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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퇴하신 어르신 지역봉사 어때요? / 성동, 장·노년층‘연어학교’ 운영

    직장에서 은퇴한 장·노년층을 자원봉사자로 육성하는 ‘연어학교’가 운영된다. 성동구(구청장 고재득)는 20일 이 같은 취지의 연어학교 운영계획을 밝히고 참여자 모집에 나섰다.장·노년층의 경험을 지역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또 이들을 바탕으로 건전한 자원봉사 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이다. 참여자들은 자원봉사센터에서 1개월간의 교육을 받고 교육받은 시간의 3배인 33시간 이상 자원봉사활동에 나선다.마치 연어가 태어난 하천을 다시 찾아오듯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지역사회에 환원한다는 의미를 지녔다. 교육은 자원봉사 기본교육,실천방법,실습과제 등으로 짜여져 있다.기별 참여자는 40명 내외로,이들에게는 봉사활동 상해보험에 가입시켜주고 유니폼도 지급된다. 참여를 원하는 주민은 다음달 15일까지 구청 자치행정과(2290-7892)로 신청하면 된다. 이동구기자
  • 프로야구/“안방마님 싸움 볼만하네”

    ‘최고의 안방마님 가리자.’ 프로야구가 무더위와 함께 중반전에 돌입하면서 선두 각축과 개인 타이틀 경쟁이 불을 뿜는다.이 가운데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지는 못하지만 마운드를 이끌고 전열을 정비하는 막중한 임무를 띤 포수들이 수면 밑에서 뜨거운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당초 올해 포수부문 골든글러브는 지난해 수상자 진갑용(29·삼성)과 2001년 수상자 홍성흔(26·두산)의 맞대결로 점쳐졌다.하지만 홍성흔의 부상 장기화,한물간 선수로 치부된 김동수(35·현대)의 깜짝 부활 등 뜻하지 않은 변수가 등장하면서 김동수 박경완(31·SK) 진갑용의 3파전 양상이다. 올시즌 누구보다도 주목받는 ‘마스크’는 김동수.LG 시절 공수에 걸친 눈부신 활약으로 6차례나 골든글러브를 차지한 90년대 간판 포수다.하지만 흐르는 세월 탓인지 2001년부터 삼성과 SK를 전전하며 유니폼을 벗을 위기에 직면했고,현대에 힘겹게 둥지를 틀긴 했지만 신예들의 기세에 밀려 백업 포수로 전락했다.그러나 강귀태의 부상으로 주전 마스크를 쓰면서 예전의 불방망이가 살아나 이적한 박경완의 공백을 훌륭히 메운 것.김동수는 11일 현재 홈런 7개를 포함해 타율 .316(11위),타점 30개 등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지난 96·98·2000년 등 모두 세 차례 골든글러브를 낀 투수리드의 귀재 박경완은 이적 후에도 변함없는 기량을 과시했다.시즌 초반 타격에서 부진했지만 최근 2000년 홈런왕(40개)의 진가를 드러내며 화력을 보탰다.홈런 7개 등 타율을 .273(30위)으로 끌어올렸고 타점(31개)에서도 공동 10위까지 뛰어올랐다.하지만 박경완의 진가는 ‘안방’에서 더욱 빛난다.젊은 유망주들이 대거 포진한 SK의 ‘영건 마운드’를 이끌며 팀을 창단 이후 첫 선두로 견인한 것.타격에서는 김동수가 앞서지만 수비에서는 박경완이 우위인 셈이다. 여기에 진갑용도 홈런 10개 등 타율 .305(13위),타점 24개로 만만치 않은 실력을 뽐냈다.특히 도루 저지율이 .469로 김동수(.386)와 박경완(.345)을 능가해 막판 역전도 기대된다.안방 싸움이 프로야구에 또 다른 흥미를 불어넣고 있다. 김민수기자
  • 재응 不敗 / 텍사스전 7이닝 2실점 시즌 4승

    미국프로야구 뉴욕 메츠의 서재응(26)이 마침내 ‘명품’으로 거듭났다. 올시즌 메이저리그 첫 선을 보일 때만 해도 언론과 팬들의 관심 밖이던 서재응.하지만 메이저리그 강타선을 상대로 상상을 초월하는 호투가 이어지자 “그러다 말겠지.”하던 현지 언론과 팬들도 그에게 시선을 던졌고,이제는 당당한 신인왕 후보로 자리매김했다.내셔널리그 동부지구 꼴찌팀 메츠의 보배로 급성장한 것. 서재응은 12일 알링턴볼파크에서 벌어진 박찬호 소속팀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눈부신 호투로 진가를 입증했다.7이닝 동안 삼진 6개를 솎아내며 8안타 2사사구 2실점.메츠는 클리프 플로이드의 2점포 등 4타수 3안타 5타점의 맹타에 힘입어 8-2로 승리,3연패를 끊었다.서재응은 지난 1일 애틀랜타전 이후 3연승을 달리며 시즌 4승째를 거뒀다.방어율도 2.91에서 2.88로 낮췄다. 101개의 공을 뿌려 스트라이크가 68개일 정도로 빼어난 제구력을 과시,신인왕 후보로서 손색이 없다.초반 서재응의 애를 태운 타선도 이날은 화끈하게 터졌다. 광주일고를 거쳐인하대 2년 때인 지난 97년 말 계약금 125만달러에 메츠 유니폼을 입은 서재응이지만 지난 6년간의 세월은 시련의 연속.입단 당시 주목받은 유망주로 99년 마이너리그에서 2승(무패),방어율 1.84의 호성적도 냈다.하지만 입단 때 감지된 팔꿈치 통증을 참고 던진 것이 화근이 돼 결국 99년 말 수술대에 올랐고,팔꿈치 인대가 몹시 파열돼 재기가 불투명할 정도였다.서재응은 이를 악물고 재활에 매달렸지만 팔꿈치 수술 후 도무지 직구 스피드가 나오지 않아 퇴출 소문까지 나돌았다.서재응은 마지막이라는 비장한 각오로 지난해 베네수엘라 윈터리그에서 처음부터 몸을 만들었고,그 결과 전성기 때 스피드는 아니지만 140㎞대 후반의 빠른 공이 제구력과 함께 살아났다. 올시즌 마이크 바식 대신 제5선발로 발탁된 서재응은 ‘칼날 제구력’을 앞세워 4월18일 피츠버그를 제물로 꿈 같은 메이저리그 첫 승을 일궈낼 수 있었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호투는 계속됐다. 한편 이날 1회를 무실점으로 넘긴 서재응은 2회 2사 2루에서 아이나르 디아스에게 중전 적시타를 맞아 첫 실점했다.3∼5회 매회 안타를 맞았지만 점수를 내주지 않은 서재응은 6회 첫 타자 마크 테세이라를 몸 맞는 공으로 내보낸 뒤 케빈 멘치에게 2루타를 허용,1사 2·3루에서 디아스의 희생플라이 때 2점째를 내줬고 8-2로 앞선 8회말 마운드를 넘겼다. 김민수기자 kimms@
  • 빨간양말 BK 이적 첫승 / 피츠버그전 7이닝 1실점… AL ‘화끈 데뷔’

    ‘핵잠수함’ 김병현(사진·24·보스턴 레드삭스)이 화려하게 이적 첫 승을 신고했다.김병현은 5일 PNC파크에서 인터리그로 벌어진 미국 프로야구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의 연속경기 1차전에 이적 후 처음으로 선발 등판,7이닝 동안 삼진 2개를 곁들이며 5안타 1볼넷 1실점으로 막아 팀의 11-4 대승을 이끌었다. 이로써 김병현은 아메리칸리그 데뷔 첫 승이자 시즌 2승째(5패)를 따내며 방어율을 3.53으로 낮췄다.아메리칸리그 성적만 따지면 2경기에서 1승무패,방어율 3.37.지난 4월20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유니폼을 입고 세인트루이스를 상대로 시즌 첫 승을 따낸 뒤 한달 보름여 만의 승리. 게다가 김병현의 승리는 보스턴의 최근 5연패를 끊은 것은 물론 1903년 이후 무려 100년 만에 다시 붙은 피츠버그를 상대로 거둔 것이어서 더욱 값졌다.김병현은 이날 불과 83개의 공을 뿌려 완투도 충분했지만 9일 밀워키전 등판에 대비해 마운드를 내려왔다. 김병현은 “직구 구위가 좋아서 적극적으로 던졌다.”면서 “팀 승리에 공헌해 정말 기쁘고 행복하다.”고 첫 승 소감을 밝혔다. 당초 이날 등판 뒤 김병현을 마무리로 돌리려 한 그레이디 리틀 감독은 “김병현은 팀의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했으며 다음 등판도 기대된다.”면서 “이런 투수가 선발진에 있다는 것은 팀에 말할 수 없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해 선발투수로 계속 기용할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김병현은 1회부터 4회까지 위기없이 쾌투를 이어갔고,메이저리그 팀 타율 1위인 보스턴 타선도 김병현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1회 1점을 선취한 보스턴은 3회 제이슨 배리텍의 3점포 등으로 대거 4득점했고 5회에도 트롯 닉슨의 적시타로 1점을 보탰다. 김병현은 5회 선두타자 에이브러햄 누네즈에게 좌전 안타를 맞은 뒤 희생번트와 내야땅볼로 2사 3루를 허용했고 잭 윌슨에게 중전 안타를 맞아 첫 실점했다.하지만 애리조나의 물방망이와는 사뭇 다른 강타선을 등에 업은 김병현은 여유를 가지며 6·7회를 삼자범퇴로 넘겼다.보스턴은 7회 토드 워커의 홈런 등으로 다시 2점을 보탰고 김병현은 8회말 앨런 엠브리로 교체됐다. 엠브리가 8회말 3점 홈런을허용,8-4까지 쫓겼지만 보스턴은 9회초 다시 홈런 2방으로 추격에 쐐기를 박았다.김병현은 2회 첫 타석에서 우전 안타도 빼냈다.보스턴은 2차전에서도 8-3으로 승리했다. 한편 빅리그에 시즌 첫 등판한 김선우(26·몬트리올 엑스포스)는 이날 푸에르토리코 산후안 비손스타디움에서 열린 애너하임 에인절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4와3분의1이닝 동안 홈런 3방으로 6실점하며 부진했다.몬트리올이 2-11로 패배. 또 시카고 컵스의 최희섭도 이날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와의 경기에 선발 출장해 3타수 무안타에 그쳐 타율이 .240으로 떨어졌다.최희섭은 9회 2사 1·3루에서 2루수의 실책으로 세이프되는 바람에 타점을 올렸다.시카고가 2-5로 졌다. 김민수기자 kimms@
  • 프로야구 FA제도 허와 실

