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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라 30대 女귀족과 순장된 20대男

    신라 30대 女귀족과 순장된 20대男

    5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는 신라 귀족 여성의 무덤에서 함께 순장된 20대 남자의 유골이 발굴됐다. 문화재청은 9일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이 실시한 경주시 황남동 일원 유적발굴조사터 1호 돌무지덧널무덤에서 30대 귀족으로 보이는 여성의 유골과 그 위쪽에 20대 남성으로 보이는 유골과 함께 금은 장신구, 말갖춤(馬具) 등이 출토됐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이 일대에서 움무덤 3기, 덧널무덤 11기, 돌무지덧널무덤 7기, 독무덤 1기 등 24기의 신라 무덤이 발견됐다. 왕, 귀족 등이 죽었을 때 다른 사람을 같이 묻는 고대의 순장 풍습은 가야, 신라 등에서 성행했으나 502년 지증왕이 금지시키면서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특히 이번에 발견된 순장 유골은 여성 무덤에 남성을 순장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재산권, 상속권 등을 지닐 정도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신라이기에 가능한 현상으로 파악된다. 조사단은 “근육의 발달 정도와 함께 묻힌 말갖춤, 큰 칼 등의 유물로 볼 때 이 여성은 말을 타고 무기를 다루던 신라 귀족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바로 곁에 여성의 남편 무덤으로 보이는 덧붙임무덤 2호에서도 금귀걸이와 은허리띠, 비취색 곡옥과 청구슬을 꿰어 만든 목걸이 등의 장신구가 출토됐다. 은허리띠는 띠고리와 띠끝장식, 30여 개의 띠꾸미개로 구성돼 있으며 고리부분에 용을 형상화한 문양이 정교하게 투조돼 있고 띠꾸미개 장식이 독특한 문양을 하고 있다. 문화재청과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경주시내 지역에서 사례가 드문 신라초기 덧널무덤 다수가 한 곳에서 확인된 점, 화려하고 정교한 금은 장신구와 말갖춤 등 각종 유물이 출토된 점 등으로 미뤄 이곳이 역사·학술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노인 10명 중 9명 “연명치료 원하지 않아”

    노인 10명 중 9명 “연명치료 원하지 않아”

    우리나라 노인 대다수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지난해 3~12월 65세 이상 노인 1만 452명을 대상으로 ‘노인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의식불명이거나 가망이 없는데도 의료 행위를 하는 연명치료에 대해 절대다수인 88.9%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9명꼴이다. 찬성한다는 의견은 3.9%뿐이었다. 그러나 노인의 바람과 달리 실제로는 인공호흡기 등에 의지해 고통스럽게 생명을 연장하다 임종을 맞는 경우가 많았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2008년 7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장기요양등급(1~3등급) 인정을 받고 숨진 27만 1474명의 연명치료 진료 현황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10명 중 3명 정도(27.8%)는 임종 전까지 인공호흡기, 인공영양공급을 비롯한 연명치료를 받았다. 연명치료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족이 치료를 포기하지 못한 것이다. 항암치료나 심폐소생술 등 공격적인 의료행위를 하지 않고, 환자가 평안한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 호스피스 병동도 아직까진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죽음을 대비하는 노인도 드물었다. 대부분 묘지(29.1%), 수의(11.2%), 상조회 가입(6.7%) 등에 그칠 뿐 유서 작성(0.5%)이나 죽음준비 교육수강(0.6%) 등 적극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설계하려는 노인은 소수에 불과했다. 죽음준비 교육프로그램은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고 건강한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각 지방자치단체가 운영 중이며, ‘나의 장례식 계획 세우기’, ‘가족에게 사랑의 편지 쓰기’ 등으로 구성돼 있다. 본인의 장례 방법으로는 3명 가운데 1명이 화장한 유골을 강이나 산에 뿌리는 ‘산골’(34.4%) 방식을 원했다. 매장(22.9%)이나 화장(19.7%), 자연장(9.6%)보다 선호도가 훨씬 높았다. 시신 기증을 생각해 본 노인은 2.2%로 소수에 그쳤다. 사망 후 바람직한 재산 처리 방법에 대해선 노인의 절반인 52.3%가 자녀에게 균등 분배하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15.2%는 자신과 배우자를 위해 쓰고 싶다고 했고, 11.4%는 모든 자녀에게 주되 장남에게 더 많이 주고 싶다고 답했다. 재산 전체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응답은 4.2%에 불과했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 자오쯔양 】中 금기어 풀리나

    1989년 톈안먼(天安門) 시위 진압에 반대하다 실각한 ‘비운의 지도자’ 자오쯔양(趙紫陽·1919∼2005)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유골이 10년 만에 안장될 것으로 보인다. 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자오 전 총서기의 사위 왕즈화(王志華)는 “당국으로부터 자오 전 총서기의 유골 매장을 승인받았다. 부인 량보치(梁伯琪) 여사의 유골과 합장하는 것에도 당국이 동의했다”고 밝혔다. 왕즈화는 그러나 “묘지 조성 장소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자오 전 총서기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을 금지해 온 당국은 2005년 1월 그가 사망하자 그의 묘지가 자유파의 성지가 될 것을 우려해 유해를 감시·감독이 쉬운 혁명열사 묘지에 안장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가족들은 “묘지 참배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사유지에 안장할 것이라고 맞섰다. 양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자오의 유골함은 10년째 베이징 자택에 보관되고 있다. 가족들은 2013년 량 여사가 사망한 뒤부터 부부의 유골함을 함께 보관하고 있다. 자오 전 총서기의 막내아들 자오우쥔(趙五軍)은 “당국자들의 태도에 진정성이 있다”며 “노부부가 편안히 안장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정치평론가인 장리판(章立凡)은 “당국이 자오 전 총서기의 유골 안장을 허가한 것이 그의 명예를 회복시키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당국자들은 여전히 그의 무덤이 순례지가 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중국 전통명절 칭밍제(淸明節·청명절)인 지난 5일 공안 요원들이 자오 전 총서기의 자택에 대한 경비를 강화한 가운데 100여명의 추모객이 자택을 찾았다고 SCMP는 전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中 ‘애완동물 공동묘지’ 북적…장례비용 수 백 만원

    중국 4대 전통 명절 중 하나인 청명절(淸明節ㆍ조상의 묘를 찾아가 참배하는 날)을 맞아 성묘를 하려는 중국인들로 전국이 들썩이고 있다. 그중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은 다름 아닌 애완동물 공동묘지다. 중국 베이징시 외곽에 위치한 한 애완동물 공동묘지에는 수 년에서 십 수 년 간 가족으로 지낸 애완동물을 추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 애완동물 묘지에는 애완견뿐만 아니라 집에서 기르던 토끼나 거북이, 산양, 심지어 금븡어까지 다양한 애완동물들이 안치돼 있다. 10년 넘게 키우던 애완견이 죽은 뒤 이곳에 묻은 한 여성은 평소 애완견이 좋아하던 장난감과 과자, 꽃 등으로 아름답게 무덤을 장식했고, 또 다른 시민은 키우던 개와 고양이를 합장한 뒤 매년 청명절마다 이곳을 찾는다. 애완동물 공동묘지에서는 화장과 매장, 박제 등 다양한 장례절차를 선택할 수 있으며, 애완견 기준으로 장례비용은 680위안에서 최대 6800위안까지 천차만별이다. 화장한 유골을 담는 유골함의 가격 역시 수 천 위안에 달하며, 관리비도 등급에 따라 최저 100위안에서 1000위안까지 나눠져 있다. 한편 중국 신화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상하이 인근의 한 공원묘원의 묘지는 최고 10만 위안, 우리 돈으로 700여 만원에 달하며, 묘지 1제곱미터 당 가격은 1만~4만 위안 사이로, 중국 100대 주요도시 신규주택 1제곱미터 당 평균 가격인 1만 500위안을 훨씬 웃도는 추세다. 이처럼 중국 상하이와 베이징 등 대도시 인근의 묘지 가격이 급등하는 가운데, 애완동물을 위한 공동묘지는 사치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한 가족으로 지낸 애완견의 묘지를 세워주려는 사람은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케임브리지 대학서 중세시대 유골 1300구 발견

