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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예루살렘 연이틀 총격… 이스라엘, 정착촌 강화 ‘보복’

    동예루살렘 연이틀 총격… 이스라엘, 정착촌 강화 ‘보복’

    이스라엘 유대교 회당에서 팔레스타인 청년의 총기 난사로 7명이 숨지는 등 유혈 충돌이 꼬리를 무는 가운데 극우 성향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팔레스타인 자치령인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유대인 정착촌 강화 등 ‘보복 조치’에 나섰다. 또 이스라엘인의 총기 소지 요건을 완화하는 ‘시민 무장’도 대안으로 내놨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28일(현지시간) 총격 사건 이후 안보 내각을 소집해 정착촌 강화를 포함한 팔레스타인에 대한 보복 조치를 승인했다. 이스라엘 당국은 시중에 유통되는 불법 무기 압수를 강화하고 총기 소지 면허의 빠른 취득으로 이스라엘 시민들을 무장시켜 팔레스타인 테러에 대항하기로 했다. 지난 주말 이틀간 이스라엘에서는 총기 테러가 잇따랐다. 먼저 27일 저녁 동예루살렘 북부 네베 야코브에 있는 유대교 회당에서 팔레스타인 청년 카이레 알캄(21)이 신자들을 향해 권총을 난사하면서 7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했다. 경찰은 이 사건으로 총격범의 가족을 포함해 범행과 관련된 42명을 체포했다. 28일에는 동예루살렘 실완 팔레스타인 지구에서 13세 팔레스타인 소년이 이스라엘 행인에게 총을 쏴 2명이 다쳤다. 두 총격범은 조직화된 무장단체의 일원이 아니었다고 가디언은 보도했다. 네타냐후 총리실은 총격범들의 가택을 즉시 봉쇄하고 철거 절차를 밟는 한편 이들 가족의 사회보장 혜택도 없애기로 했다. 29일 열리는 전체 각료회의에서는 테러범 가족의 시민권을 박탈하는 내용의 법안 심의가 진행된다. 이번 총격 사건에 앞서 이스라엘군은 지난 26일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세력과 충돌해 9명을 사살했다. 이후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와의 치안 협력을 중단했고,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은 이스라엘에 로켓 포격을 가하는 등 양측 간 긴장도 일촉즉발 상황이다. 이스라엘 정부의 이번 보복 조치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역사상 가장 강경한 우파 성향으로 평가받는 네타냐후 정부는 지난해 11월 재집권 후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서안 지구 유대인 정착촌을 이스라엘 영토로 병합하려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30일로 예정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방문이 사태를 완화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미국 정부는 그간 유대인 정착촌에 반대 의사를 밝혀 왔으며, AP통신은 블링컨 장관과 이·팔 고위급 회담에서 정착촌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 ‘총에는 총’…유혈 충돌에 긴장 고조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총에는 총’…유혈 충돌에 긴장 고조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유대교 회당에서 팔레스타인 청년의 총기 난사로 7명이 숨지는 등 유혈 충돌이 꼬리를 무는 가운데 극우 성향의 베냐민 네타냐후(74) 총리가 팔레스타인 자치령인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유대인 정착촌 강화 등 ‘보복 조치’에 나섰다. 또 이스라엘인의 총기 소지 요건을 완화하는 ‘시민 무장’도 대안으로 내놨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28일(현지시간) 총격 사건 이후 안보 내각을 소집해 정착촌 강화를 포함한 팔레스타인에 대한 보복 조치를 승인했다. 이스라엘 당국은 시중에 유통되는 불법 무기 압수를 강화하고 총기소지 면허의 빠른 취득으로 이스라엘 시민들을 무장시켜 팔레스타인 테러에 대항하기로 했다.지난 주말 이틀간 이스라엘에서는 총기 테러가 잇달았다. 먼저 27일 저녁 동예루살렘 북부 네베 야코브에 있는 유대교 회당에서 팔레스타인 청년 카이레 알캄(21)이 신자들을 향해 권총을 난사하면서 7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했다. 경찰은 이 사건으로 총격범의 가족을 포함해 범행과 관련된 42명을 체포했다. 28일에는 동예루살렘 실완 팔레스타인 지구에서 13세 팔레스타인 소년이 이스라엘 행인에게 총을 쏴 2명이 다쳤다. 두 총격범은 조직화된 무장단체의 일원이 아니었다고 가디언은 보도했다. 네타냐후 총리실은 총격범들의 가택을 즉시 봉쇄하고 철거 절차를 밟는 한편 이들 가족의 사회보장 혜택도 없애기로 했다. 29일 열리는 전체 각료회의에서는 테러범 가족의 시민권 자체를 박탈하는 내용의 법안 심의가 진행된다.이번 총격 사건에 앞서 이스라엘군은 지난 26일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세력과 충돌해 9명을 사살했다. 이후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와의 치안 협력을 중단했고,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은 이스라엘에 로켓 포격을 가하는 등 양측 간 긴장도 일촉즉발 상황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달 들어 32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군에 살해됐다. 이스라엘 정부의 이번 보복 조치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역사상 가장 강경한 우파 성향으로 평가 받는 네타냐후 정부는 지난해 11월 재집권 후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서안 지구 유대인 정착촌을 이스라엘 영토로 병합하려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1967년 중동 전쟁에서 요르단강 서안을 점령한 후 꾸준히 주민을 이주시키며 유대인 정착촌을 만들었다. 이런 가운데 오는 30일로 예정된 토니 블링컨(62) 미국 국무부 장관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방문이 사태를 완화시킬 지 수 주목된다. 미국 정부는 그간 유대인 정착촌에 반대 의사를 밝혀 왔으며, AP통신은 블링컨 장관과 이·팔 고위급 회담에서 정착촌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 독일 정부, 나치의 ‘동성애자 강제 수용소’ 공식 사과

    독일 정부, 나치의 ‘동성애자 강제 수용소’ 공식 사과

    독일 의회가 역사상 처음으로 나치 치하의 ‘동성애자 강제수용소’로 인해 희생된 성소수자들을 위해 고개 숙여 사죄했다.  AFP통신 등 외신들은 지난 27일(현지 시간) 독일 의회가 성 정체성으로 인해 박해받고, 무참히 살해당했던 이들을 위한 기념관 건립과 행사를 진행할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고 이 같이 보도했다.  독일 연방 하원의장인 베르벨 바스는 이 매체를 통해 “독일에서 성소수자들은 여전히 사회적인 차별과 적대감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점에서 의회의 이번 결정은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독일은 지난 1996년부터 매년 1월 27일을 아우슈비츠 해방 기념일로 지정해 나치에 의해 희생당한 약 600만 명의 유대인 희생자들을 추모해오고 있다. 하지만 이 시기 학대받았던 성소수자들 다수가 나치 치하 중 살해됐거나, 강제수용소로 이송돼 끔찍한 생체 실험에 동원됐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드물다. 이 때문에 현지에서는 매년 희생된 성소수자들을 위한 추모의 필요성이 줄곧 제기돼 왔다. 당시 성소수자 차별과 학대의 빌미를 제공했던 것은 다름 아닌 독일이 제정했던 형법 175조였다. 1871년 독일 의회가 지정하고 실제로 장기간 효력을 유지했던 동성애자 처벌을 법규로 정당화한 형법 175조가 동성간의 성관계를 공식적으로 불법화하는 시발점이 됐던 것. 이후 나치 치하였던 1935년에 들어와 10년의 강제노역형이 추가로 명문화되면서 처벌 수위는 높아졌다.  나치 치하에서 남성 간의 성관계를 했다는 혐의로 약 5만 7000명의 남성이 투옥됐고, 6000~1만 명의 남성이 강제수용소로 보내져 치욕적인 분홍색 제복이 입혀진 채 강제 노역에 투입됐다. 그 중 3000~1만 명의 남성이 사망했으며, 치욕적인 강제 거세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나치 치하 중 수천 명의 레즈비언과 트랜스젠더, 성노동자들에게 ‘타락한 자’라는 오명을 씌워 강제수용소 생활을 강요했다.  악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종식된 이후에도 동성애를 금지하는 형법 175조는 폐기되지 않은 채 여전히 유지됐기 때문이다. 동독은 1968년에 들어와서야 해당 법안을 폐지했고, 서독은 그보다 한참 뒤인 1994년에서야 해당 법규를 완전히 폐지했다.  이 때문에 해당 법안으로 인해 최소 수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독일 성소수자들은 범죄자로 낙인찍혀 살아왔다.  이후 독일 의회는 지난 2017년이 돼서야 동성애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약 5만 명의 남성에 대한 판결을 뒤집는 판결을 내렸다. 또, 이들에 대해 일정 금액의 보상금을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의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기념관 회장인 다니 다얀은 “나치의 주요 타깃은 유대인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성소수자와 장애인 등에 대한 탄압도 심각했다. 기존의 추모 열기의 범위가 성소수자에게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을 환영한다”고 했다.  독일 유대인 중앙협의회 의장인 요제프 슈스터는 “나치 치하에서 희생된 이들을 통해 모든 사회 집단이 표적이 되고, 희생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배워야 한다”고 희생자들에 대한 포괄적인 추모를 요구했다. 
  • 이스라엘 장관, 예루살렘 도발… 美·유엔 대놓고 경고

