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유대인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불충분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기숙사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민주노총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우리말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898
  • 시크교도 “터번은 절대 못벗어”

    시크교도 “터번은 절대 못벗어”

    “아무리 그래도 터번(turban·인도의 남성용 머리장식)은 못 벗어.” 미국 교통안전국(TSA)이 공항 보안 검색대에서 터번을 벗기고 조사하기로 하자 시크교도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25일 인도 일간 타임스 오브 인디아에 따르면 TSA는 테러리스트들이 테러용 무기를 터번 속에 숨길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런 조치를 내렸다. 보안검색 대상에는 터번과 카우보이 모자, 심지어 야구 모자까지 포함돼 있다. 하지만 야르물케(Yarmulke·유대인의 전통모자)는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시크교도들은 조직적으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주말 샌프란시스코 공항당국이 시크교 단체 간부의 터번을 벗겨 전자 검색대를 통과시킨 사실까지 알려지자 미국내 시크교 단체들은 크게 분노하고 있다. [용어클릭] ●시크(Sikh)교 인도 서북부 펀자브지방에서 퍼진 소수종교. 시크교도는 긴 수염에 머리엔 터번을 둘러쓴다. 사자(lion)라는 뜻의 성(姓)인 싱(Singh)을 이름에 쓴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유대인인 난 나치 마스코트였다”

    “다섯살이던 1941년 10월이었다. 나치 친위대 병사들은 내게 군복과 작은 총을 두 자루 쥐어줬다. 나는 나치의 구두를 닦거나 물을 길어 주고, 불을 켜는 등 심부름을 맡았다. 그러나 가장 큰 임무는 병사들을 즐겁게 해주는 일이었다. 마스코트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가족을 잃은 벨로루시 출신의 한 유대인 소년이 나치 친위대(SS·Schuth Staffel)의 마스코트로 3년간 지내야 했던 기구한 사연이 공개됐다. 주인공은 호주에 사는 알렉스 쿠르젬(70). 수십년 동안 과거를 숨겨오다 1997년에야 비로소 부인과 자녀에게 사실을 털어 놓은 쿠르젬은 최근 자서전 ‘마스코트’를 통해 오래된 비밀을 공개했다고 BBC방송 인터넷판이 21일 보도했다.1941년 10월20일 나치가 벨로루시의 고향 마을을 침공하면서 그의 운명은 격랑에 휘말렸다. 당시 다섯살에 불과했던 그는 부모와 형제가 모두 죽임을 당하는 와중에 가까스로 숲속으로 피신해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죽은 병사들의 군복에서 먹을 것을 구해 목숨을 연명하며 숲에서 9개월을 보내다 마을 주민에 발견돼 독일군 병사에게 넘겨진 그는 “나를 죽이기 전에 빵 한 조각만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독일 병사는 무슨 이유에선지 “다른 병사에게 너를 러시아 고아라고 알리겠다.”며 호의를 베풀었다. 이후 SS는 그에게 유대인을 색출해 수용소로 보내는 임무를 맡기기도 했다. 1944년 나치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자 SS사령관은 그를 라트비아의 한 가정으로 보냈고,5년 후인 1949년 그는 호주로 건너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서커스단에서 일하다 TV수리공이 되어 멜버른에 정착, 호주 여성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유럽을 떠나면서 스스로에게 “너의 과거는 모두 잊어라. 너는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살 것이다.”라고 굳게 다짐했다는 쿠르젬은 가족에게 과거를 밝힌 후에야 고향 마을을 다시 방문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본명이 ‘일리야 갈페린’이라는 사실을 알아냈고, 라트비아의 한 기록영화에서 어린 시절 SS복장을 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아프간 사태 장기화 국면] “인질들에게 이슬람 개종 권유”

    한국인 인질사태 20일째인 7일 국제사회는 탈레반 움직임에 종일 숨을 죽였다. 미국과 아프간 정상회담이 테러에 대한 강경론만 재확인했을 뿐, 적어도 겉으로는 어느 누구에게도 실마리를 주지 못한 채 끝나서다. 정상회담을 예의주시하겠다던 탈레반이 혹시 극단적인 수순을 밟지는 않을까에 온통 관심이 쏠린 하루였다.그러나 탈레반이 여성 인질과 여성 수감자 1대1 맞교환 카드를 꺼내든 점은 실낱같은 희망을 낳았다. 탈레반 대변인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지도부에서 새로운 결정을 내렸다.”며 강경 일변도에서 벗어난 듯한 자세를 보여 인질문제가 쉽게 풀릴 단서라는 성급한 추측도 나왔다. 같은 탈레반의 제스처는 이슬람 내부에서조차 많은 여성들을 장기간 억류하고 있는 것에 대한 비난이 갈수록 거세지는 등 각계에서 국제적인 공동노력을 촉구하는 데 따른 부담감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풀이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상원의원은 6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한국이 미국,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함께 아프간 재건사업에 큰 몫을 하고 있다.”면서 인질들의 무사귀환을 빌었다. 이날 유엔본부 앞 하마슐트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는 뉴욕과 뉴저지 한인회 등 10여개 동포단체와 힐러리 의원실 관계자, 유대인 단체인 JCRC의 마이클 밀러 회장 등이 참석해 한국인들의 무사귀환을 위한 관심을 촉구했다. 세계 인권단체인 ‘휴먼 라이츠 퍼스트(Human Rights First)도 “지구촌 모든 구성원들이 탈레반의 인명경시를 비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9일부터 11일까지 카불에서 열리는 ‘평화 지르가’도 희망을 부풀렸다. 여기에는 아프간과 파키스탄의 부족 지도자, 정치인, 관료 등 700여명이 참석해 인질 석방노력을 통한 평화정착 방안을 논의한다. 탈레반이 비교적 조용한 것은 무시하기 힘든 이들의 움직임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뒤따랐다.반면 미군 주축의 연합군이 연일 탈레반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는 가운데, 무장헬기와 대포로 중무장한 파키스탄군이 7일 아프간 접경지역 인근의 부족 자치지역 내에 있는 저항 세력의 은신처를 파괴했다고 파키스탄군 대변인이 밝혀 이번 공격의 불똥이 인질 사태로 튈까 하는 우려를 키웠다. 또 익명의 탈레반 지휘관은 로이터 통신에 “인질들에게 감자와 비스킷과 차, 쌀, 과일, 음료 등 필요한 음식을 모두 주고 있다.”면서 “인질들에게 이슬람으로 개종할 것을 거듭 권했다.”고 밝혀 탈레반이 한국인 인질들을 회유하고 있음을 드러냈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피랍 한국인 석방협상] “아프간 정부 권한없단 말만…”

