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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기업도 종군위안소 운영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기업이 노무자들을 위해 한국과 중국인 여성들을 위안부로 강제 동원하고 ‘기업 위안소’를 운영해온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가 공개됐다.그동안 일본 정부가 부인해온 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입증하는 미군 문서도 처음으로 확인됐다. 서울대 사회학과 정진성 교수와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학 장태한 교수팀은 3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일본 현지조사를 통해 수집한 ‘기업 위안소’ 관련자료와 일본 후쿠오카 지역의 기업위안소 사진 등을 공개했다.이 자료들에 따르면 최소한 1500명 이상이 ‘기업 위안부’로 동원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1940년 육군성이 작성한 문서에는 ‘탄광 내 노무자들의 생산성 제고를 위해 조선과 중국의 창부를 유치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고,1942년 대동아성 기획원 각의 결정문에는 ‘화북 노동자들을 탄광에 도입하고 위안부를 수반해 노무자 위안소를 설립하라.’는 각료회의 결정문이 들어 있다. 정 교수팀은 “대동아성의 문서에는 ‘세탁부 등의 명목으로위안부들을 합법적으로 데려올 것’이라는 내용이 있어 위안부 동원이 강압적이거나 사기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정 교수팀은 또 “미국 연방 정부기록보존소에서 발견된 문서에서 군 위안부 동원이 강압적이었음을 증명하는 문서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 문서는 1945년 4월28일 중국 쿤밍(昆明)지역 포로수용소에서 미군이 107명의 포로들을 심문하던 중 작성한 것으로,‘25명의 한국인 포로 중 여성 23명이 강제나 사기로 위안부가 되었고 1943년 7월 한국을 떠난 여성 15명은 싱가포르에 있는 일본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을 모집한다는 한국 신문의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구혜영기자 koohy@
  • 북파공작원 도심 격렬 시위

    ‘북파공작 전국연합 동지회’ 회원 250여명은 15일 오후 2시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북파 공작원실체 인정과 인권유린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하며 2시간 남짓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이들은 집회를 마친 뒤 대통령을 면담하겠다며 청와대 쪽으로 가려다 경찰이 이를 막자 6차로 도로를 점거한 채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경찰과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시위자들이 세종문화회관 앞 인도에 LP가스통 20여개를 일렬로 세워놓고 5,6개의 가스통에서 새어 나온 가스에 불을 붙이는 바람에 곳곳에 5∼6m 높이의불기둥이 치솟았다.북파 요원이었던 문모(47)씨는 흉기로얼굴과 배를 긋고 자해 소동을 벌이다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들은 이날 집회 도중 경찰에 둘러싸인 채 기자회견을 갖고 북파공작원들의 인권유린 실태를 폭로했다. 지난 82년 설악산에 위치한 부대에 들어갔다는 김모(42)씨는 “탈영하다 잡혀온 동기를 상관의 명령에 따라 다른동료들과 함께 3시간 동안 끌고 다니면서 때려 죽였다.”고 주장했다.차모(50)씨는 “속초의 부대 안에는 위안소를 운영하며 윤락녀들을 정기적으로 데려와 윤락행위를 시켰으며,지금도 이런 짓이 자행되고 있다.”고 말했다.이날시위로 세종로 사거리 주변 교통이 일시 통제돼 큰 혼잡을 빚었다.일부 차량의 유리창은 시위대에 의해 파손됐다. 이창구기자 window2@
  • 고교 국사교과서 확 바뀌었다

    ‘일본 제국주의는…우리나라와 타이완 및 점령지역의 10만명에서 20만명에 이르는 여성들을 속임수와 폭력을 통해 연행하였다.이들은…열한 살 어린 소녀로부터 서른이 넘는 성년에 이르기까지…‘위안소’에 머물며 일본 군인들을 상대로 성적 행위를 강요당했다.’[한국 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 교육자료 1]. 제7차 교육과정에 따라 제작된 고교 국사교과서의 ‘근현대사의 흐름’에 나오는 내용이다.3월부터 1학년생이 배우는 국사교과서는 시대에 따른 서술에서 벗어나 정치·사회·문화·경제 등 분야별로 나눠 다루었다.암기 위주의 학습에서 탈피,시대의 상황을 올바르고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외형적으로는 책의 크기도 커졌고 종이의 질도 좋아졌다. 사진을 무려 500여장이나 사용,시각적 효과를 높였다.새로운 학설을 반영해 만주지역의 청동기시대를 기원전 10세기에서 15∼13세기로 앞당겼다. 역사적 기술과는 별도로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읽기 자료와 도움글 난도 마련,자료를 풍부하게 제시했다.정신대 문제,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비롯,동학 농민 봉기를 알리는 격문,반민족 행위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1920년 평양메리야스 공업,철도에 집착한 일본,1968년 국민교육헌장등이 예다.3·1운동과 관련,‘한국 독립운동지혈사’에서발췌해 ‘당시 만세 시위에 참가한 인원은 총 200여만명이며,일본 군경에 피살당한 사람은 7500명,부상자는 1만 6000명,체포된 사람은 4만 7000명 이었고…’라고 피해 상황등을 소개했다. 현대사회 부문에서는 대한매일 김삼웅 주필이 쓴 ‘사료로 보는 20세기’에서 1979년 발생한 YH무역근로자의 호소문을 요약,당시의 근로상황을 보여줬다.2000년 6월15일에열린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주석의 남북 정상회담은 사진과 함께 공동선언문을 소개했다. 교육부 승용기 연구관은 “학생들이 역사를 가깝게 느낄수 있도록 인명·사건명의 분량을 줄이는 대신 풍부한 자료 등을 실어 스스로 탐구학습이 가능하도록 꾸몄다.”면서 “최근 역사의 성과와 함께 과학기술,여성의 지위 등도 크게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박홍기기자 hkpark@
  • “6·25때 한국군에 위안부”

