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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여행 | Shalom, Israel 샬롬, 이스라엘④잠들지 않는 도시, 텔아비브Tel Aviv

    해외여행 | Shalom, Israel 샬롬, 이스라엘④잠들지 않는 도시, 텔아비브Tel Aviv

    ●Tel Aviv·Jaffa 텔아비브·야파 잠들지 않는 도시, 텔아비브Tel Aviv 텔아비브에 오기 전까지 이스라엘에 다시 올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다시 온다 하면 그때는 가자나 서안지구를 보고 싶었지 이스라엘을 더 보고 싶은 마음은 별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텔아비브에 와서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여기선 좀 살아 봐도 좋겠구나. 텔아비브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국제도시다. 지중해를 따라 남북으로 14km에 걸쳐 아름답게 펼쳐진다. 딱히 내가 아니더라도 분위기만으로 텔아비브에 홀리는 여행객은 적잖을 게 분명하다. 지중해의 하얀 햇빛은 텔아비브 어디서나 찬란하게 빛났다. 색색의 파라솔이 가득한 텔아비브의 비치는 지중해의 여느 휴양지 같다. 외양만 보면 여기를 하와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북쪽의 야르콘강에서 출발해 비치를 따라 남쪽의 야파까지 두 시간 정도 자전거를 타는 것으로 텔아비브 여행을 시작했다. 카르멜 시장과 야파의 벼룩시장을 구경하고 바닷가를 산책했다. 인터콘티넨탈 호텔 뒤편, 네베 쩨덱Neve Tsedek은 1887년 고대 항구인 야파를 벗어나 유대인들이 처음 살기 시작한 곳이다. 텔아비브는 바로 네베 쩨덱에서 시작됐다. 텔아비브가 이스라엘의 뉴욕이라면 네베 쩨덱은 텔아비브의 소호다. 1900년대 초반부터 많은 예술가, 작가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슈무엘 아그논Shmuel Agnon, 1888~1970년같은 노벨상 수상 작가도 있었다. 뉴욕의 소호나 이스트 빌리지 같은 분위기를 간직한 네베 쩨덱은 텔아비브에서 가장 세련되고 활기찬 거리다. 유명한 문화 학회, 디자이너 부티크, 갤러리, 숍, 카페와 레스토랑을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텔아비브 남쪽은 고대 도시 야파Jaffa다. 야파의 옛 이름은 욥바Joppa. 야파의 역사는 3,000년 전 시작된다. 1909년 야파에 살던 유대인들이 현재의 텔아비브 지역으로 이주해 살기 시작하면서 텔아비브란 도시가 탄생했다. 백색의 도시, 텔아비브는 200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950년 텔아비브와 야파는 통합되어 텔아비브-야파로 이름을 바꾼다. 텔아비브에 머무는 동안 느닷없이 나이트클럽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미국에서 온 ‘나이트 라이프 전문’ 여기자, 그리고 ‘텔아비브 나이트 라이프’ 담당 공무원과 함께 텔아비브의 각양각색 클럽을 돌아다녔다. 유흥과는 담쌓고 지낼 것 같은 이스라엘에 와서 클럽 호핑을 할 줄이야! 테이블에 올라가 춤을 추는 건 여기도 예외가 아니다. 텔아비브의 밤은 뜨겁고, 아주 유혹적이다. 벤구리온 공항에 내릴 때 잠시나마 가졌던 긴장이 새삼스럽다. 텔아비브를 싸돌아다니다 보니 이스라엘 사람의 입장이 되어 폭탄 테러를 돌이켜 생각하게 됐다. 여느 지중해의 휴양지 같은 이곳에도 분쟁의 흔적과 기억은 남아 있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 이 땅은 ‘팔레스티나’라고 불렸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 땅을 여전히 팔레스티나라고 부를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는 복잡하다. 10년 전 일이라곤 하나 인터콘티넨탈 호텔 근처 바닷가의 나이트클럽에서 자살폭탄테러가 있었다. 어제 오늘 내가 산책을 하며 오갔던 곳이라는 게 좀처럼 실감나지 않는다. 1948년 5월14일 다비드 벤 구리온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언한 곳도 텔아비브이고, 1995년 팔레스타인과의 평화를 모색하던 전 이스라엘 총리 라빈이 극우 유대 청년인 아미르에게 희생된 곳도 텔아비브다. 여담이지만 현재 아미르는 감옥에서 풀려나왔고, 자신의 변호사와 결혼해 잘 살고 있다고 한다. 135개국 사람들이 사는 나라 우리나라 경상도 크기의 이스라엘에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135개국 사람들이 살고 있다. 국가의 존재 자체가 다문화국가이니 생활환경도 국제적일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에서도 텔아비브는 이런 국제적 분위기의 정점에 놓인 도시다. 게다가 평균연령 28.3세의 매우 젊은, 어쩌면 청춘의 도시다. 팔레스타인 문제만 없다면, 문화적 다양성만으로 보면 텔아비브는 ‘리틀 뉴욕’ 같다. 텔아비브는 뉴욕처럼 ‘잠들지 않는 도시’다. 금년에는 동성애자 축제인 ‘마디 그라 텔아비브’ 페스티벌이 처음으로 열렸다. ‘하느님의 나라’, 이스라엘에서 동성애자들의 축제가 열렸다는 게 나로선 무척 신기하다. 미국이 그렇듯 이스라엘 역시 국내적으론 인간의 자유와 권리가 중요하다. 그러나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유대인들은 텔아비브 시청사 앞에서 “인종차별을 하지 말라”고 시위한다. 유대인이라고 해서 모두 비슷한 처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의 백인 출신 유대인과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출신 흑인 유대인의 생활수준은 완전히 다르고 그에 따른 사회적 불만은 어떤 식으로든 분출되기 마련이다. 이스라엘에는 아랍계 이스라엘 국민도 적지 않다. 이스라엘 인구 740만 중 20%는 아랍인이다. ‘아랍계 이스라엘 국민’이란 모순을 안고 사는 이들이다. 이스라엘의 공식 언어는 히브리어뿐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한 가지가 더 있다. 다름 아닌 아랍어다. 전 세계 이슬람 국가들과 늘 전쟁을 치르는 것 같은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인터콘티넨털 호텔 바로 옆에 이슬람 사원이 있다. 이스라엘 국민 중 유대교를 믿는 사람은 20%밖에 되지 않는다. 유대교도 중에서도 율법을 엄격히 지키는 ‘정통 유대교도’는 겨우 5%에 불과하다. 아랍인은 무슬림, 기독교, 드루즈파로 나뉘고 이스라엘의 분류법에 따르면 기독교도마저 아랍인으로 간주된다. 유대교에서 말하는 성서는 구약만을 뜻하며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다. 예수는 여러 선지자 중 한 사람에 불과하다. 이 모든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문제가 혼재되어 있는 곳이 이스라엘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사막과 사해, 지중해, 갈릴리 그리고 텔아비브까지 국토는 작으나 이스라엘의 지형과 기후, 문화는 매우 다채롭다.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분쟁만 없다면 이스라엘은 완벽한 여행지다. 텔아비브에서 만난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해외여행을 갈 필요가 없어요. 이스라엘에는 지중해가 있고 사해가 있어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사막이 있고 바다 같은 갈릴리 호수가 있어요. 여행을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탈 필요가 없는 거죠. 예루살렘에서 두 시간이면 이 모든 곳에 갈 수 있거든요.” 그렇다. 이스라엘을 3일간 여행한다면 하루는 지중해, 하루는 사해, 하루는 사막에 갈 수 있다. 지구상에 이런 나라는 없다. 이스라엘에서 사람을 만날 때 건네는 인사는 ‘샬롬’이다. 샬롬은 히브리어로 평화를 의미한다. 일주일간의 이스라엘 여행을 마치고, 모두가 자유롭게 될 그날을 위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다. 샬롬, 이스라엘. 샬롬, 팔레스티나. ▶travel info Israel ISRAEL 인구는 724만. 아랍 이슬람, 아랍 기독교, 두르즈, 베두인, 체르체스키, 사마리아, 유대 디아스포라 출신이 모여 산다. 천연 자원은 거의 없지만 개인당 GDP는 2만7,300달러에 달한다. 세 개의 대륙과 두 개의 바다가 만나는 곳에 세워진 이스라엘은 매우 복잡한 문화적, 종교적 배경을 가진 나라다. AIRLINE 화·목·토요일 운행하는 대한항공의 경우 인천에서 텔아비브까지 약 11시간 걸린다. 이스라엘항공의 경우 베이징을 경유한다. 우즈벡항공이나 타이항공을 이용할 수도 있다. transportation 이스라엘은 국토 면적이 작아 버스나 기차로 이동하기에 편리하지만 국내 항공편은 비싸다. 기차 | 편리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안식일과 유대교 휴일에는 운행하지 않는다. 쉐루트(합승택시) | 버스 노선과 같은 구간을 운행한다. 대개 버스 요금과 비슷하거나 저렴하다. 쉐루트가 아닌 보통 택시의 경우 야간, 휴일 그리고 안식일에 25% 할증된다. food 팔라펠felafel |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거의 모든 거리에서 볼 수 있다. 이집트 콩을 저며 양념과 함께 둥글게 빚어 튀겨 만든다. 동그란 피타 빵 안에 넣어 먹는다. 호무스Hummus | 으깬 병아리 콩을 참깨와 함께 반죽해 만든다. 올리브 오일, 파슬리, 피타 빵 등 다른 사이드 메뉴와 함께 먹는다. 코셔Kosher 음식 | 유대교 율법에 의해 먹어도 좋다고 허락된 음식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우유와 육류를 함께 먹거나 굴을 먹는 것은 금지된다. 코셔 식당에는 그 지역 랍비가 인증한 증명서가 진열돼 있다. immigration 출발 3시간 전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탑승할 항공사 카운터로 가기 전 보안 검사를 받는다. 두 명의 보안 요원은 다음 같은 질문을 번갈아 가며 되풀이한다. “이스라엘에 며칠 있었죠? 이스라엘에 온 목적은 무엇입니까? 누가 짐을 쌌습니까? 어디서 짐을 쌌습니까? 어디를 방문했습니까? 어느 호텔에서 잠을 잤죠? 일주일 동안 잠을 잔 호텔 이름을 전부 말하세요.” 경우에 따라선 20가지 정도 질문을 할 수 있다. 사전에 이스라엘관광청을 통해 질문 내용을 인지하고 답변을 미리 준비하면 덜 당황할 것이다. 수하물로 부치는 짐은 잠그지 않는 게 좋다. 잠겨 있을 경우 보안 검색 과정에서 보안요원에 의해 파손될 수 있다. 이스라엘에선 입출국 때 여권에 스탬프를 찍어 주지 않는다. 대신 얼굴 사진이 들어간 스티커 같은 종이를 여권과 함께 건네준다. 이스라엘에 왔다는 흔적은 별지의 스티커 외 여권 어디에도 남지 않는다. SABBATH안식일 유대교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다. 대개 금요일 오후에서 일요일 해가 질 때까지를 하루로 계산해 ‘안식일’이라 부른다. 관광객에게 안식일이 중요한 이유는 안식일에 거의 모든 가게, 식당이 문을 닫고 지역에 따라 약간의 편차가 있지만 버스와 기차 같은 대중교통조차 운행을 멈추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안식일은 1년 중 50일 정도라고 하지만 안식일이 금요일 오후에 시작되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는 100일에 가깝다. money 뉴 이스라엘 쉐켈shekel 또는 줄여서 쉐켈이다. 지폐 단위는 20, 50, 100, 200이다. 1 쉐켈은 310원. 달러를 받는 곳도 많지만 어느 정도 쉐켈을 준비하는 게 좋다.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 취재협조 이스라엘정부관광청 www.goisrael.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손성진 칼럼] 예측, 그 무거움과 가벼움

