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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2000년대초 “위안부는 성 노예 프로그램” 결론

    일본의 전쟁범죄 기록을 조사해온 미국 연방정부 합동조사단이 2000년대 초 군대 위안부가 일본의 조직적 성 노예 프로그램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각 정부기관에 관련 자료 발굴 지침을 내렸던 것으로 밝혀졌다. 24일(현지시간) 워싱턴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독일 나치 전범 및 일본 전범 기록 관계부처 합동조사단(IWG)은 2007년 4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최종 보고서를 만들어 미 의회에 전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빌 클린턴 행정부 때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던 새뮤얼 버거는 2000년 말 관련 기관들에 공문을 보내 1931~1945년 일본에 의한 전쟁 범죄 관련 기록을 조사할 것을 지시했다. IWG가 2006년 발간한 ‘일본 전범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4년여간 진행된 조사에서 식민지 여성과 소녀들의 납치를 고발하는 일부 문서들을 찾아냈다. 여기에는 일본이 싱가포르에서 중국 여성 400여명을 납치했다는 1943년 중국 언론 보도와, 인도차이나에서 활동한 일본군 장교가 현지 여성들에게 위안부 활동을 하도록 위협했다는 발언 내용이 담겨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또 일본에 대한 반감을 줄이고 성병 확산을 막기 위해 일본군이 1932년부터 민간 업자들을 고용해 ‘위안소’를 운영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보고서는 특히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이 성 노예 또는 위안부를 운영한 사실은 많은 관심을 받는 중요한 문제인데도 미 정부는 전쟁 중 또는 전쟁 후 조직적으로 관련 자료를 수집하거나 발굴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軍위안부 강제동원’ 입증할 日사료 대거 발견

    ‘軍위안부 강제동원’ 입증할 日사료 대거 발견

    제2차 세계대전 시기 한국여성들이 일본의 ‘국가총동원령’에 따라 집단으로 중국으로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됐음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자료가 중국에서 무더기로 발견됐다. 옛 만주국 당시 관동군사령부 등이 남긴 일제사료 10만권을 정리·연구하고 있는 중국 지린성기록보관소(이하 기록보관소)는 최근 정리가 끝난 일본군 위안부 관련 사료 25건을 한국언론에 공개했다. 25건의 사료 가운데 6건은 한국인 군 위안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1941년 일본군 베이안(北安)지방검열부가 만든 ‘우정검열월보’(郵政檢閱月報)에서 한 군위안소 상황을 묘사한 편지도 포함돼 있다. 헤이룽장 헤이허(黑河)에 사는 일본인이 일본 니가타현에 사는 지인에게 보낸 이 편지에는 “위안소 병력은 단지 20명 정도며 전부 선인(鮮人·조선인)으로 국가총동원법에 묶여 온 것”이라는 표현이 담겨 있다. 또 “방자(芳子), 화자(花子) 등에게 분홍색 배급권이 지급됐다”, “봉급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배급권도 직권남용으로…장교들 전용상태” 등의 내용도 담겨 있다. ‘우정검열월보’ 제도는 중국을 침략해 만주국을 세운 일제가 군사기밀이 외부에 유출되는 것을 막으려 군·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광범위한 편지·전보 검열제도로, 각 지역 헌병부대는 검열결과를 정기적으로 관동군 헌병대에 보고했다. 기록보관소 자오위제(趙玉潔) 연구위원은 “‘병력’이라는 표현이 좀 생소하긴 하지만 문맥과 일본어식 여자이름이 나온 것을 종합하면 ‘군 위안부’를 지칭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본군이 공금을 사용해 군 위안부를 계획적으로 모집했음을 보여주는 만주 중앙은행의 전화기록과 ‘위안부 수가 부족해 현지에서 위안부를 모집해야 한다’는 화중파견헌병대의 또 다른 상황보고서도 공개됐다. 전화기록에는 일본군이 군용공금과목을 할당해 위안부를 ‘구매’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통화내용을 수기로 풀어낸 이 사료는 일본군이 1944년 12월∼1945년 3월 네 번에 걸쳐 공용자금을 군 위안부 항목에 지출했고 그 액수가 53만 2000엔(당시 화폐단위)에 달했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다. 1938년 2월 화중파견헌병대가 관동군사령부에 보고한 ‘난징헌병대 관할구역 치안회복 상황보고서’에는 ‘통첩’(通牒·알림)이라는 문자가 찍혔고 난징, 샤관, 쥐룽, 전장, 진탄, 창저우, 단양, 우후, 량궈 등 8개 시현에 배치된 일본군 규모, 위안부 수, 위안부 1명당 군인 비율, 열흘간 위안소를 이용한 군인 수 등이 기록돼 있다. 특히 우후 지역의 군 위안부 109명 중에서는 ‘조선위안부’가 36명이었다는 내용도 나와 있다. 현재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 우익들은 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며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中 “난징 亞 최대 위안소 유적 보존”

    中 “난징 亞 최대 위안소 유적 보존”

