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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어축제 실종 서귀포시장·선장 합동영결식

    지난달 25일 방어축제 선상낚시 체험에 나섰다가 실종된 이영두 서귀포시장과 김홍빈 선장에 대한 합동영결식이 17일 오전 서귀포시청에서 거행됐다. 이날 영결식에는 유가족과 시민, 공무원 등 1000여명이 참석, 고인에 대한 묵념에 이어 오성휴 장의위원회위원장의 영결사, 김태환 제주도지사의 조사, 유적대표의 고별사, 헌화 및 분향 순으로 진행됐다. 오성휴(서귀포시 부시장) 장의위원장은 영결사에서 “민·관·군·경을 총동원해 두 분을 찾으려는 간절한 소망과 애타는 노력에도 끝내 유해마저 거두지 못한 채 영전 앞에 서 있는 지금 이 순간 애통한 마음을 가눌 길 없다.”며 “16만 서귀포시민의 이름으로 삼가 고인의 영전에 머리 숙여 명복을 빈다.”고 추도했다. 이어 김태환 제주도지사는 조사를 통해 “언제나 제주특별자치도, 그리고 도민들에게 21세기 희망봉을 찾아 떠나는 길에 등대가 되어 앞길을 밝혀주시기 바란다.”고 추모했다. 이영두 서귀포시장에게는 홍조근정훈장이, 김홍빈 선장에게는 대통령표창이 추서됐다. 시신 없이 치러진 합동영결식 후 이 시장의 유품은 서귀포시충혼묘지에, 김 선장의 유품은 대정읍충혼묘지에 각각 안장됐다.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2006 희망 키우는 아이들] (4) 교통사고 악몽 3가족 아이들

    [2006 희망 키우는 아이들] (4) 교통사고 악몽 3가족 아이들

    교통사고로 가족이 죽거나 다친 아픈 기억을 떠안은 채 평생을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다. 사고의 여파는 아이들의 기억속에서만 머물지 않고 생활고로 이어진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엄마, 아빠 등의 사고로 삶이 더욱 위축되기 때문이다. 아픈 기억을 딛고 자신의 꿈을 착실하게 키워가고 있는 교통사고 유가족들의 자녀들을 만나 봤다. ●슬픈 기억을 딛고 희망을 키우는 아이들 “멋진 요리사가 돼서 몸이 불편한 엄마에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주고 싶어요.” 자신의 꿈을 요리사라고 당차게 말하는 서예지(11·서울 구로구 오류동)양은 아직도 4년 전의 무섭고 슬픈 기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2002년 엄마(오금자·36)와 시장을 가던 길에 당한 교통사고는 예지의 꿈을 피아니스트에서 요리사로 바꾸어 놓았다. 요리사가 돼 몸이 불편한 엄마를 위해 맛있는 요리를 해주고 싶다는 것이다.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해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지만 엄마에게 효도하는 게 우선이에요.” 당시 7살이던 예지는 동생 형우(8)와 엄마의 사고 장면을 눈 앞에서 목격했다. 운전중 휴대전화 통화를 하던 운전자가 주변을 제대로 살피지 않아 엄마를 덮쳤다. 다행히 뒤따라 오던 형우와 예지는 화를 면했다. “당시에는 엄마가 돌아가실까봐 무서웠어요.” 겁을 잔뜩 먹었던 형우는 지금도 사고 이야기를 물으면 애꿎은 종이컵만 쥐어 뜯을 뿐 말이 없다. 교통사고 이후 예지의 가족은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엄마 오씨는 어릴 적 뇌성마비를 앓아 몸이 성하지 않은 상황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경제력을 잃었고, 아버지는 1년 반 전에 집을 나갔다. 현재 수입은 월 30만원인 정부 보조금이 전부다. 형우의 꿈은 화가. 학교에서도 그림에 소질이 있으니 미술을 가르쳤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미술학원에 보낼 형편이 되지 않는다. 학교에서 하는 ‘방과 후 학교’에서 일주일에 두번 미술을 배우고 있다. ●고생하신 할머니께 꼭 보답할래요. “가수가 되고 싶어요. 돈도 많이 벌고, 할머니를 즐겁게 해드릴 수 있으니까요.” 초등학교 2학년생인 김서현(8·서울 마포구 성산동)양의 꿈은 가수다. 자신을 키워 주신 할머니를 위해서다. 서현이의 할머니 장성규(55)씨는 지난해 1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에 치였다. 그 후로 할머니는 오른쪽 팔, 다리에 장애가 와 거동이 불편하다. 할머니는 교통사고 때문에 10년 동안 일했던 S건설 빌딩 청소부직을 그만둬야 했다.70만∼80만원 가량 되는 생활비가 끊기자 할머니는 노동부에서 실업급여를 받으며 새 직장을 알아 보고 있다. 하지만 나이 많고 몸까지 힘든 할머니를 받아 주는 데는 거의 없다. 이런 할머니를 아는지 서현이는 누구보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착하게 자라고 있다. 지난 1월 학습지를 받아 본 서현이는 방과후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학습지부터 챙기느라 바쁘다. “돈을 벌면 먼저 할머니 옷도 사드리고, 필요한 것 해드리고 싶어요.” ●경찰관이 돼 교통사고없는 세상 만들래요. “경찰관이 되고 싶어요. 아빠를 힘들게 만든 교통사고를 없애 버릴 거예요.”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사는 박미정(8·초등학교 2년)양은 아빠를 힘들게 만든 교통사고가 세상에서 제일 밉다. 미정이 아버지 박성배(51)씨는 1993년 회사 야유회를 가다 중앙선을 침범한 차량 때문에 지체 3급 판정을 받았다. 당시 박씨는 140만원의 고정수입이 있는 핸드백 가죽제조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사고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 노점상을 하며 70만∼80만원의 수입을 간신히 올리고 있다. 한국교통장애인협회에서 보내 주는 쌀과 반찬, 약간의 지원금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생활이 어려운 가운데 박씨는 지난해에는 후유증으로 목수술을 받기도 했다. 미정이는 작년에 수술실로 실려 들어가는 아빠를 보며 많이 울었다. “나중에 크면 꼭 경찰관이 되고 싶어요. 도둑 등 각종 사고의 범인을 잡고 싶지만, 무엇보다 아빠를 힘들게 만든 교통사고를 막고 싶어요.” 달리기만큼은 전교 1등인 미정이는 “경찰관은 달리기도 잘 해야 하지 않나요.”라고 반문하면서 “공부도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독자의 소리] 보훈가정 손과 발이 되는 ‘이동보훈팀제’/연규찬

