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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장비용 7만원 지원”…인도 갠지스강, 떠다니는 코로나19 시신[이슈픽]

    “화장비용 7만원 지원”…인도 갠지스강, 떠다니는 코로나19 시신[이슈픽]

    갠지스강에 코로나 시신 유기 막자…“시신 화장비용 지원하겠다”일일 확진자 정점찍고 감소 분위기뉴델리 봉쇄 일주일 또 연장 인도 북부 갠지스강에 코로나19 희생자 시신이 잇따라 발견되자 지방 정부가 CCTV를 설치해 감시하고, 화장비를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16일 우타르프라데시주 정부는 더 이상의 코로나 희생자 시신 유기가 없도록 갠지스강변에 경찰을 대거 투입하고, CCTV를 설치해 감시에 나섰다고 전했다. 또, 주민들에게 코로나 희생자 시신 발생 시 화장을 하라고, 장례비 5000루피(7만원)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타임스오브인디아 등에 따르면 최근 우타르프라데시주와 경계인 비하르주 북사르 지역 갠지스강에서 70여구, 우타르프라데시주 가지푸르 지구 갠지스강에서 20여구의 코로나 희생자 추정 시신이 발견됐다. 본래 인도 힌두교들은 성스러운 곳으로 여기는 갠지스강변에서 시신 화장 후 유골과 재를 강으로 흘려보내는 전통이 있는데, 최근 코로나 희생자 폭증으로 화장 비용이 배 이상 치솟자 시신 자체를 떠내려 보낸 것으로 추정됐다. 한 주민은 “장례 비용을 부담하기 힘든 사람들에게 강은 마지막으로 의지할 곳”이라며 “그래서 이들은 강으로 시신을 내보내고 있다”고 말했다.구급차 운전자, 다리 위에서 희생자 시신을 던졌다는 진술도 우타르프라데시주 정부는 앞서 14일 “코로나 감염 희생자들의 시신이 적절한 의례에 따라 처리되지 않고 강에 버려졌다”며 주의를 촉구하는 서한을 주민 대표들에게 발송한 바 있다. 주 정부는 “화장용 땔감을 살 돈이 없거나, 종교적 믿음, 코로나에 대한 공포가 갠지스강의 시신 유기 사례 급증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며 “마을 대표들이 시신을 강에 버리는 일이 없도록 확실히 챙겨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주 정부 대변인은 ‘갠지스강에 최대 2000구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현지 매체 보도에 대해 “우리는 몇 차례 10∼20구의 시신을 수습했을 뿐, 그렇게 많이 발견하지 않았다”고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한편 인도의 일일 신규 확진자 수는 이달 7일 41만 4188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조금씩 줄어 이날 31만 1170명으로 집계됐다. 수도 뉴델리는 24일까지 일주일 더 봉쇄를 연장한다고 이날 오후 발표했다. 뉴델리 당국은 지난달 19일부터 1주 단위로 봉쇄를 연장하고 있다. 현재 4주째 일반인 통행금지, 상가 폐쇄 등의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뉴델리의 검사자 수 대비 확진자 비율은 4월 22일 36.2%까지 치솟았으나, 최근에는 12%대까지 내려오면서 ‘봉쇄조치의 효과’로 평가받고 있다.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여기는 인도] “시신 유실 막으려 그물 설치”…무덤 된 갠지스강

    [여기는 인도] “시신 유실 막으려 그물 설치”…무덤 된 갠지스강

    ‘코로나 생지옥’을 지나고 있는 인도의 북부 갠지스강 강둑에서 수십 구의 시신들이 떠내려와 충격을 안긴 가운데, 인도 당국이 시신을 수습하기 위한 조치에 들어갔다. 더힌두 등 현지 언론의 12일 보도에 따르면 비하르주와 우타르프라데시주를 가르는 경계선 근처에서 발견된 이 시신들은 우타르프라데시주의 다리 위를 달리던 구급차에서 던져진 코로나19 희생자 시신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초 애초 시신의 수는 40여구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지 경찰은 수습 과정에서 이 수가 71구로 늘어났다고 전날 밝혔다. 또 우타르프라데시주 가지푸르 지구의 갠지스강변에서도 전날 23∼25구의 시신이 더 발견됐다. 인도 당국은 12일 우타르프라데시주 경계에 그물을 설치하고, 떠내려가는 시신이 없는지를 지켜보는 순찰을 강화했다고 밝혔다.그러나 현지 주민들은 코로나19로 사망한 이들의 시신이 오랫동안 강물에 머물러 있었던데다, 시신들이 발견된 지역에 사는 개 등 동물이 시신들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코로나19가 더욱 확산되는 게 아니냐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현지인들에게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지는 갠지스강에서는 사망한 이를 화장한 뒤 유골로 재 등을 흘려보내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최근 코로나19 사망자가 폭증하면서 화장장에 심각한 부하가 걸렸고 미쳐 화장하지 못한 시신이 강을 타고 떠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 시신은 오랫동안 강물에 잠겨져 있던 탓에 부풀어 있거나, 일부 불태워진 흔적이 있었다. 당국은 이러한 상황으로 봤을 때 코로나19 사망자의 장례가 강변에서 치러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인도 보건·가족복지부에 따르면 12일 기준 인도의 코로나19 일일 신규 사망자 수는 4205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아버지 묘로 착각” 엉뚱한 묘 발굴해 화장한 60대, 전과자 신세

    “아버지 묘로 착각” 엉뚱한 묘 발굴해 화장한 60대, 전과자 신세

    법원,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선고 아버지의 분묘로 착각해 엉뚱한 사람의 분묘를 발굴해 화장한 60대가 전과자가 됐다. 춘천지법 형사2단독 박진영 부장판사는 분묘발굴과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63·여)씨에게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고 8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5월 피해자 B씨가 친할머니의 묘로서 관리해오던 분묘 1기를 임의로 발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화장시설 외 시설이나 장소에서는 화장할 수 없음에도 꺼낸 유골을 곧장 화장했다. 박 판사는 “이장할 아버지의 분묘 위치를 정확히 몰라 다른 사자(死者)의 분묘를 잘못 발굴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이를 용인한 채 B씨가 관리해오던 분묘를 발굴하고, 토치를 사용해 화장한 후 빻아 가루로 만들어 묻는 범행을 저질러 분묘의 평온과 사자에 대한 종교적 감정을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는 피고인에 대한 엄한 처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다만 섣부른 판단으로 범행에 나아가게 된 것으로 보이고, 악의가 있었다고 보이지는 않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마지막으로 사망신고…” 정민아빠의 슬픈 고백

