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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크라이나서 ‘나치 독일 시대’ 금고 발견

    우크라이나서 ‘나치 독일 시대’ 금고 발견

    우크라이나에 있는 한 도시에서 나치 독일의 금고가 우연히 발견됐다고 러시아 일간 프라우다가 25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우크리아나 남동부 빈니차에 있는 마기스트라츠카야 거리 지하에서 약 500㎏의 밀폐된 금고가 발견됐다. 금고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지역 주민 올레그 수호돌스키로, 그는 난방 장치를 교체하는 작업 중 지하에서 금고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금고를 확인하고 역사적인 가치가 있지 않을까 예상하며 고고학자들을 불렀다. 현장에서 금고를 확인한 고고학자 중 한 명인 올가 그라보브스카야는 “이는 이 지역에서 발견된 최초의 독일 금고”라고 설명했다. 이 학자에 따르면, 금고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열 수 없다. 왜냐하면 금고의 금속 재질이 심하게 산화돼 열려면 특수한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 역사적 가치가 있는 금고를 훼손시킬 수 없다는 게 고고학자들의 설명이다. 또한 이들 고고학자는 금고가 발견된 지하에서 독일 은화 몇 점과 ‘다윗의 별’이 그려진 도자기도 발견했다. 흥미롭게도 이 거리는 유대인들이 살던 지역을 관통한다. 이번 금고는 과거 전쟁 당시 폭격으로 인해 세워져 있던 아돌프 히틀러의 지하 벙커로 떨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당시 독일군은 소련군의 공격에 퇴각하면서 지하 벙커로 접근하는 모든 통로를 폭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VEAA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바르셀로나 최고랍비 “유대인, 이스라엘로 이주하라”

    바르셀로나 최고랍비 “유대인, 이스라엘로 이주하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최고 랍비가 유대인들에게 유럽을 떠나 이스라엘로 이주할 것을 촉구했다. 20일(현지시간) 영국 인디펜던트 보도에 따르면 바르셀로나 유대교의 최고랍비인 메어 바르 헨은 최근 유대인 통신사인 JTA와 가진 인터뷰에서 “유럽은 급진적인 이슬람에 의해 실종된 상태이고, 스페인은 모든 유럽 테러의 거점이 됐다”고 경고하면서 “유대인들은 이 곳에서 영원히 살지 않을 것이다. 스페인에서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이스라엘로 이주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헨 최고랍비의 경고는 지난 17일 바르셀로나와 캄브릴스에서 잇따라 일어난 테러로 14명이 숨지고, 120명 이상이 중상을 입은 직후 나왔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IS는 두 테러를 자신들이 저질렀다고 주장했으며, 유럽 당국 역시 대규모 테러리스트의 세포 조직이 저지른 범죄로 추정하고 있다. 헨 최고랍비는 “유대교 신자들에게 말한다. 우리가 이곳에서 영원히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말라. 현재 갖고 있는 자산을 이스라엘로 옮겨 부동산을 사도록 하라. 두 번 다시 알제리 유대인들이나 베네수엘라 유대인들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 가능한 빨리 이주를 시행하도록 하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이번 테러는 이슬람 사회에서 ‘급진적인 변두리 세력’의 존재를 드러냈지만, 결국 전체 유럽에 이 문제가 모두 적용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물론 헨 최고랍비의 발언은 스페인의 유대공동체연맹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이 단체는 “급진주의 이슬람교도들이 고통과 혼란을 가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경찰, 군대 등을 신뢰하며 안전에 대해 충분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말해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스페인 카탈로냐 경찰은 최근 차량 테러의 배후로 지목되는 이슬람 성직자를 추적하는 한편, 최근까지 그가 머물던 집에서 가스통 100여 개를 무더기로 발견하는 등 추가 테러를 막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김욱동의 창문을 열며] 새 시대에는 새 아이콘을

    [김욱동의 창문을 열며] 새 시대에는 새 아이콘을

    요즈음 일본은 2020년 하계올림픽을 앞두고 그 준비로 여간 분주하지 않다. 가득이나 꼼꼼하기로 유명한 일본인들은 외국 손님을 맞는 데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준비하려고 그야말로 야단법석이다. 그중 하나가 지금까지 일본 지도나 신호, 관광 안내문 등에서 사용해 온 공공시설 안내 표지를 새롭게 정비하는 일이다. 가령 최근 일본에서는 그동안 사용해 온 불교 사찰 상징(卍)을 흔히 ‘하켄크로이츠’로 일컫는 나치 상징(?)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다른 상징으로 교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실제로 이 두 상징은 얼핏 보아서는 쉽게 구분할 수 없다. 그러나 삼라만상에 대한 자비를 최대 미덕으로 삼는 불교는 인류 역사에 치욕을 남긴 나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불교에서는 길가에 나뒹구는 돌멩이 하나에도 불성이 깃들어 있다고 보는 반면 나치주의자들은 유대인들을 ‘사회적 기생충’으로 간주해 박멸 대상으로 삼지 않았던가. 현재 독일에서는 나치나 나치의 상징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형법에 따라 처벌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인 불교 사찰 표지는 외국인들에게 자칫 나치를 찬양하는 표지로 오해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 일본의 도시와 시골 곳곳에 붙어 있는 온천이나 목욕탕 표지도 정비 대상으로 검토 중에 있다. 현재 일본에서 사용하는 표지는 타원형 위에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수증기 세 개로 표현한다. 한국에서 사용하는 표지와 거의 비슷하다. 그렇다면 일본 정부는 왜 이 표지를 변경하려고 하는 걸까. 두말할 나위 없이 외국인이 볼 때 온천이나 목욕탕보다는 우리네 설렁탕 같은 따뜻한 요리가 나오는 식당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래의 표지 대신 어른 2명과 어린아이 1명이 타원형 안에 몸을 담그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디자인을 새로운 온천 표시로 선택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여론조사에서는 외국인의 70%가 새 온천 표지가 이해하기 쉽다고 답한 반면 일본인의 60%는 현재의 표지가 이해하기 더 쉽다며 현행 표지를 유지할 것을 주장했다. 일본 정부는 전문가와 일반인, 여행객 등의 의견을 좀더 듣고 나서 새 표지를 확정할 계획이다. 그러나 일본 온천 업계는 이 표지를 바꾸려는 정부의 방안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일본 정부가 안내 표지 변경을 위해 개최한 회의에서 온천이 밀집해 있는 오이타(大分)현과 군마(群馬)현에서 온 온천 업계 관계자들은 2020년까지 온천 표지를 모두 바꾸기란 현실적으로 힘들다며 현재의 표지를 계속 사용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그렇다면 2018년 강원도 평창에서 열리는 제23회 동계올림픽대회를 바로 코앞에 두고 있는 한국의 사정은 과연 어떠한가. 일본인들은 2020년 올림픽을 앞두고 벌써부터 이렇게 철저히 준비하고 있는데 한국은 온갖 표지를 어떻게 정비하고 있는지 자못 의문이다. 가령 공중 화장실 표지만 해도 그러하다. 남자 화장실은 바지를 입고 있는 남성의 이미지로, 여자 화장실은 치마를 입고 있는 여성의 이미지로 만들어 사용한 지 이미 오래됐다. 그러나 요즈음 치마를 입는 여성보다는 바지를 입는 여성이 훨씬 많다. 이런 상황에서 바지와 치마로 성별을 구별 짓는 이미지는 시대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 공중 화장실을 사용할 때 어느 쪽을 사용해야 할지 망설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여러 번 두리번거리다가 ‘남자’나 ‘여자’라는 글자를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하고 들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현재 한국에서 사용하는 표지 중에 국제 표준과 다른 것이 있으면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 전통적인 것이라고 하여, 또 예로부터 관행적으로 사용해 왔다고 하여 고집 부릴 이유가 전혀 없다. 언어는 국가나 문화에 따라 서로 다를지언정 상징이나 표지는 국제사회가 하나로 통일해 사용하는 공통어다. 이런 상징이나 표지가 서로 다르면 교통신호 체계가 서로 다를 때처럼 큰 혼란이 빚어질 것이다.
  • 113세 세계 최고령 남성 별세