    중국 당국이 장쑤(江蘇)성 난징(南京)시에 있는 아시아 최대 일본군 위안소 유적을 문물보호단위(우리의 사적에 해당)로 지정해 체계적으로 관리할 계획이라고 신화망이 17일 보도했다. 난징시 친화이(眞淮)구 리지샹(利濟巷)에 있는 위안소 유적은 면적이 6700㎡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아시아에 세운 위안소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만삭 위안부’ 사진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북한의 박영심(2006년 작고) 할머니가 2003년 방문해 일제의 만행을 증언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 유적은 2003년 난징국토관리국에 수용됐지만 이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현재 7채의 빈 건물이 흉가처럼 방치돼 있다. 현지 언론은 과거 난징의 일부 공직자가 이 유적에 대해 “중국인이 당한 치욕의 상징이기 때문에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며 ‘철거하지도 보호하지도 않는 상태’가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난징시는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군 위안부가 일제의 만행을 여실히 보여 주는 국제적인 이슈로 주목받자 그동안 방치됐던 이 유적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난징 둥난(東南)대 저우치(周琦) 교수는 “리지샹의 위안소 건물은 절대로 철거하거나 이전하면 안 되고 아우슈비츠 수용소처럼 본 모습 그대로 보호해 역사의 진실을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日, 위안부 조직적 운영” 美 문서 확인

    일본 정부가 군대 부대시설의 하나로 위안부를 두고 조직적으로 운영한 사실이 미군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15일(현지시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을 통해 공개된 미군 비밀해제 문서에 따르면 미군 동남아 번역·심문소가 1945년 4월 버마(미얀마)에서 체포된 일본군 포로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일본군이 군대 위안부를 운영한 사실을 파악했다. 문서에 따르면 미군 당국은 포로를 상대로 ‘부대시설’의 하나로서 위안부를 두고 있는지를 심문했고 그 결과 만달레이주 메이묘에 일부 위안부를 두고 있었다는 답변을 받았다. 또 다른 국립문서기록관리청 기밀해제 문서에 따르면 1945년 4월 25일 중국 여자 간호사를 인터뷰한 결과 일본 육군 군의관이 매주 금요일 중국 만주의 위안소를 방문해 ‘여성’(위안부)들을 상대로 정기검진을 실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이 위안소에는 1급으로 분류되는 일본 여성 30명, 2·3·4급으로 분류되는 한인 여성 120명 등 모두 150명이 있었으며 모두 성병에 걸려 있었다고 문서는 밝혔다. 1993년 고노 요헤이 당시 일본 관방장관은 담화를 통해 일본군이 위안소 설치·운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음을 인정하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최근 일본 내 우익 인사들은 고노 담화 수정을 요구하면서 위안부 존재를 부정하는 망언을 쏟아내고 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연합뉴스
  • “일본군, 군자금으로 위안부 은폐 시도”

    일본의 아베 신조 정권이 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의 검증에 나선 가운데 과거 동남아 여성 위안부에 대한 강제 연행을 군자금을 활용해 은폐하려 했다는 전 일본군 병사의 증언이 확인됐다. 하야시 히로후미 간토가쿠인대학 교수는 7일 도쿄 중의원 제1의원회관에서 열린 고노 담화 수정 반대 집회에서 대표적인 군 위안부 강제 연행 사건인 ‘스마랑’ 사건에 연루됐던 일본인 병사의 증언 기록에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됐다고 밝혔다. 하야시 교수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 해군 병조장을 지낸 한 병사는 태평양전쟁 당시 자신이 속한 부대가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에서 네덜란드군 하사관 부인 5명과 현지인 여성 270여명을 발리섬으로 끌고 가 위안부로 삼았고, 종전 후 처벌을 면하기 위해 군자금으로 피해 지역 주민들을 회유했다고 밝혔다. 이 인사는 “종전 후 군수부와 시설부에서 담판해서 약 70만엔을 공작비로 받아 각 촌장을 통해 주민 회유 공작에 썼다”고 밝힌 뒤 “완전히 효과를 봤다. 가장 걱정했던 위안소 건은 한 건도 제소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증언은 인도네시아에 주둔 중이던 일본군이 1944년 네덜란드 여성 등을 연행해 자바섬 스마랑 근교에 억류하고 군 위안부로 삼은 ‘스마랑’ 사건에 연루됐던 일본군 병사가 1962년 8월 증언한 내용으로, 이 내용을 담은 문서는 일본 국립공문서관에 보관돼 있다고 하야시 교수는 전했다. 하야시 교수는 “일본군이 (군 위안부 강제 연행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군의 돈을 써서 입막음을 시도한 사실을 보여주는 문서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면서 “이는 일본군이 관여한 조직적인 은폐 공작이었다”고 말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아직 끝나지 않은 아픔 ‘위안부 피해자 특별전’

    아직 끝나지 않은 아픔 ‘위안부 피해자 특별전’

