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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계 ‘천안함 성금’ 100억원 넘어

    천안함 침몰로 희생된 장병 유족들에 대한 재계 성금이 총 100억원을 넘었다. 포스코는 23일 유가족 지원 성금으로 KBS에 10억원을 기탁했다. GS그룹은 9억원, 한진그룹 5억원, 현대중공업 4억원, 효성그룹은 3억원을 기탁했다. 한화그룹은 5억원을 기탁할 예정이다. 순직자의 직계 및 배우자에게 일자리 제공 계획을 발표한 한화는 이날 평택의 해군 2함대사령부에서 유가족들에게 취업 절차를 설명했다. 이에 앞서 삼성그룹과 두산그룹이 30억원과 5억원을 전달한 데 이어 현대기아차그룹, SK그룹, LG그룹이 각각 20억원, 롯데그룹이 10억원을 기탁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광진구청 천안함 성금 1000만원 전달

    광진구청 천안함 성금 1000만원 전달

    정송학광진구청장과 구청·시설관리공단 직원들이 천안함 유족을 위한 성금을 전달했다. 이는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가장 먼저 천안함 유족들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한 것이다. 22일 광진구에 따르면 구청 간부와 직원, 시설관리공단 직원 등 1300여명이 ‘천안함’유가족을 돕기 위해 모금한 성금 1002만 5000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지정 기탁했다. 구는 천안함 사고로 인한 유가족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지난 14~20일 구청 직원과 구시설관리공단, 문화원 직원 등을 대상으로 모금운동을 전개했다. 자발적인 모금운동에 모두 1209명이 참여, 1002만 5000원의 성금을 모았다. 정 구청장은 “천안함 순직 장병들의 국가를 위한 숭고한 희생을 추모하고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하기 위해 구청과 산하기관 전 직원들이 성금운동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사설] 한화 천안함 유족 특채 모범될 만 하다

    한화그룹이 천안함 침몰사고로 숨진 승조원 유가족을 특별채용하기로 하고 그 뜻을 해군에 전달했다고 한다. 한화는 사망자의 직계 및 배우자를 대상으로 하되 사망자가 미혼이거나 부모가 없을 경우 형제·자매까지 채용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유가족들에게 절실한 부분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자는 김승연 회장의 제안으로 이뤄진 유가족 특채계획은 기업 이윤의 사회환원이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여러가지 측면에서 모범이 될 만하다는 게 우리의 견해다. 현재 사회 각계에서 천안함 참사로 인한 순직·실종자와 유가족을 돕겠다는 정성이 쌓이고 있다. 정부의 보상과 국민들이 보내주는 성금이 충격과 실의에 빠진 유가족들에게 조금은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 번으로 끝나는 성금이나 정부의 보상금과는 달리 유가족들에게 평생의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것은 항구적인 삶의 방편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는 경제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천안함 승조원들의 희생을 이 사회가 영원히 잊지 않고 있다는 더 숭고한 뜻을 내포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기아차 해비치 사회공헌문화재단이 천안함 승조원 유자녀들에게 초등학교 입학 후 대학 졸업까지 학습비와 문화공연 관람을 지원하기로 한 것도 높이 평가받을 만한 일이다. 한결같이 선량하고 순수한 마음을 지녔던 희생자와 실종자들의 면면을 알게 되면서 우리는 얼마나 눈물지었던가. 그런 남편과 아들, 형제를 잃은 유가족들의 슬픔을 위로하는 말을 찾는 것조차 미안했다. 하지만 크나큰 슬픔을 당하고도 남을 배려할 줄 알았던 유가족들이다. 고비고비마다 의연한 결단을 내려 우리를 숙연하게 했던 유가족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승조원들의 희생이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천안함 승조원들의 희생을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된다.
  • [천안함 함미인양 이후] 한화 “유가족 최우선 채용”

    한화그룹이 천안함 승조원 유가족을 최우선 채용하겠다는 뜻을 해군과 유가족에게 전했다고 20일 밝혔다. 채용 계획은 해외 인재 채용설명회를 마치고 이날 귀국한 김승연 회장이 “방위산업체를 경영하는 그룹으로서 유가족의 가장 절실한 부분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자.”는 제의로 유가족 채용 방안이 결정됐다. ☞ “아들아 왜 기름범벅이 됐니” 시신 수습 그뒤… ☞[포토]천안함 침몰부터 인양까지 한화는 순직자의 직계 및 배우자를 대상으로 유가족 중 1명을 채용하기로 했다. 순직한 승조원이 미혼이거나 부모가 없는 경우에는 형제 자매까지 채용 대상을 확대한다. 채용은 ㈜한화 화약 부문을 중심으로 그룹 계열사에서 이뤄진다. 부인 등 유가족의 연령과 경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적합한 자리에 최우선적으로 채용할 계획이다. 한화는 채용 계획을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현대기아차그룹 산하 해비치 사회공헌문화재단도 이에 앞서 승조원 유자녀들에게 초등학교 입학부터 대학 졸업까지 학자금과 문화공연 관람을 지원하기로 했다. 한편 경기도는 도내 거주 천안함 순직자 가족에게 임대주택 등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20일 밝혔다. 도에 따르면 천안함 순직자 46명 가운데 12명이 도내 거주자이며, 이 가운데 7명이 평택 2함대사령부 인근 해군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도는 수요조사를 거쳐 도내 거주 순직자 가족들이 희망할 경우 평택시의 매입임대 및 전세임대주택 공급계획에 맞춰 임대주택을 지원하거나 국민임대 또는 분양 주택을 특별공급할 방침이다. 김병철 안동환기자 kbchul@seoul.co.kr
  • [천안함 함미인양 이후] 유족 “시신서 냄새” 부패방지 요구

