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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꽂이]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천연염색(이종남 지음, 현암사 펴냄) 홍화로 물들인 진달래꽃빛, 소목으로 물들인 장밋빛, 치자로 물들인 오렌지빛 황색, 자초로 물들인 자줏빛, 황련으로 물들인 개나리빛…. 천연염료로 물들이는 천연염색은 자연의 숨결을 간직한 색채의 마술이다. 천연염색연구가인 저자는 섬유뿐만 아니라 가죽, 금속, 나무, 솜, 한지에 자연의 물을 들이는 방법을 ‘임원경제지’‘규합총서’‘산가요록’등 옛 문헌을 토대로 고증 재현했다.2만 9500원. ●우리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실리아 샌디스 등 지음, 박강순 옮김, 한스미디어 펴냄) 윈스턴 처칠은 위기에 처한 국민들의 사기를 높이고 자신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지도자였다. 그는 군대나 반대자, 적 앞에서도 당당했으며 언제나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패튼 장군은 처칠의 그런 특성을 ‘전쟁 표정’이라고 불렀다. 이 책은 처칠 자신의 삶 속에서 우러나온 열정적인 리더십을 보여준다.1만 5000원. ●사대부의 시대(고지마 쓰요시 지음, 신현승 옮김, 동아시아 펴냄) 사대부란 송대 이전부터 있어왔던 용어다. 즉 한대 이후 세습에 의해 권력과 위신을 유지한 관료층을 사대부라 일컬어왔다. 그러나 송대에 이르면 사대부의 개념은 변하게 된다. 과거제도 때문이다. 누구든 과거시험이란 관문을 통과해야 진사의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도쿄대 교수인 저자는 주희가 제창한 ‘수기치인’의 관념, 곧 자신을 성인에 가까운 인격자로 확립한 뒤에 민중의 위에 선다는 것은 사대부의 사고를 관통하는 사상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양명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양명학이 때로 민중적인 성격을 띤 사상으로 평가되지만 그것은 사실에 반하는 논리라는 게 저자의 견해다.1만 2000원. ●사람은 왜 옮겨 다니며 살았나(기 리샤르 등 지음, 전혜정 옮김, 에디터 펴냄) 인류의 집단이주 및 이민의 역사를 조명. 히브리인들의 출애굽 사건에서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후 유럽인구의 이동, 유대인의 유랑 등 끝없이 이어져온 지구규모의 인구 대이동 상황을 살폈다. 책은 인류 이주의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피난처를 찾기 위한 것으로, 훈족에게 쫓기던 게르만족의 이동을 들 수 있다. 둘째 자연환경 변화에 따른 굶주림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스페인 사람들이 엘도라도를 찾아 라틴아메리카로 몰려갔듯이 황금에 대한 갈망이 이주를 촉발시켰다는 것이다.2만원. ●신?(알베르 자카르 지음, 정재곤 옮김, 궁리 펴냄) “전능하신 천주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서기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채택된 이래 오늘날까지 변치 않고 전해지는 사도신경. 이것은 수많은 기독교 신자들에게 사고의 틀을 제시하고 사색의 길로 이끌기도 한다. 프랑스의 유전공학자인 저자는 사도신경을 비롯한 복음서들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메시지가 무엇인지 묻는다.9000원.
  • 儒林(210)-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儒林(210)-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중종이 자신을 우유부단한 영공에 비유하고 있음은 시험문제에서 자신의 처지를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는 것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왕이 될 만한 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조종(祖宗)의 기업을 이어 정치에 임하여 좋은 성과를 소망하여 온 지도 벌써 10년이 되었으나 아직도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지도 못하였으며, 나라의 법도도 정해지지 못하였다. 그러니 어찌 정치의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었으리요. 이 자리에 모인 여러 성균관 학생들은 공자의 가르침을 배우는 사람들이므로 모두가 요순시대의 이상적인 정치를 이루려는 포부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개인의 입신출세만을 여기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과 같은 어려운 시대를 당하여 이 난국을 극복하고 옛 성인의 이상적인 정치를 오늘에 다시 이룩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대책을 논하라.” 중종의 절박한 심정은 구세주를 기다리는 유대신앙을 느끼게 한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하나의 선지자로만 여기고 있을 뿐 선택받은 민족인 자신들을 구원할 구세주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그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 끈질긴 기다림은 바로 자기들 앞에 나타난 초라한 목수의 아들이 바로 그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게 한다. 그들이 바라는 구세주는 그렇게 무기력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만큼 나약한 사람은 아닌 것이다. 그 긴 세월을 기다려 온 보람을 봐서라도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 일이고, 어리석은 일이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종은 자기의 구세주, 즉 공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1년이면 나라를 바로잡고 3년이면 완전한 정치를 이룰 수 있는 공자가 자신의 앞에 나타나 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알성시에서 2등으로 급제한 조광조는 중종이 그토록 꿈꾸어 오던 공자의 현신이었다. “하늘과 사람은 그 근본됨이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이 사람에 대하여 도리에 맞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임금과 백성은 그 근본됨이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예전에 이상적인 임금들이 백성들에게 도리에 맞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옛날에 성인들은 하늘과 땅의 큰 것과 수많은 백성들의 무리를 하나로 여기셨으며, 그런 이치에 따라 도를 행하였습니다.”명문중의 명문으로 꼽히는 조광조의 답안이 공자의 현신을 기다려 온 중종의 마음을 사로잡고 조광조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게 된 것이다. 개혁주의자 조광조의 비극은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오직 공자에게만 의지하고 이를 고지식할 정도로, 그리고 과격하게 추진해 나가는 데서 시작됐으나 그보다도 조광조를 공자의 현신으로 믿고 의지했던 중종이 어느 순간 조광조는 조광조일 뿐 공자의 현신이 아님을 자각하고 조광조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철회했던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공자는 영공에게 크게 실망하고 다시 위나라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이 무렵 공자가 얼마만큼 자신의 처지에 초조해 있었던가를 보여주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때 위나라의 이웃인 진나라는 한참 내란 중이어서 대부 조간자(趙簡子)가 같은 대부인 범씨와 중항씨를 공격하였으며, 이틈을 노려 조간자가 다스리는 중모(中牟)라는 마을의 수장인 불힐(佛 )이 반란을 일으켰다. 조간자는 자신의 영토 내에서 분쟁이 일어나자 분노하여 중모를 토벌하고 대관(代官)위치에 있으면서도 배반하는 불힐을 죽이려 하였는데, 다급해진 불힐은 사람을 보내어 공자를 초빙하였던 것이다. 이때 공자는 위나라를 떠나 오늘날의 하남성 개봉도(開封道)에 있는 중모현으로 가려고 했다. 이를 지켜본 성미 급한 자로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자로는 따져 물었다. “전에 제가 선생님에게 들은 말인데,‘스스로 자기 자신이 옳지 못한 짓을 하는 사람 틈에 군자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불힐은 중모에서 반란을 일으켜 배신했는데 선생님께서는 그에게 가려 하시니 도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 이 의회, 팔 정착촌 철수안 승인

