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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동구청역 인근서 두개골 발견... “국과수 감정 의뢰”

    강동구청역 인근서 두개골 발견... “국과수 감정 의뢰”

    서울 지하철 8호선 강동구청역 인근에서 사람의 두개골로 보이는 뼈가 발견됐다. 13일 서울 강동경찰서는 이날 오전 11시 40분쯤 강동구청역 인근에서 사람의 두개골로 보이는 뼈 1점을 발견됐다고 밝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지하철역 환풍구와 화단 사이에서 백골 상태의 두개골을 회수했다. 이 외에 다른 신체 부위나 유류품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범죄 혐의점이 있는지 조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시일이 꽤 지난 유골로 보인다”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故이건희 자택 건축’ 원정수 교수 별세

    ‘故이건희 자택 건축’ 원정수 교수 별세

    해방 후 건축계를 이끈 중심 인물 중 한 명인 원정수 전 인하대 건축공학과 교수가 10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87세. 1957년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고인은 1959년 한국 최초 여성건축가 지순(1935∼2021)씨와 결혼했고, 부부가 함께 일양건축사사무소, 간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를 세워 현대 건축을 이끌었다. 고인은 한국은행 본점과 포항공대, 포스코센터, 태평로 삼성빌딩, 동숭아트센터, LG(구 금성) 중앙연구소 등을 설계했고, 최근에는 천주교 명동대성당 성지화 작업과 은평성모병원 설계에 관여했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자택과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 등도 원 교수의 작품이다. 고인은 일제시대 1세대 건축가와 현대 건축의 가교 역할을 했다. 유족은 딸 원순영(재미 사회학자)·원선(스웨덴 에릭슨 근무)·원혜원(바이올리니스트)·원혜성(그래픽디자이너)씨 등 4녀가 있다. 지난달 21일 부인 지순씨가 세상을 떠난 지 19일 만에 세상을 떠나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빈소는 본인이 설계한 은평성모병원의 장례식장 6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2일 오전 6시, 유골은 부인이 먼저 안장된 절두산 부활의 집에 모셔진다.(02)2030-4463
  • 변희수 ‘강제전역’ 부당 판결…법원 “변희수는 여성”

    변희수 ‘강제전역’ 부당 판결…법원 “변희수는 여성”

    성전환(성확정) 수술을 이유로 고 변희수 전 육군 하사에 대해 내려진 군의 강제전역 조치는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전역 처분 당시 변 전 하사의 성별은 여성이므로 군이 남성을 기준으로 ‘장애가 있다’고 본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전지법 행정2부(부장 오영표)는 7일 변 전 하사가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낸 전역 처분 취소 청구 사건에서 원고의 청구를 인용했다. 재판부는 “성전환 수술 직후 법원에서 성별정정 신청을 하고 이를 군에 보고한 만큼 군인사법상 심신장애 여부 판단 당시에는 당연히 여성을 기준으로 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변 전 하사는 2019년 휴가 중 외국에서 성확정 수술을 받은 뒤 같은 해 12월 청주지방법원에 성별표기 정정신청을 했다. 그러나 군은 변 전 하사에게 심신장애 3급 판정을 내리고 지난해 1월 전역을 결정했다. 청주지방법원은 지난해 2월 변 전 하사의 법적 성별을 여성으로 정정했다. 또한 재판부는 변 전 하사 유족들이 원고 자격을 승계한 데 대해 “군 지위(복무)는 상속 대상이 아니나 전역 처분이 취소되면 급여지급권을 회복할 수 있어 원고 권리 구제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변 전 하사는 지난해 8월 대전지법에 소장을 제출한 뒤 지난 3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번 판결은 성확정 수술을 이유로 강제전역 처분을 받는 비슷한 사건들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성전환 수술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동일한 사유로 위법한 처분이 반복될 위험이 있다”면서 “이 소송에서 위법성을 판단해 적절하고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군 복무 중 성전환수술을 받은 경우, 여성으로서 현역복무에 적합한지 여부 등 관련 규정을 따르지만, 궁극적으로는 국방이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나 성소수자의 인권 등을 고려해 국가 차원에서 입법적, 정책적으로 결정할 문제”라고 덧붙였다.‘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이날 대전지법 앞에서 재판부의 결정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변 전 하사의 고등학교 친구인 김선하씨는 “그동안 재판 과정에서 희수가 원한대로 될 수 있을까 걱정도 있었는데 좋은 이야기를 듣게 됐다”면서 “앞으로도 희수의 명예회복에 함께 해달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이번 법원의 판결은 법원이 우리 사회에서 인권 보호의 마지막 보루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육군은 항소할 게 아니라 위법한 전역 처분에 대해 반성하고 변 하사의 유골 앞에 사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재판부가 대법원 판례대로 법적 성별 정정 결정 이전에도 성전환 수술을 한 경우 여성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본 것”이라면서 “법원의 지적대로 트랜스젠더의 현실을 고려해 적절한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을 지켜 본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시대에 역행하는 군을 법원이 상식적 결정으로 바로잡고 비슷한 문제를 겪는 시민들의 권리를 구제한다는 의미가 있다”면서 “국회는 시민들을 차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 척추측만증 열 중 셋은 10대… 폐·심장기능 장애 동반 위험

