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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소식]

    ●15일 선후배 만남의 날 행사 인천과학고는 오는 15일 학교 강당에서 제4회 선후배 만남의 날 행사를 갖는다. 이 행사는 재학생과 졸업생, 교직원이 친목을 도모하고 서로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4년 전부터 이뤄지고 있다. 특히 재학생들은 입시 등 어려운 점에 대해 선배로부터 조언과 격려를 듣는다. 선후배들이 동아리별로 모여 다른 동아리와 다양한 게임을 한 뒤 교실로 옮겨 대화를 나눈다.●2박3일 제주도 체험학습 여행 이화외고의 2학년 210명은 오는 25∼27일 2박 3일동안 제주도로 체험학습 여행을 떠난다. 제주도의 자연과 풍물을 직접 체험하는 이 행사는 10여년째 계속되고 있다. 서귀포 해안지형을 답사하고 분재예술원, 대포동 주상별리, 비자나무 자생지인 비자림, 섭지코지, 비천굴, 표선무속촌을 방문한다. 이들은 제주 피트니스 타운에서 머물고 저녁에는 반별로 개그대회를 열고 바베큐 파티도 한다.●유학반 동아리들 발표회 한영외고 유학반 90여명은 15∼16일 OSP FESTIVAL을 연다. 이 행사는 유학반 동아리들의 발표회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집을 짓는 사랑의 집을 짓는 ‘해비테트’와 반부패청년포럼 ‘KYVAX’ 등 30여개의 동아리들이 있다.15일엔 동아리들이 영어토론과 모의법정, 영어드라마대회에서 실력을 겨룬다.16일에는 시상식을 한 뒤 마술쇼와 사물놀이, 댄스, 관현악 등 공연을 한다. 대회 우승 동아리는 최대 50만원의 상금을 받는데 이 돈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단체에 전달될 예정이다.●오스트리아 연수팀 8일 귀국 명덕외고 해외연수팀이 8일 귀국한다. 연수에는 1학년 100여명이 참가했다. 지난달 18일에 떠나 그동안 오스트리아 젬머링에 있는 젬머링 관광대학에서 연수를 받았다. 이 학교는 3년 전부터 이 대학에서 연수를 하고 있다. 연수기간 첫 2주 동안 영어와 독일어, 프랑스어를 배웠다. 나머지 일주일간 학생들은 체코의 프라하와 오스트리아 비엔나, 잘츠부르크 등을 방문하고 있다.●외국문화원·문화재·박물관 방문고양외고 1학년 488명과 2학년 324명은 27일 외국문화원과 문화재, 박물관 등을 방문한다. 본교는 토요휴업일인 넷째 주 토요일을 학생들이 유익하게 보낼 수 있도록 이 행사를 마련했다.20일쯤 학교측은 추천장소들을 자료로 작성해 나눠줄 예정이다. 학생들은 이 가운데 원하는 곳을 혼자서 혹은 친구들과 함께 가면 된다. 다녀온 뒤 체험보고서를 제출한다.●`화랑 어린이 나라 대통령 선거´ 서울 화랑초등학교는 30일 ‘화랑 어린이 나라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학교를 뜻하는 어린이나라에는 입법부와 사법부, 행정부를 뒀다. 각 반마다 남녀 각각 한 명씩 국회의원을 뽑아 입법부를, 남녀 각각 한명씩 법관을 뽑아 사법부를 구성한다. 행정부는 각 반의 회장들로 구성된다. 입법부는 학교버스 탈 때 줄 서기와 자연보호 등 생활규정을 만들고 사법부는 규정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늘 확인하고 잘 안 지키는 학생은 훈계한다. 대통령은 이 3부를 모두 총괄한다. 대통령이 되기를 원하는 학생은 누구나 출마할 수 있고 직선제이다. 민주주의을 체험하도록 만들어진 이 제도는 30여년 동안 지속되고 있다.
  • 안중근 친필 ‘백세청풍’ 첫 공개

    안중근(安重根) 의사의 친필 유묵(遺墨·생존시 쓴 필적)인 ‘백세청풍(百世淸風)’ 진본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대구 대백프라자갤러리는 오는 10일부터 22일까지 열리는 ‘독립운동과 민족 광복의 역사전’에서 안중근 의사의 작품 ‘백세청풍(34×68.5㎝)’의 진본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시한다고 3일 밝혔다. ‘8ㆍ15 광복 60주년 특별기획’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일제 강점기 36년 동안 조국 광복을 위해 희생된 순국선열과 독립 유공자들의 유묵과 관련 자료, 기록들을 소개함으로써 광복의 참된 의미를 되새긴다는 의미로 마련됐다. 안 의사의 작품 ‘백세청풍’은 그동안 국내에서는 사진으로만 소개됐으나 이번에 일본 소장가의 도움으로 처음으로 진본이 전시된다. 이 작품은 일본 도쿄(東京) 무사시노(武藏野)에 살고 있는 사토 가즈오(佐藤和男)씨가 지난 1994년 6월 국교 교장을 지냈던 부친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발견한 것으로, 안 의사가 중국 뤼순(旅順) 감옥에 투옥 중이던 1910년 2월에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품 좌측 하단부에는 안의사의 다른 작품들처럼 ‘경술이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안중근서(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安重根書)’라는 서명과 함께 네번째 손가락의 한마디를 잘라낸 왼손 장인(掌印)이 찍혀 있다. 안 의사의 유묵은 실물과 사진본을 합해 국내외에 54편이 확인되고 있으나 국내에는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를 비롯한 24편만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 보물로 지정돼 있다.‘독립(獨立)’ 등 나머지 30편은 일본과 중국 등 해외에 산재해 있다. 이밖에도 이번 전시회에는 독립 투사의 유묵 20여점과 독립 관련 각종 기록물 100여점, 강제징용 및 군위안부, 일제강점기 생활상과 임시정부 관련 사진물 100여점이 전시된다. 이와 함께 90분 분량의 일제 강점기 역사 영상물도 소개된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종전 60년 수교 40년 韓日 여론조사 ②] 일본 하면 떠오르는 것

