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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든’ 아버지 유승민에게 유담이 보낸 손편지 “딸임이 자랑스럽다”

    ‘힘든’ 아버지 유승민에게 유담이 보낸 손편지 “딸임이 자랑스럽다”

    바른정당 소속의원들이 집단 탈당을 밝힌 2일,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의 딸 유담씨가 손편지를 통해 유 후보를 응원했다. 유 후보 측은 이날 SNS를 통해 유담씨의 편지를 공개했다.편지에서 유담씨는 “‘힘들어도 외로워도 아빠니까 괜찮아’라고 저의 어깨를 다독거려주시는 저의 아버지는 유승민”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유담씨는 “국민에게 희망을 줄수 있는 것이 정치라며 저 유담의 아버지이기보다 대한민국의 아들이자 아버지가 되시길 바라는 그 분이 저의 아버지, 유승민”이라며 “항상 정의롭고 따뜻한 대한민국을 꿈꾸며 오직 나라와 국민만을 생각하시는 바보같은 아버지”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 저는 당당한 유승민의 딸임이 자랑스럽다”며 “나의 아버지가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버지, 당신을 응원합니다. 기호 4번 유승민을 응원합니다”라고 글을 마쳤다. 2일 오전 바른정당 의원 10여명은 기자회견을 열고 바른정당 탈당과 자유한국당 입당 의사를 밝혔다. 이와 관련해 유 후보는 같은 날 오후 열린 마지막 TV 토론회에서 “쉽지 않은 것은 처음부터 잘 알았다. 참 힘들고 어렵고 외롭지만 저는 실망하지 않는다”며 “이젠 정말 따뜻하고 깨끗한 정의로운 보수, 개혁 보수가 나타나야 한다. 저는 이순신 장군을 생각한다.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남았다.’ 많은 국민들이 지켜보고 계시고 국민들이 손잡아주시면 제가 이 개혁 보수의 길을 계속 가보고 싶다. 꼭 부탁드린다”고 국민들을 향해 지지를 호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딸과 함께 대구 찾은 유승민 “홍준표 너무 부끄러운 후보”

    딸과 함께 대구 찾은 유승민 “홍준표 너무 부끄러운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가 30일 이틀째 보수 진영의 텃밭인 영남 지역을 다니면서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유 후보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를 겨냥해 “결격 사유가 너무 많은 후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전날 오전 경남 사천에서 ‘2박3일’의 지방 유세 일정을 시작한 유 후보는 진주·창원·부산을 차례로 돌아보고 이날 대구를 거쳐 지방 순회 3일째인 다음달 1일 제주에 안착한다. 유 후보는 이날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경기를 관람하기 전 기자들에게 “영남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보수 유권자들이 이제는 정말 사람을 제대로 가려주셔야 된다”면서 “홍 후보는 결격 사유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홍 후보로는 도저히 보수의 품격을 유지할 수도 없고 부끄러워서 보수 대표라고 내놓을 수도 없다는 점을 유권자들이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 후보는 이날 그의 딸 유담(23)씨와 함께 야구 경기장을 찾았다. 야구 경기장을 방문하기 전 유 후보는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영화 및 문화 정책’ 간담회에서 자신의 정책 구상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같은 일이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에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유 후보는 “대통령이 된 사람이 권력의 칼자루를 가지고 문화·예술, 언론, 검찰을 조정하고 지배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진짜 잘못된 것”이라면서 “지금은 블랙리스트만 가지고 떠들지만, 옛날에 노무현 정부 때 우파들은 얼마나 좌파의 문화계 지배에 대해 원성과 비난이 많았는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블랙리스트 사건은) 정부 예산을 가지고 영향을 미치게 한다든지, 정부의 대기업 팔 비틀기, 대기업이 콘텐츠를 만들거나 문화·예술 활동을 할 때 정부가 입김을 행사한다든지 등이 경로로 발생한다”면서 “제가 대통령이 되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유 후보는 또 “문화·예술 산업을 단순히 여가 산업이 아니라 국가의 핵심 전략 차원에서 접근해 4차 산업혁명의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면서 “문화·예술을 권력의 도구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하고 막겠다”고 공약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언론 인터뷰 발언으로 촉발된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비용 논란과 관련해 유 후보는 “(한·미) 양국 간 합의한 대로 하는 것”이라면서 한·미 합의대로 미국 측이 사드 운용·유지 비용을 부담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유담 vs 안설희’ 딸들의 선거전...이들 프로필 비교해보니

    ‘유담 vs 안설희’ 딸들의 선거전...이들 프로필 비교해보니

    30일 아버지의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바른정당 유승민 대선후보의 딸 유담(왼쪽)씨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의 딸 안설희씨. 안설희씨는 30일 오전 광주 서구 풍암생활체육공원에서 열린 광주매일신문 주최 ‘시도·도민 가족사랑 건강 걷기대회’에서 걷기대회에 참석했다. 유담씨는 같은날 오후 대구 수성구 삼성라이온즈파크를 찾아 삼성과 SK의 경기를 관람했다. 1994년생인 유담은 “제가 아는 아버지는 매우 정의롭고 정직하고 또 현 시대에 필요한 근본적 개혁을 단행할 능력이 있는 분이시다”라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 꼭 믿어주시고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 감사하다”며 거듭 지지를 호소했다. 유승민 후보 측은 “딸 유담씨의 성격이 좋아서 어른들께 깍듯하고 바르다”고 말하기도 했다. 유담씨는 또렷한 이목구비와 인형 같은 미모를 자랑하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유담씨는 현재 동국대학교 법학과에 재학 중이며 성적도 우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유승민 후보가 신고한 재산신고서 등에 따르면 유담씨의 재산은 약 2억원 정도다.유담씨는 예금 1억 7000만원과 보험 1600만원 상당의 재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989년 생으로 알려진 안설희 씨도 유세 일정을 소화하기도 했다. 안철수 후보는 과거 SBS ‘힐링캠프’에서 ‘딸도 공부를 잘 하느냐’라는 질문에 안설희 씨의 얘기를 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딸이 대학에서 화학과 수학을 이중 전공하고 있다”고 답했다. 안철수 후보는 외동딸 안설희에 대해 “보물 1호”이라며 “안설희는 힘의 원천”이라고 말해 딸 안설희 씨에 대한 사랑을 내비쳤다. 안설희씨의 미모는 어머니 김미경 교수를 많이 닮은 것으로 회자되고 있다. 안설희 씨는 서울 송파구 소재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재학 중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미국에서 학업을 이어갔고 스탠퍼드 대학 박사과정 조교로 재직 중이며 현재는 휴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설희 씨의 재산이 부동산, 주식 없이 예금만 1억여 원이고 현재 가치 2만 달러 상당의 2013년식 차량 한 대가 있다고 후보측이 밝힌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트와이스 변신한 유담, 친오빠와 “아빠 사랑해요” (영상)

    트와이스 변신한 유담, 친오빠와 “아빠 사랑해요” (영상)

    바른정당 유승민 대선후보의 아들 훈동(35)씨와 딸 담(23)씨가 걸그룹 트와이스의 노래 ‘치얼업’ 멜로디에 맞춰 율동을 추는 모습을 공개했다.28일 유승민 후보의 공식 유튜브채널에 올라온 이 영상에서 남매는 노래를 부르며 기호 4번을 외쳤다. 노래가 끝난 뒤 “아빠 사랑해요”라며 ‘손가락 하트’를 그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네티즌들은 “훈동씨 귀엽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 가족애가 두터워보여서 보기 좋다”, “처남 반가워요”, “하나도 안 닮았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유담씨는 지난해 총선에서 아버지를 돕기 위해 유세에 나섰다가 뛰어난 미모로 주목을 받았다. 앞서 26일에는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 앞 유세 현장에서 직접 마이크를 잡고 짧은 연설을 하기도 했다. 유담씨는 “제가 아는 아버지는 매우 정의로운 분이다. 시대가 필요로 하는 근본적인 개혁을 단행할 능력있는 아버지를 믿어달라”고 똑부러지게 말했다. 유승민 후보는 딸을 바라보며 연신 ‘딸바보’ 미소를 지었다.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유담 “제 아버지는..” 똑부러진 목소리에 유승민 ‘딸바보’ 미소 (영상)

