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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경자 유족, ‘미인도 위작 논란’ 현대미술관에 새달 소송

    ‘미인도’ 위작 논란과 관련해 지난해 말 국립현대미술관을 상대로 소송을 예고했던 천경자 화백의 유족이 거물급 변호사들이 포함된 무료 변호인단을 구성했다. 유족 측은 4월 20일쯤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천 화백의 차녀 김정희씨를 대리해 온 배금자 변호사 등은 28일 “한국 현대미술사에 비극이 더이상 재발해서는 안 되며 작가 인권이 유린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공감한 뜻있는 변호사들이 모여 공동 변호인단을 발족하게 됐다”고 밝혔다. ‘위작 미인도 폐기와 작가 인권 옹호를 위한 공동 변호인단’에는 배 변호사 외에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지낸 위철환(동수원종합법무법인 대표),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을 지낸 오욱환(한원국제법률사무소 대표), 대검 중수부장 출신 박영수(법무법인 강남 대표), 이삼 전 서울고검 검사 등 10명이 참여했다. 변호인단은 발족 취지문에서 “위작 미인도와 관련해 국립현대미술관의 행위는 국가기관이 개인에게 가하는 인권유린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이우환 화백 위작 논란에 대해선 작가가 ‘진작과 위작을 결정할 수 있다’고 답한 반면, 천 화백과 관련해선 작가 존중의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문화 블로그] 미술계 끝없는 ‘위작 스캔들’ 근본적 해결책 없나

    미술계가 위작 논란으로 벌집을 쑤셔 놓은 듯하다. 25년 이상 공방을 벌여 온 고 천경자(1924~2015) 화백의 ‘미인도’ 위작 논란은 이 그림을 자신이 그렸다고 주장해 온 위조범 권춘식(69)씨가 입장을 번복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우환(80) 화백의 위작 유통 사건과 관련해서는 경찰이 수사를 진행 중인 가운데 검증 대상에 오른 12점이 모두 위작이라는 ‘안목 감정’ 검증 결과를 한 감정위원이 언론에 공개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시립 대구미술관에서 지역 기업가로부터 기증받아 전시 중인 이인성(1912~1950)의 1933년 작품 ‘연못’도 진위를 놓고 이견이 분분하다.<서울신문 2월 26일자 22면> 권씨는 최근 언론을 통해 “1978년 위작 의뢰를 받고 3점을 그려 줬는데 나중에 검찰 수사 과정에서 스스로 미인도와 착각해 말한 것 같다. 감형해 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면서 “내가 그린 것이 확실하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권씨는 1999년 검찰 조사를 받던 중 자신이 그 그림을 그렸다고 주장했고 지난해 천 화백의 별세 이후 미인도 위작 논란이 재점화됐을 때도 이 주장을 반복했다. 최근 한 방송사의 기획물에서는 현장 시연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권씨가 이를 번복했으니 논란에 논란을 하나 더 얹은 셈이 됐다. 천 화백의 유족 중 혼외 자녀인 차녀 김정희씨는 국립현대미술관을 상대로 명예훼손 및 저작권법 위반 소송을 벌이기 위해 친자 확인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우환 화백 위작 유통 사건의 작품 12점은 서울 인사동 K화랑에서 압수한 작품 6점과 K옥션에서 거래된 작품 1점, 개인 소장자의 작품으로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과학 감정을 의뢰한 상태다. 이 화백의 대리인 최순용 변호사는 “작가가 직접 그림을 보게 해 달라”고 공개 요청했으나 경찰은 위작 여부에 대한 법률적 판단은 과학 감정과 안목 감정, 출처 확인 및 해당 작가 확인 등으로 진행한다는 방침으로, 국과수의 결과가 나온 뒤 필요할 경우 이 화백에게 보여주겠다는 입장이다. 김정희의 추사체나 신윤복의 풍속화 같은 고서화부터 이중섭, 박수근의 작품들이 위작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듯이 위작 스캔들이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최근 미술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한 10년 사이 그림이 돈이 되는 재화로 여겨지면서 특히 빈번하게 터져 나오고 있다. 위작을 만들어 내는 근본적인 원인은 ‘돈’이지만 점차 조직화, 국제화되면서 미술계의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 확산되고 있는 점도 심각성을 더한다. 위작 사건에서 감정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걸러 낼 장치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투명성과 공신력을 가진 감정기구가 없고, 과학적인 첨단 감정 기법이 미숙해 안목 감정에 의지할 수밖에 없어 결과를 뒤집는 것 또한 용이하다. 감정위원은 미술시장에서 가격 형성과 유통을 책임지는 갤러리 주인이 대부분이다. 특히 국내 2차 미술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는 서울옥션과 K옥션의 실질적 주인이 메이저 갤러리라는 점, 옥션에서 위작이 출현해도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점 등도 시정해야 할 대목이다. 과학적 감정 기법 개발과 전문가 양성, 독립적인 감정기구 설립이 시급하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대구미술관서 기증 받은 작품까지… 이인성 ‘연못’도 진위 논란

