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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수 회유·협박… 승부조작의 「검은손」

    ◎수사대상 오른 경마장 조직폭력배/뚝섬파 등 6개파 활개/주문 거절땐 폭행 일쑤/조교사 자살도 개입 흔적 조교사의 연쇄자살이후 검찰수사가 29일 조교사·기수뿐만아니라 경마장을 끼고 있는 조직폭력배등에 까지 확대,경마승부조작사건에 대한 수사가 확대되고 있다. 당초 조교사의 잇따른 자살로 조기단의 동요등을 우려,당분간 지켜보겠다던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 것은 이들의 자살동기등에 대한 의혹이 많아 두 조교사 죽음의 배후에 어떠한 형태로든 조직폭력배를 비롯한 검은 손이 개입했을 개연성이 높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마사회에 따르면 경마수입은 해마다 30%가량의 폭발적인 신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90년 2백60만여명이던 경마장관중은 지난해 2백76만여명으로 늘어났으며 마권발매액도 5천9백42억원에서 8천2백50억원으로 무려 2천3백여억원이나 늘어났다. 한 경마관계자에 의하면 89년 경마장이 뚝섬에서 과천으로 이전되면서 조직폭력배들끼리 세장악을 위한 암투가 시작돼 지금도 「과천파」「뚝섬파」「광주파」「전주파」등 5∼6개의 폭력조직이 거액의 이권을 놓고 싸우고 있다. 이들은 주로 폭력조직의 하수인으로 포섭된 브로커들과 결탁,이들을 앞세워 조교사나 기수들에게 접근,그날 그날의 경마정보를 빼내고 있다. 검찰조사결과 조교사·기수들이 일단 이들의 유혹과 협박에 굴복해 승부조작에 발을 들여놓으면 경마장을 떠나지 않는 이상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뚝섬시절에는 폭력배들이 조교사·기수들을 폭행한 사실도 많아 폭력배들의 요구를 거부하던 한 조교사가 한강얼음판에서 동사직전까지 폭행당해 반신불수의 몸으로 경마장을 떠난 일도 있었다고 전한다. 이러한 개연성 외에도 최연홍·이봉래조교사의 경우 자살하기 몇시간 전의 행적이 전혀 밝혀지지 않고 있는 점도 검찰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검찰은 특히 이조교사가 투신 전날인 지난27일 하오11시쯤 외부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군대식 명령복종조로 『예,예』라고 대답한뒤 겁에 질린듯 창백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은 점등을 중시하고 있다. 또 사건발생당시 타살을 주장하던 유가족들이 하루만에 태도를 돌변,자살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폭력조직의 개입흔적을 강력하게 뒷받침해주고 있다.
  • 중국 정신대 피해자 일에 보상금 첫 청구

    【도쿄 연합】 중일전쟁중 일본군에 강제연행됐던 중국인 종군위안부 생존자와 사망자 유가족들이 7일 일본정부에대해 사죄와 함께 보상금 5만∼12만달러의 지불을 청구하는 요청서를 북경주재 일본대사관에 전달했다고 교도(공동)통신이 보도했다. 중국인 종군위안부 피해자들이 보상을 들고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앞으로 많은 피해자들이 똑같은 요구를 위해 준비중이어서 금년 가을로 예상되는 아키히토(명인)왕의 중국방문에 앞서 일본과 중국사이에 새로운 현안이 될것으로 보인다고 교도통신은 말했다. 북경의 시민단체 대표 동증씨(35·전북경대강사)등은 이날 북경주재 일본대사관을 방문,우동아씨(71·산서성 양선시 맹현거주)등 종군위안부 피해자 4명과 피해자로서 이미 사망한 이월아씨등 3명의 유가족들이 작성한 피해보상 요청서를 대신 전달하고 30일이내 회답을 주도록 요망했다.
  • “타고난 공복” 수원시 인사계장 권인택씨(이런 공무원)

    ◎「막힌 사람」소리 들어도 원칙에 산다/병역기피자 밤새워 설득,이튿날 입대/“입영율 1백% 달성”등 7차례의 표창/「유혹」거절당한 민원인까지 “공무원은 저래야” 『공무원이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제일 먼저 공직자로서의 책임감을 갖고 일을 수행해야 겠지요.그렇다고 따뜻한 인간미마저 잃어서야 되겠습니까』 동료들이 「원리원칙」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경기도 수원시청 인사계 권인택계장(40·지방행정주사).그의 이같은 공무원으로서의 신조는 처음 공직에 몸담았을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변함이 없다. 『특별히 국가관을 들먹이고 싶지는 않습니다.다만 기왕에 공직생활을 시작했으면 하늘을 우러러 한점의 부끄러움이 없도록 일을 처리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권계장의 이러한 자세는 그가 18년동안 공무원생활을 하는 동안 내무부장관 표창을 비롯한 모두 7차례의 큰상을 받게 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상들을 타게된 것이 자신이 잘나서가 아니라 모두 윗분과 동료직원들의 보살핌에서 비롯된것이라고 겸손해한다. 권계장이 공직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수원고교를 졸업하고 3년의 군복무를 마친 지난 74년.서기보로 첫 근무한 곳은 수원시 평동사무소였다.그가 처음 맡은 업무는 그때만 해도 「말도 많고 탈도 많다」는 병무행정이었다. 『병무행정 가운데서도 부정의 소지가 많은 분야가 방위소집순위자 명부라든가 징병검사 소명자료작성 등이었지요.유혹도 있었고 은근히 협박해오는 사람들도 있었어요.저는 그럴수록 원리원칙대로 했습니다.그때부터 저에게 「원리원칙」이란 별명이 붙었죠』 어떤이는 그에게 『이렇게 꽉 막힌 사람은 처음 본다』면서 발길을 돌리면서도 「공무원들이 모두 저렇기만 하면 이 나라가 잘 될 텐데…」하며 혼자말을 하기도 했다.그의 「원리원칙」은 관내에서 병역기피자를 한명도 만들지 않았다. 『지난78년 10월이었습니다.오모씨가 병역을 기피하고있는 것을 알게됐지요.그는 늘 숨어서 다니기 때문에 설득을 하려해도 만날 수가 있어야지요.그래서 매일 일과가 끝나면 그의 집근처에 가서 밤12시까지 길목을 지켰죠.6일쯤 됐을 때입니다.오씨가 자정이 약간넘어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뒤쫓아가 만났습니다. 밤을 새워가며 「사나이로서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치르지 않고 어떻게 앞으로 긴 일생을 숨어서 살겠느냐」며 침이 마르도록 설득했죠.다음날 오씨는 군에 입대했습니다』 권계장의 이러한 노력으로 그의 관내에선 매년 입영대상자 입소율 1백%를 기록했고 그 공로로 89년6월엔 국방장관으로부터 병무행정유공 우수공무원으로 표창을 받았다. 그의 직업공무원으로서의 책임감과 탁월한 행정처리능력은 수원시청 운수계장으로 재직했을 때 더욱 돋보였다. 『89년 1월에 동사무장에서 군청 운수계장으로 옮겼습니다.제가 공직생활을 한 가운데 이때처럼 힘들었던적은 없었습니다.부임하자마자 이 지역 운수업계에 노사분규가 시작되었기 때문이죠』 그때 수원시청앞에선 수원시내 32개 버스·택시업체의 노조원들이 연일 농성과 시위를 벌였다.『그해 여름엔 정말 고역을 치렀습니다.버스 안내양 1백50여명이 자율버스제도로 인해 자신들의 감원조치가 있자 시청으로 몰려와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퍼부으면서 시위농성을 했습니다.어떤 안내양은 옷을 모두 벗어던지면서 시위를 했어요』 지금도 동료 직원들은 당시 권계장이 보여준 중재역할을 자주 칭찬하곤 한다. 『여러분들이 주장하는 것은 자리를 걸어놓고 내가 들어주겠습니다.여자로서 보이지 말아야 할 행동을 자제해주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마음에서 우러나는 그의 호소는 안내양들의 거칠어진 심성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위사람들이 권계장을 이 시대의 바람직한 공무원상으로 추천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책임감 있는 공무원이라는데서보다는 그의 따뜻한 인간미 때문이다. 지난 89년 4월 동료직원인 김영찬씨(당시 34세)가 과로 끝에 순직하자 그는 유족돕기후원회를 구성,유가족들을 가족처럼 따뜻하게 보살폈던 것. 그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 도와주지 않고는 못배기는 성미를 갖고 있다.딱한 처지의 동료직원은 물론 학교동창도 발벗고 나서서 돕는다.박봉을 털기도 하지만 잘사는 동창들을 찾아가 성금을 모아 전하기도 한다. 『권계장의 공직생활이야말로우리 모든 공직자의 귀감이 되고도 남습니다.저도 늘 권계장한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오랫동안 근무해온 수원시 총무과장 이종민씨(54)는 권계장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 30대 신장이식 받다 절명/“환자 수술거부에도 병원서 강행”/유족