    유담 “제 아버지는..” 똑부러진 목소리에 유승민 ‘딸바보’ 미소 (영상)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의 딸 유담 씨가 26일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 앞 유세 현장에서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유담씨는 직접 마이크를 잡고 짧은 연설을 하기도 했다. 유담씨는 “제가 아는 아버지는 매우 정의로운 분이다. 시대가 필요로 하는 근본적인 개혁을 단행할 능력있는 아버지를 믿어달라”고 똑부러지게 말했다. 유승민 후보는 딸을 바라보며 연신 ‘딸바보’ 미소를 지었다. 현재 동국대학교 법학과에 재학 중인 유담씨는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아버지 지원에 나섰다. 이날도 선거운동원 복장으로 갈아입고 연신 기호 4번을 외치면서 시민들의 요청에 함께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이를 접한 네티즌들은 “미모에 목소리까지 좋다”, “조곤조곤 말 참 잘한다. 아나운서같다”, “유승민 완전 딸 바보 미소.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등의 반응을 보였다.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유승민 후보의 딸 유담씨 지원유세 나서…“4번 찍어주세요”

    유승민 후보의 딸 유담씨 지원유세 나서…“4번 찍어주세요”

    22일 제19대 대선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뒤 첫 주말을 맞아 각당 후보들은 유권자 표심 잡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이날 영남권 표심 잡기에 나섰다. 연예인 못지 않은 외모로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유 후보의 딸 유담씨도 이날 유 후보 유세에 함께 했다. 유담씨는 이날 오후 대구 동성로에서 열린 유 후보 유세에 참가해 지지를 호소했다. 유담씨는 유 후보의 ‘기호 4번’이 적힌 모자를 쓰고 바른정당의 파란색 상의를 입고 유세 현장에 나왔다. 유담씨는 시민들의 요청에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등 적극적인 유세를 벌였다. 당초 바른정당은 유담씨가 대학 중간고사를 마치는 오는 27일부터 지원유세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유담씨는 주말을 맞아 계획보다 앞서 아빠를 지원하기 위해 유세 현장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유담씨는 이미 지난해 4·13 총선 및 지난 1월 유승민 후보의 대선 출정식 등에 모습을 나타내 미모로 화제를 모았다. 유 후보는 ‘국민 장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면서 2030 남성층의 지지를 받았다. 유 후보는 지난 14일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자신을 국민 장인이라고 소개하며 “걔(유담)는 남자친구가 없고요”라고 말해 웃음을 주기도 했다. 유담씨는 동국대 법학과에 다니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승민, 영남권 표심 잡기…“역전 만루 홈런 치겠다”

    유승민, 영남권 표심 잡기…“역전 만루 홈런 치겠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가 22일 영남권 표심 잡기에 나섰다. 유 후보는 자신의 지역적 기반이자 보수 ‘텃밭’인 영남권의 민심부터 얻어야 지지율 반등을 꾀하고 ‘당내 흔들기’도 잠재울 수 있다. 유 후보는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울산과 경주, 경산, 대구 등 4개 도시를 찾았다. 파란색 당 점퍼에 운동화를 신은 채 아침에는 울산 남구 삼산동 롯데백화점 앞에서, 저녁에는 대구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에서 거리유세를 펼치며 지지를 호소했다. 두 곳 모두 지역 최대의 번화가로 꼽히는 곳이다. 이날 선거운동의 절정은 약 3000명(바른정당 추산)이 모인 가운데 진행된 동성로 유세였다. 이 유세에는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은 딸 유담 씨도 동행했다. 유세차에 오르자마자 “대구의 아들 유승민입니다”라고 인사한 유 후보는 “대구 어르신들과 선비님들, 젊은이들의 기운을 받아 이 대선판을 뒤집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면서 역전극을 다짐했다. 몰린 인파에 고무된 표정의 그는 “여론조사가 반기문, 황교안, 안희정, 이재명, 안철수, 문재인 이렇게 널뛰기했는데 마지막 (주인공)은 저 유승민”이라면서 “야구는 9회 말 2아웃부터인 만큼 저도 역전 만루 홈런을 꼭 치겠다”고 약속했다. 유 후보는 이날 유세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다는 ‘배신자 프레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보수 후보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한 몸짓을 보였다. 유 후보는 동성로 유세에서 “우리 대구는 그동안 너무 아팠고, 저도 아팠다”면서 “이제 대통령 탄핵은 끝났고 이 자리에서 대구 시민 여러분이 대구의 미래를 결정해달라”고 호소했다. 앞선 경산 중앙시장 유세에서도 “많은 대구·경북 시·도민께서 탄핵 때문에 저를 원망하는데 저는 권력의 서슬이 시퍼럴 때도 아닌 건 아니라고 이야기했을 뿐”이라면서 “여러분에게 부끄러운 일을 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항변했다. 유 후보는 최근 대구·경북(TK) 지역 여론조사 지지율이 최근 급등한 경쟁자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향해서는 “형사 피고인” “성범죄 미수자” 등의 표현을 써가며 날을 세웠다. 전날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18∼20일 전국 성인 1004명 대상, 신뢰수준 95%±3.1%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홍 후보의 TK 지지율은 지난주 8%에서 이번 주 26%로 치솟아 1위로 나섰다. 유 후보도 같은 기간 1%에서 10%로 뛰어올랐지만 홍 후보를 따라잡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향해서는 안보관 문제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며 상대적으로 보수 색채가 강한 영남권 민심을 파고 들었다. 캠프에서 유 후보가 6·25 전쟁과 월남전에서 4형제가 전사한 집안의 유족인 이부건 씨의 울산 자택에서 아침을 함께한 사실을 뒤늦게 공개한 것도 보수 유권자의 마음을 사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유 후보는 이밖에 인파가 몰리는 곳이라면 시간을 쪼개 찾아가면서 ‘한표’ 강행군을 이어갔다. 목이 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이크를 잡았다. 대구 두류공원 야구장에서 열린 부처님오신날 봉축대법회 달구벌 연등회를 찾아 불자들과 시민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지역 유력인사들의 모임인 라이온스클럽의 대구지구 연차대회에서는 “유승민 라이온(회원)입니다”라고 소개하면서 동질감을 자극하기도 했다. 그는 첫 행선지인 ‘산업수도’인 울산에서는 자동차·조선산업 기반 연구개발 클러스터 조성, 종합대 유치, 울산 외곽순환고속도로 건설 등 지역 맞춤형 공약을 발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승민 딸 유담, 27일부터 지원 유세…유승민 “유담, 남친 없다”

    유승민 딸 유담, 27일부터 지원 유세…유승민 “유담, 남친 없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의 딸 유담씨가 다음주부터 본격적으로 유세를 지원할 계획이다. 20일 바른정당 선거대책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유 후보의 부인은 이날부터, 딸 유담씨는 대학 중간고사를 마치는 오는 27일 부터 지원 유세에 나선다. 유담씨는 이미 지난해 4·13 총선 및 지난 1월 유승민 후보의 대선 출정식 등에 모습을 나타내 미모로 화제를 모았다. 유 후보는 ‘국민 장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면서 2030 남성층의 지지를 받았다. 유 후보는 지난 14일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자신을 국민 장인이라고 소개하며 “걔(유담)는 남자친구가 없고요”라고 말해 웃음을 주기도 했다. 유 후보는 “(딸이) 취업을 하기 위해서 엄청 스트레스 많이 받아가면서 밤늦게 공부도 하고 있고요. 아주 평범한 대학교 4학년이고 취업이 아직 안돼서 작년에 제가 공천에서 짤렸을 때 저 도와준다고 한 학기 휴학을 했습니다만, 그 이후로는 평범한 학생으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고 유담씨의 근황을 소개했다. 유담씨는 동국대 법학과에 다니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치 뒷담화] 별명 안에 민심 있다

