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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호사 1백15명/대일법률회 구성/구조사업 전개

    지익표변호사(67·사할린동포법률구조회장)등 전국 변호사 1백15명은 15일 「대일민간법률구조회」를 만들어 일제시대에 군인·군속·정신대·노무자등으로 끌려가 피해를 입은 동포들에 대해 법률구조사업을 벌여 나가기로 했다. 이들은 지난65년 체결된 한일기본협정에도 불구하고 법적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아 피해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동포들의 권익을 되찾아주기위해 이 단체를 결성한다고 밝혔다. 오는 20일 발족하는 이 구조회는 산하에 ▲정신대배상청구반 ▲군인·군속배상청구반 ▲유골송환에 관한 청구반등을 두어 소송활동과 상담활동을 벌여나갈 방침이다.
  • 묘지도 파헤쳐 농토확장(북녘사회상)

    ○…북한은 최근 농토확장책의 하나로 묘지까지 개간사업의 대상으로 포함시켜 파헤치고 있다. 이 묘지를 대상으로 한 개간사업은 김정일의 지시를 받은 임업부와 농업위원회에서 맡아 시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인이 있는 묘지는 공동묘지로 이장됐으나 월남자 등 연고자가 없는 묘지는 모두 파헤쳐 유골은 화장시키고 비석·망주·상석 등은 「봉건잔재」로 몰아붙여 압수,교각 받침대나 집의 주춧돌로 사용토록 하고 있다.
  • 제주 다랑쉬굴 유골/신원일부 밝혀져

    【제주=김영주기자】 제주도 북제주군 구좌읍 속칭 「다랑쉬굴」에서 발견된 11구의 유해의 신원 일부가 한 증언자에 의해 4일 밝혀졌다. 지난 48년 11월쯤 산사람들에게 납치돼 다랑쉬굴에서 한달정도 생활했었다는 채모씨(67·구좌읍 종달리)에 따르면 굴속의 유골은 구좌읍 종달리 출신 고순경(당시25세) 순환(27)형제,고두만(21),박봉관(27),함명입(21),고태원(25),구좌읍 상도리 출신의 오달용(26)등 남자 7명과 구좌읍 하도리 출신의 신원미상 25세 전후의 여자 3명,7∼8세가량의 남자어린이등 모두 11명이라고 밝혔다.
  • 「4·3사건」관련 추정/유골 11구 발견

    【제주=김영주기자】 제주 4·3사건 44주기를 하루 앞둔 2일 북제주군 구좌읍 세화리 월랑봉 속칭 「다랑쉬굴」에서 4·3사건의 희생자로 보이는 유골11구와 유물들이 대량 발굴됐다.
  • 윤봉길의사 위령비 일에 건립/순국 60년만에

    ◎가나자와시에 4월21일 제막/국단 주관,윤의사 처형장소에 1932년 중국 상해에서 있었던 「일왕 생일날」축하행사장에서 폭탄을 던져 시라가와 (백천의칙)당시 일본군 상해 파견 사령관을 암살시킨 후 총살형을 받아 순직한 윤봉길의사의 「순국 위령비」가 윤의사가 처형당했던 일본 이시가와(석천)현 가나자와(김택)시에 순국 60년 만에 건립되게 됐다. 재일 대한거류민단은 4일 오는 4월29일의 윤의사 의거 60주년을 앞두고 현재 가나자와 시에 건립중인 「윤의사 순국 위령비」를 4월 21일에 제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봉길 의사는 지난 1932년 4월 29일 왜장 시라가와를 암살한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돼 군법회의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 후 같은 해 12월,당시 상해에 출병하고 있던 일본군 9사단 소재지인 가나자와 시에서 24세의 아까운 나이로 순국했다. 일본군은 『윤의사를 총살한 후 화장을 해 정중하게 안장했다』고 상부에 보고를 했었으나 실상은 가나자와시 노다(야전)산 묘지 변두리에 토장 상태로 있다가 일본이 2차대전에서 패망한 다음 해인 46년 유골이 본국으로 옮겨 졌었다. 가나자와 시는 윤의사의 유골이 옮겨진 후 유골이 매장돼 있었던 곳을 쓰레기 소각장으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재일 거류 민단 이시가와현 본부 등은 뒤늦게 가나자와시가 윤의사가 묻혔던 장소를 쓰레기 소각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시 당국과 협의,주변에 땅을 얻어 「순국 위령비」를 세우게 됐다. 때문에 이번에 윤의사의 위령비가 건립된 곳은 당초 윤의사가 묻혔던 장소로부터 약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순국 위령비는 높이 4.2m의 석조로 비문은 한글과 한자로 새겨져 있다.
  • 「일제 강제징용」 첫 국제심포지엄

