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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國戰 정전 50년 양민학살 재조명

    한국전쟁이 끝난지 50년이 지났는데도 몸서리쳐지는 아픔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당시의 양민학살 현장에서 최근 유골이 잇따라 발굴되면서 유가족들을 중심으로 학살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보상,명예회복 요구가 거세게 일고 있다. ■경남 산청 외공리사건 경남 산청군 시천면 외공리 소정골에서는 3년 전부터 매년 4월5일 위령제가 열린다. 소정골에서 양민들이 학살됐다는 소문은 2000년 5월 14일 사실로 확인됐다.진주와 산청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앞장서 현장에서 250여구의 유골과 유품을 발굴했다. ●통비(通匪)로 몰린 마을주민 떼죽음 당시 발굴작업을 지켜본 참석자들은 설마하다 쏟아져 나오는 유골을 보며 치를 떨었다.굴삭기가 땅을 1m쯤 파내려가자 희생자들의 유골이 무더기로 발견됐다.어린이와 부녀자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도 다수 있었다.발굴단은 당초 6기의 무덤을 모두 발굴키로 했으나 1기에서 엄청난 유골이 나오자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발굴된 유골만 수습해 합장하고 작업을 중단했다. 발굴작업을 주도했던 ‘지리산 외공리 민간인학살 진상규명대책위원회’ 김영이 사무국장은 “뒤엉켜 있는 유골을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면서 “예상보다 훨씬 많은 유골이 나와 작업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한국전 당시 거창·함양에서 양민들이 빨치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학살당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낮에는 태극기를 게양하고,밤에는 인공기를 꽂는 상황이었지만 국군들은 양민들을 통비(通匪)로 몰아 무차별 처형했다.당시 열한살이었던 강복석(63·진주시 상봉서동)씨도 “학살현장에서 2시간 정도 총소리가 들렸고,골짜기에서 나온 군인들이 삽과 곡괭이를 강물에 씻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다.이곳에서의 학살은 사건발생 10년만에 신문보도로 드러났지만 이듬해 일어난 5·16쿠데타로 다시 어둠속에 묻혔다. ●유골 쏟아져 작업중단 외공리 대책위는 누가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를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지난 3월 개혁당 김원웅 의원을 통해 국회에 청원도 했다.외공리 대책위 서봉석 실행위원장은 “민간인에 대한 집단학살은 반인륜적인범죄”라며 “한국전이 끝난지 5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진상규명이 안됐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산청 이정규 기자 jeong@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사건 경북 경산시 평산동 폐(廢)코발트광산 인근 대원골에서 최근 한국전쟁 직후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민간인의 두개골·치아 등 25점의 유골과 신발밑창 등 다량의 유류품이 발견됐다.2000년 3월 폐쇄된 코발트광산 입구 및 갱도 속에서 한국전쟁 당시 처형된 희생자들의 유골이 무더기로 발견된 데 이은 것이다. ●70년대 초 정부가 갱도 입구 폐쇄 경산 폐 코발트광산 학살사건의 희생자는 35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이들 대부분은 대구형무소 수감자와 국민보도연맹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이 사건이 터진 것은 50년 8월 중순쯤.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재소자와 보도연맹원들이 북측에 가담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전국적으로 대량 학살이 저질러질 때였다. 학살은 군경이 이들을 폐광산 위 수직갱도 주변으로 끌고가 총살하거나 산 채로 수직갱에 밀어 넣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알려졌다. 이 동네에서 평생을 살아온 김모(73)씨는 “사건 후 폐광산 주변 계곡에서 흘러 나온 물이 온통 핏빛으로 물들고 악취도 심해 농사를 짓지 못할 지경이었다.”며 “그러다 70년대 초에 와서 정부가 갱입구를 시멘트나 흙,철망으로 막아 버렸다.”고 증언했다. 이 사건은 95년 평산동청년회 등이 중장비를 동원,광산 입구를 파내면서 세상에 알려졌다.그러나 이후 5년여간 방치돼오다 ‘경산시민모임 민간인학살대책위(위원장 장명수·47)’가 구성되면서 본격 진상조사에 들어갔다. ●2000년 첫 확인… 본격 진상조사 경산시의회도 지난해 말 ‘경산 민간인학살 특별위원회’를 구성,학살현장 확인 등 조사활동을 벌인 뒤 관련 특별법 제정을 정부에 건의했다.유족과 시민모임대책위는 2000년부터 매년 7월에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경산유족회 이태준(66·민간인 희생자 전국유족회 상임대표) 공동대표는 “군경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문제를 제쳐 두고라도 50여년간 구천을 헤메고 있을 원혼을 달래려면 정부 차원의인도적인 진상규명과 유골 수습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경산 김상화기자 shkim@ ■대전 산내사건 대전 ‘산내학살사건’의 희생자는 7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제주 4·3사건 관련자 300명,여순반란 및 보도연맹사건 관련자 3000여명에다 민간인들도 상당수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건이 터진 것은 1950년 7월 초에서 중순 사이.북한 인민군이 내려오고 있다는 말에 군경이 대전 동구 산내동(당시 충남 대덕군 산내면 골령골) 계곡에 이들을 모아놓고 2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학살을 저질렀다. 첫번째 학살은 7월4일부터 6일까지 사흘 동안 이뤄졌다.대전형무소 수감자 3000여명을 트럭으로 이곳에 실어온 뒤 총살했다.2차 학살은 17일 같은 곳에서 있었다.이 때 여성 등 민간인들도 상당수 포함됐다. ●美국립문서보관소 관련자료 나와 지난해 4월 발굴된 영국 데일리 워커지 앨런 위닝턴 기자의 증언록 ‘나는 한국에서 진실을 보았다.’는 “학살 직후 현장엔 6개 구덩이에 7000여명이 묻혀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그는 “인민군이 금강을 돌파하자 이날 새벽 남아 있던 대전형무소와 인근 교도소 정치범 등을 트럭 1대에 100명씩 모두 37대에 태워 옮긴 뒤 학살했다.”고 덧붙였다. 이 사건은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의 관심으로 바깥에 알려졌다.충북 영동 노근리 학살사건으로 군경에 의한 학살사건이 공론화되자 이 단체는 99년 10월 ‘산내학살사건 민간조사단’을 구성하고 진상조사에 나섰다.같은 해 12월에는 이 사건과 관련된 증거가 나왔다.미국 국립문서보관소의 비밀문서가 해제된 뒤 탐라대 이도영 교수가 아버지를 잃은 4·3사건 관련자료를 뒤지다 이를 발견한 것이다. ●“최고 상층부서 지시” 기록 비밀문서에는 “사흘간 대전형무소 수감자 1800명이 산내에서 학살됐다.”며 “이는 최고 상층부의 지시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적혀 있다.그러나 위닝턴 기자는 증언록에서 “미군의 지시로 일어난 학살사건 중 하나다.”고 밝혀 누구의 지시로 학살사건이 이뤄졌는지는 아직도 불투명하다. 유가족과 대전참여연대는 2000년부터 매년 7월8일 희생자들의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 ■특별법청원 박재욱의원 제주 4·3사건의 진상조사와 명예회복이 추진되면서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한국전쟁 전후의 양민학살 사건에 대한 국회 차원의 관심도 탄력을 받고 있다.개혁당 김원웅 의원 등이 발의한 법률안 2건이 계류돼 있고,경북 경산 등 전국적으로 15곳에 이르는 사건의 특별법 제정 청원이 24건이나 된다. 지난 해와 올해 두 차례 입법청원을 낸 한나라당 박재욱(사진·경북 경산·청도) 의원과의 일문일답. 청원서를 내게 된 배경은. -경산에 코발트 광산이 있었는데 6·25 직후에 3500명 가량이 갱도에서 처형됐다.규모로는 전국에서 제일 클 것이다.3∼4년 전부터 유족과 지역주민들의 제기로 진상조사가 이뤄지기 시작해 경산시의회 등에서 청원이 올라왔다. 요구사항은 무엇인가. -진상조사와 명예회복이다.피해보상까지 해주면 좋지만 현재로선 기념식과 위령탑 건립을 바라고 있다. 사실 이념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당시에는 법도 없었고 재판절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양민이 상당수 무고하게 희생됐을 것으로 본다. 최근 예결위에서도 정부의 지원을 요구했는데. -행정자치부는 당시 사정을 알 수 있는 서류나 증거물이 미비하다며 국회나 기타 신뢰성 있는 조사기관이 진상조사를 실시하면 정부 차원에서 적극 협조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예산 문제다.조사가 시작되면 아마 전국적으로 피해 신고가 봇물처럼 올라올 것이다.일개 부처에서 손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 국회 차원의 조사 활동은. -곧 시작할 것이다.공청회도 해야 한다. 박정경기자 olive@
  • 韓國戰정전 50년 양민학살 재조명