    대구미술관서 기증 받은 작품까지… 이인성 ‘연못’도 진위 논란

    미술품감정평가원 2004년 위작 판정… 2년 뒤 화랑협회는 2차 감정 때 “진품”“위원들 ‘너무 조악하다’ 의문 제기도” 고 천경자 화백, 이우환 화백 작품의 진위 논란이 잇따라 제기된 가운데 대구시립미술관이 지난해 한 기업인으로부터 기증 받아 처음으로 공개한 화가 이인성(1912~1950)의 작품 ‘연못’이 2004년 1월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에서 위작 판정을 내린 작품으로 밝혀졌다. 한국화랑협회는 2년 뒤인 2006년 이 작품에 대해 1차에서는 감정 불능을 내렸다가 2차에서 진품으로 감정한 바 있으나 이 작품의 진위에 대한 이견은 여전하다. 당시 감정위원으로 참여했던 근대미술 전문가 정준모(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씨는 25일 “이 그림은 이인성의 필치나 화풍과 달라서 위작 판정을 내렸던 것과 동일한 작품”이라며 “한국화랑협회가 2년 뒤 진품 판정을 내렸다고 해도 이견이 있는 작품을 공공미술관에서 기증 받아 전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예술애호가인 김인한 유성건설 회장이 지난해 6월 대구미술관에 기증한 예술품 578점 가운데 하나로, 미술관은 지난 22일부터 ‘아름다운 선물’이라는 제목으로 ‘김인한 컬렉션 하이라이트’전을 열고 있다. ‘연못’은 대구 출신 천재 화가 이인성이 일제강점기인 1933년 그린 가로 33.4㎝, 세로 24㎝의 유화 작품으로, 김 회장의 기증 작품 중에서도 가장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미술관은 이인성의 또 다른 작품 ‘향원정’(1940년쯤)과 함께 ‘연못’을 이번 전시의 간판 작품으로 홍보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대구미술관 김선희 관장은 “김인한 회장의 기증 작품 중 이인성의 작품은 매우 귀한 작품인 데다 화랑협회가 발행한 진품보증서가 첨부돼 있었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의위원회를 두 차례 열어 기증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대구미술관의 심의위원은 “여러 위원들이 심의 과정에서 작품이 이인성의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 조악하다며 의문을 제기했다”고 전했다. 정준모씨는 “감정이란 사람이 하는 것이어서 뒤집힐 수도 있지만 이 작품은 이인성이 22세 때 그린 것이라고 하기엔 여러 가지로 무리가 있다”면서 “화가 서동진으로부터 수채화를 사사한 이인성의 작품은 가볍고 경쾌한 터치와 물감의 농도를 묽게 그린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고, 대부분 흰색을 거의 모든 색에 섞어 쓰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파스텔 톤이 나거나 동양화의 호분을 칠한 듯한 느낌이 나는 특징이 있지만 ‘연못’은 그런 특징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인성의 사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 그림에 있는 사인은 주로 수묵화에서 사용한 것이라는 점도 진품이 아닐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 준다”고 강조했다.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이 2013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감정 의뢰를 받은 이인성의 작품 69점 중 54점이 위작으로 감정됐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이우환과 정명훈의 공통점/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세종로의 아침] 이우환과 정명훈의 공통점/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거장 이우환 화백과 세계적인 지휘자인 정명훈 전 서울시향 예술감독은 국제적으로 명성을 날리는 톱클래스의 예술가들이다. 재능과 열정으로 대가 반열에 오르고, 국위 선양에 앞장서 온 이들이 안타깝게도 이런저런 논란에 휩싸여 있다. 이 화백은 위작 유통 사건 때문에, 정 전 감독은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와 직원들 간에 벌어진 폭언 및 성추행 의혹을 둘러싼 진실 공방 등으로 지금까지 쌓아 온 예술가적 명예에 금이 가고 말았다.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그들 입장에서 보면 한국 내에서의 이 같은 ‘잡음’은 그냥 무시하고 해외에서 예술적 행보를 계속해 나가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들을 아끼고 사랑해 준 한국의 팬들과 거리를 두게 된 것은 아무래도 유감스럽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꼬인 이유가 뭘지 생각해 보니 두 사람에게서 묘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피해 의식 때문인지 언론과 직접 대면을 피하고, 초기에 너무 안일하게 대응한 결과 화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정 전 감독과 박 전 대표의 진실 공방은 2014년 서울시향 사무국 소속 직원 17명이 ‘박현정 당시 대표의 막말·성추행과 인사 전횡 의혹’을 제기하고 박 대표를 경찰에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지난해 8월 검찰은 박 전 대표를 무혐의 처분하고 경찰이 박 전 대표를 고발한 직원들을 입건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이어 정 전 감독의 부인 구씨가 이 과정에 개입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고 서울시향과의 재계약 결정이 보류되자 정 전 감독은 단원들에게 편지 한 장을 남긴 채 10년간 몸담았던 서울시향 예술감독직을 사임했다. 편지에는 ‘문명화되지 않은’ 한국 사회에 대한 불만이 가득 배어 있었다. 이 화백은 지난 10년 사이 국내외 경매에서 낙찰 총액만 700억원이 넘을 정도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인기 작가다. 최근에는 프랑스의 전통있는 와인 생산자 샤토무통 로칠드의 2013년 빈티지 라벨 디자인에 참여해 피카소와 샤갈 같은 거장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무관하게 올 초 이후 국내의 관심은 온통 위작 유통 논란에 모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이 화백의 대응 방식은 한결같다. 자기의 고객인 프랑스 명품 와인에 대해서는 상찬의 말을 아끼지 않으면서 위작 사건에 대해서는 법률 대리인인 최순용 변호사를 통해 자신이 최대 피해자이며 “확인한 작품 중에는 위작이 없다”는 입장만 밝히고 있다. 대리인을 통해 보낸 자료에서 그는 “기존의 일부 인터뷰 내용이 작가가 말한 것과 달리 보도되고 있다”면서 한국 언론에 대한 불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이라며 이들은 항상 뒤에 물러서 있었다. 하지만 진실을 밝혀야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아닐까. 무엇이든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이 공인으로서의 자세라고 본다. 그것이 이들의 예술을 사랑하는 팬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이 화백이나, 정 전 감독이나 말하지 않을 권리와 자유가 있으니 언론을 피하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진실을 얘기하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는 역시 언론이라는 것을 잊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불통은 수많은 억측을 낳을 뿐이다. lotus@seoul.co.kr
  • 문체부, 박수근·이중섭 전작도록 만든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대표적인 인물인 박수근, 이중섭 작가의 전작도록을 만든다고 19일 밝혔다. 전작도록은 작가의 모든 작품에 대한 연대, 크기, 상태, 이력, 소장처 변동, 비평, 전시 기록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어 해당 작가의 작품 감정 및 거래 시 참고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빈번하게 불거지는 위작 시비 등으로 미술품 감정 기초 자료 마련이 시급하고 한국 미술을 체계적으로 해외에 알릴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는 학계와 현장의 목소리가 높아 우리나라 대표작가 두 분의 전작도록을 제작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제작 기한은 3년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문체부는 이와 함께 원로 작가인 박서보, 이승택, 최만린의 디지털 자료집도 제작한다. 디지털 자료집은 전작도록의 사전 단계로 현재까지의 작품 활동을 정리해 온라인상에 공개하고 향후 작품 활동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할 방침이다. 오는 3월 공모를 통해 디지털 자료집을 제작할 작가를 추가로 선정한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2015 문화계 결산] 키워드로 본 미술

    [2015 문화계 결산] 키워드로 본 미술

    올해 미술계는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다.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한 임흥순 작가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은사자상을 받았다. 미국 체류 중 사망설에 휩싸였던 천경자 화백의 뒤늦은 별세 소식과 함께 ‘미인도’ 위작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단색화의 인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경매시장이 미술경기를 주도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설립 이래 처음으로 외국인을 관장으로 받아들였다. 임흥순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 1895년 시작된 세계 최고의 현대미술축제인 베니스비엔날레의 제56회 미술전에서 임흥순 작가(46)가 아시아 여성의 노동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위로공단’으로 은사자상을 받았다. 국가관이 아닌 본전시에 초청받은 국내 작가로서는 처음이고 최고의 수상이었다. 지난해 열린 제14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서 조민석 건축가가 커미셔너를 맡아 ‘한반도 오감도’전을 선보인 한국관이 최고영예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데 이은 쾌거여서 의미를 더했다. 이숙경 큐레이터가 커미션을 맡은 올해 한국관에선 문경원·전준호 작가의 영상설치작품 ‘축지법과 비행술’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꽃과 여인의 화가’ 천경자 별세 ‘꽃과 여인의 화가’로 불린 천경자 화백이 91세를 일기로 지난 8월 6일 미국에서 별세했다는 소식이 10월 22일 뒤늦게 알려졌다. 천 화백의 딸 이혜선씨(70·미국 거주)가 유골함을 들고 기증 작품이 전시된 서울시립미술관을 방문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파장은 컸다. 천경자 파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국내 미술계 최대 위작 시비로 꼽혔던 1991년 ‘미인도’ 논란이 재점화됐다. “어머니를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화가로 예우해 달라”며 기자회견을 열었던 나머지 유족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미인도’에 대해 “본인이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했다”며 위작임을 다시 주장하면서 논란에 불을 붙였다. 단색화 인기·옥션시장 활기 그동안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있던 단색화의 인기가 국내외에서 이어졌다. 박서보·윤형근·정상화·하종현·김환기 등 1세대 단색화 작가의 작품이 해외 유수의 아트페어와 경매 시장에 소개되며 인기를 이어갔다. 덕분에 서울옥션과 K옥션 등 국내의 양대 옥션사는 사상 최대 호황을 누렸다. 서울옥션의 경우 10월에 연 제16회 홍콩경매에서 김환기의 ‘19-Ⅶ-71 #209’가 국내 작가의 작품 중 최고가인 3100만 홍콩달러(한화 약 47억 2100만원)에 낙찰됐다. 지난 16일 평창동 본사에서 열린 제135회 경매와 온라인 경매까지 합쳐 올해 낙찰총액 1081억원을 기록했다. 한 해 낙찰 총액이 1000억원을 넘은 것은 1998년 서울옥션 설립 이후 처음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첫 외국인 관장 국립현대미술관 정형민 전 관장이 학예연구사 부당채용 파문으로 지난해 10월 직위해제된 뒤 1년 2개월 동안 그 자리의 임자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1차 공모에 미술계의 인사들이 도전장을 던졌지만 문체부에서 적격자가 없다며 재공모를 발표했고 결국 스페인 국적의 바르토메우 마리 리바스(49) 전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장이 임명됐다. 외국인 관장을 맞기는 1969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개관한 이래 처음이다. 한국말도 못하는 외국인 관장이 미술인의 결집을 꾀하며 국립현대미술관의 법인화 등 현안을 어떻게 추진해 나갈지에 우려의 소리가 크다.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시론] 천경자와 천옥자/황인 미술평론가

