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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남순의 낮꿈꾸기] 4개의 국적을 가진 사람

    [강남순의 낮꿈꾸기] 4개의 국적을 가진 사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자크 데리다는 “함께 잘 살아감”(living-well-together)이라고 한다. 너무나 당연해서 상투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런데 이 당연한 듯한 말이 구체적인 우리의 현실 세계에 들어오면 복잡하고 심오한 의미를 지닌다. ‘함께 잘 살아감’이란 개인의 사적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종교, 생태 등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영역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전히 남과 북으로 분리된 한반도에서 이 ‘함께 살아감’은 더욱더 커다란 도전을 받게 된다. ●코로나 시국, 모두의 삶이 연결되어 있더라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지구 온난화와 같은 생태위기의 문제가 더이상 정치가들이나 환경전문가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당연한 듯한 일상이 돌연히 중지됐다. 내 아이들, 친척들과 이웃 등 내가 아는 사람만이 아니라 알지 못하지만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모두 나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경험하게 됐다. 나의 안전은 언제나 너의 안전과 분리불가하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잘 살아감’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함께 살아감’의 과제는 낭만적인 구호가 아니다. 이 ‘함께’에 우리는 누구를 포함하고 배제할 것인가. 우리가 생각하는 이 ‘함께의 원’은 얼마나 작거나 또는 큰가. 또한 ‘잘 살아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남북한 국적 모두 가질 수 있는 날이 올까 ‘만약 가능하다면, 언젠가 남한과 북한의 국적을 모두 가지기 원한다.’ 만약 어느 정치인이 이런 발언을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사람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취급을 받을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단번에 ‘종북’, ‘빨갱이’라는 주홍글씨가 붙고, 보수정치인들과 기독교인들은 광화문에 모여 탄핵을 외치며 성토대회를 할지도 모른다. 언젠가 북한과 남한의 국적을 모두 가지고 싶다고 표현하는 교육자, 작가, 종교지도자, 언론인 또는 예술가가 있다면 단번에 학교에서는 직위 정지되고, 출판계약은 파기되고, 예정됐던 공연은 취소되면서 온갖 사회적 지탄과 공적 활동이 지극히 제한될지도 모른다. 이렇듯 가장 적대적인 관계 속에서 끊임없는 폭력과 살상이 벌어지고 있는 두 나라, 그 두 나라의 국적을 모두 가지는 꿈을 꾸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런 위험하고 불가능할 것 같은 질문을 현실로 옮긴 사람이 있다. 2020년 8월 이스라엘과 아랍권 국가(UAE) 간 평화협정이 맺어지지 직전까지도 남한과 북한 이상의 적대관계를 가지고 테러와 폭력을 가해 오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 ‘원수’ 관계에 있는 두 나라의 국적을 세계 최초로 동시에 획득한 사람이 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이다. 그는 아르헨티나, 스페인,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명예 시민권을 포함해 모두 네 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유대인인 그는 많은 유대인이 여전히 ‘원수’로 생각하는 나라인 독일에서 거주하며 일하고 있다. 1999년 유대인인 바렌보임과 팔레스타인 출신 학자이며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대 영문학 교수였던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집트, 이란, 이스라엘, 요르단, 레바논, 팔레스타인, 시리아 그리고 스페인 배경을 가진 청년들을 단원으로 하는 오케스트라를 함께 창단했다. 사이드는 학자로서만이 아니라 행동하는 지성인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음악 평론가이기도 하며 스스로 콘서트 피아니스트를 꿈꾸었던 사람이다. 바렌보임과 사이드는 오케스트라의 이름을 괴테의 시에 등장하는 구절을 따서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West-Eastern Divan Orchestra)로 명명했다. 이 오케스트라는 2012년 제9회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하기도 했고, 2016년 유엔은 이 오케스트라를 ‘평화와 일치’를 추구하는 모델로 선정하기도 했다. 남한과 북한의 관계 이상으로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중동 지역의 청년들을 모아 오케스트라를 창단한 바렌보임과 사이드는 어떠한 역할을 한 것일까. 바렌보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오케스트라는 사랑 이야기도 아니고 평화 이야기도 아닙니다.… 이것은 무지에 대항하는 프로젝트로서 태동했습니다. 우리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이해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 있고 서로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칼을 빼 들 필요는 없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1년 7월 7일 베를린 국립오페라단을 이끌고 이스라엘을 순회공연 중이던 바렌보임이 바그너의 음악을 연주하기 전까지, 이스라엘에서는 반유대주의자로 알려진 바그너의 음악이 연주되지 않았다. 그는 앙코르곡으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일부를 연주하겠다고 하면서, 연주에 앞서서 청중에게 혹시 이 음악이 불편한 이들은 연주회장을 떠나도 좋다고 했다. 실제로 일부 청중은 연주회장을 떠났다. 이 사건 이후 바렌보임은 이스라엘의 문화부 장관을 비롯해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서 강력한 비난을 받았고, 지휘자로서의 바렌보임을 보이콧하는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바렌보임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지만 이스라엘에서 자란 유대인이며, 자신을 이스라엘인이라고 생각했다. 히틀러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로 알려진 바그너의 음악이 거의 금기시돼 온 이스라엘에서, 자신도 유대인인 바렌보임이 왜 바그너의 곡을 연주했을까. 바렌보임과 함께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던 에드워드 사이드는 “바렌보임과 바그너 타부”라는 글에서 이 세계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한 종류의 사람은 기존의 관습적 구조에 묻혀서 그대로 따라가는 다수의 사람이다. 이들은 자신들과 조금이라도 다른 견해나 행동방식, 사유방식을 가진 사람을 참지 못한다. 한국에서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종북몰이’는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른 견해를 악마화하는 이 ‘다수의 횡포’의 예증이다. 그런데 또 다른 종류의 사람이 있다. 그들은 소수이지만, 다수의 입장이라 해도 그것이 평화로운 삶, 함께 사는 삶에 옳지 않다고 생각될 때 그 다수의 물결에 도전하면서 새로운 문을 여는 이들이다. 바렌보임은 이들 소수에 속한다고 사이드는 평가한다. ●진정한 일치란 긴장관계 속 포용·포괄돼야 이러한 소수의 존재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상이한 입장을 지닌 이들의 평화로운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이들이다. ‘일치’란 모두가 똑같이 행동하고, 똑같이 생각하는 ‘동질성의 늪’으로 빠지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일치’란 서로가 지닌 상이한 입장을 인내심 있게 듣고, 토론하고, 차이를 좁혀 나가는 지난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그 긴장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포용과 포괄의 원을 확장하는 ‘목적’에 동조하는 ‘일치’다. 이들 소수야말로 한 사회가 보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데 동력을 제공하는 이들이다. 진영 논리에 따른 상대방 죽이기에만 몰두하는 정치가 판을 치는 한국 사회에,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필요한 존재들이 바로 바렌보임과 같은 창의적이고 용기 있는 소수들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인류사회에 모든 분야가 이전과 전적으로 다른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세계적인 장에서는 국가 간 지리적 영토를 넘어서는 북반구와 남반구 나라들 사이의 불균형 문제를 다루는 전 지구적 정의, 생태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환경 정의, 젠더 정의, 성적 지향에 근거한 차별을 넘어서고자 하는 성적 정의, 인종적 정의 문제 등 국제적으로 또는 국내적으로 산재해 있다. 2021년 한국의 정황에서 보자면 남북한의 긴장과 갈등 관계를 넘어서서 진정한 ‘함께 잘 살아감’의 긴급한 과제가 또한 있다. 인류의 역사는 ‘불가능한 질문’과 씨름하던 소수에 의해 새로운 장을 열었다. 바렌보임은 이스라엘과 대척 관계에 있는 팔레스타인의 청년들이 함께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을까라는 ‘불가능한’ 질문을 가능한 현실로 바꾸었다. ‘불가능해 보이는 질문’을 하기 시작하던 소수에 의해 우리의 현실세계는 ‘함께 잘 살아감’의 의미를 확장하게 됐다. ‘불가능한 상상’을 ‘가능한 현실’로 만들어 간 것이다. 함께 잘 살아감의 세계를 위해 만들어진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처럼, 우리도 ‘남북한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언젠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남한과 북한이 식량을 함께 나누고, 코로나 백신을 함께 나눌 수 있을까.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불가능한 낮꿈을 꾸는 소수의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글 텍사스크리스천대(TCU) 브라이트신학대학원 교수그림 김혜주 서양화가
  • 강한 사람만 살아남는 게 아니었더라

