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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 톡톡]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현장 톡톡]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스윙걸즈(2004), 원스(2006), 카핑 베토벤(2006), 솔로이스트(2009)…. 모두 마니아층의 사랑을 받았던 음악영화들이다. 하지만 다른 공통점도 있다. 바로 제천국제음악영화제(JIMFF)와 연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제의 개·폐막작으로 선정되면서 한국에 소개, 유명해진 작품들이다. 제6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새달 12일부터 17일까지 충북 제천에서 열린다. 제천영화제는 음악 장르를 특화시킨 아시아 최초의 영화제다. 애초 부산이나 전주, 부천국제영화제처럼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영화제에 소개된 여러 영화가 대중과 평단의 호응을 얻으면서 주요 영화제로 꼽히게 된, ‘자수성가형’ 행사다. 지난 13일 서울 충무로 신세계백화점 문화홀에서 열린 제천영화제 기자회견에 가봤다. 최명현 조직위원장(제천시장)은 “제천영화제는 일종의 휴양 영화제 성격이 강하다. 앞으로도 특성화된 국제영화제로 거듭날 수 있는 잠재력이 대단할 것”이라면서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다양한 음악 공연이 어우러지는 영화제는 제천에서만 볼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영화제의 대표적 공연 프로그램인 ‘원 썸머 나잇’에는 김수철과 양희은, 장기하와 얼굴들 등 내로라하는 국내 뮤지션이 참여한다. 개막작은 루마니아 출신 라두 미하일레아누 감독이 연출한 ‘더 콘서트’가 선정됐다. 26개국이 출품한 84편의 영화가 국제경쟁부문 등 9개 섹션을 통해 상영된다. 총괄기획을 맡은 전진수 프로그래머는 “더 콘서트는 구 소련의 브레즈네프 정권 시절, 유대인 차별에 맞서다 해고된 한 지휘자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라며 “영화에서 풍겨나오는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이 별미”라고 소개했다. 국제경쟁 부문인 ‘세계 음악영화의 흐름’에서는 ‘가을 아다지오’, ‘브랜 뉴 데이’ 등 8편이 대상과 심사위원 특별상을 놓고 경합 중이다. 대상 작품은 폐막작으로 상영되며, 상금 1000만원도 주어진다. 조성우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제천영화제는 100% 음악영화만을 취급하는 장르 영화제로 아시아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면서 “영화제 기간 동안 제5회 아시아태평양 영화 프로듀서 네트워크(APN) 총회도 제천에서 열려 올해 영화제가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화제 홍보대사로는 영화배우 백도빈(31)·정시아(27) 부부가 위촉됐다. 백도빈은 “산수가 아름다운 곳에서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제천영화제를 통해 문화 바캉스를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WP “오바마, 네타냐후에 백기투항”

    7일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전날 워싱턴에서 진행된 미국과 이스라엘 정상회담에 대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백기투항”이라고 비판했다. 신문은 백악관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환영하는 의미로 이스라엘 국기를 내걸었지만 정상회담의 의미를 살펴보면 사실은 투항을 의미하는 백기를 걸었어야 했다고 비꼬았다. WP는 지난 3월 진행된 두 정상의 회담과 비교하면서 비판을 제기했다. 당시 이스라엘 정부는 네타냐후 총리의 미국 방문에 앞서 동예루살렘에 1600채의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이에 항의의 표시로 네타냐후 총리와의 회담이 끝나자마자 먼저 회의장을 떠났다. 흔한 성명 발표나 기자회견도 없었고, 외국 정상들과 관례적으로 찍어 온 악수 사진조차 찍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회담 뒤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양국 간 특수관계’, ‘특별한 유대’, ‘협력·헌신’ 등의 단어를 열거해 가며 이스라엘과의 관계에 이상이 없음을 강조했다. 기자의 질문이 나올 때까지 이스라엘 정착촌 문제는 언급하지도 않았다. 이에 WP는 이번 회담을 이스라엘의 얼굴을 세워주기 위한 회담이었다는 의미로 화장품 브랜드 이름인 ‘오일 오브 올레이(Oil of Olay)’ 정상회담이라고 규정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마지막 직계제자’ 테스터 교수 10일 경희대서 내한강연

    ‘마지막 직계제자’ 테스터 교수 10일 경희대서 내한강연

    오는 10일 오후 3시 경희대 경영대 오비스홀에서 경희대 사회학과와 한국문화사회학회 공동 주최로 키이스 테스터 영국 헐 대학 교수의 강연회가 열린다. 강연회 제목은 ‘바우만의 액체근대성의 사회학에 대하여’(On Zygmunt Bauman‘s Sociology of Liquid Modernity)다. 폴란드 태생의 유태인인 바우만(85)은 1989년 홀로코스트(유대인 집단학살)에 대한 분석을 통해 세계적인 석학으로 올라섰다. 그 뒤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연구에 몰입하다 2000년대 들어 포스트(Post-) 개념보다 액체(Liquid) 개념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액체근대 통해 사적·공적 영역 붕괴” 바우만은 액체근대를 통해 모든 것이 ‘유동’(流動)하는 현대사회에서 사적인 공간이 공적인 영역을 침탈하는 것을 걱정하는 특이한 학자다. 서구 좌파 지식인들은 대개 공적인 영역이 사적인 영역을 압박해 개인의 자유를 침탈하는 문제를 고민하는 편이다. 탈민족주의 등의 담론들은 이런 흐름이다. 바우만의 접근법은 다르다. 나치즘과 스탈린으로 상징되는 전체주의 공포 때문에 개인의 자유 침탈을 우려하는 흐름이 생겨났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경계가 차츰 사라지는 액체화 경향이 더 큰 문제라는 주장이다. 근대 자체가 종교와 신분의 차이를 녹이는 데서 출발했듯 모든 소속감을 박탈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어 궁극적으로는 허허벌판에 공허하게 서 있는 개인에게 실존적 불확실성만 안겨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 공허함을 채우는 것은 소비뿐이라는 게 바우만의 진단이다. 1990년대 초반 등장한 ‘신세대’, ‘X세대’ 등에서부터 최근의 ‘골드 미스’에 이르기까지 마케팅 업체들이 지어낸 이런저런 분류들도 결국 지갑을 열면 소속감을 제공해 주겠다는 달콤한 제안과 다름없는 것이다. 대처리즘의 저 유명한 “사회는 없다.” 선언처럼 이제 뭘 하든 개인의 문제요, 개인의 책임이 되어버렸다. 개인 역시 사회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없다. ●“캠핑장 불편 개선 요구않고 체념” 바우만은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캠핑장의 비유’를 끌어왔다. 캠핑을 가면 집을 떠나온 마당에 이런저런 불편함이 있기 마련. 캠핑장 관리사무소에 불편함을 해소해 달라고 요구하지만, 다음날이나 다다음날 떠날 때가 되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떠나고 만다. 캠핑장 개선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거나 체념해 버린다.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에서 깡패 동철(박중훈)은 취업준비생 세진(정유미)에게 “프랑스는 취업 안되는 게 정부 책임이라며 데모까지 하는데 우리나라 애들은 그게 다 지 탓인 줄 알아. 다 정부가 잘못해서 그런 건데. 당당하게 살아.”라고 말한다. 스펙쌓기 무한경쟁에 대한 문제제기보다 그 경쟁에서 살아남기를 내면화한 우리네 모습에 대한 적나라한 성토다. 시키는 대로 학교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해 토익 점수와 학점을 이만큼이나 쌓아놓은 내가 뭘 잘못했느냐고, 회사 간부라는 당신들은 대학시절 나처럼 공부해서 점수 따놓은 것이 있었느냐고 되물어 볼 법도 한데 아무도 그러지 않는다. 부동산과 교육 문제에 한숨 쉬며 걱정하면서도, 연대해서 해결할 생각보다는 십몇년도 넘은 내 아파트를 얕은 페인트칠로 교묘히 이름 바꾸는 데 열중이다. ‘나만 아니면 돼.’라고 외치는 사회인 셈이다. 테스터 교수는 바우만의 마지막 직계제자이자 바우만 해석의 권위자로 꼽힌다. 내한강연 주제는 ‘바우만의 역설’이다. 토론자로는 바우만의 저작을 국내에 소개해온 정일준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가 나섰다. 사회를 맡은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6일 “바우만은 인간이 추구해온 완벽한 사회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 또 다른 삶에 대한 성찰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보지만 엄밀히 따지면 조금은 회의론 쪽에 가까운 학자”라면서 “최근 바우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그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美·이스라엘 관계 삐그덕

