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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인도로 간 영적 스승 람 다스, 잡스가 존경했던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인도로 간 영적 스승 람 다스, 잡스가 존경했던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미국 사이키델릭 운동의 선도자이며 영적 스승인 람 다스가 하와이 자택에서 여든여덟 삶을 평온하게 마쳤다고 영국 BBC가 23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본명이 리처드 앨퍼트인 고인은 1931년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부친은 철도회사 사장이었다. 1952년 터프트 대학에서 심리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1957년 스탠퍼드 대학에서 박사모를 썼다. 이듬해부터 하버드 대학 강단에 섰는데 스스로 나중에 고백하길, 고가구로 가득한 아파트에서 메르세데스 벤츠 승용차를 굴리고, 세스나 경비행기를 갖고 있어 카리브해에서 휴가를 즐길 정도로 여유로운 시절을 보냈다. 하버드에서 동료 교수 티모시 리리와 친해졌는데 리리는 1960년대 ‘주파수를 새로 맞춰, 더불어 즐기며, 모든 낡은 것들을 그만 두라’(turn on, tune in, drop out)는 모토를 유행시켜 저항문화의 상징처럼 떠오른 인물이었다. 둘은 대마 성분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밝혀내는 실험을 시작하다 1963년 대학에서 쫓겨났다. 1968년 기분 전환용 LSD는 미국에서 불법이 됐는데 이 성분이 위험한 심리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다른 연구 결과에 터잡은 것이었다. 그래서 다스가 선택한 대안이 인도였다. 구루(영적 스승) 님 카롤리 바바, 흔히 마하라지지 밑에 들어가 공부했다. 다스는 스승에게 고농도 LSD를 건넸는데 스승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해서 그는 높은 경지의 도를 깨달으면 약물 따위에 좌우되지 않는다고 믿게 됐다. 마하라지지는 힌두 말로 ‘신의 종’을 뜻하는 이름을 지어줬고 힌두 교리와 명상, 요가 등을 전수해줬다. 다스는 1968년 미국으로 돌아왔는데 마하라지지의 청을 받아들여 흰 예복을 입고 수염을 기르고 맨발인 채였다. 미국 전역을 돌며 영적인 힘을 강연하고 힌두교와 불교, 수피즘(이슬람 종파 가운데 명상을 강조하는 일파)의 교리와 유머를 뒤섞는 강연으로 인기를 끌었다. 1960년대 티모시 리리와 함께 하버드 대학에서 LSD를 연구한 뒤 인도로 건너가 영적 세계를 탐구했다.1971년 쓴 첫 번째 책 ‘Be Here Now’가 200만권 이상 팔리며 이름을 널리 알렸다. 애플 공동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그의 책이 인생을 바꿨다고 찬사를 보낸 것은 유명한 일화다. 1980년대 들어 고인은 스스로를 구루로 보이게 하려 했다. 수염을 밀고 예복을 벗었다. 하지만 힌두식 이름을 버리지 않았다. 또 젊을 적 LSD를 찬미했던 일을 후회하기도 했다. 양성애자임을 공개했다가 1990년대 들어선 동성애로 기울었다. 스탠퍼드 시절 같은 학교 여학생과 짧은 밀회 끝에 낳은 아들 피터 레이처드가 있음을 2009년에야 알기도 했다. 수십개의 나라에 안과 치료와 시술, 안경 등을 제공하는 비영리 세바 재단을 공동 창립했다. 올해 그의 일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아무도 안되기’(Becoming Nobody)가 개봉됐다. 1997년 쓰러져 몸의 오른쪽 기능이 마비되고 말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그는 2004년 감염 증세 때문에 세상을 등질 뻔했으나 회복해 하와이로 돌아와 말년을 지냈다. 많은 이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는데 내년 대선 출마를 타진하고 있는 마리안느 윌리엄슨, 제작자 저드 아파토, 작가 빌 코베트 등이 많은 영향을 받았다며 애도의 뜻을 밝혔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장동석 평론가의 뉴스 품은 책] ‘프라하의 도살자’ 궤적으로 읽는 2차세계대전

    [장동석 평론가의 뉴스 품은 책] ‘프라하의 도살자’ 궤적으로 읽는 2차세계대전

    독일 베를린 무연고 묘지에 묻힌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묘가 파헤쳐졌다고 한다. 하이드리히는 나치 비밀경찰 게슈타포를 창설하고, 유대인 학살 최종 시나리오인 ‘최종 해결 방안’을 입안한 인물이다. ‘프라하의 도살자’, ‘피에 젖은 사형집행인’으로 불린 잔혹한 인물이었다. 그는 1942년 체코 레지스탕스에 의해 암살됐다. 나치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암살단원 고향 마을 리디체를 완전히 파괴했다. 프랑스 작가 로랑 비네의 ‘HHhH’는 하이드리히 암살 작전을 소재로 한 역사소설이다. 제목 ‘HHhH’는 ‘Himmlers Hirn heißt Heydrich’의 약자로, ‘힘러의 두뇌는 하이드리히’라는 뜻이다. 작가는 역사 기록을 꼼꼼히 찾아내 인물들을 재구성하면서 자신의 취재와 집필 과정을 작품에 녹여 내는 등 역사소설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 줬다. 나치 치하 체코의 암울한 현실과 이해득실을 따져 움직이는 사람들의 음침한 내면을 보여 주며 적나라한 인간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1942년 5월 27일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에서 보헤미아모라비아 보호령 총독인 하이드리히가 테러를 당한다. 어렵사리 의식은 회복했지만 감염 때문에 일주일 만에 숨을 거둔다. 나치는 즉각 계엄령을 선포하고 암살범 색출에 나선다. 이내 체코 레지스탕스를 대부분 진압한다. ‘유인원 작전’으로 명명된 이 작전은 체코 망명정부가 잠입시킨 공수부대원 요제프 가브치크와 얀 쿠비시가 단행했다. 그들 역시 한 교회 지하실에서 격렬하게 저항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체코 레지스탕스 대원들의 행적과 내면을 따라가던 작가는 한편으로 하이드리히의 생애와 주변 인물, 즉 히틀러와 힘러, 괴링, 아이히만 등과의 접점을 자연스럽게 들춰낸다. 암살의 진상과 하이드리히 주변 이야기가 중구난방 교차하는 게 다소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저자가 집요하게 찾아낸 기록에 따른 내용으로 당대의 역사적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발로 뛰며 찾아낸 기록을 있는 그대로 기술해 당시 유럽 정세는 물론 제2차 세계대전의 막전막후 이야기를 제법 큰 흐름 속에서 읽어 낼 수도 있다. ‘HHhH’를 그저 흔한 팩션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하이드리히의 묘가 헤집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HHhH’를 다시 꺼내 읽으며 연합군이 극우집단 나치 숭배를 막기 위해 묘지 표식을 지우도록 한 조치를 생각한다. 생각은 이어진다. 친일부역자들은 왜 여전히 그리고 버젓이 국립묘지 혹은 노른자 땅에 묻혀 있는가.
  • 베를린 묘 파헤쳐졌는데 히틀러 참모 하이드리히 묘로 추정

