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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이올리니스트 김민씨(이세기의 인물탐구:31)

    ◎독자적 음악어법·「긴장의 선율」 일품/화려한 경험·탁월한 직관으로 곡핵심 용해/“정상의 기량·풍부한 감성” 연주로 청중 매료/13년간 「바로크 합주단」 이끌어… “노력이 최고덕목” 삶 일관 칼라일의 말처럼 「음악은 천사의 스피치」,만일 자기자신 안에 아무런 음악적 감흥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는 아마도 영원히 불행한 사람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나기같은 박수를 받으며 김민이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활을 움직이기 이전의 숨막힐 듯한 정적까지도 그것은 이미 「절묘한 무음의 음악」이다.피치카토 스타카토 트레몰로로 번뜩이는 자유분방한 테크닉과 모든 음악적 패시지는 청중을 무리없이 곡의 핵심속에 침투시킨다.특히 스마트한 론도의 테마를 제시하면서 코다의 영광으로 소연되는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협주곡은 한치의 흐트러짐 없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인해 청중은 가슴죄는 초조감마저 느껴야 한다.바로 이 싱싱한 긴장감이 김민연주의 특징이며 음악적 능력이다. ○난해한 음악에 집착 그의 직관력은 음악적 형태를 순식간에 포착하여 작곡의 모티브에 유연하게 밀착하는 곡해석으로 유명하다.난해하다고 지적되는 부분을 쉽게 소화하면서 작곡자가 의도하는 비밀을 보석처럼 캐내고 다듬어낸다.그러나 자신에게 맞지 않는 테크닉은 그것이 아무리 「하이페츠 테크닉」이라 할지라도 철저하게 외면한 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오랜 연주경험을 통해 「자기 음악을 위한 마음의 환경을 잘 가꾸고 있는 연주가」이며 또는 「음악의 모든 프레이즈(구)들이 음악이 원하는 자연스러운 호흡속에서 상호의존적으로,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계획에 의해 짜여진 노래이자 노골적인 계획에 의해서 불려지는 노래가 아닌 불가사의한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이만한 연주가가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하고 자랑스러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는 한 음악전문지가 기획한 「한국의 명연주가 집중연구」에 음악평론가 이강숙씨가 김민을 추천하면서 쓴 글이다.한상우씨도 「진지하고 확연한 음악적 틀위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과 음악어법을 지닌 존재」임을 전제,특히 김민이 집착하는 브리튼이나프로코피예프,슈니트케와 츠빌리히등 현대음악이 갖는 난해성을 「활력있는 테크닉의 조화를 통해 긴장감과 함께 리듬을 확대시켜 강한 공감을 형성하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과연 그에게서 긴장감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그에게서 음악이 사라지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는 어릴 때부터 「확실한 가능성이 돋보이는 유망주」로 성장한 케이스다.본격적으로 바이올린수업을 받던 서울예고시절부터 첼로 정명화와 함께 예고실내악단을 조직하여 활동했고 아직 고교2학년때 서울대음대가 주최하는 전국고교생 음악경연대회에서 선배·동료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1등,대학에 들어가자 바로 국립교향악단(현KBS교향악단)에 입단,65년 첼리스트 전봉초씨가 창단한 바로크합주단 부악장등 문자그대로 음악의 탄탄대로 한가운데를 거침없이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시련의 독유학 시절 그러나 그가 유학한 독일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파란과 시련을 한꺼번에 안겨주었다.