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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리 물병’만 아니었다 아스널, 유대인 비하 응원가 진상 조사

    ‘알리 물병’만 아니었다 아스널, 유대인 비하 응원가 진상 조사

    델리 알리(토트넘)의 얼굴을 겨냥한 물병만 문제가 아니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토트넘을 안방으로 초대한 아스널 서포터 일부가 반유대 노래를 부르고 제스처를 취했던 것으로 알려져 아스널 구단이 자체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BBC가 21일(이하 한국시간) 전했다. 토트넘은 상당히 많은 숫자의 유대인 팬들을 거느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팀은 북런던을 연고지로 공유하는 라이벌이라 격돌할 때마다 숱하게 문제를 일으켜왔다. 지난 2일 리그 14라운드에서는 손흥민(토트넘)이 일부러 넘어져 페널티킥 판정을 유도해 아스널이 무참한 패배를 당했다는 지청구가 쏟아졌고, 파트릭 에머리크 오바메양(아스널)이 득점했을 때 흑인 선수를 비하하는 뜻의 바나나가 투척되기도 했다. 그리고 20일 카라바오컵(잉글랜드 리그컵) 8강전에 손흥민의 선제 골을 돕고 직접 추가 골을 넣은 알리가 옆줄을 달리다가 아스널 서포터가 던진 플라스틱 물병에 머리 부위를 맞는 일이 일어났다. 그런데 이날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한켠에서는 반유대 응원가가 불렸고 반유대 제스처까지 등장했던 것으로 알려져 아스널 구단이 진상 파악에 나선 것이다. 구단은 성명을 내 “우리는 인지하고 있으며 현재 조사 중”이라고 밝힌 뒤 “어떤 반사회적, 차별적, 폭력적 행동도 관용하지 않는다. 적발된 이는 누구나 장기간 클럽 가입 금지를 당할 것이며 경찰이 사법처리할 수 있게 상세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알리에게 물병을 던진 팬을 특정했다며 평생 출입 금지 징계를 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은 지난 2일 리그 경기 도중 선수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며 아스널과 토트넘 구단에 각각 4만 5000 파운드(약 6415만원)와 5만 파운드(약 7127만원)의 벌금을 물렸다. 런던 연고의 첼시 역시 최근 몇주 동안 유대인을 비하하는 노래를 불렀다며 서포터들을 강도높게 비판해 왔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법원, 아기 이름 ‘아돌프’로 지은 신나치주의자 英부부 실형

    법원, 아기 이름 ‘아돌프’로 지은 신나치주의자 英부부 실형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 나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를 존경한다며 갓난 아들의 이름을 ‘아돌프’로 짓는가 하면 나치 문양(하켄크로이츠)이 그려진 깃발을 들고 가족 사진을 찍은 영국 부부에게 18일(현지시간) 중형이 선고됐다. 가디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버밍엄 형사법원은 이날 불법 극우단체 활동 혐의 등으로 기소된 아담 토머스(22)에게 6년 6개월, 아내 클라우디아 파타타스(38)에게 5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판사는 “‘내셔널 액션’의 목표는 나치의 폭압정치를 도입해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전복하는 것이었다”고 양형 사유를 설명했다. 이들 부부와 같은 극우단체 ‘내셔널 액션’에서 함께 활동하다 기소된 조직원 4명의 형량도 이날 결정됐다. 신나치를 추종하며 2013년 설립된 이 단체는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를 앞두고 조 콕스 노동당 의원을 살해한 극우주의자 토마스 메어를 찬양했다가 테러단체로 지정돼 활동이 금지됐다. 그러나 이후 지하로 숨어든 뒤 꾸준히 활동을 이어왔다. 조직원들은 주로 암호를 통해 비밀리에 접촉하며 사상 전파에 주력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의 경비원으로 일했던 토머스와 포르투갈 출신 웨딩촬영 전문 사진작가인 파타타스는 다른 조직원들과 함께 히틀러를 찬양하는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또 백인우월주의 ‘쿠클럭스클랜’(KKK)을 상징하는 가운을 입거나 나치식 경례를 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공유했다. 파타타스의 몸에서는 나치 친위대를 상징하는 문신도 발견됐다. 앞서 경찰은 성명을 내 “이들은 평범한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들의 목표는 영국에 인종 분쟁을 일으켜 신나치주의를 확산시키는 것이었다”면서 “폭발물 제조 방법을 연구하고, 무기를 모으는 등 테러 행위를 준비하는 정황도 포착했다”고 전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유정훈의 간 맞추기] 모두에게 존엄을

    [유정훈의 간 맞추기] 모두에게 존엄을

    올해 언론으로 접한 유명인사의 부고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유대인 변호사 펠리시아 랑거와 미국 연방상원의원 존 매케인의 부고였다.펠리시아 랑거는 1968년 이스라엘 점령지 동예루살렘에 사무실을 낸 최초의 유대인 변호사였다. 그 후 23년 동안 팔레스타인 사람을 위한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폴란드에서 태어난 랑거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러시아로 피난했던 경험, 가까운 사람들이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사건을 통해, 기본권을 박탈당한 소수자의 삶이 어떤지 알았다. 그는 어느 민족보다 그런 고통을 잘 아는 유대인이 다른 민족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존 매케인은 직업군인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해서 5년 반 동안 북베트남의 포로 생활을 했고, 그 과정에서 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팔에 장애가 남았다. 9·11 이후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에 필요한 정보를 얻어낸다는 명목으로 수감자들을 고문하며, 이를 ‘강화된 신문기술’이라 포장했다. 그러나 같은 당 소속의 매케인은 고문에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했다. 2014년에는 고문보고서 공개를 지지했고, 2018년 고문 연루 의혹이 있는 CIA 국장 인준에 반대했다. 두 사람은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다. 랑거는 의뢰인을 변호하는 데 성공한 적이 거의 없는 변호사였다. 어렵게 정착한 조국에서 ‘민족의 배신자’ 취급을 받았고, ‘테러리스트의 변호사’라는 비난과 함께 온갖 위협을 겪었으며, 끝내 독일로 망명을 떠나야만 했다. 매케인은 6선 상원의원으로 2008년 대통령선거 낙선 외에는 모든 정치적 영광을 누렸고, ‘진정한 보수, 참된 애국자’로 존경을 받았다. 매케인의 장례식에서는 그에게 선거 패배를 안겨 준 전직 대통령 두 사람, 조지 W 부시와 버락 오바마가 추도사를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부고 아니 삶을 통해 내가 받은 메시지는 동일했다. 소수민족 박해, 고문 같은 불의를 접했을 때, ‘나 혹은 우리 편만 아니면 돼’라고 넘어가면 안 된다는 것, ‘어느 누구도, 심지어 우리의 적이라도, 그런 일을 당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함께 사는 길이라는 것이다. 핍박을 받을 때 ‘힘을 길러 나는 그런 일 겪지 말아야지’ 심지어 ‘지금은 당하지만, 나중에는 내가 그런 위치에 올라가서 갚아 주겠다’고 반응하는 것은 본능이다. 그럼에도 ‘내가 당한 핍박은 남도 겪어서는 안 된다’고 도전하는 것은 어렵지만,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길이다. 2018년은 여러 모습으로 기억되겠지만, 그중 하나는 분명 ‘약자 혐오의 시대’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어느 측면에선가는 소수자일 수밖에 없다. 이 땅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를 마음 한켠으로 낮추어 보지만,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 날아가면 ‘찢어진 눈’ 표시가 그려진 커피컵을 받아 들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19년은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인간성의 지평을 넓혀 가는 순간들로 채워지면 좋겠다. 우리와 다른 편에 서 있는 사람까지 포함해서, 모두에게 존엄을.
  • [지금, 이 영화] 소아마비·유대인 이민자… 그는 어떻게 클래식 전설이 됐나

