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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TN포토] 김보성의 ‘마지막 인사’

    [NTN포토] 김보성의 ‘마지막 인사’

    故 최진영의 유골이 31일 오후 고인의 장지인 경기 성남 갑산공원에서 영면에 들기 전 배우 김보성이 마지막 인사르 전하고 있다. 서울신문NTN 한윤종 기자 양평(경기도) han0709@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故최진영, 눈물과 빗물 속 슬픔의 발인

    故최진영, 눈물과 빗물 속 슬픔의 발인

    故 최진영이 하늘도 슬퍼 비를 뿌린 31일 오전 영결식을 갖고 영면에 들었다. 최진영의 장례식은 시신인 안치된 서울 강남 세브란스병원에서 오전 8시께에 열렸다. 고인의 영결식은 장례식장 1층에 마련된 영결식장에서 기독교장으로 치러졌다. 영결식을 마친 고인의 시시은 고인이 생전 마지막으로 다녔던 모교인 한양대학교로 향한다. 고인은 누나 故 최진실의 뜻에 따라 지난해 한양대학교에 입학해 연기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현재 한양대학교에는 고인의 분향소가 마련돼 있다. 화장된 고인의 유골은 먼저 세상을 떠난 누나 故 최진실 곁에 안치 된다. 배우 겸 가수로 생전 큰 인기를 얻었던 故 최진영은 지난 29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 연예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큰 충격을 던저주었다. 사진=서울신문NTN DB서울신문NTN 이재훈 기자 kin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죽음마저도”… ‘비운의 남매’ 최진실-진영

    “죽음마저도”… ‘비운의 남매’ 최진실-진영

    故최진실의 동생이자 배우 최진영이 29일 사망했다. 향년 39세. 최진영은 이날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서 변사체로 발견, 급히 영동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병원 측은 정확한 사인을 밝히지 않았으나 자살로 추정되고 있다. 최진영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안타까운 건 친누나인 최진실이 목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불과 1년 6개월에 들려온 비보이기 때문. 최진영은 최진실이 자살로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 정옥숙씨와 함께 두 조카 환희(11), 준희(8)를 돌봐왔다. 최진실이 사망한 뒤 최진영은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망 직후 생부인 조성민과 양육권으로 인한 갈등으로 한 차례 시련을 겪었으며 지난해 8월 최진실의 유골함을 도난당하는 불미스럽고 충격적인 사건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최진영은 조카들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으로 가정을 이끌어왔다. 외국에 머물다가 조카의 개학식에 참석하기 위해 최근 귀국했을만큼 가족애가 남달랐다. 2009년 최진영은 “생전 누나의 뜻”이라며 한양대 예술학부 연극전공으로 늦깎이 입학해 장학금을 받는 등 학업에 열중했다. 또 이달 초 최진영은 엠클라우드 엔터테인먼트로 소속사를 옮기고 올 가을 약 3년 만의 컴백을 앞두고 있던 중이었다. 한편 최진영은 1990년 영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로 데뷔,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등에 출연했다. 이어 1993년 MBC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에 출연하며 최진실과 함께 청춘스타 반열에 올랐다. 밴드 SKY의 보컬로 변신했던 최진영은 2007년 KBS 2TV 드라마 ‘사랑해도 괜찮아’ 이후 안방극장에 모습을 감췄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영상=서울신문 나우뉴스TV 김상인VJ bowwow@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故 최진실 자녀, 삼촌 최진영마저… “안타까워”

    故 최진실 자녀, 삼촌 최진영마저… “안타까워”

    고(故) 최진실의 동생인 가수 겸 배우 최진영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에 최진실의 자녀이자 최진영의 조카인 환희와 준희에 안타까운 시선이 모이고 있다. 지난 2008년 10월 엄마 최진실을 잃은 환희와 준희는 지난해 9월 최진실 유골함 도난 사건을 겪는 등 어린 아이들이 견디기 힘든 일들을 겪은 바 있다. 하지만 외삼촌인 최진영은 최진실 대신 두 조카를 돌보는 등 헌신을 다했다. 특히 지난 1월 최진영이 어머니와 함께 두 조카를 키우는 모습이 MBC ‘기분좋은 날’을 통해 방송되기도 했다. 방송 당시 최진영은 “아이들에게 올바른 삼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며 조카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또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최진영은 “환희·준희를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 활동을 재개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29일 최진영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며 두 아이들은 다시 한 번 든든한 버팀목을 잃게 됐다. 이에 네티즌들은 “두 번이나 가족을 잃은 환희와 준희가 불쌍하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등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MBC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막내린 ‘김의 전쟁’… 차별없는 하늘나라로