    강한 사람만 살아남는 게 아니었더라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선별-이송-죽임의 되풀이였다. 그렇게 유럽에 거주하던 유대인 1100여만명 중 600여만명이 희생됐다. 들어도 잘 가늠이 안 되는 사망자 수다. 죽음을 아직 모르는 나는 이들에 관해 어떤 말도 덧붙이기 어렵다. 다만 지금을 살아가는 자로서 나는 생존자 500여만명에 대해서는 조금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하다. 버르너바시 토트 감독의 영화 ‘살아남은 사람들’을 본 덕분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1948년 헝가리다. 주인공은 10대 여학생 클라라(아비겔 소크 분)와 40대 남성 의사 알도(카롤리 하이덕 분). 두 사람은 성장이 멈춘 환자와 산부인과 전문의로 처음 만났다. 클라라의 발육 중단은 유대인 학살과 관련이 있다. 가족을 잃고 그녀는 홀로 살아남았으니까. 마음의 상처는 몸으로도 드러난다. 클라라의 상태를 진단하는 알도 역시 비슷한 처지다. 유대인 학살의 광풍에 그는 아내와 자식을 떠나보냈다. 그러면서 알도의 삶에서는 기쁨 혹은 즐거움이라고 부를 만한 감정도 사라져 버렸다. 그는 웃지 않는 사람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클라라가 먼저 알도에게 다가선다. 혼자 있기를 두려워하는 소녀가 내미는 손을 사내는 뿌리치지 않는다. 내색하지 않았으나 실은 그도 혼자 있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한 침대에서 잠을 청하고, 포옹하는 두 사람. 그 모습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관계를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실제 그들 주변에는 클라라와 알도의 성적 일탈을 의심하는 눈초리가 많았다. 그러나 둘은 남녀의 성애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온기를 나누었을 뿐이다. 처참하고 잔학한 시대를 통과한 이들에게 완전한 치유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완전하나마 서로 간의 기댐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각자에게 충분히 도움이 된다는 메시지를 ‘살아남은 사람들’은 명징하게 전한다. 설명할 수 없는 고유한 슬픔이야 도저히 어쩌지 못한다 해도. 이 영화와 연관해 참고할 수 있는 시가 있다. 브레히트가 쓴 ‘살아남은 자의 슬픔’(1944)이다. 원래 제목은 ‘나, 살아남은 자’인데, 역자 김광규 시인은 가까스로 살아남은 자가 느끼는 정서는 슬픔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는 명제는 요즘의 성공 이데올로기와 일맥상통한다. 내가 잘나서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고, 그것이 몹시 뿌듯해 여기저기 자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는 사람들에게 이 시와 영화를 권하고 싶다. 살아남은 자가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 죽은 자가 대다수라는 뜻이다. 그들을 애도하지 않는,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는 생존-성공 예찬은 그러니까 얼마나 너절한지. 허희 문학평론가·영화 칼럼니스트
  • 美 상원, 트럼프 탄핵 속전속결… 부결 예상에 바이든은 거리두기

    美 상원, 트럼프 탄핵 속전속결… 부결 예상에 바이든은 거리두기

    민주 “반란 선동 범죄” 변호인단 “정치극” 4일간 32시간 공방전… 내주초 표결할 듯조지아주는 ‘선거 뒤집기 압력’ 조사 착수의회 난입 참사에 대한 내란선동 혐의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미국 상원의 탄핵심판이 9일(현지시간) 시작됐다. 민주주의 파괴라는 초유의 사태로 트럼프는 역사상 처음으로 두 번이나 탄핵심판대에 오르는 대통령이 됐다. 전날 트럼프 변호인단은 78쪽의 변론서에서 탄핵 시도는 “당파적 정치극”이라며, 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리는 위헌이므로 즉시 기각할 것을 주장했다. 지난달 6일 의회 난입 참사 직전, 트럼프가 연설에서 “지옥처럼 싸우라”고 말한 것은 “비유적 표현”으로 헌법상 ‘표현의 자유’라고 했다. 민주당 탄핵소추위원들은 이날 변론서에서 “헌법은 상원에 (탄핵) 관할권을 명확히 부여했다”며 심리 절차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또 “트럼프의 (선동) 행위에 대한 증거가 압도적”이라며 “평화적 정권 이양을 방해하고, 미국 정부에 대한 반란을 선동한 것이 헌법상 범죄”라고 했다. 양당이 이날 합의한 심리 절차에 따르면 민주당 탄핵소추위원들은 10·11일 총 16시간 동안 진술하고, 이어 트럼프 변호인단이 12일과 14일에 총 16시간 진술한다. 12일 저녁과 13일은 유대인 안식일로 쉰다. 양측 진술 후에는 상원 의원들의 추가 심리(4시간), 증인 채택 여부 등에 대한 토론(2시간), 양측 최종 변론(4시간)에 이어 표결을 한다. 증인을 세울 필요가 없다면 다음주 초에 표결이 진행될 수 있다. 공화당은 트럼프의 과오를 재논의하는 부담감에, 민주당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 동력 분산을 막기 위해 트럼프의 첫 탄핵 심판(21일)보다 빠르게 절차에 합의했다. 이날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일정을 볼 때 바이든 대통령이 심리 절차를 지켜보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폴리티코는 “바이든이 정치적 분열을 악화시키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실상 부결이 예상되는 탄핵 심리를 과대 선전했다가, 외려 코로나19 추가부양안 등 국정운영에 대한 동력만 잃을 수 있다는 의미다. 현재 양당 상원의원은 50명씩으로, 탄핵이 가결되려면 공화당에서 반란표가 17표나 나와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 입장에서 탄핵 심리 자체가 오명이다. 또 민주당 내에서 폭동·반란에 관여한 공직자는 공직을 맡을 수 없다는 수정헌법 14조에 근거해 트럼프의 대선 재출마를 막자는 의견도 나온다. 의회 난입 참사와 관련해 검찰 수사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날 조지아주 국무장관실은 트럼프가 지난달 2일 브래드 래펜스퍼거 국무장관에게 전화해 선거 결과를 뒤집어 달라고 압력을 가한 데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
  • 1900년 전 로마 병사의 급여명세서… “실수령액 사실상 0원”

    1900년 전 로마 병사의 급여명세서… “실수령액 사실상 0원”

    1900여 년 전 로마 병사가 받았던 급여명세서가 공개됐다. 파피루스에 새겨진 해당 문서는 제1차 유대-로마 전쟁 중 마지막 전투였던 마사다 항전에 참여한 군사의 것으로 확인됐다. 이스라엘의 고대 요새인 마사다에서 기원후 70년대 초에 일어난 마사다 항전은 기원후 70년대 초에 일어난 유대인과 로마군의 전쟁이다. 이번에 공개된 급여명세서의 주인인 로마 병사 가우스 메시우스는 전쟁에 참여한 대가로 50데나리(denarri, 고대 로마의 통화 단위)의 급여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해당 급여에서 식량과 군사 장비에 대한 비용이 공제돼 실수령액은 거의 ‘0원’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당시 로마 병사는 기병이었으며, 말과 노새에게 주는 사룟값이 병사의 급여에서 공제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당시 병사는 월급날이 되어도 사실상 무일푼이었을 것”이라면서 “고대 병사의 급여에서 의류와 음식 등 필수 비용에 얼마가 소비됐는지 관찰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밖에도 해당 급여명세서에는 로마군이 마사다 항전이 끝난 뒤의 날짜와, 유대인 포로를 수용할 수용소를 세웠을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모든 내용은 파피루스에 기록됐다. 이 문서는 지난해 전문가들이 군사 비문 데이터베이스와 파피루스 번역을 통해 내용이 밝혀졌으며, 최근 미국 군사전문매체인 태스크 앤 퍼포즈가 8일 소개하면서 뒤늦게 알려졌다.한편 마사다는 사해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고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기원전 37년 유대의 헤롯 대왕이 지은 요새화된 궁전이다. 성지순례자들이 예루살렘이나 갈릴리 못지않게 선호하는 필수 성지순례 코스 중 하나로도 유명하다. 200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마사다 항전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군과 결사 항전 끝에 더 이상 저항할 수 없게 되자 전사와 가족 900여 명은 집단 자살을 선택했다. 다만 자살을 금지하는 유대교 율법을 고려해 가장이 가족들을 먼저 살해한 뒤 다시 모여 서로를 죽여주는 방식을 반복해 죽음을 선택했다. 최후의 한 사람은 전원이 사망한 것을 확인한 뒤 성에 불을 지르고 자결했다. 이후 마사다에 입성한 로마군은 시신 369구를 확인했으며, 살아남은 사람은 지하 동굴에 숨어있던 성인 2명과 아이 5명 뿐이었다. 마사다 항전은 로마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유대인들이 로마군에 대항해 끝까지 항전해 이스라엘의 자긍심과 일체감을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꼽힌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독일, ‘나치 수용소 비서’ 95세 여성 “학살 방조” 기소