    케임브리지 대학서 중세시대 유골 1300구 발견

    영국의 명문 케임브리지 대학 캠퍼스에서 수많은 중세시대 유골이 발견돼 관심을 끌고있다. 지난 1일 가디언등 현지언론은 "케임브리지 대학 세인트 존스 칼리지의 신학부 건물 밑에서 1300구 이상의 유골이 발굴됐다"고 보도했다. 강의동 공사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된 이 유골들은 중세시대 병사한 사람들이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1300구의 유골들은 줄을 맞춘 듯 나란히 누워있는 상태였으며 이중 400구는 형체가 거의 완벽한 상태로 발굴됐다. 우리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들지만 대학 캠퍼스에서 수많은 유골들이 발견된 이유는 있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지난 1195년 이 지역에 세인트 존스 복음병원이 들어서 있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당시 이곳에 입원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자연스럽게 병원 소유의 공동 묘지에 묻혔다. 현지 역사서에도 이같은 사실이 기록돼 있지만 정확한 무덤 위치는 지금까지 미스터리로 남아있었다. 이후 지난 1511년 지금의 세인트 존스 칼리지가 설립돼 건물이 들어섰고 이같은 비밀을 발 아래에 품은 채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케임브리지 대학 고고학자 크레이그 세스포드는 "영국 역사에 기록될 만한 정말 놀라운 발견" 이라면서 "유골들 대부분 25-45세 사이 남자로 관이나 수의도 없어 당시의 빈곤한 상황을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극히 일부의 아이와 여성의 유골도 함께 발견됐다" 면서 "당시 병원은 병을 의료적으로 치료하는 것보다 영적인, 먹을 것을 제공하는 목적이었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英케임브리지 대학 캠퍼스서 유골 1300구 발견

    英케임브리지 대학 캠퍼스서 유골 1300구 발견

    영국의 명문 케임브리지 대학 캠퍼스에서 수많은 중세시대 유골이 발견돼 관심을 끌고있다. 지난 1일 가디언등 현지언론은 "케임브리지 대학 세인트 존스 칼리지의 신학부 건물 밑에서 1300구 이상의 유골이 발굴됐다"고 보도했다. 강의동 공사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된 이 유골들은 중세시대 병사한 사람들이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1300구의 유골들은 줄을 맞춘 듯 나란히 누워있는 상태였으며 이중 400구는 형체가 거의 완벽한 상태로 발굴됐다. 우리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들지만 대학 캠퍼스에서 수많은 유골들이 발견된 이유는 있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지난 1195년 이 지역에 세인트 존스 복음병원이 들어서 있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당시 이곳에 입원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자연스럽게 병원 소유의 공동 묘지에 묻혔다. 현지 역사서에도 이같은 사실이 기록돼 있지만 정확한 무덤 위치는 지금까지 미스터리로 남아있었다. 이후 지난 1511년 지금의 세인트 존스 칼리지가 설립돼 건물이 들어섰고 이같은 비밀을 발 아래에 품은 채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케임브리지 대학 고고학자 크레이그 세스포드는 "영국 역사에 기록될 만한 정말 놀라운 발견" 이라면서 "유골들 대부분 25-45세 사이 남자로 관이나 수의도 없어 당시의 빈곤한 상황을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극히 일부의 아이와 여성의 유골도 함께 발견됐다" 면서 "당시 병원은 병을 의료적으로 치료하는 것보다 영적인, 먹을 것을 제공하는 목적이었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4200년 된 역대 최고(最古) 유방암 걸린 유골 발견

    4200년 된 역대 최고(最古) 유방암 걸린 유골 발견

    무려 4200년 된, 역대 확인된 것 중 가장 오래된 유방암으로 죽은 유골이 발견됐다. 지난 24일(현지시간) 이집트 당국은 파라오 제 6 왕조 말기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방암을 앓은 여성의 유골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4200년 전 살았던 이 유골은 이집트 아스완 지역에서 다른 유물들과 함께 발굴됐으며 현재 나일강 가운데 떠있는 엘레판티네섬의 귀족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유골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역시 유방암을 앓은 흔적이 발견된 점이다. 오늘날 암은 인간을 죽음으로 이끄는 대표적인 병이지만 암으로 죽은 이같은 고고학적 '기록'은 의외로 거의 발견되지 않고있다. 이 때문에 암 발병 이유가 현대의 라이프 스타일과 밀접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왔다. 이집트 고대유물부 장관 맘두 알-다마티는 "여성의 유골을 분석한 결과 심한 수준으로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 였다" 면서 "죽기 전까지 오랜 시간 치료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해 러시아 연구팀은 일명 '시베리아 공주' 미라가 유방암으로 사망했다는 MRI(자기공명영상진단)로 분석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지난 1993년 알타이 공화국의 우코크 고지대 탐사 도중 고분에서 처음 발견된 이 미라는 2500년 전 약 25세에 사망했으며 전문가들은 그녀가 왕족이자 여사제일 것으로 추정해 이후 ‘시베리아 공주’, ‘얼음 공주’라는 별칭으로 불려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4200년 전에도 ‘유방암’ 있었다...역대 최고 유골 발견

    4200년 전에도 ‘유방암’ 있었다...역대 최고 유골 발견

    무려 4200년 된, 역대 확인된 것 중 가장 오래된 유방암으로 죽은 유골이 발견됐다. 지난 24일(현지시간) 이집트 당국은 파라오 제 6 왕조 말기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방암을 앓은 여성의 유골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4200년 전 살았던 이 유골은 이집트 아스완 지역에서 다른 유물들과 함께 발굴됐으며 현재 나일강 가운데 떠있는 엘레판티네섬의 귀족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유골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역시 유방암을 앓은 흔적이 발견된 점이다. 오늘날 암은 인간을 죽음으로 이끄는 대표적인 병이지만 암으로 죽은 이같은 고고학적 '기록'은 의외로 거의 발견되지 않고있다. 이 때문에 암 발병 이유가 현대의 라이프 스타일과 밀접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왔다. 이집트 고대유물부 장관 맘두 알-다마티는 "여성의 유골을 분석한 결과 심한 수준으로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 였다" 면서 "죽기 전까지 오랜 시간 치료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해 러시아 연구팀은 일명 '시베리아 공주' 미라가 유방암으로 사망했다는 MRI(자기공명영상진단)로 분석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지난 1993년 알타이 공화국의 우코크 고지대 탐사 도중 고분에서 처음 발견된 이 미라는 2500년 전 약 25세에 사망했으며 전문가들은 그녀가 왕족이자 여사제일 것으로 추정해 이후 ‘시베리아 공주’, ‘얼음 공주’라는 별칭으로 불려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무려 4200년 된 역대 최고(最古) 유방암 걸린 유골 발견