    ◎한·일 학자 참석… 내일 르네상스호텔서/진상규명·사망자유골 수습문제등 논의 조선인 강제연행에 관한 국제심포지엄이 한국·일본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해방된지 47년만에 서울에서 처음 열린다. 오는 29일 하오1시 서울 라마다 르네상스호텔에서 열리는 이 심포지엄을 일제 36년사 연구소(소장 서남현스님)와 대한불교조계종 재일총본산 고려사가 마련한 것으로 일본인 학자 20여명과 국내학자,역사연구단체 및 유족단체 등이 참가한다. 태평양전쟁 당시 강제로 동원됐던 한국인 종군위안부 문제와 이에 대한 일본정부의 배상여부가 한국과 일본 양국간의 현안문제로 부각되고 있고 북한·일본의 수교협상에서 일제 36년 과거사에 대한 배상문제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 열리는 이번 국제심포지엄은 학계는 물론 일반의 주목을 끝다. 이번 심포지엄은 아직까지 청산되지 않은 6백만 조선인 강제연행에 대한 진상규명과 지금도 일본열도 전역에 방치돼 있는 30만 징용사망자 유골수습 문제를 비롯,재일교포문제,사할린문제 등에 대한 민족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마련됐다. 특히 북해도 지역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발표와 토론을 하게 된다.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하는 일본인 학자들은 북해도 지역연구자로 백호인강(미운시 백년사 편집위원)이 「북해도에서의 조선인노동자 강제연행의 개황」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며 시원 박(북해학원대학 경제학부 조교수)이 「탄광노동사 연구속에서의 조선인 탄광노동문제 연구의 현황」을,전평선언(공지민중사 강좌사무국장)이 「민족의 진정한 화해를 바라며 주국내 우용댐 공사의 조사와 추모활동으로부터」를 각각 발표한다. 한편 국내학자로는 서울대 안병직교수(경제학)가 「다시 생각해보는 조선인 강제연행의 문제」라는 제목으로 기조강연을 하고 정진성(KDI부설 국민경제교육연구소 책임연구원) 강창일(배재대 전임강사) 정진성(덕성여대 사회학과 부교수)씨 등이 토론자로 참석한다.
  • 징용사망자 유가족/일에 유골반환 청구