    내가 사는 충북 영동은 국가보훈처 청주보훈지청의 관할로 혹여 보훈지청에 가서 보훈관련 민원신청이라도 마치고 귀가하려면 한나절이란 시간이 흘러가버린다. 하지만 이동보훈팀이 운영되면서 굳이 청주보훈지청을 방문하지 않아도 되니 무척이나 편리하다. 가령 보은에는 이동보훈팀이 매주 월요일에 방문해 오전에는 민원신청을 받고 각종보훈 관련 문의나 상담을 해준다. 오후에는 고령의 독거노인이나 몸이 불편해 걸어 다니기 힘든 보훈가정을 방문해 이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손과 발이 되어 주고 있다. 중풍으로 누워 있는 무공수훈자 보훈가족을 위해서는 1종 건강보험증 발급 및 생활조정수당을 받게 도와주고 수시로 가정도 방문해 내집처럼 돌보아 준다. 지난여름에는 찌는 듯한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몸이 불편한 전몰군경 미망인의 댁을 방문해 울퉁불퉁한 오르막길을 삽으로 다져 평탄하게 해주는 등 많은 봉사활동을 펼쳐 주변 보훈가족들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주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국가유공자와 그 유가족들을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훌륭한 보훈시책을 확충하고,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도 그분들의 공헌과 희생에 보답하는 길일 것이다. 하지만 제도적인 측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분들을 진정으로 위하고 정성어린 관심과 성원, 보살핌을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동보훈팀제도야말로 보훈가족을 위해 보다 더 가까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연규찬 <무공수훈자회 충북지부 보은군지회장>
  • ‘단순死 2건→구타사망’ 첫 규명

    1998년 2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벙커에서 권총상(傷)을 입고 숨진 채 발견돼 자살이냐, 타살이냐의 논란을 빚었던 김훈 중위의 사망원인에 대한 진상규명 작업이 다시 이뤄진다. 또 올 1월 대통령 직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군의문사위·위원장 이해동)가 출범한 이후 처음으로 과거 군 수사당국에서 단순사망으로 처리했던 의문사건 2건이 구타에 의한 사망으로 정정됐다. 군의문사위는 11일 김훈 중위 사건과 관련,“당시 군 수사기록 등을 검토한 결과, 권총의 출처 같은 기초 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살로 단정해 언론에 발표하는 등 의혹제기 이유가 상당해 조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김 중위의 부친 김척(64·예비역 중장)씨는 올해 5월24일 아들의 사인을 밝혀달라며 군의문사위에 진정을 냈다. 유엔군사령부 조사단은 당시 사건 발생 직후 김 중위의 사인을 자살로 상부에 보고했으며, 한·미 군당국과 육군 검찰부도 1998년 4월29일과 11월27일 각각 권총 자살로 결론을 내렸었다. 군의문사위는 이와 함께 1982년과 1996년 각각 복무 중 사망한 김모(당시 20세)씨와 박모(당시 21세)씨의 사인을 조사한 결과 선임자의 구타로 숨진 사실을 규명했다고 이날 밝혔다. 의문사위에 따르면, 사망 당시 육군 제1야전군사령부 예하 전방부대에서 하사로 근무한 김씨는 선임자의 구타로 숨졌으나 당시 군 헌병대는 김씨가 술을 마시고 자던 중 토하는 과정에서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사망한 것으로 처리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을 현장에서 목격한 한 부대원이 24년간 가슴앓이를 해오다가 올해 초 의문사위에 당시 사건 정황을 제보, 진실 규명의 단서가 됐다는 것이다. 또 전환복무자로 강원도의 한 교도소에서 복무한 박씨(당시 계급 이교·이등병에 해당)는 여러 명의 선임자로부터 구타와 심한 욕설 등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다. 소속 기관에서는 박씨가 우울증을 앓았고 소심한 성격으로 자살했다고 유가족에게 통보했으나, 의문사위는 “조사 결과 해당 기관에서 사망원인을 축소 은폐한 사실을 밝혀냈다.”고 말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아들 돌아오면 삼계탕 끓여주려 했는데…”

    “아들 돌아오면 삼계탕 끓여주려 했는데…”

    |도하(카타르) 임일영특파원·서울 강아연기자|도하아시안게임 승마 종합마술 경기 도중 사고로 숨진 김형칠(47) 선수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올림픽위원회(KOC)와 도하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DAGOC)는 7일 밤 9시(이하 현지시간) 도하선수촌 내 국기광장 옆 퍼블릭 존에 임시 분향소를 설치했다. 김정길 KOC 위원장과 정현숙 한국선수단장을 비롯, 선수단 임원과 대한승마협회 관계자, 선수들이 차례로 영정에 헌화했다. 아메드 알 쿠라이피 선수촌장과 카타르 국가올림픽위원회 임원·선수들도 헌화했다. 승마 대표 선수들과 김홍철 코치는 영정 앞에서 흐느껴 주의를 숙연케 했다. 칼리드 알 카타니 DAGOC 사무총장은 분향소를 찾아 김정길 위원장을 통해 선수들이 실제로 받는 금메달로 ‘명예 금메달’을 만들어 헌정했다. 수영 3관왕 박태환도 사고가 일어난 날 자유형 1500m에서 딴 세번째 금메달을 고인에게 헌정했다. 8일 오전 도하에 도착한 고인의 동생 김재칠씨는 빈소가 마련된 하마드 종합병원에서 “형님이 눈도 제대로 못 감고 돌아가셨다.”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태릉선수촌에 마련된 분향소에도 애도 인파가 몰렸다. 한국생활체육승마연맹회 김인 회장은 “2004년 체육학 박사학위를 받을 만큼 학업에도 열심이었고 이번 대회 출전 직전 경기지도자 1급 코스도 이수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대한체육회 김재철 사무총장은 “영원한 승마인 김형칠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인 소원미(41·중학교 교사)씨는 “남편이 이번이 마지막 출전이니 꼭 메달을 따가지고 돌아오겠다고 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어머니 마정례(73) 여사는 “언제나 남을 배려하고 즐겁게 해주는 아들이었다.”며 “도하에서 돌아오면 삼계탕을 해 먹이려 했는데 이제 대답 없는 아들이 돼 버렸다.”며 비통해했다. 김명곤 문화관광부장관은 이날 오후 3시쯤(이하 한국시간) 빈소를 방문, 고인에게 체육훈장 맹호장을 추서하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한명숙 총리도 조화를 보내 애도의 뜻을 전했다. 한편 고인의 시신은 10일 서울로 운구하기로 동생 재칠씨가 도하 현지에서 DAGOC과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KOC 관계자 등과 협의, 결정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되고 장례식은 14일 대한올림픽위원회장으로 치러진다. argus@seoul.co.kr
  • ‘뉴라이트’ 교과서 논란