    |카이로 연합|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는 26일 밤(현지시간) 아리엘 샤론 총리가 제출한 정착촌 철수안을 큰 표차로 통과시켰다. 의원들은 이틀간의 격론 끝에 정착촌 철수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67대 반대 45표로 통과시켰다. 전체 120명의 의원 가운데 건강이 나빠 불참한 1명을 제외한 전원이 표결에 참여했으며 7명이 기권했다. 이스라엘 의회가 장차 팔레스타인 독립국 영토가 될 지역에서 유대인 정착촌 철수를 승인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스라엘이 점령지를 돌려주기로 결정한 것은 1982년 시나이 반도 정착촌을 철수하고 이집트에 반환한 이후 처음이다. 샤론 총리는 내년초 부터 9월까지 4단계에 걸쳐 가자지구 21개 정착촌과 요르단강 4개 정착촌에서 주민과 병력을 철수할 계획이다. 그러나 내년 3월부터 단계마다 내각의 추가 승인을 거쳐야 한다. 이와 함께 정착촌 철수에 반대하는 연정 제휴 정당들의 이탈이 가속화할 경우 내각 붕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표결 후 베냐민 네타냐후 재무 등 4명의 리쿠드당 소속 핵심 각료들은 샤론 총리가 국민투표를 공약하지 않으면 2주일 내 사퇴하겠다고 위협했다. 연정 제휴 정당인 민족종교당도 샤론 총리에게 정착촌 철수 찬반 국민투표를 요구하고 나섰다.
  • 儒林(208)-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儒林(208)-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타인과의 약속을 신과의 맹세처럼 생각했던 공자가 공숙씨와의 약속을 이처럼 헌신짝처럼 버린 일은 놀라운 일이다. 단 한번도 약속을 어긴 일이 없었던 공자의 파격적인 행동은 이것이 단 한 번의 예외인 것이다. 공자가 포땅을 벗어나 단숨에 위나라로 발길을 돌리자 원칙주의자인 자공이 스승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방금 공숙씨들과 절대 위나라로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그 약속을 어겨서야 되겠습니까.” 자공의 질문에 공자는 태연하게 대답한다. “강요에 의한 맹세는 신도 듣지 않는다.” 생명을 위협하는 감금상태 중 일반적인 강요에 의해서 맺어진 협약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공자의 대답은 그 어떤 고통 속에서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던 예수의 태도와 상극을 이룬다. 예수는 자신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에게 굳은 침묵을 지키며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로마인 총독 빌라도가 ‘나에게도 말을 하지 않을 작정인가. 나에게는 너를 놓아줄 수도 있고, 십자형에 처할 수도 있는 권한이 있는 줄 모르느냐.’라고 마지막 회유를 하였을 때에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이에 비하면 공자는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거짓말까지 마다하지 않는데, 이를 봐도 알 수 있듯이 공자는 현실의, 현실을 위한, 현실에 의한 현실주의적 사상가였던 것이다. 공자는 마침내 위나라로 다시 들어가는데 이것이 세 번째의 입국이었다. 사기에는 이때도 영공이 ‘공자가 왔다는 기별을 받고 교외까지 반갑게 마중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차츰차츰 공자에 대한 대우는 소홀해지고 있었다. 첫 번째로 공자가 입국했을 때에는 6만 두의 곡식을 녹봉으로 주었으나 두 번째는 영공 자신이 교외에까지 마중하고 부인인 남자도 공자를 회견했었다. 그러나 세 번째로 위나라로 들어왔을 때에는 교외까지 마중은 했으나 영공의 말과 행동은 일치하지 않고 은근히 공자를 무시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런 행동은 공자가 포땅에서 반기를 들었던 공숙술 일당에게 곤혹을 치렀단 말을 전해 듣고 공자에게 한 행동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대가 포땅에서 공숙 일당으로부터 큰 수난을 받았다는 소문을 들었소. 어차피 공숙 일당은 반역자라 이들을 토벌하고 싶은데 그대의 생각은 어떻소.” 영공의 말에 공자는 대답하였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공자는 개인의 원한 때문이 아니라 국가에 반기를 든 모반자들은 반드시 처벌하여 국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정치적 신념을 갖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동조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에 영공은 다시 말을 잇는다. “그런데 우리 대부들은 이를 불가하다고 말하고 있소. 포는 위나라의 서쪽에 있어 동쪽으로 쳐들어오는 진나라와 초나라를 막는 요충지로 생각하고 있소. 나는 포를 치고 싶은데 말이오.” 망설이는 영공을 향해 공자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제가 본 바에 의하면 포나라 사람들은 공숙술의 편이 아닙니다. 그곳 남자들은 그곳을 다스리는 공숙씨의 지배를 벗어나고 싶어 하고 있고, 그곳 여자들은 그곳을 평화로이 유지하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만일 전하께서 군사를 내어 정벌하신다면 금방 반역자들을 잡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공숙씨를 따르는 무리들은 불과 4,5명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자 자신이 직접 공숙씨의 군세를 본의 아니게 염탐까지 하였으므로 신빙성이 있었다. 이에 영공은 크게 반기며 말하였다. “좋소. 당장 군사를 동원하여 포를 치겠소.”
  • 문장으로 보는 유럽사/하마모토 다카시 지음

    문장(紋章)이란 원래 가문을 표시하는 도형을 말한다. 그것은 중세 유럽의 기사가 전장에서 적과 아군을 구별하기 위해 방패에 그린 문양에서 비롯됐다. 이후 군주나 귀족들의 권위를 과시하는 상징물이 됐고 나아가 도시나 길드, 교회, 대학 등 공동체의 상징으로도 이용됐다. 문장은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지금도 엄연히 살아 숨쉰다. 유럽 어디를 가든 탑이나 성문, 시청, 선술집 간판, 가구 등에는 문장이 새겨져 있고 심지어 맥주나 와인의 상표, 수표, 공식서류 등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이같은 문장의 의미와 변천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유럽사를 들여다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장으로 보는 유럽사’(하마모토 다카시 지음, 박재현 옮김, 달과소 펴냄)는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문장이 유력한 키워드임을 보여준다. 일본 간사이대 교수인 저자는 문장이라는 창을 통해 중세와 근대, 현대에 걸친 유럽의 역사를 폭넓게 살핀다. 교회에서는 어떤 문장이 사용됐을까. 교회에서 처음 문장을 사용한 사람은 13세기 말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 그후 교황과 주교들은 각기 고유한 문장을 채택해 자신의 직무와 그에 따른 생활신조를 나타내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3중관과 성배, 교차된 열쇠로 이뤄진 문장을 사용한다. 문장은 차별의 표지로도 사용됐다. 황색과 세로 줄무늬는 유대인 차별의 대표적인 상징.1215년 로마의 제4회 라테라노 공의회에서는 유대인의 옷차림을 규제하는 결의가 이뤄졌다. 그후 1267년 빈의 성무원(聖務院, 개신교의 최상위 입법기관)에서는 유대인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뾰족한 모자를 쓰게 했다. 모자의 색은 대개 황색이었으며, 미파르(mi­parti, 세로로 색 구분이 된 옷)를 입도록 요구받았다. 또한 나치스는 유대인들에게 ‘황색 다윗의 별’을 가슴에 붙이게 했다. 황색이나 세로 줄무늬는 매춘부나 광대의 상징. 사형 집행인은 줄무늬 작업용 바지를 주로 입었고,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 전설에 나오는 주인공인 쥐잡이 남자의 복장도 줄무늬 바지다. 책은 일본의 문장에 대해서도 다룬다. 유럽과 거의 같은 시기에 성립된 일본의 문장은 곡선을 이용해 우아하고 섬세하게 그려진 것이 특징. 저자는 가문(家紋)으로 발달한 일본의 문장에서는 미적 감각을 중시하는 대칭형의 문장 원칙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말한다. 문장학 혹은 기장학(旗章學)은 우리에게는 무척이나 낯선 분야다. 소략하지만 문장학 입문서로 흥미롭게 읽을 만하다.1만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타계한 자크 데리다의 삶과 철학