    이스라엘 장관, 예루살렘 도발… 美·유엔 대놓고 경고

    이스라엘 사상 가장 극우적이란 말을 듣는 베냐민 네타냐후 새 내각의 상징적 인물인 이타마르 벤그비르(47) 국가안보 장관이 3일(현지시간) 동예루살렘 성지 방문을 강행했다. 네타냐후 정부가 들어선 지 5일 만에 이뤄진 벤그비르 장관의 첫 공개 행보에 미국, 유엔 등이 대놓고 경고에 나섰고, 인접한 이슬람 국가인 팔레스타인과 요르단은 강력 반발했다. 무장 정파 하마스가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는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이 발사됐으나 분리 장벽을 넘진 못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벤그비르 장관은 이슬람교의 3대 성지인 알아크사 사원이 있는 동예루살렘 성지 방문을 강행하며 “성전산(예루살렘 성지의 이스라엘 호칭)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고 주장했다. 수천년 동안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인 성전산은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종교 유적지 중 하나로 유대인의 방문은 가능하나 기도는 할 수 없다. 벤그비르 장관은 유대인들도 성전산에서 기도와 예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그가 이날 삼엄한 경계 속에 이뤄진 15분 방문 때 기도를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번 일이 폭력적인 충돌을 초래할 수 있어 깊이 우려한다”고 밝혔고,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일방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중국과 아랍에미리트(UAE)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개최를 요구했다.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도 유엔 안보리가 이러한 침입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요르단은 자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를 초치해 항의했고,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이집트, 아랍에미리트(UAE)와 카타르도 벤그비르 장관의 성지 방문을 일제히 비판했다. 급기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다음주 첫 해외 순방지로 계획된 UAE 방문을 전격 취소했다. 로이터통신은 네타냐후 총리가 1967년 3차 중동전쟁을 계기로 이스라엘이 점령한 성전산에서 오직 무슬림만 기도할 수 있는 현재 상황의 유지를 약속했다고 전했다. 네타냐후 총리의 UAE 방문은 2020년 미국의 중재로 성사될 뻔했으나 당시에도 알아크사 사원 관련 의전 문제로 요르단이 반발해 불발됐다.
  • 유엔, 이스라엘의 팔 점령 ‘합법성’ 묻는다

    유엔, 이스라엘의 팔 점령 ‘합법성’ 묻는다

    유엔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이 적법한지에 대한 판단을 내려 달라고 요청했다. 유엔 총회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이런 내용의 결의안을 찬성 87표, 반대 26표, 기권 53표로 통과시켰다. 이스라엘과 미국, 영국, 독일 등이 반대표를 던졌다.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 전쟁 중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 가자지구를 점령했다. 이후 동예루살렘을 서예루살렘과 병합해 수도로 삼는 등 해당 지역에서 유대인 정착촌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 새롭게 들어선 이스라엘의 ‘초강경´ 우파 연립정부는 영토 갈등에 더욱 불을 붙일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29일부터 재집권을 시작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내각 일부 인사는 공공연하게 불법 유대인 정착촌을 강화하고 이스라엘 영토로 병합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네타냐후 총리는 유엔의 이번 결정을 “비열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그는 “유대인은 민족 고유의 땅과 영원한 수도인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유엔의 결의가 역사적 진실을 왜곡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나빌 아부 루데이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변인은 “이스라엘이 법의 지배를 받는 국가가 되고 우리 국민에 대한 계속되는 범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ICJ의 판결은 강제력이 없지만 국제사회의 여론 형성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 UN 재판 받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점령 합법인가’ 묻는다

    UN 재판 받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점령 합법인가’ 묻는다

    유엔(UN·국제연합)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이 적법한지에 대한 판단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유엔 총회는 지난 30일(현지시간) 이런 내용의 결의안을 찬성 87표, 반대 26표, 기권 53표로 통과시켰다. 이스라엘과 미국, 영국, 독일 등이 반대표를 던졌다.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 전쟁 중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 가자지구를 점령했다. 이후 동예루살렘을 서예루살렘과 병합해 수도로 삼는 등 해당 지역에서 유대인 정착촌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역에서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군 당국 간 충돌이 끊이지 않는다. 새롭게 들어선 이스라엘의 ‘초강경‘ 우파 연립정부는 이같은 영토 갈등에 더욱 불을 붙일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 29일부터 재집권을 시작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내각 일부 인사들은 그간 공공연하게 불법 유대인 정착촌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이스라엘 영토로 병합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네타냐후 총리는 유엔의 이번 결정을 “비열하다”라고 비하하며 반발하고 있다. 그는 “유대인은 민족 고유의 땅과 영원한 수도인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유엔의 결의가 역사적 진실을 왜곡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나빌 아부 루데이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변인은 “이스라엘이 법의 지배를 받는 국가가 되고 우리 국민에 대한 계속되는 범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왔다”고 알자지라통신에 말했다. 유엔 최고 법원인 ICJ의 판결은 집행 강제력이 없지만 국제사회의 여론 형성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 향후 나올 판결이 주목받고 있다. ICJ는 지난 2004년에도 팔레스타인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당시 ICJ는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에 건설하고 있던 분리 장벽이 팔레스타인 주민의 인권을 침해한다면서 철거 명령을 내렸고, 이스라엘은 판결을 거부했다.
  • 히틀러와 나치의 잔혹함… 그 뒤엔 마약이 있었다

    히틀러와 나치의 잔혹함… 그 뒤엔 마약이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지도자들은 어떻게 600만명의 유대인을 포함해 폴란드인, 옛 소련군 병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었을까? 언론인 출신 저자가 5년 동안 현장을 답사하고 독일과 미국의 기록물보관소를 뒤져 얻어 낸 자료들을 바탕으로 쓴 이 책은 그 열쇠를 마약에서 찾았다. 나치도 겉으로는 마약 퇴치를 외쳤지만 나치가 집권했던 1930년대 독일은 이미 마약의 나라였다. 머크, 베링거, 크놀 등 독일 제약업체들은 세계 코카인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었다. 매년 수천 킬로그램의 코카인 원료가 합법적으로 수입됐다. 19세기 초 독일 화학자 프리드리히 제르튀르너는 아편에서 핵심 성분인 모르핀을 분리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고통을 쾌락으로 바꿔 주는 이 약물은 의학적 목적뿐 아니라 독일 제약회사의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됐다. 오죽했으면 초콜릿 견과류 과자인 프랄린에도 메스암페타민을 넣고 광고까지 만들 정도였다. 과자 하나에 메스암페타민이 무려 14㎎ 들어갔는데, 독일 병사들에게 배급한 헤로인과 코카인, 메스암페타민이 주성분인 ‘페르비틴’ 알약의 다섯 배에 이르렀다. 이렇게 마약을 일상적으로 복용한 독일군은 밤낮없이 진군했고 망설임 없이 적진으로 돌격했으며 지나는 곳을 가차 없이 밀어 버렸다. 히틀러는 그 누구보다 쉽게 마약에 탐닉했다. 저자는 서문의 첫 문장을 ‘나는 코블렌츠에서 단서를 찾았다’고 썼는데 연방기록물보관소에서 히틀러의 주치의 테오도어 모렐의 일지에 적힌 ‘Inj. w.I’와 ‘x’가 ‘매일 주사’와 ‘수상한 물질’임을 깨닫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히틀러는 헤로인보다 강한 쾌감을 주는 것으로 유명한 ‘오이코달’을 투약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책장을 들추면 히틀러의 말로를 옆에서 지켜보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 이스라엘 네타냐후 “유대인 정착촌 확대”

    이스라엘 네타냐후 “유대인 정착촌 확대”

