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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행기 안전한 여행 기원 엔진 부근에 또 동전 던져…탑승객 260명 2시간 허비

    비행기 안전한 여행 기원 엔진 부근에 또 동전 던져…탑승객 260명 2시간 허비

    중국의 한 승객이 이륙 전 비행기 엔진 부근에 ‘행운의 동전´을 던졌다가 운항이 중단되는 사건이 또 발생했다. 최근 중국 차이나데일리는 지난 10일 산둥성 지난 야오창 국제공항에서 쓰촨성 청두로 가려던 샹펑항공(祥鵬航空·Lucky Air) 여객기 8L9616편이 승객의 어이없는 행동 때문에 2시간가량 이륙이 지연됐다고 보도했다. 이날 사건은 승객들의 어이없는 행동 때문에 벌어졌다. 보도에 따르면 20대 중반의 여성 승객 2명이 탑승 전 제트브리지(탑승교)와 비행기 사이로 안전한 여행을 기원하며 소위 ‘행운의 동전´을 던졌다. 이에 항공사 측은 승객의 안전을 위해 여객기 재점검을 진행했고 결과적으로 탑승객 260명이 2시간가량 기내에서 발이 묶였다. 샹펑항공 측은 “승객 2명이 1위안짜리 동전을 비행기로 던졌고 이를 목격한 직원이 공항경찰에 신고했다”면서 “승객들이 던진 동전은 다행히 비행기 재점검 과정 중 회수됐다”고 밝혔다. 중국에서 비행기에 동전을 던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지난달 17일에는 안후이성 안칭 공항에서 윈난성 쿤밍으로 가기 위해 이륙을 준비하던 샹펑항공 8L9960편의 왼쪽 엔진 근처에서 두 개의 동전이 발견돼 비행이 취소됐다. 조사 결과 동전을 던진 사람은 남성 승객 루로, 비행 안전을 위해 동전을 던진 사실을 시인했다. 또 2017년 6월에도 상하이푸둥국제공항에서 80세 여성이 안전한 비행을 기원하며 남방항공 여객기에 동전을 던져 이륙이 5시간가량 지연됐었다. 현지 언론은 항공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동전이 항공기 엔진에 빨려 들어가면 속도가 떨어지고 심지어 공중에서 멈출 수도 있다”면서 “항공기에 동전을 던지는 것은 행운은커녕 모든 승객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경고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조센징, 꼬레아노 그리고 한국인 - 인천 한국이민사박물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조센징, 꼬레아노 그리고 한국인 - 인천 한국이민사박물관

    # 이민의 역사 :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 항으로 떠나다. “나두야 가련다. / 나의 이 젊은 나이를 / 눈물로야 보낼거냐.”<박용철, 떠나가는 배 中에서, 1930> 시인 박용철(1904-1938)은 일제강점기 당시 조국을 떠나야 되는, 떠날 수 밖에 없는 조선 젊은이들의 눈물을 <떠나가는 배>를 통해 잘 드러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해외 이주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 되었는 데, 재외한인으로서의 첫 해외 이주 공식 기록은 1903년 1월 13일로 남아 있다. 당시 101명의 조선인들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이민'의 형태가 아니라 ‘계약 노동자’의 신분으로 호놀룰루 항에 도착하였고 이후 1905년까지 약 7,226명의 조선인들이 미국으로 건너갔다. 물론 1800년대 후반부터 많은 조선인들이 삶의 터전을 찾아 유랑민의 형태로 만주나 연해주, 러시아 등지로 이주한 비공식적인 기록도 남아있다. 격동하던 20세기 초 조국을 떠나야 했던 우리 민족의 아픔을 기억하는 곳, 인천의 한국 이민사 박물관이다.우리나라의 이민의 역사는 크게 4단계로 나뉠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바로 1860년대부터 한일강제병합이 일어난 1910년까지다. 이 시기는 구한말의 농민, 노동자, 동학 농민 운동에 참가했던 수많은 민중들이 기근, 빈곤, 압정을 피해 만주, 연해주, 하와이, 멕시코, 쿠바로 경제유민(流民)의 형태로 이주하였다. 이중 중남미로의 이주는 1905년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에네켄 농장의 계약 노동자로 1,033명이 떠난 것이 시작이며, 이들 중에서 300여명이 다시 1921년에 경제난을 피해 쿠바로 재이주한 기록이 남아있다.하지만, 본격적인 재외 한인 이주는 일제 강점기 시기인 1910년부터 1945년까지로 본다. 바로 두 번째 시기다. 이 시기에는 일제로부터 토지와 생산수단을 빼앗긴 농민과 노동자들이 만주와 일본으로 대거 이주하였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난민들과 독립 운동가들이 중국, 러시아, 미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특히 1931년의 만주사변과 1932년의 만주국 건설을 계기로 일제는 만주 지역에 25만명에 이르는 한인들을 강제로 집단이주시킨다. 또한 일본에는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을 계기로 대규모 한국인들이 광산, 전쟁터로 강제 이주를 하였는데, 1945년 8월까지 약 230만 명이 이주하였다. 이후 일본의 패전이후 한인들이 조국으로 귀환하자 급속히 감소하여 1947년에는 598,507명으로 급감하였다. # 나라 잃은 딸들의 절규, 8만 명이 종군위안부의 이름으로 이중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한 페이지가 등장한다.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을 개시하면서 전선확대에 따른 병력과 일본 본토의 전시산업을 지탱할 노동력 확보가 필요하게 되자 1938년 4월에 국가총동원법을 발표한다. 바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1945년까지 조선인 노동자징발과 학도징용이 이루어졌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강제 연행된 조선인 숫자만 724,787명에 이르고 여기에 군인, 군속 365,263명을 합하면 조선인 강제연행자 수는 100만 명을 훨씬 뛰어넘는다. 물론 공식적인 기록이어서 실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인원들이 강제 이주된 것으로 추정된다.그런데 당시 일제는 ‘여성자원봉사대’라는 명목으로 20만 명의 여성을 전시 준비에 동원하였다. 이 중에서 소위 ‘종군위안부’로 강제 동원된 여성이 공식 기록으로만 8만 명에 이른다. 따라서 ‘종군위안부’ 이주 기록은 우리 민족에게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될 해외 강제 이주 역사의 가장 비극적인 형태로 남아 있다. 재외 한인 이주 세 번 째시기는 1945년부터 1962년까지다. 이 시기에는 한국전쟁을 전후해서 발생한 전쟁고아, 미군과 결혼한 여성, 혼혈아, 학생 등이 입양, 가족재회, 유학 등의 목적으로 미국 또는 캐나다로 이주하였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시기는 1962년부터 현재까지다. 1962년에 한국정부는 남미, 서유럽, 중동, 북미로 집단이민과 계약이민을 시작하였는데, 최초의 집단이민은 1963년 브라질로 103명의 농업 이민자들이 떠난 것이었다. 이후 독일로의 광부, 간호사 이민, IMF 외환위기 시절의 이민, 최근의 취업 이민 등으로 해외 이주의 역사는 계속 이루어져 오고 있다.바로 이러한 재외 한인 이주 역사의 기록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 바로 인천에 위치한 이민사박물관이다. 우리나라 첫 공식 이민의 출발지였던 인천에 2008년 지하 1층, 지상 3층, 연건축면적 4천100㎡ 규모로 만들어진 이민사박물관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100년의 재외 한인들의 고단한 이민 역사를 잘 담아 놓고 있다. <인천 이민사박물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월미도에 갈 일이 있다면 시간을 내어서라도 한 번쯤은 방문해도 좋다. 역사적인 의미가 풍부한 곳이다. 2. 누구와 함께? - 가족 단위 방문. 3. 가는 방법은? - 지하철 인천역 하차→ 버스 45번 승차→ 해사고등학교 앞 하차 4. 감탄하는 점은? - 생각보다 오래된 이민 역사. 특히 일제 강점기 시절의 강제 동원 역사.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특색있는 박물관으로서 의미가 풍부한 곳인데 비하여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일제 강점기 시절 강제 이주한 우리 민족의 역사. 우토로의 사진들.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박물관 바로 앞이 월미도 관광지구다. 많은 식당과 횟집, 카페들이 있어 먹거리 걱정은 없다.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icmuseum.incheon.go.kr/articles/13446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월미도 관광지구, 차이나 타운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던 우리 민족의 아픈 삶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지금은 재외국민이 해외에 거주하더라도 한국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 선거를 할 수 있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고종은 망국 책임자… 대중문화가 돈벌이 위해 역사왜곡”

    “고종은 망국 책임자… 대중문화가 돈벌이 위해 역사왜곡”