    “또 하루를 넘겼지만….”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 닷새째인 23일 협상 시한이 세번째 연장되자 온 한국민이 또 한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이 제시한 한국인 인질과 탈레반 재소자의 맞교환 요구를 거부하면서 짙은 한숨도 터져 나왔다. 이날 현지언론 등을 통해 탈레반과 한국 정부의 직접 협상론이 불거지면서 정치적 요구에 이어 ‘경제적 보상’이 주요 조건으로 부상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와 한국 정부 양 갈래로 협상 전선을 확대한 점, 인질들에 대해 비교적 양호한 대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석방 협상의 시간을 번 만큼 가시적 성과가 나올 지 주목된다. 탈레반이 재차 협상 시한을 연장하면서 피랍 사태가 장기화 양상을 띌 가능성이 커졌다. 혼선 속에서 낙관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적어도 탈레반이 협상을 통해 실익을 챙기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관건은 한국인 인질 23명과 탈레반 수감자와의 맞교환 요구이다. 수감자 석방은 아프간 정부의 주권 문제이지만 미국·영국 등 주둔 연합군의 막후 입장도 고려할 수 밖에 없다. 탈레반과 아프간 정부의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분위기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알자지라 방송은 이날 압둘 하디 칼리드 아프간 내무차관이 인질과 수감자 교환 요구를 수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탈레반 대변인 유수프 아마디는 “인질과 동수인 수감자 23명의 석방을 요구했지만 (아프간) 정부를 대표한다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는 권한이 없다고만 말한다.”면서 “그들은 협상의 전권을 가지지 못한 것 같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 거점 지역인 남부 카라바흐 부족장 등 부족 원로를 중개인으로 내세운 협상이 기대와 달리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해 사태 장기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탈레반은 3차 시한인 23일 오후 7시(한국시간 오후 11시30분)을 앞두고 한국 정부와의 직접 대화를 요구하면서 국면은 다시 바뀌었다. 탈레반 지휘관인 압둘라 잔의 대변인은 이날 “우리가 한국과의 직접 협상을 요구하는지 알리기를 희망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협상 시한을 24시간 연장하면서 한국 정부 협상단과의 직접 접촉을 또 다시 촉구했다. 시선은 아프간 정부를 배제한 채 탈레반이 한국 정부와의 협상 테이블에서 꺼내놓을 구체적인 주문에 쏠리고 있다. 그러나 나토가 주도하는 아프간 국제안보지원군(ISAF)의 댄 맥닐 사령관은 “극단주의자들과의 직접 협상은 좋은 생각이 아니며 납치를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속셈이기 때문에 협상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이날 압둘라 잔의 대변인은 아프간이슬라믹프레스(AIP)와 인터뷰에서 “한국인을 수용한 각 그룹마다 자살폭탄 대원이 배치돼 있다.”면서 “이들 대원은 폭탄이 장착된 조끼를 입고 있다.”고 인질 감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이어 “만약 정부가 어떤 형식으로는 모험을 감행한다면 인질 처형의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며 “군 병력이 진입할 경우 인질들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따라서 아프간 군 당국 등이 섣불리 구출 작전에 나설 경우, 끔찍한 인질 처형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이 대변인은 “우리는 개로 하여금 사람을 물도록 하는 기독교도나 유대인이 아니다.”고도 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씨줄날줄] 해외 선교/함혜리 논설위원

    기독교 교인들의 선교에 대한 사명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로 압축된다. 온 세상 한 곳도 놓치지 말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라는 뜻인데 ‘땅끝’은 과연 어디일까? 19세기 말에는 아마도 고집스럽게 닫혀 있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 조선이 서양 선교사들에게 땅끝이었던 것 같다. 대원군은 병인년(1866년) 정초부터 천주교 탄압을 본격화했는데 그 과정에서 조선에 와 있던 프랑스인 선교사 12명 중 9명이 처형됐다. 병인양요는 이에 대한 프랑스 인도차이나함대의 보복공격이었다. 신미양요는 미국이 1866년의 제너럴셔먼호(號) 사건에 대한 응징과 조선과의 통상관계 수립을 목적으로 1871년 조선을 무력 침략한 사건이다. 제너럴 셔먼호에는 한국 개신교사에서 ‘첫 순교자’로 기록하고 있는 영국인 토머스 선교사가 통역관으로 승선하고 있었다.1882년 한·미 수호조약 체결 이후 미국의 각 교단이 선교사 파견을 본격화했는데 이들은 의료와 교육을 비롯해 서양의 문물과 제도를 소개해 조선의 근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5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한국은 땅끝을 찾아 선교를 떠나는 입장으로 변했다. 한국 개신교도의 해외 선교는 열성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경제성장과 해외 여행 자유화, 국내 선교의 침체 등이 맞물린 결과다. 현재 200여 국가에 1만 6000여명의 선교사가 활동하고 있다.4만 6000명인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은 숫자다. 국외 선교는 1만 1000개에 이르는 미전도 종족지역에 집중된다. 이슬람권 4000, 힌두권 2000, 불교권 1000 등으로 인구는 24억명에 이른다. 많은 선교사들은 이슬람권과 유대인 지역의 복음화야말로 진정한 ‘땅끝’이라고 믿는다. 전쟁과 테러가 계속되는 위험지역이다. 특히 이슬람권은 한국이 미국의 요청으로 이 지역에 파병하면서부터 한국에 대해 적대적 감정을 갖게 돼 환경이 더욱 나빠졌다. 이번에 분당샘물교회 신자들이 피랍된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의 거점 지역으로 극도로 위험한 지역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선교활동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어려운 봉사일수록 더욱 큰 보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정이 다는 아니다. 위험을 불사하는 무모한 선교방식은 이제 고쳐져야 하지 않을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보편주의 함정’ 벗어나기

