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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틀러가 소유한 자서전 ‘마인 캄프’ 고가 경매

    히틀러가 소유한 자서전 ‘마인 캄프’ 고가 경매

    나치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1889~1945)가 직접 소장했던 자서전 '마인 캄프'(Mein Kampf·나의 투쟁)의 카피본이 경매에 나와 우리 돈 1억원에 판매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미국의 역사가이자 고미술품 유명 딜러 크레이그 고틀리브(43)는 1932년 발간된 히틀러 소유 '마인 캄프'를 온라인을 통해 경매 중이라고 밝혔다. '마인 캄프'는 1923년 뮌헨 폭동을 일으켜 투옥된 히틀러가 이듬해 감옥에서 집필한 자서전으로 독일 발전 계획과 유대인 혐오 등 인종 차별적인 내용이 가득 담겨있다. 현재 독일에서는 출판이 금지된 상태지만 당시만 해도 독일인 누구나 한 권 쯤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농담이 있을 만큼 많이 팔린 책이기도 하다. 이처럼 수많은 카피본이 있음에도 이 책의 가치가 유독 높은 것은 역시 히틀러 서재에 꽂혀있었기 때문. 이 책은 1945년 나치 패망 후 뮌헨에 있던 히틀러의 집 서재에서 미군 조셉 벤 리버에게 발견됐다. 이후 여러 경로를 거쳐 지난해 히틀러의 모자와 셔츠 등과 함께 고틀리브에게 판매됐다. 고틀리브는 "마인 캄프는 1945년 이후 70년 간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출판이 금지될 정도로 논란이 있는 서적" 이라면서 "이번 경매 역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 또한 역사의 일부로 존중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경매는 다음달 1일까지 온라인으로 진행되며 낙찰가는 10만 달러 이상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음악가 집안서 태어난 추상 회화의 시조 “예술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음악가 집안서 태어난 추상 회화의 시조 “예술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

    스위스를 대표하는 화가 파울 클레(1879~1940)는 “예술이란 눈에 보이는 것의 재현이 아니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추상회화의 초석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표현주의, 큐비즘, 초현실주의 등 20세기 초반의 다양한 예술 사조를 받아들이며 선과 형태, 색채의 탐구에 몰두한 그는 신비로운 색채와 음악적인 운율을 지닌 독특한 화풍을 구축했다. 파울 클레는 1879년 스위스 베른 교외의 뮌헨부흐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독일에서 이주한 베른사범학교의 음악교사, 어머니는 슈투트가르트 출신으로 음악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한 음악가 집안이었다. 예술적 분위기 속에서 파울 자신도 7세부터 바이올린을 배워 프로급 연주실력을 갖췄고, 훗날 뮌헨에서 만난 부인 릴리도 피아니스트였다. 하지만 정작 그를 더욱 매료시킨 것은 미술이었다. 그는 1900년 뮌헨미술아카데미에서 상징주의의 대가 프란츠 폰 슈투쿠의 지도를 받았다. 이곳에서 함께 수학한 바실리 칸딘스키 등과 1911년 뮌헨에서 ‘청기사’파로 활동하기도 했다. 흑백의 판화, 단색조의 템페라 등에 한정됐던 그는 1914년 봄부터 여름까지 아우구스트 마케와 함께한 튀니지 여행에서 선명한 색채를 자각한다. 인간이 색채를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색채가 인간을 뒤흔드는 느낌을 받은 그는 색채와 자신이 혼연일체가 되는 강한 느낌을 체험한다. 1차 대전 이후의 작품들에서 그의 색채에 대한 자각은 추상에 대한 사고로 다채롭게 전개되며 평단의 인정을 받기 시작하고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미술사, 예술이론 등 미술 관련 인문학 외에 식물학, 천문학, 심리학, 과학 등에도 박식했던 그는 1921년 바이마르의 바우하우스에 초대를 받아 그곳에서 추상회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벽화 워크숍,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인을 가르치며 그는 모던아트, 추상미술, 색채론 등을 담아 ‘형태와 디자인 이론에 대한 논고’라는 강의노트를 남겼다. 바우하우스에서 재회한 칸딘스키와 활발하게 추상회화 작품활동을 하는 한편 ‘자연연구의 길’,‘교육적 스케치북’ 등 이론적 저술작업을 완성했다. 또한 음악과 회화의 상응관계를 연구하며 색채의 구조를 파악하고, 대위법의 응용 등 조형적 요소들이 음악적 운율을 갖게 하는 회화를 시도했다. 또한 바우하우스 시절의 이집트여행은 원시·고대문명에 대한 관심과 함께 언어와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그의 추상회화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31년 뒤셀도르프 예술대학으로 자리를 옮기지만 나치는 그가 갈리시아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1933년 교수직을 박탈했다. 탄압이 심해지자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독일은 곳곳에서 시체 냄새가 난다”는 말을 남기고 독일을 떠났다. 스위스 베른으로 돌아와 더욱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이어 나간 그는 자연과 종교를 깊이 탐구했고 특히 ‘천사’를 주제로 28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는 만년에 손이 잘 움직이지 않는 난치병에 걸려 로카르노의 병원에서 60세의 생을 마감했다. 아버지처럼 평생 독일 국적을 지니고 있던 그는 독일을 떠난 직후 스위스로 귀화를 신청했지만 사망하고 며칠 뒤에야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다. 베른시 외곽에 위치한 쇼스할덴 공동묘지에 있는 파울 클레의 묘비명은 형상의 근원을 기호적 언어로 환원할 줄 알았던 예술가의 진정한 가치와 끝없는 열정을 다소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그의 일기에서 발췌한 글이다. ‘나는 이 세상의 언어만으로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죽은 자와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와도 행복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창조의 핵심에 가까워지기는 했으나 아직 충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lotus@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패러다임이 변했다는 말은 엄청나게 큰 변화가 왔다는 것을 뜻한다. 흔하게 쓰는 표현이지만 이 단어가 우리의 세계관에 얼마나 큰 변혁을 일으킨 것인지 곰곰이 따져보지 않고 쓰는 경우가 많다. 이는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이 우리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결과로 볼 수 있다. 이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탄생했으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패러다임이라는 표현은 미국의 과학철학자 겸 과학사학자 토머스 쿤(1922~1996)이 1962년에 발표한 ‘과학혁명의 구조’(SSR)에서 과학의 발전을 설명하기 위해서 도입한 개념이다. 패러다임은 그리스어 ‘파라데이그마’(paradeigma)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 단어의 일상적 의미는 하나의 일정한 형태나 본보기로 삼을 만한 사례를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쿤은 패러다임을 한 시대를 지배하는 과학적 인식·이론·관습·사고·관념·가치관 등이 결합된 총체적인 틀 또는 개념의 집합체로 정의하고 있다. 쿤은 1922년 미국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쿤의 부모는 아들을 하버드대학에 보내기 위해 유명 사립 고등학교(이 학교는 지금도 명문으로 인정받는 태프트 고등학교)에 입학시켰다. 쿤은 과학과 수학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고, 물리학을 전공하기 위해 하버드대학에 들어갔다. 학부를 졸업하면서 이론물리학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철학을 포함한 다른 학문 분야의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 했다. 이런 쿤의 희망은 우연한 기회에 실현된다. 쿤이 자신의 행로를 물리학에서 시작하여 과학사로, 그리고 철학으로 계속하기까지 그가 학부 시절에 역사와 고전문학, 근세 철학에 관해 다양하게 공부했던 것이 도움이 됐을 것이다. 쿤이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자신의 연구 분야를 바꾸려 할 때 마침 하버드 총장 코넌트는 과학 전공자가 아닌 일반 학생을 위한 과학 교양 교육을 개설하고 있었다. 쿤은 코넌트의 초청으로 과학사 교과목의 운영을 담당하는 조교가 됐다. 미국 대학에서의 조교는 한국 대학에서의 조교와 많이 다르다. 미국 대학의 조교는 강의를 계획하고 학생들에게 직접 수업하고 시험도 관리하는 등 거의 교수나 다름없는 역할을 한다. 1940년대 중반 당시만 하더라도 과학사는 이제 막 대학에서 하나의 학과가 되기 시작하는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코넌트가 요청한 조교직은 쿤의 관심을 물리학에서 과학사로 전환하는 데 큰 계기가 됐다. 쿤은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에 관한 자료들을 읽게 되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현대 물리학과 비교해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누군가 알 수 있는 오류를 저지른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심각한 오류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이 어떻게 해서 그리 오랫동안 중요하게 인정받았을까. 자신의 과학사에 대한 해석이 잘못됐다고 느낀 쿤은 매우 당황했다. 그러나 쿤은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은 현대 물리학의 관점으로 볼 것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에 가까운 방식으로 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원전을 기존에 늘 해 오던 방식과 다르게 해석하는 통찰력을 갖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게 됐다. 여기서부터 SSR은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쿤은 개별 과학의 과거를 보면 특정한 시기에는 언제나 개인이 아니라 전체 과학자 집단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된 모범적인 틀이 있는데, 이 모범적인 틀이 패러다임이라고 설명한다. 쿤에 의하면 패러다임은 두 가지 특성을 가진 주목할 만한 과학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첫째는 신선하고 전례가 없어 전문 과학자 집단의 관심을 충분히 받을 만하고, 둘째는 이렇게 관심을 갖는 전문가 집단에게 풀 문제를 던져줄 만큼 충분히 열려 있다는 것이다. 일단 어떤 과학자가 이런 업적에 해당하는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많은 과학자들이 이를 수용하면, 이 패러다임에서 나타나는 갖가지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계속 연구·탐구 활동을 한다. 이른바 과학은 쿤이 정의한 정상과학의 시기에 진입하는 것이다. 이어 정상과학을 통해 일정한 성과가 누적되다 보면 기존의 패러다임은 차츰 부정되고, 경쟁적인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난다. 그러다 과학혁명이 일어나면서 한 시대를 지배하던 패러다임은 완전히 사라지고, 경쟁관계에 있던 패러다임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따라서 하나의 패러다임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고, 생성·발전·쇠퇴·대체되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그러나 이 패러다임은 전혀 새롭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자연과학 위에서 혁명적으로 생성되고 쇠퇴하며, 다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된다. 이런 흐름은 ‘기존 과학→패러다임 출현→정상과학→위기→혁명→경쟁적 패러다임 등장→새 정상과학’으로 요약할 수 있다. 쿤의 주장에서 가장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쟁점은 두 패러다임 간의 비교와 관련한 부분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뉴턴 패러다임 사이에, 뉴턴 역학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사이에는 같은 잣대로 비교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근대에 뉴턴의 과학 패러다임이 등장하며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 패러다임은 사라졌지만 뉴턴 패러다임이 더 우수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패러다임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패러다임으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뉴턴 패러다임으로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상과학의 수정과 보완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예를 들어 지구의 공전을 천동설로는 설명할 수 없을 때 이는 천동설을 개선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천동설과는 전혀 다른 지동설을 받아들여야만 과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쿤은 과학적 연구에서 보편적 원칙은 없다고 했다. 과학은 영구불변의 진리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사회의 부산물이기 때문에 역사적 상황이나 사회적 여건이 변하면 진리의 내용도 변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쿤의 주장은 당시 과학의 발전은 완벽한 진리를 위해 점진적으로 나아간다는 전통적인 과학의 진보 개념을 무시했을 뿐 아니라 상대주의적 요소도 있다 하여 과학철학자들의 반발을 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쿤의 철학은 과학 분야를 넘어 세계를 보는 혁명적인 시각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쿤의 패러다임은 과학의 발전을 보는 새로운 철학적 관점을 제공했으며, 자연과학에 대한 이해를 넘어 공학, 사회과학, 정치, 경제, 국제관계 등의 변화를 이해하는 새로운 툴을 제공했다. 쿤의 패러다임과 SSR은 숱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지만 그의 SSR은 20세기 하반기 동안 가장 많이 읽히고 인용됐고, 그의 주장의 많은 부분은 이제 상식이 됐다. 쿤의 영향은 쿤의 패러다임을 대체할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올 때까지 우리를 지배할 것이다. ●‘읽어라 청춘’은 격주로 게재됩니다.
  • 서프라이즈 잭더리퍼 정체는 이발사 아론 코스민스키? 근거 살펴보니