    프로야구가 열기를 더하는 가운데 자유계약선수(FA)에 대한 팬들의 관심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삼성의 간판타자 이승엽과 마해영이 올 시즌을 마치면 FA 자격을 따내 사상 최고의 ‘대박’을 터뜨릴 것으로 점쳐지기 때문이다. 홈런왕 이승엽(연봉 6억 3000만원)은 미국 진출 여부가 변수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4년간 최소 40억원을 챙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현재 최고 기록은 양준혁(삼성)이 지난해 세운 4년간 23억 2000만원.연봉이 3억 8000만원인 마해영도 FA 자격 전 양준혁의 연봉이 2억 7000만원인 것에 견줘보면 사상 두 번째 기록의 주인공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몸값은 폭등,효과는 글쎄(?) FA 자격을 딴 선수는 거액의 몸값을 챙겨 ‘스포츠재벌’이 되기도 한다.그러나 구단은 ‘혹시나’하고 큰돈을 쏟아붓지만 ‘역시나’로 끝나는 경우가 잦다.단숨에 거액을 움켜쥔 선수들 대부분이 목표 의식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먹고 살만해지면서 운동선수의 기본인 투혼이 사라져 구단과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얘기다.물론 FA제도가 자리를 잡으면서 고교 유망주 등의 해외진출이 크게 줄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대목이다. 올해까지 다년계약을 한 FA 16명 가운데 FA 이전에 견줘 좋은 성적을 낸 선수는 5명뿐.올 시즌의 안경현(두산) 박경완(SK),FA 원년인 2000년의 송진우(한화)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FA는 ‘빛 좋은 개살구’.올해 3년간 4억원에 계약한 강상수(롯데)는 몸을 제대로 만들지 않아 1군 마운드를 밟지도 못하고 있다.2년간 6억에 눌러 앉힌 박정태(롯데)도 컨디션 난조로 겨우 9경기에 출전해 .227의 저조한 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양준혁은 FA 계약 첫해인 지난 시즌 93년 데뷔 이후 처음으로 3할대 타율을 기록하지 못했다.2000년에는 이강철이 삼성,김동수가 LG,송진우는 한화와 각각 다년계약을 했지만 몸값에 걸맞은 활약을 한 선수는 송진우 정도.김동수는 3년간 7억 5000만원을 받고 두산에서 삼성으로 옮겼으나 백업포수로 전락한 뒤 계약 기간을 1년 남기고 SK로 트레이드됐고,이강철은 친정팀 기아로 쫓겨났다. 2001년에는 김기태와 홍현우가 삼성 LG의 유니폼을 입으며 18억원을 챙겼다.하지만 김기태는 그해 .176의 저조한 타율을 올린 뒤 지난해 ‘먹튀’라는 오명만 뒤집어쓴 채 SK로 트레이드됐다.홍현우는 올해까지 1할대 타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상진(삼성)은 FA 계약(3년간 8억 5000만원)을 한 2001년 방어율 7.04의 부진을 보이다 그해 가을에 SK로 트레이드됐다. ●진입 폭 넓혀 경쟁체제 유도를 야구계 안팎에서는 현행 FA제도가 기대 효과를 거두지도 못하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부추긴다고 지적한다.실제로 삼성은 FA제도가 시행된 이후 16명 가운데 5명을 영입하거나 잔류시키면서 무려 70억원을 쏟아부었다.이 과정에서 FA 몸값 ‘거품론’이 대두된 것은 당연한 일.구단간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실력 이상의 보상이 속출했다는 것. 프로야구 관계자들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FA 시장의 진입(New Entry) 장벽을 낮춰야 한다.”고 말한다. 나진균 프로야구선수협의회 사무국장은 “현행제도 아래에서는 FA 가운데 16%만이 혜택을 본다.”면서 “전 소속 구단에 대한 보상금이 연봉의 300∼450%로 너무 높다.”고 지적했다.일본의 경우는 100%. 구단 관계자는 “지급 규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치솟기만 하는 계약금을 제한하고 전 소속구단에 대한 보상금을 낮추는 등의 방법으로 몸값을 안정시켜야 한다.”면서 “대신 자격 요건을 완화해 FA 시장도 경쟁체제가 가동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중기자 jeunesse@ ■FA제도란 자유계약선수(FA·Free Agent)는 선수에게 자유로운 구단 선택권을 주고,각 팀의 전력을 평준화해 리그를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다.지난 1999년 처음 도입돼 2000년부터 시행됐다.이전에는 선수들이 한번 입단하면 트레이드되거나 은퇴하지 않는 한 팀을 떠날 수 없어 “불평등 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FA 자격은 프로에 들어온 이후 9년간 매년 정규시즌의 3분의2 이상을 출전해야만 주어진다.이적할 때는 전 소속 팀에 해당 선수의 전년도 연봉의 300%와 선수 1명을 넘겨주거나,또는 전년도 연봉 450%를 보상해야 한다. 미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의 최초 FA는 74년 당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에이스였던 캣피시헌터.오클랜드가 헌터에게 연봉의 절반인 5만달러를 지급하지 못하자 헌터는 소송을 제기해 FA 자격을 따냈다. 헌터는 뉴욕 양키스와 당시로서는 최고액인 5년간 370만달러에 계약했다.75년 앤디 메서스미스(LA 다저스)와 데이브 맥낼리(볼티모어 오리올스)는 소송 없이 메이저리그 중재위원회를 통해 처음으로 구단 이적의 자유를 인정받았다. 결국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와 선수노조는 76년에 풀타임 메이저리그 경력 6년 이상 선수들에게 FA를 선언할 수 있도록 규정을 신설했다. 김영중기자
  • [김광림의 플레이볼] BK를 위한 훈수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된 김병현에게 야구계 선배로서 한마디하고자 한다.먼저 부담감을 떨치고 자신의 능력 그대로만 보여준다는 각오로 경기에 임하라는 것이다. 김병현은 자신보다 앞서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해 2년째를 맞은 박찬호를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지난 2001시즌 이후 텍사스로 이적한 박찬호는 구단과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자신 또한 20승을 마음속에 새겨 넣으면서 2002시즌을 시작했다.하지만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출발한 그해는 온갖 부상과 정신적 압박에 시달리며 결국 20승의 반절도 안되는 9승밖에 올리지 못한 채 시즌을 접어야만 했다.박찬호가 부진한 원인은 결국 자신의 과도한 계획에서 온 압박감이 아니었을까. 김병현은 지난 2일 보스턴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첫 구원 등판에 나서 1이닝 동안 3안타 2실점했다.이적 첫 경기에서 좋은 성적으로 출발했다면 정신적으로 안정돼 더 좋았을 것이지만 그렇지 못해 심리적인 부담은 배가될 것이다.앞으로 마인드 컨트롤과 함께 세심한 경기운영을 해야만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김병현이 극복해야 할 것은 또 있다.내셔널리그(NL)에는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데 견줘 아메리칸리그(AL)에서는 지명타자제를 두고 있다.(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는)타석에 들어선 투수를 상대로 쉽게 아웃 카운트를 늘릴 수 있었지만,(보스턴에서는)투수를 대신한 타격 전문선수(지명대타)를 상대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게 됐다는 것이다.이런 측면에서 보면 아메리칸리그에 속한 투수 김병현은 더욱 실력을 쌓는 데 몰두해야 할 것이다. 올 시즌 줄곧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1위를 달린 보스턴은 김병현의 트레이드가 성사된 이후 3연패하며 뉴욕 양키스에 선두자리를 내줬다.보스턴은 베이브 루스를 양키스로 보낸 1918년 이후 단 한번도 월드시리즈를 제패하지 못한 징크스가 있어 정상에 대한 욕심은 어느 팀보다 간절하다.그러기 때문에 김병현의 잠재된 능력에 한껏 기대를 걸고 있다. 김병현은 이적으로 애리조나에서의 갈등은 해소했다.하지만 신인 때와 같은 마음가짐을 잊어서는 안된다.새로운 팀에서 복잡한 생각은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기때문이다.슈퍼스타가 즐비한 양키스와 당당하게 맞서 승리의 세리머니를 하는 김병현을 기대해 본다. 광주방송 해설위원 kkl33@hanmail.net
  • 레이커스 없는 NBA왕국 새 주인은 바로 우리 / 샌안토니오 뉴저지