    “마지막으로 사망신고…” 정민아빠의 슬픈 고백

    실종 닷새 만에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 손정민(22)씨의 부친 손현(50)씨가 아들의 발인을 마치고 사망신고를 했다. 법적으로는 발견된 4월 30일을 사망일로 적어야 하지만 손현씨는 실종 당일인 4월 25일을 정민이의 사망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현씨는 7일 새벽 ‘발인 그 후’라는 제목으로 “어린이날 발인이라니 정말 아이러니하다”며 “각종 신고서에 사망일을 적어야 하는데 법적으로는 발견된 4월 30일을 적더라. 하지만 우리는 4월 25일을 정민이의 사망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분이 오신 가운데 정민이를 화장하고 유골함을 받았다. 한 줌의 재라는 게 글에선 쉬운데 아들의 유골을 눈으로 보는 것은 참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며 “4월 24일 밤 11시쯤 나갔던 아들은 5월 5일이 되어서야 집에 올 수 있었다”고 애통해했다. 이어 “정민이 책상 위에 정민이를 잘 모셨다. 좋아했던 감스트 방송을 24시간 틀어주고 있다. 전 참 듣기 싫었는데 왜 그리 좋아했는지”라며 “우리가 식사를 할 때마다 정민이 책상에도 좋아하던 것을 놓는다. 본인도 어디선가 그걸 알고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손현씨는 “오늘 경찰 수사를 돕기 위해 선임한 변호사분들을 만나고 함께 서초경찰서에 다녀왔다”며 “서장님과 그간 상황을 공유하고 ‘고생하시는 것 잘 알지만 조금만 더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렸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어제부터 악몽을 꾸기 시작해 오후에는 심리상담도 받았다. 엉엉 우니까 좀 나아지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아들의 사망신고를 하는데, 뭔가 바뀐 듯한 느낌을 받았다”며 “이 큰 한강에서 정민이를 그날 발견한 것이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부모 걱정 그만하라고 나타난 것인지. 결과를 두고 볼 일”이라고 적었다.손현씨는 지난달 28일 ‘아들을 찾습니다’라는 글을 쓴 이후 블로그를 통해 사건 상황을 공유하고 있다. 발인식이 있었던 지난 5일에는 아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냈다. “하늘이 내려주신 선물 정민아. 네가 우리에게 왔다 간 기간이 21년밖에 안 돼서 서운하지만 너무나 많은 것을 줬다. 우리 부부에게 인생은 살아갈 만한 것임을,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줬다. 지금의 이별이 너무 아쉽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알기에 이제 너를 보내주려고 한다. 우리는 늘 너와 함께 할 거다. 엄마는 걱정하지마. 아빠 믿지 사랑한다.”대학동기 A씨 신발 버린 장면 입수  경찰은 이날 정민씨의 대학 입학 동기 A(21)씨가 주거지 주변에서 당시 신었던 신발을 버리는 장면이 포착된 폐쇄회로(CC)TV를 입수했다. 전날인 지난 6일에는 또 다른 목격자 한명을 불러 참고인 조사를 마쳤다. 현재 경찰이 조사한 목격자는 5개 그룹 7명이다. A씨는 사고 당일 오전 4시 30분쯤 반포나들목을 지나 귀가하는 장면이 포착됐는데 이때는 이 신발을 신고 있었다. 이때 정민씨의 휴대폰(갤럭시 S20)도 가지고 귀가했다. 경찰은 A씨의 휴대폰 통화 기록을 확보해 A씨가 사고 당일 오전 3시 30분쯤 자신의 휴대폰(아이폰8 스페이스그레이)으로 집에 전화한 사실도 확인했다. 사고 다음날 A씨는 휴대전화를 교체했다. 정민씨의 모습이 담긴 가장 마지막 영상은 지난달 25일 오전 2시쯤 휴대폰에 찍힌 A씨의 모습에 나오는 음성이 전부였다. 손현씨는 지난 4일 서울중앙지검에 보완수사지시를 요청하면서 제출한 진정서에 A씨의 휴대폰, 당일 입었던 옷과 가방, 4월 25일 0시 이후 관련인들의 SNS 내용, 아파트 CCTV에 대한 증거를 확보해줄 것을 요구했다. 손현씨는 언론을 통해 경찰이 ▲지난달 25일 오전 3시30분부터 4시30분까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 아들이 물에 어떻게 들어가게 된 건지 ▲ 휴대폰이 왜 뒤바뀌었고, 사고 다음날 휴대폰은 왜 교체했는지, 신발은 왜 버렸는지 등을 수사를 통해 명백하게 밝혀줄 것을 요구했다. 경찰이 사고 초기 사건의 전말을 밝힐 수 있는 증거를 보전할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경찰이 사라진 A씨의 휴대폰을 일주일이 지나서야 찾기 시작한 점 ▲A씨 부모 등 주변인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지 않고 있는 점 ▲국과수 검시관과 소견 차이가 있는, ‘정민 씨 후두부 상처가 물길에 부딪혀 난 것 같다’는 예단을 언론에 발표해 수사 방향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 점 ▲실종팀의 수사권 제약으로 주차장 입출차 기록도 보지 못한 점 등을 언급했다.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故 손정민씨 아버지 “경찰에 ‘알 수 없다’는 말만 말아달라고...”

    故 손정민씨 아버지 “경찰에 ‘알 수 없다’는 말만 말아달라고...”

    서울 한강공원에서 실종됐다가 사망한 대학생 고(故) 손정민(22) 씨의 아버지 손현씨가 아들을 떠나 보낸 뒤 “딱 하나 알고 싶은 것은 어떻게 아들이 한강에 들어갔느냐”라며 경찰을 향해 “알 수 없다라는 말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지난 5일 밤 손씨는 아들의 발인을 마치고 KBS라디오 ‘주진우의 라이브’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오늘 정민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갔다”며 “(아들이) 유골로 돌아와서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손씨는 사건이 발생한 지난 4월 25일 새벽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아내가 저를 갑자기 깨우더니 ‘정민이가 없어졌대, 빨리 찾아봐’”라고 했다며 그때가 “아마 5시 반 전후일 것”이라고 말했다. 아들을 찾기 위해 헐레벌떡 반포 한강 둔치로 가는 도중 그는 “반포나들목 바로 앞에서 어떤 남학생이 오길래 정민인 줄 알았지만 가까이서 보니까 정민이가 아니었다”면서 “표정도 좀 어설프고 술도 먹은 것 같고… ‘네가 정민이 친구니’ 그랬더니 그렇다고 하더라”며 그때 정민이와 함께 있었던 친구를 스치듯 봤다고 전했다. 손씨는 다음날인 26일 저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정민이와 함께 있었던 친구를) 만났다”면서 “(정민이 친구에게) 새벽 2시부터 4시반 사이에 모든 일이 벌어졌기에 기억을 최대한 많이 살려달라고 했는데 ‘술 먹어서 기억이 안 나고 4시반에 일어났을 때도 있었나 없었나 모르겠다’고 했다”고 허탈해 했다. 특히 손씨는 아들의 친구가 3시반쯤 자신의 집에 전화했다는 사실을 경찰을 통해 들었을 때 “화가 나서 전화를 해 ‘왜 그 이야기를 안 했냐’고 그랬더니 ‘이야기 할 기회를 놓쳤다, 미안하다’고 이런 식의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진행자가 “그 친구의 휴대폰을 아직 찾지 못했는가”라고 묻자, 손씨는 “못 찾기도 했고 찾기도 어려울 것 같다”며 “이 정도로 완벽하게 수습을 했으면 찾아도 저게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아들의 주검이 발견된 날(4월 30일) 오열한 아내와 제가 걸어갈 때 마침 서초경찰서장님 만났다”며 그 때 “그분께 약속을 받은 게 있다”고 했다. 손씨는 “서초서장에게 ‘서장님이 말씀하신 게 맞으면 저는 어떤 것이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데 알 수 없다, 이런 말씀은 듣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했다”며 이에 “(서초서장이) ‘열심히 하겠다’라는 다짐을 주셨다, 그 뒤로 인력도 많이 늘어났다”고 경찰 수사에 한가닥 기대를 걸었다. 손씨는 “제 아들은 죽었지만 딱 하나 아들이 어떻게 한강에 들어갔는지, 3시 반과 4시 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만 알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반드시 한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위안부 피해 할머니 제2의 피해”…나눔의집 유골함 이전명령