    무려 4200년 된 역대 최고(最古) 유방암 걸린 유골 발견

    무려 4200년 된, 역대 확인된 것 중 가장 오래된 유방암으로 죽은 유골이 발견됐다. 지난 24일(현지시간) 이집트 당국은 파라오 제 6 왕조 말기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방암을 앓은 여성의 유골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4200년 전 살았던 이 유골은 이집트 아스완 지역에서 다른 유물들과 함께 발굴됐으며 현재 나일강 가운데 떠있는 엘레판티네섬의 귀족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유골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역시 유방암을 앓은 흔적이 발견된 점이다. 오늘날 암은 인간을 죽음으로 이끄는 대표적인 병이지만 암으로 죽은 이같은 고고학적 '기록'은 의외로 거의 발견되지 않고있다. 이 때문에 암 발병 이유가 현대의 라이프 스타일과 밀접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왔다. 이집트 고대유물부 장관 맘두 알-다마티는 "여성의 유골을 분석한 결과 심한 수준으로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 였다" 면서 "죽기 전까지 오랜 시간 치료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해 러시아 연구팀은 일명 '시베리아 공주' 미라가 유방암으로 사망했다는 MRI(자기공명영상진단)로 분석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지난 1993년 알타이 공화국의 우코크 고지대 탐사 도중 고분에서 처음 발견된 이 미라는 2500년 전 약 25세에 사망했으며 전문가들은 그녀가 왕족이자 여사제일 것으로 추정해 이후 ‘시베리아 공주’, ‘얼음 공주’라는 별칭으로 불려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시론] 미겔 데 세르반테스 무덤의 진실/박철 전 한국외국어대 총장·한국세르반테스연구소 이사장

    [시론] 미겔 데 세르반테스 무덤의 진실/박철 전 한국외국어대 총장·한국세르반테스연구소 이사장

    며칠 전 인류의 성서라 불리는 ‘돈키호테’의 저자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무덤을 발굴했다고 스페인에서 난리가 났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발굴 작업의 결과가 지난 17일 마드리드에서 발표됐다. 그러나 정작 발굴단장인 프란시스코 에체베리아 박사는 기자회견에서 법의학팀이 DNA를 비교 검사를 할 수 없어 100% 세르반테스의 유골이라고 할 수 없으며, 단지 지하 납골당에 함께 뒤섞인 16명의 유골들 중에 한 조각이 세르반테스의 유골일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가능성이 있다’는 표현을 썼을 뿐 확실하게 세르반테스의 유골이라고 단정하지도 못했는데, 이를 영국의 BBC방송이 보도했고, 우리나라 언론도 외신을 받아 세르반테스 유골 발견이라는 뉴스를 내보냈다. 세계문학에서 차지하는 지명도가 너무나 크고 민감한 사항이라서 이 정도의 가능성만으로도 세계 언론의 주요 뉴스가 돼 버렸다. 필자는 좀 황당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필자와 친분이 있는 스페인 왕립한림원 회원이자 돈키호테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자타가 인정하는 프란시스코 리코 교수가 당일 스페인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세르반테스 유골 발굴은 한마디로 ‘바보 같은 짓’이라고 폄하했다. 그는 “세르반테스에 대한 얘기는 아무것도 새로운 것이 없다”고 단정해 버렸다. 그는 차라리 발굴에 투자했던 10만 유로로 ‘돈키호테’나 여러 권 구입해 학생들에게 보내 주는 게 더 나았을 것이라고 했다. 리코 교수의 좀 괴팍한 성격을 아는 필자는 그의 혹평이 직설적이기는 해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세르반테스 연구자이기에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2016년 세르반테스 타계 400주년을 앞두고 그의 유골을 찾으려는 스페인 정부의 노력은 관광 산업 차원에서도 관심을 끌었으나, 다소 무리하게 역사적 진실을 밝히려는 시도가 권위 있는 학자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은 것이다. 필자도 리코 교수의 의견에 공감하면서 400년 동안 버려진 세르반테스의 무덤을 이런 식으로 찾아낸다는 것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 작가는 평생 동안 두 명의 누이동생과 함께 살았다. 18살이나 어린 부인과는 별거를 했고, 그녀와의 사이에 자녀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혼전에 유부녀와의 사이에 얻은 딸이 유일한 혈육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그의 가족들이 어디에 묻혔는지 알 수 없으니, 이번에 발굴된 유골들을 가지고 DNA 비교 검사를 할 수 없었고, 에체베리아 발굴단장의 말대로 세르반테스의 유골이라고 확정적으로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1613년 세르반테스는 절친이자 시인인 후안 하우리기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부탁해 같은 해 출판된 ‘모범소설집’ 첫 장에 첨부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그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로 그 초상화 밑에 화가는 이렇게 적고 있다. “여기 여러분들이 보시는 이 사람은 갸름한 얼굴과 밤색 머리카락, 시원스레 넓은 이마, 유쾌한 눈 그리고 균형은 잘 잡혀 있지만 구부러진 매부리코를 가지고 있습니다. 20년 전 금빛 나던 그의 수염은 은빛으로 변했고, 긴 콧수염과 작은 입, 크지도 작지도 않게 여섯 개밖에 남지 않은 이빨은 상태가 안 좋고 잘못 나 있어서 서로 맞물리지도 않습니다. 그의 체구는 거대하지도 왜소하지도 않고, 피부색은 갈색보다는 흰색에 가까우며 생기 있는 편입니다. 이것이 바로 돈키호테를 쓴 작가의 용모입니다.” 17세기 당시 귀족이나 부유층들이 초상화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후대에 남기려고 시도한 것처럼 세르반테스 역시 자신의 얼굴을 작품 속에 함께 남겨 영원히 기억해 주기를 갈망한 것으로 보인다. 2016년 4월 23일은 스페인의 국민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타계한 지 400주년이 되는 해다. 역사의 우연인지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도 같은 해 같은 날 타계했다. 그래서 4월 23일은 ‘세계 책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세계문학의 최고봉에 오른 두 작가의 타계 400주년을 맞아 전 세계 인문학자들의 바쁜 발걸음이 벌써부터 들려오고 있다. 라만차 지방의 모든 도시들이 돈키호테의 고향이라고 했듯이 그의 유골도 스페인의 모든 성당에 묻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현명할 듯싶다.
  • [단독] 北 “인도적 지원 합의 먼저 지켜라” 日에 초강수 메시지

