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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련은 이제 밝혀야 한다”/장정행 국제부장(데스크시각)

    1983년 9월. 아직 초가을 이었지만 북방의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던 사할린의 바다는 창자를 끊는 듯한 통곡으로 가득했다. 이달 1일 새벽 KAL007기를 타고 뉴욕을 떠나 서울로 오다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공격으로 수중고혼이 된 승객 2백69명의 유가족들이 사랑하는 부모 아들 딸을 찾아 흔적도 없는 망망대해를 향해 울부짖었다. 세계가 다 함께 분노하고 상상할 수 없는 소련의 만행에 치를 떨었다. 사할린을 마주하고 있는 일본 최북단의 조용한 어항인 와카나이는 희생자들의 유품이라도 확인하려는 유가족들과 사고경위를 밝히려는 각국의 조사단,취재진들로 연일 붐볐다. 미국·일본,그리고 우리나라의 함정과 선박들이 사고해역에 몰려 한달 이상의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바닷가에 떠내려온 사고기의 일부 잔해와 승객들의 유류품 몇 조각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사고경위를 밝힐 수 있는 블랙박스도 발신음까지 포착했으나 끝내 회수하지 못하고 말았다. 소련 영해인 사고지점을 일찌감치 둘러싸고 있던 소련 함정들의 집요한 방해 때문이었다.소련은 무고한 희생자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유가족들의 뱃길마저도 함정과 전투기로 위협했다. 유엔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이 천인공노할 만행을 규탄하고 나서자 소련은 사고발생 3일 만에 타스통신을 통해 KAL기 격추사실을 시인하고,그러나 이 여객기가 첩보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얼토당토 않은 어거지를 썼다. 9일에는 오가루코프 참모총장 겸 제1국방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수호이 15전투기가 미사일로 KAL기를 격추시켰으며 KAL기가 소련 영공을 침범,첩보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주장을 되풀이 했다. 그러나 이 때는 이미 출격전투기와 기지와의 교신내용을 분석,소련측이 경고나 강제착륙의 시도없이 격추를 명령했음이 밝혀져 있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알려진 사건 경위는 아무것도 없는 형편이다. 다만 소련의 자유화바람을 타고 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야가 당시 수색작업에 동원됐던 잠수부,출격전투기의 조종사 등을 광범위하게 취재,최근 10회에 걸쳐 사건의 내막을 보도하여 진상의 일부가 알려졌을 뿐이다. 이 보도에 이어 공개된 사건 직후의 해저상황을 촬영한 몇 장의 사진은 소련이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었다. 그뿐 아니라 지금은 퇴역해 있는 출격전투기의 조종사는 당시 KAL007기가 여객기임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지상의 명령에 따라 격추시켰다고 증언하고 있다. 수색에 동원됐던 잠수부들은 블랙박스로 보이는 오렌지색 상자도 분명히 인양했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의 한소관계는 83년과는 판이하게 변했다. 88년 올림픽을 계기로 적대관계에서 협조관계로 바뀌었으며 빈번한 교류와 함께 정식으로 국교가 수립되었다. 19일에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샌프란시스코 모스크바에 이어 세번째 한소정상회담을 갖는다. 비록 일본방문 후의 귀국길이고 회담장소가 서울이 아닌 제주도이긴 하지만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한국방문은 세계사에 남을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비단 한소관계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소련의 위상도 이제는 더이상 냉전체제의 한쪽 우두머리가 아니라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동참하는 위치로 바뀌었다. 따라서 이제는 KAL사건의 진상을 밝힐 때가 됐으며 또 당연히 밝혀야만 한다. 이 같은 불행한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소련은 최소한 현재까지 그들이 알고 있는 사건경위와 왜 격추시켰는지를 밝혀야 할 책임이 있다. 아울러 지금까지도 항공계의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KAL기의 항로이탈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회수한 블랙박스를 공개하여 국제적인 분석을 하도록 해야 한다. 거대한 보잉747점보기를 민간여객기로 알아보지 못했다든가,아무것도 모르는 민간승객 2백69명을 태우고 KAL기가 첩보활동을 했다는 등의 어거지로 사건의 진상을 더 이상 묻어두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이제 막 본격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한국이 KAL기 사건의 피해당사국이기 때문에 앞으로 두 나라 관계의 발전을 진심으로 바란다면 사건의 진상공개와 함께 그에 합당한 사과가 있어야만 한다. 소련은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면서 45년 동안이나 자신들의 행위가 아니라고 부인해 왔던 1940년의 폴란드군 대량학살 사건을 소련비밀경찰의 소행이라고 인정했고,「프라하의 봄」을 무참히 짓밟았던 68년 8월의 체코 무력침공도 소련정부의 과오였음을 솔직이 시인했었다. 그러나 소련은 KAL기 사건에 대해서만은 최근까지도 계속 「더 이상 아는 것이 없다」는 식으로 발뺌하고 있다. 이달 내한했던 로가초프 외무차관은 사건진상의 공개를 바라는 우리 국민들의 기대에 『냉전시대에 발생했던 불행한 사건이었다』고 대답하며 관련자료가 추가로 입수되면 한국측에 전달하겠다는 식으로 얼버무려 버렸다. 급속한 접근과 빈번한 교류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의 대다수가 모스크바에 대해 느끼는 인상은 어딘가 음흉하고 어둡다는 쪽이 아직도 강하다. 소련 대통령이 역사적인 방한을 하고 두 나라 정상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잡고 정답게 상호 관심사를 의논하는 마당에,그깟 이미 흘러간 불행한 사건을 더 이상 굳이 들출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소 두 나라가 경제적이나 통일·안보적 필요에 의해 일시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하여 참다운 협력관계를 유지하려면 서로간의 신뢰가 회복돼야 하며 이 같은 신뢰를 쌓는 첫걸음이 KAL사건의 진상공개와 사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2백69명의 원혼과 그 유가족들을 달래고 평화를 사랑하는 자유세계에 소련의 변화를 확신시켜 주는 길이기도 하다.
  • 「범양상선」 유족측,경영참여 선언

    ◎어제 주총… 장남은 감사·측근은 사장 내정/“상속 2백87만주 국가에 헌납/은행빚 4천5백억도 갚겠다”/“시간벌기 양동작전”… 채권은행단 주시 정상운항을 꿈꾸던 범양상선이 유가족측의 경영권 참여선언으로 은행채권단과 정면대립,사태해결이 더욱 혼미에 빠져들고 있다. 박건석 전 회장의 장남 승주씨(30)는 29일 3년만에 열린 범양상선 주주총회에 참석,『부친의 상속주 2백87만4천여주를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같은 헌납이 자유의사에 의한 것으로 향후 범양이 공기업형태로 전환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또 부친주식의 국가헌납과 4천5백억원에 달하는 은행의 보증채무는 별개라고 지적,유가족측이 이를 떠맡아 변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박씨는 그러면서 이날 감사에 취임,유가족이 경영일선에 적극참여할 것임을 천명했다. 또 지난 3년동안 범양을 흑자경영으로 끌어올린 오배근사장을 전격퇴진시키고 후임에 친위파로 알려진 김광태 전 이사를 내정하는 등 이사진을 대폭개편,친정체제를 구축. 그러나 산업은행·신탁은행 등10개 채권은행단은 이를 범양의 정상화노력으로 보기보단 문제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유가족이 국가에 주식을 헌납키로 했다고해서 은행단의 부채 7천6백억원(사채포함)을 면제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당초 유가족측은 소유주식 4백29만주(전체의 56%)를 은행채무 면제조건으로 은행단측에 넘겨 범양을 제3자에게 공매키로 했었다. 또 서울신탁은행의 유가족들에 대한 주식반환청구 소송이 현재 계류중이어서 박씨의 주식헌납은 국유재산관련법규상 받아들일 수 없게 돼있다. 이 때문에 은행단측은 이같은 유가족측의 주식헌납이 「황당무계」한 것이라며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또 주식의 국가헌납이 사전에 정부와 합의된 것이라고 밝힌 박씨의 말과 달리 당국은 『합의본 바 없다』고 잘라 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은행단은 이날 유가족측의 주식헌납발표가 경영권을 계속 확보하고 채무변제에 시간을 벌기위한 양동작전이 아닌가 예의주시하며 당초 방침대로 은행관리에 의한 제3자 인수방안을 고수할 것으로 보여 사태해결이장기화될 전망이다.
  • 「범양상선」 다시 표류위기/유족·신탁은 인수협상 난항 안팎

