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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와 공존시대 연「팔」 자치선거(해외사설)

    중동 팔레스타인 문제의 근원에 제1차세계대전하 영국 「두개의 혀」외교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영국은 전쟁에 유리하게 하기 위해 아랍세력에는 맥마흔협정으로 독립국가를 약속하고 한편으로 유대인에게는 같은 지역에 이스라엘 건국을 인정하는 발포어선언을 발했다.오랜기간 동안 분쟁의 씨앗이 된 「2개의 국가」였다. 그러나 2개국가의 공존이 더이상 꿈이 아닌 때가 온 것일까.팔레스타인자치선거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아라파트의장을 자치정부의 의장으로 선출했다.자치평의회도 아라파트의장의 지지파가 다수를 점할 것이 확실하다.아라파트의장을 사실상의 대통령으로 하는 「정부」가 조직된 것이다. 여러 제약이 있지만 민의에 기초한 「팔레스타인국」 탄생의 전주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93년에 시작된 팔레스타인 화평프로세스 제2단계의 마감이다.지난해 11월 라빈 이스라엘총리의 암살 영향이 우려됐지만 선거는 예정대로 치러졌다.선거가 무사히 마쳐진데 대해 우선 기쁨을 느낀다. 하지만 새로운 자치정부의 민주적인 발전을 내다보면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가장 큰 문제는 평의회의 의석을 아라파트지지세력이 거의 다 차지했다는 점이다.선거를 치른 의미도 색이 바랬다.물론 커다란 이유는 팔레스타인 과격파 하마스 등 자치반대세력의 선거보이콧 때문이다.이들 세력이 일상활동을 통해 팔레스타인 주민의 일부분의 의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자치정부는 평의회에 대표되지 않은 주민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제 화평과정은 3단계로 들어간다.점령지 가자,요르단강 서안의 최종적 지위외에도 예루살렘과 유대인정착지의 처리등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여기는 쌍방의 양보가 필요하다.
  • 주2일 휴무(외언내언)

    주는 월이나 년과는 달리 천문학적인 기초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자연현상과 관계없이 인위적으로 만들진 것이다.그러나 현대인들에게 1주는 무엇보다 중요한 주기다.바로 생활의 리듬인 것이다. 우리들이 지금 쓰고있는 7일 1주제는 신이 6일동안 일하고 7일째 휴식을 취했다는,창조에 대한 고대유대인들의 믿음과 관련이 있다.누천년동안 지켜져내려온 6일동안 일하고 하루를 쉬는 인류의 생활관습은 20세기 중반에 들어와 깨지기 시작했다.근로시간제한이란 새로운 근로기준이 생겨나면서부터다. 선진공업국치고 주5일 근무제가 정착돼있지 않은 나라는 일본뿐이다.일본도대기업들은 주2일 휴무제를 실시하고 있으나 중소기업들은 아직도 태반이 우리와 같이 토요일 반을 일하는 관행을지키고 있다.2년전부터 소학교와 중·고등학교에서도 월1회 토요일 휴교제를 실험적으로 실시하고 있다.일본도 이제 주2일휴무 시대에 대비하고 있다. 정부가 올해부터 모든 행정기관에 토요전일근무제를 실시키로 했다고 한다.민원행정기관은 민원인들이 편리하도록 토요일 온종일 문을 열지만 공무원들은 한주는 토요일을 전일 일하는 대신 다음주 토요일은 온전히 쉬게된다.말을 바꾸면 한달에 두번 주2일 휴무제가 도입된다는 말이다. 정부의 이런 계획은 민간분야에도 영향을 미쳐 주2일 휴무제가 빠른 속도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반공일문화의 퇴장은 국민일반 생활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이틀을 쉬자면 생활패턴도 바꿔야하고 휴일 풍속도도 달라지게 된다.그만큼 더드는 레저비용 염출문제도 등장하게 된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헬무트 슈미트 전서독총리가 우리에게 충고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갔다.『한국사람들은 너무 열심히 일만 하는 경향이 있다.이제는 한국사람들이 일만 아는 사람들이 아니길 바란다.왜냐하면 신은 인간을 오직 일만 하도록 만들지않았다』 이제 우리도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맞고있다.놀줄도 알아야 한다.
  • 라빈 이스라엘 총리 피살­워싱턴은 외교노력 강화를(해외사설)

    이스라엘은 수년동안 정치적 폭력의 몫이상을 인내해야 했다.그러나 이스라엘은 이츠하크 라빈 총리의 암살로 경악스럽고 새로운 경험에 직면하고 있다. 외부의 많은 군사적 위협을 이겨낸 이스라엘은 이제 가장 심각한 국내 정치적 긴장을 이겨내고 진로를 잡아야 한다.이스라엘의 기본적 가치관과 국민들의 힘은 이같은 시련을 견뎌낼 수 있다. 중동평화협상은 미 백악관에서의 희망에 부푼 첫 서명식이후 26개월동안 후퇴와 위기상황을 되풀이했다.그러나 최근 몇주일동안 라빈은 협상과정을 성공적 결론으로 끌고가기 위해 자신의 의지를 더욱 굳건히 다졌다.두번째 백악관에서의 서명식이후인 바로 몇주전 이스라엘군대는 서안지역의 주요 팔레스타인마을들로부터 철수하기 시작했다.다음의 안건은 팔레스타인의 총선과 예루살렘및 유대인 정착문제등 가장 어려운 문제에 대한 협상의 시작이었다. 라빈은 요르단과의 정식평화협정과 함께 시리아와의 궁극적 평화를 규정하는 단계도 추구했다.그는 이스라엘은 결국 자신의 영토에서 평화를 찾아야 한다는 명확한 비전을 갖고 이를 단계적으로 실현시켜 나갔다.그는 자신의 평화계획에 팔레스타인과 유태 극단주의자들이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는 어떤 위험이 있더라도 이를 계속 추진할 용기와 결단력을 갖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권한을 대행하고 있는 시몬 페레스 외무장관이 평화과정을 개척하는데 있어 그와의 전적인 동반자였다.그는 평화로 가는 길에서 라빈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친구였다.페레스는 라빈처럼 군사지도자로서의 경험은 부족하지만 외무장관을 역임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외교와 안보이익을 보호하는데 노련할 것이다. 부시와 클린턴정부의 미국은 라빈을 특별한 우방으로 보고 평화의 길을 부드럽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워싱턴의 동정적 노력이 상처받은 이스라엘을 안심시키고 미묘한 이 지역의 외교가 제길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 더욱더 필요하다.그것이 라빈의 기억을 영광스럽게 하고 그의 위대한 업적을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 17일간의 종착역 블라디보스토크(시베리아 대탐방:40·끝)

