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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이브 몽탕과 송두율 교수

    1991년 타계한 프랑스 유명가수이자 배우였던 이브 몽탕이말년에 ‘친자확인 소송’에 휘말린 사건이 있다. 드로사르라는 소녀가 제기한 소송이었는데 몽탕은 소녀의 어머니와교제한 일은 있지만 결단코 자신의 딸은 아니라고 부인했다.그러나 몽탕이 혈액검사 등 친자확인에 필요한 어떤 조사도 거부하는 바람에 사람들은 그를 의심했다.공교롭게 두사람의 용모도 닮아 법원도 친자관계로 심증을 굳혔다.그러는 와중에 몽탕은 사망했고 사람들은 두 사람의 친자관계를거의 사실로 믿었다. 몽탕의 누명은 그가 죽은 지 7년만에벗겨졌다.몽탕의 유골을 채취,유전자 감식결과 아닌 것으로판명된 것이다. 정황만으로 생사람 잡는 경우가 종종 있다.황장엽(黃長燁)씨로부터 ‘북한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라고지목됐던 송두율(宋斗律·독일 뮌스터 대학)교수가 그 비슷한 케이스다.황씨가 누군가.김일성대학 총장을 역임했고 주체사상을 완성시켰으며 한때 김일성 부자의 측근이었던 사람이다.그런 사람이 한 말이니 그럴듯하지 않은가.더구나송 교수가 몇차례 북한을 다녀갔고 고 김일성주석과 면담까지 했으니 정황도 맞아떨어진다.대개 이런 경우 사람들은당사자의 해명을 귀담아듣기보다는 “본인이야 그렇게 말하겠지”쯤으로 치부하기 마련이다.이쯤되면 당하는 사람으로서는 미치고 뛸 수밖에….결국 송 교수는 이 문제를 법정으로 가져갔다.황씨를 상대로 명예훼손에 의한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 송사에서 서울민사지방법원은 “송 교수가 ‘김철수’라고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그리고“황씨의 주장은 송 교수가 북한의 지시를 받아 대남공작활동을 해온 자라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어 명예를 훼손”한 점도 인정했다.그러나 재판부는 “황씨의 의도는 북한체제의 허구성을 알리려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점을 들어 손해배상 책임은 없다고 판결했다. 누명을 벗는 것이 목적이었을 송 교수 입장에서 1심 판결은 실질적인 승소인 셈이다.그러나 송 교수의 누명이 이브몽탕처럼 개인적 사안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 황씨의 말 한마디로 “노동당간부가 남쪽에 합법적 활동공간을 확보해도 괜찮은가”라는 소리가 나오는 등 지겨운 ‘색깔논쟁’이 재연됐으니 말이다. 김재성 논설위원 jskim@
  • 우키시마마루 사건 판결 의미

    23일 일본 교토(京都) 지방법원의 판결은 우키시마마루(浮島丸) 침몰사건에 대해 일본 정부의 책임을 부분적으로인정한 것이다.전후 보상소송에서 처음으로 강제징용자의송환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 ■생존자를 위한 정신적 위자료만= 우키시마마루의 승선이확인된 생존자 15명에게 1인당 300만엔(3,200만원)씩 지급되는 것은 정신적 위자료다.쿄토 법원은 “국가가 강제적으로 취로를 시켰다면 안전하게 한국에 돌려보내는 것이법률조리상 당연히 요청되는 일”이라고 명시했다. 이번 소송에 참여한 사람은 우키시마마루 생존자 21명(제소후 1명 사망)과 희생자 유족 59명 등 80명이다.이들은 30억엔의 손해배상과 공식사죄를 요구하며 1992년부터 세차례에 걸쳐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쿄토 법원이 일부 원고승소 판결을 내리긴 했지만 일본정부의 배상책임에 대해서는 명확히 선을 그었다.지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일본의 모든 배상의무는 소멸됐으므로 개인에게 배상할 의무는 없고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만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유족들이 제기한 일본 정부의 공식사과 요구도 묵살됐다.“일본 정부에 어떤 행동을 요구하는지가분명하지 않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원고측의 유골송환요구에 대해서도 “국가가 사찰에 맡겨놓은 유골 가운데유족들이 반환을 요구하는 유골이 포함돼 있는지 불분명하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앞으로의 파장= 일본 정부는 그동안 한일청구권협정을 이유로 국가간 배상문제는 소멸됐다고 주장해왔고 대부분의소송에서 전쟁피해에 대한 국가책임이 인정되지 않았었다. 이번 판결이 원고의 일부 승소이기는 하지만 일본 정부의입장에 타격을 입힌 셈이다.특히 최근 들어 한국인 군대위안부 3명에 대한 1심 배상판결이 지난 3월 히로시마 고법에서 파기되는 등 패소판결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에서 더 눈길을 끈다. 원고측은 “일본 정부의 공식사과는 받아내지 못했지만일부 승소를 이끌어냄으로써 제소한 보람이 있었다”고 밝혔다.그러나 일본정부의 사죄 기각,유족배상 등이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유감의 뜻을 표했다.폭발원인에 대해서도 교토법원은 “본 판결은 기뢰(機雷)에 의한 폭발임을 전제로 한다”며 유족측의 ‘일본군의 고의폭발’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다. 피고측 일본 정부 대변인인 후쿠다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은 “국가에 대해서는 가혹한판결”이라며 “향후 대응은 관계부처와 협의해 결정하겠다”고만 밝혔다. 전경하기자 lark3@
  • 벽제화장장 일부 반입 제한