    ◎유족,주식양도약속 철회… “국가헌납”/“경영권 재장악 노린 술수” 의혹 일어 범양상선이 다시 표류위기를 맞고 있다. 고 박건석회장 사망이후 3년동안 주인을 잃고 표류하다 지난해 6월 유족들의 전격적인 주식인도 의사표명으로 제3자 인수가 추진됐던 범양상선이 최근 유족들이 은행에 주식을 양도하지 않고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나섬으로써 또다시 장래가 불투명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유족들은 박회장 사망이후 3년동안 주주총회에 한번도 참석치 않다가 오는 29일에 있을 정기주총에서 이같은 자신들의 입장을 천명하겠다고 밝혀 주목을 끌고 있다. 유족들은 지난해 6월 박회장이 생전에 범양상선의 경영과 관련해 10개 은행에 진 연대 보증채무를 모두 면제해줄 경우 자신들이 갖고 있는 주식을 돌려주고 아울러 범양상선에 대한 경영권도 포기하겠다고 전격 제의를 했었다. 박회장이 10개 채권은행에 지고있던 채무는 4천5백억원,제2금융권을 포함한 전체채무는 7천6백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제의에 따라 주거래 은행인 서울신탁은행을 비롯,외환·산업·상업·조흥·한일·광주·전북·장기신용은행 등 범양상선 채권은행단은 지난해 10월 범양상선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유가족들의 제의를 수용하는 합의서에 서명함으로써 범양상선이 곧 정상화될 것으로 전망됐었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지난해말 당초 요구조건과는 달리 박회장의 제2금융권에 대한 보증채무도 은행측이 책임질 것을 요구했다. 또 소유주식을 양도한 뒤에도 범양상선에 대해 구상권을 갖겠다고 함으로써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들었다고 서울신탁은행측은 밝히고 있다. 현재 유가족들이 갖고 있는 주식 4백29만6천6백23주(56.16%) 가운데 한일은행이 박회장의 채무보증과 관련,5만주를 갖고 있을 뿐 나머지는 성북세무서가 박회장의 상속세와 종합소득세 2백89억원의 미납을 이유로 박회장 사망이후 강제압류중이며 아직까지 유가족들은 1백3억원의 세금을 미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같이 유가족과 서울신탁은행간의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유가족측이 최근 자신들의 주식을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전격 발표함에 따라 범양상선의 정상화가 다시 험난한 파고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유재산의 국가헌납과 관련,현행 국유재산법에는 ▲정부가 필요로 하는 재산만 취득하도록 돼있고 ▲사권(권리의무)이 개입된 재산은 취득하지 못하도록 돼있어 유가족들의 국가헌납은 현실성이 적은 것으로 보여진다. 이 때문에 유가족들의 입장에 어떤 복선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해운업계 일각에서는 박회장 사망이후 범양상선을 제외한 미륭상사와 범양식품·범양냉동을 이끌고 있는 박회장의 장남 박승주씨(30)가 올들어 미륭상사의 자금담당이사에서 사장으로 오른데 이어 3월초 범양식품 회장으로 발탁되는 등 경영일선에 전면 부상한 점과 이번 범양상선 주식의 국가헌납 천명과 관련이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즉 국가헌납이라는 호의적 의사를 밝힘으로써 범양그룹의 재기를 노리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다. 어쨌든 유족과 은행간의 협상이 지리멸렬해지면서 범양상선의 제3자 인수도 실기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유가족들이 주식인도를 제의했을 때만해도 해운경기가 호황을 누렸으나 이후 해운경기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범양상선의 경영상태도 악화돼 당기순이익이 지난해 36억원으로 전년도의 1백21억원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아울러 해운경기의 악화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여 유가족과의 협상이 지연될수록 범양상선의 정상화는 더욱 멀어질 전망이다.
  • 생활고에 찌든 「3·1」의 후예들/박현갑 사회부기자(현장)

    ◎“자부심 앞서 생계걱정이 더 절실” 일흔 두돌째 3·1절인 1일 하오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 광복아파트단지에서는 독립유공자 유가족들이 TV를 보며 쓸쓸한 하루를 보냈다. 12평자리 소형아파트단지인 이곳에는 가구마다 곳곳에 가난에 찌든 모습이 배어 있는 것 같았다. 유가족들에게는 이날이 어느 때보다도 자긍심을 가져봄직한 날이었는데도 그들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오히려 생계문제가 더욱 절박한 듯 했다. 『연탄가스 때문에 해마다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재작년에는 신혼부부가,작년에는 노부부가 가스중독으로 숨졌습니다』 일제치하에서 광복군 충청도 지역 책임자로 일하다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28살 젊디 젊은 나이에 감옥에서 세상을 떠난 장두환씨의 아들인 기년씨(76)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가장 큰 소망은 연탄가스냄새가 없는 따뜻한 방에서 지내는 것』이라고 했다. 이곳에 아파트가 들어선 것은 지난 72년. 당시 박정희대통령의 배려로 독립유공자와 6·25 참전용사 등에게 5백30가구가 분양됐다. 그때만 해도 꽤나고마운 일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다보니 주거환경이 상대적으로 나빠져 한집두집 모두 떠나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독립유공자 유가족은 겨우 43가구 백여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정부의 배려로 집을 구하기는 했지만 한달에 20만∼30만원씩의 연금으로는 겨우겨우 생활을 꾸려가는데도 벅차 다른 집을 구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아직까지 연탄가스에 시달리고 있다. 연탄가스 때문에 두번이나 병원신세를 졌다는 김봉영씨(72)는 『습기가 차거나 흐린날에는 늘 가스냄새를 맡으며 지내야 하고 밤9시가 넘으면 중독사고가 걱정이 돼 연탄을 갈 생각조차 못한다』고 했다.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연탄가스 문제만이 아니다. 중국에서 광복군으로 군자금조달 등의 지하운동을 했던 고 길창일씨(71)의 미망인 최인숙씨(60)는 구들장이 내려앉아 전기담요로 겨울을 나고있다. 그렇지만 이들은 『다른 불편은 그런대로 참을수 있다』면서 『가장 무서운 것은 생명의 위협이 되는 가스중독』이라며 이것만이라도 고칠수 없겠느냐며 안타까워 한다. 『이웃에 있는 15층짜리 현대식아파트와 비교하면 우리 아파트는 정말 달동네』라는 것이 이들의 자조섞인 한탄이었다.
  • 주부 의사자에 노 대통령 조의

    노태우대통령은 5일 인천시 서운동에서 물에 빠진 허태우(6),김현철군(6) 등 유치원생 2명을 구하려다 허군과 함께 현장에서 숨진 주부 이재수씨(33) 빈소에 관계비서관을 보내 조의를 표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 「위험」싣고 달리는 자가용버스