    척추측만증 열 중 셋은 10대… 폐·심장기능 장애 동반 위험

    아이들의 척추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5일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척추측만증 전체 환자 8만 5904명 가운데 10대가 3만 2067명으로 37.3%를 차지했다. 남녀 비율을 보면 남성이 1만 1817명, 여성은 2만 250명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두 배가량 더 많다. 앞서 2016~2019년에도 10대는 4만 5442명(42.8%), 4만 547명(42.6%), 3만 6909명(41.5%), 3만 7377명(39.7%)으로 전 연령대에서 수위를 차지한 바 있다. 박예수 한양대구리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척추측만증은 8세부터 14세 이전의 성장이 빠른 시기에 많이 발생하며 남자보다 여자에게 질환의 발생 확률이 높은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척추측만증은 척추가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휘어지거나 회전이 일어난 척추의 기형적인 상태를 말한다. 1986년도 세계 척추측만증 연구학회는 척추가 한쪽으로 11도 이상 기울어진 것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이는 방사선 소견상 가장 많이 기울어진 위아래의 척추를 따라 그은 선이 이루는 각도가 11도 이상임을 의미한다. 보통 척추측만증은 자세 이상, 디스크 등의 질환으로 인해 발생하는 ‘기능성 측만증’과 특별하고 다양한 원인 때문에 발생하는 ‘구조적 측만증’으로 구분할 수 있다. 기능성 측만증은 자세 교정이나 원인 질환을 치료하면서 교정할 수가 있지만 구조적 측만증은 유전성, 다양한 호르몬 대사성 변화, 환경의 변화 등 발병 원인이 다양하고 통증이 없는 특발성 척추측만증이 80~85%를 차지해 발견 자체가 늦어지는 경향이 있다. 특발성 외에도 태아기 때 비정상적인 모양의 척추가 생겨 척추가 휘어지는 선천성 척추측만증, 소아마비나 뇌성마비 등의 신경 질환이나 근이영양증(근육이 위축되는 질환) 등의 근육 질환으로 인해 척추 양쪽의 균형이 맞지 않아 척추가 휘어지는 신경 근육성 측만증, 신경섬유종이라는 종양성 질환에 의한 신경섬유종증 측만증 등이 구조적 척추측만증에 해당한다. 생활 속에서 척추측만증을 발견하는 방법은 6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어깨가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쳐 있는지 ▲어깨 견갑골(날갯죽지뼈) 한쪽이 더 튀어나와 있는지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지 ▲허리 곡선이 비대칭인지 ▲골반이 평행하지 않고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지 ▲가슴이 비대칭을 보이고, 여성의 경우는 유방의 크기가 달라 보이는지 등이다. 이에 해당할 경우 척추측만증을 의심할 수 있다. 가장 유용하게 쓰이는 검사법은 전방굴곡검사가 있다. 두 발을 똑바로 모으고 무릎을 편 상태에서 허리를 구부리게 해 허리의 이상 유무를 관찰한다. 척추측만증이 있으면 몸통의 어느 한쪽이 높게 보인다. 다만 성장기의 사춘기 아동들은 자신의 몸을 보여 주는 것을 싫어하므로 자연스럽게 목욕탕에 같이 가는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 좋으며 가정에서 부모님들이 쉽게 해 볼 수 있는 방법이다. 이종서 삼성서울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어릴 때부터 측만증이 진행되면 흉곽의 발달에 이상이 생겨 폐 기능과 심장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신경섬유종으로 인한 척추측만증은 피부에 커피색 반점을 동반하며 척추뼈의 유골 근종 혹은 골모세포종이라는 양성 종양으로 인한 측만증이 있을 때는 통증이 수반되는데 특히 밤에 심하다”고 밝혔다. 딱히 척추측만증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취학기 아동에서 학교 검진 중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 이러한 경우 정밀 검진을 받아 보는 것이 악화를 미리 방지하는 길이다. 척추의 유연성을 키우는 운동을 병행하는 것도 구조적 척추측만증의 휘어짐을 예방할 수는 없고, 근육의 균형 발달을 유지해 줘 전체적인 척추 균형에 도움을 주는 정도에 불과하다. 척추측만증의 치료는 크게 정기적인 관찰, 보조기 착용, 수술 등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20도 이하의 척추 휘어짐에 대해서는 3~6개월마다 방사선 검사를 포함한 세밀한 관찰을 계속하는 것이 필요하며 각도가 20~40도 정도로 골격 성장이 2년 이상 남아 있는 환자에게는 보조기를 이용한 치료를 하게 된다. 보조기는 하루에 23시간 이상 착용해야 하며 목욕할 때나 체육시간 정도 외에는 계속 착용해야 한다. 의료기관에서는 성장이 끝날 때까지 착용하는 걸 권한다. 그러나 외관상 기형이 심하고 휘어짐 정도가 40~50도 이상이 되는 경우에는 척추 모양을 정상적으로 만들어 주는 수술을 해야 한다. 김호중 분당서울대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악력이 좋을수록 척추변형 교정수술의 결과가 좋다. 악력이 26㎏ 이상인 남성과 18㎏ 이상인 여성 그룹은 그 미만인 저악력 그룹보다 수술 후 척추 장애 정도가 더 낮고, 수술을 통한 통증 개선 효과도 우수한 것으로 연구 결과 나타났다”고 밝혔다. 수술의 목적은 구부러진 척추를 바로잡음으로써 몸의 균형을 유지하고 등과 허리의 통증이나 퇴행성 관절염, 심폐기능 장애 등을 예방하는 데 있다. 휘어진 척추를 금속기구를 이용해 바로잡고 고정한 후 재발하지 않도록 뼈를 이식한다. 척추측만증 형태에 따라 다르지만 4~5시간 정도 걸린다. 척추측만증을 수술하면 경우에 따라서 완전히 펼 수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완전히 펴지지는 않는다. 보통 약 60~70%의 교정률을 보인다. 따라서 약 60도의 휘어짐이라면 20도 정도의 휘어짐이 남는다. 김 교수는 “척추측만증 수술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정도 척추를 펴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균형 잡힌 척추로 만들 수 있느냐”라면서 “척추 휘어짐이 40도 미만인 측만증에서는 당장 증상이 악화되지 않아 수술을 하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지만 환자가 고령이 됐을 때는 퇴행성 변화로 2차적 협착증이 생길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고흥 ‘보도연맹’ 최대 민간인 학살지에 원혼비 건립

    고흥 ‘보도연맹’ 최대 민간인 학살지에 원혼비 건립

    6·25전쟁 발발 직후 고흥지역 보도연맹회원 43명을 총살한 고흥 최대의 민간인 학살지에 70년 만에 원혼비가 세워졌다.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와 여순항쟁 고흥유족회는 지난 2일 고흥군 점암면 천학리 소재 당고개에서 원혼비 건립 및 위령제 봉행식을 가졌다. 이날 이곳에서 학살된 희생자 유족 중 10여명이 참석했다. 서울, 청주, 화순 등 전국 각지에서도 유족들이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유족들은 원혼비를 직접 세우고, 전통 제례에 이어 김현명 원불교 녹동교당 교무의 종교의식으로 억울하게 학살된 원혼들을 달랬다. 윤호상 전국유족회 상임대표의장은 “원혼비 건립을 통해 지역의 관심과 여론을 환기해 위령탑이 건립됐으면 하는 바람이다”며 “아직도 전국 각지 학살지에 수많은 유골이 뒹굴고 있어 안타깝다”고 고개를 숙였다.화순에 달려온 유족 박모씨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혼자 남았는데 이렇게 원혼비를 세우고 위로해줘 정말 감사드린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10대때 학살 현장을 목격한 인근 마을 김모씨는 “당시 소식을 듣고 달려온 유족들이 사체를 찾아갔고, 남은 사체는 현장에 방치돼 있어 마을 청년들이 동원돼 현장에 가매장했다”고 기억했다. 운암산자락인 이 마을은 여순사건 진압 중에 상당수가 피해를 입었다. 이곳 당고개는 한국전쟁 직후 고흥지역 보도연맹회원 43명을 학살한 장소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7월 15일 북한군 제3사단이 공주를 우회해 금강을 건너 호남으로 진격하자, 7월 16일부터 고흥지역 보도연맹회원을 경찰서로 긴급 소집했다. 당초 소집된 인원은 100여명에 이르렀으나 3일 동안 장맛비가 내리면서 상당수가 땅문서를 바치는 등 각종 청탁으로 빠져나갔고, 김홍준 등 43명만 남았다. 7월 20일 새벽에 비가 그치자 유치장에 수감된 43명을 군용트럭에 실어 이동해 이곳에서 총살했다. 현재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8명뿐이다. 같은 날 과역지서에 수감된 6명도 점암면 신안리 도지정골에서 학살됐다. 북부지역인 대서면, 동강면, 남양면 보도연맹회원들은 벌교경찰서 관할지인 벌교읍 추동리 석거리재에서 총살당했다. 벌교, 조성, 낙안, 송광, 외서까지 포함해 50여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는 2019년에도 여수 애기섬과 순천 장대다리 옆 강변에 원혼비를 세우는 등 전국 학살지를 다니며 희생자의 원혼을 달래는 위령사업을 행정안전부 후원으로 지속하고 있다.
  • [핵잼 사이언스] 2000년 전 세 남자 미라 얼굴 복원…게놈 최초 분석