    “위안부 피해 할머니 제2의 피해”…나눔의집 유골함 이전명령

    경기 광주시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지원 시설인 ‘나눔의 집’ 추모공원에 설치된 유골함이 불법 봉안시설이라며 이전 명령이 내려져 유족과 나눔의 집 측이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하는 등 해법을 호소하고 있다. 4일 나눔의 집에 따르면 광주시는 지난달 1일 추모공원의 유골함 설치가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며 오는 10월 1일까지 유골함을 이전하라고 명령하고 과태료 180만원을 부과했다. 2017년 나눔의 집 뒤편에 조성된 추모공원에는 이용녀(2013년 별세)·김군자(2017년 별세) 할머니 등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다 영면한 9명의 유골이 모셔졌다. 광주시 관계자는 “나눔의 집이 있는 퇴촌면 일대는 한강 수계 수질보전을 위해 수변구역으로 지정돼 봉안시설을 설치할 수 없다”며 “경기도민관합동조사단이 지난해 나눔의 집의 후원금 유용 관련 조사를 하다가 불법을 확인했고 안타깝지만, 예외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전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관련 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에 대해 이용녀 할머니의 아들인 서병화씨는 “전쟁터에 끌려가 고초를 겪으신 분들에게 제2의 피해를 주는 것이라 억장이 무너진다”며 “어머니를 포함해 나눔의 집에서 친하게 생활했던 분들이 같이 살던 곳에 함께 묻히고 싶다는 유언도 못 지키면 되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나눔의 집 관계자는 “유골함은 1995년 현재의 주차장 부지에 있다가 2017년 옮겼는데 유골함 설치가 불법이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고 그동안 행정당국에서 지적한 바도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권익위에 지난달 28일 고충 민원을 제기해 방법을 찾아달라고 호소했다”며 “권익위에서도 심각성을 고려해 서둘러 현장 조사를 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친부 유골 넣은 볼링공으로 ‘퍼펙트 게임’ 달성한 美 남성의 사연

    친부 유골 넣은 볼링공으로 ‘퍼펙트 게임’ 달성한 美 남성의 사연

    한 남성이 친부의 유골을 넣은 특별한 볼링공을 사용한 볼링 연습 경기에서 퍼펙트 게임을 달성해 화제다. 볼링에서 퍼펙트 게임은 전 프레임을 스트라이크로 경기를 끝내 300점을 얻은 경기를 말한다. CNN 등 현지매체 보도에 따르면, 일리노이주 피오리아에 사는 아마추어 볼링선수 존 힝클 주니어(38)가 아버지인 존 힝클 시니어의 생전 뜻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골을 넣은 볼링공을 사용한 볼링 연습 경기에서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다.학교 상담사라는 직업이 있는 이 볼링선수는 쌍둥이 형인 조와 함께 4살 때부터 볼링을 배우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부모도 아마추어 볼링선수다.힝클 주니어는 지난 12일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퍼펙트 게임 영상을 공유하며 “생전 볼링 경기에서 한 번도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지 못한 아버지를 대신해 꿈을 이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그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만일 퍼펙트 게임을 해본 적이 있다면 다음부터는 경기에서 계속해서 편하게 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에 해봤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면서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경험이 없어 감정이 겪해져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난 떨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는 눈물이 고이기까지 했다”고 덧붙였다. 힝클 주니어는 2014년 어머니에 이어 2016년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을 때 볼링을 완전히 관둘 생각을 했었다. 자신의 멘토였던 두 사람을 평생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스포츠를 계속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그는 2017년 쌍둥이 형에게 아버지가 생전에 자신이 죽으면 유골을 볼링공에 넣어달라고 했던 유언을 처음으로 꺼냈고, 두 사람은 그 뜻을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볼링공 속에 사람의 유골을 넣을 수 있는 기술을 지닌 사람을 찾는데는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운 좋게도 어릴 적 한 친구가 막 볼링용품 판매점을 열면서 의뢰를 맡아줬고, 그녀는 첫 시도에서 엄지손가락을 끼우는 구멍에 유골을 넣고 봉인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끝으로 힝클 주니어는 아버지와 함께 마지막으로 참가했던 볼링 경기대회인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에 다시 한 번 출전해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한 뒤 은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진=존 힝클 주니어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여기는 남미] 연기 뿜어내는 구덩이, 들여다보니 시신이 가득

    [여기는 남미] 연기 뿜어내는 구덩이, 들여다보니 시신이 가득

    멕시코 마약카르텔의 시신처리 현장이 발견돼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멕시코의 소노라주에서 활동 중인 실종자 가족단체 '행방을 찾는 엄마들'은 최근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일련의 사진을 공개했다. 과이마스에서 발견한 구덩이라는 설명이 붙은 사진을 보면 직사각형으로 판 구덩이에서 연기가 피어나고 있다. 구덩이에서 불에 타고 있는 걸 삽으로 떠내자 사람의 뼈가 나왔다. 구덩이는 시신을 불태우는 화장터였던 셈이다. 구덩이 주변에는 화장되는 사람들이 사용하던 것으로 보이는 신발 등 물건들이 널려 있었다. 단체 관계자는 "구덩이에서 연기가 피어나는데 냄새까지 고약해 접근해 보니 시신들이 타고 있었다"며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불에 타는 시신은 여럿이었다"고 말했다. 단체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한참 뒤 현장에 도착했지만 경찰 역시 불에 탄 시신의 수를 공식적으로 확인하진 못했다. 관계자는 "좀 더 조사를 해봐야 불에 탄 시신이 몇 구인지, 납치된 사람이 맞는지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행방을 찾는 엄마들'은 마약카르텔 등 범죄조직에 납치된 가족을 찾는 단체다. 이 단체는 앞서 불에 타는 구덩이를 발견한 곳 주변에서 시신을 매장한 또 다른 구덩이를 발견한 바 있다. 불에 탄 유골들이 묻혀 있던 곳이다. 등골이 오싹해 일반인은 접근하기 꺼리게 되는 곳을 단체가 다시 찾은 것도 앞서 발견된 구덩이에서 추모행사를 열기 위해서였다. '행방을 찾는 엄마들' 관계자는 "시신이 발견된 구덩이에 휘발유를 뿌려 깨끗하게 불로 태우고 고인이 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갔다가 연기가 피어나는 구덩이를 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연기를 뿜어내는 구덩이 주변에 물건들이 널려 있고, 혈흔까지 있어 바로 화장터인 걸 짐작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단체에 따르면 구덩이가 발견된 곳 인근에 사는 주민들은 최근 몸값을 지불하지 않으면 납치한 사람들을 처형하겠다는 마약카르텔의 최후통첩을 받았다. 경찰의 수사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는 일이지만 구덩이에서 타고 있던 시신들은 마약카르텔에 납치된 주민들이었을 공산이 크다는 추정이 가능한 이유다. "행방을 찾는 엄마들'은 "경찰의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겠지만 아마도 우리 추측이 100% 맞을 것"이라고 했다. '행방을 찾는 엄마들'은 마약카르텔에 "사람을 죽여도 시신을 불에 태우진 말아 달라"고 공개 호소했다. 관계자는 "시신을 마구 섞어 한꺼번에 불에 태우면 장례조차 불가능해 가족들까지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장례라도 치를 수 있게 시신을 그대로 버리고 위치를 알려 달라"고 말했다.  사진=행방을 찾는 엄마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4000년 간 ‘완벽 봉인’돼 있던 고대 무덤, 아일랜드서 발견