    [종전 60년 수교 40년 韓日 여론조사 ②] 일본 하면 떠오르는 것

    ■ 연상 이미지와 배울점 광복 60주년을 맞았지만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부정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일본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제국주의’라는 응답이 27.5%로 가장 많았다. 이어 ‘일본문화’(12.7%),‘강대국’(9.7%),‘독도문제’(7.3%) 등 순이었다. 일본과 관련된 이미지 중에는 부정적인 것들이 긍정적인 것들을 크게 앞섰다. 제국주의에 이어 ‘나쁘다.’(13.6%),‘역사왜곡’(3.2%),‘종군위안부’(2.3%)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42.6%에 이르렀다. 반면 ‘강대국’(12.7%),‘국민성이 좋다’(7.1%) 등 긍정적인 이미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19.8%에 지나지 않았다. ‘일본문화’(12.7%),‘인접국가’(3.8%),‘섬나라’(2.8%) 등 중립적 이미지는 19.8%를 차지했다. 특히 20대는 ‘일본문화’(27.6%)를 가장 많이 꼽아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일본 문화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30대 이상은 ‘제국주의’를 많이 들었는데,30대 23.6%,40대 27.6%,50대 33.8%,60대 42.2%,70대 이상 40.8% 등 나이가 많을수록 ‘일본=제국주의’를 떠올렸다. 직업별로도 ‘일본문화’(31.5%)를 꼽은 학생을 제외하고는 농립어업(34.9%), 자영업(31.8%), 가정주부(31.5%), 무직(40.7%) 등 대부분이 ‘제국주의’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하지만 이처럼 일본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훨씬 많이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의 다수인 68.5%는 일본으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배울 점이 없다.’는 답은 26.4%에 불과했고,‘배울 점이 매우 많다.’는 적극적인 답도 14.0%에 달했다. 일본으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는 답은 특히 대학재학 이상의 고학력층(79.0%), 고소득층(81.7%), 화이트칼라(79.6%) 일수록 많았다. 일본으로부터 배울 점으로는 ‘과학기술’(19.0%)을 가장 많이 꼽았고,‘근면성실성’(16.4%)과 ‘시민의식’(15.9%) 등 선진의식을 드는 비율도 높았다. 이어 ‘경제력’(11.5%) ‘문화우수성’(8.2%),‘친절성’‘애국심’(각각 6.6%) 등을 배울 점으로 들었다. 배울 점으로 과학기술과 경제력 등 물질적 측면 외에도 근면성실, 문화우수성 등 인적·문화적 측면이 많다는 것은 그간의 한·일간 인적·문화적 교류 확대의 결과로 볼 수 있다. 특히 여성들은 ‘근면성실’(20%)을 일본으로부터 배울 점으로 가장 많이 꼽은 반면, 남성은 가장 많은 21.8%가 ‘과학기술’을 배울 점으로 선택했다. 세대별로도 차이가 뚜렷했다.20대(28.7%)와 30대(19.3%)는 일본으로부터 ‘과학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답한 반면 40대(18.2%)부터 70대이상(27.6%)까지는 일본에서 배울 점으로 ‘근면성실’을 가장 많이 꼽았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노대통령 대일 정책 노무현 대통령의 대일 문제해결 방식에 대해 절반에 가까운 국민들은 그저 그렇다는 식의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다. 설문 대상의 47.2%가 ‘보통’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보통이다.’를 제외하고는 긍정적 평가보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2배 정도 높았다.‘잘하고 있다.’는 반응은 16.2%에 불과했지만 ‘잘못하고 있다.’는 대답은 31.1%나 됐다. 노 대통령의 대일 강경책이 일본에 대한 강경 대응을 촉구한 여론을 반영했음에도 불구, 노 대통령의 이같은 태도가 ‘점수’를 얻지 못한 것은 의외였다. 연령별로는 20,30대가 후한 평가를 내렸다. 반면 40∼60대는 젊은층에 비해 ‘잘못’ 쪽에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노 대통령의 지지층이 20,30대에 집중돼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응답자들의 기존 편향성이 이 문제에도 그대로 투사됐다고 할 수 있다. 30대의 20.7%,20대의 17.5%가 ‘잘하고 있다.’고 답했다. 반면 40대와 50대는 14%,60대는 14.7%가 각각 ‘잘하고 있다.’는 데 점수를 줬다. 반면 50대의 38.2%,60대의 36.3%,40대의 34.2%가 ‘잘못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연령대별 선호가 두드러진 셈이다. 그러나 학력·소득·직업·지역·도시규모·출신지에 따른 차이는 외교문제란 특성 때문인지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소득별로는 고소득층이 중산층보다 2.5%포인트, 저소득층보다는 3.5%포인트 더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출신지역별로는 제주(36.4%)가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가장 높았다. 이는 제주와 제주 출신들이 여행업, 무역 등 일본인 대상의 생업 종사 비율이 높고 접촉이 비교적 많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취임 초 노 대통령의 전향적인 태도에도 불구, 한·일관계 진전 방향의 괴리, 강경책에 따른 한·일관계 악영향 우려도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직업별로는 화이트칼라(31.8%)보다 블루칼라(45.2%) 종사자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초 한·일관계를 언급하면서 일본측에 더이상의 사과나 사죄를 언급하지 않고 미래지향적인 두 나라 관계를 구축해 나가겠다며 호의를 보였다. 그러나 그뒤 좋은 결과는커녕 한국인들의 민족 감정과 자존심을 훼손하는 일본의 행동이 잇따라 돌출, 노 대통령의 정책에 의구심이 들게 했다. 시마네현 의회의 지난 2월 ‘다케시마 날’ 제정조례 통과, 과거역사를 미화하는 후소샤 역사교과서 검정통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따른 한국인의 대일감정 악화 등이 악재로 작용했다. 반면 노 대통령이 국가원수로는 외교사상 유례없이 직설적 발언을 구사하며 강경한 태도로 바뀐 것도 일부 계층에선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외교 관행과 금기를 깨고 일본을 직설적으로 공격하는 노 대통령의 태도가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할 뿐 아니라 한·일관계의 미래에도 나쁜 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과거사 문제 대다수 한국 국민들은 종군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측의 사죄와 보상이 불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과거사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먼저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사과와 피해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전적으로 동의한다.’(61.2%),‘동의하는 편이다.’(26.4%) 등 동의한다는 의견이 87.6%로 나타났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3.1%에 불과했다. 특히 일본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고 있는 한국 내 일본 우호 계층에서도 동의한다는 의견이 88.2%에 달한다는 점은 일본 정부가 주시해야 할 부분이다. 이어 ‘일본이 과거 한국 식민통치에 대해 충분히 사죄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사죄하지 않았다.’는 의견이 89.7%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연령별로는 40대(92.1%), 직업별로는 블루칼라(96.2%), 지역별로는 읍면지역(55.7%)에서 부정적 의견이 많았다. 이는 일부 일본 정치인들이 과거 식민통치를 합리화하고 미화하는 발언을 끊임없이 내뱉고 있고, 일본 정부 차원의 성의있는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한·일관계 발전을 위한 당면과제에 대해 응답자의 과반수 이상인 56.1%가 ‘독도, 종군위안부, 역사 교과서 등 과거사 문제 해결’을 지적했다. 특히 20대(61.8%), 30대(60.2%)가 60대(54.9%),70대 이상(52.1%)보다 많았다. 양국 관계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젊은 세대가 과거사 문제를 더욱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 ‘경제협력 강화’(15.4%),‘문화교류 확대’(10.3%),‘우방으로서 외교문제 공동대처’(10.6%) 등에 대해서도 골고루 언급된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한국인들은 한·일관계에 있어 과거사 문제에 비중을 두면서도 경제와 외교, 사회문화 등 실리적 이해관계 역시 중시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국교정상화후 잘된점·못된점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양국간에 가장 잘된 일로 ‘모르겠다.’는 응답이 36.3%로 가장 많았다.‘없다.’는 답도 14.4%에 달해 한국인 2명 가운데 1명은 지난 40년간 한·일 간에 잘된 일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드러내지 않아 주목을 끈다. 그래도 가장 잘된 일로 꼽은 것은 ‘교류확대’(21.2%),‘경제협력’(12.7%),‘월드컵 공동개최’(10.4%),‘한류붐’(3.1%) 등이었다. 특히 일제 식민치하를 몸소 겪은 70대 이상은 국교 정상화 이후 잘된 일이 ‘없다.’는 대답이 25.4%를 차지, 전국 평균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았다.‘모른다.’는 응답도 42.3%로 모든 연령층 가운데 가장 많았다. 한·일간 잘된 일에 대해 이처럼 무응답 비율이 높은 것은 최근 독도문제 등으로 양국 관계가 악화된 탓으로 보인다. 즉 잘된 일이 있다 해도 이를 부정하려는 감정적 태도가 앞서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양국간 교류확대를 가장 잘된 일로 평가한 것은 한·일관계의 긍정적 측면이라 할 수 있겠다. 국교정상화 이후 잘못된 일로는 가장 많은 22.3%가 ‘독도문제’를 꼽았다. 한국 국민들은 한·일관계 40년을 평가하면서 최근 불거진 문제를 가장 잘못된 일이라고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어 잘못된 일로 ‘과거사 청산’(16.4%),‘역사왜곡’(15.7%),‘일방적인 정치외교’(2.4%) 등을 지적했다.‘모른다.’거나 ‘무응답’은 31.3%,‘없다.’는 6.3%를 차지했다. 70대 이상은 ‘독도문제’(22.5%) 못지않게 잘못된 일로 ‘과거사 청산’(18.3%)에 큰 비중을 뒀다. 반면 20대는 ‘과거사 청산’(11.5%)보다 최근 현안인 ‘독도 문제’(24%)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美역할 평가 국민들의 다수는 한·일관계에 있어 미국의 역할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일관계에 미국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응답(46.5%)이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응답(16.8%)보다 약 3배 높게 나타났다.‘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응답은 25.8%였다. 모든 연령대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앞섰는데 특히 반미감정이 상대적으로 강한 20대(53%),30대(53.3%)에서 높았다. 성별로는 남성(51.1%)이 여성(42%)보다 미국에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다. 학력별로는 대학재학 이상의 고학력층(55.1%)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높게 나타났다. 소득별로는 고소득층(53.9%)과 중산층(50.5%)에서 부정적 평가가 50%를 넘어섰다. 직업별로는 학생(56%)과 화이트칼라(54.6%)층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높게 나왔다. 이외에 도시규모별로는 읍면지역 거주자(56.6%)가 대도시나 중소도시 거주자보다 한·일관계에 미치는 미국의 영향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출신지역별로는 강원(54.9%)과 제주(54.6%)가 부정적인 평가가 높았고, 이북 및 기타 지역은 유일하게 긍정적인 평가(33.4%)가 부정적 평가(33.3%)를 근소하게 앞섰다.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은 과거 전통적인 한·미·일 안보 공동체제에서 벗어나 한국이 주도권을 갖고 동북아 안보에 탄력적으로 대처한다는 구상이다. 이러한 구상은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미·일 간에는 이해와 협조가 잘 되고 있으나, 한국의 입장이 미·일과 달라 고립되는 양상이 반복됨으로써 이를 차단하기 위한 포석으로 받아들여졌다. 결론적으로 한국 국민들은 미·일 동맹체제의 강화가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한·일 공동 국민여론조사 원본 자료 보기
  • [종전 60년·수교 40년 韓·日관계] 노대통령 對日정책 “잘한다”16% “못한다”31%

    [종전 60년·수교 40년 韓·日관계] 노대통령 對日정책 “잘한다”16% “못한다”31%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한·일문제 해결 방식을 못마땅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미국이 한·일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신문이 창간 101주년과 광복 60주년 및 한·일수교 40주년을 맞아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와 공동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민들은 일본에 대해 강한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정부의 한·일관계 해결방식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여론조사는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2·23일 실시됐으며,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이다. 먼저 ‘노무현 대통령의 한·일문제 해결방식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31.1%로 ‘잘하고 있다.´(16.2%)보다 2배가량 많았다.47.2%는 ‘보통이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KSDC는 “노 대통령과 일본 고이즈미 정부간의 신뢰가 무너진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초 과거사보다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에 한·일관계의 초점을 맞추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본측이 독도·역사교과서·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민감한 문제에 오히려 더욱 보수적 입장을 보임으로써 노 대통령의 한·일문제 해결방식에 국민들이 회의적 반응을 보이게 됐다는 해석이다. 한·일관계에 미치는 미국의 영향을 묻는 질문에는 부정적인 응답이 46.5%로 긍정적 답변(16.8%)보다 3배가량 많았다. 반미감정이 강한 20·30대에서 부정적 평가가 많았으며, 학력과 소득이 높을수록 부정적 경향이 강했다. 또 과거사 문제에 대한 국민감정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정부가 종군위안부들에게 사과와 배상을 해야 한다는 데 87.6%가 동의했고, 일본이 한국 식민통치에 충분히 사죄하지 않았다는 의견이 89.7%를 차지했다. 같은 맥락에서 양국관계 발전을 위한 과제로 56.1%가 과거사 문제를 꼽았다. 그 결과 일본에 대한 이미지는 제국주의 등 부정적인 것이 42.3%인 반면 강대국 등 긍정적인 것은 19.8%에 불과했다. 일본의 재무장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이 42.7%로 찬성(23.4%)보다 훨씬 많았다. 하지만 응답자의 68.5%는 ‘일본으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고 답해 일본에 대해 실리적·포용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또 과학기술(19%)과 함께 시민의식(15.9%), 근면·성실성(16.4%)을 일본의 장점으로 인정했다. 연령별로는 일제시대를 겪은 70대 이상 고령층은 일본의 재무장에 특히 민감한 반응을 보였으며,20·30대가 과거사 문제를 중시하는 반면 40·50대는 보다 현실적인 경향을 나타냈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한·일 공동 국민여론조사 원본 자료 보기
  • [종전60년 수교40년 韓日여론조사] 韓 44%·日 52% “양국관계 더 좋아질것”

    [종전60년 수교40년 韓日여론조사] 韓 44%·日 52% “양국관계 더 좋아질것”