    한국 전쟁 당시 한국군에 위안부 제도가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24일 보도했다. 한국의 경남대 객원교수인 김귀옥(金貴玉·40)씨는 23일교토(京都)의 리쓰메이칸(立明館)대학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 참석,일본군의 위안부 제도를 흉내낸 위안부 제도가 한국군에도 있었다고 발표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김 교수는 1996년 이후 5년간 인터뷰 등을 통해 “직접위안소를 이용한 적이 있다.”,“군에 납치돼 위안부가 됐다.”는 남녀 8명의 증언을 녹취했다고 말했다. 도쿄 황성기특파원·김경운 기자 marry01@
  • 위안부출신 강일출 할머니 美아이비리그서 위안부 증언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가 미국 동부 명문 대학들인 ‘아이비리그’ 순회 증언에 나선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31일 “일본군 위안부 출신의 강일출(73) 할머니가 오는 5일부터 17일까지 미국 워싱턴 정신대문제대책위와 공동으로 예일대학 등 6곳을 돌며 증언을 한다”고 밝혔다. 이번 순회집회는 미국의 대학생들이 주관하는 행사로 미국 사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경북 상주군 출신인 강 할머니는 1943년 가을에 위안부로 끌려가 이듬해 1월 중국 목단강 위안소로 가 1년여 동안 위안부로생활하다 45년 8월 광복 직전 탈출했다.그뒤 계속 중국에서 머물다 지난해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현재 경기 광주군 ‘나눔의집’에서 살고 있다. 강 할머니의 순회 증언은 5일 코넬대학을 시작으로 하버드대(7일) 예일대(8일) 미국교회(11일) 뉴욕대(12일) 프린스턴대(15일) 조지타운대(17일) 등으로 이어진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위안부 生母 찾으러온 조선족

    50여년만에 모국을 찾은 중국 조선족 동포가 일본군 위안부 출신 생모(生母)를 애타게 찾고 있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에 사는 조선족 동포 윤영식씨(57)는 젖을 떼기도전에 헤어진 생모를 찾아 지난 달 4일 한국에 왔다. 윤씨의 출생은 비극적이다.어머니는 일본군 위안부였고 아버지는 일본군 장교였다.어머니는 윤씨를 1944년 12월 헤이룽장성 일본 관동군 장교 위안소에서 윤씨를 낳았다. 해방이 되고 아버지가 일본으로 돌아가자 어머니는 원치않은 임신으로 낳은 자식을 조선족 양부모에게 맡겼다.윤씨는 7살 때 이웃 주민들로부터 태생의 비밀을 알았으나 자신을 아껴주는 양부모에게 누가 될까봐 생모에 대해 묻지 않았다. 윤씨가 지난 97년 양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난 뒤 처음 생모를 찾아 나섰다.청와대에도 청원서를 냈으나 ‘정부가 아는 위안부 출신중 찾는 이가 없다’는 대답만 되돌아와 직접 고국을 찾아왔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생모를 낯선 고국에서 찾기는 막막할 뿐이다.생사조차 알아내지 못해발만 구르고 있다. 윤씨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도 수소문하고 있지만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윤씨는 “비자 체류기간이 3개월밖에 되지 않아 곧 중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우연히라도 어머니를 만나고 싶다”며눈시울을 적셨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위안부 아닌 군사적 성노예”