    역대 최강경 우파 연정을 앞세운 베냐민 네타냐후 차기 이스라엘 총리가 유대인 정착촌 확장을 외치면서 중동이 화약고로 재부상하는 것 아니냐는 눈총을 받고 있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28일(현지시간) 네타냐후 총리 지명자가 요르단강 서안지구 등 점령지 내 유대인 정착촌 확장 및 개발을 담은 연정 구성 합의서를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네타냐후 신임 총리는 29일 취임한다. 차기 내각에는 극우정치인이 여럿 기용됐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폭력 분쟁과 주변 아랍국 및 서방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 차기 이스라엘 국방장관 겸 경찰책임자인 이타마르 벤 그리브는 반(反)아랍 인종차별 및 테러지원 혐의로 기소된 인물로, 예루살렘 성지의 상황 변경을 줄곧 요구해 왔다. 팔레스타인 주민과 아랍에 대한 무력사용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서안지구의 유대인 정착촌 확대는 네타냐후 재집권을 도운 극우 정당의 목표이기도 하다. 점령지 내 정착촌 건설 자체가 불법이기에 서안지구 합병까지 고려하는 네타냐후 정부에 팔레스타인은 즉각 반발했다.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변인은 “이스라엘 차기 연정의 합의는 국제사회 결의에 반하는 뻔뻔한 행태”라며 “팔레스타인 땅에 어떤 정착촌도 남아선 안 된다”고 제기했다.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도 이스라엘의 새 극우 정부가 요르단이 성지 관리권을 행사하는 동부 예루살렘의 ‘금지선’을 넘으면 안 된다고 경고하며 이스라엘이 동부 예루살렘 관리권을 변경하려 한다면 분쟁을 불사하겠다고 강조했다. 차기 연정의 기본정책 방향도 충돌을 예고한다.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제품 판매, 서비스 제공, 진료 등을 거부할 수 있는 ‘차별법’ 개정이 성소수자 등 소수그룹의 차별을 심화시킬 것이란 비판을 받는다. 1996년부터 15년 이상 이스라엘을 통치한 네타냐후는 여섯 번째 총리 임기를 맞는다. 역대 최장수 총리였지만 우파 연정 구성에 실패하면서 지난해 6월 실권했다가 지난달 총선을 통해 재집권 기회를 잡았다.
  • 히틀러와 나치의 광기, 마약이 가져다준 ‘완벽한 환각’

    히틀러와 나치의 광기, 마약이 가져다준 ‘완벽한 환각’

    아돌프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지도자들이 어떻게 600만명의 유대인들을 비롯해 수많은 폴란드인, 옛 소련군 병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명령을 내릴 수 있었을까? 기자 출신으로 여러 편의 소설을 쓴 노르만 올러가 5년 동안 현장을 답사하고 독일과 미국의 기록물 보관소들을 뒤져 찾아낸 자료들에 근거해 2015년에 쓴 책 ‘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열린책들)는 마약에서 열쇠를 찾았다. 역사학자 한스 몸젠이 후기를 썼는데 “이 책은 역사의 전체 그림을 바꾼다”고 했다. 원제는 ‘완벽한 환각’으로 옮길 만한 ‘Der totale Rausch’이다. 선택받은 아리아인들의 세계를 세우려 했던 나치는 겉으로야 마약 퇴치를 외쳤다. 하지만 나치가 집권했던 1930년대 독일은 이미 마약의 나라였다. 메르크, 베링거, 크놀 등 독일 제약업체들은 세계 코카인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었다. 특히 다름슈타트의 메르크 사에서 제조된 코카인은 우수한 품질로 정평이 나 중국에서는 이 상표가 수백만 번 넘게 무단 도용됐다. 함부르크는 천연 코카인의 유럽 허브였다. 매년 수천㎏의 코카인 원료가 합법적으로 수입됐다. 19세기 초 독일 화학자 제르튀르너는 아편에서 핵심 성분인 모르핀을 분리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고통을 쾌락으로 바꿔주는 이 약물은 의학적 목적뿐 아니라 독일 제약회사의 큰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됐다.오죽했으면 초코 견과류 과자인 프랄린에도 메스암페타민을 넣고 이를 광고로까지 홍보할 정도였다. 이 책의 62쪽에 광고 사진이 실려 있는데 문구가 상당히 충격적이다. ‘엄마의 예쁜 도우미, 항상 기쁨을 선사하는 힐데브란트 프랄린!’ 카페인과 달리 인체에 무해하다는 문구와 함께 3~9개는 먹어도 괜찮다면서 집안일이 수월해지고 살도 빠진다고 했다. 과자 하나에 메스암페타민이 무려 14㎎ 들어갔는데 독일 정부가 육군을 비롯해 공군, 해군 병사들에 배급한 헤로인과 코카인, 메스 암페타민이 주성분인 ‘페르비틴’ 알약의 다섯 배에 이르렀다. ‘열차는 정확했다’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하인리히 뵐이 페르비틴을 보내달라고 부모에게 편지를 썼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렇게 마약을 일상적으로 복용한 독일군은 밤낮 없이 진군했고 망설임 없이 적진으로 돌격했으며, 지나는 곳을 가차 없이 밀어버렸다. 독일 장군 중 가장 유명한 에르빈 로멜과 나치 정권의 2인자 헤르만 괴링, 친위대장 하인리히 힘러 등 군 수뇌부도 마약을 즐겼다. 당시 독일 국방 생리학연구소장인 오토 랑케는 이 모든 상황에 눈을 감았고, 마약은 독일군에서 무차별적으로 전파됐다. 히틀러도 그 누구보다 쉽게, 원하는 때 마약을 즐겼다. 저자는 서문의 첫 문장을 ‘나는 코블렌츠에서 단서를 찾았다’고 적었는데 연방 기록물보관소에서 히틀러의 주치의 테오도르 모렐의 일지에 휘갈겨 적힌 ‘Inj. w.I’와 ‘x’가 ‘매일 주사’와 ‘수상한 물질’임을 서서히 깨닫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히틀러는 헤로인보다 강한 쾌감을 주는 것으로 유명한 ‘오이코달’을 투약하는 데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모렐은 히틀러를 뒷배 삼아 막대한 이득을 취했다. 매일같이 300㎞를 운전해 고가의 도핑제와 스테로이드 생산에 필요한 원료를 손에 넣었다. 환자 A(히틀러)가 무탈함을 증명하려고 수시로 약물을 투여했다. 제정신이 돌아오게 되면 무모하고 미친 짓임을 알아차릴까 싶어 그랬다는 것이다. 책장을 들추면 히틀러의 말로를 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저자는 ‘슈피겔’ 기자로 일하면서 1995년 첫 장편 ‘할당기계(Die Quotenmaschine’을 썼는데 세계 최초의 인터넷 소설이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에 대해 글을 썼고 텔아비브와 예루살렘에서도 머무른 적이 있다. 2008년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팔레르모 슈팅’ 각본 작업에도 함께 했다. 친하게 지냈던 DJ로부터 나치들이 약물에 쩔어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희귀한 자료들을 뒤져 2015년 이 책을 썼다. 파라마운트가 영화 판권을 샀다는데 넌픽션을 어떻게 영화로 엮을지 궁금하다. 책의 맨 앞 장에 ‘몰락할 운명의 정치 체제는 본능적으로 몰락을 재촉하는 일을 많이 한다’는 장 폴 사르트르의 경구가 인상적이다.
  • 먼저 손길 내민 폴란드, 무릎 꿇고 사죄한 독일… 1000년 앙숙, 미래 열다[차용구의 비아 히스토리아]

    먼저 손길 내민 폴란드, 무릎 꿇고 사죄한 독일… 1000년 앙숙, 미래 열다[차용구의 비아 히스토리아]