    ◎서울서만 5천대… 전국서 2만여대 “성업”/차령제한 없어 거의가 “고물”/종합보험도 안들어 사고땐 보상 “전무”/여행사도 싼맛에 이용… 불법 부채질 영업행위를 할 수 없는 개인이나 단체 명의의 비사업용(자가용) 차량의 불법영업행위가 부쩍 늘어 갖가지 부작용을 부르고 있다. 불법영업행위에 이용되고 있는 이들 차량의 대부분은 영업용 차량의 제한 차령을 넘긴 낡은 차들이어서 사고의 위험이 클 뿐만 아니라 종합보험에도 거의 들어있지 않아 사고가 일어났을 때 피해보상에 대한 보장책이 전혀 없는 실정이다. 일요일인 4일 소양호에 추락,대형참사를 빚은 불법 관광버스도 운전사 개인의 소유로 사업자등록 없이 불법영업행위를 해온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불법영업 자가용버스의 대형 사고로는 이밖에도 지난해 4월2일 올림픽대교에서 천호동쪽으로 가던 예식장 하객을 태운 자가용버스가 4.3m 아래로 추락,10명이 숨지고 39명이 다치는 사고가 있었으며 같은해 10월에는 자가용버스 14대로 9백여 차례의 불법영업을 해 1억3천여만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서울 한중관광 대표가 구속되기도 했다. 5일 서울전세버스 운송사업조합측에 따르면 서울시내에서 운행되고 있는 불법영업 자가용 버스만도 영업허가를 받은 전세버스 1천5백67대의 2∼3배가 넘는 3천∼5천대에 이르고 있다. 조합측은 불법영업 자가용버스가 전국적으로 2만여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는 한편 이들이 최근들어 용역업체나 서비스 업체 등 위장업체를 만들어 기업화 하고 있으며 신문지상 등에 이같은 위장업체 명의로 합법적인 영업을 하는 것처럼 소비자를 속이고 있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관광여행의 알선만 하도록 허가받은 여행사들이 전세버스가 부족하자 자가용버스를 대량으로 확보해 불법영업을 하고 있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관광 알선업을 하면서 자가용버스 15∼20대씩을 동원,불법영업을 해 지난해말 서울시경에 적발됐던 관악구 신림동 H관광 등 14개 관광회사는 업주가 구속된 뒤에도 지금까지 버젓이 같은 영업을 하고 있다. 이처럼 자가용 영업행위가 번창하고 있는 것은 도로운송차량법에 고속버스의 경우 10년,일반 버스는 7년의 제한차령이 되기직전 헐고 값싼 차를 사들여 사업용을 자가용으로 용도변경하면 계속 운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맹점을 이용하는데 따른 것이다. 롯데ㆍ한진ㆍ동양관광 등 서울시내 44개 허가업체의 경우 가을철 서울∼강원도 사이 운행요금이 대형버스 한대에 25만∼28만원인데 비해 불법영업 자가용버스의 요금은 20만∼25만원으로 싸고 비수기의 경우는 허가업체의 절반값으로 행락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영리에 눈이 어두운 자가용버스들은 1년에 1백50만∼2백만원의 보험료를 아끼기 위해 종합보험에도 들지 않고 있어 사고가 났을 경우 유가족들이나 부상자들에 대한 보상이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현행 운수사업법은 자가용차량이 영업행위를 했을 경우 1년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90일의 운행정지를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약식기소 벌금형 등 처벌이 아주 가벼울 뿐만 아니라 당국의 단속 또한 일시적인 것에 그치는 등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 소양호에 잠긴 가장의 소망/오승호 사회부기자(현장)

    ◎“학비 번다며 트럭몰고 나갔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4일 발생한 강원도 인제군 군축교 버스추락사고 희생자들이 안치돼 있는 아산재단 인제병원 영안실 한편에서 이번 사고로 숨진 트럭운전사 이양우씨(45)의 부인 이복덕씨(39)가 넋이 나간채 오열하고 있었다. 졸지에 부모가 형제를 잃은 다른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에게도 날벼락이긴 마찬가지겠지만 이씨의 슬픔은 유독 더한 것 같았다. 트럭운전사 이씨는 대구에서 보증금 1백만원에 월20만원짜리 방2칸을 얻어 셋방살이를 하면서 이불공장에서 이불을 도매로 사다가 트럭에 싣고 전국의 이불시장을 찾아다니며 팔아 남는 수입으로 어렵게 살아 왔다. 고등학교,중학교에 다니는 두아들의 학비를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대구에서 이불을 싣고 강원도 산골짜기까지 일일이 돌아다녀야 했던 이씨는 한번 집을 나서면 1주일에서 열흘만에 집에 돌아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번에도 언제나 그랬듯이 지난2일 트럭에 이불을 가득싣고 대구를 떠나 천안에서 이 가운에 몇채를 판 다음 서울로 올라와3일밤을 누나집에서 묵은뒤 이날도 인제에 있는 이불시장을 찾아다니다 군축교위에서 어처구니없는 변을 당했다. 넋을 잃고 쓰려져있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은 부인 이씨에게는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은 날벼락 말고도 대학입시를 며칠앞둔 아들 걱정과 함께 설상가상으로 사고를 낸 버스가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기 때문에 피해를 보상받을 길마저 막연한 어려움까지 덮쳤다. 『애들에게 공부 잘하고 문단속 잘 하라며 집을 나서더니…』 이씨는 말을 채 잇지 못하고 다시 정신을 잃었다. 병원 마당에는 제철을 만난 강원도의 낙엽들이 을씨년스럽게 쌓여있었다.
  • 일제 징용 유족 22명/일 정부상대 손배소

    【도쿄연합】 일제 강제 연행의 희생자와 유가족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공식사죄 및 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일제 식민통치기간중 군인ㆍ군속ㆍ노무자 등으로 끌려가 숨진 한국인 유족과 피해 당사자 등 22명은 29일 도쿄 지방재판소에 소송을 내고 과거 일본이 저지른 강제연행의 만행에 대해 사죄하고 그 피해에 대해 배상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국내 「태평양전쟁 한국인 희생자 유족회(회장 배해원)」가 일본내 양심있는 인사들로 구성된 대일공식진사와 배상청구소송 재판촉진회의 협조를 받아 올해 초부터 본격적인 대일 배상청구소송을 준비해 오다 이번에 1차로 22명을 선정,이중 15명이 이날 상오10시 도쿄 지방재판소에 직접 소장을 제출하게 됐다.
  • 시체인양 이틀째… 급류로 진전없어/여주 버스추락 참사

    ◎추가 인양 못해… 사망ㆍ실종 22명 확인/80㎞떨어진 팔당댐부근서 실종자 핸드백 발견/“빨리 찾아내라”유족들,영동고속도 점거 농성 【여주=박대출기자】 영동고속도로 섬강교 버스추락사건 이틀째인 2일 사고대책본부(본부장 홍종대여주군수)는 이날 상오7시부터 이 일대에서 실종자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추락한 버스안에서 이미 발견된 익사자 3명을 제외하고는 단 한구의 시체도 찾지 못했다. 이날 현장주변에는 사고소식을 듣고 밤새 달려온 실종자 유가족 등 80여명이 몰려와 애를 태우며 수색작업을 지켜보았다. 이날 사고대책본부에는 유가족들로부터 19명이 실종됐다고 신고됨에 따라 당시 사고버스에 타고 있던 30여명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앞서 발견된 익사자 3명과 탈출자 4명을 포함해 모두 26명이다. 대책본부는 집중호우의 영향으로 강물이 빠른 속도로 흐르는데다 흙탕물이어서 수중수색작업은 포기한채 강주변의 풀더미 등을 중심으로 떠오르는 시체가 있는지를 수색했다. 이날 상오11시40분쯤 사고지점에서 70∼80㎞쯤 떨어진 팔당댐 부근에서 실종된 남궁선씨(59ㆍ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의 핸드백이 발견됐다. 대책본부는 이날 상오 실종자가 더이상 떠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사고지점에서 1.5㎞쯤 떨어진 섬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길이 2백여m의 그물을 강을 가로질러 설치했다. 그러나 이곳의 물살이 워낙 거세 대부분의 실종자는 그물이 설치된 지점보다 하류쪽으로 떠내려 갔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유가족들은 또 하오 3차례에 걸쳐 섬강교 서쪽끝 왕복2차선 도로를 점거,회사측과 사고대책본부의 무성의에 항의해 6시간 남짓 농성을 벌였다. 이때문에 서울∼강릉간을 운행하던 차량들이 통행에 큰 불편을 겪었다. 유가족 80여명은 이날상오 사고수습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회사측에 실종자를 빨리 찾아 줄것과 정당한 보상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대해 강원도 버스사업조합대표 성계준씨(47),금강운수대표 이은중씨(62),전무이사 권혁만씨(61) 등 3명은 이날 하오4시쯤 사고 현장에 도착,유가족측에 적절한 보상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사고버스회사인 강원여객측은 사고현장에 자체 수습대책반을 편성,3일부터 유족들과 보상금 및 장례절차 등을 협의하기로 했다. 회사측은 사고버스가 한국자동차보험에 가입되어 있어 부상자와 사망ㆍ실종자에 대한 보상에는 별다른 문제점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원인을 조사중인 경기도 여주경찰서는 목격자와 생존자들이 진술에 따라 사고버스운전사 홍순범씨(52)가 빗길을 과속으로 달리다 앞에서 서행하던 승용차를 뒤늦게 발견,이를 피하려고 급히 핸들을 꺾으며 중앙선을 넘어 강물로 추락,사고를 낸 것으로 결론지었다.
  • 범양상선 새달 공매될 듯/박회장유족,보유주 은행측에 양도