    [손성진 칼럼] 예측, 그 무거움과 가벼움

    몇 년 전 혹한이 닥친다는 일기예보를 믿고 아웃도어 업체들이 두꺼운 등산복을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예보는 빗나갔고 업체들은 재고 소진에 골머리를 앓았다. 물론 적지 않은 손실을 보았을 것이다. 날씨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기업들에 틀린 예보는 막대한 피해를 준다. 미래 예측의 중요성은 기업들엔 존망을 결정지을 만큼 절대적이다. 트렌드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기업은 하루아침에 도태될 수 있다. 필름 카메라 시장을 100년간 지배한 코닥과 피처폰 1위 기업 노키아의 몰락은 애써 강조할 필요가 없는 주지의 사례다. 반대로 삼성이 최강의 전자그룹이 된 것은 미래를 읽을 줄 알았기 때문이다. 와병 중인 이건희 삼성 회장은 집무실에서 공상과학이나 우주에 관한 비디오물을 보며 경영전략을 구상했다고 한다. 미래를 내다보려는 노력이 지금의 삼성을 만든 것이다.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예측한 137가지를 미래학자 데이비드 굿먼이 1978년에 검토했더니 실현된 게 100가지가 넘었다고 한다. “과학기술이 인간 사이의 소통을 뛰어넘을 그날이 두렵다. 세상은 천치들의 시대가 될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식사를 할 때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모바일 기기가 인간을 지배하다시피 하는 현실을 보면 예언은 적중한 셈이다. 그러나 미래 예측은 쉽지 않다. 10여 년 전 미국에서 정보를 가진 증권사와 화살을 쏘아 종목을 고르는 개인의 주식투자 대결에서 증권사가 졌다는 일화가 있다. 유수의 연구기관들도 1년에도 몇 번씩 경제성장률 예측치를 바꾼다. 그만큼 변수가 많다는 뜻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7%로 내렸다. 올해만 네 번째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섣부른 예측은 예기치 못한 피해를 유발하기도 한다. 증권사의 주가 예측을 믿고 투자했다가 낭패를 본 사람은 허다하다.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자칭 전문가의 말을 듣고 덥석 부동산을 사들였다가 ‘상투’를 잡은 경험이 있는 이들도 한둘이 아닐 것이다. 맞지도 않을 예측은 넘쳐나는데 사기를 제외하면 책임지는 일은 없다. A씨는 2년 전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S전문가의 말을 듣고 주택 구입을 포기했다. 그런데 집값은 20% 이상 올랐고 A씨는 그 말을 믿은 것을 크게 후회하고 있다. 미래 예측의 중요성은 변화의 속도와 정비례해 커진다. 경제주체들에게 예측, 정확한 예측만큼 중요한 게 없는 시대다. 자고 나면 세상이 달라질 정도로 변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측은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 예측을 잘못하거나 잘못된 예측을 믿었다간 크나큰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거꾸로 정확한 예측을 통한 경영은 성공의 지름길이 된다. 어떤 이는 이를 ‘예측 경영’이라 이름 붙여 부르기도 한다(‘비즈니스의 99%는 예측이다’, 김경훈). 한국의 주요 산업은 중대기로에 놓여 있다. 혁신이 한계에 이른 상황에서 미래를 지배할 새로운 전략산업을 선점해야 한다. 변화의 트렌드를 읽어 내는 예지력이 필요하다. 30여 년 전에는 반도체, 20여 년 전에는 휴대전화의 발전 가능성을 읽었듯이 말이다. ‘일본 맥도날드사’를 창립, 일본에 햄버거 선풍을 일으킨 후지다 덴이라는 사람이 있다. 세계의 유대인으로부터 ‘긴자의 유대인’이라고 불린 그는 일본인들의 걸음걸이가 빨라지는 모습을 보고 햄버거를 선택했다고 한다. 국가, 정부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 미래 산업은 국가가 주도해서 발굴해야 한다. 국가 차원의 미래 전략 연구가 태동한 것은 20여 년 전이다. 이후 미래기획위원회가 설립됐고 현 정부 들어서는 정부 부처로 미래창조과학부가 발족됐다. 국회에서도 ‘국회미래연구원’ 법안이 제출돼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얼마만큼 실질적인 미래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30년, 또는 50년 이후의 한국은 지금 미래를 어떻게 내다보고 준비하느냐에 좌우될 것이다. 입법·행정·민간이 힘을 모아 체계적인 미래 연구에 나서야 한다. 후손들의 미래 삶은 우리 손에 달렸다. 논설실장
  • 해외여행 | Shalom, Israel 샬롬, 이스라엘③이스라엘의 프로방스, 갈릴리 호수Galilee

    해외여행 | Shalom, Israel 샬롬, 이스라엘③이스라엘의 프로방스, 갈릴리 호수Galilee

    ●Galilee 갈릴리 호수 이스라엘의 프로방스, 갈릴리 호수Galilee 사해의 서북쪽 연안, 마사다에서 멀지 않은 쿰란Qumran은 2000년 전 필사한 성경이 발견된 곳이다. 1947년 베두인 양치기 소년은 쿰란 제1동굴에서 사해사본을 발견했다. 유대교의 한 분파인 에세네파 사람들이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금욕주의자들이었다는 에세네파 사람들은 정결한 몸을 유지하고 의식을 치르기 위해 공중목욕탕도 만들었다. 쿰란을 떠나 이스라엘 북부의 산악지역에 있는 갈릴리Galilee 호수로 향한다. 도로 왼편은 사마리아 지방이다. 성경이나 영화 속에서 듣거나 본 장소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갈릴리로 가는 길에 요르단강도 건넌다. 예수는 여리고 근처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았다. 요르단강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강이라지만 물줄기는 작다. 레바논 북쪽, 헤브론산에서 발원한 요르단강은 갈릴리 호수를 지나 사해로 흘러간다. 굽이굽이 흐르는 요르단강 강줄기는 320km에 달한다. 늦은 오후 갈릴리 호수 남쪽 마간의 한 키부츠에서 운영하는 숙소에 도착했다. 갈릴리 호숫가 키부츠다. 키부츠 안에 수영장도 있다. 키부츠 숙소는 가족 단위 여행자들이 머무르기 좋게 방갈로 형식이다. 해가 지면서 호수 맞은편 산간 지역은 실루엣처럼 보인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수면 위로 돛을 세우고 윈드서핑을 즐기는 이들도 보인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붉은 병풍 같은 골란고원이 보인다. 골란고원 저편이 시리아라는 사실이 좀체 실감나지 않는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갈릴리 호수의 둘레는 60km에 달한다. 예로부터 이곳 사람들이 갈릴리 호수를 ‘바다’라고 불렀던 게 수긍된다. 영어 이름대로 ‘바다 같은 호수Sea of Galilee’다. 예수가 사람들에게 사랑을 설파한 산상설교지인 팔복산Mount of Beatitudes이 바로 갈릴리 호수 북쪽에 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의 것이요.’ 예수는 산상설교를 이렇게 시작했다. 그때 예수는 억압받고 학대받는 사람들 편에 서 있었다. 사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갈릴리 호수도 해저 222m로 매우 낮은 지역에 위치한다. 평균 수심은 30m이지만 가장 깊은 곳은 50m에 달한다. 우기와 건기에 따라 수심이 다르다. 갈릴리 호수는 이스라엘 식수의 70%를 생산할 만큼 깨끗한 상수원이다. 갈릴리 지방은 아름다운 자연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프로방스’라 불린다. 이스라엘을 찾은 크리스천들은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굴곡진 요르단강을 찾아 래프팅을 즐긴다. 갈릴리 지방의 중심지인 티베리아스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주위가 시끌벅적하다. 미국에서 온 단체 관광객들이다. 이들이 이스라엘을 찾은 이유는 만 열두 살이 된 아들의 성년식 때문이다. 외국에 살지만 이스라엘로 돌아와 성년식을 치르는 일은 유대인들에게 매우 축복할 일로 여겨지는 듯하다. 비행기 값, 호텔, 식사, 촬영비 등 제법 큰돈을 들여 성대한 파티를 벌이는 일생일대의 이벤트다.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 앞에서도 매주 두 번씩 요란하게 성인식을 치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개 다른 나라에 살다가 성인식을 위해 이스라엘로 온 사람들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3 Western Coast Cities of Israel ▶십자군 성채 도시, 아코Akko 지중해의 동편을 마주한 아코는 요새처럼 구축된 항구도시다. 이스라엘에 속한 ‘아랍인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아코의 올드 시티는 지중해를 마주보고 성벽에 둘러싸였다. 북으론 레바논과 시리아, 터키, 남으론 아프리카, 서쪽으론 유럽과 면한다. 1104년에는 십자군에 점령되었고, 1291년에는 술탄 말렉 엘-아쉬라프에게 함락된 바 있다. 술탄 말렉은 아코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그나마 남은 것은 땅에 묻어 버렸다. 기구한 역사는 아코를 강건하게 만들었을까. 훗날 나폴레옹은 두 달간 아코를 포위하고 공격했으나 결국 아코 성벽을 넘지 못하고 퇴각했다. 요새 같은 항구도시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 탓에 아코는 때로 번영하고, 때로는 깨뜨려졌다. 아코의 구시가지는 2001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일몰 때 아코의 성벽을 따라 저녁 산책을 즐기면 좋다. ▶헤롯왕의 도시, 카이사레아Caesarea 헤롯왕이 만든 도시로 로마의 행정수도이자 총독의 거주지였다. 로마 시대의 항구도시로 번성하면서 남긴 유적 외에도 십자군 성채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카이사레아 남쪽의 극장은 헤롯왕 때 건설된 이후 수백 년 동안 사용된 극장으로 4,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이다. 헤롯 시대의 전차 경기장 흔적도 남아 있다. 거대한 U자 모양의 전차 경주장은 1만명의 관객을 수용했다. 사도 바울이 이곳에서 로마군 장군 고넬료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카이사레아에는 헤롯 시대뿐만 아니라 로마, 비잔틴, 십자군 시대 등 다양한 시대의 유적이 남아 있다. 유적만 봐도 영고성쇠를 거듭한 도시의 역사가 보인다. ▶자유의 도시, 하이파Haifa 이스라엘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무역항구로 유명하다. 경제적으로 번성하고 있어 도시의 분위기는 자유롭다. 이스라엘 최대의 도시라지만 안식일이면 어김없이 버스가 운행을 멈추는 텔아비브보다 유대교적으로 덜 경건한 것도 하이파의 매력이다. 하이파는 이스라엘 북부의 해안 평야에서 느닷없이 솟아오른 갈멜산Mount Carmel 북서 기슭에 자리잡았다. 아코와 마찬가지로 아랍인들이 많이 살지만 생활수준은 아코에 비해 높다. 하이파의 유명한 상징 중 하나는 황금색 돔을 가진 바하이교 사원이다. 세계적인 종교 가운데 가장 최신 종교다. 아름답고 웅장한 정원이 유명하다. 바하이교 사원 밑으론 1869년 처음 조성된 독일 템플 기사단의 공동체 마을Templar Society이 복원되어 독일의 정취를 느껴 볼 수 있다. 단, 중세 시대 십자군인 템플 기사단과 헷갈리지 말 것.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 취재협조 이스라엘정부관광청 www.goisrael.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해외여행 | Shalom, Israel 샬롬, 이스라엘① 예루살렘 -예루살렘이란 퍼즐 또는 모자이크