    [시론] 천경자와 천옥자/황인 미술평론가

    천경자 화백의 타계 소식이 두 달이나 늦게 전해졌다. 천 화백의 본명은 천옥자다. 부모님이 주신 옥자(玉子)라는 이름을 버리고 스스로 경자(鏡子)라는 이름을 지었다. 구슬(玉)을 버리고 거울(鏡)을 택한 셈이다. 그녀의 나이 18세,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를 입학하던 해의 일이다. ‘주체는 거울(鏡)에 비친 이미지를 동일시하려 한다’고 밝힌 건 철학자 라캉이다. 거울은 주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한 소품이다. 한반도의 여성에게는 주체를 추구하고 자의식을 갖는 것이 금기였던 어두운 시대가 있었다. 그런 시절에 그녀는 자신이 택한 새 거울 속에 화려한 이미지를 드러냄으로써 능동적인 주체를 이끌어 나갔다. 천 화백은 이중 삼중으로 변방으로 밀렸던 사람이다. 남성 우위의 사회 분위기에서 여류 화가가 설 수 있는 입지는 좁았다. 수묵화가 대세이던 한국화 화단에서 그녀의 화려한 발색의 채색화는 배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녀의 삶과 그림을 지지한 건 여성들이었다. 우월 의식을 가진 남성들은 그녀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어떤 수묵화 화가들은 그녀를 공격하기도 했다. 그녀를 변방으로 몰아붙였던 위세등등의 수묵화는 지금 거의 멸실 상태다. 천 화백의 그림은 빛을 더하며 살아남았다. 미술시장에서도 최고의 작품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과연 누가 승리자인가.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궁지에 몰렸던 천 화백이지만 그녀의 삶은 당당하고 활기가 넘쳤다. 1960년대라면 세계 일주 여행가로 김찬삼 교수가 거의 유일했다. 이 무렵부터 해외여행을 나선 천 화백은 잘 알려진 뉴욕은 물론 한국인들에게는 미지의 땅이었던 아프리카 등지를 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인도, 중남미를 여행하고선 현장 사생 작품을 현대화랑에서 전시(1980년)했다. 당시 천 화백의 그림 속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을 모사하는 여대생들이 제법 있었다. 서글서글하면서도 짙은 음영의 슬픈 눈을 따라 그렸다. 젊은 여성들은 천 화백의 그림 속에 나오는 여자의 눈동자가 본 세상을 상상하며 그녀의 삶을 닮으려 했다. 그녀는 일류 문장가였다. 이국 정취를 불러일으키는 그녀의 수필과 기행문을 읽으며 젊은 여성들은 멀고 막연한 세계를 상상했다. 천 화백은 젊은 한국 여성들에겐 꿈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다. 천 화백은 여성운동가도 계몽주의자도 자처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녀의 매력이 세상을 계몽했다. 이 땅의 여성들이 꿈속에서나 상상할 법한 과감한 삶을 그녀는 실제로 살았다. 어쩌면 비현실적일 수도 있는 그녀의 삶이 여성들에게 역설의 위안과 용기가 됐다. 올가을에는 서울시립미술관의 천경자상설전시실에 사람들의 발길이 유독 잦다. 많은 관람객이 그녀의 작품 앞에 줄지어 서서 지나간 한 시대를 기리고 있다. 석채를 담은 통, 평필, 세필, 아교를 녹이는 전기풍로 등 화구를 비치해 재현한 화가의 방 앞에서는 숙연한 모습이 되기도 한다. 천 화백의 늦은 부음과 함께 1991년에 있었던 ‘미인도’ 위작 사건이 다시 불거져 나왔다. 이번에는 국회까지 나서서 재감정 요청을 제기했다. 위작인지 진품인지는 공방 중이다. 그러나 24년 전과 지금은 양상이 다르다.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주장했던 국립현대미술관의 논리에는 보충 설명의 부연이 아쉬웠다. 미인도가 위작이라고 주장했던 작가 측의 논리 역시 다소 자의적인 면이 있었다. 지금은 양측이 주장하는 근거가 상당히 논리적이며 실증적이다. 그때보다 수십 배가 늘어난 근거들이 조리 있게 제시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검증의 과정을 공유하고 있다. 결과에 관계없이 과거보다는 더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검증 과정을 거치게 되는 셈이다. 알게 모르게 24년간 우리 사회가 많이 진화했다는 걸 이번 사태가 증명해 주고 있다. 새 거울 속의 이미지를 좇아 천옥자에서 천경자를 택했던 그녀는 이번 사태에서 보듯 어느새 한국 사회를 되비추는 큰 거울이 됐다. 위작 논란과는 무연하게 그녀를 향한 세간의 열광은 점점 힘을 더해 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천 화백은 이 땅의 진정한 스타다. 정부가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는 일에 주저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 故천경자 화백 절필 이끈 ‘미인도’ 재감정 이뤄질까

    故천경자 화백 절필 이끈 ‘미인도’ 재감정 이뤄질까

     최근 천경자 화백의 타계 소식이 뒤늦게 전해진 이후 천 화백을 절필로 이끌었던 ‘미인도’ 위작 논란이 재점화한 가운데 국회에서 ‘미인도’에 대한 재감정 요청이 제기됐다. 앞서 ‘미인도’를 소유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재감정 가능성과 관련 “국회에서 통보가 오거나 유가족이 요청을 해오는 등 상황이 발생해 봐야 알 수 있는 문제”라고 밝힌 바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이석현 국회부의장실은 6일 “어제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앞으로 ‘천경자 미인도의 재감정 요청의 건’을 우편으로 발송했다”고 밝혔다. 이 부의장은 “예술가에게 절필은 자살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위작 논란 속에 절필하고 세상을 등진 만큼 망자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재감정을 통한 위작 여부 확인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부의장은 재감정 요청공문에서 ?작가가 지속적으로 위작이라고 주장했던 점 ?권춘식씨가 위작을 자백한 점 ?당시 수사검사인 최순용 변호사의 증언 ?유족의 요구 등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이 부의장은 또한 1991년 당시에는 생존 작가여서 화랑협회에서 감정했지만, 망자의 경우 고미술감정협회에서 진위 여부를 감정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1991년 ‘미인도’ 위작 논란은 한국 미술계의 사건이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으로부터 국가가 압류한 미술품 가운데 ‘미인도’가 있었고, 이를 소장하게 된 국립현대미술관은 전시와 함께 프린트해 팔기 시작했다. 유가족 등에 따르면 천 화백은 당시 한 동네 목욕탕에 자신의 그림이 걸려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확인하러 갔다가 분노에 차서 돌아왔다. 그는 “내가 그린 것이 아니라 위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대미술관은 한국화랑협회에 감정을 의뢰했고, 협회는 ‘진품’이란 결론을 내렸다.  천 화백은 “자식 못 알아보는 어미가 어디에 있느냐”는 말로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술계에서는 ‘예순이 넘은 천 화백이 노망이 들었다’는 말이 떠돌았다. 결국, 절필을 선언하고 1998년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채 한국을 떠났다.  하지만, 최근 천 화백이 지난 8월 숨졌다는 소식이 알려진 이후 위작 논란 당사자들이 열기 시작했다. 1995과 1999년 두 차례에 걸쳐 고서화 전문위조 혐의로 검거된 권씨는 “국립현대미술관에 있는 미인도는 내가 그렸다”고 주장했다. 당시 권씨를 수사했던 최 변호사도 “국립현대미술관의 천 화백 그림을 자신이 그렸다는 진술을 받았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미인도’는 현재 경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위작 논란 이후 단 한 번도 대중에게 공개된 적이 없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문화 In&Out] 재점화된 ‘미인도’ 위작 논란… 감정 시스템·DB 부실이 불씨

    24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미인도 위작 논란’ 사건이 당사자인 천경자 화백의 뒤늦은 사망 소식과 함께 다시 불거져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천 화백 유족은 지난달 27일 간담회에서 천 화백을 미국으로 떠나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을 제공했던 미인도 위작사건을 재거론하며 “어머니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 그림은 내가 그린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미인도’는 위작이 맞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1999년 천 화백의 ‘미인도’를 위조했다고 진술한 고서화 전문위조범 권춘식씨를 수사했던 전직 검사는 이튿날 공개강연에서 “위조된 게 맞다고 본다”는 개인 의견을 밝혔다. 이런 가운데 국립현대미술관 전 학예실장 정준모씨가 “미인도는 위작이 아니다”는 내용의 글을 최근 시사잡지에 기고했다. 현재 한국미술품감정협회 감정위원(유화), 미술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정씨는 ‘나비와 여인은 왜 미인도가 됐을까’라는 기고 글에서 “1990년 1월 금성출판사에서 출간된 ‘한국근대미술선집’ 중 11권인 ‘장우성/천경자’편에 해당 작품이 흑백 도판으로 이미 수록돼 있다. 이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인정했다는 뜻”이라고 썼다. 그는 “1979년 10·26 사태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재산을 압류하는 과정에서 상당수 미술품이 발견됐다”며 “어깨에 나비가 앉은 여성을 그린 이 그림은 검찰을 통해 법무부로 넘어가 국가로 환수됐고 절차에 따라 국립현대미술관에 이관됐다”고 설명했다. ‘미인도 위작 논란’ 사건이 일어난 것은 1991년 봄 국립현대미술관이 ‘움직이는 미술관’을 운영하면서 원작을 복제해 판매하던 중 복제품과 원작을 본 천 화백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위작’이라고 이의를 제기하면서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과 한국화랑협회 미술품감정위원회는 과학적 감정을 거쳐 1991년 4월 11일 진품이라고 판정했다. 졸지에 ‘자기 작품도 알아보지 못하는 화가’가 된 천 화백은 “이런 풍토에서 붓 들기가 겁난다”며 전시회 출품 등 작품 공개활동을 중지하겠다고 선언했고, 서울시립미술관에 작품 93점을 기증한 뒤 큰딸이 있는 미국으로 떠났다. 그 후 ‘미인도 위작논란’은 1999년 고서화 위조범 권씨가 자신이 ‘미인도’를 위조했다는 증언을 하면서 재개됐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은 작품 입수 시점과 위조했다고 진술한 시점(1984년)이 불일치하며, 해당 작품이 1990년 1월 출간된 ‘한국근대회화선집’의 ‘장우성/천경자’편에 수록됐다는 것은 작가의 동의를 거쳤다는 것, 즉 작가가 인정한 작품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며 기존입장을 고수했다. 검찰은 공소시효가 만료돼 더이상 수사가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근본적으로 이 같은 위작 논란은 작품 감정 시스템의 부실 탓이다. 작품의 소장자가 누가 됐든 간에 압류작품이 국가(국립현대미술관)로 환수될 경우 진위를 확실하게 따지는 게 원칙이지만 당시 그런 절차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1999년 과학적 분석을 했지만 재료에 국한됐을 뿐 작가의 화풍을 분석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작가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부실한 것은 위작 시비를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결정적인 이유다. 외국의 경우 유명작가들은 전 생애의 작품을 정리한 전작 도록을 제작해 작품 연도와 수장처 혹은 소장자의 변화를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시대와 6·25전쟁 등 혼란하고 어려운 시기를 거친 근대 작가들은 물론 현대작가들도 전작 도록을 갖춘 경우는 전무한 실정이다. 두 가지 문제가 시정되지 않는 한 위작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재점화된 천경자 미인도 위작논란... 결론은 ‘오리무중’?