    ‘신앙 공동체에서만, 혹은 그 내부에서만 대화를 하겠는가?아니면 신성은 모든 것을 포괄한다는 믿음에 따라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하느님을 추구하는 행위에도 흠이 없는 고결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겠는가?’ 런던의 유대인대학 총장을 역임한 종교학자 조너선 색스는 종교에 헌신하고 있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그 대답이 긍정적일 수 없다는 것을 그 자신부터가 너무나 잘 안다.‘종교란 그것이 해답의 일부가 되지 않으면, 문제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차이의 존중-문명의 충돌을 넘어서’(조너선 색스 지음, 임재서 옮김, 말글빛냄 펴냄)는 책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종교간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최종적이고 유일한 처방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최근 세계 주요 종교의 부흥은 자유주의적인 신앙보다 보수적인 신앙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보수적인 종교운동의 힘은 현대성에 저항하는 데서 나타나는데, 그것은 세계 자본주의가 낳은 부작용에 대한 깊은 환멸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부작용이란 불평등과 소비주의, 착취, 만연한 빈곤과 질병에 대한 대처 능력 부족, 지역의 전통과 문화를 무시하는 구제불능의 둔감함, 물질적 풍요와 나란히 가는 영혼의 빈곤함이다. 그 결과 열성 신도를 끌어모으는 동력은 현대적인 종교의 모습이 아니라 저항으로 특징지어지는 종교의 반현대적인 모습에서 나오게 되었다고 분석한다. 지은이는 오늘날 문명충돌의 근본적인 원인 제공자로 ‘진리나 궁극적 실재를 찾기 위해서는 특수성에서 보편성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는 플라톤 시대 이후 서구 사상을 지배한 패러다임을 지목한다. 오늘날은 세계 자본주의라는 보편적인 질서 속에 살고 있는데, 그것이 지역적이고, 전통적이고, 특수한 것을 위협한 결과가 9·11테러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제 플라톤의 유령을 깨끗하게 몰아내어 지역적이고, 특수하고, 독특한 것에 대한 존중으로 보편주의의 균형을 잡아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의 문화나 종교의 이름으로 인위적인 통일성을 부과하려는 시도는 하나의 체계가 번창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를 오해한 결과라는 것이다.1만 5000원.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가톨릭 교회 아니면 완전한 교회 아니다”

    ‘교황은 종교 갈등의 장본인?’ 세계종교간 화해를 이끌어 가야 할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는 잇따른 언행으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0일(이하 현지시간) 엄격한 교리 해석 등 보수 성향인 교황이 ‘가톨릭 제1주의’식의 행보로 다른 종교 신자들을 성나게 하고 있다고 전했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10일 발표한 문서에서 로마가톨릭이 아닌 교회는 완전한 예수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고 밝혔다. 교황은 문서를 통해 “정통 교회는 참된 교회이긴 하지만 교황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상처를 입었다.”면서 “개신교들 사이에서 상처는 여전히 점점 깊어지고 있다.”고 천명했다. 이어 “개신교가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까지 말했다. 교황의 선언은 전날 라틴어 미사를 재도입하겠다고 발표한 직후 나온 것이어서 파문을 더하고 있다. 라틴어로 진행되는 ‘트리엔트 미사’에는 유대인의 개종을 촉구하는 ‘굿프라이데이(예수수난일)’예배가 포함돼 있어 유대인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참된 교회´ 선언은 교황이 지난 2000년 주교 재임 시절 발표한 `주님이신 예수님(Dominus Iesus)´의 내용을 사실상 재확인한 것이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교황 ‘라틴어 미사’ 재도입 결정 유대인들 반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라틴어 미사를 재도입하기로 해 유대인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9일 AP 등 외신에 따르면 교황은 지난 7일 라틴어 미사를 재도입하는 내용을 담은 ‘교황 자의교서’를 공개했다. 유대인들이 라틴어로 진행하는 ‘트리엔트 미사’를 반대하는 이유는 유대인의 개종을 촉구하는 ‘굿 프라이데이(예수 수난일)’ 예배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친유대 민권단체인 반인종주의연맹(ADL)은 교황의 라틴어 미사 재도입 결정이 가톨릭과 유대인 관계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프랑스의 일부 주교들을 비롯해 진보적인 성향의 성직자와 신자들도 이번 결정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교황청 대변인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라틴어 미사 재도입 결정이 “과거로의 회귀는 물론 공의회나 주교들의 권위를 약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독일 출신인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 4월 교황에 선출된 이후 ‘반 이슬람 발언’으로 설화를 겪었고, 지난해 폴란드 아우슈비츠를 방문했을 때에는 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언급하지 않아 유대인들을 실망시켰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비트겐슈타인과 히틀러/킴벌리 코니시 지음

