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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안부 결의안’ 美 혼다 의원 청주대 명예박사

    미국 연방하원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결의안 통과를 주도했던 마이크 혼다(76) 전 연방하원 의원이 13일 청주대에서 정치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다. 청주대는 “혼다 전 의원이 위안부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한·미 동맹에 기여한 공로를 기리기 위해 학위를 주기로 했다”고 11일 밝혔다. 혼다 전 의원은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학생 200여명을 대상으로 약 40분간 특강을 한다. 이어 보은군 보은읍 뱃들공원에서 열리는 소녀상 제막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보은 지역 시민·사회단체 200여곳은 지난 5월 보은 평화의 소녀상 건립 추진위원회를 구성, 시민 모금으로 9000여만원을 모아 소녀상을 세웠다. 보은 평화의 소녀상은 ‘살아 있는 평화의 소녀’로 불리는 이옥선(87) 할머니를 형상화한 조형물과 나란히 설치됐다. 이 할머니는 보은에 홀로 살고 있다. 혼다 전 의원은 2013년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 소녀상 건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글렌데일시와 자매결연한 보은군과 인연을 맺었다. 일본계 미국인인 혼다 전 의원은 2007년 연방하원에서 일본 정부에 위안부 존재 인정과 사죄, 역사적 책임과 진상규명 등을 요구하는 위안부 결의안을 발의해 통과시켰다. 2015년 아베 일본 총리의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을 앞두고 위안부 범죄에 대한 사과를 촉구하는 초당적 연명 서한도 주도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평화의 소녀상에 입맞춤하는 남성 사진 ‘논란’

    평화의 소녀상에 입맞춤하는 남성 사진 ‘논란’

    대구 도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입맞춤하려 하는 남성 사진이 SNS에 올라와 논란이다.지난 1일 대구 소식을 전하는 한 페이스북 계정에 ‘나 큰일 날 짓을 했다’는 글과 함께 2·28기념중앙공원 평화의 소녀상에 입을 맞추려는 남자 모습이 담긴 사진이 복제돼 실렸다. 해당 글을 본 네티즌들은 사진 속 남성을 비난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모욕했다” “정신 나갔다”는 등의 댓글을 남겼다. 현재 원래 글과 사진은 삭제된 상태다. 이 소녀상을 건립한 대구평화의소녀상건립 범시민추진위원회 관계자는 “현재 소녀상에 훼손이 없는 상태여서 일단 해프닝으로 받아들이려 한다”며 “반복적으로 이런 일이 생기거나 소녀상이 훼손되는 일이 생기면 근처 CCTV도 있으므로 확인해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00초 인터뷰]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추석을 반납한 소녀상 지킴이들

    [100초 인터뷰]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추석을 반납한 소녀상 지킴이들

    “끝까지 지켜야죠…” 민족 대명절인 추석연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번 추석은 장장 10일이다. 누군가는 고향으로, 누군가는 여행지로 떠난다. 그 와중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대신해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는 학생들이 있다. 바로 소녀상 지킴이들이다. 30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옛 일본대사관 앞 인도에 마련된 비닐 천막에서 만난 박지연(전북대학교 4학년, 25)씨는 추석이지만 자리를 비울 수 없다고 말한다. “소녀상을 24시간 지키고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꼭 필요해요. (이번에는) 제가 한다고 했어요.”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들은 2015년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이틀 뒤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수요집회)부터 무기한 노숙 농성을 시작했다. 현재 642일(2017년 10월 1일 기준)째다. 박씨는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요구한다”고 명확한 목적을 밝혔다. 힘든 일도 많았다. 무엇보다 박씨를 힘들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 조금씩 이 문제를 잊는 것 같아서다. “소녀상을 지키는 사람들이 하나 둘 줄어들고, 언론의 관심도 멀어졌어요. 하지만 ‘힘내라, 응원한다’고 한 말씀 해주고 가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의 응원을 받으면 쳐졌던 어깨가 다시 올라가요. 힘이 나요.” 소녀상 지킴이 활동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20대 대학생들이다. 집에서의 걱정은 당연지사. 박씨도 집에 걱정을 끼치는 자식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추석연휴 10일 중 8일간 소녀상 곁을 지킨다. 박씨는 “(부모님께서는) 추석에는 내려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시죠…”라고 답한 뒤 미소를 지을 뿐이다.지난 8월 28일 위안부 피해자 하상숙(90) 할머니에 이어 같은 달 30일 이 모(93) 할머니가 별세했다.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35명에 불과하다. 박씨는 “할머니 중 제일 나이가 어린 분이 90세라고 들었어요. 할머니들 문제가 하루빨리 해결되어야 할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분들과 공감할 수 있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라며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이어 박씨는 한일합의 폐기가 되는 그날까지 소녀상 곁을 지키겠다고 말한다. “할머니들이 수요집회에 오실 때마다 항상 미안하고 고맙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할머니들을 대신해 그분들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할머니들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덧붙였다. 박지연씨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말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당당히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그렇게 보인다고 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그 일을 하는 소녀상 지킴이들을 보고 같은 이야기를 한다. “당신들 역시 아름답다”고.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서울신문 보도 그후] ‘평화의 소녀상’ 종로 공공조형물 지정

    국내에 처음 들어선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이 서울 종로구의 공공조형물로 지정돼 함부로 철거할 수 없게 됐다. 이 평화의 소녀상은 2011년 4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 1000회 기념비석을 세우겠다고 하자 김영종 종로구청장이 대안으로 제시, 설치됐다. 김 구청장은 당시 검정 치마에 흰 저고리 차림으로 일본군에게 잡혀갈 때의 어린 소녀의 모습이 일본인들이 가장 부끄러워할 모습이라며 소녀상 설치를 제시했다. 이를 시작으로 9월 현재 전국 70여곳과 일본, 미국 등 세계 10여개 도시에 소녀상이 건립됐다. 그러나 일본 측이 소녀상 철거를 지속적으로 요구,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공공조형물이 아니라 공공 도로를 점용할 근거가 없어서다. 종로구는 이에 지난 7월 1일 ‘종로구 도시공간 예술 조례 개정안’을 제정,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종로구와 도시공간예술위원회는 이를 근거로 소녀상을 종로구 공공조형물 1호로 최근 지정했다. 이에 따라 정대협이 소유하지만 관할 관청인 종로구가 유지·관리할 수 있게 됐다. 김 구청장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상징하는 소녀상은 국민적 합의 없이 철거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겨 왔다”면서 “공공조형물 지정을 계기로 더욱 적극적으로 소녀상을 보호하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기념물 세운 자, ‘기억의 정치’ 승리자