    서울시의 유일한 화장시설인 벽제화장장이 한계용량을 초과,사산아 등을 대상으로 반입을 일부 제한하고 있어 시립 화장시설의 추가건립이 화급한 상황이다. 또한 화장장 뿐만 아니라 납골시설도 포화상태에 달해 시립 추모의집은 지난해 이미 만장이 됐고 경기도 파주시 용미리에 있는 제2 추모의집도 내년 3월이면 모두 찰 것으로 예상된다. 19일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장묘사업소에 따르면 벽제화장장의 1일 적정 처리용량은 61구이지만 현재 76구를 처리하고있다.이는 사실상 한계용량을 초과하는 처리용량이다. 그나마 화장로에 과부하가 걸려 설치된 화장로 23기중 2기가 고장났으며 현재 수리중인 상태다.서울시는 이에 따라 지난 6월부터 서울과 고양·파주시 이외의 지역에서 발생한 사산아와 개장유골에 대해서는 벽제화장장 반입을 제한하고 있다. 벽제화장장의 이같은 용량 초과는 전반적으로 화장문화가급속히 확산되고 있는데다 벽제의 시설과 화장비용이 다른지역에 비해 비교우위에 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난해 벽제화장장에서 처리된 사산아중 서울 이외 지역에서 반입된 사산아가 70%나 됐으며 일반 화장의 경우도 40%가 타지역에서 반입됐다. 서울의 화장률은 이미 50%를 넘어섰으며 4∼5년 후면 70%대까지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등 갈수록 확산추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화장수요를 감안해 올들어 벽제화장장의 화장로를 7기나 증설했으나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며 “추모공원의 조속한 건립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했다. 최용규기자 ykchoi@
  • 한국사회硏 특별사진展

    한국사회문화연구원(한사연)과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14일 서울 여의도공원 문화마당에서 ‘일제 침략기에 끌려간 조선인 유골 귀환을 위한 특별사진전’을 개최했다.이들은 성명서에서 “일제 치하에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700여만명 중 30여만명이 일본에서 희생됐지만 이들의 유골은 아직도 일본 땅 3,500여곳에 방치돼 있다”면서 “조선인 강제징용자의 유골을 귀환하기 위한 100만명 서명운동을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전시된 사진 180여점은 한사연 회원들이 지난 5년간일본,중국,독일,프랑스,미국 등 세계 각국을 돌며 수집한것으로 독립군의 처형 장면,종군위안부의 참혹한 모습 등을 담고 있다. 홍사광(洪思光) 이사장은 “일본 오사카 세계평화인권운동본부 일본지부,제네바 UN 인권위원회 등에서도 전시회를 가져 일본의 잘못을 전세계에 알리겠다”고 말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
  • 유족회등 ‘야스쿠니 한국인’공청회

    “일본 총리까지 당신을 사지로 몰아넣은 일제 전범들에대한 참배에 나서다니 얼마나 원통하겠습니까.” 13일 오전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등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야스쿠니(靖國) 신사참배 및 한국인 합사(合祀)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연 공청회는 분노로 가득찼다. 피해자와 유족 70여명은 “일본 1급 전범들과 함께 묻힌채 돌아오지 못하는 원혼들을 송환하라”고 거듭 촉구했다. 유족들은 특히 이날 오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소식을 전해듣고 “과거사에 대한 반성없는 오만한 행동이자 군국주의를 부활하려는 책동”이라고 거세게 비난했다. 열살 위 오빠를 잃은 임효순(林孝順·69·서울 동대문구이문동)씨는 “16살에 일제 총알받이로 끌려가 스무살의나이에 숨진 오빠가 1급 전범들과 함께 누워 제대로 눈을감을 수 있겠느냐”면서 “더욱이 일본 총리까지 전범들에대한 참배를 강행해 원혼을 욕보였다”며 격분했다. 임씨는 해방 뒤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오빠의 ‘전우’들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헤맸지만 91년에야 한 일본인 기자의도움으로 겨우 야스쿠니 신사에서 오빠의 명부를 확인했다. 일본 해군 군속으로 근무하다 해방 뒤 귀국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폭격으로 숨진 아버지가 신사에 합사된 사실을 지난달 말에 알게된 임서운씨(60·여·성북구 길음동)도 “교과서 왜곡에 이어 총리의 신사참배로 아버지가 편히 잠드시지 못할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한국인 군인·군속,유족 252명을 대표해 지난 6월29일 일본정부를 상대로 ‘합사철폐·유골반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김은식(金銀植)사무국장도 “1급 전범을 순국 선열처럼 떠받들거나 침략전쟁을 대동아 성전이라고 추앙하는 것은 심각하게 역사를훼손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또 “빠른 시일안에 재한군인재판지원회 등 일본의 시민단체들과 공동으로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에 대한 위헌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시민단체도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 강행을 규탄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정은정(鄭銀定·27)간사는 “신사참배는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고 군국주의를 부활시키려는 수순”이라며 비난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신용하(愼鏞廈)교수는 “일본 총리의 참배 강행은 아시아 국가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면서 “정부는 물론 모든 아시아 국가들이 단결해 응징을 해야한다”고 분노했다. 독도수호대 김점구(金點九) 사무국장은 “일본이 아시아국가들과 관계 개선을 원하지 않는다는 반증”이라면서 “우리도 강경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시민단체들은 오는 15일 한국과 일본에서 공동으로 진행될 ‘특별수요집회’에서 신사참배에 대해 강력하게 규탄하는 등 공동 대응할 계획이다. 류길상 박록삼 안동환기자 ukelvin@
  • 8·15특집 한일관계 갈등을 넘어/ 남은 과제들