    ‘레알슐레(오스트리아 린츠의 국립실업학교)에서 나는 한 유대인 소년을 만났다. 우리는 모두 그를 조심스럽게 대했는데, 그 이유는 단지 우리가 여러 차례의 경험으로 그가 경솔하다고 의심해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히틀러의 ‘나의 투쟁’) 이 소년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부유한 가문 출신으로 말끔한 옷차림에 다른 아이들은 잘 쓰지 않는 점잖은 말씨에 친구도 사귀지 않는 ‘왕따’였다. 그는 20세기 최고의 언어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이다. 히틀러가 어린 시절의 비트겐슈타인을 훗날 자서전에서 언급한 이유는 무엇일까.‘비트겐슈타인과 히틀러’(킴벌리 코니시 지음, 남경태 옮김, 그린비 펴냄)는 “비트겐슈타인은 당시 히틀러에게는 없었던 문화적 특권을 누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히틀러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미술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지만, 그것을 충분히 누릴 만한 여건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철강업으로 재계를 주물렀던 바트겐슈타인 가문은 1903년 클림트가 창설한 예술단체인 분리파의 전시회를 후원하고, 브람스를 집으로 불러 연주회를 가질 만큼 예술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또 히틀러는 오페라 ‘로엔그린’의 가사를 모두 외울 만큼 작곡가 바그너에 심취해 있었다. 그런데 바그너의 반유대주의는 부인 코지마 바그너가 어린 시절 비트겐슈타인 후작부인에 의해 어머니로부터 헤어져 멀리 떠나야 했다는 악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가문의 배경을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녔던 비트겐슈타인은 히틀러가 언급한 대로 ‘경솔한’ 존재였고, 평생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당시 유럽에 뿌리 내린 반유대정서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20세기 최대의 만행으로 꼽히는 히틀러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는 사실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증오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히틀러는 권력을 잡은 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제치고 어린 시절을 보낸 린츠에 ‘아돌프 히틀러 박물관’을 세운다. 또 이 도시에 헤르만 괴링 제철소를 세우고 비트겐슈타인 가문의 비트코비츠 제철소를 흡수했다. 어린 시절 비트겐슈타인에게서 느낀 상대적 박탈감과 질투에 대한 복수였다는 것이다.1만 8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박기철의 플레이볼] 이스라엘 프로야구의 ‘흑자 꿈’

    지난 24일 3112명의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모딘 미라클이 페타 티크바 파이오니어스를 9-1로 꺾었다. 마이너리그와 독립리그까지 챙기는 마니아에게도 이 경기에 출전한 팀의 이름은 낯설다. 이스라엘 프로야구의 개막전 스코어이므로 낯선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축하 메시지를 보낸 나라도 타이완과 이탈리아뿐이다. 관심이 가는 이유는 첫해부터 흑자를 내겠다는 야무진 꿈을 갖고 출발했기 때문이다.이스라엘에서 프로야구로 흑자를 낸다? 믿기 어렵지만 여기에 참여한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고 이들이 대부분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허구적인 계획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먼저 커미셔너는 이스라엘과 이집트 주재 미국 대사를 역임한 대니엘 쿠처다. 샌디 쿠펙스는 명예 선수격이다.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전설의 좌완투수 쿠펙스는 1965년 당시 LA 다저스 선수로서 옴 키푸르라는 유대교 기념일을 이유로 월드시리즈 선발 등판을 거부해 파란을 일으켰다.7차전 승리투수가 된 덕에 다소 진정되긴 했지만 비유대계 다저스 팬들에게는 엄청 미움을 받았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는 영웅이 됐다. 이들이 프로야구의 출범에 도움을 주기는 하겠지만 첫해 흑자의 자신감을 보이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보스턴에 본부를 둔 제빵 재벌이자 이번 프로젝트의 기획자인 래리 바라스의 설명을 들어보면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 이스라엘에서 야구는 인기가 별로 없다. 하지만 미국 태생으로 이스라엘로 영주 귀국한 사람들은 야구에 향수를 갖고 있다. 또 수많은 유대인 관광객들도 이들의 대상 고객이다. 전체 팀 수는 6개. 총 선수 수는 120명. 일본, 우크라이나 등 모두 9개 국가 출신이다. 한 팀에 20명뿐이라 9회가 아닌 7회로 끝난다.7회에 동점이 되면 홈런 레이스로 승부를 가른다. 이스라엘 토박이 선수는 고작 20명이다. 그러나 2009년 WBC에는 이스라엘 토박이 선수로 대표팀을 구성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갖고 있다.구장은 세 개. 선수 연봉은 2000달러. 물론 팀당 경기 수는 45경기밖에 안 되고 시즌은 고작 8주간으로 8월이면 끝난다. 그러나 개막전은 미국의 PBS가 중계했으며 이스라엘 TV의 프라임 타임에 주당 한 경기가 고정 편성돼 있다.리그의 전체 예산은 100만달러. 한국의 프로스포츠들은 모두 거창한 계획을 갖고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계획대로 진행된 종목은 하나도 없다.‘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cobb76@gmail.com
  • 랜토스 위원장 ‘위안부 결의안’ 서명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연합뉴스|톰 랜토스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이 23일(현지시간) ‘위안부 결의안’의 공동발의자로 서명했다. 이에 따라 26일 하원 외교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되는 위안부 결의안은 표결없이 만장일치로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고 위안부 문제 관계자가 말했다. 민주당의 마이크 혼다 의원이 발의한 위안부 결의안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한국과 중국, 동남아시아 지역의 여성들을 강제로 끌고가 성 노예로 학대했던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위안부 결의안에 공동서명한 하원의원은 23일 현재 145명이다. 헝가리계 유대인으로 나치가 자행한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한 랜토스 위원장은 지난 16일 로스앤젤레스의 한인 후원행사에 참석, 결의안에 대한 지지 입장을 공식 표명한 뒤 26일 결의안을 외교위에 상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위안부 결의안이 26일 외교위를 통과하면 7월 중순 하원 본회의에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23일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 따르면 태평양 지역 역사학자인 호주 국립대학(ANU) 명예교수 행크 넬슨 박사는 ANU에 제출한 논문을 통해 현재 파푸아뉴기니 이스트 뉴 브리튼 섬에 있는 라바울에는 2차 대전 당시 3000여명의 한국인과 일본인 여성들이 위안부로 끌려와 있었다고 밝혔다.dawn@seoul.co.kr
  • 영화 ‘오즈의 마법사’등 38건 세계기록유산 등재

