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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우뉴스] 일본군과 전투 중 침몰한 美 군함, 77년 만에 심해서 발견

    [나우뉴스] 일본군과 전투 중 침몰한 美 군함, 77년 만에 심해서 발견

    77년 넘게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미 군함 USS 존스턴(USS Johnston)이 특수 잠수정 덕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CNN 등 주요언론은 지난 1944년 일본 해군과 격렬하게 싸우다 침몰한 USS 존스턴이 심해에서 발견돼 촬영됐다고 보도했다. 미 해군의 구축함인 USS 존스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잠수함을 격침시키는 등 활약을 펼쳤으나 1944년 10월 필리핀 사마르 해전에서 일본군 거함을 상대로 치열하게 싸우다 결국 침몰했다. 당시 함선에는 총 327명이 타고 있었으며 이중 함장을 포함 총 181명이 목숨을 잃었다.이렇게 USS 존스턴은 전사의 한 페이지를 깊이 장식했지만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그 잔해를 직접 볼 수는 없었다. 그 이유는 배가 6500m나 되는 심해 깊은 곳에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전쟁 영웅’을 두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은 오대양의 심해 중에서도 가장 깊은 지점만 골라 탐사하는 빅터 베스코보(54) 덕이다. 그는 미국 사모펀드 인사이트 에퀴티 홀딩스의 창립자이자 억만장자로 이미 에베레스트 산을 포함 세계 7개 대륙의 최고봉을 정복한 베테랑 탐험가다.여기에 만족하지 않은 그는 반대로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도 탐험을 시작했다. 이를 위해 그는 총 4800만 달러를 들여 무게 11.2t, 두께 9㎝의 유인 잠수정 ‘DSV 리미팅 팩터’를 제작했다. 이 잠수정을 타고 지금까지 그는 대서양의 푸에르토리코 해구(해저 8648m)부터 세계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1만934m)까지 탐사하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세웠다. 보도에 따르면 베스코보는 지난달 31일 특수잠수정을 직접 몰고 내려가 잠들어있는 USS 존스턴을 찾아 이틀동안 총 16시간을 조사하는데 성공했다. 베스코보는 “배가 너무 깊은 곳에 있어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면서 “당시 격렬했전 전투의 흔적이 남아있었으며 해양생물로 인한 약간의 오염도 보였다”고 밝혔다. 이어 “뱃머리 양쪽에서 선체번호 557이 선명히 보였으며 탐사 과정에서 유골이나 의복등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일본군과 전투 중 침몰한 美 군함, 77년 만에 심해서 발견

    일본군과 전투 중 침몰한 美 군함, 77년 만에 심해서 발견

    77년 넘게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미 군함 USS 존스턴(USS Johnston)이 특수 잠수정 덕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CNN 등 주요언론은 지난 1944년 일본 해군과 격렬하게 싸우다 침몰한 USS 존스턴이 심해에서 발견돼 촬영됐다고 보도했다. 미 해군의 구축함인 USS 존스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잠수함을 격침시키는 등 활약을 펼쳤으나 1944년 10월 필리핀 사마르 해전에서 일본군 거함을 상대로 치열하게 싸우다 결국 침몰했다. 당시 함선에는 총 327명이 타고 있었으며 이중 함장을 포함 총 181명이 목숨을 잃었다.이렇게 USS 존스턴은 전사의 한 페이지를 깊이 장식했지만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그 잔해를 직접 볼 수는 없었다. 그 이유는 배가 6500m나 되는 심해 깊은 곳에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전쟁 영웅'을 두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은 오대양의 심해 중에서도 가장 깊은 지점만 골라 탐사하는 빅터 베스코보(54) 덕이다. 그는 미국 사모펀드 인사이트 에퀴티 홀딩스의 창립자이자 억만장자로 이미 에베레스트 산을 포함 세계 7개 대륙의 최고봉을 정복한 베테랑 탐험가다.여기에 만족하지 않은 그는 반대로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도 탐험을 시작했다. 이를 위해 그는 총 4800만 달러를 들여 무게 11.2t, 두께 9㎝의 유인 잠수정 ‘DSV 리미팅 팩터’를 제작했다. 이 잠수정을 타고 지금까지 그는 대서양의 푸에르토리코 해구(해저 8648m)부터 세계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1만934m)까지 탐사하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세웠다. 보도에 따르면 베스코보는 지난달 31일 특수잠수정을 직접 몰고 내려가 잠들어있는 USS 존스턴을 찾아 이틀동안 총 16시간을 조사하는데 성공했다. 베스코보는 "배가 너무 깊은 곳에 있어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면서 "당시 격렬했전 전투의 흔적이 남아있었으며 해양생물로 인한 약간의 오염도 보였다"고 밝혔다. 이어 "뱃머리 양쪽에서 선체번호 557이 선명히 보였으며 탐사 과정에서 유골이나 의복등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인천 야산에 개 사체 여러 구…수십마리 학대에 불법도축 의혹 [현장]

    인천 야산에 개 사체 여러 구…수십마리 학대에 불법도축 의혹 [현장]