    어느덧 12월의 마지막 주에 서 있다. 한 해를 되돌아보고 새해를 바라보면서 사진 한 장을 마주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으로 세상을 바꾼 것으로 평가받은 ‘빌리 브란트의 무릎 꿇기’다. 1970년 12월 추운 겨울날 서독 총리로는 처음으로 이웃 나라 폴란드를 방문한 브란트는 바르샤바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을 사죄했다. 겨울비에 젖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속죄하는 그의 모습은 ‘20세기 정치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기억된다.●獨, 폴란드 서부 100년 이상 점령 독일과 폴란드는 서로 국경을 맞대고 오랫동안 다툼을 벌인 앙숙지간이었다. 18세기 말부터 독일은 폴란드의 서부 지역을 100년 이상 점령한 채 폴란드의 민족정신을 말살하려 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베르사유조약(1919)으로 마침내 폴란드가 독립을 쟁취하면서 독일이 점령했던 영토의 상당 부분이 폴란드로 다시 귀속됐다. 그러자 양국의 적대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독일은 신생 국가인 폴란드를 ‘강도 국가’로, 폴란드인을 ‘늑대’나 ‘들쥐’로 묘사했다. 반면에 폴란드는 수복된 땅이 본래 폴란드 영토였다고 주장하면서 약탈적이고 제국주의적인 독일 역사를 부각했다.결국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정권은 1939년 ‘독일인의 고유한 영토’ 탈환을 구실로 폴란드를 침공했다. 이렇게 ‘탈환된’ 지역에서는 재독일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됐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폴란드인 60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폴란드 전체 인구의 5분의1에 해당하는 수치다. 잘 알려졌듯이 독일은 아우슈비츠 등에 집단 학살 수용소를 세우고 폴란드계 유대인 200만명 이상을 학살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곳곳에서 수많은 폴란드군 포로와 민간인들이 고문당하거나 잔인하게 학살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과 폴란드 사이에 남북으로 472㎞에 달하는 새로운 국경선이 확정됐다. 그 결과 양국의 국경선이 옛 독일 영토 안으로 200㎞ 정도 옮겨지면서 폴란드는 한반도 남한 면적보다 넓은 땅을 패전국 독일로부터 추가로 얻어 냈다. 이곳은 곡창지대이자 공업지대로 철강·석탄의 주요 산지였다. 조상 대대로 이 지역에서 살던 독일인의 추방은 신속하고 조직적으로 진행됐다. 독일인 강제 이주는 포츠담회담에서 연합국이 합의한 일로, 회담에서는 추방을 인도적으로 해야 한다고 결정했으나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었다. 새롭게 폴란드로 귀속된 국경 지대에서 400만명 이상이 강제 이주되는 동안 독일인들은 폴란드인의 잔혹 행위에 속수무책이었다. 이는 나치 정권이 폴란드인 600만명을 살해한 것에 대한 일종의 보복행위였다.새로운 국경은 양국 모두에서 적개심과 민족주의의 부활을 부추겼다. ‘피추방민협회’를 결성한 독일의 강제 추방민들은 사과와 보상을 요구했다. 서독으로 이주한 이들은 보수당인 기독민주당(CDU)과 기독사회당(CSU)의 주요 지지 세력이 됐고, 결코 무시 못할 중요한 정치세력으로 성장했다. 이들이 중심이 돼 실지 회복을 정강으로 내세운 ‘피추방민’ 정당은 1953년 선거에서 5.9%를 득표했고, 서독의 초대 총리인 기독민주당의 콘라트 아데나워는 정당의 핵심 지도자들을 각료로 임명했다. 이들이 극우 세력화해 또다시 나치와 같은 집단이 등장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것이었다. ●가해자를 움직인 피해자의 용서 이런 가운데 종전 20주년을 맞은 1965년 공산 치하의 폴란드 주교단은 서독 주교단에 서신을 보냈다. 서신은 지난 1000년간 양국 관계사에서 긍정적인 역사적 국면들에 주목했다. 두 나라 관계가 틀어지기 전에 정치·경제·학문적으로 얼마나 서로 의존했는지, 이러한 초경계적 상호작용이 유럽의 평화공존 구축에 어떤 공헌을 했는지 기억해 낸 것이다. 서신은 다음과 같은 문구로 마무리됐다.“(양 국민 간의) 끔찍한 과거 때문에 괴로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합시다. 극단을 지양하고 … 이제는 대화를 시작합시다. … 우리는 여러분의 손을 잡고자 합니다. … 우리는 여러분을 용서하며 또한 여러분으로부터 용서를 구합니다.” 나치 독일의 희생자였던 폴란드 가톨릭교회가 가해자를 용서한 것이다. 훗날 ‘감동적인 화해 문서’, ‘폴란드와 독일의 대화를 이끈 편지’, ‘화해의 아방가르드’로 평가된 이 서신은 폴란드와 서독 사이에 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다.이러한 화해 분위기는 서독 정부에도 영향을 주어서 1970년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를 방문하고 신동방 정책을 추진하는 발판이 됐다. 하지만 추방민들은 분노했고, 빨갱이들에게 독일의 영혼을 팔아넘긴 매국노라고 브란트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서독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과거 잘못을 반복적으로 사죄하고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러자 폴란드도 이에 화답했다. 폴란드의 지식인들은 독일인을 추방하는 과정에서 잘못을 저질렀음을 인정했다. 반체제 세력들은 폴란드 공산당 지도부가 독일에 대한 적대감을 이용하고 국경을 정권 유지 수단으로 도구화했다고 비난했다. 양국의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지성인과 학자들은 서로를 초청해 화해와 공존을 위한 대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용서라는 선물 폴란드와 독일의 용서와 화해 과정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①가해자에게 응당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 정의라며 극단적인 응징이나 보복을 하는 대신 진실을 규명하려고 노력하되 미래를 위한 화해와 치유에 무게를 두는 ‘회복적’ 접근이 중시됐다. ②상호 관계를 개선하고자 서로에 대한 부정적 감정과 불신을 극복하고 연대와 상호 신뢰를 강조했다. 이를 위해 두 나라의 역사적 동질성과 같은 유럽이라는 지역적 정체성을 다시 소환했다. 두 나라가 국경을 넘나들던 초경계적 상호 교섭과 연대의 역사적 경험은 ‘함께 살아감’의 가능성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③가해자에 대한 연민과 공감대도 언급됐다. 나치 치하에서 고통받았던 반나치 저항 운동에 경의를 표하고, 많은 독일인 역시 자신들과 함께 강제수용소에서 희생됐음을 지적했다. ④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인 수백만 명을 강제 추방했음을 인정하면서 자신들이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였다고 고백했다. 서로가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는 것이다. ⑤피해자의 용서는 마치 선물과 같아서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회개하는 정치의 장으로 가해자를 초대할 수 있었다. ⑥피해국 폴란드는 자신이 받은 고통과 상처를 잊고 치유하기를 희망하면서 양쪽 모두 불행한 과거를 잊자고 제안했다. 용서는 사건 이전의 관계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고통의 기억에서 해방될 때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용서라는 선물을 줄 수 있고, 이렇게 해야 양쪽 모두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⑦화해 과정을 주도한 행위 주체다. 독일과 폴란드에서는 종교인·학자·지식인 등 비정치적 분야의 지도자 간 화해가 선행됐다. 역사의 도구화와 정치화를 비판했던 이들의 노력으로 국가 간 화해를 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논의가 진행됐다. ⑧용서는 대화와 화해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사실이다. 서독과 폴란드는 ‘용서의 편지’ 이후 가해와 피해의 구분을 넘어선 역사 대화를 진행한 결과 총 네 권으로 된 공동 역사 교과서를 편찬할 수 있었다. 갈등 관계에 있는 집단은 역설적이게도 가까이 지내는 이웃으로 오랜 기간 서로 잘 알던 사람들이다. 너무 가까워서 불편한 이웃이었던 양국은 젊은 세대에게 역사 전쟁이 아닌 화해를 목적으로 역사교육을 시행 중이다. 용서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아페시스’(aphesis)인데 이는 ‘빚을 면제해 줌’을 뜻한다. 상대에 대한 분노의 감정에 얽매여 과거에만 머문다면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은 아니다. 따라서 용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빚에서 해방되게 해주는, 그래서 서로 주고받는 일종의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용서는 잘못으로 뒤엉킨 삶의 자리에 낡은 감정을 지워 버리고 더 나은 것으로 채우는 선물이다. 강제할 수 없지만 주어지면 좋은 것이 선물이다. 용서는 나 자신을 위해 무거운 짐을 놓아 버리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제 나를 위해 용서하자. 용서할 수 없으면 잊기라도 하자. 중앙대 교수·작가
  • 십자가 지고 걷던 800m 길, 2000년 세계사 ‘다 이루었다’

    십자가 지고 걷던 800m 길, 2000년 세계사 ‘다 이루었다’