    지난 87년 4월 박건석회장의 자살이후 3년여동안 표류해온 범양상선이 최근 박회장 유가족들의 주식문제가 타결됨에 따라 곧 공매될 전망이다. 22일 해운업계 및 금융계에 따르면 최근 박회장 유가족들이 소유하고 있는 범양상선 주식 가운데 50.19%(3백83만9천6백17주)의 지분에 대해 선보증 채무변제조건으로 은행측에 양도하기로 공식 통보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범양상선공매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해왔던 경영권 확보문제가 해결되게 돼 범양상선을 관리해온 외환은행 및 서울신탁은행ㆍ산업은행 등 관련은행들이 범양상선을 공매처분하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게 되었다. 외환은행 등 이들 3개 은행은 이달중 중역진회합을 갖고 보증채무변제 및 주식확보를 위한 상호합의 및 내부결제절차를 거쳐 오는 9월중에 범양상선의 경영권 확보작업을 끝낼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범양상선 인수에는 포항제철 및 선경그룹의 유공해운ㆍ삼성그룹ㆍ대우그룹 등 국내유수의 재벌들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대상선ㆍ한진해운ㆍ조양상선ㆍ대한해운 등 기존대형 해운업체들도 은밀히 인수를 검토해왔다.
  • 윤 전대통령 빈소에/노대통령 조문

    노태우대통령은 19일 하오 윤보선 전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안국동 자택을 방문,조문하고 장남 상구씨 내외ㆍ차남 동구씨 내외 등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 한적서도 2만불

    대한적십자사는 23일 이란의 지진피해발생과 관련,미화 2만달러를 긴급 구호금으로 이란적십자사에 보냈다. 한적은 이날 이란적십자사에 보낸 전문을 통해 『이번 지진의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하며 이재민들이 하루빨리 정상생활로 돌아오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대한적십자사는 현재 서울본사와 전국 13개 시도적십자사를 통해 이란적십자사측에 보낼 의약품·천막·구호금을 접수하고 있다.
  • 도로파괴ㆍ악천후로 구조대 접근못해/이란대지진… 아비규환의 현장