    베를린 묘 파헤쳐졌는데 히틀러 참모 하이드리히 묘로 추정

    나치 SS 친위대 간부였으며 유대인 학살의 실질적인 설계자로 아돌프 히틀러가 아끼는 참모 가운데 한 명이었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묘가 파헤쳐졌다. 독일 베를린 경찰은 지난 12일(이하 현지시간) 베를린 정중앙에 있는 무연고자 공동묘지의 인부들이 주인 이름이 명기되지 않은 묘 하나가 파헤쳐진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유해는 그대로 있었고 묘 뚜껑만 열렸다. 경찰은 이런 무람한 짓을 벌인 이들을 찾기 위해 수사에 착수했다고 영국 BBC가 16일 전했다. 1942년 체코 레지스탕스에 의해 살해된 하이드리히는 유럽 유대인들의 대량 학살을 기획한 인물이었다. 그는 같은 해 1월 히틀러의 대량 학살에 대한 최종 솔루션이 입안된 반제(Wannsee) 회의 의장을 맡았다. 이때 기획된 대로 유럽을 중심으로 유대인 600만명에 대한 학살이 진행됐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베를린에 진주한 연합군은 이름 있는 나치 지도자들이 무덤 주인임을 표기하지 못하게 했다. 나치 동조자들이 성지로 만들려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의도였다. 따라서 그의 묘를 특정해 파헤친 것은 내부적으로 묘소의 위치를 잘 파악하고 있었던 이들의 소행일 것으로 짐작된다. 비슷한 사건은 2000년 베를린의 니콜라이 묘지에서도 있었다. 극좌파 단체가 1930년 암살된 나치 공수부대원 홀스트 베젤의 묘라고 주장하며 파헤친 뒤 순교자로 떠받들며 나치 찬양가를 불러댔다. 이 단체는 베젤의 두개골을 스프레 강에 던져 버렸다고 주장했는데 경찰은 묘의 주인이 베젤의 아버지라면서 두개골은 물론 어떤 유해도 사라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도살자란 별명으로 통하던 하이드리히는 아버지는 작곡가이자 오페라 가수인 리하르트 브루노 하이드리히, 어머니는 작센 왕국의 드레스덴 궁정의 궁정 고문관을 맡은 음악 연구자 게오르크 오이겐 크란츠 교수의 딸 엘리자베트 아나 마리아 아말리아 크란츠다. 이런 영향으로 하이드리히는 나치 주요 임무를 행하면서도 일과를 마치면 음악으로 피로를 풀곤 했다. 하인리히 히믈러 SS 친위대장 밑에서 제3제국 방첩부대를 책임 졌으며 히틀러는 그를 “철의 심장을 지닌 남자”로 불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942년 5월까지 보헤미아와 모라비아를 통치했으며 리무진을 타고 가다 영국 첩보기관이 훈련시킨 체코 레지스탕스들의 손에 당했다. 부상 며칠 뒤에 숨을 거뒀다. 그의 암살을 다룬 영화가 저유명한 ‘새벽의 7인’이었다. 나치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레지스탕스를 지원한 루디체 마을을 파괴하고 마을의 모든 남성 170여명과 청년들을 살해하고 여성과 어린이들을 집단 수용소로 보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겉도 속도 거침없는 미술관

    겉도 속도 거침없는 미술관

    미국 뉴욕의 5번가가 유명한 이유는 뉴욕을 상징하는 두 가지, 패션과 예술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패션 브랜드가 밀집한 거리가 끝나면 센트럴파크의 동쪽을 따라 미술관이 쭉 이어진다. 그중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은 귀여운 반항아 같다. 네모반듯하고 번쩍거리는 빌딩 사이에 콕 박힌 하얗고 둥그스름한 미술관, 구겐하임. 뒤집어 놓은 수화기나 회오리 감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뭔가 난해한 형상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작품을 다룬다면, 구겐하임은 현대미술만 담당한다. 동성애와 같은 주제도 거침없이 다룬다. 인종, 민족, 성 정체성 등에서 다양성을 강조하는 뉴욕과 구겐하임 미술관은 서로 닮아 있다. 외관은 독특하고, 그 안에 담은 내용은 진보에 가깝다. 이렇게 개성 있는 미술관을 지은 사람은 솔로몬 구겐하임이다. 구겐하임은 스위스계 유대인 가문의 성(姓)이다. 미국으로 건너와 광산 재벌이 된 마이어 구겐하임의 아들인 벤저민 구겐하임은 1912년 타이태닉호 침몰로 사망했다. 상속녀인 페기 구겐하임은 벤저민이 남긴 유산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미술품을 사들였고, 벤저민의 형인 솔로몬 구겐하임은 페기가 모은 작품을 전시할 미술관을 건설하기로 했다. 벤저민의 유산과 페기의 컬렉션, 그리고 솔로몬의 건축으로 이루어진, 구겐하임가의 합작품이 바로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솔로몬 구겐하임은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게 비구상 회화들을 위한 ‘영혼의 사원’을 지어 달라고 의뢰했고 1959년 완공했다. 라이트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계단식 신전인 지구라트에서 힌트를 얻어 뒤집어진 피라미드 형태의 건물을 설계했다. 내부엔 계단이 없다. 천장에서부터 1층까지 비스듬하게 연결되는 나선형의 통로를 따라 올라가거나 내려오면서 관람하게 된다. 그러니 바닥이 약간 기울어지는 건 당연한 일. 살짝 삐딱하게 서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어쩐지 뉴욕답다. 천장의 둥근 원형 지붕에서는 부드러운 햇살이 미술관 내부로 스며든다. 로마 판테온 지붕 양식인 로톤다를 도입한 것이다. 고대 건축양식과 모더니즘을 잘 융합했다는 점도 눈여겨보면 재미있다.구겐하임 미술관을 포함해 라이트의 20세기 전반기 건축물 8개는 올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그중 유명한 것은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낙수장’(Falling Water)이다. 폭포 안에 집을 지었다. 자연에 건축을 녹여냈다는 점에서 라이트는 ‘유기적 건축의 선구자’라고 불린다. 안토니 가우디, 르코르뷔지에에 이어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자신의 작품을 올린 세 번째 건축가가 됐다. 김진 칼럼니스트·여행작가
  • 새 규제 내놓는 유튜브 ‘표현의 자유 VS 적절한 통제’

    새 규제 내놓는 유튜브 ‘표현의 자유 VS 적절한 통제’

    유튜브가 협박, 인신공격과 관련한 규제를 강화한다. 한 언론인이 보수 유튜버로부터 인종차별 및 동성애 혐오에 시달렸지만, 유튜브가 해당 영상을 내리지 않아 물의를 빚은 지 6개월 만이다. ‘표현의 자유’와 ‘적절한 통제’를 두고 논란이 예상된다. 워싱턴포스트(WP) 등 미국 매체들은 11일(현지시간) 유튜브가 인종, 성별, 성적 지향성 등을 바탕으로 누군가를 모욕하는 영상은 삭제키로 했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은연중이고 암시적인 위협’도 포함된다. 영상 뿐 아니라 댓글도 규제 대상이다. 괴롭힘 방지 규정의 선을 반복적으로 넘으면 수익 활동을 정지당할 수 있다. 새 기준은 소급 적용 돼 이를 어긴 과거 영상이나 댓글들도 삭제된다. 하지만 해당 게시자가 처벌 받는 것은 아니다. 백인 우월주의, 이슬람 혐오 등 유해한 콘텐츠가 넘쳐난다는 비판이 나오자 유튜브는 지난 6월 수천개의 채널을 삭제한 바 있다. 하지만 3개월 뒤인 9월 미국 최대 유대인 단체인 반명예훼손연맹(ADL)는 수십개의 우월주의자, 극단주의자의 채널이 남아있다고 주장했다.극우 논객이자 코미디언인 스티븐 크라우더의 유튜브 동영상도 논란이 됐다. 400만 독자를 보유한 크라우더는 인터넷 매체 복스의 비디오 프로듀서로서 동성애자이자 쿠바인인 카를로스 마자를 “화난 꼬마 게이”라며 비하했다. 이에 유튜브는 크라우더의 영상을 조사했지만 혐오발언으로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비난이 이어지자 유튜브는 크라우더의 영상에 대해 혐오발언으로 보고 해당 영상에 광고를 붙여 수익을 얻지 못하도록 했다. 우리나라도 최근 보수 유튜버에게 유독 노락딱지가 붙는다는 주장에서 비롯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노란딱지는 유튜브 약관에 위배된 콘텐츠에 붙이는 노란색 달러 아이콘으로, 이게 붙으면 광고로 창출되는 수익이 적어지거나 없어진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유튜브 노란딱지,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를 열며 유튜브의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지난 10월초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존리 구글코리아 대표는 “광고주의 뜻이 일부 반영된 것”이라며 1차 선별은 AI(인공지능)가, 2차는 구글 직원이 한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보수 유튜버를 겨냥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다만 초등학생의 꿈 1위가 유튜버 크리에이터일 정도로 영향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 보장과 도덕적 통제 사이에서, 각종 이해관계자 간의 대립 사이에서 첨예한 갈등은 이어질 전망이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독일군, 100년 만에 유대교 성직자 ‘랍비’ 받아들인다