    [정치 뒷담화] 별명 안에 민심 있다

    5명의 유력 대선 후보들에 대한 기상천외한 별명과 정치 신조어들이 쏟아지고 있다. 별명은 정치인을 더욱 친근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지만 때로는 조롱과 혐오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뜻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때로 매서운 민심이 담겨 있기도 하다.① 문재인 ‘명왕’ ‘달님’ 좋아요 ‘고구마’ 싫어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명왕’, ‘달님’으로 주로 불린다. 명왕은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전설의 해적인 명왕 실버즈 레일리를 닮았다는 점에서 붙은 별명이다. 문 후보의 성(문·Moon)을 딴 ‘달님’과 이름 끝 자를 딴 ‘이니’는 보다 친근하게 문 후보를 부를 때 사용하는 별칭이다. 문 후보는 고등학교 시절에는 ‘문제아’라고 종종 불렸고 경희대 재학 시절에는 배우 알랭 들롱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특히 오랜 시간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달려온 문 후보에게는 대세론을 반영하는 신조어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 ‘대깨문’(대세는 깨어 있는 문재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 ‘아나문·아낙수나문’(아빠가 나와도 문재인, 아빠가 낙선하고 수없이 나와도 문재인), ‘나팔문’(나라를 팔아먹어도 문재인), ‘사대문’(사실상 대통령은 문재인), ‘반기문’(반드시 기필코 문재인) 등 뭘 어떻게 해도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뜻의 말들이다. 부정적인 의미의 별명도 많다. 성격과 언행이 답답하다는 의미의 ‘고구마’라는 별명은 민주당 경선 당시 ‘사이다’로 불리던 이재명 성남시장과 대조를 이뤘다. 그러나 문 후보를 비판하기 위해 쓰였던 별명에 대해 문 후보가 “고구마는 배가 든든하다. 저는 든든한 사람”이라고 맞받아치면서 긍정적인 의미로 바뀌었다. 보수진영 네티즌들은 ‘문죄인’, ‘문제인’으로 지칭하고 있다. 최근 아들의 특혜 채용 의혹이 확산되면서 ‘문유라’(문준용+정유라), ‘문근혜’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열성 지지자들이 가장 많은 문 후보의 지지자들(문팬)을 조롱하는 ‘문레반(문재인+탈레반), 문슬람(문재인+이슬람)’ 등이라는 말도 종종 쓰이는데, 이슬람을 무조건 혐오 대상으로 삼고 있어 부적절한 표현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② 홍준표 ‘홍트럼프’ ‘홍도저’ 등 강한 이미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스스로 ‘모래시계 검사’, ‘우파 스트롱맨’임을 강조하는 데다 언행도 워낙 직설적이고 거침이 없어 강한 이미지를 상징하는 별명이 많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빗댄 ‘홍트럼프’,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을 딴 ‘홍테르테’ 등 홍 후보가 내세우는 우파 스트롱맨들과 연관된 별명이 주로 쓰인다. 특히 홍 후보가 흉악범에 대한 사형을 집행하겠다고 밝힌 점은 마약 용의자들을 즉결 처형한 두테르테를 떠올리게 했다. 진한 눈썹 문신 때문에 붙은 ‘홍그리버드’, 군기반장 이미지로 얻은 ‘홍반장’ 등도 오래 쓰였다.그러나 너무 강하다 보니 마냥 밀어붙인다는 뜻으로 ‘홍도저’(홍준표+불도저), ‘홍땅크’(홍준표+탱크) 등의 용어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쓰이기도 한다. 지난 13일 첫 TV토론회에서 “세탁기에 이미 들어갔다 나왔다”며 때아닌 세탁기 논쟁을 불러일으켜 관련된 별명도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③ 안철수 ‘간철수’ 이미지 깨고 ‘강철수’로 변신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정치에 처음 발을 디딜 때부터 간을 본다는 뜻으로 ‘간철수’라는 별명이 붙었다. 정치인이라기엔 안 후보의 말이 모호한 면이 있고, 결단력이 부족해 보이는 이미지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는 결연하고 강한 모습과 굳은 권력의지를 보이며 ‘강철수, 독(毒)철수, 갓철수’ 등으로 별명이 ‘업그레이드’됐다. 안 후보가 홈페이지에 내걸기도 한 ‘대미안’(대신할 수 없는 미래 안철수)은 안 후보의 지지자들이 아파트 브랜드인 래미안의 심벌에 덧붙여 사용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가장 적임자라는 의미에 ‘안파고’(안철수+알파고)도 대표적인 별칭이다.‘안스트라다무스(안철수+노스트라다무스)’라는 별명도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40석 가까이 얻는다는 것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중도 포기, 문 후보와 안 후보의 양강 대결 구도 형성 등 정치 현안에 대한 예측이 잘 맞아서다. 국민의당 대선 경선 기간 중에 갑자기 연설 목소리를 중저음으로 바꾸기도 해 ‘루이 안스트롱’이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본격적인 검증대에 서다 보니 부정적인 의미의 별칭도 쏟아지고 있다. 특히 문 후보 측 지지자들은 안 후보가 보수 진영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연관짓는 별칭을 많이 사용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했던 규제프리존특별법을 찬성하고,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에 대해서도 찬성으로 돌아섰다는 게 비판의 근거다. 게다가 딸의 재산 논란으로 금수저 이미지도 덧씌워져 요즘 네티즌들에게 부쩍 사용되는 말은 ‘공가왕’이다. 공주(박 전 대통령)가 가니 왕자(안 후보)가 온다는 뜻이다. 유치원 발언 논란으로 아이 엄마들 사이에선 ‘안찍사’(안철수 찍으면 사립유치원 간다)라는 자조적인 말도 나왔고, 조폭 동원 논란 때문에 ‘갱철수’(갱+안철수)라는 신조어도 있다. ④ 유승민 거침없는 입담 ‘팩트폭격기’ ‘팩트폭행’ 비교적 저조한 지지율을 기록해 왔던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에게는 아직은 긍정적인 의미의 별명이 많다. 본격적인 검증대에 올라가고 더 많은 관심이 이어진다면 이들을 비판하는 듯의 신조어도 언제든 생겨날 수 있다.유 후보는 딸 유담씨의 미모 때문에 ‘국민장인’이라는 별명이 대중적으로 쓰이고 있다. 유 후보의 지지자들은 ‘유바마’(유승민+오바마), ‘국민닥터 유사부’(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패러디), ‘유짱’ 등으로 주로 유 후보를 지칭하며 능력 있는 지도자가 되어주길 바라는 기대를 담고 있다. 토론과 강연에서 구체적이고 세세한 내용까지 설명하거나 상대방을 지적하는 모습을 보고 ‘팩트폭격기, 팩트폭행’ 등의 단어도 따라오고 있다. 유 후보의 일부 지인들도 유 후보가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쓴소리를 한다는 뜻에서 ‘전천후폭격기’라고 표현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바른말을 하는 점에서는 성직자 같으면서도 권력자에게 대들 수 있는 약간의 ‘똘끼’가 있다는 의미로 ‘욕쟁이 신부님’이라는 별명도 최근 주어졌다. ⑤ 심상정 여성성 돋보이는 ‘심블리’ ‘심크러시’ 심 후보는 여장부 같은 면모와 동시에 따뜻함과 정이 넘친다는 의미로 ‘심블리’(심상정+러블리)라는 별칭이 오래 쓰였다. 여성에 대한 동경의 의미를 담은 단어이지만 주로 ‘센 언니’ 같은 카리스마가 있는 여성에게 쓰이는 말인 ‘걸크러시’를 합쳐 ‘심크러시’라는 말로도 자주 불린다. 국회 상임위원회 활동 등을 통해 정부 관계자들을 거세게 몰아치는 발언 영상들이 화제가 되면서 ‘사자후’, ‘상정활극’ 등의 표현도 있다. 심 후보의 의원실에서 활발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을 하며 ‘2초 김고은’이라는 자생적인 별명도 만들어냈다. 심 후보의 20대 사진이 배우 김고은씨를 닮은 점을 활용한 것이다. 쌍꺼풀이 없는 점이 닮아 ‘2초 수애’까지 만들어졌다.정치 상황 및 투표 방향에 대한 준말도 대거 쓰이고 있다. 안 후보에게 보수 민심이 쏠리는 현상을 두고 ‘홍찍문’(홍준표 찍으면 문재인 된다)고 표현한 것이 대표적이다. 사표(死票)를 막아야 한다는 의미로 문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안 후보를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진영에선 ‘문찍김’(문재인 찍으면 김정은한테 간다)로 지지층을 결집하고 있다. 반면 안 후보를 향해선 ‘안찍박’(안철수 찍으면 박지원 상왕) 등의 비판적인 말이 있다. 지지율이 낮은 유 후보 측은 ‘유찍유’(유승민을 찍어야 유승민이 된다)는 말로 역전을 노리고 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예민해진 대선 후보들 “내 가족은 손대지마”

