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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北 2차 핵실험 도발로 얻을 것 없다

    북한이 어제 2차 핵실험을 강행한 것은 명백한 도발행위다. 2차 핵실험은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 위반이자, 오바마 미 행정부가 추구하는 핵무기 없는 세계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지대공 미사일 발사 징후가 포착됐으며 이는 남한을 겨냥한 것이다. 국제사회와 남한을 대상으로 한 북한의 도발은 오판에서 비롯된 것이고, 국제사회에서 유일한 이단아임을 자인하는 것으로 본다. 북한은 핵실험을 하기 불과 몇시간 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조전을 보내와 권양숙 여사와 유가족들을 애도했다. 조문을 하면서 한편에서 무력시위를 하는 것은 상식 밖의 행동이다. 북한은 핵실험으로 추모 열기에 덮인 남한을 혼란에 빠트릴 수 있을 것으로 그릇 판단했겠지만 오히려 남한은 더욱 국력을 결집시켜 나갈 것이다. 북한의 2차 핵실험으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진파는 리히터규모 4.5로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당시의 3.6보다 강력한 것으로 관측됐다. 1차 핵실험보다 위력이 한층 세진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또 한 차례의 지하 핵실험을 성과적으로 진행했다.”면서 “이번 핵실험은 폭발력과 조종기술에 있어서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안전하게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제기된 북한은 후계자에게 견고한 권력을 넘겨주기 위해 서두르는 인상이 짙다. 북한의 목표는 2012년 김일성 탄생 100주년에 맞춰 강성대국을 달성하는 것이고, 이때까지 핵보유국 지위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으려 하는 듯하다. 1차 핵실험에 실패한 북한에는 2차 핵실험 성공 여부보다는 잇따른 핵실험으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이 대내·대외용 선결과제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아무리 핵실험을 하더라도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리 만무하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일본은 재무장 목소리를 내면서 동북아 핵확산의 빌미로 삼고 있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주 “전 세계 모든 국가와 함께 핵무기가 초래하는 위험을 줄여나가고 궁극적으로 그 위험을 제거하는 것은 미국의 절대적인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국제사회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북한의 도발행위에 엄중한 제재에 들어갈 것이다. 이미 북한 핵실험 대응책 실무협의에 들어갔으며, 한·일 외무장관은 베트남에서 회담을 갖고 조속한 안보리 소집으로 대응한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장거리 로켓 발사에는 안보리 의장 성명 정도로 넘어갔지만 이번에는 중국도 북한 제재에 거부반응을 보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북한으로부터 핵실험 사전통보를 받은 중국이 핵실험을 막지 못한 점은 실망스럽다. 아울러 국제사회가 핵실험 정보 공유를 제대로 했는지도 면밀히 따져 볼 일이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상원에 출석해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해 약속한 비핵화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한 북한에 한푼도 지원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이번 핵실험으로 강성대국을 향한 내부 결속을 다지는 효과를 거둘지 모르지만 국제사회로부터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북한은 핵실험이 강성대국을 건설하기도 전에 자멸하는 길이라는 점을 왜 모르는가. 안타까울 뿐이다.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김정일 “심심한 애도” 조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5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가족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전한 조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불상사로 서거하였다는 소식에 접하여 권양숙 여사와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날 오전 북측으로부터 건네받은 조전을 노 전 대통령 유가족측에 전달했다.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오전에 북한의 조전 내용을 유가족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인 전달 경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한편 북한 노동신문은 이날 발행된 신문 1면에 김 위원장이 보낸 조전을 게재했다. 북한 매체들이 전날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보도한 데 이어 김 위원장이 조전을 보낸 것은 노 전 대통령이 2007년 김 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10·4 남북정상선언을 발표하는 등 남북한 협력에 기여한 점을 평가했기 때문으로도 해석된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지난 2001년 3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별세 때 보낸 조전에선 “북남 사이의 화해와 협력, 민족대단결과 통일애국사업에 기여한 정주영 선생”이라고 표현했으나 이번 조전에선 이런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박희태대표 등 한나라 지도부 조문 못하고 돌아가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박희태대표 등 한나라 지도부 조문 못하고 돌아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3일째인 25일 빈소가 차려진 경남 김해 봉하마을은 전날의 어수선한 분위기와 달리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은 낮 최고 29도까지 오르는 뙤약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분향소 입구부터 길게 늘어서 차례를 기다렸다. 장의위원회측은 “이날 20만명 넘게 다녀가는 등 3일간 40만명을 넘었다.”고 밝혔다. 경남 통영시에서 왔다는 제천모(39) 목사는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 “북한이 조전을 보내 놓고, 한편으론 핵실험을 했다.”며 “나라가 상중인데 어이가 없다는 말밖에 못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 조문, 불미스러운 상황 우려 장의위원회 고문을 맡은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이날 봉하마을 임시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조문은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이 여기에 있기 때문에 당연히 여기에서 조문하는 것이 맞지만 밖의 상황이 장례위가 통제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어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며 “이 대통령은 영결식날 서울에서 조문을 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서울에서 영결식을 하게 된 것은 장례가 국민장으로 됐고, 추모객의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사저에는 종일 무거운 침묵만 흐른 것으로 전해졌다. 사저에는 가족과 가까운 친척 외에는 접근이 철저하게 차단됐다. 간간이 사저와 빈소를 오가는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와 딸 정연씨는 눈이 퉁퉁 부은 표정이었다. 그래도 상주 건호씨는 분향소 설치와 제례의식 등을 거행하며 비교적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한 측근은 “유가족이 모두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심한 충격을 받은 데다 자책감도 상당한 실정이지만 어떻게 해서든 장례는 깔끔하게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실상 악으로 버티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은 벌써 장례 후에 유가족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다른 측근은 “노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형 건평씨가 구속되자 그때부터 많이 우울해했고, 건강도 눈에 띄게 안 좋아졌다.”며 “유서에 나온 ‘글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다.’는 말을 그때도 하셨다.”고 밝혔다.이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이던 10여년 전 김해영농경영회장 신분으로 처음 만났다고 말했다. ●조문객들, 부엉이바위도 찾아 봉하마을 안내센터 인근에 있던 방명록 작성 장소는 조문객들이 급증하자 분향소 인근과 행렬 주변 곳곳에 마련됐다. 부산에서 왔다는 전종찬(55·자영업)씨는 “큰형님을 잃은 것 같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오전에 (문상)하고 출근하려고 아침 일찍 찾아 왔다.”며 “1시간 이상 줄서 기다린 끝에 조문하고 돌아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흔적을 찾기 위한 듯 부엉이바위를 찾는 조문객들도 부쩍 늘었다. 현장을 찾은 추목객들이 간간이 눈물을 훔쳤으며,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찾았던 담배를 두기도 했다. 일부는 사진을 찍거나 손으로 바위 등을 가리키는 등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자갈치 아줌마, 민주열사 부모도 조문 2002년 대선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찬조연설을 맡은 부산 자갈치시장 이일순(65)씨도 이날 모습을 드러냈다. 대통령 당선 일등공신으로 불린 이씨는 영정에 국화꽃 한송이를 바쳤다. 그는 “지난 23일 시장에서 장사하고 있는데 주변 상인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면서 “처음에는 거짓말로 넘겼지만 뉴스를 보고 사실을 확인한 뒤 충격으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고 말했다. 1989년 당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평양 ‘세계 청년학생 축전’에 참가했던 임수경씨도 빈소를 찾았다. 임씨는 “노 전 대통령이 종로구에서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을 때 인연이 좀 있고, 최근엔 제가 해인사에 머물고 있는데 대통령 내외분이 위로해 주셨다.”고 회고했다. 고(故)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인 박정기씨와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도 빈소를 찾았다. ●자원봉사자 사흘째 조문객 지원 자원봉사자와 마을주민 등 500여명은 조문객을 맞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황순선(62·여·김해시 진영읍)씨는 “엄청난 양의 음식을 해 내느라 힘들지만 존경하는 분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러 오는 문상객들에게 밥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려고 이렇게 힘을 보태고 있다.”고 말했다. 김원웅 전 의원은 이날 노 전 대통령의 빈소에 도착하기 직전 모친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발길을 돌리지 않고 노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김 전 의원은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은 채 차분하게 조문을 끝냈고, 이같은 소식을 알게 된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김 전 의원을 배웅하며 위로의 뜻을 깍듯하게 전했다. 한편 박희태 대표를 비롯, 정몽준·허태열·공성진·박순자 최고위원 등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날 낮 노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봉하마을을 찾았으나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조문을 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김해 김정한 김상화 유대근기자 jhkim@seoul.co.kr
  • 이대통령 “애석하고 비통”