     24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미인도 위작 논란’ 사건이 당사자인 천경자 화백의 뒤늦은 사망 소식과 함께 다시 불거져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 천 화백 유족 “어머니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내 그림 아니다’고 했다” 천 화백 유족은 지난달 27일 간담회에서 천 화백을 미국으로 떠나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을 제공했던 미인도 위작사건을 재거론하며 “어머니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 그림은 내가 그린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미인도’는 위작이 맞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1999년 천 화백의 ‘미인도’를 위조했다고 진술한 고서화 전문위조범 권 모씨를 수사했던 전직 검사는 이튿날 공개강연에서 “위조된 게 맞다고 본다”는 개인 의견을 밝혔다. ● 현대미술관 정준모 전 학예실장 “위작 아니다” 맞서 이런 가운데 국립현대미술관 전 학예실장 정준모씨가 “미인도는 위작이 아니다”는 내용의 글을 최근 시사잡지에 기고했다. 현재 한국미술품감정협회 감정위원(유화), 미술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정씨는 ‘나비와 여인은 왜 미인도가 됐을까’라는 기고 글에서 “1990년 1월 금성출판사에서 출간된 ‘한국근대미술선집’ 중 11권인 ‘장우성/천경자’편에 해당 작품이 흑백 도판으로 이미 수록돼 있다. 이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인정했다는 뜻”이라고 썼다. 그는 “1979년 10·26 사태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재산을 압류하는 과정에서 상당수 미술품이 발견됐다”며 “어깨에 나비가 앉은 여성을 그린 이 그림은 검찰을 통해 법무부로 넘어가 국가로 환수됐고 절차에 따라 국립현대미술관에 이관됐다”고 설명했다.  ‘미인도 위작 논란’ 사건이 일어난 것은 1991년 봄 국립현대미술관이 ‘움직이는 미술관’을 운영하면서 원작을 복제해 판매하던 중 복제품과 원작을 본 천 화백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위작’이라고 이의를 제기하면서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과 한국화랑협회 미술품감정위원회는 과학적 감정을 거쳐 1991년 4월 11일 진품이라고 판정했다. 졸지에 ‘자기 작품도 알아보지 못하는 화가’가 된 천 화백은 “이런 풍토에서 붓 들기가 겁난다”며 전시회 출품 등 작품 공개활동을 중지하겠다고 선언했고, 서울시립미술관에 작품 93점을 기증한 뒤 큰딸이 있는 미국으로 떠났다. ● 천 화백 “붓 들기 겁난다” 渡美... 위조범 권춘식 “내가 위조” 증언 그 후 ‘미인도 위작논란’은 1999년 고서화 위조범 권춘식씨가 자신이 ‘미인도’를 위조했다는 증언을 하면서 재개됐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은 작품 입수 시점과 위조했다고 진술한 시점(1984년)이 불일치하며, 해당 작품이 1990년 1월 출간된 ‘한국근대회화선집’의 ‘장우성/천경자’편에 수록됐다는 것은 작가의 동의를 거쳤다는 것, 즉 작가가 인정한 작품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며 기존입장을 고수했다. 검찰은 공소시효가 만료돼 더이상 수사가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 근대작가 도록 등 DB 부족... 재료분석에 그쳐 위작논란 진행형 근본적으로 이 같은 위작 논란은 작품 감정 시스템의 부실 탓이다. 작품의 소장자가 누가 됐든 간에 압류작품이 국가(국립현대미술관)로 환수될 경우 진위를 확실하게 따지는 게 원칙이지만 당시 그런 절차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1999년 과학적 분석을 했지만 재료에 국한됐을 뿐 작가의 화풍을 분석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작가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부실한 것은 위작 시비를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결정적인 이유다. 외국의 경우 유명작가들은 전 생애의 작품을 정리한 전작 도록을 제작해 작품 연도와 수장처 혹은 소장자의 변화를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시대와 6·25전쟁 등 혼란하고 어려운 시기를 거친 근대 작가들은 물론 현대작가들도 전작 도록을 갖춘 경우는 전무한 실정이다. 두 가지 문제가 시정되지 않는 한 위작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천경자 화백 별세, 위작시비에 “예술원 탈퇴하고 붓 놓겠다” 무슨 일 있었나

    천경자 화백 별세, 위작시비에 “예술원 탈퇴하고 붓 놓겠다” 무슨 일 있었나

    천경자 화백 별세, 위작시비에 “예술원 탈퇴하고 붓 놓겠다” 무슨 일 있었나천경자 화백 별세 사망설이 꾸준히 제기된 천경자 화백이 지난 8월 이미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91세. 천 화백의 딸 이혜선씨는 지난 여름 유골함을 들고 서울시립미술관을 방문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은 2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천 화백의 딸 이씨가 몇 달 전 미술관에 유골함을 들고 수장고에 다녀갔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이씨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김 관장은 “당시 이씨가 관련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아줄 것을 강력 요청했다고 들었다”며 “개인적인 일이라 본인이 적절한 시점에 밝힐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씨의 지인은 이날 연합뉴스에 이씨로부터 “병석에 계시던 천 화백이 지난해 11월 추수감사절 이후 몸 상태가 안 좋아졌으며 지난 8월 6일 새벽 의사가 보는 가운데 돌아가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 지인은 “천 화백의 시신은 화장했고 뉴욕 성당에서 장례를 치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씨가 “같은 달 서울시에 협조를 요청한 뒤 서울시립미술관에 있는 ‘천경자 상설전시실’과 그의 작품이 보관된 수장고를 다녀왔다”며 “어머니가 아끼는 작품이 시립미술관에 있으니 가봐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씨는 이 과정에서 언론에 관련 사실을 알리지 말아줄 것을 당부했다고 그는 말했다. 꽃과 여인의 화가로 불리는 천 화백은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후 거동을 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큰딸 이씨의 간호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와 접촉을 끊은 천 화백은 의식은 있는 상태라는 것이 이씨를 통해 그동안 미술계에 알려져 온 사실이다. 미술계에선 천 화백이 길게는 10여 년 전 이미 사망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성 소문이 무성하게 돌았다. 지난해에는 대한민국예술원이 천 화백의 근황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2월부터 수당 지급을 잠정 중단했고 이씨는 이에 반발해 탈퇴서를 제출했다. 예술원은 이씨에게 공문을 보내 천 화백의 의료 기록 등을 요구했으나 이씨는 이런 예술원의 요구가 천 화백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응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본인 의사를 알 수 없는 예술원으로선 탈퇴 처리를 하지 않았으며 현재 인터넷 홈페이지에선 미술 분야 회원으로 소개하고 있다. 예술원은 그간 천 화백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려 했으나 직접적인 확인은 하지 못했다. 천 화백은 1998년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고 뉴욕으로 떠났다. 딸 이씨는 천 화백이 서울시에 기증했던 작품이 관리 소홀로 훼손됐다며 93점을 반환할 것을 2013년 요구하기도 했다. 천 화백은 여인의 한(恨)과 환상, 꿈과 고독을 화려한 원색의 한국화로 그려 1960~1980년대 국내 화단에서 여류화가로는 보기 드물게 자신의 화풍을 개척했고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폭넓게 활동했던 ‘스타’ 화가였다. 그러나 여인의 모습을 그린 ‘미인도’를 둘러싸고 1991년에 일어난 위작시비는 천 화백 노년의 최대 시련으로 심적 충격 속에 절필을 선언한 바 있다. 미인도 위작 논란은 1991년 4월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천경자의 작품에 대해 작가가 직접 위작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어깨에 나비가 앉은 여성 인물화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움직이는 미술관’ 전시에 포함됐다. 이 작품의 아트 포스터(복제품)를 본 친지에게서 “복제품이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천 화백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과 복제품을 검토해 자신의 그림이 아니라는 주장을 했다. 이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세상에 드러났고 국립현대미술관은 그림의 제작연도부터 소장경위 등을 추적해 진품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1999년 고서화 위작 및 사기판매사건으로 구속된 위조범 권모씨가 검찰 수사과정에서 “화랑을 하는 친구의 요청에 따라 소액을 받고 달력 그림 몇 개를 섞어서 ‘미인도’를 만들었다”고 말하면서 위작 시비가 재연됐다. 이에 대해 당시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미인도’(29Ⅹ26㎝)는 진짜이며 현대미술관이 현재 소장하고 있다”면서 “한국화 위조범과 현대 미술관 중 어느 쪽을 믿느냐”고 반문했었다. 천 화백은 “자기 자식을 몰라보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후속 조치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한국과학기술원에 작품 감정을 의뢰했고 한국화랑협회에서는 진품이라는 감정을 내렸다. 당시 화백은 창작자의 증언을 무시한 채 가짜를 진품으로 오도하는 화단 풍토에선 창작행위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다며 붓을 놓고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직도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천 화백은 ‘자기 그림도 몰라보는 정신 나간 작가’라는 불명예를 안았고 엄청난 정신적 고초를 겪었다. 천 화백의 둘째딸 김정희씨는 당시 “위작 시비는 언젠가는 밝혀질 자명한 사건”이라며 “위작 여부의 진실이 밝혀지겠지만, 국가기관이나 특정 이익단체가 조직적으로 나서 일평생 외골수로 작업한 화가의 작가 정신을 말살하는 사건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천경자 화백 별세, 위작시비에 “예술원 탈퇴하고 붓 놓겠다” 대체 이유가?