    인천에서 수십 마리의 개를 학대하고 불법 도축했다는 의혹을 받는 80대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인천 서부경찰서는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80대 여성 A씨를 불구속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1일 밝혔다. A씨는 인천시 서구 백석동의 한 야산에서 개 30여 마리를 키우며 제대로 돌보지 않고 불법 도축까지 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동물보호단체 ‘동행세상’은 지난달 30일 현장을 찾아 상처를 입거나 숨져 있는 개들을 확인한 뒤 112 신고를 했다. 당시 현장에는 숨진 개 5~6구의 사체가 방치돼 있었으며, 곳곳에 병들거나 다친 개 수십 마리가 남아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단체가 제보자와 함께 촬영한 현장 영상을 보면 훼손된 사체와 유골이 곳곳에서 발견됐고, 도축 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쇠줄과 토치 등도 널려 있다.살아남은 개들 중에는 목줄에 살이 시커멓게 썩고 있거나, 절단된 다리를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낑낑대는 개들도 있었다. 또 먹이로 준 것으로 추정되는 음식물쓰레기를 모아놓은 더미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엄지영 동행세상 대표는 “암컷들은 새끼만 낳도록 줄에 묶여 있었다”고 설명했다. 문제의 시설 인근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있어 위생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단체 측은 지적했다.A씨는 경찰에서 “다친 개를 데려와 키웠고, 학대는 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관할 지자체인 인천시 서구는 살아남은 개들을 포획해 임시보호 조치하는 한편 A씨가 운영하는 시설에 대한 행정조치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경찰은 A씨가 키우던 개들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다른 학대 행위가 있었는지 추가로 수사할 예정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고산당 혜원 대종사 영결·다비식 엄수…27일 하동 쌍계사서

    고산당 혜원 대종사 영결·다비식 엄수…27일 하동 쌍계사서

    제29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고산당 혜원(慧元) 대종사의 영결·다비식이 지난 27일 경남 하동 쌍계사에서 종단장으로 거행됐다. 이날 영결식은 쌍계사 도원암 앞에서 명종에 이어 삼귀의, 영결법요, 헌향·헌다, 행장 소개, 영결사, 법어, 추도사, 조사, 추모가 등 순으로 진행됐다.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영결사에서 “고산당 혜원 대종사님께서 입멸을 보이시니 봄빛 가득한 지리산이 일순간 빛을 잃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영결식에 이어 쌍계사 국사암 앞 연화대에서는 시신을 불태워 유골을 거두는 다비식이 치러졌다. 만장을 앞세운 장례 행렬은 법구(法軀)를 연화대 화장장에 안치한 뒤 불을 붙였다. 희뿌연 연기를 내는가 싶더니 어느새 큰 불길로 이어졌고 고산당 혜원 대종사의 육신이 화염 속으로 사라졌다. 하동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개구리 소년 사건’ 발생 30주기, 부모들은 숨지거나 요양병원에…

    ‘개구리 소년 사건’ 발생 30주기, 부모들은 숨지거나 요양병원에…

    진상규명위원회 설치 등 요구26일 추모·안전 기원비 제막 ‘대구 개구리 소년 사건’이 올해로 발생 30주기를 맞았다. ‘전국 미아·실종가족 찾기 시민의 모임’(전미찾모)은 정부와 국회에 진상규명위원회 설치를 요구하기로 했다. 25일 대구를 찾은 전미찾모 나주봉 회장은 “개구리 소년 사건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정부와 국회에 진상규명위원회 설치를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나 회장은 “아이들이 무슨 잘못으로 왜 죽어야 했는지 알아야 부모들은 눈을 감을 수 있다”며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을 받을 수도 할 수도 없으니, 더 늦기 전에 양심선언이라도 해달라”고 부탁했다. 나 회장에 따르면 개구리 소년 부모들은 숨지거나 요양병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는 “철원군 아버지만 겨우 정상 활동을 하시는 상황”이라며 “숯검정이 된 가슴을 쥐어뜯으며 대부분 술과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 아이들이 발견된 자리에도 오지 못하는 현실이다. 개구리 소년 유족들의 심리 치료와 생계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1991년 3월 26일, 집을 나선 개구리 소년 5명…유골로 발견 개구리 소년 5명은 1991년 3월 26일 도롱뇽알을 줍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2002년 9월 26일 와룡산 세방골에서 유골로 발견됐다. 사건은 2006년 공소시효 만료로 사실상 영구미제가 됐다가 2019년 9월 민갑룡 전 경찰청장 지시로 재수사하게 됐다. 대구경찰청 미제사건 전담팀은 재수사 이후 지난 2월까지 총 50여 건의 관련 신고를 받았으나 사건을 해결할 만한 유의미한 단서는 확보하지 못했다. 정현욱 대구경찰청 강력계장은 “개구리 소년 사건은 아직도 재수사 중”이라며 “그간 접수한 신고에 대해 수사했으나 특별히 단서가 될만한 내용은 확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편 오는 26일 오전 11시 대구 와룡산 선원공원에서 ‘개구리 소년 추모 및 어린이 안전 기원비’가 제막된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이슈플릭스] 유골 800여 구 발견된 히말라야 ‘해골의 호수’ 비밀

    [이슈플릭스] 유골 800여 구 발견된 히말라야 ‘해골의 호수’ 비밀

    히말라야 산맥 5029m 높이에 위치한 룹쿤드 호수. 1940년대 초, 영국 산림관리원이 처음 발견한 이후 이 호수는 줄곧 ‘해골의 호수’로 불리고 있는 있는데요. 지금까지 무려 800여 구의 유골이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 동안 전문가들은 호수의 눈이 녹으면 모습을 드러내는 수백 구의 유골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애써 왔는데요. 약 1000년 전 눈보라 속에서 죽은 인도의 왕과 그의 신하들이라는 설, 티베트를 침략했던 인도군이라는 설, 전염병으로 인해 죽은 사람들을 한 곳에 묻은 공동묘지라는 설 등 그럴듯한 추측들이 쏟아져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인도와 독일, 미국 등지의 여러 전문가들이 참여한 5년 간의 연구결과가 발표됐는데요. 미스터리한 ‘해골의 호수’의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요? 지금 바로 [이슈플릭스]에서 확인하세요! 구성·출연 송현서 / 촬영·편집 박소현
  • “말라리아, 농업시대 전에도 존재”…7000년 전 동남아인 유골서 증거 발견