    이명박 대통령은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것과 관련, “참으로 믿기 어렵다. 애석하고 비통한 일”이라고 애도의 뜻을 표시했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한·체코 정상회담을 갖기 직전 긴급수석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이같이 애도의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서거 사실을 보고 받고 노 전 대통령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하면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어긋남이 없도록 정중하게 모시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무비유환’ 지역축제 예고된 사고

    전국 자치단체에서 해마다 900개가 넘는 축제가 열리고 있으나 안전사고 관리지침 하나 없이 사고가 터지면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행태가 되풀이되고 있다. 축제는 보통 민간인들로 이뤄진 추진위원회가 주관하고 시·군이 예산을 지원하는 이원체제로 운영돼 책임 소재마저 불분명하다. 2012년에 세계박람회를 치르는 전남 여수시에서는 지난 2~3일 거북선대축제 때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하는 사고로 10여명이 경찰조사를 받았다. 사고는 1시간 만에 잇따라 터졌다. 3일 오후 7시45분쯤 여수경찰서 앞에서 가장행렬에 나섰던 기수 채모(61)씨가 폭죽소리에 놀라 날뛰던 말에서 떨어져 이틀 뒤 숨졌다. 다른 기수 1명도 찰과상을 입었다. 앞서 이날 오후 6시40분쯤 자산공원에서 봉수대 재현 행사를 준비하던 시청 공무원 2명이 취급 부주의로 연막탄이 폭발해 2도 화상을 입었다. 2일에는 오동도 앞에서 여수 국제범선축제에 참가해 레이스를 하던 홍모(57)씨가 바다에 빠져 숨졌다. 거북선대축제는 기존 4개 축제가 합쳐지면서 행사별 민간인 추진위원회가 따로 구성됐다. 이러다 보니 축제에서 통합조정 능력이 떨어졌다. 4개 추진위원회의 위원 21명은 여수시장이 임명했다. 이번에 사고가 난 통제영 길놀이 행사를 주관한 진남제전추진위원들은 “말이 길놀이에 온 사실을 행사 당일에야 알았다.”고 주장했다. 박기수(75) 진남제전추진위원장은 “여수시에서 진남제전추진위원회로 보내준 예산은 2억 2229만원이었으나, 이 가운데 여수시가 길놀이 행사경비 7260만원을 그대로 넘겨 달라고 요구해 그렇게 해줬다.”며 추진위가 사고와 무관함을 강조했다. 그러나 시 관계자는 “여수시는 행사지원을 하고 진행방법 등은 추진위원회 쪽에서 알아서 했다.”고 말했다. 여수경찰서는 사고 책임소재를 가리기 위해 여수시청 담당공무원과 진남제전추진위원, 말 이벤트 회사 관계자들을 조사했다. 경찰 관계자는 “축제 안전대책 가운데 과실 부분을 찾고 있으나 서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폭죽은 여수시에서 터뜨린 것 같다.”고 답변했다. 일부 시민들은 “여수시나 행사 주최측이 안전사고 예방대책 마련에 소홀한 채 이벤트에만 열을 올리다 보니 사고가 잇따르는 것 아니냐.”고 싸잡아 비난했다. 여수시민협은 성명서에서 “수사당국은 엄정한 수사로 진상을 규명하고 여수시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축제 행정을 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가족들은 축제추진위원회가 아닌 여수시를 협상 당사자로 해 추모비 건립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전남도 22개 시·군에서 계획 중인 축제는 34개다. 여수시는 앞으로 국제청소년축제 등 7개 행사를 치른다. 행정안전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전국에서 개최되는 지역 축제를 각각 942개와 921개로 다르게 파악했다. 문화부는 지역축제에 연간 70억원을 지원하나 안전관리 지침도 없고 사고 현황도 파악되지 않는다고 실토했다. 여수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軍의문사 가해자·유족 첫 화해