    ◎극동 최대 군항 개방화로 산업도시화/경제력 앞세운 일기업 대거 상륙… “작은 일본”/엔화는 「제2화폐」… 한국 기업도 15개업체 진출 러시아에 사는 유대인은 주로 러시아제국이 동폴란드를 합병한 뒤 대거 이주해왔다.기록으로는 1897년 리투아니아,벨로루시,우크라이나 등 유럽쪽 러시아영토에 4백여만명의 유태인이 살았다고 한다.그러나 러시아인들 사이에 전통적으로 반유태 사상이 워낙 강해 이들은 모스크바등 대도시로는 거의 진출할 기회가 봉쇄돼 있었다. 이후 볼셰비키혁명에 유태인들이 적극 가담하며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다소 호전됐다.트로츠키,스베르들로프,지노비예프,카메네프 등 쟁쟁한 유태인이 볼셰비키의 지도급 인사로 참여했다.그러던중 스탈린 시절인 1931년 도처에 흩어져살던 유태인을 위해 자치공화국을 세우기로 결정하고 하바로프스크주 남쪽 현재의 예브로이자치주에 비로비잔시를 건설했다.그리고 자치공화국이 선포됐지만 이 시베리아 오지로 이주를 원하는 유태인이 없었다.초기주민은 3만명 미만이었다.그나마 스탈린이 죽자 대부분 떠났고 이후 이스라엘,미국으로 이민이 허용된 뒤 이곳에 남은 유태인은 2천∼3천명을 헤아릴 정도가 됐다. ○유태인 비율 8% 불과 현재 전체주민에서 유태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7∼8%에 불과하고 주민 대다수는 러시아인이다.그런데도 공식이름은 여전히 「예브레이(유태인)자치주」이니 유태인 없는 유태인자치주가 된 것이다. 예브레이자치주로 들어서며 모스크바와의 시차는 7시간으로 벌어졌다.BAM으로 연결되는 지선이 지나는 이즈베스트코브이역을 지나자 곧바로 주도인 비로비잔에 도착했다.역이름을 러시아어와 유대어로 나란히 써붙여놓은 게 이채롭다.비로비잔은 비로강을 낀 항구도시로 18 97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로프스크까지 철도가 건설되자 시베리아화물을 이 철도로 연결하며 크게 성장했다.이후 1915년 아무르철도가 완공되고부터는 철도역 기능만 하고 있다. 하바로프스크시로 접근하며 아무르철교를 지난다.짙은 황토색의 강물은 폭이 한강의 10배는 족히 됨직한 규모이다.이렇게 강폭이 넓은 탓에 철교는 하나 있지만차가 다니는 교량은 아직 없어 페리로 실어날라야 한다.낮1시55분 하바로프스크역에 도착했다.역광장에는 하바로프스크를 세운 예로페이 파블로비치 하바로프장군의 동상이 세워져있고 여행중 처음으로 역사 전광판에 네온사인 광고가 등장했다.일본합작은행인 듯한 「하코뱅크(은행)」광고판이었다.드디어 일본영향권에 들어온 것이다.상점에는 한국의 음료수,초콜릿 등도 즐비하다. ○철로변엔 활엽수 장식 20분 정차한 뒤 남진을 계속하자 산천경계는 완전히 시베리아와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베료자,침엽수림은 사라지고 오직 활엽수만이 철로변을 장식한다.인구 60만명의 하바로프스크는 극동지방의 주도권을 놓고 연해주 주도인 블라디보스토크와 수십년간 경쟁관계를 유지해왔다.혁명직후 볼셰비키들은 오랜전통의 블라디보스토크보다는 하바로프스크를 더 좋아했다.그래서 이곳을 극동의 노보시비르스크로 만들려고 했다.1·2차 세계대전 중간시기에 블라디보스토크는 군항으로 발전됐고 반면 하바로프스크는 극동의 행정수도로 발전됐다.2차대전 뒤 블라디보스토크가 군사도시로 외부와 고립되자 하바로프스크는 극동 제1도시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그러다 지난 92년 1월1일을 기해 블라디보스토크가 개방되면서 양자관계는 재역전됐다.하바로프스크에 있던 외국 상사,공관들 대부분이 블라디보스토크로 자리를 옮겨갔다. 모스크바를 출발한지 17일만에 마침내 종착지인 블라디보스토크역에 도착했다.역사에 쓰인 모스크바로부터의 거리는 9천2백88㎞를 가리키고 있다.역사는 출발역인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블역과 똑 같은 양식으로 지어져있다.「의사 러시아식」으로 불리는 독특한 중세러시아 목조건축양식이다.블라디보스토크는 정복자 모라비요프 아무르스키의 이름을 딴 작은 반도 남단에 세워졌다.그곳의 작은 만을 끼고 양언덕에 도시가 건설됐다.수심이 깊고 파도가 직접 들이치지 않는 이 만 때문에 군항이 됐다. 지난 92년 1월1일 도시가 개방되던 날 취재왔을 때와 비교하니 불과 3년여만에 이렇게 많이 변할 수 있나 눈을 의심할 정도다.한마디로 「작은 일본」이라고 할 정도로 일본의 영향안에 들어 활기에넘친 개방도시가 됐다.이곳은 1919년부터 22년까지 일본이 미·영과 함께 점령했던 곳이다.일본은 이후 70여년만에 경제력을 앞세워 다시 이곳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거리를 다니는 차량은 모두 일제 중고차들이다.백화점의 물건도 일제 투성이고 엔화는 루블에 이은 제2의 화폐로 통용된다. ○한국산 식품류 등 많아 이 틈을 비집고 아이스크림,주스,양말,신발 등 한국산 식품류,생필품들이 진출해 있다.92년 한국총영사관이 문을 열었고 같은해 대한무역진흥공사도 이곳에 무역관을 열었다.현대·대우·고합 등을 비롯해 15개 업체가 현지사무소를 열고 있다.하바로프스크,나홋카 등 나머지 극동지역에 현지 지사나 사무실을 연 한국업체는 모두 30개사가 넘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기차로 꼬박 1주일이 걸리지만 비행기로는 불과 9시간이면 간다.하지만 긴 기차여행을 통해서 듣고보는 이점도 적지는 않다.기차가 가면서 주변의 모든 게 변했다.날씨,토양,사람,심지어 베료자나무의 굴곡까지 달라졌다.철도와 함께 러시아의 역사가 흘렀고 도시의 흥망이 달라졌다. 여행을 마치며 러시아와 관련된 정책을 짜거나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러시아를 상대로 일을 하노라면 짜증스런 일들이 많을 것이다.이곳 사람들이 합리적인 원칙을 갖고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아직 사회주의 시절의 일처리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우가 많다.이들로 인해 좌절감,실망감에 부딪칠 때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한번 타보라.다소는 위안을 받을 것이다.러시아가 얼마나 위대한 잠재력을 가진 나라인지 조금은 실감케 될 것이다. 모스크바행 아에로플로트기가 블라디보스토크 상공을 날아오르자 다시 북으로 끝 없이 이어진 검푸른 타이가 삼림이 눈아래 펼쳐진다.
  • 불 핵중독과 국가주의(박화진 칼럼)

