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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비비탄 쏜 후 계속 운전했다” ‘이태원 난동’ 미군하사 범행 자백

    “내가 비비탄 쏜 후 계속 운전했다” ‘이태원 난동’ 미군하사 범행 자백

    지난 2일 서울 용산 이태원에서 난동을 부리고 도주하다 경찰관을 차로 치고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는 미군 C(26) 하사가 11일 경찰에 자진 출석해 범행을 자백했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C 하사가 1차 조사 때와 달리 사건 당일 비비탄총을 쏜 후 도주 차량을 계속 운전한 것이 자신이라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다만 C 하사는 자신이 도주를 주도하지 않고 옆에서 F(22·여) 상병이 충동질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경찰은 밝혔다. 지난 5일 1차 조사 당시만 해도 C 하사는 도주차량 운전자 등을 놓고 동승했던 R(23) 상병, F 상병과 엇갈린 주장을 폈다. 지난 6일 F 상병과의 대질신문에서도 C 하사는 “운전을 하다 녹사평 근처에서 R 상병과 자리를 바꿨다”면서 “당시 유리창 파편이 눈에 들어가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했다. 반면 다른 동승자들은 “비비탄총을 쏜 것도, 운전을 한 것도 모두 C 하사”라고 진술했다. 경찰은 C 하사에 대해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죄와 폭행 혐의 등을 적용해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R, F 상병 등도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 적용 여부를 검토 중이다. 경찰이 주한미군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면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담당 검사가 이를 검토해 법무부에 보고하고 법무부가 미군과 관련 협의를 마치면 법원에서 해당 주한미군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하게 된다. 이후 영장이 발부되면 법원이 지정한 구치소에 수감된다. 오후 2시 용산서에 출석한 C 하사는 4일과 6일 출석 때와는 달리 군 정복을 입고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담담한 표정을 보였다. 경찰 관계자는 “C 하사가 직접 자백하는 것이 나중에 재판에서 정상참작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얼굴을 공개한 것 역시 미군 측 지침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김정은 기자 kimje@seoul.co.kr
  • 난동 미군 “내가 운전 안했다” 서로 발뺌

    서울 도심에서 난동을 피운 미군들이 6일 진행된 대질신문에서도 누가 차로 경찰관을 들이받으려 했는지에 대해 서로 엇갈린 진술을 했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지난 4일 조사를 받은 C(26) 하사와 F(22·여) 상병을 이날 오전 10시쯤 다시 불러 2시간가량 대질신문을 했다. 대질신문에서 F 상병은 “경찰을 향해 차를 몬 것은 C 하사”라고 진술한 반면 C 하사는 “녹사평역에서 운전자를 바꿨기 때문에 경찰관을 향해 차를 몬 것은 R(23) 상병”이라고 주장했다. C 하사는 용산구 이태원에서는 본인이 운전했지만 대치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깬 유리창 파편이 눈에 들어가 더는 운전을 할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이 쏜 유탄을 어깨에 맞아 치료 중인 R 상병도 전날 F 상병과 비슷한 취지의 진술을 했다. 경찰은 사건 당일 경찰과 함께 이들을 뒤쫓은 택시기사 최모(39)씨와 현장을 둘러보며 C 하사의 진술처럼 운전자를 바꿀 만한 장소가 있었는지 조사 중이다. 또 인근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해 진술의 신빙성을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거짓말탐지기를 이용할 방침이다. 미군들의 진술이 끝까지 엇갈리는 이유는 마지막 순간 누가 운전했느냐에 따라 처벌 강도가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당시 도주 차량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자 뒤쫓아온 임경묵(38) 순경을 향해 수차례 돌진했다. 서로 공모해 임 순경을 차로 위협한 것이 아니라면 3명 중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 혐의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또 운전자가 독단적으로 도주를 시작했다면 나머지는 무혐의 처리될 가능성도 있다 한편, 경찰 조사 결과 사건 당일 시민을 겨냥해 비비탄총을 쏜 사람은 F 상병인 것으로 드러났다. F 상병은 “아무 생각 없이 재미 삼아 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F 상병 외에도 비비탄총을 쏜 사람이 더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날 미군 측으로부터 R 상병의 몸에서 제거한 유탄을 제출받았다. 김정은 기자 kimje@seoul.co.kr
  • “내 자동차 살려라!” 온몸으로 우박 막아낸 남자

    “내 자동차 살려라!” 온몸으로 우박 막아낸 남자

    몸을 날려 애마를 보호하는 남자의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 화제가 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해안도시 마르델플라타에서는 지난 24일(현지시각) 갑자기 폭우가 몰아쳤다. 오후 3시쯤 맑았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더니 기상청도 내다보지 못한 폭우가 쏟아지면서 강풍과 함께 우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작게는 골프공, 크게는 테니스공만큼 큰 우박이 두두둑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도시에선 한바탕 난리가 났다. 자동차가 우박을 맞으면 형편없는 곰보가 될 걸 우려한 시민들이 자동차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느라 난리법석을 떨었다. 실내주차장엔 금방 자동차로 넘쳤다. 가로수 밑에도 우박을 피한 자동차고 가득 찼다. 동영상의 주인공은 자동차를 가로수 옆으로 옮겼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남자는 절대 자동차를 곰보로 만들진 않겠다고 작정한 듯 차 위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개구리 헤엄을 치는 듯한 동작을 하며 온몸으로 우박을 막아냈다. 가족으로 보이는 또 다른 남자는 담요를 들고 나가 보닛과 유리창을 덮었다. 웃음을 자아내는 동영상은 한 주민이 촬영해 유튜브에 올렸다. 이날 우박으로 마르델플라타에선 자동차 앞유리나 뒷유리가 깨져나가고 차체가 곰보가 되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다. 사진=유튜브 캡처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DB를 열다] 1968년 나비작전으로 철거된 종삼 골목

    [DB를 열다] 1968년 나비작전으로 철거된 종삼 골목

    1968년 10월 5일, 속칭 ‘종삼’으로 불리던 서울 종로3가 일대 사창가가 30여년 만에 철거됐다. 종삼의 위치는 종로3가 로터리~돈화문~원남동 로터리~종로4가 로터리~종로3가 로터리를 연결하는 구역 안의 종로 3·4가, 낙원동, 묘동, 봉익동, 훈정동, 인의동, 와룡동, 권농동, 원남동 일대였다. 이날 윤락녀 72명이 마지막으로 보호소에 넘겨짐으로써 250여 가구, 1400여명에 이르던 사창가 여인들이 종삼을 완전히 떠났다. 땅값은 며칠 사이에 배나 뛰었지만, 살길이 막막해진 창녀들은 수용소로 가던 버스 안에서 유리창을 깨면서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사진은 윤락녀들이 떠난 후 촬영한 종삼 골목 풍경이다. 새벽 5시에 시작된 철거 작전의 이름은 ‘나비 작전’이었다. 나비란 윤락녀(꽃)를 찾는 남성들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사창가를 없애려면 윤락녀를 단속하는 것보다 유객들을 단속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데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나비에 이어서 꽃을 내쫓은 이 작전은 김현옥 시장의 작품이었다. 종삼을 자주 드나들었던 사람들은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소위 ‘먹물’들이었다. 그들 사이에서 종삼은 전쟁이 끝난 뒤 황폐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허무감에 빠져 방황하던 영혼을 달래줄 안식처로 미화되었다. 생존한 한 원로 시인은 1950년대의 폐허에서는 명동의 술과 종삼의 여자만이 작가의 고향이었다고 적고 있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러시아 운석 UFO가 격추 시켜?…추가 영상 공개

    러시아 운석 UFO가 격추 시켜?…추가 영상 공개

    최근 러시아 우랄산맥 상공에서 폭발한 운석은 미확인비행물체(UFO)가 격추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추가 영상이 공개돼 화제다. 19일(현지시간) 미국 개더닷컴에 따르면 17일 동영상 사이트에는 러시아 운석 폭발을 목격한 UFO라는 동영상이 공개됐다. 러시아 국영방송 ‘1TV’의 보도 영상을 재편집한 이 영상에는 운석 추락 직후 상공에 나타난 비행운을 찍은 화면에 정체불명의 물체가 나타나 있다. 비록 이 물체는 움직이지 않고 있지만 함께 공개된 원본 영상에도 그 모습을 나타내고 있어 조작은 아닌 듯 보인다. 이에 대해 일부 네티즌은 이 UFO가 운석을 격추한 뒤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같은 날(17일) 유튜브에 올라온 ‘첼랴빈스크 운석은 사실 격추됐다?’라는 제목의 동영상 역시 ‘UFO 격추론’을 뒷받침한다는 게 일부 네티즌의 반응이다. 당시 공개된 영상에는 밝게 빛나며 불타는 불덩이유성(운석이 떨어지기 전 상태)이 낙하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유성꼬리 부분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작은 물체가 유성과 그대로 부딪히더니 그 앞으로 나타나는 모습을 보인다. 그 직후 유성은 폭발해 운석우가 되는 장면이 그대로 나타났다. 또한 이 같은 장면은 좀 더 확대되고 명암이 반전된 화면을 통해 이 작은 물체가 유성에 어떤 행동을 하는지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이 밖에도 이번 공중 폭발 때문에 커다란 운석은 호수로 낙하해 피해가 최소화됐다는 견해가 나오기도 했다. 한편 지난 15일 첼랴빈스크주(州) 상공에서 폭발한 운석우의 충격파 때문에 건물 유리창이 깨지면서 날아온 유리 파편에 주민 1200여 명이 부상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유튜브 캡처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러시아 운석 폭발시킨 것은 UFO?…분석 영상 화제