    [핵잼 사이언스] 2000년 전 세 남자 미라 얼굴 복원…게놈 최초 분석

    2000여 년 전 고대 이집트 지역에 살았던 세 남성의 얼굴이 복원됐다고 미국 라이브사이언스 등 과학전문매체가 27일 보도했다. 2017년 독일 막스 플랑크 인류역사과학 연구소 측은 이집트 카이로 남부의 고대 도시인 아부시르 엘 멜레크에서 발굴한 미라 3구에서 DNA 샘플을 채취했다. 이후 연구진은 미라를 DNA 시퀀싱 한 데이터를 활용해 얼굴의 특징을 분석했다. DNA 시퀀싱은 오랜 시간이 지나 변형되거나 박테리아 등에 노출돼 오염된 DNA를 감지하고 DNA 서열을 알아내는데 사용되는 기술이다. 그 결과 미라 3구는 2000년 전 살았던 남성들로, 어두운색의 눈동자와 머리카락을 가졌고, 밝은 갈색 피부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고대 이집트 미라의 게놈(한 생물이 가지는 모든 유전정보)를 성공적으로 재구성한 최초의 사례로 꼽힌다. 그리고 최근 미국 바이오회사인 파라본 나노랩스 연구진은 해당 정보를 이용해 미라 3구의 본래 얼굴을 3D 모델로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복원 결과 2000년 전 고대 이집트 남성들의 외모는 현대의 지중해 또는 중동인과 매우 유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파라본 나노랩스 측은 법의학에서 주로 사용되는 DNA 표현 과정에 따라 미라의 얼굴을 3D로 복원했다. 이 과정에서 DNA 정보가 활용됐으며, 머리카락의 곱슬 유무와 얼굴형, 코의 형태와 크기 등 세밀한 부분까지 재현해낼 수 있었다.파라본 나노랩스 관계자는 “2000년 전 고대 인류의 DNA에 대한 포괄적인 분석이 수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오랜 시간이 흘러 DNA 정보가 분해되기 쉬운데다 DNA가 박테리아의 DNA와 섞일 가능성도 높아 고대 미라의 DNA를 분석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단일염기다형성(SNP)을 분석해 생김새를 자세히 예측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인종이나 개인에 따라 DNA 염기에 차이가 있는데, 인종에 상관없이 유전자의 99.9%가 같지만 0.1%의 염기 차이로 키와 피부색 등이 달라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연구의 결과는 과학자들이 현재까지 남아있는 고대 인류의 미라나 유골을 통해 얼굴을 복원해내고, 이를 통해 당시 인류의 외형을 분석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또 용의자나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범죄 사건의 단서를 찾거나 유해를 식별하는 데에도 해당 기술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연구결과는 지난 15일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열린 ‘개인 식별 국제 심포지엄’(International Symposium on Human Identification)에서 공개됐다.
  • [나우뉴스] 사랑한다면 죽어서도? 5000년간 껴안은 채 발견된 유골

    [나우뉴스] 사랑한다면 죽어서도? 5000년간 껴안은 채 발견된 유골

    전문가들은 이 유골의 생전 관계가 연인 또는 부부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폭력이나 질병에 의해 사망한 것이 아닌, 비교적 건강했던 여성이 자신을 희생해 남편 또는 연인과 함께 매장됐을 가능성도 제기됐습니다. 중국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이탈리아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유골이 발견된 적 있습니다. 죽어서도 헤어질 수 없었던 걸까요? ‘로미오와 줄리엣’의 실사판과도 같은 안타까운 사랑의 결말일까요? 로미오와 줄리엣 만큼이나 애절한 사연이 있을 듯한 ‘영원한 사랑의 유골’ 이야기, [지구인 극장]에서 만나보세요! 구성·출연 송현서 / 촬영·편집 박소현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천주교 첫 순교자 백자사발지석 살펴보니…시험 합격 기록 등 나와