    사전을 보면 「∼이즘」(∼ism=∼주의)이란 말은 어떤 일을 굳게 지키는 일정한 방침이나 주장을 뜻하는것으로 되어있다.동시에 그것은 「∼중독」이란 의미도 있는 것을 알수 있다.알코올리즘이 알코올중독인 경우처럼 한가지를 지나치게 섭취하거나 탐닉하는 경우다.내셔널리즘이나 임페리얼리즘,나치즘,커뮤니즘,밀리타리즘 등에 주의 대신 중독을 붙여보면 재미있다.민족중독 혹은 국가중독,제국중독,나치중독,공산중독 그리고 군사중독등의 단어가 되는 것이다. 역사는 이「이즘」이란 이름의 중독현상이 경우에 따라서는 추구하는 당사자에게는 편리하고 큰힘을 주는 무기이나,당하는 상대에겐 얼마나 가혹하고 무서운 범죄요 죄악인가를 잘 보여준다.무자비하고 잔악한 국가와 민족주의 범죄들이 이 「∼이즘」이란 미명하에 얼마나 많이 자행되고 합리화되어 왔는지도 우리는 잘 안다.그중에서도 최근 세계적으로 가장큰 재앙과 고통을 안겨준 이즘 곧 중독현상은 일본을 포함한 서방열강의 임페리얼리즘과 독일의 나치즘,소련의 커뮤니즘등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열강의 임페리얼리즘이 내셔널리즘에 눈뜬 피압박 약소민족들의 저항으로 저지당했으며 게르만민족 우월주의를 내세우며 수십만유대인 대학살을 자행한 독일나치즘은 스스로 일으킨 2차대전의 패전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한반도를 유린하고 아시아를 전화의 고통으로 몰아넣은 일본제국주의·군국주의도 비슷한 말로를 겪었다.그리고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며 무자비한 투옥,숙청과 처형으로 무고한 인명을 수없이 희생시킨 커뮤니즘은 스스로의 구조적 모순으로 자멸했다. 이 모든것은 인간이 몰두하고 미치며 탐익하는 이데올로기나 이즘이란 것이 지나고 깨어보면 얼마나 미친 짓이며 허망하고 무의미한 것인가를 말해주는 역사의 교훈이요 경험이라 할수있다.그러나 그런 과오를 되풀이하는것 또한 인간의 어쩔수없는 어리석음임을 역사와 현실은 보여준다.중동 회교원리주의추구의 폭력사태라든가 보스니아인종전쟁 그리고 북한의 사회주의고수 및 핵개발시도등이 그것이다. 최근 세계적 비난대상이 되고있는 프랑스와 중국의 핵실험집착도 그런범주에 든다고 할수 있다.특히 프랑스는 온세계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기어이 강행했다.「강력한 프랑스」「프랑스의 영광」이라는 허상의 국가주의적 드골리즘에 집착하는 시라크대통령의 시대역행적인 프랑스민족주의의 발로다.핵확산금지조약(NPT)무기한연장으로 핵실험을 할수없게 되기전에 필요한 실험을 다하고 핵강국기득권을 세계에 과시하겠다는 계산의 「핵이즘」「핵중독」의 무례다. 핵무기는 인류공멸의 세계대전같은 큰전쟁이 발생치않는한 무용지물이고 프랑스가 서둔다해도 미국과 러시아를 따라잡기는 불가능하며 프랑스정도의 핵무장으론 두려워할 상대도 없을 것이다.엄청난 비용과 온세계적 국가이미지 실추를 감수하면서까지 핵실험을 강행해야할 이유가 어디있는 것인지 시라크대통령은 물론 프랑스국민도 반성해봐야 할것이다.핵실험강행으로 남태평양청정해역과 그주변환경을 오염시키고 인류공동의 소망인 핵감축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야말로 프랑스도 희생자의 하나였던 독일나치즘의 횡포와 다를바없는 세계적 위협의범죄적 핵중독이요 야만적인 국가주의 추구일 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 성차별 철폐·인간평등 지향/미서 새성경 번역 출간

    ◎미 옥스포드 유니버시티 프레스서/주기도문 「…아버지­어머니」로 시작/「주」(Lord)는 「신」(God)으로 대체/유태인에 대한 부정적 요소도 제거 성차별을 없애고인가느이 평등에 입각해 새로 번역된 신약성겨오가 시편이 오는 11일부터 전미국에 보급될 예정이어서 기독교인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세게 굴지의 성경번역 출판사인 옥스퍼드 유니버시티 프레스가 펴내는 새 성경은 남녀성차별은 물론 부모와 자식, 백인과 흑인, 왕과 신하, 주인과 노예, 정상인과 장애인 등 인간에게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차별적 요소를 불식한다는 취지로 번역됐다. 새 성경에서는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이 없어지게 돼 주기도문의 경우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 시작되던 것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어머니』로 바뀐다. 「주」(Lord)라는 표현도 봉건제하에서 지배계급의 인상을 풍긴다 하여 최대한 줄였으며 「네가 충성을 맹세한」 혹은 「지고의」 등의 표현으로 변경됐다. 따라서 시편 23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The Lord is my shepherd)의 「The Lord」는 「God」로 바뀌었으며 「그」(He)라는 표현도 모두 삭제했다. 아내들이 남편에 대해 「종속」(subject)돼있다는 표현도 「위탁된」(committed)으로 바뀌었고 어린아이들이 부모에게 「복종」(obey)해야한다는 표현도 「명심」(heed)으로 고쳐졌다. 또한 인종편견적 뉘앙스가 있다는 이유로 「어둠」(darkness)이라는 말을 더이상 「악」(evil)과 동의어로 쓰지 않았다. 왼손잡이들에 대한 배려에서 「하나님의 오른손」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권능의 손」으로,「장님」은 「눈이 안보이게 된 사람」.「노예」는 「노예로 잡힌 사람」등으로 표현됐다. 또 이번 성경이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성경에 표현돼있는 유태인에 대한 부정적인 뉘앙스를 모두 제거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부분은 데살로니가서 14∼15장으로 『저희가 주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인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나라 사람들에게 동일한 것을 받았느니라』는 표현에서 「유대인들에게」가 「사람들에게」로 바뀌었으며 유대인이 예수를 죽였다는 등의 내용도모두 삭제됐다.
  • 「아우슈비츠 해방」행사 27국대표 참석/전세계 평화 호소 공동성명

    ◎5천여명 추모 【오스비침(폴란드) 로이터 AP 연합】 폴란드정부와 각국대표및 유대인들은 27일 나치대학살의 상징인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 현장에서 아우슈비츠해방 5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레흐 바웬사 폴란드대통령을 비롯한 27개국 대표들과 노벨상평화상 수상자들은 이날 나치대학살의 참상을 되새기면서 전세계인들에게 평화를 호소하는 공동성명을 채택,발표했다. 이 성명은 아우슈비츠 학살이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라고 규정하고 『모든국가와 민족들이 광신주의와 폭력을 중단할 것을 호소하며 더이상의 전쟁과 학살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훗날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던 엘리 위젤은 비르케나우 수용소에서 연설을 통해 『공포에 떨고 있는 어머니들의 울부짖음을,비탄에 잠긴 노인들의 기도를,어린이들의 울음을 들어보라』면서 『아우슈비츠의 교훈은 증오,광신주의,폭력,공포에 무릎꿇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5천여명의 추모객들은 눈발까지 날리는 추운 날씨속에서도 나치의유태인말살계획 중심점이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학살된 1백50여만 영령들을 위해 촛불을 밝힌뒤 유태인들을 싣고 달렸던 녹슨 철로 지선을 따라 걸었으며 유태교·카톨릭·신교·그리스 정교·회교 등 5개 종교의 기도문이 낭송되는 동안 묵념을 올렸다.
  • 가자서 폭탄차량 테러/유태인에 자살공격… 15명 사상

    【예루살렘 로이터 AP 연합】 폭탄적재 차량 1대가 11일 가자지구의 유대인 정착촌 인근 고속도로에서 한 이스라엘차량에 돌진,최소한 3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부상했다고 이스라엘 라디오방송이 보도했다. 이스라엘 방송들은 이날 목격자들의 말을 인용,문제의 폭탄적재 차량이 가자시남부 유대인정착촌에서 2백m 떨어진 고속도로 교차로에서 자살공격을 감행,폭탄이 폭발했으며 부근을 달리던 승용차안에 타고 있던 일부 팔레스타인인들도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언론들은 이날 차량폭탄 테러가 지난 2일 무장 회교 지하드 지도자 하니 아베드가 폭탄차량에 의해 사망한 사건과 연관이 있다고 전했다.
  • 콜로세움(세계의 명소 걸작 건축감상:2)