    해외여행 | Shalom, Israel 샬롬, 이스라엘① 예루살렘 -예루살렘이란 퍼즐 또는 모자이크

    사막과 사해, 만년설, 지중해, 갈릴리 그리고 텔아비브까지, 국토는 작으나 지형과 기후, 문화는 매우 다채롭다.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분쟁만 없다면 이스라엘은 완벽한 여행지다. 이스라엘을 3일간 여행한다면 하루는 지중해, 하루는 사해, 하루는 사막에 갈 수 있다. *샬롬은 히브리어로 평화를 의미한다. 안식일에는 노 에스프레소! “에스프레소 한 잔 주세요.” “오늘은 보통 커피밖에 없습니다. 샤밧안식일에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쓰지 않거든요.” 다른 곳도 아닌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의 일이다. 안식일이면 인터콘티넨탈 호텔의 엘리베이터는 모든 층에 멈춘다. 안식일에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것조차 하느님의 뜻에 맞지 않는 생산적인 행동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렇게 가까이서 하느님을 영접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여기는 다름 아닌 이스라엘 텔아비브Tel Aviv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지 12시간 만에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했다. 막연하긴 했으나 예상보다 훨씬 멀었다. 물리적 거리만큼 심정적 거리도 멀다. 나는 더욱이 기독교 신자도, 가톨릭 신자도 아니니 이스라엘 성지순례 같은 로망도 없다. 게다가 팔레스타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금년 유엔을 인용한 <국민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해 이스라엘군은 51일 동안 가자 지구를 6,000번 이상 공습, 5만번 이상 폭격했고, 민간인 희생자의 3분의 1은 어린이”였다. 물론 팔레스타인도 수천 발의 로켓과 박격포 사격으로 반격을 했다지만 과연 성능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모르겠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이스라엘 쪽의 처지도 간단치 않다. 남쪽으론 이집트의 시나위 사막, 동쪽으론 요르단, 북쪽으론 시리아, 레바논과 국경을 마주한다. 모두 아랍 국가다. 서쪽으론 지중해 바다이니 더 이상 나아갈 곳도 없다. 겉으로 드러난 형세만 보면 이스라엘은 거대한 아랍 국가들에 포위된 작은 섬이다. 이래저래 숨이 팍팍 막힐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에는 인터넷, 신문, 컴퓨터도 없는 유대인 마을이 있다. 아무리 ‘정통’ 유대인이라 해도 인터넷을 안하는 청춘이라니?! 이들은 피임도 하지 않기에 마을에 가면 열 명씩 아이를 낳는 부부도 있다고 한다. 정통 유대인들은 14세기 복장을 하고, 미간에 성경을 붙이고 산다. 성경에서 수염 양 편을 깎지 말라고 했다고 여전히 수염을 기른다. 남들이 뭐라 하건 기도하고 순종하며 살겠다는 다짐만 보면 하느님께 더 이상 독실할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할까?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Jerusalem 예루살렘 예루살렘이란 퍼즐 또는 모자이크 새벽 5시, 잠에서 깼다. 시차 따위는 잊고 한시라도 빨리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어두운 올리브산 뒤편으로 붉은색 기운이 피어오른다. 예루살렘 성벽을 향해 무작정 걷기 시작한다. 20분쯤 걸었을까. 야파 게이트Jaffa Gate가 나온다. 드디어 3000년 고도, 예루살렘과 만났다. 미명 속의 예루살렘 구시가지 골목은 시간에 대한 감각을 잃게 만든다. 네모난 돌을 쌓아 지은 건물들이 햇살을 받아 오렌지색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야파 게이트를 통과해 시온 게이트로 가는 길은 아르메니아인 지역이다. 예루살렘 구시가지 안에 아르메니아인 살고 있다니?! 알고 보니 구시가지 성벽 안에는 유대인 지역, 아르메니아인 지역뿐만 아니라 이슬람교 지역, 기독교인 지역도 있다. 기독교인들에게 예루살렘은 예수가 죽고 부활한 곳이다.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라는 ‘십자가의 길’을 찾아오는 순례자 행렬은 일 년 내내 끝없이 이어진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느님께 제물로 바친 장소 역시 황금돔 사원 자리다. 그런데 기독교뿐만 아니라 이슬람교, 유대교에서도 신성시하는 곳이 바로 이 자리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이슬람교도에게 예루살렘은 메카, 메디나와 함께 이슬람의 3대 성지 중 하나이고, 예언자 마호메트(정확한 발음은 ‘무함마드’에 가깝다)가 천국으로 승천한 곳이다. 성전산Temple Mount에 세운 황금돔 아래 동굴에서 마호메트가 말의 형상을 한 동물을 타고 천사와 함께 천장의 구멍을 통해 승천했다고 한다. 632년 예루살렘을 정복한 이슬람교도들은 유대교 성전 터에 황금돔 사원Dome of the Rock을 지었다. 황금돔 사원 안에 있는 엘 악사El Aqsa 모스크는 메카, 메디나를 잇는 세 번째 모스크로 마호메트가 승천한 바위 터에 세웠다. 이슬람 신자가 아니면 황금돔 사원에 들어갈 수 없다. 유대교인에게 예루살렘은 유대교의 발원지, 최고의 성지일 뿐만 아니라 기원전 996년에 다윗 왕이 유대민족을 위해 세운 도시다. 하지만 기원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은 로마군에 의해 서쪽 벽을 제외하고 완전히 파괴된다. 결국 2000년 전 유대인 성전이었던 곳에 현재는 이슬람 황금돔이 서 있다. 유대의 성전에 갈 수 없는 유대인들이 유일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통곡의 벽’이라 불리는 서쪽벽이다. 전 세계 유대인들이 기도를 하기 위해 모여드는 곳,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밖은 유대교, 안은 이슬람 사원인 셈이다. 예루살렘은 말 그대로 세계 3대 종교의 성지다. 황금돔은 예루살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예루살렘의 상징이지만 그 의미를 외국인이 이해하기란 정말 복잡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구시가지의 성벽을 벗어나 신시가지의 쇼핑몰 카페에서 마시는 에스프레소는 이곳이 3000년 고도이기에 더욱 각별하다. 로마식 아치, 비잔틴식 해자, 십자군과 오스만투르크 시대에 쌓은 성벽과 신시가지의 이스라엘 뮤지엄, 성서의 전당 등 예루살렘은 거대하고 화려한 모자이크로 장식된 도시다. 성경을 머리에 이고 사는 사람들 예루살렘에서 가장 인상에 남은 것은 독실한 유대인들의 모습이었다. 삶이 신앙이고 기도인 사람들. 이들은 길을 걸으며 성경을 읽는다. 이마에 성경 구절을 이고 산다. 율법 토라는 이들의 삶 자체다. 통곡의 벽에 가면 이들이 머리를 세게 흔들면서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처음 이 모습을 봤을 때는 기이하고 과장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들에게 머리를 흔드는 건 몸과 마음을 다해 기도한다는 의미다. 하루에 세 번씩 이렇게 전력을 다해 기도한다. 검은색 옷은 겸손한 삶에 대한 다짐이다. 아직 메시아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하느님을 잘 섬기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유대인들이 쓰는 모자인 ‘키파Kippah’는 ‘하느님의 종’이란 의미다. 하느님이 자신들 위에 계시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쓴다. 머리와 팔에 붙이는 ‘테필린Tefillin’ 안에는 성경 구절이 담겨 있다. 테필린을 팔에 감는 건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서다. 꽉 조인다고 할 정도로, 얼핏 봐서는 아플 정도로 세게 감는다. 하느님에 대한 강건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는 걸까? 하지만 이렇게 독실한 유대인은 이스라엘 인구 전체에서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니 이들과 이스라엘을 동격시 할 순 없다. 재미있는 건 테필린의 종류도 가격별로 아주 다양하단 사실.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 취재협조 이스라엘정부관광청 www.goisrael.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해외여행 | Shalom, Israel 샬롬, 이스라엘②Judean Desert·Dead Sea 유대광야·사해, Masada 마사다