    서프라이즈 잭더리퍼 정체는 이발사 아론 코스민스키? 근거 살펴보니

    ‘서프라이즈’에서 희대의 살인마 잭더리퍼의 정체를 밝혀냈다는 주장을 소개해 화제다. 서프라이즈에서는 희대의 살인마 잭더리퍼의 정체를 밝히는 러셀 에드워드의 모습이 공개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19일 오전 방송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세기의 미스터리로 남았던 살인마 잭 더 리퍼의 정체를 밝히는 사설 탐정 러셀 에드워드의 모습이 공개됐다. 러셀 에드워드는 살인 현장에서 발견된 스카프에 묻은 상피 조직을 근거로 잭 더 리퍼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당시 용의 선상에 올랐던 용의자들의 후손을 찾아 그들의 상피 세포를 채취, 스카프의 것과 유전자 검사를 통해 대조하며 누가 범인이었는지를 추적했다. 오랜 추적 끝에 그는 폴란드 출신 이발사 아론 코스민스키가 잭 더 리퍼였다고 주장했다. 이후 러셀 에드워드는 이 같은 추적의 과정이 담긴 책 ‘네이밍 잭 더 리퍼’를 냈고, 이 책은 전세계 법의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러셀 에드워드는 잭더리퍼가 정신 분열증을 앓는 화이트 채플 출신의 이발사 아론 코스민스키로 여성 혐오증에 빠져 여성들 앞에서 성기 노출을 하며 쾌감을 느끼는 변태였다고 주장했다. 러셀 에드워드는 ‘유대인은 죄가 없다’라는 살인사건 현장의 메모를 보고 잭 더 리퍼가 유대인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에 아론 코스민스키의 조카 손녀를 찾아낼 수 있었다. 러셀은 아론 코스민스키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될 당시 살해 현장에서 2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던 것과 그가 신체를 노출하거나 성 도착증세를 갖고 있었던 점을 근거로 들었다. 또 아론 코스민스키가 정신병원에 수용된 시기가 잭 더 리퍼의 범행이 끝난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도 그의 근거 중 하나였다. 서프라이즈 잭더리퍼는 매춘부 여성들을 집중적으로 노려 목을 자르며 장기를 적출하는 등 엽기적인 5건의 살인을 저질렀다. 서프라이즈 잭더리퍼 소식에 네티즌들은 “서프라이즈 잭더리퍼, 그 당시 유전자가 지금까지 제대로 남아 있을 리가”, “서프라이즈 잭더리퍼, 당시에 과학수사가 좀 더 발달했더라면”, “서프라이즈 잭더리퍼, 대체 진짜 정체가 뭘까”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프라이즈 잭더리퍼 정체는 이발사 아론 코스민스키? 근거 신빙성 있나