    ◎고대로마 검투장… 1900년간 “우뚝”/역동성 넘치는 둘레 6백m 원형의 4층/각층마다 80개의 아케이드 구조물 방사상 배열… 아이디어 돋보여 고대 로마제국(BC 8세기∼AD 9세기)의 유적에서 느끼는 간격은 2천여년에 가까운 시간만이 아니다. 본래의 모습에 흠이 가고 용도도 바뀌고,어떤 곳은 폐허로 변해 옛모습을 되살리기 어렵고 당시의 사회상도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다만 당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통해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영화 「스파르타쿠스」에서 노예 검투사 스파르타쿠스(커크 더글러스역)와 바라바의 검투 장면은 그 처절함에 전율을 느끼게 한다. 훈련소를 방문한 로마장군 부부 앞에서 오락대상으로 펼쳐지는 검투장면,검투사의 분노·저항·죽음 등을 통해 검투를 주목적으로 건설된 콜로세움의 기능을 엿볼 수 있다. 영화 「쿼바디스」에서는 서기 64년 폭군 네로황제에 의해 로마 대화재의 방화범으로 몰린 기독교도들이 굶주린 사자의 밥이 되는 참혹한 장면을 볼수 있다. 로마제국은 대중오락을 국가가 제공했다.시민들은 잔인하고피투성이가 되는 경기의 관람을 좋아했으며 수천명이 운집한 원형투기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검투사 경기는 가장 인기를 끌었다.검투사들은 관중들의 함성속에 생사를 건 경기를 했다.한 검투사가 쓰러지면 그를 살리느냐 또는 심장을 찌르도록 하느냐는 관중들의 특권이었다.투기마당의 모랫바닥이 피로 범벅되어 질척거리면 새로운 모래로 덮고 경기를 계속했다. 콜로세움은 건축가 라비리우스의 설계로 72년 착공,82년 완성됐으며 공사에는 유대인 포로들이 동원되었다.부지는 네로황제의 황금별궁안 연못터로서 폭군의 불타버린 저택지에 시민오락시설을 건설한 극히 정치적 상징을 띤 곳이었다.콜로세움의 북서방향은 포름로마눔(핵심적 정치·기념건물군과 광장)에 연계되어 캐피톨언덕의 로마의 수호신 「주피터 신전」과 공화정의 상징인 「원로원」과 직선축을 이루고 있다. ○라비리우스 설계 콜로세움은 투기마당(84×52m 타원형)을 4개층에 걸친 경사관람석이 타원형으로 둘러싼 구조물(둘레 6백m 높이 48m)이며 관람석 아래층은 통로공간으로 여러원형투기장에서의 경험을 살려 지어졌다. 구조체는 아치와 볼트로 되어 있는데 양외면에 벽돌을 쌓고 속은 로마식 콘크리트(화산재 콘크리트)로 채움으로써 매우 강하고, 겉에는 대리석으로 장식 효과를 살렸다. 콜로세움의 건축적 의의를 보자면 일단 구조적 안전성에 있다.현대와 같은 철근 콘크리트도 없던 당시 7층 높이로 지어 2천년 가까이를 버틸수 있게 한 기술이 놀랍고 건물 또한 아름답다.건물 외벽의 아치는 진·선·미에 해당하는 도리스식(1층),이오니아식(2층),코린트식(3층) 기둥양식을 적용하고 3세기에는 코린트식 장식벽을 4층에 증축함으로써 수평과 수직의 위계이다.또한 타월형평면으로 이룬 공간의 역동성과 축,명확한 통로공간이 특징이다. 외벽의 아치중 2,3층에는 석조인물상이 배치되고,1층은 독립된 출입구 구실을 하도록 했다.북동(장축) 중앙에 황제의 출입문이 있으며 로열박스는 2층에 남서향으로 배치되었다.4층 외벽면 상단에는 목제 마스트를 꽂아 깃발을 달고 차양을 쳐 한껏 축제기분을 내며 뜨거운 태양을 가리도록 한 것이다. 건물중앙의 투기마당은 4.5m의 담장을 둘러쳐 구경에 열중해 흥분하는 관람자들의 안전을 기했다.마당밑의 지하에는 검투사 대기실·맹수우리·무기고·경비대숙소·공연보조물 운반기계창고·지하도로 등이 있었다. ○관람객 안전 고려 콜로세움 완공후 1백일간의 준공축제 동안에만도 많은 검투사와 5천여마리의 맹수가 살육되었다고 한다.또한 한때는 초기 기독교도들의 처형장소로도 활용되었다. 검투경기는 407년에 금지되고 맹수와의 싸움도 523년에 금지됨으로써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서로마제국이 게르만민족에게 망하고(476년)로마가 교황국가에 편입된 이후 1천년동안 이 건물은 방치되었다가 15세기부터 3백년간은 건축 석재 채취에 쓰이는 최대의 위기를 겪었다.르네상스 시기 로마에 건설된 유수한 건축물인 베네치아궁을 포함한 3개 궁전,성베드로 대성당 신축 등에 쓰인 석재들이 이곳에서 캐내어진 것이다. 그러나 1749년 교황 베네딕트 14세가 콜로세움을 순교자의 피로 성화된 곳으로 선포함으로써 석재 공급 역할은 끝났으며 1800년부터 부분적 복원공사가 시작됐다. 콜로세움 주변의 정리는 1933년 파시스트정부가 행한 유명한 로마도시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주변의 고적군을 밀어내고 광장과 도로를 넓힘으로써 오늘의 경관을 확보했다. ○현대에도 모델로 현재 건물의 북동벽면은 온전한 상태이나 나머지 벽면은 멸실되고 2개층만 남아있는 곳도 있다.관람석과 투기마당의 바닥슬라브도 벗겨져서 내부의 아치·볼트가 앙상하게 드러난 채로 있다.1973년 이후 부분적인 복원·수리는 계속되고 있다. 오늘날 콜로세움은 경기와 관람을 위한 건물의 한 전형이 되고 있다. 근대 올림픽 시작 이후 세계적으로 번진 스포츠 스타디움의 건설및 대중문화의 상징으로서의 엘리트스포츠와 이의 기업화에 따라 자재와 기술은 새로워져도 건축 원리는 타원형 콜로세움을 되풀이하고 있다. 콜로세움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건축의 사회적 기능을 보여준다. 제1기 로마제국(4세기까지)에서는 검투사 또는 동물 투기장,제2기 중세(4∼14세기) 혼란기에는 지진피해,방치,또는 요새,제3기 르네상스기(15∼17세기)에는 약탈수난,제4기 근대계몽기(19세기)에는 순교지 지정,제5기 단일세계권(20세기후반 이후)에서는 세계적 역사관광 순례지로서 기능이 바뀌어 가고 있다. 1천여년의 망각과 3백여년의 약탈 수난과 도괴의 위기를 거쳐 근세에 들어와서 그 가치가 다시 부활하고 있음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철거 운명에 놓인 우리의 조선총독부 청사(현 중앙박물관)에서 상기하는 아픔은 크다.식민 통치의 부끄러운 역사의 잔재라하여 허물어져야 한다면 남아있는 건축이나 역사 유산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콜로세움은 변덕스레 바뀌는 이념과 가치관 때문에 과거의 건축 유산을 부수고 새로 짓기를 반복하는 낭비와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아야 함을 일깨워준다.
  • 첫 대좌서 통일까지 인고의 20년(동서독정상회담의 교훈:상)