    러시아 운석 폭발시킨 것은 UFO?…분석 영상 화제

    최근 러시아 우랄산맥 상공에서 폭발한 운석은 미확인비행물체(UFO)가 격추했기 때문이라는 주장과 함께 이를 분석한 동영상이 인터넷상에 공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17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는 ‘첼랴빈스크 운석은 사실 격추됐다?’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에는 밝게 빛나며 불타는 불덩이유성(운석이 떨어지기 전 상태)이 낙하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유성꼬리 부분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작은 물체가 유성과 그대로 부딪히더니 그 앞으로 나타나는 모습을 보인다. 그 직후 유성은 폭발해 운석우가 되는 장면이 그대로 나타났다. 또한 이 같은 장면은 좀 더 확대되고 명암이 반전된 화면을 통해 이 작은 물체가 유성에 어떤 행동을 하는지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영상을 접한 일부 네티즌은 “정말 UFO다.”, “착한 외계인이 도와준 것 같다.” 등의 호응을 보이며 UFO 격추설을 믿는 듯 보였지만, 또 다른 네티즌들은 “조작된 영상이다.”, “그 물체는 러시아 미사일일 것”이라면서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기도 했다. 한편 지난 15일 첼랴빈스크주(州) 상공에서 폭발한 운석우의 충격파 때문에 지역 건물의 유리창이 깨지면서 날아온 유리 파편에 주민 12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하지만 이번 공중 폭발로 커다란 운석은 호수에 낙하했기 때문에 피해를 최소한으로 막을 수 있었다는 견해가 나오기도 했다. 사진=유튜브 캡처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러시아 유성폭발, 북 핵실험보다 강했다

    러시아 유성폭발, 북 핵실험보다 강했다

    러시아에서 1000여명의 부상자를 발생시킨 유성의 폭발력이 애초 예상과는 달리 300킬로톤에 상응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고 16일 러시아투데이 등 외신이 보도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마셜우주비행센터 유성체환경연구실(MEO)의 빌 쿡 연구원에 따르면 NASA는 그 유성 폭발이 300킬로톤(TNT 30만톤의 폭발력)에 해당한다고 예측하고 있다. 이는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20배에 달하는 위력이다. 캐나다의 천문학자 마가렛 켐벨-브라운 박사는 네이처 매거진에 “그 폭발은 최근 북한에서 시행한 핵실험보다 강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켐벨-브라운 박사는 충격이 발생한 인근 지역에 있는 (핵실험 감지에 이용되는) 초음파 분석소 두 곳의 데이터를 인용해 유성은 최초 지름이 15m이며 무게는 40톤 정도 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그는 “만약 그 유성이 완벽하게 지구와 충돌했다면 수십년 전 러시아 퉁구스카 대폭발 사건보다도 위력이 강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아직 그 유성의 최초 크기를 두고 의견이 갈리고 있다. 이는 유성이 폭발한 높이 때문이다. 애초 러시아과학아카데미(RAN)는 그 유성은 단일체로 그 무게는 약 10톤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첼랴빈스크주(州)에 떨어진 그 불덩이유성은 대기권에 약 20km/s의 속도로 진입했으며 지상에서 약 30~50km 부근에서 폭발했다. 세 번의 연속 폭발로 산산조각처럼 부서져 운석우가 돼 떨어졌다고 한다. 이 영향으로 일부 운석 파편이 상공 약 5~15km 부근까지 방출됐으며 이 중 커다란 운석은 지상으로 떨어진 것으로 보고됐다. 첼랴빈스크주(州)와 스베르들롭스크주, 튜멘주 등 지역에서는 유리창 등이 파손되면서 파편에 맞아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또한 세바르쿨 호수에는 꽤 커다란 운석이 떨어져 얼어붙어 있던 호수 표면에 6m 크기의 구멍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아직 유성 폭발의 정확한 높이를 두고 논의 중이다. 폭발력이 300킬로톤이라는 NASA 측 분석과 0.1킬로톤밖에 안 된다는 러시아 측 주장으로 갈리고 있으며 유성의 궤도에 대해서도 의견이 나뉘고 있다. 이는 어떠한 천문학자도 이 유성을 사전에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제천문연맹 산하 소행성센터(MPC)의 티모시 슈파르 연구원은 “그처럼 작은 물체를 하루나 이틀 전에 미리 발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떨어진 운석 조각은 대기 중에 오래 남지 못하며 비가 오면 침전될 것이다. 이 같은 운석은 분석을 통해서만 식별 가능하며 이들 파편이 방사능 등 심각한 오염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러시아 측 과학자들은 설명했다. 한편 러시아를 비롯한 많은 과학자들은 이번 운석우가 소행성(2012 DA14)과는 무관할 것이라고 전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美 ‘보복 살해’ 前경찰 오두막집 대치 중 사망”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경찰관 등 3명을 살해한 뒤 도주한 전직 경찰 크리스토퍼 도너(33)가 경찰과 대치하던 중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타임스가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경찰은 12일 그가 은신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빅베어레이크의 숲속 오두막집을 포위하고 체포 작전에 들어갔다. 대치하던 경찰이 도너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오두막집에 갑자기 불길이 치솟았으며 CNN 등 언론은 오두막집이 불타는 장면을 전국에 생중계했다. 샌버너디노 카운티 보안관실은 이날 밤 발표한 성명에서 “오두막집에서 불에 탄 시신이 발견됐다. 도너인지 확인하기 위해 시신을 부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건 현장에서는 도너의 면허증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경찰은 도너의 투항을 유도하기 위해 그가 숨어든 것으로 추정되는 오두막집의 유리창을 깨고 최루가스를 발사했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자 차량을 동원해 오두막집의 벽을 부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오두막집 내부에서 한 차례 총성이 들렸고 잠시 후 오두막집이 불길에 휩싸였다고 LA타임스가 전했다. 지난주 이 지역에서 도너가 훔친 트럭이 발견된 이후 잠복해 온 경찰은 이날 도너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사람이 트럭을 운전하는 모습이 발견됐다는 제보를 받고 그의 뒤를 쫓았다. 트럭을 운전하고 있는 도너를 발견한 경찰은 창문을 사이에 두고 총격전을 벌였으며 도너는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차량에서 뛰어내린 뒤 오두막집으로 피신했다. 이 과정에서 샌버너디노 카운티 보안관실 소속 보안관 1명이 숨지고 다른 1명이 부상을 입었다. 도너는 2008년 경찰에서 해고된 뒤 이에 앙심을 품고 지난 3일 전직 상관의 딸과 그의 약혼자를 총으로 쏴 숨지게 하고 이어 7일 순찰 중이던 경찰관을 살해한 혐의로 경찰의 추적을 받았다. 도너는 경찰과의 전쟁을 선포한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신을 해고한 경찰을 비난하며 살해 대상자를 지목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도너를 검거하기 위해 경찰 수천명을 동원했지만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한 로스앤젤레스 경찰은 급기야 100만 달러(약 10억원)라는 거액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거창 규모 3.5지진… 일대 진동 감지

    기상청은 5일 오후 9시 25분 경남 거창군 북북동쪽 11㎞ 지점(북위 35.77, 동경 127.97)에서 규모 3.5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 지진으로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지역에서 땅이 흔들리는 진동이 감지됐다. 지진이 발생하자 거창소방서 119상황실과 경찰서 상황실에는 진동을 감지한 문의 전화가 잇따랐다. 일부 주민들은 진동을 크게 느끼고 놀라서 건물 밖으로 뛰쳐나와 경찰에 신고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대구, 구미, 공주, 광주 등지에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창이 흔들렸다는 제보가 들어오고 있다”면서 “특별한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이번 지진은 올해 국내에서 발생한 다섯 번째 지진으로, 사람이 진동을 느낄 수 있는 유감(有感)지진으로는 올해 처음이다. 거창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DB를 열다] 53명의 목숨 앗아간 1972년 서울 시민회관 화재