    “말라리아, 농업시대 전에도 존재”…7000년 전 동남아인 유골서 증거 발견

    매년 수많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기생충 감염병인 말라리아가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래 전부터 인류를 괴롭혀 왔다는 증거를 과학자들이 발견했다. 뉴질랜드 오타고대 등 국제연구진은 베트남에서 발굴된 약 7000년 전 수렵채집인들의 뼈에서 말라리아로부터 고통받았다는 점을 시사하는 유전적 변이를 발견했다. 이는 농업의 도입으로 말라리아가 늘었다는 기존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래 전부터 인류가 이 질병과 싸워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말라리아는 모기를 매개로 하는 기생충에 의해 발생하므로 습지나 늪 또는 열대우림 지역에서 쉽게 확산한다. 일반적인 증상은 고열과 피로, 두통 그리고 구토 등이 있지만, 혼수상태나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말라리아는 여전히 세계적인 건강 문제로 올해에만 2억2900만 명의 발병 사례가 나타날 것으로 추정된다. 매년 40만 명이 넘는 말라리아 환자가 사망에 이르는데 그중 3분의 2는 5세 미만 아동이다. 사람에게 말라리아를 걸리게 하는 치명적인 기생충인 열대열말라리아원충은 약 5만 년 전부터 존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인류가 수렵채집자에서 농부로 전향할 때부터 이 질병이 인간에게 위협이 돼 왔다고 믿어왔다. 사람들이 관개 농업이나 화전 농업으로 정착 생활을 시작하면서 감염을 매개로 하는 모기가 번식할 수 있는 물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농업은 약 1만2000년 전 중동 지역에서 시작됐지만, 동남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그 시기가 그후로도 몇천 년간 늦춰졌다.말라리아는 고고학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연구진은 2015년 현미경 검사 등 정밀 연구를 통해 이 고대인들의 뼈 변화가 종종 치명적인 유전성 용혈질환인 지중해빈혈과 관계가 있는 비정상적 다공성을 보여준다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지중해빈혈은 비교적 가벼운 형태에서 실제로 말라리아에 관한 어느 정도의 예방 효과를 줄 수 있다. 이에 따라 말라리아에 관한 적응적 대응으로 인간에게 확산됐다고 생각된다. 이는 농업이 이 지역에서 확산하기 훨씬 전인 7000년 전부터 현지인들이 말라리아로 고통을 받아왔다는 것을 시사한다. 생물인류학자 멜라드리 브로크 박사는 “우리 연구는 적어도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말라리아가 농업이 확산하기 이전부터 현지인들에게 위협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말라리아 모기는 동남아 숲 어디서나 볼 수 있어 물 웅덩이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 최신호에 실렸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예루살렘 동굴에서 1900년 전 성경사본 조각 발견, 그런데 그리스 문자?

    예루살렘 동굴에서 1900년 전 성경사본 조각 발견, 그런데 그리스 문자?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이 예루살렘 인근 사막 동굴에서 1900여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성경 사본 조각 등을 찾아냈는데 왜 그리스 문자로 적혀 있을까? 16일(현지시간)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 문화재청(IAA)은 예루살렘 남부 ‘유대 광야’(Desert of Judea)의 동굴에서 발굴된 20여개의 양피지 조각에는 구약성서의 스가랴서와 나훔서의 일부가 그리스어로 적혀 있다. 문화재청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이 조각들이 1900여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양피지 조각 중 하나에는 하느님(God) 대신 히브리(Hebrew)라고 표기돼 있다. 그런데 모두 그리스 문자로 성경 사본을 적은 것은 왜일까?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이 유대를 정복한 이후 이 문자를 써왔기 때문이라고 영국 BBC는 전했다. 고대 히브리 문자는 기원전 10세기 것부터 지금도 금석문 등에 남아 있다. 기원전 6~2세기에 고전(또는 정통) 히브리 문자가 팔레스타인에서 초기 히브리 문자 대신 쓰이고 있던 아람 문자를 차츰 밀어냈다. 고전 히브리 문자는 BC 2~1세기에 완전히 자리잡은 뒤 1500년 동안 근대 히브리 문자로 발전했다. 또 발굴팀은 이 조각들이 로마 제국에 대항한 유대민족의 저항운동인 ‘바르 코크바의 반란’(132∼135년)에서 패주한 반군들이 이 동굴에 숨긴 것으로 보고 있다. 사해 서안의 동굴에서 발굴된 구약성서 사본과 유대교 관련 문서들은 ‘사해문서’(死海文書, Dead Sea Scrolls)로 불린다. 새로운 사해문서가 발견된 동굴은 1960년대 발굴 과정에서 40여구의 유골이 한꺼번에 발견된 뒤 ‘공포의 동굴’로 불린 곳이다. 로프를 타고 절벽을 80m가량 내려가야만 동굴에 도달할 수 있고 동굴이 층층이 있기 때문에 그동안 도굴범 등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지금까지 발굴된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사해문서는 1940∼1950년대 사해 서안의 쿰란 동굴에서 나왔으며, 연대는 기원전 3세기부터 1세기 경으로 추정됐다. 이스라엘 문화재청은 지난 2017년부터 도굴범들이 손길이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유대 광야의 동굴에 대한 대대적인 발굴작업을 진행해왔는데 성경 사본 말고도 1만 5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완벽한 형태의 바구니와 6000년 전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어린이의 미라 등도 찾아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스페인 남동부서 4000년 전 ‘왕관 쓴’ 여성 유골 발견

