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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비싼 땅값에 죽어서도 ‘죽을 맛’…‘별별 묘지’ 등장

    중국, 비싼 땅값에 죽어서도 ‘죽을 맛’…‘별별 묘지’ 등장

    중국의 1선 도시만큼이나 가격 광풍을 일으키는 곳이 있다. 다름아닌 죽은 자를 묻는 ‘묘지’다. 중국인들은 “생전에는 집값 걱정, 죽어서는 묘지값 걱정”이라고 말한다. 심지어는 "돈 없으면 죽지도 말아야 한다"고까지 한다. 중국 당국은 집값 폭등 뿐 아니라 묘지값 폭등 해결에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상하이 지역의 묘지가격은 보통 5만~10만 위안(약 900만~1800만원)이다. 베이징은 저가형 4만 위안, 일반형 7만 위안, 고가형 수십만 위안에 이른다. 게다가 중국의 노령화로 인한 묘지의 공급부족이 가격인상을 부추기고 있다. 최근 프랑스의 한 인구문제 전문가는 “중국은 급격한 노령화로 매년 파리 면적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묘지가 생겨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 각 지에서는 ‘묘지절약’, ‘묘지값 안정화’를 위한 다양한 묘책들을 쏟아 붓고 있다. 난징(南京)에서는 최근 ‘3D 생태운장(生态云葬)’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묘지가 등장했다. 묘지가 차지하는 토지 면적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골을 보관한 원통함을 수평, 수직으로 쌓아 올렸다. 40평방미터에 460개의 납골을 안장할 수 있다. 유골함 뚜껑에는 고유의 QR 코드를 찍어두어 이를 입력하면 인터넷 상의 기념관으로 로그인된다. 고인의 사진, 약력, 가족들의 추모 메시지 등을 올릴 수 있다. 관계자는 "‘3D생태운장’의 ‘3D’란 제한된 공간을 전방위적이고 다차원적으로 이용함을 의미하며, ‘생태’란 생태 화강암 대리석 자재를 사용함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또한 ‘운(云)’은 묘지 뚜껑에 찍힌 QR코드를 의미한다. 최저 묘지 가격은 1만 위안(약 180만원) 미만으로 일반 묘지에 비해 저렴하다. 청두(成都)에서는 4인 및 6인 ‘가족합장묘’를 5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1인당 차지하는 묘지 면적이 0.2평방미터 미만으로 국가에서 규정한 1인당 묘지 면적 1평방미터 미만을 크게 밑돈다. 또한 8인 및 12인 합장묘와 지하와 옥상에 다층구조로 이루어진 ‘별장식 묘지’도 구상 중이다. 가족합장묘의 1인당 묘지가격은 일반 공동묘지 가격에 비해 낮출 계획이다. 이 밖에도 중국 11개 성(省)에서는 토지를 절약하는 ‘생태장(生态葬)’을 추진 중이다. 생태장이란 화장한 유골을 산골에 뿌리는 ‘수목장(树葬)', 잔디에 뿌리는 '잔디장(草坪葬)', 물에 뿌리는 ‘수장(水葬) 등의 방식으로 친환경적 유골 처리 방식이다.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전국의 화장율(火化率)을 100%까지 이룬다는 목표를 내세웠지만, 뿌리깊은 유교문화와 풍수지리 사상으로 여전히 매장 풍습은 줄지 않는 실정이다. 사진=南京晨报 이종실 상하이(중국) 통신원 jongsil74@naver.com
  • 네안데르탈인은 매머드 고기 먹고 살았다?(연구)

    네안데르탈인은 매머드 고기 먹고 살았다?(연구)

    네안데르탈인은 현생 인류보다 먼저 진화해 유럽과 아시아 대륙에서 번성했다. 그들은 사라지기 직전 현생 인류의 조상과 마주쳤는데, 이때 둘 사이의 이종교배가 이뤄져 아프리카인을 제외한 나머지 인류 집단의 DNA에 그 흔적을 남겼다. 하지만 대다수 네안데르탈인은 후손 없이 사라졌다. 이들이 왜 사라졌는지는 지금까지 학계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더불어 네안데르탈인이 어떻게 살았는지 역시 큰 관심사다. 네안데르탈인이 살았던 유적을 보면 이들이 매머드 고기 등 대형 포유류의 고기를 먹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주식으로 삼았는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았다. 독일 튀빙겐 대학이 이끄는 연구팀은 네안데르탈인 2명의 유골에서 추출한 성분에서 산소 및 질소 동위원소비를 측정했다. 그리고 이를 당시 살았던 늑대나 동굴 하이에나, 곰, 대형 고양이과 포식자 등과 비교했다. 각 동물과 식물이 지닌 동위원소비는 약간씩 차이가 있으므로 이를 근거로 어떤 음식을 주식으로 삼았는지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네안데르탈인은 채식을 하기도 했지만, 매머드나 털코뿔소 같은 대형 초식 동물을 중요한 식량으로 삼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보다 작은 사슴, 말, 순록 같은 중대형 초식 동물 고기는 주로 다른 대형 포식자들이 사냥했다. 이것이 의외의 결과가 아닌 이유는 보통 매머드 같은 대형 포유류는 자연 상태에서 적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자나 곰이라도 다 큰 매머드에 쉽게 덤벼들 수 없다. 하지만 도구를 사용하며 협동을 할 수 있는 인류의 조상은 예외에 속했다. 네안데르탈인은 사냥 기술이 현생 인류의 조상에 비해 낮다고 생각되지만, 이런 대형 포유류도 사냥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사냥꾼이라는 사실이 다시 입증된 셈이다. 물론 이 결과가 네안데르탈인이 왜 멸종되었는지를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다만, 연구팀은 아마도 식량 부족이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한 결정적이 이유는 아닐 것이라고 보고 있다. 매머드나 털코뿔소는 네안데르탈인보다 나중에 멸종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이 지구에서 사라진 이유를 밝히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고든 정 통신원 jjy0501@naver.com
  • 8000년 전 치른 개의 장례는 인간처럼 엄숙했다(연구)

    8000년 전 치른 개의 장례는 인간처럼 엄숙했다(연구)

    인간 최고의 반려동물인 개가 주인과 나란히 묻힌 무덤이 발굴됐다. 최근 캐나다 앨버타 대학 연구팀은 시베리아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인 바이칼호 인근에서 사람과 개가 나란히 묻힌 무덤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발굴이 눈길을 끄는 것은 주인으로 추정되는 사람 옆에 누워있는 개의 유골 때문이다. 이 개는 장신구를 한 상태였으며 그 옆에는 숟가락도 놓여있어 마치 사람처럼 매장돼 있었다. 이는 곧 저승에서 굶지 말고 잘 살라는 의미의 장례 풍습이 개에게도 적용된 것. 연구팀은 유골 분석결과 개가 5000년~8000년 사이 묻힌 것으로 추정했으며, 결과적으로 이 당시에도 인간과 개가 '친구 사이'였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연구를 이끈 로버트 로지 박사는 "최대 8000년 전 사회에서도 개가 사람 같은 대우를 받을 만큼 친숙했다는 의미"라면서 "한 무덤의 경우 사람 양 옆으로 개 두 마리가 정성스럽게 묻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에 발굴된 무덤만 봐도 사람과 개의 인연이 수천 년 이상 이어져 왔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처럼 개는 인간 최고의 반려동물이지만 언제, 어떻게 친구가 됐는지는 아직 속시원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늑대와 개의 화석이 매우 유사해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존에 발굴된 갯과 화석 분석을 통해 개의 가축화를 길게는 3만 년 전부터 짧게는 신석기 시대인 1만 년 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인간과 개가 친구가 된 이유 역시 두가지 이론이 있다. 하나는 과거 인간이 사냥 시 늑대를 동료로 활용해 이후 그중 일부 늑대가 개가 되었다는 설과 또 하나는 인간이 살던 거주지 주변의 음식물을 늑대가 먹기 시작하면서 결과적으로 인간과 함께 살게 되었다는 이론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계모 학대로 숨진 원영이 추모관에 추모편지, 핫팩, 간식쌓여