    천안함 침몰 희생 장병들의 장례가 함수가 인양된 이후인 24일쯤으로 일정이 늦어짐에 따라 시신 보존상태에 대한 유가족들의 걱정도 커지고 있다. 20일 일부 유가족들은 평택 해군2함대의 냉동실에 안치된 희생 장병들의 시신에서 “냄새가 난다.”면서 조치를 취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안함 희생자 중 가장 먼저 수습된 남기훈 상사 시신의 경우 벌써 19일째 냉동안치소에 보관되고 있다. 한 유가족은 “(시신 보관)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시신에서 냄새가 나 큰 걱정”이라면서 “(시신을) 닦는 등 염을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가족은 “안치소 온도가 너무 높은 것 같아 시신이 변질될까 걱정이다. (2함대측에) 온도를 낮춰 달라고 요청했다.”면서 “그래도 장례는 함수가 인양되고 8명의 미귀환 장병들이 모두 돌아왔을 때 할 것”이라고 말했다. 2함대 측에 따르면 사령부 의무대 옆에 있는 냉동 안치소는 영하 3~영상 3도 정도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국군수도병원 영양실장이 하루 한 번씩 시신 상태를 점검하며, 탈수방지 크림을 바르는 등 시신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신은 온도가 너무 낮으면 탈수가 빠르게 진행돼 미라형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고, 온도가 높으면 부패가 진행돼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해군 관계자는 “혈액을 모두 뽑아서 약품으로 대체하기 전에는 자연적으로 진행되는 시신의 부패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한다.”면서 현실적인 고민을 토로하기도 했다. 고려대의대 법의학과 황적준 교수는 “보통 섭씨 4도 이하에서는 세균이 증식을 멈춘다. 해군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보인다.”면서 “그러나 모든 동물이 생명이 끊어지면 냄새가 난다. 가족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막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을지대 보건산업대학 황규섭 교수는 “외국에서는 시신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화학약품을 투입하기도 하지만 국내에서는 정서상 맞지 않아 이런 방법을 활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해군 자녀 많이 다니는 진해 대야초교 학생들 한푼 두푼 용돈 아껴 ‘천안함 성금’ 전달

    “천안함 유가족들의 슬픔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20일 진해 대야초등학교 학생들이 한푼 두푼 용돈을 모아 마련한 성금을 지난 19일 모금회 사무실을 직접 방문해 전달했다고 밝혔다. 대야초교는 진해 해군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해군 자녀들이 주로 다니는 학교다. 24학급 전교생 668명 가운데 40%에 이르는 262명의 아버지가 부사관 이상의 해군 직업군인들이다. 4~6학년 학급운영위원들은 최근 전교학생회의를 열어 천안함 유가족들을 돕기 위해 전교생을 대상으로 모금운동을 하기로 결정했다. 천안함 함미가 인양된 15일부터 이틀간 반마다 모금함을 마련해 성금을 모았다. 이틀간 모인 금액은 114만 1050원.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학생들이 저마다 용돈을 아껴 50원짜리 동전부터 1000원짜리 지폐까지 마음을 보탰다. 교직원 40여명도 동참했다. 이 학교 학생들은 고 한주호 준위가 순직했을 때에도 진해시청에 마련된 분향소에 단체조문을 하고 그의 호국·희생정신을 기리는 특별수업을 하기도 했다. 진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천안함 함미인양 이후] “천장 날아가고 기름냄새…살아있는 것도 사치같다”

    “처참하게 부서진 함미를 보니 멀쩡히 살아 있는 것도 사치같네요.” 19일 오전 7시쯤 침몰한 천안함 미귀환 승조원 가족들 9명과 가족협의회 대표 2명 등 11명이 평택 해군2함대 사령부에서 절단된 함미를 찾았다. 이들은 자식이 남겼을 작은 흔적이라도 찾아보려 애썼지만 끝내 빈 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서해의 컴컴한 펄에서 뒹굴던 함미는 입구부터 끊어진 전선들이 엉켜 있었고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구겨진 매트리스가 뒤엉켜 있었고 부서진 집기의 잔해가 발에 밟혔다. 중사휴게실에는 포탄이 굴러다녔다. 가족들은 안전요원의 안내를 받아 천장이 날아간 기관조종실, 기관부침실, 식당, 탈의실, 절단면 부근 등을 둘러봤다. 일부 가족들은 기관부침실에 기름범벅으로 방치돼 있는 승조원들의 옷가지를 보고 울음을 터트렸다. 실종자가족협의회 최수동 언론담당은 “처음 들어간 곳이 기관부조정실인데 천장부분이 다 날아간 것을 본 가족들은 주저앉기도 했다.”면서 “눈물도 안 나올 정도로 비참하고 처참했다.”고 전했다. 당초 1시간으로 예정됐던 이들의 탐색은 40분 만에 끝이 났다. 강태민 일병의 아버지 영식(50)씨는 “아들의 사물함을 찾으려고 했지만 이름도 지워져 있었고 잠겨져 있어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면서 “합조단에서 유품을 수습해서 조사가 끝난 후 돌려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박보람 하사의 어머니 박영이(48)씨는 “애 아빠가 ‘도저히 눈 뜨고 못 볼 정도로 비참하다.’고 전했다.”면서 “안 봐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고 울먹였다. 미귀환 장병 가족들의 바람은 한결같다. 자식과 형제가 아직 인양되지 않은 함수나 연돌부분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박경수 중사의 사촌형 경식(36)씨는 “가족들이 말렸는데도 ‘제수씨가 동생의 흔적이라도 찾고 싶다.’며 (함미를 보러) 갔다.”면서 “엉망이 된 내부를 보고는 ‘진입하는 데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알겠다.’고 말해 더 마음이 아팠다.”고 전했다. 한편 ‘천안함 실종자 가족협의회’측은 “함수 인양 후 실종자 수색에서도 성과가 없을 경우, 시신 미수습자를 산화자로 처리해 장례를 진행할 계획”이라면서 “시신이 없는 경우에는 희생자의 유품을 가지고 장례를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장례는 해군 최고의 예우인 ’해군장‘으로 치르고, 해군참모총장이 장례위원장을 맡아 5일장으로 치를 예정이다. 이에 따라 유가족 대표 중 4명으로 구성된 장례위원회는 24일쯤 함수 인양 후 현재의 ‘천안함 실종자 가족협의회’를 ‘천안함 전사자 가족협의회’로 명칭을 바꿀 예정이다. 장례위원장인 나현민 일병의 부친 나재봉(52)씨는 “분향소 설치 장소에 대해 낭설이 많다. 해군의 아들들에게 제일 큰 것이 해군장 아니냐. 아이들에게 군인답게 해줘야 한다.”면서 “합동분향소 설치와 장소 등의 문제는 해군의 조언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천안함 함미인양 이후] 유가족·생존자에 보험금 조기지급