    4연패를 노리던 LA 레이커스의 좌초로 ‘무주공산’이 된 미프로농구(NBA) 왕국의 새 주인을 가리는 02∼03시즌 챔피언결정전(7전4선승제)이 오는 5일 막을 올린다. 지난 1999년 우승 이후 두번째 타이틀을 노리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27년만에 첫 챔프 등극을 꿈꾸는 뉴저지 네츠는 레이커스가 서부콘퍼런스 4강전에서 탈락한 올 시즌을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있다.서부콘퍼런스 샌안토니오는 지난 3년 동안 플레이오프에서 레이커스에 번번이 무너졌고,뉴저지도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챔피언결정전에 올랐지만 레이커스에 단 1승도 올리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두팀은 정규리그에서 두차례 맞붙어 각자의 홈에서 1승씩을 챙겼다.막상막하의 전력으로 흥미진진한 챔프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팀 던컨 Vs 제이슨 키드 승리의 열쇠는 팀 던컨(샌안토니오)과 제이슨 키드(뉴저지)가 쥐고 있다.정규리그 2년 연속 최우수선수(MVP) 던컨은 최고의 파워포워드로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플레이오프 18경기에서 평균 24.9점 14.8리바운드를 기록했다.서부콘퍼런스 결승에서 댈러스 매버릭스는 2∼3명이 에워싸는 협력수비를 펼쳤으나 끝내 막아내지 못했다. 뉴저지는 케년 마틴에게 던컨 봉쇄 특명을 내렸다.마틴은 NBA에서 대인방어가 가장 뛰어난 선수 가운데 한 명.공격력(평균 20.7점)도 빼어나 두 선수의 매치업 승부가 판도를 좌우할 가능성이 높다.‘어시스트 왕’ 키드는 뉴저지의 희망.플레이오프에서 경기마다 8개 이상의 송곳 어시스트를 뿌렸다.팀의 강력한 무기인 속공도 그의 손에서 나온다.디트로이트 피스톤스와의 동부콘퍼런스 결승 1·2차전에서 잇따라 막판 역전 3점슛을 쏘아 올리는 대활약을 펼쳤다. NBA 현역 최고의 포인트가드인 키드는 내년부터 자유계약선수(FA)가 되기 때문에 뉴저지의 유니폼을 입고 우승하겠다는 집념을 활활 불태우고 있다.샌안토니오는 가로채기가 뛰어난 토니 파커를 내세워 키드 봉쇄에 나선다. ●승부는 예측불허 표면적인 전력은 던컨-데이비드 로빈슨의 ‘트윈 타워’가 건재한 샌안토니오가 조금 앞선다.샌안토니오는 정규리그에서 60승22패라는 경이적인 승률을 올렸다.강팀이 즐비한 서부콘퍼런스 플레이오프에서 피닉스 선스,레이커스,댈러스를 잇따라 꺾었다. 웬만한 주전보다 뛰어난 말릭 로즈-마누 지노빌리-스피디 클랙스톤으로 이어지는 백업라인도 강점이다.그러나 자유투가 약하고 뒷심이 부족해 4쿼터에서 자주 역전을 허용하는 것이 ‘아킬레스 건’. 주변 상황은 뉴저지가 훨씬 유리하다.샌안토니오는 플레이오프 18경기만에 챔프전에 진출했지만 뉴저지는 14경기만 치렀다.콘퍼런스 준결승과 결승을 모두 4연승으로 장식했기 때문이다.챔프전 진출 확정 이후 10일이나 휴식을 취해 거듭된 혈투를 치른 샌안토니오보다 체력면에서 유리하다.키드-마틴-리처드 제퍼슨의 3각편대는 최고의 조직력을 자랑한다.그러나 높이에서 밀려 백보드를 지켜낼 수 있느냐가 관건.NBA에서 가장 다혈질인 두 감독 바이런 스콧(뉴저지)과 그레그 포포비치(샌안토니오)의 벤치싸움도 볼거리 가운데 하나다. 이창구기자 window2@ 챔프전 명승부 명장면 지난 1947년부터 시작된 미프로농구(NBA) 챔피언결정전은 숱한 명승부와 명장면을연출했다. ●61∼62시즌 5차전 ‘예술 농구’의 개척자 엘진 베일러(LA 레이커스)는 보스턴 셀틱스를 상대로 무려 61점을 넣었다.비록 챔피언 반지는 보스턴에 돌아갔지만 베일러가 올린 최다득점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79∼80시즌 5차전 슈퍼루키 매직 존슨(LA 레이커스)을 위한 무대였다.존슨은 팀 선배이자 기둥인 카림 압둘 자바가 부상으로 빠졌지만 42점 15리바운드 7어시스트의 대활약으로 줄리어스 어빙이 버틴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를 눌렀다.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챔프전 MVP까지 움켜 쥐었다. ●83∼84시즌 2차전 챔피언전 사상 가장 귀중한 가로채기가 나왔다.종료 15초를 남기고 보스턴의 제럴드 핸더슨은 LA의 매직 존슨이 바이런 스콧에게 넘겨주는 아웃렛 패스를 몸을 날려 가로챘다.115-113으로 뒤진 보스턴은 핸더슨의 레이업슛으로 동점을 만들었고,연장전 끝에 결국 승리했다. ●90∼91시즌 2차전 하이포스트에서 드라이브인을 하던 마이클 조던(시카고 불스)이 오른손에 공을 들고 튀어 올랐다.LA 수비 2명이 잇따라 블록을 시도했지만 그는 오른손에 있던 공을 왼손으로 옮겼고,손끝을 떠난 공은 림을 갈랐다.그때까지 조던은 공중에 떠 있었다. 이창구기자
  • 김병현, 보스턴 전격 이적

    ‘핵잠수함’ 김병현(사진·24)이 결국 보스턴의 ‘빨간 양말’을 신게 됐다. 미국 프로야구 보스턴과 애리조나 구단은 30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지난해까지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다 올시즌 선발로 보직을 바꾼 김병현과 보스턴의 3루수 세이 힐런브랜드(27)을 맞트레이드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김병현은 지난 99년 입단해 2001년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낀 내셔널리그(NL) 서부지구의 애리조나를 뒤로 하고 아메리칸리그(AL) 동부지구의 강팀 보스턴에서 새롭게 야구인생을 펴게 됐다. 이번 트레이드는 마무리 투수 부재를 절감하고 있는 보스턴과 올시즌 물방망이로 전락한 팀 공격력 배가를 원하는 애리조나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 전격 성사됐다. 김병현은 일단 새 둥지에서 선발로 나선 뒤 부상 투수들이 돌아오면 마무리로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이에 따라 김병현은 새달 4일 인터리그로 치러지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의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할 예정이다. 보스턴은 메이저리그 최고 팀타율(.292)을 자랑하는 데다 배터리를 이룰 포수 제이슨배리텍도 최고 수준이어서 김병현의 승수쌓기가 애리조나때 보다 한결 수월해질 전망이다. 김병현은 미국 진출 이래 선발 등판을 요구했지만 팀 사정상 지난 4시즌동안 불펜에 묶였고,마침내 선발의 꿈을 이룬 올해에는 밥 브렌리 감독과 부상을 둘러싼 갈등을 빚었다. 내성적인 성격 탓도 있겠지만 “따돌림을 당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할 정도로 팀에 융합하지 못했고,최근 트레이드설이 나돌 때는 “어느 팀이든 빨리 결정됐으면 좋겠다.”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김병현은 “야구 스타일이 달라 감독과 의견이 맞지 않을 때가 있었지만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면서 “나를 처음 스카우트해 현재의 위치까지 만들어준 팀인 데 다소 섭섭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처음 미국 땅을 밟았을 때와 느낌이 비슷하다.”면서 “선발이나 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새 팀에서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뛰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99년 애리조나의 유니폼을 입은 김병현은 지난해 팀 창단 이후 최다인 36세이브(8승3패)를 거두며 방어율 2.04를 기록했다.통산4년간 역시 팀 최다인 70세이브(20승17패)를 따내며 메이저리그 ‘특급 마무리’로 발돋움했다. 월드시리즈에 출전해 뼈아픈 홈런을 맞은 김병현은 올시즌 주전 마무리 매트 맨타이가 부상에서 회복하면서 트레이드설이 나돌다 선발로 전향했지만 부상자 명단에 오르며 1승(5패),방어율 3.56에 그쳤다. 김민수기자 kimms@ ■보스턴은 어떤팀 김병현이 새로 둥지를 튼 보스턴 레드삭스는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 구단으로 한국인 선수와 인연이 유독 많은 팀. 1901년 창단된 전통의 보스턴은 2년 뒤 처음 열린 월드시리즈에서 챔피언에 오르며 1918년까지 모두 5차례나 우승했다.하지만 1919년 홈런왕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로 현금 트레이드한 이후 단 한차례도 정상을 밟지 못한 ‘밤비노의 저주’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올해는 30일 현재 31승21패로 뉴욕 양키스(31승22패)에 반경기차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선두를 달려 ‘밤비노의 악령’을 떨칠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김병현을 전격 영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게다가 보스턴은 한국 선수들과의 인연도 깊어 지금까지 모두 10명이나 거쳐갔다.특히 한국으로 복귀한 조진호(SK)와 이상훈(LG),몬트리올 엑스포스로 옮긴 김선우는 보스턴에서 메이저리거로 활약했다. 보스턴은 4년전 김병현을 놓고 스카우트 전쟁에 뛰어 들었으나 놓쳤다.
  • 월드컵 1주년 특집 / 2006 월드컵 ‘신화재현’ 가능할까

    2006독일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신화 재현은 가능할까. 2002한·일월드컵에서 4강을 일군 한국 축구대표팀에 거는 기대는 어느 때보다 높다.전문가들은 독일대회는 유럽의 텃세가 예상되는 만큼 지난해와 같은 성적을 기대할 순 없지만 16강 진입은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특히 한·일월드컵을 통해 선진축구에 대한 적응력과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을 최대의 강점으로 꼽았다.청소년대표팀 감독을 지낸 조영증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부위원장은 “월드컵을 치르면서 선수층이 아주 탄탄해졌다.”면서 “운이 따라준다면 2002월드컵에 버금가는 성적도 기대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신문선 SBS 해설위원도 16강 진출 가능성은 높게 보면서도 전제조건으로 빈틈없는 준비를 지적했다.그는 “독일월드컵에서는 홈 이점과 경기장에서의 열광적 응원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더욱 치밀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걱정스러운 부분도 있다.유럽의 텃세가 심하다는 것이 제일 마음에 걸린다.여기에다 한국이 역대 유럽에서 열린 월드컵대회 성적이 미주에서 열린 대회보다 좋지 않다는 점도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여기에다 황선홍(전남 2군코치) 홍명보(LA 갤럭시) 등 2002월드컵 주역 가운데 대들보 역할을 한 선수가 국가대표 유니폼을 벗었다는 점이다. 특히 한·일월드컵 당시 철벽수비를 자랑한 홍명보 최진철 김태영이 구축한 수비라인을 대체할만한 선수가 아직은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도 걱정거리다.상대의 파상공세가 예상되는 만큼 강력한 수비라인을 구축하는 것이 어쩌면 공격 이상으로 선결돼야 할 문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철벽수비수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는 조병국 등이 독일월드컵 때까지 3년동안 경험을 쌓는다면 한·일월드컵때보다 더 강력한 수비라인을 구축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여기에다 한·일월드컵과 해외생활로 풍부한 경험을 갖춘 설기현 박지성 이영표 등 젊은 선수들이 건재하기 때문에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독일월드컵 때까지 국가대표 훈련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한국은 한·일월드컵 개막 이전까지 18개월 동안 거스 히딩크감독 체제에서 100억원 이상을 지출했다.물론 여기에는 감독과 코치의 급여가 포함됐다.대한축구협회는 올해 200억원의 협회 예산 가운데 30억원을 국가대표팀 훈련비로 책정했다.예상보다 훈련비가 적은 것은 올해는 경비가 많이 드는 순수한 해외전지훈련이 단 한차례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일월드컵을 통해 ‘투자한만큼 성적이 난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한 만큼 독일월드컵이 다가오면서 훈련비는 점점 늘 것으로 보인다.한·일월드컵보단 코치진 급여가 적게 들지는 모르지만 지역예선을 거쳐야 하고,또 독일에서 열리는 만큼 추가 부담액이 늘 수 있어 한·일월드컵에 버금갈 수도 있다. 박준석기자 pjs@
  • 형님은 ‘신화재현’ 아우는 ‘신화잇기’