     계모로부터 학대받다 숨진 신원영(7)군의 유골이 안치된 경기도 평택시 청북면 평택시립추모관에 핫팩과 편지, 간식 등 어린 생명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어른들의 마음이 쌓이고 있다.  자전거를 타며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원영이 사진 위로 새하얀 색깔의 핫팩이 놓여졌다. 누군가 살아 생전 욕실에서 찬물과 락스를 뒤집어쓰며 추위에 떨어야 했던 원영이를 위해 붙여 놓은 것이다.  7살 짧은 삶을 마감한 원영이는 만 4살도 안돼 계모를 만난 뒤부터 한겨울에도 얇은 옷을 입은 채 동네를 방황했고 숨지기 전 석달간 추운 겨울에 ‘욕실 감옥’에 갇혀 찬물과 락스세례를 견뎌야 했다. 끔찍한 학대 끝에 원영이가 숨졌다는 소식을 접한 주민들은 하나둘씩 추모관을 찾아 미안해하며 추모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한 추모객은 “원영아,하늘나라에서 따뜻한 사랑 받으렴. 이승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잊고 행복하길 바랄게”라는 메시지를 남겨뒀다. 또 다른 추모객은 하루 한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며 하루하루를 버틴 원영이를 위해 초코바와 과자를 가져다 놓기도 했다.  ‘원영이 사건’의 피의자인 계모 김모(38)씨와 친부 신모(38)씨에 대한 현장검증이 끝난 뒤에는 평택 안중·포승지역 맘카페인 안포맘 회원 10여명이 모여 추모식을 열었다. 류정화 안포맘 대표는 “원영이에게 500명의 엄마들이 댓글로 쓴 편지를 전달했다”며 “하늘나라에서는 따뜻하기를 바란다. 어른으로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고개를 떨궜다.  유족은 “원영이의 유골함을 조금 더 밝은 곳으로 옮겨다 놓을 생각이다. 캄캄한 욕실에서만 지냈으니 이제라도 빛을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장례 치른 뒤 주인과 함께 묻힌 8000년 전 개 유골 발견

    장례 치른 뒤 주인과 함께 묻힌 8000년 전 개 유골 발견

    인간 최고의 반려동물인 개가 주인과 나란히 묻힌 무덤이 발굴됐다. 최근 캐나다 앨버타 대학 연구팀은 시베리아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인 바이칼호 인근에서 사람과 개가 나란히 묻힌 무덤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발굴이 눈길을 끄는 것은 주인으로 추정되는 사람 옆에 누워있는 개의 유골 때문이다. 이 개는 장신구를 한 상태였으며 그 옆에는 숟가락도 놓여있어 마치 사람처럼 매장돼 있었다. 이는 곧 저승에서 굶지 말고 잘 살라는 의미의 장례 풍습이 개에게도 적용된 것. 연구팀은 유골 분석결과 개가 5000년~8000년 사이 묻힌 것으로 추정했으며, 결과적으로 이 당시에도 인간과 개가 '친구 사이'였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연구를 이끈 로버트 로지 박사는 "최대 8000년 전 사회에서도 개가 사람 같은 대우를 받을 만큼 친숙했다는 의미"라면서 "한 무덤의 경우 사람 양 옆으로 개 두 마리가 정성스럽게 묻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에 발굴된 무덤만 봐도 사람과 개의 인연이 수천 년 이상 이어져 왔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처럼 개는 인간 최고의 반려동물이지만 언제, 어떻게 친구가 됐는지는 아직 속시원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늑대와 개의 화석이 매우 유사해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존에 발굴된 갯과 화석 분석을 통해 개의 가축화를 길게는 3만 년 전부터 짧게는 신석기 시대인 1만 년 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인간과 개가 친구가 된 이유 역시 두가지 이론이 있다. 하나는 과거 인간이 사냥 시 늑대를 동료로 활용해 이후 그중 일부 늑대가 개가 되었다는 설과 또 하나는 인간이 살던 거주지 주변의 음식물을 늑대가 먹기 시작하면서 결과적으로 인간과 함께 살게 되었다는 이론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탈북자, 마지막 길은 쓸쓸하지 않았네

    가족 없이 쓸쓸히 죽음을 맞은 탈북자가 경찰의 도움으로 영혼의 보금자리를 찾게 됐다. 6일 서울 강서경찰서에 따르면 탈북자 허모(53)씨는 홀로 북한을 탈출해 중국과 몽골을 거쳐 2006년 9월 강서구 가양동에 정착했다. 출신 성분 탓에 함경북도 무산 탄광에서 고된 노동을 해야 했고, 이를 견디다 못해 탈북한 것이다. 허씨는 자유를 얻었지만 안전장비 없이 탄광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이미 폐에 문제가 생긴 터였다. 병원에서 진폐증 진단을 받았다. 허씨의 병세는 나날이 악화됐고 지난 1월 29일 국립의료원에서 사망했다. 한국에 연고가 없는 허씨의 시신은 산골(散骨)될 처지였다. 이때 허씨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 정문권(58) 경위 등 강서경찰서 경찰관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정 경위는 탈북자마다 지정된 신변보호 경찰관으로, 허씨를 담당하고 있었다. 정 경위 등은 관계기관에 연락해 딱한 사정을 알렸다. 가양3동 주민센터,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 서울시의료원, 서초구 원지동 서울화장장, 일산 예원추모관 등이 돕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지난 2일 허씨 장례를 치르고 화장을 한 뒤 유골을 일산 예원추모관에 안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통일이 되면 북한에 있는 유족이 허씨의 유골이라도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故 천경자 차녀 ‘친자’ 소송… 미인도 진위·상속분쟁 2R

