의 세월보다 죽음을 무릅쓴 아름다움의 세계에 닿고자 하지 않겠는가?(그래서 아름다움은 치명적인 유혹이라 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아름다움은 죽음의 세계에 맞닿아 있으면서도, 일상적 삶이 도리어 죽음과 같은 삶이라는 것을 드러내어 삶을 희망하게 하고 움직이게 한다. 파우스트의 드라마가 시작되는 것도 늙은 파우스트가 아름다움의 순간을 찾아 나서는 데서부터이다. 물론 그는 끊임없는 생성을 젊음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순간이여 ‘멈추어라'라고 만약 자신이 말한다면 자신을 지옥에 데려가도 좋다고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말했다. 그러나 결국 파우스트는 자신이 매립제에건설한 도시(악마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가상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를 바라보며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는 죽음의 말을 토해내며 쓰러진다. 즉 파우스트가 산 젊음은 이 아름다운 가상에 대한 외침에 도착함으로써 끝난다. 그의 젊음과 행위는 결국 아름다움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었으며, 아이로니컬하게도 그 ‘아름다움의 순간'이란 착지에서 그의 젊음과 힘은 지옥으로 넘겨진다./기형도 시가 포착하려던 그 “위험하고 동시에 위대하다”는 ‘순간'의 이중성도 아름다움에 대한 《파우스트》적 아이러니와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기형도의 시가 드러내는 아이러니는 순간이 가져오는 이 이중성에 대해 팽팽한 긴장을 풀지 않음으로써 이끌려 나온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시작 노트와 을 다시 상기해보자. ‘아주 낯선 것들'이면서 ‘아주 익숙한 것들'이라는, 순간들의 이중성에 대한 긴장을 시인은 계속 놓치지 않는다. 아니 순간들의 이중성의 포착은 이 대상에 대한 긴장에 찬 예민성의 끈을 풀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아주 낯선 것들로의 ‘둥글고 빈 통로'를 마련하는 어떤 순간은 우리가 언제나 부딪히는 일상에서의 어떤 순간이다. 그래서 ‘아주 익숙'하기도 하다. 그 순간이 벌려내는 환상은 우리 삶의 현장인 일상의 삶을 무화시키면서도 어떤 다른 세계로의 통로, 다른 삶의 세계를 열어 놓는다. 이 이중적인 통로의 발견을 기록하는 데서 기형도의 시는 드러나기 시작한다. 통로의 이중성은 ‘둥글고 빈'이라는 수식어에서 이미지화되어 있다. ‘둥근 것'은 아날로지의 세계를 상기시킨다. 아날로지는 모든 개체가 전체를 비추고 전체가 개체들을 끌어안는 조화의 세계 아닌가./그 세계는 둥글다. 하지만 또한 그것이 비어 있다는 진술에서 ‘둥근 것'의 아날로지 세계는 아이러니의 상태로 변화된다./‘둥글고 빈' 통로는 아름다움에로의 통로이기도 하지만 無에로의 통로이기도 하다. 이 둥글고 텅 빈 통로를 통과하여 다다른 어떤 다른 세계, 아름다움의 세계는 그래서 다음과 같이 공기 방울의 세계이다. 저녁 노을이 지면/神들의商店엔 하나둘 불이 켜지고/농부들은 작은 당나귀들과 함께/城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성벽은 울창한 숲으로 된 것이어서/누구나 寺院을 통과하는 구름 혹은 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한걸음도 들어갈 수 없는 아름답고/신비로운 그 城///어느 골동품 商人이 그 숲을 찾아와/몇 개 큰 나무들을 잘라내고 들어갔다/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가 본 것은/쓰러진 나무들뿐, 잠시 후/그는 그 공터를 떠났다/농부들은 아직도 그 평화로운 성에 살고 있다///물론 그 작은 당나귀들 역시 - 성 안은 “아름답고/신비”한 세계이다. ‘시작 메모'에서 말한 ‘위대한 순간'이 형상화된 세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위대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이 세계에도 해당된다. ‘존재'가 차안의 세계에만 해당된다는 개념이라면 말이다. 이 세계는 신들이 사는 세계이지 않은가. 이 세계는 신들과 농부들과 작은 당나귀는 이 성 안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며 어느 하나도 빠지면 성립되지 않는 세계이다. 즉 아날로지의 세계다.시인도 ‘역시' 작은 당나귀들도 평화로운 그 성에 농부들과 살고 있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성은 공기와 같은 세계라서 “구름 혹은/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 다가갈 수 없다. 갑자기 시간이 멈추어지고 세계가 낯설어지며 감각이 착란될 때의 순간이 열어놓는 어떤 ‘푸른 저녁'같을 때, 사람들이 “가벼운 구름같이/서로를 통과해”갈 수 있었다. 이 ‘순간'에만 바로 ‘둥글고 텅 빈' 통로를 따라 이 성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성 안의 세계는 바로 그렇게 공기 방울, 구름이 된 사람들이 어우러져 이룬 세계이다. 그런데 이 공기 방울의 세계는 차안의 공간에 있진 않지만, 차안과 동떨어진 피안의 공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세계는 차안의 공기 안에 있다. 우리가 언제나 대하는 일상의 시간 속에서, 언뜻 벌려진 공기와 공기 사이의 블랙 홀을 공기가 되어 통과하면 만날 수 있는 세계이다.그러니까 이 성 안은 우리 머리 위에 떠 있는 저 하늘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뒤-옆-앞에 있다. 그래서 이 세계에 들어가려는 골동품 상인-아마 차안의 세계의 속성인, 살해를 자행하는 폭력성을 보여주는 등장 인물이라 할-이 몇 개 큰 나무들을 잘라내고 들어가 보았자 헛수고가 될 수밖에 없다. 골동품 상인은 차안의 세계 뒤에 있는 세계를 알지 못한다. 그는 숲만 자르면 성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삼차원적 세계 인식에 머물러 있다. 그가 차안에서 아무리 폭력과 파괴를 행한다 해도 이 숲으로 된 성벽 안은 의연히 평화로운 마을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계는 그만큼 불안하다. 우리가 이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방도는 앞에서 보았듯이 기화되는 길밖에 없다. 통로가 ‘빈' 통로여서 들어가려는 이는 빈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이루어진 공기 세계는 어떤 무게 있는 물질성을 가지지 않는다. 그래서 가볍게 둥둥 떠다닌다. 공중에 투사된 영상처럼 흩어졌다 모여지는 그런 세계다. 우리가 손으로 만질라치면 그 세계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버릴 것이다. 이 아날로지의 세계는 그래서 희망의 저편에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세계에 도달하고자 하는 희망은 품을 수 있으나 어느전도와 착란의 순간이 아니면 도달할 수 없다. 즉 우리가 사는 이 차안에선 이루어낼 수 없을 세계이다. 