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유가족들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상임고문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군국주의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성매매업소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연구개발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652
  • 애끊는 母情 애틋한 父情

    |프놈펜(캄보디아) 이재훈특파원·서울 임일영기자| “내 새끼 불쌍해서 어떡하나…, 얼마나 무서웠을까….” 27일 오후 1시40분(이하 현지시간)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프놈펜의 칼멧병원을 찾은 19명의 유가족들은 가족의 영정사진을 부여잡고 오열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시신 신원 확인이 지연된 데다 크메르-소비에트프렌드십 병원에서 냉동시설이 갖춰진 칼멧병원으로 옮기는 바람에 유가족들은 이날 오후에야 분향소를 찾았다.●“엄마도 데려가야지…” 영정 앞 통곡 ‘캄보디아 항공기 추락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린 분향소 내부에는 사망자 13명의 영정과 위패가 놓여 있었다. 고 이명옥씨의 어머니 서만숙씨는 “내 새끼 불쌍해서 어떻게 사나. 얼마나 산 속에서 무서웠을까.”라면서 “엄마가 대신 가야지. 네가 왜 가냐. 얼마나 착했는데….”라고 울먹이다 쓰러졌다. 고 조종옥(KBS 기자)씨의 어머니인 박정숙씨도 “아이고∼ 종옥아, 왜 휴가를 여기로 왔어. 어쩌다 여기까지 왔어.”라며 목놓아 울었다. 아들과 며느리, 금쪽 같은 두 손자를 모두 잃은 박씨는 조종옥·윤현숙 부부 등 4개의 영정을 끌어안고 이름을 외쳐 보는 이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고 황미혜씨의 동생인 황재욱씨도 할 말을 잊은 듯 “누나∼”만을 외치며 오열했다. 오후 2시쯤부터 신현석·오갑렬 대사와 님반다 국가재난관리위원회 수석부위원장, 통콘 관광부장관 등 캄보디아측 관계자들이 잇따라 조문했다. 잠시 뒤 육경건 이사 등 하나투어 직원들이 분향하려 하자 일부 유가족들이 “하지마. 니네가 죽였잖아.”라며 제지하는 소동을 빚었지만 다른 유족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분향을 마쳤다. 유족 대표들은 분향소 뒤편에 마련된 시신 안치소에서 희생자들을 확인했다. 안치소는 화물용 컨테이너를 개조해 만들었으며, 드라이아이스 400㎏을 넣어 시신을 냉동보존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두 팔로 아기를 꼭 끌어안고 있었던 것 같아요.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갔지만 그 덕분에 아기 시신이 온전하게 남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추락사고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시체 수습 작업에 참여했던 현지 교민 문치현(57·용역회사 직원)씨는 “조종석 바로 뒤를 파보니 아이의 발이 보였고 어른 허벅지가 나왔다.”면서 “조종옥씨가 두 팔로 아들 윤민(1)이를 꼭 안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문씨는 “그 팔을 펴고 아기 시신을 꺼내는 데 애를 먹은 걸 보면 조씨가 끝까지 아이를 부둥켜안고 있었던 것 같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문씨는 교민 의료진과 함께 보코르산으로 달려가 마지막까지 시체를 수습한 뒤 이날 칼멧병원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시신의 염까지 맡았다. 24년 전 캄보디아에 이민 온 문씨는 1997년 9월3일 프놈펜 포첸통 공항에서 베트남 항공기가 떨어져 한국인 21명이 숨졌을 때에도 현장으로 뛰어갔다.“당시엔 불이 나서 시체 수습 작업이 너무 참혹했다.”면서 “거의 10년 만에 이런 사고가 또 나서 안타깝지만 그래도 한국 사람이 당한 일이다 보니 어떤 계기랄 것도 없이 바로 뛰어갔다.”고 털어놓았다.●“항로이탈해 육안식별 비행하다 사고” 사고 원인은 추락 여객기의 조종사가 정기항로를 벗어나 육안식별비행을 하려다 사고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항공당국은 이날 정확한 추락 원인을 찾기 위한 블랙박스 판독작업에 착수했다. 캄보디아 정부 고위관리는 이날 한국대사관 관계자에게 “사고기의 조종사가 비록 관제탑의 사전 승인을 받았지만 정기 항로를 벗어나 육안으로 지형을 식별하면서 우회 비행을 하다 사고가 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이 관리는 “바다에서 보코르산 정상 쪽으로 비스듬히 바람이 자주 불기 때문에 항공기가 산에 충돌할 위험을 느껴 조종사들이 자주 산 정상 북쪽으로 항로를 이동한다.”면서 “사고 당일 악천후로 계기비행을 하지 않고 육안식별 비행을 한 것이 확실해 보이며 사고 원인은 악천후와 조종사 과실을 반반으로 본다.”고 말했다. 신현석 주 캄보디아대사에 따르면 조종사와 시아누크빌 공항 관제탑 사이에는 25일 오전 10시30분부터 10시50분까지 4차례의 교신이 있었다.‘고도를 2000피트(600m) 정도로 낮추도록 해달라.’는 기장의 거듭된 요청에 관제탑은 ‘산악지방이라 허가할 수 없다. 고도를 내리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관제탑 지시 무시한 조종사 이해 못해”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 관계자는 “조종사가 임의로 고도를 강하하거나 자신이 잘 안다고 우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공항 활주로 앞 50㎞ 지점에 해발 1080m의 보코르산이 있었는데도 관제탑에서 ‘당장 고도를 높여라.’라고 하지 않고 ‘너무 고도가 낮지 않나.’란 식으로 얘기했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가장 큰 의문점은 목적지까지 50㎞가 남은 지점에서 조종사가 굳이 2000피트로 고도를 낮추려고 했던 점이다.AN-24기와 같은 소형 민간항공기의 경우 활주로를 20㎞ 남겨 놓고 관제탑의 지시에 따라 ‘파이널 어프로치(최종접근단계)’에 돌입한다.그 이전에는 고도를 낮출 이유가 없고 악천후로 위험이 다분한데도 기장은 4차례나 고도를 강하하도록 요청했고, 결국 관제탑의 제지를 무시한 채 고도를 낮췄다. 지난 27일 추락 현장에서 회수된 블랙박스의 조종석 음성기록장치(CVR)와 비행기록장치(FDR)를 판독하는 데 6개월∼1년이 걸린다.그러나 기장과 부기장간의 대화, 기장과 관제탑 간의 교신이 담겨 있어 원인 분석의 실마리를 제공할 CVR의 데이터를 출력하는 데는 1주일이면 충분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nomad@seoul.co.kr
  • “고도 너무 낮다” 관제탑 경고