    ‘시대를 잘못 타고난 개혁군주 고종(1852~1919), 조선을 지키려다가 억울하게 살해된 명성황후(1851~1895), 일본에 끌려온 조선인에게 독립의식을 키워 준 덕혜옹주(1912~1989).’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지금 대한민국의 영화와 드라마, 소설, 뮤지컬이 보여 주는 조선 황실 인물의 모습이다. 이들은 열강의 조선 침탈 압박에도 나라를 구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것으로 그려진다. 문제는 이런 내용이 대부분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일부 문화계가 돈벌이를 위해 부끄러운 우리 역사까지 항일이라는 이름으로 세탁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문화 콘텐츠의 특성상 어느 정도 자유로운 상상이 허용되지만 일부 작품은 가히 역사 창조 수준”이라고 비판한다. 조선 황실의 과오를 희석시키고자 망국의 책임을 일본에게 모두 전가하는 ‘분노 마케팅’의 산물이라는 설명이다. 우리는 일본이 위안부 강제 동원 책임을 인정하지 않아 “역사 왜곡을 일삼는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우리 역시 또 다른 의미의 ‘역사 왜곡’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조선 황실 남성들 日장교 돼 일왕에 충성” 지난해 큰 인기를 얻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조선의 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제인 고종은 항일 운동 자금을 지원하고 의병과 긴밀히 소통하는 ‘우국(憂國) 군주’의 모습으로 나왔다. 이태진(76)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도 “개혁가로서 그의 진면목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패하기는 했지만 광무개혁(1896~1904) 등을 통해 청과 일본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주국가를 만들려고 애썼다는 설명이다. 이런 이미지는 다양한 작품에 투영돼 고종을 ‘비운의 군주’로 인식하게 만든다. 하지만 학계 대다수는 이런 현상에 매우 회의적이다. 다른 나라들이 입헌군주제로 전환해 민주주의로 나아갈 때 오직 고종만이 조선을 전제군주제로 되돌려 망국을 재촉했기 때문이다. 청일전쟁(1894~1895) 때는 미국 공사관으로, 러일전쟁(1904~1905) 땐 프랑스 공사관으로 피신하며 비싼 대가를 치렀다. 갑신정변(1884)과 을미사변(1895) 등 변고가 생길 때마다 자신을 외세에 의탁하기 바빴다. 1898년 독립협회가 의회 개설 등 개혁을 요구하자 세계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이들을 탄압한 것도 큰 과오다. 당시 조선사회를 기록한 외국인들도 그를 ‘무능한 군주의 전형’으로 여겼다. 1910년 중국의 대표적 개혁가 량치차오(1873~1929)는 “조선 멸망의 최대 원인은 궁정 자체에 있었다”고 개탄했다. 조선이 입헌군주제 국가로 탈바꿈하지 못해 세계 발전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고 이로 인해 결국 일본에 병합됐다는 것이다. 망국의 가장 큰 책임이 왕 자신에게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무엇보다 고종은 자신의 안녕을 위해 조선 민족 전체를 일본에 넘긴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13일 “고종과 황실은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지키고자 조선의 식민지화에 앞장서 협력했다”며 “조선 황실은 식민지 기간 내내 (백성의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이 제공하는 특권을 누렸다. 이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반민족 행위”라고 꼬집었다.실제로 조선 황실은 1910년 경술국치 뒤로 별다른 국권 회복 노력에 나서지 않았다. 이들은 일본으로부터 ‘이왕가’(李王家)로 책봉된 뒤 막대한 재정 지원을 받으며 살았다. 경술국치 때 작성된 한일병합조약에는 조선 황실의 지위를 보장하기 위한 조문이 빼곡히 담겨 있다. 황실 인사들은 일본식 고등교육을 받았고 특히 남성들은 일본군 장교가 돼 일왕에 충성했다. 그나마 1919년 의친왕 이강(1877~1955)이 중국 상하이로 망명을 시도한 것이 유일한 항일 운동이었다. 3·1운동 시위에 참가한 학생의 기록에는 “주민들은 가난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데 (고종 사망을 계기로) 그간 조선 황실이 너무도 호화롭게 지내 온 사실을 알게 돼 크게 실망했다”고 나온다. ●백성들에게 ‘늙은 여우’로 조롱받은 명성황후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대사로 유명한 명성황후 역시 매스컴에 의해 이미지가 조작된 대표적 황실 인사다. 일부 문화계 인사들은 그를 ‘조선의 잔다르크’로 칭송한다. 국민들의 인식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개인적 원한 때문에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1821~1898)과 권력 다툼을 벌여 많은 사람을 희생시켰고 무속 신앙에 심취해 국가 재정을 파탄 낸 ‘세기의 악녀’로 평가한다. 일부에서는 그가 “조선의 국가 규모를 감안할 때 프랑스의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를 넘어서는 사치를 부렸다”고 지적한다. 1895년 시해 때 일본 자객들은 명성황후를 ‘늙은 여우’라고 칭했는데, 이는 일본인이 만든 별명이 아니다. 조선 민중들이 그의 악행에 분노해 스스로 지어낸 것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명성황후는 소설과 드라마, 영화, 뮤지컬, 무용, 뮤직비디오 등에서 조선을 지키려고 싸우다가 희생된 애국자로 등장한다. 그의 최후가 너무 비극적이어서 대중의 안타까움이 과잉 이입된 탓이다. 역사 전공자들은 “(그런 사정을 감안해도) 명성황후 미화가 도를 넘었다”고 비판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문화평론가는 “명성황후가 대중에게 좋은 이미지로 포장된 것은 2001년 KBS에서 그의 삶을 드라마로 방영하면서부터다. 국민에게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전달해야 할 공영방송이 되레 망국의 주범을 구국의 위인으로 탈바꿈시켰다. 제대로 된 고증 없이 시청률 지상주의에 매몰돼 ‘조선은 선(善), 일본은 악(惡)’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문화 콘텐츠를 생산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덕혜옹주 조선에 살 때부터 기모노 입어” 2016년 개봉 당시 600만명 가까운 관객을 모은 영화 ‘덕혜옹주’도 역사 왜곡 논란으로 입방아에 올랐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인 이덕혜는 1912년 고종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1925년 강제로 일본 유학을 떠났고 1931년 쓰시마번주 귀족과 원치 않는 결혼을 했다. 1962년 정신질환 상태로 한국에 돌아와 1989년 창덕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인간 이덕혜’는 분명 우리 역사의 안타까운 희생물이다. 영화 속 그는 시대 상황을 마음 깊이 고민하고 일제에 지속적으로 저항했다. 일본 옷 입기를 거부하고 조선인 유학생들과 항일 교류 모임을 가졌다. 일본에 끌려온 조선인 노동자들을 격려하는 연설도 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돕고자 중국 상하이 망명도 추진했다. 그러다가 일제의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정신병을 얻어 힘든 말년을 보냈다. 하지만 실제 덕혜는 조선에 살 때부터 기모노를 입었다. 정신질환도 일본의 압박이 본격화되기 전인 10대 때 나타났다. 그가 일본에서 독립운동에 나섰다는 기록이나 증거는 없다. 영화 속 내용은 모두가 원작소설 ‘덕혜옹주’를 바탕으로 허진호 감독이 머릿 속에서 만든 상상의 소산이다. 역사소설가 이원규(72)씨는 “대중 문화계에 근대 역사 왜곡이 심각하다. 어떤 작품에서는 살아있는 왕에 대해 ‘우리 고종께서…’라며 묘호(죽은 뒤 왕에게 내려지는 이름)를 썼다”면서 “최소한의 지식도 없는 작가들이 역사의 궤를 반대 방향으로 돌려 놓으려는 듯한 콘텐츠를 생산해 우려스럽다. 문화계 내부에 문제의식은 있지만 ‘동업자 정신’ 때문에 비판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단독] 정부 “日 경제보복 땐 맞보복 대응”

    [단독] 정부 “日 경제보복 땐 맞보복 대응”

    예상 시나리오·보복리스트 등 점검일본 정부 관료로는 처음으로 아소 다로 부총리가 대법원 강제징용 및 위안부 판결을 둘러싼 자산압류 및 매각에 대한 보복으로 송금 및 비자 발급 정지를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정부도 맞대응을 포함한 대응책 마련에 착수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13일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응해 예상되는 보복리스트를 검토했으며 우리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지난 12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 등 관련부처 관계자가 비공개로 모여 최악의 상황을 포함한 예상 시나리오 등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일본이 사용할 수 있는 경제보복 수단을 일일이 리스트로 만들어 가능성을 검토하는 한편 이에 따른 대책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언론은 대법원 판결에 대항해 100여개 한국 상품을 대상으로 한 보복관세 검토,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불화수소’ 등 핵심 물자에 대해 한국 수출 금지, 한국 송금 및 비자발급 정지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부는 그동안 일본의 움직임과 관련해 즉각적인 대응을 자제했지만 일본 정부의 고위 관료 입에서 직접 구체적인 보복 관련 언급이 나오면서 대응 수위를 높였다. 일본 언론 등에 따르면 아소 부총리는 지난 12일 중의원 재무금융위원회에서 강제징용 배상 판결 관련 일본 기업의 자산압류에 대항해 “관세뿐만 아니라 송금 정지, 비자 발급 정지 등 다양한 보복조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는 확전은 원하지 않지만 한국 상품이나 관광객 등에 대한 불합리한 조치가 취해진다면 맞보복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방침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일본에서 경제 보복을 운운하지만 우리한테 통보한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외교부도 14일 열리는 한일 국장급 협의에서 일본의 움직임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고 역사문제와 미래지향적 관계를 분리해야 한다는 방침을 강조할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역시 경제보복을 감행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아소 부총리는 한국에 취하는 조치와 관련된 정책라인에 있지 않다”며 “송금·비자 금지는 현실성이 없어서 일본이 선택지에 올릴 수 없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일본으로서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특정국의 출입국 심사를 강화하는 부담을 감수하기 힘든 상황인 데다 비자발급 제한도 손해가 더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7년 일본을 찾은 한국 관광객은 714만명으로 한국을 찾은 일본인(231만명)의 3배가 넘는 상황이다. 서울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경제 허리’ 3040은 24만명 ‘뚝’… 노인 일자리, 절반 이상 임시직