    독일, ‘나치 수용소 비서’ 95세 여성 “학살 방조” 기소

    독일에서 95세 여성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강제수용소 지휘관의 비서로 일하면서 유대인 등 학살 1만여 건에 방조한 혐의로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최근 수년간 여러 강제수용소 경비병이 학살에 조력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비서가 기소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독일 이체회 지방 검찰청은 5일(현지시간) 이름가르트 F.(95)를 살인 방조 혐의로 기소했다고 독일 NDR방송과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이 전했다. 프라이버시법에 따라 이름 전체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는 나치 독일 치하에 있던 1943년부터 1945년까지 폴란드 그단스크 인근 슈투트호프 강제수용소에서 파울 베르너 호페 사령관의 비서로 일하면서 당시 벌어진 1만건 이상의 살인에 대한 방조 혐의를 받는다. 독일 국경 밖에 세워진 첫 강제수용소였던 슈투트호프 수용소에서는 6만 명 이상의 유대인과 폴란드 유격대원, 구소련의 전쟁포로가 학살됐다. 검찰이 2016년부터 5년간 미국과 이스라엘의 생존자 등을 상대로 이름가르트에 대한 수사를 진행한 결과 그는 수용소 지휘관의 비서 겸 타자수로 일하면서 수용소에서의 살인을 방조하고 조력했다. 검찰은 “강제수용소의 일상적인 작동에 그가 졌던 구체적인 책임에 대한 것”이라고 기소 이유를 설명했다. 강제수용소에 갇혔다가 생존한 사람들을 대상으로는 살인미수 공모 혐의도 적용됐다. 영국 역사학자로 나치 시절 여성 행정가들에 대한 책을 쓴 레이철 센추리는 NYT에 “이들 여성의 대부분은 유대인의 박해에 대해 알고 있었고, 일부는 그들이 살해당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온당하다”면서 “일부 비서들은 역할 상 다른 이들에 비해 정보에 대한 접근권이 더 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름가르트는 강제수용소에서의 학살에 대해 전쟁이 끝난 후에야 알게 됐다고 NDR에 2019년 밝힌 바 있다. 그는 최근 수년간 핀네베르크 지역의 요양원에서 살아왔다. 그가 비서로 재직했던 때는 18∼20세로 성인 연령인 21세 미만이었기 때문에 이 사건은 관할 지방 청소년법원에서 기소대로 재판을 진행할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재판은 최소 수개월에서 최대 수년까지 걸릴 수 있다. 앞서 함부르크 법원은 지난해 7월 슈투트호프 수용소에서 경비병으로 근무했던 나치 친위대(SS) 소속 브루노 D.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고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나치 수용소 비서의 최후…獨, 93세 여성 1만명 살인방조 혐의 기소

    나치 수용소 비서의 최후…獨, 93세 여성 1만명 살인방조 혐의 기소

    반세기만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독일의 역사 청산이 얼마나 철저한 지를 보여주는 사건이 또다시 전해졌다.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CNN 등 해외 주요언론은 독일 검찰이 70여년 전 나치수용소에서 비서로 일했던 95세 여성을 1만 명의 살인을 방조한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고 보도했다.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이 여성은 지난 1943~1945년 나치 독일이 점령해 설치한 폴란드의 슈투트호프 수용소 사령관의 비서로 일했다. 이 수용소는 나치가 1939년 독일 밖에 설치한 최초의 수용소로 이곳에서만 유대인 2만 8000명을 포함해 6만 3000∼6만 5000명이 숨졌다. 독일 검찰에 따르면 당시 미성년자였던 이 여성은 수용소 사령관의 속기사와 비서 업무를 맡았으며 근무 기간 중 총 1만명이 학살됐다. 검찰 측은 "이 여성은 총 1만 건이 넘는 살인을 방조하고 공모한 혐의를 받고있다"면서 "홀로코스트 당시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소년법원에서 재판이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보도에 따르면 이 여성은 현재 은퇴 주택에 살고있으며 건강한 상태라 재판을 받는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70여년 전 나치 수용소에서 일한 것은 맞지만 집단학살이 이루어지는 것은 전혀 몰랐다"면서 "전쟁이 끝난 후에야 잔학한 행위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항변했다. 한편 지난해 7월에도 독일 법원은 슈투트호프 수용소에서 나치친위대(SS) 소속으로 근무했던 93세의 브루노 데이에게 유죄를 선고한 뒤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바 있다. 당시 그는 17세 미성년자 나이에 보초만 섰을 뿐이었지만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독일에서는 10여년 전 부터 나치 학살의 ‘장신구’ 역할 정도를 했더라도 적극적으로 학살 행위를 만류하거나 피해자들을 도피시키지 않았다면 이번 사례와 같이 그 책임을 묻고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95세 독일 할머니, 70여년 전 1만명 학살 도운 혐의로 기소

    95세 독일 할머니, 70여년 전 1만명 학살 도운 혐의로 기소

    이제 95세에 독일 북부 함부르크 근처 핀네베르크의 요양원에 사는 할머니가 기소됐다. 지금의 폴란드 그단스크 근처에 있던 스튜트호프 수용소를 지휘하던 나치 친위대(SS) 지휘관의 비서로 일하며 1만명 이상의 살해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다. 할머니의 이름은 이름가르트 F라고만 알려졌다고 영국 BBC가 5일(현지시간) 전했다. 당시 수용소에는 6만 5000명이 수용돼 있었는데 그녀가 얼마나 학살에 깊숙이 개입됐는지는 여전히 연구가 진행 중이다. 방송은 그녀가 법정에 서게 될지 여부는 분명히 알려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스튜트호프 수용소가 세워진 것은 1939년이었다. 나치는 폴란드 땅을 점령한 상태였다. 그곳 경비들은 막바지 패전으로 치닫던 1944년 6월부터 가스실에 유대인 등을 밀어넣었다. 옛 소련군이 해방시킨 것은 전쟁이 끝난 뒤인 1945년 5월 무렵이었다. 10만명 정도가 이곳을 거쳐갔는데 많은 수가 질병과 기아로 목숨을 잃었고, 몇몇은 독가스에 질식되거나 약물 주사를 맞고 목숨을 잃었다. 유대인이 다수를 이뤘고, 유대인이 아닌 폴란드인, 소련군 포로 등이었다.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청소년 법정은 이름가르트 할머니 사건이 재판으로 갈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녀가 범행을 저질렀던 때는 21세였는데 당시에는 미성년자에 해당하는 나이였다. 할머니는 당시 가스로 사람들을 죽이는지 알지 못했다고 주장해 왔다. BBC 베를린 특파원 대미언 맥기네스는 나치의 잔학 행위를 동조했거나 방관했다는 이유로 여성이 재판정에 서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라며 대부분 비서가 아니라 수용소 경비들이 주종을 이룬다고 했다. 검찰이 이름가르트 할머니에 의문을 품고 SS 기록 등을 조사하기 시작한 것은 2016년에 들어서다. 공영방송 ARD에 따르면 한 검사는 이스라엘에 있는 스튜트호프 수용소 생존자들을 면담했다. 검찰의 공소장에는 그녀가 학살을 방조하거나 도운 것은 물론 직접 살해 행위에 연루됐다고 지적했다. 1943년 6월부터 1945년 4월까지 수용소 지휘관의 속기사 겸 비서로 일하며 유대인, 폴란드 빨치산, 소련군 전쟁포로 등을 체계적으로 살해하는 데 책임있는 이들을 도운 혐의라고 적시돼 있다. 지휘관이었던 폴 베르너 호페는 1957년 보쿰 재판에서 9년형을 선고 받았다. 지난해 스튜트호프 경비원이었던 브루노 데이(93)는 함부르크 법원에서 2년 집행유예를 받았다. 그는 당시 법정에서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에게 사죄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월드피플+] 97세 홀로코스트 생존자, 코로나19도 극복 “절대 포기 말라”