    |파리 함혜리특파원|8일 타계한 자크 데리다의 삶과 철학은 다수보다는 소수,주류보다는 비주류에 가까웠다.누구보다 난해한 철학자였지만 20세기 후반 세계 지성사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 철학자 중 한 명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1930년 프랑스령 알제리의 수도 알제 인근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데리다의 학창시절은 평탄치 못했다.파리로 이주한 뒤 유대인이란 이유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비시정권 때 중학교에서 1년간 쫓겨나기도 했고,고교생 때에는 축구에 빠져 대학 입학 자격 고사(바칼로레아)에도 떨어졌다.재수 끝에 1952년 명문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했으나 졸업 후에도 역시 한번 낙방한 후 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했다. 그가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고등사범학교 교수 재직중이던 1967년 ‘그라마톨로지’,‘목소리의 현상’,‘글쓰기와 차이’ 3부작을 잇따라 발표하면서부터.텍스트 뒤의 구조를 밝혀내려는 구조주의가 유행하던 당시 ‘텍스트의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선언함으로써 철학계에 일대 논쟁을 불러일으킨 그는 프랑스 철학계의 미운오리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는 1970대 초 미국으로 건너가 존스 홉킨스,예일 대학 등에서 가르쳤다.1983년엔 국제철학학교를 설립,초대 교장에 취임하는 등 철학 연구에 평생을 바치며 플라톤 이후 서양철학의 전통에 반기를 든 해체주의를 다듬어 갔다.문학,예술,법률,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독특한 시각과 해석을 선보였던 그는 서재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 문제에도 적극 참여했다.1980년대 초 해체론을 강의하며 체코 공산당의 심기를 건드린 ‘죄’로 체코 당국에 감금되기도 했으며 만델라 석방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알제리 이주민의 권익을 위해 싸웠고 동성애자 차별철폐에도 앞장섰다.예술가들과도 교류해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스만과 함께 공원을 설계하고,비디오 아티스트 게리 힐의 작품에 ‘출연’하기도 했다. ●해체주의란 데리다는 전통적인 텍스트 읽기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텍스트에는 저자도 이해하지 못하는 다극적 의미가 들어 있다고 전제하면서 지난 수천년간 서구 철학이론을 지배해온 이른바 ‘현전(現前)의 형이상학’을 뒤집고 해체론이라는 혁신적 사유방식을 도입했다.해체주의는 플라톤 이후 서양 철학사를 주도해 온 이성 중심 사고를 회의하며 극복을 시도하는 데서 출발한다.텍스트가 불변의 의미를 지닌다는 기존의 생각을 뒤집으며 글쓴이의 의도가 무조건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각 텍스트는 다극적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했다.그는 서구 철학의 근저엔 본질과 현상의 이항대립이 자리잡고 있으며 본질은 현상에 비해 우선적이자 우월한 것이고 현상은 본질에서 파생된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lotus@seoul.co.kr ■해체주의 철학 창시 佛자크 데리다 사망 |파리 함혜리특파원|프랑스가 배출한 최고의 철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해체주의 창시자 자크 데리다가 8일 밤(현지시간) 파리의 한 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74세.2003년 췌장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 왔다. 데리다는 텍스트는 단지 그 이면에 숨겨진 여러 가지 의미를 보여주는 단어의 배열에 불과하다며 서양 형이상학의 해체를 주장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동시에 난해하고 도발적인 그의 사유세계로 인해 프랑스 철학계의 이단아로 취급받기도 했다. 1930년 7월15일 프랑스령 알제리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데리다는 프랑스 명문 고등사범학교 철학과를 졸업,소르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오랫동안 프랑스와 미국의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1981년에는 체코 지식인을 지원하다 체코 당국에 구금당한 적이 있고 동성애자 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등 상아탑에만 머물지 않고 기아,인종주의,핵 등 현실문제 해결을 위한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차이와 반복’‘그라마톨로지’‘글쓰기와 차이’‘철학의 여백’‘마르크스의 유령들’ 등 수백권의 저서를 남겼다. lotus@seoul.co.kr
  • [책꽂이]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스티븐 런치만 지음,이순호 옮김,갈라파고스 펴냄) 330년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후 고대 도시가 있던 비잔티움에 자신의 이름을 딴 콘스탄티노플이라는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다.동양과 지중해 사이의 해상로와,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육상로의 교차로에 자리잡은 이 도시는 이런 지리적 이점 때문에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은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다.그러나 최초의 기독교 도시로서 고대문화의 마지막 피난처였던 콘스탄티노플은 1453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함락된다.이 책에는 그 과정이 생생하게 담겼다.1만 5800원. ●차이나타운 없는 나라(양필승·이정희 지음,삼성경제연구소 펴냄)한국 화교는 19세기 말부터 중국 대륙에서 한반도로 건너온 중국인과 그 후손들로,그들의 국적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닌 중화민국 즉 타이완이다.한국 화교의 역사는 120년을 헤아린다.구한말 한국 화교는 영국산 면포의 중계무역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일본상인과 조선상인을 위협하는 존재로 등장했다.조선총독부는 한국 화교의 경제력 신장을 경계해 고관세를 부과하기도 했다.그러나 화교경제는 1950년대 이후 쇠퇴를 경험한다.이 책은 국내 화교와 한국사회가 부(負)의 역사를 청산하고 발전적 공생관계를 만들어 갈 것을 제안한다.5000원. ●거상(지아구어씨·장쥔링 지음,김태성 옮김,더난출판 펴냄) ‘동양의 유대인’이라 불리는 저장성 남부 원저우(溫州) 상인 이야기.원저우는 중국 저장성 남부에 위치한 작은 소도시.원저우인들의 발길이 닿는 곳은 모두 상업의 중심지가 됐다.상하이의 베이징로와 난징둥로(南京東路),푸둥의 캉차오로(康橋路) 등은 모두 원저우인들의 세력확장으로 부상하게 된 상업지역이다.원저우에는 ‘개체경제’라고 불리는 소규모 생산업체들이 발달해 있다.현재 해외거주 원저우 출신 화교는 87개국 200만명에 이를 정도로 중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2만원. ●빌 에반스(피터 페팅거 지음,황덕호 옮김,을유문화사 펴냄) ‘재즈계의 쇼팽’으로 불리는 빌 에번스 평전.뉴올리언스의 흑인 브라스밴드에서 처음 생겨난 재즈는 흑인의 강렬하고 펑키한 취향,활기 넘치며 격렬한 즉흥연주를 특징으로 한다.그러나 에번스의 음색은 관조적이고 사색적이며 서정적이면서도 극도로 정제된 미학의 세계를 보여준다.현재 재즈 피아노의 흐름은 ‘버드 파웰 이후’에서 ‘빌 에번스 이후’로 바뀐지 오래.에번스가 이끌어온 트리오는 1960년대 마일즈 데이비스 퀸텟·존 콜트레인 쿼텟과 더불어 오늘날 재즈 앙상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2만 5000원. ●녹색사상사(존 배리 지음,허남혁·추선영 옮김,이매진 펴냄) 근대사회 형성기의 계몽주의부터 포스트모더니즘 등 최근 사회이론에 이르기까지 역대 사회사상가들이 자연과 환경을 어떻게 보아왔는가를 정리.홉스와 로크,루소 등 고전 정치철학자들과 맬서스,다윈,스펜서,크로포트킨,마르크스,존 스튜어트 밀 등 진보적 혹은 반동적인 사회이론을 제시한 사회이론가들이 자신들의 이론에서 자연과 환경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소개한다.과거와 현재의 사회이론이 환경을 어떻게 오용했는가를 살펴보며 환경과 사회의 조화로운 공존을 모색하는 녹색 사회이론의 가능성을 탐색한다.1만 5000원.
  • [차이나 리포트 2004] (28)’제2의 홍콩’ 꿈꾸는 상하이

    [차이나 리포트 2004] (28)’제2의 홍콩’ 꿈꾸는 상하이

    중국 상하이(上海) 푸둥(浦東)신구 루자쭈이(陸家嘴)에 자리잡고 있는 증권거래소는 하루 종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전장(前場)이 열리자마자 빨간색 조끼를 입은 1600여명의 트레이더(주식거래인)들이 일제히 컴퓨터를 응시하며 주식거래에 여념이 없었다. |상하이 김규환특파원|초당 8000여건의 거래를 쏟아내며 포연(砲煙)없는 전쟁을 치르는 이들의 얼굴에는 10억위안(약 1500억원) 이상을 쥐락펴락하는 ‘머니게임의 전사’답게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사회주의 중국’의 증권시장이 아니라,마치 미국의 뉴욕 증시에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상하이가 국제금융도시로 떠오르고 있다.세계적인 다국적기업들이 아시아 지역본부를 상하이로 옮김에 따라 세계적인 금융기관들도 앞다투어 이곳에 상륙하고 있다.특히 빠른 경제발전에 힘입어 중국의 증권시장은 시가총액이 4조 3500억위안(약 652조원)을 넘어서는 등 일본과 홍콩에 뒤이은 아시아 3번째의 큰 규모로 성장했다.이제 상하이는 홍콩,싱가포르와 아시아 금융센터의 대표주자를 놓고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상하이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금융기관 수는 모두 3200여개.이중 외국 금융기관은 73개로 은행이 58개,보험사는 15개이다.이미 홍콩(1600여개),싱가포르(700여개)를 크게 앞지른 수준이다.이에 따라 상하이 금융기관들의 은행예금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은행예금은 모두 1300억달러로 아직 홍콩(4500억달러)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싱가포르(1000억달러)는 제쳤다. 정핵진(丁劾鎭) 하나은행 상하이지점 시장부 차장은 “미국계의 씨티은행·영국계의 홍콩상하이은행(HSBC)·네덜란드계의 ABN암로 등 세계적인 은행 24개가 상하이에 중국 본부를 두고 있다.”며 “은행의 가장 큰 소비자인 다국적기업들이 상하이로 급속히 몰려오고 있는 만큼 금융기관들도 당연히 따라올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세계적인 금융기관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상하이 정부를 비롯해 중국의 파워그룹이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천량위(陳良宇) 상하이시장은 최근 “오는 2005년까지 상하이 경제에서 금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을 20%로 끌어올려 상하이를 국제금융 중심지로 키우겠다.”고 천명했다. 상하이 당서기 출신의 황쥐(黃菊) 부총리와 시장 출신인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 등 직전 중국 최고지도부의 ‘막강한 입김’도 외국 금융기관에는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마자난(馬嘉楠)푸둥발전계획국 처장은 “중국 중앙정부의 금융정책 추진력이 좋은 데다,과감한 외국투자자 유치와 금융빌딩 건설 등 금융인프라 설치에 역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 상하이시의 국제금융 발전에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거대한 잠재력을 지닌 상하이의 미래와 세금혜택 등도 외국 금융기관들을 끌어들이고 있다.이곳의 외국 금융기관들은 법인세를 다른 지역의 절반인 15%만 내고,그것도 처음 2년간은 아예 면제를 받는다.푸둥지역의 루자쭈이에는 증권거래소와 외환거래소,선물거래소,금거래소 등 7개의 주요 금융시장이 개설돼 있다. 현재 상하이 진출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일본.미쓰이 스미토모은행이 지난해 12월까지 본점과 홍콩지점 등에서 나눠서 담당했던 자금조달 업무를 상하이로 옮겼다.도쿄미쓰비시은행도 파생상품 거래를 담당하는 인력을 상하이지점에 배치시켰다.중국시장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홍콩보다 상하이가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후젠화(胡建華) 푸둥지구 외자기업협회 판공실 비서장은 “지난 95년 인민은행 지점을 먼저 푸둥지역에 세우고,이를 중심으로 금융인프라를 구축하자 외국 금융기관이 몰려들고 있다.”며 “일본 스미토모신탁과 독일의 북도이체방크 등이 진출하면서 현재 푸둥지구내 외국 금융기관은 73개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하지만 장밋빛 미래 못지않게 걸림돌도 있다.외국계 은행들 중 실제로 중국 인민폐로 영업을 할 수 있는 곳은 24개에 지나지 않는 등 상하이 금융시스템이 홍콩·싱가포르에 비해 크게 낙후된 편이다.황쩌민(黃澤民) 상하이 화둥(華東)사범대학 국제금융학과 교수는 “상하이가 홍콩과 싱가포르의 모든 금융기관들이 자유롭게 각국 통화를 거래하고 전세계를 대상으로 영업하는 것과는 아직 차이가 있는 데다 3조위안(450조원)에 이르는 중국은행들의 부실채권이 언제든지 무서운 복병이 될 수 있어,상하이가 국제금융도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같은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khkim@seoul.co.kr ■산업은행 93년 中입성 1호 |상하이 김규환특파원|우리 금융기관들의 중국 진출은 지난 1993년 산업은행이 산둥(山東)성에 영업 진출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베이징에 사무소를 두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이후 중국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시장 잠재력이 커져 앞다퉈 대륙에 상륙했다. 지금까지 중국 본토에 진출한 은행은 국민·수출입·신한·외환·우리·제일·조흥·중소기업·하나 등 모두 11개사.가장 먼저 진출한 산업은행은 베이징사무소와 상하이지점을 각각 운영하고 있고,두 번째로 진출한 수출입은행은 베이징사무소만 두고 있다. 외환은행이 93년 톈진(天津)지점을 개설한데 이어,95년 다롄(大連)지점,96년 베이징지점을 잇달아 열어 가장 많은 지점을 두고 있다.우리은행은 95년 상하이지점과 2003년 베이징지점을 여는 등 2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증권사는 대우증권이 95년 상하이사무소를 설치해 먼저 진출했고 LG증권은 96년,현대증권은 98년에 상하이사무소를 열었다. 보험사는 95년 삼성화재와 삼성생명이 베이징 사무소를 열며 처음 입성했다. 이어 제일화재·LG화재·대한재보험·현대해상이 잇따라 진출,베이징과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 등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 khkim@seoul.co.kr ■고광중 하나銀 상하이 지점장 |상하이 김규환특파원|“외국 금융기관이 중국에 진출하기 위한 조건은 조금 까다롭습니다.중국 정부는 자산규모는 물론 자산의 질도 따지기 때문에 후발 주자들은 이런 점을 특별히 염두에 둬야 합니다.” 고광중(高光仲) 하나은행 상하이지점장은 “중국 시장을 개척하려면 빨리 진출하되,중국 정부의 규정에 맞는 자산 규모와 질을 유지해야 하다.”고 강조했다.하지만 중국 정부가 유대인 자본은 경원하는 경향이 짙어 우리 금융기관들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고 지점장은 “증권 등 중국 금융시장 개방에 대비해 인프라를 설치한다는 의미에서 상하이에 진출하게 됐다.”며 이제 홍콩은 국제금융도시로서의 위상이 서서히 약화되고,상하이가 부각되고 있다고 밝혔다.이는 상하이시 정부는 물론 중국 정부가 홍콩보다 상하이를 국제금융도시로 적극 육성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상하이의 최대 약점이던 심수항을 새로 개발하고 있다는 점도 상하이가 국제금융도시로 발돋움하는데 한몫할 것이라고 내다봤다.상하이시 정부는 오는 2020년까지 인근 항저우(杭州)에 무려 9000만평 규모의 하이강(海港)지구를 새로 개발해 금융 및 물류 등 모든 부문의 인프라를 완비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에서는 중국 테마주라야 주가가 뜬다고 하더군요.그러기 위해선 중국에 진출을 해야 합니다.기업과 금융기관은 바늘과 실과 같은 관계니까요.게다가 중국 중앙정부와 상하이시 정부가 적극적으로 금융부문을 육성하는 만큼 기업 운영에 별다른 애로사항을 겪지 않는 게 상하이의 또 다른 매력입니다.” 고 지점장은 “외자 유치를 위해 너무 자주 찾아와 귀찮을 정도로 상하이 공무원들은 열성적으로 일하고 있다.”며 “이런 점들이 상하이의 미래를 밝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물론 그렇다고 상하이가 단시간내 홍콩을 추월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단지 상하이가 그만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사족을 달기도 했다. “아직까지 금융 인프라의 후진성으로 온라인 거래가 원활하지 못한 약점을 지니고 있습니다.한번 착오를 일으키면 이를 복구하는 데 한달 가까이 걸리고 에너지 소비가 크게 늘어나면서 전력난을 겪고 있다는 점이 상하이의 한계죠.” 이 때문에 일부 공장까지 제한 송전을 받고 있다는 그는 이같은 약점들을 빨리 극복해야 상하이가 국제금융도시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khkim@seoul.co.kr
  • 아리스토텔레스의 아이들/리처드 루빈스타인 지음