    [지금, 이 영화] 소아마비·유대인 이민자… 그는 어떻게 클래식 전설이 됐나

    클래식 음악, 특히 바이올린 전공자에게 이차크 펄만은 ‘살아 있는 전설’로 받아들여질 테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에 깊은 조예가 없는 나는 이차크를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딱 그 정도로만 알았다. 이제는 생각이 좀 바뀌었다. 단지 유명할 뿐인 평범한 사람과 전설이 된 천재의 차이를 확실히 느끼게 됐으니까. 그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이차크의 행복한 바이올린’(원제: Itzhak)을 본 덕분이다. 이 글에서는 이차크가 도달한 음악적 경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를 늘 따라다니는 두 가지 키워드 소아마비 장애인과 유대인 이민자의 정체성도 여기에 녹아들 것이다.먼저 이차크의 말부터 들어보자. 그가 음악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친구에게 설명하는 장면이다. “테크닉이 좋다는 건 속주를 잘하는 게 아냐. 악절을 제대로 표현하는 기술이 바로 테크닉이지. 음악에 색채와 개성을 담아 아름답게 들리도록 하는 거야. 테크닉 다음으로는 비전이 있어야 해. 테크닉을 어떻게 쓸 건지. (…) 나는 연주할 때 계획을 세우지 않아. 음악이 내게 말을 걸면 응답할 따름이지.” 이차크의 말을 나는 이렇게 요약했다. 기술자가 테크닉만 과시하려 든다면, 예술가는 음악과 자신이 나누는 대화를 정확하게 나타내기 위해 애쓴다고 말이다. 이는 기술자와 예술가를 구별 짓는 핵심적인 요소다. 원래 테크닉이 뿌리를 둔 단어 ‘테크네’(techne)는 기술과 예술을 함께 의미했다. 또한 이것은 상투화된 일상성을 뛰어넘는 힘을 가리키기도 한다. 따라서 테크네를 어떻게 응용할 것인가는 음악에만 한정된 물음이 아니다. 영화에도, 문학에도, 심지어 인생에도 적용 가능하다. 그것의 구체적 방법을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이 영화를 볼 이유가 없다. 역경을 극복한 성공담이야 이미 차고 넘치니까. 이런 점에서 나는 이차크가 2015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자유 훈장을 받는 모습, 수많은 청중의 환호를 받으며 공연하는 모습 등에 별반 흥미를 갖지 못했다.차라리 나는 그가 소아마비 장애인으로 사는 불만을 퉁명스레 표출하고, 그가 유대인 이민자로서의 자부심을 지나치게 드러낼 때가 좋았다. 행복해 보이는 웃음 뒤에 가려진 이차크의 진짜 얼굴을 언뜻 본 듯한 기분이 들어서다. 그는 여전히 스스로와 격렬하게 싸우며 새로운 길을 찾는 중이다. 만약 이차크가 안온한 자기 화해에 머물렀다면 단지 유명할 뿐인 평범한 사람이 되고 말았으리라. 그가 전설이 된 천재일 수 있는 까닭은 지금도 계속되는 자기 불화에 기인한다. 이차크는 바이올린이 영혼을 그대로 복제한 악기라고 말한다.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의 바이올린 연주가 왜 섬세한 감동을 주는지 납득돼서다. “영혼이 있는 자에겐 평온이 없다.”(페르난두 페소아) 이차크는 얼마나 복잡한 영혼을 가졌는지! 허 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 로마에서 ‘홀로코스트’ 유대인 희생자들 기리는 명판들 도난

    로마에서 ‘홀로코스트’ 유대인 희생자들 기리는 명판들 도난

    독일 나치당의 반인륜적인 유대인 집단학살 범죄, 이른바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유대인들을 기리는 청동 명판이 이탈리아 로마에 있었는데, 이 명판이 도난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11일 이탈리아 일간지 ‘일 메사제로’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당에 의해 살해된 유대인 가족을 추모하는 소형 명판 20개가 로마 중심가인 리오네 몬티 지역에 있었는데, 이 명판들이 전날 아침에 모조리 사라졌다. 명판들은 디 콘실리오 가족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독일 예술가 군터 뎀니히가 이들이 거주하던 주택 근처의 길바닥에 2012년 1월 설치했다. 디 콘실리오 일가 중 상당수는 나치의 강제수용소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목숨을 잃었고, 나머지 가족들은 나치가 유대인들을 집단으로 학살한 로마 외곽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명판들을 관리하는 단체는 이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 이 단체는 지난 7월 아돌프 히틀러 사진이 동봉된 경고성 편지를 받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이 알려지자 로마의 유대인 단체는 “이런 역겨운 행위를 규탄한다”면서 “경찰이 책임자를 조속히 붙잡아 엄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비르지니아 라지 로마시장도 “이번 일을 용납할 수 없다”면서 “역사와 기억을 존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로마 시내에는 홀로코스트 당시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는 명판 약 200개가 설치돼 있다. 최근 이탈리아에서는 반(反) 난민 정서와 맞물려 특정 인종을 겨냥한 ‘증오 범죄’(hate crime)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미 FBI, 두 건의 대형 테러 참사 막았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유대교 회당의 총기난사와 송유관 폭파 등 대형 테러음모를 사전에 적발했다. FBI와 법무부가 10일(현지시간) 미 오하이오 톨레도에서 이슬람국가(ISIS)를 대표해 현지 시너고그(유대교 회당)의 총기 공격을 준비해온 혐의로 데이먼 조셉(21)을 붙잡았다고 AP통신 등 현지언론이 전했다. 용의자 조셉은 FBI 위장요원에게 AR-15 반자동소총을 수령하다 붙잡혔다. 조셉은 지난 10월 11명이 숨진 피츠버그 유대교 회당 총격 사건 이후 같은 형태의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고 FBI는 말했다. 법무부도 “랍비(유대인 성직자)를 포함해 되도록 많은 인명을 살상하겠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또 FBI는 폭탄 제조용 물질을 구매한 엘리자베스 레크런(23·여)을 체포했다. 레크런은 인터넷 채팅으로 접근한 FBI 위장요원에게 톨레도 지역 바와 송유관 등에서 폭발물을 터트리겠다는 계획을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저스틴 허드먼 오하이오 북부검찰청 검사는 “이들 사건은 여러 형태의 테러리즘과 연계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유럽서 부활한 反유대주의는 무슬림 탓?…옅어진 홀로코스트의 추억