    올해 초 ‘제41회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 출품돼 국제사회의 반향을 불러일으킨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만화작품들이 국내에 소개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는 다음 달 1일부터 4월 13일까지 서울 세종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특별전’을 개최한다고 26일 밝혔다.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들의 이야기’란 주제로 펼쳐지는 전시는 위안부 피해가 과거사가 아닌 현재진행형의 문제이자 세계 각지 분쟁지역의 여성·아동 대상 성폭력과 잇닿은 ‘보편적 인권침해’라는 관점으로 구성됐다. 전시에는 ‘나비의 노래’(김광성), ‘오리발 니뽄도’(이현세), ‘꽃반지’(탁영호), ‘우린 어디로 가고 있는가?’(최인선) 등 앙굴렘 페스티벌에 출품된 만화작품 22편을 비롯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직접 그린 그림, 국내 기관들이 보유한 위안부 피해자 구술집 등 역사 자료, 피해자 증언을 토대로 제작한 영상물 등이 전시된다. 위안부 피해자인 김순덕 할머니가 그린 ‘끌려가는 날’(복사본) 외에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 수용인원 명부 등은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또 ‘소녀이야기’ 등 영상물은 가슴시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한(恨)을 다룬다. 세계 최대의 만화 축제인 앙굴렘 페스티벌에서는 국내 만화작가들이 특별전 ‘지지 않는 꽃’을 통해 전 세계 기자 800여 명과 작가 1600여 명, 관람객 25만 명 앞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실상을 생생하게 증언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프랑스 주재 일본대사관을 통해 앙굴렘 사무국에 민간이 개최하는 만화축제에서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금지시켜 달라고 공식 요청했었다. 하지만 필리프 라보 앙굴렘 시장은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위안부 관련 역사를 만화를 통해 소개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며 이를 거절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韓·中 학자 ‘日 위안부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韓·中 학자 ‘日 위안부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한국과 중국 학자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관련 자료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공동 추진한다고 반관영인 중국신문사가 9일 보도했다. 중국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연구센터 쑤즈량(蘇智亮) 주임은 “중·한 학자들이 함께 일본군 위안부 문헌 및 조사자료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로 의견을 모았으며 향후 타이완, 일본, 필리핀, 북한 등 관련국도 참여시킬 것”이라고 말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앞서 지난 1월 한국 정홍원 국무총리가 국가기록물로 지정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관련 자료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관련 부처에 지시했으며, 중국 언론들은 이에 일제히 지지 의사를 표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한혜인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원은 8~9일 상하이(上海)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중·일 학술회의’에서 일본군이 위안부 동원과 위안소 개설에 직접 관여한 공문서를 공개했다. 그는 중국 상하이 당안관(?案館·국가기록보관소격) 자료 분석을 통해 일본군이 중국 괴뢰정부를 이용해 군 위안소를 개설하고 관리하는 제도를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그 증거로 1939년 친일 중국인 업자인 양수이창(楊水長)이 상하이에 위안소를 설치하기 위해 당시 상하이를 점령한 일본군 헌병대 등으로부터 행정 허가를 받았다는 사실을 적은 공문서를 제시했다. 양씨가 개설한 이 위안소는 ‘일본군 전용’이었으며, 통역과 15세 여성을 포함한 7명의 위안부를 고용해 운영됐다. 한 연구원 “일본군이 직접 부녀자를 강제 연행하고 친일 중국인 업자를 이용해 위안소를 개설한 공문서도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日 참의원, 위안부-성매매 동일시 망언 논란

    일본유신회의 국회대책 필두(筆頭)부위원장을 맡은 나카노 마사시(中野正志) 참의원이 일제 군 위안부를 성매매와 동일시하는 것으로 평가할 여지가 있는 발언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나카노 의원은 29일 “지금도 한국 여성 5만 명이 성 산업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국 정부가) 확실히 말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100달러, 200달러에 ‘어서 데리고 가세요’라고 한다”는 발언을 했다. 30일 아사히(朝日)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그는 모미이 가쓰토(인<米+刃>井勝人) NHK 회장의 일본군 위안부 발언으로 생긴 논란에 관해 이같이 언급하고서 “왜 일본이 전쟁 때의 일을 언제까지(들어야 하느냐)…”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일본의 7개 야당 참의원 국회대책위원장이 소집한 비공개회의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나카노 의원은 민주당이 모미이 회장의 발언을 국회에서 거론하려는 것에 대해 “발언에 문제가 없다”는 뜻을 밝히고 “국회의원이 아닌 개인 견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의 언급은 한국과 중국에 지금도 성매매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이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인데 유독 수십 년이 지난 일본군 위안부를 계속 문제 삼느냐는 취지다. 명시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에는 일본군이 위안소를 운영한 것이 일종의 성매매이거나 이와 비슷하다는 인식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또 위안부 동원이 강제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부인한다는 점에서 일본 우익 세력의 주장과 유사하다. 일본 정부는 1993년 발표한 고노(河野)담화에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했으며 전범 재판 등에서도 강제성이 확인된 바 있다. 이 때문에 나카노 의원의 발언은 위안부 피해자를 모욕하고 역사를 왜곡한다는 강한 비판을 낳고 있다. 또 7개 야당의 국회대책위원장이 소집한 회의에서 이뤄진 발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국회의원과 분리된 개인의 사적 발언으로 보기도 어렵다. 일본의 역사적 잘못을 변명하려고 타국의 성매매를 핑계로 삼는 것은 외교적이지 못한 처사라는 지적도 예상된다. 아사히는 다른 당 소속 간부 여러 명이 ‘역사적인 군 위안부와 현재의 성 산업은 전혀 관계없다. 온당치 못한 발언’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의 공동생활 시설인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피해 당사자가 가해자에게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상황”이라며 나카노 의원과 같은 발언을 하는 정치인이 “인권이 무엇인지 아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그는 “피해 할머니는 위안소가 한 마디로 도살장이라고 증언하고 있고 당시 어린 나이에 고통스러운 일을 강요당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며 “현재의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성매매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모미이 NHK 회장은 지난 25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뿐만 아니라 전쟁지역에는 (위안부가) 있었고 독일, 프랑스 등에도 있었다”면서 “한국이 일본만 강제연행했다고 주장하니까 이야기가 복잡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발언으로 논란이 커지자 27일 “개인적인 의견으로서도 해서는 안 될 이야기였다”고 해명했지만 일본의 언론·출판업계 노조의 연합체인 매스컴문화정보 노조회의는 모미이 회장의 사임을 요구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위안부 1명이 하루 26명 상대” 충격 문서 발견