    대선 레이스가 후보 자녀 의혹 공방으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가족을 건드는 것’이 누구에게나 뼈아프게 다가오듯, 대선 후보들도 자녀와 관련된 의혹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논란을 차단하는 데 부심하고 있다. 최근 지지율 급상승세를 타고 있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11일 의혹이 제기된 딸 설희(28)씨의 재산 내역을 공개하며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앞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측 전재수 의원은 “안 후보가 2013년까지 딸 재산(예금 9300만원)을 공개해 오다가 2014년부터 독립 생계유지를 이유로 재산 고지를 거부했다”면서 “혹시 공개해선 안 될 재산이나 돈거래가 있는 게 아닌가”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안 후보 측 손금주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7년 4월 현재 설희씨의 재산은 예금과 보험을 포함해 약 1억 1200만원”이라면서 “이와 별도로 미국에서 이용하고 있는 시가 2만 달러 안팎의 2013년식 자동차가 1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재산은 부모와 할머니로부터 오랜 기간에 걸쳐 받은 것과 본인의 소득(연 3000만~4000만원) 일부를 저축한 것이며, 안 후보가 딸의 학비를 지원해준 것은 대학 시절과 대학원 1학기까지였다”면서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그 어디에도 부동산과 주식은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손 수석대변인은 설희씨의 이중국적, 호화유학 의혹에 대해서도 “설희씨는 미국 국적을 보유한 적이 없고 영주권을 신청한 적이 없다”면서 “유학시 월세 1000달러 안팎의 소형 아파트와 월세 2000~3000달러의 콘도에 거주했다”고 해명했다. 앞서 안 후보 측은 ‘원정출산설’을 퍼트린 네티즌을 검찰에 고발했다. 문 후보는 아들의 특혜 채용 의혹을 좀처럼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문 후보의 아들 준용(35)씨가 2006년 12월 고용노동부 산하의 한국고용정보원 일반직 5급 공채에 합격한 것이 특혜라는 게 의혹의 골자다. 문 후보는 “10년간 고장 난 라디오처럼 되풀이해 온 철 지난 이야기다. 이미 명쾌하게 해명된 내용”이라고 반박했지만 의혹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이 아니다 보니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는 분위기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도 2005년 대학생이던 두 아들의 재산이 각각 1억 3922만원으로 신고됐다는 사실로 검증대에 올랐다. 홍 후보는 “증여세를 모두 냈기 때문에 금융실명제법 위반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도 딸 유담씨의 예금 1억 8800만원에 대한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다. 유 후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준 용돈을 모아둔 것이며, 2700만원의 증여세를 납부했다”고 밝혔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유승민 딸 유담, 어린 시절 사진 ‘크면서 더욱 예뻐져’

    유승민 딸 유담, 어린 시절 사진 ‘크면서 더욱 예뻐져’

    바른정당 대선후보로 4선의 유승민(59) 의원이 공식선출됐다. 바른정당은 28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내 올림픽홀에서 제19대 대통령후보자 선출대회를 개최, 유 의원을 당 대선 후보로 공식 확정했다. 유승민 의원은 “보수의 재건을 바라는 국민의 여망을 모아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당당하게 국민의 선택을 받겠다”고 말했다. 유승민 딸 유담(24)씨 역시 이 자리에 참석해 아버지 이름을 외치며 응원했다. 배우 이연희와 수지를 닮은 외모는 취재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주요 포털사이트에는 ‘유승민 딸’, ‘유담’이 실시간 인기검색어로 올라왔다. 이 가운데 1994년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이던 유승민 의원의 가족사진이 공개돼 눈길을 끈다. 사진에는 어린 유담씨의 똘망똘망한 모습이 담겨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지원 나선’ 유승민 의원 딸 유담씨

    ‘지원 나선’ 유승민 의원 딸 유담씨

    2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바른정당 제19대 대통령 후보자 선출대회에서 유승민 딸 유 담씨가 엄마 오선혜씨와 자리를 함께 하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新전원일기] 묵히면 돈 되는 늙은 호박… 넝쿨째 굴러온 방문객