    유럽서 부활한 反유대주의는 무슬림 탓?…옅어진 홀로코스트의 추억

    “내가 학교를 다닐 때(30여년 전쯤)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모욕의 의미로 ‘유대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독일 학교에선 유대인이 모욕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고, 유대인 학생이 없는 학교에서조차 유대인이란 단어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어요.” (독일 외교관 펠릭스 클레인, 50세) “교실에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반(反)유대인 정서를 가르칠 때 불편한 것이 사실입니다. 일부 학생들 사이에선 유대인이라는 단어가 욕설처럼 통용되고 있어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대계 사회 교사 미할 슈바르츠, 42세) 1945년 나치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이후 독일은 홀로코스트와 유대인에 대한 혐오 범죄에 대해 통렬하게 반성했다. 하지만 70여 년이 지난 지금, 독일에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또다시 반(反)유대주의가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고 CNN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비단 독일뿐 아니라 유럽 곳곳에서 반유대주의 정서가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일 반유대주의학술정보원(RIAS)은 지난해 베를린에서만 유대인 혐오 사건이 전년보다 61% 많은 947건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대부분이 언어폭력이었지만 신체적 폭행도 18건에 달했다. 한 16세 소녀는 학교 친구로부터 “유대인에게 가스를!”이라는 말을 들었고,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발로 차이고 공기총에 맞은 14세 소년도 있다. 무슬림 이민자 늘면서 증오 범죄 확산?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 악몽이 각인된 유럽 사회에서 그동안 유대인에 대한 증오는 금기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부가 홀로코스트의 재발을 막기 위해 옛 조상의 땅에 강력한 유대인 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논리(시오니즘)로 팔레스타인인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이슬람권 이민자를 중심으로 반유대주의도 확산됐다는 논리가 제기됐다. 미국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10년 유럽 내 무슬림 인구는 1950만명으로 전체 유럽 인구의 3.8%였지만 2016년 2577만명(4.9%)으로 증가했다. 프랑스(8.8%), 스웨덴(8.1%), 영국(6.3%), 독일(6.1%) 등은 이슬람권 인구가 5%를 넘는다. 특히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지역인 예루살렘에 미국 대사관 이전을 강행하는 등 친(親)이스라엘 기조를 강화하자 분노한 이슬람권 이민자들이 반유대주의 범죄를 주도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1월 파리 근교 도시 사르셀에서 한 여덟 살 유대인 남자아이가 10대 청소년 두 명에게 구타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청소년들은 종교시설로 향하던 소년이 ‘키파’를 쓴 모습을 보고 길에 쓰러뜨린 뒤 주먹으로 때린 뒤 달아났다. 키파는 유대교 남성들이 쓰는 모자다.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해 ‘작은 예루살렘’이라 불리는 사르셀에서 이런 폭행사건이 일어난 데 프랑스 유대인 사회도 큰 충격에 빠졌다. 유대인 인구가 1만 5000여명에 불과한 스웨덴에서도 지난해 12월 9일 제2의 도시 예테보리에서 유대교 회당이 무슬림으로 추정되는 10대의 화염병 공격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홀로코스트 기억하는 세대 줄어…교사들도 곤혹 하지만 유럽을 휩쓰는 반유대주의가 온전히 유럽 내 이슬람 인구의 급증 때문이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유럽인들 마음속에 내재된 반유대 정서가 되살아나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일 영문 매체 ‘더로컬’은 독일 내무부 자료를 인용해 2015년 독일 내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증오 범죄 1366건 가운데 78건만 이민자들의 소행이고 1246건은 극우 민족주의자들과 연계돼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 경찰은 지난해 발생한 반유대 증오범죄 1453건 중 1377건이 극우 소행이라고 밝혔다. 이는 전후 70년이 지나도 네오나치 등이 발호하는 등 반유대주의 정서가 독일인의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음을 반영한다. 독일에서 유대인 증오가 확산되는 이유로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세대가 사라지고 있는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CNN 조사에 따르면 독일 18~34세 성인의 40%가 ‘홀로코스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냐’는 질문에 ‘거의 알지 못한다’거나 ‘전혀 모른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반 이민, 독일우선주의 등을 기치로 하는 신생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 열광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독일 학생들은 14~15세 때 제3제국(나치 독일)과 홀로코스트를 배운다. 교육 과정에는 인근 포로수용소 현장 학습도 포함된다. 하지만 베를린 상원 교육국의 사라야 고미스 차별조사위원은 “요즘 학생들에게 홀로코스트는 그저 과거의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어린 학생들을 중심으로 반유대주의가 퍼지면서 독일 교사들도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베를린 중·고등학교 선생님인 유대계 레이첼(가명)은 지난해 학생들의 괴롭힘을 감당할 수 없어서 학교를 옮겼다. 그는 CNN과의 인터뷰에 “학생들은 교과서에 하켄크로이츠(나치를 상징하는 갈고리 십자가 문양)를 그렸고, 수업시간에는 나에게 ‘이봐, 유대인!’이라고 소리 질렀다”고 증언했다. 특히 유럽 내 우파 민족주의가 확산하면서 유대인에 대한 박해의 역사를 부정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도 지난해 4월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프랑스는 벨디브 사건에 책임이 없다”고 발뺌해 논란이 됐다. 벨디브 사건은 1942년 7월 나치 독일에 협력한 프랑스 비시 정권이 유대인 1만 3000명을 억류했다 나치 수용소로 보낸 일을 말한다. 오스트리아에선 나치 부역자들이 설립한 자유당이 지난해 10월 총선에서 제3당에 올라 제1당인 우파 국민당과 연립정부를 꾸렸다. 자유당의 우도 란트바우어 니더외스터라이히주 의원은 올해 초 주의회 선거에서 당선됐지만, 나치를 추종하는 학생동맹의 부의장이란 의혹이 제기됐다. 이 단체가 행사 때 쓰는 ‘나치 노래책’에 유대인 학살을 선동하는 내용이 담겨 논란이 일었고 결국 사퇴했다. 유럽인 28% “유대인이 경제에서 너무 많은 영향력 행사한다” 미국의 유대인 전문 매체 ‘포워드’는 이런 반유대 정서가 전통적인 ‘음모론’, 즉 유대인이 인류에 기생해 인류를 해치려 한다는 뿌리 깊은 유럽인의 정서가 되살아나는 징조라고 평가했다. 유대인들은 로마 시대 이후 유럽에 흩어져 살면서 농업에 종사하는 일이 금지돼 주로 상업·금융업 등에 종사했다. 이로 인해 다른 민족을 깔보고 돈만 밝힌다는 편견과 함께 미움을 샀다. CNN이 지난달 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 영국, 헝가리, 폴란드, 스웨덴 등 7 개국에서 7092명을 대상으로 여론 조사한 결과 44%의 유럽인들이 반유대주의를 자신의 나라에서 점점 커지고 있는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또한 유럽인의 28%는 유대인들이 금융업을 포함한 경제계에서 너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20%는 유대인의 정치·언론계 파워가 너무 크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25%는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분쟁의 원인으로 유대인을 꼽았다. 유대인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이 유럽에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약 5%의 유럽인은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54%의 유럽인들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점유할 자격이 있다고 대답한 반면, 응답자의 32%는 이스라엘 때문에 유대인이 싫다고 말했다. 약 31%의 유럽인들은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를 이용해 자신들을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고 밝혔고, 약 28%는 유럽의 반유대주의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저지르는 악행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현재 분출되는 반이스라엘 정서와 극우 민족주의의 확산을 제어하지 못하면 반유대주의는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퓨리서치센터는 유럽에서 지금과 같은 난민 유입 추세가 지속되면 2050년 무슬림 인구는 756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4%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와 극우 민족주의의 부상을 계기로 EU의 결속력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EU가 추구하던 자유주의적 관용의 가치도 희석될 가능성이 높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교황과 팔레스타인 수반 포옹•볼키스하고 “평화를”

    교황과 팔레스타인 수반 포옹•볼키스하고 “평화를”

    프란치스코 교황과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 수반이 3일(현지시간) 바티칸에서 만나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평화 정착 방안을 논의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교황청은 양 정상이 포옹하고 볼에 입을 맞추는 등 서로에 대한 친밀함을 보였다고 전했다. 교황청은 “바티칸은 ‘두 개의 국가’ 해법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해결할 것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한다”면서 “예루살렘은 기독교인, 이슬람교도 그리고 유대인들을 위한 성스러운 도시로 남아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교황청에 따르면 두 정상은 약 20분간 진행한 면담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 회담 재개 방안을 논의했다. 중동에서 극단주의와 근본주의의 종식, 팔레스타인의 서로 다른 정파 사이의 화해 방안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아바스 수반은 미국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고 지난 5월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한 현안 등을 소개하면서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비롯한 팔레스타인인들의 땅과 성지를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지지해준 데 대해 고마움을 드러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2000년 전 반지에 ‘빌라도’ 각인…예수 처형 명령한 로마 총독 것?

    2000년 전 반지에 ‘빌라도’ 각인…예수 처형 명령한 로마 총독 것?

    예루살렘 인근지에서 로마제국의 속주인 유다의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끼던 것으로 추정되는 반지가 발견됐다. 본디오 빌라도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명령한 인물로 기록된다. 1일(현지시간) AFP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히브리대 등 이스라엘 연구팀은 약 2000년 된 반지에 그리스어로 ‘빌라도의’라고 쓰여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이스라엘 탐사저널 최신호에 발표했다. 이 반지는 도장을 찍는 데 쓰던 인장 반지로, 각인 중앙에는 크라테르(Krater)로 불리는 와인 용기도 그려져 있다.연구팀에 따르면, 이 반지는 약 50년 전에 헤롯왕의 거대 궁궐 유적 헤로디움에서 발굴됐다. 헤로디움은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의 근교로 이스라엘이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있다. 연구팀은 “빌라도라는 이름은 드물어 이 반지가 본디오 빌라도 본인의 것이 맞을 수도 있지만, 디자인이 빌라도 시대 이전부터 유다 지역 유대인들 사이에서 쓰였다는 점에서 총독이 이런 반지를 사용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면서 “빌라도의 관계자이거나 전혀 다른 사람의 것이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빌라도의 이름이 새겨진 현존하는 유물로는 이스라엘 지중해변 가이사랴 유적에서 발견된 돌비문이 유일하다. 이 비문은 현재 이스라엘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사진=히브리대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전쟁의 참혹함 서린 ‘참호’…긴 여정 끝엔 회의감만 남다

    전쟁의 참혹함 서린 ‘참호’…긴 여정 끝엔 회의감만 남다

    제2차 세계대전은 보통 우리에게 ‘유대인 학살’로 기억된다. 그럼 제1차 세계대전은 우리에게 무엇으로 기억될까. 나는 ‘참호전’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많은 사람이 ‘참호’(塹壕/塹濠)라는 한자어보다는 ‘트렌치’(trench)라는 영단어에 익숙할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트렌치코트를 즐겨 입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참호에서 비를 피하려고 이 옷을 걸쳤던 영국군에게 그것은 패션 아이템이 아니었다. 트렌치코트는 트렌치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도구였다. 그리고 트렌치코트를 입었든 안 입었든, 기관총탄을 피하려는 목적에서 파기 시작한 흙구덩이에서 대치하던 군인들은 이 전쟁이 본인을 갉아먹고 있음을 직감했을 테다.●인물과 인물, 인물과 상황의 긴장감 극대화 여기에는 피아가 없다. 그들은 적군 외에 참호와도 싸워야 했으니까. 곳곳에 널린 시체와 오물 썩는 냄새가 진동했던 참호는 감염의 온상지이기도 했다. 어느 통계에 따르면 군인들이 참호에서 병들어 사망한 경우가 총에 맞아 전사한 경우보다 많았다고 한다. 이런 역사적 현실에 바탕을 둔 영화가 ‘저니스 엔드’다. 원작은 R S 셰리프가 쓴 동명의 희곡(1928년 런던 초연)이다. 그런 까닭에 사울 딥 감독은 작품을 완성하는 데 연극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한정된 시공간에서 인물과 인물 혹은 인물과 상황의 긴장감을 높이는 방식으로 역작을 만들어 냈다는 뜻이다.●영국군 3인의 1인칭 시점… 관객 체감도 높여 1918년 3월 프랑스 전선에 파병된 영국군을 다룬 이 영화는 특히 세 캐릭터에 집중한다. 참호전이 놀이인 줄 알았던 소위 롤리, 참호전이라는 지옥을 버티려고 술을 마셔댔던 대위 스탠호프, 참호전이 야기하는 비참으로부터 롤리와 스탠호프 등 모두를 지켜내고 싶었던 중위 오즈번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의 모습을 통해 관객은 참호전을 비롯해 전쟁 자체에 내재된 부조리에 대해 통감하게 된다. (예컨대 영국군에게는 자신들의 지휘부가 정예 독일군보다 더 치명적인 적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것을 체감하게 하는 영화 장치가 카메라의 움직임이다. ‘저니스 엔드’에는 인물 옆이나 뒤에 카메라가 바짝 붙어서 찍은 장면이 유독 많다. 1인칭 체험이다. 영화를 보는 사람이 영화 속 인물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시각은 제한되나 실감은 커진다. 전쟁의 참혹성을 관념적으로만 알던 사람에게, 이 작품은 전쟁이 왜 참혹할 수밖에 없는지를 심리적으로 깨닫게 한다. 제작자의 발언은 그래서 거짓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전쟁에 열광하는 걸 원치 않았다. 이 영화의 대부분은 전쟁의 혼란과 두려움에 관한 것이었고, 이는 일반적인 전쟁 영화와 완전히 다른 점이다.” 그러기에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참호에서 죽은 군인들아니 사람들이 왜 이렇게 생을 버려야만 했는지를, 긴 ‘여정의 끝’이 어째서 이 모양이어야 하는가를. 영화가 아니라 100년 전 일어났던 전쟁에 드는 회의감이다.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 로켓포 날고 몸수색당하는 삶… 이·팔 국민들 “평화 오길”