    “고도 너무 낮다” 관제탑 경고

    |프놈펜(캄보디아) 이재훈특파원|“현재 고도 2000피트(610m)로 날고 있다. 원래 4000피트(1220m)로 날아야 하는 지점인데 2000피트다.”(PMT에어 조종사) “너무 고도가 낮지 않나?”(시아누크빌 공항 관제탑) “내가 이 지역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문제없다.”(PMT에어 조종사)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공항에서 북동쪽으로 50㎞ 떨어진 보코르산에 추락한 PMT에어(캄보디아 민영항공)는 지난 25일 오전 10시52분(이하 현지시간·한국시간 낮 12시52분) 이같은 교신을 끝으로 연락이 두절된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오전 10시13분 시엠레압 공항을 출발한 지 39분 만이었고, 시아누크빌 공항 착륙 5분을 남겨 놓은 상태였다. ●사고기 고도 600m 불과… 최소 1200m 고도 유지했어야 이번 사고 원인은 폭우 등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악천후 속에서 여객기 조종사가 관제탑의 경고를 무시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갑열 외교통상부 재외동포대사에 따르면 시아누크빌 공항의 관제탑은 착륙을 준비 중인 사고 여객기에 “고도가 너무 낮다.”고 경고했다. 공항 진입항로 앞 50여㎞ 지점에 해발 1080m의 보코르산 국립공원 산줄기가 남북으로 길게 가로놓여 있는데 당시 사고기의 고도는 600m에 불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관제탑은 보코르산의 높이를 감안할 때 최소 1200m의 고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이같은 경고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수색팀은 보코르산을 넘기 위해 사고기가 고도를 높이는 도중에 추락한 것으로 보고 사고 발생 직후부터 보코르산 동쪽 경사면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수색을 벌였다. ●보코르산 중턱에 추락 당시 보코르산에는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의 엄청난 비가 쏟아지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주 캄보디아 한국대사관 오낙영 참사관은 “사고 당시 시간대에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다. 하루에도 날씨가 변덕을 자주 일으키는 지역인데 당시 프놈펜에도 비가 왔다.”고 전했다. 사고 직후 관제탑으로부터 ‘여객기가 실종돼 찾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그 이후 계속 장대비가 퍼부어 수색을 못하고 있다가 오후 4시쯤 헬기를 투입해 수색에 나섰다. 그러나 2시간 뒤인 오후 6시에 다시 장대비가 쏟아져 수색을 중단했다. 평소에는 30분∼1시간가량 내리던 비도 이례적으로 5∼6시간 쏟아졌다는 것이다. 여객기 동체와 한국인 13명을 포함한 22명의 시신은 추락 44시간 만인 27일 오전 7시15분쯤 보코르산 중턱에서 모두 숨진 채 발견됐다. 한편 유가족들은 시신 확인 작업을 끝낸 뒤 이날 밤늦게 병원 내 임시분향소를 설치했다. 유가족들은 사고 현장을 방문하겠다고 요구했지만 기상상태가 좋지 않아 메콩강가에서 위령제를 지냈다. 시신은 29일 밤 11시20분 대한항공편으로 프놈펜을 출발해 30일 아침 6시45분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국내에서의 장례일정과 빈소 마련 등은 시신을 국내로 운구한 뒤 유족들과 논의해 결정하기로 했다. nomad@seoul.co.kr
  • 기적은 없었다

    기적은 없었다

    |프놈펜(캄보디아) 이재훈특파원·서울 김미경기자|‘끝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실낱 같은 기대를 품었던 유가족들은 27일 오후 사고 현장에서 시신들이 프놈펜 ‘크메르소비에트 프렌드십 병원(구 러시아병원)’으로 운구되자 넋을 잃고 말았다. 유가족들은 믿기지 않는 듯 허공을 응시하다 끝내 오열해 주위를 숙연케 했다. ●시신 프놈펜병원으로 운구 사흘째 계속된 수색작업 끝에 종잇장처럼 찢겨진 PMT에어(캄보디아 민간항공)의 AN-24기가 보코르산 비탈에서 수색대원에게 발견된 것은 이날 아침 7시15분(이하 현지시간·한국시간 오전 9시15분). 프놈펜에서 167㎞, 목적지인 시아누크빌공항에서 50㎞ 떨어진 밀림 한가운데에 흉칙한 모습을 드러낸 기체 내부에는 밖으로 튕겨져 나간 1명을 제외하고 한국인 관광객 13명을 비롯한 22명이 숨져 있었다. 당초 여객기에는 22명이 탑승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명단에 누락된 캄보디아인 2명의 시신이 추가로 발견됐다고 현지 교민이 전했다. 지난 25일 오전 10시52분쯤 추락한 지 44시간여 만이었다. ●시신은 고스란히 기체안에 남아 보코르산(해발 1080m)의 해발 600∼700m 지점에서 추락한 여객기는 동체가 동강나지는 않았지만 온전한 형체를 짐작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심하게 짓이겨져 사고 당시 희생자들의 절규를 짐작하게 했다. 시신 수습에 나선 캄보디아 군병력과 한국 의료진 등도 참혹한 광경에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캄보디아군 헬기 조종사 혼로타(54)는 “기체가 산산조각나지는 않았지만 불시착한 상태로 널브러져 있었고 시신들은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고 고스란히 기체 안에 남아 있었다.”고 전했다. 울창한 원시 밀림에 추락한 AN-24기의 동체 앞부분은 하늘로 머리를 치켜든 모습이었고 나머지 부분도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해 군데군데 찢기고 휘어지고 유린당한 채 발견됐다. 희생자 대부분은 비행기 안에서 발견됐다. 다른 비행기 추락사고에 비해 비교적 온전히 보존돼 있었다. 하지만 무덥고 습한 날씨로 심하게 부패돼 악취가 진동했고, 이 때문에 현장에 투입된 요원들은 마스크를 착용한 채 시신 수습에 나서야 했다. 구조대원들은 시신 한구 한구를 조심스럽게 수습한 뒤 연두색 커버로 씌운 뒤 흰색 끈으로 묶어서 옮겼다. 캄보디아 당국은 헬리콥터를 사고현장에서 약 100m와 300m 떨어진 두 지점에 착륙시킨 뒤 도보로 현장에 접근했다. 희생자들의 시신은 오후 3시15분쯤부터 헬리콥터를 이용해 프놈펜의 병원으로 옮겨졌다. ●“끝내…” 넋잃은 유가족 전날 밤늦게 캄보디아에 도착, 프놈펜의 캄보디아나 호텔에서 묵은 유가족들은 이날 아침 7시쯤 한국대사관이 마련한 버스로 프놈펜에서 148㎞ 떨어진 캄포트시로 향했다. 하지만 캄포트시에 도착하기 전 실종자 전원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유가족들은 오열했고, 일부는 넋이 나간 듯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버스는 시신이 옮겨지는 프놈펜의 병원으로 급히 되돌아갔다. 일부 유가족들은 “날씨가 좋아 조금만 빨리 수색이 이뤄졌다면 생존자가 있었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실종자 전원이 사망했다는 소식에 캄보디아도 충격에 빠졌다. 훈센 총리를 중심으로 사고대책본부가 꾸려진 캄포트시의 캄포트스타디움에는 군용과 민간 헬기 8대가 사고 현장을 쉴 새 없이 오갔다. 이날 오전 헬기를 타고 현장에 다녀온 훈센 총리는 기자회견을 열고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고 최종 확인했다. 한편 김봉현 외교부 재외동포영사국장은 이날 “제일 중요한 것이 한국으로 시신을 이송하는 문제인데 정기 운항 항공편의 크기가 작아 특별기로 운송해야 할 상황”이라면서 “이틀 정도 시간이 소요되는데 가족들의 동의 하에 처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nomad@seoul.co.kr
  • 조종사 과실 여부 보상액 달라져

    조종사 과실 여부 보상액 달라져

    캄보디아 여객기 추락사고로 한국인 13명이 사망함에 따라 향후 보상문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망자들은 출국 전 가입한 여행자 보험금과 사고기 항공사인 PMT에어(캄보디아 민간항공) 보험금 등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사고기에 탑승한 13명 중 가이드 박진완씨와 조윤민군을 제외한 11명은 최대 1억원까지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아메리칸해상화재보험(ACE보험)의 여행자 보험에 단체로 가입했다. 박씨는 가이드라 여행자 보험에 들 수 없었고, 조군은 돌이 지나지 않은 갓난아이라 보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유가족들은 시신 운구 작업이 끝남과 동시에 PMT에어와 적절한 보상 액수를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추락사고가 조종사 과실일 가능성이 높아 PMT에어에서 상당 액수를 배상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국제 항공사고에서 선진국이 아닌 국가의 경우 통상 보상액수가 적고 PMT에어가 영세하기 때문에 보상액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또 이번 사고에 여행패키지를 제공한 하나투어 측은 일단 유족들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하는 한편 도의적인 차원에서 여러 가지 지원책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유가족들은 내국인들이 해외에서 당한 항공기 사고에 대해 한국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며, 외국 항공사측이 사고 발생 위험을 예견하고도 무모하게 운항한 점을 입증할 경우 피해액을 모두 배상해야 한다는 게 기존 법원 판례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안타까운 순직…주먹 휘두른 상관