    수많은 양민학살 사건 가운데 제주 4·3사건과 거창 양민학살사건에 대해서만 정부가 조치를 취하자 여기저기서 형평성 문제를 들면서 억울한 원혼을 달래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전국의 대표적 양민학살 현장을 다시 돌아보고,특별법 제정과 관련한 청원을 낸 국회의원과 정부의 입장을 알아본다. ■고양 금정굴사건 경기도 고양시 금정굴 학살사건의 유족들은 지난달 1일부터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요구하는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9·28수복직후 부역혐의자 연행 지난달 30일 농성장에 나온 희생자 유족회 서병규(68) 회장은 15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두 형을 금정굴에서 잃었다고 했다.서씨는 “정부와 정치권은 금정굴 학살 진상조사를 더 이상 미뤄선 안된다.”고 말했다. 1995년 9월 유족들은 자비와 시민단체가 모은 1300만원으로 금정굴 유해 발굴작업을 폈다.당시 발굴된 유골은 모두 153인으로 추정됐다.그중엔 여성 10여명과 어린이 유골도 1구 발굴됐다.금정굴 학살은 50년 9·28 수복 직후부터 그해 11월 초까지 부역자를 색출한다며 경찰과 우익단체가 혐의자를 대거 연행,경찰서 창고에 가뒀다가 살해한 사건이다. 경기도의회는 99년 진상조사특위를 구성,금정굴 사건이 학살이라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경기도는 이에 따라 고양시에 유골의 추가 발굴과 위령사업을 추진하도록 통보했다. ●지하 15m 금광서 400여명 처형 고양시의회는 그러나 ‘금정굴위령사업촉구결의안’을 부결시켰다.유족들과 고양시민회 등이 결성한 ‘금정굴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시의회의 공식 사과와 우익단체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며 분노했다.유족들은 “희생자들은 반공과 국가안보라는 이념의 제물로 희생된 양민”이라며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의 한을 반드시 풀어줘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금정굴 사건 공대위 이춘열 집행위원장은 “금정굴 희생자와 함께 연행된 사람들 가운데 부역혐의가 짙다고 판단된 사람들은 당시 서울로 송치됐고 아이로니컬하게도 대부분 목숨을 건졌다.”며 희생자들이 억울하게 처형됐다는 주장을 뒷받침했다. 금정굴 현장은 1995년 1차 발굴후현재 방수포로 덮여 있다.금정굴은 일제 때 금을 캐기 위해 뚫었던 수직굴로,유골이 발굴된 곳은 지하 15m 지점이다.유족들과 증언자들은 당시 금정굴로 끌려간 이들이 400여명에 이른다며 추가 발굴도 요구하고 있다. 입구엔 장승 조형물이 세워졌고 철제 안내문과 안내판이 서 있다.유족들은 인근 창고를 사무실로 쓰면서 현장을 지키고 있다. 고양 한만교기자 mghann@ ■나주 세지면 동창교사건 전남 나주시 세지면의 일명 ‘동창교 양민학살 사건’(51년 1월20일) 희생자는 136명.면 소재지인 오봉·벽산리 300여가구 주민 가운데 어린이와 노약자를 뺀 젊은이들이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살육전에 희생됐다. 이들은 대낮에 “동창교 아래에서 강연이 있다.”며 위협하는 국군 제11사단 20연대 2대대 5중대 소속 군인들의 총칼 아래 억울하게 죽어갔다.군인들은 함평에서 영암 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국사봉의 빨치산을 토벌하러 가던 길이었다.(육군 전투상보 기록) ●주민 5열로 세운뒤 총난사 “지금도 그 때만 생각하면 몸이 떨린다.”는 조기영(73·세지면 벽산1구)씨는 당시 22살 청년으로 현장에 끌려갔다가 ‘경찰가족’이라고 거짓말해 사지(死地)를 벗어났다.현재 세지우체국 담벼락에 몸을 숨긴 그는 “군인들이 동창다리 밑으로 주민들을 5열횡대로 세운 뒤 다리 위에서 M1소총과 기관총으로 난사한 뒤 인근 논과 밭,산에서 일하던 주민들까지 잡아죽였다.”고 증언했다.이어 “당시 세지초등학교 박모 교사의 부인을 총으로 쏜 군인들이 등에 업혀 울던 세살바기마저 사살했다.”고 몸서리쳤다. 이후 47년간 숨죽이며 살던 세지면 주민(37명)들은 1998년 7월,‘세지 동창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 추진위원회(위원장 이상계·46·나주시의원)’를 출범시켰다.이어 유족회를 만들고 2000년부터 해마다 합동위령제(음력 12월12일)를 지내고 있다.내년에는 위령탑을 세울 계획이다. ●“주검 일일이 확인사살” 이상계 추진위원장은 “군인들은 총을 쏘기 전 주민 5명을 가려내 소를 잡아 먹고 일일이 주검을 들춰가며 확인사살까지 자행할 정도로 인간 이하의 행동을 했다.”는 증언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 추진위원장은 “한국전쟁의 동일선상에서 자행된 함평 양민학살 사건은 60년 6월 국회에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진상조사가 이뤄졌으나,동일부대의 만행으로 저질러진 동창 양민학살사건은 조사마저 안돼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나주 남기창기자 kcnam@ ■전주형무소 사건 한국전쟁 발발 직후 전북 전주시 전주형무소에서 복역 중이던 좌익 정치·사상범 1400여명이 군경에 의해 학살됐다는 증언과 자료가 나와 한국사에 또 하나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당시 형무관 “4차례 자행” 증언 당시 전주형무소 형무관이었던 이순기(78·전주시 완산구 효자동)씨는 “50년 6월 26일부터 전주가 인민군에게 점령당한 7월 20일까지 4차례에 걸쳐 좌익 사상범들이 퇴각하는 군경에 의해 집단 살해됐다.”고 증언했다.전쟁이 터진 다음 날인 26일 상부로부터 좌익 사상범에 대한 ‘예비검속령’이 떨어졌고,이날 저녁부터 3년 이상 장기복역한 사상범이 끌려나가기 시작했다는 것. 그해 7월 4일 이씨는 사상범 40명이 5명씩 끈으로 묶여 실려가는트럭에 동승했다.전주농고 동문 쪽 야산에서 군인들이 미리 파놓은 구덩이 앞에 죄수들을 나란히 세우고 기관총으로 쏘아 살해했다고 증언했다.이씨는 “사상범들은 현재 전북대가 있는 건지산,농협전북본부와 완주군청이 있는 자리,진안으로 나가는 소리개재 등으로 끌려가 살해되고 그 자리에 묻혔다.”고 말했다.특히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 황방산에 묻힌 시신들은 막판에 재판도 받지 않고 끌려가 죽은 사람들이라고 밝혔다.이들은 좌익계통 사람들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있던 억울한 사람들이었다. ●“좌익 접촉” 이유 재판없이 처형 “7월 16일 전주를 떠났다가 10월 13일 다시 돌아와 보니 전주교도소 주변에서 인민군과 함께 철수하던 좌익들이 우익인사 400명을 죽여 시신들이 수습되고 있었습니다.” 한편 진보잡지인 ‘월간 말’은 5월호에 한국전쟁 당시 전주형무소 집단학살 사건의 처형장으로 지목됐던 전주 황방산 부근을 발굴한 결과 수많은 유골을 찾아냈다며 이를 다룬 미국 정부문서보존소 사진을 공개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 ■정부 대책 없나 정부는 다수의 양민학살 사건에 대해 정부 차원의 추가 대책을 마련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양민학살 관련 정부지원 현황 대규모 민간인 희생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작업은 행정자치부 산하 ‘4·3사건 지원단’과 ‘거창사건 지원단’에서 맡고 있다.4·3사건이 한국전쟁 이전에 불거졌다는 점을 고려하면,전쟁 당시의 민간인 희생과 관련된 정부지원단은 거창사건이 유일하다.지원단의 업무는 해당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묘역조성사업 등이다.피해보상 문제는 제외됐다. 거창사건 지원단의 경우 1996년 ‘거창사건 등 관련자 명예회복 특별조치법’이 제정됨에 따라 구성됐다.지원단은 그동안 거창사건과 관련된 피해접수자 557명 가운데 548명,산청·함양사건 피해접수자 399명 중 386명에 대해 각각 명예회복을 마쳤다.현재는 묘역조성사업을 추진 중이다. 4·3사건 지원단은 99년 제정된 특별법에 따라 구성돼 그동안 1만 4028명의 피해신고를 받았다.이 가운데 2778명을 희생자로 결정했으며,오는 2004년 말까지 모든 접수자에 대한 결정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다른 피해자들과 형평성 문제 정부는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의 어려움,전쟁 당시 다른 피해자들과의 형평성 문제 등이 얽혀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어 난감한 입장이다. 거창사건의 경우 당시 이루어졌던 군사재판을 근거로 진상규명 등을 했지만,양민학살사건 대부분은 관련 기록이 전무한 실정이다.따라서 진상규명작업이 유가족들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객관성 확보가 어렵다는 것이다. 100만∼200만명으로 추정되는 전쟁 당시 민간인 희생자들의 형평성 문제 등을 고려,희생자 1인당 1억원씩 보상한다해도 최소 100조원이 필요해 국가재정에서 충당이 불가능하다.게다가 양민학살사건은 군의 작전과정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정확한 진상조사를 위해서는 국방부가 나서야 하지만,양민학살 인정은 군의 명예 실추와 직결된다는 부담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유가족들의 억울함을 이해하지만,정부가 대책 마련에 앞장 서기도 어려운 입장”이라면서 “국회 차원의 정치적인 판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장세훈기자 shjang@
  • 의문사 김두황씨 고대 명예졸업장