    넬슨 만델라의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 투쟁 기록, 할리우드 영화 ‘오즈의 마법사’,1000년된 이란의 서사시 등 38건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19일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만델라의 투쟁 기록을 구텐베르크 성경, 바르샤바 게토(유대인 거주지)의 기록물과 함께 세계기록유산 명단에 올렸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오른 기록물은 158건이 됐다. 유네스코의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된 작품들은 디지털 복사본이 제작된다. 이번에 선정된 기록물들은 이란의 유명 시인 페르도시(941∼1020년)의 ‘왕들의 책’, 기원전 1800∼1500년부터 내려온 힌두경전 ‘리그베다’,1066년 노르만의 영국 침공을 묘사한 ‘벽걸이 융단’ 등이다. 이밖에 제2차세계대전 당시 나온 영화 ‘오즈의 마법사’, 세계 최초의 장편영화 호주의 ‘켈리 갱 이야기’도 포함됐다. 우리나라 기록물로는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 승정원 일기, 직지심체요절에 이어 조선왕조 의궤와 해인사 고려대장경판이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한인회 허브화 첫걸음은 서로의 칭찬”

    18세 때 미국으로 입양돼 워싱턴주 3선 상원의원에 오른 신호범(미국명 폴 신·73) 의원이 20일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2007 세계한인회장대회’에 강연자로 초대돼 전세계 56개국에서 모인 한인회장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신 의원은 이날 ‘우리의 비전, 우리의 희망’이란 주제로 동포사회의 현황과 과제를 특강형식으로 소개했다. 그는 “한인회의 위상이 높아지려면 이중(二重)문화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통해 진정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한인들은 지도자를 세워놓고도 이리저리 흔드는 것이 치명적인 약점”이라며 “한인회 허브화의 첫걸음은 구성원들이 가장 확실한 무기인 ‘진실’을 가지고 서로를 ‘칭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 의원은 “한민족은 이같은 과정을 통해 반드시 세계를 지배하는 디아스포라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 의원은 또 “유대인을 추월할 수 있는 한인들의 교육열은 커다란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장해 주는 민족적 디딤돌이 될 것”이라며 “또한 한인들이 거주국에서 진취적인 투지를 가지고 그 나라의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외동포의 역할에 대해 신 의원은 “교포사회에는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이민자 한 사람 한 사람이 한국을 대표하며 조국을 세계에 알리려고 노력한다.”며 “앞으로 더 훌륭한 조국의 홍보대사가 되도록 노력하자.”고 강조했다. 신 의원은 도미한 뒤 브리검영대를 나와 워싱턴주립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메릴랜드대와 하와이대 교수를 역임했고,‘제1회 자랑스러운 한국인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교포사회의 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세계 금융가의 제왕 기 드 로스차일드 타계

    세계적인 금융재벌을 구축해 2세기 넘게 지구촌 경제를 좌지우지해 온 유대인 재벌 로스차일드 가문의 기 드 로스차일드가 12일(이하 현지시간) 9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뉴욕타임스는 14일 한 세기 동안 세계 금융계를 이끌어 온 그와 로스차일드 가문을 소개했다. 금융재벌의 ‘창업자’ 마이어 암셸(1744년·독일 태생)의 아들로 로스차일드 가문의 프랑스 지부를 세운 제임스의 증손자인 기 드 로스차일드는 화려한 생활을 즐겼던 선조와 달리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가문을 이끌었다. 2차대전 때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되자 프랑스에서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도피했다가 1944년 파리로 돌아온 그는 가업 재건에 나선다.1953년 그가 고용한 조르주 퐁피두와는 막역한 사이였고, 퐁피두가 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되면서 로스차일드 가문은 프랑스 정부와 긴밀한 관계가 된다. 그는 로스차일드 은행을 인수합병 전문 투자은행으로 키우고 와인 제조, 경주마 사육 등을 통해 큰 돈을 벌었다. 1981년 사회당이 집권, 로스차일드 은행을 국영기업으로 바꾸자 그는 미국으로 이주한다. 그의 큰아들 다비드는 파리에서 다시 은행업을 시작해 현재 로스차일드 런던 은행까지 유럽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며 금융재벌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창업자 마이어 암셸은 나폴레옹 전쟁과 유럽 철도 붐을 이용, 큰 돈을 벌어 세계 역사를 막후에서 움직이는 큰손으로 평가받고 있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발트하임 前 유엔사무총장 사망

    유엔 사무총장과 오스트리아 대통령을 지낸 쿠르트 발트하임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AP 통신이 14일 보도했다.88세. 발트하임은 지난달 말부터 빈의 한 병원에서 지병으로 치료를 받아왔다. 그는 1972년부터 1982년까지 유엔 사무총장을 역임한 뒤 1986∼1992년 오스트리아 대통령을 지냈다. 나중에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전력이 알려지면서 곤욕을 치렀고 오스트리아의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키기도 했다. 그는 이후 하야 압력에 직면하기도 했으나 자신은 군대에서 의무를 다했을 뿐이고 나치의 유대인 학살 등 전범 행위는 알지 못했다면서 혐의를 전면 부인해왔다. 연합뉴스
  • [하재봉의 영화읽기]세계 영화사의 신화 : 조도로프스키의