    ◎두차례회담 의견 대립… 합의도출 실패/“천리길도 한걸음부터” 실무접촉 계속 1970년 3월19일 빌리 브란트 서독총리와 빌리 슈토프 동독총리가 동독의 작은 도시 에르푸르트에서 만났다.독일 분단 25년만의 첫 동서독 정상회담이었다.이 만남 뒤 20년이 지난 1990년에야 독일은 통일되었다.이 첫 정상회담이 기존 양독관계를 획기적으로 바꾼 것은 없다.회담의 성과로 내세울 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만남 그 자체가 큰 사건이었다.두 정상의 직접대화는 상호 이해에 큰 도움을 주었으며 그후 양독관계 진전의 디딤돌이 되고 밑거름이 되었다. 동방정책을 들고 나온 브란트가 1969년 총리가 되면서 동독에 관계정상화 협상을 제의하자 동독이 정상회담을 맞제의했다.정상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이 네차례 열렸다.실무회의에서는 회담 장소 선정이 난제였다.서독은 동베를린을 주장했고 브란트 총리가 베를린 장벽을 통과하여 회담 장소에 가는 방식을 원했다.동독은 이것의 상징적 의미를 반길 수 없었다.서독은 마침내 동독이 제3의 장소로 내놓은 에르푸르트를 받아들였다. 두 정상은 베를린 서남쪽 2백30㎞의 에르푸르트에서 만나 하룻동안 세차례의 회담을 가졌으나 기본적인 입장 차이를 줄일 수 없었다.회담 결과에 대해서 양측 모두 불만이었다.동독은 서독이 외교적 승인을 해주도록 요구했고 서독은 전독대표권의 포기를 밝히면서도 동독 승인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브란트 서독 총리는 회담을 마치고 돌아가 다음날 결과를 하원에 보고했다.그는 동서독이 가까운 장래에 근본문제에 합의할 희망은 없다고 단언했다. 같은 날 동독의 실권자인 발터 울브리히트 공산당수는 동서독 정상회담이 『유용한 것이었지만 서독이 동독을 승인할 용의가 없었기 때문에 실망적이었다』고 말했다. 두 정상은 두달 뒤인 70년 5월 21일 서독의 카셀에서 다음 회담을 가지는데 합의했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이것이 첫 정상회담의 거의 유일한 성과였다.두번째 만남도 첫번째와 마찬가지로 분위기는 경색했고 양측의 주장도 평행선이어서 아무런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다음 회담 약속도 공동성명도 없이 두 정상은 헤어졌다. 그러나양측은 두 정상의 직접 대면으로 입장 차이를 좀더 명확히 이해하게 되었다.그로부터 10여년간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았으나 실무 접촉이 꾸준히 계속됨으로써 양독관계는 점진적인 발전을 보게 되었다. 카셀 회담 6개월후인 11월부터 연쇄 실무접촉이 이루어져 서독과 서베를린간의 통과협정,동서독 교통협정 등의 체결로 국민생활과 직결된 문제들을 해결하였다.큰 매듭인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이 실현된 것은 첫 정상회담후 2년만인 72년 12월이었다. 80년대로 넘어와 슈미트­호네커 회담(81년),콜­호네커 회담(87년)등 여러 차례 정상회담이 있었다.그 이전의 정상회담과 마찬가지로 모두 당장은 감격스럽거나 놀랄 만한 결과를 내놓지는 않았다.오히려 눈에 띄지 않는 실무자선의 접촉으로 현실적인 문제들이 차근차근 해결되었다. 우리는 동서독의 경우보다 훨씬 첨예한 대립상태에 있었으므로 남북한 정상의 첫 만남 역시 훨씬 극적인 사건이 된다.예상외의 실질적 성과도 나올 수 있다.그러나 미리 지나친 기대를 하거나 사후에 실망을 할 필요는 없다.첫만남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의미가 있다.동서독 정상회담의 교훈이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다. ◎「6차례 정상회담」 의전 전례/초기 환영식­의장대 사열 생략 “의식 최소화”/87년 「4차」부터 헬기 사용… 양국국가 첫 연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의전문제가 회담의 의제만큼이나 주요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이는 국가의 상징과도 같은 상대지도자에 대한 대우가 대외적으로 미칠 파급효과가 큰데다 상대국민들의 위신,심리적 영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유럽평화에 획을 그었던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이나 1814년의 빈회의,1919년 파리평화회담 등에서도 관련국들은 자신들의 위신과 직결된 의전상의 문제로 회담의 대부분을 허비할 정도로 의전문제를 중요시했었다.남북한의 경우 정상회담 전례가 없어 의전문제로 신경전을 펼 전망이지만 분단의 특수성에 비춰 상당부분 동·서독의 경우를 준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동·서독은 모두 6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는데 70년3월 「최소한의 의전」으로 동독에어푸르트회담을 성사시킨 이래 점차 상호의전을 확대해 나갔다. 빌리 브란트 서독총리와 빌리 슈토프 동독총리간의 첫 동·서독 정상회담은 환영식,의장대 사열,예포발사,모터사이클의 경호 등이 생략된 최소한의 의전형태를 띠었다.공식연회도 없었으며 음식도 초청자측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했다.그러나 숙소,회담장 주변거리,회담테이블,차량에는 양국국기가 게양되거나 배치됐고 도착시 영접은 총리가 직접하는 방식을 택했다.또 브란트총리는 동독외무장관의 안내로 부헨발트의 유대인집단수용소 기념관을 방문,헌화하기도 했다.이같은 의전전례는 2개월뒤 서독의 카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도 큰 변화가 없었다.다만 서독의 관례대로 1차 정상회담과는 달리 회담장주변거리와 회담테이블에는 양국국기를 배치하지 않았다. 81년 동베를린 근교에서의 3차 정상회담에서는 동·서독간 교류가 빈번해짐에 따라 의전에서도 많은 진전이 이뤄졌다.경호원과 비공식수행원의 수가 크게 늘었고 왕복교통수단으로 특별열차대신 항공기왕래시대가 열렸으며 기상영접이 도입된 외에 이동시 국빈대우의 상징인 사이드카 13대도 동원됐다.초청만찬이 베풀어진 것은 물론 선호·기피음식을 상대방에게 미리 통보하기도 했으며 상대의 협조로 직통전화가 가설돼 활용됐다.이때부터는 또 총리주치의를 처음으로 대동하기 시작했고 행사장범위가 확대,슈미트수상은 미술관과 시장,교회등을 방문하기도 했다.또 외무성 의전장을 단장으로 10명의 선발대가 상호파견되기도 했다. 87년 본회담에서는 지역내이동에서 헬리콥터가 사용됐고 동·서독 국가가 처음으로 연주됐으며 의장대사열도 이때 처음으로 이뤄졌다.4차례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변한 것이 없다면 주최측이 모든 비용을 댄다는 것과 영부인을 대동하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 내인생의 남자들 1·2/벨바 플레인 지음 최진옮김(화제의 소설)

    ◎유럽 부호의 딸이 겪은 미국 남북전쟁 미국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유럽에서 이주해온 유대인 부호의 딸 미리암이 자기 인생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게 되는 과정을 그린 장편소설. 여유롭고 순탄하게 살던 미리암이 결혼생활에 실망,세남자를 만나면서 진정한 사랑과 용기에 눈떠가는 모습을 남북전쟁의 흐름과 연결해 엮어간다. 남부에서 살면서 북부의 노예제 폐지에 동조,북군에 입대한 주인공의 오빠와 주인공 미리암의 급진적인 사고방식이 부각되면서 인간의 자유로운 삶을 억누르는 실체를 꼬집는다. 고려원 각권 5천5백원.
  • 「이」­PLO,철군시한 대립 팽팽/「팔」자치 협정 준수여부 관심