    금융업계가 천안함 유가족과 생존자에 대해 보험금 지급 및 채무상환 유예 등 금융 지원에 나선다. 금융감독원은 은행과 보험사 등과 함께 경기 평택 제2함대사령부에 현장지원반을 파견해 상속인 조회부터 보험금 지급까지 금융지원을 할 방침이라고 19일 밝혔다. 보험업계는 통상 3~10일가량 걸리던 사망자 보험금 지급 시간을 2일 이내로 단축할 방침이다. 또 청구서류를 최소화하기로 했다. 또 실종자 가족에게는 일단 보험금의 50% 정도를 우선 지급한다. 은행권도 사망·실종자 본인과 직계가족의 대출에 대해 원리금 상환을 일정기간 유예하고, 사망·실종자 직계가족이 생활안정 관련 대출을 받으면 우대금리를 적용하기로 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급격한 현대화 스트레스 한국인들 자살로 내몬다”

    “급격한 현대화에 따른 스트레스가 한국인들을 자살로 내몰았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WP)가 18일(현지시간) 한국 사회의 높은 자살률을 분석하는 기사를 비중 있게 게재했다. WP는 ‘번창한 사회의 우려스러운 경향’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하루 평균 3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한국 사회의 자살 문제를 다각도로 조명했다. ●노 前 대통령·최진실 남매 사진 실어 탤런트 최진실·진영 남매, 노무현 전 대통령, 모델 김다울의 사진이 함께 실린 이 기사는 “한국의 자살률이 지난 10년새 두 배 높아졌다.”면서 다른 부유한 국가들의 자살률이 대부분 1980년대 정점을 찍은 반면 한국의 자살률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에서는 2008년 10만명당 26명이 자살해 미국의 2.5배에 이르고 자살이 문화 깊숙이 자리잡은 일본보다도 현저하게 높다고 설명했다. WP는 “발전하기 전 한국의 자살률은 다른 산업국가들과 비교해 가장 낮았다.”면서 한국의 급속한 현대화가 과도한 스트레스를 유발했다고 분석했다. 한국인들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다른 29개국 국민들보다 “더 많이 일하고, 덜 자며, 더 많은 돈을 사설학원에 쓴다.”는 것이다. ●우울증 공개 금기하는 분위기 자살 부추겨 특히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높은 자살률의 원인 중 하나로 꼽혔다. 하규섭 자살방지협회장은 WP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은 우울증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기를 꺼린다.”고 말했다. 또 이러한 거부가 유가족까지 확대돼 유가족과의 면담이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유명인 모방자살 문제점으로 지적 신문은 고립감과 질병, 가난으로 인해 증가한 시골 노년층의 자살과 인터넷을 통해 동반 자살하는 20~30대 젊은층의 문제도 언급했다. WP는 또 유명인의 자살로 인한 모방 자살의 증가도 심각하게 바라봤다. 최진실이 자살한 달에 1700여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한 달 평균 1000여명이 자살하던 것과 비교해 700여명이나 늘었다고 지적했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 [천안함 함미인양 이후] 가족협, 합조단 참여 거부

    천안함 침몰사고 희생자 유가족 및 실종자 가족들이 민·군 합동조사단 참여를 거부했다. 현재 진행되는 방식으로 참여할 경우 군의 들러리만 서는 모양새를 벗어나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정국 실종자 가족협의회 대표는 18일 경기 평택 해군2함대 사령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민·군 합동조사단에 참여할 여건이 안 돼 합조단 참여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합조단에)참여하면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조사결과에 무조건 동의할 수밖에 없어, 결국 ‘들러리 서는 것’아니냐.”면서 “군에 요청한 합조단 일정 및 조직구성 등에 대한 자료를 받지 못하고 조사권한도 안 주는 것을 보면 (군의) 완곡한 거부 의사가 아니냐.”고 참여거부 배경을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무조건 ‘승복’ 또는 ‘불신’이 아니라 일단 합조단의 조사결과를 지켜 보고 의혹이 풀리면 동의를 할 것이고, 아니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 보겠다.”라는 단서를 달았다. 이 대표는 이어 “합조단 참여 거부 입장이 정치적인 이슈화나 정쟁거리로 확대되길 원치 않는다.”면서 “함수 인양 시점에 맞춰 현장에 가족대표 4명으로 구성된 해상팀을 파견하겠다.”고 말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김소원, ‘천안함’ 눈물보도로 연일 ‘화제’