    ‘형은 월드컵 영광을 재현하고,아우는 월드컵 신화를 이어간다.’2002한·일월드컵 1주년을 맞는 31일 한국축구는 일본 도쿄와 부산에서 의미있는 격전을 치른다.도쿄 국립경기장에서는 국가대표팀이 일본과 지난 4월16일 이후 한달여 만에 재격돌하고,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는 17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이 미국과 4개국 청소년축구대회 개막전을 치른다.상대가 모두 세계축구의 강호는 아니지만 지난달 16일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0-1로 패한 대표팀은 설욕과 함께 아시아 최강이자 세계 4강의 위엄을 되찾겠다는 각오이고,청소년대표팀은 지난해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형님들이 무승부를 이룬 미국에 확실한 승리를 거둬 4강 신화 재현의 가능성을 펼쳐 보인다는 각오로 똘똘 뭉쳐 있다. 형님은 ‘신화재현' ‘지난 97년의 ‘도쿄대첩’을 재현한다.’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설욕전을 다짐하며 29일 인천공항을 통해 31일 한·일전이 열리는 일본 도쿄로 향했다. 대표팀의 생각은 오직 한 가지.지난 97년 도쿄에서 열린 일본과의 98프랑스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2-1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사실상 본선 티켓을 거머쥔 감격을 다시 누리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난달 0-1로 패할 당시와는 전력이나 자신감이 사뭇 다르다.‘네덜란드 트리오’ 송종국(페예노르트) 이영표 박지성(이상 에인트호벤) 등 일부를 제외하고 현역으로 뛰고 있는 월드컵 4강 주역이 대부분 출동한다.공격진에서는 최용수(이치하라)와 설기현(안더레흐트)이 가세해 안정환(시미즈) 이천수(울산)와 함께 화력을 한층 강화시켰고,수비진에도 ‘진공청소기’ 김남일(엑셀시오르)과 이을용(트라브존스포르)이 합류해 그물망이 촘촘해졌다. 코엘류 감독도 “지난번 한·일전에서 아쉬움이 컸지만 이번엔 만족할 만한 선수들이 모인 만큼 반드시 아픔을 되갚겠다.”고 벼른다. 이번 경기에서도 포백시스템을 토대로 4-2-3-1 포메이션을 가동할 생각인 코엘류 감독은 ‘일본 킬러’ 최용수를 최전방 공격수로 배치하고 안정환을 공격형 미드필더,설기현과 이천수를 좌우 날개로 기용해 보다 공격적인 전술을 구사할 방침이다. 취약점으로 지적된 수비도 대폭 보강돼 자신감이 크다.수비형 미드필더에 유상철(울산)과 김남일을 포진시켜 허리를 두껍게 하고 좌우 풀백엔 이을용과 이기형(성남)을 투입해 수비균형을 맞출 계획.중앙수비수에는 월드컵 멤버인 김태영(전남)과 조병국(수원)을 염두에 두고 있다.특히 부상한 최진철(전북)의 대타로 출장이 예상되는 신예 조병국은 지난번 경기에서 나가이 유이치로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내주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자책감을 풀겠다는 의지가 누구보다 강하다. 특히 지난번 경기에서는 초반에 너무 긴장했고,후반 막판에 선수교체가 잦은 점이 패인이라고 분석한 코엘류 감독은 이번에는 베스트 멤버 위주로 확실한 승리를 거두겠다는 뜻이 강하다.한편 대표팀은 일본 도착 직후 도쿄 미야코호텔에 여장을 푼 뒤 오후 6시20분부터 현지적응 훈련을 했다. 곽영완기자 kwyoung@ 아우는 ‘신화잇기' / 청소년팀 미국과 4개국대회 개막전 ‘월드컵 첫 승의 감격을 되살린다.’ 초여름 햇살이 따갑게 쏟아지는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 보조경기장의 오후.붉은 유니폼의 선수들이 흘린 땀방울로 새파란 그라운드는 흥건하다. ‘조련사’ 윤덕여 감독이 이끄는 축구 청소년(17세 이하)대표팀 선수들의 얼굴은 때이른 무더위에 빨갛게 익어 버렸지만 쏟아내는 함성만큼은 어느 때보다 우렁차다.31일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막을 올리는 4개국 청소년축구대회 출전을 앞둔 막판 담금질이 한창인 것이다. 이번 대회는 오는 8월 핀란드에서 열리는 세계청소년축구대회의 전초전이나 다름없다.폴란드를 제외하고 미국·아르헨티나의 베스트 멤버들이 고스란히 엔트리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첫 과제는 31일 오후 2시 개막전에서 맞붙는 미국을 이기는 것.미국전이 열리는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은 지난해 6월 한국이 폴란드를 상대로 48년 만에 월드컵 첫 승을 일궈낸 곳이자 ‘4강 신화’의 밑거름이 된 ‘꿈의 무대’.청소년대표팀은 이곳에서 미국을 이겨 대표팀의 도쿄 한·일전 리턴매치 승리를 ‘간접지원’할 계획. 역대 최강의 전력으로 평가되는 만큼 청소년대표팀 선수들은 모두 강한자신감에 차 있다.지난해 9월 아시아청소년선수권에서 16년 만에 감격의 우승을 움켜쥔 뒤 올해 1월 러시아국제청소년대회와 4월 이탈리아 그라디스카시티컵 국제청소년대회를 거푸 석권하면서 관록도 붙었다. 특히 지난해 4월 이후 20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한차례도 패하지 않고 14승6무를 기록,멈추지 않는 상승세를 과시하고 있다.여기에 지난해 10월 프랑스의 FC메츠로 유학을 떠난 5명의 해외파들까지 가세,상승세에 날개를 달았다. 한국의 강점은 탄탄한 조직력.철벽의 골키퍼와 포백수비,중원과 전후방을 아우르는 미드필드진 그리고 송곳 같은 투톱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덕여 감독은 “최상의 조직력에다 선수들의 전술에 대한 이해도가 한층 높아져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면서 “팀이 실질적으로 국내에 첫 선을 보이는 대회인 동시에 한·일월드컵 개막 1주년을 기념하는 대회인 만큼 선수들도 그날의 감동을 재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최병규기자 cbk91065@
  • 그라운드의 ‘청량제’ 치어리더 / “우리 없으면 지루할걸요”

    프로야구의 열기가 달아 오르면서 관중들의 함성도 덩달아 옥타브를 높인다.모두가 한몸이 돼 목이 터져라 응원하다 보면 쌓인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날아간다.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그라운드의 ‘감초’가 바로 치어리더다.이젠 야구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LG 트윈스 전속 치어리더인 김선아(26) 팀장과 송주현(25)·양현주(25)·김현숙(24)씨는 오늘도 현란한 율동과 의상으로 야구장을 수놓는다.“우리가 잘해서 LG가 좋은 성적을 거뒀다는 말을 듣겠다.”는 각오로 스탠드의 관중들을 격정적인 제스처로 ‘선동’한다.“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관중들이 열심히 호응해주거나,고생한다며 음료수 라도 나눠주며 격려해 주고,경기까지 이긴 날은 가슴 벅찬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치어리더는 겉보기만 화려하다.관중을 즐겁게 해주는 만큼 고통도 크다.이닝이 바뀔 때마다 1분30초동안 관중들 앞에서 응원을 펼친다. 투수 교체 타임까지 포함하면 경기당 15차례 이상 무대에 선다.이닝중에도 쉴 수는 없다.홈팀이 안타라도 때리면 일어서서 박수를 유도하고,소리도 질러 분위기를 띄운다.시각에 따라서는 여간 중노동이 아니다. 김선아 팀장은 “남자들의 2∼3배를 먹는다.”고 귀띔했다.송주현씨는 “경기가 끝나면 치마가 돌아간다.”고 고백했다. 격렬하게 몸을 흔드는 데다 멀리 있는 관중들에게도 잘보이기 위해 큰 동작을 하기 때문에 부상도 끊이지 않는다.무릎 등 관절이 안좋고,인대가 늘어나거나 발톱이 빠지고,발을 삐고 온몸에 멍이 드는 등 어느 한곳 성한 곳이 없을 정도다.게다가 불규칙한 식사탓에 위장약도 입에 달고 다닌다.야간경기가 많아 보통은 밤 11시가 넘어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들은 대개 주변의 권유로 치어리더에 뛰어 들었거나,학창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직업으로 선택했다.치어리더의 조건이 170㎝가 넘는 키와 늘씬한 몸매,보통 이상의 미모,춤실력 등 이른바 ‘킹카’여서 선택받은 사람만이 할 수 밖에 없다. 대학 때 에어로빅을 전공한 김선아 팀장은 춤에 관심을 갖다 이 세계에 발을 내디뎠다.역시 대학 때 에어로빅을 한 김현숙씨도 175㎝의큰키 덕에 스카우트됐다. 송주현씨는 유아교육을 전공한 응원단장 출신.발레를 전공한 양현주씨는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치어리더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담당 교수가 ‘외도’한다는 이유로 발레관련 과목 모두 F를 주는 바람에 학교를 1년 더 다니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들은 남들이 갖고 있지 않은 ‘끼’가 아니면 쉽게 선택하지 못했을 거라고 입을 모은다.타고난 재능에 각고의 노력을 덧붙여 명품을 만들어 내는 장인들처럼 치어리더는 온몸을 활용해 만든 작품을 날마다 무대에 올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몸매와 얼굴로 승부하지는 않는다.“노출이 심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에겐 일종의 유니폼입니다.발레나 운동선수들의 유니폼은 우리보다 더 심하지 않습니까.우리도 그들 못지 않게 하늘이 노랗게 느껴질 정도로 땀을 흘려 만든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치어리더는 ‘그라운드의 꽃’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다. 글·사진 김영중·강성남기자 jeunesse@ ■ 치어리더란 치어리더는 1860년 미국에서 처음 생겼다.1898년미네소타대학이 미식축구 경기에 최초로 등장시킨 것으로 전해진다.프로팀에서는 프로미식축구(NFL) 댈러스 카우보이가 1972년 현대적 모습의 치어리더를 둔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93년 프로야구 LG가 첫 선을 보였다.프로농구는 지난 97년 출범 때부터 치어리더를 등장시켜 코트의 흥을 돋우고 있다. 치어리더는 구단에 소속된 직원이 아니다.이벤트사에 소속돼 매년 구단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수많은 치어리더 가운데 소수만이 ‘직업’의 의미가 있는 프로무대에서 활약한다.야구는 한팀당 4명,농구는 8명이므로 1년내내 경기장에 나가는 치어리더는 줄잡아 40여명에 불과하다.이처럼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에 하고 싶어도 관문을 뚫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또 홈경기 때만 응원을 하기 때문에 생활이 되지 않아 다른 행사에 참가해야만 한다.한 시즌에 뛸 수 있는 야구 경기가 80여차례,농구 경기가 30여차례에 불과하다.각종 체육대회,홈쇼핑 채널 판매 도우미 등에 나서는 경우가 경기장에 서는 것 보다 더 많다.장마철에는 공쳐야 한다.한달 수입은 150만∼250만원선.
  • 세계인 - 우리는 이렇게 산다 / 중국인 ‘건강체조’ 뿌리내린 우슈