    [하재봉의 영화읽기]세계 영화사의 신화 : 조도로프스키의

    만약 당신이, 아직까지 조도로프스키의 영화를 보지 못했다면 당신은 분명히 영화광이 아니다. 나는 많은 영화를 섭렵했다, 라고 당신은 항의할지 모른다. 그러나 <엘 토포> <홀리 마운틴> <성스러운 피> 같은 조도로프스키의 영화를 아직 한 편도 보지 못했다면 당신은 영화라는 매체의 반쪽만을 알고 있는 것이다. 조도로프스키의 영화들은 영화라는 매체가 다다를 수 있는 한 극점을 표현하고 있다. 그의 영화 속에는 문학과 신화, 철학, 종교 등이 서로 충돌하거나 아니면 부딪치는 척하면서 은밀히 녹아 있다. 그의 영화는 비대중적이고 비상업적이다. 영화라는 매체가 갖는 본질적 소통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그의 영화는 철저하게 한 예술가의 정신적 표현이다. 국내에서 개봉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영화는 <성스러운 피>가 유일했다. 그것도 여기저기 처참하게 가위질된 모습으로. 그러므로 조도로프스키의 걸작 <엘 토포>(1970년)와 <홀리 마운틴>(1973년)이 거의 40여 년 만에 노컷으로 한꺼번에 국내 개봉된다는 것은 영화광들의 마음을 뒤흔들 만한 사건이다. 그 동안 국내에서 개최된 영화제에서 조도로프스키의 영화들이 잠깐 상영된 적은 있지만, 이렇게 정식으로 수입 절차를 밟고 개봉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는 매우 다양한 경력을 지닌 사람이다. 그의 활동은 현대 예술의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져 있다. 우리에게는 영화감독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가 쓴 만화는 국내에서도 여러 권 출간되었다. 그는 소설도 썼고 장 루이 바로와 함께 판토마임 배우로도 활동했으며 심지어 타롯카드 점술사로도 명성을 날렸다. 초현실주의 잡지도 출간했고 세계 연극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아라발 같은 연출가와 함께 연극 활동을 하기도 했다. 조도로프스키는 1929년 러시아계 유대인의 아들로 칠레의 볼리비아 국경 부근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서커스단 배우였는데, 유년시절의 곡마단 경험은 그의 영화 여기저기에 흔적을 남긴다. (<성스러운 피>에서는 곡마단 아들인 주인공 피닉스의 유년시절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영화의 대부분이 곡마단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또 <엘 토포>나 <홀리 마운틴>에 등장하는 장애인이나 기형아 역시 곡마단에서 그가 직접 목격한 인물들의 캐릭터를 형상화 한 것들이다) 조도로프스키는 칠레의 산차고 대학에서 철학과 심리학을 공부했지만 의사가 되라는 아버지의 말에 반항해서 학업을 중단하고 집을 나간다. 1953년 파리로 간 그는 당시 파리 예술계에 불던 아방가르드 예술을 온몸으로 받아들였으며 판토마임을 공부한다. 장 루이 바로의 스승이었던 에뜨엔느 뒤크레에게서 판토마임을 배워 ‘마르소 마임’이라는 극단에서 마르셀 마르소와 함께 판토마임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무비 카메라를 만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는 직접 카메라를 구입해서 판토마임을 영화로 찍기도 했다. 그리고 1962년 잔혹극이라는 장르를 만들었던 연극 연출가이며 극작가인 페르난도 아라발, 롤랑 토포와 함께 ‘파닉 무브망 Panic Movement’이라는 그룹을 만들어서 연극, 퍼포먼스 등의 활동을 했다. 그리스 신화의 장난꾸러기 요정인 판을 숭배한다고 해서 붙여진 그룹 이름이다. 조도로프스키가 본격적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멕시코에 정착한 이후부터다. 프랑스 시절 판토마임 배우들과 함께 찍은 <잘려진 머리>라는 단편은 지금 남아 있지 않고, 1967년 멕시코에 정착한 후 아라발의 희곡을 영화로 만든 <판도와 리스>가 그의 첫 장편영화로 기록되어 있다. 그를 세계적인 영화감독으로 유명하게 만든 작품은 1970년 찍은 <엘 토포>다. 이 영화는 1970년 미국에서 심야 영화로 7개월 동안이나 장기 상영되면서 마니아층을 만들어냈다. 존 레논이 이 영화를 보고 매혹되어서 <엘 토포>의 세계 배급 판권을 샀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1973년 <홀리 마운틴>을 만든 후 조도로프스키는 다음 영화 제작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불운이 겹쳤다. 프랭크 허버트의 원작 《듄》은 초현실주의 화가인 살바드로 달리나 <시민 케인>의 감독 오슨 웰즈, 한 세기를 풍미한 배우 글로리아 스완슨 등을 출연시켜서 만들려고 했지만 결국 또 한 사람의 컬트 감독 데이비드 린치에게 뺏기고 말았다. 조도로프스키의 다음 영화는 16년 뒤인 1989년에야 만들어졌다. 국내에서 처음 개봉된 조도로프스키의 영화인 <성스러운 피 Santa Sangre>는 기존의 영화들에 비해 훨씬 대중적인 내러티브를 갖고 있어서 마니아층에서는 실망했지만 대중적으로 그의 이름을 알린 영화가 되었다. 조도로프스키는 1990년 오마 샤리프와 피터 오톨 같은 대배우가 출연한 <무지개 도둑>을 만들었지만 지나치게 현실 타협적인 영화라는 비난을 받았다. 멕시코에서 마뉴엘 모로라는 만화가를 위해 이방인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시나리오를 쓴 조도로프스키는 다시 프랑스로 건너가 다양한 만화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특히 뫼비우스와 함께 발표한 여러 편의 시리즈들은 조도로프스키라는 이름을 세계 만화계에 알렸다. 특히 그는 공상과학 분야에서는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로 손꼽힌다. 1980년 뫼비우스의 그림으로 메탈 위를랑에서 출간된 《잉칼》은 존 디폴이라는 주인공을 등장시켜 아무것도 아닌 왜소한 남자가 세계를 구원하는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조도로프스키는 《잉칼 이전》《잉칼 이후》 등 40여 권의 만화 시나리오를 썼다. 달라이 라마의 환승을 다룬 《흰 라마승》, 국내에서도 출간된 공상과학 만화 《테크노페어》(2000년) 시리즈 등이 있고 1996년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벌에서 《쥬앙 솔로》 시리즈로 알파아르 최고의 시나리오 상을 수상했다. 서부극 형식을 차용하고 있는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엘 토포>는 스페인어로 두더지라는 뜻이다. 조도로프스키 감독 자신이 직접 주인공 엘 토포 역을 맡아 출연하고 있는데,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하는 엘 토포는 아들과 함께 사막을 건너가다가 한 마을 사람들을 끔찍하게 살육하고 지배하는 악당을 처치한다. 그리고 아들 대신 악당의 매혹적인 여자 마라를 선택한다. 사막에서 엘 토포는 동양철학자, 자연주의자, 사막의 성인 등 4명의 현자와 대결하는데 그는 비열한 방법을 동원하고 행운까지 뒤따라서 승리하지만 마라의 배신으로 자신이 인간임을 깨닫는다. 죽음의 위기에서 엘 토포를 구해준 사람들은 동굴 속에 살고 있는 기형아와 장애인들이다. 그는 과거의 죄를 씻고 해탈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타인을 위한 이타적 자세로 장애인들을 동굴 밖으로 탈출시킨다. 그러나 동굴 밖의 세계는 더욱 끔찍했다. 세상 사람들은 장애인들을 혐오하며 동굴 밖으로 탈출하는 그들을 모두 총으로 쓰러뜨린다. <홀리 마운틴>은 악마적 파시스트가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예수의 형상을 닮은 사내가 세계 구원의 메시지를 찾기 위해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그는 그곳에서 지도자(조도로프스키가 지도자 역으로 출연하고 있다)로부터 연금술을 배우고 태양계의 7행성을 수호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지도자와 함께 그들 9명은 불사의 삶을 찾기 위해 성스러운 산에 오른다. 조도로프스키의 영화는 대사가 극도로 절제되어 있고 수많은 상징적 이미지들이 넘쳐난다. 특히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그는 종교적 이미지를 자주 차용하는데, 예수 등 기독교의 성서에서 많은 이미지를 가져오지만 그것이 꼭 기독교의 이미지라고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멕시코 등의 토착문화와 미묘한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조도로프스키가 그의 청년시절 프랑스에서 경험한 초현실주의 운동은 그의 전 작품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성적 논리와 합리적 사고로 접근할 수 없는 서구 형이상학의 단점을 그는 위대한 상상력으로 극복한다. 그의 영화가 갖는 힘은, 현실 초월적 상상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것은 지상에서의 헛된 욕망에 사로잡힌 오만한 인간들을 비웃고 조롱하면서 삶의 궁극적 가치를 발견하려는 그의 일관된 주제의식과 맞물려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글 하재봉 시인, 영화평론가, 동서대 교수     월간 <삶과꿈> 2007.04 구독문의:02-319-3791
  • [중계석] 안네 프랑크 닮은 탈북어린이들/크리스토프 NYT 칼럼니스트