    [DB를 열다] 53명의 목숨 앗아간 1972년 서울 시민회관 화재

    1972년 12월 밤 8시 28분쯤 서울 세종로 서울시민회관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이날 시민회관에서는 문화방송 개국 11주년 행사로 10대 가수 청백전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남진, 이상렬, 이용복, 정훈희, 조미미, 하춘화와 신인상 수상자 김세환·정미조, 특별상 수상자 김추자, 코미디언 구봉서·곽규석 등도 공연에 참가하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밖으로 나오는 사이 갑자기 무대 위 조명장치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터지면서 불이 나기 시작했다. 원인은 전기 과열로 말미암은 합선이었다. 공연이 끝났기 때문에 막이 내려오고 있었고 불길은 막으로 옮겨붙어 삽시간에 번졌다. 관객 중에서 3분의2 정도는 퇴장한 상태였지만 아직 나가지 못한 사람도 많아 회관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무대 쪽에서 시작된 불은 천장 쪽으로 치솟았고 위층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아래층으로 물밀듯이 밀려왔다. 관객들은 서로 먼저 나가려고 밀치고, 계단에서 넘어졌으며 여성들과 아이들이 깔렸다. 2층에 있던 관객 수십명은 창문을 깨고 뛰어내리기도 했다. 이 화재로 53명이 죽고 76명이 다쳤으며 부상자 중에는 가수 문주란과 김상희도 있었다. 김상희는 가벼운 부상을 당했지만, 문주란은 화장실 유리창을 깨고 뛰어내렸다가 허리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시민회관 화재는 1971년 대연각호텔 화재, 1974년 청량리역 대왕코너 화재와 함께 1970년대 서울의 3대 화재 사건 중 하나다. 시민회관은 1956년 6월 1일 착공됐다. 이승만 정부 시절 국가 최대의 프로젝트로 체신부 청사 자리에 새 건물을 짓기 시작했는데 원래 이름은 우남회관이었다. 우남은 이승만의 아호다. 야당의 반대 등 우여곡절 끝에 1961년 10월 31일 완공됐지만 이미 4·19, 5·16이 지난 뒤여서 우남이라는 이름이 사라진 것은 당연했다. 시민회관은 1960년대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명소였다. 공연과 음악회가 자주 열렸고 10층 옥탑은 당시 주변 건물 중 가장 높아서 야경을 즐길 수 있는 훌륭한 전망대였다. 완전히 소실된 시민회관 자리에 세종문화회관이 1974년 1월 착공되어 1978년 4월 완공되었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데스크 시각] 정부와 시민/박찬구 정치부장

    [데스크 시각] 정부와 시민/박찬구 정치부장

    1970년대 국민학교(현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매스게임 같은 집체교육이나 전교생이 일체화된 듯한 검은 교복에 짧은 머리가 떠오른다. 한글과 구구단을 배울 때부터, 나는 ‘개인’이 아니라 ‘전체’의 하나로서 학교의 규칙과 질서에 나 자신을 맞춰 가는 법을 익혀야 했다. 익숙하다 못해 무의식으로 내면화될 정도로…. 그러다 보면, 가끔씩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이 순종과 보상의 ‘우쭐한’ 징표로 손등이나 공책에 찍히곤 했다. 학교가 주입하는 질서와 규칙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복도나 화단 청소를 도맡고 교무실에 불려다니다 어느새 ‘가까이하면 안 될’ 외톨이로 낙인찍혔다. 열살 남짓한 외톨이는 ‘껄렁껄렁한’ 불량학생으로 분류되고, ‘선도’의 대상으로 체육 선생님의 수첩에 이름이 올랐다. 학교 뒤 수정산 움막에서 병든 아버지와 살던 윤 아무개, 도시락을 제대로 싸들고 다닌 적이 없는 이 아무개,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던, 큰 목소리의 손 아무개 등이 그랬다. ‘상급기관’에서 장학사가 파견될 때면, 일주일 전부터 전교생이 동원돼 하루 한두 시간씩 학교 유리창을 닦거나 교실 게시판을 꾸며야 했다.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절대적인 존재였던 교장 선생님도 장학사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목소리를 떠는 게 참 신기해 보였다. 우리는 장학사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훗날 피라미드 같은 권력의 조직도에서 교장선생님과 장학사의 위치는 어디쯤이었을까,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환경미화의 절정은 크레파스로 색칠한 그림이었다. 인물이나 풍경을 그린 그림도 있었지만, 일년에 두어번씩은 모두 같은 주제의 그림들이 내걸렸다. ‘반공’….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아주 꼬마 때부터 수없이 보고 들은 말이라, 어떨 땐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반공’ 그림 하면, 뿔 달리고 동물 수염을 기른 붉은 색과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푸른 색이 좌우로 그려지던 게 그 당시의 법칙이었다. 아이들의 그림은 붉은 색의 날카로움과 푸른 색의 선명함이 차이가 날 뿐, 모두 다 같았다. 열살을 전후해 10년 가까운 성장기에 나와 친구들은 개인보다는 집단을, 시민의 권익보다는 국가와 이념의 일체성을 주입받고 학습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서슬퍼런 가위눌림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1970년대의 냉기와 광기에서 벗어나 헌법이 개정되고 정부와 질서가 바뀌면서 적대적 동반관계의 7·4 남북공동성명은 평화와 통일을 논의하는 남북 정상선언으로 대체됐다. 수십년이 흐르는 동안 집단과 일체화, 이념 같은 전근대적인 국민교육헌장은 적어도 겉으로는 서서히 탈색되고, 개성과 다양성이 시민 사회의 저변에서 싹을 틔우게 됐다. 시대의 패러다임은 진화했지만, 1970년대 성장기에 주입된 사고와 인식의 틀은 개인과 사회의 잠재적인 뇌리 속에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다. 때로는 뒷골목이나 선잠 속에서, 때로는 빈곤의 거리나 정치 세몰이 속에서 언뜻언뜻 구시대의 광기는 1970년대를 토악질해 내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선다. 나라의 질서와 규칙이 바뀔 수 있고, 개헌이 추진될 수도 있다. 새삼 1970년대를 떠올리면서 시민이 깨어 있어야 하고, 깨어 있는 시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ckpark@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연극 데뷔 50주년 맞는 이 시대의 어머니 손숙