    로켓포 날고 몸수색당하는 삶… 이·팔 국민들 “평화 오길”

    8m 높이의 잿빛 장벽이 팔레스타인 자치 지구 ‘가자’를 둘러쌌다. 인간의 힘으로 넘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장벽은 지평선을 따라 끝도 없이 뻗어 나갔다. 그것은 가자를 이스라엘로부터 격리하는 벽이자, 세계로부터 격리하는 벽이었다. 분리장벽 꼭대기 초소 기관총 총구는 가자지구 쪽을 향했다. 장벽과 지면이 맞닿은 곳에 노란 꽃이 피었다. 가자지구를 실질 지배하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향해 미사일 수백발을 발사해 양측의 긴장이 절정으로 치달았던 지난 17일 가자지구 분리장벽과 맞닿은 이스라엘 중서부 마을, 유대인 25가구 약 1000여명이 사는 네티브하사라에 갔다. 거대한 차량 출입 통제기가 마을 입구를 막았다. 검문소에 마을을 둘러보려고 한국에서 왔다고 설명하자 통제기가 열렸다.놀이터에서 유대인 남성 오베르 마르코비치(47)를 만났다. 그는 6세 아들과 놀고 있었다. 마르코비치는 “이 마을에 산 지 16년이 됐다”면서 “가자에서 수시로 로켓포가 날아온다. 나도 나지만, 내 아이들이 더 걱정된다. 아들 말고도 딸 둘이 더 있다”고 했다.왜 이렇게 위험한 곳에서 사느냐고, 왜 떠나지 않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마르코비치는 “여기에 내가 지은 집이 있고 내 부모님이 있고 내 친구가 있다. 다른 곳에 가서 살 수는 없다”고 답했다. 마르코비치는 “지난 20년간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정책은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했다”고 지적했다. 마르코비치의 아내 탈리(44)가 기자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탈리는 정착촌 1세대인 부모를 따라 네티브하사라에 왔다고 했다. 탈리는 “20년 전에는 평화로웠다. 하지만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 너무 두렵다”면서 “지난주 하마스 공격 때에는 집안 방공호에서 24시간 동안 떨었다”고 했다. 차로 30여분을 달려 가자지구 북쪽 장벽에서 불과 2㎞ 떨어진 인구 2만 5000의 소도시 스데롯으로 이동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위협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을까. 스데롯 경찰서 앞에는 가자지구에서 날아온 포탄 잔해 수백발이 쌓여 있었다.한 여성에게 가자지구에서 쏜 미사일이 실제로 위협이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했다. 여성은 기자를 동네 놀이터로 안내했다. 그는 종잇조각처럼 찢어지고 절단면이 시커멓게 타들어 간 놀이터의 철제 구조물을 보여 줬다. 여성은 “넉 달 전 가자에서 쏜 포탄이 이곳을 강타했다”고 했다. 포탄 파편이 튀어 시커먼 구멍이 뚫린 시소가 눈길을 끌었다. “아이가 다친 적은 없다”고 그가 덧붙였다. 딸 둘과 놀이터에 나온 주민 니심 몬틴(28)은 “하마스의 공격은 일상”이라면서 “아이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오토바이, 비행기 소리에 경기를 일으킨다”고 말했다. 그에게 바람이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그는 “오직 평화, 평화만 바란다”고 말했다. 이튿날 기자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관할하는 ‘서안지구’의 도시 헤브론 내 이스라엘 정착촌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정착촌 중에서도 긴장 수위가 가장 높은 곳으로 꼽힌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이스라엘에서 20년 넘게 생활한 가이드가 동행했다. 가이드는 “헤브론 정착촌에 사는 유대인 정착민은 8가구다. 이스라엘은 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헤브론에 군대를 보냈다”면서 “그러나 그 이면에는 종교적 이유가 있다. 헤브론에는 이슬람교와 유대교 양측이 선조로 모시는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의 묘 ‘막벨라 사원’이 있다.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곳”이라고 설명했다.마을 입구에서 이스라엘군이 정착촌 주위를 오가는 팔레스타인 청년의 몸을 수색했다. 청년은 주머니를 까뒤집어 검문소 군인에게 보여 줬고 벨트를 풀어 검색대에 올려놓았다. 인근에서 만난 한 팔레스타인인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하도 못살게 굴어 정착촌 주변에 살던 팔레스타인인들이 떠났다. 원래 여기는 우리 상인들이 장사하던 시장 골목이었다. 활기차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시멘트로 봉쇄한 한쪽 골목을 가리키면서 “이 벽 너머는 팔레스타인 지역이다. 통행을 못 하게 막은 것”이라고 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라진 상점 문들은 굳게 닫혀 있었다. 적막한 거리에 이스라엘 국기만 나부꼈다. 정착촌을 가로질러 강철로 만든 출입구를 빠져나갔다. 출입구 너머는 별세계였다. 그곳은 왁자지껄한 팔레스타인 도시였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웃고 떠들고 터키시 커피를 마시고 케밥을 먹었다.헤브론 시민인 팔레스타인인 압둘 하미드(50)는 “유대인들이 와서 도시가 쪼개졌다. 재산과 집을 저쪽에 두고 밀려난 사람들이 많다. 우리와 이스라엘 사이에 분쟁이 생기면 아예 저쪽 통행로를 막아버린다”면서 “헤브론에 평화가 찾아오기를 바란다. 다시 예전처럼 마음대로 이쪽저쪽으로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기자가 영어로 시간을 내줘 고맙다고 하자. 그는 “앗살라무 알라이쿰”(신의 평화가 당신에게)이라고 인사했다. 양측 국민들이 간절히 바라는 평화는 그러나 요원해 보였다. 20일 오전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정부 측 입장에 정통한 익명의 소식통을 만났다. 그는 “평화 협상을 하려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해야 하는데 그들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하마스는 헌장에 이스라엘을 파괴하라는 내용을 명시한 집단이다. 하마스와 항구적인 평화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마스를 실질적 위협으로 규정한 이스라엘은 가자를 분리장벽으로 가뒀을 뿐 아니라, 첨단 기술을 사용해 감시한다. 같은 날 오후 텔아비브의 이스라엘 국영 군수업체 IAI를 방문했다. 인근 활주로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오토바이가 아니었다. IAI의 무인 정찰기 ‘헤론’이었다. 헤론은 약 10초 만에 활주로에서 공중으로 떠올랐다. IAI 관계자는 “헤론은 한 번 뜨면 45시간 공중에 머무른다. 헤론 여러 대가 1년 365일 가자를 감시한다”면서 “보통 상공 1만 피트(약 3㎞)에서 기동한다. 헤론의 존재를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헤론 작전통제실은 컨테이너 박스 1개 크기였다. 거기에는 모니터 10여개가 설치돼 있었다. 조종사들이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원격 카메라 조종기로 헤론이 보내는 영상을 확인했다. 헤론은 상공 1만 피트에서 자동차 번호판을 식별할 수 있는 수준의 영상을 찍었다. 또 다른 IAI 관계자에게 이스라엘이 자살 드론(폭탄을 장착해 목표물을 타격하는 무인기)을 보유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기밀이다. 답해 줄 수 없다”고 했다. IAI 측은 또 원격 조종으로 움직이는 무인 군용 자동차, 은폐·엄폐물을 뚫고 생물체 움직임을 간파할 수 있는 레이더 등 각종 군수 장비를 소개했다. 기자는 이스라엘에 오기 전 사진으로 본, 가자 분리장벽을 향해 돌팔매를 던지던 팔레스타인 청년을 떠올렸다. 글 사진 네티브하사라·스데롯·헤브론·예루살렘·텔아비브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북한 개방되면 월드옥타 회원들이 北제품 전세계로 수출...이런 날이 빨리 오길”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북한 개방되면 월드옥타 회원들이 北제품 전세계로 수출...이런 날이 빨리 오길”