    일본 우익집단이 만든 문제의 역사교과서가 역사를 왜곡,은폐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종군위안부 문제다.이들은 종군위안부는 군인을 상대로 매춘행위를한 데 불과하다는 식으로 일본군대에 의한 강제연행이나성노예화를 부정하려 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일본에서 출간된 위안부 관련 서적 2권이 국내에 번역출간돼 눈길을 끈다.이 책들은 우익들의 주장과는 달리 종군위안부에 대한 일본정부의 책임을 강하게요구하고 있을 뿐더러 용어 또한 ‘위안부’가 아닌 ‘성노예’로 바꿔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천황의 군대와 성노예(미네기시 겐타로 지음,박옥순 옮김,도서출판 당대,8,000원)= 저자는 일본서적에서 간행하는역사교과서의 집필자로 현재 도쿄도립대 교수이다.지난 1997년판 중학교 교과서 개정작업때 종군위안부 문제를 교과서에 싣자고 발의하여 이를 역사교과서에 실리게 한 주인공이다.이 과정에서 그는 우익사관의 역사학자들로부터 ‘자학사관’에 빠져있다며 맹렬한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그로서는종군위안부 문제를 본격적으로파고드는 계기를 가져다 주었다.그는 종군위안소와 위안부실태를 관련자료를 뒤져 찾아내 실증적이고도 사실적으로이 책을 준비했다. 이로써 이 책은 일본내에서도 종군위안부 문제의 ‘죄과’를 명확하게 밝힌 ‘실상연구의 종합적성과’로 불린다. 한편 저자는 종군위안소는 매춘부를 데려오는 민간업자에게 편의제공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일본군대가 종군위안부 조달및 이용을 위해 적극적으로 설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이어 일본군이 종군위안소를 설치한 목적이 ▲군의사기진작과 군기유지 ▲성병 만연 예방 ▲강간 방지 등이라고 주장하고는 ‘강간 방지’ 역시 인권보호 차원보다는현지인들의 반감을 감안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결국 군부가 조직적으로 관리한 종군위안소에서의 강간은 일본 정부와 군부에 의한 ‘관리강간’이었기에 종군위안부는 ‘군사적 성노예’였다고 규정했다. ◆‘위안부’가 아니라 ‘성노예’이다(도츠카 에츠로 지음,박홍규 엮어 옮김,소나무,9,500원)= 위 책의 저자가 역사학자였다면 이 책의저자는 일본인 국제인권변호사로,그가 10년간 유엔을 상대로 위안부 문제에 매달려온 활동기록이다. 우선 그는 ‘정신대’는 물론 ‘위안부’라는 용어도 적절치 않다고 주장한다.왜냐하면 ‘위안’받는 주체가 일본군이기에 ‘위안부’라는 용어가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들의 상황을 설명해 주기에는 부적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그가 지난 92년 IED(국제교육개발)를 대표해유엔 인권위원회에 ‘성노예(Sexual Slavery)’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 용어는 국제적으로 정착됐다. 그는 일본내 다른 지식인들처럼 ‘국민기금’으로 성노예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국제법에 따라 처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조국을 준열하게 비판하기도 하고 일본정부와 언론, 학계,그리고 시민을 상대로 법적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거나 국제법을 어긴 국가에대한 최후의 압력수단으로 저자는 국제여론 환기 밖에는없다고 보았으며 이를 위해 NGO활동을 전개해 나갔다.국제법률가위원회(ICJ)의 조사와 보고서,국제적명성의 여성전문가인 쿠마라스와미의 보고서와 국제노동기구(ILO)의 조사,유엔 인권소위원회의 대일 권고 등이 그 성과라고 할수 있다.그러나 현재 성노예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아직도 매주 수요일이면 서울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성노예 할머니와 정대협 관계자들이 주축이 돼 ‘수요집회’을 벌이고 있다. 저자,편역자는 이 책의 인세를 모두 성노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에 기부할 계획이다.또 출판사는편집,표지디자인 등 모든 편집작업을 자원봉사했다.한일양국의 따뜻한 마음을 모아 낸 책이다. 정운현기자 jwh59@
  • [함께하는 시민운동]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는 한(恨) 맺힌 절규의현장’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매주 수요일 낮 12시부터 1시간 동안 서울 세종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벌이는 ‘일본군대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가 9일로459회째를 맞았다. 단일 집회로는 세계 최장을 기록하고 있지만 비용 때문에 기네스북에 등재하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 수요집회는 지난 92년 1월8일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됐다.95년 1월18일고베(神戶) 대지진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뜻에서 151번째집회를 그 다음주로 미뤘을 뿐,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빠짐없이 이어졌다. 지난해 말 도쿄(東京)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전범 국제재판을 고비로 열기가 식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최근 일본역사교과서 왜곡 사건으로 오히려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반세기에 걸친 세월을 숨어 지내다시피 살아온 할머니들은 수요집회를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으며 ‘전사(戰士)’로 거듭났다.집회 초창기만 해도 대열 뒤편에 서서얼굴을 가렸지만‘슬픈 과거’를 털어놓은 뒤부터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싸움의 주체로 떠올랐다. 할머니들의 수요집회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공동대표 윤정옥·지은희·김윤옥)의 운동사와 함께 한다. 86년 권인숙양 성고문사건을 계기로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가 관심을 모으면서 ‘일본군 성노예’ 문제의 심각성이 전면으로 대두됐다. 89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방일과 함께 ‘정신대연구회’가 조직됐고 90년 11월16일 37개 여성,시민,종교,학생단체를 중심으로 정대협이 공식 출범했다.무엇보다 정대협에힘을 실어준 사건은 91년 7월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사무실로 찾아온 김학순(97년 작고) 할머니의 처절한 증언. 김 할머니는 “16살 때 만주의 어느 위안소에서 당했던일이 하도 기가 막히고 끔찍해서 평생 가슴 속에만 묻어두고 지냈는데 국민 모두가 과거를 잊은 채 일본에 매달리는 것을 보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며 털어놓은 증언은한·일 양국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수요집회의 주최측은 정대협이지만 매주 나서는 부담을덜어주기 위해 주관 단체는 수시로 바뀐다.전교조,민주노총,참여연대,경실련은 물론,각 대학의 여학생회와 고등학생 단체까지 나선다.지난 3월28일에는 ‘일본 고령자 NGO회의’ 대표단 9명이 수요집회에 동참,일본의 사죄와 역사교과서 왜곡 중단을 촉구했다. 일본 정부의 무성의에 지쳐 일부 할머니들은 “인제 그만 할란다”라며 자포자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91년부터 정부에 등록된 199명의 위안부 할머니 가운데 지금은 141명만 남았다. 하지만 쌍둥이 딸과 함께 수시로 수요집회 현장을 지키는 홍옥주(42·여) 시인과 국세청 직원 최기영씨 등 일반 시민들,함께 눈물을 흘리는 여학생 등의 대열이 이어지는 한 수요집회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정대협은 스위스 제네바의 UN인권위원회,중국 베이징의 UN세계여성대회,국제노동기구(ILO),아시아연대회의 등에서국제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대협 양미강(41) 총무는 “종군위안부 문제는 일본의천황제 파시즘과 군국주의적 국가 권력이 만들어낸 조직적인 범죄”라고 규정했다. 양 총무는 “수요집회는 단순한 시위의 성격을 넘어 역사및 여성의식을 고취시켜주는 교육의 장이 됐다”면서 “정대협이 집회를 끝내려 해도 할머니들의 통한이 살아있는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 *日문부성앞 교과서 항의 시위 황금주할머니. “일본군의 성노리개로 희생당한 우리를 ‘화장실 역사’라고…,짐승보다 못한 놈들” 지난 4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실.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항의하기 위해 지난달 25일부터 1주일 동안 일본 문부과학성 앞에서 규탄시위를 한 뒤 돌아온 일본군 위안부 출신 황금주(黃錦周·79)할머니는 아직도 분을 삭이지 못한 듯 울분을 쏟아냈다.꽃다운젊음을 일본군에 짓밟힌 한이 뼈 속에 사무친 탓인지 할머니의 입에서는 ‘우라질 놈들’ ‘나쁜 놈들’이란 말이떠나지 않았다. “역사의 산 증인인 내가 두눈 부릅뜨고 살아있는데 사죄는커녕 역사 왜곡으로 또다시 욕을 보여…” 한껏 욕설을 퍼붓던 할머니는 “참혹했던 당시를 떠올리면 아직도 피가 끓른다”면서 가슴속에 꼬깃꼬깃 묻어두었던 ‘사연’들을 털어놨다.할머니가 위안부로 끌려간 것은 1941년,19세 꽃다운 나이였다.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12세때 함경남도 함흥의 한 지주집에 양녀로 들어갔고 정신대공출이 한창이던 때 이 집의 친딸을 대신해 중국 지린성(吉林省) 인근의 군부대로 끌려갔다. 당시 ‘함성학술여자강습회’란 사립학교의 졸업반이던할머니는 “공출을 거역하면 집안을 반역죄로 처벌하겠다”는 협박과 “3년간 군수공장에서 일하면 큰 돈을 벌 수있다”는 회유에 중국행 군용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후 5년간 일본군 위안부 생활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없는 지옥과 같은 삶의 연속이었다.허름한 막사에서 주먹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매일 30∼40명의 일본군을 상대했다.성관계를 거부하면 어김없이 구타가 이어졌다. 할머니는 “자궁이 붓고 피고름이 나오면 606주사를 놓아가며 또다시 성관계를 강요했다”면서 “함께 생활하던 20여명 중 나만 빼고 모두 죽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또“일본군이 던져준 고기볶음 몇점으로 허기진 배를 달랬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인근 731부대에서 버린 인육(人肉)이었다”며 치를 떨었다. 할머니는 해방이 되자 지린성에서 넉달을 걸어 서울로 돌아왔지만 온몸은 만신창이가 됐다.성병 때문에 10여년이넘게 치료를 받았고 3개월에 걸친 대수술 끝에 자궁을 제거했다.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서울 청량리에 정착,지금껏 홀몸으로 살아왔다.조그만 국밥집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고 전쟁 고아들을 데려다 키웠다. “한맺힌 사연은 아무도 몰라.죽기 전에 역사의 진실을밝히고 청춘을 앗아간 일본의 사죄를 받아낼거야” 10년째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 참가해 위안부 문제를은폐하려는 일본을 욕설로 준엄하게 꾸짖어 ‘욕보 할머니’로 불린다.강인하게만 느껴졌던 할머니의 눈가에는 어느덧 통한의 눈물이 맺혔다. 조현석기자 hyun68@
  • [씨줄날줄] 중국판 ‘훈할머니’