    ‘뉴라이트’ 교과서 논란

    신우익(뉴라이트) 단체로 알려진 ‘교과서포럼’이 만든 대안 교과서가 5·16과 유신체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또 하나의 편향이라는 비판 속에 유신 체제의 피해자와 5·18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들은 독재 반대 및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왜곡하는 것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교과서포럼은 29일 고등학교 2학년 선택과목인 ‘한국근현대사’의 대안 교과서 최종 편집본을 공개했다. 교과서를 보면 5·16을 ‘5·16혁명’으로 표현하면서 “5·16은 당시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제인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주도할 새로운 대안적 통치집단 등장의 계기가 된 사건이다. 군사정부는 강한 추진력으로 경제발전을 성공적으로 주도했다.”며 높이 평가했다. 현재 일선 고등학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교과서는 5·16을 ‘군사정변’으로 표현하고 있다. 교과서에는 또 1961년 생긴 경제기획원에 대해 “이전에도 비슷한 기구들이 있었지만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 경제기획원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박정희 정부의 추진력 덕분”이라며 고 박정희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유신체제와 관련해서도 “권력구조적 차원에서 영도적 권한을 지닌 대통령의 종신 집권을 보장하는 체제인 동시에 행정적 차원에서는 국가적 과제 달성을 위한 국가의 자원동원과 집행능력을 크게 제고하는 체제”라며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발전과 중앙권력으로부터 광주 지역의 소외가 누적된 탓”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이는 “‘서울의 봄’을 좌절시킨 신군부 강압정치에 끝까지 저항한 운동”이라고 표현한 현재 교과서와 크게 다른 해석이다. 이에 대해 민주화 관련 시민단체들은 어처구니가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전국민주화운동 유가족협의회 박제민 사무국장은 “일본 우익이 전범을 미화하는 것과 같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살인정권을 찬양하고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산화한 열사들을 매도한 것”이라면서 “우리 국민들이 그동안 흘린 피땀으로 일군 체제를 모두 부정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5·18기념재단 조진태 사무처장은 “(5·18의 원인으로 제시한)호남 지역의 소외 누적이 하나의 내적 동기는 될 수 있어도 그 자체만으로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편협하다.”면서 “신군부의 쿠데타에 저항하는 부분이 빠진다면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계에서도 정치적 이념에 따른 편향된 시각을 문제로 지적했다. 중앙대 사학과 권중달 교수는 “대안 교과서는 기존의 편향에 대한 반작용으로 또다시 편향된 면이 있다. 지금처럼 이념 대립이 극심한 상황에서는 올바른 역사가 나올 수 없다.”면서 “최근세사는 역사학회에서 정치와 독립적으로 순수하게 토론을 거쳐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한양대 역사철학부 박찬순 교수도 “교육에는 일관성이 필요한데 하루 아침에 내용을 바꾸면 국민들의 혼란을 조성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의사표시를 위해 시중에 배포하는 것은 자유지만 교과서로 채택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로 검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교과서포럼은 30일 서울대 사범대에서 ‘제6차 심포지엄’을 열어 찬반 의견을 수렴한 뒤 수정 작업을 거쳐 내년 3월 출간할 계획이다. 교수를 중심으로 12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교과서포럼은 현재 쓰이고 있는 역사교과서 내용을 비판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1월 출범했다. 이 포럼 대표인 박효종 서울대 교수(사범대)는 “한국근현대사 교과서가 후세들이 배우기에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고 적절치 못하다는 판단에서 대안 교과서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김재천 박정경기자 patrick@seoul.co.kr
  • [사설] 수목장이 산림을 훼손해서야

    수목장이 산림 훼손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한다. 장묘 업자들이 유가족의 성묘 장소를 만들기 위해 숲을 훼손하는 사례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또 수목장 주변에 각종 석물을 설치하기 위해 함부로 벌목하는 예도 있다고 한다. 친환경적인 장묘제도라는 취지가 무색하다. 우선 사찰이나 개인 등 수목장 운영업자가 난립하고 산림 훼손이 심각한데도, 행정당국이 고민한 흔적을 보이지 않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규제가 엄격한 공원묘지나 납골당과는 달리 수목장은 사업자가 임의로 자신의 땅에 만들어 분양할 수 있는 허점을 안고 있다. 하지만 훼손이 안 되도록 관리하고 지도하는 것은 기본이다. 법률적인 규제나 관리 규정이 없다며 책임을 회피할 일이 아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수도권 수목장의 경우 수목장용 나무 한그루 값이 최소 200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앞으로도 난립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는 공원묘지로 허용된 땅이 아니면 개인 소유의 땅이라도 매장이나 비석 설치 등을 규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의 개정을 조속하게 마무리해야 한다. 하지만 법안 정비와는 별도로 국민들의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는 게 시급하다. 살아있는 동안 본의 아니게 자연을 훼손했던 채무를 죽으면서 자연에 돌려주겠다는 게 수목장의 기본 정신이다. 이런 수목장이 그 취지와는 정반대로 새로운 환경파괴의 빌미가 된다면 망자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소박한 꿈을 유가족이 꺾어서야 되겠는가.
  • ‘복무중 病死’ 30년만에 명예회복

    군 입대 후 얻은 질병으로 사망한 이등병의 죽음이 30년 만에 규명돼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유가족에 대한 보상의 길이 함께 열렸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일 “1976년 입대 6개월 만에 숨진 권오석(당시 21세) 이병 사건은 군대에서 훈련도중 생긴 폐결핵이 원인이었다.”는 내용의 중간결정을 내리고 권 이병의 유족들에게 ‘순직군경’에 해당하는 보훈 혜택을 주도록 정부에 요청하기로 했다. 이는 올 1월 의문사위가 활동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내려진 결정이다. 이에 따라 권 이병처럼 군 복무 중 병사했으면서도 순직 처리가 안 돼 있던 5500여명에 대한 조사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위원회에 따르면 권 이병은 76년 3월 제3하사관학교에 입대해 교육훈련을 받다가 폐결핵에 걸려 국군부산통합병원으로 긴급 후송돼 치료를 받았으나 같은 해 8월 ‘중증활동성폐결핵’으로 숨졌다. 병원측은 처음에는 육군본부에 ‘순직’으로 보고했으나 부관감실에서 ‘사망구분 재검토 지시’를 내리자 단순한 ‘병사’로 처리했다. 위원회는 “당시 군은 병사로 처리된 경위를 설명하지 않은 채 고압적인 태도로 유족들에게 이중고통을 안겨줬으며 30년 동안 어떠한 보상도 해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권 이병의 아버지 권원길(86)씨는 지난 4월 “아들의 사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며 진정을 했다. 진상규명위 이해동 위원장은 “89년 개정된 ‘전공사상자처리규정’(국방부훈령 제392호) 이전에 발생한 군 복무 중 병사자 중 순직 처리가 안된 5534명에 대해서도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부고] 50년대 주먹계 풍미 ‘낙화유수’ 김태련씨