    ‘경제 허리’ 3040은 24만명 ‘뚝’… 노인 일자리, 절반 이상 임시직

    60대 이상 39만명 늘어… 재정투입 효과 제조업 15만명·도소매업 6만명 급감해 체감실업률 ‘최악’… “고용 한파 진행중”지난달 노인 취업자가 36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났다. 세금으로 만든 단기 일자리 효과다. 우리 경제의 허리 세대인 30~40대 취업자는 줄어 ‘고용 한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취업자수 증가 폭이 13개월 만에 최대를 찍었지만 웃을 수 없는 이유다. 통계청이 13일 발표한 ‘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수는 2634만 6000명으로 1년 전보다 26만 3000명 증가했다. 지난해 1월(33만 4000명) 이후 최대다. 그러나 정부가 재정을 투입한 단기 일자리를 중심으로 취업자가 늘어났을 뿐 민간 분야 양질의 일자리가 증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 연령별로는 60대 이상 취업자가 무려 39만 7000명 늘었다. 이러한 증가 폭은 1982년 7월 통계 작성 이후 최대 규모다. 통계청이 파악한 정부의 1~2월 노인 대상 36시간 미만 단기 일자리 사업 규모가 25만명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늘어난 일자리의 60% 이상이 임시직인 셈이다. 반면 30대와 40대 취업자는 각각 11만 5000명, 12만 8000명 쪼그라들었다. 산업별로는 보건업·사회복지서비스업 취업자가 23만 7000명 증가해 통계 작성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농림어업 취업자도 11만 7000명 늘어 취업자 증가에 한몫 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노인 일자리 증가와 연관이 크다. 정동욱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은 “보건업·사회복지서비스업에는 노인 일자리 신청자들이 많이 유입됐고, 농림어업 취업자도 60대 이상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양질의 일자리인 제조업 취업자는 무려 15만 1000명이 줄었다. 지난해 4월부터 11개월 연속 감소세다. 도·소매업은 6만명 줄었고, 건설업도 3000명 감소했다. 숙박·음식점업 취업자가 1000명 늘어 20개월 동안 이어온 감소세가 멈춘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실업자수는 1년 전보다 3만 8000명 늘어난 130만 3000명으로 역대 세 번째로 많았다. 체감실업률을 나타내는 ‘고용보조지표3’은 13.4%로 1년 전보다 0.7% 포인트 상승했다. 청년층(15~29세) 고용보조지표3도 24.4%로 1.6% 포인트 올랐다. 이는 모두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15년 이후 가장 높은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취업자수 증가는 대부분 60대 이상으로 정부의 재정 효과로 보여 국민들이 체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전반적으로 고용 상황이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세종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여기는 중국] 20대 승객, 여객기에 또 ‘행운의 동전’ 투척…대형 참사 날뻔

    [여기는 중국] 20대 승객, 여객기에 또 ‘행운의 동전’ 투척…대형 참사 날뻔

    지난 10일 에티오피아를 떠나 케냐 나이로비로 향하던 보잉737 여객기가 추락해 탑승자 157명 전원이 사망한 가운데, 같은 날 중국에서 이륙 직전의 비행기에 동전이 들어가 하마터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고 12일(현지시간) 차이나데일리가 보도했다. 지난 10일 중국 산둥성 지난야오창국제공항에서 쓰촨성 청두로 가려던 럭키에어 여객기 8L9616편은 승객의 어이없는 행동 때문에 2시간가량 이륙이 지연됐다. 현지 언론은 해당 여객기에 탑승한 20대 중반의 여성 승객 2명이 탑승 전 ‘안전한 여행’을 기원하며 비행기를 향해 ‘행운의 동전’을 던져 운항이 중단됐다고 전했다. 럭키에어 측 관계자는 “승객 2명이 제트브리지(탑승교)와 비행기 사이로 동전을 던지는 바람에 출발이 지연됐다. 승객의 안전을 위해 여객기 재점검을 진행했고 결과적으로 탑승객 260명이 2시간가량 기내에 발이 묶였다”고 밝혔다. 럭키에어는 이들이 1위안짜리 동전을 비행기로 던졌으나 다행히 이를 목격한 직원이 공항경찰에 신고해 사고를 막았다고 밝혔다. 승객들이 던진 동전은 비행기 재점검 과정 중 회수됐으며 비행기는 예정보다 2시간 늦은 10시 2분 이륙해 무사히 청두에 도착했다. 해당 여객기에 타고 있던 한 승객은 “어떻게 이런 어이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모두 말문이 막혔다”면서 “동전을 던진 두 여성은 공항경찰에 인계돼 비행기에서 쫓겨났다”고 밝혔다. 중국 민간항공대 교수는 차이나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동전이 빨려들어가면 항공기 엔진이 떨리고, 속도가 떨어지며 심지어 공중에서 멈출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만약 그대로 이륙했다면 큰 사고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에서 이처럼 비행기에 ‘행운의 동전’을 던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한달 전에도 안후이성 안칭에서 또 다른 럭키에어 여객기에 승객 한 명이 1위안짜리 동전 2개를 던져 비행이 전면 취소된 바 있다. 2017년 6월에는 상하이푸둥국제공항에서 80세 여성이 안전한 비행을 기원하며 남방항공 여객기에 동전을 던져 이륙이 5시간가량 지연됐었다. 럭키에어는 “항공기에 동전을 던지는 것은 행운은커녕 모든 승객을 위험에 빠트리는 일”이라면서 “이 같은 행위는 벌금은 물론 항공법 위반으로 기소돼 처벌받을 수 있는 불법 행위”라고 경고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美 캘리포니아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위안부 추모 행사

    美 캘리포니아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위안부 추모 행사

    미국에 처음으로 세워진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침묵을 깨는 여성들’이라는 주제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삶을 돌아보는 행사가 열렸다. 11일(현지시간) 가주한미포럼에 따르면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지난 9일 캘리포니아 글렌데일 중앙공원에서 한·중·일 지역 공동체 관계자들이 최근 별세한 위안부 피해자 곽예남 할머니의 추모행사와 ‘위안부 목소리’의 유네스코 등재 등을 촉구했다. 행사에서는 중국계 참석자들이 ‘피지 못한 꽃송이’라는 시를 낭송했고, 옥시덴털칼리지 학생들이 여성인권운동 애창곡 ‘콰이어트’를 듀엣으로 불렀다. 참석자들은 ‘우리 승리하리라’를 함께 불렀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여기는 중국] 농아들이 운영하는 ‘소리없는 빵집’ 인기 폭발

    중국 광저우에는 ‘소리 없는 빵집’이 있다. 빵집에 들어서면 아무도 소리 내어 인사를 건네지 않지만, 환한 웃음과 따스함이 가득해 늘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 다름 아닌 농아들이 운영하는 베이커리 전문점 ‘사일런트 케이크'(Silent Cake, 无声的Cake)다. 지난 2017년 말 광저우 바이윈구(白云区)의 한 대형 쇼핑몰 안에 들어선 이 베이커리의 탄생에는 특별한 사연이 깃들어있다. ‘사일런트 케이크’의 사장 취준쿤(邱俊坤,36) 씨는 지난 2013년 선전에서 제빵 학원을 개업했다. 당시 한 농아가 그에게 제빵 기술을 배우기 위해 찾아왔지만, 그는 “일반인도 배우기 힘든 기술을 농아가 제대로 배울 순 없을 것”이라면서 거절했다. 그러나 끈질긴 농아의 요청에 결국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예상과 달리 그의 습득 능력은 일반인보다 빨랐고, 모든 교육 과정을 마친 후 사회에 나가 일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농아 기술자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장애는 쉽게 허물 수 없는 벽이었다. 취 씨는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었다. 결국 취 씨는 직접 ‘농아들을 위한 베이커리 전문점’을 세우기로 했다. 농아들을 모아 빵 굽는 기술, 바리스타 교육 및 서비스 교육을 했다. 어렵사리 200만 위안(한화 3억3600만원)이 넘는 자금도 모았지만, 농아들이 일하는 빵집을 받아주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임대료를 더 많이 준다고 해도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기회는 지난 2017년 광저우 바이윈구(白云区)에 새로 문을 여는 쇼핑몰에서 찾을 수 있었다. 드디어 빵집을 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것. 우여곡절 끝에 문을 연 ‘사일런트 케이크’에는 11명의 종업원 중 10명이 농아다. 어렵게 찾은 기회인 만큼 종업원들은 최선을 다해서 가게를 운영했다. 매장 앞에는 '대부분 종업원이 농아라 주문과 계산에 시간이 다소 걸릴지 모릅니다. 부디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비록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지만 성심성의를 다해 서비스하겠습니다'라는 안내문을 내걸었다. 처음에는 다소 어리둥절해 하던 손님들도 가게의 특성을 이해하고는 서두르지 않고 주문을 했다. 필요한 경우에는 노트로 직원들과 의사소통을 한다. 농아들이 정성껏 빚은 빵은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무엇보다 밝은 미소가 만면한 종업원들의 모습에서 ‘긍정의 힘’을 얻는 손님들이 늘면서 매장은 인기 빵집이 되었다. 또한 청각장애가 있는 내외국인의 사교 모임 장소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다수의 매체에 보도되면서 ‘가장 아름다운 빵집’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취 사장은 “장애로 인해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박탈당해선 안 된다”면서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노력으로 이 자리를 일군 ‘영웅’”이라고 전했다.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여기는 중국] 8년 전 ‘신장 팔아’ 아이폰 산 청년의 뒤늦은 후회