    천주교 첫 순교자 백자사발지석 살펴보니…시험 합격 기록 등 나와

    최근 전북 완주의 초남이성지에서 한국 천주교회 첫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1759~1791)와 권상연 야고보(1750~1791)의 유해가 확인된 가운데 이들 묘에서 함께 출토된 백자사발 지석(誌石)의 묵서명(墨書銘) 내용이 24일 공개됐다. 묵서명은 죽은 사람의 이름이나 직위 등 관련 내용을 먹으로 쓴 글씨다. 천주교 전주교구에 따르면 지난 3월 초남이성지 바우배기에서는 윤지충과 권상연, 윤지충의 동생 윤지헌 프란치스코(1764~1801) 유해가 발굴됐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1791년 신해박해 때 전주 남문밖(전동성당 터)에서 참수되며 한국 천주교회 첫 순교자로 기록됐다. 윤지헌은 10년 뒤인 1801년 신유박해 때 능지처참형을 받고 순교했다. 세 사람 모두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諡福)돼 복자로 불린다. 앞서 교구는 바우배기 일대를 성역화하는 과정에서 무연고분묘 10기를 개장 공고했다. 연고자가 나타난 1·2호기를 제외한 8기의 묘를 개장한 결과 각각 5호기와 3호기, 8호기에서 윤지충, 권상연, 윤지헌의 유해를 확인했다. 복자 윤지충·권상연의 경우 유해 진위를 확인한 단초는 이들 묘에서 발굴된 백자사발 지석이었다. 각각 묘광(구덩이) 중앙부 위쪽에서 수습된 백자사발 지석의 안쪽 바닥 등에는 먹으로 쓴 글씨가 또렷했다. 두 순교자의 묘에서 나온 지석에는 20자 안팎의 한자가 쓰여 있었는데, 이를 통해 망인의 매장 시점과 신분, 이름, 세례명, 생년, 본관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윤지충의 지석에는 당시 성균관에서 치르는 과거시험 소과(小科)인 생원시에 합격한 사람을 뜻하는 ‘成均生員’(성균생원), 윤지충을 높여 이르는 ‘尹公’(윤공)의 묘라는 의미의 ‘尹公之墓’(윤공지묘)가 적혀 있었다. 또 그가 성인이 되고 나서 가진 또다른 이름인 ‘禹庸’(우용)을 나타내는 ‘字禹庸’(자우용), 윤지충의 묘 왼쪽으로 권상연의 묘가 있다는 의미인 ‘權公墓在左’(권공묘재좌)도 남아있었다. 권상연의 지석에도 마찬가지로 망인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權公之墓’(권공지묘), 망인의 생전 이름이 상연이라는 ‘諱尙然’(휘상연), 성인 때 또 다른 이름이 景參(경삼)이라는 의미의 ‘字景參’(자경삼) 등이 적혀 있었다. 사발에 남은 묵서명은 기존에 전해오던 두 순교자 관련 사료와도 일치했다.여기에 더해 교구 측은 유해 감식, 순교자 친족들의 Y염색체 부계확인검사(Y-STR) 결과와 비교·분석 작업 등을 진행했고, 최종적으로 두 묘에서 나온 유해가 1791년 참수형으로 순교한 복자 윤지충·권상연이라는 사실을 각각 확인했다. 윤지헌의 묘에서는 다른 두 순교자와 달리 백자제기 접시가 수습됐는데, 묵서명은 확인되지 않았다. 대신 교구 측은 둘째 목뼈와 양쪽 위팔뼈, 왼쪽 넙다리뼈 등이 날카로운 도구로 손상된 유골 상태, 형인 윤지충과 부계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8호기의 유해가 1801년 능지처참된 복자 윤지헌으로 최종 파악했다. 이날 전주교구는 순교자들의 백자사발 지석 분석 내용 등을 포함해 세 순교자의 유해 발굴 기록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순교자 묘소의 역사로 시작해 유해발굴의 배경과 경과, 수습과정, 사실확인과 검증과정, 발굴 성과와 신앙적 의의 등을 담았다. 교구 치명자산성지의 김영수 헨리코 신부는 이날 보고서 발간을 겸한 세 순교자 유해 진정성 보고회에서 “보고서에 담긴 교회사적, 문화사적 성과의 기록이 앞으로 순교자들의 신앙 연구와 현양에 기여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 [지구인극장] 사랑한다면 죽어서도? 5000년간 껴안은 채 발견된 유골

    [지구인극장] 사랑한다면 죽어서도? 5000년간 껴안은 채 발견된 유골

    중국 산시성 일대에서 발견된 남녀 유골 두 구가 있습니다. 서로를 꼭 껴안고 있는 듯한 독특한 자세였는데요.  전문가들은 이 유골의 생전 관계가 연인 또는 부부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폭력이나 질병에 의해 사망한 것이 아닌, 비교적 건강했던 여성이 자신을 희생해 남편 또는 연인과 함께 매장됐을 가능성도 제기됐습니다.  중국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이탈리아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유골이 발견된 적 있습니다. 죽어서도 헤어질 수 없었던 걸까요? '로미오와 줄리엣'의 실사판과도 같은 안타까운 사랑의 결말일까요? 로미오와 줄리엣 만큼이나 애절한 사연이 있을 듯한 '영원한 사랑의 유골' 이야기, [지구인 극장]에서 만나보세요! 구성·출연 송현서 / 촬영·편집 박소현
  • 美 허리케인 홍수로 나타난 ‘식인 악어’ 잡혔다…배 속서 유골 나와

    美 허리케인 홍수로 나타난 ‘식인 악어’ 잡혔다…배 속서 유골 나와

    초대형 허리케인 아이다의 영향으로 홍수 피해를 입은 미국 루이지애나주(州)의 한 마을에서 70대 남성을 습격한 것으로 추정되는 악어가 3주 간의 수색 끝에 잡혔다고 현지 보안관 사무소 측이 14일 발표했다. CNN 등 현지매체 보도에 따르면, 티머시 새털리 시니어라는 이름의 71세 남성은 지난달 30일 주내 세인트 태머니 교구 슬라이델 마을에 있는 자택 앞 헛간에서 악어에게 습격당했다.희생자의 아내 샐리는 그 모습을 목격하고 즉시 경찰에 신고했으며 수사관들에게 문제의 악어가 침수 피해를 입은 헛간에 있던 남편을 습격해 팔을 물었다고 증언했다. 샐리는 남편 새털리를 구하려고 시도했지만, 힘에 부쳐 차라리 도움을 청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에 자리를 떠나 신고했다. 이에 경찰과 구조대가 신속하게 출동할 수 있었지만, 피해자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었다. 이에 대해 사건을 맡은 랜디 스미스 세인트 태머니 교구 보안관은 “우리는 희생자 가족에게 일종의 사건 종결을 고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과 연력을 사용할 것”이라고 약속했었다.이렇게 해서 지난 3주 동안 보안관 사무소 측과 수색 작업 관계자들은 희생자를 공격한 악어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날 희생자를 습격한 것으로 추정되는 악어 한 마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보안관 사무소 측에 따르면, 문제의 악어는 몸길이 약 3.6m, 몸무게 약 228㎏에 달하며 다른 곳으로 옮겨져 조사를 받고 있는데 배 속에서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나왔다. 이에 대해 스미스 보안관은 “유골이 희생자의 것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현지 검시소 측과 협조할 것”이라면서도 “이는 끔찍한 사건으로 희생자 가족에게는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한편 악어 습격 사고가 일어난 슬라이델 마을에서는 그날 적어도 15명의 마을 주민이 홍수 피해로 고립돼 옥상에 있다가 구조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 “‘예술 거장’ 미켈란젤로의 키는 160㎝였다”…유품 분석 결과