    처형장 골고다 언덕으로 가는 길14개 주요 지점에 기념 교회 존재순례객 몰려… 역사적 상황 재현도예수 무덤, 주검 놨다던 돌판 있어 겟세마네교회, 2000살 나무 남아 유대·이슬람교 성지 중복돼 긴장“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한복음 19장 30절)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형을 선고받은 예수는 빌라도의 법정부터 골고다 언덕까지 800m 정도 되는 길을 걷는다. 수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동안 예수는 수많은 모욕과 조롱 속에 채찍을 맞고, 쓰러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끝내 십자가에 달려 최후를 맞는다. 세속의 눈으로 보면 초라하게 끝난 죄인의 삶이지만 예수의 죽음은 인류 역사를 바꾼 가장 위대한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예수가 고난을 당하며 걸어간 이 길은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로 불린다. ‘십자가의 길’ 또는 ‘고난의 길’이란 뜻이다. 800m에 불과하지만 지상에서 천상으로, 순간에서 영원으로 향한 신성함이 깃들었다. 빌라도의 법정부터 예수의 무덤까지 역사적 의미가 있는 14지점이 있고, 지점마다 기념 교회가 있다. 이곳에서는 십자가를 지고 예수가 갔던 길을 걷는 무리를 종종 볼 수 있다. 예수처럼 꾸미고 14년째 이 길을 쉬지 않고 돌고 있는 ‘21세기의 수도자’ 제임스 조지프도 만날 수 있다.‘비아 돌로로사’는 정확한 고증이 어려워 시대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현재의 길은 십자군 시대부터 정해져 19세기에 확정됐다. 1지점은 십자가의 행렬이 시작된 빌라도의 법정 자리다. 맞은편에는 채찍을 맞은 것을 기념한 2지점으로 십자가를 짊어진 이들이 여기서 출발한다. 십자가를 지고 쓰러진 3지점, 어머니 마리아를 보고 멈췄다는 4지점을 지나면 구레네 시몬이 대신 십자가를 진 5지점을 지난다.여인들이 울며 따른 6지점, 다시 넘어진 7지점,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말을 전한 8지점, 마지막 넘어진 9지점을 지나면 ‘비아 돌로로사’의 정점을 이루는 무덤교회에 이르게 된다. 군인들에게 옷을 뺏기고(10지점), 십자가에 못 박히고(11지점), 골고다 언덕에 세워지고(12지점), 시신이 누이고(13지점), 무덤에 묻힌(14지점) 곳이 무덤교회 안에 있어 순례객들이 몰린다. 교회를 들어가면 정면에 보이는 곳이 예수의 시체를 누인 13지점인데 많은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입을 맞추고 깨끗이 닦아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교회 내의 다른 지점과 달리 사방이 개방형으로 누구나 기다리지 않고 마주할 수 있어 오가는 많은 순례객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죽음과 부활의 현장인 예수의 무덤에는 특히 더 경건함이 감돈다.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최소 30분은 줄을 서야 한다. 성인 남성 4명 정도가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사각형의 공간에는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주검이 놓여 있었다는 돌판이 있다. 조금이라도 더 기도하고 싶은 순례객과 다음 순례객을 위해 빨리 나오라고 재촉하는 관리자의 마음이 충돌하기도 한다.성경에는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마가복음 15장 46절)라고 나와 있어 원래는 동굴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재는 무덤만 남기고 주위를 깎아 하나의 건물처럼 만들었다. 예루살렘 성 밖에도 성지가 많다. 승천한 장소를 기념하는 예수승천교회는 이슬람이 지배하면서 모스크로 지었고, 지금도 이슬람 자본의 소유다. 다만 승천주일에는 기독교에 내줘 종파들이 돌아가면서 예배를 드린다. 예수를 선지자의 하나로 여기는 무슬림들도 이곳을 방문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예수가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친 것을 기념한 주기도문교회에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벽에 주기도문이 적혀 있다. 겟세마네교회에는 수령이 2000년이 넘은 나무가 철책에 둘러싸여 있다. 현지 안내를 맡은 이강근 박사는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올리브나무로 이 나무는 예수님을 봤을 거라고 해서 홀리 올리브나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베드로통곡교회를 방문한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는 “여기가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한 장소”라며 “예수님이 이곳에서 묶여 채찍질을 당하셨다”고 설명했다.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 예수를 세 번 부인한다고 했던 내용을 따라 교회 지붕에 닭 모양 조각이 걸린 것을 볼 수 있었다.한국처럼 유대교나 이슬람교의 교세가 약한 나라에 사는 기독교인들은 예루살렘이 기독교가 융성한 도시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곳은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성지이기도 해서 항상 긴장감이 감돈다. 길이 50m, 높이 20m의 ‘통곡의 벽’ 앞에서는 종일 수많은 유대인이 울며 기도하고, 무슬림들은 금요일 낮에 성전산 모스크로 대거 몰려 무언의 무력시위를 펼친다. 이 지역을 둘러싸고 2000년 넘게 주인을 자처한 이들이 다툰 역사의 흔적은 현재의 아슬아슬한 평화로 남아 있다.유대인들의 슬픈 역사가 서린 ‘통곡의 벽’은 종교를 떠나 누구에게나 마음을 한 번쯤 돌아보게 하는 장소다. 서쪽벽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나라 잃은 유대인들이 성전이 파괴된 것과 나라 잃은 처지를 슬퍼하며 통곡했다고 한다. 꼭 유대인이 아니더라도 많은 이가 이곳에서 이루고 싶은 소망을 담아 적고 기도하고 간다. 세상 모든 슬픔을 받아 주는 이 벽의 틈에는 더 슬퍼지지 않도록 소원을 적은 쪽지가 가득해 신에게 의지하는 인간의 간절한 마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 타이프만 쳤을 뿐인데, 97세 독일 할머니에게 유죄 인정 집유 2년

    타이프만 쳤을 뿐인데, 97세 독일 할머니에게 유죄 인정 집유 2년

    나치 수용소장의 비서 겸 속기사로 일했던 97세 독일 노인이 1만 500명 이상을 살해하는 데 공모한 혐의로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고 영국 BBC가 20일(현지시간) 전했다. 인류애를 훼손한 행위에 대해 고령 여부를 따지지 않고 무관용 원칙을 철저히 이행하는 독일 사법부의 모습이 이번에도 확인됐다. 이름가르트 푸르크너가 스카프 등으로 얼굴을 가린 채 법정에 앉아 선고받는 모습은 상징적이다. 푸르크너는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스투트호프 수용소의 속기사로 일했다. 수십년 만에 나치 범죄로 법정에 선 여성이 됐다. 흔한 공무원 신분으로 명령에 따라 비서 일을 한 것일 뿐인데 독일 북부 잇체호이 법원 재판부는 그가 수용소에서 어떤 일이 진행되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푸르크너가 재판받는 과정에 여러 피해자가 증언했는데 이 중 몇몇은 도중에 세상을 등졌다. 재판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9월이었는데 그는 요양원을 빠져나가 달아났다가 나중에 함부르크 길거리에서 발견돼 법정에 끌려나왔다. 푸르크너는 법정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에 대해 유감이다. 나는 당시 스투트호프에 있었던 일을 후회하고 있다. 그게 내가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진술했다. 스투트호프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은 6만 5000명 이상일 것으로 여겨진다. 유대인 뿐만아니라 유대인이 아닌 폴란드인, 옛 소련 병사 등도 포함됐다. 푸르크너는 1만 505명의 살인을 돕거나 방조하고 특히 다섯 명의 살해에 공모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당시 18~19세였기 때문에 특별 청소년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다. 스투트호프는 현재 폴란드 도시인 그단스크 근처에 위치해 있으며 1944년 6월부터 가스실에서 수천명을 학살하는 등 수감자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도륙하는 데 앞장선 수용소로 유명하다. 소장이었던 파울베르너 호페는 1955년 학살 방조 혐의로 수감됐다가 5년 뒤 석방됐다. 독일 사법부는 2011년부터 나치 범죄를 도운 수용소 간수 등 90세 이상 노인들을 집중 기소해 단죄하고 있다. 푸르크너는 전쟁 뒤 나치 친위대(SS) 간부였던 하인츠 푸르츠탐과 결혼했는데 아마도 수용소에서 만나 사귄 것으로 짐작된다. 그 뒤 북부의 조그만 마을에서 행정직 공무원으로 일했으며, 그의 남편은 1972년 세상을 등졌다. 나치 문제를 다루는 역사가 스테판 호르들러가 재판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두 판사와 함께 수용소 옛 터를 현장검증해 푸르크너가 일하던 소장 집무실에서도 수용자들이 처한 형편없는 여건을 감내했음을 충분히 지켜볼 수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호르들러는 1944년 6월부터 10월까지 스투트호프에 27차례 이송 작업 끝에 4만 8000여명이 끌려왔으며 나치는 수용소를 확장하는 한편, 자이클론(Zyklon) B 신경가스를 이용해 학살 속도를 높이도록 강요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이어 호페의 집무실이 스투트호프의 “신경 센터”로 모든 일을 관장한 곳이었다고 덧붙였다. 1954년 푸르크너의 남편이 남긴 글도 증거로 제시됐다. 글 가운데 “스투트호프 수용소에서 사람들은 가스를 마시고 죽어나갔다. 소장의 참모들이 그것에 대해 얘기했다”고 적혀 있었다. 도미니크 그로스 재판장은 푸르크너가 대량학살의 징후를 감지하지 못했을 리 없다며 “피고는 언제라도 이 일을 그만 둘 수 있었다”고 잘못이 있음을 인정했다. 수용소에서 살아 남은 요시프 살로모노비치는 아내에게 설득돼 지난해 12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곳까지 여행해 법정에서 증언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1944년 9월 신경 주사를 맞고 희생됐을 때 그는 여섯 살이었다. 당시 그는 법원 밖에서 취재진에게 “그냥 사무실에 앉아만 있었고 우리 아버지의 사망 증명서에 도장만 찍었어도 그는 간접적으로 유죄”라고 주장했다. 다른 스투트호프 생존자인 만프레드 골드버그는 형량이 너무 낮아 실망스럽다고 했다. “97세 노인이라 교도소에서 복역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은 너무 나간 것이다. 그냥 상징적인 형량 밖에 안 된다”고 영국 BBC에 털어놓았다. 푸르크너가 나치 범죄와 관련해 단죄 받은 마지막 인물이 될지도 주목된다. 현재 몇몇 건의 수사가 계속되고 있으며 최근 스투트호프 수용소에서 저질러진 두 건의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 우리 안에 숨겨진 비인간성… 잔인함의 역사를 파헤친다