    [월드피플+] 97세 홀로코스트 생존자, 코로나19도 극복 “절대 포기 말라”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코로나19 역시 거뜬히 이겨냈다. 25일(현지시간) 데일리메일은 나치 독일의 끔찍한 유대인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90대 노인이 코로나19도 극복했다고 전했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릴리 에버트(97) 할머니는 이달 초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17일 백신 1회차분을 맞았지만 바이러스를 비껴가지 못했다. 고령인 할머니를 혼자 병원에 보냈다가 영영 못 보게 될까 두려웠던 가족은 런던 할머니 자택에서 격리치료를 하기로 했다. 지역 보건인이 정기적으로 방문해 할머니 상태를 점검했고, 산소공급장치를 사용할 줄 아는 친척이 돌아가며 할머니를 돌보았다.그리고 지난주, 할머니는 기적적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증손자 도브 포먼(17)은 “할머니가 한 달 만에 산책에 나섰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100% 기력을 회복했다”면서 “할머니는 진정한 싸움꾼”이라고 기뻐했다. 이렇게 금방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할머니는 “긍정적 태도”를 꼽았다. 25일 영국 유명 아침 프로그램인 ITV ‘굿모닝 브리튼’에 출연한 할머니는 “인생 고비마다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삶은 선택이다. 살기로 선택하고 인생을 끌고 가느냐, 아니면 포기하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자신은 살기를 선택했고,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포기하지 말자, 계속 싸우자 이렇게 나 자신과 약속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코로나19는 끔찍하다. 팬데믹이 언제 종식될지 모르나,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안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타인의 안녕을 위해 거리두기를 지켜라. 팬데믹은 언젠간 지나갈 것”이라고 당부했다. 나치 독일의 압제에서 살아남아 이제는 코로나19까지 이겨낸 할머니의 사연은 변이 바이러스로 애를 먹는 영국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사디크 칸 런던시장은 “할머니의 회복은 엄청난 영감을 불어넣는다”면서 “할머니가 계속 건강하시기를 바란다”고 밝혔다.할머니는 지난해 7월 홀로코스트 생존자로 처음 언론 주목을 받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어머니와 형제자매를 잃고, 독일 바이마르 옛 부헨발트 수용소로 이송된 할머니는 그해 4월 연합군에 의해 해방됐다. 당시 21세였던 할머니는 한 미군에게 행운을 비는 글이 담긴 독일 지폐를 받았다. 지폐에는 ‘새로운 삶의 시작, 행운과 행복을 빈다’라고 적혀있었다. 할머니는 “강제수용소에서 해방된 후 우리는 식량도 물도 없이 큰 고통을 겪었다”면서 “그때 미군들을 만났고 그중 한 명이 이런 지폐를 나에게 건넸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어 준 첫 번째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오랜 시간 할머니의 마음속에 소중하게 간직된 지폐에 얽힌 사연은 증손자인 포먼에게 전해졌고 그는 곧 이 사실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며 그때 그 군인 찾기에 나섰다. 그리고 놀랍게도 사람들의 ‘좋아요’를 타고 지폐를 건넨 은인이 밝혀졌다. 할머니에게 행운의 지폐를 건넨 미군은 과거 뉴욕에 살았던 하이먼 슐만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슐만을 찾았을 때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고, 결국 두 사람의 인연은 이어지지 못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5만명 이야기 남긴 ‘인터뷰 킹’

    5만명 이야기 남긴 ‘인터뷰 킹’

    CNN 간판 ‘래리 킹 라이브’로 명성 얻어포드·만델라·빌 게이츠 등 각계각층 초대폐암·심장 수술로 건강 악화… 애도 물결‘토크쇼의 제왕’으로 불렸던 유명 방송인 래리 킹이 23일(현지시간) 별세했다. 87세. CNN은 킹이 공동 설립한 미디어 네트워크인 오라 미디어가 이날 킹이 로스앤젤레스(LA)의 시더스 사이나이 의료센터에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그가 코로나19에 감염돼 같은 병원에 입원한 사실이 이달 초 알려진 뒤 20여일 만으로, 회사 측은 정확한 사인을 밝히지는 않았다. 뉴욕의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킹은 1957년 마이애미에서 디스크자키로 미디어업계에 발을 들인다. 원래 그의 성은 ‘자이거’였지만 대중이 더 기억하기 쉬워야 한다는 주변의 조언에 따라 ‘킹’이라는 성을 쓰게 됐다. 1978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그가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CNN의 간판 토크쇼 ‘래리 킹 라이브’를 진행하면서부터다. 1985년부터 25년간 6000여편을 촬영했으며, 그가 만난 인물은 제럴드 포드 이래 버락 오바마까지 모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달라이 라마, 넬슨 만델라, 미하일 고르바초프, 빌 게이츠 등 국적과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커다란 안경을 쓰고 멜빵을 걸친 복장은 고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으며, 자연스러운 대화를 유도하는 그의 인터뷰 방식은 후배 방송인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0년 종영 후 최근 몇 년간은 러시아 국영방송 RT에서 ‘래리 킹 나우’를 진행해 왔다. 그가 인터뷰한 인물은 5만명이 넘는다.고인은 당뇨병 등 여러 질환으로 건강상의 위기도 수차례 겪어 왔다. 몇 차례 심근경색으로 1987년에 심장 수술을, 2017년에는 폐암 수술을 받았다. 또 지난해에도 협심증으로 다시 수술을 받은 바 있다. 비영리단체 ‘래리 킹 심장 재단’을 만들어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운 것도 자신의 건강 문제가 계기가 됐다. 킹은 평생 7명의 여성과 8번 결혼해 5명의 자녀를 뒀다. 지난해에는 심근경색과 폐암으로 잇달아 두 자녀를 잃기도 했다. 고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며 각계의 추모도 이어졌다. CNN 창업자 테드 터너는 성명에서 “킹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방송 저널리스트였다”고 애도했다. 킹과 여러 차례 인터뷰했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대변인을 통해 “그의 높은 전문성과 반박의 여지가 없는 언론인으로서의 권위를 평가한다”고 추모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래리 킹을 빛낸 다섯 장면들과 인터뷰觀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래리 킹을 빛낸 다섯 장면들과 인터뷰觀

    53년의 방송 경력에 인터뷰한 사람이 5만명을 넘는다. 인터뷰 사진을 보면 항상 그는 팔꿈치로 책상을 짚은 채 몸을 앞으로 기울인 채였다. 호기심과 인터뷰이에 대한 애정, 관심이 얼마나 깊은지 반증하는 대목이다. 달라이 라마와 제럴드 포드 이후 미국의 모든 현역 대통령들, 미하일 고르바초프, 팔레스타인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 빌 게이츠, 엘리자베스 테일러, 레이디 가가 등 많은 유명인을 만났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자신을 여러 차례 인터뷰한 그를 특별히 애도했다고 크렘린궁이 밝혔다. 23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시더스 시나이 병원에서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진 유명 방송인 래리 킹의 인터뷰 스타일은 출연자의 긴장을 풀어줬고 청중과 쉽게 공감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AP 통신은 평가했다. 미국 전역에 송출되는 라디오 방송 진행자로 오랜 시간 활약했던 그는 1985년부터 2010년까지 CNN에서 방영된 ‘래리 킹 라이브’를 진행하며 명성을 얻었다. 킹은 25년 동안 이 쇼에서 정치 지도자, 연예인, 운동선수, 영화배우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반인까지 다양한 인물을 만났다. 총 6000여편을 촬영한 뒤 2010년 은퇴했다. AP는 “반세기에 걸친 방송계의 거인”이라며 그의 유명인 인터뷰와 정치적 논쟁, 화제성 토론은 큰 주목을 받았다고 전했다. 영국 BBC는 그의 방송 커리어에서 다섯 가지 빛나는 순간을 돌아봤다. 먼저 1993년 앨 고어 부통령과 텍사스주 재벌 로스 페롯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주제로 토론을 벌여 1억 6300만명이란 경이로운 시청률을 기록한 일이다. 두 번째로는 아라파트와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 후세인 요르단 국왕 등 평화와 전쟁 사이를 오가던 이들을 동시에 인터뷰한 일이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처음 현장에 출동한 응급요원들과 생존자들, 35명의 각국 지도자들과 대사들을 인터뷰한 일이다. 네 번째로는 고인이 감옥에서 진행했던 인터뷰들로 여러 상을 수상한 순간이었다. 유죄 판결을 받은 어머니와 아들 살해범 산테오 케네스 카임스, 텍사스주에서 처음으로 사형 집행된 여성인 카를라 파예 터커, 추락한 세계 챔피언 마이크 타이슨 등이다. 마지막으로 도통 인터뷰에 응하지 않기로 유명한 이들과의 인터뷰다. 유명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는 고인과 1988년 마지막으로 인터뷰했다. 킹은 나중에 시나트라와 역시 좀처럼 인터뷰에 응하지 않던 명배우 말론 브랜도를 인터뷰한 일을 경력 중 가장 빛나는 순간 가운데 하나였다고 돌아봤다.고인은 방송계의 퓰리처상에 해당하는 피바디상을 두 차례나 수상하는 등 영광을 많이 누렸지만 비판도 적지 않았다. 인터뷰이가 모든 것을 거리낌없이 얘기하게 방치한다든가, 인터뷰이와 맞짱을 뜨지 않는 접근, 결론을 맺지 않으려 한다는 지적 등이었다. 2015년 BBC의 에반 데이비스와 인터뷰를 통해 이런 지적들에 반박했다. 그는 “내가 뒤로 물러날수록, 좋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듣는 데 집중하고, 게스트를 걱정할수록 여러분은 카메라가 사라진 것처럼 느끼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CNN에서 자신의 뒤를 이어 프로그램을 맡은 영국 기자 겸 방송인 피어스 모건의 문제점을 꼬집기도 했다. 그는 모건이 “자신의 얘기를 너무 늘어놓거나 해서 (미국 시청자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팔아먹으려 한다”고 말했다. 모건은 3년 뒤 CNN에서 잘리자 반격했다. 자신의 프로그램은 “총기 통제와 목숨을 살리는 일만을 다뤘다. 당신의 쇼는 유명세를 이용해 연기만 옆으로 날리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고인이 공동 설립한 오라 미디어는 이날 그의 죽음을 알렸지만 사인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달 초 코로나19에 감염돼 일주일 이상 입원하기도 했고, 당뇨 등 여러 질환을 앓았다. 몇 차례의 심근경색으로 1987년 심장 수술을 받았으며, 2017년에는 폐암에 걸려 수술을 받은 뒤 치유됐다. 2019년에도 협심증으로 수술을 받았다. 1933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로렌스 하비 자이거란 이름으로 태어난 고인은 유대인 집안의 엄격한 전통을 지켰지만 나중에 불가지론자가 됐다. 아버지 에드워드가 44세로 세상을 뜨자 고교를 졸업한 뒤 여러 해 어머니를 돕기도 했다. 방송 일이 너무도 하고 싶어 20대 초반 플로리다주로 이주해 라디오 방송에 취직했다. 처음 방송이 시작되기 몇분 전 자신의 성(姓)을 “덜 윤리적인” 이름으로 바꾸고 싶다고 방송국 사장에게 말한 뒤 마침 킹스 홀세일 리쿼 광고가 눈에 띄어 ‘킹’으로 바꿨다고 했다. 킹은 일곱 여성과 여덟 차례 결혼해 다섯 자녀를 뒀다. 손주가 여덟, 증손주가 넷이 있다. 지난해에는 두 자녀를 먼저 흙에 묻었다. 7월 말에는 52세의 딸 카이아가 폐암으로, 다음달에는 65세였던 아들 앤디가 심근경색으로 먼저 세상을 등졌다. 그는 당시 소셜미디어에 “자녀들을 잃어 고장 난 느낌을 갖는다. 어떤 부모도 아이를 먼저 흙에 묻어선 안된다”고 적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미 대통령 취임식 눈길 사로잡은 패셔니스타, 해리스 부통령 의붓딸