    故 천경자 차녀 ‘친자’ 소송… 미인도 진위·상속분쟁 2R

    법원 인정 땐 유작 권리 행사 가능… “진품 주장 국립현대미술관 소송할 것” 지난해 8월 별세한 천경자 화백의 차녀 김정희(62·미국 거주)씨가 자신을 천 화백의 법적 자녀로 인정해 달라며 법원에 친자 확인 소송을 제기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2일 김씨의 법정 대리인인 배금자 변호사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18일 친생자관계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했으며 천 화백의 차남 고 김정우씨의 아들도 고모와 함께 원고인에 이름을 올렸다. 이 사건은 서울가정법원 가사3단독에 배당됐다. 천 화백은 생전에 네 명의 자녀를 뒀다. 첫 남편 고 이형식씨와의 사이에서 장녀 이혜선씨와 장남 이남훈씨를 낳았고, 이혼 뒤 김남중씨와 만나 정희씨와 정우씨를 낳았다. 김남중씨는 당시 다른 여성과 법률상 혼인 상태였던 까닭에 정희씨와 정우씨는 김남중씨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이름을 올렸고 법률상 어머니도 천씨가 아닌 김씨의 부인으로 되어 있었다. 배 변호사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정희씨가 어머니의 명예회복을 위한 법적인 절차를 진행함에 있어 권리행사를 위한 공적인 지위가 필요해 소송을 제기했다”면서 “상속재산 분쟁 때문은 절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모자 관계의 입증은 출산했다는 증거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판례가 있다. 정희씨와 정우씨는 천 화백이 집에서 낳아 기르고 함께 생활했다는 사실이 천 화백이 남긴 글에 여러 차례 언급돼 있어 절차상의 무리는 전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 변호사는 “친자확인 판결이 나는 대로 ‘미인도’를 천 화백의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을 상대로 명예훼손 및 저작권법 위반으로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라며 “법원의 결론이 나오기까지는 두 달 정도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혼외자식’ 신분이었던 정희씨가 법적 자녀로 인정을 받을 경우 현재 장녀 이혜선씨가 독단적으로 결정해 온 천 화백의 유품 처리에 대해서도 공식 권리를 행사할 것으로 전망돼 상속재산을 둘러싼 분쟁은 불가피해 보인다. 혜선씨는 지난해 8월 천 화백의 사망 사실도 다른 형제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두 달 뒤 유골을 들고 서울시립미술관의 천경자 상설전시실을 다녀갔다. 이어 드로잉을 포함한 미공개 작품 1000여점과 개인소장품 등 4000여점을 부산에 있는 부경대에 기증하고 미술관 건립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어른들의 부끄러운 역사, 아동학대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도 되나’ 싶은 사건 사고는 언제나 있었다. 잔인하고 끔찍하며 안타까운 각종 사건 가운데서도 최근 대한민국을 가장 분노케 한 것은 다름 아닌 아동학대 사건이다. 장기 무단결석 아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부는 그림자마저 사라져 버린 아이들을 뒤늦게서야 찾기 시작했다. 물론 결과는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아이들은 하나둘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고 있다. 보고도 믿지 못할 이러한 참극은 무릇 대한민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시간과 국적을 초월해 힘없는 어린아이들을 괴롭혀 온 부끄러운 어른들의 역사가 세계 곳곳에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역사가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2000년 전 이집트 2~3세 유골서도 학대 흔적 아동학대는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존재해 왔으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편화된 사회적 현상 또는 문제였다. 그 유형 역시 영아 살해부터 성학대까지 매우 다양하다. 아동학대의 오래된 역사는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센트럴플로리다대학 연구진은 2013년 이집트 서부에 있는 2000년 된 묘지와 유골을 조사하던 중 2~3살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의 팔과 쇄골에서 눈에 띄는 골절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골절이 누군가가 강한 힘으로 아이의 팔을 잡고 격렬하게 흔들어 골격에 극단적인 균열이 생긴 것으로 추론했다. 중세 로마시대 아버지들은 ‘파트리아 포테스타스’라 부른 가부장의 절대적인 권위 아래에서 모든 아동에 대한 권한을 손에 쥐었다. 강력한 부권(父權) 행사 과정에서 아이들의 생사는 그 누구도 아닌 친부로부터 결정됐다. 아동이기 이전에 사람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권리조차 무시된 것이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 중 하나 역시 아동학대를 연상케 한다. 그 유명한 사도세자와 아버지 영조(1694~1776)의 이야기다.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아버지, 그 아버지로부터 받은 정신적(지나친 교육열), 육체적(좁은 뒤주에 감금) 압박은 학대의 또 다른 양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미국은 학부모 소환… 영국은 언어폭력도 처벌 일일이 글로 설명하기조차 어려운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은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나마 선진국은 아동학대를 미연에 방지하고 동시에 아동학대와 관련한 처벌 수위를 높여 아이들을 보호하려 노력하고 있다. 미국은 불과 2년 전인 2013년 1월 ‘아동보호법’(Protect Our Kids Act)을 제정했다.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 소아과 및 가정의학과 의사와 검시관, 변호사 등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담팀이 꾸려진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이슈가 된 장기 무단결석이 발생할 경우 미국 학교들은 법적 효력을 갖는 ‘학부모 소환제’를 이용한다. 이 소환에 불응하는 부모는 형사 고발되고 벌금형이 내려지며, 이후에도 자녀의 무단결석이 이어질 경우 곧장 구속영장이 발부된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일명 ‘신데렐라법’이 제정됐다. 부모가 아동에게 학대를 가했을 경우 최고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법이다. 영국 신데렐라법의 가장 큰 특징은 학대의 범위가 단순한 육체적 학대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동을 향한 폭언 등 언어적 폭력부터 훈육과 교육을 명목으로 한 체벌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처럼 직계존속에 의한 가정 내 체벌은 유교적 관념이 짙은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교육을 넘어선 학대로 인식되면서 법적 제재로 이어졌다. 최초로 가정 내 체벌을 금지한 국가는 스웨덴(1975년)이다. 체벌 금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을 당시 국민 70%가 이에 반대하기도 했지만 30여년이 지난 2011년 조사에서는 90%가 넘는 국민이 체벌 반대에 동의한다는 뜻을 표했다. ‘아동체벌 근절 국제 이니셔티브’(endcorporalpunishment.org)의 조사에 따르면 스웨덴과 핀란드(1983), 노르웨이(1987), 아이슬란드(2003) 등지의 유럽 국가와 콩고, 케냐, 튀니지(2010), 남수단(2011) 등 아프리카 국가를 포함한 48개국이 가정 내 체벌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아동 체벌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난세란 약자의 지옥…약자 중 약자 여자와 아이” 권력자의 횡포와 약탈, 학대가 끊이지 않던 고려 말을 다룬 한 드라마에 등장한 대사다. 각박한 현실을 견뎌야 하는 어른들에게 어쩌면 현재는 여전히 난세이며, 여자 그리고 아이는 여전히 약자 중 약자일지도 모른다. 그런 아이들이 어느 날 학교에서 보이지 않거나, 몸이 상처로 가득하거나, 표정이 어두울 때 그저 ‘잘 지내고 있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희망고문에 불과하다. 국적을 넘어 온 세상이 결국 궁극적으로 이뤄야 할 목표는 아동학대 가해자를 향한 처절한 응징이 아니다. 체벌이 더이상 올바른 교육 방식이 아닐 수 있다는 인식, 부모로서 가져야 할 올바른 인성, 나이에 관계없이 인간을 인간답게 대우하는 자세 등을 세상 모든 어른들이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더이상 가해자도, 피해자도 나오지 않는 그런 세상을 우리의 아이들은 바라지 않을까. huimin0217@seoul.co.kr
  • 지구촌 아동학대의 역사, 끔찍하고 끈질겼다