    기념물 세운 자, ‘기억의 정치’ 승리자

    도시는 기억이다/도시사학회 기획/주경철·민유기 외 11명 지음/서해문집/544쪽/2만 3000원깡총한 단발머리에 치마저고리를 입은 소녀. 앳된 얼굴엔 어울리지 않는 슬픔이 서려 있다. 굳게 다문 입매와 말아 쥔 주먹, 한곳을 응시하는 시선에선 꺾이지 않는 의지가 읽힌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의 단적인 상징이 된 ‘평화의 소녀상’이다. 2011년 12월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건너편에 처음 등장한 소녀상은 일부 극우 단체나 시민들의 훼손, 일본 정부의 끈질긴 ‘철거 압박’에도 전국 각지와 해외로 퍼져 나가고 있다. 소녀상 설립에 힘을 보태는 시민들의 역사의식과 이로 인해 빚어지는 국내외 갈등으로 소녀상은 그 자체로 ‘기억하고 바로잡아야 할 역사’가 되고 있다. 도시가 그곳을 거쳐 간 모든 인간의 삶의 흔적으로 짜인 ‘기억의 총합’이라면, 소녀상을 둘러싼 갖가지 갑론을박은 무심코 스쳐 지나는 도시의 공공기념물들이 얼마나 강력한 ‘기억의 매개체’인지 보여 준다. 도시 안에 즐비한 공공기념물(기념비나 기념탑, 전몰자 추념이나 과거사 관련 시설물, 영웅이나 위인의 동상, 공적 기념 혹은 추념을 위한 박물관이나 건축물 등)은 도시가 기억하고 싶어 하는, 기억해야 하는 과거를 압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징들은 켜켜이 쌓여 한 도시의 정체성을 이룬다. 국내 도시사학자들이 세계 주요 도시의 공공기념물에 대해 설립 배경과 주체, 설립 과정에서의 갈등, 공공기념물이 기억하려는 역사, 대중의 반응, 공공기념물이 나타내는 상징 등을 입체적으로 살펴본 이유다.“공공기념물은 건립의 주체가 정치권력이든, 시민단체이든 역사와 기억에 대한 치열한 해석과 의미 부여의 결과다. 도시가 다양한 공공기념물을 통해 무엇을 기억하고자 하는지는 시민의 집단적 역사인식 수준을 보여 준다”는 민유기 경희대 교수의 말은 우리나라 곳곳에 서 있는 평화의 소녀상부터 세계 문화의 수도 파리의 즐비한 인물 동상까지 시대와 국경의 경계를 넘어 적용된다. 프랑스의 문화예술인 동상을 연구한 민 교수는 ‘동상은 죽은 이를 산 자의 기억 속에 영속화시키는 매개물로 항상 기억의 정치와 연관된다’고 지적한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옛 소련과 동유럽 각지에서 공산당 지도자 동상을 파괴하고 프랑스대혁명 당시 파리의 혁명적 시민들이 왕의 동상들을 쓰러트린 것은 과거와의 단절을 바라는 새로운 주체의 요구 때문이었다.고대나 중세 도시에서 동상의 주인공은 대부분 통치자나 전쟁 영웅, 순교자와 성인들이었다. 권력이 원하는 ‘기억의 정치’를 이어 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근대 도시들은 다양한 기획으로 도시 정체성을 만들어 간다. 1880~1914년 파리 전역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문화예술인 동상이 대표적인 예다. 파리에 있는 인물 동상은 모두 347개인데, 이 가운데 153개가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세워졌다. 프랑스 제3공화국이 등장하기 전에는 프랑스에서 예술가, 과학자들의 동상을 공공장소에 건립해 숭배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1879년 ‘공화파의 공화국’이 시작되면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공공장소에 위인 동상을 세우는 것이 허락됐다. 시민들이 기억하고 숭배하고 싶어 하는 위인들의 동상을 가질 수 있다는 건 ‘강요된 숭배’ 대신 ‘숭배의 민주화’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에 “동상이 유행이다. 모든 곳에 동상이 세워진다. 위인이 없다면 새로운 위인을 만들어 낸다”는 일간지의 비판이 나올 정도로 20세기 초 파리의 동상 세우기 열풍은 과열 양상을 빚었다. 이는 전쟁에선 패배를 거듭했던 프랑스인들이 예술에서 강한 위로를 발견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도시를 가득 메운 문화예술인 동상들은 파리를 제국의 수도나 혁명의 도시가 아닌 문화예술의 도시라는 이미지와 정체성을 만들어 가려 했던 정부나 시민들의 요구와도 맞아떨어진 것이다.파리의 문화예술인 동상 세우기 열풍이 ‘숭배의 민주화’라면 히틀러가 꿈꾼 세계 제국의 수도 ‘게르마니아’는 반대의 극단에 있는 예다. “국가는 국민에게 가능한 한 거대하게 보여야 한다”고 했던 히틀러는 독일 도시에 기념비적 건물은 없고 영리 목적의 백화점, 호텔만 들어차 있다고 비판하며 나치 제국의 힘을 선전할 도시를 구축하려 했다. ‘히틀러의 건축가’로 유명한 알베르트 슈페어가 설계한 게르마니아를 보면 기이할 정도로 규모가 거대하다. 베를린에 폭 120m, 길이 7㎞의 중심 도로를 깔고, 높이 117m, 폭 170m의 개선문을 세운다는 식이다. 히틀러의 과대망상과 자아도취, 명성을 떨치고 싶었던 애송이 건축가의 치기와 상상력으로 뭉쳐진 게르마니아는 정복전쟁의 승리를 전제로 한 만큼 ‘허상의 도시’로 끝났다. 하지만 당시 그 일환으로 세워진 템펠호프 비행장이 지금은 베를린 시민들의 휴식처가 됐듯 잔혹한 역사의 흔적은 다른 역사적 의미와 쓸모로 도시에 여전히 새겨져 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사설] 日 영사관 앞 ‘징용상’ 건립 시도 재고해야

    민주노총이 내년 노동절(5월 1일)에 부산시 동구 초량동 일본 총영사관 앞에 ‘강제 징용 노동자상’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민노총은 지난 18일부터 총영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옆에 노동자상 모형을 세워두고 100일간의 1인 시위에 들어갔고 건립을 위한 모금도 시작했다. “70년 넘게 잘 알려지지 않은 강제징용 문제를 알리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겠다”는 게 민노총 주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양국 간 합의에도 불구하고 강제징용자 개인이 상대 회사에 가지는 민사적 권리는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 한국의 헌재나 대법원의 판례”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라 국가 간 청구권은 소멸됐을지 몰라도, 개인 청구권은 살아 있다는 인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노총 주장은 강제징용 문제를 국가 간 청구권 차원으로 되돌려 문제 삼겠다는 의도로까지 읽힌다. 피해자와 그 가족, 관련단체들이 있는데 민노총이 이런 일을 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문제는 노동자상이다. 이미 서울 용산역 등에 상이 세워져 있다. 징용 피해자들이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도 아닌 노동단체가 외국 공관 앞에 조형물을 세우는 것은 분란만 만들 뿐, 문제 해결 방식으로도 하중하의 방책이다. 우리도 가입하고 있는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은 외국 공관의 안녕을 교란하거나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방지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돼 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금세 알 일이다. 총영사관 앞 소녀상도 부산 동구청이 불법 점유물이란 이유로 철거했다가 구청장이 어처구니없게 ‘친일파’로 몰리면서 다시 가져다 놓은 것이다. 한·일 관계는 과거사를 직시하며, 얽힌 매듭을 푸는 노력을 꾸준히 하지 않으면 언제든 박근혜 정부 때처럼 빙하기로 갈 수 있다. 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래지향을 얘기하는 지금, 민노총이 분란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강제징용을 알리겠다는 취지라면 민노총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재고를 바란다. 노동자상 건립이 강행되면, 소녀상 사례에서 봤듯 일개 구청은 무력하다. 정부가 민노총을 설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가 민노총과 손잡고 일본 정부를 압박한다는 의심조차 살 수 있다.
  • 순천대, 위안부 막말 교수 진상조사