예술가로서의 첫 갈등과 회의속에서 그는 「이제 나는 모든 것이 끝났는가」라는 좌절감에 허우적거렸다.이제까지 알고 있던 자신의 모습은 엄청난 허상이었으며 그런 자신의 실상을 확인하는 순간 그는 소스라칠만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함부르크국립음악원에서 만난 빌프리트 한케교수는 바흐 바이올린곡을 첫과제로 내주었다.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심오한 환상과 고고한 기품,음악의 모든 정교한 기법을 담아야 하는 이 절후의 명작은 고국연주때 「풍부한 음악적 감성」으로 호평받았고 그도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작품의 하나였다. 그러나 한케교수는 1악장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연습해올 것을 명령했다.1주일후 다시 교수 앞에 섰으나 이번엔 『이곡을 연주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교수의 이말은 그의 자존심을 무참하게 짓밟았다.여기에 일본인 학생과 비교되는 수모까지 겪으면서 스스로를 보호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가파른 위기의식을 느꼈다.여기서 도망친다면 영영 그만이다.자존심을 천재로 알던 그로서는 이때의 모욕의 충격에서 한동안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는 서울예고시절 오케스트라연습에 늦었다는 이유로 당시지도교수이던 이재헌씨가 「주의」했을 뿐인데도 그 길로 연습실을 빠져나가 연주회에 나타나지 않은 적이 있었다.관현악 대신 쳄버오케스트라로 편성하여 바이올린의 비중이 어느 때보다 컸으나 교수는 김민을 나무라지 못했다.건드리면 옥죄는 식물처럼 선병질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끝내 「크리스탈 유리잔 다루듯」했다는 에피소드를 남기고 있다.『그때 내가 크게 꾸짖었다면 오늘의 김민의 대성은 없었을 것이다.자존심만 상하게 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의 할일을 투철하게 해내는 인물』이라고 했다. 그런 김민이 독일에서 당한 모욕은 일생일대 대사건일 수밖에 없었다.6개월 만에 바흐 통과후에도 불가사의한 인내심으로 그는 2년간 한케교수 밑에 머물렀다.그리고 한케교수의 손꼽히는 제자로 인정받게 되자 미련없이 그로부터 떠나버렸다. ○세계30국 순회 연주 이번엔 베를린국립음악원 교수이자 혈기왕성한 토마스 브란디스교수를만났다.브란디스 사사를 원하자 한케교수는 크게 실망하며 「너의 재능과 개성을 키워줄 사람은 나」라고 설득하려 들었다.그러나 그는 여러 스승을 섭력한다는 의지로 브란디스문하에 들어갔고 여기서의 시련은 한케 이상의 고통이었다. 곡마다의 프레이스를 수백번씩 되풀이하면서 이를 다시 자신의 음악으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문자그대로 피나는 훈련이었다. 한케교수가 완벽주의라면 브란디스교수는 이미 인정된 가능성 위에서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고 탐색해나가는 노력파였다. 그는 지금도 제자들을 가르칠 때 자존심을 다쳐 결정적인 상처를 주기보다 끈질긴 집념에의한 노력에의 가능성에 비중을 두고 있다.섬세한 예술가의 심성이란 작은 상처에도 영원한 좌절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그는 끈질긴 노력끝에 눈부신 성취감을 가르쳤다. 음악성을 인정받아 재학중에 함부르크 클라이네 뮤직홀에서 첫독주로 서독음악계에 데뷔,입단이 까다로운 북독일라디오방송교향악단,로린마젤이 지휘자로 있는 베를린방송오케스트라와 함께 전세계 30개국 순회공연했고 그때 만난 줄리어드음대 출신인 피아니스트 윤미경(한양대교수)과 74년에 결혼,지금까지 음악의 협력자·조언자로서의 이상적인 생활을 누리고 있다.