    서프라이즈 잭더리퍼 정체는 이발사 아론 코스민스키? 근거 신빙성 있나

    ‘서프라이즈’에서 희대의 살인마 잭더리퍼의 정체를 밝혀냈다는 주장이 소개돼 그 근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서프라이즈에서는 희대의 살인마 잭더리퍼의 정체를 밝히는 러셀 에드워드의 모습이 공개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19일 오전 방송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세기의 미스터리로 남았던 살인마 잭 더 리퍼의 정체를 밝히는 사설 탐정 러셀 에드워드의 모습이 공개됐다. 러셀 에드워드는 살인 현장에서 발견된 스카프에 묻은 상피 조직을 근거로 잭 더 리퍼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당시 용의 선상에 올랐던 용의자들의 후손을 찾아 그들의 상피 세포를 채취, 스카프의 것과 유전자 검사를 통해 대조하며 누가 범인이었는지를 추적했다. 오랜 추적 끝에 그는 폴란드 출신 이발사 아론 코스민스키가 잭 더 리퍼였다고 주장했다. 이후 러셀 에드워드는 이 같은 추적의 과정이 담긴 책 ‘네이밍 잭 더 리퍼’를 냈고, 이 책은 전세계 법의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러셀 에드워드는 잭더리퍼가 정신 분열증을 앓는 화이트 채플 출신의 이발사 아론 코스민스키로 여성 혐오증에 빠져 여성들 앞에서 성기 노출을 하며 쾌감을 느끼는 변태였다고 주장했다. 러셀 에드워드는 ‘유대인은 죄가 없다’라는 살인사건 현장의 메모를 보고 잭 더 리퍼가 유대인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에 아론 코스민스키의 조카 손녀를 찾아낼 수 있었다. 러셀은 아론 코스민스키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될 당시 살해 현장에서 2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던 것과 그가 신체를 노출하거나 성 도착증세를 갖고 있었던 점을 근거로 들었다. 또 아론 코스민스키가 정신병원에 수용된 시기가 잭 더 리퍼의 범행이 끝난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도 그의 근거 중 하나였다. 서프라이즈 잭더리퍼는 매춘부 여성들을 집중적으로 노려 목을 자르며 장기를 적출하는 등 엽기적인 5건의 살인을 저질렀다. 서프라이즈 잭더리퍼 소식에 네티즌들은 “서프라이즈 잭더리퍼, 이것도 쉽게 믿기 어렵다”, “서프라이즈 잭더리퍼, 영원히 풀리지 않을 듯”, “서프라이즈 잭더리퍼, 밝혀내기 어려울 거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프라이즈 잭더리퍼, 매춘부 여성 살해 후 장기를..‘경악’ 정체 126년 만에 밝혀져

    서프라이즈 잭더리퍼, 매춘부 여성 살해 후 장기를..‘경악’ 정체 126년 만에 밝혀져

    ‘서프라이즈 잭더리퍼’ ‘서프라이즈’에서 ‘희대의 살인마’ 잭더리퍼를 소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19일 방송된 MBC ‘신기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1888년 영국에서 잔인한 살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희대의 살인마 잭더리퍼의 이야기가 전파를 탔다. 이날 방송에서는 매춘부 여성들을 집중적으로 노려 목을 자르며 장기를 적출하는 등 엽기적인 5건의 살인을 저지른 잭더리퍼의 정체를 밝혀낸 사설 탐정 러셀 에드워드가 등장했다. 2014년 러셀 에드워드는 ‘네이밍 잭 더 리퍼’라는 책을 통해 1988년 런던에서 총 5건의 충격적인 살인사건을 저지른 잭더리퍼가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이발사 아론 코스민스키라고 주장했다. 그는 4번째 희생자 캐서린의 스카프에서 그의 DNA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책에 따르면 에드워드는 전문가를 통해 스카프는 캐서린의 것이라는 점을 확인했지만 잭더리퍼의 DNA는 상피 조직이 워낙 오래돼 DNA 검출이 어렵다는 결과를 얻었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유대인은 죄가 없다’라는 살인사건 현장의 메모를 보고 잭더리퍼가 유대인일 것이라고 확신, 아론 코스민스키의 조카 손녀를 찾아낼 수 있었다. 당시 동네에 살던 유대인은 조지 채프만과 아론 코스민스키 뿐이었다. 에드워드는 먼저 조지 채프만의 후손을 찾았지만 DNA가 일치하지 않아 아론 코스민스키의 후손을 찾아갔다. 아론 코스민스키의 후손은 DNA검사를 두려워했지만 결국 검사를 받았고, 잭더리퍼의 DNA와 99.9%가 일치했다. 그렇게 에드워드의 노력으로 126년 만에 세기의 미스터리였던 잭더리퍼의 정체가 밝혀졌다. 에드워드는 아론 코스민스키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될 당시 살해 현장에서 2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던 점과 그가 여성 혐오증에 빠져 여성들 앞에서 성기 노출을 하며 쾌감을 느끼던 변태였던 점, 아론 코스민스키가 정신병원에 수용된 시기가 잭더리퍼의 범행이 끝난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 등을 추가적인 근거로 주장했다. 네티즌들은 “서프라이즈 잭더리퍼, 완전 소름 돋았다”, “서프라이즈 잭더리퍼, 결국 밝혀냈구나”, “서프라이즈 잭더리퍼 에드워드 대박이다”, “서프라이즈 잭더리퍼 보니 뮤지컬 잭더리퍼 보고싶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MBC(서프라이즈 잭더리퍼)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잭 더 리퍼, 126년 만에 정체 밝혀져

    잭 더 리퍼, 126년 만에 정체 밝혀져

    19일 방송된 MBC ‘신기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1888년 영국에서 잔인한 살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희대의 살인마 잭더리퍼의 이야기가 전파를 탔다. 2014년 러셀 에드워드는 ‘네이밍 잭 더 리퍼’라는 책을 통해 1988년 런던에서 총 5건의 충격적인 살인사건을 저지른 잭더리퍼가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이발사 아론 코스민스키라고 주장했다. 그는 4번째 희생자 캐서린의 스카프에서 그의 DNA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책에 따르면 에드워드는 전문가를 통해 스카프는 캐서린의 것이라는 점을 확인했지만 잭더리퍼의 DNA는 상피 조직이 워낙 오래돼 DNA 검출이 어렵다는 결과를 얻었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유대인은 죄가 없다’라는 살인사건 현장의 메모를 보고 잭더리퍼가 유대인일 것이라고 확신, 아론 코스민스키의 조카 손녀를 찾아낼 수 있었다. 당시 동네에 살던 유대인은 조지 채프만과 아론 코스민스키 뿐이었다. 에드워드는 먼저 조지 채프만의 후손을 찾았지만 DNA가 일치하지 않아 아론 코스민스키의 후손을 찾아갔다. 아론 코스민스키의 후손은 DNA검사를 두려워했지만 결국 검사를 받았고, 잭더리퍼의 DNA와 99.9%가 일치했다. 그렇게 에드워드의 노력으로 126년 만에 세기의 미스터리였던 잭더리퍼의 정체가 밝혀졌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희대의 살인마’ 잭 더 리퍼, 정체 어떻게 밝혔을까