    ◎“살려달라”절규에 장비없어 속수무책/생존주민들 여진 두려워 집에도 못가/“신이내린 시련”… 영국ㆍ이라크 등 각국서 원조나서 ○…21일 이란 북부를 폐허화한 강진으로 1만∼2만5천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란의 정신적인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짤막한 성명을 통해 이번 지진은 「신의 시련」이라고 지적하고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에게 『인내와 협력을 통해 긍지를 갖고 이 시련을 극복하자』고 촉구. 하셰미 라프산자니 이란대통령도 3일간을 공식 추도기간으로 선포하고 이란국민들에게 구조작업을 돕도록 당부. ○…이란정부는 각료회의를 소집한 뒤 IRNA통신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슬프고 고통스러우며 무시무시한 비극으로 지금까지 2만7천여명이 사망하고 2만9천여명이 부상했다』고 밝히고 이란의 모든 정부기관은 「전면적인 비상태세」에 돌입했으며 생존자들에 대한 공중구조를 명령했다고 말했다. 이란관영 IRNA통신은 또 하메네이와 라프산자니대통령이 구조활동을 독려하기 위해 지진피해지역을 방문했다고 밝히고 구조활동의 협조를 위해 대통령직속 특별대책반이 구성됐다고 말했다. ○일선 의료진등 급파 ○…이란 정부는 이번 지진을 「끔찍한 비극」이라고 설명하고 남아프리카와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국가들에게 지진피해 복구를 위한 긴급 원조를 요청. 이란 당국은 특히 전주민들에게 금요일 기도회에서 헌혈을 해줄 것을 요청했으며 국제사회에 대해서도 지진으로 인해 부상한 사람들을 위해 혈액을 공급해줄 것을 호소. 한편 일본ㆍ프랑스ㆍ스위스ㆍ영국ㆍ호주도 앞서 미국에 이어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이란에 긴급원조를 제공하겠다고 제의. 일외무성은 이날 이란과 일본간의 우호적인 관계와 인도적인 측면을 감안,이란정부의 구호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고 말하고 이에 따라 정부는 적십자사를 통해 1백만달러를 기부할 것이며 53만9천달러 상당의 구호물자 및 의료품을 공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정부는 또한 12명의 구조대와 10명의 의료팀이 외무성 관리 2명 등과 함께 이날 저녁 이란으로 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봅 호크 호주총리도 호주정부는 이란의 구호활동을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히고 영국 민간 자선단체소속 자원봉사대 17명도 이란 지진피해 구호활동을 위해 현지로 향할 준비를 갖추었다고 이 단체 관계자가 말했다. ○“관계개선 호기”분석 영외무부도 21일 이란정부의 구호 요청에 즉각 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고 영국 적십자사도 우선 지진피해자들을 위한 담요ㆍ의약품ㆍ식료품등 구입 자금으로 1만파운드(1만7천2백달러)를 제공하겠다고 제의. ○…이란의 정치 분석가들은 이번 지진으로 미국 및 서방동맹국들이 이란측에 우호적인 태도와 관계개선을 위한 의사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고 설명. ○EC,1백만불 제공 ○…유엔은 주제네바 구호조직을 통한 즉각적인 지원활동에 들어갔으며 유럽공동체(EC)도 1백만 ECU(유럽통화단위ㆍ1백20만달러)의 구호금을 전달했다. ○…이란 제1의 적인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은 21일 새벽 북서부 이란을 강타한 지진과 관련,알리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이란대통령에게 위로의 전문을 보냈다. 이라크 관영 INA통신은 후세인대통령이 수만명의 사상자를 낸 이번 재난에 「심심한 유감」을 표시하는 내용의 전문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중상자 테헤란 이송 ○…희생자들이 몇t씩이나 되는 자갈과 파괴된 건물속에 파묻혀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구조요원들이 사고현장으로 몰려가고 있으나 지진으로 인한 도로파괴와 악천후로 현장접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IRNA통신은 사고현장으로 통하는 주요도로가 지진으로 대부분 파괴돼 육로를 통해 현장에 접근할 수없어 도로가 복구되길 기다리고 있으며 악천후로 공중수송도 용이하지 않은 상태라고 보도. 또한 중상자들의 대부분은 현장치료가 불가능해 테헤란으로 이송되고 있다. ○…구조대가 겪고 있는 또다른 어려움은 정전. 지진으로 송전시설이 모두 파괴되는 바람에 피해지역 도시와 마을사람들은 칠흑같은 어둠에 싸여있어 조명장비 없이 투입된 구조대원들은 벽돌더미에 깔린채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부상자들의 비명을 듣고도 속수무책인 채로 발만 동동. ○한마을 4백명 사망 ○…전화로 접촉한카스피해 인근 라시트마을의 한 주민은 자기 마을에서만 4백명이 죽은 것 같다고 말하면서 살아남은 주민들도 여진이 두려워 집에 돌아갈 생각을 못하고 길거리에서 서성대고 있다고 울먹. ◎지진지역은 가장 비옥한 차생산지/대부분이 세라믹 벽돌집… 피해 극심 ○…21일 발생한 지진으로 폐허화된 이란 서북지역은 이 나라의 가장 비옥한 토지를 비롯,부유한 마을,경치가 수려한 산들로 이루어진 곳. 이란 관영 매체들은 이번 지진으로 총면적 5만㎢,주민수 4백만명으로 추산되는 길란 및 잔잔주에서만 1천9백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는데 소련 아제르바이잔공화국과의 국경으로부터 테헤란 북쪽 해안휴양지에 이르는 카스피해 해안을 품고 있는 길란주는 주로 건조한 기후의 이란에서 가장 강수량이 많은 지역이다. 길란주 농부들의 주업은 담배경작. 남쪽으로 잔잔주까지 뻗어있는 고원지대에서는 이란이 생산하고 있는 다작물 거의 대부분이 생산되고 있다. ○…이번 이란의 지진이 엄청난 피해를 부른 것은 이지역 지각을 이루는 2개의 판상이 유동적이며 죄는 형태로 산악지대를 형성,진동을 가져왔기 때문이라는 게 지진전문가들의 진단. 게다가 피해지역의 많은 가옥들이 홍수가 잦은 침전된 평야위에 지어진데다 건축자재가 콘크리트 보강재를 사용하지 않은 세라믹 벽돌이어서 외부충격에 쉽게 무너져 내렸다는 것. ○대수롭지 않게 보도 ○…이란 언론들은 21일 2만5천여명의 사망자를 낸 것으로 추정되는 북부이란의 대지진에 대해 별다른 감정적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어 이채. 니코시아에서 수신된 이란 언론매체는 지진 보도에 신속성을 보여 이란통신의 경우 지진발생 30분만에 수도 테헤란에서 진동이 감지됐다고 타전. 그러나 그뒤의 후속 보도들은 잔잔과 길란지방에서 많은 사상자가 우려된다고 짤막하게 언급했을 뿐 주로 농작물에 피해가 났을 것이라고만 전했다. 게다가 이란관영 IRNA통신의 최초 보도들은 재앙의 정도를 극적으로 과소평가하기도. 이 통신이 이날 늦게 사망자수를 1만명으로 보도한 사이 유엔주재 이란대사는 2만5천명이 죽고 수만명이 다쳤다고 말했다. 이란 라디오방송은 6시간30분 뒤에야 지진보도를 했으며 TV는 한술 더떠 12시간이 지난후에야 아무런 논평없이 북부의 지진현장 장면을 반영. 하셰미 라프산자니대통령이 지진희생자들을 위한 3일간의 애도기간을 선포했음에도 TV는 아동용 만화와 교육프로를 내보내고 이집트와 영국간의 월드컵축구를 생중계하고 있었다. □세계 10대 지진 ▲1556. 1.24 중국 산서 83만명 ▲1737.10.11 인도캘커타 30만명 ▲1526. 5.20 시리아 안티오크 25만명 ▲1976. 7.28 중국 당산 24만2천명 ▲1927. 5.22 중국 난산 20만명 ▲1923. 9. 1 일본 도쿄 14만명 ▲1730.12.30 일본 북해도 13만7천명 ▲1920.12.16 중국 감숙 10만명 ▲1290. 9.29 중국 치흘리 10만명 ▲1201. 3 에게해 10만명
  • 북한,미군유해 5구 인도/어제 판문점서 휴전이래 두번째

    ◎미 원호위장,“관계개선 계기로” 【판문점=김원홍기자】 6ㆍ25때 실종된 미군유해 5구가 28일 상오 11시 판문점에서 북한측에 의해 미국측에 인도됐다. 이날의 미군유해 송환은 전쟁직후인 54년 8월17일 전몰자 유해를 대량으로 상호교환한 이래 36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날 판문점에는 「조선최고인민회의」 대의원겸 「조선대외문화연락협회」 부위원장인 이성호등 북한측 대표 3명이 나와 27일 내한한 미 하원 원호위원회(재향군인위원회) 위원장 소니 몽고메리 의원(민주)등 미국측 인수단 3명에게 유해를 인도했다. 이번에 인도된 5구의 유해는 87년 5월 황북도 토산에서 발견된 공군 1명과 같은 해 7월 수안에서 발견된 육군 4명의 것으로 29일 미 공군 특별기편으로 하와이로 운구,미 육군 중앙신원확인연구소로 옮겨져 신원을 확인한 뒤 유가족들에게 인도될 예정이다. 유해 5구중 2구는 인식표가 있어 북한측에 의해 이미 신원이 확인됐으나 나머지 3구는 3∼6개월 뒤에나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은 이날 상오 11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군사정전위원회 본회담장에서 유해인도및 인수서명을 했다. 유해인도가 끝난 뒤 몽고메리 위원장은 『실종미군유해 1백여구 이상이 이미 북한에 의해 발굴되거나 발굴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이번 유해송환을 계기로 더많은 유해가 송환되고 양국관계가 개선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차분한 광주… 빗속의 추모/어제 「5ㆍ18」10주