    “‘예술 거장’ 미켈란젤로의 키는 160㎝였다”…유품 분석 결과

    이탈리아의 조각가이자 화가, 그리고 건축가인 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 전성기 동안 예술의 거장이지만, 실제 키는 작은 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법인류학·고병리학·생물고고학(FAPAB) 연구센터 연구진은 미켈란젤로의 유품 중에 발견돼 그가 신던 것으로 전해져온 신발들을 조사했다.이를 통해 이들 연구자는 ‘다비드상’이라는 조각상과 ‘천지창조’라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등의 걸작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키가 160㎝였을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냈다. 이는 개인 물품의 측정치를 바탕으로 이 위대한 예술가의 신체적 특징을 추정하고자 한 최초의 연구다. 이번 연구는 FAPAB 연구센터의 고병리학자 프란체스코 갈라시 박사와 법인류학자 엘레나 바로토 박사가 수행했다.두 박사는 미켈란젤로의 사후 피렌체 집에 남겨진 가죽 신발 한 켤레와 가죽 슬리퍼 한 짝을 연구했다. 이는 이 위대한 예술가의 유일한 혈육인 조카 레오나르도가 물려받아 후세를 위해 보존해온 유품 중 일부분이다. 나머지 슬리퍼 한 짝은 1873년 1월 14일 까사브나로티 박물관에서 도난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랫동안 미켈란젤로가 신었던 것으로 여겨지는 이 신발 세 짝은 모두 한 사람이 신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물론 예전에 사라진 슬리퍼 역시 같은 크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 연구자는 이 신발들이 단지 미켈란젤로 가문에 속한 것이었을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는 미켈란젤로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다른 가족 구성원이나 심지어 후손이 신던 신발일 수도 있다는 것.이 연구에서 연구진은 발 치수 즉 길이와 너비로부터 키를 추정하기 위해 이미 기존에 확립된 공식을 사용했다. 평균적으로 이들 신발의 길이는 220~230㎜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측정 결과에 근거해 연구진은 미켈란조의 키가 160.3㎝였다고 결론지을 수 있었다. 이는 오늘날 유럽인치고는 다소 작은 것으로 여겨지지만,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초에 살았던 당시 사람들 중에서는 평균적인 것이었다. 이런 연구는 미켈란젤로가 생전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좀더 극단적인 방법에 의존하지 않고도 그려내는 데 도움을 준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미켈란젤로의 유골에 관한 완전한 법인류학적 및 고병리학적 분석을 포함한 발굴을 통해 마침내 그의 신체적 특징과 병리학적 특징에 관한 몇몇 가설의 정확성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현재 미켈란젤로의 지문 연구에도 몰두하고 있는데, 이런 지문이 위대한 예술가의 신체적 특징에 더 많은 빛을 밝혀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인간 다양성 및 진화 분야 국제 학술지 ‘인류학’(ANTHROPOLOGIE) 최신호에 실렸다.
  • “사람 제물 써야 성 안 무너져” 경주 한복판에 묻힌 신라여성

    “사람 제물 써야 성 안 무너져” 경주 한복판에 묻힌 신라여성

    키 135㎝ 왜소한 성인 여성 인골 확인신분 낮은 계층·사후에 묻혔을 가능성2017년 인골 2구 발굴 이어 두 번째 월성 축조 4세기 중엽~5세기로 밝혀져삼국사기 기록보다 250년가량 늦어신라 왕성인 경북 경주 월성(사적 제16호)에서 성벽을 쌓기 전 제물 삼아 묻은 인골 1구가 추가로 확인됐다. 2017년 서쪽 성벽에서 인신공희(人身供犧) 흔적으로 50대 남녀 인골 2구가 발굴된 데 이어 두 번째 사례다. 아울러 유물의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월성 축조 연대가 4세기 중엽~5세기 초라는 사실도 최초로 밝혀졌다. 파사왕 22년(101년)에 월성이 지어졌다는 ‘삼국사기’ 기록보다 250년 늦은 시기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월성 서성벽에 대한 정밀 조사 결과 ‘인간 제물’로 사용된 성인 여성 인골 1구와 말, 소 등 대형 포유류로 추정되는 동물뼈를 추가로 발굴했다고 7일 공개했다. 앞서 발견된 인골 2구는 건물을 짓거나 제방을 쌓을 때 주춧돌 아래에 사람을 매장하면 무너지지 않고 오래 유지된다는 고대 설화인 ‘인주(人柱)설화’를 입증하는 첫 사례로 주목받았다. 인골 2구의 위치에서 북동쪽으로 약 50㎝ 떨어진 여성 인골은 키 135㎝ 안팎의 왜소한 체구로 굽은옥 모양 유리구슬을 엮은 목걸이와 팔찌를 착용하고 있었다. 뼈의 상태로 보아 성장이 끝난 성인 여성으로 확인되나 연령대를 특정하긴 어렵다고 연구소 측은 설명했다. 외상 흔적이 없어 사망 후 묻혔을 가능성이 높다. 유골 머리맡에서 액체류를 담는 토기가 발견됐고, 동물뼈는 늑골 위주로 선별돼 주변에 놓여 있었다. 인신공희 인골 3구는 모두 영양 상태가 좋지 못하고, 고급 유물이 없는 점으로 미뤄 신분이 낮은 계층으로 추정된다. 인신공희 인골이 잇따라 발굴되면서 1985년과 1990년 이 지점에서 북서쪽으로 약 10m 거리에서 출토된 인골 20여구에도 관심이 쏠린다. 장기명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인골 3구는 성벽의 중심 골조인 토루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어 성벽을 쌓아올리기 전 계획적으로 인신 제사가 이뤄졌음을 확실히 알 수 있지만 30여년 전 인골의 인신공희 여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면서 “다만 어떤 맥락에서든 이 유골들도 성벽 축조 과정과 연관 있을 가능성은 높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이와 함께 서성벽에서 출토된 유물의 전수 조사와 가속질량분석기 연대 분석을 통해 그동안 불명확했던 월성의 축조 시기와 건축 재료, 축성 기술도 규명했다. 축조 시기는 4세기 중엽부터 쌓기 시작해 50년가량의 공사 기간을 거쳐 5세기 초에 완공된 것으로 확인됐다.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문헌에는 2세기 초로 기록돼 있고 혹자는 5세기 후반으로 보는 등 월성의 축조 연대가 그동안 논란이 돼 왔다”면서 “이번 발굴을 통해 월성 축조 시기와 변화를 확인할 수 있어 초기 신라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신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토성으로 알려진 월성은 기초부 공사에선 일정 간격으로 나무 말목을 박은 지정 공법과 목재, 식물류를 층층이 깐 부엽 공법을 사용했다. 성벽 몸체를 만드는 체성부 공사 때는 볏짚, 점토 덩어리, 건물 벽체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너비 40m, 높이 10m 이상의 거대하고 높은 성벽을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심광주 토지주택박물관장은 “삼국 중에서 신라가 가장 견고하고 높은 성을 쌓았다. 삼국통일을 이룬 근원적인 힘을 성곽에서 찾을 수 있다”면서 “신라 토목 기술의 실체를 알려주는 아주 중요한 유적”이라고 말했다.
  • 경주 월성서 ‘사람 제물’ 인골 또 나왔다…4세기 중반~5세기 초 축조 연대 확인