    ◎어제 서울중앙병원 1일 상오11시50분쯤 서울 송파구 풍납동 388 서울중앙병원 3층 수술실에서 이병원 748호에 입원해있던 김동용씨(35·무직·충남 부여군 외산면 갈산리 193)가 신장이식수술을 받다 갑자기 심장박동이 멎어 숨졌다. 신장이식수술은 수술성공률이 거의 1백%로 환자가 숨진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숨진 김씨는 이날 상오9시 수술팀이 고모씨(34·의류업)의 신장을 이식,봉합수술을 하는 순간 갑자기 심장박동이 불규칙해지다 멎으면서 변을 당했다. 김씨의 부인 이춘실씨(34)등 유가족 20여명은 병원측에 정확한 사망원인을 밝힐 것을 요구하며 이날 밤늦게까지 거칠게 항의했다. 유가족들은 『김씨가 수술실에 들어가기전 간호사들이 김씨의 입을 통해 위장에 튜브를 집어넣은 뒤 갑자기 김씨의 배꼽부분이 딱딱하게 부어오르면서 김씨가 복통을 호소했다』면서 『온몸에 열이 난 김씨가 헛구역질을 하며 5분동안 「수술을 못받겠다」고 소리쳤으나 병원측은 튜브를 뽑아낸 뒤 김씨를 곧장 수술실로 데려가 수술을 강행했다』고 주장했다. 병원측은 이에대해 『수술전 종합검사결과 신장이식수술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심장박동이 멈춘 직접적인 원인은 부검을 해봐야 알 수 있다』면서 『다만 오늘 상오 고씨의 콩팥에 노폐물이 다소 쌓여 있었으나 수술에는 지장이 없을 것으로 판단돼 수술을 강행했다』고 해명했다.
  • 고속버스 윤화유족 1백여명 철야농성

    20일 하오6시쯤 서울 중구 회현동2가 아시아나항공 본사 정문앞에서 지난 19일 이 회사 계열사인 광주고속버스가 경부고속도로상에서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전복,5명이 숨지고 30명이 부상한 사고와 관련,유가족등 1백여명이 회사측에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밤늦게까지 농성을 벌였다. 유가족들은 이날 사고로 숨진 희생자들의 관을 정문앞 계단에 올려놓은채 『사람을 죽인 광주고속은 즉각 사과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회사측에 유가족과의 사후처리협상을 요구했다.
  • 6·25관련 구소 극비문건 공개/러시아 군사연 코로트코프박사