    하용화 신임 월드옥타 회장이 말하는 취임 각오“북한에 대해서는 우리 한인 무역인의 할 일이 아주 많을 겁니다. 지금도 합법적인 범위에서 북한과 생활필수품 교역을 하는 우리 교포들이 많습니다. 북한이 개방되면 국가나 대기업이 주도하는 중공업이나 큰 규모를 빼고 가내 수공업 내지 경공업 분야에는 우리의 역할이 자주 클 겁니다. 우리도 여기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에서 일하는 분들을 통하면 북한 내부 소식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기대나 역할에 비해 우리 조직이 너무 과소평가돼 있어 안타깝습니다.” 한국을 제외한 전세계 74개국 146개 도시에 지회를 두고 있는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의 하용화(62) 신임 회장의 포부다. 그는 지난달 월드옥타 회장으로 뽑혀 11월 1일부터 2년 임기가 시작됐다. 세계 금융의 ‘전쟁터’인 미국 뉴욕에서 굴지의 보험중걔회사인 솔로몬 보험그룹을 이끌고 있다. 회사 창립 25주년 행사를 미국 프로야구 뉴욕 메츠 홈구장 경기를 스폰서하면서 성황리에 열기도 했다. 지난달 말 경남 창원에서 열린 제23차 세계한인경제인대회에 참석차 귀국한 하용화 회장은 빠듯한 일정 속에서 출국 직전 가까스로 인터뷰에 응했다. “1986년 영어 공부하고자 도미70군데 원서 넣어도 취업 실패7년간 가방들고 나가 보험 팔아곰팡이 피는 반지하서 생활했죠” 그는 “뉴욕에서 기업을 운영하며 먹고 살만하고, 월드옥타 회장까지 됐으니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이 맞습니다”며 말문을 열었다. “제 이름이 ‘물하(河), 용용(龍), 될화(化)’이니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이 이름대로 증명됐지요.” 그의 고향은 충남 부여군 세도면으로 ‘오지’로 치부된다. 경기대를 마치고 ‘영어 회화’를 익히고자 미국으로 넘어갔다. “안병욱 교수님의 특강을 들었습니다. 21세기에 살려면 세 가지 즉 운전면허, 컴퓨터, 영어회화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영어회화 한 3개월 하면 될 줄 알고 1986년 1월 미국에 넘어왔는데…. 남들은 1년 반 만에 마치는 MBA를 4년이 걸렸습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졌으니.” ‘어떻게 미국에서 사업을 크게 일구게 됐느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하 회장은 잠시 뜸을 들였다. “1986년 미국에 올 때 아무 연고도 없었습니다. 롱아일랜드대학에서 MBA를 마친 한국 동문 대다수는 한국에 들어갔습니다. 한국 경기도 좋았고.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등 집안 형편상 돌아가지 못하고 …. 입사원서를 미국 회사 70군데에 넣었습니다. 영주권이 없으니 다 떨어지고, 마지막에 보험회사에서 ‘일 해보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열심히 일해 성과가 좋으면 ‘그린 카드’(영주권을 지칭)를 받게 해주겠다고 하면서. 그래서 들어가 일한 거지요. 그게 지금까지 이어진 겁니다.”“1992년 설립한 솔로몬보험연간 1억달러 수신고 기록‘100대 중개사’ 진입 목표동남아인 보험가입 권유하면?” 미국에서의 사업 성공 비결을 묻자 그는 “처음엔 한 7년 동안 가방 들고 한인들을 찾아다녔습니다. 보험을 팔았던 거죠. 사람을 많이 알게 되고, 바닥을 다졌습니다. 그러나 미국 사회에서 한국인의 한계는 분명하죠. 그래서 유대인, 팔레스타인인, 이탈리아인, 중국인 등 국적을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습니다. 이런 말씀 드리면 죄송하지만, 한국에서 동남아 출신 사람이 찾아와 ‘보험 가입하라’고 하면 들겠습니까. 미국은 그게 가능한 나라입니다. 아시아인인 이 얼굴로 가능합니다.” 그의 회사는 직원 70여명 정도지만 연간 수신액이 지난해 기준 1억달러(한화 1126억원 상당)를 넘었다고 한다. 직원당 약 15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을 한 셈이다. 미국에 보험 중개사가 수십만개 회사가 있지만 그는 회사를 ‘100대 중개사’에 진입시키는 것이 목표다. 회사 직원의 절반 이상이 비(非)한국인, 수신고를 올리는 이들의 95%가 미국인이다. 지난해 5월 창립 25주년 기념행사를 뉴욕 메츠 홈구장인 플러싱에서 가진 것과 관련해 하 회장은 ‘쿨’하게 이야기 했다. “예약만 하면 다 가능합니다. 시구도 할 수 있고요. 직원들 사기는 굉장히 올라갔습니다.” “버핏, 5만달러 주면서 만찬 초청주빈 테이블서 농담도 교환버핏, 돈 잘 쓰는 철학 보여줘다양한 사람 만나는 게 버킷리스트” 초창기 미국 생활을 이야기해 달라는 말에 하 회장은 “보험 가입하라고 명함을 건네면 그 자리에서 제 명함을 쓰레기통에 넣는 사람도 봤습니다. 곰팡이 핀 반지하에서 살기도 했고 …. 처음엔 한인들을 중심으로 만났지만 나중에 세계 각국의 사람을 다 만났습니다.” 그러다 1992년 솔로몬보험 회사를 설립했다. 그 회사가 성장해 미국 재계가 주목하게 되면서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워런 버핏(88)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2015년 6월 하 회장에게 5만달러(약 5600만원)를 주면서 만찬에 초청하기도 했다. 버핏은 기업공개(IPO)를 하지 않은 보험회사를 소유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 손꼽히는 중개사 최고경영자(CEO)이자 뉴욕한인회장이었던 그를 초대한 것이었다. ‘워런 버핏 회장과의 만남 뒷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자 하 회장은 “버핏 회장과 한 테이블에 앉았는데, 금언이 되는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버핏 회장은 자신의 버킷리스트 첫 번째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을 꼽았습니다. 기업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음미해볼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언이 필요할 때 누구를 찾느냐’고 질문하니 그는 ‘당신보다 나은 점이 있는 사람과 어울리고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들려줬습니다. 자신은 사람을 만나는 것, 특히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첫번째 버킷리스트이고, 거래가 크면 클수록 만족도가 높아진다며 직접 투자하는 것을 권했습니다. 취직하면 처음엔 다른 사람을 위해 돈 벌어주고, 다음엔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돈을 벌어주지요. 마지막엔 돈이 돈을 벌어들입니다. ” ‘기부 왕’인 버핏 회장은 돈을 쓰는 철학에 대해서도 하 회장이 전해줬다. “버핏 회장은 ‘돈을 버는 건 자신 있지만 돈을 잘 쓰는 것은 어렵다’고하더라며 돈을 잘 쓰는 사람에게 자신의 재산을 줄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가 말하는 돈을 잘 쓰는 것은 경로당이나 고아원 같은 불우이웃 시절에 거액을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돈을 쓰면서도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것’이라고 하 회장은 나름대로 해석했다. 그런 결과로 버핏 회장은 5개의 비영리 재단을 만들었다고 봤다.하 회장은 버핏을 만나면서 만찬 비용을 낸 것이 아니라 “인센티브로 5만달러를 받았다”고 자랑스럽게 그리고 살짝 말했다. “초청을 받은 저는 왕복 항공권과 숙박권뿐만 아니라 그가 소유한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의 백화점 상품권도 받았습니다.” 매일 신문 6~7개를 읽는 버핏 회장은 또한 유머가 굉장히 뛰어났다고 그는 기억했다. 그가 들려준 유머다. “내 친구 존이 귀가 안 들린다고 이야기하길래 내가(버핏이) 친구랑 같이 주치의를 찾아갔지요. 병원 의사는 나랑 친구를 몇 걸음 떼어 등을 돌리고 서 있으라고 한 뒤 나에게 궁금한 것을 친구에게 물어보라고 했어요. 내가 ‘GM 주가 어떻게 돼?’를 여러 번 갈수록 큰 소리로 외쳤던 겁니다. 아무 소리도 안들려 의사에게 ‘친구 존이 정말로 귀가 먹었나보다. 내가 큰 소리로 몇 번이나 물었는데도 답이 없다. 큰일이야.’고 하자, 의사는 ‘사도 괜찮다며 친구는 다 답을 했다.’라고 했죠. 하하. 실제로 대화해보니 버핏 회장은 잘 듣고, 대답도 잘 하시더라고요.” 그는 재외동포 중심의 경제단체인 월드옥타가 그 역할에 비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옥타 위상의 재정립에 대해 힘주어 말했다. 해외 750만 동포의 경제 중심 단체로서 모국과의 동반성장을 추구하고, 4세대까지 내려간 동포들에게 정체성을 일깨우고 무역실무를 가르치는데 방점을 찍겠다고도 했다. “지난달 창원에서 열린 행사에서 수출 계약금이 6200만달러(약 700억원)였습니다. 수출대국 한국에선 ‘그게 무슨 큰 도움이 되겠느냐’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한 번도 수출해보지 못한 작업 기업들,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수출이라는 큰 발을 내디딘 것이라 생각합니다.” 북한에 대해서도 중국이 처음 개방했을 때 전세계 화상(華商)들이 중국 물건을 보따리 장사로 수출했던 것처럼 머지않아 월드옥타 회원들이 한상(韓商)으로서 북한 제품을 수출할 것이란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청와대에 최근 이와 관련된 조직을 정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 제품을 우리가 수출하는 그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우리 월드옥타 회원들은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그가 장밋빛 성공 가도만 달렸을까. 참척(慘慽)의 고통에 대해서도 되풀이되지 말자는 뜻에서 담담히 털어놨다. “처음엔 누구나 그렇듯이 남들에게 알리지 않고 숨겨 가족끼리만 (장례를) 하려고 했죠. 그래서 실명 대신 ‘H’씨로 보도됐는데 뉴욕지역의 유력 신문이 ‘전 뉴욕한인회장의 딸 투신 자살’이라고 1면 톱으로 보도한 거예요. 그 신문 사장과 ‘x새끼, x새끼’하고 전화로 싸워봤자 이미 다 터져버린거죠. 어쩔 수 없이 빈소를 차리니 조문객이 1200명이 오신 거예요. 부의금이 10만달러였는데 이를 어쩔까 고민하다 3개월이 지나 조문객들을 모아 논의했지요. 그때 마음의 병도 생명을 다투는 병이니 경각심을 주자는 의견이 모였고 그래서 2014년 딸의 이름을 따서 정신건강 비영리단체인 ‘에스더 하 재단 설립했습니다. 자살이나 우울증과 같은 심리 문제에 대해 상담과 소통, 치유 등 힐링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울증에 적절한 치료를 병행하지 않고 운동과 햇빛이 좋다는 인터넷 이야기는 미친 짓이란 걸 절절이 깨달았습니다.” “갑작스러운 딸 죽음 불행에이름 딴 ‘에스더 하 재단’ 설립한류 열풍에 동포들 자긍심 높아해외 우리 유물 알기 운동도 계획” 이 재단을 만들고서도 뒷말이 많았단다. “재단을 알려야겠기에 처음엔 ‘아이와 사연’ 있는 한국 가수들을 초청해 공연도 했지요. 그랬더니 ‘딸을 팔아서 가수 부른다’고 수군수군했습니다. 이젠 많이 알려졌고, 많은 이들이 재단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어 더는 가수들을 초청하지 않습니다. 또 재단에 연간 20만달러 정도 소요되는데 제가 절반쯤 냅니다만, 재산을 빼돌리려고 재단을 만들었다는 등 뒷말들이 많았는데, 이젠 조용해졌습니다. 진심이랄까 진정성이 통했던 거죠. 지난달 25일엔 뉴욕의 그레이터플러싱 상공회의소로부터 ‘동네 영웅(Neighborhood Hero) 상을 받았습니다.” “딸 아이 때문에 많이 힘들었겠다”고 하자 하 회장은 “처음엔 지옥이었습니다. 사회생활에 무척 바빴던 저는 가정에 소홀했다는 회한, ‘머리가 이상하다’는 딸의 말을 무시하고 강하게 푸시했던 무지, 서로 ‘당신 탓’이라며 원망과 비난으로 끝없는 부부 싸움, 학교를 그만두고 술만 마시며 나이트클럽만 전전한 딸, 아무런 말도 않고 안으로만 들어갔던 아들 … 모든 게 엉망이었고, 가정이 풍비박산이 났죠. 이런 것을 극복하는데 기독교 신앙의 힘이 컸죠. 부의금을 재단의 시드머니로 삼았습니다. 재단을 잘 운영해 한 명의 목숨이라도 건지는 것이 21살, 대학교 2학년 때 간, 가슴에 묻은 딸을 기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의 가족의 상처를 다시 건드릴까봐 쓰지 말까 생각하다 비슷한 고통에 처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자 해서 기사화했다. 그도 이런 부분을 기사화하는데 동의했다). 그리고 이같은 그의 아픔과 치유 스토리는 미국 보이스오브아메리카(VOA)에 ‘딸의 이름으로’라는 제목으로 지난 9월 29일 심층적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애국가만 들어도 눈물이 나는” 해외 동포들이 요즘엔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닌다고 한다. 방탄소년단(BTS)으로 대표되는 K-팝과 한국 음식, 한국 문화 등 한류 열풍에 힘입은 것이다. “한국 문화가 세계화되면서 현지에 있는 우리 문화재 내지 유물에 관심도 높아진 거죠. 당장 무슨 환수운동을 벌인다기보다는 우리 유물이 어디에 어떤 게 있는지 파악하고, 현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그 문화재가 한국 것이라고 후세들에게 알려주는 거죠. 그런 것을 통해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주고, 정체성도 일깨워주는 것도 우리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해외 동포들이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되면 그곳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다시 한번 찾아가보고 조사해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해외 취업 ‘전쟁터’라는 각오로아이들 연약하게 키운 부모 책임” 한국의 실업률과 관련해 그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하 회장은 “청년들이 국내에서 취업이 어려우니 외국에 눈을 돌리는데, 그게 해외는 도피처가 아니라 ‘전쟁터’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전쟁터에 나간다는 마음의 각오를 다져야 합니다.”고 말하며 잠시 쉬었다. “한국 청년들, 소위 말해서 스펙은 무척 좋습니다. 자격증도 많고 토익 점수도 900점대로 아주 높고…. 그러나 인재를 뽑는 기업 입장에서는 이런 것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도전적이고 진취적이거나 아주 특이한 분야를 전공한 사람을 찾습니다. 특히 해외에서 취직을 하겠다고 하면 환상을 깨야 합니다. 미국만 해도 전세계의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전쟁터입니다. 우리 청년들이 영국·일본 등 선진국만 찾습니다만 이런 나라에는 야심만마난 전세계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나라입니다.”하 회장은 쓴소리를 이어갔다. “한국의 부모가 자녀를 연약하게 키운 책임이 큽니다. 자라면서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은 아이들이 험한 데서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베트남의 경우 하루가 다르게 성장합니다. 몇 년 열심히 투자하면 저보다 몇 배나 더 큰 부를 일굴 수 있을 겁니다. 베트남 등 동남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우리 청년들이 한국보다 잘 사는 나라, 좋은 기업, 많은 연봉을 주는 곳만 찾으니 이런 나라에 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한류 열풍에 한국 문화에 대한 수요가 무척이나 많습니다. 한국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 호텔리어, 헤어·의상 디자이너 등등에 수요가 아주 많습니다. 행운이라는 것은 준비된 사람이 기회를 만났을 때 생기는 것이지 하늘에서 곶감 떨어지듯 하는 건 아닙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에르도안 비난에 소로스재단 터키서 활동 중단