    [여기는 중국] 8년 전 ‘신장 팔아’ 아이폰 산 청년의 뒤늦은 후회

    8년 전 자신의 장기를 밀매한 뒤 아이폰을 구매했던 중국 청년의 최근 생활상에 이목이 집중됐다. 지난 2011년 중국 여론을 뜨겁게 달궜던 ‘신장 팔아 아이폰 구매한 고등학생 왕 군’ 사건 이후 약 8년이 흐른 최근 그의 건강 상태가 급속하게 악화됐기 때문. 당시 중국 안웨이성(安微省)에 거주했던 왕강 군(이하 왕 군)은 최신형 아이폰4s를 손에 넣기 위해 2만 2000위안(약 380만 원)을 받고 자신의 신장 하나를 밀매 일당에게 떼어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17세 미성년자였던 왕 군의 체격은 키 190㎝, 체중 81kg으로 매우 건강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약 8년이 흐른 최근 그의 건강 상태는 매우 위중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왕 군은 급격히 악화된 신장 기능 약화 등의 문제로 줄곧 종합 병원에서 혈액 투석을 받아오고 있는 상태다. 더욱이 지난 8년 동안 왕 군의 병원 진료비와 투석 비용 등으로 인해 그의 가족들은 큰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현지 언론을 전했다. 왕 군에게는 아버지, 어머니와 1명의 누나가 있는데, 그의 누나는 왕 군의 병원 진료비 탓에 학업을 중단하고 줄곧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왕 군의 아버지 왕 창 씨는 당시 사건과 관련해 “아들은 태어날 적부터 키도 크고 체격도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좋은 편이었다”면서 “앞날이 창창했던 아들이 한 때의 허영심과 충동심을 자제하지 못하고 남은 인생을 망쳤다”고 털어놨다. 당시 중국 언론을 통해 ‘장기 밀매 조직 사건’으로 조명되는 등 큰 화제가 됐던 왕 군의 사건은 이후 그가 이식 수술을 받았던 수술 병원 운영자, 불법 의료 행위를 했던 의료진, 브로커 및 장기 밀매 조직 등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로 이어진 바 있다. 확인된 바에 따르면, 왕 군과 유사한 사례로 장기 밀매에 관련돼 있던 밀매 조직원의 수는 무려 198명에 달했다. 이들 일당은 왕 군의 신장을 적출, 2만 2000위안을 지불한 뒤 자신들은 해당 장기를 해외 장기 이식환자에게 30만 위안(약 5000만 원)에 팔아 넘겼다. 10배 이상의 불법 차익을 거둔 셈이다. 이후 왕 군의 아버지 왕 창 씨와 그의 가족들은 이들 장기 밀매 업체와 불법 의료를 시술한 의료진 등에 대해 ‘고의적 상해혐의’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그의 아버지 왕창 씨는 “아들의 사건에 대해 현지 언론의 집요한 취재 덕분에 사건 브로커와 의사 등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소송에서 승소했다”면서 “이로 인해 상당한 금액의 보상금을 지급 받았지만,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아들의 건강과 우리 가족들의 남은 인생을 잃었다. 가족들은 당시 사건 이후 정신적, 신체적으로 모두 황폐화된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왕 군의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직후에도 미성년자들의 아이폰 구매를 위한 장기 매매 사건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당시 사건 보도 후 약 3~4년이 흘렀던 2015~2016년에도 신형 아이폰6s를 구매하기 위해 자신의 신장을 판매한 청년 2명의 사건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바 있다. 당시 무일푼 상태였던 황 씨와 우 씨 등 2명의 중국 청년은 신형 아이폰의 예약 주문이 있었던 당일 제품을 손에 쥐기 위해 SNS를 통해 자신들의 신장 구매자를 물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들은 이후 중국 난징시에 소재한 모 병원에서 불법으로 신장 적출 수술을 위한 건강 검진을 받았다. 하지만 수술 직전 장기 밀매 업자 일당이 공안국에 붙잡히면서 이들의 신장 매매와 아이폰 구매 사건은 ‘미완’에 그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2011년 당시 신장 적출 후 아이폰을 손에 넣는데 성공했던 왕 군은 현재 시술 부위의 감염으로 인해 총 3차례에 걸친 대수술을 받은 상태다. 또, 하나 남은 그의 신장 기능에 장애 판정을 받은 후 줄곧 병원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왕 군은 “수술 시 열악한 환경에서 장기를 적출하면서 심각한 감염을 얻었다”면서 “처음 아이폰을 손에 쥐었을 당시만해도 두 개 중 하나의 신장을 팔겠다는 결정에 대해 제법 ‘남는 장사’였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뒤늦게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이었는지 깨닫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암거래 병원과 밀매 조직 등에게 합의금을 받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액수의 병원비를 지출해오고 있고,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가족들의 삶이 황폐해졌다”면서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 때의 어리석은 선택을 지우고 싶다”며 고개를 떨궜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영웅’을 찾는 김부장…‘동주’에 빠진 이대리

    ‘영웅’을 찾는 김부장…‘동주’에 빠진 이대리

    안중근 다룬 ‘영웅’ 이례적 男관객 몰려 초연 ‘여명의 눈동자’ 예매자 21% 40대 ‘윤동주, 달을 쏘다’ 관객 80% 20·30대女 군복무 배우 출연 ‘신흥무관학교’도 인기임시정부 수립(4월 11일) 및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우리 역사를 다룬 창작뮤지컬이 연이어 무대에 오르고 있다. 역사물이라는 성격상 주제는 다소 무겁지만, 출연진이나 소재 등에 따라 관객의 성향이 뚜렷하게 갈리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초연 10주년을 맞아 지난 9일부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른 뮤지컬 ‘영웅’은 상대적으로 남성 관객, 40대 관객의 비중이 높다. 8일 현재 기준 인터파크 티켓 예매자 정보 자료를 보면 남성 예매자가 30.3%, 40대 예매자는 25.7%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 관객 비중이 90% 이상인 일반적인 뮤지컬 작품과 비교하면 ‘영웅’을 보는 남성 관객 비중은 이례적으로 높다. 2017년 세종문화회관 공연 때도 남성 관객이 27.4%에 이르기도 했다. 가족 관객 비중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40대 이상 예매자가 많다는 것은 부부나 부모·자녀 등이 함께 관람하는 관객층이 적지 않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이토 히로부미 암살 사건 등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다룬 ‘영웅’의 주인공 ‘안중근’에는 배우 정성화·양준모가 더블캐스팅됐다. 지난 1일 삼일절에 맞춰 디큐브아트센터에서 초연 무대가 시작된 창작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는 1990년대 초 인기를 끌었던 동명의 드라마를 원작으로 하는 만큼 중장년층의 호응도가 높다. 인터파크 티켓을 통한 전체 예매자 가운데 40대 비중이 21.6%로 나타나 드라마를 기억하는 이들의 예매가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위안부 문제와 제주 4·3사건 등 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다루면서도 자극적인 연출을 최소화하는 등 관객 연령대를 넓혔다. 변숙희 프로듀서는 “무대 소품인 의자는 소녀상의 의자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며 “가슴 아픈 역사를 직접적이기보다는 간접적으로 묘사했다”고 설명했다. 작품은 앞서 투자 사기를 당하며 큰 위기를 겪었다. 이 때문에 대극장 무대에 대형 무대장치를 올리는 대신 무대 양쪽에 객석 300여석을 설치하는 이른바 ‘나비석’을 올리는 방식으로 무대를 재구성했다. 제작비를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지만 이 같은 미니멀한 연출이 오히려 배우와 관객이 함께 호흡하는 느낌을 주는 ‘신의 한수’가 됐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36부작에 이르는 드라마의 방대한 서사를 2시간여로 압축한 스토리라인에 대한 호불호는 갈리지만, 앙상블과 조연 등의 연기는 호평이 대체적이다. 작품의 규모를 줄이며 티켓 가격도 최고가 7만원으로 책정돼 다른 작품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지난 5일부터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오른 ‘윤동주, 달을 쏘다’와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2월 말부터 공연 중인 ‘신흥무관학교’ 등은 여성과 젊은층 관객의 호응이 높다. 윤동주 시인을 소재로 한 서울예술단의 ‘윤동주, 달을 쏘다’는 2012년 초연 이래 재연 때마다 꾸준히 흥행 성적을 내는 스테디셀러 공연이다. 인터파크 티켓 예매자 정보에 따르면 이번 공연의 여성 예매자는 93.9%로, 20대와 30대 예매자는 각각 39.4%와 38.3%로 나타났다. 독립운동사를 다룬 ‘신흥무관학교’는 제70주년 국군의날 기념작으로 지난해 육군본부가 기획한 ‘군(軍) 뮤지컬’이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한 앙코르 공연에는 현재 군복무 중인 배우 강하늘과 지창욱, 가수 조권, 온유 등 대중적인 스타들이 총출동하고 있다. 여성 예매자가 91.1%, 20대와 30대 예매자는 39.3%, 31.3%에 이르러 군입대로 볼 수 없었던 스타들을 보기 위해 작품을 선택하는 팬들이 적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공연계 관계자는 “‘영웅’과 같은 작품은 기업이나 학생 단체관람 수요도 적지 않다”면서 “‘윤동주, 달을 쏘다’는 초연 때부터 ‘윤동주’ 역으로 출연해온 뮤지컬 배우 박영수에 대한 팬덤 등이 여성 관객이 많은 배경으로 꼽힌다”고 설명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통절한 반성과 사과”하고도 망언 계속한 일본에 대한 DJ의 혜안