    군 복무 중 구타와 가혹행위를 못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남현진 이병의 유족과 가해 부대원들이 18년 만에 만나 화해의 자리를 가졌다.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만)는 18일 “진실위 대회의실에서 지난 12일 남 이병의 유가족들과 당시 가해 부대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화해의 자리를 가졌다.”고 밝혔다. 2000년 의문사위에서 조사가 시작된 이후 진행된 80여건의 사건 중 가해자들이 유족에게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29일 용산참사 100일째 “남은 건 가슴속 상처뿐”

    지난 1월 20일 발생한 ‘용산 참사’가 29일로 100일째를 맞지만 참사의 후유증은 치유되지 않고 있다. 숨진 철거민 5명의 유가족들은 사망원인을 믿을 수 없다며 장례를 미루고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 시위 참가자들의 명예회복과 국가배상, 의료지원금 등을 뼈대로 한 ‘용산특별법’을 발의했지만 이 가운데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한 건만 국회 소위를 통과한 상태다. ●“사망원인 밝혀라” 장례도 미뤄 이와 관련해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는 28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특검제 도입을 촉구했다. 29일에는 용산 참사 100일 추모제를 가진다. 이런 가운데 희생자들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측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이달 말까지 유가족측에 병원을 비워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딱한 사정을 보면서 강제로 나가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병원비만도 2억 5000만원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억 5000만원 병원비 해결도 막막 한편 용산 참사 때 목숨을 잃은 철거민 이성수(50)씨의 아내 권명숙(47)씨는 그동안 남편의 장례식을 치르지 못한 죄책감에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철거민들이 망루 안에서 뿌린 시너로 화재가 났다고 결론내린 검찰의 발표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권씨는 “남편이 불에 타 죽었다는데 어떻게 지갑은 깨끗하게 남을 수가 있느냐.”면서 “유품인 지갑을 경찰이 돌려주지 않는 것도 이해가 안 된다.”며 가슴을 쳤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수유동 관광버스 브레이크 사고 7명 사망·5명 부상

    수유동 관광버스 브레이크 사고 7명 사망·5명 부상

    지난 23일 밤 서울 수유동에서 12명의 사상자를 낸 대형 교통사고는 관광버스 운전기사가 브레이크 이상을 감지하고도 무리하게 운행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를 낸 버스 운전기사 이모(61)씨는 24일 경찰조사에서 “버스가 빠른 속도로 내려오다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아 중심을 잡을 수 없었고, 버스를 멈출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전날 밤 10시쯤 강북구 수유동의 북한산 중턱에 있는 아카데미하우스에 외국인 관광객들을 내려놓고 차고지로 향했다. 출발 뒤 끽끽거리는 소리가 세 차례 나는 등 브레이크 이상 징후를 감지했지만 무시했다. 네 번째 이상 징후를 감지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당시 차량 속도는 시속 70∼80㎞였다고 이씨는 경찰에서 진술했다. 이씨는 차량을 멈추려고 반대편 도로가에 주차된 렉스턴 차량을 들이받은 뒤 진행 방향 도로변에 세워져 있던 다마스 차량을 다시 들이받았으나 가속이 붙은 버스를 세울 수는 없었다. 이 버스는 이어 삼거리 횡단보도 부근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이묘숙(45·여)씨의 아반떼XD 차량을 들이받았다. 이 충격으로 아반떼XD 위에 올라탄 버스는 그 상태로 160m가량 내달린 뒤 옵티마, 싼타페, 카니발, 렉서스, EF쏘나타 등 6대를 들이받고서야 멈췄다. 9중 추돌이었다. 이 사고로 아반떼 차량에 타고 있던 운전자 이씨 등 7명은 모두 숨졌고, 다른 차량에 있던 5명도 중경상을 입었다. 사망자들은 20년 전부터 친목모임을 가져온 교육공무원들로, 사고가 발생한 날 오후 7시쯤 수유동에 있는 S음식점에서 만나 저녁식사 모임을 가진 뒤 차를 마시러 인근 찻집으로 옮기기 위해 승용차 한 대에 동승해 수유동 4·19탑 주변을 지나던 중이었다. 모임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1명은 몸이 좋지 않아 자신이 몰고 온 승용차를 타고 먼저 귀가하는 바람에 참변을 피했다. 경찰은 “이씨가 출발 뒤 브레이크 이상을 알았으면서도 운행한 점, 첫 충돌 뒤 핸드브레이크를 당기고 저속기어로 감속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등에 비춰 과실이 중하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이씨에 대해 교통사고특례법상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한편 사망자들의 시신은 안치된 서울 수유동의 대한병원과 안암동의 고대병원에는 비보를 듣고 달려온 유가족들의 오열로 주위를 숙연케 했다. 고 김은경씨의 형부는 “이달 28일 결혼 20주년을 앞두고 남편과 처음으로 해외여행 간다고 소녀처럼 좋아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고 전수애씨의 남편 강신규(56)씨는 “군에 있는 아들이 충격을 받을까봐 말도 못했다.”면서 “시내 한복판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고 울먹였다. 고 곽향숙씨의 남편(49)은 “어젯밤 줄곧 전화를 받지 않아 뜬눈으로 밤을 새웠는데 사망소식을 들었다. 큰아들이 올 7월 제대한다며 좋아했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고 이묘숙(45)씨의 사연은 주위를 숙연케 했다. 이씨는 미혼으로 3남1녀 중 장녀다. 혼자 벌어 남동생들을 공부시키고 장가도 보냈다. 노부모도 지극 정성으로 모셨다고 한다. 남동생 원식(43)씨는 “지난 달에 어머니의 칠순 잔치를 하려다 8월이 길하다 해서 뒤로 미뤘는데….”라며 목놓아 울었다. 다음은 사망자 명단이다. ▲하해용(57·여·월곡초등학교 행정실) ▲곽향숙(45·여·상경중 행정실) ▲이묘숙(44·여·전동초 행정실) ▲전수애(49·여·배봉초 행정실) ▲김은경(43·여·성북교육청 근무) ▲박홍순(48·여·창동중 행정실) ▲최문숙(52·여·수송초 행정실) 오달란 박성국기자 dallan@seoul.co.kr
  • 용산참사 100일 눈앞인데… 유족들 “대정부 전면투쟁”