    4000년 간 ‘완벽 봉인’돼 있던 고대 무덤, 아일랜드서 발견

    수 천 년 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고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무덤이 발견됐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23일 보도에 따르면 아일랜드 딩글 반도의 한 농부는 우연히 매우 오래돼 보이는 지하 무덤을 발견했다. 현장에 도착한 아일랜드 국립박물관 소속 고고학자들은 굴착기를 이용해 입구를 막고 있던 커다란 돌을 치워낸 뒤 지하 발굴을 시작했다. 내부에서는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과 모난 곳 없이 둥글게 깎여 있는 돌을 발견했다. 고고학자들은 무덤의 형태와 내부 상태 등을 보아 해당 무덤이 최소 2500년 전, 최대 4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무덤 내부에서 발견된 다양한 유물은 선사시대의 매장 의식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전문가들을 가장 놀라게 한 것은 해당 무덤이 만들어진 후부터 현재까지 단 한 번도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었다. 발굴에 참여한 한 고고학자는 “이 무덤은 그 누구도 ‘완전히 손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내부의 유물도 처음에 만들어진 그 상태 그대로로 추정된다”면서 “(도굴된) 다른 고대 무덤과 달리 원래의 구조가 완벽하게 보존돼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발견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발견은 선사시대의 매장 의식을 이해하는데 매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다만 기존에 알려진 청동기 시대의 매장지와는 다른 부분도 있어 정확한 건설 시기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발굴에 참여한 박물관 및 전문가들은 이 무덤이 붕괴 또는 훼손의 위험이 매우 높은 상태이기 때문에, 향후 연구를 위한 유적지 보호 차원에서 무덤의 정확한 위치를 비공개한다고 밝혔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유골 3구 발견…조선시대 추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유골 3구 발견…조선시대 추정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유골 3구가 발견돼 경찰이 경위 파악에 나섰다. 21일 서울 은평경찰서는 오후 1시 20분쯤 대조동의 한 공사장에서 유골 3구가 발견됐다는 신고를 받았다. 공사장 인부들은 며칠 전 주택재개발을 위해 아파트를 짓는 공사 현장에서 유골을 발견한 뒤 이날 경찰에 신고했다. 유골들은 조선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목관에서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 혐의점이 없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분석 의뢰하지는 않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앞서 은평구에서는 지난달에도 수색동의 한 공사 현장에서 유골 6구와 석회관 등이 발견된 바 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핵잼 사이언스] 밀림 속 마야 유적서 ‘대사관’ 역할 건물시설 잔해 발견

    [핵잼 사이언스] 밀림 속 마야 유적서 ‘대사관’ 역할 건물시설 잔해 발견

    중앙아메리카 과테말라 북부 밀림 속에 남아 있는 고대 마야 문명 도시 티칼에서 한때 다른 도시국가의 대사관 역할을 했으리라 추정되는 복합 건물 시설을 고고학자들이 발견했다. 이곳에는 약 1000㎞ 거리 멕시코 북동부 고대 도시 테오티우아칸 문화 양식의 피라미드와 매장지 등이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마야 문화자연유산재단(PACUNAM) 연구진은 2018년 ‘라이다’(LiDAR·Light Detection And Ranging)라는 기술을 사용해 티칼 상공 주변 지역을 스캔했다. 티칼은 멸망하고 나서 몇 세기에 걸쳐 밀림 속에 가려져 있었지만, 라이다를 탑재한 항공기를 활용한 대대적 조사를 통해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고고학자들은 티칼이 이전 예상보다 훨씬 더 컸기에 주민 몇백만 명이 살았다고 추산할 수 있었다.티칼 남쪽 지역을 촬영한 이미지 한 장은 원래 언덕으로 여겨졌던 피라미드와 작은 건축물들이 즐비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우스 티칼 고고학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에드윈 로만라미레스 박사는 지난해 여름 티칼에서 발굴을 시작해 이곳 마야인들이 건축에 사용하지 않는 재료인 흙과 석고로 지어진 건축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들 건축물은 이곳과 나중에 적대적인 관계였던 테오티우아칸에서 발견된 건축물들과 거의 똑같다는 것이다.이에 대해 미 브라운대 고고학자 스티븐 휴스턴 박사는 “이 복합 시설은 테오티우아칸의 북쪽 성채인 시타델을 절반 크기로 축소한 건축물로 보인다”면서 “세부적인 유사성에 놀라웠다”고 설명했다. 이 유적에서는 녹색 흑요석으로 만든 다트와 비의 신 틀랄록 조각품 등 4세기 초 테오티우아칸의 전형적인 유물이 발견됐다. 게다가 테오티우아칸 양식이 사용된 매장지도 발견됐다. 로만라미레스 박사는 이번 발견을 통해 티칼에서는 테오티우아칸 출신이나 그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들도 살았다는 점을 입증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서기 378년 이전에 티칼과 주변 지역에서는 테오티우아칸 사람들이 적어도 어느 정도 존재감과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지역의 사람들이 가장 강력한 왕국(테오티우아칸)의 문화를 모방하고 있었을 뿐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면서 “이번 발견으로 그 이상의 관계가 있었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심지어 일부 전문가는 이들 건축물은 고대 테오티우아칸의 대사관으로, 양측이 더욱더 우호적인 관계를 맺던 시대에 세워졌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두 도시국가의 관계는 어떤 계기로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그후 서기 378년 1월 테오티우아칸의 왕인 스피어스로워 오울은 휘하의 장군인 본 오브 파이어와 그의 군대를 티칼에 파견했다. 그리고 티칼의 왕인 재규어 포가 죽던 날, 스피어스로워 오울의 어린 아들이 이곳의 통치자로 임명됐다.5세기까지 티칼의 건축과 예술 양식은 테오티우아칸 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티칼의 시타델은 서기 300년쯤 지어졌다. 만일 이곳이 대사관이었다는 이론이 맞다면 두 도시국가의 수교가 악화해 갈등이 빚어졌음을 시사한다. 이런 생각은 최근 테오티우아칸 중심부에서 발견된 마야 문명을 나타내는 건물의 발견으로 지지를 얻고 있다. 사이언스지에 따르면, 테오티우아칸에 있는 이 건물의 벽은 색채가 풍부한 마야 문명 양식의 벽화로 장식돼 있었지만 티칼이 멸망했을 무렵 산산조각이 나 파묻혔다. 연구진은 티칼의 매장지에서 인간 유골의 추가 발굴과 분석을 통해 이 복합 시설이 어떤 목적으로 쓰였는지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마야 문명은 서기 250년에서 900년 사이 절정에 이르렀고 오늘날 멕시코 남부와 과테말라, 벨리즈 그리고 온두라스까지 대규모 영토를 지배했지만, 16세기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의 도래로 끝이 나고 말았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피델 이어 라울도 ‘카스트로 시대‘ 저물어…막후에서 덩샤오핑처럼