    김소원, ‘천안함’ 눈물보도로 연일 ‘화제’

    천안암 침몰사건을 보도하며 눈물을 보인 김소원 SBS 앵커가 연일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김소원 앵커는 지난 16일 오후 생방송으로 진행된 SBS ‘8시 뉴스’를 통해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이날 뉴스에선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온 장병들의 사연과 눈물로 얼룩진 유가족들의 모습이 비춰졌다. 김 앵커는 “어제 발견된 장병 가운데는 묵묵히 일하던 조리병들이 있었다. 제대하면 ‘맛있는 것 만들어주겠다’던 아들들은 차가운 몸으로 돌아왔다.”고 소식을 전하며 울먹였다. 이내 김소원 앵커는 눈물을 참고 프로다운 모습으로 뉴스를 진행했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김소원 앵커 때문에 더욱 슬픈 뉴스였다. 비참한 사연을 솔직한 감정을 담아 보도한 김소원 앵커 때문에 가슴이 찡했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등 김 앵커를 격려하고 있다. 김소원 앵커의 눈물은 방송 직후부터 현재까지 눈물보도 동영상과 사진이 온라인에 급속도로 퍼지며 각종 포털사이트 인기검색어 상위권에 머무르는 등 네티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소원 앵커는 앞서 2007년 6월 캄보디아 비행기 추락사고 소식을 전하던 중 눈시울을 붉히며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던 사실이 알려지며 네티즌들로부터 “인간적인 모습이 보기 좋다.”는 평을 듣고 있다. 한편 지난 1월 13일 김소원 앵커는 ‘뉴스를 잘 보고 있다’는 익명의 한 시청자로부터 꽃바구니 속에 담긴 거액의 돈을 받았다가 곧바로 돌려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진 = SBS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천안함 눈물보도’ 김소원 앵커는 누구

    ‘천안함 눈물보도’ 김소원 앵커는 누구

    김소원 SBS 앵커가 생방송 도중 천안함 침몰사건을 눈물로 보도해 화제다. 지난 16일 오후 SBS ‘8시 뉴스’를 진행하는 김소원 앵커는 마른 목소리 톤으로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이날 뉴스에선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온 장병들의 사연과 눈물로 얼룩진 유가족들의 모습이 비춰졌다. 특히 이를 본 김소원 앵커도 눈물을 흘려 슬픔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김소원 앵커는 사망한 조리병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며 “전역하면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주겠다던 장병들은 차갑게 식은 채 돌아왔다.”라고 울먹여 시청자들의 눈가를 적셨다. 김소원 앵커는 정직한 아나운서로 유명하다. 김소원 앵커는 지난 1월 13일 익명의 시청자로부터 꽃바구니와 함께 거액의 수표가 든 돈 봉투를 받았다가 이를 되돌려 줘 화제가 된 바 있다. 당시 김소원 앵커는 SBS뉴스 홈페이지에 ‘김소원 앵커의 못다한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녀는 “주변에서 이번 일에 대해 ‘큰돈인데 욕심나지 않았느냐’, ‘아나운서들은 그런 선물을 자주 받느냐’ 등의 많은 질문을 받았다.”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김소원 앵커는 “이런 일은 SBS 창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며 “SBS 아나운서팀 누구라도 이런 일을 겪는다면 같은 방식으로 처리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팬들이 보낸 마음의 선물이라면 몰라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보낸 돈은 조심하는 차원에서라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임의로 처리할 수 없는 돈이기에 함부로 기부할 수도 없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시청자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김소원 아나운서는 “꽃바구니를 보낸 시청자는 팬으로서 고마움을 전하고, 자신의 돈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에 쓰이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고 전했다. 이어 “꽃바구니에 담겨 있었던 돈이 정말 필요한 곳에 쓰였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한편 1995년 SBS에 입사한 김소원 앵커는 2004년 메인 뉴스 프로그램인 ‘8시뉴스’의 여성 앵커로 발탁돼 지난 6년 간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또한 김소원 앵커는 지난 2006년 9월 협의 이혼했으며 슬하에 1남을 두고 있다. 초등학생인 아들의 양육은 현재 전 남편이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김경미 기자 84rornfl@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천안함 사건 눈물보도’ 김소원 앵커는 누구?

    ‘천안함 사건 눈물보도’ 김소원 앵커는 누구?