    ‘낙화유수’(落花流水)라는 별칭으로 50년대 주먹계를 풍미한 옛 동대문사단의 돌격대장 김태련옹이 2일 별세했다.77세. 이정재의 사돈이자 후계자인 유지광 계보의 좌장이었던 김옹은 175㎝의 당시로서는 큰 키에다 서울대 상대 졸업의 학력, 귀공자 풍의 외모로 여성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고인의 별칭인 ‘낙화유수’는 ‘남녀가 그리워하는 정’이라는 뜻으로 그의 이 같은 풍모가 반영된 것이다. 김옹은 정의사회실천모임의 고문으로 경호회사를 운영하다 이날 오후 12시30분쯤 뇌출혈로 운명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부자(72) 여사와 1남2녀가 있으며 장남인 김홍우(44)씨는 미국에서 제약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빈소에는 김두한씨 후계자 조일환씨, 시라소니 아들 윤회씨 등 왕년에 주먹계를 주름잡던 이들이 모여 유가족을 위로했다. 발인 4일 오전 9시30분 (02)2262-4800.연합뉴스
  • [의정중계석] 중구“총회 40일 연장” 성동“농촌일손돕기 보람”

    ‘우리구 의회에서는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서울신문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인 시의회와 기초의회의 활동 사항을 일주일에 한두 차례 보도, 시민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예정입니다. 자치구의 특색에 맞는 ‘특별한 조례’와 ‘의원들의 발언록’ 등으로 충실한 지면을 만들 것을 약속드립니다. ●중구의회, 총회일수 120일로 연장 중구의회(의장 임용혁)가 연간 80일로 돼 있는 총회의 일수를 120일로 연장했다. 중구의회는 또 국가 공헌도에 상응하는 향군에 대한 예우와 보훈의식 고양을 위해 재향군인회와 관련된 각종 기념일에 유공자 표창, 불우회원 및 유가족 위문 격려, 향군 추진시설에 대한 보조금 지원 등을 담은 ‘중구 재향군인 예우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 등도 의결했다. ●강남구의회, 종부세 개정 촉구결의 강남구의회(의장 이학기)는 지난달 31일 열린 156회 임시회에서 이석주 의원 외 18인의 의원이 발의한 ‘종합부동산세법 개정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결의안은 “종합부동산세는 부동산투기를 억제, 주택가격 상승 방지, 소득 재분배를 목적으로 도입됐지만 특정지역 주민들을 투기 세력으로 매도해 높은 세율을 부과함으로써 조세의 형평성과 제반원칙에도 위반되는 위헌성이 있다.”면서 “폐지되거나 당초와 같이 하향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종부세는 지방분권정신에도 위배되는 입법권의 남용이며 재산권의 침해”라며 “구민과 함께 강력 투쟁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성동구의회, 자원봉사활동 성동구의회(의장 정찬옥) 의원 및 사무국 직원 40명은 농촌의 어려움을 직접 체험하고 고령으로 고추 농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가의 일손을 돕기 위해 지난달 충북 제천시 농촌을 방문,‘농촌일손돕기(고추따기)’ 자원봉사활동을 벌였다. 정 의장은 “농촌의 바쁜 일손을 돕는 뜻깊은 시간을 갖게 돼 보람을 느낀다.”면서 “앞으로도 농촌사회의 어려운 이웃들을 지속적으로 도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노원구, 행정사무감사계획서 작성 노원구의회(의장 이광열)는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3일까지151회 임시회를 열어 ‘기반시설설치 및 운영 조례안’ 등 모두 18건의 안건에 대한 심의를 벌이고 있다. 안건 중에는 장애인복지증진에 관한 조례안과 ‘2006년도 행정사무감사 계획 작성 안건’ 등이 포함돼 있다. ●송파구, 의정비 지급기준에 항의 정동수 송파구의회 의장 겸 전국 시군자치구의회협의회 회장은 행정자치부 장관을 만나 전국 기초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정비 지급기준 관련 지방자치법 시행령 개정안을 공포한 것에 대해 항의했다고 1일 밝혔다. 정 의장은 이 자리에서 지방의원 겸업조항 탄력운영, 기초의원 해외연수와 의정활동 경비 상한선 폐지, 사무국을 사무처로 상향조정, 지방의회 전문연수원 건립 등을 건의했다. 시청팀 sunggone@seoul.co.kr
  • 소방관 그룹 ‘피닉스’ 영상곡 화제

    소방관 5명이 그룹사운드를 만들어 틈틈이 공연활동을 해 화제다. ‘소방관의 기도’라는 자작 영상곡은 인터넷 포털사이트(네이버)에서 누리꾼들 사이에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울산중부소방서 김태용(43) 소방장 등 5명은 지난해 5월 그룹사운드 피닉스를 만들었다. 베이스기타를 맡은 김 소방장을 팀장으로 퍼스트기타 이은일(39) 소방교, 전자오르간 최병훈(36) 소방교, 드럼 유재학(32) 소방사, 보컬 조미제(29·여) 소방사가 멤버다. 김 소방장은 “음악을 통해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소방과 화재예방을 홍보하고 싶은 생각에서 그룹사운드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학창시절 그룹사운드 등에서 음악활동을 한 이들은 바쁜 생활 가운데서도 주말 등 틈날 때 모여 연습을 한다. 연습실은 소방서 내 3평 남짓한 창고를 이용하기도 한다. 아직 큰 무대에서 공연한 적은 없지만 울산 119동요대회, 차 없는 거리축제 등 지역행사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지난 8월 피닉스는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소방관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한 뜻에서 미국시 ‘소방관의 기도’를 노래로 만들었다. “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떨고 있는 노인을 구할 수 있게 하소서.” 이같은 내용의 노래에다 화재진압과 구조현장에서 생명을 잃은 소방관 등의 사진을 넣어 5분9초짜리 영상곡을 제작해 지난 25일 포털사이트에 올렸다.“우리 모두를 위해 순직하신 소방관들과 그 유가족들에게 이 노래를 바칩니다.”라며 시작하는 이 영상곡은 며칠새 3만여회 가까운 조회를 기록하며 누리꾼 사이에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 소방장은 “소방관서와 학교 등에서 화재 예방교육 홍보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영상곡을 CD로 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故 최규하 前대통령 국민장 이모저모