    “이스라엘이 미국인의 생명과 안보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60여년 동안 이스라엘의 맹방이자 후견인 역할을 해 온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5일 보도했다. 가디언은 이미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의 지지와 지원을 이스라엘 정부가 남용하고 있으며, 그 결과 미국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생각을 폭넓게 공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아프간 주둔 미군사령관 등 군부 주요 지휘관들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점령 유지는 중동 문제해결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의 이스라엘에 대한 전략적 재고는 지난 5월 유엔본부에서 채택된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 최종 선언문에서도 나타났다. 당시 선언문은 이스라엘에 NPT 가입과 핵시설 공개를 촉구했다. 이스라엘은 미국이 아랍 국가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를 수용했다고 반발했다. 그 뒤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 지역의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강행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워싱턴 정가를 격노케 했다. 6일(현지시간)로 예정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워싱턴 정상회담은 벌어지고 있는 두 나라 관계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외국에선 특별위 활동후 공익재단 만들어 재발방지

    외국의 과거사 청산과정은 진상 규명으로 시작해 가해자 처벌, 피해자 보상, 화해 및 위령 사업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처럼 한시적인 특별위원회가 활동을 끝내면 공익재단을 설립해 재발 방지를 위한 기록·연구·교육 등 후속조치를 단계적으로 수행한다. 그 과정에서 잘못된 과거사를 극복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특별법으로 정부가 설립한 재단은 칠레의 ‘국가배상 화해재단’, 타이완의 ‘2·28사건기념기금회’가 있고, 민간재단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재단’이 대표적이다. 독일의 ‘기억·책임·미래재단’은 나치 시절 유대인과 인접국가의 강제노동 피해자의 보상을 목적으로 설립됐는데 정부와 기업이 함께 기금을 낸 것이 특징이다. 국내 사례로는 5·18 기념재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주 4·3 평화재단을 꼽을 수 있다. 정치상황과 재정형편에 따라 액수에는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금전적 배·보상금을 지급한다. 일반적으로 기준을 정해 차등을 두고 보상금을 지급하는데 이것이 힘들면 상징적인 보상을 단행한다. 스페인은 역사기억법을 제정해 1968~1977년 국가폭력의 희생자에게 1인당 13만 5000유로(약 2억 4000만원)를 지급했다. 독일은 나치 강제노동 피해자가 많아 상징적으로 166만명에게 1인당 2650유로(약 480만원)씩 일괄 보상했고 이후 역사 교육에 집중했다. 남아공도 흑인의 생활을 전반적으로 개선하려고 생활비 6000란드(약 120만원)를 지급하는 등 사회개혁을 시행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민간인피학살 유족 ‘연좌제 고통’

    민간인피학살 유족 ‘연좌제 고통’

    1962년 1월29일 혁명재판소. 경주피학살자유족회 회장 김하종(당시 28세)씨에게 무기징역이 구형됐다. “6·25전쟁 때 우리 국군과 경찰이 선량한 국민을 살해한 것처럼 왜곡하고 위령탑 건립 등을 주장해 북한 괴뢰의 목적사항을 찬양동조했다.”는 것. 김씨는 오른쪽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쓰며 “가족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려 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이틀 후 징역 7년형이 선고됐다. 김씨의 고향인 경북 월성군 내남면은 1945년 광복 직후부터 민간인 학살로 얼룩졌다. 46년 조선공산당의 선동으로 ‘대구 10·1 사건’이 터지자 대한청년단이 조직됐고, 이들은 좌익분자를 색출한다며 민간인을 마구 살해했다. 49년 7월7일(음력) 김씨의 일가친척 22명도 잠을 자다가 총살당했다. 이 가운데 열살 미만의 어린이가 8명이나 됐다. 대한청년단 단장인 이모(당시 28세)씨가 소 판 돈을 약탈하고 죄를 은폐하려고 저지른 짓이라고 김씨는 설명했다. 그러나 경찰은 청년단이 공비토벌을 돕는 터라 수수방관했다. ‘가해자’ 이씨는 이후 자유당의 3선 국회의원까지 지냈다. 4·19 혁명이 터지자 세상이 뒤바뀌었다. 60년 5월27일 국회가 특별조사단을 구성해 진상조사를 벌이고 검찰이 살인죄로 이씨를 구속기소했다. 민간인 학살사건 재판이 최초로 열린 것이다. 검찰은 “이씨는 유대인 학살을 지휘한 독일 친위대 중령 카를 아돌프 아이히만에 버금간다.”고 밝혔다. “아이를 안은 어머니를 앉혀 놓고 총살했다.”는 목격자의 법정증언이 잇따랐다. 61년 3월6일 1심 재판부는 이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5·16 군사 정변이 발생하면서 세상이 다시 뒤집혔다. 진상 규명 활동은 ‘특수 반국가행위’로 바뀌었다. 경주유족회는 해산되고, 김씨는 불법 구금됐다. 경상남북도·경산·마산·창원·밀양·금창·동래유족회도 마찬가지였다. 유족 28명이 기소돼 최고 사형까지 선고받았다. 경찰은 민간인 희생자가 묻힌 합동묘를 없애고 위령비도 정으로 지워 훼손했다. 살인죄로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던 ‘가해자’ 이씨는 항소심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유족회 간부의 처벌을 지켜본 증인들이 항소심에서 진술을 번복했기 때문이다. 일부 유족은 허위 증언의 대가로 돈을 받기도 했다. 징역 7년형을 선고받은 김씨는 2년간 복역하고 63년 12월16일 사면됐다. 그 후로도 경찰의 감시가 이어졌다. 취업할 수 없어 농사를 짓고 살다가 78년 중등학교장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신원특이자’라고 교육청에서 승인이 제때 나오지 않았다. 민간인 피학살 유가족은 김씨처럼 법적 근거도 없는 ‘연좌제’에 시달려야 했다. 형사처벌을 받고 신원조회로 사회생활에서 불이익을 당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연좌제로 피해를 당한 301명의 사례를 발표했다. 공무원·사관학교 임용시험에서 탈락하고(73명), 취업이나 승진 때 불이익을 받았다(44명). 출국도 불가능했고(43명) 신원조회에 걸려 부당한 대우(91명)를 받았다. 김씨는 “집단학살된 가족의 생사 확인을 반국가활동이라고 사형까지 선고하고 ‘연좌제’로 수십 년간 감시해온 국가가 이제 와서 소멸시효(5년)가 지났다며 배상을 거부하는 게 상식에 맞느냐.”고 반문했다. 글 사진 대구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유대인 vs 유대인… ‘인종차별’ 이스라엘