    지구촌 아동학대의 역사, 끔찍하고 끈질겼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도 되나’ 싶은 사건사고는 언제나 있었다. 잔인하고 끔찍하며 안타까운 각종 사건들 가운데서도 최근 대한민국을 가장 분노케 한 것은 다름 아닌 아동학대 사건이다. 장기무단결석 아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부는 그림자마저 사라져버린 아이들을 뒤늦게나마 찾기 시작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아이들은 하나 둘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고 있다. 보고도 믿지 못할 이러한 참극은 무릇 대한민국 만의 문제는 아니다. 시간과 국적을 초월해, 힘없는 어린아이들을 괴롭혀 온 부끄러운 어른들의 역사가 세계 곳곳에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역사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아이들을 향한 어른들의 잔혹한 갑질, 그 시작과 끝은 어디일까. ◆인류 역사와 궤를 함께 해 온 아동학대 아동학대는 어제 오늘 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존재해 왔으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편화된 사회적 현상 또는 문제였다. 그 유형 역시 영아 살해부터 성학대까지 매우 다양하다. 아동학대의 오래된 역사는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센트럴플로리다대학교 연구진은 2013년 이집트 서부에 있는 2000년 된 묘지와 유골을 조사하던 중, 2~3살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의 팔과 쇄골에서 눈에 띄는 골절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골절이 누군가가 강한 힘으로 아이의 팔을 잡고 격렬하게 흔들어 골격에 극단적인 균열이 생긴 것으로 추론했다. 중세 로마시대의 일부 사람들은 애초에 아이들이 약하게 태어난다고 믿어 신생아를 나무 널빤지에 고정하거나 찬물로 목욕시키는 체벌을 했다. 공공건물이나 다리가 세워지면 봉헌을 목적으로 영아를 바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특히 로마시대 아버지들은 ‘파트리아 포테스타스’(patria potestas)라 부른 가부장의 절대적인 권위 아래에서 모든 아동에 대한 권한을 손에 쥐었다. 강력한 부권(父權) 행사 과정에서 아이들의 생사는 그 누구도 아닌 친부로부터 결정됐다. 아동이기 이전에 사람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권리조차 무시된 것이다. 국적을 막론하고 어른부터 아이까지 모두 알고 있는 아동학대 이야기도 있다. ‘신데렐라’가 그것이다. 신데렐라는 민담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것을 프랑스의 동화작가 샤를 페로가 1697년 그의 동화집 ‘옛날 이야기’(Histoires ou Contes du Temps Passé)에 수록하면서 처음 출판됐다. 극중 주인공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힘든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갖은 구박과 학대를 받는다. ‘신데렐라’의 한국판 격인 ‘콩쥐팥쥐’에도 어린 소녀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학대를 일삼는 계모가 등장한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 중 하나 역시 아동학대를 연상케 한다. 그 유명한 사도세자와 아버지 영조(1694~1776)의 이야기다.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아버지, 그 아버지로부터 받은 정신적(영조의 지나친 교육열), 육체적(좁은 뒤주에 감금) 압박은 학대의 또 다른 양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세계가 아동학대에 대처하는 자세 일일이 글로 설명하기조차 어려운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은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나마 선진국은 아동학대를 미연에 방지하고 동시에 아동학대와 관련한 처벌 수위를 높여 아이들을 보호하려 노력하고 있다. 아동학대와 관련법은 크게 일반적인 아동학대와 직계존속에 의한 가정 내 체벌을 겨냥한 것으로 나눠진다. 일반적인 아동학대와 관련해, 미국은 불과 2년 전인 2013년 1월 아동보호법(Protect Our Kids Act)을 제정했다. 아동학대 사망사건이 발생하면 소아과 및 가정의학과 의사와 검시관 , 변호사 등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담팀이 꾸려진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이슈가 된 장기무단결석이 발생할 경우, 미국 학교들은 법적 효력을 갖는 ‘학부모 소환제’ 제도를 이용한다. 이 소환에 불응하는 부모는 형사 고발되고 벌금형이 내려지며, 이후에도 자녀의 무단결석이 이어질 경우 곧장 구속영장이 발부된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일명 ‘신데렐라법’이 제정됐다. 부모가 아동에게 학대를 가했을 경우 최고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법이다. 영국 신데렐라법의 가장 큰 특징은 학대의 범위가 단순한 육체적 학대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동을 향한 폭언 등 언어적 폭력부터 훈육과 교육을 명목으로 한 체벌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처럼 직계존속에 의한 가정 내 체벌은 유교적 관념이 짙은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교육을 넘어선 학대로 인식되면서 법적제재로 이어졌다. 최초로 가정 내 체벌을 금지한 국가는 스웨덴(1975년)이다. 체벌 금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을 당시 국민 70%가 이에 반대하기도 했지만 30여년이 지난 2011년 조사에서는 90%가 넘는 국민이 체벌반대에 동의한다는 뜻을 표했다. ‘아동체벌 근절 국제 이니셔티브’(endcorporalpunishment.org)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스웨덴과 핀란드(1983)와 노르웨이(1987), 아이슬란드(2003) 등지의 유럽 국가와 콩고, 케냐, 튀니지(2010), 남수단(2011)등 아프리카 국가를 포함한 48개국이 가정 내 체벌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아동체벌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난세는 약자의 지옥…그중 언제나 빠지지 않는 약자는 여자와 아이” 권력자의 횡포와 약탈, 학대가 끊이지 않던 고려 말을 다룬 한 드라마에 등장한 대사다. 각박한 현실을 견뎌야 하는 어른들에게 어쩌면 현재는 여전히 난세이며, 여자 그리고 아이는 여전히 약자 중 약자일지도 모른다. 그런 아이들이 어느 날 학교에서 보이지 않거나, 몸이 상처로 가득하거나, 표정이 어두울 때, 그저 ‘잘 지내고 있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희망고문에 불과하다. 국적을 넘어 온 세상이 결국 궁극적으로 이뤄야 할 목표는 아동학대 가해자를 향한 처절한 응징이 아니다. 체벌이 더 이상 올바른 교육방식이 아닐 수 있다는 인식, 부모로서 가져야 할 올바른 인성, 나이에 관계없이 인간을 인간답게 대우하는 자세 등을 세상 모든 어른들이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더 이상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나오지 않는 그런 세상을 우리의 아이들은 바라지 않을까.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송혜민의 월드why] ‘난세의 약자’ 아이, 그리고 아동학대의 역사