    우리 안에 숨겨진 비인간성… 잔인함의 역사를 파헤친다

    오늘도 ‘시체팔이 장사’ 같은 공감능력 따위 내다 버린 말들이 들려온다. 이런 말을 들으며 속으로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네’라고 생각하는 우리 자신부터 비인간화에 길들여 있다. 이 책은 다른 사람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비인간화에 대한 거의 모든 역사를 담고 있다. 계몽주의 철학자조차 노예제가 가져다주는 경제적 이득을 포기할 수 없었는데 그런 도덕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편이 바로 노예가 인간이란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보통의 독일인 마음에 자리한 손쉬운 해결책도 유대인을 하위인간이라고 믿는 것이었다. 팔레스타인 전래동요에 ‘유대인은 우리가 기르는 개’라는 가사가 있듯 우리는 다른 이들을 인간 이하로 바라보고 배제하는 경향에 젖어 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기원전 4세기의 아테네 사람들, 나치를 추종한 독일인들, 적을 똥파리나 지렁이, 도마뱀으로 취급하는 뉴기니 고산 부족들도 매한가지다. 나치뿐만 아니라 연합군을 비롯해 전쟁에 간여한 모두가 상대를 인간으로 여기지 않았다. 언론이 중동 분쟁과 테러단체와의 전쟁을 보도하는 방식을 봐도 비인간화가 얼마나 뿌리 깊게 새겨져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저자는 아르메니아 학살, 캄보디아 학살, 르완다 내전, 최근의 수단 다르푸르 학살까지 살펴 비인간화의 원리를 살펴본다. 과학적 근거가 빈약한 인종 구분을 사람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를 비인간화에서 찾는다. 또 인간만 아니라 개미와 침팬지조차 동족을 습격해 죽인다고 사람들은 얘기하는데 개미와 침팬지의 행동을 전쟁으로 규정할 수 없는 이유도 설명하고 있다. 제인 구달이 “잔인함을 드러낼 수 있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다”고 주장한 것에 귀를 기울인다. 마지막 9장에서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데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이며 실제로 이 책은 지난 10년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 또 서문에서 밝혔듯 남성이 여성을 비슷하게 짓밟고 성소수자, 이민자, 장애인을 어딘가 열등한 부류로 믿는 습벽에 대해서도 더 다뤘더라면 좋았겠다.
  • “죄송해요”…1만 명 살인 조력 97세 ‘나치 비서’의 뒤늦은 유감

    “죄송해요”…1만 명 살인 조력 97세 ‘나치 비서’의 뒤늦은 유감

    독일의 역사 청산 의지가 얼마나 철저한지를 보여주는 재판이 또다시 열렸다. 지난 7일(현지시간) 독일 현지언론 등 외신은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에 조력한 여성 전범 이름가르트 푸르히너(97)의 재판 소식을 일제히 보도했다. 지난 6일 독일 북부 이체호 지방법원에 출석한 푸르히너는 이날 오랜 기간의 침묵을 깨고 처음으로 유감의 뜻을 밝혔다. 이날 프루히너는 "발생한 모든 일에 대해 유감"이라면서 "당시 슈투트호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후회한다"고 밝혔다. 프루히너가 그간 재판에 출석해 침묵을 지켜왔던 것과 달리 처음으로 사죄의 뜻을 밝힌 것. 지금은 97세의 노인으로 거동이 힘든 푸르히너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점령한 폴란드 그단스키 인근에 세워진 슈투트호프 강제수용소에서 비서 겸 타자수로 일했다. 이곳에서 유대인과 포로 등을 대상으로 한 나치의 집단 학살이 이루어졌으며 사망자는 총 6만5000명에 이른다.당시 18~20세였던 프루히너는 1943∼1945년 사이 강제수용소에서 1만1000여 건의 살인을 조력한 혐의를 받고 검찰에 기소됐다. 비서 겸 타자수로서 강제수용소 파울 베르너 호페 사령관의 학살 명령을 문서로 작성해 이를 알고도 방조했다는 혐의를 받은 것. 사건이 발생한 지 무려 80여 년 만의 재판으로 전범들을 끝까지 추적해 정의의 심판을 받게하는 독일의 역사청산 의지가 드러난 셈이다. 이에대해 프루히너는 과거 인터뷰에서 "전쟁이 끝난 후에야 뒤늦게 학살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해명했으며 변호인 측도 당시 살인에 대해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 측은 프루히너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으며 판결은 오는 20일 이루어질 예정이다. 
  • “포기 안해” 40년 전 미제사건에 현상금 9억원 내건 호주 경찰

    “포기 안해” 40년 전 미제사건에 현상금 9억원 내건 호주 경찰

    1982년 호주 시드니에서 발생한 장기 미제 테러 사건과 관련해 호주 경찰이 현상금을 100만 호주달러로 10배 올렸다. 5일(현지시간) 뉴사우스웨일스(NSW)주 경찰은 “40년 전 시드니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을 여전히 수사하고 있다”며 실마리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기존보다 10배 많은 100만 호주달러(약 8억 8000만원) 보상금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호주 법률은 경범죄를 제외한 대부분의 범죄에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 1982년 12월 23일 시드니 윌리엄 거리에 있는 이스라엘 영사관 앞에서 폭탄이 터져 부상자가 발생했다. 4시간 뒤 시드니 본다이 비치에 있는 유대인 스포츠 클럽 지하 주차장에서도 차가 폭발했다. 다만 건물이 무너지지 않아 사망한 사람은 없었다.당시 호주 경찰은 사건을 친팔레스타인 조직과 연관된 국제 테러 사건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체포된 남성 1명은 기소되지 않았고 사건은 장기 미제로 남았다. NSW 합동 대테러 팀은 2011년 해당 사건에 대한 재조사에 착수했다. 용의자 3명의 몽타주를 공개하는 한편, 현상금 10만 호주달러(약 8800만원)를 내걸었다. 그러나 재수사에 착수한지 10년이 지나도록 사건이 여전히 미궁 속을 헤매자 경찰은 현상금을 올리며 제보를 독려했다. NSW경찰 테러 담당 마크 월턴 부국장은 현상금 증액을 환영하며 “이번 결정이 40년 된 미스터리를 푸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NSW주의 경찰 장관이기도 한 폴 툴 부총리는 경찰이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전념을 다 하고 있다며 “경찰이 사건을 종결할 수 있도록 작은 정보라도 제공해 달라”라고 당부했다.
  • ‘유대인 혐오’ 카녜이 “나치·히틀러가 좋다”

    ‘유대인 혐오’ 카녜이 “나치·히틀러가 좋다”