    ‘유대인과 유대인의 전쟁’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살면서도 단결을 최우선 명제로 삼아온 유대인들이 교리와 문화적 차이로 인해 내홍을 겪고 있다. 가자지구 구호선 총격사건으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내우외환’ 격이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17일(현지시간) 최근 이스라엘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학교분쟁’과 이로 인한 이스라엘의 분열을 현지발 기사로 분석했다. 이날 예루살렘에서는 수천명의 시위대가 모여 대법원의 결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시위로는 1999년 이후 최대 규모다. 시위대는 경찰을 상대로 돌을 던지고 교통흐름을 방해하면서 충돌을 빚었다. 사태는 지난해 요르단강 서안 지역의 ‘임마누엘’ 유대인 정착촌에 거주하는 유럽계 유대교인 부모 40쌍이 자신의 딸이 중동·아프리카계 유대교인 딸들과 한 학교에 다니는 것을 거부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법원은 지난해 8월 중동·아프리카계 유대교인 여학생이 유럽계 학생들과 한 학급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판결했고, 유럽계 학부모들은 이에 반발해 딸들의 등교를 거부했다. 법원은 결국 이날까지 학생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부모를 2주일간 구금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내렸지만, 이들은 시위로 맞섰다. 타임은 이들의 갈등이 유대교의 교리 해석과 유대인의 역사적 이주 과정에서 생긴 차이 때문으로 분석했다. 유대인은 이주 지역에 따라 크게 ‘세파르딤(북아프리카·중동계)’과 ‘아시케나지(유럽·미국)’로 구분된다. 아시케나지는 부유한 국가에서 유대교 교리를 철저히 지키며 극우 성향을 유지해 ‘초정통파’ 성향을 갖게 된 데 비해 세파르딤은 생존을 위해 교리가 비교적 개방적으로 유화됐고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아시케나지측 랍비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인종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파르딤의 신앙심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학급을 분리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사태가 격화되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성명을 발표하고 “국가가 외부적 위기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자제력을 발휘해 달라.”고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타임은 “이스라엘 내부의 갈등은 유사 이래 어떤 때보다도 심각한 상황”이라며 “이스라엘 정부와 대법원은 율법을 지키는 극우파와 정당한 법적 논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정체성 섞인 내 삶 궤적 종교화해 주인공과 닮아”

    “정체성 섞인 내 삶 궤적 종교화해 주인공과 닮아”

    ‘현대연극의 거장’ 피터 브룩의 작품 ‘11 그리고 12’가 마침내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무대에 올랐다. 탄성만 전해지던 피터의 연극이 한국에 소개된 것은 처음이지만, 공연은 20일까지 단 5차례뿐이다. 작품의 주연배우인 마크람 J 쿠리(65)를 17일 서울 논현동 숙소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해 프랑스에서 ‘11’이 세계 초연된 뒤 전 세계를 돌며 순회공연을 갖고 있다. ‘11’은 아프리카 말리 지방의 1930년대 실화에 토대한 작품이다. 기도문을 11번 외우느냐, 12번 외우느냐를 두고 일어난 끔찍한 종교분쟁을 다뤘다. 쿠리는 당초 12번 외우는 파에 속했으나 11번 암기파와 화해하는 종교지도자 ‘티에르노 보카’ 역을 맡았다. 종교 간 화해와 깨달음을 강조하는 핵심인물이다. ●“1930년대 아프리카 종교분쟁 실화 다뤄” →피터의 명성은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지만 배우들까지는 잘 모른다. 자기 소개를 해달라. -음….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나. 태어난 곳은 팔레스타인, 자란 곳은 이스라엘이다. 1973년 영국 런던에서 연기공부를 했고, 운좋게 이곳까지 오게 됐다. 영어는 물론, 히브리어, 아랍어 등으로 연극뿐 아니라 TV, 영화 등에서 다양하게 작업해왔다. 문화에 헌신한 공을 인정받아 이스라엘에서 상과 작위도 받았다. 이스라엘이 아랍인에게 작위를 준 것은 처음이다. 짐작하겠지만 정치적으로 굉장히 어렵고 복잡한 문제였다. 팔레스타인 태생이지만 집안은 크리스천이고, 국적은 이스라엘이다. 이런 혼합적인 정체성이 다양한 분야를 헤엄쳐 나오는 데 도움을 준 것 같다. (이런 정체성 때문이었는지, 공연을 준비하면서 연출가인 피터가 그에게 요구한 것은 “연기하려 들지 말고, 평소의 당신처럼 하라.”였다고 한다.) →그런 정체성이 티에르노 역할과 잘 맞아떨어지는 듯한데, 피터와의 만남은 어떻게 이뤄졌나. -희곡 각색과 공동연출을 맡은 마리엘렌 에스티엔이 나를 좋게 본 것 같다. 2006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스라엘 시인 마하무드 다르시 연출의 ‘벽화’(Mural)란 작품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나를 본 마리엘렌이 피터에게 추천했고, 지금까지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종교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들었다. -어릴 적 이스라엘의 크리스천 스쿨을 다녔다. 일주일에 두번 반드시 미사를 보도록 했는데 강요에 의한 것이어서 반발심이 컸다. 이슬람, 유대인과 함께 생활해온 덕분에 다양한 종교와 예배를 모두 지켜볼 수 있었다. 모두들 엄격한 규율을 강조했고 저마다 자기 종교가 더 좋고 다른 종교는 나쁘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공통점은 있었다. 권력이나 정치와 밀접하다는 점이다. 이런 모습들은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데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라 생각했다. 그런 성장과정이 아마도 내 행동, 말, 외모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났을 것이라 생각한다. 피터 역시 그런 점 때문에 나를 캐스팅한 게 아닐까 싶다. 아무 생각이나 질문 없이 교리나 법률을 따르라고 하는 것, 그리고 ‘종교라는 것은 이런저런 것을 해야 한다.’는 주입은 사실 종교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 ●“종교는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이해하는 것” →당신의 정체성만큼이나 출연진의 국적도 영국, 미국, 스페인, 말리 등 다양하다. -배우들의 출신지가 다르다 보니 배우들 모두 각자 자신이 경험한 사회의 백그라운드를 끌고 들어온다. 그런 부분들을 서로 설명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고 의미 깊다. 언젠가 피터에게 “이런 걸 한번 하고 나면 일상의 작업환경으로 되돌아가기는 무척 어려울 것 같다.”고 했더니 피터는 “그냥 전달하라(pass it on).”고 하더라. 그는 자신에 대한 신격화를 무척 싫어한다. 그냥 나름의 작업방식을 전달하고 전달받기를 원한다. →연극 얘기로 돌아가자. 식민지 상황 아래서 전통과 근대의 교차지점을 말하는 장면들이 무척 인상깊었다. 티에르노가 시계를 보고 시간을 말하는 대목 등 말이다. -시계는 일종의 종교와 과학 간의 대립인데, 티에르노는 종교란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한다. 시계 얘기는 굉장히 상징적이고 관객들에게 생각하게 만드는 장치다. 내가 설명하기보다는 관객들이 직접 보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다른 종교지도자들은 식민 지배국인 프랑스에서 들어온 시계를 기괴한 물건 취급하지만, 티에르노는 아무 거리낌 없이 시계를 본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자 암쿠렐에게 신학문을 배우라고, 프랑스정부에 들어가서 일하라고, 또 그들의 장점만 따서 배우라고 말하는 이도 티에르노다.) →신은 뭐냐는 제자의 질문에 “신은 인간의 당황스러운 마음”이라고 답하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안 그래도 피터에게 대본을 직접 읽어 보라고 했다. 이해하기 어려우니 당신이 읽는 걸 들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며…. 그랬더니 피터는 몇 주든, 몇 달이든, 몇 년이든 이해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더라. 그러고 2~3주쯤 지나니 차츰 이해되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내 경험과 몸으로 받아들이게 됐다는 것이 중요하고, 피터 역시 그러기를 바랐다. 극 중에서 티에르노가 제자들에게 가르치려 한 것도 바로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이해하라는 것 아니었나. (쿠리는 이런 내용의 인터뷰를 부담스러워했다.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일까봐서였다. 그는 “내가 꼭 종교지도자 같다.”고 농담을 던지면서도 “10년 전만 해도 이런 얘기 못했을 텐데, 지금 나이에는 해도 될 것 같기도 하다.”며 웃었다.) →한국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은. -모든 인간을 공통적으로 묶어주는 매우 보편적인 얘기다. 그렇다고 심각한 내용은 아니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국적 공연팀인지라 여러 국가의 민속악기도 등장한다. 음악이 굉장히 좋다. 유머러스한 장면도 많으니 월드컵 때문에 경황 없더라도 우리 공연을 즐겨달라.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백악관 50년 출입기자 역사속으로