    순천대, 위안부 막말 교수 진상조사

    순천대는 19일 소속 대학 교수가 수업 중 위안부 관련 부적절한 언행을 한 사실에 공식 사과하고 엄정 처리하기로 했다.박진성 순천대 총장은 이날 성명서에서 “우리 대학 교수가 강의실에서 행한 위안부 관련 행동과 각종 인격 모독적 발언으로 고통받은 모든 분들께 죄송스럽다”며 “특히 상심이 크셨을 위안부 할머님들께 머리 숙여 깊이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대학 측은 총장 직속의 진상조사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사안을 파악 중이다. 교수 등 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오는 29일 이전에 마무리하기로 했다. 학교 측은 결과가 나오는 대로 파면·해임 등 강력한 처벌을 내린다는 방침이다. A 교수는 지난 4월 강의 도중 위안부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말을 내뱉었다. “그 할머니들은 상당히 알고 갔어. 오케이? 일본에 미친 그 끌려간 여자들도 사실 다 끼가 있으니까 따라다닌 거야”라고 폄하했다. 또 “걸레 아니에요? 아무 데서나 퍼질러 자고 그러는데? 방 만들어서 파자마 바람으로 남자, 여자 어울리면 좋겠어요?”라며 교내 학생회가 사무실에 이불을 가져다 놨다는 이유로 학생들을 ‘걸레’라고 표현했다. 수업 중 학생들을 향해 ‘테러리스트’, ‘저능아’라고 폭언을 하기도 했다. 해당 발언은 지난 4월 학생들이 사용하는 페이스북에 올라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내용을 접한 대학 측이 자체 조사를 펼치던 중 A 교수가 학생들에게 사과와 해명을 해 일단락된 듯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지난 11일 소속 학과에 녹취 파일 등을 접수하며 이의제기를 했다. 대학 측은 지난 15일부터 A 교수를 수업배제시키고 진상조사팀을 꾸려 경위 파악에 나섰다. 시민단체들은 A 교수의 공개사과와 즉각 파면을 촉구했다. 순천평화나비와 전남평화의 소녀상연대 등은 순천대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수의 공개사과와 즉각 파면”을 촉구했다. 서울대 출신인 A 교수는 평상시 지방대라는 이유로 학생들을 무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졸업생 이모(43)씨는 “초등학생 다루듯이 모욕감을 주는 일이 많아 교수 승용차 열쇠 꽂는 부분에 이쑤시게 등을 자주 집어넣어 고장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복을 했었다”고 말했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1300번의 울림에도… 26년째 반성 없는 일본

    1300번의 울림에도… 26년째 반성 없는 일본

    길원옥 할머니 등 300여명 참석 집회 후 참가자들 靑앞까지 행진 “바위처럼 살아가 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13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수송동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민중가요 ‘바위처럼’의 한 소절이 울려 퍼졌다. 지난 8·14 세계 위안부 기림일에 늦깎이 가수로 데뷔한 길원옥(89)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노랫소리는 낮고 느렸지만 소절 하나하나에 옹골찬 기운이 담겨 있었다. 이어 원곡이 흘러나왔고 경기 남양주 수동초등학교 6학년생 20여명이 나와 노래에 맞춰 신나게 율동을 했다. 길 할머니와 김복동(91) 할머니를 비롯해 1300차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현장에 나온 300여명은 노래에 맞춰 손뼉을 쳤다. 1992년 1월 8일부터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열린 수요시위가 이날로 1300회를 맞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26년째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현재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참가자들은 “1300번의 울림이 있기까지 피해자들은 스스로 인권운동가가 됐다”면서 “일본 정부의 반성과 법적 배상을 우리 손으로 이뤄 낼 때까지 다음주 1301차부터 다시 나비 날갯짓을 시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미향 정대협 공동대표는 경과보고에서 “1992년 당시 한국 사회는 할머니들을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사람으로 바라봤으나, 할머니들은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며 “이제 할머니들은 포기하지 않는 존재로서 하나의 상징이 됐다”고 말했다. 특히 시위 참가자들은 현재 생존한 할머니가 35명뿐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거듭 강조했다.<서울신문 9월 9일자 1면> 박근혜 정부 때 이뤄진 2015년 12·28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비난도 들끓었다. 양진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행동’ 공동대표는 “당시 합의를 놓고 할머니들은 ‘역사를 팔았다’고 표현했다”면서 “일본은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참가자들은 시위를 마친 뒤 청와대 앞까지 행진했다. 할머니 두 분도 휠체어를 타고 행진에 동참했다. 정대협 측은 2015년 한·일 합의 폐기와 화해치유재단 해산 등 내용을 담은 공개요구서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위안부 할머니 평화상 후보 지지… 전쟁의 폭력에 사과 없는 日 유감”

    “위안부 할머니 평화상 후보 지지… 전쟁의 폭력에 사과 없는 日 유감”

    “일본이 전쟁 폭력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를 내지 않은 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방한 중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11일 오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인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을 방문해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배상이 필요하다고 촉구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소녀상 앞에서 “이 여성들이 겪은 고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이 여성들을 왜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부르는지 나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위안은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이 여성들은 자발적으로 위안을 준 것이 아니라 폭력을 겪은 것이다. 이 여성들은 전쟁의 참혹함에 희생된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성에게 한번 일어난 이러한 억울한 폭력은 다시는 복구할 수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일본이 이 여성들에게 사과할 수 있다면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을 표명하는 것”이라며 “아마 일본이 아직까지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내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이 할머니들이 현재 노벨평화상 후보로도 제안된 것으로 전해들었는데, 내 생각에 충분히 평화상 후보 자격이 있다고 본다. 적극 지지한다”고 했다. 이어 “여러분이 원하는 건 복수나 증오심이 아니고, 일본이 역사적으로 있었던 일에 대해 진정으로 사과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해들었다”며 “여러분 살아생전에 그런 일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그는 “이 나눔의 집에 안네 프랑크의 그림과 초상이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할머니들의 희생과 고통은 홀로코스트 못지않은 만큼 나눔의 집이 안네 프랑크의 초상을 원하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양기대 경기 광명시장 등과 함께 나눔의 집 위안부 역사관을 방문해 고인이 된 할머니들의 추모비와 흉상에 헌화와 묵념을 했다. 이어 이용수 할머니 등을 만나 안네 프랑크의 얼굴 사진 액자를 전달하며 깊은 위로의 뜻을 전했다. 이에 이 할머니는 슈뢰더 전 총리에게 소녀상 배지를 건네주며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이옥선 할머니는 손목에 차고 있던 기억팔찌를 빼서 슈뢰더 전 총리에게 끼워줬고,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은 고 김순덕 할머니의 그림 ‘끌려감’, ‘못다 핀 꽃’ 등을 전달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이날 방명록에 ‘큰 고통을 당한 분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흐릅니다’라고 적었고, 나눔의 집에 1000만원을 기부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온 양 시장은 “슈뢰더 전 총리가 나눔의 집을 방문한 것은 역사적 의미가 있다”며 “독일이 주변 피해국에 사과하고 배상한 것처럼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와 배상을 강력히 촉구하는 소중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커버스토리] “할머니 연세 보면 文정부가 마지막 기회… 끝까지 진실 알릴 것”