    ■ 안타까운 경찰관 지난 한달 동안 서울경찰청 산하 경찰관 4명이 잇따라 순직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경찰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보복폭행 사건의 후폭풍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동료들의 비보가 이어지자 경찰의 사기는 더욱 땅에 떨어졌다. 10일 서울경찰청 경무과 후생반에 따르면 지난달 7일 서울청 경무과에 근무하던 이모(39) 경정이 위암으로 숨졌다. 지난달 15일에는 K경찰서 경비·교통과 허모(35) 경장,22일에는 S경찰서 수사과 김모(41) 경사가 나란히 직장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모두가 조직의 허리에 해당하는 30∼40대 초반의 경찰관들이어서 아쉬움은 더했다. 같은 달 28일에는 Y경찰서 백모(57) 경감이 정년 퇴직(6월30일)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 뇌출혈로 숨져 동료들과 유가족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서울청은 내부 규정에 따라 경찰관들과 일반직, 기능직 공무원 등 2만 4800명의 급여에서 각각 5000원씩을 공제해 1인당 1억 2400만원의 ‘공동부조금’을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일선 경찰서의 한 경찰관은 “순직한 동료들처럼 대부분의 경찰들은 경찰을 천직으로 여기며 묵묵히 맡은 일을 충실히 수행한다.”면서 “최근 김승연 회장 사건으로 인해 경찰이 한꺼번에 매도당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순직 경찰관 수는 한달 평균 1명 정도였지만 5월에 4명이 각종 지병으로 순직했다.”면서 “장례를 치른 뒤 공무원연금관리공단과 순직 여부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주먹 휘두른 상관 이택순 경찰청장의 퇴진 논란과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수사팀에 대한 인책 문제로 ‘내홍’을 겪었던 사이버경찰청 직원 전용 자유발언대가 상급자의 폭행을 고발하는 글로 또다시 들끓고 있다. 이면에는 상급자에게는 관대하고 하급자에게는 엄한 감찰에 대한 불만이 오롯이 녹아 있다. 그동안 숨죽여 왔던 하위직 경찰들의 불만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10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9일 오전 경찰 내부 전산망에 “지난 4월 자유무역협정(FTA) 반대시위 차단근무 동원 당시 서울 K경찰서장이, 버스에서 내리는 직원 2명이 모자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욕설과 함께 얼굴 등을 폭행했다. 감찰에서도 이 사실을 묵인했다.”는 글이 올랐다. 당시 서울청 감찰계에서는 서장이 폭행 사실을 시인했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K경찰서 관계자는 “당시 서장이 당사자들에게 충분히 사과를 하고 마무리한 사안인데 다른 경찰서 직원들이 이를 또다시 문제 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8일에는 ‘원칙도 없는 감찰,XXX 같은 감찰’이라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정직 1개월 처분을 받은 서울 S경찰서 A경사가 부당함을 호소하기 위해 서장을 찾아갔다가 욕설과 함께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경찰 관계자는 “예전에는 관례적으로 넘어갔던 경미한 수준의 (상급자) 폭행에 대해 하위직 경찰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면서 “최근 보복폭행 수사 감찰과 관련, 감찰이 하위직에는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고 고위직에는 관대하다는 인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일영 류지영기자 argus@seoul.co.kr
  • [Seoul In] 국가유공자·가족에 위문품

    은평구(구청장 노재동) 6월 호국의달을 맞이해 국가유공자와 유가족을 위한 행사를 진행한다.8일 오전 11시부터 한국웨딩문화원에서 보훈단체회원 대표 130명을 초청한 국가유공자 위로간담회를 열어 오찬, 표창, 위문품 전달 등을 한다.6일 현충일에는 국립묘지 참배를 희망하는 유가족들을 위해 차량을 준비해 교통편의를 제공한다.7일 진관외동 진관사에서는 호국기원 대법회를 열고 추모제와 함께 보훈단체 자녀에게 장학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전산공보과 350-3343.
  • “엄마~ 어디가”

    “어린아이들은 어떻게 살라고….” 21일 오전 소방안전 체험 교육 도중에 숨진 황성해(35·여)씨와 정인영(41·여)씨의 장례식이 열린 서울 노원구 원자력병원에는 유가족들의 오열이 끊이지 않았다. 서글프게 울려퍼지는 소방악대의 ‘장송행진곡’ 속에 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던 자녀들은 처음에는 애도 분위기 속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어머니의 유해가 안치실에서 나오자 눈시울이 붉어졌고 이내 눈물을 쏟아냈다.50여명의 참석자들은 엄마를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할 아이들의 모습에 끝내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오전 7시30분쯤 빈소에서 황씨의 아들(10)이 위패를 들고 앞장서고 남편 안광일(42)씨가 영정을 들고 영결식장으로 향했다. 유족들은 “아이들이 아직 저렇게 어린데…, 벌써 가면 어떻게 해.”라며 가슴을 부여잡고 오열했다. 황씨의 남편은 불교식으로 치러진 영결식 내내 고개 숙인 채 말없이 눈물만 뚝뚝 흘려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황씨 유해는 경기 이천시 모가면 와우정사에 안장됐다. 유가족들은 “이제 초등학교 쪽은 바라보기도 싫다.”며 원망 섞인 눈물을 흘렸다. 곧이어 정씨의 유해는 오전 8시10분쯤 영결식 없이 운구됐다. 정씨의 남편이 흰옷을 입은 정씨의 딸(11)과 아들(9)의 손을 잡고 그 뒤를 따랐다. 정씨의 딸은 유해가 운구차에 실리는 순간 입술을 떨며 눈물을 흘렸다. 정씨의 친정 엄마는 운구차 속으로 유해가 들어가는 순간 끝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졌다. 정씨의 유족은 서울 신내동 성당에서 1시간 동안 장례미사에 참석한 뒤 경기 이천시 율면 고덕리에서 조용히 장례를 치렀다. 빈소가 마련됐던 장례식장 2층에는 닷새 동안 두 학부모의 안타까운 죽음과 유족들의 눈물을 지켜봤던 조화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강국진 박창규기자 betulo@seoul.co.kr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21) ‘신필(神筆)의 화원’ 김명국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21) ‘신필(神筆)의 화원’ 김명국