    한·일 국교정상화는 올해로 40주년이 된다.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왔지만 한·일관계는 정치·경제의 영역을 넘어 사회·문화적 영역으로까지 확대 발전돼 가고 있다. 한·일 수교 40주년을 맞아 서울신문과 도쿄신문은 공동으로 한·일 국민여론조사를 실시해 한·일관계 현주소를 점검해보고 향후 발전가능성에 대해 탐색하고자 했다. ■ 양국관계 평가·전망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 등으로 최근 반일의식이 고조되고 있지만 한·일관계 자체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종전 60년, 한·일 국교정상화 40년 동안 한·일관계가 ‘좋아졌다.’는 응답은 44.1%로 ‘나빠졌다.’ 15.7%보다 3배 이상 많았다. 그러나 ‘변함 없다.’는 다소 냉소적인 응답도 37.0%로 나타났다. 한·일관계가 좋아진 이유(복수응답 허용)로는 ‘월드컵 축구 공동 개최’를 꼽은 응답자가 34.7%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 ‘경제 교류’ 33.8%,‘한류붐’ 26.5%,‘자매도시 교류를 비롯한 민간 교류’ 18.8% 순이었다. 관계가 나빠진 이유로는 ‘독도 영유권 문제’가 70.7%로 압도적 다수가 지적했다. 우리 국민 세 명 중 두 명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가장 못마땅해한다는 뜻이다.‘과거의 역사’ 35.7%,‘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26.1%,‘문화 관습의 차이’ 13.4% 등도 관계 악화의 원인으로 열거됐다. 특히 일본에 친근감을 느끼면서도 관계는 악화되었다고 보는 국민들의 72.2%가 독도 문제를 그 이유로 지적했다. 또 일본이 한국을 위해 필요하지만 관계는 악화됐다고 보는 국민들도 77.0%가 독도 문제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만큼 한국 국민들에게 독도는 단순한 영토 분쟁을 넘어 민족의 자존심과 정체성에 직결되는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사안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 우리 국민들의 대다수인 84.3%가 ‘일본이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반성하고 있다.’는 비율은 12.4%에 그쳤다. 일제 식민지를 몸소 경험했던 70대 이상(69.0%)에서보다 20대(84.8%)와 30대(86.6%)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더 많았다. 그럼에도 한국 국민들의 다수는 양국 관계의 전망에 대해 비교적 낙관하고 있다.44.1%가 ‘앞으로 좋아질 것’이라고 답했고 ‘나빠질 것’이라는 응답은 14.1%에 불과했다. 다만 ‘변화 없을 것’이란 비율이 36.5%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그럼 일본 국민들은 어떨까. 한·일관계가 ‘좋아졌다.’는 응답은 51.2%로 우리 국민보다 후한 점수를 주었다.‘변함 없다.’거나 ‘나빠졌다.’는 각각 24.6%,20.6%였다. 좋아진 이유로는 ‘한류 붐’이 56.6%로 가장 많았고 ‘월드컵 공동 개최’ 49.2%,‘경제 교류’ 46.1%,‘민간 교류’ 39.6% 등 순으로 경제 교류나 월드컵보다 한류 붐을 먼저 꼽는 약간의 인식차를 보였다. 한류 붐이 몇몇 대중 스타의 반짝 인기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한국에 대한 국가 이미지 자체를 변화시켜 양국 국민들의 우호 관계를 증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빠진 이유는 한·일 간 서로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독도 문제’가 63.6%로 역시 높았고 ‘과거사’ 55.3%,‘신사 참배’ 51.5%,‘문화 관습의 차이’ 33.0% 등이었다. 일본 국민 역시 향후 한·일관계가 ‘좋아질 것’이라고 과반수인 52.3%가 답했다.‘나빠질 것’이라는 응답은 14.1%,‘변화 없을 것’ 29.9%였다. 이같은 징후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한국과 중국이 반발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고 답한 일본 국민이 53.9%로 나타난 데서도 일단을 엿볼 수 있다. 특히 20대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비율이 60.3%로 전체 평균보다 높은 점은 앞으로 한·일관계 미래를 밝게 점칠 수 있도록 하는 긍정적 대목이다. 그러나 여전히 43.4%는 ‘이해하지 못한다.’고 답해 한·일 간 장벽을 느낄 수 있다. 총리의 신사 참배를 한국과 중국이 문제 삼는 것은 “내정 간섭”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양국민 감정’ 총평 한국인에게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감정적으로는 일본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지만 현실적으로는 일본을 필요한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 감정과 현실인식 사이에 부조화현상이 발견된다. 반면 대다수 일본인들은 한국에 대해 비교적 친근감을 가지고 있고 현실적으로도 한국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감정과 인지가 비교적 일관성있게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40년간 한·일관계에 대해서는 두 나라 국민 모두 좋아졌다는 평가를 하고 있으며 향후 한·일관계가 좋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향후 한·일관계가 더욱 확대재생산될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일본의 역사 반성태도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고, 일본인들은 고이즈미총리의 신사참배에 대한 주변국들의 반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한·일관계에 대해서는 양 국민 모두 상대방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고 있지 않으며, 특히 상당수 한국인들이 일본을 동아시아 안정에 위협을 줄 수 있는 나라로 인식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또한 대다수 한국인들은 일본이 종군위안부 문제 등을 포함한 과거 식민통치에 대한 사죄를 아직 충분히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일본의 재무장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국인 대다수는 한·일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독도, 종군위안부, 역사교과서’ 등의 문제가 시급히 해결돼야 한다고 응답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일본측의 진지한 과거사문제 해결 없이는 한·일관계는 피상적일 수밖에 없음을 강력히 드러낸다. 그러나 대다수 한국인들은 ‘일본으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고 응답하고 있다. 이는 일본에 대해 한국인들은 불쾌감을 가지고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그들과 교류하고 배워나가야 한다는 실용적 태도를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조사결과가 한·일관계 개선과 발전에 도움을 주리라 기대한다. 양 국민이 서로 감정과 인식의 차이에 주목하면서 현안들을 솔직하고 대담하게 풀어나간다면 한·일관계는 상생의 틀 속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남영 KSDC소장 nlee@ksdc.re.kr ■ 동아시아 최대 안보위협국은 한국인들은 미국이, 일본인들은 북한과 중국이 동아시아 안보에 가장 큰 위협이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의 경우 젊은 세대의 반미감정이 강했으며, 일본에선 젊은 세대의 반북(反北)감정이 거셌다. 한국인 응답자 가운데 가장 많은 24.2%가 미국이 동아시아 안보에 가장 큰 위협이라고 대답했다. 중국과 일본·북한을 지목한 응답자는 각각 21.7%와 20.6%,17.1%였다. 한국에서는 젊은 세대일수록 미국을 위협 국가로 인식하고 있었다.20대와 30대의 각각 34.4%와 29.1%가 미국을 지목했다. 반면 40대와 50대,60대에선 미국을 꼽은 비율이 21.5%,19.1%,7.8%에 그쳤다. 40대는 최대 위협 국가로 중국을,50대는 중국과 일본을 지목했다.60대에선 북한이 24.5%로 가장 많았고 일본이 1%포인트 차이로 뒤를 이었다. 예상과 달리 70대 이상에선 미국이 21.1%로 가장 많았고, 일본이 16.9%로 그 다음이었다. 이는 2차대전을 체험한 이들 세대의 경우 전쟁을 주도한 미국과 일본에 대한 경각심과 공포심이 무의식 속에 내재하기 때문인 것으로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측은 분석했다. 일본인 여론조사에서는 북한과 중국이 각각 37.7%와 37.2%로 나와 월등하게 높았다. 미국은 10.8%에 그쳤다.20대에서 40대까지 젊은 세대들은 북한을 지목한 비율이 높았고 50대 이상은 중국을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꼽았다. 일본인들은 한국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릴수록 북한을 위협 국가로 지목했으며 부정적으로 평가할수록 중국을 꼽았다.‘한국에 대해 친밀감을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느낀다.’고 밝힌 응답자 556명 중 가장 많은 43.5%가 북한을 지목한 반면,‘느끼지 않는다.’고 답한 280명의 46.4%가 중국을 첫번째로 꼽았다.‘한·일 관계’에 대한 질문에서도 ‘관계가 좋아졌다.’고 평가한 경우 북한을,‘나빠졌다.’고 대답한 경우 중국을 지목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한·일 공동 국민여론조사 원본 자료 보기
  • 종전 직후 오키나와서 촬영 한국인 위안부사진 美서 발견

    |도쿄 연합|2차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한국 여성들의 종전 직후 모습을 담은 희귀 사진이 미국에서 발견됐다고 일본의 한 위안부 지원단체가 29일 밝혔다. 칸토 가쿠인 대학 하야시 히로후미 교수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견한 이 사진은 전쟁 후 위안부 여성들의 얼굴을 뚜렷이 보여주는 희귀 사진으로 평가된다. 사진은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오키나와의 캠프 ‘코자’에 수용된 한국인 위안부 7명의 모습을 담고 있다. 사진 설명에는 이 여성들이 일본군에 의해 오키나와로 끌려 왔으며 본국 송환전인 1945년 11월 캠프 코자에 모였다고 설명돼 있다.
  • [주말에 뭘 보러갈까]

    미술 ■ 남북전통공예교류전 9월 20일까지 덕수궁 석조전 남북한 전통 공예인들의 작품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나전칠기를 비롯, 한복, 가구 등 다양한 전통 공예품 600여점이 전시된다. 남측의 전통공예 작품은 정교하고 세련된 반면 북측은 소박하면서 힘이 넘친다. 분단 60년 동안 남북한 전통 공예가 어떻게 다른 길을 걸어왔는지를 살펴보는 자리다. 오는 9월20일까지 덕수궁 석조전.(02)736-8334. ■ 이완전 작가는 놀이기구의 형태와 원리를 차용, 사무용가구·책걸상 등의 사물을 조합시켜 관객들이 직접 탈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예술과 놀이의 소통을 원한다. 다음달 1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쌈지(02)736-0088. ■ 미술과 수학의 교감전 숫자, 도형등 수학적 이미지나 개념을 활용한 국내 작가의 작품. 곽남신, 이종근, 신학철씨 등 24명의 작품 전시.31일까지.(02)736-4371. ■ 시간을 넘어선 어울림전 이대 박물관 70주년 기념 기획전. 각종 소장품을 통해 근·현대 미술의 면모를 한눈에 볼 수 있다.30일까지.(02)3277-3152. 뮤지컬 ■ 풋루스 10월 16일까지 연강홀 반항과 억압, 사랑과 고통 등 분출하는 젊음의 열정을 춤과 노래로 풀어낸다.2003년 뮤지컬대상 3개 부문 수상작. 서지영 이한 김영민 출연.(02)766-8551. ■ 돈키호테 30일∼8월2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삽입곡 ‘더 임파서블 드림’으로 유명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김성기 류정한 강효성 출연.(02)501-7888. ■ 밑바닥에서 8월21일까지 예술극장 나무와물. 막심 고리키의 원작을 세미 뮤지컬로 각색. 왕용범 연출·박용전 작곡, 황태광 이창욱 출연.(02)745-2124. ■ 루나틱 8월21일까지 시어터일. 정신병원을 무대로 우리네 삶의 희로애락을 그린 코믹뮤지컬. 김태웅 연출, 주원성 김선경 출연.(02)3674-1010. 연극 ■ 가화만사성 8월 3일까지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행복한 가족’‘양덕원 이야기’등 현대 가족의 실상을 소재로 한 극단 차이무의 신작. 대화 단절로 소외감을 느끼는 한 가족의 일상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지이선 작·이성호 연출, 서동갑 민성욱 출연.(02)747-1010. ■ 나의 교실 8월28일까지 창조콘서트홀. 집단 따돌림을 소재로 청소년들의 불안한 심리를 움직임과 이미지로 표현한 퍼포먼스극. 김낙형 작·연출. 정승길 이지연 출연.(02)762-0010. ■ 나비 8월4∼15일 문예진흥원예술극장 소극장. 위안부 출신 세 할머니의 갈등을 통해 전쟁범죄의 참혹함을 고발한다. 방은미 연출, 김용선 조한희 윤혜영 출연.(02)741-5332. ■ 풍인 9월4일까지 아룽구지소극장. 나병으로 불리는 한센병 환자들의 애환을 다룬 연극. 극작가 이만희의 데뷔작.(02)872-4974. 클래식 ■ 조수미 콘서트 30일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극찬을 받고있는 조수미의 국제 무대 데뷔 20주년 기념 콘서트. 백만가지 음색의 프리즘을 자랑하는 바리톤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와 함께 듀오 콘서트 형식으로 열린다.(02)751-9607. ■ 서울팝스 창단 17주년 음악회 31일 오후 4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02)593-8760. ■ 박수연 귀국 첼로독주회 8월 3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02)586-0945. ■ 신나는 음악여행 30일 오후 4시,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소극장(02)399-1789. ■ 최현영 귀국 피아노독주회30일 오후 3시 예술의전당 리사이트홀(02)3436-5929. 어린이 ■ 꼬방꼬방 8월28일까지 사다리아트센터 네모극장. 전래동화로 엮은 극단 사다리의 놀이음악극.(02)382-5477. ■ 판도라의 날씨상자 8월7일까지 서울열린극장 창동. 번개와 천둥 등 첨단 장치로 즐기는 기상과학 체험 뮤지컬.(02)3445-3435. ■ 가루야 가루야 8월28일까지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 한톨의 밀알이 자라 밀가루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직접 체험하는 놀이연극. 이영란 작·연출.(02)569-0696.
  • [사설] 비상걸린 ‘왜곡교과서’ 채택 저지