    유대인 혐오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미국 힙합 가수 ‘예’(카녜이 웨스트)가 이번에는 극우 가짜 뉴스 방송에서 “나치, 히틀러가 좋다”고 실언했다. AFP 통신에 따르면 예는 1일(현지시간) 인포워스 사이트 생방송에 출연해 이같이 말했다. 인포워스는 미국의 대표적 가짜 뉴스 사이트다. 사이트 운영자는 알렉스 존스로, 최악의 총기 참사 중 하나인 2012년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을 날조라고 주장해온 인물이다. 예는 이날 존스와의 인터뷰에서 가짜 뉴스를 퍼뜨리기도 했다. 그는 “히틀러는 내가 음악인으로서 사용했던 마이크와 고속도로를 발명했다”면서 “그가 이로운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AFP는 히틀러는 이런 것들을 발명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예는 “모든 인간은 가치 있는 행위를 하기 마련이고 히틀러는 특히 그렇다”면서 “나치를 깎아내리는 것을 멈춰야 한다. 나는 나치를 사랑한다”고 재차 말했다. 예는 이날 검은 복면을 쓰고 출연했다. 그러나 AFP에 따르면 존스는 그를 ‘웨스트’라고 부르며 예의 휴대폰으로 트위터 게시물을 올리는 등 그의 정체를 확실시했다. 이에 유대인계는 즉각 반발했다. 공화당유대인연합(RJC)은 성명에서 “카녜이 웨스트가 히틀러를 칭송한 것을 보면 그를 유대인을 표적으로 삼는 사악하고 편협한 사람으로 칭하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라면서 “그를 좋게 봤던 보수주의자들은 지금이라도 그를 배척해야 한다”고 말했다.
  • [데스크 시각] 29년차 수능시험의 미래는/윤창수 신문국 에디터

    [데스크 시각] 29년차 수능시험의 미래는/윤창수 신문국 에디터

    오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보는 약 50만명이 실수 없이 실력 발휘하길 바란다. 1993년 첫 수능 때 71만명이 넘었던 응시생은 29년 뒤 출생률 감소로 대폭 줄었다. 대입시험은 1954년 연합고사를 시작으로 국가고사→예비고사→학력고사로 계속 바뀌었다. 그동안 대입은 약 10년을 주기로 뒤집혔는데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에서 30년 가까이 이름을 유지한 수능을 어떻게 바꿀지 논의가 한창이다. 지난달 24일 열린 제1차 2028 대입개편 전문가 포럼에서는 수능의 폐해에 대한 지적이 잇따랐다. 수능의 ‘신화’를 의심해 봐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대학 입학사정관은 정시(수능)로 들어온 학생들의 학점이 낮고, 자퇴해서 반수나 재수를 택하는 비율이 높다고 강조했다. 건국대 줄기세포재생공학과처럼 정시로 학생을 안 뽑는 전공도 생겼다. 서울 시내 16개 대학이 정원의 40%를 수능으로 뽑도록 한 2022학년도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때문에 나왔다. 조 전 장관의 자녀가 학생부 종합전형(학종)으로 ‘불공정’하게 합격했다는 여론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학은 당시 결정에 ‘교육이 정치에 휘둘렸다’며 불만이 상당하다. 학종으로 뽑는 수시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한다. 수능 확대 방안에도 정시 비중은 2022년 24.3%, 2023년 22.0%, 2024년 21.0%로 점차 줄어든다는 전망치도 내놓았다. 10년 만에 다시 교육부 수장이 된 이주호 부총리가 이사장을 지낸 케이(K)정책플랫폼은 수능 절대평가를 확대하고 미국의 대입 자격시험인 SAT처럼 자격고사화하자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장관은 취임 뒤 첫 기자회견에서 “수시·정시 비중은 답 없는 논쟁”이라며 대입 개편에 대한 확답은 피했다. 수능은 이름부터 SAT를 참고로 도입됐다. SAT는 20세기 초 하버드를 비롯한 미국 명문대에서 유대인의 입학 비율이 높다는 문제의식에서 만들어졌다. 최근에는 SAT와 함께 대학원 입학시험인 GRE 성적도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하는 미 대학이 늘고 있는데, 유대인에 이어 시험에 뛰어난 한국인과 중국인을 배제하기 위해서란 의혹이 있다. 실제 수능도 공정하지만은 않다. 학생을 선발하는 수도권 대학의 정시 비율은 2023학년도 기준 35.3%지만, 학생을 충원해야 하는 비수도권 대학은 13.9%에 그쳐 비수도권에서는 정시 응시조차 힘들 지경이다. 서울 시내 주요 사립대 입학생을 분석하면 수능(정시) 합격자는 학종(수시) 합격자보다 수도권 출신과 국가장학금 미수혜자(고소득층) 비율이 높다. 게다가 2025학년도부터 시행되는 고교학점제는 학종을 위한 제도다. 대학에서 시행하는 학점제가 전국 모든 고등학교에 도입돼 3년간 192학점을 들으면 졸업한다. 학생은 진로를 고려해 선택과목을 듣는데 정작 수능은 일부 과목만을 평가하므로 고교학점제를 이수한 학생이 졸업하는 2028학년도부터 수능이 바뀔 필요가 있다. 수능을 자격고사화하고,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2008학년도부터 도입된 입학사정관제까지 포함해 한국 교육체계는 미국과 더욱 흡사해진다. 대학 자율에 맡겼던 대입을 국가시험으로 바꾼 것은 입시 비리 때문이었다. 도입 목표가 입학생의 다양화인 SAT와는 처음부터 달랐다.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는 미국 교육에서도 ‘작전명 바시티 블루스-부정 입학 스캔들’이란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질 정도로 비리가 상당하다. 아무리 수능의 공정성을 부정하는 통계를 내놓아도 시험 점수만이 정직하다고 믿는 이유가 있다. 2028 대입은 수능의 신화를 의심하기보다 대학을 의심하는 질문의 답이 돼야 할 것이다.
  • 59점 폭발한 엠비드 웃고, 51점 몰아친 갈란드 울고

    59점 폭발한 엠비드 웃고, 51점 몰아친 갈란드 울고

    미국프로농구(NBA)에서 두 명이 하루에 혼자 50점 이상 몰아치는 경기를 했는데 한 명은 웃고, 한 명은 울었다.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공격형 센터 조엘 엠비드는 14일(한국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웰스 파고 센터에서 열린 2022~23 NBA 정규시즌 유타 재즈와의 홈 경기에서 무려 59점을 넣으며 팀의 105-98 승리에 앞장섰다. 엠비드는 11리바운드와 8어시스트에 7개 블록슛도 추가해 ‘쿼드러플급’ 활약을 펼쳤다. 59점은 올시즌 한 경기 최다 득점이다. 제임스 하든이 오른발 부상으로 장기 결장 중인 필라델피아는 엠비드의 활약에 2연승, 7승7패를 기록하며 동부 콘퍼런스 6위에 자리했다. 2연패의 유타는 10승5패로 서부 4위를 달렸다. 다리우스 갈란드(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도 이날 홈 경기에서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를 상대로 3점슛 10개를 포함해 51점을 퍼부었다. 올시즌 한 경기에서 50점 이상 넣은 경우는 엠비드와 갈란드가 처음이다. 또 3점슛 10개는 올시즌 한 경기 최다 기록. 그러나 클리블랜드는 124-129로 졌다. 디안젤로 러셀(30점·3점숫 4개 12어시스트)과 칼 앤서니 타운스(29점·3점슛 3개 13리바운드)가 활약한 미네소타에 3쿼터 중반 24점차까지 뒤지다 맹추격했으나 끝내 따라잡지 못했다. 클리블랜드는 4연패에 빠지며 8승5패로 동부 4위. 6승8패의 미네소타는 서부 12위. LA레이커스는 ‘킹’ 르브론 제임스가 허벅지 부상으로 2경기 연속 결장했으나 앤서니 데이비스가 올시즌 개인 최다 37점에 최다 18리바운드를 뿜어내 6연패 위기에서 또 벗어났다. 레이커스는 이날 홈 경기에서 브루클린 네츠를 116-103으로 제압했다. 로니 워커 4세가 3점슛 4개 포함 25점으로 승리를 거들었다. 개막 5연패 뒤 2연승하다 다시 5연패에 빠졌던 레이커스는 다시 1승을 추가하며 시즌 3승10패로 서부 14위를 유지했다. 감독 교체 뒤 2연승하던 브루클린은 케빈 듀랜트가 31점 9리바운드 7어시스트로 트리플더블급 활약을 했으나 카이리 어빙이 유대인 혐오 발언으로 출장 정지 징계를 받고 벤 시몬스도 부상으로 빠지는 등 전력 누수가 컸다. 레이커스는 워커 4세와 데이비스의 쌍끌이 활약에 1쿼터부터 경기 종료 때까지 한 번도 리드를 내주지 않았다. 특히 3쿼터 들어서는 골밑에서 15점을 폭격한 데이비스 덕택에 16점 차까지 달아나는 등 일찌감치 승리를 예감했다. 4쿼터 중반 브루클린이 5점 안팎으로 추격해오자 오스틴 리브스(15점)의 점퍼를 시작으로 워커 4세의 3점포, 데이비스의 팁인 덩크, 워커 4세의 점퍼와 레이업, 데이비스의 팁인 덩크로 13점을 몰아치는 등 104-87로 간격을 벌려 승부를 갈랐다.
  • 혐오 표현은 집단적 폭력의 전조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혐오 표현은 집단적 폭력의 전조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자가 많아지면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차별하고 적의를 드러내는 혐오표현을 쉽게 접하게 됩니다. 혐오표현은 나와 다른 사람은 다른 존재로 보이게 만들어 분리시키게 됩니다. 이 같은 타자화와 비인간화는 집단 폭력의 전조로 보고 있지만 경험적 증거로 제시된 적은 거의 없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 스탠퍼드대, 캘리포니아 산타바버라대(UCSB),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동 연구팀은 독일 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나치)의 선전선동에 나타난 언어를 심리학적, 뇌과학적으로 분석해 홀로코스트 원인과 폭력성의 근원을 찾아 나섰습니다. 연구 결과는 미국공공과학도서관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 11월 10일자에 실렸습니다. 연구팀은 홀로코스트라는 인류 최악의 범죄가 어떻게 시작해 진행됐는지 파악하기 위해 나치의 선전선동에 사용된 언어들에 주목했습니다. 연구팀은 나치가 독일 사회를 잠식하기 시작한 1927년을 연구 출발점으로 잡았습니다. 이 시점부터 독일인의 단합이라는 허울 좋은 목적으로 외부인을 배제하고 희생양을 만들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고, 그 잔혹한 결과가 2차 세계대전 후반 홀로코스트로 나타났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연구의 논문 제목도 ‘비인간화와 대규모 폭력: 1927~1945년 나치의 선전선동에서 나타나는 심리상태 언어 분석’입니다. 연구팀은 1927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가 발표한 포스터, 팸플릿, 연설문 등 선전선동 자료와 독일 신문 보도에 나온 단어와 문장을 정밀분석했습니다. 특히 ‘계획’, ‘생각’ 같은 대리능력에 관한 용어와 ‘상처’, ‘즐기다’ 같은 경험, 감정 관련 단어의 사용빈도를 구분했습니다. 그 결과 선전선동은 유대인이 인간의 기본 감정과 감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점차 부정하는 방향으로 진행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나치가 독일 정치에 등장해 정권을 잡을 때까지는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유대인은 독일인들이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됐고 홀로코스트가 시작되기 직전부터는 유대인은 인간이 아닌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는 비인간화 경향이 큰 선전선동이 대폭 증가했다고 합니다. 사회를 좀먹는 암적인 존재는 사라져도 괜찮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면서 독일인들의 폭력에 대한 도덕적 저항판을 사실상 없애 버려 홀로코스트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든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모든 폭력에는 동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폭력을 없애기 위해서는 폭력을 유발시키는 동기를 찾아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번 연구를 보면 인간성을 부정하고 조롱하는 언어가 폭력의 원인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조롱과 부정의 언어는 상대에 대한 도덕적 이해라는 장벽의 높이를 낮춰 폭력에 무감각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 정치권이나 사회에서도 상대를 조롱하고 비하하는 혐오 언어를 공공연하게 쓰는 것이 쉽게 눈에 띕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절대적으로 지키려는 가치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를 타자화, 비인간화시키는 언어를 사용해 자신의 지지층을 결속시키거나 돈벌이에 이용하려는 이들이 외치는 자유, 민주주의, 정의를 신뢰할 수 없는 것입니다.
  • 카이리 어빙의 징계 부른 ‘블랙 헤브루 이스라엘사람들’ 왜 위험한가