    지난 83년 강제 징집된 뒤 군부대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한 김두황(사진·당시 22세)씨에게 모교인 고려대가 명예졸업장을 수여한다. 고려대는 2일 “최근 교무회의를 열어 올 여름학기 졸업식 때 김씨의 유가족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해 의문사진상규명위의 조사 결과 학생운동에 적극 가담하다 징집당했다는 이유로 민주화 운동 관련성을 인정받았다.
  • 공직자들 잇단 수난

    26일 낮 12시쯤 김기옥(金基玉) 대구시 행정부시장이 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 유가족 40여명에 의해 시민회관 소강당 1층의 희생자대책위 사무실에 끌려가 8시간여 동안 감금당한 뒤 풀려났다. 김 부시장은 경찰의 중재로 풀려난 뒤 탈수증세를 보여 경북대병원에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감금 사태는 일부 유가족들이 대구시민회관 주차장에 합동분향소와 별도의 분향소 설치를 요구하며 대구시 공무원들과 실랑이를 벌이던 중 벌어졌다. 김 부시장을 감금한 유가족들은 장례를 치르지 않은 희생자 유족 중 일부로,별도의 합동분향소 설치를 요구했다.그러나 대구시 측이 이를 거부하자 집단행동을 벌였다. 유족들은 “대구시 직원들이 철거반처럼 몰려들어 시민회관 주차장에 설치하려던 분향소를 뜯어내려 해 불상사가 일어났다.”며 “김 부시장을 폭행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대구시와 유가족들을 대상으로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 중이다.대구지하철 참사 사망자 191명 중 88명만 장례가 치러졌고,나머지 희생자들은 장례절차 문제 등으로 계속미뤄지고 있다. 이에 앞서 같은 날 오전 3시쯤 경북 울진군 북면 D호텔 327호실에 투숙한 한국수력원자력㈜ 최양우(崔洋祐·60) 사장이 울진 핵폐기장반대투쟁위원회 간부인 주모(37)·전모(42)씨 등 주민 2명에 의해 감금당한 뒤 폭행당했다. 주씨 등은 최 사장이 묵고 있는 호텔 객실에 회사 직원을 가장해 들어가 “울진에 핵폐기장을 건설하지 않겠다는 당초 약속을 지키고 이를 정부에 건의하라.”며 윽박질렀다.40여분간 최 사장을 협박하던 주씨 등은 이 과정에서 ‘이쑤시개’로 최 사장의 옆구리를 찔렀다는 것이다.최 사장은 이들의 폭행에 못이겨 “요구를 받아들이겠다.”며 협조각서를 써 준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산업자원부 산하기관으로 원자력발전소 관리와 함께,정부가 선정한 방사성폐기물관리시설의 건립 후보지에 대한 주민동향 파악 및 설득작업을 맡아왔다.최 사장은 지난 25일 울진에 도착했다. 경찰은 27일 최 사장과,자진출두한 주씨 등을 대상으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대구 울진 김상화기자 shkim@
  • [사설] 극단으로 치닫는 집단주의 행태