    “위안부 1명이 하루 26명 상대” 충격 문서 발견

    중국 지린성 기록보관소가 최근 일본 관동군이 남긴 자료에서 위안부에 관한 새 문서들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교도통신은 10일 일본군위안부 징용 비용에 관한 은행 기록, 난징시 주변에 설치된 위안소 상황 등에 관한 새 기록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이번에 발견된 문서에는 “조선인 위안부가 36명 있다”, “위안부 1명이 많을 때는 열흘 동안 병사 267명을 상대했다”는 기록 등도 포함돼 있다. 이 문서들은 일본 관동군이 패전 후 아직 소각처분하지 못해 땅에 묻었다가 1950년 건설 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10만 점 이상의 자료에서 나온 것이다. 중국은 일본군이 남긴 이들 자료를 통해 일본의 침략 실태 등을 규명,그동안 외교 카드로 삼지 않았던 위안부 문제도 대일 압박 재료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맹수열 기자 guns@seoul.co.kr
  •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아픔 모든 세대와 함께 공유해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아픔 모든 세대와 함께 공유해요”

    여성가족부는 서울 동작구 국립여성사전시관에서 12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약 80일 동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전시’를 개최한다고 11일 밝혔다. 개막식에는 일본군 강제 동원 피해자 할머니들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여가부는 “이번 전시회는 정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만을 주제로 주최하는 최초의 전시회”라면서 “위안부 문제를 바로 알리고 전쟁의 피해자로 희생된 할머니들의 아픔을 모든 세대가 함께 공유하기 위해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전시회에서는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머무는 피해자 할머니들이 심리 치료를 위해 그린 그림, 일제강점기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을 입증하는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 각종 수요집회 활동 자료, 위안소 분포 지도 등이 선보인다. 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사용자제작콘텐츠(UCC) 공모전 수상작이 시연되고,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했던 고 정서운 할머니의 육성을 이용해 2011년 김준기 감독이 제작한 애니메이션 ‘소녀이야기’도 상영된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日 위안부 증거 첫 공개… 들통난 아베의 거짓

    일본 아베 신조 내각이 부정하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 연행의 증거가 공개됐다. 교도통신은 6일 세계 제2차대전 중 일본군이 인도네시아의 포로수용소에서 네덜란드 여성 35명을 강제 연행해 위안부로 삼았음을 보여주는 공문서를 도쿄 국립공문서관이 지난달 말부터 6일까지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시민단체의 정보 공개 청구에 따라 일본 정부가 자료를 공개한 것으로, 위안부 강제 연행 과정에 일본군이 관여했음을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의 기초가 된 이 자료의 존재와 주요 내용은 알려져 있었지만 상세한 문서 내용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라고 통신은 전했다. 이 문서는 종전 후 인도네시아 바타비아(자카르타의 당시 명칭)에서 전직 일본군 중장 등 장교 5명과 민간인 4명을 강간죄 등으로 유죄 판결한 재판의 기록과 피고인이 추후 일본 관청에서 진술한 내용 등으로 구성됐다. 12년형을 받은 전 육군 중장의 판결문에는 1944년 일본군 장교의 명령으로 인도네시아 자바섬 스마랑주에 수용돼 있던 네덜란드인 여성을 4개 위안소로 연행한 뒤 위협해서 성매매를 시켰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 전직 중장이 1966년 일본 이시카와현 현청에서 진행된 조사에서 “(위안부가 되겠다는) 승낙서를 받을 때 약간의 사람들에게 다소간의 강제가 있었다”고 진술한 내용도 공개된 자료에 있다. 그럼에도 아베 총리의 1차 집권기인 2007년 3월 당시 내각은 각의 결정을 통해 ‘정부가 발견한 자료에는 군, 관헌에 의한 강제 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기술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출범한 제2차 아베 내각은 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당신의 책]