    ◆한국인 유해 봉환 ‘반세기未濟’.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광복 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정리되지 않은 과거의 상처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지금재일 한국인들은 이주 100년을 맞건만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양국간 대표적인 미해결 과제들을 짚어본다. ■한인 징용 유해봉환= 태평양 전쟁에 끌려가 희생된 한국인 유해 봉환이 첫번째다.강제연행 희생자는 20만명으로어림된다.그중 상당수는 일본 곳곳에 흩어져 있어 실태파악조차 돼 있지 않다. 그나마 도쿄 시내 사찰인 유텐지(祐天寺)에 이름과 당시주소 정도는 파악돼 있는 한반도 출신 징용 희생자 1,136위가 모셔져 있을 뿐이다.이 가운데 431위는 북한 출신이다.지난 71년 후생성에 있던 이들 유골은 유텐지로 옮겨져관리되고 있다. 한·일 정부는 89년 5월 봉환에 합의했으나 선(先)배상,후(後)봉환을 요구하는 관련단체의 반대에 부딪쳐 봉환하지 못하고 있다.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이들 유골만이라도하루빨리 봉환해 망향의 동산에 안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문제는 실태가 파악되지 않고 있는 나머지 대다수유골이다. 최소한 5만명의 무연고 유골이 일본 각지의 사찰등에 안치돼 있는 것으로 일본 시민단체들은 추정하고있다. 이들 유골의 발굴과 신원확인,봉환은 양국 정부가 과거사정리라는 차원에서 적극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과제다. ■야스쿠니 신사 합사 한국인 명부 삭제= 246만명의 위패가있는 야스쿠니(靖國) 신사에는 2만 1,181명의 한국인 징용자 등이 명부에 올라 있다.한국 정부는 징용자 유족들의청원이 접수되는대로 위패 명부에서 이들을 삭제해 줄 것을 일본 정부에 요청할 방침이다. 그러나 야스쿠니 신사가 종교법인이어서 일본 정부가 한국측 요청을 받아들일지 미지수다. ■역사 교과서= 역사 교과서 문제도 근원적 처방이 요구된다.우익 진영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측 교과서의 일선 중학교 채택이 지지부진한 것으로 드러나 안도하고 있으나 내년에는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심의가 기다리고있어 ‘산 넘어 산’이다. 98년 한 ·일 공동파트너십 조인 때 양국 역사학자 등이참가하는 한·일 문화교류회의를 열어 공동의 역사인식 만들기에 나섰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최근 새로 만들어진 ‘한·일 역사가회의’가 기대를 모으고 있다. 결국 양국간에 가장 민감한 일본의 식민지배를 전후한 근·현대사 부분에서 공통의 역사인식을 도출해 이런 인식을바탕으로 교과서를 만드는 제도를 만들지 않고서는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다. ■재일교포의 참정권= 영주하는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우리 정부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국회에 제출돼 심의 중이나 일본 정계 보수세력의 반대로 암초에 걸려있는 상태다. 일본인과 똑같이 일하고 세금을 내고 살아가는 외국인들에게 지방선거 참정권만이라도 줘야 한다는 게 한국측 논리다.그러나 자민당 내에 “외국인에게 선거권을 줄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아 결국 법안 제출 2년 가까이 되고 있지만 원점을 맴돌고 있다. 일본 여당은 그 대신 일본 국적취득을 완화하는 법률개정안을 추진중이나 “일본 동화정책”이라며 조선 총련 등이맹반대하고 있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marry01@
  • 만화로 보는 ‘체 게바라’

    지난 해 출판계의 화제는 단연 ‘게바라 열풍’이었다.97년 유골 발견설로 해외에서 일기 시작한 게바라 추모 열기는 책 영화는 물론 티셔츠 액세서리로 이어졌다.신드롬으로까지 불리는 이런 열기는 ‘일관된 삶’이 지닌 매력에서 비롯될 것이다. 의사,쿠바혁명 성공후 산업자원부장관,국립은행장 등 안락한 길을 거부하고 다시 ‘혁명의 장’으로 찾아간 그의삶이 다시 한 권의 만화로 나왔다.‘체 게바라’(현실문화연구 펴냄) 이 만화는 주인공의 명성에 어울리는 ‘저항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은 1968년 만화가 나오자 마자 배포를 금지하고 원본은 아예 없애 버렸다. 스토리 작가 엑토르 오에스테르엘드(1919∼?)는 군부 독재가 살벌한 광기를 내뿜던 1973년,네 딸들과 함께 실종돼아직까지 생사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또 그림을 그린 알베르토 브레시아 부자(父子)도 숱한 정치적 탄압과 죽음의공포 속에서 나날을 보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은 게바라의 삶만큼이나 강렬하게 다가온다. 중간 톤이 없이 흑백 선의 강한 대조로게바라의 삶을 조명하고있다. 남성적이고 강렬한 터치와 다양한 구성으로 한편의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을 준다. 게다가 군더더기 없는 오에스테르엘드의 시적인 문장은 독자를 단번에 빨아들여 웬만큼 두툼한 평전이 주는 매력을능가한다. 특히 게바라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연대기적 구성 중간중간에 특정 사건과 관계가 있는 기억을 겹쳐 넣어 전기물이 주는 지루함을 덜어준다.오늘의 영웅이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 가를 이해할 수 있다. 옮긴이 남진희씨는 “이 작품은 특히 게바라의 인간적인면모를 강조하고 있다”면서 “억압에 맞서 싸우는 영웅이기 이전에 사랑으로 봉사하는 휴머니스트로서의 고뇌,예컨대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교전 중인 적에 대해서까지 인간적인 연민의 정을 느끼는 모습이나,동지들에 대한 뜨거운사랑,병들고 지친 사람들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전면에부각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이종수기자 vielee@
  • 안면도서 美해병 사체 발견…6·25 참전 사망 추정