    [김문이 만난사람] 연극 데뷔 50주년 맞는 이 시대의 어머니 손숙

    한 시대의 어머니였다.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한 채 참으로 모진 ‘여자의 일생’을 살았다. 글 공부는 근처에도 못 갔다. 첫사랑과 헤어지고 다른 남자와 억지 결혼을 했다. 남편의 바람기와 혹독한 시집살이, 게다가 자식의 죽음까지 가슴이 찢어지듯 처절하게 감내해야만 했다. 어머니는 손녀에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배우고 죽은 남편을 따라 저승으로 가면서 유리창에 자신의 이름을 쓴다. 그렇게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분단의 현대사를 눈물로 겪은 어머니였다. 연극 ‘어머니’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연극은 1999년 2월 초연된 이후 지금까지 매년 공연되고 있다. 그래서 연극 ‘어머니’ 하면 우선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초연 당시 어머니 역으로 백상예술대상 연기상을 받았고 그해 5월 러시아 타캉가극장에 초청돼 ‘마마’라는 환호 속에 기립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당시 공연 때 한국 기업가한테 격려금을 받았다는 구설수로 32일 만에 환경부 장관직을 그만두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바로 한국을 대표하는 연극배우 손숙(69)이다. 흔히 배우들은 타인의 삶을 산다고 한다. 자신과는 다른 사람들의 역할을 주로 맡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대에서 살아온 지 50년을 맞는다. 이를 기념해 손씨는 다음 달 1일부터 17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하용부, 윤정섭, 김미숙, 김철영 등과 함께 오른다. 이 연극이 끝나면 오는 4월 임영웅 연출가와 함께 극단 산울림에서 치매 노인을 다룬 신작 ‘나의 황홀한 실종기’에 출연한다. 또 7월에는 예술의전당에서 손씨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연극을 공연한다. 10월쯤에는 극단 신시와의 공연이 예정돼 있다. 손씨는 연극 공연에 항상 남다른 의욕을 보이지만 올해만큼은 더욱 바쁘고 의미 있는 한 해가 될 것 같아 지난 18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카페에서 잠시 만났다. 단발머리에 편한 티셔츠 차림, 그리고 소탈한 웃음이 인상적이다. 50주년을 맞는 소감부터 물었더니 “글쎄 바쁘게 살다 보니 인생의 반은 다른 인생으로 산 것 같다”고 웃으면서 “힘든 시절도 있었지만 연극으로 견딜 수 있었고 다시 일어서게 됐다. 고스란히 내 인생만 살았다면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관객들의 박수에 많은 용기를 얻었다”고 말한다. 특히 ‘어머니’는 연극 인생 중 자신에게 각별한 작품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어머니’ 덕분에 자신의 고향인 밀양에서 매년 연극제가 열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어머니’는 10여년 동안 늘 밀양연극제 폐막작으로 무대에 오르는 단골 레퍼토리가 됐다. 이를 보려는 지역 주민들이 객석을 꽉꽉 채운다. 자연스럽게 고향 시절 얘기가 먼저 나왔다. “밀양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6·25가 발발했습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쫓겨나고 대신 육군병원으로 바뀌었지요. 그러는 바람에 입학식만 본교에서 하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강변 솔나무나 들판 돌멩이 위에 칠판 올려놓고 공부하고 겨울에는 창고를 빌려서 공부했던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전쟁과 가난이라는 환경 속에서 우유 가루와 학용품 등 구호물자를 실은 미군 트럭이 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는 말 그대로 춥고 배고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것이 큰 축복으로 남는다고 술회한다. 또한 밀려오는 피란민들을 보면서 전쟁의 참상이 어떠한지 생생하게 목격하게 됐다. 중학교는 부산에서 다녔다. 그러다가 부산여중에 입학한 지 6개월 만에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무작정 서울로 왔다. 잠시 어머니를 회고한다. “어머니는 교육열이 대단했습니다. ‘여자도 배워야 한다. 배우지 않으면 여자의 일생이 힘들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지요. 어머니는 16살에 결혼했지만 아버지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버리고 시집살이를 혼자 도맡아 했습니다. 그러던 어머니는 자식들이라도 배워야 한다며 저와 동생을 데리고 서울로 오게 됐습니다.” 서울로 온 손씨는 돈암동에 살면서 시골 아이 취급을 받아 처음엔 적응이 힘들었다. 하지만 풍문여고에 진학하면서 문학소녀의 꿈을 키워 나갔다. 글짓기 대회에서 여러 번 상을 받기도 했다. 문예반장을 맡아 인근 고등학교에 다니는 황석영·조해일 등 여러 학생들과 문학의 밤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손숙 학생은 작가가 되려고 했다.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와 폴 발레리 등에 심취했다. 종로2가에 있는 음악홀에서 국내외 유명 시인들의 작품을 얘기하는 것이 공부보다 훨씬 재미있게 느껴졌다. 매년 신문사에서 주관하는 ‘신춘문예’에도 몇 차례 도전할 만큼 작가 지망에 대한 열의를 가졌다. 그는 살아오면서 ‘울며 웃으며 함께 살기’, ‘손숙이 만난 사람’, ‘섬마을 소년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의 책을 썼는데 이 또한 그의 문학적 바탕에서 이루어졌다. 그 문학소녀는 고3 어느 날 서울 남산드라마센터에서 유진 오닐의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를 접하게 됐다. 이해랑 선생이 연출하고 황정순·장민호·여운계 등 당대의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출연한 이 작품은 문학소녀의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았다. 갑자기 찾아온 연극의 전율은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했다. 고려대 사학과 재학생이던 그는 1963년 개교 60주년 기념 연극 ‘삼각모자’(스페인 작가 알라르콘 이 아리사의 작품)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돼 꿈에 그리던 남산드라마센터 무대에 올랐다. 남자 주인공은 당시 고대극회 선배인 김성옥(77·목포시립극단 예술감독)씨가 맡았다. 이런 인연으로 사랑이 시작돼 2년 뒤 결혼하게 된다. 1968년에는 극단 동인극장에 들어가 유진 오닐의 ‘상복을 입은 엘렉트라’에서 주인공 엘렉트라 역을 맡아 직업 배우로 연극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극단 산울림 창단(1969년)에 참여해 평생 스승으로 모시는 임영웅(77) 연출가와 인연을 맺었다. 또한 2년 뒤에는 국립극단에 들어가 이해랑(1989년 작고) 선생을 만나면서 새로운 활력을 얻었다. 그는 자신의 연극 인생을 회고하면서 “산울림과 국립극단에서 청춘을 다 바쳤다”고 말했다. 잊지 못할 작품으로는 산울림 시절의 ‘그 여자에게 옷을 입혀라’, ‘홍당무’, ‘바다의 침묵’ 등을, 국립극단 시절의 ‘파우스트’, ‘간계와 사랑’, ‘천사여 고향을 보라’ 등을 꼽았다. 그는 “15년 동안 지낸 국립극단 시절에는 훌륭한 스승과 선배들을 만나 나름대로 좋은 면도 있었으나 여러 가지 제약과 작품의 한계도 많았다”면서 “이런 분위기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맞지 않아 자꾸 반발했더니 미운털이 박히고 나중에는 싸움닭이 되더라”며 웃었다. 다시 현재 진행형인 ‘어머니’로 화제를 돌렸다. 환경부 장관과 맞바꾼 연극이기 때문이다. 하여 당시 상황을 물었다. “러시아 공연 1주일 전에 장관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체결된 국가 간 약속을 도저히 취소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공연을 강행했지요. 평생 잊지 못할 무대였습니다. 관객들이 15분 동안 ‘마마’를 외치며 기립 박수를 쳤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무대에 올라온 기업인들로부터 액수도 모른 채 격려금을 받았지요. 단원들에게 나눠 주고 지방 공연을 하지 못해 위약금으로 썼는데 그게 뇌물이라고 하더군요. 장관직 사퇴 후 너무 억울해서 열흘 동안 잠도 못 자고 울었습니다.” 마음을 달래기 위해 미국 그랜드캐니언으로 친구와 함께 여행을 다녔다. 얼마 후 귀국한 그는 임영웅 선생한테 위로의 전화를 받고 다시 연극무대로 돌아오게 된다. 돌이켜 보면 ‘어머니’로 시련을 겪었지만 오히려 ‘어머니’로 빨리 제자리를 다시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동료 배우들이 TV드라마로 넘어갈 때에도 오로지 연극무대를 지켰다. 하지만 먹고살기는 여전히 빡빡했다. 게다가 남편이 사업에 실패한 후 많은 빚을 졌다. 때마침 라디오 진행 섭외가 들어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1989년부터 MBC ‘여성시대’를 진행하게 됐다. 이때 다양한 청취자들의 사연을 접하면서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됐다. 여성과 환경문제 등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칼럼과 강연 등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조금씩 뱉어 냈다. “연극은 관객과 같이 호흡하는 현장 예술입니다. 배우와 관객이 서로 시선을 마주하고 호흡하는 것은 굉장한 일입니다. 또 스크린이나 TV드라마와 달리 관객으로부터 치유받을 때도 많지요. 연극이 열악한 환경이긴 하지만 그걸 다 초월해 연극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는 연극 인생을 다시 회고하면서 ‘담배 피는 여자’, ‘그 여자’, ‘셜리 발렌타인’ 등 모노드라마를 잊지 못한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선 지금 자신의 인생 모노드라마를 잠시 떠올리는 것 같다. 앞으로의 인생 모노드라마는 어떻게 이어 나갈까. “대사를 외울 수 있을 때까지 연극을 하지 않겠느냐. 연극을 할 때마다 늘 새로운 관객을 만나는 일이 매우 즐겁다”고 말하고, 웃으면서 그런 관객을 위해 연습하러 가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연극인 손숙은 1944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졸업 후 부산여중 시절 서울로 왔다. 풍문여중과 풍문여고를 졸업했다. 고려대 사학과 1학년 때 개교 60주년 기념 연극 ‘삼각모자’의 주인공으로 데뷔했다. 1969년 극단 산울림 창단 멤버로 참여했고 1971년 국립극단에 입단, 고 이해랑 선생 등 당대 최고의 연출가들과 작품을 함께 했다. 1989년 MBC ‘여성시대’를 시작으로 20여년 동안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1999년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맡았고 환경부 장관을 지냈다. 이 밖에 ‘아름다운 가게’ 공동대표(2002) 등 여러 사회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활화산’(1975), ‘객사’(1979), ‘어머니’(1999)로 백상예술대상 여자연기상을 세 차례 수상했다. 이 밖에 대한민국연극제 여우주연상(1986), 이해랑연극상(1997), 은관문화훈장(2012)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울며 웃으며 함께 살기’, ‘손숙이 만난 사람’, ‘여성수첩’, ‘섬마을 소년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이 있다.
  • [영화 프리뷰] ‘더 헌트’ 전염병 같은 마녀사냥… 성폭행범으로 몰린 남자

    [영화 프리뷰] ‘더 헌트’ 전염병 같은 마녀사냥… 성폭행범으로 몰린 남자

    유치원 교사 루카스는 이혼을 하고 고향에 내려온다. 퇴근하면 친구들과 어울려 술도 한잔하고, 유치원 동료와 연애도 시작한다. 무엇보다 아들 마커스를 데려와 함께 살 날만을 고대한다. 어느 날 친구 테오의 딸 클라라가 유치원 원장에게 거짓말을 던지면서 악몽이 시작된다. “루카스 선생님이 싫어요. 선생님은 고추가 있어요. 뻣뻣하게 서 있었어요.” 원장은 클라라의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 루카스가 성폭력을 휘둘렀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다른 유치원생 몇몇도 루카스에게 당했다고 진술한다. 학부모들은 모두 루카스의 친구들. 하지만 그의 결백을 믿어 주지 않는다. 토마스 빈테르베르 감독의 ‘더 헌트’는 어처구니없게 누명을 쓴 사내가 공동체의 광기 어린 폭력에 맞서 외로운 싸움을 벌이는 과정을 다뤘다. 시작은 정말 미약하다. 유치원 선생님을 좋아하던 소녀가 장난처럼 입술을 맞춘다. 선생님은 ‘입술 뽀뽀는 아빠, 엄마하고만 하는 것’이라고 타이른다. 하지만 웬걸. 사랑(?)이 증오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다. 소녀의 거짓말은 전염병처럼 온 마을로 퍼진다. 하루 전만 해도 절친처럼 굴더니 자신의 아이들이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생면부지의 타인보다 더 무섭다. 경찰에서 무혐의 처리를 받지만, 이미 어린이 성폭행범이란 낙인이 찍혔다. 상점에서 출입을 금지당하고, 유리창으로 돌덩어리가 날아든다. 마녀사냥이나 집단 히스테리, 개인에 대한 집단의 폭력은 인류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반복됐다. 학교 내 왕따 문제와 연애인의 잇단 자살을 부추긴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익명성에 기댄 악성 댓글 또한 마녀사냥의 21세기 버전이다. “‘더 헌트’는 우리가 살고 있는 거대한 세계를 하나의 작은 마을로 축소한 것”이란 감독의 설명도 궤를 같이한다. 10여년 전 덴마크의 저명한 아동학자와 빈테르베르 감독의 만남에서 비롯된 ‘더 헌트’는 완벽한 시나리오와 최고의 배우가 만나면서 관객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감독은 영화를 지켜보는 우리 또한 루카스에게 돌을 던지는 그들 중 하나는 아닌지를 묻고 있다. ‘더 헌트’로 지난해 제65회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마스 미켈센의 연기는 발군이다. 당황하고 억울한 마음에서 출발해 분노로 폭발하고, 끝내 용서하기까지 루카스의 심리 변화를 차곡차곡 덧칠해 나간다. ‘007 카지노로얄’(2006)의 악당 르시프로 각인된 날카롭고 강인한 이미지와는 또 달랐다. 1995년 테크놀로지에 경도된 상업영화의 위기를 경고하면서 라르스 본 트리에르 감독과 함께 ‘도그마 95 선언문’을 발표했던 빈테르베르의 연출력도 한껏 물이 올랐다. 본 트리에르 감독이 최근 들어 ‘안티크라이스트’(2009), ‘멜랑콜리아’(2011) 등 난해하고 논쟁적인 영화들을 쏟아낸 반면 빈테르베르는 현실 사회의 운동가로 돌아온 느낌이다. 24일 개봉.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버스차고지 방화 추정 화재… 38대 불타