    아리스토텔레스의 아이들/리처드 루빈스타인 지음

    기원전 322년,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사망한 후 그의 사상은 기독교와 대립되는 이론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1000년이 넘도록 서구 세계에서 잊혀졌다.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연구가 이뤄진 것은 7세기께 비잔틴의 옛 영토를 점령한 아랍인들에 의해서였다.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은 이슬람 철학자들에 의해 재발견됐고,아랍어로 번역돼 이슬람 문명을 비옥하게 하는 사상적 토양이 됐다. 10세기께 무슬림 점령지를 탈환하게 된 기독교인들에게 ‘형이상학’‘자연학’‘천체에 관하여’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들이 아랍어로 읽히고 있다는 사실은 대단한 충격이었다.이후 1136년 스페인 톨레도에서는 기독교수사들,유대인 학자들,이슬람 교사들이 힘을 합쳐 ‘영혼에 관하여’를 번역하기에 이른다.기독교와 이슬람,유대교가 협력해 복구시킨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이후 중세 유럽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종교분쟁 전문가인 리처드 루빈스타인의 의문은 여기에서 비롯된다.12세기에 재발견된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헌들은 서구의 사고방식을 변화시키는 핵심적인 사상을 담고 있음에도 왜 중세 유럽,특히 기독교 세계에서는 그의 사상이 미친 영향력을 숨겨왔을까. 저자는 ‘문화적 우월주의’에서 답을 찾는다.중세 유럽인들이 자신들보다 미개하다고 믿던 이슬람 철학자들이 정리하고 해석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받아들이는데 주저했다는 것.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혁명의 근거를 제거하는 것은 서구 문명보다 더 발전된 이슬람 문명에 엄청난 빚을 졌다는 사실을 감추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현재 반목을 겪고있는 기독교,이슬람교,유대교가 한 인물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면 이해와 타협을 통해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무엇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역사적 사실,즉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슬람교와 유대교에 미친 영향과 그들간의 상호 연계성에 대한 설명은 매우 흥미롭다. 이와 함께 저자는 이성과 신앙,현실과 이상을 가르는 플라톤과 달리 선과 악의 조화를 추구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지금의 우리에게 보다 더 인간적이고 통합적인 미래세계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면서 ‘제2의 아리스토텔레스 르네상스’를 촉구한다.2만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이라크 무장단체, 네팔인 12명 살해

    |바그다드·두바이 연합|한 이슬람 무장단체가 31일 이라크에서 납치됐던 네팔인 12명을 살해했다고 웹사이트를 통해 밝혔다. 이번 인질 살해는 이슬람 무장단체들이 이라크에서 미군 주도 연합군을 몰아내기 위해 인질 납치와 살해를 시작한 지난 4월 이후 가장 대규모로 이뤄진 것인 데다 네팔이 이라크전 참전을 거부한 국가라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무장단체들은 그동안 한국인 김선일씨 등 이라크에서 활동중이던 20여개국 출신 외국인 100명 이상을 납치해 왔으며 현재 20명가량이 아직 석방되지 않고 있다. ‘안사르 알 순나’란 단체는 웹사이트에 올린 비디오 화면과 사진을 통해 12명의 살해 장면을 보여주고 “우리는 불교를 믿으면서 이슬람 교도와 싸우고 유대인과 기독교에 봉사하기 위해 이곳에 온 12명의 네팔인에게 신의 판결을 집행했다.”고 주장했다.살해된 인질들은 요리사와 청소부 등으로 일하기 위해 이라크에 입국했다가 지난 20일 납치됐다.이 단체는 성명에서 “미국은 오늘날 무슬림에 대한 사악한 십자군전쟁 같은 테러와의 전쟁을 명목으로 모든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 다른 국가의 도움도 받고 있다.”며 미군과 계속 항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알 순나가 올린 비디오에는 복면을 한 한 남자가 땅바닥에 누워 있는 한 남자를 참수하는 장면과 다른 한 남자가 나머지 11명의 네팔인 뒤에서 자동소총을 발사해 살해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 美국방부 ‘이스라엘 간첩’ 파문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국방부가 이스라엘 간첩 스캔들에 휘말렸다.이스라엘 당국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이 사건은 미국 대선의 핵심쟁점인 이라크전과도 관련돼 파문이 확산될 경우 두 나라의 외교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실의 정보분석관인 래리 프랭클린이 친 이스라엘 로비단체인 AIPAC에 기밀문서와 최고위 간부들로부터 얻은 정보를 전달한 혐의를 조사중이다.프랭클린이 전달한 문서에는 이란에 대한 백악관의 정책검토 사항들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미국 언론들은 보도했다. 수사 담당자들은 프랭클린이 AIPAC에 넘긴 자료들이 이스라엘에서 재가공돼 다시 미국의 이란 정책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수사관들은 특히 “이스라엘이 프랭클린을 이용해 이라크전에 대한 미국의 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게 했는가?”라는 의문도 갖고 있다고 CBS 방송은 전했다.이란은 반(反) 이스라엘 무장단체인 헤즈볼라에 재정적 지원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국방부 관계자들은 “프랭클린은 중간급 간부로 국방부의 정책결정에 큰 영향력이 없다.”고 말했다. 조사대상에는 AIPAC의 직원 2명도 포함돼 있으며 수사팀은 도청정보와 비밀 감시자료,사진 등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수사의 대상에 오른 ‘특별기획실’은 국방부의 강경론자들이 중앙정보국(CIA)과 다른 국가정보기관을 우회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의 위협을 과장한 보고서를 올린 두 기관 가운데 하나로 지목돼 왔다.다른 한 기관은 ‘대 테러 평가 그룹’이다. 스캔들이 터져 나온 시점은 여러가지로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미국은 이라크의 조기 안정화 실패로 국내외의 비판에 직면해 있고,최근 이스라엘을 앞세워 이란에 대한 도발의지를 노골화하고 있다는 아랍권의 비난도 받고 있다.아랍의 분석가들은 지난해 3월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공격 이전부터 이라크 침공작전에 필요한 핵심 정보가 이스라엘에서 나온 것으로 의심했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언론보도로 갑자기 불거진 간첩 스캔들로 인해 ‘조너선 폴라드 사건’의 악몽이 재연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유대계 미국인으로 미 해군 정보 분석관이었던 폴라드는 1980년대 중반 1급 기밀 수만건을 이스라엘에 넘긴 죄로 구속돼 종신형을 선고받고 지금도 복역중이다.그러나 프랭클린이 유대인이 아닌 것으로 알려져 이번 사건은 폴라드 사건이나 ‘로버트 김’ 사건과는 성격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프랭클린은 20여년 동안 국방부에 근무했으며,이스라엘에도 파견근무한 경력이 있다.. 워싱턴의 이스라엘 대사관 관계자는 “정보기관인 모사드와 군 정보기관도 미국에 파견돼 있지만 이들은 공개적인 활동만 한다.”면서 “폴라드 사건 이후에는 유대인 출신 공직자를 접촉하는 것 자체도 자제해 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dawn@seoul.co.kr
  • 중국 각지 상인/천관런 지음