    【도쿄 연합】 2차대전중에 일본에 강제연행돼 나가사키(장기)현다카시마(고도)정 미쓰비시 석탄광업 하시마탄광에서 혹사당한 끝에 사망한 한국인 유족들이 최근 전주시에서 「하시마희생자 유족회」를 결성,18일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측에 사망자들의 유골소재 확인과 반환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왔다고 일 교도(공동)통신이 보도했다.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편강열의사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의성단 조직,만주벌 항일무장투쟁/장춘 일 영사관 습격,7명이 일경 60명 사살/하얼빈역 광장서 포위된채 치열한 총격전/중과부적으로 피체… 옥중고문 후유증으로 37세에 순국 선열들의 애국·애족사상을 길이 본받기 위해 서울신문사가 마련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애사 편강열의사가 선정됐다.황해도 연백에서 출생,2일로 탄신 1백주년을 맞은 편강열열사는 만주에서 항일무장독립운동단체 의성단을 조직,장춘의 일본 영사관을 습격하는등 항일투쟁을 벌이다 체포되어 옥살이를 하다 일제의 고문으로 얻은 척수염으로 29년 37세의 나이로 순국했다.편의사의 생애와 사상·업적을 되새겨 본다. 일제하인 1924년8월 만주 하얼빈역 광장에서 완전무장한 일본경찰들이 무장항일독립운동가 편강렬의사를 체포하기 위해 겹겹이 포위하고 있었다. 만주일대에서 3백여명의 조선청년들을 이끌고 독립운동을 하던 편의사는 군자금과 무기를 조달한뒤 길림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하얼빈역으로 왔다가 밀정 김성곤의 밀고로 일본경찰의 포위망에 들게 되었다. 편의사는 길가 상점에 뛰어들어 장시간 총격전을 벌이다가 중과부적으로 왜경에 체포됐다. ○만철병원도 습격 편의사는 1924년 대원 5명을 데리고 봉천의 만철병원을 습격한뒤 같은해 대원 6명과 함께 장춘의 일본영사관을 습격,7시간에 걸친 격전끝에 적 60여명을 사살해 일본경찰의 추적을 받아왔다. 일경에 체포된 편의사는 25년 평양법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신의주 감옥에서 복역중 고문으로 인해 생긴 지병으로 29년1월16일 안동현 적십자병원에서 37세의 나이로 숨졌다. 편의사는 병상에서 『내가 죽거든 유골을 내가 활동하던 만주땅에 묻고 나라를 되찾기 전에는 고국으로 이장하지 말라』는 비장한 유언을 남겼다. 편의사는 1892년 2월2일 황해도 연백군 봉서면 현죽리 목동에서 편상훈씨의 4남중 3남으로 태어났다. 편의사는 어려서부터 애국심과 충의심이 깊어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14세의 어린 나이에도 의분에 떨어 1주일간 항의 금식했다. 1907년 전국 각지에서 일본에 복수를 주장하며 의병이 봉기하자 경상·충청일대에서 활약하던 의병대장 이강년대장을 방문,이대장 휘하에 들어가 소집장 및 선봉장으로 활동했다. 이듬해 의병을 인솔하고 경기도 양주에서 3일간 격전을 벌이다 부상을 입은 편의사는 1909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편의사는 평양의 숭실학교에 입학,항일운동에 정진하다 1911년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사내정의)암살미수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5년 선고를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한뒤에는 의병동지들과 무장결사대 광복회를 조직,친일파·민족반역자·일본경찰을 처단하는 격렬한 투쟁을 전개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황해도일대의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고 동생 덕렬씨를 상해임시정부에 파견,국내조직과 긴밀한 연락망을 구축했다. 그해 임시정부에서 파견한 최명식이 군자금을 모집하고 무기를 조달한뒤 항일무장투쟁을 할 거점을 마련키위해 군사준비단을 조직하자 편의사는 황해도 대표로 활동했다. ○밀고자 즉결처분 1919년 9월 다시 일본경찰에 체포된 편의사는 징역1년을 선고받고 21년에 출옥했다. 23년1월 편의사는 동지 김경배·김태규·조종호등과 함께 중국의 독립운동상황을 살피기위해 북경으로 가 상해·만주등지를 전전했다. 무장투쟁으로 일관한 편의사의 눈에는 창조파와 개조파로 나뉘어 논쟁만 일삼던 임시정부의 무력함이 도저히 성에 차지 않았다. 23년 10월 만주로 돌아와 강진지·양기탁·남정동지들과 무장항일투쟁비밀결사인 의성단을 조직,단장에 피선됐다. 의성단의 활동무대는 길림성과 장춘일대의 넓은 평야지역이었다. 편의사는 이 지역에 이주한 동포들에게 『조선인단체를 조직해 이민족에게 억압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독립의식을 고취시키며 민족적 공감대를 넓혀갔다. 재만동포들의 물적 인적지원을 받은 편의사는 2백50명의 의성단원을 무장시켜 장춘·봉천일대의 일본인 병원·영사관·우체국·경찰서·철도·군수기지를 습격,혁혁한 공을 세웠다. 일본은 경찰력과 헌병·밀정등을 총동원해 편의사를 체포하려고 했으나 신출귀몰하는 그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편의사는 의성단활동을 하는 한편 만주지방의 각 독립운동단체들을 통합하기 위해 전만통일의회를 조직했다. 편의사는 만주지역의 비밀항일무장단체들을 통합해서 강력한 군사조직으로 만드는 공작을 하던중 24년8월 하얼빈역에서 밀정 김성곤의 밀고로 일본경찰에 포위됐다. 당시 이범석장군은 비분함을 참을 수 없어 밀고자 김을 즉결처분했다. 편의사가 체포되자 의성단활동은 위축되고 2∼3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단원들도 뿔뿔이 헤어져 소멸됐다. 옥고를 치르는동안 편의사는 일제의 악랄한 고문으로 척수염을 얻어 불구의 몸이 됐다. ○왜놈치료는 싫다 혼자 일어설 수도,앉을 수도 없는 지경이된 편의사는 병보석을 얻어 28년 선천의 미동병원에 입원했으나 별효과가 없었다. 친지와 가족들이 의료시설이 구비된 일본인 병원으로 옮길 것을 권고했으나 『죽어도 왜놈에게는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완강히 거절했다. 28년9월 동생이 있는 만주의 안동으로 옮겼으나 4개월만인 1929년1월16일 순국했다. 편의사의 묘소는 중국 요령성 단동시 원보구 인충가 진강산 장군봉 뒤편에 있었으나매장후 61년이 지나는 동안 이 지역이 시가지로 개발되어 비석은 커녕 묘소의 흔적조차 남지않게 됐다. 지난해 가을 국가보훈처와 편강렬의사 탄신1백주년 기념사업회가 「편의사유해봉환반」을 구성,현지답사한 결과 밝혀진 사실이다. 편의사는 후사가 없어 동생 덕렬씨의 2남인 충무씨를 양자로 입양했으나 충무씨도 지난 80년대초 미국으로 이주했다. 정부에서는 62년 편의사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역사적 평가/“마지막 의병장” 불굴의 절개 빛나/17세때 13도창의군의 서울탈환대작전 참가 편강렬의사에게는 지난 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수여됐다. 그러나 편의사의 이름을 아는 이가 드물고 역사적 평가도 높지 못한 실정이다. 구한말의 의병전쟁에서 20연대 중반의 독립운동에 이르기까지 큰 운동에 참가해 청춘을 불살라버린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책에서는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가 없다.이때문에 편의사는 이름없는 독립운동가로 오늘에 이르고 있고 무덤마저 정확한 자리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편의사는 중국단동 공동묘지 어디인가에서 압록강과 강건너 신의주를 바라보며 조국통일을 애타게 염원하고 있을 것이다. 편의사가 13도 창의군의 서울대탈환 작전에 참가한 것은 17세때이다.여기서 그는 부상을 입었으니 이 사실만으로도 독립운동가로 치부될 수 있다.그러나 이 부상은 37세로 순국할때까지 20여년간의 항일투쟁의 시작일 뿐이었다.1910년 압록강철교 준공식에 참석하던 사내총독암살음모사건으로 연루되어 최초의 옥고를 치르게 된 것은 나머지 그의 투쟁사와 기묘한 일치를 보여준다. 「양양한 압록강물은 흘러서 어드메로 가는가」라는 그의 옥중시에서 보듯 편의사의 일생은 압록강과 숙명의 관계를 맺고있다. 3·1운동후 두번째 옥고를 치르고 압록강을 건넜을 뿐아니라 세번째 마지막 옥고를 치를때도 압록강을 건느며 망국의 한을 달랬다. 한국인의 성품 가운데 끈기를 제일로 드는 이가 많다. 편의사야말로 독립운동 하나를 위해 일생을 바친 끈기의 대명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를 위대한 독립운동가로 평가하는 것은 불요불굴의 절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마지막 재판정에서 7년 징역형이 내려졌을때 파안대소했는데 이는 그가 의병정신을 잃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의병정신이란 나라와 겨레를 위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하고야 마는 정신이다. 이런 의미에서 편의사는 한국의 마지막 의병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편의사의 탄신 1백주년이기도한 2월을 맞아 새삼 조국통일로서 망국한을 달래드려야 되겠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 미,대북 관계개선/5개 조건제시/지난달 접촉때

    【도쿄 연합】 미국은 지난 22일 뉴욕에서 열렸던 첫 미­북한 고위급회담에서 대북한 관계 개선 조건으로 ▲핵사찰문제 해결 ▲남북 대화의 진전 ▲테러리즘 포기선언 ▲미국에 대한 중상 선동(프로파간더)중지 ▲6·25전쟁 당시의 미병사유골 반환문제의 해결등 5개항을 제시했다고 일본의 요미우리(독매)신문이 31일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이날 유엔 외교 소식통을 인용,이같이 전하고 이미 알려진 미국의 남북정상회담 조기 개최 촉구발언도 『북한에서 핵문제에 책임을 갖고 다룰 인물은 김일성밖에 없다는 인식에서 나오게 된 것』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 평론가 김철씨,아버지주제 단편소설 9편 분석(문학)