    천경자 화백 별세, 위작시비에 “예술원 탈퇴하고 붓 놓겠다” 대체 이유가?

    천경자 화백 별세, 위작시비에 “예술원 탈퇴하고 붓 놓겠다” 대체 이유가?천경자 별세 사망설이 꾸준히 제기된 천경자 화백이 지난 8월 이미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91세. 천 화백의 딸 이혜선씨는 지난 여름 유골함을 들고 서울시립미술관을 방문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은 2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천 화백의 딸 이씨가 몇 달 전 미술관에 유골함을 들고 수장고에 다녀갔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이씨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김 관장은 “당시 이씨가 관련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아줄 것을 강력 요청했다고 들었다”며 “개인적인 일이라 본인이 적절한 시점에 밝힐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씨의 지인은 이날 연합뉴스에 이씨로부터 “병석에 계시던 천 화백이 지난해 11월 추수감사절 이후 몸 상태가 안 좋아졌으며 지난 8월 6일 새벽 의사가 보는 가운데 돌아가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 지인은 “천 화백의 시신은 화장했고 뉴욕 성당에서 장례를 치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씨가 “같은 달 서울시에 협조를 요청한 뒤 서울시립미술관에 있는 ‘천경자 상설전시실’과 그의 작품이 보관된 수장고를 다녀왔다”며 “어머니가 아끼는 작품이 시립미술관에 있으니 가봐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씨는 이 과정에서 언론에 관련 사실을 알리지 말아줄 것을 당부했다고 그는 말했다. 꽃과 여인의 화가로 불리는 천 화백은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후 거동을 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큰딸 이씨의 간호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와 접촉을 끊은 천 화백은 의식은 있는 상태라는 것이 이씨를 통해 그동안 미술계에 알려져 온 사실이다. 미술계에선 천 화백이 길게는 10여 년 전 이미 사망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성 소문이 무성하게 돌았다. 지난해에는 대한민국예술원이 천 화백의 근황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2월부터 수당 지급을 잠정 중단했고 이씨는 이에 반발해 탈퇴서를 제출했다. 예술원은 이씨에게 공문을 보내 천 화백의 의료 기록 등을 요구했으나 이씨는 이런 예술원의 요구가 천 화백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응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본인 의사를 알 수 없는 예술원으로선 탈퇴 처리를 하지 않았으며 현재 인터넷 홈페이지에선 미술 분야 회원으로 소개하고 있다. 예술원은 그간 천 화백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려 했으나 직접적인 확인은 하지 못했다. 천 화백은 1998년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고 뉴욕으로 떠났다. 딸 이씨는 천 화백이 서울시에 기증했던 작품이 관리 소홀로 훼손됐다며 93점을 반환할 것을 2013년 요구하기도 했다. 천 화백은 여인의 한(恨)과 환상, 꿈과 고독을 화려한 원색의 한국화로 그려 1960~1980년대 국내 화단에서 여류화가로는 보기 드물게 자신의 화풍을 개척했고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폭넓게 활동했던 ‘스타’ 화가였다. 그러나 여인의 모습을 그린 ‘미인도’를 둘러싸고 1991년에 일어난 위작시비는 천 화백 노년의 최대 시련으로 심적 충격 속에 절필을 선언한 바 있다. 미인도 위작 논란은 1991년 4월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천경자의 작품에 대해 작가가 직접 위작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어깨에 나비가 앉은 여성 인물화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움직이는 미술관’ 전시에 포함됐다. 이 작품의 아트 포스터(복제품)를 본 친지에게서 “복제품이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천 화백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과 복제품을 검토해 자신의 그림이 아니라는 주장을 했다. 이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세상에 드러났고 국립현대미술관은 그림의 제작연도부터 소장경위 등을 추적해 진품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1999년 고서화 위작 및 사기판매사건으로 구속된 위조범 권모씨가 검찰 수사과정에서 “화랑을 하는 친구의 요청에 따라 소액을 받고 달력 그림 몇 개를 섞어서 ‘미인도’를 만들었다”고 말하면서 위작 시비가 재연됐다. 이에 대해 당시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미인도’(29Ⅹ26㎝)는 진짜이며 현대미술관이 현재 소장하고 있다”면서 “한국화 위조범과 현대 미술관 중 어느 쪽을 믿느냐”고 반문했었다. 천 화백은 “자기 자식을 몰라보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후속 조치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한국과학기술원에 작품 감정을 의뢰했고 한국화랑협회에서는 진품이라는 감정을 내렸다. 당시 화백은 창작자의 증언을 무시한 채 가짜를 진품으로 오도하는 화단 풍토에선 창작행위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다며 붓을 놓고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직도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천 화백은 ‘자기 그림도 몰라보는 정신 나간 작가’라는 불명예를 안았고 엄청난 정신적 고초를 겪었다. 천 화백의 둘째딸 김정희씨는 당시 “위작 시비는 언젠가는 밝혀질 자명한 사건”이라며 “위작 여부의 진실이 밝혀지겠지만, 국가기관이나 특정 이익단체가 조직적으로 나서 일평생 외골수로 작업한 화가의 작가 정신을 말살하는 사건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천경자 별세, 위작시비에 “대한민국 예술원 탈퇴하고 붓 놓겠다” 이유가?

    천경자 별세, 위작시비에 “대한민국 예술원 탈퇴하고 붓 놓겠다” 이유가?