    에르도안 비난에 소로스재단 터키서 활동 중단

    헝가리에서 정권과 갈등을 겪고 있는 미국의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의 ‘열린사회재단’(이하 재단)이 터키에서도 당국의 수사 등 압박을 이유로 사회사업을 접기로 했다. 열린사회재단은 26일(현지시간) “재단 해산 신청을 법원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단은 “재단을 겨냥한 근거없는 비방과 편파적인 의혹 제기가 늘어나 사업을 지속하기가 불가능해졌다고 판단해 해산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소로스의 열린사회재단의 터키 활동 종료 선언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소로스를 공개 비난한 지 닷새 만에 나왔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21일 소로스를 “유명한 헝가리 유대인”이라 지칭하며, “소로스는 각국을 분열시켜 찢어 놓으려 한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소로스가 터키에서 ‘테러조직’에 재정 지원을 한 혐의로 투옥된 금융인 오스만 카왈라를 지지하고 있다고 문제 삼았다. 터키 당국이 말하는 ‘테러조직’은 2013년 당시 에르도안 총리를 최대 정치적 위기로 몰아간 대규모 반정부 시위의 ‘배후’를 가리킨다. 소로스 재단은 터키 수사당국이 2013년 반정부 시위와 재단을 연결지으려고 한다면서 “이런 시도는 전에도 있었으며 완전히 허위”라고 강조했다. 각국에서 교육과 의료 등 사회사업과 시민사회 지원사업을 펼치는 소로스의 재단은 헝가리 등에서 민족주의 우파 지지자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그가 동유럽 옛 사회주의 국가에 민주주의 이념을 전파하고 있는 것에 대해 권위주의체제로 회귀하고 있는 헝가리 등 동구권국가들과 갈등을 일으킨 것이다. 소로스는 모국 헝가리에서 빅토르 오르반 총리의 정적이 돼 압박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열린사회재단은 본부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베를린으로 이전했고, 부다페스트에 있는 중앙유럽대학(CEU)을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전할 계획도 짜고 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길섶에서] 과거사 반성/이순녀 논설위원