기형도가 희망에 대해 ‘어둡고 텅' 비어 있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숲으로 된 성벽' 자체가 비어 있고, 그 비어있는 곳에 도달하고자 하는 희망도 빈 희망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침묵의 목책 속에 갇힌 먼 땅/다시 돌아갈 수 없으리, 흘러간다/어디로 흘러가느냐, 마음 한 자락 어느 곳 걸어두는 법 없이/희망을 포기하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리, 흘러간다 어느 곳이든 기척 없이 - (植木祭) 중에서 기형도 시에서의 ‘죽음'은 시인의 우울한 세계관이나 유년의 기억 때문이라기보다는, 시적 화자가 희망의 포기와 선택을 통해 ‘각오'한 것이다./ 이 죽음의 각오는 ‘둥글고 빈 통로'에 들어갈 때부터 이미 예정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통로에 들어간다는 일은 다른 삶의 세계에 들어간다는 의미와 죽음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앞에서 본 바 있었다. 통로 저 편에 있을 숲으로 된 성벽에 갈 수있으리란 희망은 절망으로 전화될 소지가 있었던 것이다. 둥글고 빈 통로를 걸어 도달할 수 있는 희망이란 빈 희망이기에 그러하기도 하고, 숲으로 된 성벽이 아름답다고 외친 순간 그 아름다움의 덧없음이 부각되면서 죽음이 드러나기 때문에, 즉 아름다움에 대한 희망은 어두운 희망이라 말할 수 있기에 그러하기도 하다. 그 성벽은 “침묵의 목책 속에 갇힌 먼 땅”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착란과 환상을 통해 대기에 구멍이 나는 순간을 파악하려는 기형도 시는, 아름다움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을 때의 죽음으로 가는 구멍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푸른 유리병' 같은 공기가 점차 탁해지면서 ‘안개'로 오염되기 시작한다. 이 읍에 처음 와본 사람은 누구나/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 (안개) 중에서 푸른 대기 속의 둥글고 빈 통로는 ‘안개의 빈 구멍'으로 전화한다. 다른 삶으로 가는 ‘순간의 통로'가 안개에 의해 막혀버리고 순간이 가지는 죽음의 성질만이 드러난다. 이 순간은 안개로 뒤덮인 환상적인 마을을 구성함으로써 나타나고, 그 죽음의 성질은 다시 일상이란 것이 얼마나 죽은 상태와 같은가를 간접적으로 포착하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차안의 세계에 대한 네거티브 필름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네거티브 필름 같은 가상적 세계는, 흐리멍덩한 색깔인 안개의 색깔로 대상의 윤곽만 드러내면서, 생명 없고 답답한 무엇으로 현상한다. 이 시를 더 읽어보자. 죽음의 공기인 ‘안개'의 빈 구멍은 사람들을 빨아들여 그 속에 가두어 놓는다. ‘이 읍' 사람들의 삶은 ‘쓸쓸한 가축들'처럼 무리지어 있지만, 안개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세계 앞에서 무력하고 서로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존재들이다. 그 읍은 “몇 가지 사소한 사건”이 일어나는 곳인데, 그것은 “한 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하기도 하고, “방죽 위에 醉客 하나가 얼어 죽”지만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그것이 쓰레기더미인 줄 알았다고”(같은 시에서)하기도 하는 사건이다. 겁탈당한 여직공과 얼어죽은 취객은, 윤곽밖에 보이지 않는 이 읍 안 사람들에겐 파괴당한 삶을 흐릿하게 바라보고는 쓸쓸하게 고개를 숙여보게 하는 사건 정도의 의미만 가질 뿐이다. 그들 눈앞에서 타인들은 안개 속으로 ‘지워지고' 그들은 제각기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게 된다. 안개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 없게 만드는 세계의 이미지라 할 수 있다. 또는 그렇게 변화 없이 사는 사람들의 삶을 이미지화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변화 없는 지속이 기억의 지속을 가져오진 않는다. 그 반대이다. 이 읍에선, “상처 입은 몇몇 사내들”이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나 버린다. 그러므로 이런 지속의 시간성은 텅 빈 시간성이다. 기억이 없이 사는 것은 텅 빈 삶이다. 그것은 현재와 과거와의 상호적인 울림이 없는 시간이고, 그래서 미래조차 가능하지 않은 시간이다. 왜냐하면 현재가 끊임없이 과거로 되어야만 미래가 있을 수 있어서, 과거가 존재하지 않으면 미래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개는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 존재이다. 움직이지 않는 존재는 죽은 존재이다. 죽은 존재인 안개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죽은 존재이다. 안개는 독과 같다. 그러나 그 읍 사람들은 안개를 마약처럼 마신다. 안개를 편하게 느낀다./ 안개가 끼지 않으면 그들은 자신의 얼굴을 내보여야만 해서 “방죽 위의 얼굴들은 모두 낯설”어지고 “서로를 경계하며/바쁘게 지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읍은 ‘안개의 聖域'이 된다. 안개 속의 삶이 정상적인 삶이 된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게 되기도 한다. 이 세계 속에서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가”게 된다. 이 반어적 표현에는, 안개가 ‘무럭무럭' 키우는 아이들의 삶이란 그들 모두 검은 굴뚝과 폐수와 겁탈의 위험이 있는 공장으로 쓸쓸히 끌려가는 가축과 같은 삶임을 암시한다. 3.작품속 죽음의 포착 (안개)를 읽으면서, 시적 화자가 희망의 포기를 선택했을 때 기형도 시가 발 딛고 있던 ‘순간'은 무서운 죽음의 세계-안개로 뒤덮인 읍과 같은-를 입벌려 드러낸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죽음의 세계-지옥에서의 형벌-는 ‘느릿느릿 새어나'와 계속 ‘미친 듯이 흘러다'((안개)중에서)녀야 한다. 앞에서 본 (식목제)의 “마음 한 자락 어느 곳 걸어두는 법 없이”, “어느 곳이든 기척 없이”라는 구절에서와 같이 이 형벌은 정착이란 있을 수 없게 만든다. 기억도 없이, 미래도, 삶도 없이 흘러다녀야 한다. 오직 흘러다님의 지속만 있을 뿐이다. (안개) 속의 읍내 사람들은 명계(冥界)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아다니는 유령과 같은 존재였다. 삶을 잃어버린 이 유령의 떠돌아다니는 모습이 일군의 기형도 시의 한 주제를 이룬다. 내 희망을 감시해 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러 가시라고/모든 길들이 흘러 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 (정거장에서의 충고) 중에서 기형도는 죽음을 무릅쓰고 희망을 포기했다. 그리하여 현실의 이면에 있는 죽음의 안개를 포착할 수 있었다. 이와 동일하게 안개에 중독된 유령들을 포착하기 위해선 희망을 억눌러야 한다. 시적 화자는 자신의 육체를 ‘희망을 감시해 온 불안'들이 머무는 정거장으로 쓰려고 한다. 불안이 죽음을 예감할 때 느끼는 감정이라면, 불안을 머물게 한다는 말은 죽음들의 예감을 머물게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러기 위해선 죽음들이 방문을 할 수 있도록 길이 자신에게 흘러들어 죽음이 그 길을 통해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길이 흘러드는 정거장으로 자신의 육체를 사용하려면 자신의 육체 자체가 걸어다녀야 한다. 