    [단독] 北 “인도적 지원 합의 먼저 지켜라” 日에 초강수 메시지

    2014년 5월의 ‘북·일 스톡홀름 합의’에 의해 북한에서 납치피해자 등의 조사가 시작된 것은 그해 7월부터였다.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의 스톡홀름 합의 내용에 따르면 일본 측은 “북한에 1945년 전후 북한에서 사망한 일본인의 유골 및 묘지, 잔류 일본인, 일본인 배우자, 납치피해자 및 행방불명자를 포함한 모든 일본인에 관한 조사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북측은 “과거 북한이 납치문제에 관해 기울여온 노력을 일본 측이 인정한 것으로 평가하고, 종래의 입장은 있지만 모든 일본인에 관한 조사를 포괄적, 전면적으로 실시해 최종적으로는 일본인에 관한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합의에 따라 북한은 그해 7월 4일 서대하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특별조사위원회를 발족해 조사에 들어갔다. 조사위 발족을 전후해 일본에서 부정적인 기류가 있었지만 “(북한의)진정성을 믿어 보자”는 분위기도 적지 않았다. 아베 신조 총리는 조사위 출범이 확인되자 그날로 각의 결정을 통해 대북 제재 가운데 인적 왕래의 금지, 인도적 목적의 북한 선적의 입항금지 등을 해제했다. 하지만 양측 간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던 ‘여름이 끝나는 초가을 무렵’이란 1차 조사결과 제출 시기를 넘겨서도 조사에 진전이 없다는 국내 비판 여론에 밀린 일본 정부는 진척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작년 10월 평양에 이하라 준이치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등을 파견했다. 평양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조사위 발족 이후 지금까지 8개월간 북측은 ‘북한 내 일본인’ 조사를 사실상 마무리하고 일본 측에 관련된 조사내용을 넘겨 줄 준비가 돼 있다. 다만 “스톡홀름 합의의 7개항 가운데 일본이 이행한 것은 인적 왕래 등의 부분해제밖에 없으며, 조사결과만 내놓으라고 요구해서는 곤란하다는 게 북한의 입장”이라고 소식통은 전했다. 즉, 합의상의 인도지원이나 재일조선인 지위에 관한 문제 등에서도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조사의 핵심이 되는 납치피해자 부분의 경우 생존자가 없다는 기존의 북측 주장을 뒤집는 결과가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된다. 북한은 스톡홀름 합의에서 ‘종래의 입장은 있지만’이라고 전제를 밝혔다. 이런 터라 일본 측이 납치피해자 부분에서 아무런 진전이 없는 조사결과를 통보받을 경우 아베 정권에는 적지 않은 정치적 타격이 될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이 같은 배경 때문에 조사결과 인도를 둘러싸고 북·일이 시간을 끌고 대립할 가능성이 높으며, 북한은 단독공개라는 강수를 통해서라도 양측 최대 현안인 ‘북한 내 일본인’ 조사를 완결한다는 강경한 방침을 세웠다고 풀이할 수 있다. 도쿄 황성기 특파원 marry04@seoul.co.kr
  • [단독] 北 ‘日 납치 피해자’ 조사 완료… 일방 공개 압박

    북한이 일본인 납치 피해자를 포함한 북한 내 일본인 조사를 사실상 완료하고 결과의 단독 공개도 검토하고 있다고 평양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이 15일 밝혔다. 일본 정부가 오는 4월 기한인 대북 제재 연장 방침을 세운 가운데 일본 측이 요구하고 있는 조사 결과 인도를 둘러싼 북·일 양측의 신경전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소식통은 “북·일의 ‘스톡홀름 합의’ 직후인 지난해 5월 30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에서 조사기한을 1년이라고 시사한 만큼 오는 5월 말에는 결과를 일본 측에 건네주는 게 맞다”면서 “북한 측 조사는 납치피해자, 특정 실종자, 유골 및 묘지, 잔류 일본인, 일본인 배우자 등 양국이 합의한 모든 사항에 걸쳐 마무리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에서 북한이 조사에 불성실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데 대해 북한은 반응을 자제하면서 지켜보고 있다”면서 “만일 조사 결과를 일본 측이 수령하지 않는 등 원만한 교섭이 이뤄지지 않으면 북한이 단독으로 조사 내용을 공개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북측이 조사 결과를 단독 공개할 경우 조사의 신빙성을 문제 삼아 일본이 강력히 반발하는 등 큰 파장이 예상되며, 납치조사를 매듭짓고 국교정상화로 가려는 양측의 구상도 백지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 소식통은 “일본이 북측 조사 태도를 문제 삼는데, 북한 특별조사위원회의 서대하 위원장이 지방에 내려가 스스로 진두지휘하는 등 성의를 보였다”면서 “유골의 경우 발굴이 상당히 진척됐으며 잔류 일본인은 1세를 중심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또한 “송일호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 담당대사에 따르면 납치피해자, 특정 실종자 이외에 20~30년 동안 어떤 경위로든 북한에 들어간 일본인 가운데 일본이 북한에 건넨 명부에 없는 생존자들이 결과에 포함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북·일은 지난해 5월 29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북한 내 납치피해자 등 일본인 조사와 관련해 각각 7개 항을 이행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도쿄 황성기 특파원 marry04@seoul.co.kr
  • 국내여행 | 합천이어야 했던 이유