    23일 오후 2시 50분쯤 충남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 두에기해수욕장 해변에서 한국전쟁 당시 숨진 미 해병 조종사로추정되는 사체가 발견돼 경찰과 군,국정원 등 합동신문조가 조사에 나섰다. 최초 목격자 김 모씨(39)는 “해변 모래밭에서 정글화를신은 발 부분의 뼈가 땅위로 나온 사체를 발견,경찰에 신고 했다”고 말했다. 합신조는 사체가 묻힌 모래밭 지하 1m를 파 보니 50여년된 것으로 보이는 유골이 흩어져 있었으며 주변에 미 해병임을 알 수 있는 인식표(James,118-23-85 US.MC)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합신조는 사체 주변에 1951년 9월경에 제작된 천으로 된 영문 표기의 한국지도와 낙하산 줄을 발견,이 사체가 6·25 당시 한국전에 참가한 미 해병이 비행기에서 비상 탈출하다 추락한 것으로 보고 신원파악에 착수했다. 태안 이천열기자 sky@
  • 美서 살신성인 ‘의로운 청년’ 조창배씨

    미국 유학생 조창배(20)씨가 최근 캘리포니아 북부 유레카 인근 강가에서 익사직전의 한국 여학생 2명을 구하려다목숨을 잃어 살신성인의 귀감이 되고 있다. 현지 일간 타임스 스탠더드는 ‘20세 한국인이 영웅처럼죽었다’라는 제목으로 조씨의 희생정신을 크게 보도했다. 조씨는 지난 13일 험볼트대에 어학연수중인 한국 학생 9명과 함께 윌코 크릭 인근 킴투 비치 트리니티강으로 놀러갔다가 여학생 2명이 급류에 휘말려 강 한가운데로 떠내려가자 수영을 못함에도 불구하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구하려다 그만 익사하고 말았다.여학생 가운데 1명은 조씨와 인근 주민들의 도움으로 구조됐으나 조씨와 다른 여학생 1명은 끝내 물에서 나오지 못했다.험볼트 카운티 경찰국 잠수부들은 수심 약 4m의 강바닥에서 조씨의 시신을 찾아냈다. 조씨가 어학연수 및 강의를 받았던 험볼트 주립대는 17일교내 교회에서 부총장과 학생,주민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장례를 치러 조씨의 숭고한 죽음을 기렸다. 조씨는 지난 2월초 유학와 1년과정 어학연수를 3개월만에끝내고기계공학 강의를 듣던 중 참변을 당했다.조씨에게숙식을 제공하며 4개월간 함께 생활했던 케빈 샘셀은 “창배씨가 아주 성실하고 모범적인 청년이었으며 나이에 비해매우 똑똑했다”고 술회했다. 조씨 부모는 18일 화장한 아들의 유골을 안고 귀국길에 올랐다.열교환기제작업체를 경영하는 조씨의 아버지(50·서울 거주)는 유골을 납골당에 안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mip@
  • [오늘의 눈] 日이여, 용서할수 있게 해달라

    ‘고개 숙여 용서를 빕니다.-일본의 한 노인이’ 중국 난징(南京)시에 있는 ‘난징대학살기념관’의 담 밑에 늘어선 10여개의 추모비 중 하나에 새겨진 문구다.이곳은 최근 극우로 치닫고 있는 일본이 역사 교과서에서조차소개하지 않은 ‘대학살’의 현장이다. 난징 대학살은 일본군이 지난 1937년 12월13일부터 38년초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30여만명을 무참히 살해한 역사상 유례없는 만행이다.피살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의 기관총 세례를 받았고 ‘살인게임’ 희생양이 돼 목이잘려 나갔다.어떤 이들은 산 채 불태워지기도 했다.몇달 동안이나 시내에 역한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고 한다. 기념관 안내원은 “피살자들이 손을 잇고 늘어선다면 322㎞나 됐을 것이고 흘린 피만 1,200t에 달한다”고 당시의참혹상을 설명했다. 기념관 한켠에 마련된 유골 보존구역에는 대여섯살쯤 돼보이는 아이들의 유골이 발굴 당시의 모습으로 무더기로 전시돼 있다.대부분 극심한 고통과 공포에 시달린 듯 입을 벌린 채 반쯤 흙에 묻혀 있다. 기념관 귀퉁이에는일본인 방문객들이 중국인들에게 참회하는 마음으로 남긴 수천 마리의 종이학과 편지,엽서가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다.현장을 본 사람이면 양심의 가책을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새 역사교과서에서 난징 대학살 자체를 전면 부정했다.그뿐 아니다.꽃다운 처녀들을 전쟁터로끌고가 일본군의 성노예로 삼았던 만행도,조선인 수천명이숨진 관동대학살도 외면했다.입으로는 세계 평화를 떠들면서 정작 평화의 전제조건인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모른척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피해자인 중국인들은 기념관 곳곳에 ‘용서하자,하지만 잊지는 말자’라는 문구를 남겨 놓았다.세계 평화를위해 가해자들의 후안무치(厚顔無恥)를 인내하고 있는 것이다. 관람을 마치고 기념관을 나서는 순간,‘정작 일본은 대학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용서할 수 있는지’,‘가해자가 반성은 커녕,과거사를 미화하는데 무작정 용서해야하는가’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일본이여,극우 세력이여,제발 과거사를 인정해 우리가 당신들을 용서하게 해달라!중국 난징에서 박록삼 사회팀기자youngtan@
  • 日 국립묘지 건설론 급부상