    ‘용산 참사’가 발생한 지 3개월이 넘었지만 숨진 철거민 5명에 대한 장례식이 치러지지 않는 등 정부와 유가족 간의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유가족들은 정부의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뤄질 때까지 장례식을 치르지 않겠다는 입장인 반면 정부는 불법 시위로 규정해 일체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유가족들과 용산철거민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는 22일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의 답변을 기다렸지만 반응이 없다.”면서 “정부를 상대로 전면 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오는 29일 ‘용산 참사 100일 추모대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대정부 투쟁을 벌일 계획이다.범대위는 이와 함께 3억원가량의 장례식장 비용 등을 마련하기 위해 23~24일 서울 서대문구 추계예술대학교에서 ‘유가족 돕기 콘서트’를 열기로 했다. 유지혜 유대근기자dynamic@seoul.co.kr
  • 단재 가족의 끝나지 않은 슬픔

    단재 가족의 끝나지 않은 슬픔

    ‘신채호(申菜浩), 서울시 종로구 공평동 56번지, 1880년 출생, 1936년 여순감옥 사망.’ 단재 신채호 선생의 며느리 이덕남(65)씨는 13일 시아버지 앞으로 발급된 가족관계등록부 증명서를 마냥 쓰다듬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맞은 이날, 단재 선생은 97년만에 대한민국 국적을 갖게 됐다. 그러나 이씨의 표정은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100여년만에 회복된 가족관계등록부에 단재 선생의 아내와 자식은 없었던 것. 아내인 김자혜 여사는 물론 아들(수범씨·91년 작고)을 비롯해 며느리인 자신과 손자, 손녀가 모두 누락된 것이다. 이씨는 “반쪽뿐인 가족관계등록부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씨는 1967년 당시 23살 나이로 시집올 때만 해도 남편이 외가에 입적된 ‘사생자’인 줄 몰랐다고 한다. 슬하에 딸과 아들을 낳은 후 1972년 뒤늦게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 동사무소에 갔다가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됐다 법무부는 지난 2월부터 시행된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해 독립유공자의 직계비속이나 법정대리인에게 인지 청구를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30년 넘게 시아버지의 국적 회복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온 이씨는 이번 주에 친자 인지소송을 낼 예정이다. 그러나 첩첩산중이다. 단재 선생이 독신으로 사망한 것으로 돼 있는데다 광복 이전에 사망한 시어머니의 가족관계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마땅치 않아서다. 이씨는 “정부가 이제라도 시아버지의 호적을 만들어 준 점은 감사하지만 시어머니도 유족으로 인정 못받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모른 척했던 정치권과, 법률 논리만을 들이대며 냉담했던 법원이 이번엔 독립운동가들의 인륜을 이어주길 바랄 뿐이다.”며 애끓는 심정을 드러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특별법이 시행돼 호적 없이 사망한 경우에도 가족관계등록부를 창설할 수 있지만 사인간 관계까지 정부가 해결할 수는 없다.”면서 “유가족들에게 혈족 입증자료를 제공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화장장 모자라… 떠밀린 ‘원정火葬’

    서울·경기지역 등 수도권의 화장(火葬)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가 나름대로 대책을 세우지만 역부족이다. 매장보다는 화장을 선호하는 추세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화장률이 매장(埋葬)률을 뛰어넘은 지 오래됐고, 지난해는 어림잡아 화장률이 60%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다른 지역으로 옮겨 다니는 원정 화장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별로 화장 비용이 천차만별이어서 거주지에서 화장할 때보다 3~20배가량 더 많이 든다. 가뜩이나 힘든 살림에 화장장을 찾는 유가족들의 고통은 더할 수밖에 없다.30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 18%대에 머물던 화장률은 10년 동안 꾸준히 증가해 2001년 38.3%를 보이더니 4년 만인 2005년에는 52.6%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매장률을 앞질렀다. 현재 전국에 49곳의 화장장(화장로 240기)이 있다. 하지만 서울과 경기지역 등 대도시의 화장장은 거의 매일 예약률 100%를 기록하고 있다.서울시 노원구에 사는 직장인 안모(26·여)씨도 부족한 화장터로 곤혹을 치른 케이스다. 안씨의 아버지는 지난달 말 위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화장장을 결정한 안씨 가족은 경기도 고양시 벽제 승화원에서 화장을 하려 했지만 이미 예약이 꽉 차 인근 지역의 화장장을 이용해야 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인천 화장장도 예약을 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고 수원·성남 화장장은 100만원의 이용료를 내야 했다. 9만원만 내면 되는 벽제 화장장 이용료보다 10배 이상 비싼 가격이다. 결국 수소문 끝에 30만원만 내면 되는 충북 청주까지 내려가서 아버지를 모셨다. 안씨는 “돈은 돈대로 들면서 고인은 이래저래 끌려 다녀야 해 비통한 심정을 가눌 수가 없다.”며 하소연했다.화장 시설 이용료의 경우 지자체별로 차이가 있지만 타 지역 주민이 이용할 경우 지역 주민보다 최소 3배에서 최대 20배의 돈을 더 주고 이용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장례지도사 김모(42)씨는 “타 지역에서 화장을 하는 경우는 50%대에 이른다.”면서 “화장 예약을 기다리느라 4일장을 치르는 가정도 종종 있다.”고 귀띔했다.그렇다고 정부가 마냥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지난해 5월부터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을 정비해 지자체별로 화장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고 지역주민과 타 지역주민과의 화장 요금을 차등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기피시설’이라는 이유로 지역 주민들과 마찰을 빚어 시행은 더딘 상태다. 보건복지부 노인지원과 고덕기 사무관은 “화장에 대한 인식이 개선돼 서울 원지동 신축 화장장의 경우 주민과 마찰 없이 토지 보상작업이 70% 이상 진행됐다.”면서 “일부 지연되고 있는 지역도 큰 틀에서 합의가 잘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車앞에서 갑자기 쾅… “로켓 공격인줄…”