    ‘희대의 살인마’ 잭 더 리퍼, 정체 어떻게 밝혔을까

    19일 방송된 MBC ‘신기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1888년 영국에서 잔인한 살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희대의 살인마 잭더리퍼의 이야기가 전파를 탔다. 2014년 러셀 에드워드는 ‘네이밍 잭 더 리퍼’라는 책을 통해 1988년 런던에서 총 5건의 충격적인 살인사건을 저지른 잭더리퍼가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이발사 아론 코스민스키라고 주장했다. 그는 4번째 희생자 캐서린의 스카프에서 그의 DNA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책에 따르면 에드워드는 전문가를 통해 스카프는 캐서린의 것이라는 점을 확인했지만 잭더리퍼의 DNA는 상피 조직이 워낙 오래돼 DNA 검출이 어렵다는 결과를 얻었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유대인은 죄가 없다’라는 살인사건 현장의 메모를 보고 잭더리퍼가 유대인일 것이라고 확신, 아론 코스민스키의 조카 손녀를 찾아낼 수 있었다. 당시 동네에 살던 유대인은 조지 채프만과 아론 코스민스키 뿐이었다. 에드워드는 먼저 조지 채프만의 후손을 찾았지만 DNA가 일치하지 않아 아론 코스민스키의 후손을 찾아갔다. 아론 코스민스키의 후손은 DNA검사를 두려워했지만 결국 검사를 받았고, 잭더리퍼의 DNA와 99.9%가 일치했다. 그렇게 에드워드의 노력으로 126년 만에 세기의 미스터리였던 잭더리퍼의 정체가 밝혀졌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多함께 보다 多같이 웃다

    多함께 보다 多같이 웃다

    한국사회 이주민은 벌써 150만명이다. 이 중 결혼이주 여성이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1990년대 초중반이다. 그들이 낳은 초기 이주민 2세는 성년을 넘기며 또 다른 가정을 꾸릴 나이가 됐다. 하지만 사정은 녹록지 않다. 이주민 2세의 결혼 문제 자체가 또 다른 문화적 충돌과 갈등을 낳을 수 있다. 이들을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사람 혹은 잠재적 범죄자로 흘겨보는 반다문화적 시선이 한국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탓이다. 프랑스 영화 ‘컬러풀 웨딩즈’(16일 개봉)는 이주민 2세의 결혼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한국사회에도 머지않아 닥쳐올 현상의 미리보기 편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 영화라고 지레 멀리할 이유는 없다. 난해하거나 철학적 사념이 난무하는 여느 프랑스 영화들과 달리 유쾌하게 웃다 보면 어느새 우리의 다문화 사회 수준을 되돌아보게 된다. 샤를 드골을 존경하는 정통 보수 프랑스인과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클로드 부부에게는 네 딸이 있다. 딸들은 차례로 알제리 아랍인, 이스라엘 유대인, 중국인과 결혼한다. 그리고 막내딸마저 아프리칸 흑인과의 결혼을 앞둔다. 장인과 사위, 사위와 사위 간 종교적 차이, 국가 간의 정치적 갈등, 이국 문화에 대한 선입견 등을 놓고 충돌과 다툼이 끊이지 않으며 ‘파시스트’라는 비난의 화살을 서로 날려 댄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아프리카인 사돈은 이들이 점차 다문화를 수용하는 모양새를 보이자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유대인의 할례 풍습, 아랍의 할랄, 유대의 코셔, 금융권을 장악한 화교 자본 등 자칫 묵직할 법한 소재와 주제를 코미디 영화답게 가볍고 경쾌하게 다룬다. ‘컬러풀 웨딩즈’에서는 장모와 딸들로 상징되는 여성들이 다문화 수용과 공존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촉구한다. 물론 이들이 수용할 수 있는 대상은 변호사 아랍인, 사업가 유대인, 중견 은행가 중국인, 각광받는 배우 등으로 제한되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노출한다. 한국에서도 이미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불명’이나 ‘나의 결혼원정기’ 등에서 다문화 사회를 소재 또는 인물로 다뤘다. 2010년에는 아예 인물과 주제를 한국사회의 다문화 공존도 하나로 맞춘 ‘방가? 방가!’가 제작되기도 했다. ‘방가’는 관객이 채 100만명이 안 됐지만, 코미디 영화답게 재미와 문제의식이 잘 어우러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히려 2012년 ‘언터처블 1%의 우정’이 172만명이 관람하는 등 프랑스 현지 못지않은 인기를 받았다. 보수적인 프랑스 남자와 하층계급의 흑인 남자가 서로 투닥거리면서 이해를 넓혀 가며 쌓는 우정을 보여 줬다. 전신마비 백만장자와 그를 돌보는 하층계급 흑인 이민자의 만남이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구도를 설정했지만, 이는 갈등이 아닌 공존을 지향하고자 하는 프랑스 사회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영화적 장치이기도 하다. 박은지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HK연구교수는 “2년 전 ‘언터처블’이 크게 성공하면서 비슷한 유형으로 벤치마킹하는 영화들이 프랑스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오마르 사이가 프랑스 최초의 흑인 대중스타로 떠오르는 등 이민자 사회에 대한 성숙한 접근법이 형성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면서 “한국사회 역시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는 만큼 문화적으로도 차분히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사설] 한국의 인종차별 심각하다는 유엔의 지적

    우즈베키스탄 여성 K씨는 2002년 한국 남성과 결혼해 한국에 정착했다. 두 아이를 두었고 2009년에는 한국 국적도 취득했다. K씨는 2011년 9월 부산의 한 목욕탕에 들어가려다 황당한 일을 겪었다. 목욕탕 주인이 K씨의 얼굴이 한국인과 다르게 생겼다며 출입을 막은 것이다. 경찰이 출동하자 주인은 “에이즈 문제도 있어 다른 손님들이 거부감을 느낀다”고 강변했다. 그런가 하면 세상의 변화를 추구하는 목소리를 한데 모아보자는 취지로 개설된 ‘Change.org’라는 웹사이트에서는 최근 ‘한국 방송은 검은 얼굴(Black Face)을 내보내지 말라’는 청원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방송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흑인 모습으로 분장하는 것은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인종차별이라는 것이다. 다문화 시대, 글로벌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 사회의 준비는 여전히 더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상황에서 무투마 루티에레 유엔 인종차별 특별보고관이 한국을 찾았다. 그는 이주노동자를 직접 만나 노동 및 주거 환경을 확인하고 근로 실태를 전해듣는가 하면, 지역 이주민센터를 찾아 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 사례를 조사했다. 그러니 루티에레 특별보고관이 “한국에 관계 당국이 관심을 둬야 할 심각한 인종차별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그가 확인한 대로 외국인 선원은 한국인 선원보다 더 힘든 일을 하지만 급여는 더 적고, 종종 인종차별적인 언어 및 신체 폭력에 노출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즈베키스탄 여성 K씨의 사례에도 “이 사건이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결과 차별로 인정받았지만, 이후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배상이나 시정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유엔 조사가 있었다고 새삼스럽게 우리의 인종차별 상황을 반성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루티에레 특별보고관이 ‘이주노동자 및 결혼이민자의 인권 침해가 곧 인종차별’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고 본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나 미국의 흑백차별뿐 아니라 이웃의 외국인에게 소소한 우월의식을 표현하는 것도 모두 당사자에게는 큰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인종차별적 행동이라는 인식을 가진 우리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착 대상 외국인에 대한 지원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다문화 정책도 범위를 넓혀야 한다. 포용과 배려를 장기 과제로 삼되 우선 인종차별은 부끄러운 것이라는 국민의식부터 심어야 할 것이다.
  • 사물인터넷·공유 경제, 인류미래 바꾼다