    독일군, 100년 만에 유대교 성직자 ‘랍비’ 받아들인다

    유대교 성직자인 ‘랍비’도 독일 군인이 되는 길이 열린다. 라비가 독일 군대에 들어가는 것은 약 100년만에 부활된 것이다. 독일군은 11일(현지시간) 연방정부가 유대인 중앙위원회와 맺은 국가협정에 따라 랍비를 사제 목사로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도이체빌레 현지 언론과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관련 법안은 연방 하원을 통과해야 하지만, 연립정부의 참여 정당이 과반 의석을 점하고 있어 통과가 유력하다. 독일군에는 현재 기독교와 천주교 군 성직자가 복무 중이다. 독일군 18만 명 가운데 9만 명이 기독교도와 천주교도로 분류된다. 유대교도는 300명, 이슬람교도는 3000명 가량이다. 프랑스와 네덜란드를 포함한 유럽 다른 나라에서는 랍비를 군 사제로 도입했다. 독일 국방장관이자 집권 기독민주당 대표인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는 트위터에 “오늘 내각회의에서 유대교 장병들에게 중요한 신호를 보냈다. 약 100년 만에 연방군대에 유대인 라비를 다시 세운다”면서 “우리나라에서 유대인의 (종교) 생활은 당연한 것”이라고 밝혔다. 유대인들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을 위해 전쟁에 참여했다. 이런 연유로 과거 독일 군대에서 랍비가 상대적으로 흔했지만 아돌프 히틀러가 1933년 집권하면서 유대인을 모든 공직에서 쫓겨났다고 AP가 전했다. 한편 독일 정부는 이슬람교 군 성직자를 도입할 계획도 갖고 있으나, 협상 주체가 여의치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메르켈 총리 취임 후 첫 아우슈비츠 방문 한달 남짓 앞당긴 이유

    메르켈 총리 취임 후 첫 아우슈비츠 방문 한달 남짓 앞당긴 이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6일(이하 현지시간) 홀로코스트 참극의 대표 격인 폴란드 아우슈비츠를 취임 이후 처음 찾았다. 옛 동독 출신인 메르켈 총리는 당초 이 수용소 해방 75주년에 발 맞춰 내년 1월 27일 방문할 예정이었는데 독일의 반유대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데 경종을 울리기 위해 앞당겼다고 영국 BBC가 5일 전했다. 나치 독일은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가 정식 명칭인 이 수용소에서 무려 110만명을 살해했는데 대다수가 유대인이었다. 나치는 유럽에서 유대인을 박멸하겠다며 600만명을 학살했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지난 10월 40세 여성과 20세 남성이 동부의 한 시나고그(유대교 회당) 바깥에서 총에 맞아 살해됐는데 극우 성향의 27세 남성이 반유대 감정에 휩싸여 총기를 발사했다고 자백했다. 메르켈 총리는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재단 창립 10주년 기념식에 초대돼 많은 죄수들이 처형당한 이른바 검정 담 앞에서 1분 묵념을 올린 뒤 비르케나우 수용소에 헌화했다. 이 재단은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인간성을 말살하는 시도에 경종을 울리게 도와달라. 역사가 침묵을 강요하도록 용납해선 안된다. 기억을 되살리자”고 촉구했다. 그녀는 독일에 있는 나치의 다른 수용소들인 다차우와 부켄발트 등은 다녀왔지만 폴란드 크라코프 시 서쪽의 아우슈비츠를 찾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전임 총리 헬무트 슈미트가 1977년, 헬무트 콜이 1989년과 1995년 두 차례 이곳을 찾았다. 그 뒤 24년 동안 어느 총리도 찾지 않아 메르켈의 방문은 상징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방송은 전했다.한편으로는 역대 어느 총리도 지금처럼 반유대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 내몰리지도 않았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유대인을 겨냥한 증오범죄는 지난해에만 1646건으로 집계돼 2017년보다 10%가 늘었다. 지난해 유대인 신체에 직접 위해를 가한 사건도 62건으로 한해 전 37건의 곱절에 가까웠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인이 저지른 야만적인 범죄,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경계를 넘은 범죄 앞에서 마음 깊이 부끄러움을 느낀다”면서 “어떤 말로도 이곳에서 비인격적인 처우를 받고 고문당하고 살해당한 많은 사람의 슬픔을 달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범죄에 대한 기억은 끝나지 않은 우리의 책임이다. 이것은 우리 국가와 분리할 수 없다”면서 “책임을 인식하는 것은 우리 국가 정체성의 일부”라고 역설했다. 이어 “우리는 인간의 자유, 인격, 민주주의, 법치주의가 매우 소중하면서도 정치적 과정과 국가 활동, 일상에서 침해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서 “이것은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다. 오늘날 명확히 이야기해야 할 지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인종주의에 대한 우려스러운 현실, 편협과 증오 범죄의 증가를 목도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적인 가치에 대한 공격과 위험한 역사 수정주의를 목도하고 있다. 역사 수정주의는 외국인 혐오와 연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최근 내후년 재선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밝혀 연정이 다시 와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달 올라프 숄츠 부총리는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 대표 투표에서 연정에 비판적인 후보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 정당은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보수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립정부 참여를 포기하느냐를 놓고 표결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아우슈비츠는 오래 전부터 군 막사로 사용해오다 1939년 나치가 폴란드 정치범을 수감하기 위해 개조했으며 대략 40개의 막사를 거느린 대규모 수용소로 커졌다. 비르케나우는 1941년 조금 떨어진 곳에 건설됐는데 1942년 초부터 1944년 말까지 가스실로 보내지거나 굶주려 100만명 이상이 죽었다. 유대 혈통이 아닌 폴란드인, 로마인, 동성애자와 정치범, 소련군 포로들도 학살을 피하지 못했다. 옛 소련군은 1945년 1월 27일 이 수용소를 해방시켰는데 이날은 세계 전역에서 홀로코스트 추념의 날이 됐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페미니스트 작가 네이오미 울프 “濠 장관 ‘28년 전 성탄 트리’ 놓고 거짓말”

    페미니스트 작가 네이오미 울프 “濠 장관 ‘28년 전 성탄 트리’ 놓고 거짓말”