    중국 각지 상인/천관런 지음

    “중국 상인을 이해하지 못하면 절대로 중국에서 성공할 수 없다.광둥(廣東)성의 인구만 해도 7800만,쓰촨(四川)성의 인구는 1억이 넘는다.이들은 서로 언어도 다르다.따라서 중국을 상대할 때 ‘하나의 국가’를 상대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수많은 민족,종교,문화를 상대한다고 생각해야 한다.각지 상인들의 독특한 성격과 기호,문화를 미리 파악해야 한다.” ●말도 물도 다른 중국… 상인들도 지역마다 달라 중국 신지식인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천관런(陳冠任·36)은 그의 저서 ‘중국 각지 상인’(강효백·이해원 옮김,한길사 펴냄)에서 이렇게 주장한다.기본적으로 다민족·다문화 국가인 중국 사람들,특히 중국 상인을 대할 때는 그 어느 나라보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아는 이른바 지피지기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이 책은 중국의 24개 주요 성과 대도시,경제특구,행정특구로 나눠 중국 상인의 기질과 관습을 소상히 밝힌다. 중국 속담에 “한 지역의 물이 그 지역의 사람을 키운다.”는 말이 있다.땅이 넓은 만큼 각 지역마다 지리적 환경과 역사가 달라 사람들의 기질 또한 다르다는 것이다.책은 먼저 중국의 경제 수도 상하이부터 다룬다.상하이는 ‘바다로 나아가자(上海).’라는 이름의 뜻대로 중국 대륙 1만 8000㎞의 해안선 한가운데에 있다.중국 사람들은 상하이라는 창문을 통해 서양을 바라보고,서양인들 또한 상하이의 눈을 통해 중국을 체험하고 인식해왔다.중국 전통문화와 계획경제의 흐름을 무시할 만큼 자유분방한 국제도시가 바로 상하이다.그러면 상하이 상인들은 어떤 기질을 갖고 있을까.서양 문물이 들어오는 창구 역할을 해온 상하이 상인들은 계산적이고 치밀한 성품과 실용주의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다.까다롭게 따지고 확인하지만 일단 계약이 성사되면 엄격히 지키며 얼렁뚱땅 넘어가지 않는다.저자는 상하이 상인에게는 매판(買辦,외국 상관이나 영사관 등에서 중국상인과 거래할 때 중개역으로 고용한 중국인)의 피가 흐른다고 말한다.그것은 오늘날 ‘신(新)매판’의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문벌과 신분을 중시하는 베이징 상인 ‘황궁의 발치’에 있는 베이징 사람들은 중국에서 가장 정치를 숭배하는 사람들이다.일찍이 중국 작가 라오서(老舍)가 “베이징의 일반 서민은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벼슬에 눈이 먼 ‘관료광’이다.”라고 개탄했을 정도다.상인들도 관료적인 풍모를 띤다.정치에 민감한 베이징 상인의 특징은 협상 상대방의 문벌과 배경,신분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중국인들은 누구나 체면을 중시한다지만 둥베이(東北) 사람들의 체면의식은 남다른 데가 있다.둥베이 상인들은 전형적인 중국 북방 기질을 지니고 있다.체면이 서는 일이라면 터진 바지 밖으로 엉덩이가 보여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호방하다.하지만 이곳에서 사업할 때는 자신만만한 그들의 ‘허풍’을 조심해야 한다고 저자는 충고한다.통이 큰 만큼 그들의 속임수 또한 대담하기 때문이다. 광둥 사람은 돈을 벌지 못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어떤 격식에도 구애받지 말고 돈을 벌라.”는 것이 그들의 격언.하늘을 흔들어서라도 돈을 벌 수 있다면 주저없이 그렇게 할 사람들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안후이(安徽) 상인은 유상(儒商)의 본고장답게 장사를 하면서도 유학에 정진하는 모습을 보인다.한 손으로 돈을 만지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붉은 관모’를 쓰려 한다.불이익은 참아도 불의는 용서하지 못한다는 옛 유상의 상도와 선비의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들은 낮에는 장사하고 밤에는 공부를 한다.‘주상야독(晝商夜讀)’인 셈이다.그런가 하면 쓰촨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농업을 중시하고 상공업을 천시해 경쟁 자체를 꺼린다.거래에서도 군자의 품위를 지키려 하며 한번 속인 사람은 절대로 믿지 않는다. 중국에는 “나라가 혼란에 빠지면 제일 먼저 후난(湖南)이 어지러웠다.”는 말이 있다.그만큼 후난 사람들은 시대의 흐름을 재빨리 읽어낸다.후난 상인들은 시장의 움직임에 매우 민감하며 반응도 빠르다.저자는 역사적으로 후난에는 상인은 있어도 동향 상인들의 친목을 다지는 상방(商幇)은 없다고 말한다.책은 이밖에 베이징으로 들어가는 ‘바닷나루’이자 관문인 톈진(天津) 상인의 선비 같은 기품,잔꾀를 잘 부리고 박리다매를 전략으로 내세우는 ‘중국의 유대인’ 원저우(溫州) 상인,한약재의 집산지로 유명한 산시(陝西) 상인 등의 면모도 소개한다. ●中상인 공략하려면 지역별 세분화 필요 중국의 상인들은 예로부터 ‘상인종(商人種)’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뛰어난 상술을 갖고 있다.책은 지금이야말로 중국 상인에 대해 ‘세분화’전략이 필요함을 일깨워준다.‘추상적이고 표준적인’ 중국인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지역화된’ 중국인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그들을 바로 알지 못하면 “잘 익은 오리가 하늘로 날아가버린다.”는 그들의 속담처럼 친분을 쌓을 수도,장사를 하기도 어려우며 애써 성사시킨 거래마저 자칫 허공으로 날려보내기 십상이다.이 책은 중국의 경제·역사 전문작가가 중국 전역 상인들의 특성과 기질을 분석한 최초의 조사 보고서란 점에서 우리로서도 참고할 만하다.1만 6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매독/데버러 헤이든 지음