    스페인 남동부서 4000년 전 ‘왕관 쓴’ 여성 유골 발견

    청동기 시대였던 약 4000년 전, 지금의 스페인이 자리잡은 이베리아 반도의 남동부 지역인 무르시아에서 번성한 한 국가 사회는 여성이 통치자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고고학자들이 밝혔다. 이 지역에서 은왕관을 쓴 채 무덤에 묻힌 한 여성의 유골이 발굴됐기 때문이다.바르셀로나자치대 연구진은 무르시아 플리에고에 있는 청동기 유적 라알몰리야에서 찾아낸 무덤에서 은으로 만든 띠모양 왕관인 다이아뎀 등 부장품 약 30점과 함께 묻힌 여성의 뼈를 발견했다.여성은 당시 궁전으로 생각되는 건물 잔해 바닥에서 한 남성과 함께 매우 큰 타원형 항아리 안에 매장됐다. 여성의 나이는 25~30세, 남성의 나이는 35~40세 사이로 추정된다. 두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관계가 없지만, 결혼한 사이로 여겨진다. 근처 무덤에서 두 사람의 딸로 확인된 한 여성도 발견됐기 때문이다. 여성은 기원전 2200년에서 1550년 사이 이베리아 남동부 지역을 지배한 ‘엘아르가르’(El Argar) 사회의 사람이다. 아르가르라는 이름은 이 사회의 문화적 증거가 처음 발견된 지역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이전에 발굴된 여러 유적에서도 여성의 지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 아르가르 문화에서는 오랫동안 여성이 지도자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왔다.특히 이번 무덤의 부장품은 대부분 값비싼 은으로 만들거나 장식됐고 거의 모두 여성의 몸에서 발견됐기에 이 사회의 지배자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임을 시사한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연구를 이끈 로베르토 리슈 박사는 “지배계층 여성은 엘아르가르의 통치에서 중대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면서 “아르가르 사회는 2세기 동안 지속했기에 서지중해 최초의 국가 구조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영국 고고학 학술지 ‘앤티쿼티’(Antiquity) 최신호(3월 11일자)에 실렸다. 사진=앤티쿼티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길섶에서] 유관순 열사의 유해/이종락 논설위원

    지난주 망우리공원을 다녀왔다. 요즘 평해길(관동대로) 경기옛길을 걸으면서 알게 된 유관순 열사의 합장비를 보기 위해서다. 유관순 열사의 유해만을 묻은 묘는 없다. 충남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 열사 생가의 뒷산 매봉산 중턱에 열사의 ‘초혼묘’(招魂墓)가 있지만 시신이나 유골이 든 무덤은 아니다. 1919년 4월 1일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시위를 주동한 열사는 일본 헌병에 체포돼 징역 3년형을 받고 서대문감옥에 수감됐다. 1920년 3월 1일에는 옥중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일본 헌병의 모진 고문 끝에 9월 28일 오전 8시 20분 감옥에서 19세 꽃다운 나이에 숨졌다. 모교인 이화학당에서 시신을 인도해 10월 14일 정동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른 뒤 일제의 삼엄한 경비하에 묘비도 없이 이태원 공동묘지에 매장됐다. 지금의 이태원 이슬람사원 인근이다. 1936년 이태원이 일제의 군용기지로 바뀜에 따라 망우리 공동묘지로 옮겨 오는 과정에서 아무도 유관순 열사의 유해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무연고 분묘로 처리돼 2만 8000기 유해와 함께 화장된 뒤 합장묘에 섞여 있다. 이맘때면 흰 저고리에 흑색 치마를 입은 열사의 빛바랜 사진이 더욱 애잔하게 다가온다. 3·1절을 상징하는 인물이지만 온전한 유해조차 보존하지 못한 죄스러움 때문이다. jrlee@seoul.co.kr
  • ‘개구리 소년 ’실종 30년… 대구 사건 현장에 추모비

    ‘개구리 소년 ’실종 30년… 대구 사건 현장에 추모비

    30년 전 실종된 ‘대구 개구리소년’의 추모비가 사건 발생 현장에 세워진다. 대구시는 다음달 26일 달서구 성서 와룡산 선원공원에 ‘개구리소년 추모 및 어린이 안전 기원비’를 설치한다고 24일 밝혔다. 추모·기원비는 5명의 실종 아동을 추모하고 고령의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설치된다. 또 어린이 안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유도하고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가로 3.5m, 세로 1.3m, 높이 2m 크기로 화강석을 이용해 만들었다. ‘자유롭게 날아가라’는 뜻을 형상화해 어머니 품에 안긴 새와 꽃바구니의 모습으로 제작됐다. 시 관계자는 “추모·기원비의 설치 장소와 디자인은 유족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결정했다”며 “실종 아동들에 대한 추모와 그리움을 표현하면서 시민과 학생들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모습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개구리소년 사건은 1991년 3월 대구 성서초등학교 학생 5명이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가 실종된 후 11년 6개월 만인 2002년 9월 와룡산 중턱에서 유골로 발견된 사건이다. 도롱뇽 알이 개구리로 와전되면서 개구리소년 사건으로 불리고 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자식을 잃고 큰 고통의 세월을 지내 온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아이들과 시민들이 안전하고 행복한 대구를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잘라도 꺾어도 일어난 그녀의 ‘독립’

    잘라도 꺾어도 일어난 그녀의 ‘독립’