    네이오미 울프(57·미국)는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원제 The Beauty Myth)란 책으로 유명한 페미니스트 작가다. 빌 클린턴과 앨 고어에 정치적 조언을 하기도 했다. 오늘날 페미니즘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그녀가 28년 전 영국 옥스퍼드 대학을 함께 다녔던 앵거스 테일러(53) 호주 에너지부 장관과 입씨름을 벌이고 있다고 영국 BBC가 5일 소개했다. 2013년 보수당 의원에 당선된 테일러는 등원 연설을 하면서 제3세대 페미니즘의 출발을 알린 울프를 언급했다. 이 대학의 외국인 장학제도인 로즈 장학생이었던 자신이 “처음 정치적 올바른(political corretness) 운동과 대면한 것은 옥스퍼드 학생 때였다. 1991년 젊은 울프가 복도 저끝에 살고 있었다. 대다수 미국 학생들이 몇몇 유학생들이 상처 받을 수 있겠다며 크리스마스 트리를 거실에서 없애려 한 반면, (전통적인 서구 가치관을 존중하는) 일부 학생들은 다시 거실에 가져다 놓으려고 열심이었다. 그런데 결국 우리가 이겼다”고 발언했다. 자신은 트리를 지키는 쪽, 울프는 트리를 옮기는 쪽이었을 것임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무려 6년 전 발언인데 울프는 지난 2일 트위터에 테일러 장관의 발언을 전한 글이 올라오자 이제야 알았다며 자신은 1991년 옥스퍼드에 있지도 않았으며 미국 뉴욕에서 위의 책을 홍보하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올프는 트위터에다 테일러가 “반유대주의란 호각으로 사냥개 다루듯이” 한다며 학생 시절 적수들을 묘사하며 “신랄한 엘리트주의 목소리”를 낸다고 비난했다. 아울러 테일러가 나같은 유대인들을 1991년 옥스퍼드에서 성탄에 반대 목소리를 낸 전사의 이미지로 덧칠하고 있다고 열을 올렸다. 그녀는 먼저 테일러에게 정정을 요청했으나 묵살 당했다며 호주 의회 공식 기록처인 한사드에 정정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테일러 장관은 5일 의회 발언 도중 “이런 터무니없고 노골적인 공격”을 가한 데 대해 울프가 사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반유대주의란 비난은 잘못 됐으며 나와 가족들에게 깊은 상처를 안긴다”고 하소연했다. 아울러 옥스퍼드 시절 작가를 만났다는 점을 다시 강조했다. 에너지부 대변인은 테일러 장관은 정치인이라고만 언급했을 뿐이며 등원 연설에서 트리를 옮기려고 했던 학생 가운데 하나로 울프를 지칭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울프는 에너지부 장관 사무실과 20분 동안 나눈 전화 통화 녹취록을 공개했다. 직원에게 울프는 공식적으로 정정할 것을 요구하자 직원은 장관이 “당신이 옥스퍼드에 있었다고 기억하는 것처럼 보인다”며 “그가 (갈고리 모양으로 손가락을 구부리는 제스처인) quote unquote 성탄절을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였다고 추정하는 것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울프는 자신이 옥스퍼드에 있었느냐는 “당신네들이 내가 있었던 곳을 꾸며낼 수 없기에 의견의 영역에 있을 수 없다”고 대꾸한 뒤 “내가 마치 성탄절을 놓고 전쟁이라도 벌인 것처럼 의회에 까발렸다. 명확히 암시를 준 것이었다. 그랬는데 아직도 바로잡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직원이 그녀의 불만을 장관에게 전하겠다고 말하며 통화는 마무리됐다. 테일러 장관은 연초에도 자화자찬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 조롱거리가 됐다. 또 장관 권한을 남용했다는 이유로 검찰의 수사를 받을 처지다. 원자력 발전소를 다시 짓겠다고 뒤집은 것도 논란을 낳고 있다. 울프 역시 곤경에 빠져 있다. 미국 출판사가 지난 10월 출간한 가장 최근의 저작에 정확성 문제가 제기되자 마케팅을 중단한 것이다. 온라인 여론은 테일러의 동기에 당혹스러운 구석이 있다는 쪽에 기울어져 있다. 야당 의원들도 동조하고 있다. 하지만 스콧 모리슨 총리는 테일러 장관을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힘을 실어줬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러 피겨선수 ‘아우슈비츠 죄수복’ 의상 논란…ISU, 베스트 후보도 올려

    러 피겨선수 ‘아우슈비츠 죄수복’ 의상 논란…ISU, 베스트 후보도 올려

    러시아의 유명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그랑프리 대회에 입고 출전한 나치의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죄수복을 연상시키는 의상이 뒤늦게 논란의 중심에 섰다. 4일(현지시간) 미국 NBC뉴스 등 해외 주요언론은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측이 러시아 안톤 슐레포프(23)의 대회 의상을 '베스트 의상'(best costume) 후보로 올린 것에 대해 실수라며 사과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프랑스와 일본에서 각각 열린 피겨스케이팅 그랑프리 대회에서 슐레포프는 문제의 이 의상을 입고 프리 스케이팅 종목에 출전해 연기했다. 이 의상은 나치의 강제 수용소 줄무늬 죄수복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가슴에는 유대교를 상징하는 ‘다윗의 별’이 붙어있다. 당시 슐레포프는 홀로코스트 동안 많은 유대인을 학살로부터 구한 오스카 쉰들러의 일화를 다룬 '쉰들러리스트'를 테마로 한 연기를 문제의 이 의상을 입고 펼쳤다. 이 당시에도 슐레포프의 의상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됐으나 크게 논란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ISU 측이 슐레포프의 의상을 베스트 의상 후보에 올리자 소셜네트워크(SNS) 이용자를 중심으로 분노가 폭발했다. 네티즌들은 "슐레포프의 의상을 베스트 의상 후보에 올린 것은 매우 무책임하고 모욕적"이라면서 "집단학살의 참상은 오락거리가 아니다"라고 분노했다. 미국 최대의 유대인 단체 반명예훼손연맹(ADL)측도 "고통스러운 홀로코스트의 대표 이미지를 환기시킨 것은 매우 몰이해하고 불쾌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논란이 확산되자 ISU 측은 "슐레포프의 의상이 베스트 의상 후보에 지명된 것은 실수"라면서 "이미 후보에서 제외했으며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말레이 대학생 졸업식서 ‘나치 경례’…독일 대사관 “충격”

    말레이 대학생 졸업식서 ‘나치 경례’…독일 대사관 “충격”

    말레이시아의 한 대학 졸업생이 졸업식에서 ‘나치 경례’ 동작을 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소식을 접한 주말레이시아 독일 대사관은 “충격”이라면서 “대학살을 저지른 정권에 대한 어떤 지지 표시도 규탄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30일 말레이메일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주립대학인 사바대의 한 졸업생이 지난주 학위수여식에서 ‘나치 경례’ 동작을 한 사진과 함께 “내가 히틀러의 상징을 따라한 것은 이 세상이 유대인의 지배를 받아 눈이 멀고 귀가 먹었기 때문”이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가자지구를 구하자’(#SaveGaza) ‘팔레스타인을 위해 기도하자’(#Pray4Palestine)는 뜻의 해시태그를 붙여 이 글을 올린 졸업생은 “유대인에 대한 분노와 증오, 복수심을 담아 가자(Gaza)에 연대를 보낸다. 그렇기에 나는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를 저지른 히틀러에게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 글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여러 사람에게 알려져 논란이 일자 해당 졸업생은 “농담이었다”면서 수습에 나섰고, 페이스북은 커뮤니티 규정을 위반했다면서 이 게시물을 삭제했다.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독일 대사관은 전날 대사관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이번 사건에 대한 유감을 표명했다. 대사관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 정권이 가져온 끔찍한 고통을 고려했을 때 대학살을 저지른 정권에 대한 어떤 지지 표시도 규탄할 수밖에 없다”면서 “말레이시아 정부와 대학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사바대학도 해당 졸업생의 행동에 대해 유감을 나타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코빈 ‘반유대주의 논란’, 英 노동당 총선 악재로