    ◎소설속의 아버지상 시대따라 변천/일제통치­6·25전쟁중엔 「부재의 얼굴」/70년대들어 작가들의 복권노력 시작 우리 소설에 나타나는 아버지의 모습들은 어떠한가.흔히 관용 인내 부드러움 등을 상징하는 모성에 대응하여 권위 질서 억압 제도 등을 뜻하며 이원적으로 세계를 파악하는 유효한 잣대의 하나인 부성이 우리 문학에선 어떤 방식으로 추구,반영되고 있는가.최근 국민서관에서 출간된 「아버지의 얼굴」은 아버지를 주제로 한 소설모음집으로 위의 물음에 미흡하게나마 답해 준다. 문학평론가 김철씨에 의해 엮어진 「아버지의 얼굴」은 김원일 임철우 이경자씨 등 작가 9인이 각각 아버지를 주제로 쓴 단편소설들을 수록하고 있다. 대부분 분단상황과 긴밀히 맞물려 있는 이 소설들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아버지와의 화해를 모색해 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김원일씨의 「어둠의 혼」은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세계와 첫 대면하는 소년의 심리를 묘사한 소설.여순반란사건으로 시체가 된 아버지와 세계가 소년에겐 불가해한 대상일 뿐이다.소년의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공포와 연민이 묘하게 뒤섞인 것이지만 굶주림이라는 현실의 중압이 소년의 그같은 감정의 지속을 방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창동씨의 「용천뱅이」는 현실의 중압에 잊혀지거나 잊으려 애썼던 것들이 언젠가 다시 대면해야 할 것임을 깨우쳐 준다.과거 좌익활동에 가담,가족에게 고통을 주었던 아버지와의 재상봉은 과거를 잊으려 했던 주인공에게 과거의 역사와 질곡을 돼새기게 하는 계기가 된다. 아버지와의 화해는 임철우씨의 「아버지의 땅」에서 비로소 이루어진다.진지구축작업중 철사가 감긴 유골을 발굴한 한 병사의 생각은 6·25때 좌익활동을 하다 어딘가 땅에 묻혔을 아버지에게로까지 미친다.발굴한 유골을 장례 치르는 일이 병사에겐 다름아닌 아버지를 고이 잠재우는 진혼곡인 것이다. 김성동씨의 「오막살이집 한 채」는 그같은 화해의 정점을 보여준다.좌익활동을 이유로 예비검속에 붙잡혀가 결국 6·25때 시체로 발견될 아버지가 소년에겐 신비와 숭앙의 대상으로까지 비쳐지고 있다. 최윤씨의 「아버지 감시」는 그같은 아버지 신비화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일러주는 작품이다.그러나 월북했던 아버지를 외국에서 만나 그의 변함없는 이상을 확인하는 일이 주인공으로선 그리 기분 나쁜 일은 아닌 것 같다. 일반적으로 「아비 살해」의 모티브 즉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주인공이 비로소 세계와의 대면을 시작하는 구도는 성장소설의 고전적인 문법에 속하지만 우리 소설사에서 그리 익숙한 방식은 아니다.왜냐하면 급격한 근대성의 도입과 식민지경험,연이은 분단 등은 이미 부권을 청산의 대상으로서 철저히 파괴해 놓았기 때문이다.부정되어야 할 부권은 더이상 남아 있지 못한 형국인 것이다.따라서 분단시대의 「아버지」는 이데올로기적 금기와 억압과 맞물려 「실종」 또는 「타살」의 상태였음을 부인키 어렵다.즉 아버지는 공격을 통해 극복해야 할 대상도 아니었고 존경을 통해 모방해야 할 대상은 더더욱 아니었으며,「아버지는 없다.입밖에 내서는 안 된다」가 분단시대 작가들을 짓누른 잠재의식이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70년대부터 시작되는 작가들의 아버지 되찾기는 천덕꾸러기 아버지의 때는 늦지만 바람직한 복권 시도로 보여진다.그들은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아버지 왜 그냥 그렇게 떠나셨나요』하고 묻는 격이다.근래 작가들의 아버지 찾기는 아버지가 겪었던 역사를 짚고 넘어감으로써 단절을 극복하고 한국소설의 스스로의 힘과 형식을 확보하려는 노력으로 풀이되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철씨는 책말미에 붙인 해설에서 아버지를 찾아나선 작가들의 여정이 『분단의 상황이 지속되는 한 끊임없이 계속될 것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내다봤다.
  • 개인배상청구권 인정여부가 열쇠/정신대등 대일 소송 전망