둘사이엔 아들 하나(태원·고2). 독일체류 10년만인 79년에 돌아와서 국립교향악단(현 KBS교향악단)악장취임,서울대음대교수·바로크합주단 재창단등 다양한 역할을 빈틈없이 맡아 「자신이 지닌 것과 음악이 원하는 사이를 훌륭하게 중재한다」는 주위의 평을 듣고 있다. 오케스트라보다 규모가 작은 실내악앙상블은 그 음악적 질이 한층 치열하고 치밀한 것이 특색이다.또 섬세하고 투명하여 독주자로서의 세련된 기량을 지니면서 여러 소리를 한데 묶어주는 음악적 조직측면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13년간 그는 악장과 지휘를 겸하는 리더로서 이무지치에 비견되는 위치로 바로크합주단을 올려놨고 최근에는 세계정상급 매니지먼트인 콜럼비아 아티스트와 계약,내년부터 세계투어에 들어간다. ○예술가 집안서 성장 그는 원로서예가이며 플루트를 연주하던 심당 김제인씨(82)와 이전 피아노과 출신인 이재순여사(82)의 3남매중 장남.여동생 장희씨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화가,남동생 춘씨는 그래픽 디자이너등 예술가집안에서 어릴때부터 그가 하고 싶은 일들을 주저없이 누려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그림솜씨가 뛰어나 예고진학 때는 미술과 음악을 놓고 망설이기도 했으나 스승인 임원식씨와 이재헌씨의 강력한 조언으로 바이올린의 길을 택했다. 검은 안경과 검은 티셔츠,북유럽풍의 자유분방한 옷차림을 즐기는 만년소년같은 모습은 어느 한 구석에도 세월의 흔적이나 인생의 혹독한 시련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또 「모든 것은 내가 열심히 한 탓이 아니라 내 위에서 나를 지켜주는 누군가가 있고」그 누군가를 위해 연주한다는 그의 자세는 음악외엔 도무지 딴관심이나 욕심이 없는 듯 검은 연주복,눈부시게 흰 소매끝에서조차 바그너의 무한선율이 언제까지나 끝없이 흘러나올 뿐이다. □연혁 ▲1942년 서울출생 ▲1960년 서울예고졸업(안용구·이재헌 사사)서울대 음대입학(국립교향락단입단·서울대실내악단·한국학생실내악단 활동) ▲1962년 동아음락콩쿠르 입상 〃 국향과 비에니아프스키협연 데뷔 ▲1964년 서울대 음대졸업 ▲1965년 바로크합주단(단장 전봉초)창단멤버 부악장 ▲1968년 피아니스트 신수정과 서독유학독주회 ▲1969년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악원(빌프리트 한케,토마스 브란디스 사사) ▲1972년 재학시 함부르크 클라이네 뮤직홀 첫독주 ▲1972∼74년 쾰른실내악단 부악장,솔리스트,악장 ▲1974년 일시귀국 국립극장 개관기념 독주회 〃 쾰른 실내악단과 캐나다·미국·중남미등 30개국 순회연주 ▲ 〃 북독일라디오방송(NDR)단원및 독주자 ▲1976∼79년 베를린방송 교향악단 단원및 독주자 ▲1977년 바이로이트 바그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단원선발이후(해외다연주참가) ▲1979년 귀국,국립교향락단 악장취임(이후 정기연주·협연참가) 〃 독일문화원주최「바흐,베토벤,프로코피예프를 위한 소나타의 밤」연주 ▲1980년 바로크합주단 재창단 악장겸 리더,해마다 정기연주 4회및 초청연주외 1백50여회연주와 미국등 해외연주 ▲1981년 KBSTV콘서트 텔레만 탄생 300주년 기념 연주 ▲1982년 제4회 독주회 겸 부인인 피아니스트 윤미경과 열번째 부부연주 ▲1984년 KBS교향락단과 일본및 동남아 순회연주 ▲1985년 호암아트홀 초청독주회 ▲1986년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 월드필오케스트라 제1바이올린 초청연주 ▲1987년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과 듀오이벤트(멜버른) ▲1990년 바로크 합주단 창단 25주년 기념연주 ▲1991년 바로크합주단 동남아 순회연주 ▲1993년3월 서울대 교수 실내악단 창단 첫 연주,한미 우호협회 한국주재 미군과 미국관계자 초청 6월축제 78 한국펜클럽선정 「이달의 음악가상」,87 한국음악가협회제정 「올해의 음악가」,87 바이로이트 바그너페스티벌 10년참가감사패,89 음악동아「올해의 음악가상」,바로크합주단 CD출반