    [송혜민의 월드why] ‘난세의 약자’ 아이, 그리고 아동학대의 역사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도 되나’ 싶은 사건사고는 언제나 있었다. 잔인하고 끔찍하며 안타까운 각종 사건들 가운데서도 최근 대한민국을 가장 분노케 한 것은 다름 아닌 아동학대 사건이다. 장기무단결석 아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부는 그림자마저 사라져버린 아이들을 뒤늦게나마 찾기 시작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아이들은 하나 둘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고 있다. 보고도 믿지 못할 이러한 참극은 무릇 대한민국 만의 문제는 아니다. 시간과 국적을 초월해, 힘없는 어린아이들을 괴롭혀 온 부끄러운 어른들의 역사가 세계 곳곳에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역사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아이들을 향한 어른들의 잔혹한 갑질, 그 시작과 끝은 어디일까. ◆인류 역사와 궤를 함께 해 온 아동학대 아동학대는 어제 오늘 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존재해 왔으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편화된 사회적 현상 또는 문제였다. 그 유형 역시 영아 살해부터 성학대까지 매우 다양하다. 아동학대의 오래된 역사는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센트럴플로리다대학교 연구진은 2013년 이집트 서부에 있는 2000년 된 묘지와 유골을 조사하던 중, 2~3살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의 팔과 쇄골에서 눈에 띄는 골절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골절이 누군가가 강한 힘으로 아이의 팔을 잡고 격렬하게 흔들어 골격에 극단적인 균열이 생긴 것으로 추론했다. 중세 로마시대의 일부 사람들은 애초에 아이들이 약하게 태어난다고 믿어 신생아를 나무 널빤지에 고정하거나 찬물로 목욕시키는 체벌을 했다. 공공건물이나 다리가 세워지면 봉헌을 목적으로 영아를 바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특히 로마시대 아버지들은 ‘파트리아 포테스타스’(patria potestas)라 부른 가부장의 절대적인 권위 아래에서 모든 아동에 대한 권한을 손에 쥐었다. 강력한 부권(父權) 행사 과정에서 아이들의 생사는 그 누구도 아닌 친부로부터 결정됐다. 아동이기 이전에 사람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권리조차 무시된 것이다. 국적을 막론하고 어른부터 아이까지 모두 알고 있는 아동학대 이야기도 있다. ‘신데렐라’가 그것이다. 신데렐라는 민담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것을 프랑스의 동화작가 샤를 페로가 1697년 그의 동화집 ‘옛날 이야기’(Histoires ou Contes du Temps Passé)에 수록하면서 처음 출판됐다. 극중 주인공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힘든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갖은 구박과 학대를 받는다. ‘신데렐라’의 한국판 격인 ‘콩쥐팥쥐’에도 어린 소녀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학대를 일삼는 계모가 등장한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 중 하나 역시 아동학대를 연상케 한다. 그 유명한 사도세자와 아버지 영조(1694~1776)의 이야기다.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아버지, 그 아버지로부터 받은 정신적(영조의 지나친 교육열), 육체적(좁은 뒤주에 감금) 압박은 학대의 또 다른 양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세계가 아동학대에 대처하는 자세 일일이 글로 설명하기조차 어려운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은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나마 선진국은 아동학대를 미연에 방지하고 동시에 아동학대와 관련한 처벌 수위를 높여 아이들을 보호하려 노력하고 있다. 아동학대와 관련법은 크게 일반적인 아동학대와 직계존속에 의한 가정 내 체벌을 겨냥한 것으로 나눠진다. 일반적인 아동학대와 관련해, 미국은 불과 2년 전인 2013년 1월 아동보호법(Protect Our Kids Act)을 제정했다. 아동학대 사망사건이 발생하면 소아과 및 가정의학과 의사와 검시관 , 변호사 등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담팀이 꾸려진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이슈가 된 장기무단결석이 발생할 경우, 미국 학교들은 법적 효력을 갖는 ‘학부모 소환제’ 제도를 이용한다. 이 소환에 불응하는 부모는 형사 고발되고 벌금형이 내려지며, 이후에도 자녀의 무단결석이 이어질 경우 곧장 구속영장이 발부된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일명 ‘신데렐라법’이 제정됐다. 부모가 아동에게 학대를 가했을 경우 최고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법이다. 영국 신데렐라법의 가장 큰 특징은 학대의 범위가 단순한 육체적 학대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동을 향한 폭언 등 언어적 폭력부터 훈육과 교육을 명목으로 한 체벌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처럼 직계존속에 의한 가정 내 체벌은 유교적 관념이 짙은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교육을 넘어선 학대로 인식되면서 법적제재로 이어졌다. 최초로 가정 내 체벌을 금지한 국가는 스웨덴(1975년)이다. 체벌 금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을 당시 국민 70%가 이에 반대하기도 했지만 30여년이 지난 2011년 조사에서는 90%가 넘는 국민이 체벌반대에 동의한다는 뜻을 표했다. ‘아동체벌 근절 국제 이니셔티브’(endcorporalpunishment.org)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스웨덴과 핀란드(1983)와 노르웨이(1987), 아이슬란드(2003) 등지의 유럽 국가와 콩고, 케냐, 튀니지(2010), 남수단(2011)등 아프리카 국가를 포함한 48개국이 가정 내 체벌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아동체벌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난세는 약자의 지옥…그중 언제나 빠지지 않는 약자는 여자와 아이” 권력자의 횡포와 약탈, 학대가 끊이지 않던 고려 말을 다룬 한 드라마에 등장한 대사다. 각박한 현실을 견뎌야 하는 어른들에게 어쩌면 현재는 여전히 난세이며, 여자 그리고 아이는 여전히 약자 중 약자일지도 모른다. 그런 아이들이 어느 날 학교에서 보이지 않거나, 몸이 상처로 가득하거나, 표정이 어두울 때, 그저 ‘잘 지내고 있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희망고문에 불과하다. 국적을 넘어 온 세상이 결국 궁극적으로 이뤄야 할 목표는 아동학대 가해자를 향한 처절한 응징이 아니다. 체벌이 더 이상 올바른 교육방식이 아닐 수 있다는 인식, 부모로서 가져야 할 올바른 인성, 나이에 관계없이 인간을 인간답게 대우하는 자세 등을 세상 모든 어른들이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더 이상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나오지 않는 그런 세상을 우리의 아이들은 바라지 않을까.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세상을 밝히는 사람들] 5명에게 생명 주고 떠난 아이…오늘도 임원채씨는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세상을 밝히는 사람들] 5명에게 생명 주고 떠난 아이…오늘도 임원채씨는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시간 가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7년이 지나도 빈자리가 크네요” “간·콩팥 등 기증에 후회 없어요…올 설에도 납골당에 찾아가야죠” “우리 남규가 다른 사람들한테 자기 몸을 주고 떠난 지도 벌써 7년이네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빈자리가 여전히 크네요.” 경기 안양에 사는 임원채(51)씨는 3일 오전 6시 50분쯤 일어나 평소처럼 출근 준비를 했다. 그는 습관처럼 안방의 5단 서랍장 위에 놓인 아들 남규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게 2009년이에요. 남규가 고3 때였죠. 뇌동정맥기형이라는 선천성 질환이 있었는데, 애가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며 구토를 했어요. 응급실에 갔지만 1주일 뒤에 뇌사 판정을 받았죠. 아이의 삶이 헛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장기 기증을 결정했어요. 나중에 들으니 간, 콩팥, 각막 등이 5명에게 갔다고 하더군요.” 뇌동정맥기형은 뇌의 동맥 일부가 모세혈관 없이 정맥과 직접 연결된 병이다. 혈압이 높은 동맥의 혈액이 곧바로 혈압이 낮은 정맥으로 흘러가다 보니 출혈이 발생하면 두통, 사지 마비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얼마 전 한 여학생이 미국 유학 중에 사고를 당한 뒤 27명에게 장기를 기증했다는 뉴스를 봤어요. 그때 남규 생각이 얼마나 나던지….” 남규의 유골은 화성에 있는 한 납골당에 봉안됐다. 2년 전 세상을 떠난 남규의 할머니와 같은 곳에 있다. 임씨는 이번 설에도 아내 그리고 남규의 동생들과 함께 납골당을 찾는다. 남규의 병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축구를 하다 발견됐다. 다리에 심한 통증이 느껴져 정형외과를 찾았는데 ‘신경 이상’이라는 소견이 나왔고, 다시 대학병원에 갔더니 뇌동정맥기형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수술만이 유일한 치료법이었지만 남규는 그것도 하지 못했다. 기형이 생긴 부위의 위치가 너무 깊어 수술을 하다 다른 뇌 조직을 건드릴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처음 발병하고 나서 10여년이 지난 뒤 남규는 끝내 가족들의 곁을 떠났다. “장기 기증에 후회는 없어요. 이식받은 환자들이 건강하게 잘 살아가면 우리 아이도 같이 숨을 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뇌사 판정을 받고 장기를 기증한 사람은 2010년 268명에서 2014년 446명으로 크게 늘었다. 국내 장기이식 대기자는 2014년 기준으로 2만 4607명에 이른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리본모양’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

    ‘리본모양’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

    31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리본 모양인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천시 부평동 인천가족공원(옛 부평공동묘지) 안에 들어선 추모관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304명 가운데 단원고 학생이나 교사가 아닌 일반인 희생자 45명의 넋을 기리는 곳으로 최근 건축공사를 마쳤다. 지상 2층에 연면적 486㎡ 규모의 추모관에는 일반인 희생자의 유골이 안치되며 세월호 참사 2주기인 오는 4월 16일 정식으로 개관한다. 인천 연합뉴스
  • [와우! 과학] 역대 최고(最古) 1만 년 전 대량학살 유골 발견 (네이처)

    [와우! 과학] 역대 최고(最古) 1만 년 전 대량학살 유골 발견 (네이처)