    사물인터넷·공유 경제, 인류미래 바꾼다

    세계의 석학으로 추앙받는 두 거장은 닮지 않은 듯 닮았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유대계 러시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노엄 촘스키(86) MIT대 석좌교수는 저명한 히브리어 연구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언어학자의 길을 걷는다. 반면 앨빈 토플러 이후 손꼽히는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69)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콜로라도 덴버에서 출생해 할리우드 배우 출신인 기업가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17년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펜실베이니아대 동문이며, 무엇보다 세상에 끊임없이 화두를 던진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나눈다. 한계비용 제로 사회/제러미 리프킨 지음/안진환 옮김/민음사/584쪽/2만 5000원 리프킨은 신작 ‘한계비용 제로 사회’에서 “자본주의는 한계에 이르렀고 곧 종말할 것”이라 선언한다. 300년 넘게 물과 공기처럼 인류와 뒤섞여 살아온 자본주의에 대한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아예 2050년이란 시점까지 못박았다. 그때쯤 ‘사물인터넷’과 ‘공유경제’의 부상이 자본주의를 완전히 주변부로 밀어낼 것이란 예언이다. 촉매역할을 할 사물인터넷은 한마디로 지능형 네트워크다. 센서를 통해 온도조절장치는 물론 TV, 세탁기, 컴퓨터 등을 실시간으로 읽어내고 통제한다. 소비자의 행동을 빅데이터화해 미리 어떤 제품을 생산할지 알려주는 식이다. 패러다임 변화의 동력은 아이러니하게도 고도의 자본주의 발달이다. 자본주의를 지탱해온 기업들이 낳은 혁신활동으로 ‘한계비용’(재화나 서비스를 한 단위 더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추가 비용)을 제로 수준으로 떨어뜨리다가 결국 이윤 없는 장사를 벌여야 할 처지에 놓인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사례는 이미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인류의 3분의1은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이용해 네크워크화된 세상에서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프로슈머)로 살고 있다. 거주지와 직장의 일부를 발전소로 개조해 태양열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거둬들이고,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은 3D프린팅으로 손쉽게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쓰고 있다. 모두 한계비용 제로사회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어찌 보면 앞선 저서인 ‘소유의 종말’, ‘노동의 종말’과 잇닿은 듯 보이지만 1900년대 초 오스카르 랑게 시카고대 교수가 포착해낸 “인류를 위한 자본주의가 어느 시점이 지나면 인류의 진보를 막는 족쇄로 작용할 것”이란 의문과 궤를 같이한다. 리프킨은 선사시대 혹은 봉건시대 꽃피웠던 공유경제의 재도래에 대해 “나눌수록 풍요로워진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경제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 존재하며 유효성을 검증받은 덕분이다. 카셰어링이나 에어비앤비 같은 공유 서비스들이 불러올 협력적 공유사회는 소유권보다 접근권을 선호하는 세대의 주도로 결국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을 것이란 전망이다. “공산주의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는 칼 마르크스의 섬뜩한 주장과 대비되는 장밋빛 낙관은 기술결정론적 사고를 배경으로 한다. 촘스키, 은밀한 그러나 잔혹한/노엄 촘스키·안드레 블첵 지음/권기대 옮김/베가북스/288쪽/1만 5000원 촘스키는 신간 ‘촘스키, 은밀한 그러나 잔혹한’에서 미래보다 현재에 논의를 집중한다. 인류의 근대사를 피로 물들인 서구의 탐욕과 살육, 그리고 은폐를 적나라하게 고발하며 이를 바로잡아야 희망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책은 언론인 안드레 블첵과의 대담형식으로 꾸며졌다. 촘스키는 2010년 이후 프랑스 정부의 집시 추방과 체코 정부의 집시 격리정책을 1930년대 나치의 유대인 정책과 닮은꼴이라 지적한다. 또 폴 포트 치하의 악랄한 학살은 부각되는 반면 서구가 동남아와 라틴아메리카에서 저질렀던 대학살은 은폐되는 것은 주도적인 서구 문화가 이를 자비로운 행위로 교묘하게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피지배지의 엘리트들이 지금도 당시 서구 통치와 교육의 향취에 젖어 있을 만큼 집단세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촘스키가 추산하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신식민주의로 목숨을 잃은 ‘비인간들’은 5500만명에 이른다. 서구가 일으킨 전쟁, 친서방 군사쿠데타, 기타 분쟁들 탓이다. 소설가 조지 오웰이 처음 언급한 비인간은 서구와 일부 아시아의 부국 밖에 거주하는 인류를 일컫는다. 일찍이 한국 사회 역동성에 주목해온 그는 최근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은 김영오씨에게 격려 편지를 보내 반체제 지식인의 면모를 각인시키기도 했다. 촘스키는 “우리는 언제나 선택할 수 있다. 무언가를 행하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라며 변화를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이스라엘 ‘불편한 진실’ 감추기

    지난해 이스라엘에서 ‘무함마드’라는 아랍어 이름으로 태어난 아기가 가장 많았지만 당국이 이를 뺀 채 신생아 이름 순위를 발표해 논란이 되고 있다. 3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지난해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남자 아기 중 무함마드는 1986명이었다. 여자 아기 이름 중 가장 많이 나온 ‘타마르’(1092명)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그런데 지난주 유대력 새해 첫날인 로시 하샤냐를 맞아 ‘연간 신생아 이름 순위 톱10’을 집계한 이스라엘 인구통계 당국은 이 명단에서 무함마드를 빼고 발표했다. 당국이 발표한 명단의 1위는 유대계 이름인 ‘요셉’으로 그 수는 1173명에 불과했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인구는 약 805만 9000명으로 이 중 약 75%가 유대인이고 아랍인은 21%다. 그럼에도 무함마드라는 이름으로 태어나는 아기가 가장 많은 이유는 아랍인들이 아기에게 이슬람교 창시자의 이름을 붙이길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좌파 성향 일간지 하레츠는 통계당국의 명단 누락 사실을 맨 처음 보도하며 “일상화돼 버린 새로운 형태의 인종주의가 분명하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당국 대변인은 “유대계의 명절을 기념한 명단이기 때문에 히브리어 이름만 명단에 올렸다”며 “정치적인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NYT는 무함마드라는 신생아 이름이 가장 많은 것은 “이스라엘 정부가 ‘유대국가’라고 부르기 좋아하는 나라에 21%나 되는 아랍계 시민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준 지표”라면서 “당국이 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명단에서 이름을 뺀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정진곤의 살며 생각하며] 엄마는 반가운데, 아빠는 웬지....