    미 대통령 취임식 눈길 사로잡은 패셔니스타, 해리스 부통령 의붓딸

     20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 최고의 패셔니스타는 단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의붓딸 엘라 엠호프(22)였다. 새엄마의 푸른 빛이 감도는 보랏빛 패션은 역사적, 정치적 의미가 상당했지만 말이다.  1.8m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유지하느라 참석자 숫자가 적긴 했지만 부통령의 부군 더글러스 엠호프와 전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엘라는 이날 시상식에서 아무런 역할이 없었고 바이든 대통령과 새엄마의 취임 선서, 동갑내기 계관시인 어맨다 고먼의 시 낭송을 듣고 일어서 손뼉을 마주친 것뿐이었다. 하지만 많은 카메라 기자들과 눈썰미 있는 패션계 인사들이 그녀가 입은 롱코트에 시선이 꽂혔다. 저유명한 뉴욕 파슨즈 스쿨에서 섬유학을 전공하는 그답게 코트는 누가 보더라도 멋져 보였다. 곱슬머리를 가운데 가르마 타고 검정 마스크 안에 뭔가를 숨긴 듯한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했다.  사실 엘라는 오래 전부터 소셜미디어에 자신이 뜨개질해 지은 옷들을 입은 사진들을 올리면서 빼어난 패션 취향을 뽐내곤 했다. 그는 개러지(Garage) 인터뷰를 통해 “전에도 말했듯이 내 스타일은 아주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취임식이란) 기념비적인 자리인 만큼 예외가 될지도 모르겠다. 아주 기념비적인 모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입은 코트는 명품 브랜드 미우미우의 장식이 딸린 A라인 코트와 아주 비슷해 보인다고 패션 전문 인스타일은 전했다.  여성 잡지 마리 클레르는 많은 미국인들이 엘라가 계속 이렇게 돋보이는 감각을 보여주길 바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엘라의 오빠 콜(27)은 얼마 전 뉴욕 타임스(NYT) 인터뷰를 통해 “CNN 방송에서 아버지를 보는 게 아직은 좀 이상하다”면서 “우리는 평생 정치와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아서 이전까지는 있을 수 없던 일”이라고 말했다.엘라는 “대선 당일 부모님을 보고 나서야 상황이 달라졌다는 게 실감 났다”라면서 “부모님을 전 세계와 공유한다는 생각이 멋지면서도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자메이카 이민자 아버지와 인도계 어머니 아래 태어난 해리스 부통령은 유대인 변호사인 엠호프와 2014년 결혼했다. 엠호프가 16년을 함께 한 전처 커스틴과 이혼한 지 몇 년 뒤였다. 콜과 엘라는 부모의 이혼 당시 각각 중학생, 초등학생이었다. 해리스 부통령은 보라색 옷으로 눈길을 끌었다. 보라색과 흰색은 여성 참정권 운동의 상징으로 쓰이는 색이다. 보라색은 미국의 첫 흑인 여성 하원의원이자 1972년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던 셜리 치솜이 선거운동 기간 주로 썼던 색이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 여사,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모두 보랏빛 계열의 의상을 차려 입은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또 보라색은 민주당의 상징색인 푸른색과 공화당의 상징색은 붉은색을 섞을 때 나오는 색이라 초당적 색깔로 통한다. 통합의 메시지를 담은 색깔인 셈이다.  CNN은 “해리스가 보라색 옷을 입은 것은 본인에게 매우 중대한 의미가 있는 것”이라며 “치솜이 해리스의 정치적 여정에 영감을 주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미국의 흑인 디자이너들이 제작한 보랏빛 의상을 통해 첫 여성·흑인 부통령으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부각시켰다. 해리스 부통령은 승리 연설 땐 흰색 정장을 입었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의 딸 얘슐리(39)는 절대로 아버지 행정부에서 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재차 다짐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의 자녀들이 정치와 거리를 두려는 모습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큰 딸 이방카를 비롯해 사위 재러드 쿠슈너, 오빠, 오빠의 약혼녀까지 워싱턴 정가를 주름잡으려 했던 것과 대조를 이룬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열린세상] 정치인의 막말이 만드는 카르마/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

    [열린세상] 정치인의 막말이 만드는 카르마/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

    내가 신문 칼럼을 쓰면서 다짐했던 것이 있는데, 그것은 정치 이야기는 다루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요즘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하도 많아 나라도 정치 이야기를 안 하는 게 다른 사람을 돕는 길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다짐을 깨고 정치 이야기를 하려 한다. 나는 막 카르마에 대한 책의 원고를 탈고했다. 카르마와 관련해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정치인의 ‘막말’에 대한 것이다. 정치인들은 아무 말이나 뱉어도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카르마 법칙의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막말에는 엄청나게 나쁜 업보가 따르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카르마 법칙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불교의 정통 교리인 이 법칙에 따르면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은 씨앗의 형태로 우리의 의식에 저장됐다가 나중에 기운이 상응할 때 발현된다. 이 법칙의 철칙은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법칙이 엄중한 것은 우리가 하는 모든 것에 과보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몸으로 하는 행동뿐만 아니라 말과 생각으로 하는 것이 모두 과보를 만든다. 남을 때리면 당연히 그에 대한 업보가 있지만 말로 욕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업보가 생긴다. 그뿐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도 업보를 만들어 낸다. 이것은 예수님이 말한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과 통한다 하겠다. 카르마 법칙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나쁜 말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언젠가는 나도 그런 아픔을 겪게 된다고 말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막말을 하면 그때 생겼던 부정적인 에너지가 내 무의식에 저장된다. 이 기운은 결코 없어지지 않고 잠재돼 있다가 그 기운에 상응하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발현하면서 좋지 않은 일을 발생시킨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그동안 저질적인 막말과 기만, 오만 등으로 국민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가? 카르마 법칙에 따르면 그들은 나중에 분명히 국민이 겪었던 아픔을 겪게 된다. 그때 그들은 혹독한 고통을 겪을 터인데 그것이 이전에 했던 막말의 과보라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만일 그들이 막말을 하고 그 과보로 큰 고통을 겪을지 안다면 결코 막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저 과보를 어찌 받으려고 저렇게 경거망동하는지 외려 처량하기까지 하다. 카르마 연구가들은 우리가 예기치 못한 불행을 겪으면 그것은 전생(?) 언젠가 행했던 악행의 과보라고 생각하라고 주장한다. 그럼으로써 공연한 복수심을 갖지 말고 더이상의 카르마를 짓지 말라고 충고한다. 불교나 기독교 같은 세계 종교들이 무조건적인 용서를 가르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내가 불행을 당하는 것은 이전에 행한 악행의 과보이니 감내하고 보복하겠다는 마음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래야 카르마를 소멸할 수 있다. 이것이 카르마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이 카르마 법칙은 인도 사람들이 가장 먼저 발견했지만 이것을 발전시킨 사람은 현대의 서양인, 특히 미국인이다. 그중에서도 미국에서 20세기 최고의 예언자라 불렸던 에드가 케이시는 제일 유명하다. 그는 독실한 개신교도이면서 카르마 법칙을 설파했는데 수많은 사람의 전생을 읽은 것으로 이름이 높다. 그가 정리한 사례를 보면 믿을 수 없는 것들이 많이 나온다. 예를 들어 전생에 높은 귀족이었지만 밑의 사람들을 조롱하고 비웃었다는 과보로 이번 생에 수많은 장애를 갖고 태어나 평생을 고생하는 사람이 그것이다. 당사자 면전에서 그를 고문하거나 욕을 한 것이 아니고 멀리서 그 사람이 모르는 상태에서 조롱했는데도 그런 엄중한 과보를 받은 것이다. 물론 전생 같은 것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돼 있고 주류 사회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예를 들어 아마존 최장의 베스트셀러였던 ‘나는 환생을 믿지 않았다’라는 책을 쓴 브라이언 와이스는 정신과 의사이며 엘리트 유대인인데도 환생과 카르마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를 했다. 따라서 카르마 법칙을 사이비 이론이라고 치부하지 말고 좀더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게 좋겠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존 레넌 ‘이매진’ 제작자-여배우 살해범 필 스펙터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존 레넌 ‘이매진’ 제작자-여배우 살해범 필 스펙터