    김소원 SBS 앵커가 생방송 도중 천안암 침몰사건을 눈물로 보도해 화제다. 지난 16일 오후 SBS ‘8시 뉴스’를 진행하는 김소원 앵커는 마른 목소리 톤으로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이날 뉴스에선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온 장병들의 사연과 눈물로 얼룩진 유가족들의 모습이 비춰졌다. 특히 이를 본 김소원 앵커도 눈물을 흘려 슬픔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김소원 앵커는 사망한 조리병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며 “전역하면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주겠다던 장병들은 차갑게 식은 채 돌아왔다.”라고 울먹여 시청자들의 눈가를 적셨다. 김소원 앵커는 정직한 아나운서로 유명하다. 김소원 앵커는 지난 1월 13일 익명의 시청자로부터 꽃바구니와 함께 거액의 수표가 든 돈 봉투를 받았다가 이를 되돌려 줘 화제가 된 바 있다. 당시 김소원 앵커는 SBS뉴스 홈페이지에 ‘김소원 앵커의 못다한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녀는 “주변에서 이번 일에 대해 ‘큰돈인데 욕심나지 않았느냐’, ‘아나운서들은 그런 선물을 자주 받느냐’ 등의 많은 질문을 받았다.”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김소원 앵커는 “이런 일은 SBS 창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며 “SBS 아나운서팀 누구라도 이런 일을 겪는다면 같은 방식으로 처리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팬들이 보낸 마음의 선물이라면 몰라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보낸 돈은 조심하는 차원에서라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임의로 처리할 수 없는 돈이기에 함부로 기부할 수도 없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시청자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김소원 아나운서는 “꽃바구니를 보낸 시청자는 팬으로서 고마움을 전하고, 자신의 돈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에 쓰이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고 전했다. 이어 “꽃바구니에 담겨 있었던 돈이 정말 필요한 곳에 쓰였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한편 1995년 SBS에 입사한 김소원 앵커는 2004년 메인 뉴스 프로그램인 ‘8시뉴스’의 여성 앵커로 발탁돼 지난 6년 간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또한 김소원 앵커는 지난 2006년 9월 협의 이혼했으며 슬하에 1남을 두고 있다. 초등학생인 아들의 양육은 현재 전 남편이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김경미 기자 84rornfl@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현대기아차 해비치재단 천안함 유자녀 학비 지원

    현대기아차그룹 해비치 사회공헌문화재단은 16일 천안함 승조원 유자녀들에게 초등학교 입학부터 대학 졸업까지 학자금과 문화공연 관람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지원 대상은 지난달 26일 해군 2함대사령부 소속 초계함 침몰로 희생된 승조원들의 유자녀 전원이다. 재단은 이들이 초등학교 입학 이후 매년 초등학생 60만원, 중학생 80만원, 고등학생 120만원, 대학생 400만원씩의 학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또 연간 두 차례의 문화공연 관람의 기회를 제공한다. 재단 관계자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천안함 승조원들과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면서 “이들의 숭고한 희생을 잊지 않고 유자녀들이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또다시 눈물보인 김소원 앵커, 그녀를 울린 다른 뉴스는?

    또다시 눈물보인 김소원 앵커, 그녀를 울린 다른 뉴스는?

    김소원 SBS 앵커가 생방송 도중 눈물로 천안암 침몰사건을 보도해 물망에 올랐다. 지난 16일 오후 SBS ‘8시 뉴스’를 진행하는 김소원 앵커는 마른 목소리 톤으로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이날 뉴스에선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온 장병들의 사연과 눈물로 얼룩진 유가족들의 모습이 비춰졌다. 이 소식을 전했던 김소원 앵커도 눈물을 흘려 슬픔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김소원 앵커는 사망한 조리병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며 “전역하면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주겠다던 장병들은 차갑게 식은 채 돌아왔다.”라고 울먹여 시청자들의 마음을 적셨다. 김소원 앵커가 눈물보도를 한 적은 이번만이 아니다. 김소원 앵커는 2007년 6월 28일 방송된 SBS ‘8시 뉴스’에서 캄보디아 비행기 추락사고 소식을 전하던 중 눈시울을 붉히며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당시 김소원 앵커는 애써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려 시청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김소원 앵커는 캄보디아 비행기 추락 사고에 대한 현장화면, 사고 원인, 시신 장례 절차에 대한 소식을 보도하면서 ‘악몽의 현장’, ‘뜨거운 부정, 오열’, ‘시신은 모레 국내 운구’ 등의 소식을 전했다. 특히, 고(故)KBS 조종옥 기자가 자기 몸 상하는 줄 모르고 마지막 순간까지 아이를 감싸 안고 있었던, 안타까운 ‘부정’의 소식을 전할 땐 슬픔을 못 이겨 고개를 숙였다. 한편 당시 KBS 조종옥 기자는 비행기 추락 당시 아이를 구하기 위해 두 손으로 감싸 안고 있다가 한쪽 팔이 손상됐음에도 다른 팔로 끝까지 아이를 놓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김경미 기자 84rornfl@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소원 앵커, ‘천안함 사건’ 눈물보도 화제

    김소원 앵커, ‘천안함 사건’ 눈물보도 화제

    김소원 SBS 앵커가 생방송 도중 천안암 침몰사건을 보도하며 눈물을 보여 시청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지난 16일 오후 SBS ‘8시 뉴스’를 진행하는 김소원 앵커는 마른 목소리 톤으로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이날 뉴스에선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온 장병들의 사연과 눈물로 얼룩진 유가족들의 모습이 비춰졌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은 장병들과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특히 이를 본 김소원 앵커도 눈물을 흘려 슬픔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김소원 앵커는 사망한 조리병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며 “전역하면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주겠다던 장병들은 차갑게 식은 채 돌아왔다.”라고 울먹였다. 방송을 본 한 시청자들 역시 “김소원 앵커 때문에 더욱 슬픈 뉴스였다. 비참한 사연을 솔직한 감정을 담아 보도한 김소원 앵커 때문에 가슴이 찡했다.” “끝내 눈물을 흘린 김소원 앵커와 유가족들을 보면서 함께 울었다.”며 함께 눈가를 적셨다. 한편 지난 1월 13일 김소원 앵커는 ‘뉴스를 잘 보고 있다’는 익명의 한 시청자로부터 꽃바구니 속에 담긴 거액의 돈을 받았다가 곧바로 돌려줘 화제가 된 바 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김경미 기자 84rornfl@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철원 GOP 경계근무병 총기사고 1명 사망