    |베이징 오일만특파원|베이징 자오양취(朝陽區)의 룽탄후(龍潭湖)공원은 타이지취안(太極拳) 애호자들의 아침 수련장으로 유명한 곳이다.흔히 우슈(武術)로도 불리지만 우슈안에 여러가지 분야가 있기 때문에 정확한 명칭은 타이지취안이다.명승지 항저우(杭州)의 시후(西湖)를 닮은 호수 주변의 아침 운무가 채 가시지 않은 아침 7시.공원에는 수련자들이 7∼10명씩 동아리를 지어 곳곳에서 수련이 한창이다.호수 주변을 중심으로 조깅족들과 검무(劍舞)체조,건강체조를 즐기는 노인들도 눈에 띈다. 호수를 반쯤 돌아 서남쪽 공터에 이르니 멋들어진 버드나무 아래에서 10여명의 수련자들이 몸을 풀고 있다.천수(陳武) 타이지취안 3대 전수자인 톈추톈(田秋田·70) 교수(베이징 중의대)는 이곳에서 3년째 일반인들을 상대로 타이지취안을 강습하고 있다. “타이지취안으로 사스를 물리친다.” 강습에 앞서 유연한 자세로 몸을 풀던 톈 교수는 100m 앞쯤에 있는 붉은 유니폼을 입은 수련자들을 가리키며 “3년 전 톈안먼(天安門)광장에서 열린 만인 타이지취안 시범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이라며 “내 제자들도 몇명 있다.”고 웃는다. 7시30분 톈 교수의 교습이 시작된다.20분 정도 전날 배운 동작을 복습하고 20분은 새로운 동작을 가르친다.수련생들은 모두 40∼50대의 중년남녀들.동작이 서툴러 한눈에 초보자로 보였지만 하나같이 열심이다.동작의 흐름은 완만하고 발차기 등 격렬한 움직임은 전혀 없다.유장한 호흡과 함께 하는 단련 모습은 조용한 호수의 환경과 너무나 어울린다. 이날 배운 새로운 동작의 이름은 옌수훙취안(掩手肱拳)이다.톈 교수가 전체 동작을 세번에 걸쳐 시범을 보인 후 한 동작씩 따라 했다.보기에는 별로 어렵지 않았지만 동작 하나하나에 함축된 의미과 기(氣)를 익히려면 한두번 배워서는 어림도 없다고 한다. ●5분만 하면 땀이 비오듯 수련을 시작한 지 두달이 됐다는 수련생 장런즈(張仁知·46)는 “보기에는 동작이 느리고 힘든 것 같지 않지만 실제로 해보면 5분만 해도 땀이 비오듯 흐른다.”고 말한다. 다른 수련생 황구이화(黃桂花·42)는 “장소에 영향을 받지 않고 도구도 필요없어 피로를 풀고 신체를 단련하기엔 최고”라며 “아침마다 40분씩 단련을 하고 나면 정신이 맑아진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베이징 시민들의 타이지취안 사랑은 유별나다.아침 출근 전 어떤 공원이나 공터를 가봐도 용담호 공원과 비슷한 풍경이다.사스가 기승을 부린 최근 한달 동안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톈씨는 “주위를 보세요.마스크 낀 사람이 하나도 없지요.이 단련만 하면 사스에 신경쓸 필요가 없어요.”라고 환하게 웃는다. ●애호가 1억명 넘어 베이징에는 베이징무술원과 베이징 무술협회에서 운영하는 전문 강습소가 있지만 파견 교습이 성행한다. 톈 교수는 “기업집단이나 주민자치위원회에서 교습을 신청하면 전문 강습소에서 사범을 파견해 소정의 실비를 받고 가르친다.”고 설명했다.이 때문에 베이징의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 어디서든지 단련을 하는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타이지취안 인구에 대해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톈 교수는 대략 1억명 안팎으로 추산한다.1∼9단까지 있으며 애호가들은 대부분 1∼3단이며 강습요원들은4∼6단이 보통이다.이보다 높은 7∼9단은 고수를 뜻하는 타이지취안가(太極拳家)로 불린다. 전통 타이지취안은 진식(陳式),양식(楊式),오식(吳式),무식(武式),손식(孫式) 등 5대 문파로 나뉜다.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전문가들을 불러모아 각파의 장점을 모아 통일 타이지취안을 만들었다.가장 보편적으로 보급된 양식을 기초로 24식,42식,48식이 인기가 높다.전국대회에서는 42식,48식이 사용되고 톈안먼광장 만인 시범대회 등 행사용으로 24식이 애용되고 있다. oilman@ ■태극권은 우주를 비롯,지구상의 모든 생물체는 음과 양의 양의(兩儀)를 중심으로 이원기(二元氣),즉 에너지를 만드는 근본이 있다.타이지취안 원리는 음양오행과 팔괘(八卦)의 원리에 따라 부드럽고 둥글게,빠르고 느리게 선을 따라 움직이면서 그 속에서 에너지를 만들고 신체에 기가 흐르는 12경락을 원활하게 소통시킨다는 것이다. 뇌의 명상을 촉진하고 단전에 모태 호흡이 되어 오장육부의 기능이 활성화되어 신체가 건강해지도록 동작이 이루어져 있다.명상·의료·무술이 일치돼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기공운동이다. 무당산 도가선인 장싼펑(張三峰)과 명나라 말 무장 천왕팅(陳王廷),타이지취안경의 저자 왕쭝웨(王宗岳) 등 3명의 창시설이 엇갈린다.현재 명말 무장이자 하남(河南)성 온현(溫縣) 진가구(陳家溝)의 제9대 천왕팅이 창시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1912년부터 1948년까지는 현대적 발전 시기다.신해혁명 후 교통수단의 개혁과 전쟁 수단의 발전은 무술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립 후 현재까지 대중보급 시기다.공산당은 민족문화 유산으로 인정,사회주의 경제건설과 밀접하게 결합시켰다.1953년부터 전국 무술운동 경기종목으로 선정됐고 의료 부문에서의 병치료 효과가 확인돼 대학교에서 정식수업 종목으로 인정하는 등 전국적인 보급이 시작됐다. ■ 태극권 3대 전수자 톈추톈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천스 타이지취안(陳式太極拳) 3대 전수자로서 현재 베이징 무술협회 천스 타이지취안 연구회 비서장을 맡고 있는 톈추톈(田秋田·70·태극권 7단) 교수를 베이징 자택에서 만났다. 허베이(河北)성 완셴(完縣)출신인 그는 70 고령이 무색할 정도로 생기가 넘쳤다.6층 아파트 꼭대기층까지 사뿐한 걸음으로 오른다.고요한 눈빛과 고즈녁한 목소리에서는 50년 가까운 수련의 힘이 느껴졌다. 그는 “타이지취안을 수련함에 있어 끊임없이 탐색하고 사색해야 한다.”며 2시간이 넘는 인터뷰에서 굴곡이 심했던 자신의 무술 인생과 생활 철학을 들려줬다. 어떻게 타이지취안에 입문했는지. -타이지취안에는 계승이 있다.나는 베이징 천스진식씨 제3대 수련자이다.제1대는 천화커(陳發科·1887∼1957) 스승으로 허난(河南)성 온현 진가구 진씨 제17대 계승인이기도 하다.제2대는 숙부 톈슈천(田秀臣)이다.21살(1954년)부터 숙부와 함께 살게 되면서 자연스레 타이지취안을 접하게 됐다. 무협소설에서 보면 무림고수들은 명산에서 수련을 하던데.수련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웃으면서)현대에 와서 영화에서처럼 산 속에서 무술을 닦는 일은 거의 없다.일상 생활과 병행하는 것이 대부분이다.우리 집안은 옛날부터 마오(筆·붓)를 만들었고 나도 붓을 제작하면서 수련했다. 1960∼62년,3년 재해 당시 양식이 부족해 마음껏 수련을 할 수 없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당시 중국 전역에서 숱한 사람들이 굶어죽을 정도로 식량이 부족했다.수련시간을 줄이고 허기를 달래며 정진을 계속했던 순간 순간이 아름다운 추억이다. 타이지취안의 가장 큰 매력은. -기(氣)를 양성하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인격을 닦을 수 있다.수련을 통해 자신이 상해를 받지 않게 보호할 수 있고 상대방을 물리치는데 응용할 수 있다.중의학에서는 타이지취안을 수련하면 만성 질병을 치료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일반 타이지취안과 차이는. -내가 가르치는 타이지취안은 배우기 쉽게 간소화시킨 현대식이 아니다.천스 타이지취안은 1대 천화커 스승이 1928년 베이징에 와서 다른 성씨의 제자들에게 전수하면서 형성되었다.수련시 나이에 따라 동작 폭과 힘·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본격 보급을 시작한 게 언제부터인가. -99년부터 베이징 무술원의 요청을 받고 외국인들에게 태극권을 가르치기 시작했다.미국,일본,영국,호주 등에서온 제자들이 있고 한국 학생도 7∼8명이다.84년 숙부가 세상을 뜬 후 유언대로 대중들을 상대로 진식 타이지취안을 보급하고 있다.99년부터 베이징 중의약대 교수로 초빙돼 대학생들도 가르친다. 한국에서도 타이지취안이 인기가 높은데. -한국에서 건강과 인격을 함께 높일 수 있는 무술로 알려져 사랑을 받고 있다고 들었다.내가 키운 제자가 대구에서 타이지취안 도장을 운영하고 있다.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어깨와 팔꿈치·손목 등 관절의 긴장을 풀면서 느긋한 마음으로 수련하기를 권하고 싶다.
  • 호반의 도시 달구는 ‘뜨거운 몸짓’ 14년 / 춘천 국제마임축제 예술감독 유진규