    “내 가진 돈은 모두 249원 80전이다. 그중 200원은 조선이 독립하는 날 축하금으로 바치거라. 만일 네 생전에 독립을 보지 못하면 자손에게 똑같이 유언하여 독립 축하금으로 바치도록 해라.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먹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정신에 있다.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느니라.” ●남자현 등 잊힌 여성 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1872~1933)이 임종 직전 아들에게 남긴 유언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절절하다. 1919년 3·1운동 직후 중국으로 망명해 교육운동과 무력투쟁에 앞장선 그는 1932년 일제가 일으킨 만주사변을 조사하기 위해 국제연맹조사단이 하얼빈에 왔을 때 왼손 무명지 두 마디를 잘라 혈서로 조선의 독립을 염원하는 글을 써서 보낼 만큼 맹렬한 항일 투사였다. 영화 ‘암살’에서 배우 전지현이 연기한 주인공의 실제 모델이 바로 그다. 책상 앞에 앉은 여성의 왼손 무명지에 흰 천이 감겨 있다. 두루마리 옆 종지에는 혈서를 상징하는 붉은 피가 선명하다. 주먹을 꽉 쥔 오른손과 정면을 응시하는 눈빛에서 결연한 의지가 배어 나온다. 한국 여성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윤석남이 채색화로 화폭에 되살린 남자현의 초상이다. 윤석남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다는 건 나로선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라면서 “내가 받았던 강렬한 인상을 그림에 담았다”고 말했다.서울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윤석남이 그린 여성 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을 모은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가 전시 중이다. 저마다 독립운동사에서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지만 남성 독립운동가들보다 상대적으로 조명이 덜 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돌아보는 자리다. 남자현을 비롯해 강주룡, 권기옥, 김마리아, 김명시, 김알렉산드라, 김옥련, 박자혜, 박진홍, 박차정, 안경신, 이화림, 정정화, 정칠성이 그들이다. 1936년 여순감옥에서 옥사한 남편 신채호의 유골함을 안고 있는 박자혜(1895~1943)의 초상에선 남편을 잃은 슬픔과 나라를 빼앗긴 울분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는 민족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 단재 신채호와 결혼하기 이전부터 동료 간호사들과 ‘간우회’를 조직해 만세시위와 동맹파업을 시도했던 독립운동가였다. 여성 독립운동단체인 근화회를 조직하고, 원산 신학교에서 교육 계몽사업에 헌신한 김마리아(1892~1944)의 초상은 교단 앞에서 왼팔을 번쩍 치켜든 자세를 취하고 있어 생전에 그가 품었던 진취적인 기상을 생동감 있게 드러냈다. 윤석남은 “얼굴은 실제 사진 자료를 바탕으로 묘사했고, 화면 구도와 장면 설정은 인물의 일대기를 토대로 상상해서 그렸다”고 했다. ●화면 구도·장면 설정은 삶 토대로 상상 2011년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을 보고 충격을 받아 채색화와 한국인의 초상에 관심을 갖게 된 윤석남은 2018년 채색화로 그린 자화상을 처음으로 선보였고, 2019년엔 ‘윤석남, 벗들의 초상을 그리다’를 통해 여성 지인 22명의 대형 초상화 연작을 전시했다. 이후 다음 작업을 고민하다 일제강점기에 그려진 초상화에 여성이 거의 없는 현실에 “울화가 치밀어” 여성 독립운동가를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앞으로 2~3년 내 여성 독립운동가 100명의 초상을 완성할 계획”이라고 했다.이번 전시에서는 대형 설치작품 ‘붉은 방’도 만날 수 있다. 종이 콜라주 850여장이 벽면을 가득 메운 공간에 여성 독립운동가를 상징하는 50여개의 나무조각을 세워 이름 없이 스러져 간 영웅들의 삶을 추모한다. 4월 3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이번엔 해적왕 찾을까…300년 전 침몰 美 난파선서 유골 발견

    이번엔 해적왕 찾을까…300년 전 침몰 美 난파선서 유골 발견

    지금으로부터 304년 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이프코드 앞바다에서 침몰한 것으로 유명한 난파선에서 최소 6명의 유골이 추가로 발견됐다. 이들 유골의 잔해는 당시 이 배에 탔던 영국 출신 해적들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현재 전문가들이 해적 후손들의 DNA와 대조하는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보스턴 글로브 등 현지언론이 보도했다.평생 1억2000만 달러(2008년 화폐 가치 기준)를 털어 2008년 포브스가 선정한 역대 해적 약탈금액 리스트 1위에 오른 ‘실사판 해적왕’인 영국인 해적 선장 새뮤얼 벨러미(1689~1717)가 타고 있던 해적선 위더(Whydah)호가 침몰한 시기는 1717년 4월이다. 위더호는 노예 700명과 각종 연장, 의류, 설탕 그리고 금은보화 4.5t을 싣고 있던 300t급 노예선으로, ‘블랙 샘’으로 불리던 벨러미 선장이 이끄는 해적들에게 약탈당한 것이었다. 당시 노예선은 적재량은 물론이고 속도를 중시해서 건조됐기에 벨러미 선장은 자기가 쓰던 배를 이 배의 선원들에게 타고 가라고 주고 이 배를 새 기함으로 삼았다. 벨러미 선장은 원래 자비로운 것으로 유명했고 그의 부하들은 자기들을 로빈훗의 부하들이라고 부른 것으로 알려졌다.그런데 이 해적왕은 크게 한 건 올린 뒤 육지에 있는 애인 ‘웰플릿의 마녀’ 마리아 핼릿을 만나러 가다가 풍랑을 만나 배가 매사추세츠 연안 사주에 좌초했다. 이 사고로 146명의 선원 대부분이 익사하고 9명만 겨우 살아남았는데 그중 7명이 체포돼 전원 해적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백인 6명은 처형, 인디언 1명은 노예로 팔렸다. 살아남은 2명은 토머스 데이비스와 존 쥴리언이라는 이름의 선원들이다. 이후 위더호는 오랫동안 심해에 잠들어 있다가 지난 1984년 해저 탐험가 배리 클리퍼드가 이끄는 탐사대에 의해 발견됐다.난파선에서는 금줄과 은화 같은 귀금속과 권총 등의 유물이 회수돼 같은 주 프로빈스타운에 있는 위더해적박물관(Whydah Pirate Museum)에 전시돼 있다.난파선은 황금시대의 해적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돼 지금까지 조사가 계속돼 왔다. 그리고 이번에 탐사대는 적어도 6구의 해적 유골 잔해를 발견했다. 침몰한 위더호의 선원 가운데 101명은 익사해 뭍으로 밀려와 매장됐지만 벨러미 선장을 포함한 나머지 43명은 실종 상태로 남아 있다. 이에 대해 클리퍼드 탐사대장은 지난 10일 “오늘날 최첨단 기술이 이들 해적의 신원을 확인하고 남아있을 수 있는 후손들과 재회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위더해적박물관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나폴레옹 원정서 전사한 佛·러 군인들, 200년 만에 열린 공동 안장식서 영면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서 전사한 프랑스와 러시아 병사 120여명의 유해 공동 안장식이 13일(현지시간) 열렸다. 러시아군뿐 아니라 혹독한 추위 및 부족한 식량과도 싸우던 나폴레옹은 원정에서 완패했고, 이후 나폴레옹의 몰락이 시작됐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서쪽으로 200㎞ 떨어진 뱌지마에 모인 양국 관계자들은 200여년 전의 병사들을 추모했다. 이날 안장된 유해는 2019년부터 양국 공동 조사팀에 의해 수습됐다. 당시 일대 건설 현장에서 유골이 발견되자 처음에는 2차 세계대전 전사자들의 유해 혹은 과거 공동묘지라는 추측이 나왔지만 정밀 조사 결과 나폴레옹 원정 당시 양측 군인들로 확인됐다. 올해는 나폴레옹 서거 200년이 된 해이기도 하다. 이날 러시아군 미하일 쿠투조프 장군의 후손 율리아 키츠로보는 추도사에서 “세대가 지날수록 죽음과 시간은 모든 이를 화해시킨다”고 말했다. 프랑스 지휘관이었던 뮈라 장군의 후손인 조아킴 뮈라는 “양국 군인들의 용기는 혹독한 기후 조건에도 불구하고 전투를 계속하도록 이끌었다. 이들의 죽음이 현세대에게 평화의 가치를 일깨워 주기를 바란다”고 추모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영화배우 고 신성일 기념관 2023년까지 경북 영천에 세워진다