    일본 오타와라시의 교육위원회가 어제 후소샤판 역사·공민 교과서를 정식으로 채택, 시내 12개 중학교 학생 2300여명이 내년 봄부터 왜곡된 역사를 배우게 됐다. 게다가 일본 전국 584개 지구 가운데 처음으로 교과서를 선정한 오타와라시가 후소샤판을 채택한 것이 다른 지구에도 영향을 미쳐, 역사왜곡 교과서의 채택률이 4년전보다 크게 높아지리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중국 등의 인접국과 일본내 양심세력이 손잡고 벌여온 왜곡교과서 채택 저지운동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극우단체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편찬한 후소샤판 교과서는 일제의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종군위안부를 비롯한 조선인 강제연행 사실을 부정하는 등 일본과 인접국간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왜곡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의 자라나는 세대에게 그릇된 역사관을 심어주는 것은 일본뿐만이 아니라 한국·중국 등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허용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부터 다시 힘을 모아 왜곡교과서 채택률을 최소로 낮춰야 한다. 이와 관련, 국내에서 왜곡교과서 채택 저지운동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줄어든 듯이 보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아시아 평화와 역사교육 연대’는 일본내 저지운동 광고에 쓸 비용을 모금하고 있는데 국민 참여가 적어 목표액에 크게 못 미치는 실정이다. 계획대로라면 지난주에 3억원을 모았어야 하는데 어제까지 모인 금액이 6000만원가량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3000만원은 오타와라시의 후소샤판 교과서 채택 사실이 알려진 어제 하루 모금된 것이다. 국민 모두가 이 운동에 적극 동참해 좋은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
  • ‘왜곡’후소샤 역사교과서 채택 할 듯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도쿄 북쪽 지기현 오타와라시의 7개 시립 중학교(학생 1660명)가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편찬한 후소샤 역사교과서를 채택, 내년 봄부터 사용할 것 같다고 요미우리신문이 12일 보도했다. 오타와라시 ‘교과서채택협의회’의 조사원회는 최근 8종의 교과서를 검토한 결과 2종을 추천하면서 그 중 후소샤 것이 바람직하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협의회는 12일 회의를 열어 교과서를 선정한 뒤 13일 시 교육위원회로 넘겨 채택을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후소샤 교과서는 일제의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위안부와 강제연행을 부인, 양심세력으로부터 역사를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후소샤 역사교과서는 현재 도쿄 도립 양호학교와 중·고 일관교, 아이치 현립 양호·노인학교와 중·고 일관교, 사립 8개교 등 전국적으로 19개 학교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특히 오타와라시처럼 한 지자체 전체 중학교가 후소샤 교과서 채택을 결정한 것은 처음이다.이 시는 중학교 공민교과서도 후소샤 교과서를 채택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올해는 일본의 1만 1134개(2003년 5월 현재, 전체 학생수는 374만 8319명) 중학교에서 내년 봄부터 4년간 사용되는 교과서를 채택하는 해이다. 전국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에서는 3∼54개로 나뉘어진 ‘지구’마다 설치된 ‘교과서채택협의회’가 교과서를 선정하며 지구내 교육위원회는 이를 근거로 8월 말까지 확정하도록 하고 있다.taein@seoul.co.kr
  • [주말에 뭘 보러갈까]

    무용/어린이 ■ 부토 페스티벌-무로부시 코 ‘미모의 푸른 하늘’ 12·13일 오후8시 국립극장 달오름극장(02)3216-1185. ■ 현대무용 페스티벌-신체표현써클 ‘히로시마 회전인간’ 외 9일 오후5시,10일 오후3시 국립극장 별오름극장(02)3216-1185. ■ 코리아 살사 콩그레스 8∼10일 오후7시 63빌딩 국제회의장(02)744-7304. ■ 최현 3주기 추모공연 ‘누군가 다녀갔듯이’ 7일 오후8시 호암아트홀(02)2263-4680. ■ 가루야 가루야 9∼8월28일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 한톨의 밀알이 자라 밀가루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직접 체험하는 놀이연극. 이영란 작·연출.(02)569-0696. ■ 알 13일까지 사다리아트센터 네모극장.24개월~48개월의 유아를 위한 연극놀이.(02)382-5477. ■ 국악뮤지컬 솟아라 도깨비 31일까지 충무아트홀소극장. 환경오염때문에 더이상 땅위에 살 수 없게 된 도깨비들의 이야기.(02)2235-5730. ■ 하륵이야기 7월14일까지 사다리아트센터 동그라미극장. 인형, 가면, 소품 등 다양한 오브제와 재활용품 악기를 활용한 극단 뛰다의 가족극.(02)977-4856. 콘서트■ 2005년 인순이 우먼 파워 콘서트-여수 9일 오후 7시 여수진남실내체육관 (032)567-4075. ■ 녹색연합, 숲에서 날아온 씨앗음악회 9일 오후 7시 마포문화센터 대공연장 (02)3274-8500∼1. ■ 플라워 I LOVE 대한민국 콘서트-부산 10일 오후 3시·7시 부산 KBS홀 1588-9088. 뮤지컬 지하철1호선-무기한 학전그린소극장 대학로에서 장기공연중인 록뮤지컬 ‘지하철1호선’이 새 승무원을 영입, 한층 젊어진 감각으로 관객을 맞는다. 옌볜 처녀의 눈으로 바라 본 90년대말 서울 풍경. 김민기 번안·연출, 김민정 이상원 조선형 출연.(02)763-8233. ■ 수천 7∼17일 문예진흥원예술극장 대극장. 광개토대왕의 호위 무사 장하독과 그의 아내 수천을 통해 고구려인의 기상과 꿈을 형상화. 김정환 연출, 손광업 김영 출연.(02)335-1749. ■ 암살자들 9∼31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국내 초연되는 뮤지컬의 거장 스티븐 손드하임의 대표작. 이동선 연출, 오만석 엄기준 오세준 출연.(02)556-8556. ■ 오페라의 유령 9월1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19년간 한결같은 사랑을 받아온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흥행 뮤지컬.1588-7890. ■ 더 씽 어바웃 맨 31일까지 대학로 신시뮤지컬극장. 진정한 사랑과 결혼의 의미를 둘러싼 아찔한 삼각관계. 한진섭 연출, 성기윤 이정열 김경선 출연.1544-1555. 클래식■ 대전시립교향악단 9일 오후 4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한국 교향악단의 새로운 모델로 떠오르는 대전시림교향악단과 ‘문화게릴라’지휘자 함신익이 모차르트와 말러를 연주한다. 모차르트 디베르티멘토 제 2번과 말러 교향곡 3번을 선보인다. 말러 교향곡 3번은 대규모의 오케스트라, 여성 합창단, 여성 솔리스트, 어린이 합창단등 웅장한 음악을 선보일 것으로 기대된다.(02)751-9607. ■ 피아니스트 박미정의 피아노와 관을 위한 실내악 15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02)6303-1919. ■ 임지연 귀국 피아노 독주회 9일 오후 3시 예술의 전당 리사이트홀 (02)3436-5929. ■ 이귀란 귀국 피아노 독주회 10일 오후 3시 예술의 전당 리사이트홀 (02)3436-5929. ■ 김윤정 바이올린 독주회 8일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리사이트홀 (02)587-5961. 미술 팝팝팝 한일 현대미술전-31일까지. 가나아트센터 백남준, 강영민, 김준, 이동기, 홍경택과 무라카미 다카시, 구사마 야요이 등 한국과 일본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14인의 다양한 팝 아트 작품 100여점 전시. 팝 아트는 물질문명이 지배하는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다루는 미술로 1950∼1960년대 출발해 여전히 현재 생활과 소비문화를 환기시키고 있다. 대중적인 것을 소재로한 작품에는 재치, 유머, 풍자가 담겨 있어 관람하기 재미있다.(02)720-1020. ■ 갤러리 미 개관기념전 18일까지. 청담동 갤러리 미. 물방울 작가 김창렬, 김태정, 박서보, 서세옥, 윤형근, 이강소, 김환기, 김창기, 유영국, 장욱진 내로라하는 한국화단의 대가들을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02)542-3004. ■ 남관 변종하 장욱진 3인 드로잉전 17일까지. 평창동 그로리치 화랑. 독특한 기법으로 자기 예술세계를 구축,1950∼1970년의 한국화단을 이끌어온 3인 작가전. 화랑 개관 30주년 기념전.(02)395-5907.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17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 피사체가 거의 의식하지 않게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하기로 유명한 ‘찰나의 거장’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1주기를 맞아 마련된 사진전.(02)379-1268. 연극심청이는 왜 두번…/17일까지 국립극장 심청이는 왜 두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기발한 웃음, 강렬한 비애가 어우러지는 극단 목화의 대표작. 오태석 연출가 특유의 상상력과 재기발랄함이 무대를 가득 채운다. 황정민 조은아 강현식 출연.(02)745-3966. ■ 메데이아 콤플렉스 9∼24일 게릴라극장. 한국 전통양식을 덧입은 그리스 비극. 박재완 연출, 이승비 장재호 출연.(02)763-1268. ■ 나비 17일까지 아리랑소극장. 위안부 출신 세 할머니의 갈등을 통해 전쟁범죄의 참혹함을 고발한다. 방은미 연출, 김용선 조한희 윤혜영 출연.(02)741-5332. ■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 17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손기호 작·연출, 김학선 염혜란 장정애 출연. 가진 것 없고, 내세울 것 없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심성을 지닌 선호네 가족의 가슴시린 사랑이야기.(02)762-9190.
  • 일제 강제동원 피해 신고 19만명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전기호)는 2월1일부터 6월30일까지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신고를 접수한 결과 모두 19만 572명이 신고를 했다고 1일 밝혔다. 신고유형을 보면 노무자가 13만 4466명으로 제일 많고 군인 3만 3639명, 군속 2만 2164명, 위안부 303명 순이다. 시·도별로는 전남이 2만 6553명으로 가장 많고, 울산이 1900명으로 가장 적었다. 위원회는 신고내용을 토대로 사실 확인을 통해 강제동원중에 사망 또는 행방불명된 123명을 ‘희생자’로, 무사귀환한 81명을 ‘피해사실 인정자’로 결정하는 등 204명을 피해자로 인정했다. 진상조사 신청은 31건이 들어왔고 이 중 조선인 시베리아 포로 억류와 우키시마호 폭침, 야스쿠니신사 조선인 합사 등 20건에 대해 조사가 진행 중이다.11건은 검토 중이거나 각하했다. 위원회는 앞으로 강제동원 피해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피해사실 확인에 활용할 계획이다. 또한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자료 기증자에 대해서는 소정의 보상금도 지급된다. 위원회는 1차 접수를 못한 피해자와 유족들을 위해 추후 2차 신고를 접수할 예정이다.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신혜수씨 등 한국여성 6명, 노벨평화상 추천후보에