    해마다 5월이면 호반의 도시 춘천은 소리나 말은 없어도 뜨거운 몸짓(마임)이 뿜어내는 열기로 전체가 들끓는다.‘소리없는 아우성’의 진원지는 올해로 15회를 맞는 ‘춘천 국제마임축제’.이 잔치가 우리의 대표적 지역축제로 자리잡기까지 예술감독 유진규(51)라는 ‘광대’는 독보적이다. “88년 서울 ‘공간 사랑’소극장에서 열린 ‘한국 마임 페스티벌’을 본 춘천MBC가 이듬해 초청공연을 제의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모든 게 집중돼 있는 서울의 틈바구니에 저까지 낄 필요가 없지 않으냐고 생각했습니다.”. ●20대에 꿈꾼 ‘한국의 1세대 마이미스트' 그는 당시 서울에서의 무대활동을 접고 82년부터 춘천에 내려가 마임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수의사가 꿈이었던 한 청년(그는 건국대 수의학과 70학번)이 학교생활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다가 ‘연극부 모집’공고를 본 것은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표현 욕구’를 채울 공간을 만난 그는 2년 동안 학교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교문 바로 옆의 연극반으로 직행하는 생활을 계속했다.자신의 숨은 끼를 발견한 ‘광대’는 내친 김에 학교마저 그만두고 극단 ‘에저또’에 입단해 전위연기를 배우면서 한국의 1세대 마이미스트의 꿈을 키운다.“당시 ‘에저또’는 최고의 전위극단이었습니다.사실적 연기보다는 신체 표현과 실험성을 강조했기에 자연스레 마임을 만날 수 있었죠.저랑 궁합이 맞더라고요.” 유진규는 75년부터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마임 공연을 시작했다.초기여서 마이미스트라고 해야 4∼5명 정도였고 마임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도 낮았지만 ‘한국에서 마임 살리기’라는 사명감으로 뛰었다고 한다.이런 황무지에서 춘천에서 마임축제를 개척했다.4명의 마이미스트가 딱 하루만 공연하는 초라한 모습이었다.“축제 2년 때 비로소 처음으로 관객의 열기를 느꼈죠.500석 극장에서 관객과의 일치감을 맛보며 ‘춘천으로 잘 옮겼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구요.아직 마임의 ㅁ도 모를 시절이지만 시민들의 예술적 바탕은 갖춰져 있구나라는 느낌에 떨리더라고요.” 일단 싹튼 축제의 씨앗이 본격적으로 꽃을 피운 계기는 유진규의 해외연수 경험.93년문예진흥원 지원프로그램으로 미국 프랑스 인도 등지를 둘러본 뒤 그의 눈은 깊어지고 넓어졌다.“세 나라의 마임과 축제를 두루 살폈는데 ‘우리는 축제도 아니다.’라는 자괴감에 빠졌습니다.그들의 광적인 열기와 자발적 참여를 보노라니 무슨무슨 단체니,학생 등이 동원된 우리 축제의 슬픈 자화상이 떠오르더군요.” 94년부터 춘천 마임축제는 질과 양 모두에서 거듭 태어난다.공연장을 뛰쳐나가 로비와 극장 바깥까지 무대로 활용하여 도시 전체를 축제장으로 꾸미려는 혁신적 시도가 이뤄졌다.그러나 ‘껍질 깨기’는 쉽지 않았다.“공연팀을 거리 등 모든 곳에 침투시켜 축제 분위기를 띄우려 했죠.그런데 너무 앞섰는지 반발도 만만치 않아서 ‘로비나 극장 바깥에서 공연하면 극장의 품위가 떨어진다.’는 극장장과 씨름하기도 했죠.” ●르몽드紙에 공연면에 실리기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새롭고 참신하다.”는 찬사가 이어졌다.이때부터 장르도 음악과 무용 등으로 넓혔다. 그러나 탄탄대로만 펼쳐진 것은 아니었다.97년엔 사무국 내에서 ‘장기집권’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와 실망한 나머지 한해동안 활동을 중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진규 없는 춘천 마임축제’는 상상하기 어려웠다.다시 98년 복귀해 창작혼을 불태웠다.주말에만 특별히 ‘고슴도치섬’(위도)에서 밤샘 공연하는 ‘도깨비 난장’이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도 이때였다. “고슴도치섬에 들어온 관객은 토요일 오후 1시부터 일요일 오후 5시까지 ‘무박2일’ 논스톱 공연을 볼 수 있습니다.내년엔 ‘무박3일’로 늘릴 계획이고요.” 쉼없는 열정과 끊임없이 샘솟는 아이디어는 마침내 2000년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프랑스 페리그 미모스 마임축제’초청으로 보답 받았다.사람에 치여 쉬는 기간중 만든 ‘마음을 비워야 모든 게 보인다.’는 주제의 ‘빈손’이 미모스축제의 예술감독 피터 뷰의 마음을 움직인 것.그의 작품은 당시 르몽드 공연면에 실리기도 했다. ●“주민 100% 참여하는 축제 만들고파” 그의 머리속엔 마침표가 없다.예술(공연)에서 머물지 않고 축제의 정신을 오롯이 살리려면 남은 과제가 많기 때문.그 가운데 하나가자발적 참여를 넓히는 것이다.“조금씩 의식은 바뀌고 있지만 주민들의 참여가 30%밖에 안 됩니다.축제를 즐기려면 완전히 벗어야 되는데 아직 유니폼 문화에 익숙한 탓이겠지요.그들에게 다가서는 노력도 필요하죠.” 춘천시에서는 마임축제만 아니라 인형극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등 다양한 축제가 벌어진다. 춘천시의 문화마인드가 향기로울 것 같아 물었더니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축제 6회동안 우리가 무일푼으로 고군분투하는데 춘천시가 도와준 게 거의 없습니다.그러다가 94년 실험적 작업으로 반응이 좋자 축제 이름에 ‘춘천’과 ‘국제’를 넣는걸 전제로 지원을 제의해왔죠.그전까지는 ‘한국 마임페스티벌’이었습니다.” 마임을 한마디로 정의해달라는 부탁에 “모든 움직임 안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움직임으로 드러내는 예술”이라고 했다.그의 혼과 땀이 깃든 축제는 28일부터 5일 동안 열린다. 이종수기자 vielee@
  • 금녀의 벽 깬 3인의 스포츠 女전사 / 남자만 하라고? 난 그렇게 못해

    ‘금녀의 벽’을 허문 처녀전사들-.남성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진 스포츠 종목에 뛰어든 당찬 여자 선수들.육체적 한계와 편견에 도전하는 이들의 투혼은 차라리 아름답다.연신 쏟아내는 비지땀으로 붉게 물든 이들의 얼굴엔 꿈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가득하다.프로복서 이인영(32),레슬러 이나래(24),야구선수 안향미(22)는 꿈을 이루기 위해 척박한 현실과 싸우는 처녀전사들이다. 박준석기자 pjs@ ■레슬러 이나래 아직까지 주위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물론 상관하지는 않는다.그에겐 ‘올림픽 메달’이란 꼭 이뤄야 할 꿈이 있기 때문이다. 55㎏급의 그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레슬링에서 메달권 진입이 가장 유력한 선수다.여자레슬링은 아테네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우리나라는 아직 초보단계지만 그를 비롯한 몇몇 선수들이 무한한 가능성을 보이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그는 지난 1999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여자레슬링 사상 첫 동메달을 땄던 간판스타다.2001년 12월 불가리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내로라하는 강호들을물리치고 당당히 4위에 올라 국제무대에도 이름을 알렸다. 그는 원래 유도선수였다.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시작한 유도(공인 4단)를 레슬링에 접목,상대의 허를 찌르는 태클에 능하고 고난도 기술인 목감아 돌리기도 잘한다.용인대 2학년때인 98년 레슬링에 입문했다.그러나 주로 유도를 하고,레슬링은 연습은 하지 않고 시합에만 출전했다.2년 동안 이런 ‘이중생활’을 하다가 2001년 졸업을 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레슬링으로 전향했다. 레슬링을 처음 시작했을 때 특히 주위 친구들이 많이 말렸다고 한다.종목 특성상 여자선수들이 하기에는 무리라는 소리가 있을 정도였기 때문에 초반엔 어려움이 많았다.여기에다 몸에 달라붙는 유니폼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그러나 성적이 좋지 않을 때 말고는 레슬링 선수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 아직 남자친구가 없다.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뒤에 사귀고 싶단다.잘생긴 사람이나 돈 많은 사람보다 착한 사람이 좋단다. 그는 “세계수준과의 차이도 걱정이지만 더 심각한 것은 레슬링을 하려는 어린 선수들이 없다는 데 있다.”면서 아쉬움을 나타냈다. ■복서 이인영 한국 최초로 여자프로복싱 세계챔피언을 꿈꾼다.하루도 거르지 않고 샌드백과 씨름을 하고 있다.10세 때 미국에서 열린 고 김득구 선수의 세계타이틀전을 보고 프로복싱을 동경하기 시작했지만 이후 20년이 지나서야 정식으로 글러브를 낄 수 있었다. 지난해 11월 플라이급 초대 한국챔피언에 오른 그는 다음달 7일 서울에서 국제여자복서협회(IFBA) 챔피언 미셸 셧클리프(34·영국)와 타이틀전을 갖는다.이기면 우리나라 첫 여자프로복싱 챔피언의 영예를 안는다. 매일 새벽 10㎞를 달리며 하루를 시작하는 그는 체육관을 집으로 여기고 한 방울의 땀까지 쏟아낸다. 주위에선 “결혼은 언제 할 거냐.”고 성화지만 “복싱과 결혼했다.”고 명확하게 대답한다.32세의 나이가 다소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차기 전에는 결혼은 아예 생각도 않을 작정이다.결혼은 나중에 ‘착한 남자’와 할 거란다.대전료도 얼마 되지 않고 뚜렷한 스폰서도 없어 넉넉하지 못하지만 복싱을 위해 모든 어려움을 감수할 자세가 됐다.택시기사도 해봤고,트럭기사도 경험해본 그는 이제는 전문복서가 되기 위해 다니던 직장도 그만 두었다.지금은 갖고 있던 휴대전화도 없앴고,체육관 인근에서 자취를 하면서 챔피언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힘이 웬만한 남자보다 센 그는 어린시절 ‘깡패’라는 별명까지 얻었을 정도였다.지금도 힘이 세 남자 같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여자인 만큼 이런 말들이 곱게 들릴 리는 없지만 크게 신경쓰지는 않는다.이제는 꿈이 생겼기 때문에 어디서나 당당하다.육상 핸드볼 야구 등 모든 운동에도 소질을 보였다. 복싱을 좋아했지만 여건은 좋지 않았다.특히 사회적 편견이 제일 두려웠다.하지만 그의 집념은 이를 넘기에 충분했다.용기를 내 글러브를 끼었고 지금은 한국 최초의 세계챔피언을 향해 쉴 새 없이 주먹을 날리고 있다.꿈이 현실로 다가옴을 느끼면서. ■4번타자 안향미 야구를 위해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간 열성파다.덕수정보고 시절 국내 유일한 여자 야구선수로 주목을 받았다.그러나 그뿐이었다.그를 받아줄 대학팀이나실업팀은 없었다.또 여자야구팀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그가 설 자리는 없었다.한때 고교졸업후 유명세를 타고 미국 진출까지 추진됐지만 결국 좌절을 맛봤다.서서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그도 수도권 고등학교에서 잠깐씩 강의를 해 주며 야구에 대한 열정을 이어가는 정도였다. 끝내 야구를 포기할 수 없던 그는 결국 일을 저질렀다.야구를 위해 지난해 6월 홀연히 일본으로 건너간 것.아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사회인 야구팀 도쿄 드림윈스에 입단,4번타자 겸 3루수로 활약하고 있다.처음엔 고생도 많았다.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야구를 사랑하는 그의 열정에 동료들도,감독도 감탄할 뿐이었다.이제는 당당한 팀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지금은 대학 진학을 위해 일본어학교에도 다닌다.여자야구팀이 있는 대학이 있기 때문이다.한국의 부모님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한다.지난해까진 식당에서 일했고,지금은 숙소 근처의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나르는 일을 한다.아르바이트하랴,공부하랴,운동하랴 몸이 열개라도 부족한 상황이지만 야구를 계속할 수 있어 행복하다. 요즘은 오는 8월 열리는 전국대회를 위해 맹훈련 중이다.투수의 꿈도 버리지 않고 있다.“최근 끝난 봄철대회에서 타율 3할 정도를 기록했지만 썩 만족스러운 성적은 아니다.”면서 “전국대회에선 투수로도 활약할 예정”이라고 말했다.그러고는 “야구선수로 성공하기 전까지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하프타임 / 박찬호 21일 메이저리그 복귀