    버스차고지 방화 추정 화재… 38대 불타

    버스 차고지에 화재가 발생해 버스 38대가 불탔다. 경찰은 방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 중이다. 15일 오전 3시 2분쯤 서울 강서구 외발산동 영인운수 버스 차고지에서 불이 나 버스 85대 중 30대가 전소되고 8대는 일부 탔다. 불은 3층짜리 회사 복지관 건물로 번져 총 15억여원의 재산 피해를 냈다. 운행을 마친 새벽 시간이라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새카맣게 불에 탄 버스들은 유리창이 깨지고 고열에 내부가 녹아 흘러내려 불길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짐작하게 했다. 강서소방서는 소방차 57대, 소방 대원 176명을 출동시켜 화재 발생 1시간 45분 만에 불을 진압했다. 화재 당시 당직 중이던 전학봉(54·정비사)씨는 “오전 3시쯤 건물 앞쪽에 주차된 버스에서 ‘꽝’ 하는 첫 폭발음이 난 뒤 곧바로 약 20m 떨어진 차고지 입구 쪽 버스에서도 불길이 치솟았다”면서 “폭죽을 터뜨린 것처럼 소리가 굉장히 컸다”고 전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방화로 추정하고 수사 중이다. 소방서 관계자는 “멀리 떨어진 두 곳에서 동시에 화재가 발생한 점을 고려할 때 방화가 의심된다”면서 “모든 버스에 연료가스가 채워져 있는 데다 버스가 30~40㎝의 좁은 간격으로 주차돼 있어 불이 빠른 속도로 옮겨 붙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 2대와 버스에 내장된 블랙박스 동영상 등을 확보했지만 화재 현장을 촬영한 CCTV 1대가 사고 당시 기계적 오류로 작동하지 않아 용의자를 특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날 서울 여의도·영등포·봉천동 방면을 운행하는 영인운수 소속 시내버스(650번, 6628번, 6630번, 662번)는 배차 간격이 평소의 2배로 늘어나 출근길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서울시는 배차 간격 지연으로 불편을 겪는 시민들을 위해 9개 버스업체의 예비 차량 21대를 투입해 16일부터는 정상 운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4대강 그 말뚝, 탁자가 됐다…자, 마주 앉아 얘기해보자

    4대강 그 말뚝, 탁자가 됐다…자, 마주 앉아 얘기해보자

    갤러리가 위치한 건물에 다가가니 말로만 듣던 ‘벙커 1’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지하 1층 녹음 스튜디오까지 굳이 내려가 보지 않아도 1층 카페에서부터 벌써 냄새(?)가 진동한다. 한쪽 구석 유리창에는 ‘나는 꼼수다’ 글씨가, 나꼼수 멤버들의 캐리커처가 휘갈겨져 있다. 카페 메뉴판을 힐끗 보니 ‘녹색성장라떼’ ‘정봉주스’ ‘김총수염차’ ‘부끄럽구요거트’ 같은 메뉴가 눈에 띈다. 2층 갤러리로 발걸음을 돌리면서 혹시 작품 주제가 4대강이라 이런 곳에 있는 전시장을 잡았나 싶었다. 정작 작가는 전혀 몰랐단다. “농담 삼아 그걸 홍보하면 잘되지 않겠냐는 사람도 있긴 하던데 전혀 상관없다.”며 손사래 친다. 역사의 퇴적층을 추적하는 독특한 작업을 선보이며 2011년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에 선정됐던 나현(42) 작가가 이번엔 ‘송 오브 로렐라이’전으로 돌아왔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활활 불타는 듯 그려진 나무 말뚝 드로잉이 눈에 들어온다. 이 말뚝은 독일 뒤셀도르프 박물관에서 발견한 14세기 나무 말뚝이다. 성 주변의 해자에 쓰인 말뚝인데 공사 중 발견해서 박물관에 옮겨 둔 것이다. 그 말뚝을 보면서 인간의 기술로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만들어 문명을 쌓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었다 했다. 그 말뚝과 똑같은 길이 2.9m의 말뚝을 만들어 2010년 뒤셀도르프의 라인강변에 박아 넣었다. 하필 뒤셀도르프인 것은 그곳이 4대강 사업에 참고한다며 라인강 중하류 지역을 찾았을 때 방문한 도시여서다. 그리고 로렐라이의 전설을 노래한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고향이기도 하다. 두 가지 의미를 곱씹어 보는 것도 재밌다. 2010년 설치 당시와 2012년 최근 모습을 담은 영상작품이 전시장의 처음과 끝에 걸려 있다. 2년여 동안의 시간 변화를 화면에 담았다. 그리고 그 말뚝과 똑같은 말뚝을 또 하나 더 만들어 올해 8월 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 4곳에다 박았다. 이 작업에 대한 영상과 사진이 전시장 나머지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작업은 역시나 ‘맨땅에 헤딩’이었다. 일단 말뚝 만드는 데 쓸 오크나무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 정도 굵기와 크기는 국내에서 구하기 힘들었다. 구하고 나서는 말뚝을 박았다 뽑아내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특별한 인력이나 장비를 동원하진 못했다. 돈도 없었을뿐더러 돈이 있었다 해도 들일 처지가 안 됐다. 4대강을 둘러싼 논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4대강 사업이 벌어진 강변에서 어떤 작업이나 퍼포먼스를 벌인다는 것 자체가 너무 민감한 문제가 되어 버려서다. 눈치껏 요령껏 속전속결로 진행해야 했다. 여기까지라면 굉장히 비판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전시 마무리에 약간의 반전이 있다. 4대 강변에 박았다 뽑은 말뚝을 해체해서 근사한 탁자를 만들어 뒀다. 탁자야말로 제대로 된 논쟁 한판 벌일 수 있는 무대라 생각해서다. 정치적 논란이 부담스러워 고심 끝에 내린 후퇴 결정이었을까. 작가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동시대 예술이라 생각했을 뿐”이라 답했다. 일단 현대 예술, 동시대 예술이면 지금 현재의 우리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서구에서 유행하는 최첨단 이론이나 개념, 사조를 따라 하고 흉내내기보다 지금 우리 시대에 일어나는 일들을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작업한다는 현대미술 작가들이 그러질 않으니 동시대를 얘기하는 작품이라는데도 관람객들이 아무런 느낌을 못 받는 거예요. 현대미술이 갈수록 어렵고 이상한 것만 골라 하고 있다는 불만도 거기서 나오는 거라 생각합니다.” 퍼포먼스가 가미된 영상 설치 작업이라 돈 될 구석은 전혀 없는 작품들임에도 꾸준히 매진하는 이유다. 그렇지만 자유스러워야 한다.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작품을 통해 드러난 작가의 의도가 관람객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재밌게 즐긴 관람객이 그 작품 앞에서 다른 사람과 그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답이나 결론은 그 어느 누구의 것이어서는 안 된다. “예술가가 왜 답을 냅니까. 그건 정치가와 전문가의 말을 듣고 국민들이 판단해야 할 몫이지요. 예술가는 그냥 질문을, 그것도 저처럼 무식하고 우직하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의 우직한 돌직구 질문에 독일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다. 내년 10월쯤 독일 전시가 추진되고 있다. 돌직구의 다음 과녁은 무엇일까. 베를린과 광주라고 슬쩍 귀띔한다. 아이디어만 살짝 들었는데도 제법 군침이 돈다. 전시는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객석빌딩 2층 갤러리정미소. (02)743-5378.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식당 벽 뚫고 용접기로 금고 절단…우체국 금고서 5000만원 턴 도둑들