  • 「에이즈퇴치 시민모임」 상담창구에 쇄도하는 12문 12답

    ◎에이즈,모기로 전파 안된다/감염자와 목욕탕 함께써도 안전/성적 결합때 콘돔 정확하게 사용해야 무사/동성연애자들은 감염위험 높아 2월말 현재 보사부에 등록된 우리나라의 에이즈항원 항체양성반응자는 2백55명에 달한다. 에이즈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에이즈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정보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국내 첫 민간 에이즈단체로 출범한 「에이즈퇴치를 위한 시민모임」상담창구에 가장 많이 쇄도하고 있는 에이즈관련질의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엮어본다. ▲수혈은 에이즈에 감염되기 쉬운가=에이즈에 감염된 혈액을 수혈받으면 거의 1백% 감염된다.그러나 현재 국내에서는 모든 헌혈 혈액에 대해 에이즈검사를 실시하고 있으므로 걱정안해도 된다. 헌혈혈액에 대한 에이즈검사결과는 2∼3시간만에 나온다.헌현혈액은 대부분 적십자산하 혈액원에서 검사하며 윤락녀및 접객업소 종사자등 성병진료대상자는 소속보건소에서 정기적으로 채혈,시·도 보건환경연구원에 검사를 의뢰하게된다.만일 헌혈혈액에서 에이즈양성반응이 나타난 사람은 2∼3차례에 걸쳐 국립보건원의 정밀진단을 받게된다. ▲감염자와 같은 집에서 살거나 같은 접시·유리잔을 사용해도 감염되는가=아니다.에이즈는 일상적인 생활에서의 어떤 행동에 의해서도 감염되지 않는다.감염자와 같은 집에서 살더라도 콘돔없이 성접촉을 갖지 않는 한 감염되지 않는다.에이즈바이러스는 일반적인 세척으로 컵이나 접시에서 제거되며 공기중에 노출되면 수초안에 죽는다. ▲공중화장실·공중목욕탕·공중수영장·전화기 사용등으로 감염되는가=아니다.에이즈는 이러한 방법으로는 전파될 수 없다. ▲같은 면도기나 칫솔을 사용하면 감염되는가=5년동안 한 집에 살면서 같은 생활을 한 경우에도 아직 그러한 사례보고가 없다.그러나 이것은 위험한 행동임에 틀림없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모기가 에이즈를 전파하는가=아니다.모기나 곤충·쥐들도 에이즈를 전파시키지 않는다. ▲에이즈환자가 있는 집이나 병원근처에 사는 것이 위험한가=아니다.환자의 혈액이나 체액분비물의 처리만 잘 한다면 전혀 위험하지 않다. ▲에이즈에 감염된 조리사및 요리사가 있는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면 감염되는가=아니다. ▲왜 동성연애자나 양성연애자들이 에이즈에 걸릴 확률이 높은가=에이즈바이러스는 정액으로 운반되며 직장을 통해 혈류로 이동한다.따라서 콘돔없이 항문성교(항문주위는 특히 파열되기 쉬운 미세혈관으로 되어 있음)를 할 경우엔 감염될 위험성이 극히 높다. ▲왜 에이즈전파는 성적접촉에 의해 일어나는가=정액이나 질 분비물에는 특히 에이즈바이러스를 운반할 수 있는 많은 세포들이 있는데,이들이 질이나 직장을 통해 혈류로 들어가 감염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마약상용자는 왜 감염의 위험이 큰가=마약상용자들은 보통 같은 주사기와 바늘을 사용하며,이때 바늘에 에이즈바이러스가 포함된 혈액이 묻어 직접 정액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바늘이나 주사기를 삶는 것이 에이즈바이러스를 박멸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1회용을 사용해야 한다. ▲키스에 의해서도 전파되는가=가벼운 키스는 전혀 위험이 없다.그러나 입안에 상처가 있는 사람이 깊고 격렬한 키스를 하게되면 감염의 위험이 있다고 보여지지만 아직 세계적으로 보고된 사례는 없다. ▲콘돔사용은 완전히 위험을 없애나=정확하게 사용할때만 그렇다.그러나 정확한 콘돔사용은 생각만큼 쉽지 않기 때문에 많은 노력과 지식이 필요하다.