    우리 사회의 집단주의 행태가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공직자 등을 감금하거나 신체적 폭력도 서슴지 않고 있다.이번엔 국내 원자력 발전소를 총괄하고 있는 산업자원부 산하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경북 울진을 방문했다가 어처구니없는 봉변을 당했다고 한다.지역 핵폐기장반대투쟁위 간부 2명이 꼭두새벽 잠자고 있는 호텔에 무단 침입해,40여분을 감금한 채 ‘이쑤시개'로 보이는 예리한 물건으로 옆구리를 찌르며 울진에 핵폐기장 건설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강요했다는 것이다. 요즘 경향 각지에선 엄정해야 할 법질서를 위협하는 집단주의의 극단적 행태가 꼬리를 물고 있다.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사건이 있던 날,대구에서는 부시장이 지하철 참사 희생자 일부 유가족에 의해 8시간이나 감금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서울에선 주변 지역의 반발에 부딪혀 사스 전담 병원 지정이 유보됐고,인천에선 공무원노조 소속의 부하 직원들이 시장의 구청 연두 방문을 저지하며 승용차에 소금을 뿌리는 사태까지 있었다. 집단주의의 극단적 행태가 더 이상 묵과되어선 안 되겠다.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집단 행동을 하더라도 최소한 지켜야 할 규범이 있는 법이다.법질서마저 무시하려 든다면 더더욱 용납될 수 없다.집단주의에 대한 가치관도 바로 세울 때가 됐다.한동안 실정법 위에 ‘떼법’이 있다는 말이 있었다.다중의 힘이라면 억지를 부려도 통한다는 온정주의를 비꼰 지적이다.사법 당국은 극단적인 집단주의 행태에 대해 그 책임을 엄히 물어야 한다.건강한 사회 기풍이 자리잡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 유가협, 법인으로 재탄생

    지난 86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열사의 부모들을 중심으로 출발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가 법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사단법인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현판식이 열린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유가협 사무실 ‘한울삶’앞마당에는 유가족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한상범 위원장 등 관계자 50여명이 모여 새 출발에 대한 감회를 나눴다. 초대 이사장으로 선출된 박종철 열사 아버지 박정기(74)씨는 기념사를 통해 “자식을 먼저 보낸 지난 17년 동안의 한이 이제서야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설 수 있게 됐다.”며 소감을 밝혔다. 구혜영기자 koohy@
  • 이주일기념관 춘천에 조성

    코미디언 고(故) 이주일씨를 기리는 기념관과 유니버설 코미디 파크가 강원도 춘천 고슴도치섬에 조성될 전망이다. 가칭 ‘춘천 고슴도치섬 유니버설 코미디 파크 준비위원회(위원장 최동철)’는 유가족과 협의,46만 2000㎡ 규모의 고슴도치섬에 이주일 기념관과 유니버설 코미디 파크를 조성키로 했다고 10일 밝혔다.
  • ‘17년전 악몽’ 화성 연쇄살인사건 / 그곳은 아직도 떨고 있다