    113세 세계 최고령 남성 별세

    세계 최고령 남성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홀로코스트(독일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생존자 이스라엘 크리스탈이 지난 11일(현지시간) 113세로 별세했다고 AP통신 등이 12일 전했다. 그는 114번째 생일을 한 달 앞두고 있었다. 폴란드계 이스라엘인인 크리스탈은 지난해 이스라엘 하이파에 있는 자택에서 112세 178일의 나이로 세계 최고령 남성 기네스북 증명서를 받았다.1939년 나치가 폴란드를 점령하면서 그의 가족은 우치의 유대인 거주 지역(게토)으로 옮겨졌다. 이후 아내와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져 강제 노역을 했다. 부인과 자녀 2명은 홀로코스트 과정에서 숨졌으며 크리스탈은 가족 중 유일하게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았다. 1945년 연합군이 도착했을 때 그의 몸무게는 37㎏에 불과했다.
  • [이은미의 뮤지엄 천국] 독일 박물관의 나치 부역 반성

    [이은미의 뮤지엄 천국] 독일 박물관의 나치 부역 반성

    ‘독일의 피렌체’라고도 불리는 드레스덴 도심은 여름이면 관광객들로 늘 붐빈다. 드레스덴의 독일 위생박물관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아시아와 유럽 박물관 협의체인 아세무스 교류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 약간은 생소한 ‘위생’이라는 이름의 박물관이지만, ‘인간’에 대해 다루고 있는 수준 높은 과학박물관 같은 인상이다. 어린이와 함께 온 가족, 단체로 관람 온 청소년들이 진지하게 또는 즐겁게 전시를 관람하고 체험하는 모습으로 박물관은 활기가 넘쳤다.널찍하고 쾌적한 공간에 펼쳐진 상설 전시의 주제는 ‘인간 모험’. 하나의 세포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과 죽음, 식생활, 성별, 인간의 뇌와 사고 능력, 동작과 움직임 등에 관한 전시를 보여 주고 있다. 오감을 주제로 한 어린이박물관도 갖추고 있다. 박물관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전시실은 ‘유리 인간’으로, 박물관의 역사를 보여 준다. 위생박물관은 1911년 질병 예방과 건강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전시실의 중앙에는 ‘유리 인간’, 즉 뼈의 골격, 핏줄, 배 속의 장기 등 인체 내부가 투명하게 보이는 인간 모형이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린 채 서 있다. 1930년 설치된 ‘유리 인간’은 당시 의학의 진보와 더불어 질병 퇴치의 낙관론을 보여 주었던 박물관의 상징물이다. 박물관의 역사를 관람하던 중 뜻밖의 내용을 발견했다.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이 박물관이 나치 이데올로기에 봉사했다는 것이다. 우생학은 나치 인종차별 이데올로기의 핵심이었고, 이 기간에 박물관은 무조건 나치 우생학의 프로파간다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구체적이고도 담담하게 적시하고 있었다. 박물관 내부의 토론을 거쳐 어두운 역사이지만 전시하기로 했다는 것이 박물관 교육부장 루프레히트 박사의 설명이었다. 2006년에는 나치 인종 정책의 잔혹성을 보여 주는 ‘치명적 의학: 지배자 민족의 탄생’이라는 특별전을 개최했다. 특별전은 ‘유리 인간’ 전시로 시작, 인종 차별의 기초가 된 사이비과학, 아리아 인종의 순수성을 달성한다는 명목으로 진행된 우생학 프로그램, 강제적인 불임 조치와 결국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홀로코스트로 치닫는 나치 건강 정책의 역사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이 특별전은 실은 미국 홀로코스트박물관에서 기획한 전시다. 애초에 이 전시의 해외 순회전을 망설이던 홀로코스트박물관 측은 “위생박물관은 여기서 학살이 이루어졌다는 의미의 범죄 기관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을 하게끔 도왔다”는 클라우스 포겔 관장의 유치 의지, 그리고 당시 ‘신나치당’으로 불리는 극우 정당인 독일민족민주당(NPD)의 급부상이라는 우려되는 정치적 상황에서 해외 첫 순회 전시를 결정했다고 한다. 독일 위생박물관은 이 같은 반성을 통해 나치 부역 박물관이라는 오명을 넘어서 현재는 ‘인간’에 관한 박물관이자 과학, 문화와 사회에 관한 열려 있는 토론의 장을 표명하면서 독일에서 가장 혁신적인 활동을 하는 박물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박물관 연구를 위해 교토의 한 대학에 1년 반 동안 머물면서 둘러봤던 일본의 박물관에서 일본이 행한 전쟁과 가해의 역사에 관한 국립박물관 전시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일본 히로시마평화기념관에서는 핵무기가 초래한 참상과 평화의 중요성에 관해 절절하게 전시하고 있지만, 한편 원자폭탄 투하라는 비극을 초래한 원인에 관해서는 함구하고 있었다. 피해의 역사보다 가해의 역사를 전시하는 것은 더 어렵고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 “영화 군함도는 팩션… 日징용 참상 각인에 의미”

    “영화 군함도는 팩션… 日징용 참상 각인에 의미”