    식당 벽 뚫고 용접기로 금고 절단…우체국 금고서 5000만원 턴 도둑들

    개인이 운영하는 별정우체국에 도둑이 들어 금고를 용접기로 절단한 뒤 수천만원을 털어 달아난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9일 전남여수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2시~2시 50분 사이 여수시 월하동 삼일동우체국에 2인 이상으로 추정되는 도둑이 들어 금고 안에 있던 현금 5200여만원을 털어 달아났다. 경찰은 이날 오전 5시 37분쯤 우체국과 맞닿아 있는 C식당 주인 김모(50·여)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현장을 확인했다. 우체국은 3층짜리 건물의 1층에 이 식당과 맞닿아 있으며, 나머지 2~3층은 인근 여수산단에 물품을 실어 나르는 화물회사들이 입주해 있다. 이 식당은 보통 오전 5시~오후 9시에 영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범인들은 새벽 시간에 이 식당 유리창 문을 깨고 들어가 시멘트 벽면을 헐어 내고 우체국의 철제 금고 뒷부분을 가로 27㎝, 세로 38㎝ 크기로 용접기를 이용해 절단한 뒤 금고 안에 있던 5213만원(5만원권 625장, 1만원권 2018장, 5000원권 100장, 1000원권 200장)을 털어 달아났다. 범인들은 우체국의 철제 금고 뒷면이 이 식당 벽면과 맞닿은 지점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헐어낸 뒤 금고에 접근한 것으로 밝혀졌다. 우체국과 식당으로 통하는 건물 복도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는 스프레이액이 뿌려져 있었다. 우체국 내부의 CCTV에는 오전 2시 12분쯤 불꽃이 튀는 장면이 찍히기도 했다. 이 복도에는 유명 보안업체의 경비 시스템이 설치됐으나 정작 범행 사실은 감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곳 사정을 잘아는 누군가가 우체국 금고를 노리고 식당에 침입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전담반을 구성해 금고털이범 등 동일 전과자 등을 상대로 용의자 파악에 나섰다. 또 범행 추정 시간대에 주변 대로변의 CCTV에 찍힌 차량 등을 점검하고, 이 우체국 국장 김모(60)씨의 진술을 토대로 범인들을 추적하고 있다. 여수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백범 서거 경교장 임시공개

    백범 서거 경교장 임시공개

    백범 김구 선생의 숙소 겸 집무실로 사용된 사적 제465호 경교장(京橋莊)이 23일 임시 개방됐다. 민족진영 인사들의 집결처로 건국·통일운동의 중심지였던 경교장은 그동안 강북삼성병원의 시설로 쓰여 왔다. 서울시는 복원공사를 거쳐 내년 3월 1일 경교장을 관람객에게 개방할 예정이다. 유리창의 총탄 흔적은 1949년 김구 선생이 안두희의 흉탄에 서거했을 때의 상황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고장 전동차 구조하려던 열차, 과속하다 ‘쾅’

    고장 전동차 구조하려던 열차, 과속하다 ‘쾅’

    고장으로 멈춰 선 전동차를 구원 차량이 들이받아 승객 100여명이 다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과 부산교통공사 등에 따르면 22일 오전 8시 15분쯤 부산도시철도 3호선 배산역에서 물만골역으로 가던 제3038호 전동차가 물만골역 100여m 앞 터널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장을 일으키며 갑자기 멈춰 섰다. 객실 내 전기 공급이 끊겨 실내등은 꺼졌고, 객차 안 승객 200여명은 공포에 떨었다. 부산교통공사는 사고 전동차를 물만골역으로 밀어내기 위해 뒤따르던 제3040호 전동차에 이를 지령했으나 후속 제3040호 열차는 오전 8시 30분쯤 곡각 지역에 서 있던 제3038호 열차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제3038호 전동차 후미 객실에 타고 있던 승객들이 충격으로 쓰러지면서 3명이 허리 등을 크게 다치는 등 모두 100여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두 전동차도 크게 파손됐다. 추돌사고 충격으로 후속 전동차의 바퀴 8개가 탈선했으며 두 전동차 기관실과 객실 유리창이 여러 장 깨졌다. 민모(34)씨는 “구원 열차가 너무 빠르게 접근해 충돌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꽝’ 하고 들이받았다.”고 말했다. 다른 승객은 “칠흑 같은 객실에서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쓰러졌다.”면서 “무슨 폭발 사고라도 난 줄 알고 아찔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다친 승객들은 119 구조대원 등에 의해 시내 13개 병원으로 분산 이송됐다. 이 사고로 도시철도 3호선 수영~연산역 간 양방향 전동차 운행이 10시간 가까이 중단됐으며 이날 오후 6시쯤 복구가 완료돼 재개됐다. 교통공사는 사고 차량을 수영역으로 옮기고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부산시도 5명으로 구성된 특별감사반을 꾸려 사고 원인과 사후 조치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추돌 사고는 안전불감증에 따른 전형적인 인재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구원 열차가 운행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구원 열차 운행수칙에 따르면 구조 운행 때 시속 25㎞ 이하로 운행해야 하며 현장 가까이에서는 5~10㎞ 이하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추돌사고를 조사 중인 부산 연제경찰서는 사고 당시 기관사로부터 현장 가까이에서도 시속 40㎞ 속도로 달렸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기관사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당시 견인 열차는 규정보다 4배 이상의 속도로 달린 셈이다. 전동차의 파손 상태와 엄청난 인명 피해를 감안할 때 구원 차량이 사고 차량의 정확한 위치를 몰랐거나 규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은 견인에 나선 전동차가 매뉴얼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운전 지령실과 교신내용, 폐쇄회로(CC)TV 분석 등을 통해 기관사의 과실 여부를 밝혀낼 예정이다. 2005년 11월 개통된 도시철도 3호선은 수영~대저 간(18.1㎞) 운행되고 있으며 하루 평균 10만여명이 이용하고 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France & Italy 알프스와 지중해의 속살을 유영하다 ②이탈리아 파르마, 친퀘테레