    코너 몰린 코빈, 존슨 무역협정 문서 폭로 “정부, 美에 공공 보건서비스 팔려고 내놔” 영국 노동당이 다음달 12일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반(反)유대주의’ 논란에 휩싸였다. 영국 내 유대교 최고지도자의 전례 없는 비판에 제러미 코빈 대표는 “노동당 내에 반유대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맞서고 있지만 인종차별이라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총선의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지난 26일(현지시간) 영국 전역의 62개 유대교회당을 이끄는 에프라임 미르비스 랍비장은 일간 더타임스에 게재한 기고문을 통해 영국에 사는 유대인들이 노동당의 집권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동당이 반유대주의를 없애고자 최선을 다한다는 주장은 허황된 소설”이라면서 “노동당은 수뇌부에서부터 (반유대주의라는) 새로운 독이 뿌리내린 곳”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반유대주의에 대한 코빈 대표의 대응은 만인에 대한 존중과 존엄이라는 영국의 가치와 모순된다”며 코빈이 차기 총리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임을 강조했다. 노동당이 반유대주의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코빈 대표 체제가 출범한 2015년 9월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코빈 대표가 레바논의 이슬람 시아파 조직인 헤즈볼라 찬성 집회에 참석하고,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를 ‘친구’라고 부르는 등 친팔레스타인 행보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 2017년엔 13명의 하원의원이 당을 나가면서 반유대주의 대응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코빈 대표는 그러나 이날 BBC와의 인터뷰에서 자신과 당을 둘러싼 반유대주의 의혹을 부인하며 유대인 공동체에 사과하겠느냐는 진행자의 요청을 네 번이나 거절했다. 그는 “노동당의 대응이 허황됐다는 미르비스 랍비장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면서 자신이 취임한 후 “반유대주의에 대한 강력하고 진보된 대응 절차가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어떤 형태의 반유대주의도 현재 영국과 노동당 정부하에서 용인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번 사태는 코빈 대표의 리더십 부재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라며 비판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유대교 공동체에서는 “노동당의 부진한 대응을 비판하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소수자의 인권을 돌보지 않는 보수당이 안전한 대안이 될 것이라고 주장해선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이날 영국 무슬림 평의회는 보수당이 그동안 ‘이슬람 포비아’(이슬람 혐오)에 적절히 대응하는 데 실패했다며 비판했다. 코빈 대표는 27일 영국 정부가 미국과 무역협정 협상에서 공공의료 서비스인 국민보건서비스(NHS)를 거래 대상에 올려놓았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코빈 대표는 영국과 미국 정부가 무역 및 투자 워킹그룹에서 논의한 내용을 담은 451쪽 분량의 문서를 공개했다. 그는 “우리는 존슨이 NHS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은 뒤 팔려고 한 증거를 갖고 있다”면서 “총선은 이제 NHS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 됐다”고 말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스페인 명품브랜드, 나치 수용소 죄수복 닮은 의류 판매 논란

    스페인 명품브랜드, 나치 수용소 죄수복 닮은 의류 판매 논란

    스페인의 한 명품브랜드가 나치의 강제 수용소 죄수복을 연상시키는 의류를 출시했다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사과했다.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CNN 등 해외 주요언론은 스페인 브랜드 로에베(LOEWE)가 최근 출시한 의류가 나치의 강제 수용소 줄무늬 죄수복을 연상시켜 판매가 취소됐다고 보도했다. 우리 돈으로 200만원이 훌쩍 넘는 이 의류는 세로 줄무늬가 특징으로 실제 나치 강제수용소의 죄수복과 매우 유사하다. 이같은 사실은 유명 브랜드의 표절 등 부끄러운 민낯을 고발하며 인스타그램의 스타 계정이 된 ‘다이어트 프라다’의 문제 제기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다이어트 프라다 측은 "로에베의 줄무늬 셔츠와 바지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수백 만의 유대인들이 강제 수용소에 입도록 강요당한 옷과 거의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논란이 확산되자 로에베 측은 진화에 나섰다. 로에베 측은 "19세기 유명 도예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 된 옷"이라면서 "이는 절대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다"고 해명했다, 이어 "이번 상품으로 고통의 기억을 느낀 모든 분들께 사과드리며 모든 상품을 진열대에서 치웠다"고 덧붙였다. 한편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을 연상시키는 의류 상품 판매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스페인의 의류브랜드인 자라 역시 지난 2014년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이 입던 죄수복을 연상시키는 아동복 판매를 중단한 바 있다. 이 옷은 흰색 바탕에 파란색 줄무늬가 있으며 가슴에 유대교를 상징하는 ‘다윗의 별’과 비슷한 육각 모양의 별이 붙어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유대인 아동에게 폭언 퍼부은 흑인 남성…무슬림 여성이 제지