    백악관 50년 출입기자 역사속으로

    “백악관에는 두 부류의 기자가 존재한다. 일반 출입기자 그리고 헬렌 토머스.” 미국 조지 W 부시 정부에서 백악관 대변인을 지낸 아리 플레이셔는 지난 반세기 백악관을 취재해온 언론인 헬렌 토머스(90)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최초’ ‘유일의’ ‘최장기’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백악관을 출입한 최초의 여기자이자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1972년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중국을 찾았을 때 동행한 유일한 기자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서는 전설이라는 단어가 그를 대변했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에서부터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그를 ‘거쳐간’ 대통령이 10명이다. 세계 권력의 정점에 있다 할 미국 대통령들도 토머스의 ‘날카로운 혀’에는 당할 방법이 없었다. 2006년 부시 전 대통령과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놓고 설전을 벌인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그는 “이라크 전쟁을 벌인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등 직설적인 발언으로 부시의 얼굴을 벌겋게 만들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했을 당시에도 “허니문은 하루 정도일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이지만 그가 1942년 웨인주립대를 졸업하고 한 일은, 지금은 사라진 워싱턴데일리뉴스에서 복사와 같은 심부름하는 것이었다. 이어 다음해 UPI통신에 입사했고 연방 정부 부처, 의회 등을 취재했다. 1960년 케네디 전 대통령 당선과 함께 백악관을 담당했고 2000년 UPI가 통일교로 인수되자 ‘허스트 코포레이션’의 허스트 신문의 칼럼니스트로 자리를 옮겼다. 2008년 5월 위장 질환으로 잠시 활동을 중단했지만 같은 해 11월 백악관 브리핑룸 맨 앞줄, 가운데 자리에 있는 ‘지정석’에 복귀, 건재함을 과시했다. 2007년 브리핑룸 개축 과정에서 CNN과 FOX가 앞자리를 희망했고, 토머스는 양보할 의사를 밝혔지만 백악관 기자단은 그의 지정석을 지켜줬다. 현재 그의 자리만 유일하게 동판으로 ‘헬렌 토머스’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1920년 레바논 이민자의 딸로 태어나 미 언론의 살아 있는 전설이 된 토머스.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은 없다.”고 믿는 그는 칼럼니스트가 된 이후 더욱 주관적이고 공격적인 질문을 쏟아냈다. 지난달 27일 백악관 유대인 관련 행사에 참석해서는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을 떠나야 한다.”고 일갈했다. 그러나 이 발언 이후 결국 떠나게 된 것은 토머스 자신이 되고 말았다. 미국 내 유태인들의 거센 반발로 인해 그의 67년 기자 인생 마지막 장을 ‘설화’로 매듭짓고 말았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세계의 화약고 가자지구 실상

    ‘하늘만 열린 교도소’ ‘지구상에서 가장 큰 감옥’ 31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은 국제 구호선이 향하던 가자지구는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중동에서 현재 가장 첨예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곳이다. 이스라엘 영토 안에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으로 면적은 360㎢, 인구는 약 150만명. 2006년까지만 해도 평화의 기운이 감돌았다. 이스라엘은 2005년 가자지구 내에 유대인 정착촌을 없애고 군병력을 철수하며 팔레스타인에 온전히 땅을 돌려줬다. 화해의 표시였다. 그러나 2007년 팔레스타인 무장 정치조직 하마스가 온건파를 몰아내고 이 지역을 차지하자 상황이 급변했다. ‘이슬람 저항운동’을 뜻하는 아랍어 단어의 약칭인 하마스는 태생적으로 이스라엘과는 한 땅에서 살 수 없는 집단이다. 하마스의 강령은 팔레스타인 해방의 유일한 수단으로 ‘지하드’(성전)를 명시하고 있다. 실제로 하마스는 이스라엘 남부에 로켓 공격 등 군사도발을 일삼아 왔다. 이스라엘의 대응도 강경했다. 군사적 보복과 동시에 가자지구로 향하는 모든 통로와 물류를 봉쇄했다. 이 때문에 르몽드는 가자지구를 ‘하늘만 열린 교도소’로 표현하기도 했다. 외신들이 전하는 가자지구의 실상은 참혹하다. 도시는 온통 부서지거나 불탄 건물로 가득하고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구호시설과 학교, 병원까지 폐허로 변했다. 식량을 구할 수 없어 구호품만이 유일한 희망이지만 이스라엘은 극히 제한적인 구호만을 허용하고 있다. 그나마 하마스의 공격이나 저항이 있을 때는 이마저도 막기 일쑤다. 이스라엘 정부는 “구호품이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군수용품이나 군사시설을 짓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단체와 세계 각국에서는 생존을 위해 민간인들이 파놓은 밀수용 땅굴마저 파괴하고 의료 서비스와 식수까지 봉쇄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편 이집트는 1일 가자지구로 인도적 구호품이 전달될 수 있도록 라파 국경 통과소를 개방했다.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 있는 라파 국경 통과소는 이스라엘을 거치지 않고 가자지구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이스라엘, 유대인 촘스키 입국 불허