    ◎도청앞 5만인파 평화적집회/시민들,“질서”외치며 자진해산/일부대학생은 밤늦게까지 산발시위/상오 망월동엔 3만여명 몰려 【광주=임시취재반】 「5ㆍ18광주민주화운동」 10주년인 18일 광주에서는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추모식과 기념행사가 거행됐다. 이날 상오10시 망월동 5ㆍ18묘역에서 열린 「광주민중항쟁 10주기 추모식」에 참석했던 시민과 전남대ㆍ조선대등 「남대협」소속 대학생들은 하오3시쯤부터 광주시내 카톨릭센터를 중심으로 금남로 2∼3가와 충장로ㆍ도청앞 광장주변에 모여들어 하오8시까지 3시간 넘게 「광주5월 민중항쟁 10주년 계승대회」를 가졌다. 이날 대회가 시작된 하오5시부터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인파가 5만여명까지 몰렸다. 시민ㆍ재야단체회원과 학생들은 이날 하오3시쯤부터 「해체민자당」「노태우퇴진」등의 구호를 외치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등의 노래를 부르며 50∼1백여명씩 짝지어 대회장소로 모였으며 대회주최측은 대형 마이크로 「질서」「앉자」등의 구호를 외치며 집회참가자들을 정리시켰다.이날 집회는 오종렬「민주연합공동의장」의 대회사,유가족대표의 인사말순으로 진행,하오8시쯤 별다른 충돌없이 무사히 끝났다. 오의장은 대회사에서 『광주는 10년전 외형적으로 처참한 패배를 당했지만 이제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추앙을 받게 되었다』고 말했다. 주최측은 이날 행사가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비폭력 평화집회임을 강조하면서 질서유지 담당요원 50명을 편성,자체적으로 과격한 행동이나 구호등을 외치지 않도록 통제했다. 참석자들 가운데 3만여명은 집회가 끝난 하오8시쯤부터 금남로에서 광주역ㆍ무등산장입구ㆍ공명터미널 등 세방향으로 나뉘어 북구 중흥동 민자당광주전남시ㆍ도지부 사무실 앞까지 3㎞구간을 행진하려 했으나 경찰이 10분만에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자 대림동 등 도심 곳곳에서 1백∼2백명씩 몰려 화염병을 던지며 밤늦도록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날 기념식은 17일 집회개최시간의 엄수와 연사들의 반체제적 발언금지등 7개항을 조건으로 경찰당국의 허가를 받아 열렸다. 이에앞서 이날 상오10시에 시작된 망월동묘역 추모행사는 「추모제」「기념식」「씻김굿」등 3부로 나뉘어 빗속에서 4시간동안 진행됐다. 「5ㆍ18유족회」 전계량회장(54)은 추모사를 통해 『아직도 광주항쟁의 진실을 애써거부하는 닫힌 가슴들을 열지 못했으며 참혹했던 학살의 진상조차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고 애도했다. 또 「5ㆍ18기념사업추진위원회」 명노근회장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광주문제가 해결되지 못해 가슴 아프지만 이에 얽매이지 말고 광주항쟁 정신을 이어받아 민주화 실현에 최선을 다하자』고 말했다. 추모제는 유가족들의 분향과 각 단체 대표들의 헌화순으로 경건하게 진행됐다. 이날 추모식 행사는 내용이 다채롭고 짜임새 있게 준비되어 어느 해보다 차분하고 질서있게 치러졌다. 경찰은 이날 5ㆍ18묘역 3㎞지점에서 2.5t이상 차량을,5백m 지점에서는 추모식 준비위원회 소속직원 10명이 행사준비차량 및 시내버스ㆍ일부 보도차량만을 통과시켜 예년과 같이 혼잡한 상황은 벌이지지 않았다. 또 추모제가 시작된 상오10시 광주시내 교회와 사찰에서는 일제히 타종을 했고 차량들도 경적을 울려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한편 전남대ㆍ조선대 등 「남대협」소속 19개 대학생들은 이날 상오11시부터 각 대학별로 「5ㆍ18광주민중항쟁」1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또 서울 등 전국에서 모여든 대학생 5천여명은 하오2시 광주대학에 모여 「5ㆍ18계승 및 광주 5적처단결의대회」를 갖고 망월동 묘역까지 16㎞를 도보행진으로 참배했다. ㅁ임시취재반 ▲사회부=오승호ㆍ성종수기자 ▲제2사회부=임정용기자 ▲사진부=유재림ㆍ김경빈기자
  •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5ㆍ18민주화운동 10주에 부쳐/조오현

    ◎“원을 원으로 풀순 없다” 법구경 되새겨야 5ㆍ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지도 벌써 10년이 됐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의 세월,그러나 광주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은채 마치 악성종양처럼 우리 사회의 내부를 불신과 증오로 채워가고 있다. 광주문제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더 시간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그 아픔이 10년이 지나고도 치유되지 않았다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동안 광주문제를 정리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6공화국 출범이후 국회는 그동안 망월동에 묻어두었던 광주문제를 꺼내 진실을 밝히고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활동을 벌였다. 국민들을 모두 TV수상기 앞에 매달리게 했던 청문회를 통해 가려졌던 진실이 조금이나마 밝혀진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 또 5공시절에는 광주문제를 단순히 「광주사태」로 부르고 희생자들도 「폭도」라고 매도했던 것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의미를 규정하고 「폭도」가 「희생영령」이란 말로 바뀐 것도 변화라면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역사가 그만큼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표면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광주가 내장하고 있는 본질적인 몇가지 문제는 미결로 남아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것이며 민주화를 어떻게 이루어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광주문제는 일부 정치군인의 권력장악에 맞서 긴 군부통치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민주화를 실현시키기 위해 일어난 민주항쟁이었다. 수많은 희생자를 내면서 목이 터져라 외쳤던 구호도 민주주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부는 무력으로 이를 진압했고 선량한 시민과 학생은 폭도로 매도되었다. 처참한 살육전이 우발적인 것이었는지 계획적인 것이었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어찌되었건 이로 인해 광주는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도시가 되고 말았다. 5월18일만되면 시내 전체가 죽은 사람을 위해 촛불을 밝히고 통곡하는 도시는 광주밖에 없다. 우리가 적어도 같은 하늘 밑에 사는 형제라면 광주의 이러한 아픔을 어떻게든 풀어주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진작 매듭을 풀고상처를 아물게 해야할,정치적으로 책임있는 사람들은 「광주의 아픔」을 미끼로 추악한 정치흥정만 계속하고 있는듯한 느낌이다. 보상문제만 해도 그렇다. 정부여당의 경우 광주문제에 보상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마치 무슨 항복문서에 도장찍는 일인 것처럼 주저주저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애써 광주문제의 본질과 진상이 밝혀지는 것을 원하지도 않을 뿐더러 무조건 덮어두자는 식이다. 광주문제를 빌미로 명분상 흠을 잡히지 않겠다는 속셈이다. 야당이라고 해서 이 문제 해결에 여당보다 적극적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야당은 광주문제를 끝까지 물고 늘어져 6공화국의 입장을 난처하게 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우위에 서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정치인들은 아무도 광주문제를 마무리짓고자 하는 의지가 없어보인다. 말로는 과거를 청산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고 떠들면서도 청산방법이 당리당략에 어긋날듯 싶으면 여지없이 생트집을 잡고 돌아앉고 만다.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지고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고 했다. 그러나 누구도 광주의슬픔을 진정으로 나누려고 하지 않고 사람의 목숨값을 무슨 물건값 흥정하듯이 밀고 당기기를 계속하면서 그 언저리에서 자기 이익만 챙기려고 할 뿐이다. 저간의 형편이 이러하고 보면 광주문제가 10년이 지나도록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작태는 죽은 사람들의 원혼을 달래지 않고 유가족들과 슬픔을 나누지 않는다는 단순히 도덕적인 이유로만 비난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더욱 큰 문제는 그로 인해 높아진 불신의 벽과 삭여지지 않는 분노의 감정이다. 광주에 가본 사람은 느끼겠지만 광주문제가 10년째 공산의 메아리마냥 울리기만 하고 실체가 잡히지 않자 이제는 분노를 넘어 증오감으로 치닫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또다시 어떤 비극적 사태로 발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광주사람들은 차마 입밖에 이런 말을 내뱉지 않고 있지만 해도 너무 한다는 불만이 낙진처럼 누적되고 있다. 일을 자꾸 어렵게만 만들어가서는 안된다. 광주의 슬픔이 아무리 크다고해도 10년을 거기에 매달려 역사의수레바퀴를 헛돌게 해서는 곤란하다. 수많은 사람이 광주항쟁때 쓰러져간 것은 길을 잘못 든 민주주의의 수레를 바로 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스스로 역사의 제단앞에 공양물이 되었다. 진흙에 빠진 수레를 건져 올리기 위해 돌이 되고 다리가 되었다. 지금 살아남은 사람이 할 일은 그 돌을 딛고 일어나 그 다리를 밟고 민주사회라는 피안에 도착하는 일이다. 그것이 죽은 사람의 죽음을 욕되지 않게 하는 길이요.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언제까지나 광주의 비극을 흥정만 한다면 광주의 역사적 의미인 민주화가 오히려 광주라는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게 된다. 당장 우리가 서둘러 해야할 일은 우선 광주의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용서하고 청산하는 길밖에 없다. 개인적 감정으로야 도저히 용납할 수 없고 용서가 안될 수도 있다. 장승같은 자식 잃고 기둥같은 형제를 잃은 사람에게 용서하라고 말하는 것은 무례한 요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용서하지 않는다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오는 것도 아니고 용서와 관용이 아니면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없는 것을. 부처님은 「법구경」에서 우리들 중생에게 이렇게 가르친바 있다. 『원망은 원망으로 갚아지지 않는다. 원망은 또다른 원망을 낳기 때문이다. 원망은 용서함으로써만 갚을 수 있다』 어려운 때,마음이 상하는 때일수록 우리는 성인의 말씀을 삶의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분들의 가르침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슬기가 담겨 있다. 광주문제도 마찬가지다. 용서하고 관용하는 것만이 참으로 이기는 길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과거를 잊자는 얘기는 아니다. 역사란 과거의 아픔과 경험을 바탕으로 전진하는 것이라면 간디의 말처럼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다시는 10년전 광주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한다. 중음으로 맴도는 광주의 원혼들도 그래야 하루속히 정토왕생 이고득락하게 될 것이다. □약력 스님ㆍ전불교신문 주필 1968년 문단데뷔 신흥사주지 역임
  • 기독교 귀의… 참회의 새삶 간증/사면이후 김현희/요즘 어떻게지내나