    ◎「남침 D­데이」 김일성이 선택했다/“인민군 서울 진격” 소대사 본국 급전/미군 인천상륙하자 김일성 “나는 실패했다” 당황/스탈린 수습책임 중국에 떠넘기며 김에 등돌려 다음은 러시아 국방부직속 군사연구소 책임연구원 가브릴 코로트코프박사가 비밀문건을 중심으로 밝혀낸 한국전쟁과 북한 김일성의 항일빨치산투쟁,집권과정등에 관한 내용의 요약이다. ▷한국전쟁 관련◁ 한국전쟁이 어느 편에 의해 발발됐는가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모스크바와 평양이 「해방전쟁」을 일으키기로 결정을 내렸으며 다만 시기에 관해서는 김일성이 6월25일 단추를 눌렀을 뿐이다.당시 평양주재 대사 스티코프가 개전 당일 스탈린에게 보낸 긴급 전문에는『조선인민군이 강을 습격하고 아주 빠른 속도로 서울로 진격하고 있다.평양은 아주 조용한 분위기이며 사람들은 누구도 전쟁개시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씌어 있다. ○평양시민도 몰라 또 국방부 문서보관소에 있는 「작전계획 초안」에는 『6월25일,○○탱크연대는 ○○도시로 향한다.○○보병사단은 ○○방향으로 진출한다』는 식으로 연대급 이상 부대의 목표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으며 이밖에 「서울점령 초안」도 포함돼 있다. 전쟁이 초기 승세에서 미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패색이 짙어지자 김일성은 크게 당황했다.당시 스티코프가 스탈린에 보낸 전문에는 『김일성이 쇼크를 받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그의 군대지휘와 국가지도는 엉망이 되고 있다.김은 지하사령부에서 본인에게 「나는 실패했다.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나는 또다시 빨치산투쟁을 하는 것외에는 다른 길이 없을 것같다.(미군의 진격이 너무 빨라서)상황이 긴박하기 때문에 스탈린에게 부탁해 나의 생명을 보호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돼있다. ○“김일성 무능” 불만 스탈린은 10월 전쟁이 실패했음을 느끼자 수습책임을 중국에 떠넘기기 시작함과 동시에 초기에는 매우 빈번히 김과 전문을 주고 받았으나 이때부터는 김에게 아무런 답신도 보내주지 않음으로써 실망감을 표시했다. 당시 스탈린측근으로 총참모부 작전부장이었던 스테멘코 장군은 후일 본인과의 인터뷰에서 스탈린이 『김은 아주 무능한 장군이다.그가 어려운 시기에 처해 의지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그러나 대체인물이 없으니 살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 털어놓았다.또한 본인이 극동군총사령관 말리노프스키원수 휘하에서 한국전 정보담당 장교로 재직시 그는 김일성을 한번도 이름으로 호칭하는 법이 없이 오직 「모자를 쓴 대위」라는 별칭으로 부르면서 『그는 진짜 군인이 아니다.군대지식도 적고 전쟁도 제대로 지도하지 못한다』고 불평했다. ▷한국과 관련된 소련군◁ 45년 8월 소련군의 북한 진주부터 53년 종전까지 한반도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은 군인은 모두 약 1백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특히 한국전쟁과 관련,훈장을 받았거나 전사자·부상자 및 유가족들은 2차대전 심지어는 최근의 아프간전쟁의 경우와는 판이하게 아무런 혜택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이러한 상황은 소련당국(지금은 러시아정부)이 한국전 개입사실을 아직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본인 역시 한국전쟁과 관련해 적성훈장을 받았다.그러나 훈장증서에는이상하게도 「조선전쟁에서 주어진 과업을 수행했으므로 이 훈장을 수여함」으로만 돼 있고 구체적인 공적사항은 전혀 없다.이는 극히 이례적인 것이다. ▷항일빨치산투쟁◁ 김일성이 붉은 군대에 정식 입대한 것은 1942년 7월17일이었다.이같은 사실은 45년 8월30일 그가 적기훈장을 수여받은 훈장증서에서 명백히 나타나 있다.김이 훈장을 받게 된 공적사항으로는 항일빨치산투쟁을 훌륭히 수행했다고 돼 있다.그러나 이에 앞서 김이 소련군 대위로 진급시 승진 상신서에는 「진지첸(김일성)을 만주에서 빨치산대장으로 활동하도록 파견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이는 김일성이 북한당국의 공식 선전에서 처럼 스스로 빨치산부대를 편성,지휘한 것이 아니라 당시 소련극동군의 명령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소군이 항일 명령 특히 김일성이 45년 9월 중순 북한지도자로 선발되기 위한 면접을 하기 직전 심사위원격인 극동군 전선사령관 푸르가예프상급대장과 동 군사위원 슈킨대장 앞으로 제출된 김의 인물평가서에는 ▲동만주에서 빨치산활동 참가 ▲하바로프스크 군사학교에서 특수과정 수료 ▲수차 걸쳐 사령부로 부터 표창 ▲42년 입대,현재 대대장등 연대순으로 기록돼 있는데 입대 전에 이미 소련군 당국으로 부터 표창을 수차 받은 사실을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이지도자로선택된과정◁ 45년 9월 모스크바는 승전의 축제분위기속에서 병력을 대폭 축소키로 함에따라 김일성은 아주 곤란한 입장에 빠졌다. 그가 소속된 88특수저격여단이 해체될 운명에 놓여 있는데다 고등교육도 받지 못한 그로서는 다른 부대로의 전출이나 진급을 바라보지 못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이때 김은 『특별인터뷰를 위해 즉각 하바로프스크로 돌아가라』는 돌연한 명령을 받았다. 하바로프스크에서 당시 극동군 전선사령관 푸르가예프와 군사위원 슈킨을 면접했다. 두 장군은 몇가지 경력을 물은 후 김에게 『소련정부의 결정에 따라 한국국적을 가진 전문가들이 북한에 보내지고 있다.현재 북한은 새 조국을 건설할 전사들이 필요하다.귀관은 가장 빠른 시일내에 특별임무를 받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들의 이같은 발언은 김일성이 이미 북한의 지도자로 결정돼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도자후보 분석 이에앞서 모스크바에서는 북한의 새 지도자감으로 많은 후보들이 심도있게 분석,평가되었다. 주로 장시우,박동홍 등 코민테른그룹과 박헌영,김두봉 등 자생적 공산주의자,김일성등 만주그룹,그리고 조만식선생등 비공산 민족주의자들이 대상이었다.그러나 스탈린은 이들이 군대지식이 없다는 이유로 모두 거부했다. 스탈린은 결국 그의 구미에 딱맞는 인물을 물색한 결과 김일성이 돌연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이렇게 하여 지도자로 선택을 받은 김은 45년 10월2일 부터 「진지첸」이란 이름을 버렸으며 8일에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소련함정 푸가초프호를 타고 원산에 도착했다. 당시 원산시 소련 군정책임자인 크루지코프 대좌가 영접했는데 그는 후일 본인과의 면담에서 김일성 영접은 평양의 스티코프 대장의 긴급명령으로 행해졌다고 말했다.
  • 일군 에징집 대만인 유족/대일 보상청구소 기각/일 최고재판소

    【도쿄 연합】 일본 최고 재판소는 28일 2차 대전중 일본군의 일원으로 전쟁터에 끌려나가 사망하거나 부상한 대만출신 군인·군속및 그 유가족들이 일본정부를 상대로낸 군인연금등의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를 확정함으로써 비인도적인 일본 전후처리에 대한 아시아인들의 강한 반감이 예상되고 있다. 일 최고 재판소는 이날 대만 출신 군인·군속및 유가족 13명(전상자 9명·유가족4명)이 일정부를 상대로 낸 군인 연금등 청구 소송 상고심 공판을 열고 「전쟁 피해의 보상은 입법정책에 맡겨져 있어 보상대상을 일본인에 국한하고 있는 은급법은 합헌」이라며 1,2심 판결을 유지,원고측의 상고를 기각했다.
  • 최남수 치안정감/어제 영결식 치러

    고 최남수 경찰청 형사국장(치안정감 추서)의 영결식이 9일 상오10시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사에서 유가족과 내외귀빈등 4백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찰청장으로 엄수됐다. 이날 영결식은 유가족들의 뜻에 따라 불교의식으로 치러졌으며 유해는 하오3시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묘지 경찰묘역에 안장됐다.
  • 최남수씨 빈소에 조의

    노태우대통령은 7일 하오 과로로 순직한 고최남수경찰청형사국장 빈소에 심대평대통령행정수석비서관을 보내 조의를 표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 리비아 경제봉쇄는 시의적절(해외사설)