길이 걸어올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길이 흘러 온다는 말은 자신이 걸어다니면서 만나는 길을 흡수한다는 말이다. 걸으면서 길을 흡수하고 흡수한 길을 통해 불안-유령을 만나고 그 유령의 세계를 구성하는 환상으로 시가 구성되게 된다. 이 유령과의 대면을 보여주는 대목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白夜)에선 “빛과 어둠을 분간할 수 없는/팡팡 빛나는 이 무서운 白夜” 속에서 “무슨 農具처럼 굽은 손가락들, 어디선가 빠뜨려버린/몇 병의 취기를 기억해내며” “천천히 걷고 있”는 한 사내를 보여준다. “휘적휘적 사내는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사내는 “문닫힌 商會 앞에서 마지막 담배와 헤어”진다. 그의 등에 “軍用 파커 속에서 칭얼거리는 어린 아들을 업은 채” 말이다. 담배 살 돈이 없을 이 사내는 아마 어린 아들과 함께 길에 쓰러져 쓸쓸히 얼어죽을 것이다. (가는 비 온다)에서는, 어느 가는 비 오는 날,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지 않는다는 시적 화자가 발길이 닿는 대로 걸으면서 전개하는 여러 상념들을 보여준다. 그 상념들은 “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나 “언젠가 이곳에 인질극이 있었다/범인은 (휴일)이라는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면/자신의 목을 긴 유리조각으로 그었다”와 같은 죽음의 여러 모습이다. 주검을 직접 보여주는 시도 있다. 가령, “구름으로 가득찬 더러운 창문 밑에/한 사내가 쓰러져 있다, 마룻바닥 위에/그의 손은 장난감처럼 뒤집혀져 있다”((죽은 구름))와 같은 구절이 그것이다. 여기서 주검은 감정이 절제된 상태로 서늘하게 즉물화되어 있다. 시적 화자가 우울하게 가고 있는 거리엔 주검들과 죽음에 대한 상념을 유인하는 ‘낡은 간판'들이 널려 있으며 기후마저도 그러한 상념을 피워 올리게 한다. 그의 눈에 포착되는 사람들은 좀 있으면 죽을 운명이거나 죽어버린 이다. 또는 삶의 의미를 상실한 사람들이다. 유령들이다. 이들은 회한과 외로움에 말라죽어 가는, 행복과 거리가 먼 이들이다. 플랫폼에서 본 청년들은 “톱밥같이 쓸쓸해 보이”고((鳥致院)), 어느 카페에서 본 사내는 “그것으로 탁자를 파내”면서 “나는 인생을 증오한다”((장밋빛 인생))라고 새겨 넣는다. 삶을 박탈당한 유령들의 포착은 시적 화자 자신이 유령처럼 ‘흘러다'니는 존재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시적 화자가 포착하는 대상의 대부분인 흘러 다니는 사람들은 시적 화자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촉매로 작용하게 된다. 그 사람들의 삶이 시적 화자의 삶과 다름없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다시 시적 화자의 내면 독백은 떠도는 자의 내면을 드러내게 된다. 내린다, 진눈깨비, 놀랄 것 없다, 변덕이 심한 다리여/이런 귀가길은 어떤 소설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구두 밑창으로 여러 번 불러 낸 추억들이 밟히고/어두운 골목길엔 불켜진 빈 트럭이 정거해 있다/취한 사내들이 쓰러진다. 생각난다 진눈깨비 뿌리던 날/하루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낡고 흰 담벼락 근처에 모여 사람들이 눈을 턴다 - (진눈깨비) 중에서 진눈깨비 뿌리던 날, 시적 화자는 그날도 역시 거리를 걷는다./ 거리에서 그는 ‘취한 사내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정거해 있는 ‘빈 트럭'도 본다. 그리고 ‘구두 밑창'으로 ‘추억들이 밟히'는 소리를 듣는다. ‘하루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밟히는 소리도 듣는다. 외로운 빈 트럭과 쓸쓸하게 쓰러지는 취한 사내들에 대한 묘사와 시적 화자의 어린 시절들을 불러오는 회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시적 화자가 주체가 되어 추억들을 불러온다기보다는 저 진눈깨비와 거리의 외롭고 쓸쓸한 모습이 기억들을 불러온다. 그 기억은 “찬밥처럼 방에 담겨/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엄마 안오”시기에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엄마걱정) 중에서)의 기억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그가 거리에서 보고 있는 사람들은 엄마가 없어 빈방에 혼자 훌쩍거린 기억을 감추고 있을 사람들이며, 역시 집에 들어가면(집이 있다면) 빈방에 홀로 앉아 있을 사람들일 게다. 죽어가는 이 유령들은 그런 기억을 깊이 품고 살아갈 것이며, 이는 다시 역으로 시적 화자 자신도 그 기억을 품고 쓸쓸히 죽어 가는 유령들 중의 한 사람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그래서 ‘죽음'을 발견하는 ‘흘러 다니기'는 점점 시적 화자 자신 안의 죽음의 흔적을 찾는 여행이 되어버리게 된다. 시적 화자는 “곧 무너질 것만 그리워했”((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다고 말한다. 무너지는 것들이 결국 그의 삶이 되기 때문이다. 죽음을 증언하는 시적 화자 자신이 유령과 같이 떠돈다. 그는 “낡아빠진 구두에 쑤셔박힌, 길쭉하고 가늘은/자신의 다리를 보고 동물처럼 울부짖는다. 그렇다면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여행자) 중에서)라고 울부짖는 여행자와 같은, 떠돎을 그만둘 수 없는 유령이다. 환상적 공간의 열린 순간을 통해드러난 죽음의 세계, 그리고 그 안을 떠돌아다니는 유령적 삶의 포착은, 이렇게 자신도 유령이라고 인식하는, 안개의 구멍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도 안개에 중독되어 버렸다는 점을 인식하는 시적 화자의 등장을 통해 완성된다고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죽음의 공간은 더욱 전일화되고 가공할 것으로 드러낸다. 유령의 세계를 증언하는 자신도 유령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의 그 경악의 순간은, 바로 메두사가 페루세우스의 방패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을 때의 그 놀람과 두려움의 순간과 같을 것이다. 그런데,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기형도의 시는 바로 그 경악의 순간을 포착한 카르파치오의 (메두사)란 ‘그림'과 같은 것일 터, 시 텍스트는 그 경악의 순간 자체, 또는 그 순간의 재현이라기보다는 경악의 순간을 구성하여 현현하게 한다고 할 수 있다./ 시-예술 텍스트가 구성되기 이전엔 그 경악의 순간을 우리는 ‘맞서게 되지' 못한다. 환상을 사용하여 순간을 포착하는 시-예술이 그 경악의 얼굴을 객관화할 때 비로소 경악의 순간은 우리 앞에 나타난다. (입 속의 검은 잎)은 바로 자신의 얼굴을 본 메두사가 경악하는 순간을 객관화하는 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그의 어린 아들은/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그 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택시 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그 일이 터질지 모른다, 어디든지/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입 속의 검은 잎) 중에서 이 시에서 등장하는 진술과 사건들이 현실의 어떤 대응물을 지시한다고 본다면 곧바로 해석의 난점이 생길 것이다. 