    [커버스토리] “할머니 연세 보면 文정부가 마지막 기회… 끝까지 진실 알릴 것”

    “할머니들 연세를 생각하면 이번 문재인 정부가 마지막 기회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안신권(56) 나눔의집 소장은 8일 “할머니들의 건강이 점점 악화돼 향후 5년 내에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실 것 같아 걱정된다”며 착잡한 심경을 밝혔다. 안 소장은 2001년부터 17년째 나눔의집에서 할머니들 곁을 지켜오며 일본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을 위해 뛰고 있다. 안 소장은 2004년에 별세한 김순덕 할머니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안 소장이 나눔의집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세상을 하직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다. 김 할머니는 나눔의집에 사는 할머니들을 이끄는 대장이었다고 한다. 안 소장은 “김 할머니는 해외에 나가서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피해 사실을 증언했고, 그림도 참 잘 그렸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2001년 일본 역사 교과서 논란이 일었을 때 김 할머니가 ‘일본은 소니처럼 전자제품을 잘 만드는데 왜 교과서는 잘 만들지 못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내가 교과서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던 게 지금도 생생하다”고 전했다. 안 소장은 할머니가 한 명씩 돌아가실 때마다 마음이 점점 더 무거워지고 책임감에 짓눌린다고 토로했다. 그는 “할머니들과 함께 싸우는데 할머니들은 돌아가시고 나만 남아 있다”면서 “할머니들이 원하시는 것이 이뤄지지 않으니까 압박감도 크고 미안한 마음도 든다”고 말했다. 안 소장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아쉬운 점도 내비쳤다. 특히 안 소장은 모두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한·일 위안부 합의를 외교부가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서 검증하는 배경에 의문을 품고 있다. 안 소장은 “민주적인 절차는 중요하지만 할머니들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당장 합의 폐기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소장은 “최근 합리적인 절차만으로는 일본을 설득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1965년 국교정상화 때 대일 청구권은 마무리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할머니들의 사과 요구에 입을 닫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 소장은 ‘평화의 소녀상’이 마지막으로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일본도 소녀상 문제에서만큼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어서다. 안 소장은 “일본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해외에 소녀상을 많이 건립해야 한다”면서 “해외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역사 문제가 아닌 순수한 인권 문제로 바라보기 때문에 보편적인 지지를 이끌어 내기가 한층 수월하다”고 말했다. 이어 안 소장은 “시간은 흘러도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며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 주기 위해 끝까지 뛰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커버스토리] 저승서도 주먹쥐고 외칠거다 사죄하라

    [커버스토리] 저승서도 주먹쥐고 외칠거다 사죄하라

    “내가 먼저 가려고 했어. 그런데 군자가 10만원이 든 흰 봉투를 주면서 자기가 먼저 가겠다는 거야. 결국 말대로 됐지.”8일 경기 광주시 나눔의집 인근 병원에 신장 치료차 입원한 이옥선(90) 할머니는 지난 7월 세상을 떠난 김군자 할머니를 떠올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할머니는 “형제보다 더 가까이 지냈는데, 이제 얘기할 사람도 없다”면서 “하긴 얘기할 사람이 있다고 해도 이젠 말할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하상숙(89) 할머니의 지난달 28일 별세 소식도 뒤늦게 듣고 굵은 눈물방울을 떨궜다. 이 할머니는 “정신이 없다”고 했지만 75년 전 위안부로 끌려간 그때 그 일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했다. “15살 때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학교에 가질 못했어. 그러다 결국 1942년에 중국 연변으로 끌려갔어. 일본군이 차를 끌고 다니면서 길에 있는 여성들을 다 태웠었지. 그때부터 3년간 위안부 생활을 했어. 그러고 나서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했는데 차마 가족을 다시 만날 자신이 없어서 중국에 눌러앉았어. 2000년 6월에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가족들은 모두 죽고 아무도 없었어.” 이 할머니는 자못 담담하게 아픈 기억을 쏟아냈지만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 할머니의 가슴에 남은 상처와 분노에는 아직도 굳은살이 생기지 않은 듯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저항은 2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할머니는 일본 정부가 “일본군은 위안부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표한 것에 분노해 마이크를 잡고 자신이 당한 피해를 증언했다. 김 할머니의 증언으로 의혹으로만 제기됐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처음으로 공개됐다.지난달 29일 고 하상숙 할머니의 빈소에서 만난 이용수(89) 할머니는 25년 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 위안부 피해자라고 신고하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이 할머니는 “1992년 6월 25일에 내가 직접 위안부 피해자라고 신고했다”면서 “다음날 모임에 나갔더니 거기서 수십명의 동료(피해 할머니)들을 만났다”고 회상했다. 이 할머니는 75년 전 기억을 마치 최근에 겪었던 일처럼 끄집어냈다. 이 할머니는 16살이던 1944년 어느 날 한밤중에 ‘밥도 많이 먹게 해 주고 가족들도 잘살게 해 준다’는 말만 듣고 군복을 입은 일본인을 따라 나섰다. 잠들어 있었던 가족들에게 인사도 하지 못했다. 그날 밤 이 할머니와 함께 일본인을 따라 나선 ‘소녀’는 이 할머니의 친구 ‘분순이’를 포함해 모두 5명이었다.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가 일본과 체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는 피해 할머니들에게 위로는커녕 상처만 남겼다. 특히 이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의 예산으로 지난해 설립된 여성가족부 산하 재단법인 화해·치유재단을 둘러싼 논란은 지금도 뜨겁다. 할머니들은 “돈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와 재단의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할머니들이 바라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명예회복, 그것뿐이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1억원 같은 거 필요 없다. 명예회복이 필요하다”면서 “일본 국왕이 무릎 꿇고 빨리 사죄해야 한다. 일본 총리가 법적인 배상을 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할머니들이 그렇게 26년 동안 일관되게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해 왔지만 일본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할머니들도 하나둘씩 하늘의 별이 돼 가고 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에만 12명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일본은 할머니가 모두 돌아가시길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용수 할머니는 “일본은 우리가 살아 있는데도 저렇게 거짓말을 하는데 우리가 죽고 나면 무슨 소리를 할지 모르지 않느냐”면서 “저승에 가서라도 사죄하게 할 거다. 데모할 거다”고 호소했다. 현재 경기 광주시의 나눔의집에 9명, 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에 2명의 할머니가 거주하고 있다. 나머지 생존자 24명은 가족과 함께 살거나 혼자 생활하고 있다. 여가부 관계자는 “신분 노출을 꺼려 하는 할머니 중에는 가족들에게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지내는 할머니들이 많다”면서 “모두 85세가 넘는 고령분들이시고, 아직 당시의 상처를 가족에게 알리기 어려운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오는 20일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떠난다. 이 할머니는 “소녀상을 한국에 빼곡하게 세우고, 미국에도 세우고, 마지막은 동경 벌판에 세워서 사죄를 받아낼 것”이라면서 “어떻게든 내가 해결해 놓고 가겠다”고 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한·일, 북핵 위협에 과거사 ‘임시 봉합’