    개봉 5일 만에 4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군함도’를 전문가는 어떻게 봤을까. 군함도의 배경이 된 하시마섬의 탄광은 조선인 500~800명이 강제 징용돼 갖은 고초를 겪었던 곳이다. 서울신문은 지난 27일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박인환 건국대 행정대학원 교수와 함께 영화 ‘군함도’를 관람했다. 박 교수는 영화를 본 직후 “광복절을 앞두고 일제의 강제 징용 참상을 국민들에게 인식시켰다는 점에선 큰 의미가 있다”면서도 “국민의 카타르시스를 충족시키는 것만으론 부족하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영화 어떻게 봤나. -역사적인 사실(팩트)에 상상력(픽션)을 덧붙인 ‘팩션’(faction)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세계인들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잘 알지만 일본 제국주의의 참상에 대해선 잘 모르고 있다. 이 영화를 계기로 일제의 강제 징용이 널리 알려진다면 그 의의를 확대할 수 있겠다. →아쉬운 점이라면. -일본의 강제 동원은 ‘인류애’ 문제다. ‘피아니스트’, ‘쉰들러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등은 유대인 학살과 관련된 영화이지만 독일 사람이 봐도 눈물이 나는 영화다. 이런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영화가 탄생하길 기대했다.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조사는 제대로 되고 있나. -피해자 신고는 거의 다 이뤄졌다고 본다. 정부에서는 민간재단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예산을 지원한다. 말 그대로 ‘지원’ 재단이다. 피해자 조사를 도외시하고 지원에만 치중해선 안 된다. 지원보다 조사가 더 중요하다. 일본은 우리의 능력과 의지를 시험하고 있다. 조사를 하지 않고 지원만 하면 일본 측에서 쾌재를 부를 것이다. 우리가 강제 징용 피해에 대한 조사에 나서야 일본이 긴장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다. 아직 ‘전범을 잡았다’는 말조차 없지 않나. 세월이 흐른다고 조사가 다 된 것은 아니다. →일제의 강제 징용 규모는 얼마나 되나. -일본군 위안부를 포함해 강제 동원된 숫자는 총 780만명인데, 한 사람이 여러 번 동원되기 때문에 중복을 제외하면 국내외 200만명으로 추산된다. 국내 75만명, 국외 125만명이다. 영화 ‘군함도’의 배경이 된 하시마섬의 탄광에는 1943년부터 1945년 사이 500~800명이 강제 동원됐다고 본다. 화장 기록을 통해 밝혀낸 조선인 사망자는 122명이었다. →군함도에도 ‘위안부’가 있었나. -있었다. 하시마 탄광에서 매음부를 고용했고, 도박을 장려했다고 한다. 군함도에는 일본인, 중국인, 한국인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일본인 광부가 가장 많았다. 군대 위안부는 ‘종군 위안부’라고 하지만, 이곳에서는 ‘노무 위안부’라고 한다. 때문에 영화에 나온 위안부는 허구가 아닐 것이다. →일본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정부에선 ‘팩트’ 조사에 나서야 한다. 한·일 역사 교과서에 강제 동원 피해자에 대한 내용을 상세히 기술해야 한다. 일본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결국은 휴머니즘이다. 역사적 사실을 문화·예술적으로 승화시키며 세계인의 양심에 호소하면 일본의 진실된 사과를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는 왜 나치 전범을 다르게 볼까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는 왜 나치 전범을 다르게 볼까

    악의 해부/조엘 딤스데일 지음/박경선 옮김/에이도스/324쪽/1만 7000원 유대인 600만명과 비전투원 수백만명, 집시 20만명, 정신질환자 및 장애아동 7만명….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이다. 인류 최악의 전쟁범죄라는 홀로코스트 주모자들은 태생이 악마 같은 사이코패스였을까, 주변 환경에 이끌린 또 다른 사회적 피해자였을까.뉘른베르크 재판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나치 전범들을 처벌하기 위해 열린 재판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재판에 앞서 연합군 측이 나치 전범들의 심리연구차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를 뉘른베르크에 파견한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연합군 측은 이들이 전범들을 ‘악마 같은 사이코패스’로 결론짓기를 바랐고 일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UC샌디에이고 정신의학과 석좌교수인 저자가 나치 전범들의 심리분석 기록을 분석한 이 책에 따르면 연합군 측과 일반 인식은 빗나갔다. 뉘른베르크에 파견된 미국 심리학자 구스타브 길버트와 정신과 의사 더글러스 켈리는 전범 22명의 심리 파악을 위해 각종 심리검사와 대면조사, 감방 속 심리 관찰을 진행하며 다양한 기록을 남겼다. 저자는 그중 유형이 다른 4명의 심리 분석에 집중해 ‘악의 실체’를 추적하고 있다. 나치 정권의 2인자이자 제국원수였던 헤르만 괴링, 루돌프 헤스 부총통, 독일노동전선 수장 로베르트 레이, 극렬한 인종혐오주의자이며 유대인 혐오잡지 ‘데어 슈튀르머’(돌격대) 편집자 율리우스 스트라이허. 이들에 대해 심리 파악을 진행한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는 흥미롭게도 상반된 해석을 내린다. 정신과 의사였던 켈리는 사회적 환경이 이들을 악마로 만들었다고 결론지은 반면, 심리학자 길버트는 전범들이 원래 평범한 사람과 다른 사이코패스였음을 역설한다. 책은 ‘악의 실체’와 관련해 그 둘 중 한쪽에 무게를 싣지 않는다. 인간 본성을 둘러싼 성악설·성선설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고 평행선을 달리는 것과 비슷하다. 정답을 유보한 대신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켈리는 모든 사람에게서 약간씩의 어둠을 찾아냈고, 길버트는 몇몇 사람에게서 보기 드문 어둠을 찾아냈다.” 책 서론에 붙인 영국 정치사상가 에드먼드 버크의 명언이 그 결론과 맞물려 눈길을 끈다. “악이 승리하는 데 필요한 유일한 조건은 선량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AI의 등장, 로봇의 인간 지배? 인간 ‘대혼란의 시대’ 살아남기