    일본 정가에서 국립묘지 건설론이 활발히 타진되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여야가 대안으로제시하고 있는 방안이다.종교색을 없애 정교(政敎) 분리라는 헌법 정신에도 맞추고 주변국으로부터 반발도 사지 않는국립묘지를 지어 총리를 비롯한 각료들이 당당히 참배를 할수 있도록 하자는 게 건설론의 취지다.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25일 “이전부터 생각해 왔다”면서“만들 거라면 좋게 만들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외상도 국회 외교·국방위원회에서“어떤 일이 있어도 총리가 건설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국립묘지 건설에 적극적인 민주·자유·사민 등 야 3당도공동으로 법안을 제출할 방침이다.‘종전 기념일’(8월15일)만 되면 한국·중국 등 주변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둘러싼 시비의 뿌리를 자르겠다는 게 법안제출의 이유다. 그러나 건설에 착수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정부의 한 관계자는 “도쿄에 대규모 묘지를 지을 빈터가 없을뿐 아니라 야스쿠니 신사에 있는 유골을 옮기는데 신사측이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대 관심은 국립묘지를 짓더라도 야스쿠니 신사에 있는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A급 전범 14명의 위패를 옮기느냐여부다.주변국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민감한 이유가 바로이들 A급 전범에 대한 참배에 있는 만큼 국립묘지가 건설되더라도 전범의 위패를 옮기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marry01@
  • [공직자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호국보훈의 달을 앞두고

    가정의 달 5월이 가고,국가와 민족을 떠올리게 하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이 다가오고 있다.가정은 가족 상호간의 사랑과 이해를 바탕으로 유지된다.범위를 넓혀 국가나 사회가 유지·발전하기 위해서도 구성원간에 신뢰와 헌신이 전제되어야 한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을 모신 묘역과 위패봉안관,그리고 각종 현충시설물들이 자리잡고 있다.위패봉안관에는 6·25전쟁 당시 시신을 찾지 못한 10만여 용사들을 위패로 봉안하고 있고,지하 납골당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6,000여 무명용사들의유골이 안치되어 있다.그리고 애국지사 묘역에는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하였으나 유해를 찾지 못하고 후손도 없는 순국선열 132분을 위패로 모시고 있는 무후선열제단(無後先烈祭壇)이 있다. 이분들에게 있어 개인의 삶과 조국이라는 존재는 무엇이었던가,곰곰이 생각해 본다. 6·25전쟁이 발발한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병상에서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전상 군경과 사랑하는남편과 자식을 잃고 외롭게살아가는 유족들이 있다.그러나갈수록 공동체를 위한 희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약해지고단순히 잊혀져 가는 과거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국가를 위한 희생을 제대로 평가해 주는 사회가 진정으로정의가 살아 있는 사회이다.국가에 대한 공훈과 희생에 상응하는 보상과 국민적 예우가 뒤따를 때,사회지도층의 병역비리 등 도덕적 해이현상도 줄어들고 국가공동체는 계속 발전할 수 있다.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을 보상하고 예우하는국가보훈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재 우리사회는 지역·계층·세대간 갈등과 집단이기주의가 만연하여 국가발전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이러한 현상은 제도나 구조적인 문제에도 원인이 있겠으나,건전한국민정신과 공동체의식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데 더 큰 원인이 있다.국민 모두가 자신의 이익보다 남을 배려하는 공동체의식을 키워 나갈 때 우리 사회는 한단계 도약할 수 있다. 국민역량의 결집과 공동체 규범의 밑바탕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나라가 어려울 때 분연히 떨쳐 일어난위국헌신의정신이다.안중근 의사께서 좌우명으로 삼았던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見利思義 見危授命)”라는 말씀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때이다. 오는 6월에는 국민 모두가 국립묘지의 위패봉안관이나 무후선열제단에 가서 애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빌고 그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이재달 국가보훈처장
  • [우리 지자체 최고] (22.끝)전남 장성군 봉사행정