    지난달 29일 부상자 명단에 오른 박찬호(텍사스 레인저스)가 이르면 오는 21일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 복귀할 전망이다.텍사스 지역 언론들은 11일 “박찬호가 앞으로 두 번 더 마이너리그 경기에 등판한 뒤 오는 21일부터 열리는 탬파베이 더블레이스와의 홈 3연전에 선발로 나선다.”고 일제히 보도했다.박찬호는 13일 더블A 프리스코 소속 선수로 위치타와의 홈경기에 출전한 뒤 18일에는 트리플A 오클라호마 유니폼을 입고 멤피스전에 나갈 예정이다.이어 텍사스로 이동해 구위 점검을 받고 빅리그로 올라오게 된다.이에 따라 이르면 21일,5일 로테이션을 지킬 경우 23일 등판이 예상된다.
  • 프로축구 / “팀 바꾸니 잘 차네”김도훈·김종현등 이적생 맹활약

    이적생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지난해 말 프로축구에서는 어느 해보다 많은 트레이드가 단행됐다.이에 따라 올 K-리그에서는 많은 이적생들이 새 유니폼을 입고 활약중이다.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대부분이 새 둥지에 빠르게 적응하며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 이적생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스타는 전북에서 성남으로 옮긴 노장 김도훈.득점 1위(7골)에 나서는 등 지난해와는 판이하게 다른 공격력을 보여주고 있다.신태용·샤샤 등 그를 도와주는 도우미들과 구단의 지원이 든든하기 때문이다. 이적과 동시에 급부상한 선수는 대전의 김종현.전남에서 이적한 프로 6년차 김종현은 2위 대전이 거둔 5승 가운데 4경기에서 골을 뽑아 내며,팀의 7게임 무패행진을 이끌고 있다. 지난 시즌 전남에서 교체 멤버로만 12경기에 출전해 단 한 골에 그친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제 세상을 만난 셈이다.프로축구연맹이 홈페이지(www.k-leaguei.com)를 통해 실시중인 팬 투표에서도 이적생 가운데 가장 좋은 평가(28%)를 받고 있다.역시 전남에서 신생 대구로 적을옮긴 노상래도 재기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눈에 띈다.지난해 전남에서 5경기에 교체 출전한 것을 포함해 고작 6경기에 나서 단 한 골도 넣지 못한 채 해외 진출과 은퇴의 갈림길에서 방황했다. 박종환 감독의 부름을 받고 대구에 새 둥지를 튼 뒤 벌써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공격라인을 이끌고 있다. 곽영완기자 kwyoung@
  • 프로야구/””2년생징크스 우리에겐 없다””

    “2년차 징크스가 뭐라고요.” 지난해 프로야구에 첫 선을 보인 ‘무서운 아이들’이 02∼03시즌에서도 여전히 거센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투수 조용준(24·현대) 김진우(20·기아) 제춘모(21·SK)와 외야수 박용택(24·LG) 등은 ‘2년차 징크스(Sophomore Jinx)’라는 말을 무색하게 하며 투·타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2년차 징크스는 ‘될성부른 떡잎’이 이듬해 부진했을 때 쓰는 말.특히 구질이 노출되고 혹사당한 투수들이 많이 겪는다. 전문가들은 “상대 타자들이 집중적인 분석을 통해 약점을 공략하는 데다 프로가 별 게 아니라는 본인 스스로의 자만심,구단의 혹사 등 세 가지가 2년차 징크스의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분석한다.김광림 광주방송 해설위원은 “1년차 선수들은 겁없이 달려드는 데다 상대 팀에서 장·단점을 미처 파악하지 못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러나 다음 시즌엔 얘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특히 “투수의 경우 젊으니까 한계를 모르고 던지다 보면 무리가 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징크스에 운 스타들 염종석(30·롯데)과 김수경(24·현대) 등이 대표적.부산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프로에 뛰어든 고졸 루키 염종석은 데뷔 당시 무려 17승(9패6세이브)을 따내며 방어율 2.33이란 눈부신 성적을 올렸지만 이듬해 10승10패7세이브,방어율 3.41로 뚝 떨어졌다.어깨부상으로 몇차례 수술까지 받았으며 이후 전성기 때의 구위를 되찾지는 못하고 있다.심한 경우에는 선수 생명이 위협받기도 한다. 지난 1986년 신인왕 김건우(40·전 MBC)는 부상에 시달리다 6년만 뛰고 유니폼을 벗었다.89년 신인왕 박정현(34·전 태평양)도 비슷한 경우다. ●징크스를 이긴 스타들 하지만 올시즌에서는 징크스를 모르는 선수들이 유난히 눈에 띈다. 우선 조용준은 지난해 구원왕과 신인왕을 한꺼번에 움켜쥔 기세를 이어가고 있다.시속 140㎞대의 날카로운 슬라이더와 신인답지 않은 두둑한 배짱을 바탕으로 여전히 최고의 마무리임을 뽐내고 있다.지난 6일 현재 19이닝을 던져 12세이브(1패)로 구원 단독 1위이며,방어율은 0점대(0.95).뿐만 아니라 9경기 연속 구원에 성공하며 역대 최소인 12경기만에 10세이브 고지를 밟았다. 김진우는 시즌 초반부터 최고 구속 150㎞를 웃도는 불같은 강속구를 뿌리며 타자들을 압도했다.최근 ‘폭행 파문’에 연루된 데다 오른쪽 손목과 손등을 다쳐 2군으로 내려가 있지만 팀의 운명을 좌우할 특급 투수로 평가된다.21과 3분의 2이닝을 던져 2승(방어율 1.25)을 올렸다.지난해에는 12승11패 방어율 4.07. 제춘모는 현재 7경기 18이닝동안 1승4홀드를 기록,이상열(현대) 정대현(SK)과 함께 홀드 공동 3위에 나섰다.방어율은 3.50.지난해 성적은 9승7패 방어율 4.68. 타자로서는 지난해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떠올랐다 막판 부상으로 쓴잔을 든 박용택이 눈길을 끈다.팀내 최다득점(13점)과 최다도루 공동 1위(7개)로 LG 타선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타율이 .236로 지난해(.288)보다 조금 떨어졌지만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게 코칭스태프의 귀띔이다. ●어떻게 극복했나 이들의 공통점은 데뷔 첫 해에 기대치를 웃돌았다고 자만하지 않고 꾸준히 약점을 보완하고,다양한 기술을 개발했다는 것. 조용준의 경우 동계훈련을 통해 껄끄러운 상대 타자의 장·단점을 분석하는 데 주력했다.김시진 코치는 “동계훈련을 통해 우선 제구력을 더욱 가다듬고 공배합을 변화시킨 것이 올시즌에서도 변함없이 활약하고 있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김진우는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에 마무리로 나섰다가 실패를 맛본 게 오히려 보약이 됐다.전지훈련을 통해 변화구와 패스트볼의 위력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했다는 평가다. 김영중기자 jeunesse@
  • [임은주의 킥오프] 피는 물보다 진하다

    오는 8월 열릴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에 북한선수단이 온다니 불현듯 떠오르는 일이 있다. 지난 1990년 급조된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돼 베이징아시안게임과 남복통일축구경기를 위해 남자 대표팀과 함께 북한을 방문했다.실향민 2세로 황해도에 많은 친척이 있는 나에게는 남다른 감회가 있었다.당시 남자 대표팀은 북한과 친선경기가 가능했지만 실력차가 큰 여자 대표팀은 남북 선수들을 섞어 연습경기 형식으로 뛴 기억이 난다.당시 한국수비의 핵인 나와 북한공격을 이끈 이홍실은 국가대표를 은퇴한 지금 국제심판으로 함께 활동하고 있다. 당시 축구실력은 홍실이에게 많이 뒤졌지만 심판인 지금은 모든 상황이 반대다.홍실이는 여전히 심판으로 활동하지만,나는 홍실이를 가르치고 평가하는 감독관이 됐다. 친척이 북한에 많은 나로서는 북한 친구들의 살아가는 모습에 가슴 아플 때가 있다.처음 국제경기에서 북한심판들의 장비를 보고 많이 놀랐다.예를 들어 심판시계는 1분 1초라도 정확하게 재기 위해 전문적인 초시계를 사용하는데,홍실이는 80년대에나 차던 무거운 은색 초침시계를 사용하고 있었다.“이 시계로 시간은 어떻게 계산하느냐.”고 묻자 웃으면서 “대강 보는 거지 뭐.”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유니폼도 남자 심판들과 돌아가면서 함께 입어 아이가 어른 옷을 입은 듯하고 체력 테스트 때 신는 신발은 남자들이 군대에서 신는 무거운 찰고무 신발이었다.걱정하는 나에게 “일 없어(괜찮아).”라며 씩씩하게 뛰던 모습이 생각난다.그 때 이후 국제경기에 나갈 때마다 심판장비는 물론이고 그 친구들이 원하는 물품을 다 가지고 가느라고 내 가방엔 내 짐보다도 북한친구들 줄 선물이 더 많았다. 우연찮게 나는 북한과 중국,북한과 일본의 경기를 전담하다시피 많이 배정받았다.그 때마다 나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북한선수들을 철저히 외면했지만 북한선수들은 오히려 너무 좋아 어쩔 줄을 몰라했다. 경기 중에도 같은 언어를 사용하니 모든 선수가 계속 “언니,언니“하며 말을 붙인다.오해받을까 봐 계속 영어로 응수하지만 북한이 지고 있거나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주장에게 왼쪽이 약하니 그쪽을 공격하라거나,과감하게 드리블해 들어가라고 감독같이 지시를 할 때가 있다.경기가 끝나면 잠시나마 본분을 잃은 것이 후회되지만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한 것 같다. 지난해 부산아시안게임에서 만난 홍실이가 또 보고 싶다.지금까지 선수로,심판으로 13년이나 이어온 우정이 통일이 된 이후에도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축구 국제심판 rtiger2002@hotmail.com
  • [스포츠 라운지] 80년대 ‘고공농구’ 선구자 한기범·김유택