    “부끄러움도, 겁도 많은 14살 탈북소녀가 홀로 남겨진 9살짜리 두 탈북소년을 돌보고 있다. 이 세 어린이의 삶은 현대판 안네 프랑크를 떠올리게 한다.” 미국 뉴욕타임스 내에서 손꼽히는 ‘아시아 전문가’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던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가 4일(현지시간) 북한과 중국의 국경 지대에서 숨어 지내는 탈북 어린이들을 비밀리에 만난 뒤 드러낸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는 칼럼에서 탈북 어린이들을 2차대전 때 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로 희생된 소녀 ‘안네 프랑크’에 비유했다. 은신처에서 만난 14살 소녀는 한 겨울에 부모와 함께 꽁꽁 언 두만강을 건너 탈출했다. 소녀의 가족은 중국 공안을 피해 달아나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가족의 생사도 모른다. 그는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미국 남부 흑인노예의 북부 탈출을 돕던 비밀조직)’라고 지칭한 한 탈북 지원단체의 도움으로 네 곳으로 분산된 은신처를 방문했다. 최근 북한과 중국이 합동으로 탈북자 단속에 적극 나서면서 탈북자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북한은 1년 전부터 송환된 탈북자들을 감옥에 수감하고 재범자와 기독교인은 가족 전체를 노동수용소에 보내는 등 처벌을 강화하고 있다. 일부 탈북자들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탈북 후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은 공개 처형된다고 한다. 중국 정부도 탈북자들을 돕다 적발된 중국인들을 수감하는 등 처벌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는 칼럼에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탈북자들을 고문과 투옥, 처형이 기다리고 있는 북한으로 인계하는 것은 유엔 난민협약 위반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크리스토프는 이어 부시 정부도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리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폴란드판 ‘안네의 일기’ 60년만에 햇빛

    “우리를 죄고 있는 밧줄이 점점 더 조여오고 있다.”,“나는 기다리다 죽는 동물처럼 되어가고 있다.” 나치 독일 시절 14세 유대계 폴란드 소녀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가기 전 일상을 기록한 일기가 4일(현지시간) 사후 60여년만에 공개됐다.유대인 집단 거주구역에 살던 소녀 루트카 라스키어는 1943년 1∼4월 공책에 60쪽 분량의 일기를 남겼다. AP통신은 루트카가 ‘폴란드의 안네 프랑크’로 불려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녀의 1943년 2월5일자 일기에는 “내가 노란별(나치가 착용토록 한 유대인 식별 표시)을 떼어내고 이 집을 떠나도록 허락받을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이스라엘의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자료관에서 낭독된 이 일기는, 루트카가 당시 겪고 보고 들었던 유대인들의 운명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일기는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의 첫 사랑에 대한 가슴설렘을 당시 유럽 유대인들이 처한 비참한 운명과 함께 묘사하고 있어 안네의 일기와 흡사하다는 평가를 받았다.이 일기는 지난해 루트카의 단짝이었던 폴란트 여성 스타니슬라바 사핀스카가 기증했다.루트카는 자신이 죽더라도 일기를 잘 간직해줄 것을 부탁했다. 사핀스카는 이를 집안 바닥 밑에 감추어 두었다가 전쟁이 끝난 후 보관해왔다.예루살렘 연합뉴스
  • 러·美 신랄하게 비난