    니체의 폭발적인 사유,고흐의 그림에 어린 죽음의 이미지,히틀러의 유대인 학살,보들레르의 광기….이 모든 것이 과연 매독이 불러일으킨 풀 길 없는 광증 때문일까.유럽 인구의 15%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매독.페니실린이 나오기까지 그것은 세계를 휩쓴 대재앙이었지만 치욕스러운 성병이란 이유로 역사적으로 한번도 정체를 드러낸 적이 없다.스위스의 심리학자 카를 융은 그래서 이 병을 ‘어둠의 독’이라고 했다. 미국의 여성 사학자 데버러 헤이든이 쓴 ‘매독’(이종길 옮김,길산 펴냄)은 14명의 역사적 인물들의 발자취를 통해 매독이 얼마나 무섭고 냉혹한 질병인지 일러준다. 매독은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500년 동안 유럽을 강타하며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저자는 매독은 창세기 이후 최대의 재앙이라고 말한다.천재 예술가도 최고의 지도자도 매독의 광풍을 피해가지 못했다.‘신은 죽었다’고 외친 니체는 스위스 바젤에 도착한 뒤 정신착란을 동반한 전신마비 증세를 보였다.병원 진료기록에 따르면 니체는 매독에 감염됐다.독일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이런 니체를 두고 “끔찍한 종말을 몰고 오는 맹독성 세균을 한 줄기 빛으로 잘못 인식한 자”라고 질타했다.매독 진단을 받고 비소 치료를 받아야 했던 음악가 슈만은 하늘의 천사가 세레나데를 불러주는 환각에 빠졌다고 한다.심지어 근엄의 화신인 링컨 대통령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며 고통을 호소했다.링컨의 네 아들 중 셋이 매독에 감염돼 요절했고,링컨의 아내 토드 링컨도 매독으로 인한 척추 질환으로 고생하다 세상을 떠났다.히틀러는 “매독과의 투쟁은 민족의 과업이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고 역설했다.이는 바로 자신을 향한 말이기도 했다.고흐는 매춘부와 관계한 뒤 병을 얻었지만 그 매춘부와 딸을 극진히 보살폈을 만큼 인간적이었다. 하지만 책은 이처럼 매독의 어두운 면만을 다루지 않는다.예술가에게 매독은 종종 불굴의 에너지를 제공하기도 했다.‘천재의 병’이라고 할까.매독은 평생에 걸친 육체적 고통과 함께 마지막에는 ‘파우스트의 거래’라 불리는 강렬한 영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모파상은 “위풍당당한 매독,순수하고 우아한 매독….나는 매독에 걸렸다.그것도 진짜 매독이다.”라고 당당하게 환자임을 밝히며 창작에 정열을 쏟았다.매독은 아이러니다.2만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中 중쉬그룹회장 “北마인드 안보서 경제로”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지난해 연말 평양 거리에 처음으로 상업 광고판이 내걸리는 등 북한 정부도 안보에서 경제 마인드로 초점을 이동시키고 있다.” 최근 중국기업들의 북한 진출이 가시화되는 가운데 관영 신화사는 15일 주간지 신민주간(新民主刊)을 인용,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에 소재한 쩡창뱌오(曾昌飇) 중쉬(中旭) 그룹회장의 인터뷰를 실었다. ‘중국의 유대인’으로 불리는,원저우(溫州) 출신의 쩡 회장은 최근 평양 중심가에 위치한 제일백화점의 10년간 경영권을 인수했다.올 연말 개장을 목표로 향후 5000만위안(75억원)을 투자,북한내 최대·최고의 백화점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쩡 회장은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지난 5월 방중시 중국기업의 북한진출에 대한 환영 의사를 분명히 했다.”고 소개하면서 중·북의 전통적 우정과 중국식 개혁·개방의 성공적 결합을 강조했다. 7년전인 97년 평양을 처음 방문했던 그는 “북한의 경제는 중국의 20년전의 모습과 비슷하지만 2002년에 시작한 북한의 ‘경제조정’(7·1 경제조치)을 계기로 상점의 개인경영과 토지 대여 등을 허가하는 등 변화가 시작됐다.”고 전했다.경제개발구가 설립되고,기업도 독립 채산제가 적용돼 스스로 손익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중쉬 그룹이 주목하는 것은 동북 3성에서 누적되고 있는 재고 판매처로서의 북한 시장이다.그는 “평양은 랴오닝성 단둥(丹東)에서 270㎞에 불과해 아침에 출발하면 저녁에 화물이 도착한다.”며 “동북 3성에서 누적된 일상 생활용품들을 알맞은 가격으로 북한에 공급할 수 있다.”고 밝혔다.백화점 판매원의 월급도 70위안(1만 5000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는 지금이 대북 투자의 적기라면서 “북한 주민들은 그동안 저축한 돈을 쓰고 싶어도 사용할 곳이 없었지만 지금은 소비 욕망도 높고 비교적 고품질의 상품을 요구하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원저우에서 0.5위안(75원)에 불과한 라이터가 북한에서는 3∼5위안(450∼750원)까지 팔리고 쓸 만한 볼펜은 1자루에 10위안(1500원)까지 받을 수 있다고 했다. oilman@seoul.co.kr
  • [이런 책 어때요]

    ●이탈리아 기행1·2/괴테 지음 괴테의 이탈리아 체류가 그의 삶과 문학에 끼친 영향은 엄청나다.지인들의 도움으로 그는 미술을 공부하고 고대 로마의 유산을 답사하며 사물에 대한 통찰력을 가다듬고 정체성을 되찾았다.고전주의에 대해서도 새롭게 눈떴다.젊은 시절 추구한 질풍노도 경향의 조야함을 극복하고 ‘조용한 위대성과 고귀한 단순성’(빙켈만)을 깨달은 것.규범과 조화를 중시하는 이탈리아의 고전주의는 괴테 작품세계의 새 장을 열었다.자연과학에 조예가 깊던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에서 식물학,기상학,지질학,광물학,동물학,색채학 등에 관한 세심한 관찰기록을 남겼다.각권 1만원. ●상군서(商君書)/상앙 지음 중국 전국시대 진(秦)나라 효공 때의 재상이자,법가의 원조인 공손앙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고전.상앙이라고도 하는 공손앙은 위나라 공족 출신으로 젊어서부터 형명학(刑名學)을 좋아했다.효공에게 중용된 공손앙은 형법,가족법,토지법 등 다방면에 걸친 대개혁을 단행해 서쪽 변방의 허약한 나라였던 진나라를 강국으로 변모시켰다.그러나 효공이 죽고 혜왕이 즉위한 뒤 그의 엄격한 법치주의에 원한을 품었던 반대파에 의해 거열형(車裂刑,수레에 사지를 묶어 찢어 죽이는 형벌)을 받았다.‘상군서’엔 공손앙의 변법(變法) 개혁사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1만원. ●석유의 종말/폴 로버츠 지음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는 언젠간 바닥이 날 유한자원이다.또한 화석연료를 태울 때마다 온실효과가 가속화돼 기상이변을 가져오는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하지만 우리는 이를 망각하고 있다.책은 석유자원의 현실과 한계를 다룬다.지난 1세기 동안 인류가 가스,석유,석탄을 태워 생긴 이산화탄소 때문에 지구의 기온은 화씨 3도나 올랐다. 빙하시대의 종말이 3도의 기온 상승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심각한 문제다.빙하시대 이후 3도의 기온이 오르는 데 5000년이 걸렸지만 지금의 지구온난화 현상은 100년도 안돼 나타나고 있다.1만 4900원. ●카프카의 프라하/바겐바흐 지음 인간의 불안과 소외를 그린 현대문학의 거장 프란츠 카프카는 세상을 뜨기 직전의 요양소 체류와 몇 번의 짧은 여행을 제외하곤 평생을 프라하에서 보냈다.프라하가 ‘맹수의 발톱’처럼 자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그는 프라하를 증오하면서도 끝내 떠나지 못했다.카프카의 삶과 문학은 카프카가 태어나고 자란 프라하와 깊이 얽혀 있다.책은 프라하가 작가 카프카의 문학성을 어떻게 키워왔는가를 살핀다.채식주의자인 카프카가 늘 가던 레스토랑,카프카가 잠들어 있는 유대인 공동묘지,즐겨 걷던 산책로까지 낱낱이 훑었다.9500원. ●중국도시 현장보고서/라오창 지음 중국의 각 도시를 경제적·문화적 관점에서 비교 분석.장강삼각주를 이끄는 항저우와 쑤저우,서부경제의 쌍두마차인 충칭과 청두,패션산업으로 이색적인 경쟁을 펼치는 닝보와 다롄은 경쟁과 협력을 거듭해온 라이벌 도시다.지역별 분석을 통해 중국의 3대 경제권인 주강삼각주와 장강삼각주,환발해경제권의 모든 것을 소개한다.상하이를 끼고 있는 주강삼각주는 명실공히 중국 제1의 경제권이며,톈진과 다롄을 품고 있는 환발해경제권은 중공업과 가공산업의 핵심지대다.또 선전 주변의 장강삼각주는 50년 후엔 뉴욕을 따라잡겠다는 야심만만한 곳이다.1만 3000원.
  • [책꽂이]

    ●대한민국 특산품 오마이뉴스(오연호 지음,휴머니스트 펴냄) 지난 2000년 시민기자제를 도입해 창간한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언론계의 텃세와 세상의 편견과 싸워온 이 신문은 마침내 ‘유력’ 매체로 우뚝 섰다.이 책은 ‘미디어 혁명가’인 저자가 뉴스게릴라(시민기자)와 함께 펼쳐온 ‘세상 바꾸기 프로젝트’를 소개한다.1만원. ●고문의 역사(브라이언 이니스 지음,김윤성 옮김,들녘 코기도 펴냄) 네로 황제는 서기 64년에 일어난 로마의 화재에 자신이 연루됐다는 사실을 부인했다.그리고 고문으로 얻어낸 정보를 토대로 기독교인과 유대인들을 범인으로 지목했다.그들은 늑대 가죽을 뒤집어쓴 채 야생의 개들에게 조각조각 물어 뜯기거나,역청이 발라진 채 불태워져 밤의 횃불이 되는 등 희생을 치렀다.책은 잔혹한 고문의 역사를 다룬다.17세기 러시아로부터 유럽에 소개된 ‘손가락 죄는 틀’등 갖가지 고문도구도 소개한다.9000원. ●국가와 종교(미야타 미쓰오 지음,양현혜 옮김,삼인 펴냄) 국가권력과 로마서 13장의 연관성을 살폈다.로마서 13장은 바울서신뿐만 아니라 신약성서 전체를 통해 국가권력에 대한 태도를 가장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는 장이다.그것은 종종 절대 군주들이 그들의 권력을 뒷받침하는 정치이념 체계로 왕권신수설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독일 교회투쟁과 칼 바르트 사상을 전공한 저자는 유럽 그리고 근대 일본의 정치사상을 관통하는 기독교의 영향에 대해 로마서 13장을 축으로 분석한다.1만 5000원. ●작은 창 너머 보이는 풍경(김정선 지음,성바오로 펴냄) 제주도의 사계를 노래한 수필집.돌하르방을 맨 처음 만든 사람은 1754년 영조 30년에 김몽규 목사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모자를 쓰고,커다란 눈에 주먹코,일자로 다문 입,배 위에 양손을 모은 돌하르방의 모습은 익살스러우면서도 정겹다.8500원. ●나만 모르는 유럽사(일본역사교육자협의회 지음,양인실 옮김,모멘토 펴냄) 중세에는 독신 여성을 완전한 여성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그런 만큼 기사들의 동경 대상은 유부녀였다.장애가 많으면 많을수록 훌륭한 사랑으로 간주됐다.그러니 주군의 부인과의 사랑을 꿈꾼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금지된 사랑이나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에 나오는 기사 랜슬롯과 왕비 기네비어의 불륜 등 왕비나 왕의 약혼녀와 신하인 기사의 사랑 이야기가 미화된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이 책에는 유럽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흥미로운 ‘교과서 밖 이야기’들이 실렸다.1만 2000원.
  • [차이나 리포트 2004] (10)화교네트워크의 힘