    조선통신사의 수행원으로 일본에서 인기 있었던 전문지식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화원이다. 시인들은 한자를 아는 일본 지식인에게만 관심을 끌었지만, 화원은 한자에 조예가 깊지 않은 부자 상인이나 무사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그림은 외국어의 벽이 없어, 누구나 보고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값도 조선보다 몇 배나 높아, 일본에 한번 다녀오면 큰 재산을 모을 수도 있었다. 화원들은 하루에 인물화 3∼4본을 그렸다는데, 산수화나 화조화(花鳥畵), 사군자류까지 포함하면 쓰시마에서 에도까지 오간 5∼8개월 동안 적어도 100점은 넘게 그렸다고 짐작된다. 부사 김세렴(金世濂)의 일기 ‘해사록(海錄)’ 1636년 11월14일자는 “글씨와 그림을 청하는 왜인이 밤낮으로 모여들어 박지영·조정현·김명국이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였는데, 심지어 김명국은 울려고까지 했다.”고 기록했다. 박지영과 조정현은 글씨를 쓰는 사자관(寫字官)이고, 김명국(金明國)은 화원이었다. 일본인들은 그림과 글씨를 한꺼번에 부탁했기에, 김명국은 갑절로 바빠서 울상이 되었던 것이다. ●술 취해 살았던 한평생 가난에 쪼들렸던 김명국은 수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지금 남은 것은 일본에 전해지는 13점을 포함해도 30점이 안 된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달마도’도 일본에 있던 것을 사온 것이다. 몇 가닥의 활달한 붓놀림으로 달마대사의 이국적인 풍모와 면벽구년(面壁九年)의 구도심(求道心)을 그려냈기에 신필(神筆)이라 불렸지만, 김명국은 태어난 해나 죽은 해도 알려지지 않을 정도로 생애에 관한 자료가 많지 않다. 명국(明國)이라는 이름을 명국(命國)으로 고쳤다는데, 명국(鳴國)이라고 기록된 문헌까지 있는 까닭은 족보 하나 제대로 전하지 않는 집안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취옹(醉翁)이라는 호가 날마다 술에 찌들어 살았던 그의 모습과 잘 어울리는데, 취한 상태에서 그림 그리는 것으로 더욱 이름났다. 역관 시인 홍세태의 제자 정내교는 그의 전기 ‘화사 김명국전’을 이렇게 시작한다. “화가 김명국은 인조 임금 때 사람이다. 어느 집안 출신인지는 모르지만, 자기 호를 연담(蓮潭)이라고 했다. 그의 그림은 옛것을 본받지 않고도 심중을 얻었는데, 특히 인물과 수석을 잘 그렸다. 수묵과 담채를 잘 썼으며, 풍신(風神)과 기격(氣格)을 위주로 하였다. 세속적인 방법으로 울긋불긋하게 꾸며서 사람들의 눈이나 즐겁게 하는 그림 따위는 절대로 그리지 않았다. 사람됨이 방자하고 절도가 없었으며 우스갯소리를 잘하였다. 술을 좋아했는데, 한번에 여러 말을 마셨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에 반드시 크게 취해야만 붓을 휘둘렀다. 붓을 마음대로 놀릴수록 그 의미가 더욱 무르녹았다. 비틀거리는 속에 신운이 감돌았다. 대개 자기 마음에 든 작품들은 술 취한 뒤에 많이 그려졌다고 한다.” ●지옥그림의 죄인들을 스님들로 그려 풍자 언젠가 영남에 사는 스님이 큰 비단을 가지고 와서 명사도(冥司圖·지옥그림)를 그려 달라고 했다. 지옥이란 한자어는 인도어 나라카(naraka)를 의역(意譯)한 것인데, 나락가(奈落迦), 또는 나락이라고 음역(音譯)하기도 한다. 불교에는 팔대 지옥이 있어 생전의 죄업에 따라 그에 해당하는 지옥으로 떨어져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지옥에 떨어지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고통받는 이들을 구제하는 지장보살이 있으며,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모시고 죽은 이의 넋을 천도하여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명부전(冥府殿)이 있다. 명부전을 지장전, 또는 시왕전이라고도 하는데 지장보살 뒷벽에 지장도, 시왕도, 또는 지옥도 등의 그림을 걸었다. 유가족들은 그 그림을 보며 망자가 고통당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극락왕생하기를 빌었다. 지옥그림은 불상 다음으로 중요했는데, 스님은 비단 수십 필을 그림값으로 가져왔다. 김명국은 좋아라 받고는 아내에게 넘기며 당부했다. “이걸 가지고 술값을 삼게. 내가 몇 달 동안 신나게 마실 수 있도록 말야.” 얼마 뒤에 스님이 찾아오자 ‘맘이 내켜야 그린다.’면서 그냥 보냈다. 그렇게 서너 번 돌려보내더니, 하루는 술을 실컷 마시고 몹시 취해 비단 앞에 앉았다. 한참 바라보며 생각을 풀어내더니, 붓을 들어 단번에 다 그렸다. 그런데 건물 모습이며 귀신들의 형색이 삼엄하긴 했지만, 머리채를 끌고 가는 자나 끌려가면서 형벌을 받는 자, 토막으로 베어지고 불태워지는 자와 절구 찧고 맷돌 가는 자들이 모두 스님들이었다. 스님이 깜짝 놀라 말했다. “어이구 참! 당신은 어쩌려고 내 큰 일을 그르쳐 놓으셨소?” 김명국이 두 발을 앞으로 쭉 내뻗고 웃으며 말했다. “스님들이 일생 동안 저지른 악업이 바로 세상을 미혹시키고 백성들을 속이는 짓이니, 지옥에 들어갈 자는 스님들이 아니고 누구겠소?” 스님이 ‘그림은 태워 버리고 비단이나 돌려달라.’고 하자, 김명국이 웃으며 말했다.“스님이 이 그림을 완성시키고 싶다면, 가서 술이나 더 사 가지고 오시오. 내가 스님을 위해 그림을 고쳐 주겠소.” 스님이 술을 사 왔더니, 김명국이 술잔에 가득 담아 마시고는 기분 좋게 취했다. 붓을 쥐더니 머리 깎은 자에게는 머리털을 그려주고, 수염을 깎은 자에게는 수염을 그려 주었다. 잿빛 옷을 입은 자와 장삼을 입은 자에게는 채색을 입혀서 그 빛깔을 바꿨다. 김명국이 붓을 던진 뒤에 다시 크게 웃으며 잔에 가득 담아 마셨다. 스님들이 둘러서서 이 그림을 보며 “당신은 참으로 천하의 신필(神筆)입니다.”라고 감탄하더니 절을 하고 갔다. 정내교가 전기를 쓸 때까지도 그 그림이 남아 있었다는데, 스님들의 보물이라고 했다. 김명국의 풍자와 해학, 기발한 그림 솜씨를 전해주는 이야기지만, 이 지옥그림이 지금 어느 절에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낮은 신분 때문에 거절 못하고 그려 실패작도 많아 조선후기의 화론가 남태응(南泰膺·1687∼1740)은 유홍준 교수가 번역한 ‘청죽화사(聽竹畵史)’에서 그가 그림 그리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김명국은 그림의 귀신이다. 그 화법은 앞시대 사람의 자취를 밟으며 따른 것이 아니라, 미친 듯이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 주어진 법도 밖으로 뛰쳐나갔으니, 포치(布置)와 화법 어느 것 하나 천기(天機) 아님이 없었다.(줄임) 그러나 다만 정해진 법도에 들어맞게 하는 데 얽매여 일생 동안 애써서 정성을 다해도 가까스로 소가(小家)를 이루는 자들과는 하늘과 땅 차이도 더 되니, 이것이 어찌 김명국의 결함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김명국은 성격이 호방하고 술을 좋아하여 그림을 구하는 사람이 있으면 문득 술부터 찾았다. 술에 취하지 않으면 그 재주가 다 나오지 않았고, 또 술에 취하면 취해서 제대로 잘 그릴 수가 없었다. 오직 술에 취하고 싶으나 아직은 덜 취한 상태에서만 잘 그릴 수 있었으니, 그와 같이 잘된 그림은 아주 드물고 세상에 전하는 그림 중에는 술에 덜 취하거나 아주 취해 버린 상태에서 그린 것이 많아 마치 용과 지렁이가 서로 섞여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김명국의 그림에는 걸작도 많지만 실패작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남태응은 그런 이유가 술 때문만이 아니라 중인이라는 신분 때문이기도 하다고 변명했다.“연담(김명국)은 천한 신분이었다. 그래서 그 이름을 아낄 수 없었던 것이다. 남이 소매를 끌고 가면 어쩔 수 없이 손에 이끌려 하루에도 수십 폭을 그려야 했으니, 그 득실이 서로 섞이고 잘되고 못된 것이 나란히 나와 공재(윤두서)처럼 절묘하게 된 것만을 단단히 골라낼 수 없었다. 만약 연담으로 하여금 그 처지를 공재와 같은 위치에 두게 했다면 이름을 얻은 그 성대함이나 작품의 귀함이 어찌 공재만 못하겠는가. 그러니 이런 식으로 그림을 매기는 것은 진실로 어린애나 가질 소견인 것이다.” 국부(國富)라고까지 불렸던 고산 윤선도의 증손자 윤두서는 사대부 양반인 데다 갑부였기에 재물이나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이 내킬 때에만 그림을 그렸으며, 그 그림이 자기 마음에 들어야만 남에게 보여주었다. 그랬기에 하나같이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중인 김명국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조선에서는 중인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지만, 일본에서는 신분이 아니라 그림으로 평가하였다.200년 동안 조선통신사가 12차례나 다녀왔지만, 일본 측에서 다시 불렀던 화원은 김명국 뿐이었다. 다음 호에는 김명국의 일본 활약상을 소개한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사람잡은 안전교육