    [정진곤의 살며 생각하며] 엄마는 반가운데, 아빠는 웬지....

    텔레비전 프로그램 가운데 군대간 아들을 면회가서 만나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엄마가 찾아가면, 아들은 너무 반가워 어쩔 줄 모릅니다. 엄마는 아들의 얼굴을 만지면서 이리저리 살펴보고, 야윈 아들을 붙들고 안타까워하다가 마침내 서로 부둥겨 안고 ‘아들아’, ‘엄마!’를 외치면서 함께 웁니다. 이 프로그램을 본 아버지들이 왜 엄마들만 아들 면회를 가느냐고 항의를 했었나 봅니다. 방송국에서 엄마대신 아버지가 군대간 아들을 면회하도록 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 서로 반가워 하기는 하지만, 잠시후면 서로 할 말도 없고 서먹 서먹해 했습니다. 도무지 엄마와 아들이 만났을 때와 같은 감동적인 그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출판사에서 20대에서 30대 초반의 젊은이 2820명에게 “당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설문조사를 하였습니다. 1위는 가족, 2위는 사랑, 3위는 나, 4위는 엄마였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몇 위였을까요? 23위였습니다. 엄마와 아버지 사이에는 친구, 행복, 사람, 믿음, 돈 등이 있었습니다. 왜 아들은 아버지를 엄마처럼 소중하게 여기지도 않고, 친근하고, 정답게 대하지 못할까요? 존 그레이는 ‘화성에서 온 남성과 금성에서 온 여성’이라는 책에서 여성과 남성은 같은 지구상에 살고 있지만 애초부터 출신지가 서로 다른 매우 이질적인 존재라고 주장합니다. 화성출신인 남자는 직장이나 사회에서 능력 있고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무능하다는 평가받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반면에 금성출신인 여자는 다른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중요시합니다. 친구나 친척 그리고 가족들과 사이좋게 지내며 친밀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합니다. 주위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면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노력하며 슬픈 일이 있을 때는 함께 울고 안타까워합니다. 주위사람들로부터 비난이나 따돌림을 당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합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길리건(Gilligan)은 “서로 다른 목소리로(In a Different Voice)“라는 책에서 오랜 연구를 통하여 존 그레이가 주장하는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일리가 있다는 사실을 학문적으로 밝혀주고 있습니다. 남성은 업적 지향적이고 공정성을 추구합니다. 여성들은 어떤 것이 공정하느냐 보다는 그 사람과 내가 어떤 관계인가를 중요시하며, 자신과 가까운 이웃, 친척과 가족을 더 많이 사랑하고 배려하는 관계지향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합니다.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하여 부모와 형제 그리고 친척들과 절친하게 지내고 사이가 좋은 것은 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태생적인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아버지도 엄마처럼 자식과 친하고 서로 흉금을 터놓고 지내고 싶어 합니다.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한 아버지는 울먹이면서 자신의 서글픈 처지를 하소연 하였습니다. “평생 동안 직장에서 온갖 어려움과 수모를 겪고 친구들로부터 ‘노랑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이를 악물고 힘든 직장생활을 견디고 열심히 돈을 모았습니다. 직장에서 정년을 마치면서 그토록 이제 그 동안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집에서 가족들과 편히 쉴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정년을 마치고 집에 있으니, 아들과 딸들은 엄마하고만 이야기하고, 내가 방에서 거실로 나오면 하던 이야기마저 중단하고 슬금슬금 자기들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맙니다. 나하고는 대화조차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는 집안에서 천덕꾸러기가 되었고, 외톨이가 되었습니다”고 말하면서 끝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심각한 장애물이 가로 놓여 있고, 이 때문에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알고 지내던 어떤 사람은 군대에서 고급장교로 예편하였습니다. 그 집 아들은 강남의 명문 고등학교에서 1학년 때까지는 전교에서도 10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 했으나, 2학년이 되면서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집이 가난하여 대학에 가지 못하고, 군인이 되었으나 아들만은 공부를 잘 하여 서울대에 다니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성적이 떨어진 원인은 열심히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울분이 치솟아 아들을 야단치고 때렸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무섭고 공부에 대한 공포심이 심해져, 잘 먹지고 않고 잠도 자지 않으면서 방에만 처박혀 있고, 학교에 가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그 후 여러 차례 상의 전문 상담가와 의사로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 때마다 약간의 차도가 보이기도 했지만, 그 아들은 결국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습니다. 장례식장에 찾아간 저를 붙들고 그 아버지는 흐느껴 울면서 아들이 얼마나 똑똑하고 착했는지를 끝없이 이야기 했습니다. “그 까짓 공부가 무어 그리 중요하다고 아들을 때리고 야단쳤는지 모르겠다”고 가슴을 치면서 통곡하였습니다. 부모와 자식사이에 넘지 못할 커다란 장벽이 가로놓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살아있을 때 서로 이야기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을까, 자식이 그토록 힘들어 했는데 왜 내가 따뜻이 위로해주거나 감싸주지 못했을까”하고 끝없이 후회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 왜 내가 먼저 아버지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을까,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슬프고 외로우셨을까”를 생각하면서 무덤 앞에서 슬피 웁니다. 아버지와 자식이 핏줄을 나눈 사이라고 해서 저절로 가까워지고 친밀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매주 금요일이면 반드시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저녁식사를 합니다. 가족들 모두가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합니다. 4살짜리 막내아들은 집 앞에 있는 가게 아저씨가 다른 아이들에게는 사탕을 주면서 자기한테만 주지 않아 슬프다고 말합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버지는 ‘그까짓 사탕 안 먹어도 괜찮다’거나 ‘내가 가게 아저씨에게 너도 사탕 주라고 할께’라고 쉽게 말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당면한 문제를 자신이 당면한 문제처럼 생각해보면서 아들의 처지와 마음을 이해하고 헤아려 봅니다. 유대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하고 아버지로부터 지혜로운 해결방안을 들어왔기 때문에 중고등학생과 성인이 되어서도 자연스럽게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쉽게 털어놓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윗사람과 아래 사람간의 위계질서를 강조하고 누가 어른이고, 형인가를 엄격하게 따집니다. 부모님이 말씀하시면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아들 된 도리이고 효도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부모님이 말씀하시는데 말대꾸를 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관습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른과 아이 그리고 부모 특히 아버지와 자식간에는 사실상 대화의 통로가 막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식은 아버지를 어려워하며, 가슴속의 이야기를 쉽게 털어놓지 않습니다. 아버지도 자식에게 자신의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서로 대화를 잘 하지 않고 지내왔기 때문에 나중에 커서 대화를 나누기가 어렵습니다. 아들도, 아버지도 서로 가깝고 친하게 그리고 속에 있는 이야기도 서로 허물없이 하고 싶은 마음이야 똑 같을 것입니다. 좀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부터 아버지와 아들간의 대화를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 [길섶에서] 컴퓨터와 독서/구본영 이사대우