    가상의 나라인 압수르디스탄에 내전이 발발했다. 석유 분배로 인한 갈등 때문이었다. 그러나 압수르디스탄의 석유는 이미 동났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는 것일까. 미국의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것이다. ‘망할 놈의 나라 압수르디스탄’(민음사 펴냄)의 문제 의식은 여기서부터 내달린다.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나 뉴욕으로 이민간 작가 게리 슈테인가르트(35)는 러시아계 유대인이자 이민자인 자신의 삶과 시각을 작품에 녹여냈다. “비극적이고 유머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나라 러시아”(작가의 표현)와 맥도널드, 오레오 쿠키 등의 브랜드가 지배하는 미국이라는 두 거대 국가를 잘근잘근 씹어대는 이 작품은 21세기판 풍자소설이다. 작가가 불러낸 주인공은 147㎏의 거구이자 러시아에서 1238번째 부자의 아들 미샤 바인베르크. 씩씩거리며 숨을 토해내는 러시와와 미국이라는 두 거대 국가를 빗댄 장치다. 그러나 작가는 정치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안타까운 상황에 놓인 개인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라고 강조한다. “한국과 러시아의 가족은 미국의 가족보다 더 친밀하죠. 그런 가족들이 개인주의적인 미국으로 이민갔을 때 어떻게 적응하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그가 이민자의 삶과 비극적 상황에 주목하게 된 것은 이민자의 정체성을 다룬 소설 ‘네이티브 스피커’를 발표해 미국 문단의 주목을 받은 재미교포 작가 이창래씨와의 만남이 계기가 됐다. 미 프린스턴대 교수이던 이씨는 헌터컬리지에도 출강했는데 이때 문예창작 강의를 듣던 작가를 만나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다.”며 소설쓰기를 권했다고 한다. 작가는 작은 나라들에 대한 관심도 촉구했다. 석유가 풍부하지만 작아서 주목을 받지 못하는 나라들을 미국인의 시각에서 보고 싶었다는 얘기다. “미국에서는 단 몇 명이 죽어도 주목받지만 이런 나라들에서는 수만명이 죽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요. 제 작품은 이런 작은 나라들에 대한 관심을 표출한 겁니다.” ‘망할 놈의 나라…’에 이은 작가의 세번째 작품에는 한국계 미국인이 얼굴을 내밀 예정이다. 미국과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여러 이민자 군상을 통해 15∼20년 후의 사회를 그리겠단다. 문학과 지성이 붕괴된 사회, 쇼핑과 오락만이 지배하는 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보여주고 싶다는 얘기다.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버자이너 문화사/옐토 드렌스 지음

    ‘섹스 앤 더 시티’는 성(性)에 대해 알 만큼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충격을 안겨준 드라마였다. 드라마는 여성들의 자위 기구로 알려진 바이브레이터로 칭얼대는 아기를 달랜다거나(아기 등 뒤에 바이브레이터를 대줬더니 놀랄 정도로 울음을 뚝 그치고 방글댔다), 절정에 오른 여성의 사정을 직접 보여줬다(우유를 넣은 풍선을 쏘는 등의 장치였지만 여성의 사정액이 튀어나가는 장면은 TV드라마에서 보긴 힘든 것이었다). ‘버자이너 문화사(옐토 드렌스 지음, 김명남 옮김, 동아시아 펴냄)’ 역시 마찬가지다. ‘세상의 근원’‘신비의 샘’‘즐거운 입술’‘아랫도리’‘아래쪽’‘거기’‘악마의 낙인’‘지옥의 문’…. 이 책은 이처럼 갖가지 이름으로 불리며 여전히 공공연히 이야기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여성 성기에 대해 총체적으로 다룬다. 의학 문헌, 신화, 소설 등 다양한 자료를 통해 중세시대 정조대부터 할례, 처녀성 검사와 같은 기괴한 풍습까지 흥미롭게 소개한다. 오르가슴·G스팟·질경련·성교통(痛)과 같은 의학상식도 설명한다. 여성 성기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기록이자 성(性)백과사전이라 할 만 하다. 아프리카 적도 윗부분에서 주로 행해지는 여성 할례(클리토리스 절제)는 성의 어두운 면이다. 음핵 포피의 일부만 잘라내는 것부터, 항문 위로 자그만 구멍만 남기고 모두 잡아 엮는 음부 봉쇄까지 할례도 여러 가지가 있다. 마취 없이 유리조각이나 면도날로 하기도 하는 할례 현장은 상상 이상으로 야만적이다. 음부가 봉쇄된 여성들은 나중에 결혼하면 신랑이 직접 칼을 휘두르거나 산파가 칼을 들어야만 한다. 여성과 마찬가지로 남성들의 할례(포경 수술)도 ‘건강’과 관련이 없다. 할례받지 않은 음경은 위생에만 신경을 쓰면 된다. 자위에 대한 혐오감이 깊고 할례의 전통이 있는 유대인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포경 수술의 오랜 ‘유행’을 낳았다는 것이다. 1980년대 히피와 같은 공동체들은 대안적 산파술을 사용하기도 했다. 미국의 작가 앨리스 워커는 자신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산파인 이모는 내 외음부에 오일을 바르고 끊임없이 마사지를 해서 엉덩이가 열리고 질액이 흘러나오게 했다. 나는 급기야 오르가슴을 느꼈고 꼬마 피에르는 사실상 내 환희가 최고조에 달한 시점에 세상으로 미끄러져 나왔다. 아기는 눈을 뜨기 전부터 평온하게 웃고 있었다.…” 해리포터가 소녀들에게 끼친 엉뚱한 성적 영향도 특기할 만하다. 바비 인형으로 유명한 세계 최대 완구업체 마텔 사는 2003년 ‘님부스 2000’이란 장난감 빗자루를 출시했다. 아이들이 다리 사이에 끼고 놀게 만들어진 빗자루는 원격조종이 가능한 데다 무엇보다 진동 기능을 갖췄다. 자신이 선물한 빗자루를 어린 여자 아이가 ‘완전히 탈진할 때까지’ 하루종일 갖고 논다고 불평한 사례도 있었다. 이 책의 저자 옐토 드렌스는 네덜란드의 유명한 성과학자이자 페미니스트 의사. 여성 성기라는 민망할 수도 있는 주제에 대해 저자는 시종 유머 감각을 잃지 않고 냉정하면서 차분하게 이야기한다.2만 2000원.윤창수기자 geo@seoul.co.kr그래픽 김선영기자 ksy@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