    리비아에 대한 경제봉쇄 조치는 적절하고도 간결하며 한정된 것이다.피컬링 주유엔 미국대사는 1일 그동안 논란이 되어온 대리비아 제재를 봉쇄조치로 결정함으로써 일단락지었다. 리비아에 대한 봉쇄결정이 적절하다고는 하나 실제에 있어서는 그 성과를 기대하기에는 의심되는 점이 많다.리비아 봉쇄조치는 상징적인 효과는 크다하겠으나 효과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대리비아 봉쇄가 영향을 준다면 아마 리비아국민들이나 리비아에서 일을 하고 있는 미국인·유럽인·아랍인들 등 외국인들이며 유엔이 목적으로 하는 카다피정부는 크게 타격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카다피는 여전히 그동안 세계도처에 테러를 수출한 것처럼 아무런 불편없이 원유를 팔수 있을테니 말이다. 카다피는 이 때문에 그의 정신적 동지인 사담후세인 이라크 대통령과는 달리 유엔의 제재조치에 대응하고 국제적인 압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카다피가 자행한 테러로 4백71명이라는 무고한 사람들이 공중에서 희생된 엄청난 사건이 가볍게 처리되어서는 안된다.이 공중테러로 희생된 사람들의 수는 사담후세인에 대한 걸프전에서 전사한 서방 연합군의 수보다 많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때문에 이번 카다피 독재정권에 대한 제재는 적절한 조치라고는 할 수 있겠으나 최선책은 아니라고 비판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시간이 아픔을 잊게한다고는 하지만 이번 테러리스트에 대한 응징이 그 수준이나 기대되는 성과를 생각할때 만족하다고는 할 수 없다. 유엔안보리가 카다피에 대한 제재를 결정하고 발표했을때 로커비 희생자들의 유가족들과 테러를 혐오하는 많은 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최근 테러리스트 카다피에 관한 많은 국제적 테러혐의가 짙어지고 있다.그 한예로 89년 발생한 무바라크 이집트대통령에 대한 공격이었다.이때문에 리비아와 국교정상화를 생각하고 또 아랍연맹과의 유대를 강화하려던 무바라크의 계획은 무산되었으며 카다피는 화해로 세계평화를 이루려던 이집트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때문에 세계는 예측불허인 카다피에게 그의 행동에 상응하는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유엔안보리의 조치에 일단은 기대를 걸어 보지만 그것이 적절한 것이었던가는 계속 지켜봐야 할것이다.
  • 고 이창희씨 상속세/유족,2백54억 신고

    새한미디어의 고 이창희회장 유족들이 20일 상속세 2백54억원을 국세청에 신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지난해 대한유화 고 이정림회장 유가족들이 신고·납부한 2백78억원에 이어 역대 상속세 랭킹 2위에 해당하는 액수이다. 고 이회장은 부친(고 이병철삼성그룹 창업주)으로부터 물려받은 제일합섬주식 1백23만5천2백주(2백억4천3백59만원)와 자신이 세운 새한미디어의 주식 86만8천3백주(2백19억8천4백82만원)등 4백20억2천8백41만원을 미망인인 이영자씨(55)와 장남 재관씨(29)등 4명의 가족에게 남겼다. 여기에 생전에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이태원동 주택(대지 3백21평,건평 1백50평)과 골프회원권 2개,충북 중원군의 임야 10만평 등 42억원어치의 재산을 남겼으며 유가족들은 상속세율 55%를 적용,상속세액을 이같이 신고했다. 고 이회장의 상속인들은 이날 4백만원만 납부하고 나머지는 연부연납을 신청했다.
  • 일,“정신대는 모르는 일” 강변/관방장관

    ◎자료 제시에도 “정부개입 흔적 없어”/전 종군위안부등 35명,7억엔 보상소 【도쿄 연합】 가토 고이치(가등굉일)일본 관방장관은 6일 태평양전쟁중 일본군의 종군위안부(여자 정신대)로서 동원됐었던 한인 여성들과 그 유가족들에대한 보상문제에 대해 『정부로서는 대처하기 곤란하다』며 보상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밝혔다. 가토장관은 이날 종군위안부로서 고통을 겪었던 김학순씨(67·서울 종로구)등 3명을 포함,한국 태평전쟁희생자 유족회 회원 35명이 도쿄지방재판소에 피해 보상을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데 대해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말했다. 그는 『노동성을 중심으로 실태를 조사하고 있으나 정부기관이 관여했다는 자료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도쿄=이창순특파원】 제2차대전중 일본에 강제 연행되어 피해를 입은 한국의 전군인·군속·위안부및 유가족 35명은 일본의 식민지지배와 전쟁으로 인한 희생에 대한 보상으로 1인당 2천만엔,총7억엔을 보상하라는 소송을 6일 도쿄지방법원에 제기했다. 한국의 태평양전쟁 희생자유족회 회원인 이들은 소장에서 일본의 한국인에 대한 비인도적 행위는 국제관습법으로 확립된 「사람의 도리에 대한 죄」에 해당된다며 일본정부는 한국인의 희생에 대한 보상을 해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일본정부의 보상을 요구하는 한국인들의 소송은 많이 있었으나 전종군위안부가 원고로 참가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이번 소송에는 김학순씨(67·서울)등 3명의 전종군위안부를 비롯,15명의 전군인군속및 17명의 유족이 참여했다.
  • 법정난동 용납 안된다(사설)

    강경대군치사사건 첫공판에서의 난동은 지탄받아 마땅하다.지금까지도 법정소란행위가 없지않았으나 이번 난동은 근래에 보기드문 최악의 것이라는데서 더이상 법의 존엄성이 흔들려서는 안된다고 여긴다. 이날의 난동은 사법부의 권위를 완전히 무시한 행위이다.법정에서 손뼉을 치거나 노래를 부르던 종래와 달리 이날은 법대를 넘어뜨리고 기물을 파손했는가 하면 변호사에게 욕설을 퍼붓는 난폭 행위를 벌였다.최악의 법정폭력행위라는 보도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난동의 원인에는 강군의 죽음을 비통해 하고 있는 유가족들의 흥분과 일부 방청객들이 합세해 일어난 것이라고 쉽게 이해할 수도 있겠으나 법정의 신성함을 짓밟은 행위라는 것에서 개탄스럽고 비난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범죄행위나 법의 심판을 받도록 돼있는 것이 상식이다.또 어떤 범죄자도 변호사를 통해 자기가 저지른 죄에 대해 해명하고 법의 적용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그것을 헌법은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그런데도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타의에 의해 법적용이 강요되거나 영향을 받게될때 그 재판은 잘못된 것이고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위배되는 것이다.그러한 터에 피고측의 변호내용이 불만스럽다고 해서 집단의 물리적 힘으로 폭력을 사용한 것은 어떤 말로도 납득할 수가 없는 것이다. 더욱이 이날의 유가족 행위는 어쨌든 민주화를 외치며 시위대에 참여했다 희생된 강군의 죽음의 의미를 빛바래게 한 측면이 없지않다는 데서 유감이 아닐 수 없다.일반에 난동으로 비쳐지고 최악의 법정소란이었다는 보도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 여기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미리 논의된 계획된 행동이었다면 사회의 공감을 얻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일부 재야단체나 운동권의 사법부를 보는 시각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보고 이를 크게 우려하고 있다.최근 들어 잇따르고 있는 법정소란행위에서 그것을 확인하게 된다.이번에도 보았듯이 일부 재야단체는 시국사건재판이 있을 때마다 문제를 만들었고 또 운동권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시국사건의 재판정을 빠짐없이 찾아다니며 구호를 제창하고 욕설을 퍼붓는 행위는 법의 존엄을 무시하고 법정의 권위를 그대로 실추시키는 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이번에도 공판첫날 소란부터 피웠다는 사실이 쉽게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법정소란행위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하고 그런 행위는 엄중히 다스려져야 한다.재판의 올바른 진행을 위해서도 법정의 위엄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그런 인식을 확산시키는 하나의 계기로 이번 난동이 교훈이 됐으면 하는 것이다. 그런데서 이날 재판부의 방관자세는 유감이 아닐 수 없다.법은 스스로 지켜야 하고 더욱 그럴 책임이 현장의 재판부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법정소란행위를 없앨 뚜렷한 대처방안의 강구를 거듭 당부한다.
  • “법은 국기… 이래선 안된다”/최악의 법정난동… 각계의 소리