    막내린 ‘김의 전쟁’… 차별없는 하늘나라로

    일본에서 재일교포 차별에 항의, 야쿠자를 살해한 뒤 무기수로 복역하다 영주 귀국한 권희로씨가 26일 오전 6시50분쯤 숙환으로 별세했다. ●유인촌 장관이 주연 맡아 화제 권씨는 국내에서 펼쳐진 귀국운동에 힘입어 일본에서 31년여 간 복역한 뒤 석방돼 1999년 9월 귀국해 부산에 정착했었다. 그러나 11년여 간의 국내 생활도 교도소 복역을 하거나 병마에 시달리는 등 순탄치 못했으며, 이날 지병인 전립선암으로 입원해 있던 부산 동래 봉생병원에서 영욕의 삶을 마감했다. 1928년 일본 시즈오카 현 시미즈 시에서 태어난 그는 4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고 모친의 재가로 김씨 성을 갖게 됐다. 그는 민족차별과 가난 등으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권씨는 1968년 2월20일 “조센진, 더러운 돼지 새끼”라고 모욕한 야쿠자 2명을 총으로 살해하고 나서 인근의 여관에서 투숙객을 인질로 잡고 88시간 동안 인질극을 벌이다 체포돼 1975년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화장 후 유골 한·일에 절반씩” 유언 당시 권씨는 “한국인 차별을 고발하려고 사건을 일으켰다.”며 일본 경찰의 사과를 요구했다. 이 사건으로 권씨는 한·일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유명세를 타 ‘김의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권씨 일대기가 영화로 제작됐으며,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당시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권씨는 이후 부산 자비사 삼중 스님을 중심으로 한 대대적인 귀국운동에 힘입어 31년 8개월의 복역 끝에 1999년 9월 일본에 다시 입국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가석방돼 영주 귀국했다. 삼중 스님은 20여년 전 권씨의 사연을 접하고는 구명운동에 나서는 한편 후견인 역할을 했으며 국내 정착 이후에도 권씨를 계속 돌봐왔다. 삼중 스님은 권씨가 “스님 덕분에 형무소에서 죽을 사람이 아버지 나라에서 편안하게 죽을 수 있게 됐다. 시신을 화장해 유골의 반은 선친의 고향인 부산 영도 앞바다에 뿌려주고, 반은 시즈오카현 어머니 묘에 묻어달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삼중 스님 구명운동… 99년 영구 귀국 권씨는 1999년 9월 전 국민의 환영을 받으며 부산 연제구 거제동에 정착했다. 독지가와 국민 성금으로 정착금도 받아 여생을 고국에서 편안히 보내는 듯했다. 그러나 1년여 만인 지난 2000년 10월 후원자의 남편을 흉기로 살해하려 한 혐의로 구속됐고, 공주치료감호소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또 동거녀가 정착금을 훔쳐 달아나면서 만년에 힘들고 궁핍한 삶을 살아왔다. 권씨는 최근 일본의 한 언론을 통해 “죽기 전에 어머니 묘에 절을 올리고 싶다.”며 일본 입국을 희망했었다. 발인은 28일 오전 8시30분에 치러지며, 부산 영락공원에서 화장된 뒤 유골은 고인의 유언에 따라 처리될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는 동래 봉생병원 장례식장 2호에 마련됐다. (051)531-7100.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김의 전쟁’ 실제주인공 권희로 씨 별세