    한·일, 북핵 위협에 과거사 ‘임시 봉합’

    靑 “과거사 문제 안정적 관리… 미래지향적 교류·협력 강화” 대북 공조 위해 ‘한발’ 다가서… NSC상임위, 北 대처방안 논의“비록 양국 관계에 어려운 문제도 있으나 교류와 협력의 폭을 넓히고 신뢰를 쌓아감으로써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문재인 대통령)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중요한 이웃인 한국과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정상 차원의 긴밀한 소통을 토대로 함께 협력해 나가자.”(아베 신조 일본 총리)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및 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로 불편했던 한·일 두 나라가 북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공조를 위해 과거사 문제를 ‘임시 봉합’한 채 거리를 좁혀 가는 모양새다. 7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이후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밝힌 과거사 문제는 “양국이 과거사 문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미래지향적이고 실질적인 교류와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고만 돼 있다. ‘안정적으로 관리’란 표현에 대해 윤 수석은 “과거사를 이유로 양국이 쟁점화시키거나 현안 내지 가장 큰 이슈로 부각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북핵과 미사일 등으로 동북아 전체 불안이 가중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북핵 위협에 대한 한·미, 한·미·일, 한·일 간 공조가 절실한 시점에서 과거사 문제가 부각되는 건 부담스럽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으로선 그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나 강제징용에 대한 원칙과 입장을 충분히 전달한 만큼 과거사 문제를 강조하는 건 전략적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도 보인다. 앞서 문 대통령이 “위안부 피해자나 소녀상 문제나 국민 정서상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이것대로 관리해 나가고 경제 협력이나 문화 교류를 계속해야 한다”(7월 7일 정상회담), “강제 징용자 개인이 미쓰비시 등을 상대로 갖는 민사적 권리들은 남아 있다는 것이 판례이며 정부는 그런 입장에서 과거사 문제를 임하고 있다. 다만 미래지향적 발전에 걸림돌이 되어선 안 되겠다”(7월 17일 취임 100일 회견)고 밝힌 것에 비춰 보면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회담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이견이 없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다만 일본에선 아베 총리가 강제동원 문제와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 대한 종전 입장을 되풀이했다는 보도를 앞세워 청와대의 기조와는 대조를 이뤘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본에서 ‘국내용’으로 강조한 것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날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9일 북한의 정권수립일을 계기로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을 진단하고 대처 방안을 논의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대학에 ‘평화의 소녀상’ 세워 역사 의식 높일 것”

    “대학에 ‘평화의 소녀상’ 세워 역사 의식 높일 것”

    학생 95% 찬성… 학교 측은 꺼려 5000만원 모금·내년 완공 목표 “취업 탓이죠. 얘기를 해보면 학점에 신경 쓰는 친구들이 많고 역사의식이 떨어져요. 그래서 소녀상을 세우는 겁니다.”국립대 중 처음으로 캠퍼스 안에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추진 중인 충남대 총학생회장 이현상(26·기계설계공학과 4년)씨는 2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고교와 초등학교까지 소녀상을 세우는데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은 정작 건립한 곳이 없다”며 이같이 배경을 설명했다. 이씨는 “사립대인 인제대와 동아대의 경우 동아리 차원에서 소녀상 건립을 추진하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총학생회가 나선 것은 우리 대학이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이씨는 총학생회 회의를 통해 소녀상 건립을 결정하고 설문조사부터 했다. 지난 1일부터 20일간 학생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1168명 중 95.6%인 1117명이 압도적으로 찬성했다. 이씨는 “전교생이 1만 8000명인데 방학 때라 참여자가 적었지만 주류 의견을 짐작하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찬성 학생들은 대부분 “학내에 소녀상이 있으면 더 많은 학생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답변했다. 반면 반대하는 학생은 일본과의 외교 문제를 우려했다. 이씨는 “당장 우리 대학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규슈대, 오사카대 등 30여개 일본 대학들과 관계가 틀어질까 봐 걱정하는 것 같다”며 “학교 측도 이 부분 때문에 꺼린다. 게다가 국립대 안에 세운다는 걸 부담스러워한다”고 귀띔했다. 반대 학생들은 또 관리 문제를 꼽았다. 이씨는 “소녀상 관리는 교직원 노조에서 도와주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총학생회는 내년 3월 소녀상을 건립할 계획이다. 이씨는 “미래를 지향하며 밝은 표정으로 서 있는 충남대만의 소녀상을 제작하겠다”고 했다. 이미 학내 조소과 교수에게 제작을 의뢰해 디자인 중이다. 이씨는 “동상 제작비 5000만원은 학생, 교수, 교직원, 동문 등 전 구성원을 상대로 모금한다”고 밝혔다. 교직원 노조는 벌써 지원을 약속했다고 한다. 시민 모금에도 나선다. 이씨는 “오는 10월 시내에서 학생들이 플래시몹 등을 벌여 시민들의 관심과 동참을 끌어내겠다”고 말했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오빠들 밀리언셀러 만들자”… 가요계 주무르는 500만 팬덤