    |제네바 연합|한국 여성 6명이 스위스의 민간단체가 추천하는 올해의 노벨평화상 공동추천후보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밝혀졌다. 스위스의 민간단체인 ‘노벨평화상 1000 여성 추천운동협회’가 29일(현지시간) 발표한 후보 1000명의 명단에 윤금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회 회장 등 모두 6명의 한국 여성이 등재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 여성으로는 윤 회장 외에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의 이현숙·김숙임 대표, 정유진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사무국장, 이철순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대표, 신혜수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 상임대표 등이 올라 있다. 또 일본은 6명이 명단에 올라 있으며 이 가운데 송인도(82)씨가 포함돼 있다. 송씨는 종군위안부 출신으로 일본 내에서 전시에 자행된 여성에 대한 폭력은 물론 종전 이후의 가혹한 인종차별에 정면으로 맞서왔으며, 일본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법정 투쟁을 전개한 공로가 인정돼 추천을 받은 것으로 돼 있다. 협회측은 1000명의 명단을 이미 노벨상위원회에 제출했다면서 곧 이들의 신상정보와 활동상을 수록한 책자를 만들어 올 연말 전세계에 배포하고 사진과 출판물을 소개하는 순회전시회도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노벨평화상 1000 여성 추천운동협회’는 역대 노벨평화상이 여성을 차별하고 있으며 이들의 노고가 조명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 아래 지난 2003년 8월 스위스에서 14개국 여성대표들의 주도로 결성됐다.
  • 日강제동원 진상규명 ‘겉핥기’

    日강제동원 진상규명 ‘겉핥기’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 규명 작업이 ‘수박 겉 핥기식’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피해자 등의 강제동원 신고내용 대부분이 구체적이지 못한 데다 피해 신고서를 접수한 지방자치단체 등도 인력부족으로 사실여부 확인을 거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2일 일제 강점하 강제 동원 피해진상규명위원회가 전국 250개 지자체에 시달한 ‘강제동원 피해 신고 업무처리지침’에 따르면 지자체들은 이달 말까지 만주사변(1931년 9월18일) 이후 태평양전쟁(1945년 8월)에 이르는 시기에 일제에 강제 동원돼 군인·군속·노무자·군위안부 등의 생활을 강요 당해 입은 생명·신체·재산 등의 피해를 신고받아야 한다. ●생존자 드물어… 피해입증 곤란 신고인의 자격은 강제 동원 피해자 본인 또는 피해자와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 등이며, 신고 접수는 국내의 경우 신고인의 주민등록 거주지 시·군·구 또는 시·도 실무위원회 등이다. 또 6하 원칙에 의해 피해 신고를 접수한 지자체는 피해여부 사실 확인 및 피해자 진술 청취, 자료수집 등을 통해 사실 확인 결과서를 작성해 해당 위원회에 전산 입력해야 한다. 이에 따라 경북도는 지난 21일까지 본청을 비롯해 23개 도내 전체 시·군청을 통해 모두 1만 6784건의 피해 신고를 접수했다. 전국적으로는 15만 6558건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 피해 신고가 전체 피해규모(정부 등 추산 300만명)에 비해 극히 저조한 데다 신고내용이 대부분 부실해 피해사실을 입증하는 데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지자체 관계자들은 우려했다. 피해 신고가 저조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피해를 당한 지 60년 이상 지나 생존자가 극히 드문 데다 유족 역시 이를 입증할 만한 자료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유족 등에 의해 대리 신고된 피해내용 대부분이 훈련소 수료증이나 부대원 사진 등 구체적 정황·증거 제시보다는 구전(口傳)에 의존한 것이어서 피해사실을 입증하는 데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 여기에 접수기관인 대다수 지자체들도 사실확인 등에 손을 놓고 있다. 시·군·구별로 담당공무원이 1명인 데다 그나마 다른 업무와 겸하고 있어 피해신고 접수에만 급급할 뿐 피해자에 대한 현장 자료수집이나 피해여부 확인 작업 등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고자 보상 검토 이재영(51) 경산시 시정담당은 “직원 1명이 15개 읍·면·동지역에서 접수된 580여건에 대한 피해사실 현장조사를 벌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게다가 지자체들의 관심도 낮아 진상규명 관련 업무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지자체 관계자들은 “현재와 같은 신고·접수 방식으로는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신고자에 대한 정부 차원의 일정한 보상책 마련과 함께 지자체에 한시 전담기구를 설치하는 등의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강제동원 진상 규명위원회 관계자는 “최근 지자체들의 관련 인력 충원 등을 위해 40억원의 긴급 자금을 지원했다.”면서 “신고자에 대한 보상문제는 현재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日종군위안소 상하이만 149곳

    |상하이 연합|중국 상하이(上海)에 과거 일본군을 위한 종군위안소가 149곳 있었으며 이중 1931년 11월에 세워진 사상 최초의 위안소 건물이 원형 보전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상하이 사범대학 역사학과 쑤즈량(蘇智良)교수(중국 위안부 연구센터 주임)가 지난 13년 동안 상하이 지역을 집중적으로 조사한 결과 이같은 사실이 밝혀졌다. 쑤 교수는 16일 “13년간 연구·조사한 결과 상하이는 일본군 위안소가 가장 먼저 운영되고, 가장 많은 위안소가 있었던 곳으로 확인됐다.”며 “확인 과정에서 위안소 숫자가 너무 많은 데 놀랐다.”고 말했다. 쑤 교수가 확인한 149곳의 위안소는 일본 해군 사령부가 있었던 훙커우(虹口)의 70여곳을 비롯, 충밍(崇明), 푸둥(浦東), 우쑹(吳淞), 자딩(嘉定) 지역에 집중돼 있었다. 특히 훙커우구(區) 둥바오싱(東寶興)로 125룽(弄)에는 당시 일본군 장교를 위한 위안소였던 ‘대일살롱(大一沙龍)’ 건물이 거의 원형 그대로 보전돼 있다. 대일살롱은 일본군의 상하이 침공 뒤인 1931년 11월부터 일본군이 패전한 45년 8월까지 운영됐다. 또 근처의 쓰촨베이(四川北)로 1746룽에는 일본군 사병을 위한 집단위안소인 ‘메이메이리(美楣里) 위안소’ 건물도 그대로 보존돼 있다. 위안소 건물에는 대부분 일본식 미닫이 창문과 후지산 모형 등 조각품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특히 36년부터 당시 이곳에 체류하던 조선인 상인들이 운영하던 술집 등이 일본군 위안소로 대거 활용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쑤 교수는 덧붙였다.
  • 마치무라 日외상 서면 인터뷰