    인류 간의 대량학살은 적어도 1만 년 전부터 시작됐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연구팀은 아프리카 케냐에 위치한 나타루크에서 선사시대에 대량학살된 총 27구의 호모사피엔스 유골을 발견했다는 논문을 최근 세계적인 과학지 네이처(Nature) 최신호에 발표했다. 기존 연구보다 6000년은 거슬러 올라간 이번 발굴은 인류 간의 학살이 오랜 뿌리처럼 내려오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유골들이 대량학살로 추정되는 것은 손이 묶인 채 심하게 폭행당하고 석기에 찔리고 뼈 곳곳이 부러졌기 때문이다. 또한 일부 성인 남성 유골들은 머리와 가슴을 강타당해 부러지고 깨진 흔적도 나와 당시의 극한 살육의 흔적을 그대로 증언했다. 특히 유골 중에는 8명의 여성과 6명의 어린이도 포함됐으며 심지어 여성 중에는 만삭의 임신부도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들 총 27명이 혈연들로 이루어진 한 부족으로 당시 땅과 식량을 두고 다투던 상대 부족에게 집단학살 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구를 이끈 마르타 미라존 라흐 박사는 "인류 간의 대량학살이 선사시대에도 이루어졌다는 명백한 증거"라면서 "진화적인 관점에서 보면 현 인류에게 '폭력의 피'는 오래 전부터 흘러 내려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나타루크 학살은 농경이 시작된 사회에서 땅, 여성, 아이, 음식 등을 강탈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라면서 "대량 학살의 현장은 호숫가 근처 상대적으로 물과 작물이 풍부한 곳으로서 집단 생존 경쟁으로 인해 이같은 살육터가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열린세상] 금융개혁, 경쟁과 혁신의 두 얼굴/강태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열린세상] 금융개혁, 경쟁과 혁신의 두 얼굴/강태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경쟁과 혁신’, ‘금융규제’. 감독 당국 수장 신년사 핵심 단어다. 당국 눈치 볼 것 없으니 소신껏 영업하라는 주문이다. 대다수 금융상품은 사전 허가 없이 팔 수 있다. 가격 결정도 금융회사 몫이다. 시장 반응이 좋으면 ‘금융개혁상’도 받게 된다. 인터넷 전문은행, 계좌이동 서비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등이 새롭게 선을 보인다. 무한경쟁 맨 앞줄에 서 있는 건 금융회사다. 고뇌가 눈에 선하다. 경쟁과 혁신은 새로운 리스크를 동반한다. 예외가 없다. 역설적이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는 경쟁과 혁신의 결과물이다. 대출자산을 만기까지 보유하는 건 은행업 태동 이래 관행이었다. 치열하게 ‘경쟁’하던 어느 날 ‘혁신’이 일어난다. 잠자던 대출자산을 증권으로 만들어 판 거다. 조달된 자금은 다시 고금리로 대출됐다. 차입자의 신용이 나쁠수록 환영이다. 금리가 높으니까. 증권화는 부실자산(신용불량자 앞 대출)을 장부에서 사라지게 하는 ‘마술’을 부린다. 대차대조표가 튼튼해져 보인다. 일석이조다. 이 증권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거침없이 돌아다녔다. 배서(背書)에 배서가 거듭되는 융통어음과 유사하다. 리스크는 쌓여 가는데 규제 감독 당국은 감지하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부도가 난다. 구상권을 행사해야 한다. 이전 보유자를 애타게 찾는다. 이미 파산 상태다. 이렇게 시작된 도미노 게임이 광풍으로 이어졌다.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 위기다. ‘혁신상품’ 이름은 ‘담보부채무증권’(CDOs). 위기의 진앙(震央)이다. 통계도 있었을 리 없다. 평균 35회 이상 회전된 걸로 사후 추정됐다. 새롭게 판을 짜는 게 금융개혁이다. 기존 틀을 거부하고 흔들게 된다. 그러자면 경쟁과 혁신은 필수다. 올해 국내 은행은 길을 새로 뚫어야 한다. 가보지 않던 곳이다. 달리다 보면 타이어가 구멍 날 수도 있다. 금융 안정이 위협받는 환경인 거다. 당국이 뒷짐 지고 지켜만 볼 수 없다. 우선 금융 부정행위 제보를 장려해야 한다. 그 많은 금융상품을 당국이 죄다 알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직원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전문성도 떨어진다. 5년 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내부자 고발 전담 부서를 신설한 사연이다. 고육지책이다. 3600건의 제보에 대해 보상금 5000만 달러가 지급됐다. 내부 고발자를 보복한 금융회사를 고발 조치하고 있다. 미국 대선 후보도 내부 고발자 보상 강화를 공언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이다. 미국 기업 회계 부정의 40% 이상이 내부자 고발로 적발된다. 국내에도 내부고발자보호법은 있다. 하지만 제보자가 해고 등 불이익을 당하는 게 현실이다. 공익 제보자 보호, 보상에 획기적인 배려를 해야 한다. 법인보다는 개인의 책임을 더 크게 물어야 한다. 버나드 메도프는 미국 나스닥 증권거래소 회장이었다. 650억 달러 폰지 사기극 주범으로 전락한다. 2009년 6월 29일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에서 징역 150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1938년생 78세인 메도프는 220세가 되는 2159년 유골로 출소할 운명이다. 일벌백계의 본은 이렇게 세운다. 불법행위는 인간이 하는 짓이다. “금융회사(법인)는 사람이 아니니 감방에 보낼 수 없다. 저질 행위를 조장하는 법인을 징계하려면 사람을 다스려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벤 버냉키 주장이다. 금융산업의 문화는 결국 사람에 달린 거다. 경쟁과 혁신을 금융회사에만 요구할 건 아니다. 규제 당국도 대등한 강도의 경쟁과 혁신을 선언해야 한다. 실력을 못 갖추면 조소와 경멸의 대상이 된다. 권위는 실력에서 나온다. 시장의 존경을 받아야 한다. 전문가를 더 많이 확보해야 한다. 감독 당국 직원의 서슬이 시퍼레야 시장이 긴장한다. 유능한 감독 직원은 금융 안정 시스템의 한 축으로 대접받아 마땅하다. 보수도 높아야 한다. 영국 금융감독청(FSA)의 급여가 잉글랜드은행(BOE)보다 많았다. 남의 돈으로 하는 장사가 금융이다. 금융회사가 직업윤리와 신의를 지켜야 하는 이유다. 규제 당국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 서경덕 교수 “日 나가사키시 역사왜곡 진행 중”

    서경덕 교수 “日 나가사키시 역사왜곡 진행 중”