    경제분석의 역사 1·2·3(조지프 슘페터 지음, 이상호 외 옮김, 한길사 펴냄) 혁신, 창조적 파괴, 기업가 정신이라는 개념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출신 미국 경제학자인 저자가 경제학의 역사를 과학적 경제분석의 발전사로 풀어쓴 책. 1914년 저서 ‘학설사와 방법론사의 시대’를 토대로 마지막 9년을 쏟아부었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숨졌다. 이상호 원광대 교수 등 5명이 1996년부터 번역을 기획해서 무려 17년 만에 출간이 완료됐다. 644~764쪽. 각 권 3만 5000원. 청소년 정치의 주인이 되어 볼까?(이효건 지음, 사계절 펴냄) 민주주의 원리부터 정치 참여까지 알기 쉽게 설명한 청소년용 정치교양서. 두발 자유화를 위해 학생들이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항의 의사를 표시한 사건 등 청소년들이 스스로 나서서 민주주의를 실현시킨 흥미로운 사례들을 통해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한편 청소년의 선거권 보장 등에 대한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200쪽. 1만 2000원. 산체스네 아이들(오스카 루이스 지음, 박현수 옮김, 이매진 펴냄) 20세기 빈민 연구의 고전으로 꼽히는 ‘산체스네 아이들’의 출간 50주년 기념판이 국내 출간됐다. 인류학자인 저자가 멕시코의 빈민가 카사그란데에서 살아가는 가족을 4년간 취재해 1인칭 서사 형식으로 기록한 이 책은 1961년 발간 당시 멕시코 빈곤의 실상을 생생히 드러내는 바람에 격렬한 논쟁에 휩싸이기도 했다. 2011년 발간된 50주년 기념판에는 산체스네 가족의 후일담 등이 추가됐다. 759쪽. 2만 8000원. 에라스뮈스(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펴냄) ‘호모 루덴스’, ‘중세의 가을’로 유명한 사상가 요한 하위징아가 광기로 얼룩진 중세의 혼란 속에서 자유와 평화를 지키려 애쓴 고독한 인문주의자 에라스뮈스에 대해 쓴 평전. 하위징아는 에라스뮈스의 대표작 ‘우신 예찬’을 비롯해 그의 정신과 사상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472쪽. 1만 8000원. 불멸의 이론(샤론 버치 맥그레인 지음, 이경식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 250년 전 탄생한 통계학 이론 ‘베이즈의 정리’는 사전 경험을 통해 확률을 도출한다는 점 때문에 통계학자들의 비난 속에 묻혔다. 하지만 주관성에 의지한 이론의 결과가 너무나 잘 들어맞으면서 실제 현실에서는 꾸준히 주목받아 왔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독일 암호 체계인 에니그마를 해독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고, 냉전시대에는 핵잠수함을 찾는 데 사용됐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이론이 어떻게 해서 인류 역사상 위대한 논쟁 가운데 하나를 촉발했는지를 흥미진진하게 보여 준다. 640쪽. 2만 8000원. 확신의 힘(웨인 다이어 지음, 김아영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행복한 이기주의자’로 유명한 저자는 백혈병 진단을 받은 뒤에도 여전히 건강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확신의 힘’을 키우는 5단계 기술을 제시한다. 저자는 “이미 이루어 놓은 것처럼 확신하면 과거의 나에 얽매이지 않고 내 안의 창조적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288쪽. 1만 5000원.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안병직 번역·해제, 이숲 펴냄) 일제강점기에 미얀마와 싱가포르에서 2년 5개월 동안 일본군 위안소의 관리자로 일했던 조선인의 일기. 경기도 파주에 있는 개인 박물관 운영자가 10여년 전 경주에서 우연히 원본을 발견한 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제공했고,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가 주도하는 낙성대 경제연구소 팀이 현대어로 번역했다.424쪽. 2만 5000원.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정구현 지음, 청림출판 펴냄) 전 삼성경제연구소장이자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인 저자가 분석하는 한국경제의 위기와 재도약을 위한 제언. 저자는 한국경제가 직면한 위험은 성공 속에 싹트기 시작한 나태함, 이익집단의 고착화, 리더십의 부재, 고비용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정부와 기업이 한국경제의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단행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316쪽. 1만 6000원.
  • 알고 있나요, 중국에 남겨진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

    알고 있나요, 중국에 남겨진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

    “이젠 조선말도 중국말도 잘 못해. 부끄러워. 조선말을 잊어버린 게 가슴 아파.” 일본군 밥해 주고, 옷 지어 주는 허드렛일 하는 줄 알고 1940년 열아홉살 나이에 중국에 끌려온 이수단(92) 할머니는 ‘히도미’란 이름으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본군의 성노예로 살았다. 1945년 전쟁이 끝났지만 할머니는 남겨졌다. 헤이룽장성 둥닝 현에서 만난 이수단 할머니는 가슴에 겹겹이 쌓인 모진 세월의 상흔을 모국어에 대한 그리움으로 표현했다. 사진작가 안세홍이 2001년부터 12년간 중국 곳곳에 살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은 포토 에세이집 ‘겹겹’(서해문집)이 출간됐다. 도망칠 엄두조차 못 내고 위안소 근처에 살았던 김순옥 할머니, 고향을 잊지 않으려고 날마다 지도를 봤다는 박대임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여덟 명의 한숨과 고통이 흑백사진 속에 담겼다. 이 가운데 생존해 있는 할머니는 단 두 명이다. 안세홍 작가는 2011년부터 일본 12개 도시와 뉴욕, 파리, 베를린, 서울 등 세계 주요 도시를 돌며 일본군 위안부 사진전과 강연회 등 ‘겹겹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도쿄 니콘살롱전시장에서 열려던 전시회가 니콘 측의 일방적인 계약 파기로 취소됐다가 소송까지 벌인 끝에 개최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일본軍 위안부 직접 관리, 그 명백한 증거