    ‘훈 할머니’는 중국에도 있었다.한국정신대연구소(소장고혜정)는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한 채 중국헤이룽장성(黑龍江省)무린의 한 마을에서 60년 동안 살아온 ‘제2의 훈 할머니’박옥선(78)할머니를 찾았다고 16일밝혔다. 박 할머니는 18살때인 1941년 고향 경남 밀양에서 “방직공장에 취직시켜 주겠다”는 말에 속아 정신대로 따라나섰는데 정작 도착한 곳은 일본군 부대 근처의 위안소였고,4년동안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강요받았다는 것이다.‘아키코’라는 일본 이름으로 불렸던 박 할머니는 1945년 소련군에쫓겨 패주하는 일본군과 보름 동안이나 산속을 헤매다가밥을 얻어먹으러 마을에 내려갔다가 그곳에 눌러 살게 됐다고 한다.“휴일이면 문앞에 줄지어 서서 재촉하는 병사들을상대하다 죽을 생각도 해봤지만 죽지 못해 모진 목숨을 부지했다”는 박 할머니에게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 오늘은 수요일.12시 정각이 되면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라”며 시위를 벌이는 날이다.지난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당시 일본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된‘일본군대 위안부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정기 수요시위’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거르지 않은 채 오늘로 456회째가된다.이 시위가 10년 가까이 계속되는 동안 정부에 등록된199명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 중 57명이 한을 안은 채세상을 떴다.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버티면 된다는 배짱인지,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계속 외면하고 있다.그런 가운데 최근 문부과학성의검정을 통과한 역사왜곡 교과서는 ‘일본군 위안부 관련 부분’을 아예 삭제했다.“우리가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일본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는가!”위안부 출신할머니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더구나 명색이 대학교수라는 어떤자는 “위안부 역사는 화장실 역사와 마찬가지다”라는 폭언을 해서 우리 국민들을 자극하고 있다.그 자에게 말하겠다.눈이 있으면 한국 신문에 실린 박 할머니의 처참한 모습을 살펴 보라.그런다음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이사람인지 짐승인지를 판단해 볼 일이다. ■장윤환 논설고문yhc@
  • ‘日교과서 검정통과’ 양측 회견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만든 역사 왜곡 교과서에 대해 일본 문부성이 수정을 요구한 부분은 대부분 단순한 기술 실수를 고치라는 개선의견이었다고 후지오카 노부카쓰(藤岡信勝) 도쿄대 교수가 13일 밝혔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문부성의 검정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내용이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며 이 교과서가 교육현장에서 채택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후지오카 교수는 이날 일본 외국특파원협회가 ‘새 교과서…모임’과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 네트 21’ 관계자들을 초청해 가진 기자회견에서 “검정에서 137군데에 걸쳐많은 수정이 이뤄진 것처럼 알려졌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이같이 말했다.다음은 후지오카 교수와 다쿠보 다다에(田久保忠衛) 교린(杏林)대학 교수의 발언 및 시민단체 대표들의 반박 내용. ■후지오카 교수 문부성의 검정 의견은 대부분 단순한 기술 미스 등에 관한 것이었다.일본군이 전쟁중 주민들을 살육했다는 주장은 잘 따져보면 전시 선전에 불과한 것이다. 외국이 일본 교과서에 대해 간섭한다면일본도 그들의 교과서에 대해 간섭할 권리가 있다. 군장병을 위한 유곽(위안소를 지칭)은 어느 나라 군대에도 있었다.문제는 일본군에 의해 강제연행된 사실이 있느냐는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다쿠보 교수 전후 일본 교과서에는 애국심이 쓰여 있지않다.애국심이 교과서에 언급되지 않으면 국가는 분해될것이다.중학교 학생들에게 위안부 문제를 가르치는 것은적절하지 않다.위안부 문제는 성숙한 단계에서 천천히 가르치는 게 좋다. ■시민단체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 네트 21’ 대표인 이시야마 히사오(石山久南) 역사교육자협의회 사무국장은 “‘새 교과서…모임’측이 펴낸 교과서는 수정됐다고 하지만 본질적으로 바뀐 것이 하나도 없으며 일본 어린이들이이 교과서로 교육받는다면 다른 나라들과 신뢰관계를 구축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역사학자인 하마바야시 마사오(濱林正夫)는 “‘새 교과서…모임’의 교과서는 현행 평화헌법을 부정하고 전쟁 전의 헌법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내용이 들어 있는 등 매우 위험한 사고방식이 반영돼 있다”고 주장했다.시민단체대표들은 이어 “‘새 교과서…모임’의 교과서가 일선 교육현장에서 채택되지 않도록 노력해 일본 국민중에도 양식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강조했다. 김균미기자 kmkim@
  • “”日역사왜곡에 울화 치밀어””