    해외여행 | Shalom, Israel 샬롬, 이스라엘②Judean Desert·Dead Sea 유대광야·사해, Masada 마사다

    ●Judean Desert·Dead Sea 유대광야·사해 광야Judean Desert를 지나 사해Dead Sea로 예루살렘을 벗어나 동쪽으로 달린다. 어떤 생명체도 살지 못할 듯 삭막하고 건조한 풍광이 펼쳐진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곳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유대광야Judean Desert’라 부르는 암석사막이다. 예로부터 하느님께 몸을 바치려는 자들에게 황폐하고 쓸쓸한 유대광야는 이상적인 장소였다. 이들은 광야의 절벽을 깎고 수도원을 만들고 기도했다. 예수가 40일간 금식하고, 악마의 시험을 받으며 깨달음을 얻은 곳도 유대광야다. 그는 광야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광야의 끝에 사해가 나타난다. 해발 820m의 예루살렘에서 해발 마이너스 423m의 지하세계로 간다. 사해로 가는 길은 해저로 내려가는 길이다. 지구상에서 사람이 사는 곳 중 가장 낮은 곳이 사해다. ‘죽은 바다Dead Sea’라는 무서운 이름과 달리 사해는 곱디고운 옥빛이다. 색이 너무 예뻐 깜짝 놀랐다. 죽음의 색이 이런 거라면 지구상에서 죽음이 가장 매혹적으로 여겨질 곳이 사해일지도 모르겠다. 에인 보켁Ein Bokek의 관광단지에 위치한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수영복을 챙겨 입고 5분 거리의 바닷가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정말 둥둥 떠 있다. 바닷물 속에서 수영은 하지 않고 가만히 둥둥 떠 있는 사람들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사해 바닷물 속으로 발길을 옮긴다. 진한 염도 때문인지 미끈미끈한 바닷물이 기름처럼 쩍쩍 몸에 달라붙는 것 같다. 문득 궁금하다. 이 소금물 속에 얼굴을 담가 보면 어떨까? 장난기가 발동해 눈을 감고 얼굴을 넣어 본다. 아, 순식간에 눈가가 짜릿짜릿하다. 눈을 감으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완전 오산이다. 내 손을 잡아끄는 누군가에 이끌려 샤워장으로 갔다. “여기서 수영할 수 없는 걸 몰랐어요?” “저 앞에 대기 중인 앰뷸런스 못 봤어요?” 눈에 스며든 염분을 씻어 내느라 경황없는 내게 그는 몇 번이나 괜찮은지를 되묻는다. 그는 내가 수영을 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어느 한국 신문에선가는 사해 물에 빠지면 실명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던데 나는 말짱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제 다시 사해 물 속에 얼굴을 담글 일은 없겠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사해의 남북 길이는 약 80km, 폭은 17km 정도다. 크고 넓다. 장소에 따라 사해 소금물은 여러 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염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해의 염도는 대략 33.7%, 보통 바다의 8배로 1리터당 340g의 염분을 갖고 있다. 세계 최고다. 수영을 할 순 없지만 사해를 찾는 관광객들이 빼먹지 않는 건 머드팩이다. 사해 바다 속 진흙은 염화마그네슘, 염화나트륨, 염화칼슘 등 무기질을 풍부히 갖고 있어 피부 미용에 좋다. 생명은 살지 않는데 미용에는 좋다는 곳이 사해다. 사해 건너편은 요르단이다. 동편이니 요르단 저 편에서 해가 떠오를 게 분명하다. 새벽 5시, 다시 사해 바닷가로 나간다. 소금 덩어리가 바닷물 속에 응결된 소금꽃 바닷물 속에 둥둥 뜬 채 떠오르는 태양을 맞는다. 이 순간을 위해 12시간 비행기를 타고 여기까지 왔구나 생각될 만큼 기억에 남은 순간이다. ●Masada 마사다 유대인의 초상, 마사다Masada 사해를 떠나 갈릴리에 도착하기 전에 들른 곳이 있다. 두 개의 사해 사이에 있는 마사다Masada다. 마사다는 사해 서쪽, 깎아 세운 듯 가파른 고원에 지어진 고대의 왕궁이자 요새다. 케이블카를 타고 마사다 정상으로 향한다. 꼭대기에 오르니 서쪽으로는 계단 모양의 단구와 구릉이 많은 유대광야가, 동쪽으로는 옥빛의 사해가 펼쳐진다. 아무리 살펴봐도 동서남북의 끝은 모두 가파른 벼랑이다. 사해 수면을 기준으로 450m 높이에 건설된 마사다 요새의 길이와 너비는 각각 650m, 300m 정도로 사막에 있는 요새라 하기에 장대한 규모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케이블카 오른편의 ‘북쪽 궁전’은 벼랑의 단구를 깎아 3개 층으로 만들었다. 북쪽 궁전 외 서쪽에도 궁전이 있다. 웨스턴 게이트 부근이다. 고대 로마 양식으로 지은 마사다의 궁전은 흔히 헤롯의 ‘요새 궁전’이라 불린다. 궁전 외에도 유대교 회당, 남쪽 물 저장고, 대중목욕탕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마사다 요새 서쪽 아래로는 로마군이 마사다를 공격할 때 사용한 공성의 흔적도 남아 있다. 마사다는 기원 후 70년, 로마 황제 티투스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에도 끝까지 로마에 맞선 유대인 전사들의 마지막 항전지였다. 마지막으로 남은 유대인 반란군은 마사다에 모여 결사항전을 다짐했고, 로마군은 철벽 요새인 마사다 서쪽 웨스턴 게이트 옆에 돌과 흙을 다져 댐을 쌓듯 거대한 경사로를 만들어 공격한다. 기원 후 73년 항전의 마지막 날, 로마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할 지경에 이른 960명의 유대인은 집단 자결한다. 로마군은 마사다를 포위한 지 3년 만에 성벽을 넘었지만 그들이 마주한 것은 수많은 시신들이었다. 유대인들은 노예로서 목숨을 연장하는 대신 죽음을 선택했고, 살아남은 자들은 이를 명예로운 죽음으로 기억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마사다는 압제로부터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상징뿐만 아니라 유대인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마사다 함락 이후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고 디아스포라가 되었다. 로마군은 40년에 걸쳐 마사다에 주둔하다 철수하고, 마사다는 버려진다. 그 후 몇몇 크리스천 공동체가 마사다에서 생활하기도 했으나 이들마저도 사라지고 1960년대 초반, 이스라엘군 참모총장 출신인 야딘의 주도하에 발굴이 시작될 때까지 마사다는 세상에서 완전히 잊혀진다. 정작 1960년대 발굴시 집단 자결한 이들의 유골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유대인들에게 마사다는 영원한 성지이자 고대 유대 왕국의 증거다. 오늘날 마사다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대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신병 훈련을 마치는 장소로 종종 사용된다. 그들이 훈련을 마치며 외치는 말이 있다. “마사다는 두 번 다시 함락되지 않는다!”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 취재협조 이스라엘정부관광청 www.goisrael.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영화 多樂房] ‘24일’

    [영화 多樂房] ‘24일’

    ‘24일’은 23살의 유대인 청년인 ‘일안 하리미’가 납치된 후 24일간의 기록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일안은 낮에 자신이 일하던 휴대전화 매장에서 만난 한 여자의 전화를 받고 나간 후 소식이 끊긴다. 여자 친구와 가족들은 범인들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고서야 일안이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24일간, 700통의 협박 전화와 함께 경찰의 비밀 수사가 진행된다. 하지만 협상전문가의 지휘하에서도 범인과의 소통은 점점 더 어려워지기만 하고, 그만큼 일안의 안전도 점점 더 보장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2006년 파리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범인들의 동선도 교차로 등장하지만, 가족과 경찰의 상황은 대부분 일안의 어머니인 ‘루스’의 시점으로 그려진다. 협상가와 경찰은 불안정한 루스 대신 침착한 일안의 아버지(디디에)를 신뢰하며 그녀가 수사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을 것을 요구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루스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경찰 측의 안일함과 무능력뿐이다. 일안의 생명보다 범인과의 주도권 싸움에 더 집중하는 것 같은 협상가, 전화 추적 이외에 어떤 작전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경찰에 대한 그녀의 불신과 분노는 정당해 보인다. 특히, 아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지난한 협상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어머니에게 다 부질없는 짓으로 여겨질 뿐이다. 관객들은 협박 전화와 디디에의 응대가 반복되는 영화의 전반부 내내 답답하고 당시의 무기력했던 수사 과정을 체감하며 루스의 입장에 동화된다. 그렇다면 ‘24일’은 납치당한 아들을 둔 어머니의 관점에서 경찰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까. 결과론적으로 볼 때, 협상과 작전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는 점에서 경찰들은 비난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단지 그 뿐이라면 이 영화는 협상가나 경찰을 이토록 진지하고 성실하게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영화에서 곧잘 희화화돼 온 경찰과는 분명 다르다. 그들은 임무를 완수하지는 못했지만 ‘나름의’ 경험과 지식을 살려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감독의 시선은 애초에 이러한 사건이 벌어지게 된 동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선은 협상가와 경찰, 일안을 유혹한 여자마저도 지나쳐 하나의 단서에서 멈춘다. 이 글에서도 일부러 첫 줄에 명시했던 ‘유대인 청년’이라는 일안의 신분이 그것이다. 사실, 물증은 없다. 감독 또한 그 점을 명확히 한다. 범인들은 처음부터 돈을 요구해 왔고, 그들이 무슬림이라는 증거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루스가 라디오에 출연해 던진 질문-“제 아들이 유대인이 아니었다면 죽었을까요”-에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거의 눈에 띄지 않지만 방심하는 순간 참사를 일으킬 수 있는 작은 불씨처럼, 감독은 잠재된 인종주의가 일안의 삶을 앗아가 버렸음을 이런 방식으로 시사한다. 물론, 반유대주의는 하나의 대유일 뿐이다. 일안의 죽음과 루스의 용기, 그리고 영화 ‘24일’을 만든 이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15세 관람가. 24일 개봉. 윤성은 영화평론가
  • 프랑스 ‘親獨 청산’ 아직 한참 남았다