    AI의 등장, 로봇의 인간 지배? 인간 ‘대혼란의 시대’ 살아남기

    늦어서 고마워/토머스 프리드먼 지음/장경덕 옮김/21세기북스/688쪽/3만 8000원지난해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대결. 1대4라는 인간 완패에 세상은 불안에 휩싸였다. 불안은 일자리 대체의 박탈을 넘어 로봇의 인간지배라는 위기로 치닫는다. 흔히 ‘현기증 나는 가속의 시대’라 불리는 세계. 인간의 적응능력을 앞지르는 기술의 진전에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 등으로 국내에도 친숙한 뉴욕타임스(NYT)의 칼럼니스트가 ‘미국 쇠망론’ 이후 6년 만에 펴낸 신간. 예사롭지 않은 책에서 저자는 보통의 인식과 달리 낙관적인 견해를 편다. “인공지능은 자신의 자리를 기꺼이 내어주는 인간만 지배하고 그런 사람들에게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가속의 시대에 맞춰 끊임없이 적응력을 키우라”고 생존의 법칙을 귀띔한다.저자가 말하는 ‘가속의 시대’란 컴퓨터 기술과 세계화 시대의 시장, 기후변화 같은 대자연의 변화에 한꺼번에 가속도가 붙어 세상을 크게 요동치게 만드는 시대다. 그 세상에서 인간은 한참 뒤처져 있고 괴리는 갈수록 심해진다. 그 가속과 괴리의 으뜸 요인은 마이크로칩 성능이 18개월마다 두 배씩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이다. 인텔의 공동 창업자 고든 무어가 제시한 이 법칙은 지난 50년간 깨지지 않았고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 2007년이야말로 인간세상의 큰 변곡점이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2007년은 종전과는 다른 변화들이 집중적으로 생겨난 해이다. 아이폰이 출시됐고 페이스북이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IBM이 인공지능 컴퓨터 ‘왓슨’을 만들고, 구글이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를 사들인 것도 이때다. 전 세계 인터넷 사용자가 10억명을 돌파한 시점이기도 하다. 2008년 글로벌 경제가 침체에 빠져 사회적·정치적 변화와 규제개혁이 얼어붙으면서 기술변화와 인간적응의 격차에 눈떴고 그 괴리감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한다는 주장이다. 2013년 옥스퍼드대 마틴스쿨 연구소는 미국의 일자리 중 47%가 20년 안에 컴퓨터에 넘어갈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대혼란의 시대에 인간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답은 의외로 평범한 상식에 닿아 있다. ‘태풍의 눈은 태풍에서부터 에너지를 이끌어내고 그 안에서 안정적인 피난처를 만든다.’ 가속의 시대를 헤쳐나갈 유일한 길은 태풍의 눈을 찾아내고 자신만의 눈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겁먹거나 후퇴하지 말고 잠시 멈춰 서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져라.” 그 태풍의 눈 속에서 인간이 찾아야 할 눈은 가속의 시대에 걸맞은 ‘역동적 안정감’의 유지다. 자전거를 탈 때 넘어지지 않으려면 계속 페달을 밟아야 하는 이치다. 그 페달 밟기의 방법은 여러 각도에서 풀어진다. 무엇보다 기술 외의 모든 일에서 혁신을 이룰 것을 조언한다. 특히 일터에서는 인간이 정확히 무엇을 기계보다 더 잘할 수 있고, 무엇을 기계와 ‘함께’ 잘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사람들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라고 역설한다. 그 대목에서 도드라지는 주장은 AI를 똑똑한 도우미(IA·Intelligent Assistants)로 바꿔 인간과 AI가 공존하는 해법이다. 각종 센서로 무장한 빌딩에서 건물 관리인이 데이터 엔지니어로 변신하는 식이다. 물론 리더십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 번영의 토대였던 공동체적 지역시민사회를 재건하자는 주장도 인상적이다. 자신의 고향인 미네소타주 세인트루이스파크에서 자신의 가족도 속했던 유대인 공동체를 중심으로 펼쳐낸 청소년기의 포근한 추억을 그 예로 들고 있다. 그 페달 밟기의 구체적인 방법을 다양하게 제시한 저자는 기후변화의 대처와 관련한 한 환경운동가의 말을 인용해 대미를 장식한다. “우리는 딱 맞게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있다. 지금부터 시작한다면.”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비운의 천재 유태인 복서의 감동 실화 ‘빅터 영 페레즈’ 예고편

    비운의 천재 유태인 복서의 감동 실화 ‘빅터 영 페레즈’ 예고편

    영화 ‘빅터 영 페레즈’ 메인 예고편이 공개됐다. 빅터는 튀니지 출신의 유망한 유대인 복서다. 그는 파리에서 온 복싱 매니저의 눈에 띄어 형 벤자민과 함께 파리로 향한다. 이후 빅터는 수많은 차별 속에서도 경기마다 승리를 거두며 플라이급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빅터는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포로로 끌려간다. 포로수용소에서 헤어졌던 형 벤자민을 만나지만, 이들은 그곳에서 온갖 고초를 당한다. 그리고 어느 날, 사령관은 유대인의 더러운 본성을 입증하겠다며 헤비급 독일병과 빅터와의 복싱경기를 연다. 영화 ‘빅터 영 페레즈’는 1940년대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튀니지 출신의 천재 유대인 복서 ‘빅터 페레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휴먼 드라마다. 공개된 예고편에는 프로 복서가 되기 위해 형과 함께 프랑스로 넘어온 주인공의 영화 같은 삶을 담고 있다. 예고편에는 ‘빅터’가 차별의 벽에도 세계 챔피언이 된 뒤, 사랑에 빠지는 최고의 순간과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히는 최악의 순간이 담겨 있다. 독일 군인과의 경기를 앞둔 빅터에게 “빨리 KO 당해야 네가 살아”라고 말하는 형 벤자민의 대사와 절대지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빅터의 결연한 모습은 천재 복서의 비통한 삶을 예상케 한다. ‘빅터 영 페레즈’는‘ 자크 와니쉐 감독이 연출과 각본, 제작까지 맡았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홀로코스트에 대한 비극을 피부로 느꼈다. 그 모든 것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이런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작품 제작 배경에 대해 밝혔다. 영화는 오늘 7월 13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한다. 15세 관람가다. 110분. 문성호 기자 sungho@sdeoul.co.kr
  • [씨줄날줄] 쇼아 기념관, 위안부 박물관/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쇼아 기념관, 위안부 박물관/최광숙 논설위원

    달팽이집 같은 나선형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두운 동굴로 안내된다. 어둠 속에서 나타나는 촛불 세 개가 거울에 반사되면서 사람들은 가벼운 현기증을 느끼게 된다. 이때 차분한 음성이 흘러나온다. 2차대전 때 나치에 희생된 어린이들의 이름, 거주지, 나이가 엄숙하게 낭독된다. 목숨을 잃은 150만명의 어린이들의 이름을 다 듣고 나면 마주하게 되는 햇빛.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이곳은 예루살렘 근교 야드바셈 홀로코스트 기념관 내 어린이 희생자 추모지다.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스라엘을 방문할 때마다 이곳에 들른다. 평소 감정의 동요가 없는 그지만 이곳에서만큼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독일 나치에 학살된 유대인 600만명을 기리는 곳이다. 유대인 학살을 가리키는 홀로코스트는 구약성서에서 신에게 희생물을 통째로 태워 바친다는 의미에서 비롯됐다. 이스라엘에서는 유대인이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학살된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대재앙’, ‘참사’를 뜻하는 히브리어 ‘쇼아’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메르켈 총리를 비롯해 유럽에서는 쇼아를 쓰지만 영미권에서는 여전히 홀로코스트를 쓴다. 이 기념관은 해외 정상들이 이스라엘 방문 때 반드시 찾는 장소다.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검은색의 유대교 전통 모자인 키파까지 쓰고 가족과 함께 이곳 추모의 홀에서 헌화를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홀로코스트를 “형언할 수 없는 악의 행동”이라고 말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도 최근 이곳을 찾았다. 놀랍게도 위안부 문제 등 아시아 주변국 침략에 대해 한마디의 반성도 없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15년 1월 이곳에서는 “특정 민족을 차별하고 증오의 대상으로 삼는 일이 인간을 얼마나 잔혹하게 만드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고 연설했다. 유대인의 학살을 추모하는 기념관은 독일, 미국, 프랑스 등 세계 각지에 있다. 추모의 방식도 기념관, 유대인 수용소, 영화, 연극, 문학 등 인간이 창조할 수 있는 모든 영역에서 이뤄진다. 최근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를 방문해 “일본군 위안부 박물관을 건립하겠다”고 약속했다. 전쟁이 가져다준 인권 침해를 기억하고 환기하는 메카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접근성이 좋은 서울 시내에 짓겠다고 한다. 쇼아 기념관과 비교하면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이 박물관도 쇼아 기념관처럼 세계 지도자들이 꼭 들르는 역사의 장소로 만들어야 한다. 첫 방문자는 아베 총리였으면 한다.
  • [씨줄날줄] 오픈북 시험과 창의력/오일만 논설위원