    초등학교에서 소방 안전교육을 받던 학부모들이 고가 사다리차에서 떨어져 2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는 소방서 주최로 열린 사고 예방 교육 과정에서 발생해 충격을 더했다. 사고가 난 차량은 ‘굴절형 사다리차(굴절차)’로 바스켓(구조·탑승용 바구니)을 지탱하는 와이어가 끊어지면서 일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17일 오전 11시33분쯤 서울 중랑구 묵동 원묵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여성 학부모 3명이 굴절차의 바스켓을 타고 고층에 오르는 소방 훈련을 체험하던 중 갑자기 두께 1㎝짜리 와이어가 끊어지면서 24m 높이에서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학부모 정모(41·여)씨와 황모(35·여)씨 등 2명이 숨지고 오모(38·여)씨가 크게 다쳐 인근 서울 노원구 상계 을지병원 등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과 소방방재본부 관계자는 “사다리와 바스켓을 연결하는 와이어가 끊어지면서 바스켓이 기울어졌다가 원위치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학부모들이 바스켓 밖으로 튕겨져 나가 바닥에 추락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가정의 달을 맞아 서울 중랑소방서가 4학년 학생들과 학부모 10여명 등 250여명을 대상으로 개최한 ‘소방관 아저씨와 함께하는 가족 안전’ 행사로 오전 9시부터 3시간 동안 진행할 예정이었다. 학부모들은 학생들에 이어 체험행사에 참여했다가 사고를 당했다. ●사고 굴절차 와이어 점검 한번도 안해 김한용 서울시 소방방재본부장은 “사고 차량은 그동안 와이어 점검을 받은 적이 없다. 굴절차 와이어가 끊어진 것은 한국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고 차량은 1998년 12월 출고된 이후 와이어를 한번도 교체하지 않았다.2월21일 정기점검을 받았지만 와이어 테스트는 없었다. 또 사고 차량의 바스켓은 가로 100㎝, 세로 40㎝, 높이 80㎝ 크기로 탑승한 사람들을 고정하는 안전 벨트가 없었다. 따라서 바스켓을 고정하는 벨트만 있었더라면 참변을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사고 차량을 운전한 김모 소방장은 “15년째 소방관 생활을 하고 있지만 (3∼4t의 장력을 견딜 수 있는) 와이어가 끊어진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바스켓에 어린이들은 5∼6명, 학부모들은 3명을 태워 바스켓 하중(최대 340㎏)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중랑경찰서는 철제와이어를 현장에서 수거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조사를 의뢰했다. 당시 사고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은 굴절차 주변에 에어 매트리스 등 아무런 안전장비도 설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랑소방서장 직위해제 사고가 나자 학교 측은 학생들을 교실 안에서 안정을 취하게 한 뒤 낮 12시20분쯤 조기 귀가시켰다. 현장에 있던 아이들은 사고를 직접 목격해 심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에 있던 박모(12)양은 “사고를 보고 놀라 우는 아이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소방서와 학교 관계자들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원인과 안전 규정을 어긴 사실은 없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할 방침이다. 경찰은 19일쯤 여경을 보내 사고를 당한 학부모의 아이들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소방방재본부는 현장 책임자인 성환상 중랑소방서장을 직위 해제하고, 책임자와 부상자에 대한 위로 및 지원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 이달말까지로 예정된 안전교육 체험행사를 전면 중단하고 장비 안전 점검을 실시하기로 했다. ●날벼락 같은 비보에 망연자실 사고로 숨진 정씨와 황씨의 유가족들은 갑자기 닥친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황씨의 시어머니 이모(67)씨는 “알뜰살뜰 모아 겨우 집을 마련해 좋아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사고로 오른쪽 골반뼈와 대퇴부 등을 크게 다쳐 을지병원에 입원한 오씨는 “아이가 현장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봐 충격이 매우 컸을 것”이라고 아이 걱정에 오히려 한숨을 내쉬었다. 강국진 박창규기자 betulo@seoul.co.kr
  • 실종장병 유가족들 ‘눈물의 청와대오찬’

    실종장병 유가족들 ‘눈물의 청와대오찬’

    동티모르 실종장병의 가족이 노무현 대통령 앞에서 정부의 무성의한 후속조치에 분통을 터뜨리며 오열했다. 노 대통령이 2일 군 작전과 해외파병 임무수행 중 순직한 장병의 유가족 22명을 초청한 청와대 오찬에서였다. 노 대통령은 “위로를 드리려고 모셨는데 너무 엄숙해서 말을 못하겠다.”고 인사말을 건넸다. 이어 참석자 대표로 마이크를 잡은 동티모르 파병중 실종된 김정중 병장의 형 하중씨는 “대통령 내외분께 몇가지 묻고 싶다.”면서 “동생의 시신을 아직도 못찾고 있는데 시신을 찾고 있는 건지, 조치가 있는 건지 동생이 죽고 나서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다. 부모님은 명절만 되면 눈물로 지새우는데 국방부에서는 아무런 말도 없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김씨는 “꼭 답변을 해달라. 미국은 돈을 들여 6·25 전사자 시신까지 찾는데 동생 시신을 찾지는 못할망정 이렇다 저렇다 말씀을 해 주셔야 하는 게 아니냐.”고 호소했다. 하중씨가 말을 잇는 동안 옆자리의 모친 장홍여씨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오열했다. 배석했던 김장수 국방장관은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침통한 표정 속에 김씨의 말을 메모한 노 대통령은 “유가족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28일 TV 하이라이트]