    피델 이어 라울도 ‘카스트로 시대‘ 저물어…막후에서 덩샤오핑처럼

    쿠바의 ‘카스트로 시대’가 60여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라울 카스트로(89) 쿠바 공산당 총서기(제1서기)는 16일(이하 현지시간) 수도 아바나에서 개막한 제8차 공산당 전당대회 첫날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는 지난 2016년 7차 전당대회에서 “혁명과 사회주의의 깃발을 젊은 세대에게 넘겨주겠다”며 5년 후 차기 전당대회에서 총서기직을 내려놓을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이날 카스트로 총서기는 누구에게 자리를 물려줄지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미겔 디아스카넬(60) 대통령이 자리를 이어받는 것이 이미 기정사실화됐다. 쿠바 혁명 이후인 1960년에 태어난 디아스카넬 대통령은 앞서 2018년 카스트로 총서기로부터 국가평의회 의장 자리를 물려받았다. 이로써 카리브해 섬나라 쿠바에서는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60여년 이어진 ‘카스트로 시대’가 저물게 됐다. 쿠바 혁명의 주역인 피델 카스트로(1926∼2016년)가 2011년까지 공산당을 이끌었고, 이어 동생 라울 카스트로가 자리를 물려받았다. 라울은 1931년 6월 3일 가난한 사탕수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하바나의 예수교 학교에서 공부했다. 하바나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며 공산당 청년 그룹과 어울렸다. 1953년 형 피델을 도와 풀젠시오 바티스타 장군을 축출하기 위해 몬카다 군대 참호를 공격하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는데 실패한 뒤 13년형을 선고받았지만 1955년 사면을 받고 멕시코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아르헨티나 출신 혁명아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를 만나 형 피델에게 소개해줬다. 라울은 쿠바인들이 7월 26일 혁명운동이라 부르는 피델의 망명자들과 함께 그랜마 호에 올라 1956년 12월 쿠바로 돌아와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에서 게릴라 전투를 벌여 끝내 바티스타 정권을 전복시키고 피델이 총리에, 라울이 혁명군 사령관을 맡았다. 라울은 1965년 새로 구성된 공산당 중앙위원회 2서기로 올라섰다. 피델은 1서기로 같은 해부터 2011년까지 일한 뒤 동생에게 물려줬다. 피델은 2016년 11월 병사했고, 동생 라울은 산티아고 드 쿠바에 있는 산타 이피게니아 공동묘지에 있는 형의 묘에 유골을 뿌렸다. 19일까지 나흘간 이어지는 전당대회에선 호세 라몬 마차도 벤투라(90) 부서기도 물러날 예정이라 혁명세대들이 모두 공산당 정치국에서 퇴장하게 된다. 다만 쿠바의 공산당 1당 체제나 사회주의 모델에 당장 급격한 변화가 오지는 않을 전망이다.영국 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의 노먼 매케이 연구원은 AFP 통신에 “카스트로가 통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공산당 스타일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변화의 압력이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 이후 미국의 금수 조치로 어려움을 겪어온 쿠바 경제는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의 제재 강화와 코로나19가 겹쳐 더욱 위기를 맞고 있다. 주된 소득원이던 관광산업이 마비되면서 지난해 경제는 11% 추락했다. 식품 등 생필품 부족도 심해져 국민의 삶의 질도 크게 낮아졌다. 쿠바 당국은 올해 이중통화 제도를 폐지하고, 민간에 대한 경제 개방의 폭도 점점 넓혀가고 있다. 좀처럼 들리지 않던 체제 비판이나 반대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엄격한 코로나19 방역 지침 속에서도 최근 쿠바 곳곳에서 소규모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쿠바계인 마코 루비오 미국 상원의원은 최근 트위터에 “라울 카스트로가 공산당 당수에서 물러나는 것이 진정한 변화는 아니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이미 진행 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라울 카스트로 총서기는 은퇴 후에 책을 읽고 손주들을 돌보며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그러나 그가 무대 밖으로 퇴장해도 계속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쿠바 전직 외교관인 카를로스 알수가라이는 AFP·로이터 통신에 “라울은 계속 중요인사로 남을 것”이라며 “중국 덩샤오핑이 모든 직책을 내려놓은 후에도 계속 최종 결정권을 가졌던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필립공의 피 한 방울, 러시아 마지막 차르 일가의 최후 규명에 도움

    필립공의 피 한 방울, 러시아 마지막 차르 일가의 최후 규명에 도움

    지난 9일(이하 현지시간) 세상을 떠난 영국 에딘버러 공작인 필립공의 DNA가 러시아 혁명 와중에 잔인하게 처형된 마지막 차르인 니콜라이 2세 일가의 최후를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10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로마노프 왕조의 비극적인 최후는 많은 호사가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소재였는데 1991년 7월 시베리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주인 없는 무덤들이 발견되면서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전문가들은 니콜라이 2세의 부인 차리나와 그녀의 자녀들, 수행원들의 무덤인 것으로 의심했다. 그런데 1918년 7월 17일 볼세비키 군에 의해 처형됐다고 알려진 인물은 모두 11명이었는데 이곳에 묻힌 유해는 아홉 구 뿐이어서 이상한 일이었다. 차르 니콜라이 2세와 황후인 차리나 알렉산드라, 황태자 알렉세이, 올가와 타티아나, 마리아, 아나스타샤 등 네 공주, 주치의, 간호사, 두 시종이었다. 나머지 두 구의 유해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사라진 두 구의 유해는 누구일지 규명해야 했다. 필립공은 1921년 6월 10일 그리스 고르푸 섬에서 태어났다. 그리스 왕자이자 덴마크 왕자였던 안드레아스와 바텐베르크 가문의 앨리스 공주를 부모로 태어났다. 그리스 왕위계승 서열 6위. 아버지 안드레아스 왕자는 그리스 게오르기오스 1세의 4남이었고, 게오르기오스 암살 후 필립공의 큰아버지인 콘스탄티노스가 왕위를 계승한 상태였다. 할머니는 러시아 혁명 때 처형된 차리나 알렉산드라의 맏언니 빅토리아 마운트배튼이었다. 할아버지는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9세다. 콘스탄티노스가 전권을 장악하자 필리포스(필립공의 그리스 이름) 가족은 망명해야 했다. 어머니 앨리스 왕자비는 자신의 어머니 헤센의 공녀 빅토리아의 외가인 영국 국왕 조지 5세에게 도움을 청했다. 빅토리아 여왕의 손자인 조지 5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이자 자신의 고종사촌 여동생 알릭스의 시가인 니콜라이 2세 일가가 영국으로 망명 의사를 타진한 것을 의회 눈치를 보느라 미적거리다 그들을 죽게 만든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그리스에서 철수하는 영국 군함에 필립공 가족을 피신할 수 있게 했다. 생후 18개월의 필립 공은 상자에 들어간 채로 탈출했다.필립공은 1993년 5㎤의 혈액 샘플을 제공해 차리나와 네 공주의 미토콘트리아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규명하는 데 도움을 줬다. 미토콘트리아 DNA는 모계 혈통으로 유전되는데 할머니 친척 가운데 필립공이 가장 가까운 생존 친척이었다. ‘포렌식 사이언스 서비스’를 이끌던 피터 길 박사가 혈액 샘플을 제공했으면 좋겠다고 하자 평소 소탈하고 격식 없는 발언으로 유명한 공은 러시아를 한 번쯤 가보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러시아에 엄청 가보고 싶다. 그 개XX들이 우리 가족의 절반을 도륙했지만”이라고 답한 것으로 보도됐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결혼했을 때도 신랑 측 가족이 거의 없었던 그는 가족들의 사연을 무척 알고 싶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사라진 두 구의 주인이 알렉세이 황태자와 아나스타샤 공주임을 밝혀내는 데도 그의 혈액 샘플은 큰 도움이 됐다. 소련 붕괴 후 공개된 볼세비키 군인들의 기록에 두 사람의 주검은 곧바로 화장해 유골로 흩뿌렸다는 것과도 일치했다. 1998년 러시아 정교회는 로마노프 왕실 가족의 최후에 관한 과학적 증거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들의 장례식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베드로와 바오로 성당에서 성대하게 치렀고, 보리스 옐친 대통령 등이 추모했다. 그리고 20년 뒤인 2018년 영국 과학미술관은 처형 100주기를 맞아 이런 내용을 소개하는 전시회 ‘마지막 차르-피와 혁명’를 열었다. 그 전까지 과학자들끼리만 알고 있던 내용을 처음으로 일반 대중에 상세하게 소개했는데 처형 당시 주치의의 틀니, 황후 차리나의 다이아몬드 귀걸이 한쪽, 총탄 구멍이 난 인형, 왕가 자녀들의 영국인 가정교사 사진 앨범, 왕가의 개인 일기들, 차르가 황후에게 선물한 ‘파브레제의 달걀’ 보석 등이 함께 전시됐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기사 작성에 도움이 된 블로그 글 https://blog.naver.com/ayasofya/130002066556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톈안먼 민주항쟁의 마지막 흔적 역사의 뒤안길로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톈안먼 민주항쟁의 마지막 흔적 역사의 뒤안길로