    유대인 아동에게 폭언 퍼부은 흑인 남성…무슬림 여성이 제지

    유대인 어린이와 그 가족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흑인 남성이 체포됐다. 23일(현지시간) PA통신에 따르면 영국 경찰은 지하철에서 유대인 어린이 학대 사건이 발생한 지 하루 만에 용의자의 신병을 확보했다.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흑인 용의자는 22일 런던 지하철에서 마주친 유대인 가족을 ‘사탄’이라고 몰아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10세 미만으로 추정되는 유대인 어린이에게 성경을 들이밀고 협박하는 등 학대를 저질렀다. 당시 지하철에 타고 있었던 크리스 앳킨스는 “흑인 남성은 유대인을 ‘사탄의 회당’으로 묘사한 성경 구절을 읽어내려갔다”고 설명했다. 그는 모자를 쓴 흑인 남성이 키파(야물커, 유대인 남자들이 쓰는 작고 테두리 없는 모자)를 착용한 유대인 남성과 어린 소년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위협을 가하는 영상도 함께 공개했다. 영상에는 흑인 승객이 유대인 가족에게 “유대인이 예수를 죽였다, 유대인은 사기꾼이다, 우리의 유산을 가로채려 한다”고 쏘아붙이는 장면이 담겨 있다. 아버지로 보이는 유대인 남성이 “무시하라”며 아들을 다독이는 와중에도 흑인 남성의 폭언은 멈출 줄 몰랐다. 심지어 자신을 말리려 나선 승객에게 “맞기 싫으면 물러서라”고 협박했다. 그때,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 한 명이 “여기 아이들도 있다”며 흑인을 가로막고 나섰다. 승객들은 그녀가 매우 단호한 태도로 용의자를 제지했다고 입을 모았다. PA통신은 아스마 슈웨이트라는이름의 이 무슬림 여성이 주의를 끌기 위해 말을 거는 등 적극적으로 유대인 가족을 보호했다고 전했다.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인 나 역시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누군가 도와주길 바랐을 것”이라면서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흑인 남성은 세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런던 지하철을 탄 유대인 부부에게 매우 공격적이었다”면서 “제발 그들에게 관심을 멀리하기를 바랐다”고 밝혔다. 이후 영상을 촬영한 앳킨스는 소년과 자리를 바꿔 유대인 가족과 흑인 사이에 끼어들었으며, 다른 승객도 합세해 말을 붙이며 흑인의 주의를 끌었다. 그 사이 유대인 가족은 지하철에서 내려 현장을 빠져나갔다. 이 같은 반(反)유대주의는 최근 영국과 이탈리아 등 유럽을 중심으로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월 유럽축구연맹 챔스리그 첼시 대 발렌시아 경기가 열린 영국 런던의 한 경기장에서는 유대인을 비난하는 인종차별 응원가가 울려 퍼졌다. 이탈리아에서는 절반 이상이 '인종차별을 해도 괜찮다'는 답변을 내놓은 설문조사 결과가 나와 교황이 직접 나서 우려를 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 세계에 또 반유대주의가 일고 있다”면서 “유대인들은 우리의 형제고 박해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영국 경찰은 어린이를 포함한 유대인 가족에게 폭언을 퍼부은 흑인 용의자에게 아동 학대 및 공공시설 내 소란 등의 혐의를 적용할 방침이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2030 세대] 나는 어떤 무리에 속하고 싶은가/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2030 세대] 나는 어떤 무리에 속하고 싶은가/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나와 같은 공부를 하고 있는 유대인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앞으로 무얼 할까, 사실 간단해. 평생 누구와, 어느 부류의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지 생각해 보면 쉽게 답이 나오지.” 머리를 잠시 열었다 닫는 기분이었다. 내가 이제껏 들어 본 말 중에 단연코 가장 신선한 조언이었다. 내 주위엔 유난히 지적인 유대인이 많다. 워낙 머리가 좋은 걸까. 그들 관습대로 자라면서 형제자매끼리 식탁에서 쉼없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논쟁을 한 결과일까. 이때 부모는 자녀들의 ‘대화’에 거의 참견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한다. 아무튼 이 선배만 해도 심하게 스마트한 사람이다. 나는 어떤 무리에 속하고 싶은가. 허영심 없이 대답할 자신이 없다. 생각해 보니 라틴어를 택한 것은 내가 택한 가장 심한 멋부리기였다. 다만 쉽게 질리는 게 문제다. 며칠 전 성경을 읽었다. 전도서에서 전도자는 왕이었다. 그는 사람도 부리고 동산도 짓고 부도 축적했지만, 모두 무익하다고 결론지었다. 요즘 우리는 왕이 아니라도 허무함을 쉽게 느낀다. 인터넷에선 무엇이든 찾아낼 수 있다. 몇 시간, 아니 몇 날을 방황하다 보면 무엇이든 다 가질 수도 있고 다 잃을 수도 있으며, 삶의 가능성은 무한하면서도 결국 아무것도 아니란 것에 도달한다. 축음기도 없던 시대 여러 달을 별러서 한번 음악회를 찾아 가던 사람들. 그들의 기쁨은 어땠을까. 오래된 녹음들을 들어보면 환호의 질이 다르다. 아주 어렸을 땐 영화가 좋았다. 그리고 음악. 나는 아직도 음악가들과 어울리는 것을 그리워한다. 영화는 또 어떤가. 아름다운 영화인들과 더불어 일을 한다는 것은? 영국 소설가 마틴 에이미스는 소설을 쓰는 과정에 대해 말했다: “전두엽 피질이 아니라 뇌의 뒤쪽을 사용한다.” 논리가 아니라 본능의 문제라는 얘기다. 뇌의 무의식을 언제 끌어올릴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 간밤에 톨스토이의 일기를 읽었다. 1885년, 내 나이 정도에 톨스토이는 고민했다. 세바스토폴에서 군인 생활을 하고 있고 출판은 되고 있지만, 위대한 작가로서의 명성은 아직 멀었다. “시간, 시간, 젊음, 꿈, 생각들 - 모두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 나는 내 인생을 사는 대신 탕진하고 있다.” 톨스토이는 자기 계발에 집착한다. 그는 고쳐야 할 점들을 적어 보기도 한다. 무기력함, 짜증이 많음, 생각이 모자람, 허영됨, 어수선함 그리고 줏대가 없음. 진로를 고민하다가도, 궁극의 문제는 운명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하느님, 나를 지켜 주시니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당신이 나를 버린다면 나는 얼마나 무가치한 생물이겠습니까?” 내가 라틴어를 공부해서 그 일로 밥벌이를 한다면 라틴어는 곧 내 길이었던 것이리라. 결국 선배에겐 누구와 어울리고 싶은지 답하지 못했다. “형이랑 어울리면 됐지. 아님 러시아 시인 튜체프가 말했지. ‘생각은 말에 담기는 순간 거짓이 된다’고.”
  • 히틀러 모자 6500만원 낙찰…연인·측근 물품까지 팔려

    히틀러 모자 6500만원 낙찰…연인·측근 물품까지 팔려

    나치 독일을 이끈 아돌프 히틀러의 모자가 5만유로(한화 약 6500만원)에 낙찰됐다. 히틀러 물품 뿐 아니라 히틀러의 연인과 측근의 물품까지 고가에 팔렸다. 독일 정부와 유대인단체는 유감을 표명하며 이번 경매를 강력 비판했다. 20일(현지시간) 경매업체 헤르만 히스토리카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한 구매자는 나치 상징 ‘스와스티카’와 독수리 디자인과 은박으로 장식된 히틀러의 저서 ‘나의 투쟁’을 13만유로(약 1억6900만원)에 구입했다. ‘나의 투쟁’은 나치 정책의 근간이 된 유대인 증오 등 인종차별적 내용을 담고 있으며 히틀러 집권 당시 나치당원의 필독서로 통했다. ‘나치 정권의 2인자’로 불렸던 헤르만 괴링이 한때 소유하기도 했다.히틀러의 ‘연인’으로 알려진 에바 브라운의 의류도 1점당 수천 유로에 팔렸다. 나치의 친위대장이었던 하인리히 히믈러, 히틀러의 측근이었던 루돌프 헤스 등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악명 높았던 인사의 의류와 개인물품도 경매 목록에 포함됐다. 독일 정부에서 반(反)유대주의 대응 정책을 총괄하는 펠릭스 클라인은 “마치 일반적인 역사적 예술품을 거래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나치의 유물이 숭배 대상이 될 위험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유럽유대인협회(EJA)의 메나헴 마르골린 회장은 “우리는 해당 물품 구매자 이름 공개 의무를 경매사에 부여할 것을 독일 당국에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 또한 이들을 감시 대상 명단에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인종 청소’ 꿈꾼 英 10대 소년, 테러 준비 덜미…최연소 유죄 판결