    “일본의 거듭되는 역사교과서 왜곡을 지켜보면 일본 제국주의의 광풍을 직접 겪은 사람으로서 화가 치밉니다.” 일본 만주침략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관동군 출신으로 정신대 만행과 패망 직전 발악상을 몸소 체험한 차철권(車鐵權·78·인천시 부평구 십정1동)옹은 “일본이 대동아전쟁을 미화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라고 개탄했다. 전북 남원군청 농업기사로 근무하던 차옹은 일제의 징집을피하기 위해 중국으로 도망가 당시 삼강성(三江省) 관리로일했으나 끝내 추적을 피하지 못하고 1942년 관동군에 징집됐다. 차옹은 훈춘시 인근에 주둔한 362공병대에 복무하면서 말로만 듣던 군위안소의 실태를 목격할 수 있었다. 훈춘시내에 있는 위안소는 인근 일본군 4개 부대 장병들이부대별로 요일을 정해놓고 수시로 드나들었다고 차옹은 술회했다.위안소에 있던 50여명의 여성 모두가 공장일 등으로큰돈을 벌 수 있다는 꼬임에 빠져 만주로 온 한국인이었다고 말했다. 차옹은 관동군의 패망 직전 상황에 대해서도 증언했다. “패망이 감지되던어느날 부대장이 전 장병을 모아놓고부대에 있던 모든 술과 안주를 먹인 뒤 빈 술병에 폭약을넣어 즉석 폭탄을 만들게 해 연합군이 오면 함께 자폭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일종의 관동군식 ‘가미가제’였다는것이다. 차옹은 “일제의 침략전쟁으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갔다”면서 “속죄는 못할망정 역사 왜곡을통해 과거를 정당화하려는 것은 전쟁보다 더 나쁜 행위”라고 강조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
  • 위안부할머니 中서 ‘유골 귀환’