    1, 2차 세계대전 전범국가인 독일의 과거사 반성과 관련자 처벌은 철두철미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1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 개막연설에서 “국가적인 자만심과 군사적인 거만함이 두 차례의 세계 전쟁을 일으켜 무분별한 유혈 사태로 이끌었다”며 과거를 통렬히 반성했다. 독일 검찰은 최근 1944년 중반부터 1945년 초까지 오스트리아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에서 근무하면서 3만 6000여명의 유대인 학살을 도운 95세 전직 나치 수용소 경비원을 기소했다. 2011년 뮌헨 법원이 당시 91세였던 존 뎀얀유크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이래 전직 나치 수용소 경비원에 대한 단죄는 계속되고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전직 경비원 2명도 94세에 유죄 판결을 받았다. 아흔이 넘은 말단 경비원을 끝까지 추적해 책임을 묻는 독일 정부의 집요함은, 위안부 피해자에게 공식 사죄조차 않는 일본 정부의 뻔뻔함과 극도의 대조를 이룬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40명 가운데 생존자는 이제 겨우 27명뿐이다. 평균 연령은 91.1세.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계기로 일본에 전향적 태도를 바라는 것은 헛꿈일까. coral@seoul.co.kr
  • 선거판 뒤집은 그녀들, 美의회서 히잡 쓰고 민소매 입는다

    선거판 뒤집은 그녀들, 美의회서 히잡 쓰고 민소매 입는다

    기존 女정치인 드레스코드 ‘힐러리 패션’ 내년 1월 하원 개원하면 곧 손질할 계획 남성들 슈트·넥타이 규정도 폐지 가능성미국 의회에서 히잡 착용이 허용될 전망이다. 복장 또한 일률적인 정장이나 긴치마 등 ‘의회 유니폼’에서 벗어나 셔츠나 민소매 차림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 6일 중간선거에서 젊고 패기있는 신진 여성 정치인들이 대거 입성하면서 남성 위주의 의회와 드레스코드(복장 규정)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AFP통신은 19일(현지시간) 미국의 첫 무슬림 여성 하원의원인 소말리아계 일한 오마르(37·민주) 당선인이 히잡 착용에 대한 예외를 허용하는 ‘하원 복장 규정 개정안’에 공동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하원 다수당 지위를 탈환한 민주당은 2019년 1월 3일 제116대 하원이 개원하면 곧바로 이 규정을 손질할 계획이며 이는 의회의 복장 규정을 바꾸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오마르 당선인은 지난주 트위터에 “나 외에 그 누구도 내 머리 위에 스카프를 얹지 못한다. 이것은 내 선택이고, 수정헌법 1조에 의해 보호받는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미 의회 회의장에서는 히잡뿐 아니라 유대인의 야물커(유대인 남자들이 쓰는 작고 동그란 모자), 무슬림의 터번 등은 착용이 금지돼왔다. 모든 의원은 의사당 내에서 반드시 모자를 벗어야 한다는 하원 규칙 때문이다. 실제 2012년 3월 바비 러시(일리노이) 민주당 하원의원이 전체회의장에서 후드 티의 모자를 쓰고 연설을 하다 쫓겨나기도 했다. 또 종교와 인종 배경이 다채로운 여성 의원들의 정계 진출에 따라 ‘여성에게는 민소매 의상과 발가락이 노출된 구두를 금지하고, 남성에게는 슈트에 넥타이를 매도록 권고’한 의회의 복장 규정도 바뀔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미국 여성 정치인의 드레스코드 공식은 어깨에 패드가 들어간 재킷에 노출이 없는 긴바지와 무릎길이의 치마였다. 지난 대선 때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복장이 대표적이다. 최초의 여성 원주민(인디언) 출신 하원의원인 샤리스 데이비스(캔자스) 민주당 의원은 지난 6일 개표 현장에 스스로 레즈비언임을 알리는 무지개 스카프에 타이트한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나타나는 파격을 선보였다. 또 29세의 최연소 하원의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테즈는 재킷을 입지 않은 채 흰색 셔츠에 베이지색 치마, 긴 생머리에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개표 행사에 참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신진 여성 정치인들의 틀에 박히지 않은 패션이 남성 위주의 미 의회를 바꿀 것”이라고 내다봤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김태리, 지금 가장 중요한 여배우 [화보]

    김태리, 지금 가장 중요한 여배우 [화보]

    영국 라이선스 패션&컬처 매거진 ‘데이즈드’ 코리아가 2018년 12월호를 통해, 올 한 해 ‘1987’, ‘리틀 포레스트’와 ‘미스터 선샤인’으로 누구보다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배우 김태리와 함께한 커버 스토리와 화보, 인터뷰를 공개했다. 지난 9월 말 ‘미스터 선샤인’ 종영 이후 휴식과 함께 차기작을 검토하고 있는 배우 김태리는 겨울 냄새가 흠씬 풍기는 독일 베를린의 길거리를 자유롭게 거닐며 모처럼 만의 여유와 함께 ‘데이즈드’ 화보 촬영을 마쳤다. 이번 화보 촬영에서는 제이에스티나 핸드백의 조반나 퀼팅백, 로즈핑크 프레임백 헤더, 레드컬러 뉴엘레나 미니백 등 다양한 스타일의 핸드백을 소화 하거나, 막스마라의 자랑인 캐시미어 코트, 프린지 코트, 아이보리컬러 테디베어 코트를 소화하며 차가운 베를린의 겨울을 따뜻한 온기와 아름다움으로 감싸 안았다. 베를린 현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태리는 특히 베를린 특유의 오락가락한 날씨와 촬영이 끝나고 방문한 유대인 박물관을 언급하며 낯선 도시에 대한 첫 방문 소감을 남기며 웃어 보였다. 2018년을 보내는 소감을 묻는 말에 “2018년은 정말 많이 바빴어요. 바쁘다는 건 많은 걸 담아두고 기억하기에 좀 벅차다는 말인지도 몰라요. 시간이 지나면 어떨지 모르지만요”라고 말하며 바쁘게 지낸 지난 한 해를 이제부터 차근차근 정리해 나가고 싶다는 신중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똑 부러진 말과 행동으로 분명한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배우. 2018년 마지막 ‘데이즈드’ 코리아의 얼굴인 김태리의 아주 특별한 커버 스토리와 화보, 인터뷰는 ‘데이즈드’ 코리아 2018년 12월호와 www.dazedkorea.com에서 만날 수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방탄 공식사과, 원폭 피해자 직접 만났다 “적반하장 태도는 경악”

    방탄 공식사과, 원폭 피해자 직접 만났다 “적반하장 태도는 경악”

    방탄 공식사과, 원폭 피해자 직접 만났다 “적반하장 태도는 경악” 그룹 방탄소년단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16일 경남 합천의 원폭 피해자들을 찾아 멤버 지민이 과거 착용한 티셔츠를 두고 불거진 최근 논란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빅히트에서 운영총괄을 맡은 이진형씨는 이날 오후 1시께 합천 원폭 자료관에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관계자들 10여명을 만나 비공개 간담회를 하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합천은 한국 원폭 피해자 70%의 출신지여서 ‘한국의 히로시마’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씨는 20여분간 진행된 간담회에서 “피해자분들 마음에 상처를 입은 부분이 있을 수 있어 찾아뵙고 말씀드리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의도치 않았지만 (원폭 투하 그림이 있는 티셔츠로) 마음에 상처를 입으신 분들이 있다면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고개 숙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언론을 대상으로 한 자리가 아니라 협회와 피해자께 직접 말씀드리기 위한 자리”라며 취재진에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협회 측은 간담회가 끝난 뒤 “원폭 피해자들은 일련의 사태를 이해하고 공감한다”며 입장문을 낭독했다. 이규열 협회 회장은 “방탄소년단 멤버가 입은 티셔츠의 원폭 투하 그림을 문제 삼아 일본이 전범 가해자로서 사죄는커녕 세계 유일의 핵 피해국인 것처럼 코스프레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역사의식 없는 몰지각한 일본의 일부 언론이 자국의 침략 역사부터 반성하는 여론을 조성하기는커녕 오히려 방탄소년단의 방송 출연을 정지하는 등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는 데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원폭으로 광복이 됐다는 생각보다는 원폭의 반인류성에 대해 우리 모두 생각해봤으면 한다”며 “일본 당국과 언론은 더는 여론을 호도, 왜곡하지 말고 방탄소년단의 순수한 활동을 방해하지를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또 “방탄소년단 소속사의 사과를 혐한, 반한 여론을 조장하는 데 이용해서도 안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티셔츠 논란은 최근 일본의 한 매체가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이 지난해 착용한 티셔츠에 원자폭탄이 터지는 그림이 있는 것을 두고 “반일 활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불거졌다. 이로 인해 방탄소년단의 일본 음악 방송 출연이 하루 전 돌연 취소되며 논란이 더욱 확산됐다. 미국 유대인 인권단체로 알려진 ‘시몬비젠탈센터’는 성명을 통해 “방탄소년단이 일본 나가사키 원폭 희생자들을 조롱하는 티셔츠를 입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빅히트는 지난 13일 SNS를 통해 공식 입장을 내고 “원폭 피해자분들에게 상처를 드릴 목적으로 제작된 의상이 아니다”며 “원폭 피해자분들께 의도하지 않게 상처를 드린 점은 물론 당사 아티스트가 원폭 이미지와 연계된 모습에 불편함을 느끼신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전한 바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잔혹한 전쟁 성범죄 ‘침묵의 벽’ 허문 8주