    ◎TV사극 즐겨보며 계속 안가생활/구혼편지 많이 오나 결혼생각 없어 대법원의 사형확정판결을 받은뒤 지난달 12일 특별사면된 KAL858기 폭파범 김현희양(28)이 16일 하오 사면후 처음으로 서울 여의도 침례교회에 나와 간증예배에 참석한뒤 기자회견을 가졌다. 김양은 사면된 뒤에도 신변안전을 위해 안기부수사관들과 함께 「안가」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유족들에게 참회하고 새 삶을 찾기위해 신앙생활에 몰두하고 있다고 간증했다. 1백50여명의 신도가 참석한 이날 예배에 김양은 청색 줄무늬 투피스에 검은 구두를 신은 단정한 모습으로 나와 가끔 엷은 미소를 띠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으나 감정이 북받칠때는 잠시 흐느끼기도 했다. 이날 예배를 집례한 한기만목사가 『김일성의 뒷조종을 받아 엄청난 일을 저지른 예쁘고 귀한 딸이 하느님 앞에 돌아왔다』고 김양을 소개한데 이어 찬송가를 부를때 김양은 찬송가 책을 펼쳐들고 조금씩 입을 열며 따라 부르기도 했다. 이어 간증에서는 『1백15명의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킨 보잘것 없는 몸을 다시 살려내뜻깊은 자리를 마련해준 하느님께 감사한다』고 말하고 신앙을 갖게된 과정을 설명했다. 김양은 70년3월 인민학교 3학년때 주민들의 선거참여를 독려하는 「가창대」활동을 하다 소아마비 증세를 보여 친척 침구사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회복됐던 일,KAL기에 폭약을 두고 내린뒤 북한으로 돌아가지못하고 바레인 경찰에 붙잡혀 결국 대한민국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는점 등을 신앙을 갖게된 계기로 들었다. 김양은 또 북한에서 인민무력부장 오진우의 부인이 며느리로 삼겠다고 찾아왔으나 곧 공작원으로 선발돼 지금 이 자리에 선 것도 하느님의 도움이라고 밝혔다. 김양은 그러나 북한에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김일성사상으로 가득찬 엄격한 환경속에서 종교라는 말만 들어도 겁이 났다』면서 『북한에서는 일제시대때 외국인 선교사가 들어와 병원을 차려 조선인들을 생체실험을 한다고 선전하는등 종교는 위선적이고 잔인하다는 감정을 심어주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양은 이어 『북한은 통일을 이룩하고 88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KAL기를 폭파시켜야한다고 했으나 결국 무고한 동족을 희생시킨 북한의 극악한 만행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유족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 했다』고 밝히고 수사관의 권유로 신앙을 갖게 됐다고 했다. 김양은 자주 읽는 성경구절로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는 야고보서 1장의 한구절을 들며 한자도 틀림없이 외어 보이기도 했다. 이어 계속된 기자회견에서 사형확정뒤 특별사면을 받은 소감을 묻는 질문에 『재판정에서 유가족들의 흐느낌을 듣고 죽는 길만을 생각했었다』고 밝히고 『다시 살아난 의미를 되새기며 새로운 용기를 갖고 통일을 위해 매진할 기회를 준 정부ㆍ국민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이어 KAL기 폭파사고가 조작됐다는데 대해서는 『북한중앙TV에 나가 단 2분이라도 증언하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폭파 장본인이 이렇게 살아 있는데 어떻게 조작일수가 있느냐』며 일축했다. 김양은 『「토지」 「대원군」「역사는 흐른다」등 사극과 북한의 변한 모습을 보고 싶어 「통일전망대」등의 TV프로그램을 자주 본다』고 말하고 『국내나 일본에서 구혼편지도 많이 오고 있으나 수많은 생명을 죽인 몸으로 편지받을 자격도 없고 더구나 결혼은 생각지도 않고 있다』고 얼굴을 붉혔다.
  • 일,징병한인유골 수장 의혹

    ◎일정부,7천6백구 48년 송환 주장/국내 유족들엔 단 1구도 인계안돼 일본은 강제징병으로 태평양전쟁에 끌려가 희생당한 한국인 유골 7천6백여구를 종전후인 지난 48년 한국에 송환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국내 유가족들중에는 이 유골을 인수한 사람이 전혀 없는 것으로 밝혀져 송환과정에서 수장등의 방법으로 없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짙게 해주고 있다. 이같은 의혹은 일제징병으로 끌려간 부모친지의 생사확인 및 유해송환을 일본후생성에 요청했던 국내 유가족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일본 후생성측은 지난48년 두차례에 걸쳐 군인ㆍ군속유골 7천6백43구를 한국측에 송환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당시 유골을 받은 유족은 한사람도 없다는 것. 이와관련,후생성측은 8일 상오 1948년 2월3일 나가사키(장기)현 사세보항을 출항한 보고타 마루편으로 4천5백97구의 유골을 송환한데 이어 같은해 5월31일 역시 사세보항에서 황금환편으로 3천46구의 유골을 한국에 보냈다고 공식 확인했다. 무라세마츠오(촌뢰송웅) 원호국 업무1과장등 후생성관계자들은 이날 연합통신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인 유골 7천6백여구를 본국으로 송환한 것이 사실이냐』는 질문에 대해 원호국 근거자료를 제시하면서 『한국인 전몰자는 종전전에는 육군의 경우 본적지를 관할하는 도병사부가,해군은 진해해군사령부가 전사자통보 및 유골전달 등의 업무를 담당했으며 종전후에는 후쿠오카 세화부 및 육군 복원국 잔무처리부에서 이를 담당했다』고 밝히고 『당시 복원국 문서에 따르면 분명히 한국인 군인ㆍ군속 유골이 사망자명부와 함께 두차례에 걸쳐 부산항에 송환된 것으로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 유족중 당시 부산항에서 유골을 인수했다는 사람은 아직까지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부산일대에 거주하고 있는 일부 유족들 사이에서는 유골을 실은 배가 부산항에 입항했다가 유족들의 거센 항의로 하역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되돌아갔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태평양전쟁 희생자유족회(회장 배해안원ㆍ55)에 따르면 후생성은 지난75년 유족회회장단이 후생성을 방문,유골송환여부를 확인할 당시 한 고위관리가 『유골의 행방이 묘연하다』고 밝혔던 것으로 알려져 문제의 유골은 송환과정에서 수장또는 폐기된 것이 틀림없는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75년4월 최종수회장(작고)과 함께 후생성을 방문했던 김상씨(63ㆍ현 유족회 부산지부장)는 이에대해 『당시 부산항으로 송환된 유해를 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다그치자 한 후생성관리는 부산항에 입항했던 배가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일본으로 되돌아 간뒤 유골의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털어 놓았었다』며 『일본인들이 바다에 유골을 버리고 갔을 것을 생각했지만 당시 자료등 구체적인 증거가 없어 그동안 이 사실을 외부에 공개하지 못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후생성측은 이날 『분명히 관련문서에는 유골이 한국으로 송환된것으로 돼 있다』면서 『인수사실 여부는 한국정부에 문의해 봐야 할 것』이라고만 대답했다.
  • 자살 늘어 유럽국가들 “고민”(특파원 코너)