    이스라엘, 유대인 촘스키 입국 불허

    진보적인 유대인 지식인인 놈 촘스키(82)가 이스라엘 입국을 거부 당했다. 영국 BBC방송은 17일 촘스키 교수가 이스라엘-요르단 국경인 알렌비 다리를 통해 이스라엘 입국을 시도했으나 이스라엘 당국이 입국을 불허했다고 보도했다. 촘스키는 강연 차 요르단 서안에 있는 비르 자이트 팔레스타인 대학을 방문하기 위해 이스라엘에 입국하려고 했다. 세계적인 언어학자이자 철학자로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 재직 중인 촘스키는 유대인으로서는 드물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비판하는 등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반 이스라엘 노선을 견지해 왔다. 촘스키는 “이스라엘 출입국 당국이 정중하게 대했지만 자신의 여권에 ‘입국 거부’ 도장을 찍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들(이스라엘 당국)은 내가 말해온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내가 단지 비르 자이트 팔레스타인 대학에서만 강연을 하고 이스라엘의 대학에서는 강연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사비네 하다드 이스라엘 내무부 대변인은 “문제 해결을 위해 (출입국을 담당한) 군 관계자들과 접촉 중”이며 “요르단 서안에 한해 입국을 허가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 정부는 지난 2008년에도 유대계 미국 정치학자 노먼 핀켈슈타인 전 드폴대 교수에 대해 추방 및 10년간 입국 금지조치를 취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를 부모로 두기도 한 그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게슈타포의 방법과 비교하며 비판하면서, 팔레스타인인의 비폭력 저항을 지지해 왔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美과학자 “수명은 유전자… 건강관리 소용없다”

    美과학자 “수명은 유전자… 건강관리 소용없다”

    인간의 수명은 유전자로 결정되기 때문에 건강관리는 수명 연장에 획기적인 도움이 될 수 없다고 미국의 저명한 유전학자가 최근 주장했다. 미국 뉴욕의 알버트 아인슈타인 대학 노화연구소장 니르 바질라이 교수는 “수명은 유전자가 결정짓기 때문에 장수를 꿈꾸는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건강관리를 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영국 왕립학회에서 주장했다. 지금껏 인간의 수명은 80%가 생활습관, 20%만이 유전자로 결정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으나 바질라이 교수의 주장은 이에 반대되는 개념이라 주목된다. 바질라이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95~112세인 유대인 500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실시한 결과 이들 중 30%가 흡연자였다. 과체중이나 콜레스테롤이 높은 사람도 상당수였다. 이 결과에 대해 교수는 “장수하는 사람들은 유전적으로 프로그램화 돼 태어났기 때문에 부실한 식습관이나 흡연 등 후천적인 요인들로부터 건강을 보호해 수명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반면 장수 유전자를 타고 나지 못한 사람들은 치밀하게 건강관리를 하더라도 수명의 몇 년은 늘일 수 있지만 20~30년 이상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장수 비결을 찾아온 바질라이 교수는 올해 초 평균연령이 100세인 사람들의 DNA염기서열을 분석해 3개의 특정한 유전자가 과잉 발현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연구진은 발견된 일명 ‘장수 유전자’ 3개의 활동을 모방할 수 있는 알약을 만들어 3년 내에 인간이 약을 복용하는 것만으로 신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주장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이란 핵시설 단독공격…이스라엘 내부 논란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개발 프로그램 진전을 막기 위해 핵 시설에 대한 군사공격을 감행할 경우 사전에 미국의 승인이 필요한가를 놓고 내부적으로 논란을 벌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1일자 인터넷판에서 보도했다. 이스라엘 보안당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이란에 대한 제재가 지연되고 있고 이런 와중에 이란은 계속해서 핵 능력을 개발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특히 지난 주말 이란의 핵 개발을 저지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의 비밀 메모가 보도되자 이스라엘은 이란에 대한 군사적 옵션에 부정적인 미국내 여론을 주목하고 있다. 또한 이란의 핵개발 능력에 대한 엇갈린 평가도 걱정이다. 이스라엘 보안당국은 이란이 마음만 먹으면 1년 내에 미사일에 탑재 가능한 핵탄두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이란이 실제로 핵무기를 개발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스라엘 보안당국은 필요하다면 미국의 사전 승인 없이도 이란의 핵시설에 대한 군사공격을 감행할 수 있지만, 이럴 경우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이란의 반격보다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주둔 중인 미군에 대한 공격 강화로 미군 희생자가 늘거나 이란이 원유수출을 중단하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미국과 이스라엘간의 관계는 최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오바마 행정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동예루살렘내 유대인 정착촌 건설 강행 입장을 밝히면서 소원해진 상태다. 미국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스라엘 측에 이란에 대한 일방적인 군사공격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달했지만, 이스라엘이 워싱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군사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지난 1981년 미국에 사전 통보 없이 이라크 오시락에 있는 핵 관련 시설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지난 2007년 시리아의 핵 시설에 대한 공격시에는 미국에 사전 통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에후드 바락 이스라엘 국방장관도 이란에 대한 군사공격을 둘러싸고 이스라엘 정부 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바 있다. kmkim@seoul.co.kr
  • “마라톤은 함께 아껴주고 배려하는 운동”

    “마라톤은 함께 아껴주고 배려하는 운동”

    “…35㎞를 지나면서부터 눈이 자꾸 감긴다. 반야심경을 소리내 읊었다. ‘관자재 보살’. 신기하게도 다리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40㎞ 지나니 이젠 1㎞ 정도는 걸어야지 했다. 그런데 옆에서 구령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하나’ 하면 스무명이 ‘둘’ 이라고 외쳤다. 무리에 합류해 구호를 외쳤다. 힘이 났다. 다시 뛸 수 있었다….” ●“머리는 자유롭게… 다리는 불편하게” 권오용(55) SK그룹 브랜드관리부문장(부사장)이 최근 부서 공유 미니홈피에 올린 글이다. 지난달 열린 동아마라톤대회 완주기다. 2001년부터 하프코스를 뛴 이래 처음으로 42.195㎞의 대장정에 성공했다. 4시간30여분만에 골인점에 들어왔다. 권 부사장은 16일 “참가자 2만 3000여명 가운데 완주한 사람은 1만 7000여명, 그중 1만 1000번째 들어왔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골인점에서 ‘마라톤은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15㎞쯤부터 찾아온 고비, 곁에서 함께 뛰는 사람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을 맞추면서 뛰었다. 지쳐서 걸을라치면 무리지어 달리는 사람들 틈에 섞여 구호도 함께 외쳤다. 권 부사장이 마라톤 완주에 도전한 것은 새해들어 받은 지인의 편지 한 통 때문이다. 그 지인은 ‘머리는 자유롭게 하고 다리는 불편하게 하자.’는 유대인들의 습관을 추천했다. 안 그래도 ‘올해는 어떻게 살까.’하고 궁리하던 차였다. 걱정을 많이 해 머리는 불편해지고 문 밖만 나서면 승용차를 타고 다녀 다리는 점점 자유로워지는 생활. 이젠 거꾸로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동안 1년에 두세차례씩 하프대회에 참가했지만 풀코스를 완주하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각오를 새롭게 다지고 난 뒤 집 근처 양재천을 뛰며 완주의 꿈을 키웠다. 대회 한달 전부터는 저녁 약속도 잡지 않고 일주일에 두번씩 10㎞를 뛰었다. 이런 그를 두고 한 직장 후배는 “권 부사장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한계, 이른바 수펙스(Supex;슈퍼 액설런트)를 추구하는 스타일”이라고 귀띔했다. ●올 가을 다시 완주기 쓸 생각 권 부사장은 올 가을쯤 또다시 완주기를 쓸 작정이다. 1980년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래 주로 홍보 분야에서 일해왔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기업과 언론환경 사이에서 교두보 역할을 잘하려면 건강도 건강이지만 ‘여럿이 함께’ 정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권 부사장. 완주기 마지막에 담긴 ‘마라톤은 함께 아껴주고 배려하는 운동’이라는 글이 그의 마라톤 예찬론을 대신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사이즈의 문제’ & ‘미 투’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사이즈의 문제’ & ‘미 투’