    국내여행 | 합천이어야 했던 이유

    이야기는 50여 년 전 한국에 머물렀던 어느 프랑스인에서 시작된다. 합천 해인사를 사랑해 죽어서도 그곳에 묻힌 사람. 무엇이 그를 넋으로 돌아오게 했을까? 그 질문에 밀려 합천으로 갔다. 홍류동에 뿌려지다 합천군은 잘 알고 있었다. ‘합천’ 하면 떠오르는 ‘해인사’의 공식이 이 도시의 이미지를 경직시키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시작한 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이나 해인아트프로젝트의 소식이 들려왔을 때 귀가 솔깃했으나 결국 2013년 이 행사를 찾았다는 200만명의 대열에 속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로제 샹바르’의 사연과 프랑스인들과 동행하는 합천 여행은 만사를 제쳐 놓게 할 만큼 호기심을 자극했다. 일단 ‘문제적 그’를 먼저 소개한다. 로제 샹바르Roger Chambard는 1959년 한국에 부임해 10년간 근무한 초대 주한프랑스 대사였다. 그 기간 중에 한국을 널리 여행했던 그는 특히 해인사를 좋아해 ‘죽으면 화장을 해서 해인사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했고, 실제로 1982년에 78세의 나이로 타계하자 유골은 한국으로 옮겨져 합천 해인사 자락에 뿌려졌다. 그의 손자 올리비에 샹바르Olivier Chambard는 프랑스 외교부 아프리카-인도양 담당 부국장이 되어 2011년 9월에 공무차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고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종종 언론에 소개되곤 했지만 그냥 잊힐 수도 있는 이야기에 마음이 복잡해진 이유는 아마도 ‘죽을 자리’ 때문이리라. 세상을 많이 떠돈 만큼 상대적으로 강해지는 것은 회귀본능이다. 마지막 자리는 내 나라, 사랑하는 사람의 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결석처럼 단단해진다. 그런 본능을 넘어서 타국, 타향을 선택할 만큼 로제 샹바르의 해인사 사랑이 대단했던 것인지 영혼의 외로움이 컸던 것인지,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들은 단편적이기만 하다. 어느 프랑스인의 피안彼岸 5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전후 가난했던 한국의 모습은 흑백사진으로 남아있고, 그 사진 속 로제 샹바르도 흑백이다. 시간은 그냥 흐르기만 한 것이 아니어서 그 사이 홍류동紅流洞 계곡 옆으로 포장도로가 깔렸다. 2011년부터 ‘소리길’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해인사 산책로 6.3km는 3분의 2 이상이 이 도로와 나란히 달린다. 해인사 시외버스 터미널을 오가는, 통행량이 적지 않은 도로이고 커브를 도는 엔진소리는 홍류동 계곡의 물소리도 잠식한다. 그 옛날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의 귀를 먹게 했다 할 정도로 옥계수가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가 우렁찼다는 이야기가 무색하지만 다행히도(?) 소리길의 ‘소리’는 ‘Sound’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곳에서의 소리蘇利는 불교에서 ‘이상향’ 혹은 ‘피안’을 뜻한다. 작은 힌트를 주워 본다. 로제 샹바르가 해인사를 드나들던 그 시절에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홍류동 계곡은 어쩌면 그에게 이상향에 가까웠을지도 모르겠다. 우거진 송림 사이로 들려오는 새소리 그리고 듬직한 바위 사이를 미끄러져 내려오는 청수, 그 물살의 기개를 보여 주는 폭포와 웅덩이들. 그 안에 숨은 19개의 명소. 신라 최고의 천재로 칭송받았지만 말년에 해인사에 머물다 홍류동 계곡에서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혹은 방랑 끝에 죽었다는) 최치원에게 이곳이 피안이었듯, 노년의 프랑스인에게도 해인사와 홍류동 계곡은 그런 곳이 아니었을까. 소나무, 노각나무, 떡갈나무, 떼죽나무, 줄참나무, 굴참나무 가득하고 물소리와 새소리가 어우러지는 소리길을 두 시간 넘게 걷는 동안 두 노인의 마음을 소리 없이 헤아려 보았다. 최치원이 명명했다는 가야산 19경 중 16경이 그 헤아림에 길라잡이가 되어 주었다. 마음에 담은 해인사의 보물 대장경테마파크에서 시작된 소리길은 해인사에서 끝이 난다. 경내로 들어서자 한눈팔지 않고 장경판전으로 직행했다. 해인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장경판전은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장소로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팔만대장경8만1,258장은 12년 후에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순서가 바뀐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15세기에 만들어진 이 건물은 통풍, 방습, 온도 유지 등을 고려한 과학적 설계에 있어서 현재의 건축기술이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 당시 최첨단 기술을 동원해 새로운 건물을 신축했지만 일부 장경에 곰팡이가 피는 등 문제가 발생해 다시 옮겨 왔을 정도다. 통풍을 위해 앞뒤 창문의 크기를 다르게 하고 바닥에 숯과 소금 등을 깔아서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는 지혜는 함부로 베껴지지 않는 모양이다. 들어갈 수도, 사진촬영도 불가능하기에 아쉬운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는데 먼 북소리가 들려왔다. 이제야 해인사가 눈에 들어온다. 대웅전 앞마당엔 법고식이 진행되고 있었고 경내의 모든 사람들은 부동자세로 젊은 스님들의 손만 바라보고 있었다. 전국 사찰 중 가장 힘차고 아름다운 법고 소리로 유명한 해인사이니 가능한 풍경이다. 무려 23개의 산내 암자를 지닌 해인사이기에 타종 소리, 법고 소리는 그 어느 곳보다 멀리 도달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경외로 나가자 아까 스치듯 지나온 전나무와 작품들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소리길에서부터 드문드문 만났던 조각품과 설치 작품들은 2013년 진행됐던 해인사아트프로젝트의 흔적이다. 30팀의 국내외 작가들이 ‘마음’이라는 주제를 담아 평면, 입체, 미디어, 설치작품을 완성했다. 5,200여 만 자에 이르는 팔만대장경의 글자들을 단 한 자로 요약하면 ‘마음 心’이기 때문이다. 방치되어 파손된 작품 앞에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정성을 다한 작품 앞에서는 경탄심이, 위트가 넘치는 작품 앞에서는 ‘아하’ 하는 마음이 둥둥둥 울리고 있었다. 팔만대장경에 한 톨씩을 새겨 넣었던 선조들의 바람은 호국이었든, 무병장수였든, 소원성취였든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신분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불운한 말년을 보냈던 최치원의 마음과 타향에서의 안식을 원했던 로제 샹바르의 마음도 홍류동 계곡에서 하나로 합수하여 합천으로 흘러들고 있듯이 말이다. 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합천군 www.hc.go.kr ●Bon voyage 해인사 소리길의 도반들 해인사와 소리길 여행에는 유쾌한 도반들이 있었다.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3명의 프랑스인들은 프랑스인의 시선과 감성에서 로제 샹바르와 해인사의 인연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그리고 합천 여행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묻기 위해 합천군에서 초대한 손님들이었다.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벵자맹 박사가 두 사람을 위해 통역을 맡아 주었다. 그들의 ‘까칠하지만 솔직한’ 피드백은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 주었다. 한없이 모던하고 최첨단인 대장경테마파크의 시설과 기술이 오히려 팔만대장경과 단절되어 보인다는 지적도 있었고, 해인사 사하촌에 많은 식당이 있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이용하기가 불편하다는 피드백도 있었다. 지나치리만큼 자주 눈에 띄었던 해인사의 보시함을 지적할 때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일견 합당하고, 일견 문화적인 차이가 느껴지기도 했던 대화들은 1박2일 내내 진지하게 이어졌다. 해인사에 가려져 있는 합천의 매력이 더 잘 알려지기 바라는 ‘마음’들이 합천군에도 한 자 한 자 기록으로 새겨졌을 것이다. 참고로 세 사람의 프랑스인이 예상외로 황매산의 때늦은 억새풍경을 극찬했다는 사실도 덧붙인다. ▶travel info 합천 합천영상테마파크 2003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세트장으로 탄생한 합천영상테마파크는 합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1920년대 경성의 거리와 1980년대 서울의 모습이 교차하는 곳이다. 어른들에게는 추억의 장소이고 아이들에게는 낯선 근현대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경남 합천군 용주면 합천호수로 757 055-931-2467 1,100원 대장경테마파크 초조대장경 간행 1,000년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된 대장경세계문화축전은 2011년 첫회를 시작으로 2013년 행사까지 성황리에 마쳤으며 다음 회를 기약하고 있다. 대장경테마파크 안에는 대장경천년관, 지식문명관, 정신문화관, 세계교류관, 세계시민관 등 5개의 전시관이 조성되어 대장경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준다. 경남 합천군 가야면 가야산로 1160 055-930-4801~2 어른 3,000원 황매산 철쭉, 억새 군락지 5월이면 철쭉 원피스를 입고, 10월이면 억새풀 망토를 두르는 산이 황매산이다. 북서쪽 능선의 정상 아래까지 차를 타고 갈 수 있기에 평소에도 산상화원을 만나고 싶은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이 많다. 봄과 가을만 바라는 사람은 초목으로 뒤덮인 황매산의 여름이나 눈꽃이 만발은 황매산의 겨울은 놓치는 것이니 어느 계절이든 황매산을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 대장경 밥상 받으시오! 합천군에서 지정한 딱 2곳의 식당에서만 맛볼 수 있는 상차림이다. 절식을 기본으로 했기에 기본적으로 채소밥상이지만 육류를 추가 주문할 수 있다. 건강한 맛뿐 아니라 식기를 모두 놋그릇을 사용하기 때문에 품격도 남다르다. 대장경 한정식은 1인분에 3만원으로 반드시 사전에 주문해야 하며 이 밖에 도토리 비빔밥 세트(1인분 1만5,000원), 도토리 비빔밥(7,000원) 등의 메뉴가 있다. 백운식당 055-932-7393 해인식당 055-933-1117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완벽 보존된 2600년 전 고대인류의 ‘뇌’ 공개