    잔혹한 전쟁 성범죄 ‘침묵의 벽’ 허문 8주

    함락된 도시의 여자 : 1945년 봄의 기록/익명의 여성 지음/염정용 옮김/마티/344쪽/1만 8000원전쟁 중 민간인 여성들이 군인들에게 집단적으로 당하는 강간은 참혹한 아픔이다. 하지만 그 아픔은 대개 침묵의 형태로 감춰지기 일쑤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여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을 일으키고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가해자 독일’이란 이유로 독일 여성들의 아픔과 피해 들추기는 종전 후에도 줄곧 금기시됐었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기 연합군, 특히 러시아군이 독일 여성들에게 가한 잔혹한 성범죄에 대한 ‘침묵의 벽’을 허무는 기록으로 눈길을 끈다. 전쟁 후반부, 러시아군의 베를린 입성 직전인 1945년 4월 20일부터 베를린 함락 이후인 6월22일까지 출판사 기자였던 30대 여성이 다락방에 숨어 매일 기록한 일기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리서 우르렁거리던 소리가 오늘은 요란한 굉음으로 변했다. 우리는 사방에서 시시각각 조여 오는 포신들에 둘러싸여 지낸다.” 이렇게 시작해 8주간 지속된 일기에는 죽음과 굶주림, 절망, 그리고 생존 사이에 놓인 고통의 흔적이 역력하다. 특히 자신과 주변 여성들에게 저질러진 강간이 거의 매일 등장한다. “지금 내가 이토록 비참한 건 그 짓(강간) 때문이 아니다. 의지에 반해 몸이 능욕당하고 있는데도 살기 위해 묵살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강간을 받아들이는 비참함은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이 나누는 슬픈 대화로 절절하다. 책은 살아남은 여자들끼리 묻는 안부의 첫마디가 “당신은 몇 번이나…?”였다고 쓰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러시아군에 의한 강간 피해자는 독일 전체에서 50만~100만명, 베를린에서만 11만명에 달한다. 그 만행은 일기에 자주 등장하는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의 말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 그리고 슬픔은 마지막 일기에 절정을 이룬다. “나는 다만 살아남기를 원한다는 것만 알고 있다. 감정과 이성은 억누르고 짐승처럼 말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유대 소녀를 ‘쓰담’하는 이 남자, 600만 유대인 죽음 내몰아

    유대 소녀를 ‘쓰담’하는 이 남자, 600만 유대인 죽음 내몰아

    천진난만한 소녀와 어울려 행복한 미소를 짓는 이 남자, 600만 유대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아돌프 히틀러다. 이 소녀는 유대 혈통의 로사 베르닐레 니에나우로 당시 일곱 살이었다. 물론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한참 전인 1933년에 촬영한 사진인데 둘의 생일이 같아 로사는 어머니 카롤리네와 함께 저유명한 알프스 자락의 베르고프에 있는 히틀러 별장에 초청돼 사진을 찍었다. 모녀가 처음 이곳을 찾은 것은 1932년이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두 번째 초청 때 찍은 사진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또 둘의 생일은 4월 20일인데 아마도 베르고프 별장 주변이 여름은 돼야 눈이 녹아 이때 초청됐을 것으로 보인다. 히틀러는 얼마 뒤에 카롤리네가 유대계 혈통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로사와 계속 인연을 맺고 싶어했다. 그는 사진 사본에다 “친애하는 뮌헨의 로사 니에나우에게 아돌프 히틀러가 1933년 6월 16일”이라고 적었다. 로사가 나중에 우표를 직접 붙이고 흑백 사진에 꽃을 그려 색칠한 것으로 보인다.미국 메릴랜드주에 있는 알렉산더 히스토리칼 옥션이 하인리히 호프만이 촬영한 사진을 13일(이하 현지시간) 경매에 내놓았는데 1만 달러에는 팔릴 것으로 내다봤다. 경매사 빌 파나고풀로스는 영국 데일리메일 온라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히틀러는 선전 목적으로 어린이들과 자주 사진을 찍었는데 이 사진은 그 역시 어린 소녀에게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며 “이렇게 총통의 서명이 들어간 사진도 좀처럼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로사는 1935년부터 1938년까지 적어도 17차례 히틀러와 참모 빌헬름 브루크너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이들 모녀는 히틀러의 비서 마르틴 보르만으로부터 다시는 히틀러와 접촉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히틀러는 보르만으로부터 이렇게 조치했다는 말을 듣고 무덤덤해 했다. 보르만은 책 ‘히틀러는 내 친구였다’에다 히틀러가 “나의 일상적인 즐거움을 누설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이들이 너무 많다”고 얘기한 일이 있다고 소개했다. 사진작가 호프만은 1955년에 발간한 책에 두 장의 사진을 실으면서 “따듯했던 히틀러-그녀가 순수 아리안 혈통이 아니란 사실을 알기 전까지 베르고프에서의 만남을 즐거워했다”고 썼다. 보르만이 둘의 접촉을 막은 이듬해 2차대전이 발발했다. 그리고 끝날 때까지 6년 동안 600만명의 유대인이 목숨을 잃었다. 로사 역시 전쟁 통에 세상을 떴다. 17세 때인 1943년 천연두로 뮌헨 병원에서 숨을 거뒀는데 이 사진을 찍은 지 10년 만의 일이었다. 히틀러는 1945년 4월 30일 권총으로 자살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영웅들의 아버지’ 스탠 리, 더 높은 곳 향해 떠나다

    ‘영웅들의 아버지’ 스탠 리, 더 높은 곳 향해 떠나다

    마블 만화 헐크·아이언맨 등 캐릭터 발굴 공식 계정, 생전 표어 ‘엑셀시오르’로 추모스파이더맨, 블랙팬서 등 영화의 영웅 캐릭터들을 창조해 온 미국 만화업계 거물 스탠 리가 12일(현지시간) 별세했다. 96세 미국 매체 할리우드리포터 등에 따르면 스탠 리(본명 스탠리 마틴 리버)가 이날 로스앤젤레스의 시더 시나이 메디컬센터에서 지병으로 숨을 거뒀다고 유족이 공식 확인했다. 그는 국내 팬들에게 ‘스탠 리 옹’이라고 불렸다. 만화책 출판사 마블 코믹스의 전신인 타임리 코믹스의 작가 겸 에디터로 수많은 슈퍼 히어로물의 원작 만화를 제작했으며, 영화에도 40여차례 카메오로 출연했다. 그의 손을 거쳐 태어난 마블 캐릭터는 헐크, 닥터 스트레인지, 데어데블, 엑스맨, 아이언맨, 토르 등이다. 스탠 리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직후 그의 공식 트위터 계정에는 ‘1922~2018 엑셀시오르!(Excelsior·더욱더 높이)’라고 적힌 검은 배경의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그의 생몰 연도와 생전에 인터뷰할 때마다 삶의 캐치프레이즈로 쓰던 표현인 ‘엑셀시오르’를 통해 추모한 것이다. 300여만명의 팔로어를 보유한 이 계정에는 ‘우리에겐 당신이 영웅입니다’ 등의 수많은 추모 댓글이 이어졌다. 1922년 뉴욕 맨해튼의 루마니아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1939년 만화업계에 처음 발을 들인 그는 편집 조수로 일하다 수석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캡틴 아메리카’는 스탠 리가 직접 각본을 쓰고 만화 원작 제작에도 참여한 대표적 작품이다. 마블 코믹스를 오늘날의 초대형 멀티미디어 기업으로 성장시킨 것도 그의 공로였다. 마블 코믹스 편집장과 마블 엔터테인먼트 사장 등을 역임한 스탠 리는 만화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윌 아이스너 어워드’를 수상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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