    영화 ‘사이즈의 문제’ 주인공 헤르즐은 서른 중반의 뚱뚱한 남자다. 어릴 때부터 살찐 몸이 무척 싫었으나, 타고난 음식사랑 탓에 그의 몸은 점점 불어 간다. 다이어트 선생과 직장 상사가 한꺼번에 쓴소리를 늘어놓은 날, 그는 두 곳 모두에 아듀를 고한다. 궁여지책으로 일식당의 보조 자리를 구한 그는 TV에서 스모 시합을 본 뒤 덩치 큰 사람을 위한 낯선 세계에서 행복을 찾기로 결심한다. 영화 ‘미 투’의 주인공 다니엘은 다운증후군에 걸린 서른 중반의 남자다. 부모의 가르침을 따라 노력을 기울인 끝에 대학을 졸업한 그는 사회복지센터에서 일하게 된다. 환대를 받으며 출근한 첫날, 그는 직장동료인 라우라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이후 그녀도 그를 살갑게 대하지만, 주변사람들은 두 사람의 관계를 유별난 시선으로 바라본다. 각각 이스라엘과 스페인에서 방문한 ‘사이즈의 문제’와 ‘미 투’는 대중성이 높은 영화이면서도 일회성 오락거리를 넘어 현실에서 마주칠 질문을 꼼꼼히 파고든 점이 이채롭다. 게다가 편견에 맞선 인간이라는 주제가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생각해서일까, 두 영화의 연출에는 공히 두 사람씩-전자에는 샤론 메이몬과 에레즈 다드모르가, 후자에는 안토니오 나아로와 알바로 파스토르-참여해 열의를 나눴다. 성인 관객은 대개 답을 지닌 채 영화를 본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지만, 뚱뚱한 사람에겐 절대 호감을 느낄 수 없다.’, ‘장애인을 차별하면 안 되지만, 장애인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기란 어렵다.’ 그런 사람들은 ‘사이즈의 문제’와 ‘미 투’를 보면서 자기 머리와 마음이 따로 노는 걸 경험할 수밖에 없다. 주어진 답에 매달리는 사람이 문제를 받아들고 헷갈리는 건 당연하다. ‘사이즈의 문제’는 인종차별의 역사를 겪은 유대인이 다른 인종을 차별하는 현장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미 투’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자세를 견지하는 서구사회가 차별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사실, 물질적 풍요에 길들여진 헤르즐과 보통사람처럼 되고자 지식을 연마한 다니엘은 욕망을 부추기는 사회의 희생양이다. 현대의 신인 자본주의는 끝없이 욕망을 창출하고, 인간은 그걸 따르다 곤경에 처하니, 비극이 따로 없다. 삶은 문제의 연속이다. 그러나 살면서 모든 문제를 풀기란 불가능하고, 때때로 답이 필요없는 문제가 나오기 마련이며, 길이 여러 갈래인 것처럼 답도 하나가 아니다. 왜 꼭 답이 있어야 하냐고, 왜 언제나 답이 하나여야 하냐고 질문하는 두 영화 또한 관객에게 답을 제시할 리 없다. 영화감독 얀 트로엘은 “사는 동안 항상 무언가를 더 알고 싶어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답을 얻기보다 호기심을 갖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편견은 하나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 뿐, 그 자체로 나쁜 건 아니다. 나쁜 건, 다수가 지지하는 잘못된 생각이다. 그 생각만이 진실이라고 믿은 결과가 바로 편견이기 때문이다. ‘사이즈의 문제’와 ‘미 투’는 편견 앞에서 자신의 신념을 떳떳하게 표현한 인간의 이야기다. 그들은 말만 했던 게 아니라 행동으로 옮겼고, 그것으로 진실 하나를 세상에 더했다. 그러니까 세상에는 인간의 수만큼 진실이 존재하는 것이며,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기까지 갈 길은 멀다. 두 작품 모두 15일 개봉. 영화평론가
  • 감귤 통해 만나는 세계역사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는 ‘대학나무’라 불리는 유실수들이 적지 않았다. 나무 한 그루만 있으면 자식 대학 공부 시킬 때 돈 걱정은 덜해도 된다는 뜻일 터다. 전남 구례의 산수유, 경남 남해의 유자가 그랬다. 제주 감귤 또한 빠지지 않는 ‘대학나무’의 하나. 이처럼 나무가 생산하는 열매는 단순한 농산물을 넘어 사회적, 역사적 무게를 갖기도 한다. 당대 시대상을 반영하는 거울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감귤이야기’(피에르 라즐로 지음, 남기원 옮김, 시공사 펴냄)는 제주 감귤처럼 지중해 시트론,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 중국 유자, 인도 라임 등 감귤류 과일들이 갖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이면을 추적한다. 아시아에서 자생하던 감귤류가 대륙 서쪽으로 조금씩 퍼져 먼저 중동과 유럽에서 자리잡았고, 곧 바다 건너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로도 퍼져 나갔다. 오늘날엔 주스와 잼, 과자 등으로 형태를 바꿔 전 세계에 배달된다. 전 세계로 퍼져 나간 감귤류를 추적하는 여정은 곧 여러 민족과 나라, 대륙이 어떻게 교류와 전쟁을 반복하며 긴밀한 연결고리를 유지했는지, 서로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보는 과정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전쟁 이후 시트론은 인도와 그리스를 거쳐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건너갔고, 유대인들은 이 황금빛 과일을 유대교의 상징으로 삼았다. 기독교를 받아들인 로마인들은 시트론을 지중해 연안에,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아랍인들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지역에 감귤 나무를 심었다. 유럽에 뿌리내린 감귤류는 아무나 맛볼 수 없는 과일이었던 까닭에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자리잡는다.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 이름이 ‘오랑제리’인 것도, 귀족과의 교제를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꾸는 ‘오렌지 우먼’이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신대륙 개척 바람이 불면서 감귤류 나무도 대서양을 건넜다. 광활한 땅과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미 대륙에서 감귤류 재배는 대규모 산업이 됐고, 권력의 상징이던 감귤은 마침내 대중의 곁으로 바짝 다가서게 된다. 1만 5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6일 TV 하이라이트]