    프랑스 ‘親獨 청산’ 아직 한참 남았다

    미완의 프랑스 과거사/이용우 지음/푸른역사/520쪽/2만 9500원 우리 민족에게 일제강점기는 가장 뼈아픈 역사다. 특히 강점기 친일이라는 반민족 행위에 대한 단죄와 청산은 미완의 문제로 여전히 진행형이다. ‘미완의 프랑스 과거사’는 프랑스에서도 완성되지 못한 청산의 작업과 갈등을 통해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콜라보’는 흔히 예술가끼리의 협업을 뜻하는 미학적 용어로 통한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이 ‘콜라보’는 그다지 좋지 않은 개념이다. 오히려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과거사의 상징이다. ‘점령군이나 적국에 협력하는 행위’의 뜻이 담긴 콜라보라시옹의 줄임말로, 1940∼1944년에 걸친 독일 점령기의 대독 협력자를 일컫는다. 그 기간 중 정부의 수반을 비롯한 고관대작은 물론 레지스탕스를 공격한 민병대까지 대독 협력자는 다양하게 포진해 있었다. 독일 강점에서 해방된 뒤 프랑스에서 나치 협력 혐의로 조사받은 사람은 줄잡아 35만명에 달한다. 반역 행위가 매우 광범위하고 철저하게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는 이 콜라보 12만명 이상을 재판정에 세워 4만명에 가까운 인원을 단죄했다. 해방 전후의 혼란기에 걸쳐 9000명이 약식 처형되기도 했다. 프랑스 과거사 청산과 관련한 연구에 천착해 온 저자는 그 콜라보 단죄와 협업의 청산 과정에 의문을 품고 있다. 1951년, 1953년 두 차례 사면을 통해 프랑스의 과거사가 일단락된 것으로 통하지만 실상은 “협력의 문제는 반세기가 지나도록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과거였다”고 꼬집는다. 이를테면 독일 강점기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에 적극 협력했던 경찰 총수인 르네 부스케는 가벼운 형을 살고 난 뒤 재계 유력인사로 승승장구했다. 프랑스 경찰이 유대인 1만 3000명을 체포해 수용소로 넘겨 죽게 한 이른바 ‘벨디브 사건’은 1992년에야 재조명됐고 3년 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2차 대전 독일 강점기 프랑스의 대독 협력과 레지스탕스, 전후의 과거사 청산을 다루고 있는 책은 어찌 보면 우리에게 약간의 위로와 ‘반복하지 말자’는 짜릿한 교훈을 겸해 전한다. 프랑스의 독일 강점기 과거사 청산을 대독 협력자와 그에 대한 인식·처벌·사면, 국가적 협력과 홀로코스트, 레지스탕스 역사·기억·논쟁으로 구성해 흥미롭다. 주목할 부분은 유대인 학살, 즉 홀로코스트와 레지스탕스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댔다는 점이다. 독일 강점기의 비시 정부는 ‘의무 노동제’를 통해 65만명의 프랑스 국민을 강제로 독일 공장으로 보냈고 항독(抗獨)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특별재판부’를 설치하는가 하면 준군사조직인 ‘프랑스 민병대’를 창설했다. 저자는 비시 정부의 국가적 대독 협력이 낳은 최대의 비극이자 가장 끔찍한 측면은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 정책에 적극 협력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비시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기 독일군의 점령을 받지 않은 지역에서 유대인들을 독일 측에 기꺼이 내준 유일한 국가였다. 독일이 요구하지 않은 16세 미만 유대인들까지 강제 이송 대상에 포함시킨 결과 7만 3000명의 유대인이 아우슈비츠 등의 수용소로 끌려가 학살당했다. 저자는 비시 대독 협력을 거부한 채 점령 당국과 비시 정부에 끝까지 맞서 저항한 30만∼50만명의 레지스탕스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보인다. 비시 정부가 대독 협력 정부였으므로 항독 행위인 레지스탕스는 응당 반(反)비시여야 할 터. 하지만 초기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는 비시 정부에 대해 모호하거나 우호적인 성향이 꽤 컸음을 밝히고 있다. 레지스탕스 자체 내의 배반 내지 실책으로 레지스탕스 최대의 영웅인 장 물랭이 체포된 칼뤼르 사건도 추적했다. 책을 읽고 난 뒤 의심의 눈길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역사 청산으로 향한다. 친일파의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기 위해 제헌국회에 설치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는 총 682건을 취급해 이 가운데 221건을 기소했고 40건의 재판부 판결이라는 성과를 내는 데 그쳤다. 체형은 고작 14명이었고 실제 사형 집행은 단 1명도 없었다. 체형을 받은 사람들도 곧바로 풀려났다.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일제강점기 점령과 협력의 기간, 정도, 성격은 프랑스와 매우 다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게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김성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질소를 비료와 폭탄으로… 과학의 두 얼굴

    질소를 비료와 폭탄으로… 과학의 두 얼굴

    공기의 연금술/토머스 헤이거 지음/홍경탁 옮김/반니/380쪽/1만 8000원 질소는 대기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그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독일 과학자 프리츠 하버(1868~1934)와 카를 보슈(1874~1940)는 오랜 연구 끝에 공기 중 질소를 암모니아로 변환해 질소비료를 만드는 법을 발견하고 이를 실용화했다. 세계의 식량 공급이 인구 증가를 따라가지 못해 대기근이 발생하리라 예측되던 시대였다. 하지만 인류를 구원하게 됐다는 기쁨도 잠시, 두 차례의 세계대전 속에서 질소는 독가스와 폭탄 제조에 사용되면서 이들은 명예와 비난을 동시에 짊어지게 된다. ‘공기의 연금술’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견을 이뤄 낸 두 과학자의 삶과 그들의 과학적 발견을 드라마틱하게 펼친다. 하버는 암모니아 합성법으로 1918년 노벨화학상을 받으며 ‘공기로 빵을 만든 과학자’라는 칭송을 받았지만 이후 ‘독가스전의 아버지’로 비난받기도 했다. 1차 대전 종전 후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독일에 부과된 엄청난 전쟁 배상금을 벌기 위해 바닷물에서 금을 추출하는 실험을 하는 등 조국에 헌신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버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버림받았고, ‘전쟁 중에나 평화로울 때나 조국이 허락하는 한 조국에 봉사했다’는 묘비명을 남겨 달라는 유언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독일의 화학회사 바스프의 화학자였던 보슈는 고정 질소로 암모니아 생성에 성공한 하버의 기계를 실용화하는 데 성공해 ‘하버보슈 공정’을 완성했고 그 공로로 1931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바스프의 대표가 된 뒤 회사를 지키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정권에 협력했지만 결국 홀로 남아 쓸쓸한 말년을 보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인류를 이롭게 하기 위한 과학적 이타심이 정치와 권력, 돈, 개인적 욕망과 맞닥뜨렸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 주고 싶었다”며 “그것이 진짜 과학의 세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학의 양면선을 이야기하는 책은 시대적 숙명 속에서 과학자에게 윤리란 무엇인지. 과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조선은 이렇게 망했다 1·2(양진인 지음, 임홍빈 옮김, 알마 펴냄) 중국 근대 소설가가 조선멸망의 전말을 엮은 팩션. 1920년 중국 익신서국이 발간한 소설 ‘회도조선망국연의’를 번역하고 주석했다. 40년간 급박하게 돌아가던 조선왕국과 일본, 청 등 3국의 형세를 그렸다. 일제의 치밀한 책략과 청 제국의 지리멸렬, 조선의 파행을 객관적으로 포착, 당대 동아시아 정치외교를 조망하면서 조선망국의 참상을 입체적으로 부각한 게 특징. 서양함대의 조선 침략, 동학농민전쟁, 청일전쟁, 민비 살해, 자강운동, 애국자들의 투쟁, 통감부 설치, 일본 거류민 난동을 거쳐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과 대한제국 멸망으로 막을 내린다. 조선 백성부터 고종, 민비, 김홍집, 박영효, 리홍장 등 청 제국의 주요 인물, 메이지 천황, 일본 외교·군사계 거물, 서양 외교관까지 다양한 인물이 묘사된다. 각권 296쪽. 1만 1000원. 홍익희의 유대인 경제사 1·2(홍익희 지음, 한스미디어 펴냄) 5000년간 세계경제를 지배해 온 유대인의 궤적을 추적했다. 2013년 출간된 ‘유대인 이야기’를 총 10권으로 풀어쓰는 시리즈의 첫 두 권. 핍박과 고난 속에서 살아남아 세계경제를 주무르는 유대인의 경제사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닥친 경제위기 극복 해법과 미래의 성장동력을 제시한다. 1권은 세계경제의 기원 편. 최초의 도시 예리코에서 시작된 문명부터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이 어떻게 영원한 계약을 맺게 됐는지를 소개한다. 철기문명의 탄생과 인류의 대이동, 페니키아와 히브리, 그리스 시대 무역까지 다루고 있다. 2권은 BC 750년 로마 건국으로 시작된 고난의 역사와 이어지는 2000년 방황을 담았다. 알렉산더 대왕과 헬레니즘의 등장, 바빌론 유수기의 유대인 상업활동이 세밀하게 그려진다. 1권 376쪽, 2권 376쪽. 각 1만 8000원. 과학, 인문으로 탐구하다(박민아 외 지음, 한국문학사 펴냄) 한국문학사가 시도하는 ‘융합과 통섭의 지식 콘서트’ 시리즈 다섯 번째. 한양대(박민아), 전북대(선유정·정원)에서 강의하는 과학자들이 예술, 철학, 사상, 문화 등 다양한 분야와 과학의 관계를 살폈다. 과학의 기본 개념과 기원, 타 분야와의 만남에서 생기는 다양한 현상을 구체적 사례를 들어 살피는 구성이 독특하다. 과학의 본모습과 함께 현대과학에서 융합의 중요성을 강조해 눈길을 끈다. 과학과 예술의 동반 관계를 비롯해 과학과 사회의 교감과 진화, 역사 속의 과학, 전쟁에 동원된 과학기술, 대중문화와 과학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 과학혁명 구조며 종교개혁의 일등공신 인쇄술, 산업화와 제국주의의 신호탄인 증기기관, 환경협약의 딜레마 ‘교토의정서’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392쪽. 1만 4500원. 전쟁과 문명(허남성 지음, 플래닛미디어 펴냄) ‘전쟁은 평화보다 훨씬 더 일반적인 현상이었으며 문명탄생 이전부터 인류가 끊임없이 겪어 온 뼈아픈 경험의 일부였다.’ 전쟁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진화해 왔으며 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보는가. 우리가 당면한 북핵 문제를 비롯한 남북 대치상황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가. 이런 문제들은 더이상 정책 수립가나 전략가, 군인들만이 해결해야 할 전유물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미래의 총력전을 놓고 ‘그 누구의 정치적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한 필요성을 덮고도 남을 만큼 엄청나게 큰 파괴를 초래할 것’이라는 데 견해를 같이한다. 국방대 명예교수가 문명 발달과 함께 진화하는 전쟁 양상을 파헤쳤다. 국내에선 생소한 신군사의 관점에서 전쟁을 다룬 게 특징. 과학기술, 철학, 정보 등 여러 분야의 융합과 상호작용까지 종합적으로 살폈다. 420쪽. 2만 5000원.
  • [길섶에서] 아버지와 아들/이동구 논설위원

    전철을 기다리며 아들에게 “할아버지 제사가 있으니 큰집에 함께 가자”고 했더니 흔쾌히 응했다. “아빠랑 단둘이서 여행해 본 지도 오래된 것 같다”는 그럴싸한 이유도 덧붙였다. 순간, 아들이 언제 이렇게 많이 컸나 하는 생각과 함께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엄마에 비해 아빠와는 대화하고 놀아 본 기억이 별로 없다는 의미였기에…. “자식이 태어나면 사람은 바보가 된다”는 유대인 속담이 있다. 그래서 소중하게 간직했던 전 재산도 아들이 자식을 가진 후에야 물려준다고 한다. 재산을 소중히 다뤄야 한다는 교훈이겠지만 자식만큼 귀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한때 ‘바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딸 바보, 아들 바보 등 많은 바보들은 주로 아빠들을 지칭했다는 기억이 떠올라 아들에게 더욱 머쓱해졌다. 오전 내내 아버지를 떠올려 봤다. 돌아가신 지 30년이 넘어서인지 희미해진 기억조차 별로 없다. 경제적인 능력도, 이렇다 할 재능도 남겨 주신 게 없다. 한 가지 또렷한 기억은 다섯 자식을 끔찍이도 사랑하셨다는 것뿐이다. 자식 바보였음에는 분명했다. 오늘 큰집에 갈 땐 아들 손을 꼭 잡고 바보 아빠가 되고 싶다. 이동구 논설위원 yidonggu@seoul.co.kr
  • 슬픈 영화 볼 때 눈물 흘리면 기분 더 밝아진다