    “오빠들 밀리언셀러 만들자”… 가요계 주무르는 500만 팬덤

    경제력 갖춘 3040까지 팬덤 확대… 아이돌 기념일 열차에 ‘래핑’ 광고 1위 달성 위해 ‘음원 재생법’ 안내 이달 초 데뷔한 아이돌 그룹 ‘워너원’의 앨범은 음원이 공개된 지 1시간 만에 대표곡 ‘에너제틱’과 ‘활활’이 멜론 등 7개 음원차트에서 1, 2위를 점령했다. 교보문고 핫트랙스에서만 하루 동안 2000장이 넘게 팔렸다. 앨범의 초동 판매 실적(최초 1주일간 판매량)은 41만장으로, 아이돌 그룹 ‘엑소’ 정규 4집(60만장)과 3집(52만장)에 이어 세 번째다. 워너원 앨범 한 장의 정가(1만 8500원)로 계산하면 일주일 만에 76억원을 벌어들인 셈이다.아이돌 팬덤의 결집력이 대중음악 시장을 좌지우지한 지는 오래다. 팬덤 문화를 얘기하지 않고 대중문화를 말하기 어려워졌다. 이들은 좋아하는 가수가 순식간에 음원차트를 석권하도록 하고 때때로 기획사에 대항해 보이콧(불매운동) 엄포를 놓는 등 힘을 과시하기도 한다. 침체된 음악시장에 숨통을 터 주는 큰손으로 대접받기도 하지만 일각에서는 음악산업을 왜곡하는 주범으로 눈총을 받기도 한다.아이돌 팬덤의 ‘화력’(영향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음원차트와 음반 판매량에서다. 디지털 음원이 보편화된 상황에서 음원이 아닌 음반의 판매 실적은 팬덤의 규모나 영향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요즘 대중음악 시장에서 음원차트 상위권에 오르더라도 음반 판매량에서 수십만 장을 기록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앨범 발매 후 1주일간의 실적이 각종 대중가요 시상에서 중요한 요소로 취급되기 때문에 유독 팬들이 공을 들이는 부분이다. 기획사는 이런 팬심을 적극 이용한다. 중국팬까지 합세하면서 앨범을 중국판, 한국판 두 버전으로 내기도 하고 각 멤버의 다양한 사진을 앨범에 넣어 팬들의 수집 욕구를 자극해 매출 극대화를 노린다. ‘좋아하는 오빠들’의 사진을 모두 확보해 ‘전집’을 만들고자 기꺼이 지갑을 여는 것은 예사다. 엑소팬이라는 임모(15)양은 “멤버 10명의 사진을 모으려고 앨범을 10장 다 샀다”며 “한국어와 중국어 버전에 따라 사진이 다르기도 해 국적별로 전집을 사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10~20대에 국한됐던 팬덤 현상은 어느덧 30~40대까지 연령대가 확대되고 있다. 워너원을 만들었던 TV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101 시즌2’의 연령별 시청자를 보면 30대(24%)와 40대(23%)가 절반을 차지했다. 이들은 1990년대 10대를 보내며 H.O.T, 젝스키스, G.O.D 등의 아이돌 그룹에 빠져 산, 아이돌 팬덤 1세대라고도 할 수 있다. 이들이 팬덤에 가세했다는 것은 아이돌 음악산업의 규모가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10대와 달리 짱짱한 경제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구매력 있는 소비층으로 꼽혀서다. 학창 시절 H.O.T 팬클럽으로 활동했던 직장인 강모(35·여)씨는 “어릴 때는 주로 좋아하는 가수를 위해 작은 선물을 사 주거나 사인회에 쫓아다니는 게 전부였다면 지금은 해외 콘서트에 따라가는 것은 기본”이라며 “앨범을 수천 장 사서 지인들에게 홍보용으로 뿌리는 사람도 있다”고 귀띔했다. 팬들이 십시일반 모아 연예인에게 선물하는, 이른바 ‘조공’도 진화 중이다. 제작발표회나 콘서트 때마다 화환과 함께 쌀을 보내 불우 이웃 돕기를 하거나 위안부 할머니를 돕기 위해 소녀상 팔찌를 공동 구매하는 등 기부 형태를 띠기도 한다. 로엔 크리에이티브센터 관계자는 “단순히 팬이 가수에게 선물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수와 팬덤이 함께 사회에 기부한다는 의미로 기업의 사회공헌처럼 한층 업그레이드된 팬덤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스케일도 커지고 있다. 지난 4월 엑소 멤버 백현의 생일 때 팬들은 열차 전체를 축하 메시지와 사진으로 감싸는 ‘래핑’ 광고를 했다. 이 광고를 하는 데 든 비용은 4400만원. 중국 팬클럽(원윈드)은 같은 그룹 멤버 세훈의 이름으로 스코틀랜드에 있는 땅을 사기도 했다. 1제곱피트(약 0.0281평)밖에 안 되는 작은 땅에 고작 30파운드(약 4만 4000원)를 들였지만 이들이 땅을 산 이유가 재밌다. 현지 환경보호 단체에 땅을 사서 기부하면 명예시민 격으로 귀족 작위 가운데 하나인 ‘로드’가 부여된다. 좋아하는 가수를 귀족으로까지 높이고 싶은 팬심이 만든 이벤트다. 침체된 음반시장에 어느 정도 활력을 준다는 측면에서 팬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하나 우려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뮤직랭킹 플랫폼 한터차트에 따르면 국내 팬덤 규모는 500만명. 국내 아이돌 그룹을 향한 중국 팬덤의 규모는 무려 1억명가량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좌우하는 음원차트에서 음악 경향이나 흐름을 짚어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중적이지 못한 가수나 밴드들은 설 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음악시장이 아이돌 편향이 되면서 다양성을 추구해야 하는 음악 생태계는 훼손되고 있다. 특히 이기적인 집단 스트리밍(재생) 경쟁은 시장을 왜곡하는 주범이다. 기존 재생목록을 모두 삭제한 뒤 음원 사이트에서 특정 앨범 수록곡을 모두 재생목록에 담고 반복적으로 재생하는 것이다. 팬클럽은 이에 대한 매뉴얼을 공유하면서 음악적 성취와 상관없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를 무조건 1위에 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박은석 음악평론가는 “만약 이곳이 주식시장이라고 한다면 심각한 불공정 행위에 해당하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한 가지 목적으로 모여 대중문화의 새로운 권력으로 군림하고 철저히 상업화된 미디어가 이에 동조하면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정작 음악으로 평가받기 더욱 힘든 구조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600일간 소녀상 지킨 소녀들 “할머니 열 분이나 떠나셨는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600일간 소녀상 지킨 소녀들 “할머니 열 분이나 떠나셨는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소녀상 찾는 발걸음은 줄어 관심 줄어드는 것 같아 불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동의하지 않는 한·일 위안부 합의는 600일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입니다. 일본 정부는 어떠한 사죄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부끄럽고 화가 납니다.”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만난 최혜련(23·배화여대 2학년)씨의 목소리는 결기에 차 있었다. ‘성노예제 사죄배상과 매국적 한·일 합의 폐기를 위한 대학생 공동행동’ 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대학생 10여명과 함께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곁을 묵묵히 지키고 있다. 이들은 2015년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이틀 뒤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수요집회)에서 무기한 노숙 농성에 뜻을 함께했고, 농성은 20일로 600일을 맞았다. 최 대표는 “소녀상 철거를 막아야 한다는 뜻에서 농성을 시작했다”면서 “농성이 길어지면서 학업이나 취업 문제로 이탈하는 사람도 생겼지만,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농성을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난해 12월 28일 공동행동을 결성했고 제가 대표를 맡게 됐다”고 소개했다. “그때 이후 피해자 할머니 10명이 세상을 떠나셨는데도 상황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는 말에는 안타까움이 짙게 묻어났다. 현재 공동행동과 희망나비 소속 대학생들은 오전 9시를 기준으로 24시간씩 교대하며 소녀상을 지키고 있다. 농성 초반에는 ‘소녀상 지킴이’가 수십명에 달하기도 했지만 최근엔 동력이 떨어져 한 사람이 3~4일을 지키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지난해 4월에는 한 달 내내 지킨 적이 있어요. 그게 제게는 가장 긴 시간이었습니다.” 식사는 농성을 응원하는 시민들이 낸 돈을 이용해 주로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서 먹는다고 했다. 자체적으로 한 끼 예산을 최대 5000원으로 잡았다. 가끔 시민들이 사다 주는 빵이나 간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기도 한다. 지난 600일 동안 위험한 사건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 5월 한 중년 남성이 찾아와 “해치겠다”며 난동을 부렸다. 농성 천막도 없었던 때고, 농성자 5명 가운데 4명이 여학생이었다. “그 아저씨에게 ‘그냥 가시라’고 했더니 ‘앞에 경찰만 없었으면 너를 칼로 찔러 죽였다’며 협박하더라고요.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많이 없어졌지만 전 정부 때에는 위협받는 일들이 많아 주로 남학생이 당번을 서기도 했어요.” 아찔한 순간을 자못 덤덤하게 떠올렸다. 최 대표는 “갈수록 찾아오는 사람이 줄었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공동행동 소속 채은샘(25)씨는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8월 14일)에 평화의 소녀상을 찾아오시는 분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면서 “이러다간 위안부 문제 해결이 더 늦어지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국정농단 사태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국민의 힘으로 퇴진시켰듯이, 소녀상을 600일 동안 지킬 수 있었던 것도 99%가 국민의 힘입니다. 국민의 뜨거운 관심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는 호소에 이어 “위안부 합의가 폐기되고 피해자 할머니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사과와 보상이 이뤄질 때까지 농성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이기원 “소녀상은 강간 대자보” 막말 제명에도 반성없는 궤변

