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의 아침] 세슘 분유의 진실/노주석 선임기자
얼마 전 한 분유업체가 거대 환경단체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이겼다는 소식이 전국 각 신문에 실렸다. 법원은 원고 일동후디스의 기업 이미지와 신뢰도가 저하되고 명예가 훼손됐으므로, 피고 환경운동연합은 위자료 8000만원을 손해배상하라는 취지로 판결했다. 기업이 환경단체에 승소하면서 위자료 배상 판결을 받아낸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공익을 목적으로 소비자 편익의 정보를 발표한 환경단체가 패소한 것은 심상치 않은 ‘사건’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환경운동연합이 시판 중인 분유 5종에 대해 방사능 검사를 의뢰한 결과 일동후디스의 산양분유 1단계에서 방사성 세슘(Cs) 137이 검출(0.391Bq/kg)됐으며 이를 유아가 먹으면 암 발생 등이 우려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지난해 8월 배포했다. 언론의 대대적인 극성 보도가 이어졌고 해당 제품의 매출이 동강 났다. 일동후디스 측은 국제 및 국내 기준치의 1000분의1에 불과한 극미량인데도 검출 사실만 강조해 기업 이미지와 회사경영에 치명적인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면서 소를 제기했다.
1년 전 일이지만 TV뉴스에서 본 장면이 생생하다. ‘아기에게 세슘 분유를 먹이고 싶지 않다’ ‘엄마, 세슘 137 먹기 싫어요’라고 적힌 피켓을 든 운동원들이 해당 분유를 바닥에 쏟아버리는 자극적인 퍼포먼스를 펼쳤다. 소비자는 감성적인 존재이다. 아기의 먹거리에 세슘이 들어 있다는 사실 자체에 불쾌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환경단체가 제 할 일을 했다고 여겼다. 특히 당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여파로 ‘세슘 공포’가 기승을 부릴 때였다. 사고 인근지역에서 생산된 쌀, 소고기, 메밀, 버섯 등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세슘이 검출됐었다. 지금도 생태 등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괴담’이 떠도는 게 현실이다.
세슘 분유의 진실은 무엇인가? 비록 1심이지만 제조업체의 승소 기사를 보고 나서 머리가 복잡해진다. 대법원 판례는 언론·출판을 통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더라도, 그것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일 때는 진실이라는 증명이 있으면 위법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설령 증명이 없다고 하더라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는 위법성이 없다고 본다. 판결문을 찬찬히 읽어 보면 법원은 환경운동연합 폭로의 공익성은 인정하되, 진실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과학적 사실이 진실임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기자는 지난해 10월 ‘기준치에 관한 불편한 진실’이란 칼럼을 통해 식품과 관련된 모든 유해물질의 완벽한 기준치를 제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며, 이러한 기준치에 관한 불편한 진실에 편승해 소비자의 불안심리를 부추기는 이른바 ‘기준치 포퓰리즘’은 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도 같은 취지라고 본다. 그러나 소비자의 알 권리가 침해받았으며, 세슘 분유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환경운동연합은 항소할 모양이다. 지루한 법정 공방이 또 이어질 것 같다. 법이 정한 기준치의 안전성을 애써 외면하는 외침이 왠지 공허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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