    [차이나 리포트 2004] (10)화교네트워크의 힘

    중국의 경제수도격인 상하이 푸둥(浦東)지역의 황푸(黃浦)강 주변.6월중순 취재팀이찾은 이곳의 루자주이(陸家嘴)는 대륙 어느 도시의 거리보다도 현대적으로 단장돼 있었다.저마다 독특한 디자인의 고층 건물들로 가득찬 푸둥 신구 전체가 뉴욕의 ‘맨해튼’이라면 루자주이는 그 핵심인 ‘월스트리트’에 비견된다.총면적 28㎢에 불과한 지역에 굴지의 중국 내외 기업들의 사무실은 물론 국내외 금융기관 200여개가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중국의 금융 메카 루자주이에 한국금융기관도 상륙했다.하지만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간판은 역시 중국의 금융개방에 앞서 진출한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같은 중화권 금융기관들이다.아시아 금융 허브를 꿈꾸는 상하이시가 화교자본을 그 첨병으로 활용하려는 복안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베이징·상하이 구본영특파원| 상하이만이 아니다.화교들은 중국 전역에서,아니,중국인이 흩어져 사는 세계 곳곳에서 엄청난 유동자산을 지닌 ‘큰 손’으로 군림중이다.세계 각지의 화교는 총 3400만명을 넘어서면서 그 자체로 가장 큰 이민집단이지만,동남아나 중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엄청나다.화교는 유대인과 더불어 세계경제의 배후 실세다. ●동남아 상권 주무르는 큰손 베이징에서 만난 중국공상연합회 연락부 자오훙(趙宏) 부장은 “화교도 외국인이고,중국본토 투자시 특혜는 없다.”고 애써 강조한다.그러면서도 “해외의 화교,특히 화상(華商)들이 애국심과 근면성 등 좋은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화교 특유의 상술과 근면성이 은연중 대중화(大中華)정신을 연결고리로 해 네트워크화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실제로 2001년 중국의 외국인 직접투자(FDI)의 절반이 넘는 216억달러가 화교자본이라는 통계도 있다. 흔히들 중국 본토와 홍콩 마카오 타이완을 묶어 중화경제권이라고 부른다.하지만 그 외곽의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인 싱가포르는 물론이고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에서도 화교들이 상권을 장악하고 있다.아시아 지역 거주 화교는 총 2600여만명으로 이중 85%인 약 2200만명이 동남아 지역에 살고 있다.이들은 전체 인구의 10%에도 밑돌지만 역내 무역의 60% 이상을 좌지우지한다. 한족이 다수인 싱가포르는 제쳐두더라도,태국의 최상위 재벌 가운데 6개를 화교자본이 차지하고 있고,인도네시아에서는 상위 10개 재벌 모두를 화교계 자본이 장악중이다.지난 1997년 미 경제지 포브스가 집계한 세계 10대 억만장자 명단에 홍콩의 리카싱 창장(長江) 그룹회장 등 화교가 4명이나 랭크된 사실이 화상들의 막강한 재력을 재확인해준다.2004년 ‘포천 세계 500대 기업’명단에서 중국기업이 15개나 포함돼 한국(11개)을 제친 것도 기실은 화교자본의 위력을 말해준다. ●베이징 정부 세계화상대회 적극지원 화교자본이 동남아라는 좁은 울타리에만 갇혀 있는 것은 아니다.미국의 샌프란시스코나 뉴욕 등 대도시 치고 차이나타운이 없는 곳은 없다.심지어 러시아의 고도(古都) 상트페테르부르크에도 최근 차이나타운이 조성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지난 4월 중국 상하이 산업투자회사가 상트페테르부르크시와 함께 10억달러를 투자해 쇼핑센터와 호텔,아파트단지,중국식당 등을 건설키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도 이같은 화상들의 잠재력과 그들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대륙에 대한 기여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근년들어 화상네트워크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2년마다 열리는 세계화상대회(WCEC)를 적극 후원하고 있는 것도 그 일환이다. 본래 1991년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제안으로 조직된 WCEC는 지난해에는 말레이시아에서 개최됐다. ●한국 뒤늦게 관심 보여 철없는 악동들이 동네 자장면집 아이를 놀려먹던 때가 있었다.어른들에게 야단을 맞으면서도 어설픈 중국말 사성(四聲)까지 넣어가며 “짱꼴라”니,“진 땅의 장화”니 하며 외치던 그 시절이다.이렇듯 유독 한국에서는 화교사회가 그다지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한국의 화교는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0만명을 웃돌았으나,한국 사회 특유의 배타성 등으로 인해 지금은 겨우 2만∼3만명 정도가 남아있다고 한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상당히 세계화됐지만,화교 상권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한국기업인들이 전세계에 퍼져 있는 화상네트워크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때문에 한·중 양국 경제의 윈­윈 차원에서 “화교를 중시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자오홍 부장)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인천시가 추진중인 송도 차이나타운 건설계획이나,서울시가 검토해온 상암동 또는 뚝섬 차이나타운 계획이 오히려 때늦은 감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그런 점에서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이 일본 호주를 제치고 2005년 세계화상대회를 유치했다는 사실이다.중국인의 해외여행 자유화나 한국 증시로 몰려오고 있는 싱가포르 자본 등 범중화권의 대(對)한국 투자를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kby7@seoul.co.kr ■ 기고-성장률 10년간 8% 21세기에 진입하면서 중국경제의 성장 전망과 전략,그리고 향후 변화는 중국인들은 물론 주변국가,전세계의 커다란 관심사가 되고 있다. ‘세계천년 경제사’에 따르면 1820년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전세계의 32.9%로 세계 1위였고,2위는 인도(16%)였다.3,4위는 프랑스와 영국 등 서방국가다.둘을 합쳐도 GDP의 23.6%에 불과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서 중국경제는 외국의 침략과 내부관리 실패로 후퇴했다.하지만 중국은 1978년부터 개혁·개방을 시작했고 덩샤오핑(鄧小平)은 ‘산부저우’(三步走·3배로 달린다) 전략 구상을 제기했다.이는 중국의 GDP를 10년마다 배씩 늘려 나가자는 구상이다.1980년 2500억달러에서 1990년 5000억달러,2000년에 1조달러를 달성한다는 목표다.이후 21세기에도 30∼50년간 4배 증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 1,2단계는 이미 실현됐다.2000년말 중국의 1인당 GDP(7078위안)는 80년의 15배로 1978∼2000년까지 연평균 9.5%의 속도로 증가됐다.세계경제 연평균 성장의 3배이며 경제규모는 이탈리아를 초과,세계 제6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21세기 초반 20년은 중국에 절호의 기회다.1997년 중국정부는 21세기 전반기 50년의 ‘신(新)산부저우’ 전략 목표를 세웠다.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중국이 국제 협력과 경쟁에 전면적으로 참여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만들었다.20여년내에 중국은 먹고 입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샤오캉(小康·복지국가)’사회를 실현시킬 것이다. 1단계 2000∼2010년의 경제성장은 8%의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2단계 2010∼2030년까지 6% 수준을,3단계 2030∼2050년 4∼5%의 수준을 유지하면 된다. 구체적으로 2010년까지 2000년 GDP의 2배로,2020년에는 4배가 된다.2050년 건국 100주년을 맞아 현대화를 실현,중국을 부강하고 문명한 사회주의 국가로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2020년에 종합국력이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위권에 진입,국제경쟁력은 세계 15위권을 목표로 한다.중국의 경제력은 2005년 프랑스,2006년 영국,2012년 독일을 능가하게 된다.순조롭다면 금세기 중반 중국은 일본을 넘어서 제 2경제대국이 될 것이다. 낙관적으로 본다면 국내외의 평화로운 환경이 조성되면 중국경제는 향후 30년간 8∼10%의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다.미국이 3%대 경제성장을 유지하면 21세기 중반에 중국은 미국을 초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의 발전은 중국이 인류 역사에 중대한 공헌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18세기 중반에 시작된 산업혁명 250년 후 21세기 중반까지 15억 인구를 가진 중국이 공업화를 실현하고 현대 물질문명의 성과를 누린다면 이는 세계역사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중화민족에 있어 21세기는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장위옌 中사회과학원 아태硏 부소장
  • [책꽂이]