    일본軍 위안부 직접 관리, 그 명백한 증거

    ‘병참에 가서 사쿠(콘돔) 배급을 받았다.’, ‘병참의 군의가 위안부의 신체검사와 예방접종을 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위안소를 직접 관리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새로운 자료가 공개됐다. 고려대 한국사연구소는 8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942년 8월부터 1944년 말까지 미얀마와 싱가포르에서 위안소의 종업원으로 일한 조선인의 일기 원본을 공개했다. 한국사연구소에 따르면 일기 작성자(1905∼1979)는 1942년 처남과 함께 동남아로 떠나 2년 5개월간 체류했다. 1922년부터 35년간 적은 그의 일기 가운데 위안소 관련 내용은 1943∼1944년 2년치에 담겨 있다. 작성자는 일기에 일본군의 위안부 동원과 위안소 운영 실태에 관한 기록을 여러 차례 남겼다. 일기를 보면 작성자는 매일 오전 일본군 병참사령부에 위안부 관련 영업 일보를 제출한 것으로 나와 있다. 1943년 1월 12일자 일기는 ‘항공대 소속 위안소의 수입 보고서를 연대본부에 제출했다’고 기록했다. 일본군이 위안소를 직접 관리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결혼한 뒤 위안부를 그만둔 여성에게 일본군이 복귀 명령을 내려 다시 위안부로 복귀한 기록도 담겨 있다. ‘이전에 무라야마씨 위안소에 위안부로 있다가 부부생활하러 나간 하루요(春代)와 히로코(弘子)는 이번에 병참의 명령으로 다시 위안부로서 킨센관에 있게 되었다더라’는 내용이다. (1943년 7월29일자) 박한용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군이 절대적인 인사·명령권을 갖고 위안부에 대해 직접적인 명령과 통제를 한 것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日 만행에 죽고 망언에 운다… 亞 5개국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

    日 만행에 죽고 망언에 운다… 亞 5개국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

    1992년 1월부터 매주 수요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가 7일 1086회를 맞았다. 그사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56명으로 줄었다. 지난 5월 하시모토 도루 일본 오사카 시장은 위안부가 필수적이었다는 망언을 했다. 고통은 여전하지만 일본의 반성은 요원하다. KBS 1TV ‘KBS 파노라마’는 광복절을 맞아 8일과 15일 밤 10시 2부작 다큐멘터리 ‘끝나지 않은 전쟁, 일본군 위안부’를 방송한다. 국내외의 문서와 증언을 통해 일본군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위안부를 모집, 운영하고 은폐했다는 사실을 밝힌다. 1편의 주제는 ‘아시아의 피해자들’이다. 제작진은 5개국에서 만난 위안부 피해자 30여명의 증언을 통해 일본의 만행을 고발한다. 태평양 전쟁의 격전지였던 팔라우에 위안부로 동원된 강무자(가명)씨는 “언니들 중 일부가 아래가 아파서 몸을 안 주고 칼로 군인을 죽이려고 달려드니까 일본 장교들이 언니들을 데려가 보란 듯이 자궁에 총을 쏘고 젖통을 베어내기도 했다”고 증언한다. 중국의 위안부 피해자 만애화는 세 차례나 위안부로 끌려가 밤낮없이 성폭행을 당하고 고문까지 받았던 사실을 진술한다. 인도네시아의 위안부 피해자 에마 카스티마는 병을 얻어 걷기도 힘들지만 가난 탓에 치료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을 보여 준다. “이미 체념했다”는 그는 촬영 보름 후 세상을 떠났다. 제작진은 아시아 곳곳에 남아 있는 위안소도 찾는다. 중국 상하이에 있는 ‘다이살롱’은 해군을 위해 설치한 일본 최초의 위안소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교전 지역이 확대되면서 일본은 중국 난징에 2000평 규모의 위안소를 지었고,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서는 주민들의 건물을 빼앗아 위안소로 사용했다. 팔라우에는 한 번 동원되면 탈출하기 어려운 무인도의 동굴에 위안소를 짓기도 했다. 제작진은 연일 망언을 쏟아내는 하시모토 시장과 ‘무라야마 담화’로 잘 알려진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 등을 만나 위안부 문제의 현재를 다양하게 짚는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위안부 사죄’ 고노 담화 20년, 수정론자 득세… 기로에 서다