    완벽 보존된 2600년 전 고대인류의 ‘뇌’ 공개

    무려 2600년 전 고대 인류의 뇌 화석에 대한 연구결과가 발표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뇌 화석은 2009년 영국 요크의 헤슬링턴 지역에서 발견됐으며, 화석 내부에서는 실제 뇌가 매우 양호한 상태로 보존돼 있었다. 요크 고고학 단체는 약 7년간 이 뇌를 정밀 조사했고, 그 결과 뇌의 주인이 약 2600년 전 철기시대의 고대인류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뇌가 부패되지 않고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할 수 있었던 원인은 다름 아닌 진흙이었다. 이 뇌의 주인은 사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진흙에 완전히 묻혔으며, 진흙이 산소를 완벽하게 차단하면서 부패가 일어나지 않았다, 이 화석은 머리를 아래쪽으로 파묻은 상태로 발견됐으며, 고고학자들은 이 화석을 발견했을 당시 일반 화석과 마찬가지로 안쪽이 텅 비어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연구를 이끈 고고학자 레이첼 규빗 박사는 “머리 화석을 발견한 뒤 작은 구멍을 통해 안을 들여다봤을 때, 밝은 노란빛을 띠는 물체를 발견하고는 매우 놀랐다. 그것은 바로 2600년 전 사람의 뇌였다”면서 “지금까지 숱한 연구를 하면서 그런 경험은 처음 이었다”고 전했다. 연구에 참여한 브래포드대학교 연구진이 고대 인류의 뇌를 연구하기 위해 이를 둘러싼 뇌 골격을 조심스럽게 제거했고 턱 뼈 조각 등의 탄소동위원소 측정법을 이용해 뇌의 주인이 26~45세의 젊은 남성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밖에도 유골의 주인이 목을 심하게 가격당한 뒤 여러 차례 날카로운 도구에 찔린 흔적을 발견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가 생전에 심한 폭행을 당하고 사망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보고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추가적으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 화석 뇌에서 발견한 미생물의 흔적 및 뇌 형태를 조사해 고대 인류를 생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자료를 구축할 예정이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3·1절 앞두고 대한민국 훈장을 만나다

    3·1절 앞두고 대한민국 훈장을 만나다

    박근혜 대통령, 26년간 전국 노래자랑을 지켜온 방송인 송해,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산소탱크’ 박지성 선수,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된 삼호주얼리호를 구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석해균 선장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언뜻 보면 나이와 성별, 직업 등이 달라 공통점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이분들의 가슴에는 모두 제가 달려 있습니다. 국가와 사회 발전에 노력한 유공자만 받을 수 있는, 제 이름은 ‘훈장’입니다. 3·1절을 앞두고 저를 찾는 사람이 많습니다. 제 고향은 경북 경산 갑제동 한국조폐공사 화폐본부입니다. 지폐와 동전을 찍어내는 곳 아니냐고요? 맞습니다. 부의 상징인 돈과 명예의 상징인 훈장을 한곳에서 만든다니 좀 의외죠. 그래도 이곳에 쌓여 있는 수많은 현금을 다 줘도 저를 살 수는 없으니까 제가 돈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요. ●故 노무현·이명박 대통령 “나라 위해 일 한 뒤 받겠다”… 관례 깨고 퇴임 때 받아 화폐본부에는 1985년 이사 왔습니다. 이전에는 배지 등을 제작하는 민간업체 ‘정일사’에서 만들어 정부에 납품했는데요. 제 몸통에 용접으로 붙였던 고리가 종종 떨어지는 등 건강에 문제가 생겼거든요. 그래서 고향을 떠나 저를 좀 더 튼튼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조폐공사로 짐을 쌌죠. 제가 태어나기까지는 30번이나 손을 거쳐야 합니다. 지폐나 동전처럼 생산 과정이 기계화되지 않아서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만들어야 하니까요. 우선 99.99%의 순은을 965도 이상에서 2시간 동안 녹여 은괴를 만듭니다. 은괴를 기계로 눌러 은판이 되면 훈장 모양을 찍습니다. 어렸을 때 먹었던 추억의 ‘뽑기’처럼 훈장 모양만 남기고 나머지 부분을 떼어내는 ‘타발 과정’이 이어집니다. 이어 빨간색 등 여러 색상의 옷을 입히는 ‘칠보’와 광택으로 멋을 낸 뒤 순금으로 도금하고 조립·포장을 거치면 완성입니다. 제 형제는 모두 56명입니다. 무궁화대훈장, 건국훈장, 국민훈장, 무공훈장, 근정훈장, 보국훈장, 수교훈장, 산업훈장, 새마을훈장, 문화훈장, 체육훈장, 과학기술훈장 등 12종으로 각각 1~5등급으로 나뉩니다. 다만 훈장 중에서 최고의 훈격을 갖는 무궁화대훈장에는 등급이 없습니다. 무궁화대훈장은 우리나라 대통령과 우방국의 원수, 배우자에게 수여합니다. 은으로 만드는 다른 훈장과 달리 순금으로도 제작됩니다. 루비 4개와 자수정 36개도 들어갑니다. 대통령은 취임할 때 받는 것이 그동안 관례였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위해 일하기도 전에 훈장부터 받는 것은 잘못됐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잘하고 받겠다”는 뜻에서 이 관례를 깼지요. 이명박 전 대통령도 같은 의미에서 퇴임 직전에 훈장을 받았습니다. ●‘최고의 훈격’ 무궁화대훈장만 순금 제작… 남성용 3071만원, 여성용 1951만원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저를 가슴에 달았는데요. 역대 대통령이 받았던 훈장과는 다릅니다. 무궁화대훈장은 남성용과 여성용으로 나뉩니다. 들어가는 금도 남성용 717g, 여성용 455.4g으로 차이가 납니다. 저를 목에 걸고, 어깨에 두르고, 가슴에도 달아야 하기 때문에 남녀의 체격을 고려한 것입니다. 역대 대통령은 영부인 훈장까지 2개씩 받았지만 박 대통령은 여성용 1개만 받았습니다. 제 몸값은 ‘국가 기밀’이라고 하는데요. 그래도 얘기하자면 일반적으로 20만~100만원입니다. 5등급에서 1등급으로 높아질수록 재료인 은이 많이 들어가서 몸값이 비싸집니다. 무궁화대훈장은 27일 국내 금 시세(1g당 4만 2832원)로 보면 남성용 3071만원, 여성용 1951만원입니다. 훈장이라는 제 이름과 이미지 탓에 주로 공무원, 군인 등만 받는다고 오해하시는 분들도 많은데요. 저는 산업, 문화, 체육, 과학기술 등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공을 세운 분들께 수여됩니다. 최근에도 2012년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에 ‘케이팝’(KPop)을 널리 알린 가수 싸이가 옥관 문화훈장을 받았습니다. 전 국민의 심장을 뛰게 했던 2002년 월드컵에서 태극전사를 4강으로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도 체육훈장 청룡장이 전달됐습니다. ●공무원연금 개혁 후폭풍에 명퇴 공무원 급증… 작년 수훈자 2만여명 일반 국민이 직접 수상자를 추천할 수도 있습니다. 2011년부터 우리 사회의 숨은 유공자를 찾아내기 위한 ‘국민추천포상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요. 첫해에는 영화 ‘울지마 톤즈’로 알려진 고 이태석 신부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수여됐고, 지난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정부보조금 등으로 모은 재산 1억 2000만원을 불우학생 장학금으로 기부한 김군자(88) 할머니가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습니다. 작년에는 김 할머니를 포함해 총 2만 1669명이 훈장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인구(5042만명) 기준으로 국민의 0.03%만 가질 수 있는 영예죠. 지난 5년간 연평균 수상자는 1만 5700명인 데 반해 지난해 수훈자가 크게 늘어난 이유는 정부의 공무원연금 개혁 추진에 따른 후폭풍 때문입니다. 명예퇴직한 공무원이 1만 7000명으로 전년 대비 72%나 늘었거든요. 재직 기간이 33년 이상인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원, 별정우체국 직원에게 주는 근정훈장과 군인·군무원에게 수여하는 보국훈장이 대거 나갔습니다. 화폐본부 훈장과에서는 지난해처럼 일이 몰린 적이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뒤 처음이라고 하네요. 열심히 일하고 훌륭한 분들에게 훈장을 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나라 사정이 안 좋을 때 수훈자가 늘어나는 것은 다소 씁쓸합니다. 경산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30년 장인’ 배연창 작업과장 “천안함 용사 위해 만들 때 가슴 먹먹…그런 훈장은 다시 만들고 싶지 않아” 조폐공사 화폐본부 훈장과에는 저를 이 세상에 나오게 하는 직원 10명이 있습니다. 이 중 배연창(57) 작업과장은 지난 30년간 저만 만들어온 최고의 장인으로 꼽힙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부터 4명의 대통령에게 수여한 ‘무궁화대훈장’도 배 과장의 손을 거쳤습니다. 하지만 배 과장의 기억에 가장 남는 훈장은 2010년 3월 천안함 46용사를 위해 만든 ‘화랑 무공훈장’이라고 합니다. 무공훈장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사자에게 주로 수여돼 그동안 6·25 전쟁 전사자들의 유골이 발굴되면 가끔씩 만들곤 했습니다. 배 과장은 “훈장을 만들면서 가장 가슴이 메이고 숙연한 마음이었다”면서 “앞으로 이런 훈장을 다시 만들지 않는 대한민국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 어느 국군포로 탈북 아들의 죽음