    “통절한 반성과 사과”하고도 망언 계속한 일본에 대한 DJ의 혜안

    최상용 前주일대사 “한일관계, 국익·감정 갈등해선 안돼”“강제징용 배상문제, 대단히 꼬여…도덕주의 해결 못해‘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에서 한일문제 해법 찾아야”김대중(DJ) 정부 당시 주일 대사를 지낸 최상용(76) 고려대 명예교수는 11일 악화 일로로 치닫는 한일관계와 관련해 “국가이익과 국민감정이 갈등하도록 하는 일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상용 교수는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원혜영·강창일 의원 주최로 열린 ‘한일관계,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여야가 당리당략을 떠나 현실적인 대응방안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면서 정치권에 이같이 당부했다. 최 교수는 2000~2002년 주일대사를 지내고 일본 대학에서 정의론과 평화사상 등을 가르치는 등 한국에서 대표적인 일본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한일관계는 독도에서부터 교과서, 위안부 문제까지 다양했지만, 이 문제들은 단순했다”면서도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문제는 잘못하면 북한과도 연계되는 등 대단히 꼬인 문제”라고 진단했다. 특히 “(정치권 일각에서는) 삼권분립에 따라 대법원 판결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일본을 밀어붙이려 하는데 그러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도덕주의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일본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가 서명한 이른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에서 바람직한 한일관계의 해법을 모색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당시 김 대통령의 특별수행원으로 공동선언 작성 과정에 참여했다. 그는 “공동선언은 11개 항목의 핵심 내용과 43개 항목의 행동계획으로 구성됐는데 이들 항목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며 “‘무라야마 담화’보다 질적, 논리적으로 명백하게 진전된 내용으로 구성됐다”고 힘주어 말했다.최 교수는 공동선언 서명 당시 김 대통령과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눈 일화도 공개했다. 최 교수는 “일본이 당시 공동선언에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죄한다’는 진일보한 내용을 담은 데 대해 DJ는 ‘일본이 지금 아무리 좋은 표현을 해도 망언이라는 것은 또 나오게 돼 있으니 일희일비하지 맙시다’라고 했다”며 “DJ의 투철한 역사의식에 놀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최 교수는 “작년 10월 공동선언 20주년 기념식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참석해 화제가 됐다”면서 “외교에서는 제스처가 가진 중요한 함의가 있다. 아베 총리의 진정성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끝으로 그는 “정치권에 고언 하나만 하겠다. 국내 정치로부터의 유혹에 못 이겨 일본과 관련한 국가이익과 국민감정이 갈등하도록 하는 일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토론회에는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와 장병완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이종걸·박병석 의원, 자유한국당 정양석 의원 등 여야 중진들이 대거 참석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지켜봐라, 일본아…피해자 없는 싸움 더 큰 울림될테니

    지켜봐라, 일본아…피해자 없는 싸움 더 큰 울림될테니

    최대 20만명으로 추정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 중 우리 정부에 공식 등록된 이는 모두 240명이었다. 이 중 생존자는 22명뿐이다. 올해만 벌써 3명이 별세했다. 28년째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시위에 놓인 할머니들의 자리는 요즘 부쩍 비어 있다. 할머니들이 하나 둘 세상을 뜨며 생긴 변화다. 일각에선 ‘피해자 없는 위안부운동’이 힘을 잃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위안부운동은 여전히 뜨겁다. 지난 1월 타계한 인권운동가 김복동 할머니를 비롯한 할머니들의 빈자리는 이제까지 할머니들과 함께해 온 활동가들과 미래 세대가 채워가고 있다. 그들은 “피해자 없는 싸움도 이미 준비됐다”고 말한다. 죽은 이들의 역사를 함께 부둥켜 안고 하는 싸움은 더 강한 메시지로 전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지난 6일 서울신문은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윤미향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과 이태준 국민대 평화의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세움’ 대표를 만났다. 윤 이사장은 오랜 시간 할머니들의 곁을 지켜왔고, 이 대표는 학내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기 위해 20여명의 학우들과 활동하고 있다. 윤 이사장은 김 할머니가 28년간 뿌린 씨앗이 곳곳에서 싹을 틔우고 있다고 자신했다. 그 발자취를 따라 걷는 ‘후발주자’ 이 대표에게는 미래에 대한 진중한 고민이 엿보였다. 이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물었다. 우선 두 사람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처음 관심을 가진 계기가 궁금했다. 윤미향(이하 윤) “어쩌면 대한민국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것, 그 자체가 계기죠. 원래 여성운동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신문 기사로 접하고 충격 받았죠. 그들의 고통을 몰랐다는 반성을 했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간사에 자원했죠.” 이태준(이하 이) “제 경우엔 좀 늦은 시기라 부끄럽습니다. 2015년 겨울,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때서야 이 문제를 마주했죠. 당시 수요집회 때 김복동 할머니가 ‘수백억원을 줘도 이 문제를 (이렇게) 해결할 수 없다’고 하셨죠. 비록 남성이지만, ‘우리 엄마였다면, 또 할머니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질문이 맴돌았습니다. 위안부 문제를 시작으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91년에서야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처음 공론화됐다. 그전까진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을만 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지 못했다. 한 예로 김학순 할머니 고백 이후 피해 증언을 받기 위해 개설한 전화엔 할머니에 대한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절을 잃은 게 무슨 자랑이라고 말하고 다니느냐’는 비난이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나왔다.할머니들은 더 절박하게 사회에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 문제는 진전과 답보를 오가다 결국 제자리를 맴돌았다. 한일합의는 대표적 예다. 2015년 12월 28일, 일본 정부는 “해당 문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해 일본 정부 예산으로 10억엔(약 100억원)을 출연했다. 하지만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 이뤄지지 않는 등 성과보다 문제점이 더 많았다. 할머니들은 합의 파기를 요구했고, 결국 화해치유재단도 해산됐다. 윤 “한일합의가 미친 영향이 컸어요. 한일합의 직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말했죠. 솔직히 안심했었어요. 하지만 그 합의 이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비정부기구(NGO)는 정부와 독립적으로 정부를 비판하고 감시해야 한다는 걸. 대중의 인식도 변했어요. 피해자들의 절규와 상반된 정부의 모습을 통해 ‘이제 더이상 피해자만의 문제는 아니구나’ 깨달았죠. 각 지역에 소녀상들이 세워지는 등 역동적 활동들이 생겨난 것도 그 즈음입니다. 이 “우리도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소녀상을 학내에 세우려 하는 겁니다. 한 친구가 ‘소녀상은 고통을 듣고 싸우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상징’이라면서 ‘소녀상으로 (학우들이) 할머니의 삶과 온기를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세움’은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학생들 손으로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준비했고 성금도 모아왔다. 학생들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 5일부터 받은 서명에는 3일 만에 1900여명의 학우가 참여했다.윤 “소녀상은 할머니들을 대신하는 존재입니다. 다만 소녀상으로만 활동이 끝나선 안 된다는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었어요. 소녀상을 세운 그 이후가 더 중요합니다.” 이 “윤 이사장님 말씀에 공감해요. 우리(세움)도 그 부분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같이 활동하는 친구들끼리 ‘위안부 문제 해결뿐 아니라 강제징용이나 징병, 독립운동가 등 아직 청산되지 않은 친일 문제까지 폭넓게 이야기해보면 좋겠다’는 공감대를 이뤘어요. 하지만 당면 과제는 소녀상을 국민대생의 손으로 제대로 건립하는 것이죠.” 윤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소녀상 건립을 반대하는 건 위안부 문제를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처음 위안부운동을 정치적이라고 말한 건 일본 정부였어요.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 정치적 문제가 아닙니다. 보편적인 여성 인권의 문제죠.” 이 “사실 학교의 반대보다 학생들의 지지를 받지 못할 때 더 뼈 아픕니다. ‘순도 100%’ 학생들이 주체가 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10대부터 소녀상을 세우기 위한 활동이나 기념 제품을 제작해 성금을 했던 학우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윤 “나 또한 청소년들을 통해 우리 운동의 미래를 봅니다. 인권·평화 감수성이 뛰어나더라고요. 내가 강연을 나갔다가 배워올 정도입니다. 우리 세대들은 피해자에게 오히려 책임을 묻는 시대에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고백한 김학순 할머니를 보고 자랐습니다. 일종의 ‘미투’인 셈이죠. 이 ‘미투’를 ‘위드유’로 만든 건 김복동 할머니의 삶이었습니다. 미래 세대들은 그런 김복동 할머니를 보고 자랐죠. 내가 미래 세대에 기대를 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그러나 여전히 갈 길은 멀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가 역사왜곡’이라는 일본 측 주장에 맞서기 위해선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을 뒷받침할 문서 등 탄탄한 자료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체계적 연구를 이끌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 최근 여성가족부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위탁해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를 세우려 했지만 3개월여 만에 초대 소장이 물러나는 등 파행을 빚은 뒤 사실상 활동을 멈췄다. 민간단체 활동에도 한계가 있다. 단적인 예는 얼마 전 불거진 곽예남 할머니의 양녀 사건이다. ‘봉침 목사’로 알려진 한 목사가 곽 할머니의 수양딸이 된 것을 두고 시민단체가 “곽 할머니를 이용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민간단체에 권리는 없고, 책임과 의무만 지워진 게 아닌가 고민이 됐다”던 윤 이사장의 말처럼 정부가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 틈을 타 선의가 아닌 다른 의도가 개입할 수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존재 자체로 묵직한 울림을 주던 할머니들마저 다 세상을 떠난다면 위안부운동이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이 “저 역시 할머니들이 없는 위안부운동을 떠올리면 먹먹해져요. 일본 정부의 사죄도 받아야 하고 아직 싸울 날이 많은데 할머니들에게 많이 의존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스스로 반성도 하고요.” 윤 “이건 피해자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 같아요. 우리 곁에 육체적으로 없다고 해서 모든 것이 사라지나요? 그렇지 않죠. 피해자는 없지만 김복동의 정신은 살아 곳곳으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우리(정의연)는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전쟁 성폭력, 여성 인권 등 좀더 보편적이고 글로벌한 이슈로 확장시켜 나가는 데에서 답을 찾았죠. (내전 때 성폭력을 겪었던) 우간다 여성들은 김복동 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릅니다. 할머니들을 보면서 희망을 얻었다고 이야기해요. 연대하며 우리의 문제의식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는 것이죠. 할머니는 스스로 노력했고, 세계로부터 영웅이라는 칭송을 받으셨습니다. 연대한 세계인들도 일본을 함께 비난하고 있습니다. ‘아직 해결된 게 없다’는 얘기도 있지만 우린 이미 이긴 것이나 마찬가지에요. 김복동 할머니께서 눈 감으시기 전 남기신 마지막 말씀이 뭔지 아세요? ‘우리가 이겼어’ 였어요.” ‘우리가 이겼다’는 할머니의 말은 곁을 오랜 시간 지킨 활동가들에게 큰 힘이 됐다. 남은 할머니들이 편히 눈을 감으실 때까지, 그 이후에도 할머니들이 쌓아온 인권과 평화에 대한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활동을 하면서 우리가 살아나갈 땅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주권이 없었던 식민 시대, 침략 속에서 유린된 평화를 떠올리죠. 다시는 이런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회를 살아나가는 어른이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윤 “이 문제는 피해 당사자가 스스로 명예회복의 주체가 되는 것과 피해자 인권 감수성이 있는 사회가 되는 것, 그리고 가해자가 제대로 책임지는 것, 이 세 가지를 다 이뤄야 해결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무지개처럼 멀리 느껴지죠. 하지만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이미 사회는 조금씩 변해가고 있음을 느껴요. 그 자체로 우리의 걸음들은 가치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같이 걸어갈 거예요.”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日정부, 징용판결 대항 조치로 관세 인상 검토…100개 리스트 마련”