    “로켓 공격이다… 움직여. 움직여. 빨리 그냥 가.” 예멘에 파견된 정부 신속대응팀과 유가족 탑승 차량이 폭탄테러 공격을 받은 것은 18일 오전 8시40분(한국시간 오후 2시40분). 예멘 수도 사나 시내를 통과하던 신속대응팀과 유가족 탑승자들이 ‘쾅’ 하는 소리를 로켓 공격으로 오인할 정도로 폭발음은 엄청났다. 도로에는 돌조각 파편이 흩어지고 뿌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사방에서 아랍어로 된 고함소리가 울려퍼졌다. 도로는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변했다. 예멘 주재 한국대사관 등에 따르면 피습 장소는 사나공항에서 10여㎞ 떨어진 시내 한복판이었다. 유족과 정부대응팀이 탑승한 차량 2대는 예멘 경찰차 1대의 안내를 받으며 숙소였던 샤흐란호텔을 떠나 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차량 3대는 나란히 줄지어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20분 뒤 시내로 접어들면서 차량 속도가 떨어졌다. 이 순간 맨 앞에 있던 예멘 경찰차와 뒤따르던 차량 사이에서 큰 폭발음이 울렸다. 이 충격으로 예멘 경찰차를 뒤따라가던 차량의 유리창이 깨지고 범퍼가 찌그러졌다. 다행히 별다른 인명 피해는 없었다. 피습 당시 선두 차량에는 현지 경찰들이 탑승했다. 두 번째 차량에는 외교통상부의 이기철 심의관과 장대교 서기관, 석유공사 김태욱 대리, 마경찬 여행사 사장 등이 경찰차를 뒤따라 이동 중이었다. 세 번째 차량에는 기사와 유족 3명, 유족을 인솔하던 현지 대사관 직원 이명광씨 등 5명이 타고 있었다. 장대교 서기관은 “로켓 공격인 줄 알았다. 현장에 계속 있다가는 또 다른 로켓의 표적이 될수 있다는 생각에 딴 곳으로 이동하자고 소리쳤다.”고 긴박했던 순간을 전했다. 이기철 심의관은 “갑자기 차량이 크게 출렁거리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심의관은 “(테러범의 것으로 보이는) 살점이 두 번째 차량에 붙어 있었고 핏자국도 있었다.”고 말했다. 테러범이 1초만 늦게 차량 쪽으로 뛰어들었다면 인명 피해가 컸을 것이라는 게 우리측 탑승자들의 반응이다. 우리 대응팀과 현지 경찰은 차량 표면에서 발견된 혈흔으로 볼 때 자살테러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이날 AP통신 등에 따르면 한국 차량들이 사나의 알다일라미 군사기지 밖으로 나간 직후 테러가 발생했다고 전하고 있다. 한국 정부대응팀을 겨냥한 것인지 경찰차가 호위하는 모습을 보고 예멘 고위인사로 오인하고 폭탄 테러를 시도한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정황상 한국 정부대응팀을 겨냥했을 가능성이 높다. 유가족들은 피습 이후 현장에서 빨리 벗어나는 게 좋다고 보고 사나공항으로 급히 이동, 오전 10시(현지시간) 두바이를 거쳐 한국으로 귀국하는 항공편에 탑승했다. 곽원호 주 예멘 한국대사와 신속대응팀은 현지 내무부를 방문, 정확한 사고 경위를 논의했다. 지난 15일 한국인 관광객 4명을 살해한 폭탄테러 용의자의 이름도 여전히 특정되지 않고 있다. AFP통신은 알리 모센 알아마드로, 로이터통신은 압델 라흐만 메흐디 알아즈바리라고 보도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예멘테러 정부 대응팀도 피습

    예멘테러 정부 대응팀도 피습

    예멘 한국인 관광객 폭탄테러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현지에 파견된 정부 신속대응팀과 유가족이 탄 차량 2대가 18일 오전 8시40분(한국시간 오후 2시40분) 공항으로 이동하던 중 자살폭탄 테러로 보이는 공격을 받았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잇따른 폭탄테러가 발생하면서 알 카에다가 한국인을 겨냥한 것이 확실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굳어지고 있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예멘의 한 보안관리의 말을 인용, “한국 정부 신속대응팀과 유가족 일행을 태운 차량을 노린 공격은 자살폭탄 테러였다.”고 보도했다. 신속대응팀과 유가족 등 7명이 예멘측 경찰 순찰차를 앞세워 차량 2대에 나눠 타고 사나공항에 도착하기 10분 전 갑자기 폭탄이 터져 차량 유리창이 파손됐다. 테러범은 첫 번째 차량과 두 번째 차량 사이로 갑자기 뛰쳐나왔다. 폭탄이 터지면서 테러범은 현장에서 사망했다. 예멘의 한 관리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사건 현장에서 20세 학생의 신분증 조각을 발견했으며 여기에서 나온 주소를 바탕으로 수사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차에 혈흔이 묻은 것으로 보아 자살폭탄 테러 가능성이 있지만 한국인을 겨냥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공항 도착 직전 폭탄이 터진 점 등으로 미뤄 볼 때 신속대응팀과 유가족들의 동선(動線)을 미리 파악한 뒤 폭탄테러를 감행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에 따라 앞으로 알 카에다의 테러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미경 나길회기자 chaplin7@seoul.co.kr
  • 신채호 선생 가족등록부 생긴다