    마치무라 日외상 서면 인터뷰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일본 외상은 야스쿠니 신사에 있는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의 반환과 관련,“신사측은 남북간에 반환처에 관한 공식적인 합의를 하고 일본 정부에 외교채널을 통해 요청하면 반환할 용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남북의 정부당국이 조속히 조정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북관대첩비는 일제에 의해 100년 전 약탈돼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돼 온 임진왜란 승전비로, 정부가 반환협의를 위해 북측에 문화재회담을 제의해 놓은 상태다. 마치무라 외상은 한·일정상회담을 앞둔 16일 서울신문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현재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는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대해서는 “한국측이 현 상황인 채로 관세협상을 개시하는 데 신중한 자세”라면서 한국측의 적극적인 자세를 촉구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한·일관계 ▶한·일 우정의 해인 올해 초 독도문제가 발생했다. 독도문제로 양국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질 것으로 예상했는가. -2005년은 아직 반환점에 오지 않았다. 양국간의 교류를 이어감으로써 우정의 해를 보낸 양국민이 올해를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대단히 의미가 깊은 한해였다.”고 되돌아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20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방한이 예정돼 있다. 한·일 관계개선에 좋은 복안이라도 있는가. -올해 전반부는 양국관계가 곤란을 겪었다. 양국이 이런 곤란을 뛰어넘어,2003년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의 공동성명에 있는 것처럼 ‘동북아시대를 향한 한·일협력’을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양국간에 더한층 대화와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정상회담은 양국관계를 한때의 긴장상태에서 평정한 상황으로, 나아가 양국의 우호협력을 한층 확고하게 하는 좋은 기회다. 지난달 도쿄에서 ‘한반도 출신 옛 군인·군속 및 민간징용자 등의 유골문제에 관한 한·일협의’를 여는 등 개별적인 문제에 대해 착실히 대응하는 것도 그러한 분위기 조성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의 항구적인 무비자 전환 같은 성과를 기대해도 좋은가. -일본 각지에서 ‘가깝고 가까운 나라’로부터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기회에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을 방문할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의 비자면제(아이치 만국박람회 기간 중 시한부)의 성과를 바탕으로 항구적 면제에 대해 검토하겠다. ▶한·일 FTA에 대해 일본 정부는 어떤 로드맵을 갖고 있나. -협상 재개에는 서로 유연성을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 두 정상간에 확인된 연내 실질합의를 향해 계속해서 한국과 협력해 갈 생각이다. #역사문제 ▶(주변국 침략과 관련해)일본은 독일보다 사과를 더 했다고 발언했는데, 지금도 그런 생각인가. -일본은 전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나 한·일기본조약 등에 따라 국가간 배상 등의 문제를 일괄처리했으나, 독일은 동서로 분단돼 있어 우리같은 국가간 배상문제 등을 일괄처리할 수 없었다. 전혀 다른 상황인 일본과 독일의 대응을 단순히 비교해 평가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어떻게 보는가. -총리 본인이 설명한 대로 전장에 나가 목숨을 잃은 사람에 대해 경의와 감사를 표하는 것으로 참배 때마다 ‘부전(不戰·전쟁을 하지 않는다)’을 맹세하고 있다. 군국주의의 미화나 A급 전범을 위한 참배는 아니다. #국제관계 ▶일본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해 한국과 중국이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양국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일본이 상임이사국이 되는 일은 국제사회, 동북아시아 지역에 있어서 일본과 여러 가지 공통의 이해를 갖고 있는 한국에 있어서도 큰 이익이 될 것이다. 한국 국민들이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해 이해와 지지를 해주도록 부탁하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이 ‘동북아시아 균형자론’을 밝혔는데, 한국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한국의 실제 외교정책 운영에 있어서 어떻게 구체화되는지를 주목하고 있다. 북한의 핵문제 같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관한 중요한 과제에 대처해 가기 위해서는 일본, 한국 및 미국의 긴밀한 협력이 대단히 중요하다. 한국 정부 스스로가 ‘균형자론은 어디까지나 한·미동맹을 기축으로 한 것’임을 밝힌 점에 유의하고 있다. #북한 문제 ▶북핵문제가 악화될 경우 미국이 무력행사를 할 수 있다는 관측이 있다.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일본은 미국의 무력행사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관계국이 6자회담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중시해 왔다.6자회담의 조기 개최를 위해 한·미·일을 포함한 모든 관계국이 외교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현 시점에서 북핵문제의 악화를 상정해 관계국의 구체적인 대응에 대해 예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북·일 수교협상의 재개 전망이 불투명하다. 오히려 대북 제재의 목소리가 일본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대북 협상의 조건은 무엇인가. -납치문제와 관련해 북한으로부터 성실한 대응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으로서는 생사가 불분명한 납치피해자와 관련해 생존자의 즉시 귀국 및 진상규명을 강하게 요구하는 것과 동시에 일본과의 대화에 응하도록 촉구해 가겠다.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 정부 “우리땅… 거론땐 단호대처” 한·일 양국이 20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의제 선정 작업에서부터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의 시각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독도 문제의 경우 정부는 지리적·역사적·국제법적으로 분명한 우리나라 영토인 만큼 의제로 논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경한 입장이다. 반면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주요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은 지난 14일 열린우리당의 인터넷방송에 출연,“이번 정상회담 의제는 첫째 야스쿠니 문제, 다음에 역사왜곡, 세번째 독도문제”라면서 “특히 독도문제는 명백하게 우리 영토가 분명하기 때문에, 의문의 여지가 없고 일본으로 하여금 독도영유권 문제에 대해 시비를 하지 않도록 강력하게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 장관의 발언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가 먼저 독도 문제를 얘기하겠다는 게 아니라, 일본측이 문제를 제기하면 단호하게 받아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교과서 역사왜곡과 관련, 정부는 이번에 정식의제로 올려 일본의 무성의를 분명히 따지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일본은 가능하면 의제에서 제외했으면 하는 의사를 보이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도 우리 정부는 중요 의제로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 장관은 이와 관련, 열린우리당 인터넷방송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2001년 검토를 약속한 대로 제3의 추도시설 문제를 검토하도록 정상회담에서 강력히 촉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상연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마치무라 외상 ‘왜곡 교과서’ 검정때 문부상 역임 마치무라 노부타카(60) 외상은 중의원 7선의 집권 자민당 내 중진이다. 도쿄대 경제학부를 졸업, 통상산업성에 들어가 13년간 공직생활을 했다.1983년 정계에 입문해 중의원에 첫 당선된 뒤 우리의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에 해당되는 문부상을 두 차례 지냈으며, 외무성 정무차관과 자민당 간사장 대리도 역임했다. 2001년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역사왜곡 교과서 검정 때 문부과학상이었다. 지난해 9월 개각의 외교·안보팀 개편 때 외상으로 발탁됐다.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의 과제를 떠안고 있으나 역사왜곡 교과서 파동, 독도, 야스쿠니 참배 문제 등이 겹쳐 유엔에서의 영향력이 큰 중국, 한국의 반발로 벽에 부딪힌 상태다. 역사왜곡 시정을 요구하는 국회 대표단이 일본을 방문했던 지난 4월 “한국인에게 대단한 아픔을 드린 데 반성한다.”고 밝히고 5월 뉴욕의 유엔개혁회의에서는 “일본은 역사를 조금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 있지만 독일보다 훨씬 여러 번, 더 많이 사과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4월 일본 NHK에 출연해 “한국과 중국의 역사교과서가 하나밖에 없다니 이런 바보같은 일도 없다.”고 말해, 외교통상부가 “매우 유감스러운 발언”이라고 강력 항의하는 공식논평을 낸 바 있다.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 최근 한일분쟁 일지 ▲2월22일 일본 시마네현 의회,‘다케시마의 날’ 조례안 상정. ▲2월25일 다카노 도시유키 주한 일본대사 “독도는 일본 영토” 발언. ▲4월5일 일본 문부성, 왜곡 교과서 검정. ▲5월11일 야치 쇼타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한국과 북핵 정보 공유 불가” 발언. ▲6월1일 신풍호 한·일 경비정 대치 사건. ▲6월11일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상,“종군위안부라는 말은 원래 없었다.”발언.
  • 심야의 수류탄 소동 14시간