    슬픈 영화 볼 때 눈물 흘리면 기분 더 밝아진다

    슬픈 영화를 볼 때 눈물을 흘리고 나면 잠시 슬픈 감정이 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분이 더 밝아지는 등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네덜란드 틸버그대와 크로아티아 리예카대 공동 연구진이 평균 나이 23세(19~33세) 남녀 학생 참가자 60명을 대상으로 슬픈 영화를 보여주고 이들이 조금이라도 눈물을 흘리는지 관찰했다. 또 이들에게 영화 보기 전후 마음에 변화가 있었는지 설문을 통해 조사했다. 연구진이 참가자들에게 보여준 영화는 미국 영화 ‘하치 이야기’(Hachiko: A Dog‘s Story, 2009)와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La Vita è Bella, 1997)다. 두 영화 모두 슬픈 영화로 유명한데 ‘하치 이야기’는 매일 같은 시간 귀가하던 주인을 기다리던 개 하치가 급작스러운 주인의 죽음을 모르고 주인이 돌아오지 않자 매일 같은 곳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이야기를 그렸으며, ‘인생은 아름다워’는 1930년대 말 파시즘이 당대를 지배하던 이탈리아에서 유대인에게 자행되던 강제노역과 학살 상황을 그렸다. 조사 결과, 참가자들 가운데 28명이 영화를 보는 도중 눈물을 보였다. 영화별로는 ‘하치 이야기’에서 60%가,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45%가 눈물을 보였다. 성별로 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은 장면에서 눈물을 보였다. 연구진은 또 참가자들에게 영화가 끝난 뒤 마음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설문을 통해 조사했다. 그러자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을 보이지 않은 사람은 영화를 보기 전과 후에 “마음의 변화는 없었다”고 답했다. 반면 영화를 보는 도중 눈물을 보인 사람들은 영화가 끝난 직후에는 “영화 보기 전보다 더 슬픈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들의 슬픈 기분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영화가 끝나고 20분 정도 지나면서부터 기분이 점차 회복했으며 1시간쯤 뒤에는 영화를 보기 전보다 밝아졌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이에 대해 연구를 이끈 아스미르 그라카닌 틸버그대 박사는 “눈물을 보이는 등 슬픈 감정이 들면 이로 인해 행복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분비된 것으로 생각된다”면서도 “참가자들 스스로 슬픈 기분을 날려버리려고 기분을 회복하도록 노력한 탓일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쨌든 눈물을 흘리는 것은 정신 건강에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 ‘동기와 정서’(Motivation and Emotion) 최신호(8월 23일자)에 실렸다. 사진=ⓒ포토리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슬픈 영화 볼 때 눈물 흘리면 ‘감상 전’보다 기분 ↑ - 연구

    슬픈 영화 볼 때 눈물 흘리면 ‘감상 전’보다 기분 ↑ - 연구

    슬픈 영화를 볼 때 눈물을 흘리고 나면 잠시 슬픈 감정이 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분이 더 밝아지는 등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네덜란드 틸버그대와 크로아티아 리예카대 공동 연구진이 평균 나이 23세(19~33세) 남녀 학생 참가자 60명을 대상으로 슬픈 영화를 보여주고 이들이 조금이라도 눈물을 흘리는지 관찰했다. 또 이들에게 영화 보기 전후 마음에 변화가 있었는지 설문을 통해 조사했다. 연구진이 참가자들에게 보여준 영화는 미국 영화 ‘하치 이야기’(Hachiko: A Dog‘s Story, 2009)와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La Vita è Bella, 1997)다. 두 영화 모두 슬픈 영화로 유명한데 ‘하치 이야기’는 매일 같은 시간 귀가하던 주인을 기다리던 개 하치가 급작스러운 주인의 죽음을 모르고 주인이 돌아오지 않자 매일 같은 곳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이야기를 그렸으며, ‘인생은 아름다워’는 1930년대 말 파시즘이 당대를 지배하던 이탈리아에서 유대인에게 자행되던 강제노역과 학살 상황을 그렸다. 조사 결과, 참가자들 가운데 28명이 영화를 보는 도중 눈물을 보였다. 영화별로는 ‘하치 이야기’에서 60%가,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45%가 눈물을 보였다. 성별로 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은 장면에서 눈물을 보였다. 연구진은 또 참가자들에게 영화가 끝난 뒤 마음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설문을 통해 조사했다. 그러자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을 보이지 않은 사람은 영화를 보기 전과 후에 “마음의 변화는 없었다”고 답했다. 반면 영화를 보는 도중 눈물을 보인 사람들은 영화가 끝난 직후에는 “영화 보기 전보다 더 슬픈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들의 슬픈 기분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영화가 끝나고 20분 정도 지나면서부터 기분이 점차 회복했으며 1시간쯤 뒤에는 영화를 보기 전보다 밝아졌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이에 대해 연구를 이끈 아스미르 그라카닌 틸버그대 박사는 “눈물을 보이는 등 슬픈 감정이 들면 이로 인해 행복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분비된 것으로 생각된다”면서도 “참가자들 스스로 슬픈 기분을 날려버리려고 기분을 회복하도록 노력한 탓일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쨌든 눈물을 흘리는 것은 정신 건강에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 ‘동기와 정서’(Motivation and Emotion) 최신호(8월 23일자)에 실렸다. 사진=ⓒ포토리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73년 만에 유대인 추방 사죄한 모나코 국왕

    73년 만에 유대인 추방 사죄한 모나코 국왕

    “그들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책임이었는데도 그러지 못했다.” 알베르 2세 모나코 국왕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자국 내 유대인들을 강제 추방해 수용소로 보낸 데 대해 73년 만에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다. 진정한 반성에는 시간의 제한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알베르 2세는 27일(현지시간) 모나코의 최고위직 랍비와 다른 유대인 인사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유대인 강제 추방을 사실로 인정한다”며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에서 박해받다 우리에게로 피한 여성과 남성, 어린이를 넘겨줌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면서 “고통에 빠진 유대인들은 우리가 중립적일 것이라 생각해 모나코를 피신처로 삼은 것이었다”고 속죄했다. 이날 모나코의 공동묘지에는 강제 추방된 유대인의 이름을 새긴 추모비가 세워졌다. 이에 대해 모셰 칸토르 유럽유대인의회 의장은 “나치 치하 어두운 시절의 역사를 조사하려는 모나코의 움직임을 환영한다”고 반겼다. 프랑스 남동부에 자리한 모나코는 2차 대전 초기 중립을 표방했지만 1942년 8월 프랑스 나치 협력자들의 압박을 이기지 못해 자국 내 유대인 66명을 체포해 수용소로 보냈다. 이들을 포함해 모나코가 수용소행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한 90명 중 불과 9명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목숨을 잃었다. 알베르 2세의 이번 사과는 조세회피처라는 오명을 얻은 모나코를 일신하기 위한 노력으로 평가받는다. 모나코는 현재 재산을 약탈당한 유대인을 위한 위원회를 만들었으며 이날까지 9건의 보상 신청을 승인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중무장 IS조직원 파리행 열차 테러 시도…美軍 ‘제2 샤를리 참사’ 맨몸으로 막았다

    중무장 IS조직원 파리행 열차 테러 시도…美軍 ‘제2 샤를리 참사’ 맨몸으로 막았다

    ‘연어’처럼 되돌아온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가담자들이 전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금까지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가담한 유럽 등 서방국가 출신 무슬림 대원을 3000명 안팎, 이 중 유럽으로 돌아온 귀환자를 수백명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자동소총·탄창 9통 소지… 200명 살상 가능 가디언 등 외신들은 21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프랑스 파리로 향하던 탈리스 고속열차에서 대규모 총격을 벌이려던 모로코 국적의 테러 용의자 아유브 엘 카자니(25)의 이야기를 비중 있게 다뤘다. IS와 연계된 것으로 추정되는 카자니는 AK47 자동소총과 루거 자동권총, 탄창 9통으로 중무장한 채 554명의 승객이 탑승한 열차를 습격하려다 미군 등 미국인 청년 3명에게 제압당했다. 이 정도 무기면 한꺼번에 200명을 살상할 수 있다. ‘제2의 샤를리 에브도 사태’는 가까스로 막았으나 열차가 통과하는 프랑스와 벨기에, 네덜란드 등의 모든 기차역에선 비상이 걸렸다. AP에 따르면 카자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차에 탑승한 뒤 열차가 국경을 넘어 프랑스 북부 아라스 부근을 지날 무렵 화장실에서 자동소총에 탄약을 장전했다. 때마침 열차 통로에 있던 미 공군 소속 스펜서 스톤과 지난달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했던 주 방위군 소속 알렉 스카라토스, 새크라멘토 주립대 졸업반인 앤서니 새들러가 용의자가 다른 열차 칸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 몸을 던졌다. 이들은 같은 고향 친구 사이로 함께 휴가를 즐기던 중이었다. 스톤이 먼저 테러범과 맞붙어 육박전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머리와 목, 손가락 등이 용의자가 휘두른 커터 칼에 베였다. 다른 친구들도 달려들어 총을 뺏었다. 영국인 승객 등도 테러범을 잡는 데 힘을 보탰다. 한 승객이 목 부분에 총상을 입는 등 모두 3명이 다쳤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프랑스 당국 “페북에 IS 지지… 요주의 인물” 프랑스 정보당국에 따르면 용의자는 페이스북에서 IS 지지를 밝힐 만큼 요주의 인물이었다. 올 1월 벨기에에서 테러를 시도하다 사살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도 연락을 주고받았다. 마약 전과가 있는 용의자는 스페인 항구도시 알헤시라스에서 7년간 머물다 지난해 3월 프랑스를 거쳐 시리아로 넘어갔다. IS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며 불과 석 달 전 유럽으로 돌아와 프랑스에 머물러 왔다. 그는 “총기를 브뤼셀의 한 공원에서 습득해 절도 행각을 벌이려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유럽에 머무는 수백명의 시리아 내전 참전자들이 ‘달갑지 않은 관심’을 받게 됐다. 극단주의 사상으로 무장된 이들은 총기까지 다룰 줄 알아 큰 위험요소가 되고 있다. 프랑스에선 지난 1월 예멘에서 훈련받고 돌아온 알카에다와 IS 연계 테러범들이 파리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와 유대인 식료품점에서 잇달아 총기 난사와 인질극을 벌여 17명이 숨졌다. 지난해 5월에는 시리아 내전에 참전했다가 돌아온 프랑스 국적의 무슬림 남성이 브뤼셀의 유대박물관에서 총격을 가해 4명이 목숨을 잃었다. EU는 시리아 내전에 참전한 서방 무슬림 중 프랑스인이 1200여명으로 가장 많고 이어 영국인 700여명, 독일인 600여명 순이라고 밝혔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뉴스 플러스] ‘나치 두둔’ 佛극우정당 창당인 출당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창립자 장마리 르펜이 지난 4월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학살한 가스실은 역사의 사소한 일 가운데 하나다”라고 망언한 것과 관련해 20일 당에서 쫓겨나는 징계를 받았다. 1972년 국민전선을 창당한 르펜은 2011년 당 대표직을 딸인 마린 르펜에게 넘겼다. 딸 르펜은 국민전선을 반유대적인 정당에서 대중 정당으로 변신시키려고 노력했고 이 과정에서 아버지와 마찰을 빚어 왔다.
  • 국가의 이익은 어떻게 개인을 공격했는가