    단재 신채호 선생 등 일제 강점기에 호적 등록을 거부해 무호적·무국적 상태였던 독립운동가들이 가족관계등록부(옛 호적부)를 갖게 됐다. 서울가정법원은 18일 신채호 선생 등 독립운동가 62명에 대해 가족관계등록부 창설을 허가하도록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국가보훈처가 입법예고한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지난달부터 시행된 데 따른 것이다. 개정법은 ‘독립유공자 가운데 호적 없이 사망한 경우 다른 법령에도 불구하고 대법원 규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가족관계등록 창설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이에 지난 5일 신채호 선생 등에 대해 가족관계등록 창설 허가신청서를 제출했으며, 가정법원은 지난 13일 이를 받아들였다. 신채호 선생의 등록기준지는 서울 종로구 공평동이며, 함께 가족관계등록부를 창설하게 된 독립운동가는 서일(북로군정서 총재)·안무(국민회군 장군)·윤기섭(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총장) 선생 등이다. 신채호 선생은 일제가 1912년 ‘조선민사령’을 제정해 호적을 만들 때 호적 등재를 거부해 사실상 무국적자가 됐다. 우리나라에는 별도의 국적부가 없기 때문에 호적이 곧 국적에 대한 증명부 역할을 한다. 이에 신채호 선생은 광복 뒤 유골로 귀향했을 때에도 무국적자라는 이유로 매장 허가가 나지 않아 유가족들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신채호 선생처럼 일제 호적에 오르는 것을 거부하거나 독립운동을 하느라 호적을 취득하지 못한 독립유공자는 300여명으로 추산된다. 개정된 법률은 또 가족관계 등록 창설이 된 독립유공자의 직계비속이나 법정대리인으로 하여금 인지 청구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독립운동가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줌으로써 그동안 상속, 국가유공자 혜택 등에 있어 받아왔던 불이익을 현실적으로 해소해주겠다는 취지다. 가정법원 관계자는 “호적 등재 거부는 엄혹한 일제에 대한 저항 정신의 한 표상”이라며 “대한민국 건국 이후 무적 상태였던 독립유공자의 가족관계등록부 창설을 허가, 그 분들의 희생과 애국정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그럴리가… 아닐거야” 부정하다 끝내 실신

    “뭐…뭐라고요? 죽…죽었다고요? 누가 말입니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당장이라도 환하게 웃으며 나타날 것만 같은데….” 16일 새벽 예멘에서 날아든 비보에 한국인 사망자 유가족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충격에 휩싸인 채 오열했다. 통곡과 ‘아닐거야.’라며 부정을 거듭하다 끝내 실신하기도 했다. 아내 김인혜(64·서울 양천구 목동)씨의 사망 소식을 접한 남편 윤구(64·문화일보 전 논설주간)씨는 이날 “인천공항에서 ‘잘 다녀오라.’고 전송한 게 마지막이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밤새 잠 한숨 못 잤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생전에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는 김씨집 거실에는 김씨가 직접 그린 추상화가 2점 걸려 있었다. 그는 평소 문화유적에도 관심이 많았다. 이집트, 이라크, 요르단 등 중동의 여러 지역을 두루 다녔다. 예멘은 친구들의 권유로 함께 가게 됐다. 윤씨는 “예순이 넘으면 평상심을 지녀 감정 기복이 없다는데, 아내의 죽음 앞에 한없이 무너질 뿐이다. 충격이 가시질 않아 아직 형님 등 다른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연락조차 못했다.”면서 목 놓아 울었다. 언론 보도를 접하고 달려온 김씨의 여동생도 “너무 많이 놀라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서 눈물만 훔쳤다. 주용철(59·서울 강동구 암사동)·신혜윤(55)씨 부부 사망소식은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주씨의 동생 용수(56·인천 부평구)씨는 “지금이라도 당장 ‘용수야.’하고 친근하게 부르며 나타나실 것 같은데, 어떻게 형님의 죽음을 믿을 수 있겠느냐.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서 굵은 눈물 방울을 떨어뜨렸다. 주씨 부부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1978년 6월 백년가약을 맺었다. 자녀가 없어 부부간 의지하는 게 더 컸고, 애정도 각별했다. 여유가 있던 부부는 평소에도 둘만의 여행을 자주 다녔다. 20년 넘게 주씨 부부를 알고 지낸 유미선씨는 “두 분은 금슬도 좋을뿐더러 어려운 이들을 위해 봉사활동도 열심이었는데, 이렇게 좋으신 분들이 가시다니….”라며 애석해했다. 잠결에 남편 박봉간(70·서울 강남구 삼성동)씨의 사망 소식을 접한 아내 이선자씨는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라며 연방 허공으로 손을 휘저으며 남편의 죽음을 부인하다 그대로 실신하기도 했다. 숨진 박씨는 광주서중·광주일고·전남대 상대를 졸업하고 광주 MBC 상무이사와 방송영상진흥원장을 역임했다. 독실한 천주교인이다. 은퇴 후 부인과 함께 성지 순례를 자주 다녔는데, 이번에는 혼자 갔다. 박씨의 동창인 정구선씨는 “부부의 사랑이 정말 돈독했는데 혼자만 떠난 여행에서 친구가 죽었으니, 그 아내의 심정이야 오죽하겠느냐.”면서 안타까워했다. 김승훈 이재연 오달란기자 hunnam@seoul.co.kr
  • 남진·인순이·박상철 3인, ‘故이창용 회고록’

    남진·인순이·박상철 3인, ‘故이창용 회고록’