    “현장 답사를 해 본 결과 나가사키시의 역사왜곡은 계속 진행 중이다” 이는 지난 18일부터 3일간 일본 규슈지역 내 강제징용 현장을 다녀온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한 말이다. 지난해 9월 MBC ‘무한도전’에 소개된 일본의 다카시마 ‘한인 강제징용자 공양탑 가는 길’을 최근 나가사키시에서 폐쇄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서 교수는 “다카시마 공양탑 가는 길을 폐쇄한 것뿐만이 아니라 다카시마 신사 내에 있는 안내판도 새롭게 만들어 잘못된 역사를 알리고 있었다”고 전했다. 나가사키시는 ‘공양탑에 한반도 출신자의 유골이 안장돼 있는지 확인되지 않고, 해당 유골은 인근 사찰인 금송사(金松寺)로 전부 이전됐다’는 내용의 안내판을 급히 제작한 후 공양탑 주변 3군데에 세우고 진입을 막고 있다. 이를 확인한 서 교수는 “지난해 MBC ‘무한도전’에 소개된 후 한국 사람들의 방문이 많아지는 것이 두려웠는지, 새롭게 만든 모든 안내판들은 나무토막 몇 개를 이어 붙여 급하게 만든 것으로 강제징용에 대한 사실을 은폐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서 교수는 “폐쇄된 길을 다시 열기 위해 나가사키시에 연초부터 계속 연락을 취하고 있는데 서로 담당이 아니라며 발뺌만 하고 있다. 또 공양탑을 만들었던 미쓰비시 측에 자료 요청을 해 봤지만 ‘모든 자료가 불에 타서 사라졌다’고만 강조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서 교수 답사팀은 다카시마항 터미널 내 안내소에는 나가사키시에서 제작한 다카시마 탄광 및 자료관을 소개하는 ‘왜곡된’ 안내서가 한국어, 일본어, 영어 등 3개 국어로 제공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에 서 교수는 “지난해부터 이곳을 6차례 방문했는데 지난해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나가사키시에서는 오히려 강제징용에 대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다카시마와 하시마(군함도) 자체를 ‘관광지’로만 홍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이런 일본의 역사왜곡 현장을 사진과 글로 꾸준히 남기고 있다. 강제징용 및 일본군 위안부 등 역사왜곡의 현장들을 하나하나 모아 다국어로 책을 펴내, 전 세계 주요 도서관에 기증하여 일본의 역사왜곡을 널리 알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서 교수는 지난해 하시마 탄광 및 다카시마 탄광의 강제징용 사실을 유튜브 동영상과 구글 광고를 통해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등재된 후쿠오카현 미이케 탄광의 강제징용을 국내외로 널리 알릴 예정이다. 사진 영상=서경덕 교수, ‘하시마의 숨겨진 진실’ 동영상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1만 년 전에도 대량 학살이 있었다…역대 최고(最古)(네이처)

    1만 년 전에도 대량 학살이 있었다…역대 최고(最古)(네이처)

    인류 간의 대량학살은 적어도 1만 년 전부터 시작됐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연구팀은 아프리카 케냐에 위치한 나타루크에서 선사시대에 대량학살된 총 27구의 호모사피엔스 유골을 발견했다는 논문을 최근 세계적인 과학지 네이처(Nature) 최신호에 발표했다. 기존 연구보다 6000년은 거슬러 올라간 이번 발굴은 인류 간의 학살이 오랜 뿌리처럼 내려오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유골들이 대량학살로 추정되는 것은 손이 묶인 채 심하게 폭행당하고 석기에 찔리고 뼈 곳곳이 부러졌기 때문이다. 또한 일부 성인 남성 유골들은 머리와 가슴을 강타당해 부러지고 깨진 흔적도 나와 당시의 극한 살육의 흔적을 그대로 증언했다. 특히 유골 중에는 8명의 여성과 6명의 어린이도 포함됐으며 심지어 여성 중에는 만삭의 임신부도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들 총 27명이 혈연들로 이루어진 한 부족으로 당시 땅과 식량을 두고 다투던 상대 부족에게 집단학살 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구를 이끈 마르타 미라존 라흐 박사는 "인류 간의 대량학살이 선사시대에도 이루어졌다는 명백한 증거"라면서 "진화적인 관점에서 보면 현 인류에게 '폭력의 피'는 오래 전부터 흘러 내려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나타루크 학살은 농경이 시작된 사회에서 땅, 여성, 아이, 음식 등을 강탈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라면서 "대량 학살의 현장은 호숫가 근처 상대적으로 물과 작물이 풍부한 곳으로서 집단 생존 경쟁으로 인해 이같은 살육터가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英 초등학교 운동장서 ‘해적’ 유골 발견 화제

    英 초등학교 운동장서 ‘해적’ 유골 발견 화제

    운동장 아래에 누군가의 유골이 묻혀있다는 이야기는 어느 학교에나 있음직한 흔한 괴담 중 하나다. 그런데 실제 스코틀랜드의 한 초등학교에서 ‘해적’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굴돼 눈길을 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의 3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문제의 유골은 스코틀랜드 수도인 에든버러 시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빅토리아 초등학교의 건물 증축을 위해 시의회 직원들이 지반을 검사하던 중 발견됐다. 빅토리아 초등학교는 뉴하벤 항구와 인접해 있어 시의회 직원들은 옛 선박 정박지의 터가 발굴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예상과 달리 정체불명의 유골이 대신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발견 직후 고고학자들은 유골의 손상이 심각하며 그 옆에서 4000년 전의 도자기 조각들이 발견됐다는 점을 근거로 유골이 청동기 시대 인물일 것으로 추정했었다. 그러나 탄소연대 측정방식을 통해 알아본 결과 유골의 주인은 16~17세기에 생존했던 사람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망 당시 이 인물은 50대 남성이었고 고고학자들은 그가 해적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첫째로 이 남성이 사망했을 시기 뉴하벤 마을에는 교수대가 하나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주로 마녀 누명을 쓴 여성들이나 해적들이 처형됐다. 또한 유골이 손상됐다는 점, 그리고 주변의 여러 다른 묘지 중 하나에 묻히는 대신 바다 가까운 장소에 묻혔다는 사실 등에 미루어 봤을 때 이 남성은 처형 직후 바다 위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위치에 매달려 ‘전시’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즉, 다른 해적들에게 보내는 경고 메시지의 역할을 했으리라는 것. 또한 이 유골은 깊지 않게 매장됐으며, 무덤임을 나타내는 어떠한 표식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남성의 묘를 찾아올 친인척이 도시 내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며, 따라서 그가 연고 없는 범죄자였을 가능성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리처드 루이스 에든버러 시의회 문화의원장은 “에든버러 시의 고고학 및 박물관 인재들이 힘을 합쳐 이 같은 발견을 해냈다는 점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로라 톰슨 빅토리아 초등학교 교장은 “학생들은 놀이터 깊은 곳에서 유골이 발견됐다는 사실에 흥분한 상태”라며 “곧 고고학자들에게 유골 분석과정에 대한 특별 강의를 열어달라고 요청할 예정이다. 학생들에게 좋은 학습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무엇이 두려운가?” 日, 다카시마 공양탑 가는 길 폐쇄