운전기사, 장례식, 망자의 혀, 없어진 사람들, 죽은 사람, 검은 잎,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나' 등, 이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이었다고 하더라도 이 시 텍스트 안에 배치되었을 땐 이 단어들은 그 대상들을 지시하지 않게 된다. 하나의 극적 공간 속으로 이 존재들은 새로 의미를 얻으며 움직인다. 이 움직임은 공포의 분위기에 맞추어진다. 어떤 가공할 권력에 의해 살육된 자들이라 상상할 수 있는 ‘무더기'의 실종된 자들-망자들-의 말하지 못하는 혀-잘린 혀일까?-는 유령처럼 이 세상을 돌아다닌다. 그 유령들은 벌써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린 사람들 몸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 혀들은 이제 ‘거리에 흘러넘'친다. 장례식은 살육당한 자들 중 한 명의 장례식일까? 그 죽은 이의 잘린 혀 역시 거리에 흘러 다닌다. 물론 그 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잘 들어보면 잘린 혀들이 내는어떤 철버덕거리는 소리, 성대가 잘려나간 채 바람만 빠지는 쇳소리를 내는, 꿈틀대는 소리들을, 원한들을, 슬픔들을, 저주들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환청 속에서 시적 화자는 자신의 혀가 ‘천천히 굳어'감을 자각한다. 그것은 시신을 실은 ‘백색의 차량 가득' 나부끼는 검은 잎 때문이다. 살육이 자행되는 세계에서 살해당한 자들의 유령이 검은 잎일까? 그 유령들-검은 잎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릴 때 혀는 굳어져오며, 이윽고 죽은 자의 혀가 된다. 그리하여 시는 죽은 자의 혀로 쓰여지게 된다. 그리하여 시인은 지옥에 가 있는 이들이 지옥에서 겪는 고통을 무당처럼 대신 말해주는 이가 된다. 정리하자면, 시적 화자가 온통 죽은 사람들의 세계에 와 있음을, 그리고 자신이 바로 그 세계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음을, 더 나아가 ‘죽은 사람'인 운전기사가 어딘가로 그를 데려가서 이 유령들이 시적 화자의 혀를 통해 죽음의 이 세계를 증언할 수 있도록 시적 화자에게 내리는 신들림을, 언제 살육될지 몰라 두려워하는(‘그 일이 언제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이의 음산한 어조로 이 시는 보여주고 있다. 아득한 공포의 순간/을 객관화시키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어떤 수수께끼를 동반한 순간적 전율을 느끼게 된다. 기형도의 시가 도달한 한 극점은 바로 여기다. 앞에서 보아온, 환상적 공간이 뚫어 놓은 순간의 구멍을 통해 나타나, 죽음을 퍼뜨리는 세계와 그 속에서 떠도는 유령들이, 이 시에선 하나의 전율케 하는 장면으로 종합되어 갑작스레, 충격적으로 우리에게 현현하기 때문이다. 이 경악의 세계는 물론 가상의 세계이고 현실 세계로 치환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형도 시의 세계가 현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향유 대상으로서의 단순한 가상과는 달리, 시어가 움직이는 과정 속에서 뿜어내는(메두사를 본 메두사), 자기 파열이 가져오는 전율을 우리에게 이 가상 세계는 던져주는데, 그 객관화된 전율과 맞서는 독자는 충격 속에서 새로운 현실에 부딪히며 일상적 시간의 지속이 파열되는 ‘순간'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상적 순간의 충격 속에서 일상적 시간 안에 감추어진 안개와같은 죽음의 습기를 감지하게 된다. 그런데 이 공포의 세계는 기형도 시가 열어 놓은 ‘순간의 통로'를 통해 드러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입 속의 검은 잎)의 세계는 그 반대 극점이라 할 수 있는 (숲으로 된 성벽)의 세계와 연결될 수 있다고 희망할 순 없을까. ‘순간의 통로'는 다시 저 유토피아적인 미의 세계로, 숲으로 된 아날로지의 세계, 공기 방울 같은 환상의 세계로 길을 열어 놓기도 하지 않았는가. 물론 아날로지의 세계가 급전하여 유령들의 세계, 경악의 세계가 현현하는 것을 우리는 앞에서 보아 왔다. 그러나 반대로, 경악의 세계가 급전하여 다시 저 아날로지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가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는가. 그리고 이 두 극점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경악의 세계는 다시 희미하게 ‘숲으로 된 성벽'으로 가는 길을 비출 수 있지 않을까. 유토피아적 세계는 부정성을 통해서만 희미하게 빛날 수 있다면 말이다./그렇다면 기형도의 시는 일상적 삶과 사회에 대한 비판과 부정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이를 통해세계와의 화해의 열망을 담아 놓을 수 있는 용기도 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를 보여주기 위해 두 세계의 연결 지점을 찾아내야 할 것이고, 이 작업은 상당한 분석과 해석을 요하는 일일 것이다. 글을 마치는 이 시점에서도 비평적 재구성은 완성되지 않았다. 아니 결코 완성될 수 없을 것이다. 여전히 기형도 시 텍스트는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며 몸을 벌리고 있다. (끝) ◆당선소감 영광이다.기쁘다.하지만 마음이 무거워진다.과연 좋은 글을 내가 계속 써나갈 수 있을지,두렵기조차 하다. 당선 통보를 받고 비평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좋은 비평을 하기 위해선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큰일이다. 지금은 문학의 정치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다.문학이 다시 정치에 복무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이 아니라 문학 자체의 정치성에 대해서,그리고 더욱 정치성이 짙은 비평에 대해서. 선거 행위만이 정치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면 정치는 윤리의 문제로서 생각해야 한다. 또한 윤리가 단순한 도덕의 차원이 아니라면 삶에서의 권력과 활력 문제로서 윤리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문학은 권력 망을 드러내고,비판하며 그것에서 삶이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를 줄 수 있고,삶의 활력을 북돋을 수 있지 않은가.그렇다면 문학의 윤리-정치성은 더욱 증폭되어야 하지 않을까. 문학 그리고 비평이 정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새로운 인간 관계의 가능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나에게 사랑과 기쁨을 전해 준 사람들에게,그리고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도,빈 말이 아닌 ‘고맙습니다.’