    존 레넌의 ‘이매진’을 프로듀싱했던 미국의 유명 음악제작자이자 2003년 할리우드 여배우 겸 모델 라나 클락슨을 살해한 혐의로 2009년부터 복역해 온 필 스펙터(82)가 세상을 떠났다고 영국 BBC가 17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캘리포니아 교정재활국은 “캘리포니아 헬스케어 시설 수용자인 필 스펙터가 16일 오후 6시 35분 외부 병원에서 자연사한 것으로 선언됐다. 산호아킨 보안관실의 부검의가 공식 사인을 밝힐 것”이라고 발표했다. 비틀스를 비롯해 라이처스 브러더스, 이케(Ike), 티나 터너 등과 함께 일했던 고인은 1961년부터 1965년까지 톱 40에 든 노래 20곡을 제작했다. 그는 이른바 ‘사운드 오브 월’ 기법이란 것을 선보였는데 현악기와 관악기 연주를 따로 녹음해 소리의 층을 쌓아 오케스트라 소리처럼 만드는 방법으로 비치 보이스,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 많은 가수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마약과 알코올 중독에 빠져 1980년대와 90년대 음악 활동을 그만 둬야 했다. 그러다 2003년 2월 캘리포니아주 알함브라 자택에서 클락슨이 머리에 총알을 맞은 주검으로 발견되면서 다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칼과 가위가 난무하는 공포영화에 곧잘 출연했고 영화 ‘바버리안 퀸’에 주인공으로 나왔던 그녀는 몇 시간 전 나이트클럽에서 스펙터를 만났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클락슨이 총에 입을 맞췄는데 그 순간 발사된 사고였다고 재판에서 주장했다. 하지만 네 여성이 스펙터는 술이나 약 기운에 취하면 자신들에게 총을 겨누곤 했다고 증언했다. 1심은 무효가 되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급살인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고 19년형을 언도받았다. 1939년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러시아계 유대인 부모 아래 태어났다. 소년이었을 때 아버지가 살해되자 어머니는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했다. 10대 시절 연주자로 밴드 ‘테디베어스’를 세 고교 친구들과 결성했다. 1958년 아버지의 묘비명 ‘투 노 힘 이즈 투 러브 힘(To know him is to love him)’ 앨범이 빌보드 핫 100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밴드는 이듬해 해체됐다. 1961년 그는 자신의 레코드 레이블 ‘필리스(Philles)’를 만들어 걸그룹 ‘크리스털스’와 ‘로네츠’ 등의 음반을 제작해 1963년 ‘비 마이 베이비(Be My Baby)’와 ‘베이비 아이 러브 유(Baby I Love You)’ 등이 히트했다. 라이처스 브러더스의 ‘유브 로스트 댓 러빙 필링(You’ve Lost That Lovin‘ Feelin’)’과 ‘언체인드 멜로디’도 그의 손을 거쳤다. 비틀스의 마지막 앨범 ‘렛 잇 비’와 레넌의 솔로 앨범 ‘이매진’이 그의 프로듀싱 작품이었다. 1970년 비틀스 마지막 앨범을 제작하면서 초창기 로큰롤 사운드로 돌아고 싶던 폴 매카트니와 충돌을 빚었다. ‘롱 앤드 와인딩 로드’에 오케스트라 반주와 합창을 삽입한 것에 격분한 매카트니는 앨범 발매를 막으려고 하기도 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이상하고 괴이쩍은 그의 행동들이 알려졌다. 레너드 코헨이 앨범 ‘데스 오브 어 레이디스 맨’ 세션 작업을 할 때 그가 머리에 총을 겨누곤 했다는 일화가 대표적이었다. 로네츠의 리드싱어 베로니카 로니 베넷과 두 번째로 결혼했으나 1974년 이혼했다. 그녀가 1990년 쓴 자서전을 보면 그는 몇년이나 약물 남용을 부추겼고 살해하겠다고 겁을 주는가 하면 지하실에 유리로 덮인 관을 놔두고 그녀에게 들어가라고 했다. “70년대 초 (그를) 떠났을 때 그러지 않았다면 난 거기서 죽을 것이란 점을 알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몇주 뒤 정말로 클락슨이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스펙터는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인터뷰를 통해 “난 어느 정도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악마가 내면에서 나와 싸운다”고 털어놓았다. 록밴드 블론디의 기타리스트 크리스 스타인이 이 인터뷰 기사에 댓글을 달았는데 “1970년대 그의 집을 갔더니 문을 연 그의 한 손에는 마니슈비츠 와인 병이 들려 있었고, 다른 손에는 장전돼 있는 것 같은 45구경 자동소총이 들려 있었다. 오래 된 얘기다. 내 생각에 그는 미친놈이었다”고 적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미국 보수진영의 ‘큰손’ 카지노 재벌 셸던 애덜슨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미국 보수진영의 ‘큰손’ 카지노 재벌 셸던 애덜슨

    세계 최대 카지노 제국을 일구고 미국 공화당의 ‘큰손’으로 정계를 좌지우지하고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를 막후에서 조정한 셸던 애덜슨이 별세했다. 향년 87. 애덜슨이 소유한 카지노 리조트 회사인 라스베이거스 샌즈는 고인이 비호지킨 림프종 치료와 관련된 합병증으로 전날 밤 사망했다고 12일(현지시간) 밝혔다. 미국 경제전문 매체 포브스 추정 330억 달러(약 36조원)의 순자산을 보유한 애덜슨은 역대 공화당 대선 후보들의 최대 후원자 중 한 명으로 유명하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한 후원을 통해 두 나라 우파 정치 어젠다의 실현을 적극 뒷받침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평가했다. 1933년 보스턴에서 우크라이나계 유대인 택시 기사 부친과 영국 이민자 출신 모친 사이의 네 자녀 중 한 명으로 태어난 애덜슨은 대공황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보스턴의 뒷골목에서 어린 나이 때부터 신문을 팔며 스스로 돈을 벌었다. 16세의 나이로 공장과 주유소 여러 곳에 사탕 자판기를 운영하던 그는 1979년 동업자들과 시작한 라스베이거스 컴퓨터 박람회 ‘컴덱스’로 대박을 터뜨렸다. 컴퓨터가 일반 가정에 보급되기 전에 시작한 컴덱스가 1980∼1990년대 미국 최대 컴퓨터 전시회로 성장하면서 애덜슨은 이 사업으로만 5억달러를 벌었다. 카지노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1989년 라스베이거스 샌즈 호텔 앤드 카지노를 1억 2800만달러에 인수하면서부터다. 1991년 이스라엘 출신의 두 번째 부인 미리암과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그는 5년 뒤 15억 달러를 들여 기존 호텔을 부수고 1999년 베네치아 풍으로 완전히 개조한 베네시안 리조트 호텔 카지노를 개장했다. 8000개 객실과 풋볼 경기장 2개 크기의 카지노를 갖춘 새 호텔은 그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줬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2007년에는 마카오에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큰 호텔인 베네시안 마카오를 열었다. 풋볼 경기장 10배 크기의 이 호텔 카지노는 중국 등 아시아의 도박 애호가들을 끌어모았다. 마카오, 싱가포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등에 잇따라 새 카지노 호텔을 연 애덜슨은 2014년 블룸버그 억만장자지수(BBI)에서 408억 달러의 순자산으로 세계 8∼9위 부자가 됐다. 2004년 미국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최대 후원자 중 한 명이었던 애덜슨은 2012년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재선을 저지하기 위해 공화당 후보들에게 9000만 달러의 가장 많은 정치자금을 후원하며 포브스 인터뷰를 통해 “난 아주 부자인 사람들이 선거에 영향력을 미치려 하는 데 반대한다. 하지만 난 할 만하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3월 당시 공화당의 대선 잠룡 4명이 라스베이거스로 달려와 그를 만나려 할 정도였다. 2016년 5월에는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된 트럼프와 만나 1억 달러 이상의 역대 최고액을 후원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실제로 낸 돈은 2500만 달러였다고 NYT는 전했다. 이 금액도 당시 다른 공화당 후원자들에게서 외면당하던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큰 힘이 됐다. 애덜슨이 다음해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을 위해 낸 500만 달러는 취임식 단일 후원금으로는 역대 최고액이다. 그는 지난해 대선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을 후원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왜 더 도와주지 않느냐’며 불만을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시오니스트(유대 민족주의자)인 애덜슨은 네타냐후 총리와 절친한 사이로 이스라엘에 자택과 텔아비브 신문 하욤을 소유했다. 일간 라스베이거스 리뷰저널을 2015년 사들였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긴 일,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체결한 이란 핵합의를 파기하는 일에도 막후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고인이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 골란고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 인정, 이스라엘과 이웃나라들의 평화 추구 등을 계속해 옹호했다”면서 “그야말로 진정한 아메리칸드림을 살았다. 그의 창의력, 천재성, 독창적인 면모는 막대한 부를 가져왔지만 그의 캐릭터와 자선가로서의 너그러움은 그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었다”고 애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미리암에게 자유의메달을 수훈했다.부시 전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셸던은 너그러운 자선가로 특히 의학 연구와 유대인 문화유산 교육에 공을 들였다”며 “그는 미국의 애국자”라고 애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아델슨 부부가 “유대인과 유대국가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기여했다”면서 “고인은 개인적으로도 우리에게 대단한 친구였으며 유대인, 유대국가, 이스라엘과 미국의 연대에 믿기지 않는 챔피언”이었다고 돌아봤다. 고인은 언론인, 동업자, 심지어 아들들과도 법정 다툼을 불사하는 것으로 악명 높았다. 그의 회사는 부패 관련 법률을 위반한 뒤 돈으로 해결하는 일로 정부 조사를 받았다. 2012년 NYT 사설은 그를 가리켜 “정치자금을 문어발식으로 뿌려 자신의 개인적, 이데올로기적, 금융 어젠다를 나아가게 하려고 역대 어느 정치 기부자보다 많은 돈을 썼지만 국가적으로 필요한 일들과 많이 상충한다”고 지적했다. 미망인 미리암은 성명을 통해 고인이 익명으로도 기부했고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탓에 카지노 운영이 큰 타격을 입었지만 라스베이거스 샌즈 직원들에게 월급을 계속 지급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몸집이나 말투나 거칠었지만 지난 20여년 걷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운 와병 중에도 다른 이들의 필요에 늘 예민하게 굴었다”고 돌아봤다. “셸던에게 자신의 대체 불가능한 역할을 인정받는 일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외톨이가 된다는 의미가 될지라도 옳은 일을 하는 것만이 그에게 중요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이슈플릭스] 러 농부, 두 반려견 물어죽인 늑대 맨손으로 때려잡아