    중국 베이징 중심가 톈안먼(天安門) 광장을 핏빛으로 물들인 중국 민주주의 항쟁의 마지막 흔적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비운의 지도자’ 자오쯔양(趙紫陽·1919∼2005) 전 공산당 총서기의 유족이 베이징 둥청(東城)구 왕푸징(王府井)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푸창후퉁(富强胡同) 6호’ 사합원(四合院)에서 이삿짐을 싼 까닭이다. 자오쯔양 유족들이 푸창후퉁 6호를 떠난다는 것은 이 옛집의 자오쯔양 시대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홍콩 명보(明報)가 지난 5일 평가했다. 이에 따라 중국 라오바이싱(老百姓·일반 서민)들이 그의 흔적을 찾아 추념하며 톈안먼 민주화 운동을 떠올리는 일이 완전히 사라지는 셈이다. 사실 중국에서는 톈안먼 민주화 운동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그리 쉽지 않다. 중국 본토 인터넷을 검색하면 자오쯔양 옛집 퇴거 소식은 찾을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중국 당국이 인공지능(AI)를 활용해 톈안문 민주화 운동 관련 콘텐츠를 거의 완벽하게 온라인에서 통제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톈안먼 광장의 상흔은 평소 일반인들은 접근 자체가 어려운 금단의 공간이 되고 있는 셈이다. ‘ㅁ’자로 닫힌 형태의 중국 전통 주택양식인 사합원 형태의 푸창후퉁 6호는 중국 공산당이 1949년 10월 1일 사회주의 중국을 건국한 이후 중국 공산당 소유의 관저였다. 1987년까지 당총서기를 지냈던 개혁파 지도자 후야오방(胡耀邦·1915~1989)도 한동안 베이징시 시청(西城)구 후이지쓰후퉁(會計司胡同) 25호 사합원에서 머물렀다. 중국 공산당은 사망한 국가 지도자 주택관리에 관한 규정에 따라 자오쯔양의 딸인 왕옌난(王雁南· 본명 趙亮)과 남편 왕즈화(王志華)가 머물고 있던 푸창후퉁 6호 사저를 당중앙판공실이 회수할 예정이다. 시진핑(習近平) 당총서기는 앞서 2016년 11월 30일 당중앙정치국 회의를 주재하고 당과 국가 지도자 예우와 관련된 규범을 통과시켰다. 당시 정치국 회의에서는 사무실·사저·관용차·교통편·비서 규모·휴가 격식 등 당과 국가 지도자에 대한 대우 수준을 규정하고 당과 국가 지도자가 퇴임한 뒤 적시에 사무용 관저에서 퇴거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톈안먼 민주화 운동은 1989년 4월 후야오방 전 당총서기가 사망하자 이를 추모하는 대학생·시민들이 그에 대한 명예회복 등을 요구하며 톈안먼 광장에 몰려들면서 시작됐다. 당시 당총서기였던 자오쯔양은 무력 진압을 결정한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실각했다. 그는 실각한 이후 2005년 1월 사망할 때까지 16년 가까이 이 집에 가택연금 생활을 했다. 자오쯔양은 후야오방과 함께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주목받았으나, 당총서기였던 1989년 5월 톈안먼 민주화 시위로 궁지에 몰리며 결국 권좌에서 쫓겨나야 했다. 자오쯔양은 회고록에서 “1989년 6월3일 밤 가족과 함께 마당에 앉아 있다가 총소리를 들었다”며 “세계를 놀라게 한 비극은 피할 수 없었으며 결국 발생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학생운동이 반당분자와 반사회주의 세력들의 계획된 음모라고 규정하고 배후 지도부와 향후 계획, 당내 결탁 세력 등을 알아내기 위해 고심했다”며 “그러나 나는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지 우리의 단점을 고칠 것을 요구한 것이지 정치체제 자체를 전복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설득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학생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을 동원한 당총서기가 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고 다짐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자오쯔양은 1989년 5월19일 새벽 비장한 마음으로 톈안먼 광장에 섰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당시 장면을 보면 그가 빨간색 메가폰을 잡고 학생들과 시위 참가자들에게 행한 7분 가량의 연설은 여전히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해준다. “우리가 너무 늦게 왔습니다. 미안합니다. 당신들이 우리들에게 어떤 것을 말하고 비판하건 가치가 있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대학생들에게 단식 중단을 요구하며 “대화의 문은 열려 있고 당신들이 제안하는 모든 것을 논의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냉정하게 생각하기를 간곡하게 부탁 드립니다”라고 설득하는 그의 마지막 연설을 50대 이상의 중국인들이 적잖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자오쯔양은 30시간 가량의 육성 녹음테이프를 남겼다. 그의 절친한 친구 3명이 몰래 중국 밖으로 갖고 나간 것을 녹취한 것으로 그의 사후 회고록 ‘국가의 죄수’(Prisoner of The State)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됐다. 이 책에서 자오쯔양은 무력 진압을 주도한 강경 보수파 리펑(李鵬) 총리의 당지도부 내부 모임 발언이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실리도록 배후 역할을 해 시위가 격화됐고, 덩샤오핑이 권력을 상실할까 조바심을 내 민주화 시위에 대한 무력 진압을 강행했다고 주장했다. 자오쯔양은 이른바 개혁파로서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유력했기에 실각의 정치적 파장은 더욱 컸다. 이후 6월 4일 무력 진압이 현실화됐고 권좌에 쫓겨난 그는 가택 연금을 당하다가 2005년 1월 별세했다. 작고한 뒤에도 자오쯔양의 유골은 사저를 떠나지 못했다. 자오쯔양의 묘지가 개혁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체제 세력의 성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한 탓이다.이런 까닭에 자오쯔양은 이 세상을 떠나서도 통상적으로 중국 최고 지도자들이 사망 후 안치되는 베이징 근교 바바오산(八寶山) 혁명공묘 지도자 구역에 안치되지 못했다. 2015년 중국 당국은 그의 매장을 허락했으나 베이징과 멀리 떨어진 허난(河南)성 고향을 요구하는 중국 당국과 이에 반대하는 유족 사이의 긴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결국 2019년 10월 18일 그의 부인 량보치(梁伯琪·1918~2013)와 베이징 도심에서 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창핑(昌平)의 민간 묘지 천수원(天壽園)에 합장됐다. 매장 의식은 물샐 틈 없는 보안 속에 비밀리에 치러졌다. 자오쯔양 사망 후 해마다 6월 4일을 비롯해 그의 생일(10월 17일)과 기일(1월 17일), 중국 전통명절인 칭밍제(淸明節·4월 5일 전후) 등 기념일이 되면 자오쯔양의 푸창후통 집에는 공안 당국의 삼엄한 감시와 통제에도 아랑곳 없이 적지 않은 지지자와 추모객들이 찾았다. 2019년에는 자오쯔양의 옛집 부근 곳곳에 출입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얼굴인식 카메라가 설치돼 있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고인의 옛집 서재에는 고인의 사진과 기록물, 소장품들을 보관한 소규모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고 고인의 유해도 2019년 10월 부인과 합장하기 전까지 이 집에 안치돼 있었다. 후야오방의 후손 역시 2019년 5월 19일 그가 생전에 머물던 후이지쓰후퉁 25호 사합원에서 퇴거했다. 공산당 내 대표적 개혁파였던 후야오방은 1989년 4월 15일 사망했는데, 그 추모 물결이 6·4 톈안먼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그를 추앙하던 베이징대 등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보수파에 대한 비난 등 정치개혁에 대한 요구들이 확산됐다. 마침내 후야오방의 장례식을 계기로 그의 명예 회복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이 집회를 갖고 여기에 라오바이싱들이 가세해 민주화운동의 거센 불길이 타올랐다. 자오쯔양 유족이 사저를 떠나는 모습이 알려진 계기가 된 것은 베이징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기자 가오위(高瑜·77)가 지난 4일 올린 트위터였다. 가오위는 칭밍제 당일 자오쯔양 푸창후퉁 집에서 짐을 싸는 모습을 과거 자오쯔양 유족과 함께 찍은 사진과 함께 올렸다. 그는 이날 트위터에 자오쯔양의 생전 사진과 2018년 그의 기일에 찍은 사진, 사합원 정문과 유족이 싼 이삿짐까지 모두 4장의 사진을 올렸다. 원로 여성 언론인인 가오위는 톈안먼 민주화 운동 직후 6년간 옥고를 치렀고 이후 중국 정부의 언론 조치를 담은 문건을 폭로해 다시 징역형을 선고받은 반체제 인사이기도 하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배민아의 일상공감] 4월, 사의 찬미