    천경자 별세, 위작시비에 “대한민국 예술원 탈퇴하고 붓 놓겠다” 이유가? 천경자 별세 사망설이 꾸준히 제기된 천경자 화백이 지난 8월 이미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91세. 천 화백의 딸 이혜선씨는 지난 여름 유골함을 들고 서울시립미술관을 방문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은 2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천 화백의 딸 이씨가 몇 달 전 미술관에 유골함을 들고 수장고에 다녀갔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이씨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김 관장은 “당시 이씨가 관련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아줄 것을 강력 요청했다고 들었다”며 “개인적인 일이라 본인이 적절한 시점에 밝힐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씨의 지인은 이날 연합뉴스에 이씨로부터 “병석에 계시던 천 화백이 지난해 11월 추수감사절 이후 몸 상태가 안 좋아졌으며 지난 8월 6일 새벽 의사가 보는 가운데 돌아가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 지인은 “천 화백의 시신은 화장했고 뉴욕 성당에서 장례를 치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씨가 “같은 달 서울시에 협조를 요청한 뒤 서울시립미술관에 있는 ‘천경자 상설전시실’과 그의 작품이 보관된 수장고를 다녀왔다”며 “어머니가 아끼는 작품이 시립미술관에 있으니 가봐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씨는 이 과정에서 언론에 관련 사실을 알리지 말아줄 것을 당부했다고 그는 말했다. 꽃과 여인의 화가로 불리는 천 화백은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후 거동을 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큰딸 이씨의 간호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와 접촉을 끊은 천 화백은 의식은 있는 상태라는 것이 이씨를 통해 그동안 미술계에 알려져 온 사실이다. 미술계에선 천 화백이 길게는 10여 년 전 이미 사망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성 소문이 무성하게 돌았다. 지난해에는 대한민국예술원이 천 화백의 근황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2월부터 수당 지급을 잠정 중단했고 이씨는 이에 반발해 탈퇴서를 제출했다. 예술원은 이씨에게 공문을 보내 천 화백의 의료 기록 등을 요구했으나 이씨는 이런 예술원의 요구가 천 화백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응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본인 의사를 알 수 없는 예술원으로선 탈퇴 처리를 하지 않았으며 현재 인터넷 홈페이지에선 미술 분야 회원으로 소개하고 있다. 예술원은 그간 천 화백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려 했으나 직접적인 확인은 하지 못했다. 천 화백은 1998년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고 뉴욕으로 떠났다. 딸 이씨는 천 화백이 서울시에 기증했던 작품이 관리 소홀로 훼손됐다며 93점을 반환할 것을 2013년 요구하기도 했다. 천 화백은 여인의 한(恨)과 환상, 꿈과 고독을 화려한 원색의 한국화로 그려 1960~1980년대 국내 화단에서 여류화가로는 보기 드물게 자신의 화풍을 개척했고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폭넓게 활동했던 ‘스타’ 화가였다. 그러나 여인의 모습을 그린 ‘미인도’를 둘러싸고 1991년에 일어난 위작시비는 천 화백 노년의 최대 시련으로 심적 충격 속에 절필을 선언한 바 있다. 미인도 위작 논란은 1991년 4월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천경자의 작품에 대해 작가가 직접 위작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어깨에 나비가 앉은 여성 인물화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움직이는 미술관’ 전시에 포함됐다. 이 작품의 아트 포스터(복제품)를 본 친지에게서 “복제품이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천 화백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과 복제품을 검토해 자신의 그림이 아니라는 주장을 했다. 이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세상에 드러났고 국립현대미술관은 그림의 제작연도부터 소장경위 등을 추적해 진품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1999년 고서화 위작 및 사기판매사건으로 구속된 위조범 권모씨가 검찰 수사과정에서 “화랑을 하는 친구의 요청에 따라 소액을 받고 달력 그림 몇 개를 섞어서 ‘미인도’를 만들었다”고 말하면서 위작 시비가 재연됐다. 이에 대해 당시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미인도’(29Ⅹ26㎝)는 진짜이며 현대미술관이 현재 소장하고 있다”면서 “한국화 위조범과 현대 미술관 중 어느 쪽을 믿느냐”고 반문했었다. 천 화백은 “자기 자식을 몰라보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후속 조치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한국과학기술원에 작품 감정을 의뢰했고 한국화랑협회에서는 진품이라는 감정을 내렸다. 당시 화백은 창작자의 증언을 무시한 채 가짜를 진품으로 오도하는 화단 풍토에선 창작행위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다며 붓을 놓고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직도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천 화백은 ‘자기 그림도 몰라보는 정신 나간 작가’라는 불명예를 안았고 엄청난 정신적 고초를 겪었다. 천 화백의 둘째딸 김정희씨는 당시 “위작 시비는 언젠가는 밝혀질 자명한 사건”이라며 “위작 여부의 진실이 밝혀지겠지만, 국가기관이나 특정 이익단체가 조직적으로 나서 일평생 외골수로 작업한 화가의 작가 정신을 말살하는 사건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천경자 별세, 위작 시비 일자 “대한민국 예술원 탈퇴하고 붓 놓겠다” 왜?

    천경자 별세, 위작 시비 일자 “대한민국 예술원 탈퇴하고 붓 놓겠다” 왜?

    천경자 별세, 위작 시비 일자 “대한민국 예술원 탈퇴하고 붓 놓겠다” 왜? 천경자 별세 사망설이 꾸준히 제기된 천경자 화백이 지난 8월 이미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91세. 천 화백의 딸 이혜선씨는 지난 여름 유골함을 들고 서울시립미술관을 방문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은 2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천 화백의 딸 이씨가 몇 달 전 미술관에 유골함을 들고 수장고에 다녀갔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이씨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김 관장은 “당시 이씨가 관련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아줄 것을 강력 요청했다고 들었다”며 “개인적인 일이라 본인이 적절한 시점에 밝힐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씨의 지인은 이날 연합뉴스에 이씨로부터 “병석에 계시던 천 화백이 지난해 11월 추수감사절 이후 몸 상태가 안 좋아졌으며 지난 8월 6일 새벽 의사가 보는 가운데 돌아가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 지인은 “천 화백의 시신은 화장했고 뉴욕 성당에서 장례를 치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씨가 “같은 달 서울시에 협조를 요청한 뒤 서울시립미술관에 있는 ‘천경자 상설전시실’과 그의 작품이 보관된 수장고를 다녀왔다”며 “어머니가 아끼는 작품이 시립미술관에 있으니 가봐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씨는 이 과정에서 언론에 관련 사실을 알리지 말아줄 것을 당부했다고 그는 말했다. 꽃과 여인의 화가로 불리는 천 화백은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후 거동을 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큰딸 이씨의 간호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와 접촉을 끊은 천 화백은 의식은 있는 상태라는 것이 이씨를 통해 그동안 미술계에 알려져 온 사실이다. 미술계에선 천 화백이 길게는 10여 년 전 이미 사망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성 소문이 무성하게 돌았다. 지난해에는 대한민국예술원이 천 화백의 근황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2월부터 수당 지급을 잠정 중단했고 이씨는 이에 반발해 탈퇴서를 제출했다. 예술원은 이씨에게 공문을 보내 천 화백의 의료 기록 등을 요구했으나 이씨는 이런 예술원의 요구가 천 화백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응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본인 의사를 알 수 없는 예술원으로선 탈퇴 처리를 하지 않았으며 현재 인터넷 홈페이지에선 미술 분야 회원으로 소개하고 있다. 예술원은 그간 천 화백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려 했으나 직접적인 확인은 하지 못했다. 천 화백은 1998년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고 뉴욕으로 떠났다. 딸 이씨는 천 화백이 서울시에 기증했던 작품이 관리 소홀로 훼손됐다며 93점을 반환할 것을 2013년 요구하기도 했다. 천 화백은 여인의 한(恨)과 환상, 꿈과 고독을 화려한 원색의 한국화로 그려 1960~1980년대 국내 화단에서 여류화가로는 보기 드물게 자신의 화풍을 개척했고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폭넓게 활동했던 ‘스타’ 화가였다. 그러나 여인의 모습을 그린 ‘미인도’를 둘러싸고 1991년에 일어난 위작시비는 천 화백 노년의 최대 시련으로 심적 충격 속에 절필을 선언한 바 있다. 미인도 위작 논란은 1991년 4월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천경자의 작품에 대해 작가가 직접 위작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어깨에 나비가 앉은 여성 인물화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움직이는 미술관’ 전시에 포함됐다. 이 작품의 아트 포스터(복제품)를 본 친지에게서 “복제품이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천 화백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과 복제품을 검토해 자신의 그림이 아니라는 주장을 했다. 이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세상에 드러났고 국립현대미술관은 그림의 제작연도부터 소장경위 등을 추적해 진품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1999년 고서화 위작 및 사기판매사건으로 구속된 위조범 권모씨가 검찰 수사과정에서 “화랑을 하는 친구의 요청에 따라 소액을 받고 달력 그림 몇 개를 섞어서 ‘미인도’를 만들었다”고 말하면서 위작 시비가 재연됐다. 이에 대해 당시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미인도’(29Ⅹ26㎝)는 진짜이며 현대미술관이 현재 소장하고 있다”면서 “한국화 위조범과 현대 미술관 중 어느 쪽을 믿느냐”고 반문했었다. 천 화백은 “자기 자식을 몰라보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후속 조치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한국과학기술원에 작품 감정을 의뢰했고 한국화랑협회에서는 진품이라는 감정을 내렸다. 당시 화백은 창작자의 증언을 무시한 채 가짜를 진품으로 오도하는 화단 풍토에선 창작행위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다며 붓을 놓고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직도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천 화백은 ‘자기 그림도 몰라보는 정신 나간 작가’라는 불명예를 안았고 엄청난 정신적 고초를 겪었다. 천 화백의 둘째딸 김정희씨는 당시 “위작 시비는 언젠가는 밝혀질 자명한 사건”이라며 “위작 여부의 진실이 밝혀지겠지만, 국가기관이나 특정 이익단체가 조직적으로 나서 일평생 외골수로 작업한 화가의 작가 정신을 말살하는 사건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천경자 별세, 위작시비에 “예술원 탈퇴하고 붓 놓겠다” 대체 왜?