    옛날 시골에는 마을마다‘상포계’란 게 있었다.초상이나면 열일 제쳐두고 부녀자와 청·장년들이 달려들어 일을나눠 처리하는 품앗이 성격의 미풍양속이었다. ‘홍길동의 고장’으로 잘 알려진 전남 장성군은 공무원들로 이 상포계를 원용한‘신상포계’를 만들어 참봉사행정을 실천하고 있다.98년부터 운영 중인‘홍길동 장례 도우미제’가 그것. 전형적인 농촌인 장성군도 주민들의 노령화 추세가 심각하다.반면 3일장을 고수하는 전통 장례문화는 요지부동인게 현실이다. 현재 장성군 관내 65세 이상 노인은 군 전체 인구의 15.2%나 된다.이 비율은 96년 12.3%에서 지난해 15.2%(8,493명)로 높아져 숫자상 1,300여명이 증가했다.하지만 사망자는96년과 마찬가지로 지난해에도 1.0%로 같은 비율이었다. ‘홍길동 장례 도우미팀’의 구성원은 본청에서 차출된공무원 6명이 전부로 행정 및 기술 지원 3명씩으로 분담된다. 이들은 공휴일도 없이 24시간,365일 가동되는 전천후 팀이다.특히 장례에 필요한 장비와 용품을 모두 싣고 다니기때문에 기동성을 자랑한다.차량 2대,이동 천막 12개,식탁24개,분향소 용품 일체,냉·온수기 4대,난로·온풍기·선풍기·전화기 각 4대,전기 가설용품 일체 등이다. 도우미팀은 어느 집이든 초상이 난 동네의 이장이나 반장이 전화를 하면 즉각 출동한다.현장에서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4시간 안에 모든 준비를 마친다.천막과 분향소 설치,부고장 인쇄 및 발송 등등. 또 염습에서 입관,상여가 나가는 발인,사망 신고까지 3일동안 꼬박 날밤을 새가며 상가일을 내 일처럼 치러낸다. 이뿐만 아니라 각 읍·면의 농협과 연계해 수의와 상여등을 싼 값에 구입할 수 있도록 중개하기도 하고,한국통신의 협조를 받아 임시 전화를 가설,3일간 시내·외전화를맘대로 쓰도록 파격적인 편의도 제공한다. 도우미팀 이용 실적은 98년 35가구,99년 58가구,2000년 121가구로 계속 증가세에 있고 올해도 이미 35가구가 이들의 신세를 졌다. 장성군은 이들의 도움을 비용으로 환산하면 장례식장 1일사용료 23만원 등 상가당 3일 기준으로 약 70만원에 이를것으로 추산하고 있다.98년 이후 249건이니까 총 1억7,000여만원인 셈이다. 군은 또한 토털 맞춤형 서비스의 하나로 95년부터 영세노인에게 영정사진을 무료로 제작,모두 1,732개를 제공했으며 매장 중심의 장묘문화를 납골당으로 대체하기 위해 98년 8월 전국 처음으로 백양사에 납골당을 만들기도 했다. 5억9,700여만원을 들인 납골당은 건평 85평에 유골 1,720기를 안치할 수 있는 규모로 현재 165기가 봉안돼 있다. 이처럼 피부에 와닿는 참봉사행정으로 장성군은 98년 민원행정 종합평가 전국 최우수군,99년 민원행정 세계화 전국 시범기관으로 지정된 바 있다.또 98년부터 3년 연속 전남도 지방행정 종합평가에서 최우수 및 우수군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장성 남기창기자 kcnam@. ■성공하기까지. 장례 도우미제의 일등 공신은 단연 팀원인 공직자들이다. 이들의 투철한 사명감이 성공의 원동력이 됐다. 사실 처음에는 도우미팀에 가려는 공직자가 없었다.야간과 공휴일에도 출동해야 하는 등 정신적·육체적 중압감이컸기 때문에 직원들이 너나없이 기피했다. 그래서 도입한 것이 인사고과 반영.여기에 시간외수당 등으로‘일한 만큼 보답한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하지만 이번엔 관내 장례용품 업체들의 반발이 문제였다. 업체들은 행정기관에서 장례용품 등을 무료로 지원하자 영업 손실 보상을 요구했다.“두고 보자”는 협박까지 나왔다.그러나 간담회를 통해 지속적으로 설득,결국 민·관 협조체제를 이끌어냈다. 이렇게 해서 주민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자 행정기관을 대하는 주민들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그동안 행정에 무관심했던 주민들이 군에서 하는 일이라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거들었다. 장례 도우미의 혜택을 받은 상가에서는 감사의 편지가 이어졌다.장성군민으로서 긍지와 자긍심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김흥식(金興植)군수는“장례 도우미는 전통 장례를 선호하는 농촌 실정에 잘 맞아 주민들이 반긴다”며“이같은제도가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전통 문화정신을 계승,건강한사회를 만들어 가는 촉매제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성 남기창기자
  • 부산서도 ‘학살유골’ 발견

    6·25전쟁중 좌익계열인 보도연맹에 가입했다는 이유 등으로 민간인이 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학살된 뒤 암매장된 현장이 부산에서도 처음으로 발견됐다. ‘6·25 피학살 양민 부산·경남지역 유족회’(회장 송철순)는 8일 부산시 사하구 구평동 구평초등학교 뒤편 야산에서 당시 목격자 이윤관씨(74·사하구 구평동)의 진술을 토대로 중장비를 동원,확인작업을 벌인 결과 희생자들의 것으로 보이는 고무신과 상당수의 유골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유족회측은 이곳에서 150여명이 학살된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이씨의 진술에 따르면 지난 50년 9월쯤 군과 경찰이 사하구 구평초등학교 뒷산 17의 4 일대에 30여㎡ 크기의 구덩이3곳을 판 뒤 1개월에 걸쳐 부산형무소 수감자 복장을 한 민간인 150여명을 총살한 뒤 암매장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당시 군경은 군용트럭 3∼4대를 동원,한번에 50∼60명씩 끌고와 4열종대로 꿇어앉힌 뒤 2명씩 사살했으며 희생자 중에는 부녀자도 섞여 있었다고 말했다. 부산 이기철기자 chuli@
  • ‘경산 학살’전범재판 상정

    한국전쟁 당시 양민이 대량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북경산시 평산2동 폐 코발트광산에 대한 유골발굴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경산시민모임 양민학살대책위원회(위원장 張明守·44)’는 12일 이미 발굴한 유골 수백여구 가운데 10여구를 수거해 연세대 법의학팀에 유전자 감식을 의뢰했다. 양민학살대책위는 14일쯤 성별과 연령,사망시기,사인 등에대한 감식결과가 나오는 대로 주민 증언 등과 함께 오는 6월23일 뉴욕에서 열릴 예정인 국제전범재판에 제출할 계획이다. 경산 김상화기자 shkim@
  • 학살양민 추정 유골 수백구 발굴