    ‘김의 전쟁’ 실제주인공 권희로 씨 별세

    영화 ‘김의 전쟁’의 실제 주인공 권희로 씨가 26일 오전 6시50분께 전립선암으로 투병 중 향년 82세로 별세했다. 빈소는 동래 봉생병원 장례식장 2호에 마련됐다. 오는 28일 오전 8시30분에 발인식이 거행되며 시신의 유골은 고인의 유언에 따라 화장해 처리될 것으로 전해졌다. 권씨는 열흘 전 자신의 석방운동을 주도했던 부산 자비사의 박삼중 스님에게 “시신을 화장해 유골의 반은 선친의 고향인 부산 영도 앞바다에 뿌려주고, 반은 시즈오카현 어머니 묘에 묻어달라.”고 유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일교포 2세인 권씨는1968년 2월 20일 일본 시즈오카(靜岡)현에서 인질극을 벌이다 한국인에 “조센진, 더러운 돼지 새끼”라며 모욕을 준 야쿠자 2명을 살해한 뒤 부근 여관에서 투숙객을 인질로 잡고 88시간 동안 경찰과 대치하는 바람에 1975년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당시 권씨는 “한국인 차별을 고발하기 위해 사건을 일으켰다.”며 재판을 거부하는 등 항거를 계속하며 일본 경찰의 사과를 요구했다. 권씨는 이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권씨 귀국운동에 힘입어 1999년 9월7일 ‘일본에 다시 입국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가석방돼 영주 귀국했다. 권씨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담은 영화 ‘김의 전쟁’(1992)이 국내 개봉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사진 = 연합뉴스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무소유’오두막 철책 왜

    ‘무소유’오두막 철책 왜

    “법정 스님의 산골 오두막을 더 이상 찾지 말아주세요.” 법정(法頂) 스님이 머물던 강원 평창 산골 오두막이 끊이지 않는 사람들의 발길로 몸살을 앓고 있다. ●법정스님 머물던 곳 추모객 몸살 산골 오두막은 스님이 1992년부터 최근까지 머물며 수도에 정진하고 책을 집필하던 곳으로 개인 소유다. 49제가 끝나는 다음달 28일 길상사·송광사·불일암 등과 함께 이곳 오두막 주변에도 유골이 뿌려진다. 길상사와 오대산국립공원사무소 측은 추모객들의 발길을 막기 위해 오두막으로 들어가는 계곡 입구에 굵은 철사를 쳐 사람들의 무단출입을 막고 있다. 국립공원은 계곡 입구에 ‘자연공원법을 위반할 경우 과태료(50만원)를 부과한다’는 내용과 출입금지를 알리는 표지판도 새로 설치했다. 무분별한 방문으로 오두막과 청정 계곡이 훼손되는 것은 물론 스님의 유품을 정리하고 파악하는 데 지장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길상사와 국립공원 측의 설명이다. 때문에 주말과 휴일은 물론 평일에도 오두막을 찾는 추모객들은 아쉬움 속에 발길을 돌리고 있다. ●출입땐 과태료 추모객들은 “지난 주말 산골 오두막을 찾았다가 발길을 돌려야 해 많이 아쉽기는 했지만 마음 속에 그분을 기리는 마음은 오히려 더욱 깊어졌다.”며 “스님의 체취가 남아 있는 오두막이 잘 보존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길상사 종무소 관계자는 “법정 스님의 유품을 정리하고 다음달 28일 49제가 끝나면 주인과 협의해 오두막을 개방하는 방안을 논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평창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신기하軍! 시대상 반영한 전문주특기병 ‘눈에 띄네’

    신기하軍! 시대상 반영한 전문주특기병 ‘눈에 띄네’