    “日정부, 징용판결 대항 조치로 관세 인상 검토…100개 리스트 마련”

    지지통신 보도…“대항조치 발동 시 한일관계 더 악화할 것”한국인 징용피해자 소송의 원고 측이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압류자산을 매각하면 일본 정부가 관세 인상 등으로 맞대응하기로 했다고 지지(時事)통신이 10일 보도했다. 한일 관계가 수교 이후 최악이라는 현재의 상태보다 더욱 악화될까 우려된다. 지지통신은 복수의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한국 경제에 동등한 손실을 주는 조치로 한국산 일부 물품에 대한 관세 인상을 축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지통신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일본 정부는 100개 전후의 리스트를 마련해 놓고 있다고도 했다. 통신은 “일본 정부가 한일청구권협정에 기초한 협의를 최대한 요청할 방침이지만 한국 정부가 응할 조짐이 없다”며 “대항 조치가 발동되면 한일관계는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 韓징용피해자 미쓰비시 자산압류 신청에 日정부 “극히 심각”▶문희상 “일왕, 위안부 직접 사죄”에 日외상 “말조심해야” 지지통신은 관세 인상 외에 일부 일본산 제품의 공급을 중단하거나 비자 발급을 제한하는 방안도 부상하고 있다며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맞는지와 일본 경제에 어떤 영향이 나타날지를 고려해 구체적인 대응 수위가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신은 또 일본 정부는 해당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매각이 이뤄지면 한국 정부에 대한 협의 요청을 중단하고 청구권협정에 따라 제3국 위원을 포함한 중재위원회 설치를 요구하는 쪽으로 입장을 전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정부가 강제징용 배상판결과 관련해 대응에 나서지 않는 ‘무시전략’에다 문희상 국회의장의 최근 ‘전쟁 주범 아들인 일왕 사죄 발언’ 등으로 일본에서 반한 분위기가 더욱 깊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일본 정부는 징용 배상 소송에서 이긴 피해자들의 한국 내 일본 기업 자산압류 움직임에 적절히 대응할 것이라면서도 공식적으로는 구체적인 대응 조치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지난 7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그런 일이 행해지는 것은 극히 심각한 상황”이라며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정부 차원에서 풀기 위한 협의에 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여당 내에선 한국 정부가 청구권협정에 따른 협의에 응하지 않자 주한 일본 대사의 소환과 방위 관련 물품 수출규제, 한국산 수입품 관세 인상 등 강경 대응을 요구하는 의견이 올 초부터 나오고 있다.한국 대법원은 2018년 11월 말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90) 할머니 등 5명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1인당 1억~1억2천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확정했지만, 미쓰비시는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에 지난 1월 별세한 김중곤 씨를 제외한 원고 4명은 서울중앙지법에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국 내 자산 압류명령 신청을 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추적60분’ 1인 방송, 담배꽁초 씹어 먹는다? ‘충격 실태’ [종합]

    ‘추적60분’ 1인 방송, 담배꽁초 씹어 먹는다? ‘충격 실태’ [종합]

    ‘추적60분’ 1인 방송 실태를 방송했다. 8일 KBS1 시사 교양프로그램 ‘추적60분’에서는 ‘1인 방송 전성시대, 축복인가 재앙인가’ 편이 방송됐다. 개인이 영상을 기획하고 제작해 다양한 인터넷 방송 매체를 통해 유통하는 1인 방송이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매월 전 세계 19억 명이 방문한다는 한 인터넷 방송 매체의 경우, 1분 동안 업로드 되는 동영상이 무려 400여 시간에 달할 정도다. 문제는 고수익을 내기 위해 1인 방송 진행자들이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영상을 쏟아낸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욕설과 폭행을 일삼는 것은 물론, 심지어 성범죄까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난 2월, 한 1인 방송 진행자를 고발한다는 내용의 제보가 ‘추적60분’에 연이어 들어왔다. 담배꽁초를 씹어 먹거나, 자해를 하는 등 1인 방송을 통해 엽기적인 행위를 일삼는다는 A 씨에 관한 내용이었다. 심지어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입에 담지 못할 비하 발언까지 했다는 A 씨. 이를 목격한 시청자 최수미(가명) 씨가 시정을 요구하자, 그의 사진을 1인 방송 화면에 띄워놓고 외모를 비하하는 등 공개적으로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는데. 1인 방송으로 인한 폐해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최근 유행한다는 일명 ‘헌팅 방송’에 가벼운 마음으로 출연했다가 술에 취해 유사 성행위를 당했다는 김진희(가명) 씨. 해당 영상이 유출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큰 충격에 빠졌다. 시간이 갈수록 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영상을 생산하고 있다. 2015년 당시 18살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를 방송해 물의를 빚었던 1인 방송 진행자 B 씨. 당시 14분 가량 해당 방송을 송출해 약 600만 원의 수익을 얻었다는데. 결국 한 시청자가 경찰에 신고한 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징역 1년 6개월 형에 처해졌었다. 그런데 최근 다시 1인 방송에 복귀했다는 B 씨. 그는 교도소 생활 역시 방송 소재로 삼는가 하면, 한 여성과 유사 성행위를 하는 등 반성의 기미 없이 여전히 과거와 유사한 형태의 선정적인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최근엔 아예 ‘1인 성인 방송 진행자’를 양성한다는 기획사까지 등장했다. 실제 제작진이 만난 한 기획사의 관계자는 ‘1인 성인 방송 진행자’가 되면 방송 콘셉트, 대본, 촬영 장소 등을 자신들이 직접 제공하고, 한 달 수백만 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기획사 역시 한 달에 1,500만 원가량의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제작진을 유혹했다. 실제 한 1인 성인 방송 진행자의 방송 내용을 살펴본 결과, 속옷을 탈의한 채 유사 성행위를 하는 등 자극적인 영상을 여과 없이 내보내고 있었다. 사진 = KBS 연예부 seoulen@seoul.co.kr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중국 선전에도 밀려 쇠락 기미가 뚜렷한 홍콩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중국 선전에도 밀려 쇠락 기미가 뚜렷한 홍콩