    천경자 별세, 위작시비에 “예술원 탈퇴하고 붓 놓겠다” 대체 왜?

    천경자 별세, 위작시비에 “예술원 탈퇴하고 붓 놓겠다” 대체 왜? 천경자 별세 사망설이 꾸준히 제기된 천경자 화백이 지난 8월 이미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91세. 천 화백의 딸 이혜선씨는 지난 여름 유골함을 들고 서울시립미술관을 방문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은 2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천 화백의 딸 이씨가 몇 달 전 미술관에 유골함을 들고 수장고에 다녀갔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이씨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김 관장은 “당시 이씨가 관련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아줄 것을 강력 요청했다고 들었다”며 “개인적인 일이라 본인이 적절한 시점에 밝힐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씨의 지인은 이날 연합뉴스에 이씨로부터 “병석에 계시던 천 화백이 지난해 11월 추수감사절 이후 몸 상태가 안 좋아졌으며 지난 8월 6일 새벽 의사가 보는 가운데 돌아가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 지인은 “천 화백의 시신은 화장했고 뉴욕 성당에서 장례를 치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씨가 “같은 달 서울시에 협조를 요청한 뒤 서울시립미술관에 있는 ‘천경자 상설전시실’과 그의 작품이 보관된 수장고를 다녀왔다”며 “어머니가 아끼는 작품이 시립미술관에 있으니 가봐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씨는 이 과정에서 언론에 관련 사실을 알리지 말아줄 것을 당부했다고 그는 말했다. 꽃과 여인의 화가로 불리는 천 화백은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후 거동을 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큰딸 이씨의 간호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와 접촉을 끊은 천 화백은 의식은 있는 상태라는 것이 이씨를 통해 그동안 미술계에 알려져 온 사실이다. 미술계에선 천 화백이 길게는 10여 년 전 이미 사망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성 소문이 무성하게 돌았다. 지난해에는 대한민국예술원이 천 화백의 근황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2월부터 수당 지급을 잠정 중단했고 이씨는 이에 반발해 탈퇴서를 제출했다. 예술원은 이씨에게 공문을 보내 천 화백의 의료 기록 등을 요구했으나 이씨는 이런 예술원의 요구가 천 화백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응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본인 의사를 알 수 없는 예술원으로선 탈퇴 처리를 하지 않았으며 현재 인터넷 홈페이지에선 미술 분야 회원으로 소개하고 있다. 예술원은 그간 천 화백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려 했으나 직접적인 확인은 하지 못했다. 천 화백은 1998년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고 뉴욕으로 떠났다. 딸 이씨는 천 화백이 서울시에 기증했던 작품이 관리 소홀로 훼손됐다며 93점을 반환할 것을 2013년 요구하기도 했다. 천 화백은 여인의 한(恨)과 환상, 꿈과 고독을 화려한 원색의 한국화로 그려 1960~1980년대 국내 화단에서 여류화가로는 보기 드물게 자신의 화풍을 개척했고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폭넓게 활동했던 ‘스타’ 화가였다. 그러나 여인의 모습을 그린 ‘미인도’를 둘러싸고 1991년에 일어난 위작시비는 천 화백 노년의 최대 시련으로 심적 충격 속에 절필을 선언한 바 있다. 미인도 위작 논란은 1991년 4월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천경자의 작품에 대해 작가가 직접 위작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어깨에 나비가 앉은 여성 인물화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움직이는 미술관’ 전시에 포함됐다. 이 작품의 아트 포스터(복제품)를 본 친지에게서 “복제품이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천 화백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과 복제품을 검토해 자신의 그림이 아니라는 주장을 했다. 이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세상에 드러났고 국립현대미술관은 그림의 제작연도부터 소장경위 등을 추적해 진품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1999년 고서화 위작 및 사기판매사건으로 구속된 위조범 권모씨가 검찰 수사과정에서 “화랑을 하는 친구의 요청에 따라 소액을 받고 달력 그림 몇 개를 섞어서 ‘미인도’를 만들었다”고 말하면서 위작 시비가 재연됐다. 이에 대해 당시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미인도’(29Ⅹ26㎝)는 진짜이며 현대미술관이 현재 소장하고 있다”면서 “한국화 위조범과 현대 미술관 중 어느 쪽을 믿느냐”고 반문했었다. 천 화백은 “자기 자식을 몰라보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후속 조치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한국과학기술원에 작품 감정을 의뢰했고 한국화랑협회에서는 진품이라는 감정을 내렸다. 당시 화백은 창작자의 증언을 무시한 채 가짜를 진품으로 오도하는 화단 풍토에선 창작행위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다며 붓을 놓고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직도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천 화백은 ‘자기 그림도 몰라보는 정신 나간 작가’라는 불명예를 안았고 엄청난 정신적 고초를 겪었다. 천 화백의 둘째딸 김정희씨는 당시 “위작 시비는 언젠가는 밝혀질 자명한 사건”이라며 “위작 여부의 진실이 밝혀지겠지만, 국가기관이나 특정 이익단체가 조직적으로 나서 일평생 외골수로 작업한 화가의 작가 정신을 말살하는 사건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군단 중심 정예화… 전면전 선제 대응

    군단 중심 정예화… 전면전 선제 대응

    국방부가 6일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발표한 국방개혁 기본 계획의 골자는 육군을 군단 중심으로 정예화하고 해·공군의 전력은 강화한다는 것이다. 북한과의 전면전에 대비해 선제적 대응 조치를 강화한다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예산 확보의 실효성과 귀찮은 세부 과제를 차기정부로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육군의 작전수행체계가 야전군사령부(15만~20만명 규모)에서 전방 군단(4만~5만명 규모) 중심으로 바뀌고 군단장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이 이번 개혁안의 핵심이다. 군은 현재 미국과 협의 중인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 이뤄지면 1, 3(야전)군 사령부를 지상작전사령부(지작사)로 통합할 것이라고 밝혔다. 병력 감축에 맞춰 2026년까지 군단을 8개에서 6개로, 사단을 42개에서 31개로, 기갑·기계화보병 여단을 23개에서 16개로 줄인다. 대신 군단에 공군요원들로 구성된 항공지원작전본부(ASOC)를 편성해 군단장이 지상전투 때 공군의 지원을 직접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1개 군단의 작전 책임지역 면적도 현재 가로 30㎞×세로 70㎞이지만 이를 가로 60㎞×세로 120㎞로 3~4배 확대한다. 이 밖에 군단별로 독립 작전을 할 수 있도록 항공단, 방공단, 공병여단, 정보통신단을 편성할 계획이다. 지작사가 창설되면 현재 8명인 대장(4성장군)은 7명으로 줄어든다. 대신 전작권이 전환된 이후 합참의장을 보좌하는 합참차장(중장)이 1명에서 2명으로 늘어난다. 해군 병력은 4만 1000명을 유지하되 3000t급 잠수함을 갖춘 잠수함사령부가 편성된다. 해병대 예하에는 제주도 통합방위작전을 수행할 9해병여단(제주부대)이 창설된다. 하지만 해군은 현재 3척인 이지스함을 6척으로 늘릴 계획이라 여전히 4000여명의 병력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된다. 6만 5000명의 병력을 유지하는 공군에는 한반도 상공 위성으로 감시임무를 수행하는 위성감시통제대가 설치된다. 군 당국은 2022년까지 북한 전역을 감시 정찰할 수 있는 다목적 실용위성 5기를 확보할 계획이다. 하지만 군 당국은 올해부터 2022년까지 육군병력 11만 1000명을 줄이면서 2018년까지 병 3만명을 줄이고 부사관을 1만 5000명 증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2018년까지 1만 5000명만 감축하고 2019년부터 4년간 9만 6000명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2018년 이후 출범할 차기 정부에 병력 감축 부담을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관진 장관이 이명박 정부 시절 소신 있게 추진한 육·해·공군 참모총장에게 군령권을 부여한다는 상부지휘구조 개편안이 군 내부의 반대로 빠져 개혁 후퇴 논란도 일고 있다. 군은 개혁안 실행을 위해 2018년까지 5년간 전력운영비 144조 3000억원, 방위력개선비 70조 2000억원 등 214조 5000억원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국방예산이 연평균 7.2% 이상 증액돼야 한다고 주장하나 정부의 국가재정운용계획과 복지예산 확대 등을 볼 때 실효성에 의문이 일고 있다. 올해 국방예산 증가율은 지난해 대비 4%이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은 “예산, 병력 감축 시기 등을 종합해 볼 때 계획만 세우고 귀찮은 과제는 다음 정부로 미루겠다는 개혁의 총체적 후퇴”라고 지적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국민화가 박수근 작품 120점 한자리에