    국가의 이익은 어떻게 개인을 공격했는가

    나는 고발한다-드레퓌스사건과 집단히스테리/니홀라스 할라스 지음/황의방 옮김/한길사/496쪽/1만 7000원 수년간 투쟁 끝에 소수의 양심세력이 승리한 ‘드레퓌스 사건’의 전말을 다뤘다. 저자는 드레퓌스 사건을 ‘근대국가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장대한, 프랑스로 하여금 흥분과 두려움 속에서 민주주의 기반을 전면 재검토하도록 만든 엄청난 드라마’라고 규정했다. 평범한 군인이었던 유대인 알프레드 드레퓌스는 일순간에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간첩으로 전락했다. 1894년 12월 프랑스 군사법정은 드레퓌스에게 종신형을 선고하고 외딴섬에 유배했다. 적국 독일에 군사기밀을 빼돌렸다는 혐의였다. 뚜렷한 물증조차 없는데도 체포에서 유형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유대인에 대한 편견이 한 사람의 운명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유죄 판결 뒤 프랑스 사회는 대립했다. 불공정한 재판을 문제 삼으며 개인의 인권을 옹호한 재심 요구파와 국가 안보를 부르짖으며 드레퓌스에 대한 단죄를 주장한 재심 반대파의 충돌이었다. 저자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소(小)를 위해 대(大)가 희생되어야만 할까? 단 한 사람을 위한 도덕적 옹호로 인해 프랑스 모든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아도 좋단 말인가? 이와 같은 문제를 놓고, 이성의 나라 프랑스는 제정신을 잃고 말았다.”(28쪽) 프랑스는 1870년 보불전쟁에서 패배하고 독일에 알자스-로렌 지방을 빼앗겼다. 위기의식에 사로잡힌 프랑스는 국가 안보가 모든 것에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에 경도됐다. 재심 반대파는 당시 사회 흐름을 타고 주류를 형성했다. 왕당파와 교회세력, 반유대주의에 젖은 대부분의 프랑스 국민을 포괄했다. 반면 재심 요구파는 공화주의자와 양심적인 법률가, 문인 등 소수였다. 다수와 다른 목소리를 내면 목숨까지 위협받을 정도로 프랑스 사회가 집단히스테리에 빠진 상황에서 에밀 졸라, 조르주 클레망소 같은 이들은 진실을 포기하지 않았다. “진실은 지하에 묻혀서도 자라난다. 무서운 폭발력을 축적한다. 이것이 폭발하는 날에는 세상 모든 허위를 휩쓸어버릴 것이다.”(에밀 졸라) “국가 이익이 오늘은 드레퓌스를 치고 있지만 내일은 다른 사람을 칠 것이다. 정권이 국가 이익을 내세우기 시작하면 끝이 없게 마련이다.”(조르주 클레망소) 1906년 7월 최고재판소는 드레퓌스에 대한 모든 유죄 판결이 오판이며 무효라고 판시했다. 드레퓌스가 기소된 지 12년 만에 진실을 추구한 양심세력이 승리했다. 드레퓌스 사건은 우리 시대 지식인에게 묻는다. 자신과 관련도 없는 사람, 그리고 진실을 옹호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국가와 맞설 수 있는가.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18개월짜리 아기가 테러로 죽어도 사람들은 사자만 걱정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조용히 아기의 곁으로 떠났다. 전신의 80%가 불에 그을렸지만 외마디 신음조차 내지 못했다. 방화로 18개월 된 아기 알리가 먼저 목숨을 잃은 지 여드레 만이다. 아내와 네 살배기 아들은 여전히 사경을 헤매고 있지만 세상은 이를 외면한다. 아이보다 나흘 앞서 사냥당한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사자 세실에게 온통 관심이 쏠린 탓이다. AFP는 8일(현지시간) 요르단강 서안 북부 나불루스 인근 두마 마을에 살던 팔레스타인인 사에드 다와브샤가 이스라엘의 한 병원에서 숨졌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31일 새벽 유대인 극우세력이 던진 화염병에 집이 불타면서 다와브샤의 18개월 된 아기는 숨을 거뒀다. 4살짜리 아들과 아내는 간신히 구출됐으나 아기는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여론은 대평원을 뛰놀던 짐바브웨의 사자 세실에게 집중되고 있다. 아프리카와 중동의 현지 언론들은 전 세계가 세실의 운명에 더 슬퍼하고 분노하는 사이 팔레스타인 아기는 잊혀졌다고 한탄했다. 짐바브웨 ‘더헤럴드’는 “서방에선 세실의 살육을 떼 지어 규탄하는데 정작 팔레스타인 아기의 사망에는 무관심하다”며 “아기의 피보다 사자의 목숨이 값진 사람들이 있다”고 꼬집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영자신문 ‘아랍뉴스’는 트위터 반응을 예로 들었다. 세실과 다와브샤의 죽음을 주제로 삼은 해시태그(#) 수가 일주일간 각각 84만회와 1만 5000회로 크게 차이가 난다며 안타까워했다. 지난달 27일 세실을 사냥한 미국인 의사에게는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유엔은 야생동물 밀렵과의 전쟁 결의안을 채택했고, 각국 항공사들은 앞으로 야생동물 사냥 전리품을 싣지 않겠다며 동참했다. 반면 다와브샤 가족의 비극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다. 미국 정부가 “잔인한 테러 행위”라고 비난했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가격표 살인’이라 불리는 극우 성향 유대인 범죄에 대해 단죄의 칼을 강하게 뽑아 들지 않고 있다. ‘가격표’ 사건은 입었던 피해만큼 되갚는 것을 말한다. 1998년 등장했으며 미국은 이를 보복성 테러로 규정했다. 다만 AFP는 이스라엘 경찰이 다와브샤 가족의 집에 방화 테러를 가한 혐의로 2명 이상의 유대인 용의자를 요르단강 서안의 무허가 유대인 정착촌에서 체포했다고 9일 밝혔다. 모르데차이 메이어라는 이름의 유대인 극단주의자를 같은 혐의로 체포한 지 수일 만이다. 이는 팔레스타인 내 여론이 급격히 악화된 데 따른 후속 조치로 풀이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 뉴욕서 “우리도 유대인처럼 전쟁 피해자” 규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 뉴욕서 “우리도 유대인처럼 전쟁 피해자” 규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강일출(87) 할머니가 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위안부로 끌려가 겪은 피해를 알리고 위안부 기림비 및 소녀상을 추가로 건립하기 위한 활동을 벌였다. 강 할머니는 애틀랜타를 거쳐 지난 4일 뉴욕에 도착한 뒤 뉴욕주 롱아일랜드 낫소 카운티에 있는 홀로코스트 센터를 찾아 일제의 만행을 알리고 위안부 피해자들에 사죄하지 않는 일본 정부를 비판했다. 강 할머니는 스티븐 마커위츠 센터장과 면담을 갖고 “우리도 유대인처럼 전쟁 피해자”라면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문제는 독일의 사죄로 해결됐지만, 우리의 경우 일본 정부가 사죄하지 않아 문제 해결이 안 됐다”고 지적했다. 강 할머니는 그러면서 “일본의 범죄행위에 대해서도 더 많이 다뤄주기 바란다”고 센터 측에 요청했다고 면담에 배석했던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이 전했다. 이에 대해 마커위츠 센터장은 세계 각지의 인권침해를 알리는 각종 전시·강연이 센터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내년 3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주제로 특별전을 하는데, 협조를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강 할머니는 이어 낫소 카운티 아이젠하워 공원 베테란스 메모리얼에 있는 위안부 기림비를 찾아 참배했다. 이 자리에서 강 할머니는 “미국에 더 많은 위안부 기림비와 소녀상이 세워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강 할머니는 7일 오후 미국 유력지인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하는 데 이어 10일에는 그레이스 맹 연방 하원의원을 면담할 계획이다. 지난 1일 미국 방문을 시작한 강 할머니는 애틀랜타에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평통) 애틀랜타 지부 출범식, 현지 한인연합교회 예배에 잇따라 참석하며 일제의 만행을 동포 사회에 알렸다. 강 할머니는 10박 12일의 일정을 마치고 11일 뉴욕을 출발해, 귀국길에 오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설치작가 전수천 철의 실크로드를 가다] (하)모스크바~베를린