    [배민아의 일상공감] 4월, 사의 찬미

    울긋불긋 동네 곳곳이 꽃대궐인 계절 4월에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떠올린다. 이 좋은 봄날에 누가 죽음을 말하고 싶으랴마는 잔인한 4월이라는 별칭이 생길 만큼 4월이 우리에게 주는 기억은 죽음과 무관하지 않다. 일제강점기 제암리 마을의 비극에서부터 1947년 제주도민들, 1960년 학생과 시민들, 2014년 세월호 학생 등 무고한 시민들의 수많은 죽음이 겹치며 잔인한 4월의 명성이 이어진다. 우리 현대사의 아픈 사건 이전에도 T S 엘리엇의 ‘황무지’라는 시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시구로 세계인 모두에게 4월은 공히 잔인한 죽음의 달로 알려졌다. 시인은 4월이 잔인한 것은 라일락을 죽은 땅에서 꽃피우듯 죽은 땅에 묻혀 있는 욕망을 추억으로 섞어 꽃피우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생명을 꽃피우고 부활의 봄을 열기 위해 반드시 죽음이 수반돼야 하기에 4월은 잔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죽음이 아픔에만 머물지 않고 살림으로 이어지는 완성을 위한 고통이기에 모두가 4월의 죽음을 칭송하지 않을 수 없다. ‘사의 찬미’(死의 讚美)는 1926년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이 발표한 노래 제목이다. 죽음을 칭송하는 것도 역설인데, 죽음을 노래로 불렀던 그 비장함과 용기는 무엇이었을까. 음반을 일본에서 발표한 후 이 생에서는 인정받을 수 없었던 유부남 연인과의 동반 자살로 사랑의 완성을 꾀했던 뒷이야기가 알려지며 노래의 애잔함과 의미가 더해졌다. 사회의 손가락질 속에서 스스로 죽음이 아니고는 이룰 수 없음을 알았기에, 아니 죽음으로만 사랑을 완성할 수 있었기에 죽음을 칭송했던 그녀의 노래는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1930년대 후반 시골 작은 읍내에서 한 해 차이로 태어난 소년과 소녀가 교회 부설 유치원에서 처음 만났다. 먹고살기도 척박했던 시절 유치원 교육은 사치와도 같았기에 읍내에서 제일가는 부잣집 셋째 딸인 소녀에게는 당연했지만 이 마을 저 마을 발품 전도에 나선 가난한 전도인의 외동아들에게 유치원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것이었으나 부모의 돌봄을 대신한 교회의 특별 배려로 소년에게도 입학의 특혜가 주어졌다. 그렇게 인연이 된 소년과 소녀는 유년 시절 소녀의 월반으로 동급생 친구가 됐고, 청년 시절 성가대 지휘자와 반주자로 활동하며 연인이 됐다. 어울리는 집안끼리의 중매가 정석이었던 시절 극심한 반대로 모진 고초를 겪으면서도 사랑만을 선택한 두 남녀는 57년 동안 한결같은 부부의 정을 나누며 살았고,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 지 2개월 만에 남편마저 병으로 누워 1년 2개월간 남은 생을 차분히 정리하신 후에야 훌훌 아내 곁으로 떠나셨다.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다. 죽음이 임박했음을 병원에서 전달받은 시점은 기독교의 사순절이 시작되는 지난달 중순이었고, 고난 주간이 시작되는 첫날 아빠는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혹자는 병원에 누워만 계셨던 1년 2개월의 삶을 안타깝다고도 하지만 아빠의 마지막 시간은 라일락을 꽃피우기 위해, 묻혀 있는 희망의 소식을 추억으로 섞어 후손들에게 전해 주시기 위해 묵묵히 죽음을 받아들인 시간이었다. 아빠가 떠나신 후 평생 본인 소유의 재산 하나 없이 사회와 이웃을 위해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오신 삶을 기리기보다 부모님의 인간적인 사랑 이야기를 새삼 기억하는 이유는 일생의 모든 업적이 두 분의 사랑의 삶에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빠의 유골을 엄마 곁에 안치하고 돌아오는 길가에 만개한 벚꽃이 잔인하도록 눈부시게 하늘거린다. 이렇게 눈이 부시도록 꽃피우기 위해 얼마나 오랜 죽음의 시간이 필요했을까. 엄마에 이어 아빠까지 하늘로 보낸 슬픔은 크지만 이렇게 죽음의 끝은 또 다른 희망으로 꽃피워지기에 잔인한 4월에도 우리는 사의 찬미를 부르며 위로받게 된다.
  • [나우뉴스] 일본군과 전투 중 침몰한 美 군함, 77년 만에 심해서 발견

    [나우뉴스] 일본군과 전투 중 침몰한 美 군함, 77년 만에 심해서 발견

    77년 넘게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미 군함 USS 존스턴(USS Johnston)이 특수 잠수정 덕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CNN 등 주요언론은 지난 1944년 일본 해군과 격렬하게 싸우다 침몰한 USS 존스턴이 심해에서 발견돼 촬영됐다고 보도했다. 미 해군의 구축함인 USS 존스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잠수함을 격침시키는 등 활약을 펼쳤으나 1944년 10월 필리핀 사마르 해전에서 일본군 거함을 상대로 치열하게 싸우다 결국 침몰했다. 당시 함선에는 총 327명이 타고 있었으며 이중 함장을 포함 총 181명이 목숨을 잃었다.이렇게 USS 존스턴은 전사의 한 페이지를 깊이 장식했지만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그 잔해를 직접 볼 수는 없었다. 그 이유는 배가 6500m나 되는 심해 깊은 곳에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전쟁 영웅’을 두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은 오대양의 심해 중에서도 가장 깊은 지점만 골라 탐사하는 빅터 베스코보(54) 덕이다. 그는 미국 사모펀드 인사이트 에퀴티 홀딩스의 창립자이자 억만장자로 이미 에베레스트 산을 포함 세계 7개 대륙의 최고봉을 정복한 베테랑 탐험가다.여기에 만족하지 않은 그는 반대로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도 탐험을 시작했다. 이를 위해 그는 총 4800만 달러를 들여 무게 11.2t, 두께 9㎝의 유인 잠수정 ‘DSV 리미팅 팩터’를 제작했다. 이 잠수정을 타고 지금까지 그는 대서양의 푸에르토리코 해구(해저 8648m)부터 세계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1만934m)까지 탐사하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세웠다. 보도에 따르면 베스코보는 지난달 31일 특수잠수정을 직접 몰고 내려가 잠들어있는 USS 존스턴을 찾아 이틀동안 총 16시간을 조사하는데 성공했다. 베스코보는 “배가 너무 깊은 곳에 있어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면서 “당시 격렬했전 전투의 흔적이 남아있었으며 해양생물로 인한 약간의 오염도 보였다”고 밝혔다. 이어 “뱃머리 양쪽에서 선체번호 557이 선명히 보였으며 탐사 과정에서 유골이나 의복등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일본군과 전투 중 침몰한 美 군함, 77년 만에 심해서 발견