    일본군 위안부 출신으로 50여년간 중국땅에서 고향을 그리며 한많은 삶을 살다 숨진 조윤옥(趙允玉·76) 할머니가 생전에 그리워했던 고국땅을 살아서 밟지 못한 채 유골로 돌아오게 된다. ‘대구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중국 지린성 훈춘시의 한 양로원에서 지난달 6일 쓸쓸히 생을 마감한 조 할머니의 유골을 할머니의 조카 조두천씨(43)와 함께 오는9일 국내로 봉환한다고 1일 밝혔다.유골은 조 할머니의 고향인 대구시립 납골당에 안장될 예정이다. 조 할머니는 대구시 남구 대명동에서 살다 가정형편 때문에 8살때 함북 북청의 한 가정집에 입양된 뒤 15살때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가 만주와 훈춘 등지로 옮겨 다녀야만 했다. 한국정신대연구소는 98년 현지 조사활동을 통해 조 할머니를 처음 확인했다. 조 할머니는 당시 위안소 관리인이던 일본군인이 임신 방지를 위해 수은이 든 알약을 복용케 하거나 수은을 컵에 담아끓여 그 기체를 몸에 쐬게 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고발했었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 3·1절 되새기는 책 2권

    일제 강점기에 자신의 지조를 팔아먹은 대가로 호의호식한친일파들이 즐비한 반면 해외에서 죽을 고생을 해가며 처절하게 무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들도 적지 않았다.또 일제의 징병·징용 동원에 앞장선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가 인생을 잃어버리다시피한 조선의 ‘처녀’들도 있었다.‘저기에 용감한 조선 군인들이 있었소’(동방미디어)와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풀빛)는그들 용기있는 선열과 불행했던 역사의 희생자들에 관한 기록이다. ‘저기에…’는 잊혀지고 사라져가는 항일운동가들의 흔적이나,그들의 활동에 관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현지 관계자들의 증언과 기록 등을 토대로 한 해외 항일 무력투쟁의 현장 답사기다.대한매일 특별취재반이 지난해 중국,미국,일본,러시아 등 4개국에서 취재해 연재했던 내용을 보완,추가하고 현장·기록 사진을 풍부하게 수록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하얼빈역 1번 플랫폼에는 의거 현장임을 알려주는 표시는 아무 것도 없고 작은화단만이 남아 있다.독립군의 최대 승첩인 김좌진·홍범도장군의 청산리전투 현장,북간도 독립투쟁의 본거지인 용정과 명동,남만주 항일투쟁의 전설 양세봉장군의 근거지 신빈 등 선열들의 발자취를 조명했다.북한 김일성 주석을 항일운동의 길로 안내한 손정도 목사의 활동지 길림과 김주석이 다녔던 육문중학 등도 소개했다.김좌진장군을 살해하거나 양세봉장군을 유인해 죽음으로 이끈 자와,무기구입 자금 부족에 시달렸던 광복단원들이 용정에서 탈취한 일제의 호송자금 15만원을 밀고해 날라가게 만든 인물도 조선인이었던 현실이 안타깝게만 느껴진다. 허베이성 남장촌에서 조선항일군정학교 자리를 묻는 취재팀의 질문에 현지 노인은 “저기 보이는 절에 용감한 조선 군인들이 있었소”라고 확인해줬다.조선의용군이 20대1의 포위망을 뚫은 호가장 전투 현장 등 국내에 최초로 소개한 곳들도 꽤 있다.임시정부와 광복군의 거점이었던 충칭(重慶)과푸양(阜陽) 등 중국 뿐 아니라 하와이,도쿄(東京),포시에트등지의 항일투쟁 현장들도 담았다. ‘기억으로…’는 조선인 군위안부들의 증언집이다.10여만명으로 추정되는 군위안부 가운데 생존자는 160여명.이중 9명이 이번에 위안소에서의 체험 뿐 아니라 그후 전 생애에 걸쳐 삶의 궤적에서 차지하는 위안부 경험의 의미를 담았다.지난 99년 4월 구성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한국위원회 증언팀이 녹취한 증언을 가감없이 기록했다. 다가오는 3·1절의 의미를 되새기며 읽어볼만한,의미있는 책들이다. 김주혁기자 jhkm@
  • 위안부 출신 7순 ‘한많은 죽음’

    일본군 위안부로 중국으로 끌려가 50여년간 이국땅에서 떠돌던 대구 출신의 할머니가 고국땅을 밟지 못한 채 쓸쓸하게생을 마감했다. ‘대구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18일 중국지린(吉林)성 훈춘(琿春)시에 사는 위안부 출신 조윤옥(趙允玉·76)할머니가 한 양로원에서 최근 폐암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조 할머니는 북한 국적이라는 이유로 귀국하지 못하다 각계의 도움으로 지난해 12월 중국 국적을 취득하는 등 고국 방문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숨졌다. 조 할머니는 대구시 대명동에서 살다 가정형편 때문에 8살때 함북 북청의 가정집에 입양됐다 15살때 위안부로 끌려갔다. 조 할머니는 98년 위안소 관리인인 일본군인이 임신 방지를 위해 수은이 든 알약을 복용케 하거나 수은을 컵에 담아 끓여 그 기체를 몸에 쐬게 했다고 증언,세상에 충격을 안겨줬다. 시민모임측은 조 할머니의 유골이라도 고국땅에 묻기 위해중국측과 협의하고 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
  • “위안부 묵인 日皇 유죄”