    ●러브 인 아시아(KBS1 오후 5시10분) 이름조차 낯선 나라 아제르바이잔에서 온 사위 마마도브 아이한.7개 국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지만, 한국어는 어렵기만 하다. 게다가 돼지고기 먹는 것을 엄격하게 금하는 무슬림 생활양식을 지키다 보니 함께 사는 장인, 장모와도 보이지 않는 벽이 쌓이고 있다. 문화와 언어 문제로 어려움을 겪지만, 사랑과 이해로 극복해가는 아이한 가족을 만나본다.●행복한 여자(KBS2 오후 7시55분) 처음으로 준호에게 아빠라는 말을 한 은지로 인해 준호는 감격하고, 그런 부녀의 모습을 보는 지연은 가슴이 찡하다. 지연은 은지를 데리고 친정에 들른다. 은지가 준호와 함께 대공원에 다녀왔다는 말을 듣게 된 지연의 가족들. 혹시 준호의 집에서 은지를 데려 갈까봐 걱정하지만 지연은 그런 걱정은 말라고 한다. 병구의 엄마는 지숙에게 중매를 선다.●행복주식회사 만원의 행복(MBC 오후 4시40분) 에픽하이의 개구쟁이 래퍼 미쓰라진과 똑같은 복제인간이 등장했다. 멤버들도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미스터리한 인물의 정체는 누구였을까. 타블로의 기상천외 도시락에 담겼던 깊은 뜻과 엄청난 메뉴도 공개된다. 엽기적인 그녀, 황보는 길 위에서 독특하게 딸기를 씻고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유재석·송은이와 좌충우돌한다.●그것이 알고 싶다(SBS 오후 11시5분) 현재 각 군 병원에는 유가족들이 부검을 거부하거나 부검 직후 장례절차를 거부하며 냉동보관 중인 시신이 21구에 이른다. 아들의 시신을 지키기 위해 군 병원에서 5년 이상 생활한 부모도 있다. 군 의문사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전형적인 특징을 분석해 본다. 의문사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군의 개선방향에 대해 살펴본다.●스페이스 공감(EBS 오후 10시) 조규찬은 매혹적인 미성과 화려한 보컬 기교를 구사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구축해 온 뮤지션이다.1993년 첫 번째 솔로앨범 발표 후, 지금까지 8장의 음반 발표를 했다. 그는 편안하고도 세련된 음악세계를 추구해 왔다. 이번에 자신의 히트곡뿐만 아니라 팝송을 어쿠스틱으로 새롭게 편곡, 감성적이면서도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다.●라이프 n조이(YTN 오전 11시35분) 전남 완도군에서 떠나는 보길도와 청산도의 화사한 봄 풍경을 소개한다. 우아한 해안선이 볼 만한 예송리 해수욕장을 느껴본다. 보길도의 전망을 선사하는 망끝 전망대에서 황금빛 일몰을 감상한다. 잊혀진 옛 풍경을 선사하는 청산도에는 1만여평의 노란 유채꽃과 청보리가 아름답다.
  • [버지니아 참사] “무책임한 언론상업주의” 거센 비난

    |블랙스버그(미국 버지니아주) 이도운특파원|조승희씨의 총격난사 사건이 충격적인 동영상 공개를 계기로 격론에 휩싸이고 있다. 특히 일부 피해자 부모들이 “동영상 방영은 죽은 아이에 대한 두 번째 총격”이라면서 동영상 방영 즉각 중지를 요구하고 나서자 CBS 등 미국 방송사들은 동영상 방송을 중단하거나 제한했다. 언론의 상업성 문제는 물론 총기규제, 인종갈등, 이민사회의 그늘과 고뇌, 사회적 약자 보호, 그리고 모방범죄 등 쟁점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모세처럼 바다를 가르고 내 사람을 이끌겠다.”는 내용의 추가 동영상을 19일(현지시간) NBC 방송이 공개하자 논란은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조씨가 NBC에 보낸 비디오와 사진 등이 공개된 것에 대해 너무 경솔한 언론 상업주의라는 비판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각 방송사들의 시청률 경쟁은 논란 격화에 기름을 부었다. ABC,CBS 등 공중파는 물론 CNN, 폭스뉴스 등 뉴스전문 채널도 분노에 가득찬 조씨 모습을 주요 뉴스로 계속 방영하자 사건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실제 권총과 망치를 든 소름끼치는 모습으로 세상을 저주하는 조씨의 모습이 방영되면서 일반 미국인들도 사건 전개에 분노하기 시작했고,NBC의 동영상 방송 공개 결정에 대한 논란도 계속돼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이 방송 ‘투데이 쇼’에 출연키로 했던 희생자 유가족들은 방송사에 불쾌감을 표출하며 출연을 일방 취소했다. 버지니아 공대생 등은 “유가족과 친지들의 감정을 고려치 않은 너무 경솔한 짓”이라고 일제히 비난했다. 특히 딸이 희생된 피터 리드는 “비디오 방영은 죽은 아이에 대한 두 번째 총격이나 같다.”면서 “보도경쟁을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전문가들은 NBC가 범인 조씨의 주장을 그대로 방영함으로써 결국 그를 ‘승리자’로 만들었다며 “살인범이 무덤에서 메시지를 전달한 격이 됐다.”고 격앙했다. 이에 방송사들은 동영상 방송을 제한하거나 중단하기로 했다. 동영상을 처음으로 방송한 NBC는 상업주의라는 비난이 쏟아지자 현지시간 19일 오전부터 공개되지 않거나 이미 방송된 동영상의 송출을 전체 방송 시간의 10% 이내로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CBS는 특별한 편집 목적에 따라 총괄 프로듀서가 승인한 것을 제외하고는 동영상 방송을 금지할 것이라고 밝혔고,CNN도 동영상 방송을 중단했다.ABC는 오전 뉴스에서 오디오 없이 짤막한 동영상 장면만 내보냈으며 폭스 뉴스는 오전 11시 이후부터 동영상 화면을 방송하지 않았다.dawn@seoul.co.kr
  • [버지니아 참사] 21일·22일 시민사회단체 추모집회

    미국 버지니아 공대 총기참사 희생자들을 기리는 시민·사회단체의 추모제가 주말인 21일과 22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다. 선진화국민회의와 재향군인회, 자유시민연대, 기독교사회책임 등 250여개 단체는 21일 오후 7시부터 1시간 동안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대규모 촛불집회를 연다고 20일 밝혔다.행사에는 각 단체 대표와 활동가, 버지니아 공대 동문, 시민 등 7000여명이 모여 추모시를 낭독하고 진혼춤을 춘다. 또 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별도로 조의금을 모아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사설] 美 총기참사 희생, 깊이 애도한다

    미국이 사상 최악의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으로 커다란 충격과 슬픔에 잠겼다. 수업중이던 교수와 학생 등 32명이 이 대학에 재학중이던 한국인 1.5세 조승희씨의 마구잡이 총격에 희생됐다. 참변을 겪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고귀한 생명을 잃고 만 희생자들의 영령에 깊은 애도의 뜻을 밝힌다. 창졸지간에 사랑하는 자식과 부모·형제를 잃은 유가족들에게도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이번 사건은 비단 미국만의 슬픔을 넘어 지구촌 전체의 비극이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는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는 반인류적 만행이다. 이 끔찍한 사건의 범인이 미국 영주권을 가진 한국인이라니 그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다. 범행 동기가 다 밝혀지진 않았으나 수사당국은 일단 여자친구의 변심에 앙심을 품고 저지른 개인 차원의 범죄로 파악하는 듯하다. 적어도 인종이나 국적을 둘러싼 갈등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자칫 미국민들의 증오심과 반한 감정을 촉발시킬 개연성이 없지 않다고 본다. 버지니아 공대 한인 유학생을 비롯해 미국 교민들도 이를 우려하며 초긴장 상태에 놓였다. 실제로 일부 학교에서는 한인에게 침을 뱉으며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낸 일도 벌어졌다고 한다. 양 국민의 슬기로운 대처가 필요하다. 만에 하나 재미 한인에 대한 보복성 위해가 일어난다면 이는 양국민의 감정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길 뿐 아니라 두 나라 선린우호관계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할 것이다. 정부는 사건이 국가간 문제로 비화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무엇보다 한·미 FTA 비준 동의와 비자면제 협상, 미 의회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등 양국 현안에 나쁜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미국 조야와의 대화를 강화해야 한다. 정부 차원의 고위급 조문단을 보내 미국민들을 위로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본다. 사건의 본질이 인종 문제가 아니라 총기소지에 있음을 두 나라 국민이 충분히 헤아리도록 양국이 노력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인 1.5세대와 미국 유학의 어두운 그늘을 함께 살피는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길 바란다.
  • 故허세욱씨 가족장 마쳐 시민단체 “18일 사회장”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반대해 분신한 고 허세욱(53)씨가 유가족들의 뜻에 따라 16일 오전 화장됐다. 허씨 유가족들은 사회장으로 치르자는 시민·사회단체들의 요청을 거부하고 사망 하루 만인 이날 가족장 형태로 장례식을 진행했다. 허씨 유족들은 이를 위해 경기 안성시 성요셉병원에 있던 시신을 이날 오전 6시30분쯤 경기 성남시 성남영생관리사업소로 옮긴 뒤 11시20분쯤 화장했다. 허씨의 유골은 ‘전국 미군기지에 뿌려달라.’는 그의 유언과 달리 화장장 내에 뿌려졌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들은 가족장과는 별도로 18일 대규모 사회장을 강행하기로 했다.‘한·미FTA무효 민족민주노동열사 허세욱 동지 장례대책위원회’는 이날 서울 영등포2가 민주노총 건물 1층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허씨의 장례를 가족과 함께 치를 수 없다면 자체적으로라도 치를 것”이라고 밝혔다. 장례대책위는 빈소를 고인이 숨진 한강성심병원에 차리고 18일 분신장소인 서울 하얏트 호텔 앞에서 노제를 여는 등 허씨의 장례를 ‘한·미 FTA 무효 민족민주노동열사장’으로 치를 계획이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反FTA’ 분신 허세욱씨 끝내 숨져