    아침저녁 살갗에 와 닿는 바람이 제법 소슬하다. 가을은 성큼 다가왔나 보다. 그러나 ‘독서의 계절’은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 신문사를 떠나 출판사를 차렸던 지인이 엊그제 그 일을 접고 다른 일자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일까. 며칠 전 글로벌 기업 애플을 키운 고 스티브 잡스가 집에서는 어린 자녀들의 컴퓨터와 스마트폰 사용을 엄격히 제한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처음엔 아이러니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필자도 밤늦도록 컴퓨터에 몰입하는 청소년기 아들들과 실랑이를 벌였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야 할 아이들에게 인터넷이나 손안의 컴퓨터 격인 스마트폰을 무작정 금지할 수만은 없을 게다. 그러나 컴퓨터로 소비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책을 읽는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을 터. 잡스의 사례에서 보듯 인쇄된 글씨의 향기, 즉 문자향(文字香)을 모르는 아이들이 안타깝긴 동서양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책갈피에 꿀을 발라 아이들의 독서 습관을 유도했다는, 옛 유대인 부모들의 지혜가 생각난다. 구본영 이사대우 kby7@seoul.co.kr
  • 방미 임상아 “삼성 이서현 지원으로 백 디자인” 무슨 근거로?

    방미 임상아 “삼성 이서현 지원으로 백 디자인” 무슨 근거로?

    방미 임상아 가수 방미가 뉴욕에서 가방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임상아에 대해 언급한 글이 화제다. 방미는 9월 10일 “임상아 그녀의 뉴욕생활을 보며 나의 뉴욕 생활이 떠올랐다”는 제목으로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그는 “나는 8년 동안 뉴욕 생활을 버텼는데, 임상아는 아마도 남편과 아이가 있어서 뉴욕에서 지내기에는 나보다 훨씬 쉬웠을 것이다”라며 “난 뉴욕 맨해튼 중심, 그러니까 가장 바쁜 비즈니스 정글인 미드타운에서 죽도록 일하며 회사를 일구면서 차디찬 일명 악질 방미로 살아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가끔 사람들을 통해 임상아 소식을 듣곤 했다. 그녀의 베일 속 ‘백(Bag)’ 디자이너 수식어에 난 항상 의아해했다. 그녀에게 회사도, 스토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 상아 백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는지 뉴욕 교포들은 나에게 물어보곤 했다”며 임상아의 성공에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방미는 “임상아의 남편은 유대인이며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끔 할리우드 연예인이 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을 그 업계에 종사하는 남편이 찍어와 매스컴에 낸 것이 아닐까 싶다” 면서 “그나저나 그녀는 아마도 그리운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미 마케팅이 돼 있는 그녀는 백 디자인 일을 하겠지. 임상아는 맨해튼 패션 스쿨인 파슨스를 잠시 다니면서 삼성 이서현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녀의 지원으로 백 일은 계속 하지 않을까?”라고 글을 맺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새 영화] ‘지골로 인 뉴욕’ 가을을 적시는 어른들의 진짜 로맨스

    [새 영화] ‘지골로 인 뉴욕’ 가을을 적시는 어른들의 진짜 로맨스

    고독의 이 계절에 어울리는 영화가 나왔다. ‘어른들이 하는 진짜 사랑 이야기’라는 다소 거창한 카피를 내건 영화 ‘지골로 인 뉴욕’은 인간의 근원적 고독에 대해 파고든 작품이다. 돈도 많고 능력도 있지만 정작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해 외로움을 느끼는 피부과 의사 파커(샤론 스톤), 유대인으로서의 규율과 제약으로 억눌린 삶을 살아 온 젊은 미망인 아비갈(바네사 파리디) 등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따뜻한 온기와 정에 굶주린 사람들이다. 뉴욕에 살고 있는 머레이(우디 앨런)는 운영하던 책방이 운영난으로 문을 닫게 되자 생활고에 직면한다. 그때 피부과 전문의 파커로부터 즐길 수 있을 만한 남자를 소개해 달라는 제안을 받고 주변에서 적당한 사람을 물색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머레이는 꽃집에서 일하는 휘오라반테(존 터투로)에게 은밀한 거래를 제안한다. 휘오라반테는 수려한 외모의 미남은 아니지만 수더분하고 부드러운 매력을 지녔다. 게다가 과묵한 데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경청하는 따뜻한 성격의 소유자로 단숨에 고독한 영혼들을 치유하는 ‘지골로’로 명성을 날린다. 전반부에는 휘오라반테의 이야기와 그에게 여성들을 알선해 주는 머레이의 코믹한 상황을 감각적으로 펼쳐 보인다. 하지만 후반부에는 다소 진지한 사랑 이야기로 분위기를 바꾼다. 휘오라반테는 지금껏 만나온 여자들과는 다른 아비갈의 순수하고 여성스러운 매력에 빠져들고 아비갈 역시 휘오라반테의 따뜻함에 빠지면서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이 꽃핀다. 그러나 그녀를 짝사랑해 온 방범대원이 이들의 관계에 대한 뒷조사를 벌이면서 위기에 맞닥뜨린다. 이 영화는 제2의 우디 앨런이라고 불리는 존 터투로가 감독, 각본, 주인공을 맡았다. 영화 ‘바톤 핑크’로 칸영화제 남우 주연상을 수상하고 국내에는 ‘트랜스포머’ 시리즈로 유명한 그는 이 작품에서 무표정한 지골로를 매끄럽게 소화해 냈다. 가을빛 로맨스를 감성적으로 풀어 내며 감독으로서도 충분한 가능성을 보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한편 우디 앨런은 지골로와 여자들의 만남을 알선하는 브로커 역을 맡아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를 펼친다. 때론 인생을 통찰하는 촌철살인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한다. 쉰을 넘긴 나이에 여전히 관능미를 뽐내는 샤론 스톤의 연기도 볼만하다. 전반부와 후반부가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은 것은 단점이지만 귀에 익숙한 재즈 선율과 뉴욕의 가을 정취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25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방미, 김부선만 비난한 게 아냐? 임상아에도 한마디.. 내용 보니

    방미, 김부선만 비난한 게 아냐? 임상아에도 한마디.. 내용 보니

    방송인 방미는 지난 9월 10일 ‘임상아 그녀의 뉴욕생활을 보며 나의 뉴욕 생활이 떠올랐다’는 제목의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했다. 방미는 “나는 8년 동안 뉴욕 생활을 버텼는데 임상아는 아마도 남편과 아이가 있어서 뉴욕에서 지내기에는 나보다 훨씬 쉬웠을 것이다. 난 뉴욕 맨해튼 중심, 그러니까 가장 바쁜 비즈니스 정글인 미드타운에서 죽도록 일하며 회사를 일구면서 차디찬 일명 악질 방미로 살아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방미는 “가끔 사람들을 통해 임상아 소식을 듣곤 했다. 그녀의 베일 속 ‘백(Bag)’ 디자이너 수식어에 난 항상 의아해했다. 그녀에게 회사도, 스토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 상아 백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는지 뉴욕 교포들은 나에게 물어보곤 했다”며 임상아의 성공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방미는 “임상아의 남편은 유대인이며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끔 할리우드 연예인이 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을 그 업계에 종사하는 남편이 찍어와 매스컴에 낸 것이 아닐까 싶다”면서 “그나저나 그녀는 아마도 그리운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미 마케팅이 돼 있는 그녀는 백 디자인 일을 하겠지. 임상아는 맨해튼 패션 스쿨인 파슨스를 잠시 다니면서 삼성 이서현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녀의 지원으로 백 일은 계속 하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방미는 16일에는 난방비 부조리로 이웃 주민과 폭행 사건에 휘말린 김부선에 대해 “김부선이 좀 조용히 지냈으면 좋겠다. 내가 LA에 있을 때나 서울에 있을 때나 이 분은 연기자보단 자기 개인적인 일로 더 바쁘고 시끄럽게 산다. 억울함, 흥분되는 일, 알리고 싶은 일, 설치면서 드러내고 싶은 일들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방미 임상아 ‘상아 백’ 의혹 제기..김부선만 표적이 아냐? 허지웅 일침에 관심