    “벨이 울릴 때마다 휴대전화를 반짝거리게 하는 ‘튜닝’이 유행이래.대리점에 맡기고 갈 테니 먼저 들어가.” “남자 망신 다 시킨다니까.잘 걸리기만 하면 됐지,치장은 무슨…” 돛대처럼 우뚝 솟은 두 사내가 2일 모교인 서울 명지고 앞에서 휴대전화 액세서리 문제로 티격태격한다.어느새 이들은 사인을 받기 위해 달려온 ‘키 작은’ 후배들에게 파묻혔다. 지난 1980년대 중반 국내에 처음으로 ‘고공농구’를 선보인 한기범(205㎝)과 김유택(197㎝).영원한 ‘쌍돛대’로 남을 것만 같던 이들도 어느덧 불혹이 됐다.호적상으로는 김유택이 한 살 많고,실제로는 동갑(40)이다.그러나 1년 선배인 한기범이 언제나 형이다. ●동반자이자 라이벌 만남은 김유택이 지난 80년 명지고에 입학하면서부터 시작됐다.김유택은 키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농구부에 발탁됐고,외롭게 골 밑을 지키던 2년생 한기범은 단박에 이 신입생이 동반자가 될 것을 직감했다. 둘은 중앙대-기아로 이어지는 코스를 1년 터울로 밟았다.한기범이 96년 은퇴할 때까지 15년 동안이나 한솥밥을 먹었다.전성기인 83년부터 10년 간은 태극마크도 함께 달았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언제나 라이벌 의식이 팽팽하게 흘렀다.연습이 끝나도 둘은 항상 코트에 남았다.먼저 등을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다.늦게까지 남기 경쟁에서는 항상 김유택이 이겼다.한기범은 “내가 먼저 연습장을 떠나지 않으면 유택이는 밤을 꼬박 새울 태세였다.”고 말했다. 이들이 맞붙은 적은 딱 한번 있다.86∼87농구대잔치에서 기아의 유니폼을 입은 한기범과 허재(38·TG) 강동희(37·LG)와 중앙대 ‘허·동·택’ 트리오를 이룬 김유택이 센터 대결을 벌였다.접전 끝에 김유택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서로 다른 ‘제2의 인생’ 한기범은 방송인·사업가로,김유택은 모교 농구부 감독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현실이 녹록지 않지만 이들은 “아직 행복하다.”고 말한다. 한기범은 코믹한 모습으로 방송에 자주 등장한 데다 큰 키 때문에 어디에 가든 사람들이 쉽게 알아 본다.여자 후배들이 키를 재보자고 졸졸 따라다니자 황급히 승용차 안으로 숨어버린 그는 “명동거리에 나간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며 빙그레 웃었다. 싱거워 보이지만 ‘한기범의 키 크는 교실’을 운영하고,성장을 촉진시키는 건강보조식품을 개발·판매하는 벤처기업의 대표이사다.한기범은 “농구밖에 몰랐던 내가 이제야 세상이 무서운 줄 알았다.”면서 “길을 잘 닦아 후일 유택이와 함께 사업을 번창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김유택은 아직 농구라는 ‘솔잎’을 먹는다.감독으로 부임한지 불과 6개월만인 지난 3월 명지고를 40년 역사의 봄철연맹전 첫 우승으로 이끌었다.명지고의 전국 제패는 98년 쌍용기대회 이후 5년만이다.은퇴 뒤 프로무대에서 코치로 활약한 김유택이 수입이 절반에 불과한 모교 감독직을 수락한 것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곳”이라는 생각 때문이다.아직 현역인 후배 허재와 강동희를 보면 가슴이 찡하다.지난달 02∼03시즌 플레이오프 4강전에서 ‘지존’을 놓고 맞대결을 펼친 두 후배의 모습은 아름답고도 안타까웠다. 김유택은 점심으로 김치볶음밥을 먹으면서 “기범이 형이 심장수술을 해 건강이 좋지 않다.”며 걱정을 했다.김유택이 먼저 자리를 뜨자 한기범은 “나보다는 유택이가 더 부각될 수 있도록 써달라.”고 특별히 부탁했다.그들의 우정은 키만큼이나 높아 보였다. 글 이창구기자 window2@ 사진 강성남기자 snk@ ■키 큰것 빼고는 천양지차 땀에 젖은 운동복 속에서 15년을 함께 뒹군 한기범과 김유택은 키가 크다는 것 말고는 사뭇 다르다. 우선 성격이 천양지차다.한기범은 소탈하고 유연하지만,김유택은 한마디로 ‘칼’ 같다.이 때문에 대학 때 후배들은 1년 선배인 한기범보다는 김유택을 훨씬 어려워했다. 느긋한 성격 탓에 한기범은 슬럼프라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다음에는 잘 되겠지.”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그러나 승부욕이 강한 김유택은 달랐다.경기에서 지는 날이면 잠을 설치며 복수의 칼을 갈았다.불 같은 성정으로 운동을 포기하려 한 적도 여러 번 있다. 두 사람의 승용차를 보면 취향을 단박에 알 수 있다.세심한 한기범은 승용차에 온갖 치장을 다했다.김유택의 밴 내부에는 주유소에서 준 화장지 통이 장식물의전부다.좋아하는 음식도 다르다.한기범은 양식을 좋아하지만 김유택은 된장찌개 등 한식을 즐긴다. 아들 둘을 나란히 둔 이들은 자식에 대한 기대도 다르다.한기범은 아들이 자신의 뒤를 잇기를 바라고,김유택은 절대 운동선수로는 키우지 않겠단다.두 꺽다리는 “농구가 아니었다면 함께 어울리기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다르기 때문에 더 각별하다.”고 말했다.
  • 조성민, 다시 던진다

    조성민(사진·30)이 국내 무대에서 못다이룬 야구의 꿈을 펼친다.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유니폼을 벗은 조성민은 29일 한국야구위원회(KBO)를 방문,2004년 신인드래프트 신청서를 제출했다.이에 따라 조성민은 최창양(전 삼성,은퇴),최경환(두산),정민철(한화),이종범(기아),이상훈(LG),조진호(SK),정민태(현대)에 이어 해외무대에서 뛰다 국내에 복귀하는 8번째 선수가 됐다. 지난 91년 신일고를 졸업한 조성민은 KBO 규약에 따라 서울지역 연고팀인 LG와 두산이 1차 지명권을 갖게 됐다.LG와 두산이 조성민을 영입할 의사가 있으면 2주일 이내에 1차 지명 여부를 밝혀야 하며 만약 양 구단이 지명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6월30일로 예정된 신인 2차드래프트로 넘겨져 8개구단 모두의 지명을 받을 수 있다. 두산은 “조성민의 능력에 아직 매력을 느낀다.”고 말한 반면 LG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겠다.”는 반응이다. 고교와 대학(고려대)에서 동기생인 임선동(현대),박찬호(텍사스 레인저스)와 뜨겁게 경쟁한 조성민은 96년 계약금 1억 5000만엔(15억원)을 받고 일본의 명문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했다.조성민은 유망주로 각광을 받았지만 잇단 부상으로 꿈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데뷔 3년째인 98년.전반기에만 무려 7승을 챙기며 올스타에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지만 그 올스타전에서 불의의 팔꿈치 부상을 당한 것.조성민은 이후 수술과 재활의 악순환을 반복하다 지난해 8월 결국 은퇴했다.조성민의 일본 통산 기록은 7년간 11승(10패) 11세이브,방어율 2.84. 이 때문에 조성민의 현재 몸상태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신인 드래프트를 위해 지난 4월부터 러닝과 캐치볼로 몸만들기를 시작한 조성민은 “아직 팔꿈치 치료를 받고 있어 뭐라 말할 단계는 아니다.”고 밝혔다.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말솜씨로도 유명한 조성민은 톱스타 최진실과의 결혼으로 더욱 주목을 받았지만 2년만인 지난해 말부터 갈등을 빚고 있다. 김민수기자 kimms@ ■조성민 인터뷰 조성민은 드래프트를 신청하면서 “일본에서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컸는데 한국에서는 즐겁게 야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 야구에 돌아오게 된 이유는. -지난해 한국시리즈를 보면서 마음이 묘해졌다.선후배들이 뛰는 모습을 보고 이 나이에 벌써 운동을 그만 둬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입단에서 은퇴까지를 다룬 일본 잡지의 기사도 운동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해 한국에서 운동을 계속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LG나 두산이 1차 지명인데 어디서 뛰고 싶나. -두 팀 모두 좋아하는 부분이 있는 팀이다.아직 두 팀을 비롯해 어떤 팀과도 접촉해보지 않아 어디에서 뛸 지는 모르겠다.조건은 터무니없지만 않다면 상관없다.오늘 드래프트를 신청한 것도 야구를 하고 싶어서다.자존심을 내세우지는 않을 것이다.지금은 몸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현재 정확한 몸 상태는. -뭐라 말할 수 없다.이달 초부터 집 근처 고등학교에서 러닝과 캐치볼 등 간단한 훈련을 했는데 혼자 하다보니 잘 이뤄지지 않았다.팔꿈치는 여전히 치료중이다. 일본 생활을 평가한다면. -그다지 좋은 기억이 없다.부상을 당하고부터 한 4년을 대부분 재활하는 시간으로 보냈고,중간중간 경기를 할 때도 의욕이 없었다.특히 정신적 스트레스가 너무 많았다. 김영중기자 jeune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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