    장기미제사건은 유가족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엄청난 심리적 후유증을 남긴다는 점에서 폐해가 심각하다.강력 사건의 범인은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사회적 인식을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들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공동체의 노력도 절실하다는 지적이다.80,90년대 미궁에 빠진 대표적 강력사건인 화성연쇄살인과 이형호군 유괴피살의 ‘사건 이후’를 점검하고,사회적 예방책과 치유방안을 진단해 본다. 화성은 아직도 떨고 있다.86년 9월부터 91년 4월까지 살인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부녀자 10명이 잔혹하게 살해된 경기도 화성 주민들의 고통은 여전히 극심하다.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살인마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몰라 밤이면 공포에 휩싸인다.유족들의 가슴 속에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앙금처럼 남아 있다. ●시효없는 유족들의 고통 “범인 잡는 공소시효는 지났다지만 딸을 잃은 마음의 생채기에 시효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8일 경기 화성시 정남면에 사는 할머니 김모(76)씨는 아들 이모(52)씨와 함께 집 앞 공터에서 수십장의 빛바랜사진과 옷가지를 태우며 울먹이고 있었다.회한이 서린 집을 부수고 새로 집을 짓기 위해 공사를 하다 발견한 딸의 흔적이었다.사진 속에서는 86년 12월 밤에 귀가하다 처참히 살해된 김씨의 딸(당시 23세)이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딸을 잃은 후유증으로 하루하루를 심장약으로 버티고 있다는 김씨는 “죽을날이 가까워 이젠 가슴속의 딸을 그만 놓아주기로 했다.”면서 “딸한테 가기 전에 범인이 잡히는 모습을 꼭 봐야 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아들 이씨는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동생의 사진과 유품을 버렸는데,어머니가 일부를 17년 동안 몰래 간직하고 있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같은 해 인근 태안읍에서 딸 권모(당시 25세)씨를 잃은 소모(72·여)씨는 고통을 견디다 못해 10년전 화성을 떠나 경기 평택시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소씨는 “지금도 고향인 ‘화성’ 얘기만 들으면 가슴이 떨려 밤잠을 설친다.”면서 “이사한 뒤에는 딸의 유골이 뿌려진 고향 근처엔 가지도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여전히 불안한 주민들 모두 5명의피해자가 발생했던 태안읍 일대는 최근 택지개발 붐으로 사건 현장이 거의 다 아파트건설 현장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동네 어귀에서 만난 주민 김모(42·여)씨는 “아직도 불안과 공포는 여전해 밤에는 절대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손사래를 쳤다.그는 지금도 전화기 버튼 하나만 누르면 순찰대 번호로 자동 연결되도록 단축 다이얼을 지정해 놓고 있다. 두 명의 여학생이 희생된 태안읍 A중학교에서도 어두운 흔적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노초록(15)양은 “가끔 친구들끼리 17년전 희생당한 선배들이 공부하던 교실과 책상을 가리키며 ‘우리도 혹시 비슷한 피해를 입지 않을까.’라며 수군거린다.”면서 “선생님들도 틈만 나면 어두워지기 전에 귀가하라고 당부한다.”고 말했다. ●귀가용 렌터카와 상담소에도 주민 발길 잇따라 어둠이 밀려오자 화성 일대에는 자체 조직한 ‘민간 자율방범대’ 대원들이 승합차를 타고 학교 주변이나 농지 등 우범지역을 순찰했다.정남면 자율방범대 윤태준(45·사업) 대장은 “으슥한 산길과 가로등이 없는 취약지역이 많아 주민들이 불안해한다.”면서 “부족한 경찰 인원으로는 서울보다 넓은 화성지역을 순찰할 수 없어 주민이 스스로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자정이 가까워오자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심야 귀가용 렌터카’가 속속 눈에 띄었다. 박모(36·여)씨는 “밤 11시가 넘으면 버스는 물론 택시도 끊기기 때문에 자가용이 없는 주민은 렌터카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지난 99년 주민들의 요구로 도입된 렌터카는 갈수록 수요가 늘어 당초 57대에서 257대로 급증했다. 2001년 6월부터 민간 자원봉사자 12명이 꾸리고 있는 ‘화성시 가정상담소’ 진인문(50) 소장은 “주민들이 유사사건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잠재적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면서 “지난해 130여명의 주민이 상담을 신청,고통을 호소했다.”고 밝혔다. 화성 이영표 이두걸기자 tomcat@ ■사건 개요·수사 상황 ‘얼굴없는 살인마’는 화성지역의 인적이 드문 논바닥과 야산 등지에서 10대 여중생에서부터 70대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처참하게 살해했다. 88년과 90년,91년 발생한 7,9,10차 사건을 빼고는 살인사건 공소시효인 15년을 모두 넘겼다. 경찰은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은 범인이 잡혀도 법적으로 처벌할 근거는 없지만,주민의 불안감을 씻고 나머지 사건들의 해결 열쇠를 찾기 위해 수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최근에는 화성사건을 소재로 삼은 영화나 소설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사건의 진실은 베일에 가려 있고,유가족의 가슴에 맺힌 한도 풀리지 않고 있다.경찰은 희생자들이 ▲성폭행당한 뒤 목이 졸렸고 ▲두 손이 뒤로 묶였으며 ▲희생자의 옷으로 재갈이 물렸고 ▲흉기로 시체가 모독을 당했다는 공통점을 토대로 수사를 벌여 왔다.범인이 검거된 8차사건 등 일부는 모방사건으로 추정하지만,대부분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동원된 경찰만 연인원 180만명이 넘는다.1만 8000여명이 증인·참고인·용의자 등으로 수사 대상에 포함됐고,지문과 유전자 감식 의뢰건수만 4만여건에 이르렀다. 사건의 비중이나 파급 효과 못지 않게 부작용도 많았다.용의자로 지목된 3명이 고문이나 수사 후유증으로 숨지거나 자살했다.한 용의자는 92년 6월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연행된 뒤 당직 변호사와의 단독 면담에서 범행을 자백했지만 1년 만에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 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최근 수사는 제자리걸음에 머물고 있다.화성을 떠난 주민이 많은 데다 제대로 보존된 증거자료도 거의 없어 추가 수사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97년 이후에는 수사본부가 대폭 축소돼 수사본부장인 화성경찰서장과 수사과장,형사계 요원 등 모두 7명만 편제돼 있다.태안파출소에 수사본부 팻말이 걸려 있지만,수사본부 요원들은 다른 강력사건도 함께 맡고 있다. 화성경찰서 형사2계장 방종찬(46) 경위는 “9차 사건 용의자의 머리카락 모근이 남아있는 만큼 당시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은 연령대의 변태성욕자 등이 적발되면 DNA 대조 작업 등을 벌일 것”이라면서도 “현실적으로 수사 진척에 어려움이 많다.”고 털어놨다. 화성 이두걸기자 douzirl@ ■미제사건 사회적 후유증 강력 미제사건은 ‘다음에는 내가 피해자가 될 수있다.’는 극도의 공포심을 확산시킨다.일부 시민은 자신을 예비 피해자로 상상하기도 한다. 때문에 시민들은 사건 당시와 비슷한 상황에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심리에 빠져든다. 전문가들은 화성지역 주민들이 대부분 밤길을 피하거나 빨간 옷을 꺼리고 사건 현장과 비슷한 야산 등지에 접근하지 않으려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분석한다.오래도록 범인이 잡히지 않아 공포심이 가중되면 시민들은 ‘나를 방어할 사람과 사회적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하고,호신장비나 방범 시스템을 마련하는 등 더욱 적극적인 자구책을 찾게 된다. 문제는 시민들이 이 과정에서 경찰 등 수사기관과 사회 시스템 전반을 불신하게 되고,막연한 불안감으로 주변사람을 불신하고 적대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40·범죄사회학) 교수는 “미제 사건의 장기화로 인한 사회적 후유증은 범인이 잡히고 나서도 단시일 내에 없어지지 않는다.”면서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한 사회내 시간·비용의 중복투자가 계속 뒤따르게 되고,또 다른 ‘모방범죄’로 인해 시민들의 불안과 공포는 계속된다.”고 설명했다.그는 “수사기관은 72시간 내에 현장에서 대부분 소멸되는 중요 증거와 단서를 확보토록 초동수사 시스템을 강화하고,최소 3개월마다 주기적으로 사건 진행 상황을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공황장애’ 전문가인 유상우(40)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강력 미제사건의 직·간접 피해자들은 세월이 흘러도 악몽을 꾸거나 극도의 긴장상태를 보이는 등 ‘병적인 불안’ 상태의 ‘외상후 스트레스’ 증상을 보이기 쉽다.”면서 “주변 사람의 따뜻한 시선과 적절한 심리치료만이 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찰대 표창원(37·범죄심리학) 교수는 “실적과 승진,고위층의 요구에 더 신경쓰는 한국의 수사관행으로는 미제 사건과 그로 인한 사회적 후유증을 조장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시민들의 공포와 불안감 치유에 우선 순위를 두는 수사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영표기자 ■英등 외국에선 “완전범죄는 없다.20,30년이 걸리더라도 범인은 꼭 잡아낸다.” 영국 클리블랜드 경찰은 1989년 87세 여성을 성폭행한 뒤 달아났던 A(34)씨를 최근 구속했다.사건 초기 범인을 놓쳤던 경찰은 과거자료를 토대로 유전자분석 등 첨단 수사기법을 이용,14년 만에 사건을 해결하는 쾌거를 올렸다. 이밖에도 1980년대 중반 10,20대 여성 68명을 성폭행하고 살해했던 ‘기차역 연쇄살인사건’의 범인과 1993년 이탈리아 출신 10대 유학생을 성폭행했던 교사도 경찰의 끈질긴 추적 끝에 쇠고랑을 찼다. 이처럼 수십년이 지난 미제사건이 속속 해결되는 것은 영국 경찰의 합리적인 수사 시스템 때문이다. 영국의 일선 경찰서는 사건 발생 이후 14일 이내에 범인을 잡지 못하면 수사기록과 증거자료를 즉각 전국 32개의 ‘미제수사팀’으로 전송한다. 형사와 법의학자 등으로 구성된 미제팀은 이후 사건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2년마다 한번씩 재수사를 한다. 재수사에서는 최첨단 과학수사기법을 총동원하게 된다. 일단 범인이 잡히더라도 사건의 진실을 정확하게 규명하기 위해 몇년씩 보강수사를 벌이는 것도 영국·캐나다 등 외국 수사체계의 주요한 특징이다. 지난해 캐나다를 떠들썩하게 한 ‘돼지농장 연쇄살인 사건’은 장기수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수십 명의 매춘여성이 살해돼 밴쿠버 외곽 한 농장에 묻혔던 이 사건은 지난해 초 범인이 잡힌 뒤에도 1년이 넘도록 보강수사가 계속되고 있다. 경찰은 고고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을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해 깊이 2m의 흙더미를 샅샅이 파헤치고 있다.범인의 진술과 달리 추가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임준태 교수는 “초동수사 때 범죄현장을 철저히 보존,증거를 수집하고 이를 냉동보관소에 보존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하다.”면서 “냉동보관소도 태부족하고 시체나 증거 등을 장기간 보존하지도 않아 재수사에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지연기자 anne02@
  • 부시의 전쟁 / BBC기자 지뢰 밟아 사망