    [씨줄날줄] 오픈북 시험과 창의력/오일만 논설위원

    “무비판적으로 교수의 한 말을 그대로 답안지에 옮기는 학생들의 학점이 좋고 오히려 창의적 답변을 제출한 학생들의 성적이 나쁩니다.” ‘서울대에서는 누가 A+ 학점을 받는가’의 저자 이혜정 교육과 혁신연구소장의 말이다. 4차혁명 시대, 한국 최고의 명문대조차 주입식 교육을 답습하는 현실에서 미래의 리더를 어떻게 키울수 있느냐는 우려가 담겨있다.창의력을 중시하는 유대인 가정에서는 ‘오늘 학교에서 무엇을 질문했느냐’에 초점을 맞춘다고 한다. 자유로운 사고의 뿌리이자 창의력의 원동력인 호기심에 방점을 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물고기 대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려는 교육 분위기가 감지된다. 수동식 교육에 익숙한 우리 부모들이 ‘오늘 무엇을 배웠느냐’고 묻는 것과 사뭇 다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실시간으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시대, 보조 기억장치에 입력할 정보를 굳이 머릿속에 집어넣는 우리의 교육 방식은 시대착오적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11일 취임 3주년 기자회견에서 “가능한 한 학교 시험은 ‘오픈북’으로 치르면 어떨지 고민하고 있다”고 밝혀 화제다. 창의성을 기르는 수업으로 바꾸려면 평가 방법부터 혁신해야 한다는 취지다. 관련 교재를 보면서 시험을 치르는 오픈북 방식에서는 달달 외워 정답을 맞히는, 기존 교육체계가 전면 개편될 수밖에 없다. 창의와 융합의 시대를 맞아 기발한 발상, 참신한 아이디어를 키우려는 대담한 실험 정신이 깔려 있다. 조 교육감이 던진 화두의 방향은 맞다. 학교 울타리 밖의 세상에선 자신이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야 한다. 문제집 유형을 달달 외우는 현재 교육 방식으로는 어림없다. 폭넓은 독서와 사고를 통해 가슴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교육 방식이 절실한 이유다. 오픈북 시험이 생각하는 힘을 키우자는 취지라면 궁극적으로 창의력을 극대화하는 평가 방식이 전면 도입될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넓은 독서와 독창적 사고력에 초점을 맞춘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B?International Baccalaureate)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암기식 교육을 이식했던 일본이 2020년부터 국가 차원에서 IB 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 하나의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 교육, 다소 엉뚱하지만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학생이 평가를 받는 교육 풍토가 절실하다. 오픈북 시험 방식을 놓고 찬반양론이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교육혁명의 뇌관이 될 것이란 기대가 크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실향민’ 윤이상 묘에 고향 동백나무 선물

    ‘실향민’ 윤이상 묘에 고향 동백나무 선물

    “윤이상 선생님이 항상 통영을 그리워하셨다 해서…우리나라를 기념하는 것이 뭐가 있을까 해서 동백나무를 생각했습니다.”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5일(이하 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에 안장된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1917~1995) 선생의 묘소를 참배했다. 김 여사는 문 대통령과 함께 독일을 공식 방문하면서 공군 1호기로 경남 통영에서 공수한 동백나무 한 그루를 윤이상 선생의 묘비 바로 앞에 심었다. 통영은 윤이상 선생의 고향이다. 동백나무는 통영의 상징이기도 하다. 윤이상 선생은 1967년 이른바 동백림(동베를린) 간첩 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2년간 복역했고 이후 독일 국적을 취득한 뒤 돌아오지 못했다. 어른 어깨 높이의 나무 앞에는 붉은 화강암으로 된 석판에 ‘대한민국 통영시의 동백나무 2017.7.5. 대통령 문재인 김정숙’이란 금색 글자가 새겨졌다. 김 여사는 “이걸(동백나무) 통영에서 갖고 오느라 애 많이 썼다. 병충해가 같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식물 통관은 굉장히 힘들다”고 설명했다. 경희대 성악과를 졸업했던 김 여사는 “저도 음악을 전공해서 윤이상 선생의 음악을 잘 알고 있다”면서 “음 파괴가 낯설긴 하지만 작곡했던 선배들은 물론이고 관심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이어 “조국 독립과 민주화를 염원하던 선생이 살아생전 일본에서 타신 배로 통영 앞바다까지만 와 보시고 정작 고향땅을 못 밟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이 울었다”면서 “그래서 고향 통영에서 동백나무를 가져왔다. 선생의 마음도 풀리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김 여사는 6일 ‘눈물의 궁전’과 ‘유대인 학살 추모비’를 방문했다. 눈물의 궁전은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경계에 있는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 내 출입국 심사장으로 이산가족이 방문 후 헤어질 때 눈물을 흘리며 작별인사를 했다는 데서 이름 붙여졌다. 김 여사는 “제 시어머니도 피란 내려와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계시는데 이것이 가슴에 한으로 맺힌 것 같다”면서 “우리나라도 어서 통일이 되어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과거를 덮으려 하지 않고 진정한 화해를 시도하는 것만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김정숙 여사, 獨 ‘눈물의 궁전’서 “우리도 통일됐으면”

    김정숙 여사, 獨 ‘눈물의 궁전’서 “우리도 통일됐으면”

    문재인 대통령 부인인 김정숙 여사는 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 있는 눈물의 궁전과 유대인학살 추모비를 방문했다고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이 전했다.눈물의 궁전은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경계에 위치한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 내 출입국 심사장이다. 이산가족이 방문 후 헤어질 때 눈물을 흘리며 작별인사를 했다는 데서 이름 붙여진 곳이다. 이곳에서 김 여사는 “가족·친지들이 자유롭게 만날 수 없었다는 게 가슴 아프다”고 말하며 “제 시어머니께서도 피난 내려와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계시는데 이것이 가슴에 한으로 맺히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여상을 보며 “생중계로 봤던 기억이 난다. 나뿐 아니라 전 세계가 무척 좋아했었던 기억이 있다”며 “우리나라도 어서 통일이 되어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유대인학살 추모비는 2700여개의 콘크리트 조성물이 세워진 곳으로, 희생자 이름과 학살 장소들이 적혀 있지 않아 혹평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조성물 사이를 걸어 다니며 개개인의 삶을 확인할 수 있어 의미 있는 장소로 꼽힌다. 김 여사는 “과거를 덮으려 하지 않고 진정한 화해를 시도하는 것만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위안부 할머니 찾은 美의원 “日의 진짜 사과 받도록 노력”

    위안부 할머니 찾은 美의원 “日의 진짜 사과 받도록 노력”

    “일본 정부로부터 진짜 사과를 받아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에드워드 브라운스타인(36·민주당) 미국 뉴욕주 하원의원이 5일 경기 광주 나눔의집을 방문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하점연(95)·박옥선(93)·김군자(91)·이용수(89) 할머니를 만나 위로하며 이같이 말했다. 브라운스타인 의원은 매년 동해 병기 법안을 의회에 상정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져온 대표적인 친한 인사로 최근 외교부 초청으로 방한했다. 평소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에 대해 관심이 컸던 브라운스타인 의원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갖고 나눔의집 방문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에 진정성 있는 사과는 없었다는 할머니들의 지적에도 공감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한·일 위안부 합의는 본인(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도 모르는 사이 합의가 이뤄졌다”며 “거기에다 10억엔을 받았는데, 이것을 따지고 보면 우리를 팔아먹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브라운스타인 의원은 “합의문에 있는 내용 자체가 구체적이지 않은 데다 모호했던 것으로 안다”며 “당시 이뤄진 합의는 적절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브라운스타인 의원은 할머니들과의 면담에 앞서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등을 둘러보는 등 2시간가량 나눔의집에 머물렀다. 할머니들은 나눔의집을 찾아준 브라운스타인 의원에게 거듭 감사의 뜻을 표하며, 희망을 상징하는 나비 배지와 고 김순덕 할머니가 그린 작품 ‘끌려감’을 선물로 전달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마크롱 암살 모의한 20대 남성 체포 “사회 소수자 테러하고 싶다” 진술