    ◎안보문제 이견… 장애제거 회담 돌입/미국무 중재… 비관적 국면 전환조짐 이스라엘 점령지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예리코시에서의 철군시한이 이틀앞으로 다가온 11일 정해진 시한안에 이스라엘측이 평화협정을 준수할 것인지의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지난9월13일 맺은 평화협정은 협정발효후 2개월째인 12월13일안에 점령지에서 철군을 시작하고 94년 4월13일까지는 그 철군을 완료토록 돼 있다. 그동안 양측이 협정내용을 구체화하는 과정과 최근 이들 두 집단간의 유혈충돌발생등의 전개과정을 볼 때 이스라엘측이 철군개시시한인 13일을 넘길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런가운데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은 12일 카이로에서 팔레스타인자치의 발족을 가로막고 있는 「마지막 장애물」들을 제거하기 위해 회담에 들어간다. 평화협정의 이행문제를 협상해 온 PLO의 나빌 샤트 수석대표는 두 정상이 이 회담에서 합의를 끌어내더라도 합의의 실현에는 수일 내지 1주일이 걸릴 것이라고 말해 「철군과 자치개시의 지연」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 협정 이행에 관한 협상에서 양측이 가장 큰 이견을 보이고 있는 부분은 안보문제.즉 양측은 유태인정착촌의 안전보장문제,서안예리코시와 요르단의 국경및 가자지구 그리고 대이집트 국경초소들을 누가 관리하느냐하는 문제,이스라엘군 철수규모,예리코시의 지리적 구획등을 둘러싸고 아직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측은 「철수예정지안에 이미 정착해 있는 4천여명의 유태인정착민은 이스라엘이 보호하고 안전을 책임진다」는 기존 평화협정내용을 들어 일정규모이상의 군의 잔류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어 팔레스타인측과 마찰을 빚고 있다.이스라엘의 이같은 입장은 최근 이 지역에서 유태인정착민 수명이 회교 과격단체에 의해 살해되면서 더욱 강경해지고 있다. 이같은 비관적인 분위기는 10일을 고비로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이 바삐 움직이면서 바뀌어가고 있다. 크리스토퍼는 미정부 고위관리로서는 처음으로 지난10일 PLO본부를 방문,아라파트 의장과 회담을 가진데 이어 자신이 휴대해온 라빈 총리의 서신을 전달했다.또 회담후 『12일의 라빈­아라파트 회담은 양측이 일련의 장애물에 대해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아주 중대한 회의』라고 밝혔다. 평화협정을 이행시키기 위해 크리스토퍼는 주로 이스라엘측을 설득하는데 주력하고 있는데 그가 라빈수상에게 내보인 「보따리」는 유대인정착민들에 대한 큰 규모의 재정지원약속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라빈총리가 이에 따라 아라파트 PLO의장에게 어떤 메세지를 건넸다면 12일 두 정상의 회담이후 전격적인 이스라엘군의 철수도 상정해 볼 수 있다.
  • 게 놓치고 구럭까지 잃는다면(박갑천칼럼)

    라 퐁텐의 우화시에 「손발과 위」가 있다.손과 발은 하는 일 없이 넣어주는 것 먹기만하는 위한테 불만이 많다.중간쯤을 조금 인용해본다. 『…우리가 없으면 그는 공기로만 살아야한다/우리는 소나 말같이 일하고 땀흘리고 수고를 한다/그건 도대체 누굴 위한것인가/오직 그를 위한것이며 우리에겐 이익도 없다/우리들의 고통은 그놈을 밥먹여주는데 불과하다/우리도 쉬자/손은 물건을 잡지않고 팔은 움직이지않고 다리는 걷지않았다/그리고 가스터(그리스어로 위나 장의 뜻)에게 일꾼을 다른데서 구하라고 했다/그것은 잘못이었고 그들은 후회했다/이윽고 가련한 녀석들은 힘이 쭉빠지고/심장에선 새로운 피가 만들어지지 않고/팔과 다리도 그때문에 힘을 잃었다…』 이에 이르러서야 팔과다리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들이 일한다는 것을 깨닫는다.이 비슷한 얘기는 예컨대 유대인 5천년의 예지가 집약된 「탈무드」에도 「뱀과 뱀의꼬리」라는 우화로서 나온다.항상 머리의 꽁무니만 따라다닌다고 생각한 꼬리가 우김질끝에 머리대신 앞장을 선다.결과는 비극이었다.방향을 잘못잡고 불속으로 기어들어감으로써 모두가 타버리는 것이니 말이다.대결해선 안될 대결의 말로가 그것이다. 이건 좋고 나쁘다거나 혹은 옳고 그르고를 떠나 함께 망하는 짓이다.「전국책」(전국책:연책2)에 나오는 조개와 물새의 싸움도 그것이다.물새가 조개살을 쪼아먹고자 했을때 조개는 주둥이를 오므려버린다.물새는 말한다.『오늘내일 비만 오지않으면 바싹 말라죽은 조개를 보게 될 것이다』.조개라고 지겠는가.『내가 입을 열어주지 않으면 지쳐죽은 물새를 보게 될 것이다』.물새와 조개는 지나가던 어부한테 함께 잡히고 만다.후회해봤자 늦은 일이다. 세상사에는 게(해)도 잃고 구럭(광)도 잃는 경우들이 적지않다.오기싸움을 벌이거나 분수를 모르고 욕심을 부릴때 당하게 되는 일이다.「순오지」(순오지)나「이담속찬」·「동언해」 등에 나와있는 속담이다.「송남잡지」에는 민담까지 곁들여놓고 있다.­옛날에 해(해=게)와 굴억(굴억=구럭)이라는 친구가 있었다.게의 아내는 구럭을 좋아한 나머지 게를 독살한다.그러나 구럭은 선비란 자기를 알아주는 자를 위해 죽는법이라면서 자결해버린다.게의아내는 게도 잃고 구럭도 잃었던 셈이다. 노사분규가 이성을 잃은듯이 각기 자기 궤도만을 치닫는 것을 볼때처럼 답답해지는 일도 없다.어부 좋아할 짓만 같고 게도 구럭도 놓치는 짓만 같아뵈기 때문이다.서로 성숙해질 때도 됐건만.
  • “이,골란고원서 완전철군/시리아와 평화협상 체결 조건”/라빈총리

    ◎가자지구는 전면봉쇄 【카이로 연합】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골란고원으로부터의 이스라엘군 완전철수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이집트의 알 아흐람지가 2일 보도했다. 라빈 총리는 그러나 시리아와의 평화수립 대가로 이스라엘이 치르게 될 희생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려할 것이며 철군의 범위도 시리아와의 평화조약 내용과 연계시킬 것임을 밝혔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라빈 총리는 1일 예루살렘에서 열린 유대인 단체장 총회에서 『이집트와의 평화조약의 대가로 지난 67년 점령했던 시나이반도를 서둘러 반환했으면서도 시리아와의 동일한 협정 체결을 대가로 골란고원에서 완전 철군하는데 반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텔아비브 AP 로이터 연합】 이스라엘군은 1일 텔아비브에서 가자지구 출신 팔레스타인 소년 한명이 흉기로 이스라엘인들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 후 가자 점령지구를 2일부터 무기한 전면봉쇄한다고 발표했다. 군당국은 전면 봉쇄조치가 발효되는 2일 상오3시(현지시각)부터는 그동안 이스라엘에 들어가 일해온약 3만5천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자지구를 떠날 수 없게 된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신분증 유효및 입국허가 여부 등을 확인하고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주민들간의 무력충돌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군당국은 설명했다.
  • “레닌은 유태인혈통의 편집광”

    ◎새 전기 출간… “혁명중 문화재 조직적 파괴” 공산주의가 막을 내렸다지만 볼셰비키혁명을 이끈 레닌에 대한 존경심만은 좀처럼 버리지 못하는게 러시아국민들이다.붉은 광장의 레닌묘소에는 지금도 매일 수많은 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고 스탈린,KGB 창시자 제르진스키의 동상은 모조리 철거돼도 레닌동상만은 꽤나 건재한 게 러시아의 현실이다. 이처럼 아직도 「소련의 국부」로 남아있는 레닌을 유대인·위선자·편집광적인 권력욕에 사로잡힌 인물로 묘사한 전기가 발간돼 화제가 되고 있다.지난달 중순 벨카출판사가 발간한 「햇빛속에서」가 바로 화제의 책으로 저자는 러시아민족주의 경향의 책을 주로 써온 블라디미르 솔로우힌. 우선 표지에서부터 레닌의 얼굴 절반을 마귀의 형상으로 묘사,책의 성격을 단적으로 짐작케 한다.소련시절 정형화된 레닌전기들이 공통적으로 담고있는 레닌의 사상·연설 등에 대한 언급은 생략하고 곧바로 레닌에 대한 인신공격부터 시작한다.주된 줄거리는 레닌이 광폭하고 주변의 심복 몇사람의 말만 듣는교활한 과대망상증 환자로 그려가고 있다.『레닌은 어린시절부터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게 뒤틀려있었고 이것이 뒷날 혁명전후 러시아문화를 조직적으로 파괴하는 작업으로 나타났다』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레닌의 모친 마리아 블랑크가 유대인이었다고 단정짓고 그 때문에 레닌이 어릴적부터 자신에게 적대적인 러시아문화·러시아인에 대한 증오감을 키워왔으며 혁명뒤 소비예트건설이라는 이름아래 전통러시아문화에 대한 조직적인 파괴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한다.정치적으로도 레닌은 혁명뒤 러시아인 다수가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대인·라트비아인들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삼았다고 이 책은 쓰고 있다. 구체적인 증거로 초대 소비예트 인민위원회 구성원 22명 가운데 유대인이 20명이었고 국방위원회는 43명 가운데 34명이 유대인,KGB 전신인 체카의 지도자 45명 가운데 43명이 유대인이었다고 주장한다. 한편 이 책이 논란을 불러일으키자 일부에서는 초기혁명지도부 인사들 가운데 유대인 분류숫자등 책 내용의 상당부분이 정확하지 않은자료를 근거로 삼고 있고 러시아민족주의를 의도적으로 부추기려는 의도 또한 너무 노골화 돼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 「재벌정치」 좌절을 만회하려면…(최택만 경제평론)