    경주 월성서 ‘사람 제물’ 인골 또 나왔다…4세기 중반~5세기 초 축조 연대 확인

    신라 왕성인 경북 경주 월성(사적 제16호)에서 성벽을 쌓기 전 제물 삼아 묻은 인골 1구가 추가로 확인됐다. 2017년 서쪽 성벽에서 인신공희(人身供犧) 흔적으로 50대 남녀 인골 2구가 발굴된 데 이어 두 번째 사례다. 아울러 유물의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월성 축조 연대가 4세기 중엽~5세기 초라는 사실도 최초로 밝혀졌다. 파사왕 22년(101년)에 월성이 지어졌다는 ‘삼국사기’ 기록보다 250년 늦은 시기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월성 서성벽에 대한 정밀 조사 결과 ‘인간 제물’로 사용된 성인 여성 인골 1구와 말, 소 등 대형 포유류로 추정되는 동물뼈를 추가로 발굴했다고 7일 공개했다. 앞서 발견된 인골 2구는 건물을 짓거나 제방을 쌓을 때 주춧돌 아래에 사람을 매장하면 무너지지 않고 오래 유지된다는 고대 설화인 ‘인주(人柱)설화’를 입증하는 첫 사례로 주목받았다.인골 2구의 위치에서 북동쪽으로 약 50㎝ 떨어진 여성 인골은 키 135㎝ 안팎의 왜소한 체구로 굽은옥 모양 유리구슬을 엮은 목걸이와 팔찌를 착용하고 있었다. 뼈의 상태로 보아 성장이 끝난 성인 여성으로 확인되나 연령대를 특정하긴 어렵다고 연구소 측은 설명했다. 외상 흔적이 없어 사망 후 묻혔을 가능성이 높다. 유골 머리맡에서 액체류를 담는 토기가 발견됐고, 동물뼈는 늑골 위주로 선별돼 주변에 놓여 있었다. 인신공희 인골 3구는 모두 영양 상태가 좋지 못하고, 고급 유물이 없는 점으로 미뤄 신분이 낮은 계층으로 추정된다. 인신공희 인골이 잇따라 발굴되면서 1985년과 1990년 이 지점에서 북서쪽으로 약 10m 거리에서 출토된 인골 20여구에도 관심이 쏠린다. 장기명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인골 3구는 성벽의 중심 골조인 토루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어 성벽을 쌓아올리기 전 계획적으로 인신 제사가 이뤄졌음을 확실히 알 수 있지만 30여 년전 인골의 인신공희 여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면서 “다만 어떤 맥락에서든 이 유골들도 성벽 축조 과정과 연관 있을 가능성은 높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이와 함께 서성벽에서 출토된 유물의 전수 조사와 가속질량분석기 연대 분석을 통해 그동안 불명확했던 월성의 축조 시기와 건축 재료, 축성 기술도 규명했다. 축조 시기는 4세기 중엽부터 쌓기 시작해 50년 가량 공사 기간을 거쳐 5세기 초에 완공된 것으로 확인됐다.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문헌에는 2세기 초로 기록되어 있고, 혹자는 5세기 후반으로 보는 등 월성의 축조 연대가 그동안 논란이 되어왔다”면서 “이번 발굴을 통해 월성 축조 시기와 변화를 확인할 수 있어 초기 신라사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신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토성으로 알려진 월성은 기초부 공사에선 일정 간격으로 나무 말목을 박은 지정 공법과 목재, 식물류를 층층이 깐 부엽 공법을 사용했다. 성벽 몸체를 만드는 체성부 공사 때는 볏짚, 점토 덩어리, 건물 벽체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너비 40m, 높이 10m 이상의 거대하고 높은 성벽을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심광주 토지주택박물관장은 “삼국 중에서 신라가 가장 견고하고 높은 성을 쌓았다. 삼국통일을 이룬 근원적인 힘을 성곽에서 찾을 수 있다”면서 “신라 토목 기술의 실체를 알려주는 아주 중요한 유적”이라고 말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7일 오후 4시 월성 서성벽 발굴 조사 성과 현장 설명회를 유튜브로 공개한다. 8일 열리는 전문가 초청 학술 토론회도 유튜브에서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다.
  • “우리 사랑 영원히” 포옹한 채 매장된 1500년 전 중국 연인

    “우리 사랑 영원히” 포옹한 채 매장된 1500년 전 중국 연인

    중국 북부에서 15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 두 구가 발견됐다. 해당 유골은 마치 사람이 서로 포옹하는 듯한 포즈로 발견돼 더욱 학계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난해 6월 중국 산시성 일대의 유물을 발굴하던 인부들이 발견한 유골 두 구는 각각 남성과 여성으로 확인됐다. 남성은 사망 당시 나이 29~35세에 키 161.5㎝, 여성은 35~40세에 키 157㎝로 추정됐다. 남성의 유골에서는 팔 골절과 오른손 약지 탈락 등 다수의 외상적 징후가 발견됐다. 여성의 유골은 치아 부분에서 외상을 입은 흔적이 발견됐고, 약지에 반지를 착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도 발견됐다.남성과 여성은 서로 마주보고 모로 누운 상태였으며, 남성의 오른팔은 여성의 상체를 거의 감싸는 동시에 여성은 남성을 바라보는 상태에서 안겨있는 듯한 자세로 확인됐다. 여성의 머리가 약간 아래를 향하고 있는데, 이는 여성이 남성의 어깨에 기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해당 유골을 분석한 텍사스A&M대학 연구진은 포옹하고 있는 듯한 두 유골의 관계가 연인 또는 부부였을 가능성을 염두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남녀, 특히 부부관계의 남녀가 같은 곳에 매장되는 사례는 흔하지만, 서로를 포옹한 채 죽어서도 과감하고 대담하게 감정을 드러낸 당시 사람들의 관념을 표현한 사례는 많지 않았다. 연구진은 “중국 문화에서 사랑에 대한 자유로운 표현 및 적극적인 감정을 추구하는 현상은 오래 전부터 두드러졌다”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사망한 뒤 함께 매장되는 관행은 실크로드를 통한 서부지역과 그 일대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어 “이번 발견은 장례 문화에서 사랑에 대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한 예로 꼽힌다. 중국 북부에서 사랑, 삶, 죽음, 내세에 대한 견해를 엿볼 수 있는 드문 사례”라고 덧붙였다.전문가들은 두 사람이 폭력이나 질병 또는 중독 등에 의해 동시에 사망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남편이 먼저 사망한 뒤 여성이 함께 묻히길 원했거나 그 반대의 가능성이 있지만, 유골의 상태로 봤을 때 비교적 건강했던 여성이 자신을 희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유골이 발견된 지역 인근에서는 약 600개의 묘지가 발견됐지만, 약지에 반지를 끼고 있는 여성 유골이나 이들처럼 밀접하게 매장된 유골은 없었다. 이번에 발견된 유골은 독특한 자세로 매장돼 있는 만큼, 두 유골을 한꺼번에 발굴한 뒤 박물관으로 옮길 예정이다. 자세한 연구결과는 국제 골고고학 학회지(International Journal of Osteoarchaeology) 최신호에 실렸다.
  • 중국 1500년전 유골, 반지끼고 완벽하게 껴안은 자세로 발견돼