    영화배우 고 신성일 기념관 2023년까지 경북 영천에 세워진다

    ‘한국 영화계의 큰 별’ 고 신성일 기념관이 2023년까지 경북 영천에 세워진다. 영천시는 올해부터 시내 괴연동에 있는 고 신성일씨 한옥 인근에 ‘신성일 기념관’ 건립을 본격화하기로 했다고 9일 밝혔다. 시는 총 사업비 85억 1000만원(도비 46억 4000만원, 시비 38억 7000만원)을 투입해 이 일대 부지 6213㎡에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연면적 1615㎡)의 기념관을 지을 계획이다. 기념관에는 영화감상실, 영화제작관, VR 체험관, 영화카페, 상설전시관, 기획전시실 등이 마련된다. 시는 우선 이달 중 도시관리계획 결정(변경) 용역을 시행한다. 이어 오는 4월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 발주를 거쳐 착공할 계획이다. 이 기념관 건립이 탄력을 받게 된 것은 지난해 9월 신씨의 유족인 부인 엄앵란, 아들 강석현, 딸 경아·수화씨 등이 신성일 배우가 남긴 괴연동 성일가(家)와 토지 7필지 2839㎡를 영천시에 기부체납한 것이 계기가 됐다. 시는 기념관이 건립되면 영천을 알리는 문화콘텐츠는 물론 지역 명물로서 관광객 유입에 따른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구 출신인 고 신성일 배우는 2007년 이주해 2018년 11월 4일 향년 81세로 타계 전까지 영천시 괴연동 성일가에서 생활했으며, 집 앞마당 잔듸밭에 그의 유골이 뭍혀 있다. 그는 생전인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했다. 이후 ‘맨발의 청춘’, ‘별들의 고향’, ‘겨울 여자’ 등 수많은 히트작을 배출했다. 1968년 대종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시작으로 제41회 대종상영화제 영화발전공로상, 제8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공로상, 제47회 백상예술대상 공로상 등을 수상했다. 영천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스톤헨지 비밀 풀릴까…청동기 무덤·신석기 토기 등 유적 대거 발견

    스톤헨지 비밀 풀릴까…청동기 무덤·신석기 토기 등 유적 대거 발견

    영국 스톤헨지 부근에 지하터널을 뚫어 유적 주변을 지나는 기존 도로를 폐쇄하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고고학자들이 터널부지에서 진행한 발굴조사를 통해 여러 유적을 발견했다. 가디언 등 현지매체 보도에 따르면, 영국 발굴조사기관 웨식스아케올로지의 고고학자들은 스톤헨지 터널부지 예비발굴조사에서 청동기시대 비커족 무덤 2기와 신석기시대 토기 등 유물 그리고 철기시대 금속과 가죽을 가공하던 공방으로 추정되는 C자형 유적 등을 발견했다.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발견은 4000년 전 비커족 아이 무덤에서 발굴된 지팡이 또는 몽둥이의 일부로 추정되는 흔적이다. 근처에는 당시 네덜란드 지방과 라인강 중류 지방에서 건너와 정착한 비커족 특유의 비커 모양 도기와 함께 아이의 유골로 보이는 뼈 조각도 발견됐다.이번 조사에서는 또 지하터널 동쪽 부지 근처에서 철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철기 공방터가 발견됐다. 이곳에서는 철기를 만들고 남은 많은 양의 부산물과 배수로인 도랑이 발견됐는데 이는 남쪽에 있는 언덕요새인 배스파시안스 캠프와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에 참여한 웨식스아케올로지 고고학자 맷 리버스 박사는 “우리는 몇천 년간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에 관한 여러 증거와 일상과 죽음의 흔적 그리고 사적인 것 등을 발견했다. 모든 유적의 세부사항을 통해 스톤헨지 축조 전후 시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면서 “모든 것은 그 비밀을 파헤치는데 좀더 집중하게 한다”고 말했다.영국 도로교통공사인 하이웨이즈 잉글랜드와 함께 지하터널 부지 탐사를 주도하고 있는 웨식스아케올로지는 이번 발굴조사 동안 거의 1800곳에 달하는 시험 구덩이를 손으로 파내 체에 걸러 400개가 넘는 시험 참호를 발굴하고 기록했다. 고고학적 발굴조사에 관한 다음 단계는 올해 말 시작돼 약 18개월 동안 지속되며 고고학자 최대 150명이 참여한다. 터널 공사는 오는 2023년 시작될 예정이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500년 전 잉카제국 공동묘지 발굴…고고학적 미스터리 풀릴까