    못다핀 트로트 가수의 열정을 간직한 채 세상을 떠난 故 이창용(38)을 애도하는 물결이 일고 있다. 지난 12일 경기도 일산 백병원 장례식장 특5호실에 고인의 빈소가 마련됐으며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한 동료 트로트 가수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다음은 가수 조문객들이 털어놓은 생전 故 이창용에 대한 회고록. ◇ 박상철 “고인, 밝은 가수” 가장 먼저 빈소를 찾은 가수 박상철은 동료가수를 잃은 착잡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故 이창용 보다 2살 위로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 서로 밀고 끌어 주었던 트로트계 동료 사이인 박상철은 “갑작스럽게 동료 가수를 잃게 돼 너무 슬프다.”고 심정을 털어 놓았다. 고인에 대해 “밝은 성격이었다.”로 밝힌 박상철은 “하늘나라에서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행복하고 편안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 인순이 “고인, 실력있는 가수” 침통한 표정으로 취재진 앞에 선 인순이는 “아까운 후배 하나를 잃었다.”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12일 오후 8시 경 고인의 빈소를 방문한 인순이는 약 30분가량 유족들을 찾아뵌 후 조용히 자리를 떠나려 했다. 고인에 대한 기억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인순이는 “실력 있는 가수였다.”며 평소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으나 주변 모두가 ‘좋은 사람’이라고 평했던 가수다.”라고 전했다. 이어 인순이는 “부디 하늘나라에서 편안하게 잠들길 기도한다.”며 빈소를 떠났다. ◇ 남진 “고인, 스마트한 가수” 가수 남진은 故 이창용의 빈소를 찾아 “고인은 스마트한 가수”라며 생전 기억을 털어놨다. 12일 오후 9시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경기도 일산 백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남진은 유가족을 위로한 후 자리를 뜨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고 말문을 연 남진은 트로트 가수 선배로서 바라본 고인에 대해 “스마트한 가수였다.”고 회상했다. ”故 이창용은 노래만 잘 하는 가수가 아니었다.”고 말을 이은 남진은 “고인은 가창력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판단력이 빠르고 야무진 친구로 정평이 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유가족들이 많이 힘들텐데 잘 마무리 됐으면 좋겠다.”고 주변인을 격려하며 자리를 떠났다. 한편 지난 12일 고인의 빈소에는 트로트 가수 동료인 박상철이 첫 조문했으며 이어 가수 인순이, 진시몬, 남진 등이 방문했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 / 사진 = 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현희-다구치가족 만남] “KAL기 유가족 北테러 인정땐 만날 용의”

    [김현희-다구치가족 만남] “KAL기 유가족 北테러 인정땐 만날 용의”

    11일 김현희씨와 다구치 야에코 가족의 90분간 비공개 면담은 시종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이들은 서로에 대한 근황과 안부는 물론 다구치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김씨는 첫 만남에서 다구치의 장남 이즈카 고이치로의 손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아 각별함을 더해 줬다. 기자 회견장에 들어설 때 이들은 팔짱을 끼고 입장해 다정한 모자와 같은 느낌을 줬다. 고이치로 역시 회견에 앞서 짤막한 소회를 말하면서 “김씨가 자신을 ‘한국에 있는 양어머니’로 생각하라고 했다.”며 친밀감과 고마움을 나타냈다. 면담은 주로 다구치의 오빠 이즈카 시게오와 고이치로가 다구치에 대해 묻고, 김씨가 답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이 과정에서 김씨는 북한에서 친자매처럼 지냈던 다구치가 1978년 6월 북한으로 납치된 이후 살아온 인생 역정 등을 비교적 소상하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고이치로가 한 살일 때 어머니가 납북돼 모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외삼촌인 시게오의 양자로 자란 점에 대해 무척 안타까워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와 시게오는 간단한 선물도 주고받았다. 시게오는 다구치가 납치된 1970년대의 일본 가요 등을 모은 음악 CD 2장과 치즈 케이크, 손수건을 전달했다. 비공개 면담에서는 ‘어머니가 납치됐을 때 저는 한 살이었다’는 제목의 만화책과 시게오가 쓴 책 ‘여동생에게’ 등도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비공객 면담 후 20여분간 진행된 공동 기자회견에서 질문 대부분이 김씨에게 집중됐다. 다음은 김씨와의 일문일답. →북한 정부가 납치 문제를 명확히 밝히게 할 수단이 있나. -북한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구를 하면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 2002년에 5명이 돌아오기도 했으니까 북한에서는 죽은 사람이 살아있기도 하니까 계속 노력해야 한다. →만나고 싶다는 내용의 다구치 가족들이 보낸 편지를 받아 봤는가. -은둔생활 속에 편지를 받지 못했다. 녹화된 TV 내용을 통해 다구치 가족이 만나기를 희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만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1997년 이후 12년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는. -사건 이후 유가족들의 아픈 마음을 생각하며 조용하게 지냈다. →KAL기 폭파사고 수사결과 발표 진위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유가족들을 만날 의향은. -97년 12월 수기 인세를 유족들에게 전하고 만난 자리에서 많이 울었다. 유가족들이 북한의 테러임을 인정한다면 언제든지 다시 만날 용의가 있다. →또 다른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 요코다 메구미 소식은. -제 공작원 동지 김숙희에게 일본어를 가르쳤고, 87년 남조선 사람과 결혼해 딸을 낳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메구미가 사망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 다구치 장남 고이치로와 오빠 시게오는 “김씨를 만난 뒤 피랍자들이 모두 생존해 있다는 것을 믿게 됐다.”며 “앞으로 한·일간 피랍자들에 대해 구체적인 대책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박정훈기자 jhkim@seoul.co.kr
  • 김현희 “KAL기 유가족 北테러 인정땐 만날 용의”