    국군수도병원에 근무하는 이선호(21) 이병은 지난해 말 입대했다. 그의 주특기(번호 2112)는 ‘영현등록병’이다. 수도병원 내 단 2명만 갖고 있는 것으로 군 내에서도 알려지지 않은 병과다. 이들은 군에서 사고나 질병 등으로 사망자가 발생하면 매장과 화장, 소지품 기록 업무 등을 담당하는 이른바 ‘장의 전문병’이다. 이 이병은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사회에서 절대 해 볼 수 없는 일이란 생각에 영현 등록병에 지원했다.”면서도 “장의업무가 남들에게 어떻게 비쳐질지 몰라 가족들에게만 진상을 털어놓았다.”고 말했다. 이 이병처럼 우리 군에는 알려지지 않은 특이한 주특기를 갖고 근무하는 현역병이 많다. 특히 전문 주특기들은 새로 생기거나 없어지면서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한다. 북한의 남침용 땅굴을 찾아내는 일을 하는 병사는 주특기 번호 1524의 ‘땅굴탐지병’이다. 대학에서 지질학과 등 관련 전공 3년 이상 수료자가 지원할 수 있다. 6·25 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작업이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서 ‘유해발굴기록병’이 생기기도 했다. 이들은 대학에서 고고학과나 고고미술사학과, 고고인류학 등을 2년 이상 수료하고 유골 발굴 3개월 이상의 경력도 갖고 있어야 지원이 가능하다. 군내 비리척결을 위한 수사 전문병도 있다. 수사전문병은 분야별로 특화가 되어 있다. 회계수사병, 건축 및 설계수사병, 마약수사병, 사이버수사병, CC(폐쇄회로)TV 등 영상자료 수사병이 그들이다. 온라인 게임의 활성화로 공군은 ‘e-스포츠병’을 뽑았다. 대표적인 온라인 게임 스타크래프트에서 테란의 황제로 불린 임요환 선수다. 또 ‘동아리 지도병’은 이른바 ‘B-Boy병’으로 최근 세계적으로 춤실력을 인정받은 우리나라 춤꾼들을 특기병으로 뽑고 있다. 공군에는 과거 관제탑에 공중감시기록병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2000년 이후 사라졌다. 관제체계가 전자시스템으로 바뀌면서 이 직책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법정스님 다비식] 추모객 3만 ‘마지막 길 배웅’

    ‘무소유’ 가르침으로 세상을 가득 채웠던 법정 스님이 끝내 한 줌 재로 화했다. 정부는 법정 스님에게 국민훈장을 추서하려 했으나 문도들은 “주변을 번거롭게 하지 말라.”는 스님의 유언에 맞지 않는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24시간 다비된 스님의 법구는 불길이 사그라든 14일 오전 10시쯤 1차로 큰 유골이 수습됐다. 이어 불이 완전히 꺼진 뒤 습골 의식이 치러졌다. “사리를 찾지 말라.”는 스님의 유지(遺志)대로 재를 뒤적이는 과정 없이 재빨리 뼈만 수습했다. 유골은 바로 분쇄돼 송광사 지장전에서 하루를 머문 뒤 15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로 다시 옮겨진다. 새달 28일 49재 전까지 이곳에 안치된다. 이후 유골은 상좌들에게 전해져 스님이 머물던 강원도 오두막, 길상사 뒤뜰 풀밭 등에 비공개로 뿌려진다. 6재까지는 길상사에서 치르고, 막재인 49재는 송광사에서 지낸다. 오는 21일 길상사 일요법회 때는 추모 법회도 함께 열린다. 108타의 범종 소리와 함께 13일 시작된 다비식에는 이른 새벽부터 전국 각지의 추모객들과 스님 3만여명이 몰려들었다. 눈물을 흘리며 지켜보던 학봉(전남 화순 달마사) 스님은 “철저히 계율을 지켰던 스님의 모습은 수행자들에게 귀감이 됐다.”고 했다. 스님의 병상을 끝까지 지켰던 가수 노영심은 “마음이 너무 복잡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효봉 스님 밑에서 법정과 함께 동문수학했던 법흥(法興·동당 수좌) 스님은 “평소 ‘중이 법명 하나면 되지 무슨 호가 필요하냐’고 질색하더니 성정 그대로 ‘비구 법정’ 딱 4글자로 돌아왔더라.”고 말했다. 그래도 그건 아니다 싶어 ‘비구 법정 대선사 강녕’이라고 몇 자 더 붙여 분향소에 올렸다고 한다. 한편 ‘주님 발언’으로 불교계의 반발을 샀던 SBS 스피드 스케이팅 해설위원 제갈성렬씨는 지난 12일 길상사 분향소를 찾았다. 순천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월드 뉴스라인] 조조후손 자처 100명 DNA 검사