    일본군과 전투 중 침몰한 美 군함, 77년 만에 심해서 발견

    77년 넘게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미 군함 USS 존스턴(USS Johnston)이 특수 잠수정 덕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CNN 등 주요언론은 지난 1944년 일본 해군과 격렬하게 싸우다 침몰한 USS 존스턴이 심해에서 발견돼 촬영됐다고 보도했다. 미 해군의 구축함인 USS 존스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잠수함을 격침시키는 등 활약을 펼쳤으나 1944년 10월 필리핀 사마르 해전에서 일본군 거함을 상대로 치열하게 싸우다 결국 침몰했다. 당시 함선에는 총 327명이 타고 있었으며 이중 함장을 포함 총 181명이 목숨을 잃었다.이렇게 USS 존스턴은 전사의 한 페이지를 깊이 장식했지만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그 잔해를 직접 볼 수는 없었다. 그 이유는 배가 6500m나 되는 심해 깊은 곳에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전쟁 영웅'을 두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은 오대양의 심해 중에서도 가장 깊은 지점만 골라 탐사하는 빅터 베스코보(54) 덕이다. 그는 미국 사모펀드 인사이트 에퀴티 홀딩스의 창립자이자 억만장자로 이미 에베레스트 산을 포함 세계 7개 대륙의 최고봉을 정복한 베테랑 탐험가다.여기에 만족하지 않은 그는 반대로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도 탐험을 시작했다. 이를 위해 그는 총 4800만 달러를 들여 무게 11.2t, 두께 9㎝의 유인 잠수정 ‘DSV 리미팅 팩터’를 제작했다. 이 잠수정을 타고 지금까지 그는 대서양의 푸에르토리코 해구(해저 8648m)부터 세계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1만934m)까지 탐사하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세웠다. 보도에 따르면 베스코보는 지난달 31일 특수잠수정을 직접 몰고 내려가 잠들어있는 USS 존스턴을 찾아 이틀동안 총 16시간을 조사하는데 성공했다. 베스코보는 "배가 너무 깊은 곳에 있어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면서 "당시 격렬했전 전투의 흔적이 남아있었으며 해양생물로 인한 약간의 오염도 보였다"고 밝혔다. 이어 "뱃머리 양쪽에서 선체번호 557이 선명히 보였으며 탐사 과정에서 유골이나 의복등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인천 야산에 개 사체 여러 구…수십마리 학대에 불법도축 의혹 [현장]

    인천 야산에 개 사체 여러 구…수십마리 학대에 불법도축 의혹 [현장]

    인천에서 수십 마리의 개를 학대하고 불법 도축했다는 의혹을 받는 80대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인천 서부경찰서는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80대 여성 A씨를 불구속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1일 밝혔다. A씨는 인천시 서구 백석동의 한 야산에서 개 30여 마리를 키우며 제대로 돌보지 않고 불법 도축까지 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동물보호단체 ‘동행세상’은 지난달 30일 현장을 찾아 상처를 입거나 숨져 있는 개들을 확인한 뒤 112 신고를 했다. 당시 현장에는 숨진 개 5~6구의 사체가 방치돼 있었으며, 곳곳에 병들거나 다친 개 수십 마리가 남아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단체가 제보자와 함께 촬영한 현장 영상을 보면 훼손된 사체와 유골이 곳곳에서 발견됐고, 도축 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쇠줄과 토치 등도 널려 있다.살아남은 개들 중에는 목줄에 살이 시커멓게 썩고 있거나, 절단된 다리를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낑낑대는 개들도 있었다. 또 먹이로 준 것으로 추정되는 음식물쓰레기를 모아놓은 더미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엄지영 동행세상 대표는 “암컷들은 새끼만 낳도록 줄에 묶여 있었다”고 설명했다. 문제의 시설 인근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있어 위생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단체 측은 지적했다.A씨는 경찰에서 “다친 개를 데려와 키웠고, 학대는 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관할 지자체인 인천시 서구는 살아남은 개들을 포획해 임시보호 조치하는 한편 A씨가 운영하는 시설에 대한 행정조치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경찰은 A씨가 키우던 개들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다른 학대 행위가 있었는지 추가로 수사할 예정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고산당 혜원 대종사 영결·다비식 엄수…27일 하동 쌍계사서

    고산당 혜원 대종사 영결·다비식 엄수…27일 하동 쌍계사서

    제29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고산당 혜원(慧元) 대종사의 영결·다비식이 지난 27일 경남 하동 쌍계사에서 종단장으로 거행됐다. 이날 영결식은 쌍계사 도원암 앞에서 명종에 이어 삼귀의, 영결법요, 헌향·헌다, 행장 소개, 영결사, 법어, 추도사, 조사, 추모가 등 순으로 진행됐다.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영결사에서 “고산당 혜원 대종사님께서 입멸을 보이시니 봄빛 가득한 지리산이 일순간 빛을 잃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영결식에 이어 쌍계사 국사암 앞 연화대에서는 시신을 불태워 유골을 거두는 다비식이 치러졌다. 만장을 앞세운 장례 행렬은 법구(法軀)를 연화대 화장장에 안치한 뒤 불을 붙였다. 희뿌연 연기를 내는가 싶더니 어느새 큰 불길로 이어졌고 고산당 혜원 대종사의 육신이 화염 속으로 사라졌다. 하동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개구리 소년 사건’ 발생 30주기, 부모들은 숨지거나 요양병원에…

    ‘개구리 소년 사건’ 발생 30주기, 부모들은 숨지거나 요양병원에…

    진상규명위원회 설치 등 요구26일 추모·안전 기원비 제막 ‘대구 개구리 소년 사건’이 올해로 발생 30주기를 맞았다. ‘전국 미아·실종가족 찾기 시민의 모임’(전미찾모)은 정부와 국회에 진상규명위원회 설치를 요구하기로 했다. 25일 대구를 찾은 전미찾모 나주봉 회장은 “개구리 소년 사건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정부와 국회에 진상규명위원회 설치를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나 회장은 “아이들이 무슨 잘못으로 왜 죽어야 했는지 알아야 부모들은 눈을 감을 수 있다”며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을 받을 수도 할 수도 없으니, 더 늦기 전에 양심선언이라도 해달라”고 부탁했다. 나 회장에 따르면 개구리 소년 부모들은 숨지거나 요양병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는 “철원군 아버지만 겨우 정상 활동을 하시는 상황”이라며 “숯검정이 된 가슴을 쥐어뜯으며 대부분 술과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 아이들이 발견된 자리에도 오지 못하는 현실이다. 개구리 소년 유족들의 심리 치료와 생계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1991년 3월 26일, 집을 나선 개구리 소년 5명…유골로 발견 개구리 소년 5명은 1991년 3월 26일 도롱뇽알을 줍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2002년 9월 26일 와룡산 세방골에서 유골로 발견됐다. 사건은 2006년 공소시효 만료로 사실상 영구미제가 됐다가 2019년 9월 민갑룡 전 경찰청장 지시로 재수사하게 됐다. 대구경찰청 미제사건 전담팀은 재수사 이후 지난 2월까지 총 50여 건의 관련 신고를 받았으나 사건을 해결할 만한 유의미한 단서는 확보하지 못했다. 정현욱 대구경찰청 강력계장은 “개구리 소년 사건은 아직도 재수사 중”이라며 “그간 접수한 신고에 대해 수사했으나 특별히 단서가 될만한 내용은 확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편 오는 26일 오전 11시 대구 와룡산 선원공원에서 ‘개구리 소년 추모 및 어린이 안전 기원비’가 제막된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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