    “카메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찍다 보면 숨이 멎을 것 같습니다.부엌에서 당근을 썰다가 칼을 쥔 채 세상을 떠난 어머니,이것이 전쟁의 참상입니다.” 2일 이라크 북부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사고로 사망한 영국 BBC방송 카메라기자 카베 골레스탄(사진·52)은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전쟁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이라크 북부 키프리에서 동료 3명과 취재를 하던 그는 이날 새벽 차량문을 열고 나오다 지뢰를 밟아 현장에서 사망했다.프로듀서 스튜어트 휴스는 다리 부상을 입었으나 특파원 짐 무어와 통역관 1명은 무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골레스탄은 88년 이라크-이란 전쟁 때 이라크가 북부도시 할랍자에 화학폭탄을 투하한 현장을 촬영,퓰리처상을 받았다.그는 “어린 소년·소녀들이 병원으로 데려다 달라고 아우성치고,내 팔 안에서 한 소녀가 구토를 하며 숨을 거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이 폭격으로 이 지역에 거주하던 쿠르드족 5000여명이 숨졌다. 이란 출신으로 주로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활동해 온 그는유가족으로 아내와 19살 된 아들을 남겼다. 미·영 연합군의 이라크 침공 이후 이라크에서 취재하다 숨진 외국기자는 4명으로 늘어났다. 정은주기자
  • 4·3사건 위령제 고건총리등 참석

    제 55주년 제주4·3사건 희생자 범도민위령제가 3일 오전 11시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조성 예정지에서 우근민 제주지사와 유가족 등 6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행됐다. 이번 위령제에는 처음으로 각료급 정부대표로 고건 국무총리와 김두관 행정자치부장관이 참석했다.이는 정부가 4·3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를 통해 ‘국가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인권 유린행위’로 성격을 규정한 데 따른 조치다.이밖에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김원웅 개혁당 대표,민주당 정동영·추미애 의원,한나라당 이부영 의원,제주 출신 현경대·양정규·고진부 의원,강만길 교수 등 4·3중앙위원,박원순 4·3진상보고서작성기획단장 등도 참석했다. 위령제 봉행위원장인 우근민 지사는 정부에 대해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건의된 ▲정부의 사과 ▲4·3추모기념일 지정 7개항을 조기에 이행해줄 것을 요청했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사고없는 세상서 만나자”/천안초등교 화재참사 어린이 합동영결식

    충남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 화재 참사로 숨진 김바울군 등 희생자 8명에 대한 합동영결식이 1일 오전 9시 성황동 천안초교 교정에서 학교장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에는 유가족들과 심대평 충남도지사,강복환 충남도 교육감,성무용 천안시장 등 각급 기관·단체장 및 학생,주민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의 헌화 및 분향,유가족 대표 인사를 끝으로 이날 정들었던 교정에서 영결식을 마친 희생자 유해는 경기도 수원에서 화장을 한 뒤 천안공원묘원에 합동 안장됐다. 천안 이천열기자 sky@
  • 4·3사건, 55년만에 성격 규정“남로당 봉기 진압과정 제주주민 무고한 희생”

    ‘제주 4·3사건은 무장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제주 주민들이 무고하게 희생된 사건’이라는 4·3사건에 대한 정부차원의 성격 규정이 사건발생 55년 만에 이뤄졌다. 정부는 29일 고건 국무총리 주재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이같은 내용의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채택했다.위원회는 보고서에서 “제주 4·3사건은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연계된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가 있었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하게 주민들이 희생되었다.”고 규정했다.하지만 김점곤 경희대 교수는 위원직 사퇴의사를 밝힌 뒤 회의에 불참했다.또 한광덕 전 국방대학원장과 이황우 동국대 교수는 “군경의 과잉진압이 너무 부각되고 있다.”며 서명을 거부,이번 보고서는 만장일치의 합의를 이끄는 데 실패했다.이에 위원회는 6개월 뒤인 9월28일까지 신빙성 있는 자료·증언이 추가로 나올 경우 심의를 거쳐 보고서를 수정할 수 있도록 했다. 다음은 총 577쪽에 이르는 보고서의 요지이다. ●제주 4·3사건의 성격 미군정 아래 발생한4·3사건은 한국현대사에서 인명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이다.47년 3·1절 발포사건을 계기로 제주사회에 긴장상황이 조성되고,남로당 제주도당이 이런 긴장상황을 5·10단독선거 반대투쟁에 접목시켜 지서 등을 습격한 것이 4·3무장봉기의 시발이다.48년 11월부터 9연대에 의해 중산간마을을 초토화시킨 강경진압작전은 가장 비극적인 사태를 초래했다.진압작전으로 중산간마을 95% 이상이 불타 없어졌고 많은 인명이 희생됐다.대표적인 주민집단 총살사건인 ‘북촌사건’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한 마을 주민 400명가량이 2연대 군인들에 의해 총살당했다. ●피해자의 규모 신고된 희생자 수는 1만 4028명이다.그러나 이 숫자를 4·3사건 전체 희생자 수로 판단할 수 없다.여러 자료 등을 감안해 잠정적으로 인명피해를 2만 5000∼3만명으로 추정했다.연좌제에 의한 피해도 극심했다. ●대정부 건의 위원회 산하 4·3진상보고서 기획단은 별도로 ▲제주도민,4·3피해자들에게 사과 ▲4·3추모 기념일 제정 ▲추모공원조성 ▲유가족들에게 실질적인 생계비지원 등 7개항의 ‘대정부 건의안’을 작성,제출했다. 최광숙기자 bori@
  • 이 사람/ 제주 4·3희생자 유족회 이성찬 회장