    마크롱 암살 모의한 20대 남성 체포 “사회 소수자 테러하고 싶다” 진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암살을 모의한 혐의로 20대 남성이 경찰에 체포됐다고 현지 언론들이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연합뉴스는 RMC 방송을 인용해 프랑스 경찰이 오는 14일 대혁명 기념일에 샹젤리제 대로의 군사 퍼레이드에서 마크롱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모의한 혐의로 파리 근교 아르장테이유에 거주하는 23세 남성을 최근 체포했다고 전했다. 현재 무직인 용의자는 인터넷 게임의 채팅방에서 마크롱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러시아 칼라시니코프사(社)의 기관총을 구입하고 싶다고 언급했다가 네티즌의 신고로 덜미가 잡혔다. 체포 당시 용의자는 흉기를 들고 저항했으며,그의 승용차 안에선 다른 흉기들도 다량 발견됐다. 용의자는 과거 극우 민족주의를 추종하고 테러리즘을 옹호한 전력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경찰 진술에서 자신을 ‘극우 이념을 충실히 따르는 민족주의자’로 규정했으며,작년에는 지난 2002년 신(新)나치 추종자가 당시 자크 시라크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던 사건과 관련해 테러행위를 옹호하다가 입건되기도 했다.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인 용의자는 경찰 조사에서 대통령 암살 모의뿐 아니라 흑인,아랍인,유대인,동성애자들도 테러 대상으로 삼으려 했다고 진술했다고 RMC 방송은 전했다. 경찰은 그가 어떤 목적으로 프랑스 최대 국경일인 대혁명 기념일에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는지 등 범행 동기를 집중적으로 추궁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위시 어폰’, 세계의 저주 받은 물건 영상 공개

    ‘위시 어폰’, 세계의 저주 받은 물건 영상 공개

    ‘애나벨’ 존 R. 레오네티 감독의 신작 ‘위시 어폰’이 영화 속 저주받은 ‘뮤직박스’의 히스토리를 알려주는 ‘취급주의! 저주받은 물건 영상’을 공개했다. 공개된 영상은 2010년 영국에서 발견된 ‘울부짖는 남자’ 그림부터 소유자들 모두 6년 안에 사망한 걸로 알려진 루돌프 발렌티노의 ‘저주받은 반지’, 현재 유대인 사제에게 봉인되어 있는 악령의 상자 ‘디벅박스’ 등 세계 저주받은 물건에 이어 영화 ‘위시 어폰’ 속 ‘뮤직박스’를 소개한다. ‘위시 어폰’은 10대 소녀 ‘클레어’가 우연한 기회에 7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뮤직박스를 얻은 뒤, 꿈꾸던 삶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그녀 주변에서는 점차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영화 속 ‘뮤직박스’는 중국으로 파병됐던 군인 ‘아더 샌즈’가 가져온 것으로, 그는 미국에 돌아와 사업으로 큰돈을 벌게 된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그가 자살한 뒤, 정신병원으로 보내진 그의 부인이 “이 모든 게 ‘뮤직박스’ 때문”이라는 말을 남겨 ‘뮤직박스’ 실체를 궁금케 한다. 결국 이 뮤직박스를 ‘클레어’가 소유하게 되면서 이후 그녀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의문을 자아낸다. 저주받은 물건들과 뮤직박스의 히스토리를 담은 ‘취급주의! 저주받은 물건 영상’을 공개한 영화 ‘위시 어폰’은 7월 개봉한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한국판 홀로코스트’ 형제복지원 사건이란

    ‘한국판 홀로코스트’ 형제복지원 사건이란

    ‘형제복지원 사건’은 ‘한국판 홀로코스트’(독일 나치 정권의 유대인 학살 사건)라고 불리는 대표적인 인권 유린 사건이다. 1987년 1월 17일 원장 박인근(지난해 사망 당시 85세)씨의 구속에 이어, 같은 해 3월 22일 원생 1명이 탈출을 시도하다 발각돼 폭행으로 사망하고 원생 35명이 집단 탈출한 일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당시 박씨는 경북에 있던 자기 소유의 야산을 개간하고 목장과 운전 교습소를 만들기 위해 형제복지원생 180여명을 데려와 축사에 수용한 뒤 임금 없이 하루에 10시간 가량 강제노역을 시킨 혐의(특수감금)를 받았다. 박씨는 경비원들을 고용하고 경비견들을 풀어 원생들을 24시간 감시했다. 검찰은 또 박씨가 원생들이 말을 잘 듣지 않으면 경비원들에게 원생들을 폭행하도록 지시하고, 1986년 8월에는 원생 김계원(당시 30세)씨가 경비원들의 폭행으로 숨지자 병사한 것으로 꾸며 불법 매장한 혐의(폭행치사)가 있다고 판단했다. 제12대 총선(1985년)에서 제1야당이 된 신한민주당(신민당)이 이 일을 계기로 사건의 진상 파악에 나섰다. 신민당이 1987년 1월 29일~2월 1일 조사를 실시해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1975년 7월 5일부터 1987년 6월 30일까지 부산 북구 주례동 산18번지에 위치한 사회복지시설 형제복지원에서 최소 513명이 사망했다. 1987년 당시 확인된 수용자 숫자만 최소 3164명이다. 원장-총무-사무장-중대장-소대장-조장으로 이어지는 지배 구조 아래에서 일상적인 강제 노역과 구타·학대·굶김·성폭력·살인 등이 자행됐다. 원생들 상당수가 본인의 의사에 반해 강제 연행·입소됐고, 원생들의 사망 원인과 사체 처리 과정 등을 적은 기록은 대부분 허위로 기재돼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보고서는 “1986년 사망자 95명 중 6명은 연고자에게 사체가 인계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적, 주소가 모두미상으로 기록되어 있고 31명은 사체 처리가 불분명하다”면서 “조사단은 사체가 병원 등에 실험용으로 팔려간다는 면담자 주장에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하지만 검찰과 부산시는 이 사건을 축소·은폐시켰다. 이 사건을 수사했던 담당 검사(김용원 변호사·당시 부산지검 울산지청(지금의 울산지검) 검사)는 박씨를 구속한 다음 날인 1987년 1월 18일 부산시장(김주호)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아 “박 원장을 구속하면 안 된다. 바로 석방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또 원생들을 조사하기 위해 부산지검 차장검사에게 승인을 받으러 갔지만 “뭘 수사를 해. 당장 철수시켜”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특수감금과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씨는 1987년 6월 1심에서 징역 10년과 벌금 6억 8178만원을 선고받았으나 1989년 징역 2년 6개월형이 최종 확정됐다. 이 과정에서 대법원은 박씨의 특수감금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박씨가 작업장에서 원생들의 도주를 방지하기 위해 경비원과 감시견을 동원한 것이 정당행위라고 본 것이다. 또 경찰과 검찰은 박씨의 작업장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만 수사를 했고 주례동 형제복지원에서 발생한 인권 침해는 전혀 수사하지 않았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아직도 진상이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현재진행형 과거’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살이] 남산 ‘조선신궁 터’에 대한 상념