    故 최규하 前대통령 국민장 이모저모

    지난 22일 별세한 고 최규하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26일 엄수됐다. 공교롭게도 자신을 현대사의 격랑 속으로 밀어넣은 1979년 10·26사태가 일어난 지 꼭 27년이 되는 날이었다. 영결식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인사와 주한 외교사절, 시민 등 각계인사 2000여명이 참석했다. 영결식장인 경복궁 앞뜰과 운구행렬이 이어진 서울 광화문 일대에는 오전부터 추도의 물결이 넘쳤다. 헌정 사상 ‘최단명 대통령’이라는 기록과 함께 역사의 비밀을 가슴 속에 묻은 채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는 고인에게 시민들은 애도와 아쉬움을 함께 표했다. 발인제는 이날 오전 9시 빈소가 마련됐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유족과 장의위원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30여분간 열렸다. 강릉 최씨 대종회장 최손규(82)씨가 “자애로운 모습이 지금도 눈 앞에 어른거린다. 이제 세상 원망, 근심, 걱정 모두 물려주시고 조상들과 함께 하늘나라 영화를 누리며 잠드소서.”라며 조사를 읽어나가자 곳곳에서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최 전 대통령과 2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홍기 여사의 유해를 실은 운구차 2대 등 영구 행렬은 경찰 사이카 28대와 순찰차 등의 호위를 받으며 오전 10시쯤 영결식장으로 들어섰다. 이용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고인의 약력을 보고하며 영결식이 시작됐고 한명숙 국무총리가 조사를 했다. 전례에 따라 불교, 개신교, 천주교 성직자들이 각각 고인의 명복을 비는 종교의식을 치렀다. 상주와 직계가족에 이어 노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 등의 순으로 헌화의식이 진행됐다. 운구차는 오전 11시쯤 경복궁 영결식장을 출발해 추모객들과 이승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서울시청 앞까지 느린 속도로 움직였다. 운구행렬이 지나는 경복궁 동문-동십자각-광화문-세종로터리-남대문-서울역-삼각지 일대에는 시민들이 길가에서 조의를 표했다. 운구차량은 오후 2시쯤 대전현충원에 도착했다. 유해는 국방부 계룡대 근무지원단 소속 의장대 대원들에 의해 국가원수 묘역으로 봉송됐으며, 상주 등 유족과 정부부처 관계자 등이 고인의 뒤를 따랐다. 이어 고인의 유해 앞에 영정을 모셔놓고 불교, 개신교, 천주교 성직자들이 각각 고인의 명복을 비는 종교의식을 가졌다. 안장식은 상주와 직계가족, 각계 대표들의 헌화 및 분향에 이어 하관, 허토,21발 조총, 묵념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안장식은 굵은 빗줄기로 인해 더욱 무거웠다. 안장식이 끝난 뒤 고인의 묘 앞에는 ‘제10대 대통령 최규하 영부인 홍기의 묘’라고 적힌 임시목비가 세워졌으며, 비문과 공적비, 향로대, 상석 등은 유가족과의 협의를 거쳐 조만간 설치될 예정이다. 이로써 최 전 대통령은 대전현충원 국가원수 묘역에 안장된 첫번째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글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사진 연합뉴스 / 강성남·김명국·이언탁기자 snk@seoul.co.kr
  • 공사강행 방침에 유가족 ‘오열’

    9·11 테러 현장에서 재건 공사를 벌이던 중 새로운 유해가 속속 발견돼 논란이 일고 있다. 희생자들의 유해를 전면 재발굴해야 한다는 유족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23일(현지시간)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끝나지 않은 ‘9·11 악몽’ 세계무역센터(WTC)가 무너진 뉴욕 맨해튼의 ‘그라운드 제로’에서 유해가 발견된 것은 지난 19일. 인근의 한 맨홀에서 80여점의 뼛조각과 인체 파편이 나온 데 이어 시 항만당국이 며칠 동안 추가로 주변 맨홀과 지하 파이프 등을 수색한 결과 18점을 새로 수거했다. 팔과 다리 뼈처럼 일부는 제법 컸다. 블룸버그 시장은 그러나 “수색은 충분했으며 우리는 이제 미래를 위해 ‘건설해야’ 한다.”며 공사 중단 불가의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몇몇 장소가 제대로 수색되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면서도 “당시 수색 범위를 감안하면 일부 누락은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유족들은 울분을 토하고 있다. 시장의 발표 직후 굴착기가 다시 움직이자 현장에 모여든 유족들은 좌절감을 토로하며 시장 면담을 요구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9·11 희생자는 2749명이지만 아직도 아무런 유해도 나오지 않은 사람이 1150명이나 된다. 이들의 유가족은 뼈 한 조각 없이 장례를 치러야 했다. 쌍둥이 빌딩 95층에서 당시 26세의 아들을 잃고 최근 일부 유해를 찾은 다이앤 호닝은 “유해에도 소유권이 있다.”면서 “그들은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이라고 말했다.●“5년 전 수색작업 너무 서둘렀다” 처음부터 유해 발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2001년 현장을 지휘했던 전직 경찰 존 매카들은 AP통신에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면서 “시가 너무 서두른다고 몇몇 관리들이 경고했지만 묵살됐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당국자는 “당시 수색작업은 오직 얼마나 빨리 이뤄지느냐에 매몰돼 있었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뉴욕시 건설국은 150만t 분량의 잔해를 정해진 예산과 시간 안에 처리해 칭찬받았다. 하지만 에드 스카일러 부시장은 소방당국이 작업을 이끌었고 건설국은 협조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소방국 대변인은 이날 “소방국 직원들이 건설국에 저항했었다는 보도는 과장된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AP가 입수한 메모는 ‘건설국이 2002년 봄에 소방국의 반대로 발굴 종료가 늦어지는 것을 우려하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뉴욕시는 맨홀과 상하수도, 송전선 등 수색이 미진했던 지하공간 12개 지점을 재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면 재발굴은 그 자체 비용과 재건 공사의 지연에 따른 손실이 너무 크다는 입장이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고 함석헌 선생 유해 대전현충원에 안장

    일제강점기 ‘성서조선’을 발간,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광복후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고 함석헌(1901∼89) 선생의 유해가 19일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3묘역에 안치됐다. 안장식에는 함 선생의 둘째 아들 우용씨 등 유가족과 친지, 기념사업회 관계자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함 선생의 묘는 경기 연천군 전곡면에 있었으나 2002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아 국립묘지 안장 대상이 됨에 따라 이날 대전현충원으로 옮겨졌다. 함 선생은 평북 용천 출신으로 3·1운동 때 평양에서 시위를 벌였고 1927년 김교신과 함께 민족지 ‘성서조선’을 발간,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해방후 월남, 평생을 반독재와 민주화운동에 헌신하고 민중신학 개척자로 활동했다.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김규식 선생 차남등 임정요인 유가족 26명 분단이후 첫 北국립묘지 성묘간다