    ◎사법부 권위 폭력배전 안될 말/유족슬픔 이해하나 법은 지켜야 4일 열렸던 강경대군치사사건 첫 공판에서의 난동은 근래 보기드문 최악의 법정소란 사태였다. 이날 난동소식을 들은 시민들과 법조인들은 사법부의 권위가 무너진데 대해 개탄해마지 않으면서 다시는 이같은 행위가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동안 국가보안법위반죄로 복역중인 임수경양의 재판이나 전 「전대협」의장 임종석·송갑석 피고인의 재판등 시국사건공판에서 학생들의 구호제창 등 집단적인 소란행위는 있었으나 법정안의 기물을 파손하는 등의 극단적인 난동행위는 없었다. 이날 사태는 강군의 죽음을 비통해한 나머지 이성을 잃은 유가족들과 일부 방청객들에 의해 저질러졌으며 이들이 법정의 신성함을 무시한채 부린 난동이어서 법정의 권위가 이렇게 손상되어도 되느냐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난동을 부린 강군의 가족들은 어떠한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사회적인 공감을 얻기 어렵고 따라서 비난을 면하지 못할 것임에 틀림없다.또한 시국사건의 재판정을 빠짐없이 찾아다니며 구호를 제창하고 욕설을 일삼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과 「민주화실천유가족협회」(유가협) 소속 회원들에 대해서도 너무하는 일이 아니냐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법정소란행위를 일삼는 「민가협」과 「유가협」 소속 회원들은 고 박종철군의 아버지 정기씨와 오 모씨,임 모씨 등 여성들로 시국재판때 마다 학생들이나 피고인 가족들의 소란행위에 가세,법정을 더욱 어지럽히고 있다. 이들 가운데 몇몇은 법정소란죄로 처벌받기도 했고 재판장으로부터 퇴정명령을 받기도 하지만 다른 재판에서 어김없이 모습을 나타내 계속 법정을 난장판이 되게하고 있다. 시국사건에서 법정소란행위가 벌어진 것은 지난 85년 미국문화원사건재판때가 처음으로 그 이후 시국재판에서 손뼉을 치거나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제창하는 등의 소란행위가 늘 벌어져 문제가 돼 왔었다. 특히 지난해 전 「전대협」의장 임군재판에서는 학생들의 집단소란사태로 대학생 68명이 당시 정상학부장판사로부터 감치재판을받기도 했었다. 법정소란행위가 점점 잦아지고 소란의 정도도 심각해져가고 있음에도 이에대한 뚜렷한 대처방안은 아직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법정의 존엄과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는 사람의 입정을 금지시키고 퇴정을 명령하거나 소란행위로 재판을 방해하는 사람에게 20일 이내의 감치명령이나 1백만원이하의 과태료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을 재판장에게 주고 있어도 속수무책인 상태인 것이다. 더욱이 소란이 벌어지면 이를 물리력으로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법정에 배치된 정리 몇사람 정도일 뿐이고 피고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교도관 10∼20여명이 법정안에 있지만 적극적인 진압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때문에 대법원은 한때 법정소란을 다스리기 위한 법원경찰대의 창설을 고려하기도 했지만 평시에는 유휴 인력을 낭비하고 예산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에 폐기된 상태이다. 또한 올해초부터 재판이 시작되기전에 법정소란행위를 저지르면 처벌받는다는 안내방송을 하고 있으나 형식적인 절차에 그치고 있을 뿐 실효를 거두지못하고 있다. 이날 소란행위에 대해 재판부가 좀더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재판부가 유족들의 입장을 지니치게 의식,재판전부터 고함을 지르는등 소란행위를 벌인 유족들과 「민가협」회원등에게 경고나 퇴정명령을 한번도 내리지 않았던 것이다. 여하튼 강군 치사사건의 재판은 항소심등 여러차례의 재판이 남아있고 이와 유사한 사건의 재판도 계속 있을 예정이어서 다른 법정소란행위에 대처하는 적극적인 방안마련이 시급하다. ◇조영황변호사=강군유족들의 법정난동소식을 듣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도대체 법에따라 죄를 심판하는 법정이 그처럼 난장판이 될수 있는 것인가.이번 사태가 법과 법관의 신성함을 미처 알지못한 무지의 소치일지라도 이번 일은 결코 쉽게 넘어가서는 안된다.소란을 피운 사람들은 현행법의 범위안에서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할 것이다.사법부의 권위가 이지경에까지 이르게된데 대한 책임은 방청객이나 재판을 하는 법원은 물론 우리사회전체가 져야할 것으로 생각된다.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의 도덕이 그만큼 땅에 떨어졌고 사법기관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빠른 시일안에 또 다른 소란행위를 막고 사법부의 권위를 되찾기 위한 적절한 대책이 마련돼야할 것으로 본다.또한 이같은 일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깊이 반성해야할 것이다. ◇김홍규교수(연세대 법학과)=민주국가의 보루가 엄정한 법적용에 있고 따라서 법정의 권위를 존중해야 한다는 기본원칙에서 볼 때 이같은 법정난동행위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모든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죄인이라할지라도 변호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으므로 피해가족도 적법한 절차를 통한 재판을 겸허히 받아들여야한다. ◇권영남씨(회사원·서울 성동구 광장동)=강군을 죽인 행위가 잘못된 것이기는 하나 유족들은 이제 법의 심판을 지켜봐야할 것이다.그같은 난동행위는 오히려 강군의 죽음을 욕되게 할 뿐이고 시민들로 부터 비난을 받을 것이다.
  • 「강군 치사」 재판서 최악의 난동/유족·민가협회원들