    [노주석의 서울살이] 남산 ‘조선신궁 터’에 대한 상념

    베를린에 다녀온 적 있다. “뭐 볼 게 있겠나?”라는 짐작은 보기 좋게 어긋났다. 베를린의 낮은 고색창연했고, 밤은 눈부셨다. 나흘 동안 ‘페라가몬 뮤지엄’이 있는 박물관섬으로 이틀을 출퇴근하면서 약탈 문화재 투어를 했고, 나머지 이틀은 시내를 쏘다녔다. 의도치 않게 찾은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의 2711개의 높낮이가 다른 돌비석 사이 미로를 걸으면서 전쟁과 인종 말살의 참극에 몸서리를 쳤다. 이 강렬함이 다음날도 ‘유대인박물관’으로 걸음을 향하게 했다. 범죄자의 후손들이 남긴 통렬한 참회의 메시지가 평화와 자유의 가치를 자각토록 이끌었다. 우리는 흔히 좋은 곳, 빛나는 것만 찾아다니는 ‘그랜드투어’를 즐긴다. 하지만 어두운 역사 속으로 자발적으로 들어가는 ‘다크투어’도 엄연히 존재한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 인간과 자연이 남긴 ‘흑(黑)역사’의 현장을 어지간히 다녔다. 하와이 진주만, 뉴욕 그라운드 제로, 히로시마 원폭돔, 사이판 반자이 절벽, 폼페이 화산 폭발 유적…. 국내의 경우 비무장지대(DMZ)와 서대문형무소, 거제 포로수용소, 제주 4·3평화공원, 용산 전쟁기념관이 나의 다크투어 목록이다. 남산의 조선신궁 터 얘기를 꺼내려고 언저리를 맴돌았다. 서울에는 일제강점기의 흉터가 부지기수다. 근대 건축물로, 터와 표석으로 곳곳에 층층이 주름져 있다. 강점기를 통틀어 두 개의 랜드마크를 꼽는다면 첫째는 조선총독부, 둘째는 조선신궁이다. 총독부가 국권을 지배했다면, 조선신궁은 정신을 지배했다. 아쉬운 점은 일제가 버리고 간 조선총독부는 우리 손으로 허물었지만, 조선신궁은 일본 스스로 철거했다는 점이다. 천황의 항복 다음날 승신식(昇神式)이라는 행사를 갖고, 질서정연하게 폐쇄와 소각 절차를 거행했다. 왜 그랬을까?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허울 아래 조선 사람의 얼을 뺀 신사참배와 황국신민서사의 원흉을 고이 돌려보내다니…. 전국에 산재한 1141개의 신사 중 136곳이 불타고 파괴됐지만 조선신궁은 건재했다. 신궁 입구 초대형 도리이(大鳥居)는 해방 2년이 지난 후에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남산은 목멱대왕을 모신 영광의 땅이기도 하지만, 일제 침탈의, 정보기관에 의한 인권유린의 소굴이기도 하다. 영과 욕이 교차하는 국치(國恥)의 현장이다. 조선신궁이 있던 안중근의사기념관 앞 중앙광장터 발굴 현장에서 땅속에 파묻혔던 배전 터가 70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 사람 300만명이 일본 신과 천황에게 강제로 숭배의식을 치른 장소다. 조선혼을 말살한 배전 터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서울시가 전전긍긍이다. 쉬쉬하며 파묻을 수도 없고, 드러내 놓고 전시하기도 곤란한 형편이다. 망각이 아니라 자각이다. 이젠 드러내야 한다. 우리도 본격적으로 다크투어에 나설 때가 왔다. ‘국치 투어’면 어떤가. 남산 옛 조선통감 관저 터에 ‘위안부 기억의 터’가 조성된 게 신호탄이다. 정부의 도움 없이 1만 9611명의 시민이 3억 4000만원의 성금을 내 한일병탄조약이 체결된 치욕의 통감관저 터에 ‘대지의 눈’과 ‘세상의 배꼽’을 세웠다. 을사늑약을 체결한 일본 공사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 잔존물도 거꾸로 세웠다. 이름하여 ‘홀대 전시’ 기법이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의 이 아픈 역사가 잊히는 것이다”라는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말씀이 검은 돌에 새겨져 있다. 한·영·중·일 4개 국어로 또 이렇게 적혀 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History not remembered is repeated)
  • “사진만이 나의 유일한 언어”

    “사진만이 나의 유일한 언어”

    일기를 쓰듯 순간의 감성 담아내…뚜렷한 명암대비·기하학적 화면 실험 정신 보여주는 왜곡 시리즈…헝가리·파리·뉴욕 시기로 나눠“사진만이 나의 유일한 언어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사진으로 일기를 쓰듯 순간의 감성을 진솔하게 담아냈던 앙드레 케르테츠(1894~1895). 앙리 카르티에 프레송, 브라사이, 로버트 카파 등 사진의 거장들로부터 존경받으며 사진 매체의 잠재적 표현 가능성을 끊임없이 연구했던 모더니즘 사진의 거장 케르테츠의 작품 세계를 보여 주는 전시회가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헝가리 출신의 유대인 케르테츠는 독학으로 사진을 익혔다. 부다페스트에서 활동을 시작한 뒤 20세기 초반 프랑스 파리로 옮겨 그곳에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고 이를 발판으로 미국 뉴욕으로 이주해 별세할 때까지 활동했다. 케르테츠는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84년 10만점의 원판 필름과 1만 5000점의 컬러 슬라이드 소장본을 프랑스 문화부에 기증했다. 이번 전시는 그 원판으로 인화한 모던 프린트 189점으로 구성됐다. 그의 실험정신을 보여 주는 ‘왜곡’ 시리즈는 슬라이드 필름과 영상물로 전시장에 설치됐다. 케르테츠는 예술사진과 현장 사진, 아방가르드적인 표현과 감수성이 넘치는 시적인 표현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적절한 빛이 적절한 실루엣을 적절한 순간에 비추는 것’을 잡아내는 능력 덕분에 뚜렷한 명암 대비와 기하학적인 화면 구성, 리듬감이 살아 있는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었다. 전시는 70여년간 활동한 작가의 작품세계 전반을 헝가리(1912~1925), 파리(1925~1936), 뉴욕(1936~1985)시기로 나눠 보여 준다. 헝가리 시기에서는 1912년 카메라를 처음 장만한 케르테츠가 동생과 연인 엘리자벳 등 가족과 이웃을 촬영한 사진들이 주를 이룬다. 휴머니즘적 감수성, 목가적인 분위기와 동시에 아방가르드적인 실험성의 전조가 드러난다. ‘수영하는 사람’(1917)은 하이 앵글의 카메라 시점과 대각선 구도,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순간에 포착한 실험성 높은 작품으로 1933년 시작한 ‘왜곡’ 시리즈의 전조를 알리고 있다.1925년 현대미술의 본거지인 파리로 옮긴 케르테츠는 몽파르나스 구역에 자리를 잡고 다다와 초현실주의 아방가르드를 이끄는 작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했다. 특히 만 레이, 몬드리안, 브랑쿠시, 샤갈, 콜레트와 같은 작가들과 친밀하게 지내며 예술적 역량을 키웠다. 그의 대표작 ‘몬드리안의 집에서’(1926)는 수평과 수직의 안정감 있는 화면 구성과 회색조의 뉘앙스가 조화를 이루는 걸작으로 꼽힌다. 파리 시기 케르테츠의 정물사진은 단순한 기하학적 구성과 사물의 그림자를 통한 이미지의 중첩이 특징이다. 오각형 테이블과 삼각형의 어두운 공간이 대비를 이루며 안경과 재떨이, 파이프가 지닌 원이 리듬감 있게 표현된 ‘몬드리안의 안경과 파이프’(1926)는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케르테츠는 1936년 사진대행사 키스톤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아내 엘리자벳과 함께 뉴욕으로 떠났다. 하지만 작품 스타일이 맞지 않아 계약은 1년 만에 파기되고 전시 실패, ‘왜곡’ 시리즈에 대한 몰이해, 외국인으로서의 장벽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그럼에도 그는 뉴욕의 풍경과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담아냈다. 케르테츠의 예술성은 인생의 후반에 들어 높이 평가받기 시작했다. 1964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대규모 개인전을 시작으로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그의 작품을 소개하는 순회전을 가졌다. 1977년 파리 퐁피두센터에서도 개인전이 열렸다. 전시는 9월 3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비운의 로렌스… 화약고가 된 중동