    여성을 전시 성노예(위안부)로 강제동원한 일본의 전쟁범죄 행위를단죄하기 위해 열린 ‘여성국제전범법정’은 12일 히로히토(裕仁) 일황과 일본 정부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고 5일간의 재판 일정을 모두 마쳤다. 가브리엘 맥도널드 옛 유고 국제전범법정 전 소장 등 4명으로 구성된 재판부는 이날 판결문에서 이번 법정에 피고로 기소된 히로히토일황과 옛 일본군 간부 등은 인간의 노예화,고문,살인,인종적 이유등에 의한 박해 등을 금지하고 있는 ‘인도(人道)에 대한 죄’를 위반했다고 유죄 판결을 내렸다. 아시아에서 자행된 여성에 대한 전시 성폭력을 둘러싸고 국제관습법으로 정착돼온 인도에 대한 죄가 적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특히 히로히토 일황에 대해 “실질적인 일본군 최고 통수권자로서 위안소 설치 등 일본군의 잔학 행위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이를 묵인한 기소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로써 2차대전 후 일본군의 전쟁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설치된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사실상 미국 주도하에 기소를 모면했던 히로히토일황은 전후 반세기 만에 국제사회에서 전쟁범죄자로 낙인 찍히게됐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일본의 국가 책임에 대해서도 “일본군이 여성을 전시 성노예로 동원,마치 군수물자처럼 취급하면서 고문과 강간을자행하고 성 서비스를 강요한 행위는 당시 일본이 가입,비준했던 인신매매 금지조약,강제노동 금지조약 등의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유죄 판결을 내렸다.재판부는 특히 “일본 정부는 전후 위안부 관련 문서를 소각하는 등 만행 사실의 은폐로 일관,국제법의 정의에 비추어 마땅히 져야 할 법적 책임을 회피해 왔다”고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개인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도쿄 연합
  • 전쟁 性범죄 재판 도쿄서 ‘개정’

    [도쿄 연합]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일제의 전쟁범죄 책임을 가리기위한 ‘여성 국제전범 법정’이 8일부터 5일간의 일정으로 도쿄(東京)에서 열렸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군 위안부 피해자 78명 등 관련자 1,000여명과남북한을 포함한 아시아 8개국과 일본의 민간단체 ‘국제실행위원회’가 참가해 히로히토(裕仁) 일황과 옛 일본군 주요 간부 등을 성 노예화 방조 및 교사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다음은 여성 국제전범 법정에서 남북한이 공동으로 낸 기소장 요지. ◆형사 피고인(당시 직위)=히로히토 일황,도조 히데키(東條英機·총리 겸 육군대신),미나미 지로(南次郞·조선 총독),이타가키 세이시로(板垣征四郞·조선군 사령관),오카무라 야스지(岡村寧次·중국 파견군 사령관),우메즈 요시지로(梅津美治郞·관동군 사령관),안도 리키치(安藤利吉·대만 총독),마쓰야마 유조(버마군 56사단 사령관) 등 8명. ◆범죄사실=일본군 위안소 시행(성 노예화),위안부 강제연행(감금,인질,강간,고문,노예화,박해),위안부 강제이송(불법 추방과 이송),위안소 범죄(강간,고문,상해,학대,살인),비인간적 행위(강요된 불임). ◆전쟁범죄 적용 여부=1910∼1945년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더라도일본군의 성 노예화와 관련한 범죄는 일본이 도쿄 극동 군사재판에서인정한 전범 행위에 해당된다. ◆일본의 책임=일본은 전후 배상책임은 끝났다고 주장하나 전쟁에 관한 국제법과 부녀자 약취에 관한 조약 등은 해당 국가가 당시 행정기관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규정하고 있다.따라서 일본은 피해자에 대한 공식 사죄와 배상,책임자 처벌,피해자 명예회복,생존자 귀환,유골송환,일본군 성 노예 범죄 재발방지 등의 의무가 있다.
  • 히로히토 포함 日 성노예 전범 남북한 공동 기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공동대표 尹貞玉·이하 정대협) 등 15개시민단체 회원 220여명이 일본 도쿄에서 8일부터 10일까지 열리는 ‘2000년 일본군 성노예전범 국제법정’에 참가하기 위해 7일 오전 출국한다. ‘2000년 법정’은 피해자 김학순씨 등이 91년에 낸 일본국 상대 소송에서 잇따라 기각되거나 패소하는 등 일본 안에서 승소할 길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아시아 8개 피해국과 일본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상징적인 인권법정이다.인권 법정에는 남·북한,중국,대만,필리핀,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동티모르 등 아시아 피해국과 세계여성·인권 단체에서 약 1500여명이 참가하며 지난 98년 서울에서 열린아시아연대회의에 참석한 일본의 시민단체 VAWW―NET JAPAN의 대표마쓰이 야요리의 제안에 따라 이뤄졌다. 정대협은 북한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 대책위원회(대표 정남영·이하 종태위)와 함께‘2000년 법정’에 제출할 남북 공동 기소장을 작성했다. 정대협과 종태위는 공동 기소장에서 일본 천황이었던 히로히토(裕仁·89년사망)에 대해 “1925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군의 실질적인 통수권자로서 ‘위안소’의 존재에 대한 실질적 지식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어떠한 방지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재발방지를위한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면서 “전쟁에 패한 뒤 위안부로 동원된 여성들을 현지에 유기하였으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문제해결을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이송하기자 songha@
  • [외언내언] 2000년 국제법정