    방미 임상아 ‘상아 백’ 의혹 제기..김부선만 표적이 아냐? 허지웅 일침에 관심

    방송인 방미가 배우 김부선을 비난하는 글을 올려 관심을 끈 가운데 배우 출신 디자이너 임상아를 겨냥한 글도 주목을 받고 있다. 방미는 지난 9월 10일 ‘임상아 그녀의 뉴욕생활을 보며 나의 뉴욕 생활이 떠올랐다’는 제목의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했다. 방미는 “나는 8년 동안 뉴욕 생활을 버텼는데 임상아는 아마도 남편과 아이가 있어서 뉴욕에서 지내기에는 나보다 훨씬 쉬웠을 것이다. 난 뉴욕 맨해튼 중심, 그러니까 가장 바쁜 비즈니스 정글인 미드타운에서 죽도록 일하며 회사를 일구면서 차디찬 일명 악질 방미로 살아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방미는 “가끔 사람들을 통해 임상아 소식을 듣곤 했다. 그녀의 베일 속 ‘백(Bag)’ 디자이너 수식어에 난 항상 의아해했다. 그녀에게 회사도, 스토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 상아 백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는지 뉴욕 교포들은 나에게 물어보곤 했다”며 임상아의 성공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방미는 “임상아의 남편은 유대인이며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끔 할리우드 연예인이 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을 그 업계에 종사하는 남편이 찍어와 매스컴에 낸 것이 아닐까 싶다”면서 “그나저나 그녀는 아마도 그리운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미 마케팅이 돼 있는 그녀는 백 디자인 일을 하겠지. 임상아는 맨해튼 패션 스쿨인 파슨스를 잠시 다니면서 삼성 이서현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녀의 지원으로 백 일은 계속 하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방미는 16일에는 난방비 부조리로 이웃 주민과 폭행 사건에 휘말린 김부선에 대해 “김부선이 좀 조용히 지냈으면 좋겠다. 내가 LA에 있을 때나 서울에 있을 때나 이 분은 연기자보단 자기 개인적인 일로 더 바쁘고 시끄럽게 산다. 억울함, 흥분되는 일, 알리고 싶은 일, 설치면서 드러내고 싶은 일들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방미의 비난해 대해 평론가 허지웅은 이날 “부조리를 바로 잡겠다는 자에게 ‘정확하게 하라’도 아니고 그냥 ‘나대지 말라’ 훈수를 두는 사람들은 대개 바로 그 드센 사람들이 꼴사납게 자기 면 깎아가며 지켜준 권리를 당연하다는 듯 받아챙기면서, 정작 그들을 꾸짖어 자신의 선비됨을 강조하기 마련이다”라며 일침을 가했다. 네티즌들은 “허지웅 방미 일침, 맞는 말이다”, “방미 왜 무턱대고 비난하는 걸까”, “방미 허지웅 일침 새겨 듣길”, “방미 허지웅, 다 똑같다. SNS가 문제”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방미 블로그 캡처(방미 임상아 김부선 허지웅 일침)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방미 “난 차디찬 악질” 임상아에게 “삼성 이서현과 친분으로 백 디자인 계속할 듯”

    방미 “난 차디찬 악질” 임상아에게 “삼성 이서현과 친분으로 백 디자인 계속할 듯”

    방미 임상아 가수 방미가 뉴욕에서 가방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임상아에 대해 언급한 글이 화제다. 방미는 9월 10일 “임상아 그녀의 뉴욕생활을 보며 나의 뉴욕 생활이 떠올랐다”는 제목으로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그는 “나는 8년 동안 뉴욕 생활을 버텼는데, 임상아는 아마도 남편과 아이가 있어서 뉴욕에서 지내기에는 나보다 훨씬 쉬웠을 것이다”라며 “난 뉴욕 맨해튼 중심, 그러니까 가장 바쁜 비즈니스 정글인 미드타운에서 죽도록 일하며 회사를 일구면서 차디찬 일명 악질 방미로 살아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가끔 사람들을 통해 임상아 소식을 듣곤 했다. 그녀의 베일 속 ‘백(Bag)’ 디자이너 수식어에 난 항상 의아해했다. 그녀에게 회사도, 스토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 상아 백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는지 뉴욕 교포들은 나에게 물어보곤 했다”며 임상아의 성공에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방미는 “임상아의 남편은 유대인이며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끔 할리우드 연예인이 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을 그 업계에 종사하는 남편이 찍어와 매스컴에 낸 것이 아닐까 싶다” 면서 “그나저나 그녀는 아마도 그리운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미 마케팅이 돼 있는 그녀는 백 디자인 일을 하겠지. 임상아는 맨해튼 패션 스쿨인 파슨스를 잠시 다니면서 삼성 이서현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녀의 지원으로 백 일은 계속 하지 않을까?”라고 글을 맺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방미 “임상아, 삼성 이서현과 친분으로 디자인 계속할 듯”

    방미 “임상아, 삼성 이서현과 친분으로 디자인 계속할 듯”

    방미 임상아 가수 방미가 뉴욕에서 가방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임상아에 대해 언급한 글이 화제다. 방미는 9월 10일 “임상아 그녀의 뉴욕생활을 보며 나의 뉴욕 생활이 떠올랐다”는 제목으로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그는 “나는 8년 동안 뉴욕 생활을 버텼는데, 임상아는 아마도 남편과 아이가 있어서 뉴욕에서 지내기에는 나보다 훨씬 쉬웠을 것이다”라며 “난 뉴욕 맨해튼 중심, 그러니까 가장 바쁜 비즈니스 정글인 미드타운에서 죽도록 일하며 회사를 일구면서 차디찬 일명 악질 방미로 살아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가끔 사람들을 통해 임상아 소식을 듣곤 했다. 그녀의 베일 속 ‘백(Bag)’ 디자이너 수식어에 난 항상 의아해했다. 그녀에게 회사도, 스토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 상아 백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는지 뉴욕 교포들은 나에게 물어보곤 했다”며 임상아의 성공에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방미는 “임상아의 남편은 유대인이며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끔 할리우드 연예인이 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을 그 업계에 종사하는 남편이 찍어와 매스컴에 낸 것이 아닐까 싶다” 면서 “그나저나 그녀는 아마도 그리운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미 마케팅이 돼 있는 그녀는 백 디자인 일을 하겠지. 임상아는 맨해튼 패션 스쿨인 파슨스를 잠시 다니면서 삼성 이서현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녀의 지원으로 백 일은 계속 하지 않을까?”라고 글을 맺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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