    [설치작가 전수천 철의 실크로드를 가다] (하)모스크바~베를린

    예카테린부르크를 떠난 열차가 바이칼 호의 끝자락을 빠져나오자 밤이 깊이 파고들어 왔다. 흔들리는 열차는 잠을 초청하는데 수면제 같은 역할을 한다. 적당한 소리와 흔들림이 잠으로 빠져들게 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눈을 떠 보니까 새벽녘이었다. 여전히 자작나무 숲과 소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선, 산이 아닌 평야가 펼쳐진다. 얼마를 달렸을까. 11시가 넘은 정오 가까운 시간에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한국-러시아 ‘윈윈’할 수 있는 사이 모스크바에서 베를린으로 출발하기 전 철도 운행 스케줄에 따라 잠시 시간 여유가 있었다. 일행은 그 틈을 놓칠세라 모스크바 근교에 있는 삼성전자의 칼루가 현지 공장을 방문했다. 현지법인으로 공장을 지어 8년째라고 하는 1만평 이상 규모의 공장은 첨단 전자제품 생산 공장으로 그 위용이 대단했다. 그런데 자동화된 공장도 공장이려니와 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우리가 방문한다는 소문을 들은 칼루가 주지사와 경제상공 장관이 달려와 주정부의 투자유치 정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해 준 점이다. 이른바 투자 유치를 위한 러브콜을 하기 위해 두 사람이 온 것이다. 칼루가 주에 투자하면 토지를 무상으로 주고 세제 혜택을 10년 이상 준다는 장황한 이야기였다. 토마스 홉스의 이론을 조금 활용하자면 지금 우리에게 러시아는 우리들의 ‘사이’이며 ‘관계’이다. 일행이 정차하는 역에는 관계자들과 주민들이 나와 환영을 해 주었는데 이런 모습이 좋은 의미의 사이이며 관계라는 이론이 아닐까 싶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제재를 가하고 있어 지금은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이때에 대한민국 국민 240여명이 러시아를 방문한 것이 서방세계에 보여주고 싶은 제스처가 될 수 있으며, 우리와는 협력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사이이며 관계가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공간에 신체가 있고 그 옆에 다른 신체가 있어 서로 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지금의 현상이 러시아와 우리의 사이이며 관계일 수 있다는 이론이 홉스의 물체이론이다. 칼루가 주지사의 러브콜은 물질론이나 신체론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공감 가는 이야기가 아닐까. 삼성 현지공장을 뒤로하고 모스크바 시에 있는 롯데호텔에서 고려인, 한인이 마련한 환영파티에 참석, 점심을 먹었다. 한인 총연합회장, 모스크바 한인회장 등 많은 고려인과 한인 간부들이 주관한 환영회는 열기가 있었고 민족이라는 따뜻한 동질감을 몸으로 느끼게 하는데 충분했다. 특히 한국인으로서 러시아에서 국가 1급 훈장을 받은 아니타 최라는 국민 가수가 자신의 밴드 그룹을 데리고 나와 4~5곡을 열창했는데 호소력 깊은 성량을 유감없이 발휘해 마치 신기를 초월하는 괴력무당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환영 겸 환송파티가 러시아에서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수난의 역사 간직한 폴란드를 가다 다시 열차를 갈아타고 대사관 직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한반도 면적 크기의 옛 소련권 국가인 벨라루스의 브레스트 역에 도착했다. 환상적인 색채형상으로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화가 마르크 샤갈의 고향이기도 하다. 면적에 비해 인구는 962만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상당히 엄격한 경계를 받으며 비자 심사를 받고 아름다운 역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밖에는 나갈 수가 없었지만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들은 평화롭고 풍요로워 보였다. 일행이 점심을 먹는 동안 철도 폭이 넓은 TSR에서 전 세계의 철도가 통합된 폭이 좁은 TCR로 차량이 바뀌었다. 바뀐 열차를 타고 2시간쯤 달렸을까. 그 짧은 시간이 기억에 가물가물하다. 어찌 되었든 열차는 벨라루스 국경을 넘어 폴란드의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120여년 이상의 긴 세월을 외세의 침략으로 한때는 독일, 그리고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던 폴란드는 나라가 세 동강이 나는 수난의 역사를 가졌다. 그럼에도 수도 바르샤바는 아름다운 고도였다. 폴란드에는 위인도 많았다. 피아노 작곡의 거장인 쇼팽이 폴란드 출신인 것은 누구나가 알고 있다. 피아노의 시인인 쇼팽은 살아서 조국 폴란드에 돌아오고 싶었으나 독일의 탄압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타국에서 죽었다. 그는 죽으면서 자신을 조국에 묻어 달라고 했지만 시신을 폴란드로 옮길 수가 없어 누나가 심장만 숨겨 들고 와서 바르샤바의 성당에 안치했다고 한다. 지금은 그의 심장이 존재하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상징적인 돌기둥이 성당 안에 서 있다고 한다. 바르샤바 곳곳 쇼팽이 활동했던 보도 위에는 그가 작곡한 음악이 기록된 돌로 만든 벤치가 놓여 있다. 한쪽 끝에 버튼이 있어서 그 버튼을 누르면 쇼팽의 피아노곡이 울려 퍼져 그의 곡을 쉬면서 들을 수 있다. 폴란드 국민의 쇼팽 사랑이 어떠한지 알 수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구 시가지에는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의 동상이 서 있고 요한 바오로 2세를 교황으로 추천한 대주교의 동상도 역사적인 성당 건물 앞에 있다. 구 시가지의 야경이 장관이다. ●개성 등 북한지역에 더 많은 공단 조성해야 독일 베를린으로 출발하기 전 유대인 집단 거주지인 게토 지역에 자리 잡은 유대인 학살 추모비 앞에서 묵념을 했다. 독일이 폴란드에 사과하고 화해한 태도와 일본이 우리나라에 제스처만 보이는 태도는 비교를 할 수가 없다. 바르샤바 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세미나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그제고슈 스헤티나 폴란드 외무장관의 기조연설과 우리 측 학자 2인, 폴란드 측 학자 2인의 발표로 의미 있게 진행됐다. 마지막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메시지까지 도착하여 세미나를 더욱 뜻깊게 했다. 의미 있는 세미나를 마친 열차가 마지막 종착지인 베를린을 향해 출발했다. 베를린 도착 후 하룻밤을 지낸 유라시아 친선 팀은 브란덴부르크 문 인근 알리안츠 포럼 건물에서 열린 ‘독일 통일과 한반도 통일 문제 세미나’에 참석했다. 베를린 자유대학 학생과 서울대 학생 각 8명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외교부 장관과 전 독일 총리의 기조연설이 세미나를 더욱 진지하게 하는 촉진제 역할을 했다. 다양한 의견이 쏟아진 세미나를 지켜보면서 우리가 통일이라는 대명제 앞에 많은 것을 고려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우선 통일이라는 단어보다 남북이 하나 되기 위한 의미의 다른 단어가 있어야 되겠다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에도 동독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통일이라는 단어를 써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이라는 담화도 유라시아 대륙의 물류 길을 연다면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냄으로서 경제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경제 선진국이 된다면 북한을 더 많이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우리 국민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돕고 소통하며 민간 차원의 생활문화를 교류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개성과 같은 여러 곳에 공단을 많이 지어서 북한 국민의 생활이 향상된다면 남북이 하나 되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하리라 믿는다. 물론 기술적으로 많은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통일은 어느 순간 갑자기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조금 떨어진 넓은 공터에는 돌로 만든 유대인 학살 추모 기념 모뉴먼트가 미로처럼 설치되어 있다. 베를린에서 가장 비싼 금싸라기 땅이란다. 독일 의회가 자기들의 잘못을 뉘우치는 의미로 높낮이가 각기 다르고 사람이 앉거나 누워도 좋을 만한 1000여개가 넘는 직사각형의 기념비적 모뉴먼트를 설치하기로 결정한 결과물이란다. 이 작은 돌 위에 안거나 누워서 자신들의 과거사를 뒤돌아보는 진정한 독일인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일본의 형식적인 모습과 달리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가 폴란드 게토 지역의 추모 기념비 앞에서 갑자기 땅에 엎드려 무릎을 꿇으면서 고개 숙여 가슴 아파한 광경은 모든 사람들을 당황시킬 정도로 놀라운 장면이었다고 한다. 많은 기자들의 질문에 브란트 전 총리는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다는 것에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니 전후 일본 총리들은 깊은 반성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고 싶다. 통일을 너무 서둘러서도 안 되겠지만 작금의 일본 총리들의 태도를 보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위해서도 하루속히 북한과 하나 되어 부산과 목포에서 평양을 거쳐 베를린까지 우리의 생산품을 싣고 열차가 달릴 날을 기대한다. ●베를린서 울려 퍼진 금강산… 통일을 기약하다 세미나가 끝나고 브란덴부르크 문 앞 야외무대에서 열린 음악회는 베를린에서 치른 한국의 밤 같은 무대였다. 백건우씨가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콘체르토 5번은 엄청나게 모인 관중을 감동시켰다. 또한 김덕수의 사물놀이 공연에 관중들이 매료되었으며 끝으로 조수미가 부른 ‘그리운 금강산’은 사람들의 가슴을 떨리게 했다. 참가인 중 몇 사람은 눈시울을 적시었다고 한다. 베를린이라는 장소 또한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끝으로 윤병세 장관을 비롯해 김창범 단장, 임수석 심의관 등 외교부의 유라시아 친선특급 프로젝트 준비팀의 노고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 벨라루스, 폴란드의 각 도시 정차 역에서 치러진 환영식과 크고 작은 행사 등등 치밀한 준비가 돋보였다. 또한 유라시아 친선특급 열차가 성사되도록 러시아철도공사와의 협의에 최선을 다한 최연혜 코레일 사장과 공사 측 직원들의 노력에도 감사를 표한다.
  • 종신형 스파이 석방… 이스라엘 달래는 美

    종신형 스파이 석방… 이스라엘 달래는 美

    미국이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이스라엘 스파이를 전격 석방키로 했다. 이란 핵 협상 타결에 마음을 풀지 않는 이스라엘을 달래려는 조치로 관측된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 언론은 2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에 기밀 정보를 넘긴 죄로 30년째 복역 중인 조너선 폴라드(60)가 오는 11월 가석방된다는 소식을 일제히 전했다. 그의 변호인은 성명을 통해 “폴라드가 아내와의 상봉을 고대하고 있으며, 양국의 지지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고 말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등 이스라엘 측에선 환영의 메시지가 잇따랐다. 미국 국적의 유대인인 폴라드는 양국 외교사에서 가장 논쟁적 인물이다. 미 해군 정보국 분석가로 활동하던 그는 중동권 내 미 스파이 행위와 관련한 기밀문서 사본을 이스라엘에 넘겨준 혐의로 1985년 11월 21일 체포돼 종신형을 선고받고 30년째 노스캐롤라이나 연방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1995년 복역 중인 그에게 시민권을 줬으며, 나중에 정보 습득 대가로 돈을 준 사실도 인정했다. 이스라엘은 그의 석방을 위해 전방위 로비를 벌여 왔으나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 법무부뿐 아니라 딕 체니 전 부통령 등 고위인사들의 반대를 넘지 못했다. 석방의 벽이 높았던 그가 풀려난다는 것은 이란과의 핵 협상 타결 이후 격하게 반발하는 이스라엘을 달래려는 조치라는 해석이 많다. 그러나 미국은 이런 시각을 일축했다. 이날 미 의회 청문회에 나온 존 케리 국무장관은 “가석방 조치는 핵 협상과 관련 없다”고 말했다. 법무부도 ‘30년 복역 후에는 가석방 자격이 주어진다’는 규정을 따른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풀려나는 11월 21일은 체포된 지 정확히 30년 되는 날이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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