    11일 김현희씨와 다구치 야에코 가족의 90분간 비공개 면담은 시종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이들은 서로에 대한 근황과 안부는 물론 다구치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김씨는 다구치의 장남 이즈카 고이치로의 손을 꼭 붙잡아 각별함을 더해 줬다. 기자 회견장에 들어설 때 이들은 팔짱을 끼고 입장해 다정한 모자와 같은 느낌을 줬다. 고이치로 역시 회견에 앞서 짤막한 소회를 말하면서 “김씨가 자신을 ‘한국에 있는 양어머니’로 생각하라고 했다.”며 친밀감과 고마움을 나타냈다. 면담은 주로 다구치의 오빠 이즈카 시게오와 고이치로가 다구치에 대해 묻고, 김씨가 답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북한에서 친자매처럼 지냈던 다구치가 1978년 6월 북한으로 납치된 이후 살아온 인생 역정 등을 비교적 소상하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고이치로가 한 살일 때 어머니가 납북돼 모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외삼촌인 시게오의 양자로 자란 점에 대해 무척 안타까워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와 시게오는 간단한 선물도 주고받았다. 시게오는 다구치가 납치된 1970년대의 일본 가요 등을 모은 음악 CD 2장과 치즈 케이크, 손수건을 전달했다. 비공개 면담에서는 ‘어머니가 납치됐을 때 저는 한 살이었다’는 제목의 만화책과 시게오가 쓴 책 ‘여동생에게’ 등도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비공개 면담 후 20여분간 진행된 공동기자회견은 대부분 김씨에게 질문이 집중됐다. 다음은 김씨와의 일문일답. →다구치 가족들이 만나 보고 싶다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를 받아 봤는가. -은둔생활 속에 편지를 받지 못했다. 녹화된 TV 내용을 통해 다구치 가족이 만나기를 희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만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1997년 이후 12년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는. -사건 이후 유가족들의 아픈 마음을 생각하며 조용하게 지냈다. →KAL기 폭파사고 수사결과 발표 진위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유가족들을 만날 의향은. -97년 12월 수기 인세를 유족들에게 전하고 만난 자리에서 많이 울었다. 유가족들이 북한의 테러임을 인정한다면 언제든지 다시 만날 용의가 있다. →또 다른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 요쿠다 메구미 소식은. -제 공작원 동지인 김숙희에게 일본어를 가르쳤고, 87년 남조선 사람과 결혼해 딸을 낳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메구미가 사망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 다구치 장남 고이치로와 오빠 시게오는 “김씨를 만난 뒤 피랍자들이 모두 생존해 있다는 것을 믿게 됐다.”며 “앞으로 한·일간 피랍자들에 대해 구체적인 대책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 / 서울신문 부산 김정한 박정훈기자 jhkim@seoul.co.kr 영상 / 멀티미디어기자협회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한달째 장례 안치른 용산 철거민 유가족

    지난달 20일 발생한 ‘용산 화재 참사’가 한 달을 넘기고 있지만 당시 숨진 철거민 5명의 유가족들은 장례식을 치르지 않고 있다. 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는 항의의 표시다.23일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유가족들은 “화재 원인과 사망 장소, 청와대 이메일 홍보 지침 등 이번 사건에서 불거진 모든 의혹을 시원하게 풀어 달라.”고 호소했다.고(故) 이상림씨의 며느리 정영신(37)씨는 “검찰은 화재 원인 등 모든 책임을 철거민에게 돌리며 고인에게 살인죄를 덮어 씌웠고, 여당은 철거민들이 재개발 이익을 노리고 시위했다는 식의 망발을 쏟아 내고 있다.”면서 “우리를 두 번 죽이지 말고 진실을 밝혀 달라.”고 하소연했다. 고 윤용헌씨의 조카 윤상석(33)씨는 “고인이 돈을 더 받으려 생떼를 쓰다 사고를 자초했다는 따가운 시선이 견디기 힘들다.”면서 “진상규명이 이뤄져 고인의 명예가 회복되길 바랄 뿐”이라며 울먹였다. 용산철거민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 박래군 집행위원장은 “대통령의 사과, 경찰 수뇌부 책임자 처벌 등이 이뤄질 때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는 게 유가족들의 입장”이라면서 “우리의 싸움이 원주민 정착률을 높이는 등 사람 중심의 재개발 문화를 뿌리내리는 데 밀알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은 이날 용산 참사관련 특별검사임명법을 국회에 입법 청원했다. 범대위는 25일 이명박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촛불 집회를 갖고, 주말인 28일에는 6번째 추모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美 통근 여객기 추락 순간

    美 통근 여객기 추락 순간

    미국 뉴욕주 버팔로 공항에서 8㎞쯤 떨어진 주택가에 통근용 비행기가 추락해 50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CNN과 버팔로 뉴스에 따르면 뉴저지주 뉴어크를 출발해 뉴욕주 버팔로 나이아가라 국제공항으로 향하던 미 콘티넨털항공 소속 3407 여객기가 12일(현지시간) 오후 10시 20분쯤 착륙을 앞두고 버팔로 북동쪽에 위치한 클레어런스 센터 지역내 롱스트리트 주택가로 추락했다. 이번 사고의 원인은 즉각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미 연방항공청(FAA)과 사고 여객기의 콜건항공측에 따르면 사고 여객기는 프로펠러 추진의 74인승 통근 여객기로 사고 당시 승객 44명과 기장 및 승무원, 비번인 조종사 5명 등 모두 49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버팔로 뉴스는 이날 여객기 추락으로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고 항공기가 추락한 지역의 인근 주민 1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추락 현장에 있던 주민 2명이 가벼운 부상을 입어 현재 인근 병원에서 치료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경찰은 비행기 추락지점이 주택가이며 사고 직후 화재로 이어진 점을 감안해 추가 인명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고 밝혔다. FAA 관계자는 이날 CNN과의 인터뷰에서 “사고 당시 현장에 비와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으며 시정 거리는 9.6㎞ 정도였다.”고 말했다. 공항 관제탑 관계자는 AP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사고 비행기는 2300피트 상공을 날다 갑자기 레이더망에서 사라졌다.”고 밝혔다. 한편 오바마 미 대통령은 사고 소식을 접한 뒤 “사고로 사망한 희생자들과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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