    지난 1월 중국 허난(河南)성 안양(安陽)현에서 발견된 무덤 주인이 조조(曺操·155~220)가 맞는지 밝히기 위해 푸단(復旦)대가 벌이는 유전자(DNA) 검사에 100여 명이 참여하는 등 높은 관심을 끌고 있다고 요심만보(遼瀋晩報)가 12일 보도했다. 이미 중국 각지에서 조조의 후손을 자처하는 100여명이 검사에 자원했다. 푸단대는 이들한테서 Y염색체를 추출해 무덤에서 발굴한 유골과 비교해 유골의 주인이 진짜 조조인지 가릴 계획이다.
  • 故배삼룡, 빗줄기 속 눈물의 영결식

    故배삼룡, 빗줄기 속 눈물의 영결식

    故 배삼룡이 빗줄기와 후배들 눈물 속에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영결식은 25일 오전 7시 30분 서울 송파구 풍납동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이 자리에는 유족을 비롯해 송해, 엄용수, 이용식, 배일집, 한무, 이경규, 김정렬, 이봉원, 이상운, 이수근 등 300여 명이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했다.영결식은 추도 묵념, 약력 소개, 조사, 추도사, 추도시, 헌화 순으로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특히 고인과 가장 오랜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진 송해의 조사가 후배들의 마음을 아프게 해 눈길을 끌었다.송해는 “형님이 왜 바보냐. 저 뒤를 돌아봐라. 똑똑하고 영특한 후배들이 아픔을 달래고 있다.”며 살아생전 故 배삼룡이 전했던 희극 철학을 대신 전했다.또 송해는 “우리는 모두 당신을 사랑한다. 오로지 내것밖에 모르는 세상에 당신은 큰 웃음을 주셨다. 하늘에선 괄시받지 말고 아프지 말고 그곳에서도 큰 웃음을 주시길 바란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영결식은 이렇게 동료 그리고 후배 코미디언들의 헌화로 끝났다. 이후 고인의 시신은 장사를 지내기 위해 경기도 성남시 화장장으로 떠났다. 유골은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분당 추모 공원휴에 안치된다.故 배삼룡은 지난 2007년 흡인성 폐렴으로 아산병원에서 4년째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그러다가 22일 오후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23일 오전 2시 세상을 떠났다.1926년 강원도 양구 출신으로 1969년 MBC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안방극장에 진출한 뒤 ‘웃으면 복이와요’ 등에 출연하며 ‘몸 개그’의 원조인 슬랩스틱 코미디의 대가로 국민들과 코미디언 후배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이렇게 평생 국민을 웃게 만드는 데 전력했던 고인이지만 그의 삶은 순탄치는 않았다. JP를 지지했던 고인은 1980년대 신군부의 눈 밖에 나면서 저질 코미디로 치부돼 방송활동 금지를 당했다. 또한 세번의 이혼과 흡인성 폐렴으로 오랜 투병생활을 견뎌야 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고인의 열정을 꺾진 못했다. 고인은 “다시 한 번 무대에 서고 싶다.”는 바람을 끝까지 숨기지 않았다. 고인이 입원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에 후배들이 십시일반 정성을 모은 것도 고인의 열정 때문이었다.서울신문NTN 채현주 기자 chj@seoulntn.com / 사진 = 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강호동 “故배삼룡 연기보며 행복했었다”

    강호동 “故배삼룡 연기보며 행복했었다”

    ’국민 MC’ 강호동이 원로 코미디언 고(故) 배삼룡의 빈소를 찾아 안타까운 심경을 밝혔다.강호동은 23일 오후 11시15분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 장례식장 35호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를 찾아 조문을 마친 뒤 “대선배들이 다 계신데 제가 말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강호동은 “큰 어른이 돌아가셨다. 어릴 때 선생님의 연기를 보며 행복했었다. 안타깝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한편 故배삼룡(본명 배창순)은 23일 오전 2시 10분 향년 84세의 나이에 지병인 흡인성 폐렴으로 별세했다.발인은 25일 오전 8시 코미디언 협회장으로 엄수되며 유해는 성남 화장장에서 화장된다. 고인의 유골은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 위치한 분당추모공원 ‘휴’에 안치될 예정이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서울신문NTN 채현주 기자 chj@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봉환예정 韓人유골에 日유골 섞여