    [이슈플릭스] 러 농부, 두 반려견 물어죽인 늑대 맨손으로 때려잡아

    리아비로비잔 등 현지매체 보도에 따르면, 지난 2일 극동 유대인자치주 비로비잔 남서쪽 노보트로이츠코예 마을에서 야생 늑대 한 마리가 농장을 습격했다. 당시 늑대는 개 두 마리를 물어 죽이고 말 한 마리까지 공격한 상태였다. 그리고 손전등을 들고나온 한 남성 농부에게까지 달려들었다. 러시아에서 한 농부가 늑대를 맨손으로 때려잡아 화제가 되고 있다. 그 모습은 농장 안을 비추는 폐쇄회로(CC)TV 카메라에 고스란히 찍혔다. 영상에는 이 남성이 늑대에게 습격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농부는 자신을 공격한 늑대와 함께 눈으로 뒤덮인 농장 바닥을 이리저리 뒹굴며 싸웠고 결국 늑대의 목을 졸라 죽일 수 있었다. 영상은 총 3분으로 이 농부가 늑대를 반복적으로 때리는 모습으로 끝이 나지만, 한 매체는 “농부는 총을 쥘 시간이 없었기에 늑대와 맨손으로 싸웠다”고 설명했다. 농부는 이날 늑대가 자신의 개 두 마리를 죽이고 나서 말 한 마리까지 공격했기에 농장의 소들까지 공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말했다. 농부는 늑대에게 물려 다치긴 했지만 상처는 그리 심하지 않았는지 자신이 때려잡은 늑대의 사체를 들고 기념사진까지 촬영했다. 그는 다음 날 광견병 검사를 받았지만 결과는 알려지지 않았다. 농장에 늑대가 습격했다는 소식에 이 마을에서는 다음날 가축을 대상으로 광견병 예방 접종이 시행됐다. 이에 대해 마을 주민은 이 지역의 숲이 파괴된 뒤 개와 농장 동물들을 노리는 늑대들의 습격이 더 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숲이 파괴되고 불에 타 없어지면서 늑대들은 사냥할 수 있는 먹이를 잃고 있다”면서 “이는 전적으로 인간의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숲이 사라지는 것은 늑대들이 집을 잃은 것과 같다”면서 “이 때문에 늑대들이 숲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지 저명한 수의사 갈리나 주바 박사는 죽은 늑대가 광견병에 걸렸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곧 우리는 늑대가 공격한 정확한 이유가 먹이 부족 탓인지 아니면 광견병에 걸렸기 때문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유대인자치주 공식 포털(eao.ru)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의회 난동은 미국판 나치” 터미네이터의 비판

    “의회 난동은 미국판 나치” 터미네이터의 비판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로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이자 전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아널드 슈워제네거(74)가 미 의회 불법 난입 사태를 나치 독일에 비유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슈워제네거는 10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분노를 담은 영상 메시지를 올렸다. 그는 1938년 나치가 유대인을 상대로 저지른 대규모 약탈, 방화 사건인 ‘크리스탈나흐트’(수정의 밤)를 언급하며 “지난 수요일은 미국판 크리스탈나흐트였다”고 탄식했다. 이어 “폭도들은 의사당 유리창을 깨뜨린 것만이 아니다. 우리가 당연시하던 신념을 산산조각 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책임도 강조했다. 그는 “공정한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 하고, 사람들을 거짓말로 이끌어 쿠데타를 추진했다”며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했다. 슈워제네거는 주지사 시절 공화당 소속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차별과 반이민 정책, 환경규제 철폐 등에 대해 날을 세우는 등 비판을 이어 왔다. 외교관들도 이례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AP통신에 따르면 미국의 직업 외교관들이 이번 사태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책임을 묻고, 수정헌법 25조 발동 등을 포함한 법적 조치를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의 두 건의 전문을 작성해 국무부에 전달했다. 이들은 이번 사태가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미국의 신뢰를 크게 약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ABC뉴스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지난 8∼9일 성인 57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7%가 이번 사태에 트럼프 대통령이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6%가 트럼프 대통령이 퇴임 전에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올해 100세 된 현존 최고령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어떤 종목 어떤 선수였나

    올해 100세 된 현존 최고령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어떤 종목 어떤 선수였나

    현존하는 최고령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아그네스 켈레티(Agnes Keleti)가 지난 9일(현지시간) 100세 생일을 맞았다. 헝가리의 체조 대표선수였던 켈레티는 올림픽에서 5차례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총 10개의 메달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16세에 처음 국내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지만, 2차 세계대전 등 국내외 상황으로 인해 1952년 31세에 처음으로 올림픽에 출전하게 된다. 켈레티는 1952년 출전한 헬싱키 올림픽에서 마루운동에서 개인 금메달 1개를 획득했으며, 단체전에서 은메달과 동메달 2개를 획득해 총 4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1954년 출전한 세계챔피언십에서 이단평행봉에서 1위를 차지하며 30대에 전성기의 운동능력을 발휘한다. 1956년 켈레티는 35세의 나이로 두 번째 올림픽에 출전한다. 개인 마루, 평행봉, 평균대 종목에서 각각 1위를 차지하며 금메달 3개와 단체전에서 1개의 금메달을 획득해 총 금메달 4개의 기록을 추가했다. 또 개인과 단체전에서 각각 은메달을 추가 획득해 1956년 대회에서만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로 총 6개의 메달을 거머쥔다. 그는 이 기록으로 올림픽 여자 체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최고령의 운동선수로 남아있다.1956년 멜버른 올림픽이 끝난 뒤 켈레티는 당시 헝가리 혁명 등 고국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호주로 망명한다. 재혼 후에는 이스라엘로 이주해 이스라엘 체조 코치로 활동했으며, 지도자로서 공을 인정받아 2017년 이스라엘 정부가 수여하는 ‘이스라엘 프라이즈(Israel Prize)’ 상을 수상했다. 올림픽 역사상 가장 성공한 유대인 여성 운동선수로 인정받고 있는 켈레티는 100세 생일을 맞아 “홀로코스트(나치의 유태인 학살)에서도 살아남아 100살까지 살아있다는 것이 가장 좋은 추억”이라고 말했다. 강경민 콘텐츠 에디터 maryann425@seoul.co.kr
  • 러시아 농부, 두 반려견 물어죽인 늑대 맨손으로 때려잡아