    ‘위안부 사죄’ 고노 담화 20년, 수정론자 득세… 기로에 서다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가 4일로 발표 20주년을 맞았다. 1993년 고노 요헤이 당시 일본 관방장관이 발표한 이 담화는 역사의 진보로 평가받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수정을 주장하는 보수세력의 위협 속에 위태롭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고노 담화는 “군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치됐고 위안소의 설치·관리 및 위안부 이송에는 구 일본군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감언·강압 등으로 본인의 의사에 반해 모집된 사례가 많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91년 8월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 이후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정부의 조사 끝에 나온 이 담화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죄하고 반성한 무라야마 담화(1995년)로 가는 디딤돌 역할을 했다. 그러나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은 고노 담화에 ‘자학 사관’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며 호시탐탐 수정을 노리고 있다.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이날 사설을 통해 “위안부 강제 연행설이 사실 오인인 것으로 드러났음에도 20년째 고노 담화는 계속되고 있고 교육 현장에 깊은 상흔을 남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역시 1차 집권기였던 2007년 위안부 강제 연행을 부인하는 발언에 이어 지난해 9월 총재 선거전에서도 ‘고노 담화 수정론’을 펼치며 신념을 굽히지 않고 있다. 참의원 선거 때의 자민당 공약집에 일본군 위안부 제도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비판에 대한 반론을 제공하는 연구기관을 신설하겠다고 명기하기도 했다. 현실적으로는 고노 담화가 수정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한국, 중국 등 주변국의 반발이 동북아시아의 불안정을 불러올 것이라는 미국 일각의 우려를 일본이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조야의 대표적 지일파 인사인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 5월 도쿄에서 강연을 통해 일본 정치가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발언해서는 안 된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여기에 주변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연립정권 공명당의 존재, 고노 담화 수정에 반대하는 일본 내부의 양심 세력도 무시할 수 없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가와구치 전 日 외무상 “고노 담화 수정 반대”

    가와구치 전 日 외무상 “고노 담화 수정 반대”

    일본 외무상을 지낸 자민당 소속 가와구치 요리코(72) 참의원 의원이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의 수정론에 반대하는 글을 블로그에 실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가와구치 의원은 ‘일본군 위안부가 당시에 필요했다’는 하시모토 도루 일본 유신회 공동대표의 망언이 나온 지 9일 뒤인 지난 5월 22일 자신의 블로그에서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고노 담화에 나와 있듯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성에 큰 상처를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에서 위안부 논의는 권력에 의한 강제연행이 있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며 “만일 권력에 의한 강제연행이 없었다고 치더라도 여성들이 자기 의지로 그곳(위안소)을 떠날 수 있었는지, 또한 감시 과정에 권력이 관여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위안부 문제를 인권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국제사회의 조류”라고 전제한 뒤 “고노 담화는 여성 인권에 대한 입장을 근거로 하고 있으며, 이를 바꾸는 것은 인권의 관점을 부정하는 것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아베내각 ‘위안부 강제동원’ 증거 묵살

    아베내각 ‘위안부 강제동원’ 증거 묵살

    일본의 아베 신조 내각이 ‘위안부 강제 동원’ 증거 자료를 발견했음에도 이를 묵살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아베 내각이 1차 집권기였던 2007년 3월 ‘정부가 발견한 자료에서는 군·관헌에 의한 강제 연행을 직접 보여 주는 기술이 없다’고 밝힌 것과 관련, 지난 10일 아카미네 세이켄(공산당) 중의원 의원이 “정부가 찾은 자료란 무엇이냐”고 질의한 데 대해 지난 18일 그 자료가 일본군의 명백한 강제 연행을 보여 주는 ‘바타비아 임시군법회의 기록’임을 국회 답변서를 통해 인정했다. 이 기록은 일본군이 1944년 2월부터 약 2개월간 인도네시아 자바섬 스마랑 근교 억류소 3곳에서 최소한 24명의 네덜란드 여성을 위안소로 연행한 ‘스마랑 사건’을 단죄하기 위해 전후 열린 전범 군사재판 판결문으로, 일본군이 여성들을 ‘위안소로 연행, 협박하며 성매매를 강요했다’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아베 정권은 줄곧 위안부 강제 연행은 없다고 강변하며 ‘정부가 발견한 자료에는’이란 전제를 달아 왔다. 그러나 지난 5월 관련 증언이 담긴 도쿄전범재판 문서에 이어 바타비아 군법회의 기록 보유도 인정함으로써 거짓말을 자인한 셈이 됐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하시모토, 위안부 할머니 면담 무산 뒤 “日, 납치 안해” 망언