    남북 분단 이후 처음으로 임시정부 요인 유가족이 추석을 맞아 북한의 국립묘지에 안치된 조상들을 성묘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다고 통일부와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가 28일 밝혔다. 항일 독립운동을 해온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의 유가족 등 50여명은 자신들의 조상이 안치돼 있는 북한 애국열사릉과 재북인사릉을 방문하기 위해 30일 방북해 다음달 4일 귀국한다. 애국열사릉은 김일성 주석의 가계인물과 ‘항일 빨치산’ 1세대가 묻혀 있는 혁명열사릉과 함께 북한의 ‘국립묘지’로 분류되고 있으며, 재북인사릉은 납북 인사들이 안치돼 있는 곳이다. 재북인사릉은 방문에 별다른 제한이 따르지 않지만 애국열사릉은 남한 당국이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기념궁전, 혁명열사릉 등과 아울러 ‘참관·참배 금지’ 리스트에 올라 있다. 북한은 장관급 회담 등을 통해 ‘상대측 지역을 방문하는 자기 측 인원에 대해 참관지 자유방문을 허용하라.’고 요구해 왔다. 지난해 8·15 행사 참석차 서울을 방문했을 때는 북측 당국. 민간 대표단이 우리측이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국립현충원을 참배하기도 했다. 따라서 임시정부 요인들의 남한 유가족이 남북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한에 안치된 조상을 성묘하면서 이산가족들의 방북 성묘와 남북 간 참관지 논의에 새 전기가 될 전망이다. 임정요인 유가족 성묘단은 이런 점을 감안해 애국열사릉에 모셔진 인사의 가족들은 집단적으로 묘역 제단에 참배를 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해당 조상묘를 찾아 성묘하기로 하고 정부의 공식 승인을 받았다. 통일부 관계자는 “임시정부 요인들의 독립정신을 추모하고 후손들이 조상의 묘소를 찾는 순수한 의미를 고려해 방북을 승인했다.”면서 “성묘 이외의 단체 참배 등 행위가 이뤄지지 않도록 각별히 강조했다.”고 밝혔다. 성묘 대상은 김규식 부주석, 김상덕 문화부장, 김의한 외교위원, 안재홍 청년외교단 총무, 윤기섭 군사위원장, 장현식 자금조달, 조소앙 외교부장, 조완구 내무부장, 최동오 법무부장 등 임정에서 요직을 맡았던 9명이다. 이들은 모두 정부가 독립장, 애국장, 대통령장 등 훈·포장을 주고 조국의 독립을 위한 공적을 기리고 있는 인물이다. 이번 성묘단에는 김규식 선생의 차남인 진세(78·미국 거주)씨를 비롯해 26명의 유가족들이 참가한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Art Picnic]

    ● 퍼포먼스 아티스트 마류밍 첫 개인전 유럽과 미국 등 국제무대에서 퍼포먼스 아티스트로 명성을 쌓아온 중국작가 마류밍이 서울 인사동 갤러리 아트사이드에서 한국 첫 개인전을 갖고 있다. 그의 대표적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옮긴 작품 ‘펜-마류밍 만리장성을 걷다’를 비롯, 작가 자신의 몸 혹은 얼굴을 독창적인 감각으로 표현한 사진과 회화 작품 22점을 선보인다.10월2일까지.(02)725-1553. ● 30일까지 요절화가 정안수 유작전 지난 2004년 41살의 나이로 요절한 정안수 유작전이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30일까지. 유가족들과 그의 선후배 동료 미술인들이 그의 작품세계를 전체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마련한 전시다. 화면의 부분이나 조각만을 제시한 독특한 조형성을 보여주는 회화 20여점과 신체를 대칭적으로 모자이크하여 형태를 변형시킨 영상작품 8점을 선보인다.(02)736-4371.
  • 9·11 5주년 24시간 특집방송

    9·11 5주년 24시간 특집방송

    미국 자본주의의 심장 뉴욕, 그 뉴욕의 핵심 세계무역센터에다 말 그대로 ‘피의 불벼락’을 내린 9·11테러가 일어난 지 올해로 5주년. 거대한 비행기가 꼬리만 남긴 채 건물에 꽂히고, 조금 있다 거대한 건물 자체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그 모습은 영원히 잊기 힘든 충격이었다. 충격도 충격이지만 9·11테러는 그 이후 세상의 모습을 조금씩 바꿔가기 시작했다. 오는 11일 5주년을 맞아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은 10일 아예 24시간 테러특집방송 ‘테러데이 9·10’을 편성했다. 우선 새벽과 오후 6시에 편성된 ‘TV와 인질’,‘폭탄과 휴대폰’,‘인터넷과 자살테러’ 3편은 어찌보면 필수품이 되어버린 각종 미디어들이 어떻게 테러에 악용될 수 있는지를 조명한다. 다음으로 오전 11시부터는 연달아 편성된 5편의 다큐는 9·11테러의 모든 것을 다시 분석하고 재조명한다. 알 카에다는 어떤 조직인지, 오사마 빈 라덴은 어떤 인물인지, 이들은 테러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왔는지, 테러를 감행한 다음 상황은 어떠했는지 등이다. 또 9·11테러 외에도 세계를 경악케 한 7개 테러사건을 다룬 다큐도 준비됐다.1970년 팔레스타인인민해방전선이 유럽에서 한꺼번에 항공기 4대를 납치했던 ‘스카이 잭 선데이(공중납치의 일요일)’ 사건부터 지난해 7월 사제폭탄으로 지하철역과 버스를 공격한 ‘런던 지하철 테러’까지, 테러는 무엇 때문에 일어나고 어떤 기억을 남기는지 추적했다. 5주년 당일인 11일 오후 6시에는 다큐 ‘플라이트93-남겨진 이야기’가 방영된다. 영화 ‘플라이트 93’을 만들기 위해 9·11 테러 희생자 유가족들을 대상으로 7주간의 심층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이 자료를 바탕으로 ‘본 슈프리머시’ 등을 연출한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다큐로 만들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관계자는 “9·11은 단순테러가 아닌 문명사적인 사건이라는 판단에 따라 24시간 종일 방송을 기획했다.”면서 “테러라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9·11테러 영화화 ‘플라이트 93’ 새달 8일 개봉