    어느 국군포로 탈북 아들의 죽음

    ‘너를 만나 잘 살고 하였는데 내가 인구실(사람 구실) 못 하는구나, 미안하다. 앞으로 잘 살고 아프지 마라.’ 북한 아오지탄광에서 국군 포로의 아들로 태어나 천신만고 끝에 탈북했지만 남쪽에서 아버지는 6·25전사자일 뿐이었다. 살아 보려고 발버둥 쳤지만 쉽지 않았다. 아버지의 명예 회복과 법적 자녀의 권리를 부르짖었지만 메아리조차 없었다. 결국 50대 탈북 남성은 아내에게 이별을 암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지난 26일 주락철(53)씨의 빈소에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한영복 6·25국군포로가족회(가족회) 회장의 조화 2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같은 처지인 가족회 관계자들을 제외하면 조문객도 찾아오지 않았다. 주씨는 1962년 함경북도 은덕군(아오지)에서 태어났다. 이 지역으로 강제 이주당한 북한 여성과 결혼한 아버지는 탄광에서 일하다 다이너마이트 발파 과정에서 시력을 잃고 ‘봉사지기’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아들 주씨에게는 ‘남조선 괴뢰군 새끼’라는 손가락질이 늘 따라다녔다. 북한에서 최하층에 속한 주씨 가족은 다른 많은 탈북민처럼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에 살아남기 위해 중국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 빈소에서 만난 아내 김모(52)씨는 주씨가 헤이룽장(黑龍江)성과 몽골, 태국을 거쳐 2005년 3월 부산에 들어왔다고 전했다. 김씨와는 한국으로 들어온 지 6개월 만에 가족의 연을 맺었다. 김씨는 “남편이 북에 두고 온 딸과 아들이 보고 싶어 힘들어했다”며 “2008년까지는 브로커를 통해 가족과 연락을 했는데 딸이 ‘꽃제비’로 먹을 것을 찾아 떠돌아 다닌다는 소식을 들은 뒤에는 잠도 제대로 못 이뤘다”고 말했다. 주씨는 하나원을 나온 뒤 아버지의 고향인 전북 전주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물론 ‘남쪽’에서의 삶은 팍팍했다. 일터에서는 국내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주씨를 이주노동자 대하듯 했다. 일용직 노동으로는 한달에 70만~80만원을 벌기도 빠듯했다. 탈북 뒤 이국을 떠돌며 생긴 상처들은 고스란히 병이 돼 주씨를 괴롭혔다. 식당 일을 하려고 경북 구미로 떠난 아내와도 떨어져 살았다. 주씨는 가족회 시위에 동참하기 위해 지난해 7월 상경했다. 주씨를 비롯해 가족회 회원들의 요구는 국군 포로 지위를 인정하고 가족들에게 제대로 된 배상과 보상을 해 달라는 것이다. 또 생존 국군 포로를 귀환시키고 북한에 묻혀 있는 유해를 국내로 들여오기 위해 정부가 노력해 달라는 것이다. 주씨 아버지를 비롯해 국군 포로 중 상당수는 현재 전사자 신분이다. 정부는 미귀환 국군 포로들을 참전국가유공자로 인정하기는 했지만 호적상으로는 전쟁 중에 사망한 것으로 돼 있다. 탈북 국군 포로 자녀들은 부모의 호적에 이름을 올릴 수가 없어 유공자 자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주씨는 청와대 앞 1인 시위에 매일 참석했다. 회원들이 생계를 위해 각자 집으로 돌아갔지만 주씨는 홀로 서울 중구의 가족회 사무실에서 지냈다. 힘이 들 때마다 멀리 떨어져 지내는 아내에게 연락해 “아버지 명예를 찾기 위해 끝까지 잘해 보겠다”고 했다. 그러던 중 주씨는 지난 13일 가족회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속기록을 통해 국회에서 국방부 관계자가 ‘국가적 책무에서 국군 포로는 제외해야 한다’고 발언했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숙 가족회 총무는 “주씨가 속기록과 관련해 분노를 표출하는 글을 커뮤니티에 올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주씨는 지난 25일 가족회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가족회는 신경안정제를 과다 복용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주씨의 시신을 부검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가족회는 주씨 발인일인 27일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방부 군비통제 관계자는 책임지고 고인과 가족회 회원들에게 공식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주씨 시신을 실은 운구차를 몰고 와 노제를 지냈고, 국방부 측의 유감 표명을 들은 뒤에 화장터로 이동했다. 한줌 남짓한 주씨의 유골은 경기 고양시 예원추모관에 봉안됐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일본인 81% “역대 총리들 한·중에 침략 충분히 사과”

    일본인 10명 중 8명은 자국 정부가 과거의 침략과 식민 지배를 충분히 사과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유권자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전후 70년 관련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1%가 ‘역대 일본 총리가 한국이나 중국에 역사적 사실에 관해 사죄를 반복한 것이 충분하다’고 답했다고 25일 보도했다. 충분하지 않다는 답변은 15%에 그쳤다. 또 응답자의 81%는 일본이 패전 후 올해까지 70년간 평화 국가의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렇지 않다고 판단한 이는 5%에 그쳤다. 중·일전쟁이나 태평양전쟁 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안다’는 응답과 ‘잘 모른다’는 응답이 44%로 같았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주변국의 반발과 관련, 국가가 전몰자를 위령·추도하기에 적합한 장소를 고르라는 물음에 응답자의 38%는 야스쿠니신사를 꼽았다. 합사된 A급 전범을 분사하고 야스쿠니신사에서 참배하자는 견해는 24%, 종교적 색채가 없는 국립 묘원을 새로 만들자는 의견은 17%로 나타났다. 이 밖에 무명 전사자의 유골이 안장된 지도리가후치 묘원을 확대 정비해 참배하자는 답변이 15%를 차지했다. 전후 70년을 맞은 일본에 미국은 어떤 인상이 강한 국가인지를 묻자 74%가 일본의 생활·문화에 큰 영향을 준 나라라고 답했다. 49%는 일본이 전쟁한 상대국이라는 것에 주목했고, 36%는 가장 중요한 우호국이라고 답했다. 한편 전후 가장 높은 업적을 쌓은 총리로는 중·일 공동선언으로 중국과 수교한 다나카 가쿠에이(1918~1993) 전 총리가 꼽혔다. 2위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였으며, 현직인 아베 신조 총리는 5위에 올랐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JP와 64년 ‘영옥의 세월’… 침묵의 마지막 인사