    [新전원일기] 묵히면 돈 되는 늙은 호박… 넝쿨째 굴러온 방문객

    ‘나, 호박 너무 좋아/ 호박은 나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마음의 고향으로서/ 무한대의 정신성을 지니고/ 세계 속 인류들의/ 평화와 인간찬미에 기여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호박은 나에게는 마음속의/ 시적인 평화를 가져다준다.’ 물방울 무늬가 가득한 호박 작품으로 유명한 일본의 설치미술가 구사마 야요이가 쓴 ‘호박에 대하여’라는 글의 일부이다. 오랫동안 극심한 신체적, 정신적 질환에 시달렸던 그는 호박죽을 먹으면서 몸을 회복했고, 이러한 경험은 호박에 대한 찬미와 호박을 주제로 삼은 여러 뛰어난 작품의 창조로 이어졌다고 전해진다. ‘호박 때문에 나는 살아내는 것이다’고 했던 현해탄 너머의 설치미술가 못지않게 호박을 사랑하고 찬양하는 농부가 있다. 충남 서산시 대산읍 운산리에 위치한 ‘참샘골 호박농원’의 최근명(64) 대표다. 서산시가 공인한 ‘호박 명인’이기도 한 그의 손을 거쳐 새롭게 탄생한 늙은 호박의 변신은 가히 예술적이라 말할 만했다.# 4전 5기 끝에 만난 복덩이 호박 한 덩이 충남 공주 출신의 최 대표가 서산에 처음 터를 잡게 된 계기는 1980년 ‘참샘골 목장’을 설립하면서다. 그는 군 복무 시절, 부대 근처에 있던 젖소 농장에서 소젖을 짜는 농부의 모습을 보고 큰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제가 1970년대에 군 복무를 했는데 그 시절만 해도 우유를 먹는다는 게 굉장히 생소했어요. 그런데 앞으로 우유 먹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당시 서산에는 ‘상아목장’이라는 큰 목장이 있었다. 제대 직후 그곳에 취업한 그는 3년 동안 낙농 기술을 배운 후 독립했다. 동네의 유명한 샘 이름을 따다 지은 ‘참샘골 목장’이라는 이름은 현재 ‘참샘골 호박농원’의 전신이 되는 셈이다. 낙농업이 유망한 산업이 되리라 생각했던 청년 최씨의 예상은 적중했다. 1980년대 산업이 발달하고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우유 소비가 늘어났다. 송아지 5마리로 시작한 그의 목장은 젖소 50마리까지 늘어났다. 10년간 승승장구하던 그의 목장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1990년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실시되면서였다. 저렴한 수입 우유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많은 축산농가가 타격을 입었다. 사료값도 못 건질 정도로 우유값이 떨어지자 목장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수입 개방과 상관없는 산업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에 두 번째로 시도한 것은 토종닭 사육이었다. ‘참샘골 토종닭’을 설립해 토종닭을 방사해 키웠다. “여름에는 토종닭 장사가 괜찮았어요. 그런데 겨울이 되니 닭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더라고요. 저 혼자 하는 영세업체라 유통 시스템을 갖추기도 어려웠고요. 결국 1억원 정도 손해를 보고 그만두게 되었습니다.”세 번째로 도전한 우렁 양식업에서도 같은 이유로 실패했다. 대형 수조 설비를 갖추고 우렁을 잘 키우는 데에만 주력한 나머지 판로 개척에는 크게 신경 쓰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유통에 대한 마인드가 전혀 없었던 거죠.” 최씨가 씁쓸하게 웃었다. 네 번째 도전이었던 느타리버섯 재배도 겨우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농업환경 변화가 큰 이유였다. “1995년부터 느타리버섯에 갈반병이라는 병이 유행하기 시작했어요. 더이상 버섯이 자랄 수 없을 정도로 주변 환경이 오염돼 생긴 병이래요. 첨단 무균 재배 설비를 갖춰야 앞으로 계속 버섯사업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저 막막했죠. 이미 앞서 세 번이나 실패했던 탓에 가진 돈이 없었거든요.”수차례 실패 끝에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됐다. 그는 갈반병이 든 것을 추려내고 얼마 남지 않은 버섯을 팔아치운 다음 농사를 포기하기로 했다. 그런데 느타리버섯을 팔러 간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만난 늙은 호박 한 덩이가 그의 인생을 역전시켜 줄 복덩이가 됐다. “가락동 시장에서 호박 장수를 만났는데, 늙은 호박 한 덩이에 1만~2만원씩 파는 거예요. 왜 이렇게 비싸게 받느냐고 물었더니 가을철에 한 개 2000원이면 살 수 있는 호박이 봄과 여름철이면 값이 열 배, 스무 배까지 치솟는다고 하더군요. 저장이 어려워서 그렇대요. 호박 장수가 ‘누가 호박 저장 기술만 개발하면 그 사람은 떼돈 벌 텐데’라고 지나가는 말로 던진 한마디가 제게는 구원의 종소리처럼 들렸어요. 그래 이거다. 내가 그 기술을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미래의 농업을 준비하는 선견지명 자신만만하게 도전했지만 첫해 ‘참샘골 호박농원’에서 재배한 호박은 다 썩어버려 폐기처분을 해야 했다. 수차례의 시행착오, 수년간의 연구 끝에 1998년 호박 장기 저장 기술을 개발했을 때 최 대표는 천하를 모두 얻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온도 10도 내외, 습도 60%의 건습 상태, 에틸렌 가스농도 0.02ppm 이하, 그가 찾아낸 최상의 호박 저장 환경이다. 전국 최초로 호박 저장법을 개발하고, 자동화 시스템을 갖췄다는 참샘골 농원의 호박 저장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향긋한 호박 냄새가 165㎡ 규모의 저장실 전체에 감돌았다. 수천 통의 굵직한 호박들이 층을 지어 가지런히 놓여 있는 모습이 압도적으로 느껴졌다. 자동 조절 시스템을 통해 잘 관리된 호박들은 겨울을 지나 초봄에 이르렀는데도 여전히 단단하고 싱싱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노란색 늙은 호박은 모양이 맷돌처럼 둥글납작해 ‘맷돌호박’이라고도 불리는데, 비타민과 식이섬유, 베타카로틴 등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기로 유명하다. 60대에 접어든 최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며 가장 놀라웠던 것은 그의 탁월한 선견지명이었다. 1990년대 농업인들 사이에 브랜드에 대한 인식이 무지하던 시절에 그는 이미 ‘참샘골’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상표 등록까지 마쳤다. 이후 업종을 바꾸면서도 참샘골이라는 브랜드를 포기하지 않았다. 2000년 농촌진흥청에서 무료로 홈페이지를 개설해 준다는 공고가 떴을 때에도 가장 먼저 신청해 ‘농업인 1호 홈페이지’를 구축했다.“그때만 해도 인터넷으로 농산물을 판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시절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앞으로 인터넷 시대가 되고, 호박도 쇼핑몰을 통해 팔 수 있는 시대가 오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홈페이지를 만든 후에도 1년이 훨씬 넘도록 단 한 건의 주문도 없었다. 그럼에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주문 내역을 확인했다. 첫 주문이 들어온 것은 홈페이지 개설 후 1년 반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후 조금씩 소문이 나고 매스컴에 소개되면서 주문량이 늘기 시작했다. 각 가정에 인터넷 보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쇼핑몰 매출도 폭증했다. “쇼핑몰에서 호박을 판매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고객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게시판을 통해 고객들이 남긴 의견을 꼼꼼하게 읽고 소통했죠. 그 과정에서 다음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도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었습니다.” 호박즙과 호박죽 등 호박 가공식품 생산까지 사업을 확장하게 된 계기는 고객의 요청 때문이었다. 2002년 한 여고생이 ‘호박 달인 물이 여성 미용, 다이어트, 부기 제거에 효과적이라며 호박즙을 만들어 달라’는 글을 홈페이지에 남겼다. ‘호박 미인’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호박즙이 대박을 내면서 2차 산업으로의 진출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이후 2005년 한서대 식품공학과와 산학협약을 체결해 국내 최초로 ‘레토르트 고구마호박죽’을 개발했고, 2012년에는 임신부의 배 뭉침과 조산을 막아주는 데 효과가 있다는 ‘호박손달인물 액상차’를 개발해 출시했다. 모두 고객들의 요청에 따른 제품 개발이었다. # 농원매출 6억 중 가공품 판매 85% 차지 지난해 참샘골 호박농원의 매출은 6억여원, 그중 85%가 호박 가공품 판매에서 거둔 수익이다. 이제 호박 농사보다 가공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호박 저장 시설을 잘 구축해 놓은 덕에 연중 내내 호박 가공품을 일정하게 생산할 수 있다. “참샘골 가공식품이 인기를 얻은 가장 큰 이유는 원재료인 호박이 맛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황토땅에서 서해안의 해풍을 맞고 자란 참샘골 호박은 농약과 화학 비료를 전혀 쓰지 않습니다. 계약 재배 중인 농가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원칙이죠.” 모든 제품을 인터넷 직거래로 판매하는 참샘골 호박농원의 홈페이지 회원 수는 2만여명에 이른다. 연간 80~100t 규모의 호박이 가공식품의 원재료로 쓰인다. 최 대표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어서 지역농민 여러 가구와 10만㎡ 규모로 재배 계약을 맺어 수매한 호박을 재료로 쓰고 있다. 참샘골 호박이 유명해지면서 인근 지역에서 호박을 재배하는 농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말하는 최 대표에게 경쟁자가 많아지는 것 아니냐고 묻자, 오히려 “더 늘어서 맷돌호박이 서산을 대표하는 지역 명물이 됐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맷돌호박하면 서산이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유명해지길 바랍니다. 그러면 호박을 보고, 체험하러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더 늘어나겠지요. 이 마을을 대한민국 최고의 호박 테마파크로 키우는 것이 제 꿈입니다.” # 호박체험관 운영… 마을주민과 수익 나눌 것 그동안 최 대표는 바쁜 와중에도 10년 전부터 일본을 오가며 3차 산업 진출을 준비해 왔다. 일본 규슈 지방의 후쿠오카현을 방문했을 때 소바(메밀국수) 만들기 체험을 하는 것을 보고 호박 따기 체험뿐 아니라 호박칼국수, 호박피자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3차 산업은 문화와 체험을 파는 일이기 때문에 마을 주민들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주민들도 앞으로 6차 산업의 시대가 올 거라는 최 대표의 끈질긴 설득에 넘어갔다. 마을 주민들과 합심해 노력한 결과, 2008년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지정돼 정부로부터 2억원을 지원받았고 호박체험관을 지을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최 대표는 2013년 농림축산식품부가 개최한 ‘제1회 6차 산업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이곳을 다녀간 방문객은 5000명 정도다. “체험관을 지으면서 3차 산업을 통해 거두는 수익은 마을 사람들과 모두 나누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앞으로 3차 산업 수익이 점점 더 커지겠지만, 그건 제 몫이 아니에요.” 향긋한 호박향이 가득한 농원을 떠나 서울로 향하는 차 안에서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랴’라는 속담이 참으로 폭력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호박이 수박보다 못할 이유도, 호박이 수박이 되어야 할 이유도 없다. 호박은 호박 나름의 개성, 달콤한 맛과 향이 있다.■ 글쓴이 소설가 김유담 부산 출생.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핀 캐리’로 등단.
  • “딸 유담 사윗감으로 이준석 어떠냐” 유승민 반응이?

    “딸 유담 사윗감으로 이준석 어떠냐” 유승민 반응이?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이 딸 유담의 사윗감 관련 질문에 진땀을 흘렸다. 유 의원은 8일 방송된 TV조선 ‘강적들‘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진행자 박종진이 “요즘 딸 이야기에 부담을 갖는 것 같은데, 국민의 관심이 싫으신가. 딸에 대한 관심이 싫은가”라고 묻자 유 의원은 “여기는 정책 이야기 같은 건 안 하나요?”라며 웃었다. 그는 “딸은 그냥 평범한 대학생”이라며 “작년 총선 때도 딸이 휴학도 하고 해서 도와줬는데 언론에 잡히는 바람에 그때부터 이렇게 됐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딸을 앞에 내세워 가지고 그럴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때 갑자기 패널 김성경이 유 의원에게 “이준석 씨 사윗감으로 혹시 어떠냐”라고 묻자, 유 의원은 “사위 생각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어쨌든 제 사위는 제가 그 공천권을 행사하도록 돼 있으니까”라고 답했다. 이어 박종진이 “이준석이 마음에 드냐. 어떠냐”라고 묻자, 유 의원은 “저야 준석 씨 좋아하죠”라고 애매하게 답했다. 이준석은 “유담씨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되게 어릴 때 먼저 본 사람 같은 경우는 그 이미지가 살아 있지 않나. 그냥 동생 같다”고 말했다. 이준석의 아버지와 유승민은 경북고등학교 동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담은 유 의원의 대선 출마 선언식에 등장해 빼어난 미모로 주목을 받았다. 현재 동국대학교 법학과에 재학 중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승민, “유담 ‘폭음’해 걱정…밤에 데리러 간 적도 많아”

    유승민, “유담 ‘폭음’해 걱정…밤에 데리러 간 적도 많아”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이 딸 유담씨와 관련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걱정된다”고 말해 화제가 되고 있다. 유 의원은 지난 5일 TV조선 ‘임윤선의 빅데이트’에 출연해 “밤에 내가 데리러 간 적이 많다”면서 딸 유담씨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걱정된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이날 방송에서 여덟 명의 사윗감 가상 후보 중 배우 공유를 1등으로 뽑았다. 유 의원은 공유를 뽑은 이유에 대해 “겉과 속이 똑같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 의원은 정작 “딸은 유재석씨 팬”이라고 밝혔다. 유 의원의 딸 유담씨는 지난달 26일 오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유 의원의 대선 출마선언 출정식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유담 씨는 지난해 4·13 총선 당시 대구 동구 용계동 선거사무소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에도 나와 연예인 같은 외모로 화제가 됐다. 딸의 인기가 높아지자 유 의원은 온라인 상에서 ‘국민 장인’이란 별칭까지 얻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시민, 유승민 딸 견제? “자꾸 내 딸과 비교”