    ‘反FTA’ 분신 허세욱씨 끝내 숨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막바지 협상이 진행되던 지난 1일 협상장인 서울 하얏트호텔 앞에서 분신을 시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온 허세욱(54)씨가 15일 오전 11시23분쯤 화상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숨졌다. 허씨의 치료를 맡았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강성심병원 측은 “허씨가 오전부터 갑자기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결국 숨졌다.”고 밝혔다. ‘한·미 FTA 무효 민족민주노동열사 허세욱 동지 장례대책위원회’(대책위)는 “장례식을 사회장으로 치르기 위해 유가족들과 협의에 나섰지만 허씨의 가족들은 시신을 경기 안성시 성요셉병원으로 옮겨 놓고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르기를 원해 장례 절차 등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한강성심병원 앞과 전국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지부에 허씨의 빈소를 차려 놓고 한·미 FTA 무효화와 노무현 정권 퇴진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대책위가 이날 공개한 허씨의 유서에서 허씨는 자신이 일했던 서울 H운수 동료들이 넉넉지 않게 생활하고 있다는 점을 의식한 듯 ‘모금은 하지 말아 주세요. 전부 비정규직이니까.’라고 당부했다. 그는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해서 전국의 미군기지에 뿌려서 밤새도록 미국놈들 괴롭히게 해 주십시오. 효순ㆍ미순 한(恨) 갚고 (미군 기지에 유해를 뿌려서 내게 될) 벌금은 내 돈으로 부탁합니다.”고 적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민주 성지’ 광주 민·관 유치 앞장

    ‘민주 성지’ 광주 민·관 유치 앞장

    광주시의 민·관이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한국민주주의 전당’과 ‘민주공원’을 유치하기 위해 손을 잡고 나섰다. 민주주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기념사업의 하나로 정부가 추진중인 ‘한국민주주의 전당’과 ‘민주공원’ 조성사업은 공원을 ‘묘지’로 인식한 서울 등 해당지역 주민들의 반발과 유가족간 불협화음으로 수년째 표류하고 있다. ●유치의 당위성 설파 광주시는 22일 유치위 위원 등과 함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국회 등을 차례로 방문, 이들 시설의 광주 유치 당위성을 설명했다. 위원들은 이날 광주는 항일의병, 광주학생독립운동,5·18민주화운동 등을 통해 민주·인권도시로서 역사성과 상징성을 갖췄다고 주장했다. 또 유치를 위한 시민 공감대가 어느 지역 보다 높고,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공헌·희생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민주주의 전당은 유일하게 유치를 신청했고, 민주공원은 경기도 이천시와 경합하고 있다. 시는 이들 시설을 유치하면 국립5·18묘지 등과 함께 민주화의 상징으로 자리할 것으로 보고있다. 이에따라 5·18묘지 인근(북구 장등동)에 12만5000여평의 후보 부지를 마련했다. ●한국민주주의전당 2001년 출범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는 해방이후 민주화운동을 총망라한 전당을 짓기로하고 7만 7000여명의 범국민추진위를 발족시켰다. 추진위는 1400억원(부지 매입비 제외)을 들여 연건평 1만 2000평 규모의 기념관을 2011년∼2012년 완공할 계획이다.5월쯤 용역 결과가 나오는 대로 최종 후보지를 결정하고 빠르면 내년말쯤 착공에 들어간다. 역사성·상징성·편의성(접근성) 등이 후보지 선정에 결정적 역할을 할 전망이다. 이 곳엔 문화관·사료관·연구소·교육센터·민주테마공원 등이 들어선다. ●민주공원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위원장 하경철)는 2002년부터 부지선정에 나섰으나 주민 반대로 수차례 무산됐다. 당시 서울 수유리 일대에 공원 조성을 추진했으나 강북구와 주민 등의 반발로 무산됐다. 이어 2005년 인천시 남구가 유치를 신청했다가 주민 반대에 부딪치자 1년여만에 이를 철회했다. 주민들은 “‘민주공원’이 사실상 ‘묘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공원은 2만 7000여평의 부지에 500여억원을 들여 조성된다. 보상심의위는 착공일로부터 5∼6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고 있으나 수년째 부지 선정 조차 못하고 있다. 민주공원에는 1960년대∼현재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열사’의 주검을 한데 모아 안장한다. 이들 열사 묘는 5·18 구묘역 38기와 전국 각지에 141기가 흩어져 있다. 상당수 유가족들은 접근성 등을 이유로 수도권 입지를 희망하고 있으나 부지선정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공포심때문에 유족 멀리해 부끄러워”