  • 피카소의 20대/이미 “거친 붓질”

    ◎입체파몰립 초창기 걸작품 한자리에/파리 그랑팔레화랑 전시… 조각 2점 눈길 프랑스 파리에 있는 그랑 팔레의 국립 갤러리는 오는 연말까지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걸작품들가운데 20대 청년시절에 그린 1백50점의 회화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전시,미술애호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이번 특별전시회에는 피카소의 생애를 더듬어볼수 있는 몇몇 그의 조각품들까지 나와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않고 있다. 이 피카소 작품전시회와 때맞춰 프랑스의 권위있는 시사주간지 르 포엥은 최신호에서 「피카소­정물화를 괴롭히는 사람」이라는 제하의 장문의 기사를 통해 그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하고 있다. 1907년 봄,피카소가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그렸을때 사람들은 그의 정신상태를 의심했을만큼 놀랐다.미술사의 한 혁명으로 불리는 큐비즘(입체주의)의 탄생을 알리는 이 그림은 파리에서 피카소가 발견한 새로운 조형언어의 하나였다.지금으로부터 85년전 입이 뒤틀리고 팔이 잘린 이 기괴한 형태의 여인들은 19세기를 갓 벗어난 사람들에겐 야만적이고난폭한 충격일수 밖에 없었다. 『가장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물이 나의 사상을 담는 그릇이다』­이 명언은 그의 작품세계의 출발점이 되고있다. 이번에 출품된 그의 출세작 「라 데세르트」를 비롯,그의 초기작품들은 그당시 여느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국화·달리아·꽃병·냄비·물병과 기타·만돌린등 악기류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았다. 그러나 1900년 파리에서 창작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작품내용은 사뭇 달라진다.그림의 테마로는 하층계급 사람들의 비참한 생활상과 고독감이 두드러졌다. 그후 몽마르트르에 정주함과 동시에 그의 작품에는 과거의 스페인 예술,특히 카탈로니아 지방의 중세조각에 많은 영감을 받는 한편으로 E 그레코·고야 등이 지닌 독특한 단순화와 엄격성이 가미되어 갔다.테마로는 곡예사들을 묘사하는 일이 많아졌으나 그가 그린 어릿광대나 곡예사는 무대 위의 모습이 아니라 그 생활의 이면을 파헤친 애수 그것이었다. 1905년 무렵에는 G 아폴리네르와 H 마티스와 사귀게된다.그러나 작풍은 P 세잔의 형체관을 살려나가 점점단순화되었고,1907년 영원히 기념할 명작 「아비뇽의 아가씨들」에 이르러 형태분석이 비로소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때 그는 G 브라크와 함께 큐비즘운동을 전개,1909년에는 분석적 큐비즘,12년에는 종합적 큐비즘시대를 열고 25년께 갓 태어난 초현실주의에 매료될때까지 피카소는 큐비즘의 꽃을 활짝 피웠다.이 무렵에 이르러 그는 이미 20세기 회화의 최대 거장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큐비즘의 작가들은 물체를 마치 외과의사가 시체를 해부하듯 기하학적 형태로 해체해서 보았고,그것들을 본대로 종합했다.그 위에 피카소는 그가 관찰 현대도시에서의 삶의 황량함·추악함·무자비함을 거친 붓질로 표현했다. 큐비즘,즉 입체주의는 현대과학처럼 사물 겉모습의 진실성을 수학적인 관계와 질서로 묘사한 것이다.아무런 감정표출없이 나무·널빤지처럼 그려진 여인들,즉 여러지점에서 동시에 바라본 「눈」이 종합된 시점의 복수화는 실제상황에선 불가능하지만 「감각적이기보다는 두뇌적인」입체파의 대상파악의 방법이었다. 이번에 전시된 「맥주컵」(1909)·「페르노술(주)과 유리잔」(1912)등에선 분석적 방법이,「술집 테이블과 기타」(1913)·「만돌린과 기타」등은 종합적 큐비즘의 기법이 동원된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피카소의 초창기 회화 말고도 그랑 팔레의 전시관에서는 그의 예술적 발자취를 고찰할수 있는 「유리컵과 작은 술잔」,「압생트의 유리컵」등의 조각품들이 시선을 끌고있다.1914년에 제작된 두 작품은 작은 판자 조각들과 청동의 도금을 사용하는등 재료를 달리했지만 큐비즘이란 원리에 충실하고 있다.