    ◎일 법원에 6건 계류… 형식적 심리로 일관/사법부의 「묻혀진 진실」 양심적 평가에 기대 미야자와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일제에 희생을 당한 사람들의 유족 등이 일본 정부에 대해 피해보상소송을 무더기로 제기할 움직임이어서 주목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우리나라의 희생자나 단체·유족 등이 배상문제를 들고 나올 때마다 지난 65년 이뤄진 한일협정을 내세워 「보상문제는 이미 일괄타결됐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국가간의 협상으로 과거사에 대한 보상처리가 완료된 만큼 피해자 개개인의 배상요구는 더이상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미야자와 총리의 지난 2박3일동안의 방한을 계기로 일제의 정신대징발문제가 주요사안으로 등장하는 등 한국내에서 반일분위기가 고조되자 미야자와총리는 피해유족에 대한 배상 또는 보상문제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전향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미야자와 총리가 방한기간동안 과거청산문제에 대해 구사했던 수사적 표현의 문맥으로 보아 아직까지는 배상청구에 대응하는 수위를 가늠키는 어렵지만 한국국민들의 감정적 앙금을 해소하기 위한 최소한의 가시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그동안 한국인 피해당사자 등의 개인피해보상 청구권 등을 인정치 않았던 자세에서 변화,최소한 개인차원의 보상청구는 인정하며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현재 일본법원에 제기돼 있는 강제연행피해 관련 보상소송은 지난해 12월 종군위안부 피해자 3명을 포함한 35명이 도쿄재판소에 제기한 태평양희생자유족회건 등 6건이다. 이 가운데 지난 90년8월 사할린억류동포 21명이 일제때 강제징용됐다 지금까지 억류생활을 하는데 대해 한사람앞 1천만엔씩의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도쿄지방재판소에 제출한 소송등 2건은 현재 형식적인 심리가 이뤄지고 있으나 일본정부의 배상청구 불인정태도 등으로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태평양전쟁유족회는 최근 소속회원 2만여명이 빠른 시일안에 집단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할 뜻을 밝히고 있어 일본내에서 한국인 피해보상논쟁이멀지않아 불붙을 전망이다. 따라서 법정시비가 본격화될 경우 초점은 역시 일본 정부에대한 배상청구권이 한일협정으로 소멸됐느냐 하는점에 귀결될 것이 분명하다. 일본법조계의 일부에서는 『65년 체결된 한일정부간의 청구권협정에 따라 한국측에 5억달러를 지급한 이상 민간차원의 개별소송에서 별도의 보상금을 지급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측 입장에 동조하는 소송 대리인등은 『한일협정은 한국정부가 일본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외교보호권을 포기한 것일뿐 국민개개인의 일본 상대청구권이 소멸됐다고는 볼수 없다』고 국민개개인의 권리를 국가간의 협정으로 포기할수 없다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결국 앞으로의 배상청구인정 문제는 일본사법부가 50년가까이 묻혀져왔던 진실을 얼마나 양심적으로 평가·판단해 매듭지어주느냐에 달려있다 할 것이다. 양국간의 정치적 책임문제는 이미 상당부분 해소됐다 하더라도 일본 사법부가 지금까지 잠복돼있던 갖가지 증거등을 토대로 국제관례에 입각,피해자와 유족 개개인에 대한 물질적·정신적 보상을 하려는 의지가 있느냐는 것이다.만족한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사법적 처리가 이뤄질 경우 한일간의 과거사를 둘러싼 앙금은 재일동포에 대한 법적지위인정등의 조치와 더불어 정리의 단계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동안 한일간의 문제가 첨예화될 때마다 일본측이 보여온것처럼 갈등관계를 임시미봉으로 대처하려는 자세로 접근한다면 양국국민간의 앙금을 또다시 잠복상태로 놔둘수 밖에 없게된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 한일간의 과거사 정리는 최근 제기되고 있는 사법 절차에 대한 처리와 함께 2차대전당시 징용인 명부공개,전몰자유골 확인및 송환,피해자 진상조사등에 대한 일본정부의 노력이 병행될때 비로소 가능하다 할수 있다.
  • 일제 전쟁동원 조선인 24만명/일 정부 첫 공개

    ◎군인 11만6천·군속 12만6천명 【연합】 일본 후생성은 7일 태평양 전쟁때 군인·군속등으로 동원된 조선인은 모두 24만2천3백41명으로 이중 군인이 11만6천2백94명,군속은 12만6천47명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숫자는 시미즈 수미코 의원(청수징자·참의원)등 일본 국회의원들이 동석한 가운데 이날 하오 중의원 제1의원회관 회의실에서 이뤄진 태평양전쟁 희생자 유족회측과 후생성 관리들과의 면담에서 공개된 것이다. 일본정부가 강제징집된 조선인 군인.군속의 숫자를 구체적으로 공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일본 후생성측은 태평양전쟁 기간중 동원된 조선인들의 숫자와 그 명단을 공개하라는 유족회측의 거듭된 요구에 『피해당사자 유족들의 개별적인 생사확인은 가능하나 일괄적인 명단공개에는 응할 수 없다』면서 『군인·군속으로 동원된 수는 육군 소속으로 14만3천3백74명,해군으로 9만8천9백68명등 24만2천3백41명』이라고 말했다. 후생성측은 이와함께 현재 일본이 매년 실시하고 있는 위령제 및 유골발굴 작업에 한국측의 참가를 허용해야 한다는 유족들의 요구에 『이 문제는 유족 당사자들이 한국정부에 요청,외교적인 절차를 밟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후생성의 입장』이라고 밝혀 한·일 양국정부의 협의가 원만히 이뤄질 경우 허용할 의사가 있음을 시사했다.
  • 미군유해 인수때 미 의원 극비 방북/강석주와 회담

    【도쿄 연합】 지난달 24일 판문점에서 북한측으로부터 한국전 때 사망한 미군 유골을 인수했던 로버트 스미스 미상원 의원이 당일 극비리에 개성을 방문,강석주 북한 제1외교부부장과 회담했다고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25일 보도했다. 스미스 의원은 그날 유골 인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강부부장과는 북한측의 통일각에서 만났으며 회담 내용은 일체 말할 수 없다고 해 개성방문 사실을 숨겼다고 이 신문은 밝히면서 미국 의원이 군사 경계선을 넘어 북한에 「잠입」한 사실은 이례적인 일로,대미 관계개선을 위한 평양측의 강한 의욕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 「오대양」배후·타살여부 재수사/검찰