    ‘4·3’이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일반적으로 ‘4·3’은 남조선노동당(남로당) 제주지구 소속 한라산무장대가 미 군정 하의 경찰을 향해 본격 공격을 개시한 1948년 4월3일을 일컫는다.이후 제주도 전역이 전란의 공포에 휩싸이게 되고,1954년 9월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되기까지 6년 6개월동안 군·경과 ‘산(山)사람’들로 인해 수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된다.지난 2000년 1월12일 공포된 4·3특별법에 의해 공식 신고된 희생자수만 사망 1만 715명,행방불명 3171명,후유장애 142명 등 1만 4028명.신고 이전에 죽은 사람과 미신고자까지 포함하면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인 2만 6000명 정도가 희생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4·3이후 산사람과 죽은 사람에게 가해졌던 ‘연좌제’라는 형벌 아닌 형벌이었다.이제 정부 등 각계의 노력으로 4·3이 제자리를 찾으려 하고 있다.사건이냐,폭동이냐,항쟁이냐에 대한 답과 함께 산사람들에 대한 폭도·무장대·공비·해방군·유격대 등의 표현이 정리되려는 즈음이다. 이런 상황에서 55주기 4·3위령제를 앞둔 이성찬(59) 제주도 4·3희생자유족회장을 비롯한 유족들은 새로운 감회로 올 4·3을 기다리고 있다. 4년여에 걸친 각고 끝에 4·3에 대한 진상이 곧 정부 차원에서 규명되고 희생자 유가족과 제주도민들의 숙원이던 4·3평화공원도 삽질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게다가 정부가 4·3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하려는 기류도 흘러나오고 있다.그렇게 바라던 4·3특별법이 제정된 지도 3년이 지났다.이 회장의 얼굴도 종전에 비해 평안을 찾은 듯하다.머리숱이 많이 빠졌을 뿐이다. 유족회장으로서 4·3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학자가 아니라 정확히 정의하기는 무리지만 느끼고 경험하고 살펴본 바에 의하면 암울한 시대에 국가폭력에 의해 수많은 제주도민이 죽어간 ‘민간인 학살사건’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의 말은 과거 교과서에 실린 내용과는 다른,자칫 ‘좌익적’이라는 오해를 살 만도 하다.그러나 그것은 기우(杞優)이고,‘화해’와 ‘상생’을 힘주는 데서 가장 일반적으로 바라보는 4·3임을 깨닫게 된다. “4·3의 해법은 ‘화해’‘상생’이 답입니다.4·3특별법이 제정된 취지도 역시 지난 세기에 자행됐던 불행한 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세기에는 화해와 상생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아닙니까.당시 돌아가신 분들은 이념 때문이거나 누구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희생자일 뿐입니다.서로 위무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것이 바로 4·3을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그의 해법대로 4·3문제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이 회장의 마음이 편치는 않다.“대립각은 언제나 있을 수 있지요.지금도 4·3을 왜곡하는 사람들과 과거 문제를 들춰내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단체나 소수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4·3유족회장으로 간곡히 호소합니다.이제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청산해 가신 임들의 넋을 달래고 희망의 불빛을 밝혔으면 합니다.” 이 회장의 고향은 제주시 오라동,사건 당시는 제주읍 오라마을이다.오라마을은 1948년 5월1일 ‘오라동 방화사건’으로도 유명하다.그에게도 ‘상처’가 없을 리 만무했다. “아버님은 1949년 토벌대의 공격이 너무 무서워 산으로 피신했는데 이후 살려준다는 말을 믿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 귀순했으나 경찰은 다른 일행들과 제주읍 동부두 주정공장에 감금해 버렸습니다.얼마 지나지 않아 대전형무소로 이감됐고 6·25가 터지자 대전시 동구 낭월동 골령골에서 학살됐지요.” 어느새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어머니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일본으로 건너가 개가했고…,당시 5살이던 저와 동생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슬하에서 ‘폭도자식’이라는 질시와 냉대를 받으며 어렵게 살아왔습니다….” 한참 뜸을 들인 뒤 기자가 보상문제로 말머리를 돌렸다.“지금 보상을 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4·3 해결과정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다만 국가 공권력에 의한 잘못이었다고 밝혀진다면 향후 논의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고맙게도 지금 공동체적 보상 형태로 국가가 4·3평화공원을 조성할 계획인 만큼 오는 4월3일 착공할 평화공원 조성 예산을 정부가 적극 지원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신중하지만 할 말을 멈추지는 않는다. “4·3이 발발한 지 어언 반세기가 훌쩍 넘었습니다.지금까지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던 이 사건의 진상이 하루속히 정확히 드러나 당시 희생된 원혼들과 유족들의 피맺힌 한을 풀어 주었으면 하는 게 유족회장으로서의 바람입니다.난항을 겪고 있는 수형인들에 대한 희생자 결정도 4·3특별법 정신에 걸맞게 처리돼 4·3중앙위원회가 4·3의 실상을 가감없이 의결해 주기를 바랍니다.욕심이라면 노무현 대통령이 오는 4·3 위령제 때 참석해 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아마 오실 것으로 믿습니다.” 글·사진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대구참사 다룬 TV뉴스 한국방송진흥원 분석

    시신 잔해 클로즈업,다리와 얼굴이 그을린 부상자,유가족의 오열…. 대형 사건·사고 현장에서의 선정적인 영상이 문제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방송사 관계자들은 경쟁하듯 충격적인 영상을 내보내면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그러나 선정적인 보도 태도는 오히려 참사보도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을 급속히 식게 만든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국방송진흥원은 대구지하철 화재참사를 다룬 TV뉴스를 모니터한 보고서를 18일 냈다.사고가 발생한 지난달 18일부터 중간수사 결과가 나온 지난 4일까지 KBS1 ‘뉴스 9’,MBC ‘뉴스데스크’,SBS ‘8 뉴스’를 대상으로 했다. 보고서는 무엇보다 사고 초기 충격적인 화면과 함께 지하철 관계자의 과실만 집중 부각시킴으로써 참사의 일차적 원인만 전달하고,안전 시스템에 대한 투자부족 등 근본적인 원인은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이런 보도태도는 참사가 지하철 관계자 처벌이라는 차원으로 일단락되도록 유도함으로써 시청자들의 관심이 급속히 식는 현상을 유발할수 있다는 것이다. 사고 개요나 현황을 종합적으로 다룬 뉴스가 전체 참사보도의 8.4%에 머문 반면 부상자 탈출기나 유가족들이 슬퍼하는 사연 등 사람 관련 보도가 17.9%,사건일지 등 기타 보도가 12.8%를 차지하는 등 주객이 뒤바뀐 것도 문제점으로 드러났다.지나치게 많은 사람 관련 보도가 시청자들이 사건을 감정적으로 수용토록 유도함으로써,정확한 사태파악과 근본적인 원인 및 대책에 대한 고민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보고서는 우려했다. 한편 전체 참사보도 꼭지의 43.3%에서 선정적인 어휘가,52.4%에서 선정적인 영상이 나온 것으로 분석됐다.선정적 어휘는 MBC가 47.8%로 가장 많았고,선정적 영상은 SBS가 58.6%로 최고를 기록했다.KBS1은 두 부문 모두 가장 낮아 그나마 공영방송다운 면모를 보였다. 방송진흥원 송종길 책임연구원은 “자극적,선정적 TV뉴스는 시청자들이 동요된 상태에서 초기 상황을 접하게 만들어 정확한 사태파악을 어렵게하고,장기적으로 재난보도 과정 전반에 걸쳐 편향된 수용 시각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서 “차분하고 절제된 보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채수범기자 lokavid@
  • 동티모르 순직장병 대전현충원 안장

    동티모르에서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임무수행 중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 고 민병조·박진규 중령,백종훈·최희 병장 등 상록수부대 장병 4명의 합동 영결식이 17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합참장으로 엄수됐다. 이들의 유해는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영결식에는 고건 국무총리,장영달 국회 국방위원장,조영길 국방장관,이남신 합참의장,리언 J 러포트 한·미연합사령관,군 주요 지휘관 및 유가족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주창성(합참 차장·공군 중장) 장의위원장은 조사에서 “고인들이 동티모르에 뿌린 사랑과 헌신의 씨앗은 동티모르 주민들의 자유와 평화를 실현시키고,대한민국과 우리 국군의 위대함을 세계에 드높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대구지하철 참사 한달/실종자 가족 150여명 현장노숙