    강원 철원 3사단 소속 일반전초(GOP)에서 총기 사고로 사병 1명이 14일 사망했다. 군은 15일 “14일 오전 7시55분쯤 3사단 소속 GOP 경계병인 송모 일병이 가슴 등 4곳에 총상을 입고 쓰러져 경기 포천시 국군일동병원에 후송했지만 사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송 일병의 손바닥에 총상이 있고, 함께 근무를 섰던 병사들은 4발의 총소리를 들었다고 진술한 반면 경계 투입 때 탄알 15발을 지급받은 송 일병의 K2 소총에는 8발만 남아 있어 피격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육군은 3사단 헌병대장과 육군본부 소속 수사관으로 조사팀을 꾸리고 정확한 사망원인 등을 조사하고 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유해논란 해소 ‘극비시설’ 첫 공개

    유해논란 해소 ‘극비시설’ 첫 공개

    흰색 방제복을 입고 30초의 ‘에어 샤워’를 마치자 사업장 쪽으로 난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이윽고 자외선이 차단된 노란색 형광등 불빛이 온몸을 감쌌다. 15일 삼성전자 반도체의 주력품인 비(非)메모리반도체 시스템 LSI가 생산되는 경기 용인시 기흥반도체공장 5라인 클린룸. 건설된 지 1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활발히 가동 중이다. 100여명의 직원들이 통로 양 옆에서 금속화합물 박막을 덧붙이거나 깎는 공정에 열중하고 있다. 공정 대부분은 반도체 자동장비가 담당하지만 사람의 손길은 여전히 필수적이다. 직원들이 플라스틱통에 담긴 지름 20㎝ 정도의 웨이퍼를 카트로 옮기거나 장비 안에 넣고 있다. 스피커를 통해 나지막이 들리는 라디오 소리 사이로 직원들이 바삐, 그러나 침착하게 일손을 놀린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무리 바빠도 반도체에 치명적인 먼지가 날릴 수 있어 클린룸 안에서는 절대로 뛰지 않는다.”면서 “사람이 여럿 있으면 반도체의 암모니아 수치가 증가하기 때문에 3명 이상이 모이는 것도 금지사항”이라고 귀띔했다. 2004년 말 완공된 S라인은 거의 모든 공정이 자동으로 이뤄지고 있다. 파운드리(수탁가공) 제품을 생산하는 이곳에서는 삼성 마크가 새겨진 로봇 장비 셔틀이 천장의 라인을 따라 오가며 웨이퍼를 분주히 옮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5라인 등 과거 라인들은 조만간 전자동 생산시설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1983년 공장설립 이후 최초로 국내외 보도진에게 반도체 생산라인을 공개했다. 생산 방식이나 공장 설계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반도체 업계에서 생산 라인은 ‘극비 시설’에 해당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 칼 구스타프 스웨덴 국왕 등 소수의 내외빈에게만 공개했던 곳이다. 그러나 이날 공개가 이뤄진 것은 최근 반도체 라인에서 근무했던 20대 여직원이 백혈병으로 세상을 뜨면서 삼성 반도체 공장의 안전성 논란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백혈병 환자가 9명 발생하고, 이중 5명이 사망했다고 집계했다. 시민단체는 22명 발병에 9명이 숨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두 차례의 산업안전공단 역학조사에서는 ‘작업 환경에 따라 백혈병이 발병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지난해 서울대 산학협력단 조사에서는 공장에서 쓰이는 약품에서 암을 유발하는 벤젠이 허용치 이상 검출된 것으로 나왔다. 조수인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메모리담당 사장은 “국내외 분석기관들이 재확인한 결과 벤젠 성분이 제조 공정 중에 검출되지 않았고, 공기 중에 노출되지 않아 건강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 사장은 이어 “앞으로 국내외 의료기관과 전문가 등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재조사에 착수하고, 사망 직원 유가족 등을 대상으로도 적당한 시기에 사업장을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또 최근 설립된 삼성전자 건강연구소를 통해 임직원의 건강 증진을 위한 중장기 활동도 펼치기로 했다. 그러나 과거에 현장에서 안전 수칙이 잘 지켜졌는지는 불명확하고, 백혈병 등이 발병한 과거 라인들도 개조 등을 통해 지금은 남아 있지 않아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천안함 함미 인양] “조금만 일찍 출동해 구조활동 폈다면…”