    ‘중국 시장경제의 실험장’으로 불리는 광둥(廣東)성 선전(深圳)의 경제 규모가 처음으로 ‘시장경제의 본고장’ 홍콩을 눌렀다. 홍콩특별행정구 통계처는 2018년 국내총생산(GDP)이 전년보다 3% 증가한 2조 8453억 1700만 홍콩달러(약 2조 4363억 위안, 약 409조 1280억 원)으로 집계됐다고 지난달 27일 발표했다. 선전이 그 다음날인 지난달 28일 공개한 지난해 GDP는 전년보다 7.6%가 늘어난 2조 4222억 위안에 이른다. 홍콩특별행정구 통계처에 나오는 지난해 평균 환율은 1위안당 1.1855 홍콩달러. 이 환율을 기준으로 홍콩 GDP를 중국 위안화로 환산하면 2조 4001억 위안이다. 선전시의 GDP가 홍콩보다 221억 위안(약 3조 7112억원)이나 더 많은 셈이다. 선전은 중국 첨단산업의 핵심 도시이다. 10억이 넘는 중국인들이 애용하는 메시지 앱 웨이신(微信·Wechat)이 이곳 특산품이며 세계 최대 게임회사인 텅쉰(騰訊·Tencent), 미국의 집중 포화로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는 통신장비업체 화웨이(華爲)와 중싱(中興)통신(ZTE) 등은 선전이 낳은 대표적 기업이다. 세계 1위 드론 업체 DJI, 전기차 배터리 업체 비야디(比亞迪·BYD) 등도 이곳에 본거지를 둔 글로벌 업체들이다. 개혁·개방을 시작하던 1979년 GDP가 1억 9600만 위안에 불과해 홍콩의 0.2%에도 미치지 못했던 선전이 40년 만에 홍콩을 제치고 아시아 지역에서 도쿄와 서울, 상하이, 베이징에 이어 경제 규모 5대 도시로 발돋움한 것이다.‘동양의 진주’(東方明珠)라고 불리던 홍콩이 휘청거리고 있다. 1997년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에 반환된 이후 본토와는 다른 일국양제(一國兩制·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공존) 시스템으로 간신히 정체성을 유지해왔으나 시진핑(習近平) 체제가 출범한 이후 본토 영향력이 본격화되면서 홍콩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특히 쇠락하는 기색이 역력한 홍콩이 이젠 중국의 여러 도시 중 하나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홍콩이 시나브로 본토에 종속되고 있는 것이다. 홍콩이 중국 본토에서 떨어져 지낸 기간은 영국과의 아편전쟁에 패해 불평등조약 난징(南京)조약을 체결한 1842년 이후 155년이다. 영국의 식민지로 떨어진 홍콩은 1949년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 본토와는 다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발전시켜왔다. 한때 정통무술 배우 리샤오룽(李小龍)과 자신만의 독특한 코믹한 액션을 내세운 청룽(成龍), 홍콩 느와르의 전성기를 구가한 저우룬파(周潤發) 등을 앞세워 세계를 호령했던 홍콩영화는 중국 반환 이후 나날이 몰락의 길을 걸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제금융 도시’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붙은 홍콩도 홍콩영화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말이 좋아 일국양제지’ 중국 본토의 홍콩 영향력은 정치와 경제 모두에서 절대적이다. 중국의 홍콩에 대한 통제는 2013년 시진핑 국가주석이 취임한 이후 본격화됐다. 중국 정부는 홍콩의 정치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물론, 입법부와 사법부, 언론을 쥐락펴락했다. 이에 홍콩인들은 2014년 중국 정부에 홍콩의 최고수장인 행정장관 직선제 약속을 지키라며 소위 ‘우산혁명’이라는 민주화 시위를 벌였다. 우산혁명은 경찰의 최루액을 막기 위해 시민들이 우산을 들고 나온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홍콩 정부는 중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이들을 탄압했다. 민주화를 주장하는 야당 홍콩민족당에 활동금지 조치를 내렸고, 외국특파원을 추방했다. 중국을 비판한 입법원 의원들의 자격이 박탈되고, 반중적 색채를 지닌 출판업자들이 중국으로 강제 연행됐다. 이처럼 홍콩의 민주주의가 대폭 후퇴하면서 홍콩인들의 반중 정서도 커졌다. 서구식 교육을 받은 젊은 층은 중국 정부의 통제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경제부문에서도 본토 영향력이 훌쩍 켜졌다. 1997년 홍콩 증시에서 시가총액 기준으로 20%를 밑돌던 중국 기업의 비중이 현재 60%에 이르고 대외무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을 넘어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997년 홍콩 증시 항셍지수의 상위 10개 기업 대부분이 홍콩 기업이었으나 현재는 전부 중국 본토 기업이라고 전했다. 중국 정부는 홍콩은 말할 것도 없고 포르투갈로부터 반환받은 마카오까지 중국화하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추진 중이다. 지난달 발표한 ‘웨강아오 다완취(?港澳 大灣區)’가 바로 그것이다. 웨강아오란 각각 광둥성과 홍콩, 마카오를 지칭하는 말이다. 다완취는 웨강아오와 광둥성 내 9개 주요 도시를 묶는 거대 경제권을 일컫는다. 중국 정부는 이를 위해 초대형 인프라 사업도 완성했다. 전체 길이 55㎞의 세계 최장 해상대교인 강주아오(港珠澳)대교와 광저우(廣州)에서 선전을 거쳐 홍콩으로 이어지는 광선강(廣深港) 고속철도 개통됐다. 이 덕분에 강주아오대교와 고속철도를 통해 중국 본토에서 홍콩, 마카오까지의 이동시간이 1시간 이내로 단축됐다. 이에 따라 중국 본토와 구분해 홍콩에 ‘자유경제시장’ 지위를 부여했던 미국은 이 지위를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홍콩 경제가 ‘홍색화’가 나날이 강화되면서 부동산 시장마저 맥을 추지 못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홍콩의 지난해 12월 주택 판매량은 전년보다 61% 급감했고 올 들어서는 고급주택 구매 계약을 취소한 사례가 하루 한 건꼴로 발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부동산 가격 역시 지난해 8월 이후 5개월 넘게 하락세다. 중국 정부의 자본규제로 본토 자금 유입이 위축된 데다 홍콩 부동산시장 전망도 나빠지고 있는 까닭이다. 홍콩 사회도 중국 본토화가 심화하고 있다. 1997년 이후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넘어온 중국인은 100만여 명에 이른다. 홍콩 인구에서 중국인의 비중이 14%나 된다. 광선강 고속철이 지난해 개통되면서 중국인들이 대거 홍콩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 때문에 홍콩인들이 사용하는 광둥어 대신 중국 표준어인 베이징어가 통용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홍콩으로 이주한 중국인은 대부분 홍콩 상류층을 장악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목도한 홍콩인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나머지 해외로 떠나고 있다. SCMP에 따르면 이민을 떠나는 홍콩인들은 지난 2년 사이 급증했다. 지난해 홍콩에서 해외로 이주한 사람은 2016년(6100명)보다 4배 이상 늘어난 2만 4300명이다. 해외 이전을 고민하는 기업도 증가하고 있다. 홍콩 최고 갑부로 통하는 리카싱(李嘉誠) 청쿵(長江)그룹 회장은 본사를 영국령 케이맨제도로 옮겼다. 홍콩 탈출을 원하는 젊은이도 부쩍 늘었다. 홍콩 중문대 아태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홍콩 청년(18~30세) 중 51%는 정치 상황을 이유로 해외 이주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년 전보다 5.5%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이들 청년이 해외 이주를 희망하는 이유로는 “정치적 대립이 너무 심하다”거나 “인구가 많아 환경이 나쁘다”,“정치제도에 불만이 있다” 등이 상위를 차지했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에 다니는 홍콩 유학생 천쭝리(陳宗立)은 중류 가정에서 태어나 경제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면서도 “홍콩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비관적 전망을 내놨다. 몰려드는 중국인 때문에 집값 폭등 등 각종 사회문제가 심각해지고 삶의 질은 나빠진 탓이다. 폴 입 홍콩대 교수는 “홍콩 반환 이전 이민을 간 사람들은 중국에 반환된 이후의 불확실성 탓에 이민을 선택했지만, 요즘 이민을 가는 홍콩인들은 중국 정부의 영향력 확대와 경제 악화 등을 이유로 홍콩을 떠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김구라, 김흥국 나눔의 집 방문…위안부 할머니 위로

    김구라, 김흥국 나눔의 집 방문…위안부 할머니 위로

    방송인 김구라(49)씨와 가수 김흥국(60)씨가 함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찾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인 ‘나눔의 집’은 지난 9일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김구라씨와 김흥국씨의 방문 소식을 전하며 여러 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나눔의 집은 “매달 할머니를 뵈러 오는 김구라씨가 (이번에는) 김흥국씨와 함께 방문했다”며 “할머니들을 뵌 후 학생 봉사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냈다”고 전했다. 한편 김구라씨는 2012년부터 꾸준히 나눔의 집을 찾아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직원들을 챙기는 등 따뜻한 선행을 이어오고 있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여기는 중국] 회사가 직원에 준 복권 거액 당첨… “당첨금 돌려달라” 논란

    [여기는 중국] 회사가 직원에 준 복권 거액 당첨… “당첨금 돌려달라” 논란

    회사가 직원에게 이벤트로 지급한 복권이 거액에 당첨되면서 그 당첨금을 놓고 논란이 일고있다. 중국 닝보시(宁波) 소재 모 회사에서는 지난 2일 연차총회를 개최, 총 500장의 복권을 대량으로 구매해 각 직원들에게 복권 1장 씩을 지급했다. 이 회사는 매년 연차 총회 시 이벤트 형식으로 각종 상품을 지급해오고 있었다. 올해 이벤트 상품은 ‘복권’이었던 셈. 이날 복권 1장씩을 회사로부터 지급받은 후 약 500여 명의 직원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회사 측 총경리가 연차 회의 무대에 등장, 500장의 복권 중 당첨 여부를 확인하는 ‘당첨번호’ 발표의 시간을 진행했다. 문제는 이때 발생했다. 회사로부터 지급받은 직원 향 씨의 복권이 최고 당첨 금액인 608만 위안(약 10억 원)에 당첨된 사실이 현장에서 확인됐기 때문. 이에 대해 총경리를 포함, 회사 재무관리팀은 곧장 직원 향 씨에게 당첨금을 회수하겠다는 회사 방침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측은 향 씨에게 “이날 연차 총회에 참석한 500여 명의 직원들과 당첨 금액을 동등하게 나눠 갖는 것이 향 씨의 회사 생활과 사내의 공평한 문화 조성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서 “회사가 지급한 복권인 만큼 향 씨 혼자서 당첨금액을 모두 차지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이 같은 회사 측의 강경한 입장에 대해 향 씨는 곧장 중국의 온라인 포털 사이트에 자신의 상황을 게재, 네티즌들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놨다. 향 씨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회사 측이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당첨이 확인된 복권을 회수하려고 했다”면서 “하지만 이미 회사의 손을 떠나 각 직원에게 한 장씩 복권이 전달됐을 때 그 복권의 주인은 회사에서 직원으로 바뀐 것으로 생각한다”고 적었다. 이후에도 줄곧 복권 당첨자 향 씨와 이를 지급한 회사 간의 갈등은 첨예하게 대립이 계속됐다. 급기야 양측은 닝보시 소재 관할 공안국을 찾아 해당 사건에 대해 갈등 조정 절차를 거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닝보시 공안국 관계자는 이번 사건과 관련, “당사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회사 측은 지난달 28일 해당 복권이 포함된 총 500여 장의 복권을 무더기로 구입했으며 이후 3월 2일 개최된 연차 총회 당시 현장에서 각 직원에게 이벤트 성으로 복권을 지급했다”면서 “하지만 이때 이미 복권 당첨번호는 온라인 등을 통해 공개된 이후였고, 회사 측은 이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은 채 직원에게 배부한 사건”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민간인들 사이에서 벌어진 분쟁 사건인 만큼 양 측에서 법적으로 대응하는 것보다는 조정 또는 화해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도록 돕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현지 법률전문가 당자이중 변호사는 “회사가 연차 총회에서 각 개인에게 복권을 증여할 당시 이미 회사는 직원에게 그에 상응하는 권리를 증여했다고 해석해야 한다”면서 “향 씨가 해당 복권을 수령했을 당시 이미 모든 권리도 함께 이전됐던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만, 복권의 당첨 여부와 당첨 금액 등에 대해서 회사가 인지하지 못했을 뿐, 현지 계약법 상 이 같은 이유로 인해 증여계약을 회사 일방에 의해 취소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또, “오히려 회사 임원진이 나서서 직원 향 씨에게 복권 회수를 지시하거나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불법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면서 “더욱이 복권을 회수한 뒤 연차 총회에 참석한 500여명의 직원과 동등하게 금액을 배분하는 것이 공평한 회사 문화에 적합하다는 주장은 그 법적근거가 매우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월드피플+] 6명 고아 키우며 평생을 바친 100살 독신 할아버지의 삶