란 말을 전하고 싶다. 이성혁 ●약력 67년 서울생, 한국외국어대 일어과 동 대학원(국문학), 외대강사, 99년 ‘문학과 창작' 평론부문 신인상 수상 ◆심사평 김용하의 ‘미적인 것의 정치성과 정치적인 것의 윤리성’,오홍진의 ‘관념으로 빚은 소설의 성채’,이성혁의 ‘경악의 얼굴-기형도론’,이은식의 ‘사물과 하나가 되기까지의 여정’,장사흠의 ‘풍경의 미학과 권력의 탐색’이 주목을 받았다. ‘미적인 것…’은 미학적 범주들과 시적 언어 사이의 조응 양상을꼼꼼히 살핀 글이지만,미적 개념들을 상호 연관시켜 긴밀한 인테리어를 꾸미는 데는 실패하였다.‘관념으로…’는 짐승의 세계와 신성의 세계 사이에서 요동하는 정찬 소설의 권력의 역학을 집요하게 추적하였으나 스스로 논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말았다.‘사물과…’는 다양한 철학적 개념들을 갈아타며 정현종의 시적 여정을 차분히 밟아간 글이었으나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지는 못하였다. ‘풍경의 미학…’과 ‘경악의 얼굴…’이 마지막까지 남았는데,‘풍경의…’는 최인훈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개진된 권력의 내면화와 그에 대한 문학적 응전의 과정을,핵심 의미체들을 길어내며 흥미진진하게 추적한 글이고,‘경악의…’는 시인의 심리학에 치중한 종래의 평문들을 단김에 뛰어넘어 극적 구성의 관점에서 기형도의 시 세계를 새롭게 조명한 글이다. 그러나‘풍경의…’는 기계적인 구성과 엉뚱한 결말이 글쓴이의 설익은 문학관을 엿보게 하였으며,‘경악의…’는 미학에서 사회학으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지리멸렬해지더니 급기야 막다른 길로 뛰어들고 말아,심사자들을 경악케 하였다.하지만 패기만만한 도전과 그 패기가 창안해 낸 새로운 해석 세계는 썩 강렬한 인상을 남겨 마지막 선택의 근거가 되었다.이성혁씨의 당선을 축하하며 끈기 있게 정진하기를 당부한다. 정과리 김인환
  • 계명대 연구소 조사/무점포 창업 ‘베이비시터’ 1위

    ‘올해 무점포 창업아이템 1순위는 베이비시터(Baby-Sitter)’ 계명대학교 뉴비즈니스 연구소는 최근 중소기업청 소상공인지원센터 상담사 와 창업컨설턴트 2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아이나 노인을 돌봐주는 베이비시터 및 실버시터 파견업이 올해 가장 유망한 무점포 창업아이템으로 꼽혔다고 5일 밝혔다. 이어 ▲소호쇼핑몰 ▲김치배달 전문점 ▲홍보대행서비스 체인점 ▲유기농 자연식 전문점 ▲어린이도서 방문 대여점 ▲가사도우미 파견업 ▲생식 전문점 ▲국배달 전문점 ▲태교 및 출산 도우미 등이 2∼10위에 올랐다.이밖에 ▲한방건강제품 전문점 ▲침대세탁업 ▲유리창 청소 대행업 ▲생과일 배달 전문점 ▲DVD 대여 전문점 ▲산소발생기 판매업 ▲수산물 배달 전문점 ▲출장세차업 등도 유망할 것으로 전망됐다. 유망 아이템 40개를 창업자금별로 보면 500만원 이하가 19개로 가장 많았다.500만∼1000만원 7개,1000만∼2000만원 10개,2000만원 이상이 4개였다. 정은주기자
  • 5호선 ‘날아가는 돼지’전

    서양에서 ‘날아가는 돼지’란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게 될 때를 의미하며,우리 민족에게도 돼지란 흔히 ‘대박’의 징조로 통한다. 지난 20일부터 시작해 내년 3월19일까지 계속되는 지하철 5호선 ‘날아가는 돼지 문화열차’에 탑승해 돼지꿈을 꿔보자.관람료는 600원. ‘날아가는∼’은 도시철도 5호선 8개 차량에서 펼쳐진다.강용면 주동진 황혜신 등이 참여한 첫 차량에는 오방색의 나무돼지가 천장에 매달려 있고,따뜻한 촉감의 천으로 만든 날개 달린 돼지 부조가 벽면에 붙어 있다.두번째차량은 디자이너 10인이 돼지고기 요리를 하는 주방을 꾸몄고,고창선이 꾸민 세번째 차량의 돼지마을은 조명 벽지 바닥 의자색깔까지 모두가 핑크 색으로,유리창에 우글우글한 돼지의 코믹한 얼굴이 일품이다. 행복한 돼지는 네번째 차량.수십 마리의 돼지 캐릭터가 창·벽면에 동동 떠다니는가 하면 안락한 쿠션과 방석이 의자에 깔려있다.다섯번째 차량에선 돼지그림 공모전이 열리고 여섯번째 차량에서는 돼지 사탕·초콜릿,요리 베스트 10선이 펼쳐진다.일곱번째 차량의 ‘미술관에 간 돼지’나,애니메이션으로 처리된 ‘아기 돼지 삼형제’‘꼬마돼지 레옹’의 여덟번째 차량도 독특한 볼거리다. 문화공연은 와우프로젝트(www.wowproject.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소영기자 symun@
  • 체첸 정부청사 차량폭탄 테러

    (모스크바 AFP AP 연합) 체첸 수도 그로즈니의 정부청사에 27일 오후(현지시간) 폭탄을 적재한 차량 2대가 돌진하는 테러가 발생,최소 41명이 숨졌다고 이타르타스 통신 등 러시아 언론들이 보도했다. 루슬란 차카예프 체첸 내무장관은 인테르팍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날 오후 2시30분쯤 폭탄을 실은 트럭과 지프형 자동차가 정부청사 건물로 잇따라돌진해 폭발,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체첸 당국이 정확한 희생자 수를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이 공격으로 정부청사 건물은 거의파손됐다.체첸 당국은 이번 테러에 쓰인 폭탄이 약 1t 정도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이타르 타스 통신은 체첸 검찰 소식통읨 말을 인용,사망자가 최소 41명 이상이라고 보도했으며 병원 소식통은 현재 20명이 숨지고 40여명이 부상했다고 확인했다. NTV 방송 등 러시아 방송들은 이날 폭발로 체첸 정부 청사 정면에 직경 5∼7m의 구멍이 생기고 유리창이 깨지는 등 건물이 심하게 파손됐다고 전하면서 파괴된 건물의 잔해 속에서 구조대원들이 사상자를 이송하는 장면을 상세히 보도했다.현장에는 경찰관 외에도 군인들도 투입돼 부상자 이송작업을 벌이고 있다. 폭발된 건물은 평상시에 150∼200명 정도가 근무해 왔다.특히 사건 발생 당시는 점심시간이 끝난 직후여서 건물 안에 상당수의 방문자들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이 건물은 내전으로 폐허가 된 그로즈니에서 수리복구된 몇 안되는 건물 중의 하나였다. 폭발 당시 아흐마드 카디로프 대통령과 미하일 바비치 부통령은 청사 안에없어 화를 모면했지만 청사 안에 있던 많은 정부 관리들의 피해가 우려된다고 방송들은 덧붙였다.카디로프 대통령은 현재 모스크바에 머물고 있다고 인테르팍스 통신이 보도했다.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즉시 사태를 보고받았다고 이타르타스 통신이 전했다.그러나 이번 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임을 주장하는 단체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이날 폭탄 테러는 인질범과 인질 17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지난 10월 모스크바극장 인질극 이후 가장 강도가 높은 체첸 반군의 공격으로 추정된다.당시 러시아 당국은 마취 가스를 투입,반군을포함해 17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인질극을 진압했다.이에 대한 반격으로 체첸 반군은 경찰서를 공격 25명을사살했다. 체첸 반군은 지난 99년 러시아가 분리주의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체첸에 군을 투입한 뒤 친러시아적인 현 정부를 배신자로 규정,정부 관리들 일부를 살해하기도 했다.체첸인의 대다수는 이슬람 교도들도 그동안 9·11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와의 연계설이 계속 제기됐다.