    이기원 “소녀상은 강간 대자보” 막말 제명에도 반성없는 궤변

    이기원 바른정당 충남도당 창당준비위원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소녀상과 관련해 “할머니가 강간당한 사실을 대자보로 붙여 놓는 꼴”이라고 막말해 논란이 되고 있다.이기원 위원은 지난 16일 페이스북에 충남 보령에서 ‘평화의 소녀상’ 건립이 추진된다는 기사를 링크하며 ‘소녀상과 부국강병’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위원은 “위안부가 자발적인 거냐 강제적인 거냐 논란이 있는데 논점은 이것이 아니다. 이와 비슷한 역사가 우리나라에는 아주 많았다. 고려에 공녀, 조선에 환향녀, 일정에 위안부 그리고 군정에 기지촌녀 등 모두 공통점은 한국 여성의 세계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역사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유별나게 위안부는 동상까지 만들면서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고 한다. 이것은 민족 자존심에 스스로 상처만 내는 일이다. 어느 가정 사회 국가든 비극과 감추고 싶은 게 있는 법”이라고 덧붙였다.이 위원은 또 “인생의 최대 기쁨은 적을 정복하고 그 적의 부인이나 딸의 입술을 빠는 데 있다는 칭기즈칸의 명언이 있다. 의례히 전쟁에선 부녀들의 대량 성폭행이 이뤄져 왔다. 베를린에 소련군이 진주했을 당시 헬무트 콜 수상 부인을 비롯한 대부분의 베를린 여자들이 비극을 당했다. 이 사람들의 상처가 한국 위안부의 상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외국 사람들에게 마이크 대주면서 소녀상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하면 겉으로는 비극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돌아서자마자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며 조선여자들을 비웃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가. 세계의 ♥집이라고 말이다”라고 적었다. 현재 이 글은 삭제됐다. 바른정당은 17일 “바른정당 충남도당은 18일 오후 3시 운영위원회를 열어 위안부 소녀상 막말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이기원 전 충남도당 대변인을 제명 조치하기로 했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이 위원은 당의 제명 조치가 알려진 뒤에도 페이스북에 “이왕 쓴 김에 소녀상 문제에 대해 더 적고자 한다. 소녀상을 전국에 세우면 우리는 그것을 매일 봐야 한다. 우리 국민은 트라우마를 항상 안고 사는 부담이 생긴다. 굳이 어린 유소년들에게까지 이런 부끄러운 일을 미리 알게 할 필요가 없다. 민족 자긍심을 형성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광복절 일본대사관 앞 람보르기니 ‘위안부 합의 무효’

    광복절 일본대사관 앞 람보르기니 ‘위안부 합의 무효’

    제72주년 광복절인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람보르기니 등 슈퍼카 오너들이 태극기와 현수막을 차에 달고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무효 등을 촉구하는 이색 퍼포먼스를 벌였다.슈퍼카 보닛에는 태극기를, 옆면에는 ‘위안부 합의 무효’,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쓰여진 현수막을 달고 등장했다. 슈퍼카들이 일본대사관 앞을 지나자 시민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이날은 서울 도심 곳곳에서 일본 정부를 규탄하는 시민단체 집회가 열렸다. 진보성향 대학생 모임 ‘2017 대학생통일대행진단 준비위원회’와 대학생겨레하나·평화나비네트워크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외 군사 의존도를 강화하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일본 정부에는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적반하장 태도나, 방위백서에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기술하고 안보 관련 법을 이용해 자위대의 해외진출을 모색하는 군국주의 행보는 오히려 (일본 정부) 자신에게 위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우리겨레하나되기 서울운동본부(서울겨레하나)도 이날 일본대사관 앞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를 촉구했다. 서울겨레하나 청소년동아리 ‘들’의 고등학생 회원 3명은 이날 오전 11시께 독립운동가 복장을 하고 인사동을 행진했다. 이들은 각자 유관순·안중근·신채호 가면을 쓰고 치마저고리·두루마기를 입고서 인사동 길을 걸었다. 또래 청소년에게 독립운동가들의 활동과 일제 만행을 알리는 내용이 적힌 피켓도 들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광복절 맞아 용인·홍성·안동·익산 등에 ‘평화의 소녀상’ 세워져