    카이리 어빙의 징계 부른 ‘블랙 헤브루 이스라엘사람들’ 왜 위험한가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카이리 어빙이 반유대주의 영화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유했다가 적어도 다섯 경기에 나서지 못하게 됐다. 어빙이 공유한 영화는 ‘블랙 헤브루 이스라엘사람들’(BHI)란 단체가 만든 것으로, 이들은 일부 유색인종은 하느님이 선택한 진정한 인간, 선민이란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위험한 단체로 분류된다. 더욱이 이 단체의 일부 극렬 분파는 무장을 하고 있어 더욱 위험하다고 미국 남부빈곤법센터(SPLC)는 파악하고 있다고 인사이더 닷컴이 5일 전했다. 브루클린 네츠 구단은 지난 3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반유대주의 영화를 홍보하려고 링크를 걸었다며 어빙을 징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금은 삭제된 이 트윗에는 2018년 영화 ‘히브리인이 니그로에게, 블랙 아메리카여 깨어나라’가 링크돼 있다. 이 영화는 흑인 미국인을 비롯해 유색인종 일부야말로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인의 진짜 후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반명예훼손연맹(ADL)에 따르면 이 영화는 유대인들이 대서양을 오가는 노예 무역으로 흑인들을 압제하고 속이는 흉계를 꾸몄으며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본성을 담아내고 권력의 지위를 옹호하기 위해” 홀로코스트 역사를 거짓으로 꾸몄다고 주장한다. 어빙의 일탈과 브루클린 네츠의 징계 때문에 BHI 운동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단체의 반유대주의는 동성애·외국인 공포증, 여성 혐오와 결합돼 있어 더욱 위험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들 중에서도 날로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분파는 주류 사회의 논쟁에도 불을 지폈다. 배우 닉 캐넌은 2010년 자신의 팟캐스트 방송에서 유대인들이 히브리 이스라엘인들의 정체성을 훔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그들이 우리의 태어날 권리마저 빼앗아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좀 더 최근에는 카녜이 웨스트(예)가 역시 지금은 삭제된 트윗에다 유대인들에 대한 “데스 콘 3”를 발령한다고 밝혀 입길에 올랐다. 그는 “흑인들이 실제 유대인들이기” 때문에 자신은 반유대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19세기 후반 노예로 태어난 뒤 17세에 도망쳐 자유인이 된 윌리엄 손더스 크라우디가 흑인 미국인이야말로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히브리인의 진짜 후손이라고 하느님이 자신에게 털어놓는 환영을 봤다고 했다. 1896년에 크라우디는 하느님의 교회 그리스도의 성인이란 교파를 세웠는데 이것이 BHI 운동의 모태가 됐다.BHI의 독트린(교조)은 기독교와 유대교를 적당히 섞는 한편 두 종교를 폭넓게 해석하는 개념들을 부정했다. 성경도 나름대로 해석하며 예수는 결코 피부가 하얗지 않다고 믿는다. 초기 몇몇 교회는 인종과 젠더에 상관 없이 품자고 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과격해졌다. 젊은이들로 하여금 각자 캠프를 꾸려 증오를 퍼뜨리고 무장을 해야 한다고 부추겼다. 이들은 유럽 유대인들이 “사탄의 시나고그”이며 수백만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노예로 만든 데 책임있는 “사악한 뚜쟁이들”이라고 비난했다. 아울러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인종적으로 우열하며 미국 원주민(인디언)들과 라틴아메리카인들은 이스라엘 후손들이며 계속 밀려와 인구 구성을 어지럽게 만든다고 봤다. 이들은 엄격한 위계를 갖고 있어 주교 같은 고위직들은 성스러운 존재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많은 캠프에서 여성들은 바지를 입어선 안되며 남자 회원과 어울려서도 안된다. 동성애에 대해선 “흑인과 히스패닉, 토종 인도인 커뮤니티에 만연된 질병”이라며 성적 소수자(LGBTQ) 커뮤니티가 “추악하며 역겨운 갈망”이라고 주장한다. 2019년 12월에 저지 시티의 코셔 슈퍼마켓에서 4명을 살해하고 사망한 두 총격범도 BHI 운동 추종자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에도 코빙턴 가톨릭고교 학생들과 미국 원주민 활동가들이 열띤 설전을 벌인 동영상이 큰 인기를 끌어 BHI 운동이 새삼 주목받았다. 이들은 또 길거리에서 자신들이 적이라고 여기는 상대와 거침없이 설전을 펼치는 것으로도 이름높다. 백인들이 지나가면 희롱해 울게 만들기도 한다. 자카리야 벤 야코프는 1990년대 이 운동에 적극적인 것으로 유명했는데 “복음을 테러로 전하라”고 독려하곤 했다. 2007년 다큐멘터리 ‘가즈 오브 타임 스퀘어’에는 한 강론자가 “너희 모든 백인들이 전쟁할 준비가 돼 있지. 우리는 너희 때문에 왔어. 하얀 애들아. 니그로들이야 말로 진짜 유대인이야. 전쟁을 준비하자!”라고 외친다. 어빙은 부적절한 SNS 게시물을 올린 책임을 지고 혐오 근절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에 50만 달러를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여전히 믿는다고 황당한 얘기를 늘어놓거나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거부해 지난 시즌 정규리그 82경기 가운데 29경기에만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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