    한국전쟁 당시 양민이 대량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북경산시 평산2동 폐 코발트광산에 대한 유골 발굴작업을 벌이고 있는 경산시민모임 양민학살 대책위원회(위원장 張明秀·44)는 11일 현장에서 유골 수백여구를 발굴했다. 대책위는 “코발트 광산 입구에서 100여m 지점에 가로막혀있던 두께 2m가량의 콘크리트를 폭약으로 발파하고 갱도를따라 80여m 들어가보니 유골 수백여구가 흩어져 있었고 일부는 총알이 박힌 것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발굴팀은 충북대 중원문화연구소와 연세대 법의학팀을 동원,발견된 유골을 수습하는 한편 이들의 사망시기와 사인 등을 정확히 규명하기 위해 감식작업을 벌이기로 했다. 시민대책위와 양민학살 피학살자 유족회(회장 柳閏巖·65)는 지난 9일 코발트 광산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작업에 착수했었다. 시민대책위 장 위원장은 “50년대 보도연맹 가입자와 대구교도소 재소자 등 대구 인근 주민 3,500여명이 군용트럭으로실려와 학살당했다”고 주장하고 “사실 확인작업과 함께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발굴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또 그는 “지난 50년 7월 이승만 정권이 극동미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에게 군사 작전권을 이양한 뒤 경산 양민학살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번 발굴작업에는 미군양민학살 진상규명 전민족특별위원회(위원장 李鍾隣·67)와 미국 ‘평화를 위한 재향군인회’소속 국제조사단 3명도 참관했다. 한편 이 광산에서는 지난해 1월 학살사건 이후 처음으로 입구에서 50여m 떨어진 지점에서 유골 40여점이 발견된 바 있다. 경산 황경근기자 kkhwang@
  • 위안부할머니 中서 ‘유골 귀환’

    일본군 위안부 출신으로 50여년간 중국땅에서 고향을 그리며 한많은 삶을 살다 숨진 조윤옥(趙允玉·76) 할머니가 생전에 그리워했던 고국땅을 살아서 밟지 못한 채 유골로 돌아오게 된다. ‘대구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중국 지린성 훈춘시의 한 양로원에서 지난달 6일 쓸쓸히 생을 마감한 조 할머니의 유골을 할머니의 조카 조두천씨(43)와 함께 오는9일 국내로 봉환한다고 1일 밝혔다.유골은 조 할머니의 고향인 대구시립 납골당에 안장될 예정이다. 조 할머니는 대구시 남구 대명동에서 살다 가정형편 때문에 8살때 함북 북청의 한 가정집에 입양된 뒤 15살때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가 만주와 훈춘 등지로 옮겨 다녀야만 했다. 한국정신대연구소는 98년 현지 조사활동을 통해 조 할머니를 처음 확인했다. 조 할머니는 당시 위안소 관리인이던 일본군인이 임신 방지를 위해 수은이 든 알약을 복용케 하거나 수은을 컵에 담아끓여 그 기체를 몸에 쐬게 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고발했었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 [대한광장] 이수현군의 죽음과 일본

    지난달 26일 저녁 도쿄 신오쿠보(新大久保)역에서 술에 취해 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가 목숨을 잃은 이수현군의 죽음은 그야말로 일본열도를 강타했다.어떤 회의에 참가하려고 도쿄에 가 있던 우리 일행은 29일 저녁 신오쿠보역에서 그를 보내는 노제에 참석했다.어머니는 아들의 사진을 가슴에 안은 채 쓰러질 듯했고 아버지는 유골을 담은 흰상자를 안고서 그래도 의연한 자세를 취하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일본신문은 연일 대서특필하면서 아버지의 말로 “내 아들의 용기 있는 행동에 충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내 아들은꿈을 가지고 일본에 공부하러 왔다. 그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이렇게 여러분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서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위로를 받는다” “일본 국민이 함께 울어준 것으로 마음이 좀 가라앉는다”고 전했다.또 어머니는 “내 아들은 장래 큰 일을 해낼 것이라고 기대했다.그런데 이렇게 빨리 가다니 너무나 처참하다”고 하면서 간밤에는 아들이 꿈에라도 찾아올까 했으나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수현군의 죽음에 일본국민의 눈이 쏠려서 그만 그와 함께 생명을 잃은 또 한 사람의 일본인 카메라맨 세키네시로(關根史郞)씨의 의로운 죽음은 그다지 화제가 되지 않는것 같아 좀 서글픈 생각마저 들었다.세키네씨는 47세, 이수현군은 26세.이군의 죽음은 너무나 젊은 죽음이었다.그와 사랑을 나눈 여자 친구가 “수현아 난 네가 정말 좋은 일 했다는 것 알아.하지만 남아있는 나는 어떡하니? 어떻게 살아야해… 다시 되돌리고 싶어.타임머신이 있다면…”하고 인터넷에 올렸다니 그 얼마나 애절한가. 이수현군의 죽음,그것은 인정이 메말라가는 세상에 던진 충격이었다.무엇보다도 한 한국인 청년의 죽음이었다는 데 일본인들은 놀람을 금할 수 없었다.그러니까 아사히(朝日)신문은 톱기사로 다루면서 ‘같은 눈물 일한(日韓)이 함께’라고제목을 달았다. 그리고 일본 월드컵 조직위원회가 2002년의월드컵 명칭을 일본국내에서 ‘한일’이 아니라 ‘일한’으로 하려는 데 대해서 사설을 쓰고 그런 아집은 버리라고 권고했다.“이수현씨의행위는 양국민의 가슴에 감격을 안겨주었다”고 하고 “일본어 표기에 앞이냐 뒤냐 하는 정도의 문제로 귀중한 것을 깨서는 안 된다”고 끝을 맺었다. 이 사설은 또한 이 표기문제에 대해서 한국신문이 신중한태도를 견지하고 보도를 자제하고 있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한일 관계란 정말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처럼 취약한 것이라고 해야 할런지 모른다.그래서 다시 한일관계가 악화해서는안 된다고,일본의 언론도 한일 양국이 이수현군의 국경을 넘은 의로운 행위에 눈물을 함께하자고 더욱 호소하는 듯했다. 문득 나는 2002년부터 사용할 것을 목표로 한다는 이른바‘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회’라는 우파 세력이 만드는 중학교 역사 교과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미 그 내용은 널리 알려져 있고 일본 정부의 검인정 당국이 137군데를 정정하라고 했다는 말도 나돌고 있다.그것은 한일합방은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고,3·1운동을 비롯하여 종군위안부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일본의 지난날은 유색인종으로서 유일하게 성공을거두어온 찬양할 만한 역사였다고 한다.나치는 유태인을 학살했지만 일본이 중국 난징(南京)에서 20만 중국인을 학살했다니 그것은 전혀근거 없는 날조된 숫자라고 한다. 이수현군의 죽음에 눈물을 함께한다는 일본인과 이러한 일본 역사교과서란 어떻게 연관되는 것일까.죽음에 대해서는눈물을 흘리지만 일본을 우파세력으로 좌우하겠다는 정치적목적은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일까.그것과 이것은 별개의 것. 그리고 정치 또는 권력욕이 스며들면 인간적인 것은 모두 지워지고 만다는 것일까. 이국의 밤하늘 아래 유난히 희게 보이는 이수현군의 유골상자를 바라보는 눈앞에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생각이었다.정말그런 역사 교과서가 나왔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것인가.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심각한 문제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지명관 한림대 석좌교수
  • 위안부 출신 7순 ‘한많은 죽음’