    “무엇이 두려운가?” 日, 다카시마 공양탑 가는 길 폐쇄

    “‘조선인들이 묻혀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주장’이며 ‘역사왜곡’의 전형적인 행동에 불과하다”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일본 나가사키시에서 ‘다카시마 공양탑’ 가는 길을 폐쇄한 것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다. 서 교수는 지난해 9월 MBC 무한도전팀과 함께 ‘다카시마 공양탑’ 가는 길을 소개해 큰 화제가 됐다. 이후 서교수 팀은 지난해 10월 ‘네티즌 모금 비용’으로 외딴곳에 방치됐던 공양탑 가는 길의 벌초작업을 진행했고, 나가사키시에 안내판 설치를 문의했다. 서 교수는 “허리를 90도로 꺾어야만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험난한 길을 누구나 방문할 수 있도록 벌초작업을 했다. 이에 대해 나가사키시에 강제 연행된 한국인의 혼이 잠들어 있는 장소임을 알리는 안내판 설치를 허가해 달라고 꾸준히 연락을 취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논의 중’이라는 답변만 내놓던 나가사키시는 최근 ‘공양탑 안에 묻혀 있는 사람들이 조선인들인지 명확하지 않다’며 안내판 설치를 허락하지 않았다. 지난달 23일자 산케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나가사키시가 다카시마 섬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청취조사에서도 공양탑에 ‘한반도 출신자의 유골이 안장돼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고, 인근 사찰인 금송사(金松寺)로 유골이 전부 이전됐다’며 이러한 취지의 설명판을 이미 공양탑 주변 3군데에 세웠다고 덧붙였다.   이에 서 교수는 “다카시마 공양탑에 묻힌 유골은 다카시마 탄광에서 죽은 징용자들, 바다에서 조난당한 표류자들, 그리고 분명한 것은 하시마 탄광 조선인 사망자의 유골을 공양탑으로 옮겨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그는 “명백한 역사적 기록이 남아 있음에도 그저 현재 사는 주민들의 청취조사를 통해 ‘조선인들이 묻혀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주장’이자 ‘역사왜곡’의 전형적인 행동에 불과하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특히 산케이의 보도 후 서 교수 측은 다카시마 공양탑의 현재 상황을 직접 점검해 본 결과, 공양탑 들어가는 입구에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는 안내판 2개를 세운 것도 모자라 그 사이를 밧줄 2개로 엮어 ‘위험’이라는 간판을 걸어 ‘길 자체를 폐쇄’한 상황을 확인했다. 서 교수는 “지난해 7월 이 지역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후에도 나가사키시는 계속해서 ‘강제징용’을 인정하지 않았다. 새롭게 만든 안내서에도, 새롭게 만든 박물관에도 ‘강제징용’이란 단어는 절대 삽입하지 않았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이번 일을 계기로 다카시마 공양탑의 정확한 역사적 사실 자료를 기반으로 나가사키시 담당자를 만나 폐쇄한 길을 누구나 갈 수 있도록 꼭 만들겠다. 특히 올해는 ‘강제징용’이 있었던 일본 내 다른 도시에서도 역사적 사실을 인정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사진 영상=서경덕 교수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무한도전’이 소개한 공양탑 가는길, 일본 나가사키시 폐쇄

    ‘무한도전’이 소개한 공양탑 가는길, 일본 나가사키시 폐쇄

    지난해 9월 MBC 무한도전팀과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소개해 큰 화제가 됐던 일본의 ‘다카시마 공양탑’ 가는 길을 최근 나가사키시에서 폐쇄했다고 서 교수 측이 4일 밝혔다. 방송 후 많은 시청자들이 공양탑을 방문하려 지난해 10월 네티즌들이 모금한 비용으로 서 교수팀은 외딴 곳에 방치됐던 ‘공양탑 가는길’을 벌초했고 나가사키시에 안내판 설치를 문의했다. 이에 대해 서 교수는 “허리를 90도로 꺾어야만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험난한 길을 누구나 다 방문할 수 있도록 벌초작업을 한 후 나가사키시에 ‘강제 연행된 한국인의 혼이 잠들어 있는 장소’라는 안내판을 설치하고자 허가를 해 달라는 연락을 계속해서 취해 왔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하지만 두달 동안 ‘논의중’이라고만 밝히고 지난 12월 말 메일 한 통을 통해 ‘불허한다’라는 입장을 밝혔고, 산케이신문 기사를 통해 ‘공양탑 안에 묻혀 있는 사람들이 조선인들인지 명확지 않다’라는 이유로 불허했다고 보도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3일자 산케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나가사키시가 다카시마 섬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청취조사에서도 공양탑에 한반도 출신자의 유골이 안장돼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고, 인근 사찰인 금송사로 유골이 전부 이전됐다고 전하며 이러한 취지의 설명판을 공양탑 주변 3군데에 세웠다고 덧붙였다. 산케이의 보도 후 서 교수 측에서 다카시마 공양탑의 현재 상황을 직접 점검해 본 결과 공양탑 들어가는 입구에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는 안내판 2개를 세우고 그 사이에 밧줄 2개를 엮어 ‘위험’이라는 간판을 걸어 길 자체를 폐쇄한 상황을 확인했다. 이에 대해 서 교수는 “지난해 7월 이 지역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후에도 나가사키시는 계속적으로 ‘강제징용’을 인정하지 않았다. 새롭게 만든 안내서에서도, 새롭게 만든 박물관에서도 ‘강제징용’의 단어는 절대 삽입하지 않았었다”고 전했다. 이명선 전문기자 mslee@seoul.co.kr
  • 사죄한다던 日 ‘무한도전’ 공양탑 가는길 폐쇄

    사죄한다던 日 ‘무한도전’ 공양탑 가는길 폐쇄

    일본 나카사키시가 일제시대 강제징용된 한국인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공양탑 가는 길을 폐쇄했다. 최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을 통해 한일 과거사를 반성했다는 발표와는 어긋나는 행보다.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지난해 9월 MBC 무한도전팀과 함께 소개해 큰 화제가 됐던 일본의 ‘다카시마 공양탑’ 가는길을 최근 나가사키시에서 폐쇄했다”고 4일 밝혔다. 방송이 나간 후 많은 시청자들이 공양탑을 방문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네티즌들이 모금한 비용으로 서 교수팀은 외딴곳에 방치됐던 ‘공양탑 가는길’의 벌초작업을 했고 나가사키시에 안내판 설치를 문의했다. 이에대해 서 교수는 “허리를 90도로 꺽어야만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험난한 길을 누구나 다 방문할 수 있도록 벌초작업을 한 후 나가사키시에 ‘강제 연행된 한국인의 혼이 잠들어 있는 장소’라는 안내판을 설치하고자 허가를 해 달라는 연락을 계속해서 취해 왔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하지만 두달 동안 ‘논의중’이라고만 밝히고 지난 12월 말 메일 한통을 통해 ‘불허한다’라는 입장을 밝혔고, 산케이신문 기사를 통해 ‘공양탑 안에 묻혀있는 사람들이 조선인들인지 명확하지 않다’라는 이유로 ‘불허했다’라고 보도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3일자 산케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나가사키시가 다카시마 섬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청취조사에서도 공양탑에 한반도 출신자의 유골이 안장돼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고, 인근 사찰인 금송사(金松寺)로 유골이 전부 이전됐다고 전하며 이러한 취지의 설명판을 공양탑 주변 3군데에 세웠다고 덧붙였다. 이에대해 서 교수는 “다카시마 공양탑에 묻힌 유골은 다카시마 탄광에서 죽은 징용자들, 바다에서 조난을 당한 표류자들, 그리고 분명한 것은 하시마 탄광 조선인 사망자의 유골을 공양탑으로 옮겨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는 것이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명백한 역사적 기록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살고있는 주민들의 청취조사를 통해서 ‘조선인들이 묻혀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주장’이자 ‘역사왜곡’을 하는 전형적인 행동에 불과하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특히 산케이의 보도 후 서 교수측에서 다카시마 공양탑의 현재 상황을 직접 점검해 본 결과 공양탑 들어가는 입구에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는 안내판 2개를 세우고 그 사이에 밧줄 2개를 엮어 ‘위험’이라는 간판을 걸어 길 자체를 폐쇄한 상황을 확인했다. 이에대해 서 교수는 “지난해 7월 이 지역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후에도 나가사키시는 계속적으로 ‘강제징용’을 인정하지 않았다. 새롭게 만든 안내서에서도, 새롭게 만든 박물관에서도 ‘강제징용’의 단어는 절대 삽입하지 않았었다”고 전했다. 또 “이번 일을 계기로 다카시마 공양탑의 정확한 역사적 사실 자료를 가지고 나가사키시 담당자를 곧 만나 폐쇄한 길을 누구나 갈 수 있도록 꼭 만들겠다. 특히 올해는 ‘강제징용’이 있었던 일본 내 다른 도시에서도 역사적 사실을 인정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할 예정이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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