    국민화가 박수근 작품 120점 한자리에

    딸에게 동화책을 사 줄 돈이 없던 화가는 직접 그림을 그려 책을 만들었다.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귀가할 때는 어김없이 군고구마와 오징어, 엿가락이 손에 들려 있었다. 큰 딸인 박인숙(71)작가가 떠올린 ‘국민화가’ 박수근(1914~1965)의 모습이다. 하지만 가장 서민적이라던 박수근의 작품은 2007년 경매에서 무려 45억 2000만원에 낙찰됐다. 한때 위작 논란으로 세상을 뜨겁게 달궜던 ‘빨래터’(1959년 추정)다. 그의 작품은 지난해 기준 우편엽서 한 장 크기인 호당 가격이 3억원에 근접했다. 박인숙 작가는 “아버지는 생전엔 단돈 100만원도 손에 못 쥔 분인데 그림들이 억대에 팔린다니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그도 시집갈 때 어머니에게서 받은 8호 크기의 그림이 아버지 유품의 전부다.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졸업 학력이 전부인 박수근은 6·25전쟁 중 월남해 미군부대 PX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일로 생계를 꾸렸다. 그림에 대한 열정을 꺾지 않고 마티에르 기법으로 서민의 삶을 담백하게 화폭에 담아냈다. 절구질하는 여인, 광주리를 이고 가는 여인, 길가의 행상들, 아기를 업은 소녀 등이다. 박수근은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하다가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수채화 ‘봄이 오다’를 출품, 입선하며 화단에 등단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는 오는 17일부터 3월 16일까지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이어 간다. 이번 전시에서는 박수근의 유화 90여점과 수채화·드로잉 등 120여점이 선보인다. 역대 최대 규모다. 대표작인 ‘빨래터’를 비롯해 화집에서만 볼 수 있던 ‘노인과’ 소녀’(1959년), ‘귀로’(1964년), ‘고목과 행인’(1960년대) 등을 직접 만날 수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낙찰가 87억원 ‘소동파 붓글씨’ 위작 논란

    낙찰가 87억원 ‘소동파 붓글씨’ 위작 논란

    지난 9월 소더비 경매에서 820만 달러(약 87억원)에 낙찰돼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중국 송나라 시대 대문호 동파(東坡) 소식(蘇軾·1037~1101)의 붓글씨 작품이 진품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2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번 파문은 상하이박물관 소속 전문가 3명이 소식이 지인에게 작별을 고하는 내용의 서예 작품 ‘공보태의’(功甫泰議)가 소더비 경매에 등장, 고가에 낙찰됐지만 감정 결과 위작이라고 주장하면서 빚어졌다. 전문가들은 상하이 신민만보와의 회견에서 이같이 주장하고, 이 작품을 가짜라고 감정하게 된 구체적 내용을 담은 연구 보고서를 조만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소더비 측은 성명을 통해 “시대의 걸작이라고 극찬받은 이 작품이 진품이라는 점을 확실히 한다”고 반박했다. 이런 가운데 이 작품을 사들인 중국의 유명 수집가 류이첸은 WSJ 인터뷰와 자신이 소유한 박물관 명의 성명을 통해 “상하이박물관 측의 주장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액을 들여 이 작품을 사서 중국으로 다시 가져왔는데 그것이 위작이라고 한다면 등 뒤에서 욕하는 대신 그 사실을 일찍 알려줬어야 했다”고 발끈했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다시 주목받는 박정희 前대통령 유품

    다시 주목받는 박정희 前대통령 유품

    미술계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나 유품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최근 친필 휘호인 ‘독서하는 국민’(1970)이 위작 논란을 불러온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부친인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기 때문이다.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갤러리는 13일부터 역대 대통령 휘호전을 개최하면서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휘호를 함께 내놓았다. 새마을 운동의 기조가 된 ‘조국근대화’(1965)부터 ‘우리들의 후손들이’(1967), ‘개척과 전진’(1970), ‘충성은 금석을 뚫는다’(1971) 등 박 전 대통령의 휘호 10여점이 관심을 끈다. 시해되기 한달여 전 남긴 ‘민족정기의 전당’(1979)도 공개됐다. 미술계에서 박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정치 이념을 휘호로 가장 잘 드러낸 이로 평가된다. 지금까지 공개된 박 전 대통령의 휘호나 현판은 1200개에 이른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은 숫자다. 성윤진 롯데갤러리 책임 큐레이터는 “박 전 대통령의 경우 휘호를 쓴 연도와 날짜가 기록된 참조문헌도 있다”고 밝혔다. 미술품 경매사인 아이옥션도 오는 18일 박 전 대통령과 이현진 장군이 1974~1978년 주고받은 서신을 경매한다. 또 다른 경매사인 마이아트옥션은 20일 경매를 앞두고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쓴 시조 형식의 ‘한산섬: 친필시고’를 공개했다. 1970년 충무공 탄신 425주년을 맞아 시조작가협회에서 발간한 기념 시조집에 실린 박 전 대통령의 친필 한글 원고다. 이는 친필로 쓴 유일한 시 작품으로 추정되며 경매 최저가는 2000만원으로 잡혔다. 미술시장에서 전직 대통령의 휘호에 대한 선호도는 박정희, 이승만, 김대중, 김영삼, 윤보선 전 대통령 순으로 알려졌다. 미술시가감정협회가 2006~2012년 집계한 기록에 따르면 휘호 거래 총액은 박정희(9억 230만원), 이승만(5억 1550만원), 김대중(1억 9463만원) 전 대통령 순으로 높았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책꽂이]

    근대영국헌정 (이태숙 지음, 한길사 펴냄) 헌정사의 관점에서 영국을 살폈다. 영국인들은 스스로 세련된 맛이 부족하고 무뚝뚝하며 차가워 살갑지 않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실하고도 훌륭한 정치체제를 통해 세계 패권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는 점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대단했다. 영국 헌정체제의 가장 큰 특징은 고정된 헌법전이 없다는 점이다. 또 다른 특징이라면 텅빈 공간이다보니 논의가 확산됐고 많은 얘기들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래저래 중심을 잡아왔다는 것이다. 보수주의의 원조인 에드먼트 버크, 최초의 페미니스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등을 거쳐 영국 헌정체제를 가장 엉망으로 망쳐놨다 평가받는 마거릿 대처까지, 영국 헌정 체제에 대한 논란을 담았다. 3만원. 숫자의 문화사 (하랄트 하르만 지음, 전대호 옮김, 알마 펴냄) 행운의 수, 불행의 수, 마법의 수, 성스러운 수. 그냥 숫자에 불과할 수도 있는 수를 둘러싸고 각 문화권마다 다양한 금기나 관습을 가지고 있다. 그런 금기나 관습이 생겨나게 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숫자 개념이라는 것이 각 문화권에서 어떻게 생겨나고 자라왔는지를 추적해뒀다. 옛 아메리카, 유대인, 고대 유럽, 인도-아라비아 숫자, 중구문화권 등으로 분류되어 있다. 1만 3500원. 니체 자서전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성균 옮김, 까만양 펴냄) 니체가 예나 정신병원에 있을 1889년 직접 써서 밀반출한 뒤 1927년 영어 번역본이 출간된, 그럼에도 이런저런 사연으로 니체의 육필 원고가 분실되면서 위작논란에 휩싸인 책이다. 2만원. 코펜하겐에서 일주일을 (유승호 글, 가쎄 펴냄) 유엔이 실시하는 삶의 질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덴마크 관찰기다. 유럽은 복지 때문에 썩어 문드러지는 곳일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정치면에서는 종북좌파라 욕하고, 경제면에서는 나라 살림 거덜낼 포퓰리즘이라 씹는 보수언론도 간혹 기획특집기사에서는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곳으로 묘사하니까.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의 기준이 뭘까에 대해 먼저 얘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저자가 현지 덴마크인들에게 직접 들어서 구성했다. 1만 2000원. 실천윤리학 (피터 싱어 지음, 황경식·김성동 옮김, 연암서가 펴냄) 생명윤리 문제를 다루면서 낙태 찬성, 안락사 지지 등을 표방해 숱한 논란에 휩싸였던 저자가 윤리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해뒀다. 기후변화, 테러, 시민불복종의 문제 등을 다루면서 어떻게 하면 도덕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2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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