    중국 1500년전 유골, 반지끼고 완벽하게 껴안은 자세로 발견돼

    중국에서 1500년전 유골이 손가락에 반지를 낀채 서로를 껴안고 있는 모습으로 발견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21일 지난해 중국 북부지역 건설 프로젝트 과정에서 600여개의 무덤을 발굴하는 도중 유골이 출토됐다고 전했다. 올해 국제 고생물학 학회지에 실린 ‘영원한 사랑을 서로 껴안은 자세와 반지로 잠그다: 북위 시대 선비족 부부의 합장’ 논문에서 고생물학자들은 산시성 다통시에서 출토된 유골의 의미를 설명했다. 과학자들은 이 유골이 북위 시대(386~534년)에 살았다고 추정했다. 북위는 현재 중국의 북부와 중부 지방을 다스렸다. 유골의 자세는 두 사람의 깊은 유대감을 표현하며, 특히 여성은 자신의 코 부분을 남자의 어깨에 가까이 들이대고 있다. 팔은 서로를 감싸거나 허리에 두르고 있다. 논문 저자들은 “유골이 나타내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남편과 아내가 함께 묻혔는데 후세에서의 영원한 사랑을 위해 서로 껴안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비슷한 자세의 유골이 세계 곳곳에서 발견됐지만, 두 유골이 정확하게 껴안고 있는 자세로 중국에서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과학자들은 “타지마할처럼 무덤으로 사랑을 구체화한 것은 매우 드물며, 특히 유골의 형태로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선비족 부부 유골에 대한 논문의 공동 저자로 참여한 중국 샤먼대 인류학 연구소의 장쿤 부교수는 “북위 시대에 불교는 매우 인기있었고, 사람들의 후세에 대한 믿음이 깊었다”며 유골의 자세에 불교적 영향이 있다고 추측했다. 이 논문은 남편이 먼저 사망한 뒤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남편과 함께 묻혔다고 가정했다. 남성 유골에는 외상 흔적이 있지만, 여성 유골은 손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진들은 부부가 질병이나 전쟁 등으로 동시에 사망한 뒤 같이 묻혔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다. 장 교수는 “무덤의 크기, 형태, 구조 등은 이들이 평민이란 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특히 여성 유골은 왼쪽 네번째 손가락에 금속 반지를 여전히 끼고 있었다. 반지는 고고학에서 자주 출토되는 유물이지만, 과학자들은 지금처럼 반지를 사랑이나 결혼의 상징으로 여기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여성 유골이 끼고 있는 반지는 은반지로 섬세하게 가공되지 않은 것이라 그다지 값나가는 물품은 아니라고 논문의 또 다른 저자인 미국 텍사스 A&M대 생물의학과 첸왕 교수는 설명했다. 장 교수는 “이번 발굴은 무덤에서 인간의 사랑을 표현한 매우 희귀한 것으로 북위 시대 중국의 후세, 사랑, 삶, 죽음의 의미에 대해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이탈리아 폼페이에서 2000년 된 석관·사람 유골 발굴

    이탈리아 폼페이에서 2000년 된 석관·사람 유골 발굴

    1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폼페이에서 2000년된 석관(위)과 사람 유골(아래)이 발견됐다. 석관은 고대 폼페이 도심에서 1㎞ 떨어진 포르타 사르노 공동묘지 인근에서 발굴됐는데, 내부에 사람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유골이 드러났다. 서기 79년 폼페이가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잿더미가 되기 전 사망한 이로 짐작된다. 폼페이 EPA 연합뉴스
  • [책꽂이]

    [책꽂이]

    기계, 권력, 사회(박승일 지음, 사월의책 펴냄) 미디어 문화연구 전문가의 시각으로 자유롭게 정보를 제공하는 인터넷이 어떻게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는 ‘권력’이 됐는지를 해부한다. 빅데이터, 알고리즘, 사물인터넷 같은 새로운 권력의 통치 대상은 개별 인간이 아닌 환경과 정신이라고 결론 내린다. 440쪽. 2만 2000원.한국의 여신들(김화경 지음, 성균관대학교출판부 펴냄) 구비 문학 연구에 매진해 온 저자가 민족의 정체성을 지닌 한국의 여신들을 문화사회학적으로 고찰했다. 천지를 분리시킨 ‘설문대할망’, 부모를 살리려고 저승에서 약수를 구해 오는 ‘바리공주’ 등 신화 속 인물을 통해 모권제 중심에서 가부장제 사회로 변화하게 된 과정을 분석한다. 484쪽. 3만원.70년 만의 귀향(도노히라 요시히코 지음, 지상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일본인 시민운동가인 저자가 일제강점기 홋카이도로 끌려가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 사망한 한국인 유골이 본국으로 돌아가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했다. 저자는 전후 일본 사회가 이들을 간과해 왔다는 점을 비판하고, 과거사 문제를 직시할 것을 강조한다. 344쪽. 1만 8000원.클래식의 발견(존 마우체리 지음, 장호연 옮김, 에포크 펴냄) 세계적 지휘자 존 마우체리가 고전 음악을 제대로 듣고 감상하는 법을 알려준다. 고전 음악은 인간사의 보편적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으며 해석은 청취자의 몫이다. 저자는 베토벤의 ‘영웅’이나 ‘환희의 송가’ 등에 담긴 의미와 해석 방식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316쪽. 1만 7000원.미국 외교의 대전략(스티븐 M 왈트 지음, 김성훈 옮김, 김앤김북스 펴냄) 현실주의 국제정치 이론가 스티븐 M 왈트 하버드대 교수가 탈냉전 이후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 정책을 비판적으로 고찰했다. 저자는 클린턴, 부시, 오바마 행정부를 거치는 동안 미국이 분쟁 지역에 개입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오히려 중국이 미국에 도전할 기회를 줬다고 주장한다. 432쪽. 1만 6000원.엄마에 대하여(한정현 외 5인 지음, 다산책방 펴냄) 한정현, 조우리, 김이설, 최정나, 한유주, 차현지 등 여성 작가 6명이 엄마를 주제로 펴낸 테마 소설집. 먹고사느라 바빠서 추억 하나 제대로 못 만든 엄마, 가족 일이라면 궂은일도 불사하지만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 등이 펼쳐진다. 엄마와 딸의 사랑과 오해의 간극을 섬세하게 어루만진다. 232쪽. 1만 4000원.
  • [장동석의 뉴스 품은 책] 고작 모기 때문에 멸망한 문명이 있다?

    [장동석의 뉴스 품은 책] 고작 모기 때문에 멸망한 문명이 있다?