    ●러브 인 아시아(KBS1 오후 7시30분) 한국어와 스페인어. 항상 두 나라 언어가 들리는 형균이네 집. 루셀리와 형균이의 고향, 콜롬비아를 기억하기 위함이다. 10년이 넘도록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고향. 그래도 형균이는 부모님의 노력을 알기에 불평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빠와 엄마를 기쁘게 할 줄 아는 기특한 아들 형균. 웃음이 넘치는 형균이네 가족을 만나본다. ●1대 100(KBS2 오후 8시50분) 결혼과 출산의 공백기를 마치고 화려하게 활동을 재개한 이승연. 슈퍼맘이 되어 돌아온 그녀가 도전한다. 국내 최장수 그룹인 ‘봄여름가을겨울’의 드러머로 알려진 가수 전태관이 또 다른 1인으로 도전한다. 또한 전기의 날을 맞이해 전기를 아끼고 사랑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의 발전인들이 100인으로 출연한다. ●동이(MBC 오후 9시45분) 허름한 창고 안에서 정신을 차린 동이. 옆에는 편경장인이 죽어 있다. 경수소에 신고해 포졸과 다시 현장을 살펴보지만, 편경장인의 시체는 깨끗하게 치워져 있다. 한편 음변의 원인이 장 상궁 때문이라는 풍문에 백성들은 동요하고, 오태석을 비롯한 남인세력은 긴장한다. 숙종은 신분을 숨긴 채 수행을 나오고 동이와 마주치게 되는데….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6시25분) 유치원을 거부하는 7살, 경문이. 유치원은 안 가고, 종일 집안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사고 연발. 뭐든지 내맘대로 휘두르는 무서운 일곱 살. 8개월째 유치원을 안 가는 아이 때문에 엄마는 애달프고 속이 탄다. 유치원이라면 자지러지는 경문이를 웃으며 등원시키는 특별 솔루션을 공개한다. ●세계의 교육현장(EBS 밤 12시) 유대인들은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평생 탈무드를 공부한다. 쉬지도 않고 지독하게 공부한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1대1로 탈무드 수업을 하면서 정서적 교감을 하기 때문에 자녀들이 탈선, 가출, 약물 중독에 빠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인격을 변화시키는 교육, 탈무드의 숨겨진 비밀을 파헤쳐 본다. ●멜로다큐 가족(OBS 오후 11시) 64세 아빠와 6살 아들의 유쾌한 이야기. 전라남도 완도의 아름다운 작은 섬 금일도의 닭살 부자(父子). 아버지 성룡씨와 아들 이랑이는 금일도의 명물이다. 노래를 좋아하고 가수가 꿈이었던 성룡씨. 이를 빼닮아 이랑이도 어느 날 트로트를 구성지게 부르는데…. 금일도의 명물 이랑이와 그 가족을 만나본다.
  • 통쾌한 승리? 왕따의 시작!

    통쾌한 승리? 왕따의 시작!

    첫날 오전 8시45분, 세 개의 이스라엘 전투기 편대는 시나이 반도와 수에즈에 있는 이집트의 모든 공군 기지를 기습, 쑥대밭으로 만든다. 400여대의 전투기가 폭격되며 이집트 공군력은 궤멸된다. 둘째 날 오전 1시, 요르단령인 동예루살렘으로 이스라엘 공수부대원들이 투입된다. 요르단 후세인왕은 전의를 상실한다. 오전 5시45분 시리아는 뒤늦게 골란고원 국경 즈음에서 이스라엘과 교전을 시작했지만 곧바로 패퇴당한다. 셋째 날, 새벽녘 이집트군의 3분의1만이 시나이 반도를 탈출, 수에즈 운하를 건너 목숨을 건진다. 이스라엘은 저녁 무렵 요르단령이었던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을 완전히 점령한다. 요르단은 항복과 마찬가지의 휴전을 요청한다. 넷째 날, 이집트가 손을 들었고, 다섯째 날 시리아의 골란고원 점령을 마쳤고, 여섯째 날 시리아마저 백기를 흔든다. 태초에 ‘이 전쟁’이 있었다. 1967년 6월5~10일, 지중해 동부를 접한 중동의 일부 지역에서 단 6일 동안 벌어진 ‘이 전쟁’은 반 세기 넘게 자행되고 있는 테러와 학살, 파괴와 통곡 등 반문명적 혼란과 악순환을 불러일으킨 결정적 첫걸음이었다. 또한 중동 지역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거듭되는 반(反) 미국, 반 이슬람 등의 갈등 한가운데 있도록 만들었다. 이스라엘의 승리였다. 근대 세계 전쟁 역사상 전례를 찾기 어려운 대승(大勝)이자 쾌승(快勝)을 거뒀을뿐더러 이스라엘로서는 아랍 국가들 틈바구니의 위태로움 속에서 근대 국가 성립의 확실한 토대를 닦을 수 있었다. 3차 중동전쟁인 이 전쟁을 이스라엘과 서방 사가(史家)들은 ‘6일 전쟁’이라 불렀고, 아랍에서는 ‘6월 전쟁’이라 불렀다. ‘6일 전쟁’은 속전속결 전투의 전형이었다. 정보기관인 모사드의 첩보와 미국, 유럽의 군사지원을 바탕으로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쿠웨이트, 이라크 등 주변 아랍 연합에 기습 공격을 가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서안 지구, 동예루살렘, 시나이 반도, 골란고원 등을 차례로 점령했다. 이스라엘이 경제, 외교, 군사 등 모든 면에서 중동의 새로운 패자(覇者)임을 만방에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결코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6일 전쟁’의 승리는 중동 지역에 몰아친 비극과 증오의 시작이었고, 고통과 학살은 쉼없이 확대 재생산됐다. 영국 BBC의 중동 통신원을 지낸 제러미 보엔은 ‘6일 전쟁’(김혜성 옮김, 플래닛미디어 펴냄)을 통해 이 전쟁이 치러진 6일 동안을 정확하고 치밀한 시간, 장소, 인물별 묘사로 재구성한다. 기자 특유의 방대한 인터뷰 취재 자료를 바탕으로 마치 한 걸음 곁에서 전쟁의 모든 상황을 지켜본 듯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풀어나간다. 그러면서도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침 없는 객관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미덕을 보여준다. 저자 보엔은 한 편의 전투 소설을 읽는 듯 긴장감을 끌어올리다가도 어느새 냉엄한 현실 속의 역사 인식을 깨우쳐 주곤 한다. 이스라엘은 이미 1948년 영국 등 UN의 지지를 등에 업고서 건국을 선포하며 아랍 국가들과 1차 중동전쟁을 치렀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 78%를 점령했고, 팔레스타인 사람 80만명은 난민이 됐다. 이후 1956년 이집트와 대결하는 2차 중동 전쟁을 거치고 10년 뒤 치른 ‘6일 전쟁’은 이스라엘 입장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전쟁이었다. 하지만 지나친 자신감은 오만함으로 바뀌었고, 점령 지역을 돌려주라는 유엔의 권고 사항마저 무시하고, 팔레스타인과 평화 협상을 진행했다는 이유로 자국 총리(이츠하크 라빈)를 암살했을 정도의 폭력이 일상화된 나라로 바뀌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기도 하다. 요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유대인 정착촌 건설도 ‘6일 전쟁’ 이후에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테러와 분쟁, 갈등의 최전선에 일반 유대인들을 보낸 뒤, 그들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을 추가로 배치하는 식이다. 과거 역사 속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라는 면죄부를 앞세워 폭력과 광기를 무시로 자행하며 100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역사의 또 다른 피해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이냐, 아랍이냐 하는 정치적 호불호, 혹은 종교적, 이념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에 대한 존중과 경외, 평화의 선순환 체제 마련이 절실한 이유다. “만약 우리가 생명을 위해 싸웠다면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통곡의 벽을 위해 싸웠다면 그것은 새끼손가락만큼의 가치도 없다.” 통곡의 벽은 이스라엘이 6일 전쟁을 통해 점령한 예루살렘 구시가지(동예루살렘)에 있으며 유대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일 전쟁 중에 아들을 잃은 한 이스라엘 어머니가 외치는 이 절규가 전쟁이 품고 있는 반 생명적 속성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 준다. 2만 5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이슈 Q&A] 미국의 이스라엘 편애 왜