    일본 도쿄 메구로(目黑)구의 사찰 유텐(祐天)사에서 한국 정부가 봉환하기로 한 한국인 군인·군속 피해자 유골에 일본인 유골이 섞인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는 17일 “일본 정부가 지난 12일 열린 ‘한반도 출신 구 군인·군속의 유골 문제에 관한 제7차 한·일 협의’에서 한국으로 이관하기로 한 유골 220여위 중에 10여위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왔다.”고 밝혔다. 정부는 일본과 협의를 통해 2008년 1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3차례에 걸쳐 유텐사에 보관된 연고 유골을 국내로 봉환했다. 이어 올 상반기에는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무연고 유골 200여위를 처음 고국으로 갖고 오기 위한 협의를 진행해왔다. 일본 측은 “지난해 말 서류상의 본적지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당시 한반도에 거주한 일본인 유골의 생전 주소가 한국으로 기재돼 있어 한국인으로 분류된 사실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국내 봉환에 앞서 유골의 연고자가 있는지를 묻는 공시를 거쳐 이르면 5월쯤 유텐사의 무연고 유골 등을 한국으로 보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미쓰비시 징용 조선인 유골 65년만에 발견

    미쓰비시 징용 조선인 유골 65년만에 발견

    일본 히로시마의 미쓰비시중공·조선소에 강제 동원됐다가 해방을 맞아 귀국하던 중 겐카이나다(현해탄)에서 조난당해 ‘불귀의 객’이 된 조선인들의 유골이 65년 만에 처음 확인됐다. 그동안 실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귀환동포 실종 사건이 정부 차원의 조사에서 밝혀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국무총리실 소속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는 “해방을 맞아 1945년 9월 귀국 도중 해난사고로 숨진 징용자를 비롯한 조선인 유골 131위가 일본 사이타마현에 있는 사찰 곤조인(承院)에 안치된 사실을 현지 조사를 통해 확인했다.”고 5일 밝혔다. 1945년 9월17일 오전 10시쯤 후쿠오카 근처의 기타큐슈시 도바타항에서 조선인 246명이 일명 ‘똑딱선’으로 불리는 기범선(機帆船)을 타고 부산으로 출발했다. 이들은 9월15일 시모노세키항에 도착했지만 배를 1주일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소식에 도바타항으로 건너간 것으로 나타났다. 똑딱선은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쓰시마와 이키섬 인근에서 초대형 태풍인 마쿠라자키를 만나 조선인이 모두 실종됐다.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자 140만명이 귀국길에 올랐는데 이 중 90만명이 1945년 8∼10월에 몰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둘러 귀국길에 오른 이들은 당시 일본이 수송대책을 마련해주지 않아 대부분 작고 낡은 배를 탔고, 기상 악화가 겹쳐 해난참사가 잇따랐다. 파도에 떠밀린 이들의 시체는 쓰시마와 이키섬 등 여러 곳에 매장됐다. 당시 미쓰비시공장에는 경기 평택·화성·안성·이천·여주·고양 등에서만 조선 청년 2000여명이 동원됐으며, 해방 당시 공장에는 조선인 2700여명이 남았다. 1976년 이키섬에서 일본 시민단체가 발굴한 유골과 1983년 외무성·후생성이 쓰시마에서 발굴한 유골이 조선인 유골로 파악되기는 했으나 신원미상으로 분류돼 30년 가까이 곤조인에 보관됐다. 정부 차원의 조사는 2005년부터 시작됐고 이번 조사결과 곤조인에 보관된 유골이 각종 해난사고로 숨진 조선인들의 것이며, 이 중에는 ‘미쓰비시 실종 사건’ 희생자들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를 담당한 정영애 조사관은 “해방 전후 귀국 혼란기에 발생한 해난사고 피해는 강제동원 주체인 일본정부와 기업이 안전수송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해당 유골을 강제동원됐다가 숨진 다른 조선인 유해와 함께 국내로 봉환하는 방안을 일본 정부와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회장님 선영 지켜라!

    회장님 선영 지켜라!