    일본군 위안부로 중국으로 끌려가 50여년간 이국땅에서 떠돌던 대구 출신의 할머니가 고국땅을 밟지 못한 채 쓸쓸하게생을 마감했다. ‘대구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18일 중국지린(吉林)성 훈춘(琿春)시에 사는 위안부 출신 조윤옥(趙允玉·76)할머니가 한 양로원에서 최근 폐암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조 할머니는 북한 국적이라는 이유로 귀국하지 못하다 각계의 도움으로 지난해 12월 중국 국적을 취득하는 등 고국 방문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숨졌다. 조 할머니는 대구시 대명동에서 살다 가정형편 때문에 8살때 함북 북청의 가정집에 입양됐다 15살때 위안부로 끌려갔다. 조 할머니는 98년 위안소 관리인인 일본군인이 임신 방지를 위해 수은이 든 알약을 복용케 하거나 수은을 컵에 담아 끓여 그 기체를 몸에 쐬게 했다고 증언,세상에 충격을 안겨줬다. 시민모임측은 조 할머니의 유골이라도 고국땅에 묻기 위해중국측과 협의하고 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
  • [사설] 세사람이 남긴 시대의 아픔

    세 사람의 죽음이 우리 시대의 아픔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풀어 나가야 할 무거운 과제를 던져 주었다. 일본 군대 위안부로 끌려 갔다가 이국 땅에서 한 많은 삶을마감한 ‘훈 할머니’ 그리고 미국 유학 중 유럽 여행을 갔다가 납북된 한 청년의 사망 소식에 이어 엄혹했던 군사독재시절 실종된 한 노동 운동가가 10년 만에 유골로 신원이 밝혀진 사실 등이 바로 아픔의 사연이다. 18살에 위안부로 끌려가 캄보디아에서 파란만장한 일생을보낸 훈 할머니의 한 서린 삶에도 불구하고 일본 대사관 앞에서는 ‘정신대 시위’가 9년째 계속되고 있다.일본에는 아직도 일제의 침략 전쟁을 부인하고 일본군 위안부 기술을 삭제하는 등의 역사를 왜곡한 교과서가 제작되고 있다.한·일양국의 과거사는 몇푼의 보상이 아니라 진정으로 일본이 역사 앞에 참회할 때 해결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14년 전 납북됐던 이재환씨는 가족들의 송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 과정에서 사망 사실이 확인됐다.그 부모들의오열은 바로 이 시대 분단의 아픔이자 이데올로기 대결의 비극이기도 하다.다시는 이같은 아픔을 우리 후손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서는 안된다.남북 화해협력정책을 추구하는 것도분단의 아픔을 우리 세대에서 끝내게 하기 위해서다. 지난 1992년 8월 실종된 노동 운동가 박태순씨는 실종된 것이 아니고 열차에 치어 사망한 행려병자로 처리돼 벽제묘지무연고 묘역에 묻혔다가 1998년에 화장된 사실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밝혀졌다.특히 이 사건은 사망 당시 지문채취 과정에서 관계기관이 박씨임을 확인하고도 ‘신원불상자’로 처리한 과정이 매우 불투명하다.의혹 투성이인 그의죽음에 대해서는 역사의 진실 규명 차원에서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세 사람이 남긴 이 시대의 아픔은 바로 비극적인 우리 현대사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다시는 이같은 굴곡된역사의 희생자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한·일 과거사 정리,남북 화해의 실현,민주·인권국가 건설 등의 과제를 하루빨리 완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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