    ◎추가자수 3명등 9명 모두 구속영장/대전 「농장」서 암장시 4구 발굴/자수동기·행적등 집중추궁/박순자씨 동생 박용택씨 행방추적 【대전=박국평·박대출·최용규기자】 「오대양집단변사사건」을 수사중인 충남도경은 11일 이사건의 열쇠를 쥐고있는 것으로 알려져 수배됐던 오대양 총무과장 노순호씨(당시 32세)가 사건발생 이전에 이미 살해,암매장당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전면 재수사에 나섰다. 노씨등 3명을 살해해 암매장한 사실은 지난 10일 김도현씨(38)등 당시 오대양 직원 6명과 11일 상하오에 걸쳐 심해련씨(25·자수한 오민철씨부인)와 이복희(30)이인희씨(27)자매가 잇따라 경찰에 자수,노씨를 비롯,황숙자(당시37·여·기숙사가정부)조재선씨(당시29·보모)등 3명을 지난 85년부터 87년사이 오대양 사무실과 식당등에서 집단으로 폭행,살해해 암매장했다고 진술함으로써 밝혀졌다. 경찰은 이들의 진술에 따라 11일 하오1시50분부터 암매장 현장인 대전시 동구 하소동 오대양 농장옆 밭에서 2m 간격으로 매장된 시체 3구와 위암으로 숨져 암매장된 박형심씨(자수한 이세윤씨의 처)등의 사체4구를 찾아냈다. 경찰은 이날 암매장된 시체가 모두 발굴됨에따라 10일 자수자 6명과 11일 자수한 3명 등 9명을 폭행치사 및 사체유기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지난 10일 자수한 김도현씨(38)등 6명에 이어 11일 상·하오에 걸쳐 자수한 심해련씨와 이복희씨자매는 경찰에서 『황숙자씨는 우리 3명을 비롯,여자 7명이 5시간 동안 집단 폭행해 숨지자 같은 장소에 암매장 했다』고 범행을 시인했으나 복희·인희씨 자매는 이를 완강히 부인했다. 이날 상오 2개월된 딸을 안고 자수한 심씨는 『당시 분위기로 보아 박순자씨의 지시를 어길 수 없어 이같은 일을 저질렀다』며 딸을 부둥켜 안고 울먹였다. 경찰은 이들이 사건 발생 4년 가까이 됐는데도 집단으로 자수한 사실에 의문을 갖고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 수사를 집중하기로 했다. 또 경찰은 김씨 등이 양심의 가책을 못이겨 자수했다고 말하고 있으나 공소시효 절반이상을 넘긴 상태에서 추적을 받지 않는데도 갑작스럽게 집단 자수한 점이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단,그동안의 행적과 자수 준비과정 등을 집중 추궁하고 있다. 경찰은 또 이날 하오 자진출두한 정화진(38) 김영자씨(54)가 오대양사건 당시 용인공장 식당 천장에서 도피생활을 하고있던 교주 박순자씨등 32명에게 음식을 공급했으며 앞서 이날 상오 자수한 심씨와 사건이후 서울 청계천에서 함께 지내온 사실을 중시,오대양사건과의 관련여부를 캐고 있다. 경찰은 이와함께 노씨등 살해 암매장사건 관련자중 유일하게 신병이 확보되지 않은 교주 박씨의 동생 박용택씨를 찾기 위해 박씨의 주소지인 경기도 과천시에 형사대를 급파했다. 한편 경찰은 이날 암매장 현장을 확인,사체를 모두 발굴함에 따라 자수한 김씨 등의 여죄와 자수동기,오대양사건과의 관련여부 등을 수사하는 한편 발굴한 유해 4구를 12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감식을 의뢰키로 했다. 한편 이 사건담당 송해은검사는 자수한 김씨 등의 살해암매장사건은 일단 오대양의 집단변사사건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노끈으로 묶은채 매장/대전발굴현장 【대전=박국평·박대출·최용규기자】 자수한 김도현씨 등에 의해 살해·암매장된 「오대양」신도 노순호씨 등 4명의 사체발굴작업이 11일 하오1시55분쯤 대전시 중구 하소동 옛 오대양농장옆 무밭에서 벌어졌다. 사체발굴반은 이날 작업을 시작한지 35분만인 하오2시30분쯤 지난 86년 5월 숨진 오대양의 보모 조재선씨(당시 34세)의 것으로 보이는 유골1구를 찾아냈다. 발굴단은 이어 하오3시45분쯤 황숙자씨(당시 43세·85년 4월사망)와 박형심씨(당시 45세·87년1월 위암으로 사망)의 유골을 발굴했으며 하오4시15분쯤 노순호씨(당시 36세·86년8월 사망)의 유골을 마지막으로 찾아냈다. 작업반은 조씨의 유골가운데 두개골 부분을 처음 발견하자 이어 손으로 나머지 부분도 조심스럽게 흙을 퍼내 찾아냈다. 흙갈색으로 변한 조씨의 유골은 북쪽을 향해 온몸을 묶은 것으로 보이는 비닐노끈과 함께 오른쪽 무릎이 세워지고 왼쪽다리는 무릎안쪽으로 비스듬히 눕혀져 있었다.
  • 「유해송환공동위」 설치/북한·미 합의/미군유해 11구 인도

    【판문점=유재림 기자】 6·25전쟁중 실종됐던 미군유해 11구가 24일 상오 판문점에서 북한에 의해 미국측에 인도됐다. 이번 유해인도는 종전 후인 54년 8월17일 전몰자 유해 대량교환과 90년 5월28일 5구의 미군유해 인도에 이어 세 번째다. 이날 유해인도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겸 적십자회 부위원장인 리성호 등 북한측 대표단과 미 상원 군사위원회 위원인 로버트 스미스 의원(공화·뉴햄프셔 출신) 등 미 인수단 사이에 이루어졌다. 한편 이에 앞서 스미스 의원은 23일에도 판문점에서 북한의 리성호와,24일에는 북한외교부 부부장 강석주 등과 만나 북한측이 제의한 「미군 유골송환공동위원회」 구성을 합의하고 그 동안 미국측이 생존설을 주장해온 미군포로들의 생사확인을 비롯해 추가 유해송환문제 등을 협의했다. 한편 스미스 의원은 이날 상오 회의에서 『미군병사 문제와 관련한 모든 사안에 관해 북한이 협의의사를 밝혀온 데 대해 감사한다』며 『이 문제에 관한 진전은 양국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리성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동기구를 만들어 잘 해나가자』며 『「미군 유골송환공동위원회」를 구성,실무적 문제를 해결해나가자』고 제의했다.
  • 미 예비역장성 8명 20일 방북/핵문제·유골 송환 협의