    JP와 64년 ‘영옥의 세월’… 침묵의 마지막 인사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눈물 속에 ‘평생의 반려자’인 부인 박영옥씨를 하늘로 떠나 보냈다. 박씨의 유해는 25일 충남 부여군 외산면 반교리 선산에 안장됐다. 발인식은 이날 새벽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에 김 전 총리가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김 전 총리는 발인식과 노제가 진행되는 내내 침통한 표정으로 장례 절차를 지켜봤다. 유가족이 두 번 절하는 동안 휠체어에 의지해 있던 김 전 총리는 베레모를 잠시 벗는 것으로 이를 대신하기도 했다. 운구 행렬은 발인례를 마친 뒤 김 전 총리의 신당동 자택 앞 골목으로 자리를 옮겨 노제를 지냈다. 안장 절차는 서울 서초동 추모공원에서 화장을 마친 뒤 오후 2시 20분쯤 고인의 영정과 위패를 든 직계가족과 김 전 총리가 선산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안장식에는 지역 정치인과 인근 주민 등 500여명이 참석해 박씨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했다. 안장식은 개식을 시작으로 화장한 고인의 유골함을 가족납골묘역에 안치하고서 마지막 제를 올리는 반혼제 순서로 진행됐다. 말없이 지켜보던 김 전 총리는 유골함이 안장되기 전 마지막으로 자신의 품에 들어오자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주위를 더욱 숙연하게 했다. 안장식이 끝나고 버스를 타고 떠나기 전 김 전 총리는 “국민의 정성 어린 조문에 아내가 기뻐할 것”이라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어 “아내가 먼저 눈을 감아 슬프다”면서 “국민 모두 건강하고 희망찬 내일이 되길 기도한다”고 전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죽어서도 함께…” 약 6000년 전 연인 유골 발견

    “죽어서도 함께…” 약 6000년 전 연인 유골 발견

    유럽의 수중 석회암 동굴에서 ‘죽음 후에도 함께한’ 연인의 6000년 전 유골이 발견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리스 디로스 동굴에서 발견된 이 유골은 20대 초중반 남녀의 것으로, 무려 6000년 전 합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2013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뒤 1년 여 간의 연구 끝에 이 무덤이 약 6000년 전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현지 전문가들은 이들 유골이 발견된 무덤은 그리스에서 발견한 고대 무덤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무덤에서는 한 쌍의 남녀 유골이 발견됐는데, 사망 당시 나이는 20~25세 정도이며 전문가들은 이들 연인이 당시 이 지역에 함께 살았던 다른 사람들과 함께 동굴 붕괴로 인해 매장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발견이 그리스에서 가장 오래된 무덤이라는 점에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으며, 더불어 이 무덤이 발견된 디로스 동굴에서의 추가적인 발굴도 기대하고 있다. 디로스 동굴은 1950년대에 이곳을 지나던 한 남성이 우연히 작은 입구를 발견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동굴은 ‘알레포트리파’(Aleportrypa)로, 참호(foxhole)라는 뜻을 가졌다. 고고학자들은 이곳에서 생활도구와 도자기, 은, 구리 공예품 등을 발견했으며, 이를 토대로 신석기 시대부터 존재한 장소로 추측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동굴이 사람들의 거주지이자 수 많은 사람들이 함께 묻힌 공동묘지로 사용됐다는 사실. 전문가들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죽은 자들의 나라인 ‘하데스’가 알레포트리파 동굴과 매우 흡사하며, 동굴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호수는 하데스에 흐르는 저승의 강 ‘스틱스 리버’의 실존 장소인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해 눈길을 사로잡은 바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아하! 우주] 뉴호라이즌스호 9년 만에 ‘저승신’을 깨우다

    [아하! 우주] 뉴호라이즌스호 9년 만에 ‘저승신’을 깨우다

    <뉴호라이즌스의 여정> •2011년 3월 18일/천왕성 궤도를 지나다 •2014년 8월 1일/ 해왕성 궤도를 지나다 •2015년 7월 14일/국제 표준시(UTC) 기준 11시 47분 명왕성 접근 통과(명왕성에서 13,695km 거리, 초속 13.78km) •2015년 7월 14일/국제 표준시(UTC) 기준 12시 01분 명왕성의 위성인 카론 접근 통과(카론에서 29,473km 거리, 초속 13.87km) •2016년~2020년/카이퍼 띠 천체들 접근 통과 •2029년 - 태양계를 떠남 오는 7월 14일 명왕성 도착을 5개월 앞둔 뉴호라이즌스호에 대해 지구촌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올해 우주 탐사에 있어 최대의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이는 뉴호라이즌스의 명왕성 도착은 미국 독립기념일 10일 후로 잡혀 있다. 1930년에 처음 발견된 명왕성은 아직까지도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태양빛이 도달하는 데 만도 5시간 27분이나 걸리는 태양계 변두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뉴호라이즌스는 태양계 미지의 영역을 탐사하는 인류 최초의 무인 탐사선으로 불린다. 2006년 1월 미국 케이프 커내버럴에서 발사된 뉴호라이즌스의 미션에는 모두 7억 달러의 예산이 투입되었다. 발사 당시만 해도 명왕성은 어엿한 태양계 제9 행성의 지위에 있었지만, 그해 6월 국제천문연맹에서 ‘명왕성을 ’왜소행성‘으로 분류해 행성 반열에서 퇴출당하는 불운을 겪었다. 명왕성 궤도 부근에서 그보다 더 큰 소행성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에 마지막 동면에서 깨어나 탐사를 재개한 뉴호라이즌스는 명왕성 위성 카론의 모습을 찍어보내는 등, 그동안 상상도를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명왕성계의 생생한 모습을 지구로 보낼 예정이다. 과학 저술가이자 영화제작자인 크리스토프 라일리 링컨 대학 교수는 “2015년은 우주탐사의 황금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면서 “개인적으로는 뉴호라이즌스의 명왕성 탐사가 하이라이트일 것으로 생각된다”며 한껏 기대감을 부풀렸다. 이어 "인류가 만든 탐사선이 태양계 마지막 행성을 방문하는 것은 역사상 최초의 일" 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뉴호라이즌스의 명왕성 도착을 계기로 명왕성이 다시 행성의 지위를 되찾게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미국 천문학자들은 미국인 톰보가 발견한 유일한 태양계 행성이었던 ’명왕성‘의 복권을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호라이즌스에는 톰보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톰보의 유골이 실려 있다. 여담이지만, 명왕성을 발견한 클라이드 톰보는 유현진이 뛰고 있는 LA 다저스의 에이스 클레이턴 커쇼의 외가쪽 큰할아버지다. 그래서 켜쇼는 ’명왕성은 내 마음의 행성이다‘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TV에 출연한 적도 있다. 켜쇼에게도 올해는 의미 깊은 한 해가 될 것 같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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