    France & Italy 알프스와 지중해의 속살을 유영하다 ②이탈리아 파르마, 친퀘테레

    글·사진 최승표 기자 ●Italy Parma파르마 베르디와 토스카니니를 낳은 음악도시 프랑스에서 혹은 스위스에서 이탈리아로 이동할 때, 여행객이 관문도시로 선택하는 곳은 십중팔구 북부의 밀라노다. 또 다른 경우의 수가 있다면 토리노 정도일 것이다. 허나 이번 여행에서는 조금 더 남쪽에 위치한 파르마Parma까지 내려왔다. 친퀘테레Cinque Terre로 가기 전 가까운 거점이 필요했고, 소문난 파르마의 미식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소담스런 분위기의 중심가에는 예술사에 있어서 기억될 만한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파르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필로타 궁전Palazzo della Pilotta,나폴레옹이 가장 사랑했다는 그의 두 번째 아내인 마리 루이즈Marie Louise를 기리기 위한 글라우코 롬바르디Glauco Lombardi 박물관, 그 맞은편에는 음악을 지독히 사랑한 루이즈가 건립한 왕립극장이 한데 몰려 있다. 그녀는 가난한 음악도들을 위해 학교도 세웠을 정도로 음악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고 한다. 작곡가 베르디, 지휘자 토스카니니 등 이탈리아 음악의 거장들이 파르마에 많은 것도 그녀 덕분일 것이다. 파르마를 예술도시라 이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근거는 파르마 돔성당에서 찾을 수 있었다. 12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최초 건립된 성당의 외관은 바로크,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면서 다양한 건축양식들이 포개진 모습이었다. 성당 내부는 단촐한 외관과는 상반되는 화려함을 자랑한다. 입체감이 느껴지는 프레스코 벽화 중에는 성경의 내용과 무관한 그림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당시 화가들이 자신을 후원하던 재력가들의 얼굴을 곳곳에 새겨 준 것이다. 파르마 미술의 혁명가라 불리는 안토니오 코레지오Antonio Correggio가 돔 천장에 그린 승천하는 성모 마리아 그림은 바티칸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보다 뛰어난 묘사력을 보인 것으로 평가 받는다. 성당 한켠에 자리한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를 묘사한 조각품은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넘어가는 시기, 그러니까 두 개의 예술양식이 혼재된 독특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숨을 거둔 예수, 십자가 곁에서 예수를 지키는 천사, 예수의 옷을 받아든 로마 군인, 심지어 스승을 잃은 제자들까지 모두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신약성경에서 가장 심각한 국면을 묘사한 것 치고는 너무 우스꽝스러운 묘사라고 느껴졌다. 이는 1178년, 당시 성도들과 이교도의 신앙심을 불러일으키며 세련미를 극대화한 고딕 회화의 특징적 묘사라고 한다. 파르마의 중심가, 필로타 광장에서 자전거를 타는 젊은이들의 모습 햄과 치즈, 파르마의 자존심이자 신앙 인구 17만명의 소도시 파르마는 낙농업, 식품제조업이 발달한 도시다. 특히 파르마산 치즈 ‘파르미자노 레자노Parmigiano Reggiano’와 햄 ‘프로슈토Prosciutto’는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한다. 파르마는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평야지대와 목초지가 나타나는데 바로 이 비옥한 땅이 치즈와 햄 맛의 비결이라 한다. 밀라노의 고르곤졸라, 나폴리의 모짜렐라, 시칠리아의 리코타 등 이탈리아 지역별로 명성 있는 치즈는 가공 방식뿐 아니라 그 지역의 토질과 물에 따라 맛이 좌우된다고 한다. 최근 파르마산 치즈로 둔갑한 ‘아르헨티나산 치즈’가 많은데 파르마 사람들만은 ‘짝퉁의 맛’을 정확히 변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파르마 사람들의 치즈에 대한 애착은 깊고도 유별나다. 파르마에서는 프로슈토 햄 생산을 위해 돼지에게 치즈를 만들고 남은 ‘유장’과 밤을 먹인다고 한다. 돼지고기 중에서도 뒷다리 부위를 소금에 절여져 9개월부터 최대 24개월간의 숙성기간을 거쳐 햄으로 만들어낸다. 치즈를 먹은 돼지의 살이어서일까? 파르마산 치즈와 햄에서는 닮은 향기와 맛이 난다. 파르마에서의 저녁 식탁에서는 치즈와 햄뿐 아니라 다양한 지역 음식을 만날 수 있었다. 가정집 분위기가 물씬 나는 작은 레스토랑. 애피타이저는 송로버섯Truffle이 곁들여진 으깬감자 수프, 메인 요리로는 볼로니즈 파스타를 주문해 치즈를 듬뿍 얹어 먹었다. 파스타도 좋았지만 내가 가진 어휘로는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향의 송로버섯은 흡사 금지된 약물을 복용한 것처럼 내 미각과 신경을 몽롱한 상태에서 오래도록 놓아 주지 않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ravie info 필로타 궁전Palazzo della Pilotta 16세기 파르마 지역을 통치하던 파르네제가家에서 만든 건물로 나폴레옹 전쟁, 2차 대전을 거치며 파괴되었다가 복원돼 지금은 공연장, 고고학박물관, 도서관, 미술관 등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파르미자노 레자노Parmigiano Reggiano 파르마 전통 치즈로 6개월에서 최대 36개월까지 숙성시킨 것으로 다소 딱딱한 촉감에 누린내가 강하지 않고 고소한 뒷맛을 낸다. 와인과 함께 즐기거나 파스타나 샐러드에 가루로 뿌려 먹는다. ●Italy Cinque Terre친퀘테레 보물이 되어 버린 오색빛깔 바다마을 프랑스의 론알프스와 이탈리아의 파르마까지 주로 소도시를 다니며, 감춰진 진주같은 풍경들을 보았고, 세계 3대 진미라는 송로버섯까지 맛보았으니 유럽 여행에 대한 욕구는 웬만큼 해소된 상태였다. 최근 한국에서 가장 뜨고 있는 이탈리아 여행지 친퀘테레Cinque Terre로 향하는 길, 여행의 피로가 쌓여 가면서 부푼 기대감도 사그라든 상태였다. 이런 심드렁한 태도는 리구리아해에서 불어온 바람을 맞은 순간 깨끗이 사라져 버렸다. ‘5개의 마을’이라는 뜻의 친퀘테레는 이탈리아 서북부 해안, 리구리아주에 속해 있다. 성수기에는 숙소 잡기가 어려운 탓에 밀라노, 피렌체, 파르마, 피사 등의 주변 도시에서 당일치기 여행으로도 많이 찾는다. 파르마에서 기차로 약 2시간. 친퀘테레로 가기 위한 관문도시인 라스페치아La Spezia에 닿았다. 친퀘테레를 제대로 즐기려면 가장 남쪽에 위치한 리오마조레Riomaggiore부터 북쪽의 몬테로소Monterosso까지, 혹은 그 반대 방향으로 해안길을 따라 걸으며 소담스러운 마을의 풍경과 리구리아 해변의 정취를 만끽하는 것이 좋다. 하루 만에 13.5km의 해안길을 걷기란 다소 버거운 일. 하여 이번 여행에서는 2~3개의 마을을 구경하고 해안선을 따라 보트크루즈를 타기로 결정했다. 처음 도착한 마을 마나롤라Manarola의 풍경은 제주도와 흡사했다. 깎아지른 해안 절벽과 쪽빛바다도 그렇지만 마을 안쪽, 그러니까 낮은 돌담벽이 엉성하게 줄지어 있고 농부들이 밭을 갈며 일상을 사는 모습은 전형적인 한국의 시골마을을 연상시켰다. 유네스코는 친퀘테레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각별히 보존에 힘쓰고 있다. 깎아지른 절벽에 계단식 다랑이논 같은 포도농장을 개척하고, 올리브나무를 길러낸 주민들의 일상을 침범하지 않기 위함이다. 이곳의 화이트 와인 맛은 이탈리아에서도 정평이 나 있는데 가파른 산비탈에서 농부들이 허리를 로프로 묶고 한 송이 한 송이 따낸 포도로 만들어진 것이라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친퀘테레 하이킹 코스 중 가장 유명하다는 ‘사랑의 길Via dell’ Amore’로 향했다. 리오마조레와 마나롤라, 두 마을을 잇는 1km 남짓한 해안절벽길은 여느 로맨틱한 관광지가 그런 것처럼 사랑을 다짐하는 연인들이 채워 놓은 자물쇠와 이름을 새겨 놓은 흔적들로 도배돼 있었다. 거리의 악사가 아코디언으로<여인의 향기> OST를 연주하자 주위의 연인들은 프렌치키스를 나누며 행복에 겨워했다. 리오마조레에서 몬테로소까지는 기차로 이동했다. 역에 내리자마자 맞닥뜨린 몬테로소의 풍경은 다른 4개 마을과는 전혀 달랐다. 백사장 해변에는 원색의 파라솔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고, 마을 안쪽 레스토랑과 카페에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해변 휴양지였다. 한 레스토랑에 들러 파스타와 해산물 요리로 허기를 달랬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다양한 파스타를 먹어 왔지만 가장 한국인의 입맛에 익숙한 맛이었다. 홍합, 오징어 등 해산물로 우려낸 파스타 소스가 개운한 맛을 낸 덕이었다. 몬테로소에서 라스페치아로 가기 위해 보트에 몸을 실었다. 보트는 5개 마을 항구에 차례로 정박하며 관광객을 싣고 내렸다. 두 개의 마을, 베르나차Vernazza와 코르니글리아Corniglia는 항구에서 본 것이 전부였다. 먼발치서 바라본 두 마을은 나머지 3개 마을에 비해 규모가 작아 보였을 뿐 별다른 특징은 없어 보였다. 허나 나중에야 알았다. 친퀘테레 마을 중에서도 관광객이 덜 북적이면서 호젓하게 휴식을 즐기기에는 베르나차와 코르니글리아가 좋다는 사실을. 보트는 친퀘테레를 지나 라스페치아로 가기 전, 마지막 항구인 포르토베네레Porto Venere에 잠시 정박했다. 해가 수평선 근처로 내려오면서 더 따뜻해진 볕을 쬐며 바닷가로 걸어갔다. 수영복을 챙겨 오지 않은 것을 한탄하며 잠시라도 이방인의 때깔을 벗고 싶어 바닷물에 발을 담가 보았다. 지중해와 짧은 해후를 뒤로하고 결별할 생각에 밀물 같은 아쉬움이 살포시 밀려와 발목을 적셨다. 1 ‘사랑의 길’에서 흔적을 남기는 연인 2 친퀘테레 다섯 마을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리오마조레Riomaggiore의 항구 풍경 3 바닷가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물놀이에 빠져 있는 청소년들 4 마나롤라Manarola 마을, 한 카페에서 작렬하는 햇볕을 쬐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여행객 취재협조 레일유럽 www.raileurope.co.kr, 시크아울렛 www.chicoutletshopping.com/ko ▶travie info 친퀘테레 카드 친퀘테레에서는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길을 이용하려면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한 마을 내에서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친퀘테레 카드로는 하이킹코스 외에도 마을 내 대중교통, 지역 박물관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성인 기준, 1일권은 주중 5유로, 주말은 12유로이며, 날짜와 연령대, 단체 규모에 따라 요금이 다양하다. 마을을 연결하는 친퀘테레 기차카드도 있다. 성인 기준 1일권은 10유로. 카드는 각 마을의 관광안내센터나 기차역에서 구매할 수 있다. www.cinqueterre.com ▶Travel to France & Italy 유럽 기차여행, 실속 있게 준비하는 법 이번 여행은 이동의 90%를 기차에 의존했다. 유럽 첫 기착지인 벨기에 브뤼셀에서 시작해 친퀘테레를 여행하고 밀라노로 이동해 비행기를 타는 순간까지 다양한 기차를 이용해 볼 수 있었던 것도 여행의 또 다른 재미였다. 유럽을 자유여행으로 가는 이들이 늘면서 실속 있게 기차를 이용할 수 있는 정보력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방문 국가와 도시, 체제 일수를 확정했다면 가장 적합한 철도 상품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이용한 철도 상품과 주요 열차의 간략한 정보를 정리해 봤다. 유럽 철도 예약은 대부분의 국내 여행사에서 다루고 있으며, 레일유럽 웹사이트(www.raileurope.co.kr)를 이용할 수도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프랑스패스 프랑스를 3일 이상 여행한다면 프랑스패스를 구매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프랑스패스 소지자는 파리와 런던을 연결하는 유로스타Eurostar, 암스테르담, 브뤼셀 등과 연결되는 탈리스Thalys 등의 초고속 열차와 야간열차 등을 할인 받을 수 있다. 이외에도 각종 지방 관광열차를 할인받을 수 있으며, 파리 세느강 크루즈, 국립 박물관 등을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유의할 점은 패스 소지자라 할지라도 TGV, 탈리스 등은 반드시 추가요금을 내고 좌석 예약을 해야 한다는 것. 이는 여러 나라를 한번에 여행할 수 있는 유레일패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유레일 셀렉트패스 인접한 3~5개국 이상을 선택적으로 여행한다면 유레일 셀렉트패스Select Pass가 적합하다. 물론 2개국을 여행할 수 있는 리저널패스Regional Pass도 있지만 모든 나라들이 조합돼 있는 것은 아니기에 셀렉트패스가 편리할 수도 있다. 가령 유레일 2개국 패스 중에는 스위스-이탈리아패스가 없기에 셀렉트패스를 선택하는 게 낫다. 한편 2013년부터 프랑스가 셀렉트패스에서 제외되고, 터키가 추가될 예정이다. ▼이번 여정에 이용한 기차들 ·탈리스Thalys 브뤼셀에서 파리까지 1시간 25분 만에 연결하며, 하루에 30편으로 운행 간격이 촘촘하다. 1등석을 이용할 경우, 와인을 포함한 음료와 디저트류를 무료로 제공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독일 쾰른 등의 도시로도 연결된다. 각종 패스 소지자는 추가 요금을 내고 좌석을 예약해야 한다. ·TGV 국내선 프랑스 초고속 열차인 TGV는 독일 방향으로 가는 동부선과 스위스쪽으로 가는 TGV리리아, 국내선 등으로 이뤄져 있다. 파리에서 리옹까지 약 2시간이 소요되며, 2층에는 음료와 디저트를 구매할 수 있는 라운지 바가 있다. 패스 소지자는 추가 요금을 내고 좌석을 예약해야 한다. ·TER 한국의 새마을열차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안시에서 샤모니로 이동하면서 이용한 기차는 관광열차가 아님에도 천장 일부가 유리로 돼 있어 이동 중 알프스 산맥을 관람하기 좋았다. 패스 소지자는 좌석 예약을 하지 않아도 된다. ·Trenitalia 친퀘테레 여행을 마치고 라스페치아La Spezia에서 밀라노Milan로 돌아가는 길에 이용했다. 유레일패스 소지자는 추가 요금을 내고 좌석 예약을 해야 한다. 1 브뤼셀과 파리를 연결하는 탈리스 열차. 1등석 탑승객에게는 음료와 다과가 제공된다 2 샤모니 몽블랑으로 가는 길, 커다란 유리창 너머 알프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SHOPPING OUTLET 유럽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 쇼핑 시크아울렛 유럽 여행에서 빠뜨릴 수 없는 재미 중 하나는 쇼핑이다. 이번 여행에는 유럽 내 9개 도시에 아울렛을 운영 중인 시크아울렛Chic Outlet 중 벨기에 브뤼셀에서 1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스메켈렌 빌리지Maasmechelen Village와 이탈리아 밀라노, 파르마에서 가까운 피덴자 빌리지Fidenza Village를 방문했다. 아울렛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가격.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의 경우, 국내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최대 70%까지 저렴하다. 9곳의 빌리지(시크아울렛은 ‘아울렛’보다는 ‘빌리지’라는 표현을 좋아한다)는 면세 혜택을 제공하며(총 구매 금액의 약 10%를 출국시 공항에서 환급받을 수 있다), 도심부에서 아울렛까지 리무진버스인 쇼핑익스프레스를 운영한다. 국내 주요 여행사를 통하면 쇼핑익스프레스 할인권, 10% 추가 할인을 받을 수 있는 VIP 쿠폰 등을 얻을 수도 있다. 각 빌리지는 지역색을 반영한 레스토랑과 카페를 운영하고 있으며, 방문객 개개인에게 어울리는 패션 스타일을 제안하는 ‘퍼스널 쇼퍼 서비스’도 제공한다. 어린이 놀이방은 모든 빌리지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유명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빌리지도 있어 쇼핑뿐 아니라 유럽의 라이프스타일까지 체험할 수 있다. 마스메켈렌 빌리지에서는 벨기에의 고급 초콜릿은 물론 지역 특산물인 다이아몬드를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고, 피덴자에서는 파르마의 수준 높은 요리와 함께 디저트로 젤라또까지 즐길 수 있었다. 유럽 아울렛까지 갔는데 명품 백이나 수트 한 벌쯤 사지 않았냐고? 독자들께 죄송하지만 본 기자는 명품 취향이(단지 취향의 문제일까?) 아닌 탓에 생생한 쇼핑 리스트를 제공할 수 없게 됐다. 단, 샘소나이트 캐리어를 국내 소비자가의 3분의 2 수준에 득템한 것은 두고두고 자랑하고 있다. www.chicoutletshopping.com/ko 1 이탈리아 밀라노와 파르마, 볼로냐 등에서 가까운 피덴자 빌리지. 이탈리아 디자이너 브랜드를 최대 70%까지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2 시크아울렛의 각 빌리지에서는 수준 높은 지역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을 보유하고 있다 ▼그 밖의 시크아울렛 빌리지 런던 비스터 빌리지 영국 런던에서 약 1시간 거리의 옥스포드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시크아울렛 쇼핑의 본사가 위치한 곳으로 빌리지 중 가장 규모가 크다. 막스마라, 던힐, 페라가모 등 약 100여 개의 명품 부티크 숍들이 있다. 더블린 킬데어 빌리지 가장 최근에 들어선 빌리지로 아일랜드에서 가장 인기있고 고급스런 패션 및 가정 용품을 판매하는 쇼핑의 중심지로 급성장했다. 더블린에서 약 1시간 거리에 위치. 파리 라 발레 빌리지 프랑스 패션계의 중심지인 파리와 샹파뉴Champagne 지역에서 35분 거리이며, 파리 디즈니랜드 리조트 옆에 위치해 있다. 약 90여 개의 명품 브랜드 부티크들이 입점해 있다. 바르셀로나 라 로카 빌리지 바르셀로나의 아름다운 코스타 브라바Coasta Brava 해변 도로에 위치해 있으며, 스페인의 파루트스Farutx와 로에베Loewe 등의 제품을 한국의 절반가에 구입할 수 있다. 마드리드 라스 로사스 빌리지 마드리드 중심에서 외곽으로 3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스페인의 유명 디자이너인 안토니오 미로Antonio Miro, 안드레 사르다Andre´s Sarda, 로에베Loewe 등의 브랜드가 유명하다. 프랑크푸르트 베르트하임 빌리지 프랑크푸르트 도심에서 약 1시간 거리, 로맨틱가도Romantic Road 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보그너Bogner, 발리Bally, 라코스테Lacoste 등의 실용적인 패션 브랜드 제품들이 많다. 뮌헨 잉골슈타트 빌리지 독일 바이에른주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뮌헨에서 50분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저먼 스트렌세German Strenesse, 아이그너Aigner, 엠씨엠MCM 등 100여 개의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잡스의 ‘진짜 마지막 걸작’ 호화 요트 첫 공개