  • 승부 조작 경마조교사 자살/최연홍씨

    ◎“이번일은 나 하나로 끝났으면…” 유서 경마승부조작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아오던 한국마사회 소속 조교사(조교사)최연홍씨(51·경기도 안양시 안양7동 준마아파트 2동 604)가 26일 상오5시20분쯤 경기도 과천시 마사회 골프장 가건물내에서 천장전화선에 목을 매고 깨진 유리잔으로 왼쪽 손목동맥이 끊겨진 시체로 발견됐다.골프장 직원 권혁부씨(33)는 『새벽 골프연습공을 정리하려고 보관소에 가보니 최씨가 목에 전화선을 감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고 말했다. 숨진 최씨는 16절지 크기의 조교사일지에 『나하나로 이번 일이 끝났으면 한다.경마장을 그 더러운 속에서 오늘까지 지켜왔는데 더 좋은 경마발전을 보지 못하는게 한이 된다.조기단은 똘똘 뭉쳐 앞으로의 한국경마를 보전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숨진 최씨는 구속된 전 영동백화점 대표 김택씨(34)에게 경마정보를 제공하고 89년부터 2천5백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22일 서울지검 특수2부(조용국부장검사)에서 1차 조사를 받고 풀려난 뒤 검찰의거듭된 2차 소환요구에 불응해왔었다. 최씨는 25일 하오9시쯤 술에 취한 상태에서 택시를 타고 마사회에 도착한 것으로 밝혀졌다. 최씨가 숨진 한평정도의 연습볼 보관소에는 사무용 책상주변에 깨진 유리잔이 흩어져 있었으며 천장의 전화선이 늘어져 바닥에 쓰러진 최씨의 목에 감겨 있었다. 경찰은 최씨가 유서를 남긴 점과 시체의 손목과 목부분에 깨진 유리잔으로 자신이 그은듯한 3∼10㎝길이의 상처가 10여군데 있는 점등으로 미루어 숨진 최씨가 자신의 경마승부조작사실이 검찰수사결과 드러나자 이를 비관,자살한 것으로 보는 한편 유서에 「단결」등을 거듭 강조한 점등을 들어 검찰수사가 확대되는 것을 막기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도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 사탕은 7백원·용기는 6천원

    ◎과소비 조장 「화이트데이 선물」 5개업체 적발 청소년층을 겨냥해 선물용으로 판매되고 있는 사탕류 대부분이 내용물보다는 포장용기값이 최고 9배나 비싼 것으로 밝혀져 보건당국이 단속에 나섰다.보사부는 12일 이른바 「화이트데이」(3월14일)를 전후해 청소년층이 즐겨 찾는 선물용 사탕류에 대한 일제단속을 펴 내용물 값보다 포장 용기값이 2∼9배나 더 비싼 사탕제품을 만들어 팔아 온 신라명과·리리제과·도원제과·청우제과·매일제과등 5개업체를 적발했다. 보사부에 따르면 청우제과는 사탕값이 7백원인 「꽃바구니」란 제품을 만들면서 6천3백원짜리 바구니모양의 도자기를 포장용기로 사용,7천원을 받고 판매해왔다는 것이다. 청우제과는 또 7백50원어치의 사탕이 들어 있는 「마이프겐트」를 6천2백50원짜리 용기에 넣어 7천원을,1천2백원어치의 사탕이 든 「듀바」를 8천8백원짜리 용기를 사용해 1만원에 각각 팔아오다 적발됐다. 신라명과는 6백30원어치의 수입사탕을 2천3백70원짜리 유리병에 넣어 팔아왔으며 올해 12월 말까지인 유통기한을내년 3월31일로 허위표시,재고가 생기더라도 내년 화이트데이때 팔수 있도록 했다가 영업정지 15일의 행정처분까지 받았다. 이밖에 도원제과는 사탕값이 2천원에 불과한 「로망스카」를 자동차모양의 도자기에 넣어 9천원에 팔았으며 리리제과는 1천4백원어치의 사탕을 유리잔모양의 용기에 넣어 4천5백원을 받아오다 각각 적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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