    비운의 로렌스… 화약고가 된 중동

    아라비아의 로렌스/스콧 앤더슨 지음/정태영 옮김/글항아리/880쪽/4만원중동의 역사는 고난과 고통의 점철이다. 그 험한 땅에서 계속되는 비극의 씨앗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협정인 파리평화회의와 강화회의라 할 수 있다. 열강들이 전리품을 챙기려 영토를 구획 지은 분할의 야합. 특히 후사인·맥마흔 서한을 비롯해 시리아와 이라크를 각각 차지하기로 합의한 영국·프랑스 간의 이른바 사이크스·피코 협정은 가장 결정적인 분할의 단초다. 이 협정으로 인해 아랍 독립국은 대부분 아라비아 사막의 격오지만 남았고 그렇게 책정된 중동 지도는 여전히 숱한 분쟁을 낳고 있다. 미국의 국제분쟁 전문 기자가 쓴 책은 1차 세계대전 중 중동에서 부닥쳤던 서구의 제국주의적 탐욕과 점령사를 생생하게 파헤친다. 이야기 중심에 네 명의 젊은이를 포진시켰다. 옥스퍼드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고고학자 출신 T E 로렌스(1888~1935)와 카이로 주재 독일대사관의 동양문제보좌관이자 학자인 쿠르트 트뤼퍼, 루마니아 출신의 저명한 농학자이자 열성적인 시온주의자인 아론 아론손, 미국 기업 스탠더드오일사의 정보원 윌리엄 예일이 그들이다.트뤼퍼는 문약한 학자였지만 영국을 향한 복수심을 키워 지하드에 불을 댕기는 비밀 임무를 맡은 인물. 중동에서 활동하는 독일 첩보조직 책임자로 활약한다. 시온주의자인 아론손은 팔레스타인 땅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빼앗아 유대인 조국을 재건하려 맹활약한다. 영국을 등에 업고자 팔레스타인 복판에서 첩보조직을 꾸려 암약한다. 몰락한 귀족 집안 출신인 예일은 거대 유전을 차지하려는 스탠더드오일의 칙명을 받고 중동에 파견돼 중동 전역을 통틀어 유일한 미국인 정보요원으로 뛴다. 3개 대륙에서 1600만명이 목숨을 잃은 1차 세계대전에서 중동은 중요하지 않은 지역이었다. 로렌스도 “중동 전장의 아랍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 중에서도 부차적인 문제”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계속되는 중동의 고난이 종전협정에 뿌리를 둔 만큼 네 명의 젊은이가 어떻게 나라를 위해 움직였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얽히고설킨 네 명의 젊은이 중 핵심은 당연히 로렌스이다. 로렌스는 지난 20세기 가장 인기 있는 스타이면서도 생의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의 평가도 극적으로 엇갈린다. ‘아랍 독립에 힘쓴, 깨우친 진보주의자’란 평이 있는가 하면 ‘가면을 쓴 제국주의자’라는 비판도 무성하다. ‘희대의 영웅’, ‘사유하는 투쟁가’, ‘제국주의의 하수인’, ‘자기파멸적 몽상가’와 같은 상반된 수식어도 숱하게 따라붙는다. 데이비드 린 감독의 걸작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년)는 국내에서 로렌스의 존재를 대중적으로 알 수 있게 해 준 유일한 계기이다. 하지만 자서전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에서 낭만적 감동의 주인공으로 묘사된 것과 다르게 책은 그의 정체를 속속들이 파헤친다. 옥스퍼드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20대 초반의 고고학자 로렌스는 영국 첩보요원으로 중동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고고학 발굴과 탐사를 통해 중동에 정통했던 이력 때문이었다. 로렌스는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아랍민족운동을 이용했던 영국 정책의 중심인물이었다. 오스만 제국에 아라비아반도의 여러 부족을 통합해 통일된 아랍국가를 세우려던 파이샬 이븐 후세인을 내세워 아랍 반란을 일으켰고 1917년 무렵 홍해 끝부분의 아카바를 장악한 데 이어 이듬해 가을엔 다마스쿠스(현 시리아 수도)를 점령하기에 이른다. ‘아랍의 영웅’으로 추앙받았던 로렌스의 인생과 꿈은 종전과 함께 허무하게 무너졌다. 사이크스·피코 협정에 따라 아랍이 분할된 것이다. 책에서 드러난 로렌스의 행적을 본다면 여전히 평가는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로렌스는 아랍인들이 목숨 바쳐 싸운 땅을 되찾을 수 있도록 영국의 유력한 정치인들에게 로비를 펼치는가 하면 아랍을 옹호하는 열정적인 칼럼을 수차례 기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결국 로렌스는 전쟁 중 활약상을 인정해 왕이 직접 수여하려던 무공 메달을 거부하기에 이른다. 그의 죽음을 놓고 처칠은 말했다고 한다. “동시대를 살았던 가장 위대한 존재 가운데 한 명이다. 어디서도 그와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제 아무리 원해도 그와 같은 인물을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두렵다.” 하지만 중동은 여전히 불안하고 고통받는 땅이다. 처칠의 요란한 찬사와 달리, 옮긴 이의 말이 인상적이다. “어리석고 야만적인 제국주의가 20세기 벽두를 피로 물들이면서 아랍인을, 그리고 로렌스를 희생시킨 뒤 눈물의 씨앗을 심어두고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그 슬픔은 현재진행형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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