    “오늘은 부끄러워하기 위해, 다짐하기 위해 왔습니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2일 오전 경북 칠곡군 현대공원에 자리잡은 인혁당 사건 피해자 묘소를 찾았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환갑의 김 의장은 젊은 얼굴의 피해자 초상화 앞에서 주저없이 고개를 숙였다. 김 의장은 추모사에서 “판결 18시간 만에 사형한 것이 잘못된 것인 줄 알았지만 공포심 때문에 유족들을 멀리해 부끄러웠다.”면서 “이 땅에 다시는 독재정권이 들어서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김 의장이 찾은 대구 시립묘지에는 사형이 집행된 8명의 피해자 중 고(故) 도예종, 여정남, 하재완, 송상진 열사가 잠들어 있다. 그는 묘비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폈다. 영하의 날씨에 빨개진 귓볼보다 눈시울이 더 붉어졌다. 유족의 손을 잡고 “몸도 춥지만 마음이 더 춥다.”고 소회를 전했다. 유족 대표는 “박근혜 전 대표가 얼마 전, 당시에는 유죄였고 지금은 무죄라고 말했지만 당시에도 무죄였고 지금도 무죄였다.”라면서 “그러한 박 전 대표의 왜곡된 주장에 대해 현 정부가 대신 사과하고 유가족들이 겪은 고초를 감안해 보상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달라.”고 요청했다.김 의장은 “정치·사회적 신원회복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한편 김 의장은 이날 오후 부산을 방문, 전날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공격한데 이어 이번에는 이명박 전 서울 시장에게 일침을 가했다. 김 의장은 전날 이 전 시장이 대구에서 20조 예산을 절약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국민을 선동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다.”면서 “방안이 있었다면 작년 예결산 심의에서 한나라당 유력 대선후보인 이 전 시장이 이를 실현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방안을 즉시 밝히지 않는다면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구태 정치로의 복귀”라고 말했다.대구·부산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특별법 제정… ‘유죄’ 없던 일로”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 방법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재심을 통한 해법과 특별법 제정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재심은 확정된 판결에 대해 사실인정에 중대한 오류가 있는 경우 당사자 등의 청구에 의해 다시 재판하는 것이다. 형사소송법에서는 재심청구사유를 원판결의 증거서류나 증거물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위·변조된 것으로 증명된 경우 등 7가지로 제한하고 있다. 원판결에 설령 사실오인 등의 잘못이 있더라도 이 재심 규정에 해당되지 않으면 재심청구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인혁당 사건은 재판에 증거로 사용된 진술서와 수사기록 등이 고문 등 불법행위를 통해 허위로 작성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재심이 받아들여졌고 32년만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그동안 이 재심청구사유를 좁게 해석한 경향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넓게 해석하고 있다. 재심청구가 원판결의 법원이 관할한다는 형소법의 규정을 따를 경우 인혁당 사건은 원래 1심 법원이었던 군사법원에서 담당해야 했었다. 유가족들이 서울중앙지법에 청구한 재심도 법적논란이 될 수 있었지만 법원이 이를 그대로 인정한 것이 좋은 예다. 1972∼87년 시국공안사건 중 사건 당사자가 불법구금이나 불법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한 224건 등은 재심의 소지가 있는 사건으로 대법원은 보고 있다. 이 사건의 재심청구가 받아들여져 대법원까지 올라올 경우 대법원 판결을 통해 판례를 새롭게 만드는 것은 물론 과거의 판결이 잘못됐었다는 점을 판결문에 밝히는 절차를 밟게 된다. 하지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판사 실명을 공개한 ‘긴급조치 판결’중에는 재심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예가 적지 않다. 그래서 특별법을 만들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긴급조치 자체를 특별법으로 무효화해 이 법으로 유죄선고를 받은 사건을 모두 없던 것으로 하자는 것이다. 서울대 법대 한인섭 교수는 “재심청구권을 포괄적으로 인정하는 정도로는 미흡하고 긴급조치에 대해 특별법을 만드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일각에서는 특별법 제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부산대 법대 김배원 교수는 특별법 제정에는 동의하면서도 “특별법의 기준과 범위, 보상·배상문제 등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법적 정당성 차원에서 국민의 권리를 침해한 모든 법의 무효화를 주장하게 될 수도 있고 유신시절에 불합리한 판결에 적용된 모든 법들을 무효화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사법살인의 공범” 비난 자초

    “사법살인의 공범” 비난 자초

    <인혁당계 21명을 포함한 ‘민청학련’ 사건관련 피고인 38명 가운데 36명이 유죄로 최종 확정됐다.…여정남, 서도원, 도예종,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우홍선, 송상진 등 8명은 원심형량대로 사형이, 이철, 유인태 등 9명에게는 무기징역이 각각 선고됐다.>(서울신문 1975년 4월8일자 1면) <대법원에서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형이 확정된 인혁당계 8명에 대한 사형이 9일 상오 서울구치소에서 교수형으로 집행되었다.…8명의 사형수들은…저마다 짧은 유언을 남긴 채 형장으로 향했다. 이날 도예종은 “조국의 공산주의 통일을 기원한다.”고 했으며 우홍선은 “무덤에 붉은 ‘카네이션’을 심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서울신문 1975년 4월10일자 7면)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에서 여정남씨 등 관련자들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돼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 32년 만의 명예회복이었다. 지난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문용선)가 여씨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자, 서울신문 등 국내 각 신문과 방송은 주요뉴스로 비중있게 ‘사법정의’ ‘사필귀정’이라고 보도했다.32년전의 판결과 신속한 사형집행을 ‘사법살인’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여씨 등이 조작된 혐의로 구속돼 억울하게 교수형을 당할 때까지 1년여동안 우리 언론은 철저하게 ‘당국의 입’ 역할에만 충실했다. 당시의 언론에 대해 ‘사법살인의 공범’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사중인 관련자들을 ‘공산분자´로 예단 시계를 30여년 전으로 되돌려 보자.1974년 4월25일 신직수 중앙정보부장은 이른바 ‘민청학련’ 사건 수사상황을 발표한다. “민청학련 소속 대학생들이 일본공산당원들과 과거 공산계 불순단체인 ‘인혁당’ 조직과 국내 좌파 혁신계와 함께 폭력으로 정부를 타도하고, 공산주의 정권수립을 논의했다.” 언론은 이 같은 중정 발표를 기정사실화해 보도했다. KBS,MBC,TBC(현 KBS) 등 방송들은 신 부장의 발표 내용을 그대로 내보냈고, 신문들은 “폭력 공산혁명 획책”(서울),“폭력데모로 노농정권수립기도”(동아, 한국),“폭력혁명으로 노농정권 획책”(경향),“민청학련 노농정권 수립기도”(조선) 등 자극적인 제목으로 수사 중인 민청학련, 인혁당 관련자들을 ‘공산분자’로 예단했다. 당시 8면에 불과했던 신문지면 가운데 3∼4면을 할애해 대부분의 신문들은 중정 발표내용을 그대로 싣는 한편 주요 피의자들의 사진은 물론 번지수까지 자세하게 주소와 인적사항도 기재했다. 서울신문 등은 사회면에서 “주모자들, 철저한 공산분자” “북괴, 데모학생 적화에 이용” 등 확인되지 않은 내용까지 제목으로 뽑았다. 언론들은 이후에도 “주모자 접선에 가명, 암호…간첩 수법” 등으로 관련자들의 대북 관련성을 강조하는 기사와 대북 경각심을 촉구하는 사설을 잇달아 게재했다. ●이례적 사형집행에 모든 언론 침묵 한동안 잠잠하던 민청학련, 인혁당 관련뉴스는 8개월여 만에 다시 등장한다. 정부는 1975년 ‘2·15조치’를 통해 김지하씨 등 사건관련자 일부를 석방했는데 김씨가 인혁당 사건관련자들의 고문사실을 폭로한 것. 당시 정부와 불편한 관계에 있던 동아일보에 관련 기사가 게재됐지만 고문의혹은 정부의 경고에 파묻혔다. 박정희 대통령은 2월21일 법무부 순시에서 “일부 인사의 국민선동을 주시하고 있으며 자숙하지 않으면 헌법상 권한을 발동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같은 달 24일 황산덕 법무장관은 “인혁당은 반공법에 규정된 반국가단체로 ‘조작·민주인사’ 운운할 경우 반공법으로 엄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연히 신문들은 이 같은 내용을 1면 톱기사로 보도했다. 그로부터 한달 보름여만인 4월8일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이 내려졌고,18시간만인 9일 새벽 4시쯤 인혁당재건위 관련자 8명에 대한 사형이 전격 집행됐다. 이례적으로 신속한 사형집행에 대해 어느 언론도 문제제기를 한 곳은 없었다. 일부 언론이 “전격적인 사형에 크게 유감스럽다.”는 미 국무성대변인의 성명을 1단으로 보도했을 뿐이다. ●“유신체제선 어쩔 수 없었다.” 변명 안통해 30여년 만에 가장의 명예를 되찾은 유가족들에게 이 같은 언론보도는 어떤 ‘응어리’를 남겼을까. 고 하재완씨의 부인인 이영교씨는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되자 오열하면서 당시 조작의혹 등에 대한 보도에 인색했던 언론을 질타했다. 이씨는 “손톱만큼이라도 기사를 내달라고 했지만 모두들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인혁당 사건 진상규명 운동을 벌여온 문정현 신부도 “언론은 그동안 철저하게 우리를 외면했다.”면서 “그럼에도 (무죄로 판명난)지금와서 한마디 반성도 없다.”고 꼬집었다. 언론시민단체나 언론학자들 역시 “과거의 ‘사실보도’가 유신체제하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언론의 변명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언론이 과거 권력의 나팔수 역할을 했던 것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지만 어느 곳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32년전 인혁당 사건의 교훈은 또 과거 속으로 묻혀지는 것이 아닌지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