    “불에 타다만 뼛조각 하나만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가 발생한 지 18일로 한달을 맞았지만 참사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대구를 하얗게 수놓았던 국화꽃은 시들어가지만 유가족들의 분노와 비통은 더욱 깊어만 가고 있다.실종자 인정사망 심의 등 사고 수습작업도 더디기만 하다.실종자 유가족들에겐 방화 참사가 일어난 지난달 18일 이후 시계가 완전히 멈춘 상태다. ●인정사망 심의등 수습 진전없어 사고가 난 중앙로역 현장과 대구시민회관 사고대책본부에는 실종자 유가족 150여명이 한달째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가족들의 뼛조각이라도 찾겠다며 노숙을 하고 있다. 막내 아들을 잃었다는 유기복(67·대구시 동구 방촌동)씨는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중앙로역에서 담요 한장으로 노숙하고 있다.”면서 “시신을 찾은 가족들이 부럽기만 한 현실이 너무 괴롭다.”고 말했다. 실종자 인정 사망을 위한 심사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실종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유가족들의 노력도 눈물겹다.휴대폰 위치 추적이나 지하철 CCTV,유류품 등으로실종사실을 확인하지 못한 유가족들은 ‘혹시 이 사람을 본적이 있습니까.’라는 내용과 실종자의 사진이 담긴 피켓을 들고 하루종일 대구지하철 역사 주위를 헤매고 있다. 어머니가 실종된 서미혜(23·여·대구시 동구 불로동)씨는 “실종 사실을 가족들이 입증해야 한다는 게 너무 고통스럽다.”면서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도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이 때문에 실종자 유가족들은 신원확인후 유해 일괄 인수,추모공원 조성 및 합동안장을 요구하고 있다.이미 신원이 확인된 유해 20여구에 대해서도 유가족들이 개별 인수를 거부하고 있다. ●검찰 ‘사고현장 훼손' 수사 부진 ‘사고 현장 훼손’에 대한 유가족들의 분노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유가족과 시민단체의 고발로 대구지검이 전담팀을 구성,‘현장 훼손’에 대한 수사에 나섰지만 대구시와 경찰,검찰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할 뿐 아직 이렇다할 수사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윤석기 실종자가족대책위원장은 “사고현장 훼손과 은폐 의혹 등에 철저한 수사가 이루어져 반드시 책임소재를 가려야 한다.”고 말했다. ●도심 상가 ‘울상'… 시민은 교통불편 사고가 난 중앙로역 일대 도심상가는 한달째 도로통행 제한 등에 따른 영업 손실로 울상을 짓고 있고 시민들은 지하철 반쪽 운행에 따른 교통 불편에 시달리고 있다. 중앙 지하상가 박모(45)씨는 “손님이 뚝 떨어져 차라리 문을 닫고 싶은 심정”이라며 “하루 빨리 사고수습이 마무리돼 안정을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 사회플러스/ 대구지하철 운행중단 검토”

    김기옥 대구시 행정부시장은 16일 대구지하철 운행중단을 요구하고 있는 실종자 유가족 등을 만나 “여론조사를 통해 다수의 시민들이 운행 중단을 요구할 경우 즉각 지하철 운행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말했다.김 부시장은 또 “버스가 다니지 않는 시간대에 출퇴근하는 서민,통학생 등을 위해서 부분적으로나마 지하철을 운행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지만 시민 다수가 불안해 한다면 운행을 중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대구 실종자 인정사망 기준 물적·인적 증거 포함키로

    대구지하철 참사 실종자들의 사망 판정기준에 물적,인적증거를 포괄적으로 포함시키기로 했다. 실종자 인정사망심사위원회(위원장 김준곤)는 13일 오후 대구 소방본부에서 회의를 갖고 사망 인정기준을 포함한 운영규칙안 등을 논의,이같이 결정했다.위원회는 회의에서 CCTV녹화 자료와 휴대전화 위치추적 자료,유류품,학원수강 및 병원진료 기록,기타 해당 실종자가 사고 전동차에 탑승했다고 볼 수 있는 증거 등 물적증거와 참고인 진술을 포함한 인적증거를 포괄적으로 사망인정 기준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또 효율적이고 집중적인 심사를 위해 위원장을 제외한 14명의 위원으로 각각 2명씩 모두 7개의 팀을 구성,개별 사건을 심사하도록 했다. 위원회는 특히 심사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기하기 위해 팀별로 중앙특별지원단과 실종자유가족대책위원회가 추천한 위원을 각각 1명씩 배정했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3차 회의가 열리는 오는 18일부터 팀별로 사건을 배당,각각 실종자 개개인에 대한 실질적인 인정사망 심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
  • 대구지하철 방화범 말문 “죄송합니다”

    대구지하철 참사의 방화 피의자인 김모(56)씨가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죄송합니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씨는 범행 19일만인 9일 경찰조사에서 이번 사고로 200명 가까이 숨졌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뭐라고 할 말이 없다.죄송하다.”는 말을 여러차례 되풀이하며 고개를 떨구었다는 것. 김씨는 또 “병(뇌경색)이 호전되지 않고 혼자 죽기 싫어 전동차에 불을 질렀다.”고 진술했다.김씨는 지난 6일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
  • 궁지몰린 대구시장

    취임 9개월밖에 안된 조해녕(曺海寧) 대구시장이 대구지하철 화재사고 수습 문제로 정치적 위기에 몰리고 있다. 대구참사 뒷수습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자 조 시장에 대해 불신의 차원을 넘어 ‘무능하다’는 지역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산하 공기업인 대구지하철공사의 초기대응 잘못과 녹취록 조작을 통한 사고진상 은폐기도,사고현장 조기훼손 등으로 인한 여론의 질타와는 또 다른 차원이다. 조 시장과 대구시의 수습의지와 능력이 의심받으면서 지역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조 시장의 사퇴론에 불을 댕기고 있다. 조 시장의 위상에 결정적인 상처를 입힌 것은 중앙특별지원단(단장 김중량 소청심사위원장)의 행보와 연관돼 있다. 김 단장은 지난 1일 대구에 와 실종자 가족들과 잇따라 면담한 뒤 “대구시를 배제한 채 주도적으로 사고수습에 나서겠다.”고 밝힌 것.당초에는 대구시가 사고수습을 주도하고 중앙지원단은 시를 측면 지원키로 돼 있었다. 지난 3일엔 시민들의 실망감이 절정에 달했다.실종자유가족대책위 간담회에 김 단장과 함께 참석한 김기옥 대구시 행정부시장이 “‘중앙지원단이 사고수습의 전면에 나서고 대구시는 중앙지원단의 지시를 받아 사고 수습 기본업무를 수행한다.”고 합의해 준 것.유가족들의 분위기를 감안한 조치였지만 대구시가 중앙지원단의 하부조직으로 전락한 꼴이 돼 조 시장과 대구시는 결정적으로 스타일을 구긴 셈이다.시민들도 덩달아 자존심을 상했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구참여연대 관계자는 “사고수습 과정에서 보여준 조 시장과 대구시의 행태는 한마디로 한심스럽다.”면서 “사고수습도 못하는 대구시가 앞으로 하계유니버시아드 등 국제행사를 어떻게 치를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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