    대기업들의 조상묘 지키기에 비상이 걸렸다. 최근 대기업 총수들의 조상묘에서 유골 도난 사건이 잇따르면서 그룹마다 선영 관리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31일 재계에 따르면 대기업들은 창업주나 선친의 묘를 지키기 위해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거나 별도의 용역회사를 두고 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이 묻혀 있는 경기 하남의 현대가(家) 선영에 별도의 관리 회사를 두고 CCTV로 24시간 모니터링하고 있다. 두산그룹도 고 박승직 창업주와 박두병 초대회장 등의 무덤이 있는 경기 광주 선영에 CCTV와 관리인을 두고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충남 공주 한화그룹 창업자 고 김종희 회장의 묘에도 CCTV가 설치돼 있다. 신격호 롯데 회장 선친의 묘소도 관리인을 두고 있다. 부산 동래에 있는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묘소와 경남 진주에 있는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조부(LG그룹 공동 창업주)인 허만정씨의 묘도 보안이 삼엄하다. 용인에버랜드에 있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묘소는 일반인 접근이 불가능하다. SK그룹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의 묘와 그 아래 고 최종현 회장의 가묘에는 외부인 출입을 막는 울타리가 설치돼 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월드 뉴스라인] 中문물국, 조조무덤 공식 인정

    중국 국가문물국은 조조의 고분을 발굴하고 학술적인 검증을 거쳐 연구성과를 발표한 절차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고고학계의 규칙에도 부합한다고 중국 신경보(新京報)가 29일 보도했다. 국가문물국은 “허난(河南)성 문물국을 비롯해 전문가들이 무덤을 발굴했고 전문가들이 무덤의 구조와 소장품, 유골 및 역사기록 등을 근거로 무덤의 주인이 위나라 무왕 조조라고 확정했다.”고 밝혔다.
  • 재벌가 묘만 파헤친 엽기도굴범

    대기업 창업자의 묘지를 파헤쳐 유골을 훔친 뒤 거액의 돈을 뜯으려 한 도굴범이 경찰에 검거됐다. 경북지방경찰청은 태광그룹 창업자로 1996년 11월 사망한 고(故) 이임용 전 회장의 묘지를 도굴해 유골을 훔친 혐의(분묘발굴 및 시체 등 영득)로 정모(49)씨를 긴급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28일 밝혔다. 또 정씨는 1999년 울산에서 발생한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부친묘 도굴사건과 2004년 충남 공주에서 발생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조부모 묘 도굴사건의 범인과 동일인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경찰은 정씨로부터 이 전 회장의 유골은 회수하지 못했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는 지난 26일 오후 경북 포항시 청하면 서정리에 있는 이 전 회장의 묘지를 파헤쳐 유골 일부(머리 부분)를 훔친 뒤 곧바로 그룹 본사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유골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현금 10억원을 요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이후에도 수차례 전화를 걸어 자신의 용건만 말한 뒤 곧바로 전화를 끊는 수법으로 경찰의 추적을 피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번 범행 수법이 1999년과 2004년 울산과 충남 공주에서 발생한 대기업 회장 조부모 및 부모 묘지 도굴사건과 유사해 당시 범인으로 검거됐던 정씨 등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추적을 해왔다. 경찰은 26일 오후를 전후해 이 전 회장의 묘지 근처에 있는 폐쇄회로(CC)TV에 렌터카가 찍힌 모습과 용의자 정씨가 묘에 접근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그를 추적, 28일 오후 2시15분쯤 대전시 동구에서 붙잡았다. 경찰은 정씨가 단독 범행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공범 여부를 수사할 방침이다. 한편 도굴로 훼손된 태광그룹 창업자인 고 이임용 전 회장의 묘가 있는 경북 포항시 청하면 서정1리 일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명당으로 알려졌다. 마을 어귀에 미륵보살좌상이 있으며 주민들이 먼 길을 나서거나 돌아올 때는 석불 앞에서 절을 하며 안녕을 기원해 지금도 신성시하고 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1000년 된 마야문명 석관 멕시코서 발견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 주(州)에서 1000년 이상 된 것으로 보이는 마야문명 석관이 발견됐다. 멕시코 현지 언론은 “마야문명이 사라진 이유를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고고학계는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석관은 옛 마야도시 토니나 유적지에서 발견됐다. 석관은 길이 2m, 폭 70cm, 폭 60cm다. 크기와 중요성에선 지난 1994년 치아파스 팔렌케에서 발견된 ‘붉은 여왕’의 무덤에 견줄 만한 것이라고 멕시코 고고학계는 밝혔다. 특히 주목되는 건 시기다. 석관은 주후(主後) 840년 전후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야문명이 토니나에 마지막으로 남긴 조각상이나 돌 등에 새겨넣은 기록과 때가 일치한다. 토니나 마야유적지 관리 책임자는 “주후 840년 이후의 유적은 발견된 게 없다.”면서 “마야도시가 갑자기 버려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번 석관이 연구에 단서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토니나가 쇠퇴한 이유가 외부세력의 공격을 받았기 때문인지, 마야도시 내부 진통이 있었기 때문인지를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석관에선 유골과 항아리 모양의 용기가 발견됐다. 두개골 아래로 뼈가 십자가 모양으로 놓여져 있었다. 관계자는 “유골이 아이나 여자의 것으로 보인다.”면서 “상당히 신분이 높았던 사람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마야문명은 멕시코 남동부, 과테말라 등지에서 번영했던 고대문명이다. 주후 300-900년 황금기를 보낸 후 쇠퇴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佛연구팀 “7000년 전에도 외과수술 했다”