    【워싱턴 연합】 리처드 스틸웰 전 주한 유엔군 총사령관과 엘모 줌월트 전 해군 참모총장 등 미 예비역 고위장성 8명이 오는 20일부터 24일까지 평양을 방문할 것으로 10일 알려졌다. 북한의 평화군축연구소 초청으로 5일 동안 방북하는 이들 일행은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미군 유해 송환,한반도 군축,핵무기 문제 등 상호 관심사를 협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당국이 모두 한국전에 참전한 경력의 이들 미 고위 예비역 장성 일행을 6·25 발발 기념일을 앞두고 초청한 것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다각적인 포석의 일환으로 해석되고 있다.
  • 북방외교 가속… 한·중수교 시간문제로(남·북한 유엔시대:4)

    ◎서울­북경관계에 미치는 파장/북경,「평양부담」 덜어 대한접근 용이/북한에 대일수교 추진 명분 제공도 북한의 유엔가입 결정은 6공 출범 이후 노태우 대통령이 끈질기게 추구해온 북방정책의 성공이자 결실의 하나다. 노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북방드라이브를 설명하면서 『서울에서 평양을 곧바로 갈 수만 있으면 좋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므로 모스크바와 북경을 둘러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한 유엔가입만 해도 우리는 통일이 될 때까지 잠정적으로 동시에 가입하자는 것이었지만 북한이 이를 거부해 왔기 때문에 그들의 태도를 바꾸기 위해 우리는 소련을 동원하고 중국의 설득을 유도했던 것이다. 노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개방과 개혁,냉전체제의 붕괴라는 세계역사의 흐름을 직시,7·7선언에 이은 88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바탕으로 2주 뒤인 10·18 유엔연설을 통해 한반도에서의 화해를 선언하면서 동구 및 소련,중국과의 관계개선 의지를 천명했다. 89년말 헝가리를 필두로 동구와 잇단 수교,지난해 6·4 미샌프란시스코에서의 역사적인 한소정상회담,9월말 한소수교,12월 모스크바 한소정상회담,금년 4월 제주 한소정상회담 등으로 이어진 노 대통령의 북방드라이브 정책이 강하게 추진되었던 것이다. 북방정책의 또 하나의 목표인 한중 관계개선도 하루가 다르게 급진전되고 있다. 양국간에는 이미 무역대표부가 상호 교환설치되었고 무역만도 지난해 왕복 30억달러 규모를 웃돌고 있다. 북한이 유엔에 가입키로 한 결정적 배경은 중국이 한국의 유엔가입에 더 이상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입장을 통보한 때문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붕 중국 총리가 지난 5월3일부터 6일까지 평양을 방문,김일성 주석을 만나 이 같은 중국의 입장을 통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붕­김일성 회담에서 중국이 거부권 불행사방침을 밝히게 된 배경에는 중소관계와 한소관계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중국과 소련은 이미 돈독한 관계로 회복됐고 강택민 중국 총서기의 모스크바방문(5월15∼19일)으로 이를 더욱 다졌다. 제주 한소정상회담(4월19∼20일)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노 대통령에게 한국의 유엔가입을 지지키로 약속했고 한걸음 더 나아가 북한의 핵사찰,한국의 유엔가입 문제에 대해 중국도 소련과 공동보조를 취하도록 적극 설득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따라서 북한의 유엔가입결정은 노·고르비 제주회담→이붕·김일성 평양회담의 도식에 따라 이뤄졌다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중국은 한국이 지난해 유엔가입을 추진코자 할 때 『금년만 기달려 달라』며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양측이 협의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년 들어 노 대통령은 일부의 회의론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연내 유엔가입을 강력히 독려했고 외무부의 연두업무 보고시에는 『중국의 거부권 행사도 주변의 여건에 따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우리의 유엔가입은 단순히 회원국이 되겠다는 것뿐 아니라 중국에 명분을 주어 수교를 앞당기게 된다』고 피력했다. 북방정책의 성과의 하나로 북한이 우리와 함께 유엔에 가입하게 되었지만 북한의 유엔가입은 결과적으로 중국이 한국과 수교를 맺는 명분을주게 되는 등 「북방성과」가 그 자체로 상승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당국자는 북한이 유엔에 가입하게 됨으로써 한중수교는 이미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확신하고 있다. 한중 수교의 시기는 늦어도 내년 하반기에는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이유는 양국간의 경제협력의 필요성이 계속 증대되고 있고 북한이 우리와 함께 유엔에 가입함으로써 중국이 북한에 대한 부담을 덜 느끼게 됐다는 점 등이다. 한중 양국은 경제무역·투자 등 쌍무관계를 정부차원에서 뒷받침하기 위해 이중과세방지,투자보장,무역협정 등 3개 협정을 수교 이전에라도 체결하자는 데 이미 의견이 일치된 상태이다. 이 같은 양국의 입장은 수교가 곧 뒤따른다는 것을 그 밑바닥에 깔고 있는 것이다. 다만 중국이 올 안에 우리와의 수교를 서두르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것은 국제적으로 고립을 면치 못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 최소한의 대외정책 변화에 따른 내부정리의 시간을 주고 북한이 적극 시도하고 있는 일본과의 수교,미국과의 관계개선과 관련,한중 수교를 일정시간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측은 북한에 대해 한국과 함께 유엔에 가입할 경우 적어도 올해에는 한국과 수교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이 일본과의 수교,미국과의 관계개선에 활용할 수 있는 카드는 핵사찰수락,한중 수교와의 연계정도일 것으로 보이나 한중수교와의 연계카드는 일·북한,미·북한 관계수준과 한·중 관계수준이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렇게 효과적인 카드가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다. 미국은 북한이 유엔가입과 미·북한 관계는 별개의 사안이라며 관계개선의 조건으로 ▲핵사찰수락 ▲미군유골 송환 ▲대미비방 중지 ▲의미있는 남북대화 ▲테러지원 포기 ▲군사적 신뢰구축을 계속 주장하고 있다. 일본도 핵사찰 수락과 의미있는 남북대화를 일·북한 수교의 선결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핵사찰 수락이 일본 및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중요한 추진변수가 될 수 있겠으나 그 자체가 수교로까지 바로 연결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결론적으로 북한의유엔가입 결정은 노 대통령이 강력히 추진한 북방정책의 결실의 하나이면서 동시에 그 결실이 북방정책의 마지막 최대목표인 한중 수교를 앞당기게 했다고 할 수 있다.
  • 「사할린혈육」 반세기만에 재회/6백여명 감격의 포옹… 울음바다