    한 재벌 전총수의 정치참여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정주영 현대그룹 전명예총재가 창당한 국민당도 그의 「정치은퇴」선언이후 내부분란으로 와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재벌의 정치참여는 세계적인 사례나 한국적 현실에 비추어 당초부터 잘못된 선택이었다.세계적으로 재벌이 정치에 참여해서 성공한 사례는 없다. 일본에서는 이미 여러차례 그 실험이 있었다.일본 재계인사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든 대표적인 사례는 후지야마(등산진일랑)이다.대일본제당 재벌 2세인 그는 차기 총리내약까지 받고 외상에 취임했으나 실패했다.정치입문 실패뿐이 아니고 본업인 업체도 도산,패가망신했다.데이진(제인)인견사 사장인 오야(대옥진삼)가 한때 정계에 입문했다가 본업이 부도위기에 처하자 정치에서 손을 뗐다. 일본 다이쇼와(대소화)제리의 사이토(재등요영)사장도 패가망신 직전에 정치에서 빠져나왔다.현재 일본 정치인 가운데 재벌로 알려진 고모토(하본)파의 고모토(하본민부)는 정치에 손댄뒤 그가 창립한 일본 최대의 해운회사인 삼광기선이 도산했다.그는도산한 회사의 주인이라는 불명예 때문에 그 계파의 가이후(해부준수)가 총리자리에 오르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미국에서는 록펠러 2세가 한때 대통령을 꿈꾸었으나 실패했다.영국에서는 로드차일드가가 정치에 관심이 많으나 정치자금만대고 정치에는 직접 참여 하지 못하고 있다.독일의 경우 1차대전 직후 AEG 재벌 총수 라테나우가 정계에 들어가 외상이 되고 차기총리에 유력시 되었으나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좌절됐다. 한국적 현실은 어떤가.우리는 유교문화권에 있는 나라이다.유교문화권에서는 보통 권력·명예·돈을 분리시켜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이 3가지중 어느 한가지를 갖는 것으로 만족하라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있다.재벌이 정치에 참여하자 많은 국민들은 우리는 3가지 중 어느 것 하나 갖고 있지 않은데 누구는 전부를 소유하려 하느냐며 강한 불만을 나타냈었다. 국민들의 사시적 시각뿐이 아니다.경제계 내부에서도 반응이 좋지 않았다.재벌이 재벌을 지배하는 사태를 우려했다.다른 한 재벌이 대선전 정당을 창당하려했던 것도 그우려에서 기인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많은 재벌들이 재벌 정치참여이후 정·경간 갈등과 마찰의 불똥이 자기재벌에 미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경제계는 정·경간 갈등이 심화되자 관망자세로 일관했고 설비투자마저 미루는 사태가 발생했다. 사회적으로는 그렇지 않아도 문제가 되고 있는 물질만능 풍조를 확산시켰다.지난해 총선과 대선에서 금품타락선거를 조장했고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는 망국적인 풍조를 만연시켰다.이처럼 재벌의 정치참여는 정치계·경제계·국민 등 각계각층에 엄청난 폐해를 야기시켰다. 정 전대표는 그같은 위해를 초래한데 대해 깊은 자성과 통찰이 있어야 한다.정치참여를 시도했다가 여의치 않자 「은퇴」한다고 선언하는 것으로 그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해서는 참으로 곤란하다.정 전대표의 최근 자세나 행동은 중소기업인이 회사를 하나 더 차렸다가 경영상태가 좋지않으니까 문을 닫아 버린 것과 흡사하다.정 전대표는 한때 한국 재계의 대표(전경련 회장)였고 정치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는 정당을 창당한 인사이다.중소기업을 문닫는 식으로 「정계은퇴」를 마무리 해서는 안된다.정 전대표는 그동안 갖가지 폐해를 일으킨데 대해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여생을 국가경제의 발전을 위해 바치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국민들에게 정식으로 사과할 때 「정계은퇴」도 정식으로 선언해야 할 것이다.의원직을 갖고 있으면서 「정계은퇴」를 주장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가 않다. 정 전대표가 경제계로 돌아 가려면 먼저 우리경제인들에게 불안심리를 주고 경제에 불확실성을 야기시킨데 대해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외국에 나가 큰 공사를 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정 전대표는 시정인이 아니다.모든 것을 공식적으로 매듭짓고 경제계나 기업으로 돌아가는 게 올바른 수순이다.정 전대표가 이번만은 「책임있는 자세와 행동」을 보여주기 바란다.
  • 유대인의 새해 기원/현용수교수 미주 기독교교육 연구원장(특별기고)

    인간의 우수성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눈에 안보이는 마음이 타락하면 눈에 보이는 물질과 생활이 타락한다.로마가 망한 것은 외침에 의해서가 아니고 로마의 황제를 비롯한 집권층의 부패에 그 원인이 있었다.그렇기 때문에 자기 마음을 지키는 자가 참 지혜자인 것이다. 유대인의 신년절기를 로시하샤나(RoshHashana)라고 한다.그들의 달력으로 티시리 달의 첫째 혹은 둘째날에 시작된다.금년은 첫째날이 안식일이어서 둘째날인 양력 9월28일부터 시작되었다.그들의 신년절기는 10일간 중요하고 거룩한 날들로 지켜진다.이 날들은 「두려움의 날」,「심판의 날」이라고도 하며 특별히 마지막날을 「대속죄일」로 지킨다. 유대인의 신년절기는 그들이 지키고 있는 여러 역사적 기념절기들 즉 유월절이나 장막절 등과는 다르다.일종의 영일이다.첫째는 그동안 지었던 죄를 회개하는 일이고 둘째는 1년간 원수진 사람이 있으면 서로 찾아가 용서하고 화해하는 일이다.즉 맺혔던 모든 미움의 사슬을 끊는 절기인 것이다. 그들이 첫째날 읽는 성경은 미가서 7장19절이다.『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이는 마음주머니에 있는 모든 죄를 꺼내어 깊은 바다에 즉 죄악세상에 던져버린다는 뜻이다.히브리말로 회개라는 말은 「teshuvah」로 「돌려주다,계산해주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지난 1년간의 잘못을 회개로 청산하고 다시 되풀이 않게 하기위하여 철저한 자기점검을 한다. 이때 유대인들은 죄를 고백하면서 자신의 죄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고 민족전체의 죄까지 회개한다.그러므로 그들은 회개할때 『내(I)가 죄를 졌다』의 단수로 시작하여 복수인 『우리(We)가 죄를 졌다』로 끝난다.이것은 유대인의 산 신앙공동체 개념을 의미한다.그들의 신앙공동체의식은 모든 국민의식수준의 평균치를 크게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불순종의 요나가 죄를 회개했을때 사랑의 하나님이 그를 용서해주셨다.그리고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니느웨성에 선포했다.그 말씀을 들은 니느웨사람들이 회개했을때 하나님은 그들도 용서해주셨다.이는 모든 피조물에 대한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뜻한다. 유대인은 왜 우수한가.그들의 마음이 부패하지 않게 하는 철저한 성서적 종교교육이 있기 때문이다.송구영신을 타락한 물질문화의 와중에서 지내는 이방인의 방법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인간의 질적 자질을 높이기 위하여는 자신의 마음을 늘 깨끗하게 하며 하나님 사상으로 재무장해야 한다.그리고 위로부터 성령충만함을 받아야 한다.그래야 세상의 악과 대결하여 이길 수 있다.
  • 외언내언