    ●대영제국은 인도를 어떻게 통치하였는가(하마우즈 데쓰오 지음,김성동 옮김,심산문화 펴냄) 인도는 영국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식민지를 획득하고 지배하는데 전진기지이자 관리센터의 역할을 했다.스리랑카,미얀마,싱가포르,말레이시아,홍콩은 모두 인도의 군사력이나 인도정부의 외교력으로 영국이 획득한 아시아 식민지다.영국의 동인도회사는 인도 통치의 첨병이었다.그러나 1858년 빅토리아 여왕이 인도에 대한 직접 지배를 선언함으로써 허울뿐인 회사로 전락했다.이 책은 기업통치,즉 정치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동인도회사 통사다.1만 6000원. ●탈무드 솔로몬(이희영 지음,동서문화사 펴냄) 바빌로니아판 탈무드를 깊이 있게 다룬 탈무드 자료집.5000여년의 유대인 역사와 처세,성공전략이 응축돼 있다.유대인의 금전철학부터 부자철학,유대식 협상법,행복한 부자되는 법,토라의 진리까지 폭넓게 다뤘다.유대학을 연구해온 저자는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한 유대인이 역사상 어느 민족보다 많은 인재를 배출한 데는 그들의 피 속에 탈무드의 유대정신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미국은 유럽인이 건설했지만 유대인이 점령해 지배하고 있다는 얘기는 근거없는 빈말이 아님을 알게 한다.2만 5000원. ●무용의 현대(미우라 마사시 지음,남정호·이세진 옮김,늘봄 펴냄) 발레를 중심으로 현대무용을 조망.일본의 문예평론가인 저자는 20세기 후반부터 무대예술의 중심은 연극에서 무용으로 넘어왔다고 주장한다.20세기 전반 무대예술이 카뮈와 베케트로 대표되는 부조리극에 의해 지배됐다면,1960년대 모리스 베자르의 ‘봄의 제전’과 70년대 후반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를 기점으로 그러한 흐름이 무용으로 이동했다는 것.미시마 유키오와 윌리엄 포사이드를 비교하고,피나 바우쉬의 안무에서 그의 고통을 절감하는 저자 특유의 시각과 문학적 문체를 접할 수 있다.1만 2000원. ●에이미 카마이클(엘리자베스 엘리엇 지음,윤종석 옮김,복있는사람 펴냄) 아일랜드 태생의 여선교사 에이미 카마이클의 전기.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50여년 동안 인도에서 머문 카마이클은 힌두교 사원에 팔려가는 아이를 구출하고 학대받는 아이들을 위한 도나부르 공동체를 세우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1만 5000원. ●내 사랑이 너를 붙잡지 못해도(서영은 지음,해냄 펴냄) 이상문학상 수상작가의 자전적 산문집.강릉 바닷가의 성장기를 거쳐,사랑과 문학에 대한 단상을 묶었다.93년 출간된 책을 작가가 좋아하는 샤갈의 그림을 함께 수록해 재편집했다.9000원.
  • [케리진영 대해부] (상) 그는 누구인가

    존 케리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이 30일 미국 민주당의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공식 확정됐다.서울신문은 케리 후보와 그의 외교안보·경제 등 주요정책을 담당할 보좌진들의 면모와 정책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보스턴 이도운특파원|케리 후보의 조상은 동유럽 지역에 자리잡은 유대인 집안이었다.그의 할아버지가 나치 정권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가톨릭으로 개종했다.케리 후보의 아버지 리처드는 전투기 조종사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으며,종전후 외교관으로 활동했다.어머니 로즈마리는 경제전문지 ‘포브스’ 등을 발행하는 출판재벌 포브스 집안의 딸이다. ●학생시절 성적표 ‘지도력 있는 학생’ 케리 후보는 1943년 12월11일 콜로라도의 피츠시몬스 육군병원에서 태어났다.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스위스 등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최근 현지에서 발견된 성적표엔 케리 학생이 “매우 영민하고 지도력 있는 학생이었다.”고 기록돼 있다. 명문 예일대를 졸업하고 66년 해군에 자원 입대,베트남전에 참전한 케리 후보는 뒤집어진 보트에서 전우를 구하는 등의 공로로 무려 5개의 훈·포장을 받았다.그러나 71년 미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베트남전의 참상을 고발하는 반전운동가로 극적인 변신을 했다.그 기세로 72년 하원의원 선거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이후 보스턴 칼리지 법학과를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뒤 82년 선출직인 매사추세츠주 검찰총장에 뽑혀 공직에 발을 들여놓았다.84년에는 상원의원에 당선된 뒤 19년째 의정생활을 해오고 있다.진보단체인 ‘민주행동’이 매기는 평점에서 2001년 95점,2002년 85점을 받을 정도로 자유주의적이고,진보적인 성향의 의원으로 평가돼 왔다. 케리 후보는 1988년 첫 부인과 이혼했고 1996년 친구였던 존 하인즈 펜실베이니아주 상원의원이 사망한 뒤 그의 부인 테레사와 결혼했다. ●케리후보 아들, 한국 불교무술에 심취 케리 후보는 19년간의 상원 의정 생활을 하면서 우리나라와도 크고 작은 인연을 맺어왔다.케리 후보는 상원 외교위원회의 동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한국문제를 다룬 경험이 있다.외교통상부 관계자에 따르면 케리 후보는 같은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과 함께 주한미군 철수에 가장 반대해온 의원이다.케리 후보는 의정생활 과정에서 여러 차례 주한미군 철수 반대 결의안을 제출했다고 한다.실제로 최근 미군 기관지인 ‘성조지’는 “케리 후보가 당선될 경우 주한미군 재조정이 백지화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케리 후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홍순영 전 외교통상부 장관 등 한국의 주요인사들이 워싱턴을 방문할 때 개최하는 간담회에도 대부분 참석해 왔다. 케리 캠프는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 재용씨가 탈세 등 혐의로 구속되자 그가 기부했던 2000달러를 되돌려주기도 했다.케리 후보의 가족 가운데는 부인 테레사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존이 한국의 불교 무술인 심검도에 심취해 있다. dawn@seoul.co.kr
  • [CEO 칼럼] ‘休테크’적 휴가문화/윤창번 하나로텔레콤 사장

    지난해 7월15일자 한 조간 신문엔 다음과 같은 헤드라인의 기사가 올라 왔다.‘용감한 휴가,관행 깨고 1주일’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기사의 주인공인 모 장관은 통상적으로 휴가를 가지 않거나 3일 이내로 다녀오던 장관들의 휴가 관행을 깨뜨리고 당당하게 1주일간 휴가를 다녀왔다. ‘여가’는 희랍어로 ‘스콜레(Scole)’라고 말한다.‘스콜레’가 바로 오늘날 학습을 의미하는 학교(School)나 학자(Scholar)의 어원이라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쉰다는 말은 곧 교양을 쌓고 자기 수양을 한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얘기다. ‘쉬다(休)’와 ‘기술(Tech)’을 합성한 신조어가 ‘휴테크’다.창의력이 미래를 이끌어 나갈 중요한 키워드라는 것을 고려해 보면 ‘휴테크’가 지닌 잠재적 가치는 무한하다. 지나치게 노는 것에만 탐닉해 결국 멸망에 이르렀던 로마와 달리 유대인들에게는 균형있게 쉬는 방법을 교육받을 수 있었던 그들만의 종교적 제도가 있었다.안식일과 안식년을 통해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쉬는 법을 몸으로 터득할 수 있었고,이것이 바로 창의력을 만들어 내는 토양이 됐다.그래서 혹자는 유대인들의 성공 뒤에는 휴식이 있었다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얼마 전 최고경영자(CEO)의 여름휴가와 관련된 한 조사가 직장인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매출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매년 휴가를 가는 CEO는 10명 중 2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 휴가 시즌이 찾아왔다.그러나 최고경영자들이나 적잖은 직장인들이 불투명한 경기 전망에다 산적한 현안으로 휴가를 포기하거나 휴가를 가게 되더라도 조용히 집에서 보낼 전망이라고 한다. 나이키는 디자인 예산의 상당 부분을 기한이 없는 여행에 배정해 놓고 있다.디자이너들이 원하는 때에는 언제든지 사무실 바깥 세상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도록 회사가 지원하겠다는 뜻이다. 이렇듯 회사는 1년에 한 번이라도 직원들이 사무실을 벗어나 충분히 재충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독려해 줘야 한다.또한 직원들은 이 시간을 삶의 자극제로 삼아 더 큰 아이디어를 창조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주 5일제로 직장인들의 여가가 더욱 중요한 화두로 등장했다.그런데 문제는 아직까지 우리는 제대로 잘 쉬는 법에 대해 ‘학습’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모처럼만의 휴가라지만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쉬어야 할지 몰라 길거리에서 시간만 낭비하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직장인들도 많다. 진정한 휴식은 그저 웃고 즐기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반성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며,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거울이기도 하다.이번 휴가에는 조금은 특별한 여행을 떠나보자.그 여행은 굳이 밀리는 고속도로를 달리거나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된다.바로 나로부터 출발해 또 다른 나로 돌아오는 여행이다.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고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것,그것이 바로 이번 휴가의 출발점이자 최종 목적지이기도 하다.그리고 이 여행은 더 즐겁고 더 많은 일을 해내기 위한 샐러리맨의 의무 사항이기도 하며,미래를 향한 자기 경영 전략이기도 하다. 지난 7월18일 1년 전 기사의 주인공이 또다시 같은 내용으로 언론에 보도됐다.‘올해도 긴 여름휴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으며 잘 쉬는 법,그리고 당당하게 휴가를 보내는 우리 사회 ‘休테크적’ 휴가 문화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윤창번 하나로텔레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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