    “함께 바다를 지키던 분들이었는데…. 천안함 승조원들이 주검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저려옵니다.” 천안함 침몰 이후 누구보다 앞장서 달려왔던 해경 함정요원, 해군수중폭파팀(UDT) 대원, 전직 UDT대원 등 구조·수색요원들도 천안함 승조원들이 싸늘한 시신으로 인양되는 것을 보고는 하루 종일 마음이 아팠다. 최선을 다해 구조활동을 폈지만 조금이라도 일찍 출동해 구조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더 미안한 마음이 든다. 사고 직후 천안함 함수에 있던 장병 56명을 구조한 해경 ‘501함’ 고영재(55) 함장은 “실종 승조원들이 무사 귀환하기를 바랐는데 착잡하다.”며 “당시 함미가 이미 가라앉아 이들을 구조할 수 없었던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 함장은 “이들이야말로 국가의 아들이요, 영웅”이라며 “국민들이 이들의 희생정신을 영원히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함미 너무 빨리 침몰 안타까워” 해경은 해군이 펼치고 있는 사고 해역 잔해물 수거 및 유품 수거를 돕는 동시에 실종된 금양호 선원을 찾아내는 데도 주력할 방침이다. 장병 2명을 구조한 옹진군 어업지도선 김정석(56) 선장도 “당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승조원들까지 신경쓸 상황이 아니었다.”면서 “나중에 46명이 가라앉은 함미에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아쉬움을 떨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옛 동료들이 시신으로 돌아온 것을 보는 전직 UDT동지회 회원들도 가슴이 아프기는 마찬가지다. 사고 4일째부터 실종자 구조작업에 참여했던 UDT동지회 심현표(57) 회장은 “차가운 바닷속에 전우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하고 철수한 게 아쉬웠다. 고 한주호 준위와 천안함 희생자들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울먹였다. 그는 “늦게나마 함체 인양이 이뤄진 것은 다행이지만 사고 원인을 정확히 밝혀 이들의 숭고한 희생이 오랫동안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금양호 인양도 서둘러야” 실종자 구조작업을 폈던 한국구조연합회 정동남(60) 회장은 “실종자들이 주검이 돼 돌아온 것을 보니 구조작업이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면서 “시신이 손상되지 않도록 잘 수습해 유가족을 두번 죽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실종자 수색작업을 폈던 중앙119구조대 최정춘(42) 구조반장은 “실종자를 놔둔 채 구조작업을 종료하고 철수할 때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며 “실종자들이 끝내 시신 상태로 돌아와 안타깝다.”고 말했다. 금양98호 실종자 가족대표 이원상(43)씨는 “천안함 함미 인양을 계기로 천안함 실종자 수색작업을 펴고 돌아가다 실종된 금양호 선원들을 인양하는 작업도 하루빨리 펼쳐달라.”고 요구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천안함 함미 인양] 인양 4시간만에 첫 시신… 가림막뒤엔 ‘그 순간’ 뚜렷