    유시민, 유승민 딸 견제? “자꾸 내 딸과 비교”

    ‘썰전’의 유시민 작가가 유승민 딸 유담 언급에 난색을 표했다. 2일 방송된 JTBC ‘썰전’에서는 지난해 20대 총선 당시 화제를 모았던 유담이 언급됐다. MC 김구라는 “요즘 총선에서는 가족들도 많이 도와주고 그러지 않느냐”고 했다. 하지만 유시민 작가가 “딸 이야기는 하지 말자”며 화제를 돌리려 했고, 유승민 의원 또한 “저도 (딸 이야기) 하는 거 원치 않는다”며 가족 이야기에 부담감을 토로했다. 그러자 전원책 변호사는 “왜 남의 강점을 덮으려고 그러느냐. 트럼프의 당선도 딸 이방카가 일등 공신”이라며 유시민 작가의 태도를 문제 삼았고, 유시민 작가는 “자꾸 제 딸하고 비교하니까 그렇다”고 말해 웃음을 유발했다.유승민 의원은 대선 출마선언 현장에 가족을 대동한 것에 대해 “가족들을 부를지 말지 고민했지만, 가족들을 인사를 해야겠다 싶어 불렀다”면서 “딸을 선거에 이용하고 싶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승민 딸 유담, 여전한 미모로 아버지 응원

    유승민 딸 유담, 여전한 미모로 아버지 응원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의 딸 유담 씨가 여전한 미모로 아버지의 대선 출정식에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유승민 의원은 26일 오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대선 출마선언 출정식을 갖고 “용감한 개혁으로 시대의 고통을 해결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유승민 의원의 대선 출마선언 출정식에는 유 의원의 정치 입문을 이끈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바른정당 지도부, 아내 오선혜 씨와 딸 유담 씨 등이 참석했다. 유승민 의원의 딸 유담 씨는 지난해 4·13 총선 당시 대구 동구 용계동 선거사무소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에 참석해 연예인 같은 외모로 화제가 됐다. 딸의 인기에 유승민 의원은 ‘국민 장인’이란 별칭까지 얻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포토] 유승민 의원 대선 출정식 참석한 ‘미모의 딸’

    [포토] 유승민 의원 대선 출정식 참석한 ‘미모의 딸’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의 딸 유담씨가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대선 출정식에 참석해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THE FACT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新전원일기] 보디빌더로 날리던 체육인, 감귤나무와 ‘운명적 만남’…“열대과일 스마트팜 키워요”

    [新전원일기] 보디빌더로 날리던 체육인, 감귤나무와 ‘운명적 만남’…“열대과일 스마트팜 키워요”