    ‘인종 청소’ 꿈꾼 英 10대 소년, 테러 준비 덜미…최연소 유죄 판결

    영국 법원이 테러 준비 혐의로 체포된 10대 소년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BBC는 20일(현지시간) 맨체스터 크라운 법원 배심원단이 더럼주에 사는 16세 소년의 유죄를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판결로 소년은 영국에서 테러 관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가장 어린 범죄자가 됐다. 이전까지는 이슬람국가(IS) 가담 혐의로 지난해 종신형을 선고받은 사파 볼러(당시 18세, 여)가 최연소로 여겨졌다.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소년은 올 3월 테러 준비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보도에 따르면 소년의 침실에서는 테러 수단과 장소 등을 명시한 다량의 문서가 발견됐다.특히 ‘유대인 체제에 대항하는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게릴라전 매뉴얼’이라는 제목의 문서에는 학교와 우체국, 의회 건물, 술집 등을 상대로 한 테러 계획이 상세히 적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년은 또 유대인 교회를 상대로 한 방화 계획도 짠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네오나치’(신나치주의자) 성향을 보이는 이 소년이 사실상 인종 청소를 꿈꿨다고 설명했다. 소년의 컴퓨터와 휴대전화에서는 총기와 사제 폭발물, 소음기 제작, 흉기 관련 검색 기록이 상당량 발견됐으며, 이른바 ‘외로운 늑대’(자생적 테러리스트) 관련 웹사이트를 반복적으로 접속한 기록도 확보됐다. 자신이 만든 총기 제작 매뉴얼을 신나치주의 사이트에 배포한 사실도 드러났다. 소년의 테러 준비는 2017년 10월 무렵 시작돼 올해 3월까지 1년 반에 걸쳐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경찰은 “소년의 극우적 견해와 나치를 찬양하는 미사여구는 깊은 우려를 자아냈다”라면서 “만약 사법당국이 이 소년을 주목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위험한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겠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또 “테러에 대한 소년의 열망이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고 덧붙였다. 소년은 법정에서 “어떠한 공격도 실제로 수행할 의사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타고난 사디스트로 친구가 거의 없어, 극우 성향을 가진 가짜 인격체를 만들어 스스로를 위로한 것뿐이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법원은 소년의 죄가 인정된다며 유죄 판결을 내렸다. 선고일은 오는 1월 7일이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폭파하자는 주장도 나온 히틀러 생가 건물, 정부가 매입해 경찰서로

    폭파하자는 주장도 나온 히틀러 생가 건물, 정부가 매입해 경찰서로

    아돌프 히틀러가 태어난 건물이 경찰서로 바뀌게 된다고 오스트리아 내무부 장관이 밝혔다. 볼프강 페슈호른 내무부 장관은 19일(이하 현지시간) 성명을 발표해 “앞으로 경찰이 이 집을 사용하게 되면 다시는 국가사회주의(나치즘)을 기념하려는 도발이 있어선 안된다는 틀림없는 신호를 보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영국 BBC가 20일 전했다. 이 건물의 운명을 둘러싸고 오스트리아는 극심한 여론의 분열을 경험했다. 정부는 골칫거리로 여기고 있었다. 히틀러는 1889년 4월 20일 브라우나우 암 인 마을의 17세기 건물 아파트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직장 발령을 받아 이 집에 살고 있었다. 그의 가족은 몇주만 이 아파트에서 머무르다 근처의 다른 주소로 이사했다. 히틀러가 세 살 때 가족은 이 마을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히틀러는 오스트리아를 나치 독일에 병합한 뒤인 1938년 빈으로 가는 길에 잠깐 들른 적이 있다. 히틀러가 집권한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는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600만명의 유대인, 몇천만명의 민간인과 군인 희생자를 낳았다. 십수년 오스트리아 정부는 전 주인으로부터 건물을 빌려 극우주의자들의 관광을 막으려고 시도했다. 한때 이 건물은 장애인들의 돌봄 센터로 활용됐지만 현 주인 게를린데 폼머가 휠체어를 쓰는 장애인들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게 다시 꾸미거나 정부가 사들여 아예 새 단장하겠다는 제안을 모두 거부했다. 2014년 난민센터로 만들려는 계획 역시 무산됐다. 그러나 결국 2016년 정부는 강제 구입 명령을 내려 81만 유로(약 10억 5000만원)를 폼머에게 보상금으로 제시했고, 폼머는 소송까지 내며 반발했지만 결국 확정됐다. 하지만 이 건물을 아예 폭파 해체하자고 요구하는 이들도 있었으며 다른 이들은 자선단체 사무실이나 가정폭력의 화해 공간으로 활용하자고 주장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폼페이오 “이스라엘 정착촌 국제법 위반 아냐” 중동을 어쩌겠다는 건지

    폼페이오 “이스라엘 정착촌 국제법 위반 아냐” 중동을 어쩌겠다는 건지

    미국이 기존 입장을 41년 만에 뒤집어 이스라엘의 유대인 정착촌이 국제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해 중동 분쟁의 새로운 불씨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18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자치령인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이스라엘 정착촌이 국제법에 어긋나는 것으로 더는 간주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요르단강 서안은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이지만, 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한 뒤 점령한 곳이다. 이스라엘은 유엔 등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이곳에서 정착촌을 늘려왔다. 지금까지 미국의 정책은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1978년 국무부가 발표한 법률적 의견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팔레스타인 영토에 정착촌을 건립하는 것은 국제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AFP 통신은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브리핑을 열어 “법적 논쟁의 모든 측면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이(트럼프) 행정부는 서안 지구에서 이스라엘 민간 정착촌 자체는 국제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또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내놓았던 정책은 이 지역의 평화를 진전시키는 데 효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AFP는 “미국의 입장 변화는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한 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힘을 실어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전했다.그러나 미국 발표 이후 팔레스타인 측은 즉각 반발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당국은 성명을 내고 미국의 입장 완화는 “국제법에 완전히 어긋난다”고 맹비난했다. 팔레스타인 측은 미국이 국제법에 따른 결의를 취소할 권한이나 자격이 없으며 미국에는 이스라엘 정착촌에 합법성을 부여할 권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요르단 외무장관도 성명을 내고 미국의 입장 변화가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지금까지 이스라엘이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에 건설된 정착촌은 140곳에 이르고 60만명의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1980년대 이후 미국 행정부는 오락가락했다. 1978년 지미 카터 행정부는 민간인의 정착촌 건설은 국제법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3년 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이런 결론에 동의하지 않으며 정착촌은 태생적으로 불법이라고 믿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후 미국 행정부는 정착촌이 ‘불법적(illegal)’이라고 표현하는 대신 ‘불법의(illegitimate)’라고 어정쩡하게 표현했는데 이것은 유엔에서 이스라엘이 규탄 결의안을 피해가는 방편이 됐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2016년 말 미국의 관행과 결별, 불법적인 이스라엘 정착촌건설을 끝내라는 유엔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훨씬 더 이스라엘에 관용적인 태도를 보여왔으며 폼페이오 장관은 논쟁의 모든 측면들을 연구한 뒤 레이건 정부와 뜻을 같이 하기로 했다고 밝힌 것이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모랄레스도 멕시코行....멕시코는 어떻게 좌파 망명의 천국이 됐나