    [월드피플+] 6명 고아 키우며 평생을 바친 100살 독신 할아버지의 삶

    6명의 고아를 키우며 한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100살 할아버지의 사연이 큰 감동을 주고 있다. 하얼빈 TV는 지난 4일 100세 생일을 맞은 펑윈송(彭云松) 할아버지의 사연을 소개했다. 사연은 1954년 당시 35살의 펑 씨가 철길 위에서 굶주린 8살 남자아이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금세 쓰러질 듯 굶주린 아이에게 만두를 건넨 펑 씨는 차마 아이를 두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나랑 함께 가자꾸나”라고 말하며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15년간 그는 5명의 남자아이와 1명의 여자아이를 집에 들였다. 모두 버림을 받거나 부모를 여읜 채 오갈 데 없는 고아들이었다. 이렇게 각기 성이 다른 6명의 아이는 한집에 살면서 가족이 되었다. 펑 씨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하얼빈의 공사장에서 막노동하거나, 폐지를 주우며 돈을 벌었다. 1954년 당시 한 달 월급은 30위안(한화 약 5000원)에 불과했지만, 귀갓길에는 늘 아이들이 좋아하는 먹거리를 들고 왔다. 또 누가 맛있는 걸 주면 잘 간직했다가 집에 돌아와 아이들에게 먹였다. 아이들은 날마다 아빠가 돌아오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동네 어귀에 푸른 작업복을 입은 아빠의 모습이 보이면 6명의 아이는 한꺼번에 달려가 아빠를 맞았다.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나눔의 기쁨은 컸다. 한번은 중추절에 펑 씨가 받은 월병이 하나뿐이었다. 펑 씨는 월병 하나를 6조각 내어 아이들에게 한 조각씩 먹였다. 아이들은 평생 먹어본 음식 중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그 시절 나누어 먹었던 작은 월병 조각을 꼽는다. 펑 씨에게는 한가지 신념이 있었다. 아이들을 비단 먹고, 입히는 것뿐 아니라 제대로 교육을 받도록 키우겠다는 것이었다. 비록 가난했고, 아이들 학비를 벌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했지만, 아이들을 돈벌이에 동원하지 않았다. 한번은 아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폐지를 줍다가 펑 씨에게 들켰다. 그는 “또다시 폐지를 줍는다면 다시는 너희를 키우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돈을 벌려고 욕심을 내다보면 그릇된 길로 들어설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웃들은 펑 씨에게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내고, 어서 장가를 들라”며 여자를 소개해 주었다. 여성은 펑 씨를 마음에 들어 했지만, 6명의 고아를 키운다는 사실을 알고는 줄행랑을 쳤다. 아이들은 아빠가 결혼하면 버림받을까 두려워 “아빠, 제발 우리를 버리지 마세요”라고 울며불며 매달렸다. 펑 씨는 “누가 너희들을 버린다고 했느냐?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고, 절대 그럴 리도 없다”고 말했다. 이후 누가 선을 보여준다고 하면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펑 씨의 보살핌에 아이들은 모두 바르게 자라나 성인이 되어 제각각 가정을 꾸렸다. 자식들은 서로 아버지를 모시겠다고 했지만, 펑 씨는 홀로 고향인 산동성의 누추한 집에서 생활했다. 하지만 2013년 펑 씨가 94살 되던 해, 더는 참을 수 없던 자식들의 간곡한 설득에 비로소 하얼빈으로 돌아와 자식들과 살고 있다.한편 각기 성이 다른 6명의 자식의 평생소원은 성씨를 ‘펑’ 씨로 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펑 씨는 “너희들이 비록 고아일지라도 근본을 나타내는 성이 있는데 이를 바꿀 순 없다”고 고집했다. 하지만 2013년 그의 자식들은 눈물을 쏟으며 “다음 생에 태어나도 우리는 한 가족이다”라면서 ‘성’을 바꾸게 허락해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펑 씨는 자식과 함께 한 지 60여 년 만에 아이들에게 ‘펑’ 씨 성을 허락했다. 한때 세상에 버림받아 홀로 남겨져 어둠 속에서 살아갔을 아이들이 지금은 모두 반듯하게 자라 행복한 가정을 일구었다. 장성한 자식들은 펑 씨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이룰 수 없었던 ‘기적’이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받은 사랑을 더 큰 사랑으로 갚고 있다. 다섯째 아들은 17년 전부터 노인을 위한 무료 서비스 여관을 운영 중이다. 지금까지 130명이 넘는 과부, 빈곤 노인을 위해 무료 숙박, 음식을 제공하는데 100만 위안(1억7000만원)이 넘는 돈을 썼다. 그는 “아버지에게 배운 인애(仁爱) 정신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100살이 된 펑 씨는 “내가 아이들을 훌륭한 인재로 키우지는 못했을지라도 반듯하게는 키웠다”면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지금은 손주들이 할아버지에게 수시로 연락을 하고 찾아온다. 빈곤한 생활이었지만, 가슴으로 품은 고아들은 아들, 딸이 되어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한 사랑의 열매를 가져다주고 있다.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방탄소년단(BTS) 슈가, 생일 맞아 소아암 환자 위해 1억원 기부

    방탄소년단(BTS) 슈가, 생일 맞아 소아암 환자 위해 1억원 기부

    그룹 방탄소년단(BTS) 슈가(본명 민윤기·26)가 9일 자신의 생일을 맞아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1억원을 기부했다. 재단법인 한국소아암재단은 “방탄소년단 슈가가 팬클럽 ‘아미’ 이름으로 1억원과 인형 239개를 기부했다”고 밝혔다. 이어 “슈가는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기부하게 됐다고 전했다”면서 “성금을 환아들에게 잘 전달하겠다.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방탄소년단 팬들은 제이홉 생일을 기념해 광주 북구에 330만원 상당의 10㎏짜리 백미 128포를 기부했고, 영국 야생동물 보호단체에 672파운드(약 100만원)를 전달했다.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방한용품과 기부금도 꾸준히 전달해 오고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2018년 한국은 ‘미투’의 한 해” 김지은·이경희 코치 성평등 디딤돌상 수상

    “2018년 한국은 ‘미투’의 한 해” 김지은·이경희 코치 성평등 디딤돌상 수상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해 여성들이 성평등 실현 촉구를 위한 목소리를 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여성들을 대표해 활동한 여성들에게 상도 수여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는 여성운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를 상대로 성폭력 피해를 고발한 김지은씨와 체육계 미투를 이끈 이경희 리듬체조 코치는 성평등 디딤돌 수상자로 선정됐다.8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제 35회 한국여성대회를 개최한다. 이 행사에서는 여성운동상, 올해의 여성운동상, 성평등 디딤돌 등 지난 한해 성평등을 위해 애써온 여성들에게 상을 수여할 예정이다. 여성운동상은 피해자를 넘어 여성인권운동가로 생을 마친 고 김복동 할머니에게 돌아갔다. 김 할머니는 1992년 위안부 피해 사실 증언 이후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올해의 여성운동상은 법조계 미투 운동의 시초가 된 서지현 검사가 받았다. 지난 한 해 여성운동 발전에 기여한 점을 인정 받았다. 성평등 디딤돌-미투 특별상에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을 고발한 김지은씨와 스포츠계 미투를 촉발한 이경희 코치 등 11개팀이 받는다. 이에 대해 주최측은 “김지은씨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었고 이경희 코치는 체육계의 견고한 성폭력 은폐 구조를 깨뜨리기위해 싸워 나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주최측은 성평등 걸림돌 8개팀도 선정했다. 여기에는 ‘피해자다움’을 강요한 안희정 성폭력 사건 1심 재판부 등이 포함됐다. 이에 대해 주최 측은 “2018년 한국은 ‘미투’의 한 해”였다며 “여성들은 굳은 결의로 차별과 폭력이 일상이 돼 온 현실을 고발하고 성차별과 성폭력이 발생하는 사회 구조를 변화시킬 것을 외쳤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투운동은 용감한 여성들이 만든 거센 변화의 물결이자 빛나는 성과였다”고 평가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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