    사계절을 난다는 건 지나간 계절을 그리워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여름에는 겨울이 그립고, 겨울에는 여름이 그립다. 혹자는 이런 마음을 변덕스럽다고 손가락질하겠지만, 원래 그리움의 대상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것 아니던가. 더군다나 올겨울은 유난히 힘겹다. 영하의 날씨에 꽁꽁 얼어붙은 빌딩 숲을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면서 따뜻한 남쪽 나라를 떠올렸다. 강렬한 햇살과 후텁지근한 공기, 그리고 향긋한 열대 과일이 있는 동남아의 휴양지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순간 간절했다. 하지만 그 역시 당장 실현하기는 어려운 ‘그리움의 영역’에 속하는 바람이었다. 굳이 외국에 나가지 않더라도 한겨울에 열대림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소문에 경북 안동으로 향했다. 눈발이 흩날리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마음속으로 억지로 주문을 걸고 있었다. 나는 지금 열대지방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 있다고, 울창한 열대의 숲을 만나게 될 거라고. 그러다 잠이 들었고, 안동시 초입에 들어서면서 깼다. 눈 내리던 서울과는 달리 바람이 순했고, 하늘은 맑고 깨끗했다. 이렇게 좁은 국토 안에서도 계절의 양상은 각기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에 놀라며 안동 시내를 벗어나 와룡면 이상리로 향했다. 이제 정말 이국의 열대 과일을 만날 차례였다. 농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황순곤(55) 안동파파야농장 대표가 농가 뒤편의 비탈길을 걸어 내려와 서울에서 온 손님들을 맞았다. 입구와는 조금 떨어진 농장 안쪽 비닐하우스에 있던 황 대표가 어떻게 인기척을 알아챘는지 궁금했다. “여기 설치된 16개의 폐쇄회로(CC)TV로 농장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물론 농장 곳곳의 작물들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뿐이 아니라 CCTV를 보면서 스마트폰을 통해 물을 주고 온실의 온도를 조정하기도 하죠. 열대 과일을 재배하는 스마트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평균 기온이 올라가면서 국내에서도 파파야 등 열대작물을 재배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겠다는 생각으로 귀농을 결심했다는 황 대표는 따로 직원도 두지 않고 거의 혼자서 농사일과 유통, 판매까지 모두 담당하고 있다. 그는 이런저런 질문에 답을 하면서도 비닐하우스 한편에 설치된 CCTV 화면을 틈틈이 들여다봤다. 대화 중간에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하면서 일부 농장 시설을 관리하는 그를 보면서 시공간을 초월한 농업을 만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국의 농작물, 그리고 미래의 농업을 동시에 체험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 만능 스포츠맨 취미생활 ‘귀농 발판’ 되다 황 대표는 2010년 귀농 전까지 평생을 체육인으로 살아왔다. 계명대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청구그룹 계열사인 삼양코아 레저스포츠센터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스포츠센터 관리 업무와 고객들의 운동 지도를 담당했던 그는 그 자신이 뛰어난 보디빌더이기도 했다. 전성기 시절 1991년 미스터대구 선발대회에서 1등을 하는 등 각종 대회를 섭렵했고 대구시 보디빌딩협회의 이사를 역임한 바 있다. 요트와 윈드서핑 선수로 활동한 경험을 살려 20여년간 대학 모교에서 해양스포츠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가 역기와 아령 대신 농기구를 손에 들고 열대 과일을 재배하게 된 계기는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스포츠센터에 근무하면서 프로 선수들의 체력 훈련을 지도하던 그에게 제주도로 전지훈련을 다녀온 한 프로야구 선수가 감귤나무 한 그루를 선물했는데, 제주에서만 재배가 가능할 줄 알았던 감귤을 집에서 키워 맛보면서 색다른 재미를 느꼈다고 한다. 그때부터 조금씩 다른 작물도 키워 보면서 그의 열대작물 사랑이 시작됐다. 바나나, 망고, 파파야 등을 분재로 키우면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영글게 만들었다. 잎과 나무가 큰 열대나무의 특성상 수많은 화분으로 채워진 그의 집 거실은 식물원이나 온실에 가까운 모습이었단다.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한 분재였는데, 종류가 점점 늘어나니까 아내의 따가운 눈총도 많이 받았죠. 여기가 집인지 밀림인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도 한번 빠져 드니까 멈추기가 어려웠어요. 외국에 다녀오는 분들에게 부탁해 열대작물 씨앗을 조금 구해 오면 바로 심어 보았어요. 1990년대만 해도 국내에 열대 과일을 재배하는 농가가 전혀 없다 보니 키우는 방법에 대한 연구나 정보가 전무한 실정이라 혼자 연구하고 공부하면서 여러 가지 작물을 시도해 봤어요.” 한 번 시작하면 승부를 봐야 하는 운동선수 특유의 근성이 취미 생활에서도 발현됐다. 열대 농법에 대한 정보는 외국 서적으로만 접할 수 있어서 영어를 잘하는 지인에게 번역까지 의뢰해 열대 과일을 공부했다. 주변에서 저러다 말겠거니 생각했던 취미는 20여년간 이어졌다. 그가 재배에 성공한 열대 과일은 수십 가지에 달했다. 재미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 여느 전문가 부럽지 않은 노하우를 터득하게 됐다. 나이가 들면서 스포츠센터에서 일을 하는 것도 조금씩 힘에 부칠 때쯤 취미를 업으로 삼아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체육인에서 농업인으로 전업은 그렇게 이뤄졌다. # 열대 과일보다는 열대의 체험을 판다 국내에서, 더구나 따뜻한 남쪽 지방이 아닌 내륙에서 열대 과일 수확이 가능할지 의구심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20여년간 각종 열대작물을 키워 본 경험이 있는 황 대표는 온실뿐 아니라 노지에서도 파파야 재배가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안동도 5월부터 10월 중순까지 고온다습한 날씨이기 때문에 동남아 지역의 기후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특히 파파야는 성장 속도가 빨라 씨를 심은 뒤 5개월 만에 그린파파야 열매가 열리기 때문에 노지 재배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귀농 첫해에 약 3000㎡ 노지에 파파야 씨앗을 심으면서 시작한 그의 농장은 이제 2만㎡ 규모로 커졌다. 체험동 1동과 최첨단 재배시설을 갖춘 온실 2동 등 3개 동을 합쳐 3000㎡가량 되는 비닐하우스도 지었다. 지난해 농촌진흥청의 ‘지구온난화 대체작물 분야’ 공모 사업에 선정돼 정부로부터 2억원을 지원받아 첨단 시설을 갖춘 온실을 지으며 사계절 내내 작물을 키울 수 있게 됐다. 재배하는 열대작물의 종류도 파파야, 바나나, 용과, 망고, 한라봉, 오렌지, 무화과, 구아바 등 30여 가지 이상이다. 그는 과일 열매를 시장에 내다 파는 것보다는 다양한 열대 과일 나무의 양태를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열대작물을 체험하게 하는 프로그램에 더 관심이 많다고 했다. “바나나나 망고 등을 재배해 시장에 내놓고 수입 과일과 경쟁을 하는 건 솔직히 불리해요. 하지만 실제로 이들 열매가 어떤 나무에서 자라고 어떻게 익어서 수확되는지를 체험해 보는 것은 흔치 않은 경험이잖아요.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대부분 그런 기대로 농장에 와요. ‘우리나라에서도 열대 과일을 재배하는 곳이 있네’ 하는 궁금증으로 여기를 찾아와서 ‘우와, 실제로 이게 가능하다니 정말 신기하네. 나도 한번 묘목을 사서 집에서 키워 볼까’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거죠. 체험을 목적으로 농장에 온 손님들이 제 경험담을 듣고 열대작물에 관심을 갖고 묘목을 사갈 때 뿌듯함을 느낍니다. 열대작물 전도사가 된 기분이랄까요.” 실제로 ‘안동파파야농장’의 수익 대부분은 체험 활동과 묘목 분양에서 나온다. 체험객들이 기념 삼아 묘목을 사 가거나 병원이나 호텔 등에서 로비에 두는 관상용으로 잘 키워 놓은 열대나무를 구입해 가는 것이 주요 소득원이다. 지난해 가족끼리 혹은 기업이나 학교 등 단체에서 방문을 신청해 이곳을 찾은 체험객 수는 3000여명에 달하며, 직거래로 판매된 묘목은 1000본가량 된다. 지난해 농장 전체 매출은 7000만원, 올해는 최초로 억대 매출 돌파를 기대하고 있다. 귀농 초기부터 인터넷 카페를 통해 파파야 농장을 꾸준히 홍보한 것도 조금씩 성과가 나타난다. 열대작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그가 운영하는 다음 카페(http://cafe.daum.net/andongpapaya)의 회원 수는 현재 2000명이 넘었다. 안동파파야농장이라는 간판을 내건 만큼 이곳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과일은 그린파파야다. 황 대표가 과수 열매 판매수익을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노란파파야와는 달리 그린파파야는 수입이 어렵기 때문에 시장성도 좋은 편이다. 태국 요리 전문식당은 물론 약재로 쓰기 위해 한의원에서도 황 대표가 재배한 파파야를 찾는다. 고향의 음식 쏨땀(그린파파야로 만든 태국식 샐러드)이 그리운 다문화가정 이주 여성들이 그린파파야 열매를 사러 직접 찾아오기도 한다. # 추억과 사연을 담은 농장을 만들고파 수십 가지의 열대작물이 어우러진 비닐하우스를 둘러본다. 작은 밀림을 거닐고 있는 듯하다. 영하의 건조한 겨울 날씨에도 계기판에 나타난 온실의 온도는 19.9도, 습도는 80%다. 축축하면서도 훈훈한 기운이 도는 흙을 밟으며 내 키의 서너 배는 돼 보이는 파파야나무를 올려다봤다. 푸르고 넓적한 잎이 내뿜는 싱그러운 에너지에 겨우내 축났던 마음이 조금 덥혀지는 기분이 들었다. 주렁주렁 열린 파파야 열매의 표면을 쓰다듬으며 달콤하면서도 풋풋한 향을 맡아 보기도 한다. 트란 안 홍 감독의 영화 ‘그린파파야 향기’에 나오는 열 살 소녀 무이처럼. 이 영화에서 무이는 엄마와 떨어져 사이공의 부잣집 하녀로 들어가 고단한 생활을 하게 된다. 마당에 아름답게 뻗은 파파야나무는 녹록지 않은 어린 소녀의 삶에 한 줄기 위로가 돼 준다. 농업의 6차 산업화 시대를 맞아 먹거리 생산을 넘어 작물에 대한 스토리와 추억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황 대표를 보면서 영화 마지막에 어른이 된 무이가 파파야나무에 관해 썼던 짧은 글귀가 떠올랐다. ‘우리 집 정원에는 열매가 많이 달린 파파야 나무가 있다. 잘 익은 파파야는 옅은 노란색이고 또 잘 익은 파파야는 설탕처럼 달다.’ 한 그루 나무가 어떤 이에게는 위로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고향의 음식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국의 체험이 된다. 각기 다른 사연으로 농장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다채로운 기억을 쌓아 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황 대표는 사시사철 푸른 농장을 가꾸고 있다. 글쓴이 소설가 김유담 부산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핀 캐리’로 등단
  • [新전원일기] 쪽파, 외길 인생…대박, 쪽파 인생