    500년 전 잉카제국 공동묘지 발굴…고고학적 미스터리 풀릴까

    에콰도르에서 발견된 잉카제국의 공동묘지 유적에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100년 고고학적 공백을 풀어줄 비밀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공동묘지 유적은 에콰도르 중부 라타쿤가 지방의 농촌 물랄로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2019년 농수 공급을 위해 물탱크를 세우는 건설현장에서 해골과 세라믹 유몰 각각 1점이 나오면서 공동묘지의 존재가 희미하게 세상에 알려졌다. 공사는 즉각 중단됐지만 에콰도르 정부는 예산부족으로 발굴작업을 진행하지 못했다. 하염없이 시간이 흐르자 물랄로 당국은 민간 학계에 조사를 의뢰했다. 학계가 주도한 발굴작업에선 공동묘지의 규모가 파악되고 유골과 유물이 대거 발견됐다. 공동묘지 터는 가로와 세로 각각 13m와 7m 규모 직사각형으로 건물을 짓기 위해 점토로 기초공사를 했다. 건물을 지을 때 잉카제국에서 흔히 사용하던 기법이다. 터에선 심하게 훼손된 상태의 유골 12구와 세라믹 유물이 출토됐다. 관계자는 "유적은 불과 지하 1m 아래에 흙으로 덮여 있었다"며 "워낙 낮게 묻혀 있어 유골의 훼손 상태가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동묘지는 최소한 5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학계가 물랄로의 잉카 공동묘지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 건 유적에서 나온 특이한 유물 때문이다. 물랄로 공동묘지에선 십자가와 알파벳 W가 새겨진 그릇류가 발굴됐다. 남미를 호령하던 잉카제국이 몰락하고 스페인이 남미를 정복하는 과도기 때 묘지가 조성됐음을 암시하는 것일 수 있다. 학계는 1450~1540년을 잉카제국이 멸망하고 스페인이 중남미를 장악한 과도기로 본다. 과도기에 대해 그간 역사학적으론 다양한 연구와 조사가 진행됐지만 고고학적 연구는 미흡했다. 발굴을 지휘한 고고학자 에스테반 아코스타는 "고고학적으로 보면 과도기에 대한 연구는 전무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며 "물랄로의 공동묘지 유적에 특별한 관심이 쏠리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DNA 검사를 통래 12구 유골이 한 가족인지부터 확인할 예정"이라며 "공동묘지에 상상 이상의 비밀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에페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황금 혀’ 가진 미라, 이집트서 발견… “저승의 왕과 대화”

    ‘황금 혀’ 가진 미라, 이집트서 발견… “저승의 왕과 대화”

    이집트에서 바위를 깎아 만든 무덤들과 독특한 형태의 ‘황금 혀’ 미라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이집트 유물부의 지난달 29일 공식 발표에 따르면 현재의 아부시르 인근에 존재했던 고대도시인 타포시라스 마그나 내의 매장실 16곳이 발견됐다. 16곳 중 한 곳에 매장돼 있던 미라의 입 안은 혀 모양의 황금으로 꾸며져 있었다. 미라의 주인은 약 2000년 전 알렉산더 대왕 사후에 이집트를 다스렸던 프롤레마이오스 왕조(기원전 305~30년) 시기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고인이 사후세계에서도 말을 할 수 있도록 황금을 이용한 혀를 만들어 함께 매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세상을 떠난 고인은 혀가 제거된 채 방부처리 됐으며 이후 황금으로 만든 혀로 대체됐다. 황금 혀가 있다면 고인이 내세에서 오시리스와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약 2000년 전 전에는 죽은 사람의 혀를 내어주면 오시리스가 그들의 영혼에 자비를 베풀어 줄 것으로 믿었다”면서 “황금 혀를 가진 유골은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해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이집트 신화에 따르면 오시리스는 땅의 신 게브와 하늘의 신 누트의 아들로, 죽은 자들의 신으로 숭배돼 왔다. 저승의 왕이 된 오시리스는 식물의 싹이 나는 것에서부터 나일 강의 연례적인 범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지하세계로부터의 생명을 부여하는 힘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다만 고인이 생전 언어 장애가 있었는지, 특별히 황금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해당 유적지에서는 황금 혀를 가진 유골 외에도 여성을 위한 장례식 가면이나 황금 조각, 황금 화환과 대리석 가면 등의 유물이 추가로 발견됐으며, 특히 다양한 소재를 이용한 가면은 높은 수준의 장인정신과 이를 착용한 사람의 특징을 세밀히 묘사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기행] 클레오파트라의 인종적 정체성(하)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기행] 클레오파트라의 인종적 정체성(하)