    환경 파괴에 이은 기후변화, 멈출 기세가 없는 전염병까지. 인류는 지금 역사상 최대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 전 영국의 한 연구팀은 각종 원인으로 불안한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뉴질랜드를 꼽았다. 아이슬란드, 호주 태즈메이니아 등 온대 기후 섬나라이면서 인구 밀도가 낮은 곳이 뒤를 이었다. 전력과 식량 생산 능력, 물밀듯 밀려온 난민 유입 저지 등이 중요한 요인으로 꼽혔다. 과거에도 기후적 요인, 전염병, 전쟁 등 오늘과 다르지 않은 이유로 문명들이 사라졌다. 독일의 언어학자이자 문화학자인 하랄트 하르만은 ‘문명은 왜 사라지는가’에서 인류 역사에서 사라진 25개 문명을 돌아본다. 20세기 중반 터키 아나톨리아에서 발굴된 차탈회위크는 특이하게도 모기 때문에 멸망했다. 이곳은 기원전 7500~5600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도시다. 1만명이 넘게 살았고, 무려 18층의 취락지를 건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온이 상승하면서 말라리아모기가 창궐했다. 고고학자들은 무덤 속 유골에서 말라리아에 따른 일련의 기형적 뼈를 다수 확인했다. 비교적 최근 소멸한 남태평양의 이스터섬은 기후 변화가 원인이었다. 700~1100년 이주자들이 들어가 발전을 거듭하면서 자신들만의 상징인 거대한 석상 ‘모아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섬 전체에 흩어져 있는 석상은 대략 880여개로 높이 4m에 지름 1.5m, 무게 50t에 달한다. 바다를 등지고 마을을 바라보는 석상은 ‘죽은 조상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계에 영원히 함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큰 바위를 산기슭의 채석장에서 평지로 운반하는데, 굴리든 썰매를 이용하든 많은 나무를 벌목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1650년 무렵 시작된 소빙하기에 식용 식물 재배가 줄고 생필품 공급이 원활하지 않자 내분이 일어났고, 문명도 쇠퇴했다. 소빙하기의 도래가 지구적 활동이긴 하지만, 심각한 벌목 또한 이스터섬의 멸망을 앞당긴 게 분명하다. 이 외에도 로마제국에 맞선 팔리마 제국, 스키타이 기마 유목민, 흑해의 여전사 공동체 아마조네스 등 다양한 문명의 흥망성쇠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멸망의 원인을 하나씩 떠올려 보면, 오늘 우리가 겪는 바로 그 이유들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반대로 책은 우리에게 조곤조곤 알려준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경계해야 할지. 출판도시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 [여기는 남미] 땅만 파면 유적이…콜롬비아서 고대문명 무덤 발견

    [여기는 남미] 땅만 파면 유적이…콜롬비아서 고대문명 무덤 발견

    남미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서 또 고대문명 옛 원주민 무덤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콜롬비아 역사고고학연구소(ICANH)는 우스메 구역 도로확장 공사 현장에서 무이스카 문명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 26기를 발견했다. 무이스카는 스페인이 중남미를 점령하기 전 지금의 콜롬비아에 거주했던 종족으로 한때 잉카나 마야에 견줄 만한 국가를 형성했었다. 무덤이 발굴된 곳은 버스전용도로 확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현지 언론은 "지난 2월 기둥 흔적과 세라믹 유물, 돌로 만든 유물이 발견된 게 그 시작이었다"면서 "연구소가 발견 사실을 비밀에 붙이고 추가발굴을 진행해 왔다"고 보도했다. 연구소가 무덤 발굴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건 한참 뒤인 지난 30일(현지시간)이다. 스페인의 중남미 점령이 막 시작됐을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은 거의 완벽한 상태로 보존돼 있었다. 발굴된 유골 중 셋은 목걸이를 하고 있었고, 이들의 무덤에선 부장품 그릇류가 세트로 발굴됐다. 도시개발연구소의 부소장 호세 펠릭스 고메스는 "스페인이 중남미에 도착할 즈음에 형성된 무덤들로 보인다"면서 "유골과 유물은 모두 역사고고학연구소로 옮겨져 정밀분석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보고타에서 고대문명의 무덤이 무더기로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8년 대규모 보급형 주택을 건설하는 현장에서 고대 무이스카 문명이 남긴 무덤 2500기가 한꺼번에 발굴된 바 있다. 당시 발견된 유골은 성인과 어린이를 포함해 135구, 발굴된 유물은 세라믹 30만 점에 이른다. 고고학계는 "지금의 우스메 구역이 한때 무이스카 문명의 최대 거주지였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분석했다. 대규모 유적이 발견되자 콜롬비아는 2014년 우스메를 '고고학 보존구역'으로 지정했다. 이어 지난해 12월에는 우스메에 사상 첫 고고학공원을 개설했다. 콜롬비아 고고학역사연구소는 "고대 무덤은 수백 년간 이어진 장례문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면서 "고대문명이 생명에 대해 갖고 있던 개념, 땅과 생명의 관계에 대한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넘친다"고 밝혔다.
  • 교차 접종 후 숨진 경찰…‘개구리 소년’ 외삼촌이었다 

    교차 접종 후 숨진 경찰…‘개구리 소년’ 외삼촌이었다 

    코로나19 백신 교차 접종 후 사흘 만에 숨진 경찰관 A씨가 과거 ‘개구리 소년’ 사건 피해자의 외삼촌인 것으로 밝혀졌다. 24년차 경찰관이었던 그가 경찰이 되기로 결심한 계기도 조카의 실종 사건이었던 터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경북 구미경찰서 소속 A(52) 경위는 지난 20일 오전 자택 거실에 쓰러졌다가 가족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A 경위는 지난 4월 28일 아스트라제네카를 1차 접종한 뒤 이달 17일 화이자 백신으로 2차 접종을 마쳤다. 당시 그는 두통과 오한 등 이상 반응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과 화이자 백신을 교차 접종한 뒤 사망한 사례는 A 경위가 처음이다. A 경위의 부인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코로나 백신 아스트라제네카와 화이자 백신을 교차 접종한 후 처음 사망한 경찰관의 억울한 죽음의 사인을 밝혀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을 올렸다. 그는 청원을 통해 “남편은 AZ 수급 부족과 경찰관으로서 빠른 업무 복귀를 위해 선택의 여지 없이 화이자 백신으로 교차 접종할 수밖에 없었다”며 “평소 기저질환 없이 누구보다 건강했기에 남편의 죽음이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남편 사망이 단순한 개인 불운으로 치부되지 않도록 백신 부작용에 따른 인과관계가 밝혀지길 바란다”라며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역학조사 결과와 부검 소견을 바탕으로 피해조사반에서 향후 심의를 거쳐 최종적인 평가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30주기 맞은 ‘개구리 소년’ 사건 1991년 3월 26일 개구리를 잡으러 집을 나섰다가 실종된 대구 달서구 초등학생 5명은 2002년 9월 26일 대구 와룡산 세방골에서 유골로 발견됐다. 범인을 아직 잡지 못했고 지금도 대구경찰청이 수사를 하고 있다. 숨진 A씨는 고(故) 우철원군보다 9살 많은 막내 외삼촌이었다. A씨는 실종된 조카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경찰이 됐고, 억울하게 어린 나이에 죽은 조카를 보고 범인을 꼭 잡고 싶었다고 주변인들에게 말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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