    광복절 맞아 용인·홍성·안동·익산 등에 ‘평화의 소녀상’ 세워져

    15일 제72주년 광복절을 맞아 전국 곳곳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경기 용인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는 이날 오후 4시 용인시청 광장에서 추진위와 시 관계자, 시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을 열었다. 제막식은 가족 3대가 용인 원삼에 고향을 둔 ‘3대(代) 독립운동가’ 오희옥(91·여) 지사, 오영희 추진위 공동대표, 정찬민 용인시장, 더불어민주당 김민기·표창원 의원 등의 헌화로 시작돼 감사인사 및 경과보고, 시민 축사, 연대사, 시민 발언 및 비문 낭독, 공연 등의 순서로 이어졌다. 이번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은 올해 2월 시민단체들이 참여해 만든 추진위가 4월부터 7월까지 거리 모금활동 등을 통해 6800여만원을 모아 제작한 것이다. 용인에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용인시는 향후 시청 지하 1층에 165㎡(50평) 규모로 역사교육관을 만들어 평화의 소녀상을 찾는 시민들이 위안부 역사도 배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충남 홍성에도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홍성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가 이날 오전 홍주성 공영주차장에서 개최한 제막식에는 김석환 군수를 비롯해 추진위원과 주민 100여명이 참석했다. 제막식은 사물놀이패 공연, 경과보고, 시상,기념사, 시낭송 및 비문낭독, 제막 및 기념식수 순서로 진행됐다. 홍성 평화의 소녀상은 지난해 10월 각계각층의 시민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건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되면서 본격 추진됐다. 추진위는 소녀상 건립을 위한 주민 모금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항일 의병운동이 일어난 홍주성 홍주역사관 인근에 소녀상을 설치하기로 하고 문화재청에 소녀상 설치를 위한 국가지정문화재 현상 변경 허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소녀상이 홍주성의 역사성과 직접적인 관계가 부족하다’는 문화재청의 반대로 소녀상의 홍주성 설치는 성사되지 못했다. 이후 홍성읍 대교리 대교공원 등이 후보지로 거론됐지만, 최종적으로 홍주성 인근으로 결정됐다. 추진위는 위안부 피해자뿐만 아니라 강제징용·강제노역의 피해를 본 어르신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인권이 존중되고 평화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주민들의 마음을 담아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에 끌려가던 소녀의 모습을 형상화해 소녀상을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추진위 관계자는 “빗물 한 방울이 모여 큰 강물이 되는 것처럼 군민들이 힘을 모아 역사를 바로 세우는 큰 흐름에 첫발을 내딛게 됐다”며 “소녀상이 미래 세대인 아이들을 위한 교육의 장이자 역사의 장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북 안동에도 포항과 상주에 이어 도내 세 번째로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지난 5월 창립한 소녀상 건립추진위는 회원 1773명으로부터 건립비용 5570여만원을 모았다. 당초 건립 예산은 6000만원이지만 안동지역 예술인 재능기부로 비용을 줄였다. 소녀상 설치 장소는 역사성과 상징성 등을 고려해 옛 안동대도호부가 있던 웅부공원으로 정했다. 추진위 관계자는 “소녀상이 역사와 정의에 대한 시민 이해를 높이고, 독립운동 성지 주민으로서 자부심을 키우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북 익산에서도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열렸다. 익산 평화의 소녀상 건립 시민추진위원회는 이날 오후 5시 30분 익산역 광장에서 추진위와 시 관계자, 시민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을 개최했다. 이 소녀상은 특히 박근혜 정부에서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문’을 소녀의 발로 깨부수는 모습을 전국 최초로 형상화함으로써 위안부 합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시민의 뜻을 담았다. 정현율 익산시장은 “평화의 소녀상을 보며 민족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더욱 확실히 갖게 됐다”며 “서로 힘을 합쳐 소녀상을 세운 시민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익산 평화의 소녀상은 전쟁과 폭력, 성노예 범죄의 근절을 바라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건립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 많은 대동강 잘 있느냐” 위안부 할머니의 노래

    “한 많은 대동강 잘 있느냐” 위안부 할머니의 노래

    청계광장 ‘작은 소녀상’ 전시회 소녀상 태운 151번 버스 운행 수원 시민들 日 사과·배상 촉구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자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의 참상을 알리고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정의·기억재단은 이날 낮 12시 30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5년 위안부 한·일 합의 무효화와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법적 배상을 요구했다. 이들 단체는 한·일 합의 결과로 일본이 ‘위로금’ 명목으로 지급한 10억엔을 반환하라고 촉구하며 “위로금 수령 과정에서 상처받은 피해자와 유족을 치유하라”고 주문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 14분까지 ‘8시간 14분’ 동안 청계광장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조형물 ‘작은 소녀상’ 500점을 전시했다. 500점은 남한 내 등록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9명과 미등록 피해자, 북한 지역 피해자 예상 인원을 합한 숫자다. 이날 오후 6시에는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89) 할머니가 가수로 데뷔하는 무대를 가졌다. 평양에서 태어난 길 할머니는 자신이 발표한 앨범 ‘길원옥과 평화’에 수록된 고향의 노래 ‘한 많은 대동강’을 첫 곡으로 불렀다. 이어 ‘남원에 봄사건’, ‘고향의 봄’, ‘바위처럼’ 등의 노래를 차례로 불렀다.앞서 오전에는 ‘평화의 소녀상’을 태운 151번 버스가 서울 강북구 우이동 차고지를 출발해 미아사거리, 안국역, 숭례문, 신용산역을 거쳐 흑석동 중앙대 앞에서 회차하면서 시민을 만났다. 소녀상을 태운 151번 버스 5대는 이날부터 9월 30일까지 45일 동안 서울시내를 누빈다. 오후 3시 서울역 로비에서는 서울 고척중 등에 다니는 300여명의 중고생이 ‘플래시몹’(여러 명이 특정 장소에서 벌이는 깜짝 공연) 행사를 열었다. 흰색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은 국립국악중학교 2학년 정서연양이 가곡 ‘봉숭아’(봉선화)의 바이올린 연주에 맞춰 흐느끼듯 춤을 췄다. 봉숭아 노래가 끝난 뒤에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가 부르는 ‘아리랑판타지’ 곡이 역사 곳곳에 울려 퍼졌다. 추진위원장인 선린인터넷고 2학년 이성효(17)군은 “위안부 할머니의 명예회복에 힘을 보태고 역사 왜곡을 바로잡는 것도 우리 후손들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경기 수원에서는 안점순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시민 150여명이 올림픽공원 광장 평화의 소녀상 앞에 모여 “일본은 부끄러운 줄 알라”고 소리치며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와 배상을 촉구했다. 안 할머니는 “전쟁 없는 나라를 만들어야 후손들이 편히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가 주최한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추모대행진’ 행사가 열렸다. 600여명(주최 측 추산)이 모여 광화문광장에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까지 행진했다. 참가자 손에는 여성 독립운동가 292명을 형상화한 초상화가 들려 있었다. 기념사업회 측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이름 없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역사 속에서 살려 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500개의 ‘작은 소녀상’

    500개의 ‘작은 소녀상’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인 14일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 위안부 피해자의 이름이 적힌 손바닥 크기의 ‘작은 소녀상’ 500점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기림일, 인권과 평화로 소녀를 기억하다’ 전시회에서는 남한 내 등록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9명과 미등록 피해자, 북한 지역 피해자 예상 인원을 합한 숫자인 500점의 소녀상을 선보였다. 이날 전시는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 14분까지 ‘8시간 14분’ 동안 이어졌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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