    동예루살렘 정착촌 건설 문제로 냉각된 미국과 이스라엘의 외교적 갈등이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양국의 기본적인 동맹 관계는 여전히 강고하다. ‘미국의 이스라엘 편애가 중동 갈등을 부른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이 분야 전문가인 노먼 핀켈슈타인 박사(‘홀로코스트 산업’ 저자), 스티븐 준스 샌프란시스코 대학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로부터 미국의 대이스라엘 정책을 들어봤다. Q: 미국은 정말로 이스라엘만 편애하나. 핀켈슈타인: 유엔에서 어떤 표결을 하건 양상은 똑같다. 국제사회는 1967년 당시 국경선에 기반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지지하고 미국과 이스라엘은 반대한다. 미국은 왜 그럴까. 내가 보기엔 이스라엘측 로비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준스: 미국이 이스라엘 편향이라는 건 분명하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이스라엘은 성경의 예언이 실현된 것’으로 간주하고 ‘예수가 예루살렘에 재림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군사점령을 계속해야 한다.’고 믿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미국에서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반아랍, 반이슬람 정서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Q: 미국이 이스라엘에 수십억달러씩 군사지원 하는 이유는. 서정민(이하 서): 1979년 이란혁명이 전환점이다. 그 전까지는 이란이 오늘날 이스라엘같은 위치였다. 이란혁명 이후 ‘이슬람은 언제든 동맹이 깨질 수 있다.’고 인식하게 되면서 이스라엘이 ‘심리적 동맹관계’가 됐다. 준스: 미국의 한 전직 국무장관은 이스라엘을 ‘침몰하지 않는 미국의 항공모함’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에 막대한 미국산 무기를 제공함으로써 미 군수산업에 보이지 않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효과도 있다. Q: 이스라엘이 국제사회 비판에도 정착촌 건설 강행하는 이유는. 핀켈슈타인: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을 제재하려고 할 때마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방어해줬다. 도둑질하다 붙잡혀도 아무 처벌도 받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도둑질을 그만두겠는가. 준스: 미국이 보호해주니까 이스라엘이 그동안 불법행위를 계속할 수 있었다. 최근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이스라엘을 비판한다고는 하지만, 미국은 지금도 이스라엘에 무기 등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Q: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 갈등 원인과 전망은. 서: 그동안 표현을 제대로 못했다 뿐이지 많은 미국 정치인들이 이스라엘의 오만함과 불법행위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오바마 행정부가 조심스럽지만 할 말은 하는 선례를 만들고 있다. 근본적인 변화까지 기대하긴 힘들겠지만 양국 관계에 조그만 단초가 될 것이다. 핀켈슈타인: 실상과 관계없는 겉모습에 현혹되면 안된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국내유권자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강력한 지도자인지 보여주려고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이스라엘을 방문한 동안에 정착촌 건설계획을 발표하는 ‘쇼’를 했고, 그 결과 역풍을 맞고 있을 뿐이다. Q: 왜 대다수 미국인들이 이스라엘을 우호적으로, 팔레스타인은 부정적으로 인식할까. 서: 미국내 중동 전문가나 언론인, 학자 가운데 상당수가 자금지원을 받거나 그 자신이 유대인이다. 반세기 넘게 이스라엘에 편향된 담론들이 지식 생태계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 준스: 팔레스타인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그 자체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점령정책을 반대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책을 살짝 비판하기만 해도 반유대주의자라며 마녀사냥을 당할 수 있다. 그럼에도 유대계를 포함해 많은 미국인들 사이에서 점차 이스라엘은 지지하지만 점령은 반대한다는 입장이 확산되고 있다. Q: 미국은 앞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보나. 준스: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자극하고 도발함으로써 대외적으로 자신들의 점령과 단속을 정당화시켜 왔다. 미국은 인권과 국제법을 수호하기 위해 더 강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핀켈슈타인: 지난 2004년 국제사법재판소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영토인 동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정착촌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못박았다.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의 악명높은 국제법 위반행위를 제재해야 한다. 미국 주류언론도 이스라엘에 편향된 보도태도를 바꿔야 한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독재자’ 히틀러의 가장 가까운 후손 찾아

    유대인 대학살을 저지른 역사상 악명 높은 인물 아돌프 히틀러의 생존한 가장 가까운 후손의 존재와 근황이 알려져 눈길을 모으고 있다. 영국 대중지 더 선은 벨기에 DNA 조사관의 도움을 받아 오스트리아 북부 외곽의 외딴 마을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제라드 코펜스테이너(45)를 최근 찾아냈다. 코펜스테이너의 할머니는 히틀러의 첫째 조카로, 그는 히틀러의 5촌 조카다. 생전 히틀러는 자식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코펜스테이너의 가족이 생존한 히틀러의 가장 가까운 친척으로 추정된다. 제라드의 아버지는 히틀러가 베를린 벙커에서 자살을 한 1945년 당시 6세였다. 더 선에 따르면 코펜스테이너는 히틀러의 혈육이란 사실을 이웃에게 숨긴 채 오스트리아와 체코의 국경지대에서 소목장을 운영해 왔다. 코펜스테이너는 “어렸을 때부터 독재자 히틀러의 친척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녔다.”면서 “히틀러의 그림자는 고통스러운 부담감이었다.”고 토로했다. 아들과 딸 한 명씩을 둔 코펜스테이너는 “히틀러의 혈육이라는 저주는 나의 생에서 끝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의 부인 리네이트(46) 역시 “남편이 너무 큰 고통을 받았다. 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아니겠는가.”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편 히틀러의 이복형 알로이스 히틀러 주니어의 손자 3명인 알렉스(57), 루이스(55), 브라이언(41)이 미국 롱아일랜드 주 뉴욕에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히틀러 아버지를 같은 뿌리로 하는 마지막 사람들로, ‘히틀러의 핏줄이 더 이상 세상에 나오지 말아야 한다.’며 결혼하지 않기로 합의해 자식이 없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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