    러시아 농부, 두 반려견 물어죽인 늑대 맨손으로 때려잡아

    러시아에서 한 농부가 늑대를 맨손으로 때려잡아 화제가 되고 있다. 리아비로비잔 등 현지매체 보도에 따르면, 지난 2일 극동 유대인자치주 비로비잔 남서쪽 노보트로이츠코예 마을에서 야생 늑대 한 마리가 농장을 습격했다. 당시 늑대는 개 두 마리를 물어 죽이고 말 한 마리까지 공격한 상태였다. 그리고 손전등을 들고나온 한 남성 농부에게까지 달려들었다.그 모습은 농장 안을 비추는 폐쇄회로(CC)TV 카메라에 고스란히 찍혔다. 영상에는 이 남성이 늑대에게 습격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농부는 자신을 공격한 늑대와 함께 눈으로 뒤덮인 농장 바닥을 이리저리 뒹굴며 싸웠고 결국 늑대의 목을 졸라 죽일 수 있었다.영상은 총 3분으로 이 농부가 늑대를 반복적으로 때리는 모습으로 끝이 나지만, 한 매체는 “농부는 총을 쥘 시간이 없었기에 늑대와 맨손으로 싸웠다”고 설명했다. 농부는 이날 늑대가 자신의 개 두 마리를 죽이고 나서 말 한 마리까지 공격했기에 농장의 소들까지 공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말했다. 농부는 늑대에게 물려 다치긴 했지만 상처는 그리 심하지 않았는지 자신이 때려잡은 늑대의 사체를 들고 기념사진까지 촬영했다. 그는 다음 날 광견병 검사를 받았지만 결과는 알려지지 않았다. 농장에 늑대가 습격했다는 소식에 이 마을에서는 다음날 가축을 대상으로 광견병 예방 접종이 시행됐다. 이에 대해 마을 주민은 이 지역의 숲이 파괴된 뒤 개와 농장 동물들을 노리는 늑대들의 습격이 더 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숲이 파괴되고 불에 타 없어지면서 늑대들은 사냥할 수 있는 먹이를 잃고 있다”면서 “이는 전적으로 인간의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숲이 사라지는 것은 늑대들이 집을 잃은 것과 같다”면서 “이 때문에 늑대들이 숲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지 저명한 수의사 갈리나 주바 박사는 죽은 늑대가 광견병에 걸렸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곧 우리는 늑대가 공격한 정확한 이유가 먹이 부족 탓인지 아니면 광견병에 걸렸기 때문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유대인자치주 공식 포털(eao.ru)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씨줄날줄] 코스피 3000 시대/김상연 논설위원

    [씨줄날줄] 코스피 3000 시대/김상연 논설위원

    한국의 종합 주가지수 산출은 1964년 시작됐다. 처음엔 우량주의 주가 평균으로 지수를 산정하다가 대표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1983년부터 시가총액 방식으로 바뀌면서 현재의 코스피지수가 탄생했다. 그해 1월 4일 코스피의 첫 종가는 122.52였다. 걸음마 수준이던 코스피의 몸집은 한국 경제가 본격적으로 성장한 1980년대부터 커졌다. 1987년 8월 19일 500선을 돌파했고, 1989년 3월 31일에는 1000선을 넘었다. 미증유의 외환위기에 일격을 맞으면서 1998년 6월 277.37까지 급락했던 코스피는 놀라운 저력으로 2007년 7월 25일 2000선을 넘어섰다. 지난해 3월 코로나19 사태로 휘청거렸던 코스피는 5월에 2000선을 회복한 이후 욱일승천의 기세로 치솟으면서 마침내 6일 한때 ‘꿈의 지수’로 여겨지는 3000선을 돌파했다. 이날 아침 장이 시작되자마자 ‘3027.16’을 찍은 것이다. 일각에서는 코스피 3000은 거품이라는 주장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코스피가 그동안 다른 나라에 비해 저평가돼 있었다고 반박한다. 거품인지 아닌지는 늘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다. 단기간에 너무 급속히 올랐다는 점과 실물 경제가 좋지 않다는 점, 과도한 유동성을 생각하면 거품인 것도 같고, 세계 10위권인 우리 경제의 저력과 4차 산업혁명 업종의 잠재력을 감안하면 대세 상승의 초입 같기도 하다. 주식 투자는 투자가 아니라 합법적 도박이라고 폄훼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부동산 투기보다는 낫다는 평가가 많다. 부동산에 들어가는 돈은 환금성이 낮고 대출에 묶인 사람들이 소비를 줄여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반면 주식 수익은 돈으로 쉽게 바꿔 소비로 전환되기 쉽고 주식 투자는 기업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다. 국민 개개인에게 주식 투자는 경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다. 유대인은 아이들에게 생일 선물로 주식을 사 준다고 한다. 숱한 전문가의 조언 중에서 가장 귀에 들어오는 것은 주식을 사는 게 아니라 기업을 산다는 마음가짐으로 투자를 하면 실패할 확률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예컨대 어느 백화점의 주식을 샀다면 그 백화점에 들어갈 때마다 주인 같은 뿌듯함을 느끼라는 것이다. 그런 마인드로 주식을 산다면 그 회사에 관심이 생겨 이모저모 알아보게 되고 책임 의식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은 단타 매매에 연연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주식 투자는 사랑과 메커니즘이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연인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책임지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물만 빨아먹고 버리는 사람이 있다. 어쩌면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해 본 사람만이 주식 투자에 성공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carlos@seoul.co.kr
  • 하누카 즐기고 대규모 결혼식… 이스라엘의 천국이 된 두바이

    하누카 즐기고 대규모 결혼식… 이스라엘의 천국이 된 두바이

    미국 뉴욕 브루클린 출신으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6년째 거주 중인 랍비 레비 듀크먼(27)은 요즘 매일 흥분의 연속이다. 이스라엘에서 건너온 유대인 단체 관광객들을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어서다. 얼마 전엔 유대교의 성탄절과 같은 ‘하누카’를 맞아 두바이의 한 호텔에서 모국서 온 방문객들과 함께 촛불을 켜는 의식도 치렀다. 29일(현지시간) 미국공영방송(NPR)에 따르면 최근 두바이 곳곳은 전례 없는 이스라엘 방문객들로 넘쳐나고 있다. 특히 유대교 월력의 아홉 번째 달 25일부터 8일간 진행되는 하누카가 올해는 지난 10일부터였는데, 코로나19 팬데믹도 아랑곳하지 않고 두바이를 찾아 연휴를 만끽했다. 유대인들의 음식인 코셔 식재료를 취급하는 현지 정육점에서 “매주 2000마리의 닭이 필요했다”는 너스레가 나왔을 정도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두바이 거리의 이스라엘 여행객 무리’는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이스라엘과 UAE 간 직항편이 없었을 뿐더러, 이스라엘 항공기는 UAE 영공에 들어갈 수 없었다. UAE는 이스라엘 시민권자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았고, 이중국적과 같은 특수한 경우에 한해서만 이스라엘인이 UAE에 거주할 수 있었다. 두 나라의 관계는 지난 9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중재로 백악관에서 이스라엘과 UAE 간 관계정상화 합의가 이뤄진 뒤 빠르게 해빙됐다. 10월 20일 이스라엘과 UAE는 상호 여행비자 면제 협정을 발표했다. 이어 사우디아라비아 영공을 통과하는 항로가 허용됐고, 시범운행을 거쳐 지난달 26일 저가항공인 플라이두바이가 두 나라 간 최초의 상업 비행노선을 가동하기 시작했다.현재 3시간 30분이 소요되는 텔아비브에서 두바이까지 매일 15회의 직항편이 운항된다. 두바이를 여행한 이스라엘 관광객은 최소 4만명에 달한다고 NPR은 집계했다. 여행객이 늘면서 두바이 스타벅스에 ‘코셔 인증 메뉴’를 늘려야 한다는 요청이 제기될 지경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패키지 여행 외교’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세계 주요 관광지로의 여행이 사실상 중단된 점도 이스라엘인들을 두바이로 이끈 요인으로 꼽힌다. 두바이 현지인들은 집에 머물고 외출을 자제해야 하지만, 코로나19 음성 입증 서류를 지녔다면 여행객들이 두바이 입국 뒤 자가격리 없이 여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리두기 좌석제이긴 하지만 두바이에선 관광객 대상 공연이 이어지고, 코로나19 방역 때문에 이스라엘에서는 금지된 대규모 결혼식도 두바이에선 할 수 있다. 한편에선 갑작스러운 여행객 증가로 인한 우려도 여전하다. 이스라엘 매체인 예루살렘포스트는 “두바이 여행객들은 테러 위협에 주의해야 한다”는 경고성 기사를 내보냈다. 항공기 탑승, 여행 중 거리두기가 지켜지지 않아 코로나19 감염에 취약해지는 것도 문제다. 지난 17일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고 여행길에 올랐던 2명이 두바이 검역소에서 양성 판정을 받기도 했다. 30일 오전 현재 이스라엘 코로나 누적 확진자수는 41만여명, UAE의 확진자수는 20만여명에 달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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