    현실을 현실보다 더 신랄하게 고발하는 게 다큐멘터리의 기능일 것이다. 새달 8일 개봉하는 ‘플라이트 93’(United 93)은 ‘타이밍’이 문제일 뿐 이제쯤 나올 수밖에 없었던 영화였다.2001년 9·11 테러사건을 스크린으로 옮긴 예측가능한 작업은 ‘블러디 선데이’(2002년)‘본 슈프리머시’(2004년)의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나꿔챘다. 순발력을 발휘한 감독은 다큐멘터리 드라마 방식을 택해 소재의 정치적 위험부담을 최대한 줄였다. 미국의 심장부가 속수무책으로 화염에 주저앉는 충격의 장면들을 과연 어떤 요령, 어느 정도의 긴장 수위로 흡수할지가 ‘9·11 영화’의 관건. 백악관도 펜타곤도 아닌 미국연방항공국에 시종 카메라를 들이댄 이 영화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또 한편의 하이재킹 오락물이 결코 아님’을 선언한다. 항로이탈한 민항기들로 뒤숭숭해진 연방항공국 관제센터, 테러의 배경을 알지 못해 허둥대는 현장상황을 복기하는 영화는 도입부에서부터 객석을 긴박감으로 몰아친다.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두 대의 민항기가 충돌하고 또 한 대가 국방부에 추락하는 장면을 속수무책 CNN뉴스를 통해서나 확인하는 연방항공국은 그 자체로 세계경찰을 자처했던 미국의 초라한 ‘자기고발’이다. 사태의 맥을 짚지 못해 허둥거리는 펜타곤과 백악관의 무능함이 다큐 방식으로 가감없이 노출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최소한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관객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자아비판과 검열이 얼마나 힘든지(그것도 할리우드에서!)를 확인시킨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명백히 한계가 있다. 영화가 주목한 쪽은 비교적 정보가 많이 노출된 세 대의 폭파 민항기가 아닌, 이슬람 과격단체에 납치돼 국회의사당으로 돌진하다 펜실베이니아 외곽 벌판에 떨어진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UA93’. 사고 직전 희생자들과 전화통화한 유가족들의 증언, 블랙박스 분석자료 등을 토대로 재구성된 영화는 냉정을 잃어 다큐멘터리 본연의 순수성을 전달하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자살테러를 막으려 테러범과의 사투를 벌이는 탑승자들의 이야기가 돌출 무용담처럼 재가공된 후반부는 (미국)시민영웅을 띄운 또 다른 형태의 액션물인 듯 할리우드 공간에서의 태생적 한계를 드러내고 만다. 역사인식과 상업주의가 어디쯤에서 타협했는지, 다큐멘터리의 소임을 얼마나 순수하게 고민했는지는 감독과 제작자만이 알 일이다. 당시 현장을 지휘한 연방항공국 국장을 비롯해 연기경력이 없는 일반인들이 캐스팅됐다.15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101세 할머니가 다녀온 저승얘기

    101세 할머니가 다녀온 저승얘기

    숨졌다고 생각된 할머니가 8시간만에 되살아났다가 자기의 예언대로 사흘뒤에 숨을 거두자 그 사이에 별의별 일이 다 벌어졌다. 8시간 동안 「특급저승紀行」을 하고 왔다는 할머니는 한 동안 인기 「스타」 못지않게 관심의 대상이 됐었다. 전남 장흥(長興)군 안량면 수문리에 장수(長壽)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기록적으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장수할머니라고 불렀다. 69년 1백1살이 된 그 할머니가 12월 16일 드디어 숨을 거두었는데 그에 앞선 사흘 동안 이승에 많은 화제를 뿌려 놓고 갔다. 그것은 사흘전의 13일 새벽 4시에 일단 별세한 것으로 생각되어 자손들이 초상 준비를 분주히 하고 있을 때 『염라대왕이 날짜를 잘 못 받았으니 도로 가라고 해서 돌아 왔다…』면서 되살아 난 까닭이었다. 『염라대왕이 어떻게 생겼읍디까?』하면서 인근의 주민들이 밀려 오는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것 보다도 우선 할머니가 소생하는 바람에 상가(喪家)-길가(吉家)-상가(喪家)로 전전한 후손들의 수선은 엄숙한 죽음을 희극화시키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할머니는 일생에 두 번 죽은 셈이다. 죽었을 동안의 이야기가 희한할 수 밖에 없겠다. 할머니가 첫 번째로 숨을 거두었을 때다. 유족들은 관례대로 슬프게 곡을 했다. 부고도 인쇄해서 돌렸다. 할머니의 손과 발을 꽁꽁 묶었다. 수의도 입혔다. 관도 준비했다. 상복도 입었다. 모두 1백 20명에 가까운 손자 손녀들에게도 알리고 친척들도 모여 들었다. 장례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웃마을 사람들도 1세기를 살다간 할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상가(喪家)에 모여 들었다. 유족과 친지들도 살만큼 산 할머니의 죽음을 슬퍼하지는 않았다. 좋은 세상 살다 갔다고 저승길의 편안과 극락행을 빌기로 했다. 그런데 그 날 낮 12시쯤 되자 병풍 뒤 할머니를 모셔놓은 자리에서 신음소리 같은 것이 새어 나왔다. 가족들과 이웃 사람들이 달려갔다. 죽은지 8시간이나 지난 것으로 생각된 할머니가 눈을 멀뚱멀뚱하게 뜨고 몸과 손을 비틀면서 가는 소리로 물었다. 『아이들아, 나를 왜 이렇게 해 놓았느냐?』 그 자리에 뛰어 든 가족과 친지들은 할머니가 돌아 가셨기 때문에 장례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어서 다만 할머니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할머니의 소생 제2성은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아이고 내가 날짜를 잘못 받았다. 오늘은 초이렛날(음력)이지. 날이 나빠서 염라대왕이 다시 돌아 갔다가 사흘 뒤에 오라고 했다. 어서 나를 풀어다오』 그 때서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도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할머니의 몸에 감긴 염포를 풀고 수의를 벗겼다. 그러면서 가족들은 할머니가 죽었을 때 보다 더 크게 소리내어 울었다. 그것은 반가운 울음소리였다. 『1백살된 할머니가 살아왔다네』『염라대왕을 보고 왔다네』『그 할머니 몇 년을 더 살아도 좋다는 허가를 받고 왔다네』『먼저 죽은 영감과 만나 울고 헤어졌다네』- 말이 말을 물고 마을과 마을에 번져 나갔다. 할머니를 한번 구경하겠다는 사람, 할머니의 저승 이야기를 듣고싶다는 사람이 떼지어 몰려 들었다. 그 집은 초상집 보다 더 분주해졌다. 동네의 노인들이 저승의 모습을 설명해 달라고 간청해 왔다. 심지어 귀신의 혼을 불러내어 한 노파 무당은 소(蘇)할머니와 처녀시절에 친했던 어떤 여인을 저승에서 불어내어 슬프게 사설을 풀어 내었다. 『…아이고 정심(貞心)아, 우리가 오래오래 만나지 않은 것이 너를 위해 좋으련만 어차피 다시 만날 팔자이니 네가 왔다고 해서 뛰어가서 마중할까 했는데 염라대왕 분부로 도로 갔다는 말을 듣고 너를 위해 춤을 추고 나를 위해 울었다네…』 무당이 둥둥 북소리를 치면서 길게 늘어놓자 듣고 있던 사람들은 탄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소(蘇)할머니가 스스로 사흘 후에 죽는다고 예언한 말이 퍼지자 어떤 무당은 저승의 전갈이니 갈 때는 아무개의 옷을 갖다 주라는 뻔뻔스러운 소리까지 해 오고-. 되살아 난지 사흘 동안 할머니는 고요한 날을 보내지를 못했다. 소(蘇)할머니는 이곳 태생이다. 어릴때부터 몸이 커서(1백70cm) 여장부라는 소리를 들어왔다. 16세 때 같은 마을의 김모씨와 결혼, 4난매를 낳고 78세 때 남편과 사별했다. 소(蘇)할머니는 70이 넘도록 고깃배를 저어 바다로 나가기도 했고 1백살된 68년까지도 바느질을 하고 바지라기를 까서 집안 일을 도와 왔다. 할머니는 역시 남편을 일찍 잃은 맏딸 김복덕(金福德)여인(68)의 집에 의탁하고 살아왔다. 이 늙은 딸의 효도가 동네에 소문이 날 정도로 지극해서 할머니가 도지사의 장수상(長壽賞)을 탔을 때 함께 모범효녀상을 탔다. 이 김여인의 말에 의하면 소(蘇)할머니의 장수의 비결은 고기를 먹지 않았는데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되살아난 날도 밥상에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올렸으나 이 고기는 입에도 대지 않고 겨우 바다생선 몇 점과 채소류로 밥 한 그릇을 거뜬히 없앴다. 또 그 건강법은 목욕에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23년 전에 먼저 보낸 남편의 정을 잊지 못해 매월 보름에는 머리를 감고 몸을 씻고 이른 새벽에 바닷가에 나가 남편의 명복을 돋아 오는 해 앞에서 빌었다는 얘기. 소(蘇)할머니는 외손자들을 다 합하면 자손이 1백20명에 이르는데 5대손 까지 보았다. 할머니는 우연인지 자기가 예언한 음력 10일(12월16일)에 진짜로 고요히 한번 왔던 저승길로 다시 떠났다. 떠나기 직전에는 유가족들의 앞날을 걱정해서 고기잡이는 이렇게 하고 바지라기는 저렇게 까야 된다고 소상히 가르쳐 주는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숨을 거두자 자손들은 신중을 기하기 위해 멀리 읍내에 있는 의사를 모셔와서 진단을 받기도 했다. 장흥(長興)읍의 십자의원장 박예진(朴藝鎭)씨는 『소(蘇)할머니가 첫 번째는 완전히 운명했었다고 볼수는 없다. 호흡이 멎었더도 심장이 약하게 움직이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심장이 되살아 나서 할머니는 소생한 것 뿐이다』라고 과학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다. 그런가하면 점장이와 무당들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날이 미리 정해져 있다. 할머니는 날짜를 잘 잡아 살아 난 것이다』라고 그럴싸하게 설명하면서 『소(蘇)할머니가 염라대왕을 만나고 왔다는 것만 보아도 알 일이 아니냐』라고 때를 만난 듯 떠벌리고 있다. 장흥=박재홍(朴在烘)기자 [선데이서울 70년 신년특대호 제3권 1호 통권 제 66호]
  • [열린세상] 업무상 재해 기준 바꿔야 한다/전원 변호사