    ◎변호사 폭행·기물 부숴/1시간30분간 공판 중단 명지대생 강경대군 상해치사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이형용일경(22)등 전경 5명에 대한 첫 공판이 4일 하오 서울지법 서부지원 형사합의부(재판장 박준수부장판사)심리로 열렸으나 강군 유족등이 변호사에게 폭행하는등 법정난동으로 1시간30분동안 재판이 중단되는 사법사상 최악의 사태가 빚어졌다. 이날 난동은 하오2시 재판부가 입정하고 피고인들에 대한 인정신문과 검찰측 직접신문이 있을 때부터 시작돼 하오2시30분쯤 변호인측 반대신문이 진행되면서 더욱 악화됐다. 강군의 아버지 민조씨(50)와 어머니 이덕순씨(43),누나 선미양(22)등 유가족들과 고박종철군의 아버지 박정기씨등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와 민주화실천유가족협의회」(유가협)회원등 10여명은 이날 피고인 전경들에 대한 최진석변호사의 『강경대군이 화염병을 던지지 않았느냐』는 신문이 있자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고 법정이 휴정된 뒤엔 법대쪽으로 뛰쳐나가 마이크와 의자·법전·수사기록등을 닥치는대로 던지며 난동을 부렸다. 강군의 어머니 이씨와 누나 선미양등 3∼4명은 『경대는 화염병을 던지지 않았어』『변호사 ×새끼야 변론을 중단해』『네 자식도 죽어봐라』라고 고함치며 변호인석위로 올라가 소란을 부렸고 방청석에 있던 「민가협」회원등 2∼3여명도 이에 가세해 난동을 부렸다. 이 과정에서 최변호사가 「민가협」회원으로부터 멱살을 잡히고 뺨을 얻어 맞았으며 유족들은 법대쪽에 세워져있던 태극기도 쓰러뜨렸다. 난동이 계속되자 전경가족등은 대부분 법정을 빠져나갔으나 「민가협」회원과 학생등 20여명은 방청석에 남아 구호를 외치며 계란 5∼6개를 법대에 던지기도 했다. 한편 법원과 검찰및 변호사협회는 이날 법정소란을 중대한 사법권침해로 간주,엄중대응키로 했다.
  • 강군 운구차 빼돌려 노제 강행

    ◎학생들이 금남로로 몰고 가… 새벽 망월동으로/광주시민등 5만명 경찰과 대치… 한때 격돌위기 【광주=최치봉 기자】 명지대 강경대군의 유해는 20일 상오 유가족·동료학생·재야인사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망월동 「5·18」묘역에 안장됐다. 강군의 시신이 묻히자 유가족들은 오열을 터뜨렸으며 학생·「범국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은 강군의 죽음을 민주화로 승화시키자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장례식이 치러지는 동안 광주시내 곳곳에서는 밤늦도록 시위가 잇따랐다. 이에 앞서 유가족·학생·시민·「대책회의」 관계자 등 5만여 명은 19일 하오 10시부터 광주 금남로3가 광주은행 앞 네거리에서 「강군 노제」를 치렀다. 강군 운구행렬은 북광주인터체인지에서 전남도청 앞 노제를 막는 경찰과 대치하다 무등경기장→광주역 등을 거쳐 하오 8시30분쯤 이곳에 도착했다. 이에 앞서 하오 7시30분쯤 명지대생 등 대학생 1천여 명은 경찰과 공방전을 벌이다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운구차량을 빼내 어린이대공원 쪽으로 몰고 갔다. 경찰은 당시 고속도로를 점거,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을 해산시키는 작전을 전개하던 중이어서 학생들이 운구차를 빼돌리는 것을 발견치 못했다. 강군 「대책위」는 광주인터체인지 앞에서 경찰과 13시간 남짓 대치하다 하오 3시쯤 노제를 생략키로 하고 망월동 「5·18」묘역으로 출발하려 했으나 시내에서 몰려든 대학생들이 격렬한 시위를 벌이는 바람에 운구행렬은 움직이지 못했다. 한편 이날 하오 1시쯤 광주시 북구 동은동 인터체인지 부근에서 시위를 진압하던 순천경찰서 507기동대장 김명호 경감과 전경 20여 명이 학생들에 의해 1㎞쯤 떨어진 광주 서강전문대에 끌려갔다가 6시간20분 만에 풀려나기도 했다. 「금남로 국민대회」가 열린 18일 하오부터 이날까지 계속된 시위과정에서 학생·경찰 등 1백20여 명이 부상했으며 시위진압차량 2대가 화염병에 맞아 불타기도 했다.
  • “「은혜」는 일 여인 다구치 분명”/김현희 회견

    ◎78년 북에 피랍… 일어 가르쳐 대한항공 858기 폭파범 김현희씨는 16일 북한에서 자신에게 일본말을 가르친 「은혜」는 일본에서 실종된 다구치 야에코씨(36·전구팔중자)라고 밝히고 『북한에는 「은혜선생」 외에도 상당수의 일본인이 납치돼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상오 9시40분부터 1시간 가량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가진 내·외신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하고 『일본 경찰이 보여준 사진 가운데 「은혜」의 사진을 첫 눈에 알아봤다』고 말했다. 그녀는 『사진으로 봐서는 살찐 모습이긴 하지만 「은혜」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살찐 모습을 본 적이 있어 금세 알아봤다』고 말했다. 김씨는 『훈련소인 초대소에서 뒷일을 하는 친한 할머니로부터 「은혜」가 납치돼 왔다는 것을 들었고 「은혜」도 강제로 오게 됐다는 말을 해 납치된 것이 확실하다』고 밝혔다. 김씨에 따르면 「은혜」란 이름의 「다구치」씨는 지난 78년쯤 일본의 어느 해변에서 납치돼 밥도 제대로 못먹으면서 배로 북한에 왔으며 북한에 온 뒤 한달이상을 고향과 가족을 생각해 울면서 보냈다는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씨는 남색 원피스차림의 단정한 모습으로 회견장에 들어와 회견에 앞서 『큰 죄를 지은 죄인이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저에게 새 생명을 주었기 때문이며 KAL기 사고의 유가족들에게 다시 한 번 사죄한다』고 인사말을 대신했다. 기자회견은 영어 일어 등으로 통역됐으며 김씨는 일본기자의 질문에 유창한 일본말로 답하기도 했다.
  • 「강군치사」전경4명 구속/검찰,상해죄적용/가담자 더 있었는지 조사