    모랄레스도 멕시코行....멕시코는 어떻게 좌파 망명의 천국이 됐나

    유명 좌파지도자들, 정치적 위기 때 멕시코와 ‘인연’‘스탈린 정적’ 트로츠키는 멕시코에서 생 마감하기도에보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의 ‘멕시코행’으로 과거 좌파 지도자들의 망명지로 선호됐던 멕시코의 위상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지난 10월 대선에서 부정선거로 당선됐다는 의혹을 받고 불명예 퇴진한 뒤 지난 11일(현지시간) 멕시코 망명을 선언했다. 자국에서 정치적 위기를 겪고 멕시코로 떠난 좌파 지도자들은 모랄레스 이전에도 적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모랄레스의 12일 멕시코 도착 소식을 전하며 “지난 세기와 앞선 반세기 동안 멕시코는 스페인 좌파와 미국 내 사회주의자, 유럽 공산주의자들에게 안식처가 됐다”고 전했다. 멕시코 망명을 선택한 대표적인 인사로는 쿠바의 ‘건국 영웅’ 호세 마르티를 꼽을 수 있다. 19세기 스페인에 맞서 독립투쟁을 했던 마르티는 수형생활 끝에 스페인을 거쳐 1875년 멕시코로 건너가 약 2년간 생활했다. 그는 멕시코에서 ‘오레스테스’라는 필명으로 시와 글을 쓰며 활동하기도 했다. 멕시코를 거쳐간 그는 아바나 국제공항의 이름이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일 정도로 쿠바에서 최고 영웅으로 추앙받게 됐다. 1900년대 말에는 중남미 국가 인사들이 자국의 내전을 피해 멕시코로 넘어왔다. 1970년대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 적지 않은 이들이 멕시코로 떠났고, 이가운데에는 사상 최초로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부를 수립한 살바도르 아옌데 전 칠레 대통령도 있었다.유럽에서도 많은 좌파인사들이 멕시코 망명을 선택했다. 1930년대 스페인 내전 때 적지 않은 스페인 좌파 인사들이 멕시코로 떠났고, 이 가운데에는 초현실주의 영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루이스 브뉴엘도 포함돼 있었다. NYT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수천명의 유대인과 공산주의자들이 멕시코에 보호 요청을 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가 예술가와 작가들이었다”고도 소개했다. 또 미국에서 매카시즘 광풍이 불 때도 미국의 사회주의자들은 국경을 넘어 멕시코행을 택했다. 일부는 망명생활 뒤 자국으로 화려하게 복귀했지만, 멕시코에서 결국 생을 마감한 이들도 있었다. 멕시코에서 사망한 대표적인 인물은 바로 러시아 혁명의 주역 레온 트로츠키다. 러시아에서 멕시코로 추방됐던 트로츠키는 스탈린의 사주를 받은 스페인 공산주의자에게 피격돼 사망했다. 프리다 칼로의 집 바로 옆에 있는 트로츠키 박물관은 멕시코를 찾는 관광객들의 대표적인 여행코스이기도 하다.이처럼 멕시코가 좌파 망명의 주요 선택지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학자 로렌조 마이어는 “멕시코 정부가 미국의 외교정책에 표면적으로 도전하지 않는 대신 (외국의 좌파지도자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들의 주권을 주장했다”고 분석했다. 미국으로서는 국경 바로 옆 국가에 좌파 지도자들이 오가는 것이 불편할 수 있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문제삼기는 어려웠고, 멕시코 정부는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다. 최근 멕시코가 중남미 좌파정권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모랄레스의 멕시코 망명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지난달말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승리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당선인의 첫 해외방문국도 멕시코였다. 멕시코는 내년 중남미·카리브해국가공동체에서 의장국을 맡을 예정이기도 하다. 세계사 속 멕시코 망명 인사에 새롭게 이름을 올린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 앞으로 재기에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모랄레스는 15일 AP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자신은 여전히 볼리비아의 대통령이라며 “유엔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볼리비아의 위기에 중재자로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피시앤드칩스, 왜 영국음식의 대명사가 됐을까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피시앤드칩스, 왜 영국음식의 대명사가 됐을까

    실제로 발을 내딛기 전까지 내게 영국이란 나라는 전설 속에 등장하는 아틀란티스와 다름없었다. 유럽에서 핀란드 다음으로 음식이 형편없다는 오명을 가진 나라, 전 국민이 맛없는 음식을 감내하는 나라라니. 아틀란티스가 존재한다는 것만큼이나 말이 되는 이야기인지. 한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운영하며 전 세계 부를 빨아들인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이 기껏해야 기름에 튀긴 흰살 생선과 감자라니. 대체 영국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피시앤드칩스는 문자 그대로 반죽을 입혀 튀겨낸 생선과 감자튀김으로 구성된 요리다. 영국식 피시앤드칩스란 소금이나 신맛이 덜한 몰트식초를 뿌려먹는 게 정석으로 통한다. 예상과는 달리 같이 딸려나오는 마요네즈나 케첩은 피시를 위한 게 아니라 칩스를 위한 조미료라는 게 영국인의 설명이다. 그러니까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취향대로 넣는 다진 양념과 들깻가루를 순댓국이 아닌 같이 딸려나온 밥에 비벼먹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까.피시앤드칩스의 역사는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영국에서 발간된 관련 자료를 교차 비교해 보면 대략 1860년대를 전후로 탄생한 음식이라는 데엔 다들 동의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전국 생선튀김 업자 연합’(NFFF)이 무려 1913년 결성됐으며, 이들이 주축이 돼 2010년에 피시앤드칩스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생선을 밀가루 반죽이나 계란옷을 입혀 튀겨내는 방식은 유대인의 조리법으로 피시앤드칩스가 탄생하기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다만 지금처럼 튀겨낸 후 바로 먹는 게 아니라 일종의 보존을 위한 전처리였다는 게 다른 점이다. 유대인들은 튀겨 익힌 생선을 식초물에 담가 먹었는데 이렇게 하면 냉장고 없이도 1년 정도 보관이 가능했다. 감자튀김은 19세기 초중반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유행했다.피시앤드칩스는 테이크아웃이 가능한 최초의 영국식 패스트푸드였다. 산업화의 영향으로 도시에 인구가 몰리면서 노동자 계층이 주를 이뤘는데, 이들에게 피시앤드칩스는 매력적인 음식이었다. 우선 값이 저렴했다. 여기엔 증기 트롤어선이 등장해 어획량이 급격히 늘고 철도가 항구와 도시를 촘촘히 이으면서 신선한 생선의 공급이 용이해진 배경이 있다. 20세기 초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집에서 요리하는 걸 감히 상상할 수 없었는데, 식재료를 준비해 장만하는 노력이 만만찮았고 연료비도 충분치 않았다. 이들에게 있어 저렴하면서 금방 조리돼 나온 피시앤드칩스는 훌륭한 대안 식사였던 셈이다. 맛과 영양 측면에서도 피시앤드칩스는 매력적인 선택이었다. 해안가에 살거나 강가에 살지 않는 이상 신선한 상태의 생선을 먹기란 쉽지 않았다. 내륙에 거주하는 이들 대부분은 소금에 절이거나 훈제하거나 식초에 절인 보존식품으로 생선을 접해 왔기에 신선한 생선의 맛에 쉽게 열광할 수 있었다. 또 피시앤드칩스는 적은 비용으로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을 섭취할 수 있는 고열량 식품으로도 사랑받았다. 노동자의 간편식이었던 피시앤드칩스는 1960년대까지 큰 인기를 누리다가 경쟁자들의 등장으로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KFC나 맥도날드, 중국식 누들이나 인도식 카레 등 노동계급이 선택할 수 있는 테이크아웃 음식이 많아지면서 식당이나 매대도 자연스럽게 감소했다. 그럼에도 피시앤드칩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영국음식의 대명사가 된 데엔 미디어의 역할이 컸다.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파니코스 파나이는 외국 음식의 홍수 속에서 영국의 정체성을 구분 짓는 마케팅 도구로 피시앤드칩스가 이용됐다고 지적한다. 이탈리아의 피자, 미국의 햄버거 등에 대항해 영국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아이콘이 된 것이다. 여기엔 자부심과 일종의 자학적인 냉소가 섞인 영국인 특유의 이중적인 성향이 한몫 거들었다. 하찮은 음식이 영국을 대표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를 대놓고 부끄러워하지는 않겠다는 심리가 깔려 있다.피시앤드칩스를 비롯해 영국을 대표하는 일련의 음식을 맛보고 난 후 조심스럽게 내린 결론이 있다. 영국인에게 맛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이들도 맛있는 음식이 어떤 음식이라는 건 분명히 자각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영국인이 아니고서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사찰음식을 먹고 난 후 마음이 평안해지는 경험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느꼈다고 할까. 음식은 당연히 맛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란 생각조차 문화적인 편견일 수 있겠다는 큰 깨달음을 영국에서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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