  • 음주 차량 한나라당사 ‘꽝’

    취객이 몰던 승용차가 한나라당 당사로 돌진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9일 밤 11시쯤 박모(42)씨가 자신의 엑셀 승용차에 아들(3)을 태운 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나라당 당사 정문을 향해 돌진해 당사 내부로 들어가 안내 데스크를 들이받았다.이 사고로 당사 정문이 떨어져 나가고 차 유리창이 깨졌으나,인명피해는 없었다. 사고를 목격한 한나라당 당직자들은 “만취한 박씨가 ‘의료비가 너무 비싸 살 수가 없다.’고 소리치며 당사 안으로 차를 몰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박씨를 불러 사고 경위를 조사했으나 만취한 박씨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경기도 해임결정 안팎/ “정도 벗어난 폭력대응 안된다”

    경기도가 지난달 행정자치부 장관실을 점거한 공무원에 대해 첫 해임 결정을 내린 것은 ‘공무원 신분으로서 최소한의 정도는 지켜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그 과정에서는 눈치작전도 치열했다. 수원시 소속 김모(행정7급·노조 경기도지역본부 조직국장)씨에 대해 행자부가 재량의 여지가 거의 없는 중징계(해임)를 요구해온 공문을 수원시가 접수한 것은 지난달 15일. 수원시는 행자부의 요청을 무시할 수도,앞장설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다른 자치단체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그러던 중 부산 동구와 경남 사천시가 29일 부산시와 경남도에 각각 징계 요청을 한 사실을 확인하고 다음날인 30일도에 징계 요청을 올렸다. 수원시 감사 관계자는 “그동안 해당 공무원에 대해 징계 요구를 해야할지를 놓고 고민을 무척 많이 했다.”면서 “만일 다른 자치단체에서 징계 요청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털어 놓았다. 징계요청을 넘겨받은 경기도는 20여건의 다른 안건들 때문에 이미 18일로 잡혀 있던 도 인사위원회 안건에 이 사안을 포함시켜,오후 1시20분쯤 회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부당징계 반대 등을 외치며 회의장 앞에서 농성중이던 노조 소속 공무원들이 회의가 열리자 마자 회의장에 진입,유리창 등이 파손되는 바람에 인사위가 중단돼 인사위원 7명은 김씨에 대해 아무런 결정도 하지 못한 채 회의장을 급히 빠져 나갔다. 회의장을 점거한 노조원들은 구호를 외치며 농성하다 ‘김씨 외에 다른 안건도 상정되어 있는 만큼 점거를 풀어달라.’는 도 간부공무원들의 부탁에 따라 2시40분쯤 밖으로 나와 회의장 앞에서 침묵시위를 벌였다. 인사위는 회의를 재개,상정된 징계건을 모두 처리한 후 맨 마지막으로 김씨를 출석시켰다.김씨는 “나의 행동은 노조활동 보장을 위한 정당한 행위였다.”고 소명한 것으로 알려졌다.인사위원장인 남기명 행정부지사는 김씨가 회의장을 나간 후 위원들의 의견을 들어 김씨에 대한 해임을 결정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인사위 관계자는 “노점상도 아닌 공무원 신분으로 장관실을 점거한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행위라는 데의견을 같이 했다.”고 말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
  • [열린세상] 남미의 납치산업

    라틴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고속 성장하는 산업은 납치산업이다.11월12일에 라틴아메리카주교단회의(Celam)의 의장을 맡고 있는 콜롬비아의 대주교 히메네스가 게릴라 조직인 콜롬비아혁명군(FARC)에 의해 납치되었다고 한다.게릴라 세력은 잡혀 있는 동료들과 교환하기 위해 고위 성직자를 노린 것이리라.벌써 올해만 해도 칼리의 대주교가 암살당했고,7명의 사제가 납치당했다.콜롬비아에서는 교회도 폭력의 소용돌이에서 자유롭지 않다.메데인 카르텔의 전설적인 두목인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사라졌지만,마약 관련 폭력도 여전히 극성이다.칼리나 메데인에서 남자가 20대를 넘기기 쉽지 않다는 말은 오래된 이야기이다.경제가 망가진 이 나라에서 유일하게 불황을 타지 않는 산업은 판유리 업계라고 한다.폭탄테러로 자주 빌딩의 유리창들이 날아가기 때문이다. 삼바 축제로 잘 알려진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도 조직폭력의 명성이 자자하다.지난 10월1일 리우 시가지는 공휴일처럼 텅 비었다.아이들은 등교하지 않았고,슈퍼마켓은 문을 열지 않았다.조직폭력의 경고때문에 누구도 감히 바깥으로 나가려하지 않았다.조직폭력을 척결하겠다는 노동자당 출신 시장의발언에 조직폭력 세력이 “해볼 테면 해봐라.”는 식으로 시위한 것이었다.파벨라(빈민가)는 완전히 조직폭력이 지배하는 해방구이다.경찰들도 얼씬거리길 거부하는 그런 곳이다. 상파울루 시에도 납치산업이 활황세를 타고 있다.작년에 30건에 불과하던 유괴사건이 올해 9월까지 251건으로 증가했다.최근에는 광고업계의 거부 와싱톤 올리베투가 유괴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부자들이나 고위 경영자들은 납치 위험을 줄이기 위해 헬기를 타고 출퇴근하고,도심을 이동할 때에는 경호원이 붙은 방탄자동차만 탄다.경영주가 매월 1인당 지출하는 경호비용은 평균 4000달러 정도.헬기 한대 값은 50만 달러에서 200만 달러에 이르지만 상파울루 상공은 헬기 운항이 가장 빈번한 5대 도시에 속한다.방탄조끼도 방어용 무기도 불티나게 팔린다.덕분에 민간보안업체들은 연 20억 달러의 매출액을 올린다. 콜롬비아,브라질을 뒤잇는 나라는 멕시코이다.경영인단체 코파르멕스에 따르면 2000년 393건의 납치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범죄추방 국민운동 본부장에 따르면 납치된 사람 수는 981명 이상이라고 한다.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건수보다 3배가량이 되리라 추정한다.피랍자 세 사람 가운데 두 사람은 두려워서 신고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도좌파 출신의 멕시코 시장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날로 증가하는 조직범죄를 소탕하기 위해서 뉴욕시장 출신인 줄리아니를 치안책임자로 최근에 영입했다.자국민들 가운데 그토록 믿을 만한 사람이 없는 것일까? 하기야 716건의 절도사건 가운데 66건이 전·현직 경찰관이 관련되어 있다고 하고,대부분 납치단은 경찰과 검찰에 끈을 대고 있다고 하니 이해될 법도 하다. 라틴아메리카의 납치산업은 불평등과 빈곤이 만들어낸 기형적인 산업이다.실제로 납치나 절도,강도 사건은 경제적 호황이 지속되면 줄어들다가 침체국면으로 바뀌면 다시 증가한다.성장률과 폭력 수준은 반비례하는 것이다.고용기회를 빼앗긴 청년들은 쉽게 조직폭력단의 유혹에 넘어간다.어느날 갑자기 검정색 고급 양복에다 빳빳한 달러 뭉치를 들고 애인 앞에 나타나 으스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폭력산업은 브라질의 경우 연 4만명의 젊은 피를 먹고 자라는 독버섯이다.그리고 경제적으로도 큰 손실이다.40년을 더 일할 수 있는 이들이 20대에 죽는다고 가정하면,약 GDP의 10%가 유실되는 것이라고 미주개발은행은 분석한다.멕시코의 경우 치안불안의 비용은 GDP의 12%나 된다고 한 연구결과가 보고한다.적어도 성장률이 5∼6%는 되어야 노동시장의 압력을 어느정도 흡수할 수 있다고 하지만,칠레를 제외한 대부분 나라들의 실적은 이에 훨씬 못미친다. 이성형 세종연구소 초빙연구위원