    대구판 김희로(金嬉老) 사건의 도화선은? 푼푼이 모은 돈 8만원 양공주된 누이에 주고 아버지와 이복형제들이 자기와 한 어머니 몸에서 태어난 단 하나뿐인 사랑하는 누이동생을 학대 끝에 미군 위안부로 전락시켰다고 앙심을 품은 사나이. 이 파월병사는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은 채 전 가족을 몰살시키고 자신도 폭사하겠다고 약 14시간 동안 버텨 50여 명의 군경이 출동하고 인근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등 큰 소동이 대구 한복판에서 일어났다. 67년 10월 군에 입대, 지난 2월 파월된 김용태(金龍泰)(25)상병은 8개월만인 지난 10월 2일 휴가로 귀국, 대구시 서구 비산동 2구 19 아버지 김점준(金点俊)(63)씨를 찾았다. 가족 모두가 무사한데 서울로 식모살이간 누이동생 옥선(玉仙)(22)양이 보이질 않아 서자의 설움이 복받쳐 그 길로 집을 뛰쳐나와 서울로 올라갔다. 이 무슨 변일까? 식모살이 하는 줄만 알았던 누이동생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외인주택에서 미군 위안부 노릇을 하지 않는가. 두 남매는 부둥켜 안고 자신들의 신세를 이렇게 모질게 꺾어버린 이복형제들을 원망하면서 하염없이 울었다. 누이동생 결혼 때 값진 혼수감을 사주려고 푼푼이 모아 갖고 온 10여만원 중 푼돈 쓸 2만여원만 남기고 몽땅 털어주었다. 좋은 신랑감 만나서 호강하며 잘 살려니 생각했던 부푼 꿈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김상병은 치솟아 오르는「복수심」을 억누를 길 없어 발길을 대구로 돌렸다. 생모는 25년 전 이웃 과부 6세 때부터 집떠나 유랑 김상병과 옥선양은 아버지 김씨와 지금 군위군 효령면으로 개가한 것으로 알려진 이모(55)여인 사이에 태어났다. 25년 전 김씨가 대구시 태평로3가(당시 금정2정목)에 살 때 이웃 과부 이여인과 눈이 맞아 동거생활을 시작, 두 남매를 낳고 19년 전 헤어져 세 살 난 옥선양만 데리고 떠났다. 여섯 살 난 김상병은 어머니 품을 떠나 큰 엄마 안학봉(安學鳳)씨와 이복 네 형과 함께 살아왔다. 8세 때 인지국민학교에 입학, 2학년 때 중퇴, 충북 영동군 상촌면 유곡리 아들 없는 고모부 허달(許達)씨 집으로 옮겨 살았다. 거기서 18세 때 귀가, 멍게장수, 품팔이 등을 하다가 군에 입대. 김상병은 이복형들 밑에서 기가 꺾여 남과 다툴 줄 모르나 어딘가 야무진 데가 있는 성격의 소유자라고 이웃 사람들은 얘기한다. 세 살 때 어머니 따라 떠났던 옥선양은 7년 전 15세 때 귀가, 완대동 모 직조공장에 취직하여 한 달 일하고 월급을 받아 아버지 김씨에게 몽땅 넘겨주곤 서울에서 금은방을 경영한다는 이부동복(異父同腹) 오빠인 강씨에게 간다고 집을 나간 후 이때까지 소식이 없다가 지난 9월 30일께 이복맏오빠 영조(永祚)씨에게 부탁, 호적초본 2통을 서울로 부쳐달라 하며 떠났다는 것. 대구에 되돌아온 김상병은 가족몰살과 함께 자폭한다는 끔찍한 결심을 간직한 채 기회를 노렸다. 설움과 울분이 뒤범벅된 착잡한 심정으로 기회를 잡을 때까지 매일 술로 지새워 지에서는 이틀 밤 밖에 자지 않았다. 기회는 좀처럼 잡히질 않았다. 월남으로 떠날 13일이 다가와 마음이 초조해졌다. 10월 11일 밤 8시쯤 시장에서 오징어, 무, 술 등을 사서 짐꾼을 시켜 집으로 보냈다. 짐꾼편으로 가족「파티」를 열겠으니 전 가족을 모아달라고 아버지에게 전했다. 떠나기에 앞서 가족「파티」를 열고 일을 저지를 계획이었다. 이날 밤 12시쯤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갔다. 결혼 후 달성동에서 별거하는 맏형을 제외하고는 아버지를 비롯, 큰어머니, 둘째형, 셋째형, 넷째형, 이복누이동생 등 6명의 가족이 모여 있었다. 술을 한 잔씩 나눈 뒤 김상병은『우리 형제끼리 의논할 일이 있으니 아버지 어머니는 자리를 비켜달라』고 요구했다. 김상병의 심상찮은 태도를 눈치챈 아버지 김씨는『내가 있는 데서 할 말 못할 것 있느냐』하며 비켜주지 않고『너 태도가 이상한데 그러면 못쓴다』고 꾸짖었다. 그러자 갑자기 왼쪽 안주머니 속에서 수류탄을 꺼내 안전「핀」을 뽑고『터뜨리면 3초만에 끝장난다』고 소리쳤다. 『왜? 내 동생을 공부 안시키고 양공주로 만들었느냐? 다같이 죽자』고 소리소리 질렀다. 이때가 상오 1시쯤. 이러한 위협 속에 아버지 김씨는 빠져나와 관할 북비산 파출소에 신고했다. 그동안 방안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던 이복형제들은『술 받으러 간다』『변소에 간다』『물 떠온다』등 핑계로 간신히 빠져나와 위기를 모면. 신고에 접한 경찰은 16헌병대로 연락, 출동한 헌병들과 함께 김상병의 자폭을 우려, 접근하지 않고 날이 밝을 때까지 집을 포위, 집 주위 모든 골목길을 차단, 통행을 막았다. 사타구니에 낀 수류탄은 2차 수면제작전에 뺏어 아침 6시쯤 김일수 2군헌병부장, 김덕희 대구경찰서장 등이 김상병과 접선,『수류탄을 터뜨리지 않고 나오면 처벌하지 않을 것은 물론 모든 요구조건을 들어주겠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김상병은『가족을 들여보내 주지 않으면 터뜨린다』고 위협, 계속 수류탄을 수건에 싼 채 사타구니에 끼고 버티었다. 아침 7시쯤 세든 옆방 정순자 아주머니가 사다 준「사이다」한 병을 이불을 덮어쓰고 그 속에서 마셨다. 왼쪽 손에 수류탄을 쥐고 안전「핀」에 엄지손가락을 낀 채, 상오 10시 30분이 좀 지나 김상병과 가장 친하다는 이웃 김종성(金鍾聲)씨와 이부동복형 강씨가 설득을 위해 위협을 무릅쓰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이때 김상병은 큰방에서 건넌방으로 자리를 옮기고 막걸리를 사달라고 요구했다. 김·강양씨는 기지를 써 막걸리 한 사발에다 수면제와 신경안정제 하루치를 넣어 갖다 주었다. 잠들게 한 뒤 수류탄을 뺏을 계획이었다. 1차 계획은 실패, 하오 1시쯤 2차 계획이 진행, 조금 뒤 김상병은 졸기 시작, 때를 놓칠세라 김·강양씨와 16헌병대 송윤호 중위가 숨을 죽여가며 방안으로 들어가 잠든 것을 확인, 김씨는 수류탄을 쥔 김상병의 왼쪽 손목 맥을 힘껏 쥐고 강씨는 사타구니 속에 넣은 수류탄 쥔 주먹을 살며시 끌어냈다. 한편 송중위는 김상병의 뒤로 돌아 양팔을 요동 못하게 힘껏 안았다. 위기일발 - 이 긴장된 순간 용감한 세 사람은 김상병의 손가락 하나 하나를 제쳐 안전「핀」이 빠진 수류탄을 탈취, 잡는데 성공했다. 이때가 약 14시간만인 하오 1시 50분, 인산 인해를 이룬 군중 속에서 함성이 터져나오고 모든 사람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대구 = 최종하(崔鍾夏) 기자> [ 선데이서울 68년 10/20 제1권 제5호 ]
  • ‘역사교과서’ 韓·日공동연구 과제로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정부가 ‘역사교과서’ 문제를 연내 재개할 제2기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의 ‘과제’로 삼기로 방침을 바꾸고 한국과 조정에 들어갔다고 마이니치신문이 8일 보도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이달 열리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같은 방침을 밝힐 것으로 전해졌다. 신문은 역사공동연구위의 전체위원회인 ‘역사공동연구위원회’ 아래 전문분과회를 설치한 뒤 대상을 정해 공동연구를 실시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면서, 양국이 세부대상 협의에 착수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단, 일본정부는 연구는 하되 연구성과를 추후 교과서 기술에는 반영시키지 않는 것이 전제라는 입장을 한국측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역사를 왜곡 기술한 것으로 드러난 후소샤 교과서는 물론 다른 교과서에서의 강제연행 및 종군위안부 기술 삭제 등을 대상으로 왜곡실태를 조사하자는 입장이었다. 반면 일본은 교과서의 편집권은 해당 출판사측에 있으며 정부는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런 일본 정부가 입장을 갑자기 바꾼 것은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를 만회할 카드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관측된다. taein@seoul.co.kr
  • 위안부 221명 명단 새로 발견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에 끌려가 위안부로 생활하다 광복 직후 부산으로 단체 귀국한 한국인 여성 221명의 명단이 6일 무더기로 공개됐다. 1945년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상하이에서 광복군 잠편지대(暫編支隊)제3중대장을 지낸 이중(83) 전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날 일본군 위안부 여성 221명이 포함된 당시 탑승자 명부 등 관련 기록 5건을 공개했다.‘귀국인 명단’이란 제목의 탑승자 명부에는 주호잠편지대원과 중국교민 등 한국인 3374명의 이름·나이·귀향지 주소가 기재돼 있다. 자료들은 이 전 교수가 중대장 시절 직접 작성하거나 관리하던 문건을 보관해 오다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명단은 그간 정부가 파악한 위안부 명단과 극히 일부만 중복되는 데다 나이와 당시 주소 등이 정확히 기재돼 있어 위안부 실태를 규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일제 말기 일본군에 강제징집된 뒤 광복 직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광복군 잠편지대로 편입됐던 한국인 학도병 600여명의 신상명세, 부대일지, 귀국자 명단 등 ‘광복 이후 광복군’과 관련한 5건의 기록도 발견됐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4)태평양전쟁과 남양군도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4)태평양전쟁과 남양군도