    ◎“쇠파이프 맞고 사망” 확인/중대장등 상급지휘관도 곧 환문 서울지검 서부지청은 27일 명지대 강경대군(20·경제학과 1년)을 쇠파이프로 구타해 숨지게 한 서울시경 4기동대 94중대 3소대 소속 김영순(22) 장광주(〃) 임천순 상경(〃) 이형용 일경(21) 등 전경 4명을 상해치사죄를 적용,구속했다. 검찰은 서울지검 서부지청 형사2부 유명건 부장검사를 팀장으로 특별수사팀을 편성,김 상경 등 4명의 신병을 이날 하오 5시40분쯤 경찰로부터 넘겨받아 정확한 사고경위 등을 조사했다. 또 강군의 사체를 검안한 성가병원 외과 과장 박동국씨(35) 등 의사 2명과 구타행위를 목격한 시민 2명을 불러 참고인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이날 이들을 철야조사한 결과 경찰의 기초조사에서 밝혀진 대로 김 상경 등이 시위 도중 경찰에 쫓겨 달아나던 강군을 뒤쫓아가 쇠파이프 등으로 집단폭행해 숨지게 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학교 담을 넘어 들어가던 강군을 끌어내린 뒤 이 일경이 쇠파이프로 강군을 구타했으며 장 상경은 각목으로 강군의 몸을 마구 때렸다는 것이다. 또 김 상경이 끌려온 강군을 붙잡고 있는 사이 임 상경이 발로 차는 등 폭행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어 강군이 구타당하는 현장에 전경 6∼7명이 함께 있었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라 김 상경 등 4명 말고도 또 다른 가담자가 있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진압전경들을 지휘한 서울시경 4기동대 94중대장 김형중 경감(35)과 4기동대 2중대 3소대장 박만호 경위(36) 등 상급자들도 금명간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또 강군의 사체를 부검하기 위해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으로부터 발부받고 강군의 사인규명을 위해 유가족과 학생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서부지청 정현태 검사의 지휘로 28일중 사체부검을 실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검찰은 압수수색영장을 받았어도 유가족들과 학생들이 부검을 반대할 경우,그들을 설득해 사체 인도에 대한 동의를 얻은 뒤 부검을 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경찰은 명지대 앞 시위진압에 투입됐던 사복전경 1백여 명을 상대로 철야수사를 벌인 끝에 김영순 상경 등 전경 4명이 강군을 폭행한사실을 밝혀냈다. 경찰은 또 이들 전경들이 강군에게 휘두른 것으로 보이는 쇠파이프 2개와 경찰봉 2개를 증거물로 압수했다. 서울시경 이완구 3부장은 27일 상오 중간수사결과 발표에서 『명지대학 시위에서 김 상경 등 사복 전경 4명이 학생들을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학교 안으로 달아나려는 강군을 담에서 끌어내린 뒤 경찰봉과 주먹으로 마구 때려 숨지게 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26일 하오 5시10분쯤 학교 앞 2차선 도로에서 동료학생 2명과 함께 가두시위를 벌이던 강군이 경찰을 피해 철책이 무너진 가슴높이의 담에 올라서려는 순간 김 상경 등 전경 3명이 강군을 끌어내린 뒤 2m쯤 진압부대 쪽으로 끌고 갔다. 이들은 이어 연행을 완강히 거부하는 강군을 경찰봉과 쇠파이프 등으로 머리 등 온몸을 마구 때렸으며 이 광경을 보고 쫓아온 임 상경도 가세,폭행하다가 강군의 머리와 얼굴에서 피가 흐르자 그대로 철수했다는 것이다. 길바닥에 쓰러진 강군은 곧 스스로 일어나 담에 올라서다 실신,동료학생들에 업혀 학교보건소로 옮겨졌다가 다시이웃 성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 사실이 확인돼 이날 하오 6시10분쯤 신촌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에 안치됐다.
  • “한국 유엔가입의 문 열려 있다”/소 공산당 무사토프부부장 인터뷰

    ◎「KAL 피격」 객관적 조사 필요/소·중 관계개선,한반도에도 긍정적 영향/소 경제난 극심… 경협에 큰 기대 서울신문 김영만 모스크바특파원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방한에 앞서 소련 공산당 발레리 무사토프(51) 국제부 제1부부장과 인터뷰를 갖고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한이 갖는 의미와 양국 관계의 발전전망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소련 공산당의 아시아문제 책임자이기도 한 무사토프 부부장은 헝가리 등 동구지역에서 오랜 기간 외교관 생활을 한 뒤 84년부터 공산당 국제부에서 일하고 있는 외교전문가로 팔린 현 국제부장의 뒤를 이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이다. ­소련 대통령의 첫 한국방문이 갖는 의미와 한반도 정세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풀이할 수 있나.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한국방문이 이 지역정세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임을 확신한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제주도에서 양국 정상의 세 번째 정상회담을 갖는다는 것은 양국 관계가 얼마나 바르게 발전하고 있는 것인가를 말해준다. 소련은 남북한이 대화를 통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것을 희망하고 있고 모든 문제가 평화적이고도 정치적인 방법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전하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소간의 관계발전은 한반도의 문제해결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소련은 서울은 물론 평양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소련은 평양과 서울에 대한 등거리외교가 한반도 문제해결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경우에 따라서는 북한의 폐쇄성을 깨기 위해 서울 쪽에 더 체중을 싣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고 보는데. 『소련의 입장은 두 정부 모두에 대한 호의적인 자세가 평화통일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옛친구도 버리지 않고 새로운 친구와의 관계도 계속 진전시키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의 한소 관계는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믿고 있나. 『우리는 현재의 빠른 관계진전 속도를 바람직한 것으로 생가하고 있다. 또한 더 많은 부분에서의 교류가 확대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는어떤 제한도 있을 수 없다. 소련은 알다시피 경제적으로 매우 어렵다. 한국과의 경제협력에 큰 기대를 걸고 있고 이 부분에서 한국정부와 경제계가 취하고 있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있다. 한국은 통제경제체제를 완전한 자유경쟁체제로 이전시킨 성공적인 경험을 갖고 있다. 소련은 한국의 이 같은 경험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때문에 학자·경제관료·정당과의 교류확대가 더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한국 체류시간이 3∼4시간이란 점에 관심을 두려는 사람들도 있다. 서울에 오지 않고 제주도에서 정상회담을 갖는 것은 고려되어야 할 정치적 배경이 있기 때문인가. 『지금의 소련 사정이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한시간을 제약하고 있다. 내 생각에는 두 대통령 모두가 경험 많은 정치인들로 시간을 유용하게 처리할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시간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또한 1년도 되지 않은 기간에 갖는 세 번째의 정상회담이란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대화가 계속되고 있다는점이다』 ­한국정부의 유엔 단독가입 문제에 대한 소련의 입장은 어떤 것인가. 『유엔의 보편적 원칙은 어느 국가에나 적용되어야 한다. 유엔헌장을 준수한다면 유엔에 가입할 권리가 있다. 다만 내 생각에는 두 개의 한국이 이 문제에 대해 합의를 본다면 보다 유익하고 세계가 환영할 것이며 또한 그곳서 받는 이익이 클 것이다』(그는 이 대목이 자신의 개인의견임을 분명히했다) ­합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정부가 가입을 청원할 경우 소련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론적으로 모든 나라의 가입권리는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실천면에서 본다면 남북한이 합의하는 것이 보다 나을 수 있다』 ­중국의 이붕 국무원 총리가 북한을 방문,한국정부의 유엔가입신청에 대한 입장 등을 조정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중국정부의 입장은 어떻게 표현되리라 보는가. 『소련 정치인이 중국 입장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나 최근 소중 관계가 개선되고 있고 이것이 아시아 전역과 한반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개선은 강택민의 5월 방소에서도 드러난다』 ­KAL기 격추사건에 대해 소련정부의 입장에 변화가 있는가. 최근 이즈베스티야지의 비화공개 등으로 이 문제가 양국간에 새로운 외교현안이 되고 있다. 『이즈베스티야지의 보도는 어디까지나 센세이셔널리즘에 입각한 기자들의 아마추어적 조사에 입각한 것이다. 객관적인 조사가 앞으로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니까 이에 대한 결론을 미리 짓지 말고 침착하게 하나씩 해명되어야 할 것이다. 유가족들에게는 다시 한 번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 객관적인 조사는 양국간의 공동조사까지를 포함하는 것인가. 『양국 정부가 협의해서 결정할 문제이다. 두 나라 사이가 정상적인 관계인만큼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침착하게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양국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을 수 있으리라 본다. 소련의 해당기관들은 이 문제를 푸는 데 협조할 것이다』 ­셰바르드나제 전 외무장관의 사임과 새로운 외교진영의 등장으로 소련 외교가 보수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있다. 『특정개인의 개성이 외교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외교정책은 국가최고기관들 사이의 집단적인 의사결정에 의해 정해진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또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바로 페레스트로이카를 시작했음을 이해하면 된다. 소련 외교의 기본원칙과 수단은 변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군축,유럽에서의 정책,아시아에서의 정책에서 소련은 여전히 적극성을 띠고 있다. 한국과의 시종일관하는 관계개선,일본과의 관계개선 모두가 소련 외교정책의 불변성을 증거하는 것들 아닌가』
  • 소 대통령 첫 방일 이모저모