    하시모토, 위안부 할머니 면담 무산 뒤 “日, 납치 안해” 망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명과 하시모토 도루 일본 유신회 공동대표(오사카 시장)의 면담이 취소됐다. 일본을 순회하며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87)·길원옥(84) 할머니는 24일 “하시모토 대표의 잘 짜인 사죄 퍼포먼스 시나리오에 들러리를 설 수 없다”며 면담을 거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일본 순회 집회를 하면서 여러 일본 기자들로부터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이번 면담은 하시모토 시장이 심지어 무릎까지 꿇겠다는 등 사죄 퍼포먼스를 미리 짜 놓고 언론 플레이용으로 준비한 것”이라고 말했다. 면담이 무산된 뒤 하시모토 대표는 오사카 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이 국가의 의지로 위안부 여성을 납치하거나 인신매매한 증거는 없다”고 거듭 주장했다. 하시모토 대표는 “일본 정부가 위안소의 관리와 위안부 모집·이송에 개입한 것은 틀림이 없다”며 위안부 운영에 일본 정부가 관여한 전반적인 책임은 인정했지만 “민간 업자에 의한 위안부 여성 강제연행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국가가 직접 하진 않았다”고 강변했다. 도쿄전범재판에서의 일본 군인 진술, 생존해 있는 일본 퇴역 군인들의 증언 등에 위안부 강제동원 사례가 명확히 확인됐음에도 그는 여전히 ‘물증’은 없다는 궁색한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시모토 대표는 또 상당수 위안부 피해자들이 공장 등에서 취업하게 해 주겠다는 꼬임에 속아 위안부가 된 데 대해 “원래 소개받은 곳과 다른 곳에서 일한 것은 사실”이라며 “이에 대해 일본인은 피해자들에게 사죄한다”고 밝혔다. 한편 하시모토 대표의 “위안부가 필요했다”는 발언에 대해 전 세계가 성명을 발표하고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비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 외무부는 23일(현지시간)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알렉산드르 루카셰비치 대변인 명의의 논평에서 “하시모토 대표의 발언은 파렴치했다”고 맹비난했다. 미국 일리노이주 하원도 23일 일본에 의해 강제 동원된 위안부들의 진실 규명을 위한 노력을 지원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전 세계 비정부기구(NGO) 68개 단체도 하시모토 대표의 위안부 정당화 발언을 비난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오사카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오늘의 눈] 일베가 걱정스럽다/윤창수 정책뉴스부 기자

    [오늘의 눈] 일베가 걱정스럽다/윤창수 정책뉴스부 기자

    얼마 전 회사의 같은 부서원끼리 모인 저녁 회식 자리에서 놀란 일이 있다. 역시 회식을 온 듯한 옆자리 남성 7~8명의 대화 주제가 다름 아닌 성매매였다. 어디 가면 가격이 얼마고, 어디 가면 값이 싸다는 이야기를 신나서 떠드는 그들의 표정에는 성매매가 불법이란 인식조차 없어 보였다. 요즘 ‘인터넷 극우의 온상’으로 지탄받는 사이트인 일간베스트(일베) 저장소에는 3대 공적이 있다. 바로 ‘종북좌파’ ‘전라도’ ‘여성’이다. 전라도 사람들을 ‘홍어’라며 대놓고 비하하는 일베 이용자들은 강간을 모의하거나 성추행 경험담을 올리는 등 여성을 비롯해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다. 일베 이용자들이 저질 악플러만이 아니라는 것도 문제다. 검사, 의사, 대학교수 등이 일베 이용자라며 인증(공무원증 등의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하는 것이 일베의 유행일 정도다. 전쟁 중 위안부가 필요했다는 망언으로 국제적 손가락질을 받는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 등 일본 극우파에 대해 ‘침묵’만 한다는 비판을 듣던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성매매가 필요악이라거나, 성매매 금지 특별법 때문에 성폭력이 늘었다고 주장하는 일부의 주장과 일본 극우파의 주장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말했다. 국제적인 외교 문제는 외교부가 담당하지만, 여가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있는 주무 부처로서 침묵만 한다는 비난에 결국 22일 대변인이 일본 정부의 반성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 등의 언행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인격 모독이자 역사 왜곡으로, 과거사를 진심으로 반성하라는 내용이다. 2004년 제정된 성매매 방지 특별법은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심리 과정 중이다. 성매매를 하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직업의 자유 등을 침해했다는 것이 성매매 방지 특별법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다. 이들의 논리는 성매매로 돈을 버는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할 뿐이다. 누가 자신의 인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성매매를 하고 싶은데, 성매매가 불법이라 직업의 자유가 없다고 이야기하겠는가. 물론 하시모토 시장이 살아남으려고 한 망언처럼 우리도 베트남전에서 위안소를 이용했던 것을 사죄부터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리고 전쟁 중에 위안소를 운영하는 것과 제국주의 국가가 피지배국가의 여성들을 납치해 성노예로 활용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므로 하시모토의 물타기 망언에 휘둘려서는 안 될 것이다. 12년 전 일본의 교과서 왜곡을 반대하고, 일본군 성노예 전범을 국제법정에 세웠던 일본 여성운동가 마쓰이 야요리를 인터뷰했다. 마쓰이는 당시 “정치경제사정이 좋지 않은 데다 미래가 불투명해 일본 청년들이 극우주의로 빠져들고 있다. 애국심을 강조하면 청년들은 쉽게 동화되어 버린다”고 우려했다. 아사히신문 기자였던 마쓰이는 2002년 간암으로 사망했다. 그때 마쓰이가 했던 걱정을 일베에서 5·18 민주화운동에 북한이 개입했다고 주장하는 한국 젊은이들을 보면서 하지 않을 수 없다. ge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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