    잡스의 ‘진짜 마지막 걸작’ 호화 요트 첫 공개

    故스티브 잡스가 생전 주문한 초호화 대형 요트가 최초로 공개돼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네덜란드 알스미어에서 지난 28일(현지시간) 진수식을 갖고 일반에 모습을 드러낸 이 요트는 ‘잡스의 마지막 걸작’이라 부를 만큼 평소 잡스의 디자인 신념이 투철하게 반영됐다. ‘비너스’(Venus)라 명명된 이 요트는 네덜란드 조선사가 제작하고 ‘미니멀리즘’으로 유명한 산업디자이너인 필립 스탁이 디자인 했다. 외관은 매끄럽고 날렵한 것이 특징이며, 무게가 가벼운 첨단 알루미늄으로 제작했다. 잡스는 생전 요트를 주문했을 당시 애플사 소속 엔지니어들을 고용해 요트 디자인 및 제작에 참여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대부분의 요트가 둥근 유선형으로 설계되는 것과 달리, 비너스는 아이폰과 아이패드처럼 네모 모양에 모서리가 둥근 형태의 지붕이 있다. 또 아이폰 등 기기에도 유리를 자주 접목했던 그의 취향처럼, 갑판 바닥과 천장까지 연결된 거대 유리창이 매우 인상적이다. 뿐만 아니라 선실에는 대형 맥 컴퓨터 수 대를 설치해 마치 애플 본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비너스’의 정확한 가격은 아직 알려지지 않으나 잡스가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디자인을 수정하고 완성을 보고싶어 했을 만큼 상당한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잡스는 이 요트에 단 한 번도 오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지만, 요트 제작사는 그의 사망 후에도 주문자의 꼼꼼한 주문 사항을 빼놓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진수식에는 잡스의 부인 로렌과 세 자녀가 참석해 잡스의 마지막 유작을 함께 감상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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