    ◎불ㆍ서독서 한해 3만명… 윤화보다 많아/젊은층서 더욱 심각… 30년동안 3배로/좌절감이 주원인… 예방책수립에 골머리 풍요사회를 구가하고 있는 유럽에서 자살이 갈수록 늘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자살사망자의 수는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미 교통사고 사망자수를 웃돌고 있으며 특히 젊은층의 자살수치가 계속 증가,이 문제는 환경문제에 버금가는 관심이 필요한 상태에 이르렀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서유럽국가들 가운데 자살수치가 가장 높은 나라는 서독. 세계보건기구(WHO) 자료에 따르면 86년을 기준으로 인구 10만명당 서독에서는 4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년 동안에 2만6천2백30명이 자살한 것이다. 그 다음은 덴마크로 10만명당 28명의 자살비율을 보였으며 프랑스가 23명으로 뒤를 쫓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자살자 총수는 1만2천4백89명으로 하루 평균 34명이 스스로 세상을 등져 그해 교통사고 사망자 1만3백83명보다 더 많았으며 이미 82년부터 자살사망률이 교통사고사망률을 앞지르고 있다. 서독 네덜란드덴마크 벨기에 프랑스 등은 지난 20년 사이에 자살사망자가 두배로 늘었으며 특히 덴마크는 지난 35년 동안 3배의 증가율을 보였다. 그러나 실제는 이같은 수치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왜냐하면 통계상에 잡히는 수치는 병원에서의확인이나 유가족들이 신고한 경우만 계산되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가정에서 자살이 결행됐을 때 가족들은 병사 또는 다른 사고사로 자살사실을 감추려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년동안 구공체(EC)12개 국가에서는 줄잡아 70만명 정도가 자살기도로 병원을 찾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어떤 병원의 경우는 응급실 침대의 절반 이상을 자살기도 환자가 차지하는 때도 있다고 젊은 의사들은 증언하고 있다. 유럽에서의 지역적 자살률 분포는 북고남저현상이 뚜렷하다. 서독 스웨덴 프랑스 덴마크 등 중북부 유럽국가들의 자살률이 높은 반면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등은 자살자수가 늘고는 있지만 인구 10만명당 아직 10명 이내에 머물고 있다. 자살수단도 국가발전 정도에 따라 다르다. 산업화된 나라의 여성자살기도자들은 10명중 9명은 진정제를 복용하지만 유고 여자들은 흔히 아스피린을 삼키고 있다. 동구쪽의 자살현황은 명확치가 않다. 통계수치를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소련은 자살과 관련된 자료를 WHO에 전혀 제공치 않고 있다. 다만 헝가리는 오래전부터 자세히 보고하고 있다. 그리하여 헝가리는 오늘날 인구 10만명당 45명의 자살로 이 분야 세계1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WHO 자문위원인 자비에 포메로 박사는 보고서에서 『산업화된 사회일수록 인간관계는 더욱 소원해지고 가족들이나 이웃들과의 사랑과 상호관심이 엷어지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자살률을 높여가고 있는 중요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완벽에 가까운 사회보장제도는 이상향에 도달하는 한가지 방법이 되고는 있지만 결국 그것은 개인과 개인,개인과 가족,그리고 개인과 사회사이의 접착밀도를 엷게하는 원인도 되고 있다는게 이 분야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러한 사회일수록 자살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아울러 국민성이나 사회생활습관도 자살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대화를 즐겨하고 낙천적인 국민성을 가진 이탈리아 스페인 등이 자살률이 낮고 아직도 전통적인 가족제도를 튼튼히 유지시키고 있는 시칠리아가 유럽에서 자살이 가장 적은 지역으로 기록되고 있는게 바로 가족제도나 국민성이 자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영국이 자살률이 낮은 것도 그나라 사회의 특수한 전통인 초대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고 클럽이나 퍼브 등 사랑방 역할을 하는 모임의 장소가 도처에 있어 자기표현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는 것이 큰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과의사들은 자살의 증가중에서도 젊은 사람들의 자살이 더욱 큰 문제라고 강조하고 있다. EC국가들안에서 15∼24세 사이의 젊은이들 사망원인중 자살이 두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50년대에는 청소년의 자살이 사망자 1천명당 9명정도였으나 86년에는 28명으로 거의 3배나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의 자살증가는 학업이나 결혼등 이성문제와 관련한 좌절감,세대간의 격차 등 주변 사회환경의 악화가 큰 요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지적했다. 유럽 각국의 자살문제전문가 2백여명은 최근 프랑스에서 모임을 갖고 이같이 자살이 급증하고 있는 원인과 예방대책,그리고 자살기도자들에 대한 사후관리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전문가들은 『이제 인류는 환경문제에 쏟는 관심만큼 자살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대책의 시급성을 호소했다. 이들은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 이 분야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미흡하다고 지적,자살기도자들의 사후 관리는 임상적 치료에 그치지 말고 정신적ㆍ심리적 치료까지 완전히 끝낼 수 있는 단계까지 돌보아야 하며 이를 위한 특수응급실,병원 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젊은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충동적 상황이 빚어지지 않도록 어른들이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근본적으로는 이웃과 사회가 그들을 감싸 자살의 욕구를 떨쳐버릴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 하다고 결론 지었다.
  • 일,“군징용 한인명단 보관”/후생성

    ◎군속포함/배상 꺼려 45년간 숨겨오다 첫시인/한일 민간단체들 확인 【도쿄 연합】 일본정부는 태평양전쟁 수행을 위해 일제때 군인·군속으로 징집해간 한국인명부를 현재 보관하고 있으면서도 보상기피등을 위해 해방이후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관련문서 유실」을 이유로 명단공개 거부와 이의 대한인도를 외면하는등 비인도적인 처사로 일관해온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한국인에 대한 보상을 촉구하는 일본내 민간단체인 「일본국에 대해 공식진사와 보상을 청구하는 재판촉구모임」 대표4명과 한국내 희생자 유가족들의 모임인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양순임상임이사등 5명이 21일 하오 사회당 이토(이동수자)의원의 주선으로 일본 후생성을 방문,강제징용·징병자명단,희생자명부 등을 요구한 데 대한 후생성관리들의 답변과정에서 확인됐다. 후생성측은 이날 한국인 징용자들에 대한 끈질긴 명단공개요구에 대해 처음에는 『관련자료가 없다. 조사가 안됐다』며 발뺌하다 『일본군인·군속의 명단등은 있으면서 유독 한국인 명단만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고 반박하자 『징용자·정신대 등에 관한 명단은 없으나 군인·군속의 명단은 있다』고 실토했다. 이들 관리들은 그러나 군인·군속중 사망한 사람의 명단공개요구에 대해서는 사망자와 생존자의 분류가 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끝까지 공개를 거부했으며 군인·군속으로 동원된 구체적인 숫자에 대해서도 언급을 피했다. 후생성이 강제징용·징병자명단과 관련,보관유무를 확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정부는 그동안 패전과 함께 대한인력수탈에 관한 자료가 유실됐다는 이유로 한국내 유가족들의 간곡한 호소에도 불구,명단공개를 거부해 왔다. 일본이 지금까지 공개한 명단은 2만1천9백19명의 군인·군속사망자명부(65년 한일회담시 제공)뿐으로 그이외에는 징용자·징병자 총수조차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군인·군속으로 끌려간 한국인은 37만여명으로 이중 15만명이 행방불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후생성에는 4만명의 희생자명단이 보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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