  • 책/ 석주명 평전 - 일제 암흑기 ‘나비박사’의 삶

    논문 한 줄을 쓰려고 나비 3만 마리를 만진 사람,참담한 일제 암흑기에 세계적 생물학자로 한줄기 빛을 던진 사람.그렇게 얻은 별칭이 ‘나비 박사’인 사람. 평생을 나비연구에 바친 석주명(1908∼1950) 박사의 이야기가 ‘석주명 평전’(이병철 지음,그물코 펴냄)이란 담담한 제목으로 출간됐다.지은이는 지난 17년 동안 석주명의 평전을 3차례나 펴냈다.그는 “미국에 살고 있어 못만나던 석주명의 외동딸 윤희씨를 만나 새로 얻은 사실들을 보탰다.”고 개정판의 의미를 밝혔다. 마흔 초반의 나이에 안타깝게 비명횡사한 석주명의 삶과 사상을 출생 시점부터 오롯이 복원했다.1908년 11월 평양의 부잣집 둘째아들로 태어난 그가 나비연구를 시작한 건 우연이었다.일본 최고의 농림학교인 가고시마 고농 시절,은사의 권유가 계기가 됐다. 무턱대고 대들어 고집스럽게 매달린 연구는 놀라운 성과를 얻었다.중등학교 교사이던 그가 일본학계의 한국나비 관련 이론을 뒤집은 건 무엇보다 큰 쾌거였다.일본 학자들이 개체변이(같은 종인데도 날개 길이,빛깔,무늬수등의 형질이 다른 현상)를 이해하지 못해 다른 종으로 분류한 921개 가운데 무려 844개를 말소한 것. 유리창나비를 처음 발견한 것도 그였다.오늘날 세계 학계에서 통용되는 유리창나비의 아종명(亞種名)에는 그의 성을 딴 ‘SEOK’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다.10여년간 70만 마리가 넘는 나비를 채집해 일일이 형질을 측정하고 통계를 낸 결과물이었다. 나비연구에만 매달린 게 아니었다.제주도 방언에 천착해 국어연구에 귀한 자료를 남겼고,해외에 한국을 알리는 도구로서 에스페란토 보급에 앞장섰다.산악활동으로 국토구명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석주명이 생물학자뿐만이 아니라 국학자로도 평가되어야 하는 당위도 짚어간다.그 스스로가 밝힌 학문적 입장이 우선 그러했다.“국학이란 인문과학에 국한될 것이 아니고 자연과학에도 관련된 것으로,더욱이 생물학 방면에서는 깊은 관련성을 발견할 수가 있다.조선에 많은 까치나 맹꽁이는 미국에도 소련에도 없고,조선사람이 상식하는 쌀은 미국이나 소련에서는 그리 많이 먹지 않는다.” 나비연구는 국학의 한 테마인 것이다. 이 책의 진가는 석주명의 짧은 생애를 통해 빛나는 삶의 진리를 건져올리는 데 있다.석주명은 말한다.“남이 하지 않은 일을 10년간 하면 꼭 성공한다.세월 속에 씨를 뿌려라.그 씨는 쭉정이가 되어서는 안 되고 정성껏 가꿔야만 한다.”1만 2000원. 황수정기자 sjh@
  • 강릉 피해 유가족 표정 - “혼자 살아남은게 고통”

    “황톳물에 차와 함께 잠긴 아버지의 시신 옆에서 밤을 새웠습니다.저수지둑의 붕괴 위험을 알리는 경보라도 있었다면….” 사상 최악의 수해로 아버지 이창희(65)씨를 잃은 이근숙(29·여)씨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강원도 강릉시 장현저수지의 둑이 터진 지난달 31일 오전 10시쯤 이씨는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는 딸을 평소처럼 승용차에 태워 출근시키고 돌아오던 길이었다.갑자기 저수지의 물이 터져 도로가 무너져 내리면서 이씨의 승용차도 물살에 휩쓸렸다. 백방으로 이씨를 찾던 가족들은 다음날에야 물 바깥으로 조금 드러난 이씨의 승용차 지붕을 발견했다.하지만 물살이 거센데다 구조장비도 없어 현장에서 발만 동동 구르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2일 구조요원 3명이 승용차 지붕을 뜯어 가까스로 이씨의 시신을 영안실로 옮길 수 있었다. 이씨의 승용차가 물에 휩쓸려간 시각,강릉시 왕산면 오봉댐 근처 도로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동료 2명을 잃은 농협 직원들은 3일에도 일손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사고를 당한 김상기(32)·이귀동(33)씨는강릉농협 왕산지소로 출근하는 길이었다.직원 심요섭(38)씨는 “출근시간에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참변이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같은 곳을 지나던 박용만(43) 왕산지소장은 흙더미가 쏟아지는 순간 운전석 옆 유리창을 깨고 기어 나와 극적으로 목숨을 구했다.박씨는 “살아 있는 것이 미안하고 직원들의 유족 앞에서는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강릉 윤창수기자
  • 5·18 유공자 ‘안타까운 죽음’ 차량절도범 쫓다 흉기 찔려

    전남지방경찰청은 21일 강도 용의자를 붙잡으려다 흉기에 찔려 숨진 5·18광주민중항쟁 유공자 조재현(사진·52·광주 서구 양3동)씨와 부상을 입은 조씨의 둘째 아들(30·자영업)을 의사상자로 지정해 주도록 보건복지부 등에 건의했다. 조씨는 지난 20일 새벽 1시45분쯤 광주 서구 양3동 자신의 집 앞 골목에 세워둔 이웃 주민의 차량에서 금품을 훔치려던 이모(32·전과 5범)씨를 발견하고 붙잡으려다 이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조씨는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온 뒤 유리창 깨지는 소리를 듣고 뛰쳐나간뒤 용의자를 150m가량 뒤쫓아가다 흉기에 오른쪽 다리 대퇴부를 다쳐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졌다.또 아버지의 비명에 놀라 달려나온 조씨의 둘째 아들도 이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렸으나 이웃 주민들과 힘을 합쳐 용의자를 사로잡았다. 조씨는 80년 5·18 당시 광주 금남로 등에서 차량시위를 주도한 민주택시기사 동지회 소속으로 활동하다 계엄군의 곤봉에 머리를 심하게 다쳐 후유증에 시달려왔다. 이날 조씨의 빈소에는 임상호 전남지방경찰청장이 보낸 300만원을 비롯해 광주서부경찰서장,광주서구청장,서구 양동 주민 등이 전달한 성금이 줄을 이었다.경찰은 이날 용의자 이씨에 대해 강도살인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