    [新전원일기] 쪽파, 외길 인생…대박, 쪽파 인생

    어릴 적 살았던 시골집 마당에는 텃밭이 있었다. 저녁 준비를 하던 어머니가 “마당에 나가 쪽파 서너 뿌리 뽑아 오너라” 하고 심부름을 시키면 슬리퍼를 신고 마당에 쪼르르 달려 나가던 기억이 떠오른다. 쪽파는 어린 내게도 한 손에 잡혔고,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흰 대를 내보이며 손쉽게 땅 위로 딸려 나왔다. 흙이 묻은 뿌리를 조심스럽게 털어다가 부엌으로 달려가던 순간의 뿌듯함, 그리고 코끝에 맴돌던 알싸한 파 향기가 오랜 기억과 함께 솟아오른다. 고향을 떠나 도시에 살게 되면서 이제 더이상 채소를 집에서 길러 먹지 않게 됐다. 당연히 땅에서 갓 뽑아낸 쪽파가 식탁에 오를 일도 없다. 매번 마트에서 사다 먹는 채소인데도, 쪽파를 대량 재배하는 농원에 대한 이야기는 다소 생소하게 들렸다. 쪽파는 대표적인 소면적 작물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주소득원으로 재배하는 작물이 따로 있는 농민들이 남는 밭에 쪽파를 키우는 경우가 많았다. 충남 아산시 도고면 시전리에 자리잡은 ‘신석영 농업회사법인’에서 만난 신석영(49) 대표는 쪽파 농사를 곁다리로 생각하는 것은 교통이 불편하던 과거에나 해당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21세기 농업의 성패 여부는 규모와 전문성에서 판가름 난다는 것이다. 25년여간 쪽파 농사 한길만을 걸어온 ‘쪽파 부농’의 목소리에서는 자신감이 넘쳤다. # 농사에 아무것도 몰랐던 청년, 쪽파에 빠지다 신 대표와 쪽파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된 때를 회상하자면 19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전문대를 갓 졸업한 20대 중반의 청년 신씨가 처음부터 농부를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원래는 농산물 유통업에 관심이 있었어요. 대학 시절 품질관리사 자격증도 땄죠.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셨던 것도 아니고,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농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물려받은 땅 한 평 없이 무턱대고 쪽파에 반해서 농사를 짓게 된 거예요.” 농산물 유통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변 지역의 재배 작물과 농업 환경을 둘러보게 됐다. 도고면 일대는 예부터 쪽파를 재배하는 농민들이 많았다. 이 지역이 기후가 선선하고 물이 잘 빠지는 토질이라 쪽파를 재배하는 데 유리한 환경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쪽파를 생계 수단으로 삼는 농민들을 보면서 신 대표는 쪽파 농사를 규모 있게 잘 지으면 어지간한 사업보다도 훨씬 더 비전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특히 쪽파는 파종 후 30~50일이면 출하가 가능해 환금성이 높다는 것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때 쪽파를 선택하게 된 게 운명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싱싱하게 자란 쪽파가 그 어떤 화초나 난초보다도 더 예쁘게 보였기 때문이죠. 남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쪽파가 줄지어 자라 있는 밭을 가끔 넋 놓고 바라봐요. 돈을 떠나서 제 눈에는 정말 예뻐 보여요.” 진지하게 쪽파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신 대표의 목소리에 처음에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가 나중에는 점점 빠져들게 됐다. 자신의 입으로 “쪽파에 미쳤다”고 말할 정도로 25년간 쪽파 농사에 매진해 온 신 대표는 이후 쪽파 주산단지인 아산시 도고면에서도 쪽파를 가장 많이 출하하는 거농(巨農)이 됐다. 물려받은 밭 한 뙈기 없이 6500㎡의 땅을 빌려 시작한 농사가 지금은 33만㎡ 규모로 불어났다. 30동의 비닐하우스(약 1만 5000㎡)까지 따로 갖춰 사시사철 계절에 상관없이 쪽파를 출하하고 있다. 마을 어르신에게 조그마한 땅을 빌려 쪽파 농사를 시작한 청년은 20여년이 지난 후 연매출 40억원에 달하는 농업회사 ‘신석영 농업회사법인’의 어엿한 대표로 성장했다. 쪽파가 만들어 낸 기적인 셈이다. 오랜 세월 동안 부침을 겪기도 했다. 쪽파 값이 폭락해 애써 키운 농작물을 시장에 내놓지도 못한 채 갈아엎어 버린 일도 있었고, 수해를 입은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망연자실하지 않고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웠다. “쪽파는 밭 한군데에서 일 년에 최대 네 번까지 수확이 가능해요. 그러니 자연재해를 만나거나 병충해를 입었을 때에는 빨리 포기하고 다음 농사를 준비하는 게 나아요. 품질 낮은 작물을 헐값에 넘기는 것도 싫었어요. 제 이름 내걸고 회사까지 세웠는데 신뢰를 갉아먹을 수야 없지요. 말로는 쉽지만 적게는 수천, 많게는 수억원어치의 쪽파를 눈앞에서 포기하려면 마음으로는 피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습니다.” 건강한 쪽파를 생산하기 위해 신 대표가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종자 선택과 관리다. 파 끝이 마르기 쉬운 여름에는 빨리 크면서 더위에 강한 종자를 심고, 재배 기간이 긴 봄과 가을에는 자라는 속도가 더딘 종자를 골라 충분히 햇빛과 바람을 받으면서 자랄 수 있도록 하는 등 출하 시기에 따라 종자가 달라진다. 구입한 종자는 1차 손질을 거쳐 저장고에서 최소 1개월에서 최대 3~4개월까지 건조시킨 후 쓴다. 1차 손질을 한 후 밭에 심었을 때 생산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쉴 틈 없는 쪽파 사랑, 안정적 유통망 확보로 일반적으로 농촌의 겨울은 한가하다. 땅도 농부들도 쉬면서 따뜻한 봄날을, 그리고 이듬해 농사를 기다리는 시기인 것이다. 그러나 신 대표는 쉴 겨를이 없다. 쪽파 비닐하우스와 작업장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며 둘러보아야 한다. 한 곳에서는 파종 작업이, 다른 한 곳에서는 수확이 한창이다. 김장철이라 쪽파 출하량도 평소보다 많은 편이다. “쪽파는 저장이 힘들고, 신선도가 중요한 식재료에요. 그래서 그날 수확한 쪽파를 매일매일 출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2~3일만 지나도 시들어 버려서 시장에 팔 수 없게 되거든요.” 하루도 빠짐없이 쪽파를 수확하고 출하시키느라 주말도 없이 일해야 한다는 신 대표. 매일 파밭으로 출근하는 그가 공식적으로 쉴 수 있는 날은 추석과 설날 단 이틀뿐이라고 한다. 쉬는 날도 없이 쪽파에 얽매여 있는 삶이 지겹지 않으냐는 질문에 “집에 돌아가 잠을 자는 중에도 쪽파를 생각한다”고 대답한다. “제가 잠자는 동안에도 쪽파는 자라고 있잖아요. 그래서 이부자리에서도 생각하게 돼요. 내일 아침에 밭에 나가면 그 녀석들이 얼마나 자라 있을까. 그 모습은 얼마나 예쁠까 생각하면서 다시 잠에 빠져듭니다.” ‘신석영 농업회사법인’이라는 큰 간판을 내건 작업장 안에서는 스무 명 남짓한 노동자들이 쪽파 세척과 손질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었다. 작업장을 가득 채운 푸른 쪽파가 내뿜는 매운 기운에 눈이 아릴 지경이었지만 애써 참았다. 하루 종일 묵묵히 쪽파를 씻고 다듬고 포장하는 일꾼들 앞에서 유난을 떨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쓴맛이 없고, 빛깔이 선명하기로 유명한 ‘신석영 쪽파’가 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것은 정성 들여 농사를 지은 공도 크지만, 이처럼 먹기 쉽고 보기 좋게 손질하는 과정을 좀더 꼼꼼히 거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국에 입소문 난 ‘신석영 쪽파’ 신 대표가 포장에 특별히 신경을 쓰는 품목은 마트 납품용 쪽파다. 롯데마트와 직접 계약을 맺어 이곳에서 생산한 쪽파를 전국의 롯데마트에서 판매한 지도 3년째다. 종갓집 김치에도 신 대표가 납품한 쪽파가 들어간다. 모두 쪽파 품질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업체 측에서 먼저 제안한 계약이었다. 대형마트와 김치공장이라는 안정적 유통망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품질 좋은 쪽파를 생산하는 것은 물론 손질까지 바이어가 원하는 수준과 규격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전국 롯데마트와 김치공장에 납품하는 쪽파가 신 대표의 농가에서 출하한 쪽파의 5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나머지 50%는 도매시장으로 팔려 나간다. 이곳에서 하루에 생산되는 쪽파만 해도 3~5t가량이며, 연간 생산량은 약 1200t에 달한다. 전국 쪽파 생산량의 20%를 차지하는 아산 도고 지역에서 120여 농가가 연간 6000여t의 쪽파를 생산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신 대표의 쪽파 농사 규모는 가히 독보적이다. 고정 직원 숫자만 5명, 일용직으로 일하는 노동자도 하루 평균 20~30명이나 된다. “쪽파 농사는 손이 많이 가요. 저 혼자서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고 생각해요. 직원들을 포함해 도와주시는 분들의 도움이 컸죠.” 저장이 어려운 특성상 쪽파는 수입이 불가능한 농산물이기도 하다. 가격에 등락이 있기는 하지만 수입산 농산물 유입으로 인한 피해가 없다는 점이 쪽파의 매력이기도 하단다. 신 대표는 올해 쪽파 값이 예년에 비해 높은 편이라 출하하는 재미가 더 크다는 이야기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풍년은 하늘에서 내리는 거라고 하잖아요. 농산물 가격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돈을 버는 해가 있으면, 반대로 손해를 보는 해도 있습니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어요. 물론 돈을 많이 벌면 좋기야 하겠죠. 하하.” 마음을 비우고 정성을 다해 농사를 짓고, 그 이후는 하늘에 맡겨야 한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신 대표를 보면서 ‘파가 자라는 이유는/ 오직 속을 비우기 위해서다/ 파가 커갈수록/ 하얀 파꽃 둥글수록/ 파는 제 속을 잘 비워낸 것이다(후략)’라고 노래한 이문재 시인의 ‘파꽃’이 떠올랐다. 혹시 ‘파꽃’이라는 시를 아느냐고 넌지시 묻자 “아유, 쪽파든 대파든, 파꽃 핀 파는 못 먹어요. 질겨서 맛이 없어”라는 신 대표의 답이 돌아온다. 파꽃에 담긴 은유보다는 손에 흙 묻혀 가며 재배한 싱싱한 파 한 단이 그에게는 더 중요하다. 작업장에서 손질된 쪽파들이 회사 앞마당에 대기한 트럭 위로 실리고 있었다. 한 단 한 단 차곡차곡 쌓인 채 박스에 담긴 쪽파는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 알싸한 파향(香)을 전할 것이다. 김장 김치가 되기도 할 테고, 비 오는 날 술꾼들의 안주로 파전이 되거나, 멸치국수를 훌훌 말아 먹을 때 끼얹는 양념간장이 되기도 할 것이다. 글쓴이 소설가 김유담 부산 출생.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핀 캐리’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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