    佛연구팀 “7000년 전에도 외과수술 했다”

    신석기시대인 7천년 전에도 외과수술이 시행됐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AP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파리의 남쪽에 있는 센에마른현에서 기원전 4900년~4700년 전 왼쪽 팔 절단 수술을 받은 남성의 유골이 발견됐다. 이를 조사한 프랑스 국립 예방고고학연구소(INRAP)는 “이번에 발견한 성인 남성의 유골은 왼쪽 팔꿈치가 관절 위에서 아래로 절단됐고, 아래쪽 팔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엑스레이 분석 결과 이 남성은 동물로부터 공격을 받았거나 싸우다가 중상을 입은 흔적이 있으며, 치료를 위해 날카로운 석기로 팔을 절단하는 외과 수술을 진행한 것으로 추측했다. 연구팀은 “당시 사람들이 지혈을 철저히 하고, 허브를 이용한 소독약을 만들어 감염 예방 조치한 흔적을 미뤄, 고도의 의료 행위를 보인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들은 현대와 매우 유사한 의료기술을 가졌으며, 절단 수술을 받은 남성은 수술 뒤 수 개월을 더 산 것으로 추측된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결과는 영국의 고고학 학술지인 ‘앤티쿼티’ 지난달 호에 실렸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허난성 분묘 조조묘 맞다”

    “허난성 분묘 조조묘 맞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지난해 말 중국 허난(河南)성 안양(安陽)현에서 발견된 옛 분묘가 삼국지의 영웅인 위(魏) 무왕 조조(曹操·155~220) 묘가 맞다는 1차 조사 결과가 나왔다.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는 14일 ‘2009년 공공 발굴 포럼’을 열어 전문가조사단 12명이 지난 11일부터 3일간 현지에서 벌인 이 같은 내용의 조조 묘 검증작업 결과를 보고했다. 국가문물국, 고고연구소, 베이징대, 허난대, 정저우(鄭州)대의 고고학, 역사학, 인류학, 문자학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사단은 분묘의 형태, 규격, 출토문물, 칼과 돌베개 등에 새겨진 명문의 내용, 글자체 등이 당시의 역사문헌 기록과 부합하기 때문에 이 묘의 주인이 조조라는 1차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조사단은 고분이 동한(東漢)시대 말기에 조성됐고, 크기가 당시 최고위급 인사의 신분에 걸맞은 데다 고분의 위치나 묘실의 깊이 등이 조조의 아들 조식(曹植)의 시에 묘사된 것과 일치하고 있는 점 등 9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하지만 고고연구소 왕웨이(王巍) 소장은 “확정짓기 위해서는 아직도 엄청난 작업을 해야 한다.”며 결과가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함께 발굴된 유골에 대한 유전자 감식 결과가 나와야 최종적인 결론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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