    ◎국내 이산가족 80명 어제 현지 도착 【유지노 사할린스크 연합】 국내 사할린 이산가족 80명이 22일 하오 1시30분(현지시간) 소련 유지노 사할린스크공항에서 50여 년의 생이별 끝에 이곳 사할린 혈육들과 재회의 감격을 나눴다. 보잉 727 대한항공 특별전세기 편으로 김포공항을 출발한 지 3시간20분 만에 「유배의 섬」 사할린에 도착한 이들은 통관을 마치고 입국장을 빠져나오자마자 공항청사 앞을 가득 메운 채 기다리던 5백여 명의 사할린 가족들을 만나 서로 부둥켜안고 감격의 울음을 터뜨렸다. 해방 3년 전 징용간 형님의 피붙이와 상봉한 장문교씨(51·무직·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쌍정리 209의1)는 공항에 마중나온 장성미씨(32) 등 조카딸 가족 4명을 얼싸안은 채 떨어질 줄을 몰랐다. 중소이산가족회(회장 이두훈) 주선으로 국내 가족들이 각자 비용을 부담,서울∼사할린간 직항전세기를 마련해 상봉의 기회를 가진 이들은 다음달 2일까지 12일 동안 사할린에 살고 있는 가족집에 머물면서 부모형제들의 묘를 찾아 성묘하거나 영주귀국문제 등을 협의하며 일부는 유골을 직접 수습해 귀국할 계획이다.
  • 링컨,연내에 「의학적 부활」(세계의 사회면)

    ◎유해 일부 조직에서 DNA 추출/대량 복제… 유전병 앓았는지 구명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조만간 「의학적으로 부활」할 전망이다. 지난주 미 과학위원회는 링컨 대통령의 유골과 혈액 모발 등을 복제해 DNA를 추출하기로 결의했다. 미 과학위원회의 이같은 결의는 1865년 존 윌케스 부스의 총격으로 사망한 링컨 대통령이 그 동안 의학관계자들로부터 그가 생전에 유전병의 일종인 「마판신드롬」(Marfan Syndrome)을 앓고 있었다고 받아온 의혹을 풀기 위한 것이다. 의사들은 큰 키에 호리호리한 얼굴,길쭉길쭉한 뼈마디에 퀭한 눈 등을 가졌던 링컨의 특징은 유전인자 변이에 따른 심장 및 혈관의 약화에 기인한 유전병의 증세라고 지적한다. 때문에 만일 링컨 대통령의 유해를 관장하고 있는 미 국립보건의학박물관이 링컨 대통령의 유해 복제를 승인할 경우 의사들은 링컨 대통령의 유해를 복제,유전인자를 조사할 DNA를 얻게 된다. 미 과학위원회 소속 의사들은 이같은 방법으로 링컨 대통령이 「마판신드롬」 환자였는지의 여부를 확실하게 가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미국내 4만여 명의 유사 환자들의 치료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시도하려는 DNA 복제는 링컨 대통령 유해의 일부 조직에서 디옥시리보핵산(DNA)을 추출,정교한 방법을 통해 다량 복제함으로써 「또 하나의 링컨」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신체를 완전히 재생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존의미의 부활과는 거리가 있지만 모든 생명체의 「청사진」이라 할 수 있는 DNA를 소생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부분적인 부활의 의미를 지닌다. 과학위원회 의사들은 이같은 행위가 사체모독이라는 일부의 주장을 『죽은 지 1백26년이나 지났고 링컨의 살아 있는 후손이 없는 점 그리고 이러한 시도가 인류에 공헌하는 점 등을 들어 윤리적으로 타당하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유전실험을 강력히 비판하는 제레미 리프킨 박사는 『DNA 복제가 과학문명의 새 장을 열지 「판도라상자」의 재앙을 유발할지는 아무도 모른다』면서 『과학기술은 사회통념을 무시하고 무차별적으로 남용돼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만일 링컨 대통령이 「마판신드롬」 환자였던 것이 판명되면 그것은 인간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하며 인간이 선천적인 질병에 얼마나 잘 적응하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는 「마판신드롬재단」의 체리 윌리엄 회장의 말처럼 링컨 대통령의 유전자 검색을 환영하는 과학계의 분위기로 보아 링컨 대통령의 DNA 연내복제가 실현될 가능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 일제 징용 한인 유골/19구 어제 고국봉환

    일제징용으로 끌려가 숨진 한국인 징용자 19명의 유골이 14일 하오5시 오사카발 대한항공 723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이 유골들은 재일거류민단 오카야마(강산)현 지방본부가 지난 1년반동안 각 사찰을 돌며 수집,우리나라 해외동포 위령사업회(회장 이용택)의 주선으로 이번에 1차로 국내에 봉환되는 것이다. 해방 46년만에 고국으로 옮겨진 이들 유골들은 15일 충남 망향의 동산에 안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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