    기원전 1천4년 솔로몬왕에 의해 세워진 예루살렘 신전.그것이 4백여년후 바빌로니아군에 의해 파괴된다.기원전 516년의 재건을 거쳐 헤롯왕에 의해 확대조영되지만 서기 70년 로마군이 다시 파괴해 버린다.◆그 자리에 지금은 이슬람교 「바위의 모스크」가 서 있다.그 광장에 남아 있는 것이 저 유명한 「통곡의 벽」.그것은 길이 37m 정도의 돌담이다.세계로 흩어져 살아야 했던 유대인들이 그 앞에 와서 목놓아 울었기에 붙은 이름이다.그들 겨레의 영욕을 생각하면서 복받치는 설움에 겨워 터졌던 통곡.그들은 통곡속에 조상의 아픔을 추체험했다.재결집에의 결의를 다졌다.◆6·25때 음식먹기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그 날의 아픔을 추체험해 보자는데 뜻이 있다.비록 단조로운 행사이기는 해도 「재결집」에의 결의를 다지는 가운데 오늘을 성찰해 보자는 뜻도 곁들인다.그렇다.그날을 생각할 때 오늘의 우리는 너무들 분수를 잊고 있다.「통곡의 벽」앞의 통곡이라도 있어야 옳을 정도로.6·25를 체험한 세대들은 그걸 뼈저리게 느낀다.◆보리주먹밥·개떡·수제비 등등이 선보인 6·25음식.실제로는 그밖에도 보리가루죽에 옥수수·감자·초근목피 등등 여러가지가 더 끼일 수 있겠다.물론 오늘에 먹어보는 6·25음식을 그날의 그 맛에 비길 수는 없다.오늘의 제과점 케이크보다 맛이 있었던 그날의 개떡맛을 안온하게 사는 오늘의 사람들이 느낄 수 있다 하겠는가.불결하게 먹어도 설사하는 법 없었던 그날의 그 음식.그거나마 없어서 굶주리지 않았던가.◆일부 대학에서는 이 행사에 자그만 시비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새삼스레 전쟁을 상기시켜 남북간 화해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이유로.논리의 비약이 심해 보인다.지금은 우리 내적인 경고의 뜻이 더 큰 그날의 음식먹기행사 같은데.
  • 미 뉴햄프셔 예선… 각국 반응/부캐넌 부상에 보호주의 대두 우려

    ◎미는 「신고립주의」로 접어든 느낌 【도쿄·런던 AP 로이터 연합】 18일 실시된 미뉴햄프셔주 예비선거 결과 조지부시 대통령이 예상보다 크게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한 반면 「미국 제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패트릭 부캐넌 후보가 예상밖 선전을 보인데 대해 세계 각국 정부와 언론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이 강화될 것으로 우려를 나타냈다.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일본 총리는 이날 예비선거 잠정집계 결과 부캐넌후보가 4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보이자 『부캐넌 후보가 전국적인 지지를 얻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가 뒤늦게 취소하는 등 이번 선거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일본의 한 정치분석가는 『일본인들은 이번 미대통령선거에 나선 후보들중 부시대통령을 일본에 가장 유리한 인물로 보고 있다』고 말하면서 『일본 정부는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할경우 미국 우파와 좌파 모두가 일본을 겨냥해 공격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영국의 이브닝 스탠다드지는 『부시 대통령이 뉴햄프셔주에서저조한 지지를 기록한 것은 미국 유권자들이 부시 행정부의 국정 능력에 회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논평했다. 프랑스의 르몽드지 또한 부캐넌 후보의 부상에 대해 『보호무역주의의 대두는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에 재난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부캐넌 후보가 흑인과 유대인은 진짜 미국인이 아니라고 말한 점』을 우려했다.멕시코의 라 호르나다지는 『미국사회는 11년간의 슈퍼맨증후군과 람보증후군을 거친 뒤 이제 새로운 고립주의 시대로 접어드는 것 같다』는 의견을 보였다.
  • 나치수용소 유태인에 “죽음의 전주곡”/바그너음악 이스라엘공연 논란

    ◎바렌보임 연주무산후 찬반논쟁 가열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이스라엘 필하모닉이 바그너의 작품을 공식적으로 연주할 수 있을까. 지난 연말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이스라엘 필하모닉과 함께 바그너를 연주하려던 계획이 단원 및 여론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무산된 뒤에도 이를 둘러싼 논쟁은 더욱 가열되고 있다고 근착 뉴욕타임스와 시사주간지 타임이 잇따라 전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의 바그너는 지난 19 38년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지휘한 팔레스타인 심포니의 연주 이후 공연계획표에서 사라졌다. 그 뒤 지난 81년 인도인이지만 이스라엘에 누구보다도 애정을 갖고 있는 주빈 메타가 「트리스탄과 이졸데」가운데 「사랑과 죽음」을 「금기를 깨기 위해」앙코르곡으로 연주하다 청중들의 흥분으로 중단됐다. 10년이 흘러 지난 해 바렌보임이 이스라엘 필하모닉과의 연주계획을 발표하며 바그너를 포함시키자 또다시 소동이 일어 오케스트라 회원 및 단원들은 투표끝에 연주를 거부했다. 바그너는 히틀러가 태어나기 6년전이고 권력을 잡기 무려 반세기전인 18 83년에 죽었다.그가 살아있는 동안 유대인을 혐오하는 글들을 쓰기도 했고 그의 작품속에 반유대주의적인 경향이 있다고는 하지만 세익스피어가 「베니스의 상인」에서 그리고 있는 유대인의 모습처럼 구체적이지는 않다.사실 바그너적인 유대인에 대한 편견은 당대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문제는 그의 음악이 나치선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에따라 나치침략의 가장 강력한 상징이 되었다는데 있다. 특히 30만명에 이르는 「죽음의 수용소」의 생존자들에게는 당시 수용소의 나팔스피커에서 울려퍼지던 바그너의 음악이 곧 「죽음의 전주곡」으로 깊숙이 각인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대인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잭 스턴과 이츠하크 펄먼,슐로모 민츠,그리고 수용소 생존자인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 부악장 데이비드 아번 등은 바그너의 음악으로 히틀러가 힘을 얻었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수많은 수용소 생존자들에게 바그너는 고통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의 연주는 불가능 하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이처럼 이스라엘에서의 바그너연주를 반대하는 쪽의 의사가 대부분 관철되고 있다. 그러나 메타나 바렌보임과 같은 노력도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다. 수용소 생존자의 한 사람인 클리블랜드오케스트라의 트럼펫주자 데이비드 조더,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펠츠만,지휘자 레온 보트스타인 등도 그런 쪽의 사람들이다. 그들의 주장은 음악은 그 자체로 미하적 도덕적 기준을 적용해야지 청중의 경험과 결부시켜서는 안 되며 바그너가 음악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이스라엘에서 바그너 음악의 연주가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바그너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유대인들도 흥분이 아닌 이성을 갖고 이 문제를 대하자는 것이지 과거를 잊자거나 나치의 역사와 화해를 하자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처럼 관대한 쪽의 유대인들도 막상 텔아비브에서 바그너음악회가 열리면 대부분 외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들의 주장은 이스라엘에서의 바그너연주를 억지로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 고통의 상징인 바그너의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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