    과로사는 1980년대에서야 처음 사용하게 된 용어로서 인과관계적 요인을 강조하기 때문에 의학적 용어는 아니다. 이는 과중한 업무로 인하여 고혈압·고지혈증·동맥경화 등 질병이 악화되어 뇌출혈·뇌경색·지주막하출혈 등의 뇌혈관질환이나, 심근경색 및 심장마비 등을 일으켜 업무불능이나 사망에 이르게 되는 상태를 지칭한다. 이러한 과로사는 현대사회에 있어서 사회문제가 되어 왔으며, 이러한 과로와 관련된 업무상 질병에 대하여 그 인정영역이 종전에는 부인되었던 자살이나 돌연사에도 점점 확대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과로사는 수급권 취득과는 별개로 명예와 연결된다. 즉, 이를 인정받으면, 피해자는 편치 않은 몸을 이끌고 헌신적으로 일을 해온 사람이라고 인정되며, 그렇지 못하면, 단순히 자기의 건강관리를 못한 부주의한 사람으로 판명되는 것이다. 따라서 과로사의 인정 여부는 근로자로서 또는 공무원으로서 한 인간의 삶의 질과 가치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과로와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특히 스트레스는 한국인 사망률의 최고를 점유하는 암의 근원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과로사와 암이라는 두 사회문제가 교차하는 것이다. 암 중에서 가장 자주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는 음주로 인한 간암의 경우 이에 대한 처리로 시끄러우며, 최근에도 암으로 사망한 과로 공무원의 죽음에 관한 유족의 원성이 인터넷에 떠돈다. 최근 근로복지공단은 새로운 지침을 설정하여 과로사의 인정기준에 대하여 엄격하게 심사하고 있다. 중요 쟁점은 바로 의학적 판단이다. 이 의학적 판단은 부검 소견서 등에서 명시한 사인 즉, 선행사인이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의 사인은 사인란에 적시하는 것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개개인의 사망원인은 한 가지 기준으로는 규정할 수 없이 많으며, 사인에서 시작하여 사망에 이르는 과정도 다양하다. 업무상 재해 여부를 의사가 판단하여야 하느냐 아니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취지에 따라 판단할 것이냐의 문제는 결국 의학적 소견과 법률의 합목적적 해석으로 갈라진다. 산재보험은 공적보험이다. 한 인간의 명예와 유가족의 생계와 직결되어 있는 과로사에 대하여 수급을 어렵게 하는 것이 과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취지에 맞는 합리적인 운영인지 의심스럽게 한다. 법은 상식이지 의학이 아니다. 의학적 기준과 법의 기준은 분명히 다르다. 현재 간암을 비롯한 대부분의 암은 공단의 과로사 인정범위에서 거의 배제되어 있다. 그러나 상당수 의사들의 의학적 소견으로 스트레스는 분명 암의 주된 원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단은 대부분의 암을 실질적으로 업무상 재해에서 배척한다. 이러한 현재의 심사기준으로는 암에 걸린 대부분의 근로자나 공무원은 보상을 받을 수 없다. 물론 의학적 판단이라는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업무상 재해의 인정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공단의 어려움을 일견 이해할 수는 있다. 이에 필자는 다음과 같은 제도의 도입을 제안한다.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우리는 입증책임에 비율을 적용하여 판단하게 되는데, 과실상계도 하고 손익상계도 한다. 의학적 기준에 따라 판단하게 되면 일도양단 즉, 과로사가 인정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주된 부분이 개인의 건강관리 등의 과실로 존재한다면, 과로사를 부인하게 된다. 이러한 일도양단의 결정, 이분법적인 결정은 탈피하여야 한다. 사회보험의 목적은 국민의 건강과 소득상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제도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현행의 승인 및 불승인 시스템에서 벗어나 발생 원인의 기여도에 따라 판단하는 체계로 바꾸는 것을 고려할 시점이다. 과로사는 과로사이지만 자신의 과실에서 기한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해당 부분만큼 보상 범위에서 공제하도록 하고, 중요 부분이 과로나 스트레스에서 기인한다면 전부 인정하는 새로운 체계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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