    지난달 30일 일본 도쿄고등법원은 일본군 위안부로 7년 동안 혹사당한 재일 한국인 송신도(78) 할머니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1,200만엔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항소심 판결에서 위안소 설치는 당시의국제법 위반이라는 판결을 했다.위안소 설치가 국제법 위반이라는 일본의 사법판단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재판부는 그러나 송할머니의 손해배상청구에 대해서는 “재일한국인의 배상청구권은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20년이 경과한 1985년에 소멸됐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6일 일본대사관이 입주해 있는 광화문 교보빌딩 옆 가로공원에서는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제438차 수요시위가 열렸다.이날 시위는집행부가 7일부터 12일까지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2000년 일본군성노예전범 국제법정’(이하 ‘2000년 국제법정’) 참가차 떠나고 없어 조촐하게 치러졌지만 1992년 1월8일 첫 집회 후 9년 동안 계속돼온 시위의 열기는 여전했다. ‘2000년 국제법정’은 1998년 4월 유엔여성단체 모임에서 일본의시민단체 대표인 마쓰이 야요리가 제안,같은달서울에서 열린 제5차아시아연대회의에서 그 개최가 결정된 것이다.남북한 중국 대만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일본 등 9개국 시민단체가 공동개최하는 법정에는 1,000여명의 세계 인권 평화 여성단체들이 참여한다.한국에서는 위안부 할머니 24명을 포함해 모두 220명이 참가하는데 특히 남북한은 공동으로 작성한 일왕(日王) 히로히토(裕仁·1989년 사망)에 대한 기소장을 제출한다. ‘2000년 국제법정’ 행사는 국제공청회·문화행사도 곁들인다.법정에서는 위안부 할머니를 대신해 각국 검사단이 일왕 히로히토 등 전범들을 고소하며 국제형사재판소(ICC) 유고전범재판에 참여했던 커크맥도날드와 국제법전문가 크리스틴 친킨 등 판사단 6명이 고소장과위안부들의 증언을 토대로 심리하고 판결을 내린다. 이 행사는 아시아 8개 피해국과 일본의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상징적인 인권법정이란 점에서 법적 구속력은 없다.그러나 전쟁당시 성노예 범죄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아냄으로써 인간으로서 명예회복과 존엄성을 회복하고 이같은 범죄의 재발 방지를 위해세계적으로 명망높은 판사들이 일본정부의 잘못을 판결한다는 뜻에서의미있는 행사다. 이처럼 ‘2000년 국제법정’이 세계인들의 관심 속에 일본군 성노예 범죄에 대한 책임자의 처벌을 공개적으로 추진하고있는데도 일본은 여전히 1965년 한·일조약으로 이미 과거는 청산됐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은 답답한 일이다. 박찬 논설위원 parkchan@
  • 日軍위안소는 국제법 위반

    [도쿄 연합] 도쿄 고등법원은 30일 일본군 위안부로 7년 동안 혹사당했던 재일 한국인 송신도(宋神道·78)씨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1,200만엔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항소심 판결에서 위안소 설치는당시의 국제법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기토 스에오(鬼頭李郞) 재판장은 송씨가 입은 피해 사실을 인정하면서 “(일본군) 위안소 설치는 당시 일본이 비준,가입했던 강제노동조약 등의 국제법을 위반한 것으로 국가에 그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한 지금까지의 전후 보상 소송에서 위안소 설치가 국제법 위반이라는 사법 판단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재판부는 그러나 송씨의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서는 1심과 마찬가지로 “국제법상 개인이 가해국을 상대로 직접 배상을 청구할 권리는없으며, 재일 한국인의 배상청구권은 한·일 청구권협정 체결후 20년이 경과한 지난 85년에 이미 소멸했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 “밥 한공기 무 몇조각 먹고 일본군 상대”

    북한에 거주하는 옛 일본군 위안부의 생생한 증언이 남한 방송을 통해 첫 방영됐다.YTN은 20일 밤9시15분부터 40분간 방송된 ‘이대로죽을 순 없다-숨겨진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을 통해 2차대전 당시중국 상하이와 윈난(雲南)성 쿤밍(昆明)일대에서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한 박영심씨(79·남포시 거주)의 위안부 생활을 소개했다. 박씨는 지난 95년 북한에서 발간한 ‘짓밟힌 인생의 외침’(종군위안부편)에서 “우리는 해가 뜨면 쌀밥 한공기에 몇쪼각의 무우절임을먹고 한주일에 한번씩 륜번제로 휴식하는 일본군을 대상하여 치욕스런 일을 당해야 했다.하루 평균 일본군 30여명을 대상하여 ‘성봉사’를 해야만 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 프로에서 이를 생생히 증언했다.또 종군위안부 생활 탓에 “자궁을 드러낸데다 심장판막과 신경쇠약으로 때아니게 헛소리를 치면서 고민하는 폐인이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일본 취재진의 협조를 얻어 박씨를 취재한 YTN 영상취재부 한원상기자(38)는 “박씨는 지난 84년 일본에서 출간된 일본군 증언집에 자세히 언급됐으며,미국내 문서에서도 신상이 확인된 사람”이라고 밝혔다.위안부 관련 사진에서 임신한 모습의 여성이 박씨라는 사실이 최근 확인돼 국내언론에 소개된 적도 있다. 한편 이 프로는 박씨가 있던 윈난성 일대에서 일본군 중위로 근무한하야미 마사노리씨(78)의 위안소 출입 증언도 곁들여,위안부 문제와관련해 가해자 증언을 확보하는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을 들었다.이 프로는 21일에도 새벽4시15분,낮1시15분,낮3시15분 등 3차례재방영된다. 정운현기자 jwh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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