    [천안함 함미 인양] 인양 4시간만에 첫 시신… 가림막뒤엔 ‘그 순간’ 뚜렷

    천안함을 삼킨 뒤 줄곧 무섭게 일렁이던 바다는 15일에는 다행히 잠잠했다. 취재진을 실은 인천 옹진군 소속 517호 행정선 선장은 “하늘이 이제서야 돕는 모양이야.”라고 말했다. 두 달에 한 차례 나올까 말까 할 정도로 좋은 날씨였다. 갈매기 몇 마리가 작업 현장을 맴돌며 무심하게 울어댔다. 행정선은 18노트(시속 33.3㎞)의 속력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함미(배 뒷부분) 쪽으로 성큼 다가갔다. 인양작업 현장 근처에 다다르자 7노트(시속 13㎞)의 최저 속력으로 주변을 시계방향으로 둥글게 돌았다. 실종자 가족들의 타들어 가는 기다림과 전 국민의 염원, 하늘의 보살핌으로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인양 작업 시작 옹진군 백령도 남방 1370m 지점 해역에 가라앉아 있던 천안함의 함미 인양 작업은 15일 오전 9시부터 시작됐다. 앞서 8시44분에는 침몰 해역 주변에 있던 독도함에서 유가족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모든 실종자를 무사히 수습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위령제가 열렸다. 주변에 있던 해군의 모든 함정은 15초간 애도의 기적을 울렸다. 2200t급 크레인에 매달린 함미는 1분에 1m씩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작업 시작 10분 남짓 만에 갑판 위의 사격통제 레이더실과 하푼미사일 등이 보였다. 9시22분부터는 해난구조대(SSU) 요원들이 크레인과 연결된 사다리를 통해 함미 갑판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9시28분부터는 자연배수가 시작됐고, 9시58분부터는 인공배수 작업이 진행됐다. 군(軍)은 “자연배수로 430t, 인공배수로 504t의 물을 뺐다.”고 밝혔다. 함미 곳곳에 설치된 배수펌프는 하얀 바닷물을 쉴 새 없이 토해냈다. 펌프 한 대당 한 시간에 1.5t의 해수를 뿜었다. 다행히 기름유출은 거의 없었다. 유류탱크가 격실로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군은 설명했다. 기름이 유출됐다면 주변의 까나리 어장이 큰 피해를 당할 우려가 있었다. 10시쯤부터 바람이 좀 거세지고, 해무가 끼어 보는 이들을 긴장시켰다. 배수 작업이 본 궤도에 오르자 수색작업도 시작됐다. 인양팀 요원들은 10시30분쯤 함미 바닥인 갑판 아래로 내려갔다. 해수를 뺀 함미 무게는 955t으로 추정됐다. 승용차 1000대의 무게다. 선체 무게가 625t이고, 330t은 기름 무게다. 크레인이 늘어뜨린 대형 쇠사슬 한 개가 끌어올릴 수 있는 무게는 최대 400t이다. 안전하게 함미를 끌어올리기 위해 3개의 쇠사슬이 설치됐다. ☞[사진]우리는 영웅들을 기억한다…천안함 순직·희생자 ●공중 부양 10시55분쯤 함미를 올려 놓을 3000t급 바지선이 함미 쪽 가까이 접근해 탑재 작업을 준비했다. 독도함에 있던 실종자 가족들도 바지선에 올랐다. 11시20분쯤 배수 작업은 90% 이상 진행됐고, 11시25분부터는 공중 부양을 위해 함미 주요 부분에 고정 케이블을 설치했다. 함미를 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로 옮기는 역할을 한 바지선은 자체 추진력이 없어 예인선 2대에 의해 이동했다. 선체가 해수면에서 빠져나올 때는 강력한 표면장력이 작용하고, 부력이 사라져 엄청난 무게가 한꺼번에 쇠사슬에 실리게 된다. 3개의 쇠사슬에 선체 무게가 고루 퍼져 공중에서 수평을 이루는 게 관건이었다. 낮 12시11분. 드디어 함미가 수면 위로 완전히 떠올랐다. 스크루와 추진축의 모습이 서서히 보이더니 배의 밑바닥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손상되지 않은 채 깨끗한 상태였다. 그러나 절단면을 중심으로 오른쪽 부분은 무언가가 떨어져 나간 듯 ‘C자(字)’로 파손됐고, 녹색 그물에 가려진 절단면 쪽 기관조종실, 가스터빈실 등도 심각하게 훼손된 것으로 보였다. 쇠사슬의 균형을 맞추면서 1분에 1㎝씩 선체를 공중으로 들어올리는 동안 엔진 냉각수가 들어가는 해수관을 통해 함미 안에 남아 있던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처참한 절단면 바지선에 옮긴 함미의 처참한 모습에서 끝내 죽음을 맞아야 했던 장병들의 고독한 시간이 짙게 묻어났다. 절단면이 여러 겹의 녹색그물로 가려 있었지만 당시 상황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절단면의 실루엣은 곳곳에서 뾰족하게 솟은 모습이었다. 절단면에는 세 곳이 날카롭게 솟아 있었다. 가운데는 높이 솟은 왕관과 같았다. 절단면을 정면으로 봤을 때 가운데 날카롭게 솟은 부분이 오른쪽(좌현)으로 밀려 올라가 있어 함미의 우현에서 강한 충격을 받은 것이 아닌가 짐작하게 했다. 그물망 안쪽으로는 갖가지 색상의 통신선, 배수관 등이 끊어진 채 늘어져 있었다. 척추가 잘려 두 동강 난 천안함의 끊어진 혈관들처럼 보였다. 상갑판 위 마주했던 연돌을 잃은 추적레이더실은 앞쪽 가운데 천장 부근이 움푹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상갑판 곳곳도 출렁이듯 평형을 잃은 채였다. 그래도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처럼 갈갈이 찢긴 절단면과는 달리 함미 상부는 그럭저럭 멀쩡했다. 함미의 뒷부분에는 ‘천안’이라는, 해군을 상징하는 하얀색 글씨가 회색 바탕에 외롭게 새겨져 있었다. 바닷속 21일간은 함미 곳곳의 페인트를 벗겨 냈다. 대신 선체는 서해바다 뻘과 같은 짙은 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크레인선 주변에 띄운 소형 크레인선인 유성호에서는 민간 인양업체 관계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탑재 차질 부양 작업 시작 15분 정도가 지나자 함미를 탑재할 바지선이 서서히 움직였다. 함미는 그대로 공중에서 균형을 맞춘 채 그 아랫부분으로 바지선이 이동했다. 함미를 탑재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함미는 25m쯤, 건물 10층 높이로 들어올려졌다. 들어올릴 때와 마찬가지로 함미는 평행을 이루며 천천히 바지선 쪽으로 내려갔고, 오후 1시12분 바지선에 착지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순조롭게 진행되던 인양 작업이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함미를 바지선의 거치대에 오차 없이 정확하게 탑재하는 마지막 난관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바지선에 안착된 것처럼 보였던 선체가 다시 살짝 들어올려졌다. 선체를 고정시킬 거치대 10여개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파손됐기 때문이다. 함체가 제대로 고정되지 않으면 바지선 이동이 불가능하다. 결국 거치대를 고치는 작업과 함미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는 작업이 함께 진행됐다. 1시21분쯤 함미 기관조종실에서 서대호 하사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10분 뒤에는 시신 몇 구가 추가로 발견됐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수색팀이 더욱 분주해졌다. 수색팀은 3시5분쯤 함내 진입을 위한 작업등 설치와 통로개척을 끝냈다. 거의 동시에 과학수사팀 4명이 승조원 식당에 진입했다. 3시14분쯤 무너진 거치대 한 곳의 보수작업이 마무리됐다. 군은 함미 내부의 실종자 신원 확인을 위해 해군 관계자 9명과 수사요원 4명, 실종자 가족 4명을 바지선에 탑승시켰다. 실종자 수색은 4개팀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수사요원 1명, 해군 관계자 2명, 가족대표 1명 등 4명이 한 팀을 이뤘다. ●시신 수습 시신은 15척의 고무보트를 통해 헬기가 배치된 독도함으로 옮겨졌다. 이어 이름표와 군번줄, 소지품 등으로 신원을 확인하고 알코올 세척을 비롯한 세부 수습을 거쳐 영현함에 안치한 뒤 태극기로 덮어 순직 장병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과정을 거쳤다. 1차로 수습된 시신은 헬기를 이용해 임시 안치소가 있는 제2함대사령부로 운구됐다. 함미를 탑재한 바지선은 실종자 수색을 모두 끝낸 밤늦게 2함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지선의 속도가 시속 5~7노트(9.3~13㎞)여서 평택항에는 17일 새벽에야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허백윤 김양진기자 window2@seoul.co.kr ●특별취재팀 정치부 김상연차장 오이석기자 사회부 김효섭 정현용 백민경 이민영 김양진 윤샘이나기자 사회2부 김병철부장 김학준차장 박건형기자 사진부 이호정차장 정연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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