  • 北주민 해상귀순/귀순 순종식씨 문답 “”10일간 물품준비 배 고파서 왔다””

    순종식(70)씨 등 북한주민 21명은 19일 새벽 4시쯤 인천 해경부두에 도착해 35분 뒤 배 밖으로 나왔다.순씨는 두 손에 어린 두 손자의 손을 하나씩 잡고 천천히 걸어나와 귀순한 첫 소감을 묻는 질문에 “감사합니다.”“환대해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라며 밝은 표정으로 답했다. 이들은 긴 항해와 추운 바다날씨에 대비,대부분 긴팔 점퍼 등 가을옷을 입고 있었다.일부 여성과 어린이들은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었다.신발은 남색과 하얀색 운동화,구두,슬리퍼 등을 신었다. 다음은 순씨와 나눈 일문일답. *언제부터 탈출을 준비했나. 10일 전부터 준비했다. *고향이 어디인가. 충남 논산군 부적면 신교리다. *왜 왔는가. 배고파서 왔다. *북한에서 무엇을 했는가. 고기잡이를 했다. *남한에 가족이 있는가. 논산에 동생들이 있다. 이들은 간단히 사진촬영과 대화에 응한 뒤 재빨리 준비된 버스에 올라 탈북 경위 등을 조사받기 위해 서울 안가로 떠났다. 버스 안에서도 웃는 표정으로 창 밖을 내다보며 손을 흔들었다.순광일(12)군 등 어린이들은서울로 향하는 차내에서 습기찬 유리창을 손으로 닦아내며 밖을 구경하기도 했다. 윤창수기자 geo@
  • [열린세상] 풍요 속의 빈곤

    우리는 잘 산다. 쇼핑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말겠다는 듯 카트에 상품을 가득 싣고 나오는 신도시 사람들의 행렬,행락객의 자동차들로 꽉 메운 주말의 도로,저녁 식당으로 몰려가 넘치는 음식상에 빼곡히 들어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불야성을 이루며 자동차가 질주하는 심야의 도시 풍경 등을 보면 우리가 정말 잘 살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우리보다 GNP가 높은 선진국의 생활을 보면 우리는 그들보다 낭비가 심하다 할 정도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살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물질적 욕구 불만에 짓눌려 있는 것 같다.얼마 전 우리나라에온 미국인을 만난 적이 있다.그는 한국이 경기가 좋아 보인다고 몇 번이나말했다.얼마 전에 IMF를 겪었고,또 파업 등이 자주 일어나 사회가 혼란할 것으로 짐작했는데 백화점에는 쇼핑하는 사람들로 매우 붐비고,고급 식당에도 손님들이 많이 있어 놀랐다는 것이었다. 나는 방학 때면 전시도 볼 겸,프로젝트나 전시 미팅을 위해 외국 여행을 한다.지난 여름 런던에 갔을 때의 일이다.히드로 공항에 내려 시내로 들어가기 위해 2층 버스를 탔다.그런데 이게 웬일인가.그 해 들어 가장 덥다는 섭씨36도의 그 날 버스 안은 완전히 찜통이었다.2층 버스는 안전을 위해 유리창을 열지 못하게 고정되어 있고 에어컨은 아예 처음부터 시설이 없다는 것이었다.나중에 지인으로부터 듣고 알았지만 에어컨이 없는 것은 버스뿐만이 아니었다.지하철,영화관,박물관,음악홀 등 공공건물들 대부분에 에어컨이 없다는 것이었다. 영국인의 검소한 생활 습관인지,아니면 우리나라처럼 날씨가 덥지 않기 때문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에너지를 절약하는 그들의 습관과 태도는 대단했다.어쨌든 무사히 더위를 견뎌내고 인천 공항에 도착하여 공항버스를 타자마자 그 전에도 버스를 탔던 나는 새삼스럽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추울 정도로 팡팡 뿜어 나오는 버스 속의 에어컨 바람,여느 때 같았으면 놀랄 것도 없는 것이었는데…. 돈이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돈만 있으면 편한 세상이다라는 말을 자주들으면서 우리는 살고 있다.사실 맞는 말일수도 있다.하지만 그렇게 돈이세상의 중심이 되어 있다면 우리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고 서글픈 존재들인가! 선진국에서는 돈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수없이 많다.돈으로 아무 때고 사람의 시간을 살 수도 없으며,돈이 있다 해도 사회적 규범을 벗어나서 일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숙고해야 하지 않을까.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돈이면 다 된다는 사고방식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는 습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모든 것을 경제 논리로 보는 경향이있다.며칠 전 어느 문화단체의 기관장과 자리를 함께했는데 뭐든 가릴 것 없이 아웃소싱을 하든,민간위탁 경영을 하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라고 이 기관장은 말했다.그러나 문화는 경제논리로만 볼 수 없다.장기적으로 투자를 하고 그 투자 결과문화 예술 전 분야에 걸쳐 우수한 예술가가 나와 전 세계에서 활약하게 될때 단기적 경제논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경제적 부가가치 획득은 물론 국가의문화적 위상 및 국력 제고가 이뤄지는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부터 개인에 이르기까지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는 말을 자주하고 지낸다.이때 문화의 세기라는 개념을 경제적 부가가치 논리에서 바라보더라도 직접적이 아니라 간접적인 차원으로 접근해야 마땅하다.성과 논리를 우선순위로 적용시키고 있는현실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돈이나 물질보다 소중한 것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이와 관련해 선진국과 우리 자신을 냉정하게 비교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전수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설치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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