    클레오파트라 7세에게는 여러 형제자매가 있었다. 이들은 서로 격렬한 권력 다툼의 과정을 거치며 모두 파멸했다. 클레오파트라 7세는 그 다툼의 최종 승자였다. 클레오파트라 7세의 여동생인 아르시노에 4세의 인생은 특별히 기구하고 극적인 것이었기에 주목할 만하다. 아르시노에는 언니 클레오파트라 7세를 궁지에 몰아넣고 스스로를 이집트의 여왕으로 칭했던 적도 있다. ‘알렉산드리아 공방전’이라고 이름 붙여진 군사적 충돌은 바로 그때 있었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의 힘을 이용해 이 당돌한 여동생을 제압했다. 사로잡힌 아르시노에는 카이사르에게 일종의 ‘전리품’으로 취급돼 이후 로마로 압송됐다. 그는 기원전 46년에 있었던 카이사르의 개선식에서는 마차에 묶인 채로 로마 시민의 구경거리가 됐다. 그러나 로마는 아르시노에를 처형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를 에페수스에 있는 아르테미스 신전에 유배시켰다. 비록 유배형을 받았지만, 그는 클레오파트라에게는 여전히 위협이 되는 존재였다. 아르시노에는 결국 기원전 41년 아마도 클레오파트라의 사주를 받았을 안토니우스에게 처형을 당한다. 이때 아르시노에는 겨우 18세였다.1926년 에페수스에서 무덤이 하나 발견됐다. 팔각형 모양을 한 이 무덤에서는 사망 당시 10대 후반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의 유골도 발견됐다. 하지만 문자 기록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덤이 정확히 누구의 것인지를 밝혀내지는 못했다. 약 70년이 지나 오스트리아 출신의 고고학자 힐케 튀르는 이 무덤에 대한 흥미로운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튀르는 무덤의 형태와 유골에 대한 연대 측정값을 근거로 이 무덤을 아르시노에의 것으로 판단했다. 또한 그는 이 무덤에서 발견된 유골의 해부학적 특성이 아프리카 출신들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클레오파트라의 동생이 흑인일 수 있다는 이 주장은 세간의 주목을 끌었고, 영국의 BBC에서 그런 주장이 2008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유골 자체가 손상돼 DNA 검사는 이뤄지지 못했고, 유골의 두개골 역시 분실됐기에 튀르의 분석은 주로 발굴 당시의 기록과 사진을 통해서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튀르의 주장이 충분한 설득력을 확보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튀르의 주장이 맞다면 현재까지 그 정체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아르시노에의 모친은 아프리카 출신이고, 아르시노에는 그리스 쪽 혈통과 아프리카 출신의 혈통을 모두 물려받은 혼혈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클레오파트라도 모친이 누구인지 분명하지가 않다. 그리스 혈통으로 여겨지는 클레오파트라 트뤼파에나가 그의 어머니로 추정되기도 하지만, 이 계보에는 불확실한 면이 많고, 클레오파트라도 첩실에게서 태어난 서출이었다고 주장하는 학설도 있다.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는 파라오들이 첩을 두어도 특별한 제한을 받지 않았고, 서출에 대한 차별도 없었다. 이 시대 내내 지속돼 오던 근친혼으로 발생한 유전병을 방지하기 위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모친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클레오파트라와 아르시노에의 선조들 가운데 아프리카 출신이 있었을 가능성은 차고 넘친다. 상상력을 조금 확장시킨다면 클레오파트라 역시 흑인의 혈통을 물려받았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현재 남겨진 클레오파트라의 조각상들이 전형적인 서양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클레오파트라 흑인설’을 일축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집트에서 전통적으로 파라오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묘사됐던 것을 감안한다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파라오는 전형적인 그리스인으로 묘사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만큼 클레오파트라를 묘사한 미술품들 자체가 클레오파트라의 인종적 정체성을 확정해 주는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 아마도 클레오파트라의 무덤과 시신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클레오파트라의 인종적 정체성을 둘러싼 문제는 계속해서 논란거리로 남을 것이다.
  • “혼혈 흔했나”…4만8000년 전 네안데르탈인 치아화석서 현생인류 흔적

    “혼혈 흔했나”…4만8000년 전 네안데르탈인 치아화석서 현생인류 흔적

    영국령 저지섬 동굴에서 110년 전쯤 발굴됐던 네안데르탈인의 치아 화석 십여점을 다시 분석한 결과,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의 특징도 함께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나 두 종의 혼혈이 생각보다 흔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보도에 따르면, 1910년과 1911년 저지섬 생브렐라드에 있는 동굴 안에서 한 작은 화강암 바위 윗부분에서 발굴된 치아 화석 13점은 처음에 네안데르탈인 1명에게서 나온 것으로 추정됐지만 영국 연구진에 의한 새로운 분석 연구에서 적어도 2명의 개인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게다가 두 사람의 치아는 모두 현대 인간의 고유 특징을 공유하고 있어 이들은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 사이의 혼혈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치아의 목 부분으로 치관과 치근 사이 잘록한 부분인 치경부(cervix)가 인간의 것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라코트 드생브렐라드(La Cotte de St Brélade)라는 이름의 이 동굴 유적지에서는 1920년대까지 계속된 초기 발굴 조사에서 네안데르탈인과 관계가 있는 중기구석기 양식의 석기 2만여 점이 추가로 나왔었다. 이 동굴 퇴적층에 관한 최근 분석에서는 이들 치아 화석의 연대가 4만8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하기 8000년 전으로 이들 화석이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최근의 네안데르탈인의 유골 중 일부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이번 연구를 주도한 영국 국립자연사박물관의 생물인류학자 크리스 스트링어 박사는 “현대 인류는 4만5000년 전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 네안데르탈인과 활동시기가 겹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생브렐라드 동굴에 살았던 사람들의 특징은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의 공통 조상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면서 “혼혈 집단에 관한 이론은 현재 조사 중인 치아 화석들에서 고대 DNA를 추출함으로써 검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저지섬 동굴에서 발굴한 모든 화석 표본은 연구진에 의해 3차원 X선이나 미세단층촬영 기술로 스캔돼 휴먼 포슬 레코드(Human Fossil Record)라는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공개됐다. 이에 대해 연구에 참여한 영국 켄트대의 고인류학자 매트 스키너 박사는 “우리는 저지 헤리티지(저지섬 문화유산)와의 협력으로 누구나 이들 화석을 가상으로 조사할 수 있도록 했다. 사람들은 교육이나 소장용으로 고해상도 사본이나 3D 모델을 내려받아 인쇄할 수 있다”면서 “이는 실물 화석 다음으로 가장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인류진화저널’(Journal of Human Evolution) 최신호에 실렸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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