    오는 27∼28일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종전 60주년을 기념해 남양군도의 사이판을 방문한다.6000여 일본인들도 이때 함께 이 작은 섬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극우 대변지인 산케이신문은 벌써부터 광분하며 기획특집을 쏟아내고 있다. 정말 ‘대단한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원래 일왕은 팔라우와 마셜군도 등 태평양 섬들을 두루 둘러볼 참이었으나 미국령인 사이판만 찾기로 했다는 후문이다. 지난주, 옛 일본 육군 제30사단 소속 야마카와 요시오(87) 중위와 나카우 스스키(83) 상등병이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 인근 산악지대에서 숨어살다가 발견됐다는 오보 사태로 일본 열도가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인 일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지난 1972년 괌의 요코이 쇼이치(당시 56세)에 이어 74년 필리핀에서 오노다 히로오(당시 51세)가 종전 30여년 만에 생환했었다. 당시 요코이는 “부끄럽게도 살아 돌아왔습니다.”라는 귀국 일성을 토해내 일본 군국주의자들을 열광케 했는데, 이번에 ‘발견’된 이들은 또 무슨 말을 내뱉을까. 이래 저래 일본인들의 해묵은 관심이 태평양에 쏠리고 있다. 그 태평양과 우리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머나먼 태평양에 수만의 무주고혼들이 떠돌고 있다. 신혼여행지의 대명사로 불리는 사이판 같은 곳에서도 수많은 조선인들이 군인과 군속,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죽어갔다. 그들이 ‘덴노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몸을 던졌다는 일명 만세절벽은 일본인 참배객의 메카가 되었으며, 일왕은 여기에 세워질 신사 준공식을 겸해 이곳을 찾는 것이다. 2차대전은 곧 태평양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주, 중국, 버마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전선이 확대되고 있었고, 같은 시기 남양군도에서는 바다의 전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남양군도란 오늘날 미크로네시아를 가리킨다. 지도를 펼치면, 일본 남쪽으로 괌, 사이판 등이 포함된 북마리아나군도가 있고 그 밑으로 얍과 팔라우 등이 자리잡고 있다. 동쪽으로는 마셜군도가 있는데 이곳을 총칭하여 미크로네시아(Micronesia) 라 부르며, 여기에는 2106개의 섬이 포함돼 있다. 태평양의 일본군 최대 근거지였던 팔라우를 찾았다. 연전에 어느 정신없는 탤런트가 ‘정신대를 기리는’ 누드촬영을 하겠다고 나서 온 사회를 벌컥 뒤집어 놓은 바로 그곳이다. 육·해·공군을 관장한 팔라우 집단사령부와 식민청인 남양청 본청, 법원, 병원 등이 있던 매우 중요한 전략기지였다. 흔히 일본이 2차대전 무렵에 이곳으로 진출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일본의 태평양 진출은 이보다 앞선 19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콜럼버스의 이른바 ‘아메리카 발견’ 이후 스페인과 포루투갈의 식민지 쟁탈전을 조정하기 위해 태평양쪽은 스페인이 독식하는 것으로 합의된다. 그리하여 필리핀을 위시한 팔라우도 16세기에 스페인에 예속된다. 19세기 중반에는 카이저황제와 비스마르크의 강력한 후원에 힘입어 이곳에 독일 자본이 밀어닥쳤다. 독일의 스페인에 대한 도전은 1899년에 드디어 성공한다.1898년 미국과 스페인 전쟁에서 스페인이 패함에 따라 힘을 잃게 되자 스페인은 파리에서 비밀협정을 맺어 독일에 이 섬들을 팔아넘긴다. 이에 1914년 10월, 일본은 영국과 연대해 독일에 대항하면서 미크로네시아를 넘본다. 사실, 일본의 태평양 탐욕은 훨씬 전부터 드러났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을 거치면서 북방 대륙 진출에 여념이 없던 일본으로서는 남쪽 바다를 향한 야욕을 잠시 유보했을 뿐이다.1880년대에 다케코시 요사부로는 “적도를 얻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외치지 않았던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지 두달도 채 되지 않아 일본 해군은 캐롤라인과 마리아나, 마셜군도의 주요 섬에 상륙한다.1914년 10월7일, 수백명의 일본군이 폰페이섬의 성당에 들이쳤으며, 이곳에 기관단총을 설치하고 팔라우 공격에 나섰다. 1919년에 국제연합은 공식적으로 이곳의 일본 지배를 인정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전리품으로 남양군도를 획득했으니, 일본의 태평양 식민사는 이로부터 근 100년에 이르는 것이다. 종교와 교육, 그리고 경제적 개발은 식민지를 건설하는 중요한 축이었다. 남양청을 세우고 식민 관료들이 섬을 지배한다. 일본인 이민이 급증했으며 그들은 전력산업, 알루미늄광산, 진주양식과 카사바 같은 상업적 농업에 종사했다. 일본 정부의 지원 속에 1935년까지 5만여 일본인들이 섬 곳곳에 흩어져 살았는데, 이들 대부분은 오기카와로부터 이주해 왔다.1940년에 일본인 인구는 7만 7000명까지 늘었으며,2년 뒤에는 9만 6000명을 헤아렸다. 미국과 전쟁이 시작되면서 군인·군속들이 속속 집결, 일본인 수는 거의 2배로 불었는데, 팔라우와 사이판이 주요 거주지였다. 일본 식민청은 이곳에서 각 섬마다 이른바 토지개혁을 단행했다. 한반도에서 하던 방식과 똑같이 원주민의 토지 개인소유는 인정하되, 바닷가나 산의 공유지는 모두 식민청 소유로 돌렸다. 한마디로 ‘털도 벗기지 않고’ 대부분의 땅을 먹어치운 것이다. 전쟁이 벌어지자 이 땅의 대부분은 군사기지로 징발된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 것도 기실은 일본과 미국의 태평양을 둘러싼 이해대립 때문에 생긴 필연적 귀결이었다.2차대전이 벌어지기 훨씬 전부터 양국은 서로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었으며 급기야 미크로네시아에서 태평양전쟁 중 가장 혹독한 전투가 치러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사실이 또 하나 있으니, 괌이 2차대전 때 미국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괌은 1898년에 미국과 스페인 전쟁의 부산물로 미국으로 넘어갔다. 미국은 이 전쟁을 계기로 태평양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1783년에 무역선 차이나호(Empress of china)를 통해 태평양에 본격 등장했다. 배에는 무역 상인과 선교사, 뉴잉글랜드의 포경업자, 해군 장교 등이 타고 있었다. 미국은 괌에 더해 20세기 초반에는 필리핀, 하와이, 사모아제도 등을 추가로 얻는다. 하와이에서는 1893년에 미국 상인과 선교사들이 반란을 일으켜 왕조를 전복시키기도 했다. 그 후 이곳에서 사탕수수 산업이 시작되었고, 한국인 이민도 비슷한 시점에 이뤄진다. 말이 이민이지 노예수출에 지나지 않았다.1899년에는 미국령 사모아에 미국 해군이 진을 친다. 괌에서도 미국은 ‘어머니 나라(Mother Country)’로 등장했다.1941년 12월7일 일본이 진주만을 때린 것은 이처럼 태평양을 둘러싼 해묵은 패권 다툼의 발화였을 뿐이다. 거의 동시에 일본 육군은 홍콩을 공격한 데 이어 42년 2월에는 영국군 거점인 싱가포르까지 먹어치운다. 이런 일련의 사태로 태평양전쟁은 종말을 향해 치달았다.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독립기념관) 김도형 연구원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1936년,15살 어린 나이의 한국인 위안부 10여명이 처음 팔라우에 끌려온다. 그 후 코롤섬 토목공사를 위해 전라·경상도에서 노무자 200여명이 왔다. 코롤시 동쪽 끝에 위치한 ‘아이고브리지’는 한인들이 다리를 놓을 때 너무 혹독하게 시달린 나머지 ‘아이고, 아이고’를 연발해 붙은 이름이라는 내력이 슬프다. 한인 노무자와 더불어 조선총독부는 농업이민도 보냈다. 모두 13회에 걸쳐 1266명이 이주됐다. 중부 태평양의 중심기지인 트럭섬이 궤멸되자 1944년 2월25일 관동군과 조선군에서 선발된 정예부대 29사단이 팔라우에 진주했다. 이때 중국 관동에서 1만 2000여명이 왔는데, 대부분 한인 병사들이었다는 설이 있다. 팔라우의 한인 가운데 가장 많은 이들은 군속이었다. 말이 군속이지 해군에서 토목작업을 시키기 위해 끌고온 노무자들이었다.1943년 5월20일, 부산을 거쳐 팔라우에 800여명의 한인이 도착했다. 이들은 처음에 일본 본토와 남양과의 수송시설 건설에 종사하다가 미군의 공격이 심해지자 진지 구축에 투입된다. 인근 무인도에서는 남양척식주식회사에서 갈매기 배설물인 인광을 채굴하여 비료를 만드는 일에도 이들이 투입됐다. 1944년 8월, 연합국이 중부 태평양의 마지막 공격지 팔라우에 들이쳤다. 미 제1전대의 공격으로 일본 육군 7212명 중 6766명이 전사하고 466명만 살아남았다. 해군도 3400명 중 단지 10명만이 생존했다. 물론 그 일본군 중에는 징병으로 끌려온 한인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미군 폭격이 거세지자 일제는 팔라우의 일본인 1만7800여명을 본국으로 강제소환한다. 그렇지만 강제 징용된 한인들은 송환 대상에서조차 제외된 채 전쟁이 본격화되어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식량보급이 끊기면서 한인들에게는 식량도 주어지지 않았다. 굶주림에 지쳐 식량을 훔치다 총을 맡고 숱한 한인들이 죽어 나갔다. 정신대로 끌려온 조선의 딸들도 곳곳에서 죽어나갔다. 창고에서 건빵을 훔치려다 들킨 한인을 나무에 매단 뒤 귀나 코를 베는, 임진왜란 때 왜군의 만행과 흡사한 짓을 자행했다는 믿기 어려운 증언도 전해진다. 팔라우 주둔 일본군이 미군에 공식 항복한 것은 1945년 9월2일이었다. 총알받이로 수많은 한인들을 끌고 왔다 수세에 몰리자 나몰라라 내팽개친 뒤 자신들만 빠져나간 것도 일제 만행의 일부로 기록돼야 한다. 그 불바다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아 귀환한 사람이 2만 5773명이었고, 팔라우에서는 3000여명이 귀환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많은 이들이 죽어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팔라우에서도 ‘천상의 바다정원’으로 소개되는 록 아일랜드로 스피드보트를 타고 나가 무인도에 배를 댔다. 물 속으로 들어가자 ‘물 반 고기 반’이다. 산호섬답게 산호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너무도 아름다워 ‘용궁’이 본디 이런 풍경이었을까 여겨지는 곳. 그러나 물 밑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탱크와 항공기, 선박의 잔해가 즐비하다. 전쟁은 끝났지만 아직도 역사의 시간은 진행 중임을 이 잔해들이 말해주고 있다. 과거, 잠시 적이었고 이후 해양 패권의 든든한 동지로 미국에 보조를 맞춰 온 일본의 왕이 미국의 비호를 받으며 미국령 사이판을 찾는다. 태평양의 바다 속에 잠긴 탱크들이 다시금 포신을 곧추세우기 시작했다.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경의 태평양을 다시 피바다로 만들 작정이다. 이 막막한 타국을 떠돌고 있을 한국인들의 넋에 대한 최대의 모욕이 일왕에 의해 지금 다시 시작된 것이다.
  • ‘식민지배 잘못’엔 공감 강제병합 여부엔 이견

    ‘식민지배 잘못’엔 공감 강제병합 여부엔 이견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성과는 양측의 뻔한 기존 주장 재확인에 그쳤다. 위원회 탄생 자체가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를 앞두고 양국간 정치적 흥정의 결과물이었고, 양국 모두 민족주의적 시각을 밑바탕에 깔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미 예견됐던 일이었다. ●임나일본부설 고대사를 다룬 1분과의 주요 쟁점은 왜군이 한반도 남부에 지배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임나일본부설’이었다. 한국측은 4∼6세기 왜군은 백제나 가야의 원군 수준에 그쳤다고 주장한 반면, 일본측은 왜군이 한반도 남부에서 군사활동을 했고 동시에 이 지역에 대한 지배의사를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양측 모두 치열한 사료전쟁을 벌였지만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일본서기’에 기초한 임나일본부설은 부인됐다고 공동위원회는 밝혔다. 그러나 연구기간이 짧아 고대 한·일관계사에 대한 연구가 충분치 못하다는 단서가 붙었다. ●조선시대 한·일외교와 임진왜란 중·근세사를 다룬 2분과의 쟁점은 임진왜란을 포함한 조선시대 한·일 관계였다. 한국측은 조선전기에는 왜구에 대한 징벌이 있었고 후기에는 ‘통신사’를 통해 어느 정도 물꼬를 터주었다고 주장했다. 임진왜란에 대해서는 양국간 인식 차이가 있는 만큼 전쟁의 참혹함을 경계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일본측은 조선전기에 이미 동아시아 교역권이 존재했고 후기에는 ‘통신사’가 있었는데 일본은 이를 조공사절로 이해했다고 반론을 폈다. 임진왜란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에 대한 정벌욕구와 조선에 불리하게 돌아간 정보의 실태를 규명하는 데 초점을 뒀다. ●식민시기 전후사 한국과 일본 연구자 모두 식민지배가 잘못됐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은 달랐다. 한국측은 자주국 조선이 강제적으로 일본에 병합당했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일본측은 조선은 청나라의 조공국에 불과했고 청일전쟁의 승리로 동아시아에 근대적 질서가 도입됐다고 주장했다. 또 병합 과정의 각종 조약 역시 합법적인 데다 국제적으로 승인도 받았다고 밝혔다. 연장선상에서 일본측은 식민지배에 따라 조선에 근대적인 측면들이 나타났다는 점을 강조하는 반면, 한국측은 근대적 측면이 일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수탈이 뼈대를 이룬다고 반격했다. 따라서 한국측은 독립운동을 강조하지만 일본측은 한국의 저항은 미미했다고 봤다. ●65년 국교정상화와 북·일 관계 현대사 분야의 쟁점은 국교정상화와 북·일관계였다. 국교정상화에 대해 일본은 배상·보상 문제가 마무리됐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한 반면 한국측은 위안부 문제 등이 빠진 채 논의됐기 때문에 배상·보상의 책임은 여전하다고 주장했다. 북·일관계에 대해서도 일본측은 일본인 납치문제를 거론했고 한국측은 일본의 우경화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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