    ◎“영토반환” 시위속 고르비 “입성”/국보 예상통과로 1.5m마다 경찰배치/고르비­일왕,관례 깬 40분 접견에 눈길 ○고르비,도착성명 생략 ○…16일 상오 예정보다 5분 빨리 하네다(우전)공항에 도착한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그 동안 소련·일본간의 소원했던 관계를 반영이라도 하듯 도착성명도 발표하지 않은 채 환영나온 나카야마 다로(중산태량) 일본 외상 등과 간단히 악수만 나눈 뒤 곧바로 소련에서 특별 공수해온 질 승용차에 올라 아카사카(적판)의 영빈관으로 직행. ○…영빈관에 도착한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아키히토(명인) 일왕과 예정보다 10분을 넘긴 40분간에 걸쳐 접견을 가져 눈길을 끌었다. 일본 관리들은 일왕의 접견시간은 30분을 넘기지 않는 것이 통례이나 이날은 아키히토의 특별요청에 따라 접견시간이 40분으로 연장됐는데 이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일왕 부처를 접견한 고르바초프와 라이사 부부는 일왕 부부와 선물을 교환했는데 일왕 부처는 꽃병과 핸드백,손수 서명한 자신들의 초상화를 선물했고 이에 대해고르바초프와 라이사는 꽃병과 보석을 답례로 선물했다. ○…극우 반공주의자들과 극좌파의 고르바초프 방일 반대시위가 예상되는 가운데 고르바초프 경호를 위한 1급 경계작전에 돌입한 일본경찰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지나가는 연도변에 1.5m 간격으로 경찰 1명씩을 배치하는 등 그야말로 물샐틈없는 경비를 폈다. ○라이사,은좌거리 방문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부인인 라이사 여사는 일본방문 첫날 도쿄의 번화가인 긴자(은좌)를 방문. 밝은 초록색 투피스를 입은 라이사 여사는 화려한 긴자거리를 걸으며 상점에 진열된 상품을 자세히 관찰하는가 하면 가부키연극도 관람했다. 라이사 여사가 한 어린아이를 포옹하자 주위에 몰렸던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환호를 보냈다. 그러나 이 어린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흉기든 극우파 체포 ○…일본 경찰은 16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수행원들이 머물 뉴오타니 호텔 앞에서 단도를 갖고 있던 한 우익분자를 체포. 경찰은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이 남자는 체포될 당시 전통적인 일본 예복에 메이지(명치)시대의 삿갓을 쓰고 있었으며 현재 신문이 진행중에 있지만 극우단체 소속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83년 대한항공기사건의 일본인 유가족들은 16일 방일중인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에게 한결같이 진상규명 촉구와 함께 일본인 시체·유품 반환을 호소했다. KAL사건 일본 유족회의 가와나씨(천명·54)는 이날 『최근 소련의 보도로서 블랙박스가 회수된 사실이 명확해졌다』고 말하고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오던 아들(당시 20세)이 왜 죽었는지 그 진상이나 알고 싶다』고 밝혔다. 가나와씨는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건의하기 위해 일 외무성에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면담을 신청하고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일군 포로 유족에 애도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아키히토 일왕이 주최한 궁중만찬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 시베리아에 억류돼 사망한 일본군 전쟁포로 유족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했으나 공식사과는 하지 않았다. 고르바초프는 정부 및 경제계 지도자 등 1백60여 명이 참석한 만찬에서 일본과 소련정부는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시베리아에서 희생된 이들을 잊지 말아야 하며 소련은 유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영부인 라이사 여사가 일본에서의 스케줄을 마지막 순간에 바꿔달라는 어려운 요청을 해와 일본관리들을 당황케 했다고 일본 외무성 소식통들이 16일 전언. 외무성의 한 관리는 라이사 여사의 요청 중 하나는 평범한 시민들이 내집을 갖기에는 부동산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알려진 동경의 중류층 가정을 방문하자는 것이었다고 밝히면서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스케줄을 마무리할 수 없었다』며 하소연. 이에 앞서 소련 대표단은 일본 관리들이 시간상의 제약과 보안상의 이유로 거리가 먼 교외지역으로는 갈 수 없기 때문에 동경시내 중심부에 살고 있는 몇몇 가정의 방문을 제안했으나 이들 가정이 너무 「상류층」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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